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1980. 10. 17. 금새 

 

본문 : 예레미야 2장 7절∼13절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찌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지만  회개하고 돌아오지 아니함을 인해서 아무리 주님이 긍휼을 베풀려고 해도 대립된  그것을 어떻게 할수가 없는 것을 여기에 말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귀는 데에는 참 인간이 인간 사귐과 아주 다릅니다.

하나님을 사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지식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욕심, 잘못된 경영, 잘못된 생각, 뜻, 행위, 무엇이든지 지식이 하나 잘못되어  놓으면 그게 모든 것이 다 잘못된 것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돌이키야 되지 그것을  돌이키지 아니하고는 어떤 방편으로서도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참 성신의 감동 생애 외에는 전부가 속이고 속는것 뿐입니니다. 성경에  성신의 감화가 아닌 것은 서로 속이고 속는 그것 뿐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친밀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으며 친근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으며, 신임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며, 또 흉금을 열어놓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데 그게 전부 속이고 속는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이고 속는 것이라" 그말은 인간들의 견해가 밝지를 못해서 그것을 전부 잘못  비판하고 평가해서 그렇지 하나님처럼 옳게 비판하고 평가하면 하나도 진실한  것이 없다 그말입니다. 이 말씀은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을  다 내가 빼앗을수도 있고 차지할 수도 있고 그를 녹힐수도 있고 그에게 어떻게  뭐 알뜰하게 참 진실하게 깨끗하게 의롭게 참되게 이렇게 인정을 받을만한  수단과 방법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기에 속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인간들끼리 사귀고 있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인정할만한  사귈만한 그 진실함이 하나도 없는 모두 다 거짓부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세상에 있는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참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칭찬, 저런 칭찬, 이런 감사, 저런 감사,  이런 인정, 저런 인정을 받는, 그 방편으로서는 하나님을 절대 매수할 수가  없다. 사귈 수가 없다. 가까이 할 수가 없다. 인정받을 수가 없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요 말을 내가 발표를 잘못해서 여러분들이 잘못알아 듣는지 모르겠는데  세상에서는 인간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 모두다 그것이 엔간하면 됩니다. 뭐 수단  좋은 사람은 참 열명이면 열 명을 다 녹이고 백명이면 백명을 다 녹여도 이 사람  만나면 이렇게 친밀을 베풀고 가지니까 '하, 이 사람은 참 신용할만한  사람이다.' 하되 그 속에 들이보면 속일 계획으로 자기를 위하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에서 또 그게 수단 방법으로,  이래서 세상은 도적은 정직한 사람으로 포승줄을 잡고 있고, 정직한 사람은  포승줄에 도적이라고 묶어가지고 가는 그것이 세상입니다. 이러니까 세상에 수단  좋은 사람은 그까짓거야 인간 친하기야 뭐 이중 삼중도 상관이 없소. 이 사람  만나면 이 사람과 그만 참 둘도 없는 그런 인정을 받고, 저 사람 만나면 저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뭐 수단이요. 방법적이라 이거요.

 전부 수단과 방법이 그렇게 능해서 누구든지 몇번만 만나면 척 사귈 수 있고  그만 아주 그 마음을 다 빼앗을 수 있고 서로 통할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게  이렇게 이 수단 방법이 능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그 수단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수단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의 그 이중 삼중의 그 꾀에 빠지지  않는다. 인간의 그 술책에 간교에 미혹에 매수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천하 인간을 다 꾀워서 녹인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는  녹이지 못한다. 네가 그 방편 가지고는 소용이 없다. 네가 천하 인간에게  거짓부리로, 정직을 인정받도록 그렇게 수단이 능하고, 방편이 능하고, 애교가  능하고, 간교가 능하고, 사교가 능하고, 그렇게 참 아주 방편이 능란해서,  인간은 어떤 인간이라고 네가 네 사람을 만들지 못할 것이 없는 그런 능란한  것이라도 그것 가지고는 나한테는 안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 너무 지식이 탁월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할 때에 그것은 뭐 수단 방법으로 할려는 자는 하나님께 제일 미움을  당합니다. 제가 수단을 쓰고 지혜를 쓰고 할 자 하면 그걸 다 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제일 가증스러운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는  솔직하게, 거짓이 없이 솔직하게, 그저 자기를 정체대로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을 따라서 고쳐 볼라고 하는 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아무리 흉하고,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인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착수하십니다. 기뻐  받습니다.

 그 사람이 천하 인간에게 성자라 성녀라 그런 인정을 받아도 그속에 솔직하지  안하고 꾀쓰는 그것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자는 가증스럽게 봅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보면 아주 이것이 천치 바보같이 어리석지만 그 속에 이중이  없고 솔직하고 진실해서 그저 자기는 시키는대로 따라서 할려고 하면 바보를  인정을 합니다. '이 바보는 바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이중이나 그런 섞어  있지 아니하고 어짜든지 시키는대로 해볼라하는 그것밖에 없다.' 그러면 그이상  그 사람에게 대해서 책임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내게 대해서 행하는 그렇게 내게 대해서 생각하는 그것을 자기에게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하고 그렇게 소망하고 그렇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있는 실력대로 그게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안하면 죄입니다.

그거는 그 사람보다 악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에게 대해서는 자기 힘있는  걸 다해서 책임을 안지면 저주를 받을 줄 압니다. 또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제가 수단 방법 다 가지고 제 지혜대로 그대로 해서 제가 저를 주관하고  이렇게 제대로의 지혜를 쓰가지고 나를 접촉할 때에는 그가 내게 완전히 업히지  안했고 저는 제대로 서가지고 이제 손을 내고 나하고 서로 이래 사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손떼 봤자 제가 제대로 서있고 잡아봤자 제 힘 제가 지고 있고  제대로 서 있기 때문에 제게는 부담이 없습니다.

 이러나 이것은 그렇지 안하고 완전히 모든 것을 다 믿고 맡겨 놓고 거짓이 없이  솔직하게 거기에다 다 맡겨놓고 의지하고, 순종하려고 바라보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자기 등에 업힌 사람이 됩니다. 못 벗어 놓습니다. 업힌 사람이 됐으니  완전히 자기에게 부담를 다 시켰는데 자기가 그것을 벗어놓으면 진리에게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사람들도 압니다.

 그러나 그러면 '야, 이거는 잘 해먹을수 있다 이거는 내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자는 악인이요 그런 자는 지능을  가지는 자가 없습니다. 그 자는 악인입니다. 사람도 보면 사람된 사람에 따라서  다 이리 됩니다.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제일 떼버리지 못하고 그 사람을 내어버리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 당신의 있는 것 가지고 그 사람을 책임지지 아니할 수 없는 이 하나님께  하나님도 꼼짝 못하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과 그 충만하심에 책임을 꽉 지워서  하나님 이거 두고는 꼼짝할 수 없고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요 방법은 당신만을 전적 바라보고 의지하고 위하고 그만 바라보고, 그만  의지하고, 그의 인도만 생사를 모든 걸 다 맡겨놓고, 순종하려는 이자는  하나님이 못떼버립니다.

 만일 하나님이 떼버리면 하나님이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를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이 이렇게 지혜나 수단이나  방편이나 그런 것 가지고 하나님을 사귈려는 그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다  가증스럽게 여깁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귀는 데에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거리끼는 그것이 생각나는  그것을 정리하는 그것이 당신을 사귀는 것이요. 그것을 두고 수단 방법을 요래  가두고 저래고 가두고, 요리조리 해 가지고 하는 그것은 그 하나님을 어리석게  하나님을 무지자로 자기에게 이용을 당할자로, 속임을 받을 자로 이렇게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이 심은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런 세상 인간을  시귀는 것처럼 하나님을 이렇게 사귀려는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대개 세상에 잘난 사람이 수단 방법 좋은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과  밀접하게 붙은 사람이 없고, 하나님과 밀접하게 접선이 되지 아니하고는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자가 없기 때문에 육체로 능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큰 자가 많지 못하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 사귈 때에는 인간을 사귀는 것 같은 그런 방편을 가지고  사귀지 맙시다. 수단을 부리지 마십시오 꾀를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매수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틀어 말하기를 외식이라 그렇게 말했어.

 하나님께서 성도를 대해서 이스라엘을 대해서 화가 있다고 일곱 번이나  화있을찌언저, 화있을 찌언저, 그런 말씀하신 그 죄는 전부가 외식입니다.

외식하는 너희들이 다 화있을찌어다. 외식하는 너희들이여 무슨 외식, 무슨  외식, 몇 가지를 들어서 일곱 가지를 말한 것은 일곱 가지뿐만 아니라 외식에  전체를 가리켜서 하나 표현 방법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외식하는 너희들.

 외식이라는 그말은 자기의 진정을 하나님께 기울여 상대하지 안하고 그 속 깊은  속에 마음은 딴데두고, 인간을 사귀듯이 이중 삼중의 수단 방법으로 사귀는 그런  가증스러운 것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귀는 제가 하나님을 매수하고, 하나님을  설득시키고, 설욕시키고, 자기 남편을 꼬우듯이, 자기 아내를 꼬우듯이, 자기  친구를 꼬우듯이 자기 상관과 부하를 꼬우듯이 이렇게 이런 방편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할때마다 하나님에게선 그에게  한 화, 한 화 화가 건너갑니다. 화가 건너가지 그런데 하나님이 매수를 당하는줄  압니까?  이러기 때문에 목회자 쳐놓고 제가 고신에 다닐때 본과 학생들 내가 지금도  종종 소문을 듣는데 본과 학생들 쳐놓고 목회에 성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소. 그 참 불쌍하오. 왜 그게서 지식이 우상이라는  설교를 평생 제가 듣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세상 모든 인간의 통계 것 세상  문화라, 지식이라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그것은 다 종합해 가지고  한테 뭉쳐 놓은 그겁니다. 그게 지식이요 이 지식을 많이 받아 놓으니까 이 지식  가지고서 이 사람에게는 요렇게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리하는 (졸기 때문에  마귀가 들어오고 마귀가 들어오기 때문에 안돼. 마귀 떠나기 전에는 절대  하나님이 축복은 안 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속에 많이 가지니까 인간 수단이 많고 인간 방편이 받고  인간의 꾀가 많습니다. 그게 다 어디서 나오느냐? 인간 중심 자기 중심에  대해서도 요 중심의 것, 저 중심의 것 그것을 전부 종합해 놓은 것이 세상  지식이요 인간의 지식입니다. 인간의 문화요. 자기 중심으로 하는데 무식한 거는  직접 자기 중심으로 하고, 아, 그라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저기 제 중심이라고  미혹 받는 사람이 적거든.

 이러니까 직접 보다는 한층 더해 가지고서 간접으로 제가 직접 하지 아니하고서  그 다음걸 통해가지고서 간접으로 한다리 걸쳐 자기에게 딱 오도록, 그런 두다리  거쳐 세다리 거쳐 네다리 거쳐 세상 도덕가야, 이놈아! 네가 몇다리 걸친 제일  고등범인이 아니냐? 요렇게 해놓은 요것을 가지기 때문에 요것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면 될 줄로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 속지 않는다 말이요.

 속지 안하니까 제일 바보 학생중에 제일 재주도 없고 능하지도 못하고, 그저  아무 가장나 외식없이, 솔직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그분 하나면  아무것도 안될 줄로 믿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해 볼려고 애쓰는 세상이 볼때에  어리석고 미련한 것같지만 그까짓거 말을 해보면 몇닢푼치 안 되고 당장에  쪼글트려 잡기도 하고 뭐 호통치면 꼼짝 못합니다. 그런 것이 다 밀려 나가고 저  구석에 처박혀 이렇지만 가는곳마다 은혜를 끼치니까 교인들은 좋아하고  환영합니다.

 사람에게는 훌륭하지만 교인들에게 능한 설교는 하는데 교인들은 은혜를 받지를  못해. 호화찬란한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은 은혜받지를 못해. 교인들이 감화  감동은 되지만 속에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 함께 사는 능력은 나오지  안해. 이러기에 안되니까 제가 시들어지고 약해질 수 밖에 더 있겠소.

 "천사의 방언을 하고 모든 지식을 통달해도 사랑이 없으면 헛것이라" 그 말은  사랑은 인간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한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 한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요. 그말이 하나님과의 영감 연결을 되어 있지  않는 자는 소용없다. 그말입니다. 이것을 잘못 알면 헛일입니다.

 사랑은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요 하나님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나타났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뭐입니까? 예수님의 세  가지 구속이요 이 세 가지 구속을 알려주고 효력있게 우리에게 역사하도록 하는  진리와 영감입니다. 그외에 사랑이 없소.

 그러기에 한 말로 말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갖다 주는 것이 뭐입니까?  갖다주는 것이 성신의 역사요 성신이 이것을 보증으로 책임졌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유익이 없다 그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안 하면  소용없다 그말입니다. 사랑이 제일이라 그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게  제일이라 그말이요. 성경 말씀, 한 말씀 그게 사랑이요 사죄 준 그게 사랑이요  칭의 새생명 준 그게 사랑이요 영감 그게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어떻게 줬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66권 도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온 것이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요. 영감이 사랑이요. 구속이 사랑이요.

 그러기에 자기가 하나님과 접선되어 있지 안하면 모든것이 속이는 것이요 속는  것이요. 다 꾀입니다. 그러므로 영감을 접선하는데는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성령  시키는 대로 해야 성령과 내가 친밀해지지 성령이 시키는대로 하지 안하고  그분을 내 수단 방편으로 할라고 하면, 세상 일은 수단 방법 가지고 다 돼. '뭐  그까짓거야 못할 게 있냐?' 하지만 하나님은 수단 방법 가지고 안돼. 우리 수단  방법에 넘어갈 분이 아니요.

 하나님에게는 우리에게는 제일 권위가 뭐이냐? 우리의 지식이나 총명이나  통달이나 필요 없소. 그것 하나님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필요 없어. 다만  하나님이 나를 원하시는 것은 내게 있는 인격을 당신에게 기울이는 것뿐이요.

못나도, 잘나도 좋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내 인격을 하나님께 다 기울이는 그것만이 하나님에게 권위가 있고  능력있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는,  '내가 이렇게 큰일 해 놨으니.' 일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할찐대야 아, 엿새  동안에 모든 것 다 지으신 그분이 그까짓 거야 당장에 해버리지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필요가 뭐 있겠소? 수단으로? 수단 그 아무리 수단 많은 자라도  수단 많은 인간들을 지으신 분이 누군데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거기에 설복을 당하겠소, 이용을 당하겠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생각지 않습니다. 참  우리는 소년의 우의, 솔직하게, 결혼의 첫사랑 그것 솔직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하나님에게 다 맡겨놓고 하나님으로만 뭐가 될줄  알고 하나님만 좋아해서 하나님에게 거리끼는 것이라면 아까운 게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아까운 것이 없는 그 개인, 그 가정, 그 단체 요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요것만 하나님한테는 권위요. 다른 말로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진실이라는 요것만 하나님에게 권위있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상대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에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참 요것을 원하셨지만  솔직하게 다 되지를 안해서 거기서 실패하는 자들은 실패하고 요것이  이루어졌으므로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요단강물이 그렇게 많지만 건너갈라  하니까 육지가 되었고 가서 돌아다니니 강한 성들과 민족들이 다 도망을  쳐버리고 저거가 저거 성으로서 다 절단이 나고 남은 것은 도망을 쳐버리고  전부가 다 이적과 기사로 한자욱 한자욱을 걸어서 가나안에,  그 땅이 좋아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해서 세계에 없는 그런 복지를  만들어 살게 되니까 그만 그때에 오만하고 교만하고 망령되어 가지고서 하나님을  버려서 오랫동안 하나님이 참다가 그 다음에 하나님이 버려서 버렸다가 또  회개하면 또 하나님에게로 돌아왔다가 이렇게 만냈다 안 만났다. 만났다. 안  만났다. 만났다. 안 만났다. 이라다가 마지막에는 나뉘어 버리고 만나지  안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예수님의 앞잡이로 세례 요한을 보내는 그때가 하나님이 새  신령한 이스라엘을 맡기 위해서 나타나셨고 그때까지 진실되어 있는 사람들 몇몇  숨어 있는 그런 사람들만 주님에게 속했고, 무화과 나무가 뿌리 부텀 위에부텀  마르는데 뿌리부텀 말라서 말라서 이렇게 참 전멸시킬것을 하나님께서 시킬 것을  예고해 주셨고 근 400년동안 그렇게 절단이 났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아름다운 과실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중히  만들었으며 내 땅을 더럽히고 가나안을 더럽혔다 말이요 성도가 더러워지면 성도  있는 그 땅이 더러워집니다. 성도가 깨끗해지면 성도가 머무는 그 땅이  깨끗해집니다. 성도가 축복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면 성도의 머무는 곳과 하는  일과 그 모든것이 다 깨끗해지고 하나님이 기뻐해서 축복을 하십니다. 그  인간에게도 인간에게도 그런 요소가 있는걸 우리가 압니다.

 저 시골에 가면은 그런 말이 있소 자기 아내가 예쁘면 처가집 울타리도  예쁘다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머무는 성도가 하나 기뻐 즐거우면 그 있는 땅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요셉이 한 사람이 보디발 집에 갔을  때에 보디발 집까지 하나님이 기뻐해서 하는 일이 전부 하나님이 보기에 형통해  졌습니다. 요셉이가 감옥에 갔을 때에 감옥이 빛의 세계가 되었고 형통했고 그  요셉이를 애굽에다가 끌어모셔 났을 때에 애굽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움이 되었고  형통해졌고 기름졌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요셉이 죽고 난 다음에라도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저거 아버지와 어머니같이 모셔서  "내 땅을 더럽히고" 성도가 가증스러워지면 그만 그의 있는 것도, 그의 거하는  집도 가정도 그만 하는 일도 전부가 하나님이 마구 도멸하고 미워합니다.

그러기에 성도에게 사람도 달렸고 땅도 달렸고 일도 달렸고 흥망성쇠가 다  달렸습니다. 그러기에 그 가정의 으뜸이 되는 그 한 사람이 기쁨이 되면 다른  것을 다 하나님이 다 기뻐하시기 때문에 기쁨이 되는데 인간이 거기서 그 패역을  부리면 그 패역부려도 그것으로 인해서 참고 기다리기는 하지만 복은 안줍니다.

"네 조상 다윗을 생각하고 내가 너를 멸하지 않겠다. 너거 애비 다윗을  기억하므로서 네 당대는 내버려 두겠다." 말씀했습니다.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업으로 삼고, 오만 공 다 들였는데,  이스라엘이 더러워지니까 하나님의 기업이 절단난 것입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우리 업체 모양으로 그런 면만 말한 게 아니고 기업이라는 말은, '아, 그 집은  뭐 먹고 사노?' '아, 그 집에 아무 그런 직업이 있지 안해?' 그 가정에 모든  생사화복이 그 가정의 기업으로 말미암이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이렇게 소망을 가지시고 기대가 큽니다.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을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고"  제사장은 제사장 제대로 해. 제사장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백성을 그 사이에 그  중보인데 그 사이 중간 역할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떼내버리고 제가 주장이  되가지고서 해. 목사는 교역자는 하나님과 교인들 사이에 제사장입니다. 그  사이를 중계 역할하는 것이요. 이런데 하나님 버리고 저 혼자 저하고 교인하고  둘이 상대하고 하나님 떼버리고 제가 왕이라.

 교역자는 선지자인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전해주는 것이 선지자지 제것을 전하는 것이 선지자가 아니라. 이런데 "선지자는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것을 전하지 안하고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인간의 것 자꾸 전해준다 말이요. 하나님의 것 전하지  안하고 어떤 철학 박사가, 어떤 박사가, 어떤 나라에서, 어떤 문인이, 어떤  시인이, 어떤 용사가, 전부가 다 인간에 말, 제 말 인간의 것만 전하지,  하나님의 것을 전하지 안해. 왜 성경 전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안한 것을  제가 말하면 그것도 바알의 말이 되지. 하나님의 말씀이 바알의 말이 아니라  선택자가 저거든.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만 교만해 집니다.

헐떡거리던 것이 조금만 숨이 쉬이면 또 발동합니다. 발광을 지기요. 경제적으로  어렵던 것이 겨우 숨셔지면 이게 그만 그것 가지고 그만 배짱부리고 교만해서  가증스러워 볼수 없게 된다. 그말이요.

 모가지를 잘려서 숨이 막혀서 깔딱거릴 때는 차라리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받고  인간에게 동정을 받을 수 있는데 요게 목가지 잘렸던 것이 숨이 조금만 쉬면  요게 막 패역 부리요. 이러니까 그것을 모가지를 졸려놓고 길러야 되니까  자라집니까? 그 병신을 만들어놓고 길러야 되니까 병신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  기를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고통이요. 사랑에게 고통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조금만  되면 그만 오만한 자리에 앉습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리 세상이  제것이라 해도 오늘 당장 없어질 수 있는데 그것을 제힘으로 삼고 하나님 외에  진리외에 무엇을 제 힘으로 삼고 제 실력으로 삼고,  구역장들도 그렇소. 이제 그것이 구역 식구가 조금 많아지고 뭣이 좀 힘  있으면,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게 하나님의 것인데 제것이요?  가증스럽지. 그만 이거 배짱을 내고 힘을 냅니다. 베짱을 내고 힘을 내가지고  내가 이만침 공로가 있소. 이만침 내 발판이 있고 나를 좋아하는 이거 있으니 저  좋아하면 마귀 새끼지 뭐야. 그게 무슨 힘이야. 어리석어서 그만 가증한 행위를  합니다. 그러면 환하게 보다시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도 그게 상관이 없소  강팍하면 희망없어. 뭐인데.

 내가 며칠전에 말했소 '하! 구역장들 그래도 여러분들이 지금 어떻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려 뒀으면 손자나 업고 돌아다니면서 가증스러워서 송장이라고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거라 그래 놓으니까 계나 모아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저 뭐 방영이나 하고 관광이나 하고 그리 돌아다닐란지 몰라도  천하기가 짐승이나 다름없이 천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래 천해지면서 하나님의  긍휼로서 이렇게 됐으면 감사할 일이지 무슨 오만을 가지고 무슨 교만을 가지고  뭘하고 있는냐. 하나님은 막대기 가지고도 못할 것 없어. 무엇이 제가 된 게  뭐인데. 가증스러워.' 내가 그 말을 식사하면서 말했어.

 하나님은 오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개구리가  올챙이를 생각지 못한다는 세상 말이 있는데 그것이 옛날을 기억지 못하면  추억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내가 어떤 자로 어떤 데에서  내가 지금 울고 불고 있을 건가? 그걸 알아야 되지. 예수 아니면 내가 어떤 자가  된다 그걸 모르면 그 사람은 예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받고 망했습니다. 권능받고 망했어. 대개 보면 권위 있고 커져  가지고 망합니다.

 참 나는 여기 부산에 왔는데, 부산 여기 오기 싫어서 고신 있을 때에 고신 제일  머리되는 목사님 그분들이 연명 날인으로 도장을 찍어가지고 편지를 가지고  송상석 목사님이 두 번을 올라왔어. 할수 없어 내려오면서 오면서 중간에 가다가  점심 먹을려고 떡을 해 가지고서 그날 밤에 늦게 송편을 쪄 났는데 아, 이래  서늘하게 해 놨으니까 밤에 쉴 턱이 없어. 아침에 지금 새벽에 나설라고 떡을  보니까 뺄개. 아주 뺄개졌어. 그 참 놀래만침 이상해. 먹어보니까 맛은 하나도  안 변했어. 맛은 하나도 안 변했는데 색깔은 빨개졌어. 이게 자연계시인데 내가  그때 말했어 '아, 내가 이거 부산 가가지고서 색깔이 절단이 나겠구나. 맛은  변하지 안하니까 먹어면 됐지만 색깔이 변했으니 이거 잘 팔리겠나. 떡 장사라면  이거 소용없다. 이거 참 절단이다. 먹는데는 상관 없지만' 그라면서 내가 여기  오기를 참 싫어했어. 지금도 그거라.

 내가 6.25를 만날 때에는 소년들의 우의와 결혼의 첫사랑의 이 신앙을 주님과  가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막 놀래 기절하는데 6.25때에 두달 동안을 인민군  속에서 매일 집회했어. 오전, 오후, 새벽 집회를 두달동안 계속했어. 합천,  함양, 거창에 있는 신자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그때 한 400명 모이가지고 계속  집회했어. 무서운 줄을 몰랐어. 아, 미군들이 막 공습을 해서 죽이고 지금  이러니까 위에서 구경하면서 하, 저거 폭격이 심하게 된다 구경했어요. 무서운  줄을 전혀 몰랐어.

 그랬는데 그 뒤에 한달 동안 그만 그것을 내가 마귀 시험에 들어서 가지고서 딱  시험에 들자 소년들의 우의와 결혼의 첫사랑이 없어져 버려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그만 빈약해 버렸어. '너 이놈아 친미파지. 너 예수믿는다고  하면서 친미파라' 하는 그것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지옥 생활 했어 그래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범죄는 안했어 실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안했어 제단은  계속 지켰고 집회는 그때로서 끝나버렸고,  저 아레 어떤 부흥사가 와가지고 나한테 와 가지고서 고신에 있는 부흥사인데  와 가지고 말을 해. '목사님, 이거는 하나 똑똑히 물어 볼려고 하는데 그때에 그  인민군들이 와 가지고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죽일려고 해도 총으로 쏠려 해도  방아쇠를 당겨도 방아쇠가 안나가서 총살을 못했다' 하는 그 다른 거 많이 있어.

많이 있는데 그거는 다 맞아. 그거는 다 맞는데 방아쇠를 당겨도 안나가서  그런건가 그거는 모르겠어. 그분들이 뭐 그 당기는 그거는 보지도 안했고 그거는  내가 모른다. 그거는 나는 인정을 하지 못한다. 그거는 내가 보지 안했기  때문에. 저거 입에서 말이 나왔는지 그거는 모르지만 그때 그 사실을 없었고 그  다른 순서는 그런 여러 차례 있는 것은 다 그대로라.

 그분이 '내가 이것을 강단에 증거할 때마다 증거를 하는데 요게 혹 잡것이  들었으면 안될까 싶어서 그걸 묻습니다.' '그거는 내가 모릅니다. 나는 모르는  사실이고 또 그것은 누가 말했는지 나는 그것은 인정 못하겠으니까 그것은  수정을 해 주십시오.'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랬는데 도시에 와 가지고 분주해서 공연히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고  자꾸 이렇게 하는 바람에 그만 절단나 버리고 자꾸 많은 사람이 와가지고 교회가  커지는 바람에, 이 커지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없어. 교만해서  넘어지기 쉬워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며칠전에는 나에게 두려움을 주어서  내가 견디지를 못했어. 이제는 없어.

 그때 두려움은 왜 두려움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죽는 그게 아니고 자꾸 옆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 그 강단에서 김일성이를 많이 말하고 자꾸 정계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그렇다고서.' 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대해서 외친 그것이 파숫군인데 이방 정치 그 모든 것을 간섭을 하고서 잘못된  것을 죄악을 죄악으로 외쳐야 성도들이 빠지지 안하지 그랬는데. '아, 너무  강단에서 말을 많이 한다고' 여럿이 하니까 내가 미혹을 받았어. '주여, 내가  안할 말 해가지고 참 개죽음을 하게 되니 기가 찬다'고 그래 가지고 내가 두려워  했어.

 내가 하루 어느 시간에 기도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외치지 안했기 때문에 죽었고 외치는 그것이 파숫군이 나팔을  부는 것인데 그게 뭐이 죄냐? 6.25때 공산주에게 넘어지지 말고 꺽어지지 말고  굴복하지 말라는 외친 그것이 무슨 죄냐! 오늘이라도 공산주의가 지금 삼킬라고  나오면 다 죽음을 죽을터이니 함부래 알고 지금 정신 차려서 공산주의는 우리  생명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오면 우리 보텀 먼저 죽이요. 그 외치는 것이 나팔  부는것이 뭐이 죄냐! 요것을 내가 더 확실히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내게는  평강이 왔습니다.

 왔으나 내가 지금 그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공산주의가 오면  어떻게 지금 녹아지고 어떻게 발발 떨어서 정신 못차려서 그때 그들이  요구하는데로 무슨 변질이라도 할 이런 빈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게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듣기 싫어하고 설교하는 것도 듣기 싫어해. 설교한 거  듣다가 죽으면 어쩔꼬? 설교가 듣기 싫어. 이런 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운  것을 보지 안하고 생각지 안해가지고서 피해서 평강을 누리니 이거 술먹고 문제  해결 짓는 것 한 가지지 그거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도마 위에 오른 고기와 같이 자신이 위험하다는  이것을 알고 평안을 두려움으로 담력을 공포와 비겁으로 바꾸어 주님과 연결되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에게 평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주님은  죽기까지 고민한 그 고민 끝에 평강이 온 그 평강은 십자가에 못박혀도 요동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이 없어. 공연이라.

 그러므로 지금은 이런 저런 그런 땅의 것을 취할 때가 아닙니다. 어 공산주의는  전쟁하는 그런 어 무력이 6위 되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여섯 째 가. 우리는 뭐  몇십 째가. 서른 몇째든가 그래 그까짓거 호랑이 앞에 조그만한 강아지 한마리라  탁 삼키지면 그만이라 그런데 미국을 의지해 미국은 지금 소련보다 약합니다.

확실히 약합니다. 지금 뭐이 약해? 소련의 침략 그 권위가 미국은 하나도 없어.

소련에 그 전쟁의 독이 무서운 그 독이 첫째인데 독이 제 일호의 능력입니다.

소련에 있는 독이 미국은 한내끼도 없어.

 아, 제가 일본 있을 때에 그때 동포끼리 싸움이 났는데 보니까 이거는 뭐  얼마되지 안해. 쪼그만한 건데 그거는 어떻게 독한지. 그 죽는것 두려워 하지  안해.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안하고 이라니까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죽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그 놈한테 굴복 안하는 사람 없어. 그 사람들한테 손  안드는 사람 하나도 없어 어디가서 싸우면 제 허벅다리부텀 칼로 가지고 푹  찔러가지고서 쭉 빼면 피가 펑펑 납니다. 이래 놓고 이 칼을 턱 다다미에다 푹  꼽아서 이래지고 뭐한다고, 빡빡 얽은것이 조그맨한 것이 어떻게 독종인지  그래놓으니까 힘이 세도 못 이기고 그놈한테 항거할 놈이 없어. 그거 한가지라.

아무 미국이 힘이 있어도 소용이 없어. 그것들은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뭐이냐? 이게 몽둥이라. 그 몽둥이를 누가 잡고 있느냐 전능자가  잡고 있어. 세계가 달려 들어도 그걸 못없애. 부숴지 못해 꺽지 못해, 막지 못해  막는 방편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남한 교회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혼의 첫사랑의 이 관계를 하나님께만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몽동이를  짜끈짜끈 뿔라서 불어 넣어요. 이거 외에는 아무꺼로도 안돼.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요거외에는 아무걸로도 안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이렇게 회개하도록 기회를 준 것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지를 말아요. 인간이 준것 아니요. 내가 계획한 것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시켜서 안하면 화가 올 것이라서 내가 이것을 선언했지. 내가  계획한 거 아닙니다. 또 내게 온 증거 있어, 그걸 말고 증거 있어. 어리석지  맙시다.

 어짜든지 기도회에 참석하고 자기와 관련된 사람이면 어디서든지 기도해서  지금은 하나님과 자기와에 사이에 거리낀 것을 정리해야 됩니다. 그 분 한분이면  다요. 그분이 모든 것의 주인공이요 그분이 창조주, 주권자십니다. 그분이 나와  사귀기로 원하니 이 보다 더 좋은일이 어디 있겠소. 그분이 돌볼라 하면 무엇이  또 방해를 하겠소.

 이런데 여기 보면 그런 말했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 판것인데 이거는 터진 웅덩이라서 물이  저축되지 못한다"고 하나의 상징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린 것이 이것이  제일 큰 죄요 뭐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운동 무슨 운동 세계 복음화 운동 뭐  어짜고 큰소리 하지만 그 대가리는 보면 미국에 시민권 다 얻어좋고 주먹으로  나와와 가지고서 그따위 큰 소리로 야단이요.

 주먹으로 쥐박아야 돼! 너는 지금 알뜰히 피난 해 놓고서 여기와서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있기를 그러면 그랬으면 거기가서 쭉빡쓰고 앉아서 거기에 있을  일이지. 그렇지 아니하면 여기 와서 그것을 버릴 일이지 태영 목사, 그게  가가지고 영주권 얻은 것. 내가 나올 때 '그거 다 버리고 나오라. 버리기 싫거든  나오지 마라.' '예 버리고 나가겠습니다.' 하고 나와 가지고 버리지 안하고  있어서 버리지 안하고 있었는데 나는 버린 줄 알았지 나중에 보니 버리라 아니한  것이 어떤 집회 때 성신의 감동으로 그게 튀어나와 그걸 내가 듣고서 너거 그거  안버릴려면 가거라. 여기에는 필요없다. 가야 된다. 그래서 싹 버렸습니다.

우리와 생사를 같이 할 사람 아니면 우리의 선지자가 아니요. 우리의 선지자가  있어. 그 사람이라야 우리에게 필요하지.

 저는 떡 그래 놓고와가지고 세계 복음화니 떡 큰소리만, 어떻게 큰소리를 해야  사람의 인기를 끌까 싶어서 별별 큰 소리를 다 합니다. 기독자는 쓸데없는  과장의 큰 소리를 못하는 것이 기독자요. 세상 이 종교는 못할 말 없이 인간의  유혹할 말 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독자는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 아니면 할 수가  없고 말한 것이면 그는 천지가 방해해도 안될 수 있는 권위있는 말하기 때문에  기독자의 하는 말이 속이고 속는 자가 볼 때에는 '이거는 속이고 속는 수단이 좀  모자라구먼.' 모자라는 것이고 실천을 하는 자에게는 크게 보이요 크게  보입니다.

 이러니까 불교에서는 수단 방법은 가리지 안하고 글을 조그만한 책을 냈대요  책을 냈는지 종이에 썼는지 이래 가지고서 저 대티에는 막 동네에 가져다가  뿌렸는데 아, 책이라 하더라. 그걸 보면 사람이 혹해. '하, 4월 초팔일 날  한번만 가도 극락에 갈 수 있고 복받을 수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침마다  새벽마다 가니 한번만 가도 효력이 콱 다 나는데 새벽마다 가도 별 효력이 없는  그런 도를 뭐할라고 믿을까봐.' 이래 놓으니까 예배당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다  절에 다니고 다 그래요. 신을 돌이켜 났다 이거요. 대티에 있는 그거 교인들  가서 좀 살펴봐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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