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말하라

 

1986. 9. 19. 밤(금)

 

본문:베드로전서 3장 10절∼12절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으니라

 

우리 기독교는 전적 은혜라, 전부 공으로 받는 그 은혜라. 그 말이 틀렸느냐? 맞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온갖 영의 축복과 육의 축복, 하늘나라 축복과 세상 축복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으로 주시는 은혜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 교리는 맞은 교리입니다.

그러나 여게서 사람들이 마귀의 궤휼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겠다” 또 “네 믿음대로 되리라” “사람이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느니라” 이런 말씀들은 꼭 사람이 행한 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는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도 교리상 딱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행한 대로 축복받는다 하는 말씀도 맞고 또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배기로 축복받는다 하는 말씀도 맞습니다. 이 둘 다 맞습니다. 여기에서 두 교리가 정반대 되는데, 하나는 행한 대로 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니까 정반대 되는 교리 아닙니까? 이 반대되는 교리가 어떻게 한 성경에서 이렇게 정반대 되는 주장이 있는가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아무 의문 없이 그만 성경에 뭐 이래 하든지 저래 말하든지 그저 자기 생각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뭐라고 말했든지 상관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믿으면서 성경대로 믿어야 되는데 성경에서 이렇게 모순된 이 교리를 말씀해 놨으니 이것이 어떻게 되나 하는 여게 대한 번민과 고민을 가지고 여게 대해서 해결을 지울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 그 사람이 실상 복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행한 대로 갚는다는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택한 자들에게 기본구원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뭐 기본구원 주신 그 모든 축복이나 은혜는 우리 사람들이 생각도 하지도 못한 것을 우리에게 다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또 사람이 하나님의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기본구원 얻었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권세가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권세가 있고, 또 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공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이리 기본구원에서 이 대속을 입었습니다.

대속 입은 사람들이 이 대속의 기본구원을 자기가 모르면 헛일입니다. 하나도 모르면 기본구원은 꼭 같은 기본구원을 얻었지마는 건설구원이라 하는, 하늘나라 가서 영광의 차이가 있고, 권위의 차이가 있고, 대우의 차이가 있고, 가치의 차이 있는, 그 차이가 되는 그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이 기본구원에 대한 이 도리, 성경 도리를 하나도 모르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은 기본구원만 이루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면 딱 들어맞습니다.

또 그 사람이 이 구원 이루는 도리를 자기가 알았습니다. 알고, 알기는 알지마는 그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알기는 다 알아도 ‘이 공연한 이거 거짓말이고 사람 속이는 말이지 이거는 사실 이대로 될 것은 아니다.’ 하나도 인정은 안 합니다. 알기는 하는데 인정은 하나도 안 합니다. 인정 안 한다 말은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정 안 하는 사람, 인정을 하나도 안 하면 그 사람에게도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정 안 하면 하나도 건설구원 없습니다. 건설구원이 차이 있는 것은 아는 차이가 건설구원의 차이요 인정하는 차이가 건설구원의 차이입니다.

그러면 알고 인정을 합니다. 알고 인정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자기가 그 구원을 이루려고 실제로 힘을 씁니다. 실제로 힘을 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알고 인정하고 힘쓰는 일은 전혀 안 합니다. 전혀 안 하면 자기가 그 실상을 이루어지도록, 실상이 이루어지도록 힘써 노력하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하나도 모르는 사람은 건설구원이 하나도 안 이루어지고, 다 안다 할지라도 인정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안 이루어지고, 다 알고 인정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실제로 그 일을 자기 힘으로 자기의 노력으로 이루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축복이든지, 육의 축복이나 영의 축복이나, 땅의 축복이나 하늘나라의 축복이나 뭣이든지 자기가 그것을 실상으로 이룰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있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우리 구원은 회개가 우리 구원인데, 잘못된 것을 그것을 하나씩 없애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 모든 화를 벗어버리는 것이고 또 자기가 옳다 생각하는 그대로의 옳은 것이 하나라도 이루어지면은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노력으로 회개하는 거, 고치는 일, 잘못된 것은 버리고 또 옳은 것은 행하고 이렇게 고치는 거, 그 사람이 고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또 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거, 또 인정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거, 자기가 노력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거, 넷째는 뭐입니까? 넷째는 뭐라 했지요? 넷째는 뭐입니까? 요거 모르면 안 돼. 넷째는 뭐이지요? 고친 것이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생활은 우리 마음도 나쁜 것을 그것을 버리고 좋은 것으로 고치고, 마음도 회개하고, 생각도 회개하고, 말도 회개하고, 정신도 회개하고, 성품도 회개하고, 욕심도 회개하고, 뭐 우리의 전언행심사 우리의 전부를 잘못된 것은 버리고 또 좋은 것을 취해서 회개하는 거, 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그 사람의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축복이나 하늘나라 축복이나, 육의 축복이나 영의 축복이나 그 축복은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여게서 착각을 일으킵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고 성경에 말해 놓지 않했느냐? 하나님의 전적 은혜라고 말씀해 놨기 때문에 은혜인데 뭐 행함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말하기를 「행위대로 된 구원이 아니고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된 구원이라」 행함으로 된 구원이 아니라고 똑똑히 성경에 명문해 가지고 있는데 뚱딴지같이 백 목사는 이 네 가지가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니까 이거 성격적이 아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말을 하고서 조롱을 합니다. 그러나 조롱하는 그것은 그 사람이 몰라서 그와같이 하고 있는 것이오.

자, 건설구원은 첫째, 요거 똑똑히 네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모르면, 이 구원 이루는 이 도리 이치를 하나도 모른다고 하면은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이 건설 축복, 건설구원이라 말은 건설 축복이라 말이요, 기본구원이라 말은 기본 축복이라 말인데 이 건설 축복 이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과 존귀와 실력과 권위와 대우와 자기 가치와 모든 자기의 가치 있는 이 봉사의 일 이런 것을 가리켜서 다 건설 축복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 건설 축복, 건설구원.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영광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은 인간 중에 천해서 남의 집 개만도 못한 그런 천한 인간 있습니다. 이 모양으로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하늘나라 간 사람들 가운데에 아주 천해서, 그것은 하늘나라 가서 뭐 안 죽고 영생하고 있기는 있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거와 같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이제 건설구원인데 요새 교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건설구원이니 기본구원이니 구원을 둘로 쪼갠다고 지독스레 싫어하고 욕을 합니다. ‘이라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냐?’ 모르면 배워야 될 터인데, `구원은 하나인데 뭐 건설구원이니 기본구원이니 이렇게 쪼개 가지고 복잡하게 하느냐?’ 이래 가지고, 제가 모르니까 이거 모르는 것이 폭로될 판이니까, 그러면 뉘가 안 사람이 있습니까? 몰라도 배우면 될 터인데 겸손히 배우지 안하고 이 뭘 자꾸 쪼갠다고, 백 목사는 쪼개는 그게 탈이다고 이래 가지고 욕들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쪼개는 것이 그것이 쪼개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거의 십분지 팔구는 알았습니다. 거의 권위 있는 목사님들이나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데, 또 오늘도 또 쪼개는 말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쪼개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기본구원을 이룰라고 수고하느냐? 기본구원은 우리가 알기도 전에 다 이루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거게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주의할 것. 일 이 삼 사, 이 네 가지가 하나도 없으면 그 사람은 예배당에 뭐 수십 년 다니다 죽었다 할지라도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어. 이 넷이 하나도 없으면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넷인데 첫째는 뭣이지요? 아는 것. ‘이 성경에 어떻게 하면 구원이 된다’ 하는 것을 아는 거. 또 그 다음에 둘째로는 아는 대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믿는 것.

또 셋째로는 뭐입니까? 자기가 노력하는 거, 자기가 실지로 실행을 해서 노력을 해야 됩니다. 셋째는 노력. 넷째는 뭐입니까? 고쳐진 것이 있어야 된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고쳐진 것이 있어야 돼. 이거 없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안 돼요.

고쳐진 게 있어야 됩니다.

이라니까 여게 대해서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감리교 교리 선생, 또 성결교 저런 교파의 교리 선생 이런 분들은 ‘우리 구원은 이것은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둘이 어울려 가지고 이루는 구원이다’ 그렇게 말하고 또 칼빈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구원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칼빈과 정반대입니다. 이러나 칼빈의 말이 맞기는 맞습니다.

맞으나, 칼빈의 말이 맞기는 맞은데 또 감리교에서 하는 말도 맞기는 맞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으나 이것을 가서 파고 들어가서 쪼개봐야 압니다. 쪼개봐야 맞은지 안 맞은지 안다 그 말이오.

그저 남한에 있는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사람은 남한 시민이라’ 이렇게 인정하지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사를 해 봐아 되겠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시민권을 가짜로 꾸며 가지고 다니는 간첩이라 그 말이오. 그럴 수도 있다 그거요.

이거 모양으로 이제 감리교 교리도, 장로교 교리도, 또 성결교 교리도 이 교리를 따져들어가 봐야 됩니다. 따져들어가 보면 끝까지 맞은지 들어가 보면 틀렸는지 그거 좀 따져들어가 봐야 된다 그거요.

그러면, 이 건설구원은 이 네 가지가 전혀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안 된다 이라니까, 그러면 이 네 가지가 없으면 구원이 안 되고 요 네 가지가 완전히 돼 가지고 있으면은 건설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그러면 우리 건설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된 것입니까 은혜로 된 것입니까? 은혜로 된 것입니까 행위로 된 것입니까? 행위로 됐지요. 행위로 됐지요.

행위로 됐는데 행위로 건설구원이 이루어졌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깨달은 교리로써는 정죄를 합니다. 정죄해. ‘행위로 구원된 게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다.’ 이래 말합니다. ‘왜 네 가지 행한 대로 구원이 되는데 어떻게 은혜로 됐다고 하느냐? 행한 대로 됐다고 하지 안했느냐?’ 그런데 그것을 따져 들어가면 성경이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은 “네가 행한 대로 내가 갚아 주리라” 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사람들이 요 네 가지를 한 것만치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지 전능의 완전을 가지고 해 주십니다. 우리 구원은 전지자가 아니고 전능자가 아니고 완전자가 아니면 우리 구원은 털끝만치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만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 가지고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당신이 해 주십니다.

그러면 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이 네 가지 한 것을 보시고 한 것만치 당신이 해 주십니다. 한 게 하나도 없으면 하나도 안 해 주십니다. 한 것이 완전히 다 했으면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 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 해 주셨는데 이거는 전지 전능자가 해 주신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의 것이요, 영생의 것이요 인생은 그런 것은 털끝만치도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셨으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인간의 노력으로 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인간이 행하는 그대로, 제가 제게 있는 힘을 다해서 제가 행한 것만치 믿는 것만치 하나님이 해 주시기 때문에 한 것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한 것은 하나님이 전적 해 주셨기 때문에 은혜로 됐지마는 인간들의 그 행한 것을 보고 거게 따라서 하나님이 그 은혜를 베푸신 것이니까 인간이 행한 것은 그 구원을 이루는 행동입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그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행동입니까? 뭐입니까? 우리 인간의 행동은 완전 영원 불변한 그 구원을 털끝만치라도 우리 노력 가지고 이루는 행동입니까, 이루는 것은 털끝만치도 하지 못하는데 다만 우리들이 이 네 가지를 행할 때에 행한 것만치 하나님께서 당신이 ‘온전한 것을 해 주겠다’ “네가 연약한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또한 너를 지켜서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하시겠다” 이랬으니까 우리 사람의 이 네 가지 행한 양만치 하나님이 은혜로 도와 주시는 그 양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행동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노력입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공으로 해 주시는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 받는 방법,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간구하는 그 노력이 되겠습니까 그 구원을 이룬 노력이 되겠습니까? 뭐입니까? 간구하는 노력이 됩니까 구원을 이룬 노력이 됩니까? 하나님이 은혜로 해 주실 수 있도록 그 은혜로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우리 간구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그러면 또 하나님이, 그렇지마는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 주시는데 하나님이 해 주시지마는 우리 구원 이루는 그 노력이 그 구원을 이루는 데에 많이는 끼어 있지 안하지마는 다문 털끝만치라도 우리 구원의 노력이 그 구원 이루는 데에 끼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털끝만치라도 끼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녜, 잘 알았습니다. 털끝만치라도 끼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들어 가지고 그 노력한 것이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온 교파가 이것을 잘못 알고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합쳐 가지고 일을 한다. 합해 가지고 구원 이룬다.’ 하는 그 사람은 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교리가 되고 맙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교리가, 잘못된 교리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일 아무리 이렇게 한다고 해도 자기가 이 교리를 잘못 알았으면, 그저, 네 가지 행위를 했으면 한 것만치 하나님이 갚아 주시겠는데, 네 가지 행위를 하면서 ‘내 행위와 하나님의 노력과 둘이 합해 가지고 이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자기가 깨닫고 이것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냐?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구원을 이루었다.’ 합동 구원설.

감리교는 합동 구원설을 말합니다. 성결교니 이런 사람들도 내나 합동 구원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전적 궁극적 은혜 구원설을 말합니다. ‘전적 은혜라’ 그러면 은혜라는 말은, 은혜라는 말은 기본구원도 은혜인데 건설구원도 사람이 네 가지 행한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네게 있는 힘을 다 들여봤자 이 구원은 털끝만치도 이루어지지 못하지마는 네게 있는 힘을 다 들여서 하면 내 힘을 다 들여서 네 구원 이루어 주겠다. 네게 있는 힘을 주먹덩이만치만 들여 가지고 그 구원을 이룰라고 애를 쓰면은 나도 네게 대해서 주먹덩이만치 해 주겠다.’ 그러니까 이제 구원 이루어지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이 교리가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우리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이 교리, 이 믿는 교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맞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노력은 필요가 없지 않는가? 인간의 노력은 필요가 없지 않는가?’ 또 ‘인간의 노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는, ‘인간의 노력이 하나도 없으면은 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는 이 말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거 봐, 확신이 없는 것이라.

인간이 네 가지, 바로 아는 거, 믿는 거, 노력하는 거, 또 변화된 것, 실상을 이뤄 가지고 변화된 것, 회개해 가지고 변화된 것, 그러면 이 네 가지가 하나도 없으면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것은 이게 없으면, 하나님이 해 주시는 구원인데 이 네 가지가 없으면 하나님이 구원을 해 주시지 않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해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조건부로 계약을 해 놨는데 ‘너거의 힘 가지고는 구원을 털끝만치도 이루지 못하지마는 못 이루나마 네게 있는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하면은 내가 너희에게 이 영생하는 구원을,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겠다.’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계약한 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셔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아닌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둘이 합동해서 우리 건설구원을 이룬다 하는 것은, 그 말이 맞다 하는 말은 궁극적으로 맨 결말을 말할 때 맞다 말입니까, 이 처음에 하나님이 해 주시는 역사와 우리 구원을 이루는 시작과, 그 전체의간구하는 노력과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보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과 통합해서 말할 때는 그 두 가지가 합해서 구원 이룬다 하는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맞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러면 우리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한 것이요, 다 그런 것인데 영생하는 완전 구원을 이루는 그것을 사람의 노력과 하나님의 노력이 둘이 합해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진다고 하면 그거는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자,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녜, 틀렸습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요렇게 여러분들이 구별해 가지고 우리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회개는, 회개도 그러합니다. 회개도 사람 힘으로써 회개할 만치 할 때에 하나님께서 완전한 회개를 이루어 주십니다. 회개도 사람 힘으로 하는 회개도 있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회개 있고, 믿음도 사람 힘으로 하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믿음이 있고, 그러면 사람이 언제든지 한 것만치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다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불변한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네 가지 바로 모르면 헛일, 또 바로 알아도 안 믿으면 헛일, 알고 믿는다 할지라도 실제로 자기가 그 일을 이룰라고 노력하지 안하면 헛일, 또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고치고 옳은 것을 한 이 회개가 있어야 되지 회개가 없으면 헛일.

그러면 이 네 가지 회개까지, 알고 믿고 노력하고 회개하고 이 네 가지가 이루어졌을 때에 우리 건설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우리 네 가지 이것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룬 것입니까? 네 가지는 건설구원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도록 하는 그 간구의 우리의 노력이요 건설구원을 이루시는 것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전적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오늘밤에는 우리가 우리 노력으로써 실상이 이루어지는 이 회개가 이루어지는 일이 있어야 되지 그게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말은, 생명을 사랑한다 말은 앞으로 점점 모든 것이 망해지지 안하고, 죽을 때도 망해지지 안하고 영원히 망해지지 않는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말합니다. 생명이라 말은 하나님하고 연결돼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걸 가리켜 생명이라 말합니다.

이러기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하나님의 영육의 축복, 금생 내세의 축복,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이 미래가 현재보다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을 뭘 하라고 했습니까? 자, 따라합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녜, 혀를 금하라 말은 이 입술을 조심하라 그말입니다. 입술을 조심하라 말입니다.

암만 예수 믿어도 그 사람이 이 도리를 몰라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혀를 금해야 된다” 이 사실을 모르면 그 사람이 소용 없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그 사람이 무슨 건설구원을 이루겠습니까? 또 이 사실을 안다 할지라도 ‘원 그래 말한 것이지 뭐 그대로 꼭 되겠느냐?’ 안 믿으면 소용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알고 믿는다 할지라도 실제로 이 혀를 금할라고 노력이 없으면 소용 없습니다. 금할라고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또 금할라고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해도 회개가 없으면 안 됩니다. 혀를 금한 그 결과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이루어져야 생명과 미래가 좋은 행복이 오는 것이지 그렇지 안하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오늘 아침에는 뭘 배웠지요? 우리가 사람에게 말을 하든지 사람의 말을 듣든지, 말을 할 때나 들을 때에 무엇을 생각하고 말을 듣고 말을 하라 했습니까? 그 사람이 목사라고 자기에게 자꾸 말을 합니다. 또 권찰이라고 말을 합니다. 학교 선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 상관이라고 말을 합니다. 정권자라고 말을 합니다.

대학자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든지, 원수가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하든지 내가 말을 들을 때에는 먼저 뭣을 생각하라고 했습니까 아침에? 이것도 다 잊어버렸어. 뭣을 생각하라고 했어요? 여러분들이 그러니까 암만 가르쳐도 던져버려. 뭣을 생각하라 했지요? 그러면 사람에게 내가 말을 할 때에, 높은 사람에게 말을 하든지 낮은 사람에게 말을 하든지, 원수에게 말하든지 사랑하는 자에게 말하든지, 천한 자에게 말하든지, 급할 때 말하든지, 사람에게나 물질에 대해서나 사건에 대해서 말을 할 때는 뭣을 생각하고 말하라 했습니까? 뭣을 생각하고? 이거 통통 어두워. 크게 말해 봐, 크게. 더 크게 한번 해 봐라 남자의 음성이 툭 터져야 희망이 있지 음성이 그러면 안 돼. 목청이 툭 터져야 돼요. 사람 상을 볼 때 말이요, ‘보기는 얄궂은데 그 목통이 크다. 목통이 터졌다.’ 그라면 그거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을 목소리 들어 보고서 사람을 등용하는 그런 일 해요.

하나님의 심판. 어떤 사람에게 말을 하든지 심판을 생각하고 말하라. 말할 때에 돈 생각하고 말하면 망합니까 흥합니까? 자기 직장 생각하고 말하면 망합니까 흥합니까? 자기 가정 생각하고 말하면 망합니까 흥합니까? 자기의 원수를 생각하고 말하면은 망합니까 흥합니까? 다 망해.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만 삽니다. 알겠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말할 때에,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이 내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터인데,’ 우리 말한 것은 털끝만한 말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할 때에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를 받을 말이냐? 혹은 상을 받을 말이냐? 상을 못 받을 말이라도 용납은 받을 말이냐? 하나님의 진노가 될 말이냐?’ 야고보서 3장 1절에 “스승된 자는” “선생 된 자는” 선생은 남을 가르치는 사람 아닙니까? “선생된 자는 받을 심판이 더욱 중하니라” 말했어. 알겠습니까? 거게서 나온 말이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되나 안 되나 입술로 자꾸 다른 사람에게 말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자꾸 말만 주 지껄이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네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지 않는 말은 없다. 네가 돈을 위주로 가지고 말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받으면 네가 천금 만금은 모았을지라도 그 돈은 네게 화덩어리 되는 것이지 복될 게 뭐 있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원수에게 말할 때도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말하고, 네가 좋아하는 네 편, 네 사람에게 말할 때도 하나님의 심판 생각하고 말해라.’ 이것을 오늘 아침에 내나 삼십 분이나 가르쳤는데 통통 잊어버리고 있으니 여러분들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거? 이래 가지고 뭐할 거냐 말이오.

이러니까, 아침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것을 말하고 그거 말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말을 들을 때는 말 안했지마는 말 할 때에 말을 배웠으면 말 들을 때에 말도 다 같이 따라 들어가는 것 아니겠소? 안 그래요? 달라요? 다릅니까? 내가 말할 때에 심판을 생각하고 말을 하면 내가 들을 때는 어째야 돼요, 또? 들을 때는 어째야 됩니까? 들을 때도 심판을 생각하고 들어야 되지 안해요? 그런고로 내가 말을 들을 때도, 그러니까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게 하루 종일 말을 했지마는 다니엘은 ‘이 다리오 왕이 나에게 말하는데 이 하는 말은’ 뭐 생각했소? 다니엘이 뭐 생각했소? 하나님의 심판 생각했어. ‘이 다리오 왕의 말이지마는 이 말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게 하는 말이요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 하니까 다니엘이 그 시험에 빠지지 안했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다 그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말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도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들어야 됩니다. 내 귀에 좋다고 나쁘다고, 돈 유익된다고, 내 직장에 유익하다고, 내 현실에 유익하다고, 그까짓 게 다 소용 없어.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이 복의 근원을 자꾸 찬송하는 것은 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모두 다 조절하고 주관하고 있어요.

이라니까, ‘이 말은, 이 말 내가 들으면 복 없다. 복 깎인다. 하나님에게 저주 받는다. 내가 이 말 하면 하나님에게 저주 받는다.’ 듣는 말 하는 말을 하나님 심판 생각하면서 심판에 걸리지 안하고 하나님 심판에 ‘너는 복 받아라’ 할 수 있는 이렇게 말 듣는 거 말하는 것을 요것만 조심하면은 당장 부자 됩니다. 당장 위대한 사람 돼지요. 그 사람에게는 말에 흠 없는 사람이 될 터이니까 그 사람은 모든 걸 차지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거요.

이제 이거 배웠고, 또 이제 사십 분 지내갔는데, 야고보서 3장을 가 읽어 보십시오.

따라합시다.

말은! 사공의 배 키다! 말은! 말 굴레의 고삐다! 말 가는 대로! 자기의 생사화복! 흥망성쇠는! 따라간다! 우리의 모든 미래의! 생사화복 흥망성쇠의! 고삐는! 제 말이다!

요것을 야고보서 3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렇게 말씀했어. 자세히 가서 요 말을 듣고 나 들여다보면 그래요.

그러면 여러분들 우리의 앞길에 행복과 불행의 그 운전대는 뭐입니까? 말입니다.

행복을 찾아가느냐 불행을 찾아가느냐 하는 것은 그 운전대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줄 알고 말을 하십시오. 되나 안 되나 자꾸 벌로 말을 주 지껄일 게 아니고.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나와요. 새벽기도에 요새는 조금 뭐, 추석 샌다고 해 가지고, 그리 줄지는 안했어. 저 산에 가서 한 이백여명 모두 다른 데도 다 가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 아침에 나온 사람이 한 육백 명밖에는 안 돼.

그러니까 거기 가서 그랬는지 좀 불어지지 안해요.

저 지난 주일에 구월 첫째 주일에는 보니까 처음으로 삼천오백육십 명이 나왔는데 장년반이, 이제 이 삼천오백명이 다 새벽기도 다 나와야 돼요. 다 나와야 이 예수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요. 자, 이제 밥을 여러 끼 굶고, 밥 굶은 사람은 새벽기도 다 나와요, 밥 굶은 사람은.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하나님 앞에서 작정하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녜.

또 하나 더 듭시다.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못 나오면 못 나온 값으로, 너무 많이 말하면 안 되겠고 아침만 굶기로 작정하는 사람 손 듭시다. 내일 새벽기도 못 나오면 아침 굶기로 작정한 사람, 내일 새벽기도 못 나오면 아침 굶기로 작정하는 사람, 안 드는 사람 더러 있네, 아침 굶기가 싫으니까. 아침 굶기가 싫으니까 안 드는 사람 있어. 저게도 안 드네요. 들어야 돼요. 아침을 굶어야지. 새벽기도 못 나오면 아침을 굶어야지, 뭐. 왜 저 안 들어, 저게 저게? 왜 저게 안 들어, 저게 안 들기를? 예, 놓읍시다.

인제 아침은 굶고, 못 나오거든 아침을 굶어요. 굶고, 거석한 사람은 아침을 굶었어, ‘내가 낮에 점심도 굶겠다. 저녁도 굶겠다.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가고 난 다음에 나는 이제 아침을 먹겠다.’ 요렇게 작정을 하고 실행하면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보니까 밥 굶은 사람 많은데 밥을 굶어도 새벽기도를 못 나오니 그 불쌍한 사람이라 그 말이오. 그거 잘 쉬운 것 아니오.

새벽기도 나올라고 하면은 얼마나 힘이 드는 줄 알아요? 새벽기도 처음에 나올라고 해서 새벽기도 나오기로 작정될 때에 밤에 몇 번 깼어요? 자, 한번 경험한 사람? 열 번 깬, 새벽기도 처음으로 나올라고 작정하고 나니까 그 잠도 못 자고 항상 새우잠을 자서 열 번까지 깬 경험이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열 번까지 깬 경험 있는 사람? 이렇츰 없어? 열 번도 더 깨요, 열 번도 더 깨. 그래 모두 공을 들여 가지고 새벽기도를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되는 게 아니라.

자, 한번 더. 내일 새벽에 나오지 못한 사람은 내일 아침 굶기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녜, 인제 이 약속 어기면 안 돼. 안 되니까 한 때 굶어 봐요. 한 때 굶으면, ‘오늘 출근해 가지고 이거 노동일 할 터인데 굶으면 어짜나?’ 아니, 그래 가지고 굶으면 그날 아침 굶어도 일 더 잘합니다. 힘 더 나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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