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1 21:20
표적,하나님의 일
본문 : 요6:26-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여게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나 또 칠병이어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그것은 떡 먹이는 것이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떡 먹이시는 그것은 하나님의 도가 어떠한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표적을 하신 것입니다.
무슨 표적이든지 표적은 표적된 그 자체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것은 아니고 표적으로 주셨습니다. 그 무슨 말인고? 표적으로 주셨다 그것은 어떤 형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를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그 모든 형식은 어떤 형식이든지 그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있을 것 아닙니다.우리가 세례받는 그것도 하늘나라 가서 있을 것 아닙니다. 그것은 그 형식은 그 형식으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 주시는 신령한 도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먹는 걸로 이적을 베푸신 것은 주님에게 어떻게 소망하면 주님이 어떻게 해 주신다 하는 그것을 보여 준 건데 그것을 깨달으라고 주님이 보여 주셨는데 엉뚱이같이 겉어머리 표적 그것만, 떡 먹고 배부른 그것만 보고 따르니 참 암만 해 봐야 그거는 다 먹어봤자 헛일, 병신이 나아봤자 헛일, 또 죽은 자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나 봤자 헛일, 다 죽고 만다 그거요.
그런 그것은 다 껍데기 표적인데 '아, 죽은 자가 살아났다. 나도 이 러면 죽어도 살아날 수 있겠다. 또 병이 나았다 나도 병 낫는 일이 있겠다.' 그 모든 표적은 그 형식을 가지고서 나타냈는 것인데 주님이 온갖 표적 베푸신 그 표적은, 표적이라 말은 속에 뭐이 들었는데 그것을 나타내는 흔적이라 그말이오.
나타내는 흔적이니까 나타내는 흔적을 가지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그것을 보고 알고 차지하라고 주님이 하시는 그 모든 표적인데 그 속에, 어떤 한 사실을 가지고 그 속에 있는 그것을 드러내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걸 하는 것인데 속에 알맹이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드러내서 알게 하는 그것만 보고서 날뛰니까 그게 외식입니다.
'너희가 표적을 보고 나를 따른 것이 아니라 배부른 까닭으로 나를 따르고 있다' 표적을 보고 따르는 거는 어떤 게 표적을 보고 따르는 거냐? '주님은, 주님 한 분만 있으면 뭐 아무리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이라도 상관이 없다.' 광야라도 상관이 없어. 먹는 것 상관 없으니까 입는 것 상관 없을 것, 또 먹고 입는 것 상관 없는 그 능력이니까 뭐 아무 원수가 대적이 암만 많아도 그것도 상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상관 없어. 그분만 있으면 돼.
그런데 그분의 또 큰 것을 받으려면 자기에게 있는 지극히 작은 것을 드리면 작은 것이 그것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아주 작은 것을 드리는데 작은 그것이 크게 쓰여진다. 너희들이 조그만한 것을 드리면 너거 뭐. 그거 너거 개인의 인격이나 그거 해 봤자 몇닢푼치 안 되는 건데 그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면 큰 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또 드린 너도 실컷 먹고 남은 것 부스러기 남을 수 있다.
그러면 주님에게 바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주 적은 것 작은 것 바친 것이 큰 효력을 나타낸다. 또 바친 자기도 손해가 없다. 그런데 바친 효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이가 그 지극히 아주 작은 양을 드렸는데 많은 사람을 구원했는데 오천 명을,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이라 하니까 오만 명이면 안 될까? 오천만 명이면 안 될까? 오억만 명이면 안 될까? 상관이 없어.
주님은 이러한 주님이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 표적의 목적인데 표적을 표적으로, 이것이 지금 속에 이렇게 나타내고 보여 주고 있는 그 내용, 표적이 일하고 있는, 표적을 주님이 나타내는 그 속에 있는, 표적이 나타내고 있는 속에 알맹이 그것은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 그 형식 떡 먹는 것만 바라보고 하니까 그것이 이 도에 형식만 보지 이 도가 지금 구원하는 그 구원은 받지 못하니까 탄식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이적이 다 그러합니다. 이적을 복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베드로가 그물 던져서 고기 잡은 그것도, 이적이라 말은 인간의 힘이 아닌 초자연의 능력으로 된 그것을 가리켜 나타내서 이적이라 말하고 그것을 또 표적이라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인간이 볼 수 없는 그것을 그 형식을 가지고 나타내서 알게 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힌 그 표적을 가지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도무지 주님 모실 만한 자격이 없는 자이다 하는, 자기가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자기는 그 불신을 가졌던 것이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달아서 고기 잡는 게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니라 인제 고기 잡는 그 사실로 나타내신 그 속에 알맹이가 문제라 그말이오. 그래서 베드로는 아주 사람이 휘떡 뒤벼져 버렸습니다.
그 베드로는 표적을 본 사람이고 이 사람들은 떡 먹은, 표적을 나타낸 그 형식 그것 보는 사람들이라 그러면 지금도 병 낫게 하는 이것은 그것이 다 표적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뭣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인가? 그렇게 하시는 주님의 목적인 그 목적은 잡지를 못하고 그 형식을 이룬 그 형식 그것만 붙들고 날뛰기 때문에 '너희가 표적을 보고 따르지 안하고 떡 먹는 것 보고 따른다. 너희들이 병 나으면 병 나은 그것이 지금 무슨 표적이라, 무엇을 표시하고 있다. 표시하고 있는 알맹이 그것은 너희들이 잡지 못하고 병 낫는 그것만 보고 따른다.' 그게 전부 다 외식입니다. 그런 말씀을 여게 한 것입니다.
지난밤에 했는 그 성구를 가지고 가서 또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그 막는 자라는 것은 주님이 막으십니다. 교파마다 막는 게 따로 있어. 요거는 아직까지 요거는 희망이 있으니까 얼마 동안 더 막아 가지고서 요걸 길러봐야 되겠다.
요거는 회망이 요거는 끝났다. 끝났기 때문에 이제 막는 걸 틔워버리면 그게 막 들어와 가지고서 그게 지금 자유해 가지고 그 판이 됩니다.
그 판이 되면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이 쓸모 있는 것을 그물에다 고기를 훑쳐 가지고 좋은 것은 가려서 그릇에 담고 나머지기는 다 버리는 것처럼 이것을 가리는데 일차적으로 가리고 난 다음에 '어라 이거는 뭐 다 쓰지 못할 것이다' 쓸어버리는 그 마지막 선택으로 그런 것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언제까지 그래 하겠느냐? 그것을 하기를 주님이 재 림하시는 그때까지 계속 그걸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교회는 지금 벌써 '이것은 뭐 더 가릴 것 없다. 여기 더 가릴 것 없다. 부어 던지라. 더 가릴 것 없으니 휘떡 부어 던지라.' 이렇게 부어 던지는 것처럼 막는 것을, 막으시는 것은 주님이 막으시는 것인데 막는 것을 그만, 그만 두고서 틔워 놓는 것 있고 어떤 거는 지금까지 막고 있는 것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다 틔워서, 전부 해석을 해서 분석을 하다 보면 자기가 하나님이라 하는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뭐 하나님이냐? 주권자가 하나님이요, 주권자가 하나님. 또 자존자가 하나님이오. 이런데, 또 창조주가 하나님인데. 전부 하나님을 빙자해서 팔아먹기는 팔아먹지만 그걸 그것도 다 제가 이용해 먹느라고 다른 사람에게 선전하는 간판으로 써먹지 실은 제 주장을 언제든지 이행하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이요, 또 자기 힘으로 하는 것, '하나님이 와서 해 줘야 되지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는' 하는 그걸 믿어서 하나님이 안 해 주실 일은 아예 안 될 줄 알고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될 줄 아는 그것이 하나님 믿는 사람인데 요것은 제가 해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것이 다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 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그게 아니고 자기가 주권자요, 자기가 자존자요, 또 자기가 모든 것을 일으킬 수 있는 자라고 그렇게 인정하는 참람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스라엘 말년에도 '너희들이 사람이 만든 유언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를 바꿔 버렸다. 하나님 도는 버리고 사람의 유전만 지킨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너희들이 사람이 만들어 내는 사람 말은 지키고 하나님 말씀은 지키지 안한다'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면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릴 자를 다 가리고 난 다음에는 그걸 틔워 놓습니다. 틔워 놔 가지고 거게서 아니라고 생각을 해 가지고 한번 거게 쓸려 들어갔다가, 그 미혹에 쓸려 들어갔다가, 보는 것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행치 않는 것, 여게 한번 미혹을 받아 들어갔다가 뛰어나와 가지고 마지막으로 구원에 이르는 그런 마지막 선택을 위해서 그런 걸 틔워놓고, 막을 때에는 아예 보고 믿는 자로 하지 안하고 보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 인해서 믿는 자, 보지 안하고 믿는 자 그자들을 택할 대로 다 택하고 나머지기는 이제 보지 안하고는 믿지 안할 자들을 보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그런 것들을 나타내는데, 그러면 보고 믿는다 말은 그것을 인해 믿는다 말이 아니고 한번 속고 나야 다시 속지 안하고 굳게 선다 그말입니다.
말세에는 사탄이 와 가지고 능한 일 모든 권능의 일 합니다. 또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거짓 선지자가 누군데? '내가 주의 이름으로 큰 일을 했고 모든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안했으며 귀신을 쫓아내지 안했으며 하지 안했습니까?' 할 때에 '이 악한 자들아 물러가라.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그게 거짓 선지자고 그게 악한 자입니다.
왜? 그런 이적 행하는 것이 그게 나쁩니까? 그게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거짓 선지자라 그말이오. 마태복음 7장에 그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거짓 선지자라.
내가 요새 말 들으니까 서울에는 미치괭이 병 고치는 목사가 있는데 그만 거게서 '미치괭이 병 고치는 것 보니까 이게 참 여게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다' 이래 가지고 사람이 얼마나 모아들던지 장년반이 한 삼천 명 모여든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이 거게 참석했는지 뭐 어쨌는지 어떤 목사가 나한테 전화가 와도 내가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온 부산에 계시는 백영회 목사님에게 이걸 물어야 그걸 좀 판단해 주지 다른 이는 거석하니까 이걸 좀 물어봐 주십시오.' 그렇게 연락이 왔다 하는데 제가 그 대략 이래 들을 때에 그거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라고 그래 정죄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사탄의 역사라. 사탄의 역사로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증거가 많이 있어.
그러니까 땅에서 어떤 기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그것은 땅의 것을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기적은 없는 데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일도 어데든지 있고 또 사탄이 행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어떤 때 있느냐? 안 믿는 사람, 하나님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 예수님을 구주로 부인하는 사람, 그 부인하는 사람에게 겨우 일학년으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인정시키기 위해서 그런 걸 나타내지 이미 믿는 자들에게는 그런 일이 필요 없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예언이 필요하지 그런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하시는 그 역사는 그것이 결과가 그것으로 인해서 하늘을 준비하는 것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역사는 그 표적의 목적이 뭐이냐? 땅의 것으로서 하늘의 것을 깨닫고 땅의 것이 이루어지는, 없어질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인해서 없어지지 아니할 것도 이루어 진다는 그것을 가르쳐서 없어지지 안할 그것을 이루도록 하려는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표적인데, 그 표적을 하는 그 자체들이 땅의 것으로 해 가지고 땅의 것을 소망하게 하고 땅의 것을 가지고 땅의 것을 소망하고 땅의 것을 사람들이 소망하고 이루도록.
그러니까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는 것을 위하는 것이 되도록 하는 그것은, 그것은 두말 할 것이 없이 그것이 사탄의 역사라 그렇게 판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지? 여러분들이 어데 가서 그 집에 가 가지고, 무슨 표적 같은 것을 행하는 것은 안 믿는 데 가면 표적을 행합니다. 여러분들이 표적을 하는 것을 보고 싶거든 예수님을 부인하는 그 자리에 가 가지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전하면 다 거게서는 많은 표적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전하면 말을 할 때는 그런 표적은 없고 예언이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예언이 나타나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나타나서 역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표적이 해당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표적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는 그 표적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신령한 것이 성령으로 시작된 것이 육체로 꺼꾸로 기어 내려 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거 기뻐하지를 않습니다.
우리 교회 얼마 있다가 죽었습니다. 얼마 전에 죽었는데 그 사람이 모진 병이 들어서 왔는데, 암치질이 걸렸어. 암치질이 걸려 가지고 왔었는데, 다른 데 돌아다니다가 왔어요. 와 가지고 여기서 믿으면서 뭐 오만 일 다 했습니다. 저게 ○○○교회 가 가지고 아마 금식기도도 수없이 했을 것이오.또 거게 가 가지고 뭐 집회마다 한번도 안 빠지고 참석을 했습니다. 참석을 했는데 이 사람이 떡 먹는 것만 보고 돌아 다니고 표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늘 저기 와 뒤에 섰어요, 앉지를 못해서. 저 서서, 하도 그래서 제가 그때 한번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 사람을 낫게 해 달라고 불쌍히 여겨 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내 마음에 '하나님이 낫아 주시겠다, 또 지금 벌써 낫우기를 시작하고 계신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내가 물었습니다. 물으면서 '너 나았지?' 이러니까, 말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조금 나았다고 이래 하더니마는 '뭐 별로이 뭐 낫지도 안했습니다. 아직도 아픕니다.' 그래. '그러면 나은 효력이 없나? 하나도 안 나았나?' 이러니까 '안 나았습니다. 이래. 그래서 '그거 이상하다. 그런데 네가 나은 것을 낫지 안했다고 네가 말하는 것은 내가 들으니까 네 욕심이, 나았다 하면 그만 될 터 이니까 안 나았다 해야 완전히 낫아 주시지. 그거 네 사욕을 가지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대하기 때문에 네가 이제까지 아프던 것이 이번에 나았는데 네가 그것은 찌르는 가시기 때문에 네 회개하는 데 따라서 낫아 줄 건데 지금 그 병은 나았는데 네가 그 나은 것을 안 나았다고 그렇게 말하니 네가 나은 것을 안 나았다고 말하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네가 사욕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런 나음을 받지를 못할 것이다.' 그러고 제가 그때부터는 기도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물으니까, 그때는 나아서, 아주 예를 들면 백이 병 들었는데 한 오십만 나아도 그거 나은 것입니다. 오십 나았으면 나았으니까 그게 차차 낫게 될 것이고 저만 들어서 자꾸 회개하고 하면 낫게 되는 것인데 그래 나았는데 그거 부인했다 그거요.
그뒤에 그 사람을 내가 만났습니다. '네가 요런 사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가 이게 나으면 굉장히 네가 범죄하고 다닐 사람이다. 이러니까 네가 회개를 해라.' 인제 이러다가 그 ○○○교회 많이 가기 때문에 '너 거기 암만 가 봤자 헛일이니까 네가 하나님이 혹 너를 불쌍히 여겨서 네가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낫아 줄란지 모르지마는 네가 과거에 하나님이 역사해서 나았는데 네가 그런 사욕을 가지고 안 나았다고 그렇게 내가 그 말을 네가 회개하고 똑똑히 대답을 해라 해도 네가 그때 사욕이 주장돼 가지고 그와 같이 한 그것이 하나님께 큰 과오를 범했는데 그것을 네가 돌이켜 회개를 하면 혹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실런지는 모르나 네가 그런 데 암만 가도 안 낫는다.' 그래 그 사람이 수없이 다녔습니다. 다니다.가 암만 다녀도 갔다 오면 더하고 갔다 오면 더하고 그래 가지고 그 병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작정하고 그저 '이 병으로 나는 죽는데' 자기가 믿지 안하고 회개치 안했다는 그것으로서 깨닫고 참 고통을 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으로서, 저 대티에 있는 기도원이 비어 가지고 있었는데 기도실 비어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좀 주면 싶어 한다 해서 그걸 줘서 거게 가서 내치 기도하고 끝까지 그렇게 신앙으로 지내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또 ○○○씨라고 우리 교회 있었는데 그 사람이 ○○○씨 그 사람들 그때 ○○다방이라고 식당을 했는데 그 ○○○씨라 하는 그분이 여기 부산만 오면 있는 그 힘을 다 들여 식사를 막 담당을 했습니다. 그 한 끼에 그래도 한 돈 만 원씩은 넘어 들 건데 전적으로 담당하고서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거기 가 가지고 낫지를 안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믿는 자에게는 표적을 하나님이 보이지 안하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을 보이지 아니하시고, 믿는 자라도 자기가 안 믿는 그 부분에 가 가지고 그 단계 가 가지고서 표적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도 그렇게 병 나으려고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는 그 병으로 죽어버렸습니다.
또 서울에 있는 정신병 고치는 그 사람은 내가 들어 보니까 그 최면술 하는 사람입니다. 이 박태선씨는 기합술을 이용해 가지고서 사람들을 미혹시켜 가지고 돈을 많이 끌어모았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최면술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그렇게 미혹을 시키는데 다른 병은 아마 별로이 낫지 안할 것이고 미치괭이 병은 나을 겁니다 미치괭이 병은 십분지 구는 나을런지 모릅니다. 왜? 미치괭이 병은 십분지 구 정도는 제가 스스로 미친 것입니다. 누가, 미친 병이 들어 그런 게 아니고 스스로 미쳤어.
그러기 때문에 낙망자, 또 행락자, 모든 사람의 태만하고 방종한 자 그자가 자꾸 역부러 제가 알고 그 짓 하다가서 그것이 차차 차차 연습이 돼서 능숙해 가지고 저는 취미로 그래 하는데 다른 사람은 볼 때 미쳤다 합니다. 그래도 나중에 그것은 저는 그게 본능같이 됐기 때문에 미친 줄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 정신병은 자기가 미쳤다는 것만 알면, '나는 과연 정신 이상에 걸렸다' 미친 줄 알면 벌써 육십프로는 치료가 된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그만 미친 줄 알고 조심하면 그만 그때부터 그만 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 기합술을 가지고서 기합술 그걸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래 가지고 그 기합술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기합된 일 그것을 나타내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오인하고 이러니까, 자기에게 몽둥이로 뚜드려서 이래 하는데 때리지 안하고 기합술로 그 사람을 상하게 하고 다치게 하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거 벌이다.' '네가 이러면 벌을 받아 안 된다' 이러니까 낙망주의자가 돌이켜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면 대번 낫지요.
내가 들으니까 어떤 사람이 우리 교인인데 그 사람이 거기 가 가지고서, 가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서, 아마 서부교회에서 왔다고도 말도 했을 거라. 가 가지고 '그러면 너는' 뭐 귀신이 눈에 붙었다든가 뭐 어데 붙었다든가 '귀신을 떼내 버려야 되는데 귀신이 들어 다 그런데 귀신이 눈에 붙었으니까 귀신을 떼내려면' '떼 내 주십시오.' '그러면 나 시키는 대로 해라 손을 이래 볼끈 잡고 나 시키는 대로 따라해라. 콩 하면 콩 하고 팥 하면 팥 하고 자꾸 이래 따라해라.' 따라하라 그것이 최면술을 거는 순서인데 그래 따라 하게 되변 얼마 동안 하게 되면은 나중에 그 사람의 그 심리를 완전히 빼서 잡아 가지고 그 사람의 정신이 거기 뽑혔기 때문에 그만 그 사람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앉으라 하면 앉고, 그만 자기에게 능동이 없고 완전히 그 사람에게 피동이 돼 버리는 것이 그게 최면술입니다.
피동이 되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는 오만 소리 다 하는 거라. 그 사람이 하라 하는 대로 말 다 해. 그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다 하라 이러면 그것은 제가 돈벌이를 못 할 터이니까 그거는 하지 안하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뭐 안 지은 죄도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자꾸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다 하게 되는 거라 그래 가지고 그 뒤에 와서 그런 말도 하지도 안하고 그만 부끄러워서 아마 처박혔을 거라.
그런데 그게 인제 어데부터 그 미혹을 받은 것이냐? 성경에, 더 명확한 성경이 있으니까 성경 말씀대로 자기는 믿고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인데 그게 다 호기심이요 성경을 믿지 안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그럴 때 '네 나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면 그 말에 딱 막혀 버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너 시키는 대로, 네가 하나님이 아닌데 네 시키는 대로 할 수가 있나? 하나님이 시키는, 성경 말씀대로 하면 내가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은 뭐 따라 외우라 하면 내가 얼마든지 따라 외우든지 하지마는 너 말하라 한다고 너 말하는 대로 그와 같이 내가 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 한 마디만 하면 그때 그 최면술은 팍 죽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때는 그 한 마디만 하면 최면술은 그만 그 사람에게는 다시는 걸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는 꼼짝을 못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조그만한 권위도 최면술의 권위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대개 호기심 있는 그런 사욕쟁이들이 걸립니다.
또 오늘 아침에 그거 나와서 또 이거 좀,-내가 설교를 빨리 하고 다섯시 안에 마치려고 하는 것인데 너무 바쁘신 분들은 다 가십시오.
여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히 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식 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은 영원히 먹을 양식이라 그말 아니오. 영원히 먹을 양식이리 그말이 아니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영생하도록 하는, 영생하도록 하는 그 양식을 네가 위해서 일하라 그말이오.
요 잘못 고거, 같은 것 같지마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영원히 먹을 수 있는 양식 위해 일하라 하는 그말 아니오. 또 요 양식은 영생을 하도록, 요 양식만 먹으면 영생한다. 요 양식만 먹으면 영생하는데 영생하게 하는 이 양식을 위해서 네가 일하라. 이 양식은 뭐이냐?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에게 주리니' 인자가 네게 준다 말은 인자라 말은 구약에서는 아주 인간 중에 제일 약한 자, 무지 무능자 가장 천한 자, 가치 없는 자를 가리켜서 인자라고 말했고, 인자라 말이 구약에는 많이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제일 약소한 자로 자기를 나타낼 때에 그 사람을 또 말할 때에 인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 가지고 인자라 말이 없어, 인자라 말이 예수님이 당신에 대해서만 인자라 말 썼지 딴데는 인자라 말 쓰지 안했습니다.
그러기에 여게 인자라 그말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인간으로서 그 유가 없는 그런 천하고 가난하고 무능한 자, 완전히 그 부요를 다 내놨디 그말이오. 다 내놓은 그자,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의 모든 부요를 다 내놔 가지고 인간 중에는 역사 인간 중에는 그렇츰 천한 인간이 없고, 그렇츰 욕 당할 인간이 없고, 그렇츰 아주 무능한 인간이 없다 말이오.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때도 한번 발악이라도 한번 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한번 벗어내 버리기도 하고 하지마는 털끝만치도 한 힘이 없는 아주 인간 중에는 역사에 없는 그 제일 무능한 자라.
그거 왜 그러냐? 하나님이 그렇게 부요하신데 가난하게 된 것은 당신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부요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완전히, 완전히 그 희생의 제물이 됐기 때문에 대속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자라 말하는 것이오.
'이 양식은 인자가 너에게 주리니 인자는' 이렇게 된 자는, 인간 중에 제일, 대속했기 때문에 제일 가난하고, 제일 천하고, 제일 모진 형벌 받아서 죄인돼 가지고 죽은 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를 인간의 구주로서 정해 놓으셨다 그말입니다.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러면 이 묻는 것이 뚱딴지같이,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라니까 좀 그러면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그 일하는 것입니까?' 이럴 건데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묻는 것이 좀 위에서 조리가 안 맞고 연맥이 닿지 않는 뚱딴지 갈은 그런 물음을 묻습니다.
그러나 이건 제가 제 맘대로 물은 게 아니오. 요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계시의 도리를 지금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계시의 기관으로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묻는 것도 성령이 그렇게 묻도록 만들고 하나님이 지금 도를 만들어 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그 도이기 때문에, 그래 물으니까 2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나님의 보내신 자, 하나님이 인치신 자, 다른 데는 구주로 하나님이 작정하지 안했어요. 구주로 작정하지 안 했고 예수님을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을 이름이 없다' 예수님으로써만 구원 얻울 수 있도록 요렇게 해 놓은 건데,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친 자라' 인친 자라 말은 그만 정했다 말이오. 이 타락한 인류와 만물을 구원하는 구주로 하나님이 그렇게 인을 쳤다 말은 절대자가 불변자가 정해 놨기 때문에 그외에는 없다 그말입니다. 단지 유일하신 구주는 한 분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또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 이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지마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의논해 가지고 와 가지고 도성인신하셨다 그말입니다. '그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 말씀을 지금 증거하다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여게 일하려고 하는데 힘없는 사람 많은데, '인자를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냐?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나타낸 계시입니다.
처음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물위에 운행하시더라' 하는 그 하나님도, 또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를 그리 이송한 하나님도, 또 범죄했을 때에 숲속에서 아담 하와를 찾으신 그 하나님도, 그 하나님이 도성인신 해 가지고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지을까' 하는 그 우리라고 하는 그 복수는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가,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이신데 삼위의 그 역사를 가지고 합해 가지고 이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을 지을 때 '우리가 어떻게 짓나' 하는 의논한 우리라는 것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고, 그때 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타나신 그 하나님은 성부 아니고 성령도 아니요 성자십니다. 내나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내나 예수님이 아버지요 예수님이 성령님이요, 또 성부가 성령님이요 다 한 하나님인데 일하시는 직책이 다르기 때문에 그 위가 다르다 그말이오. 대통령위, 장관위, 자기 지위 말이오. 여게, 삼위라 말은 자기 지위라 말이요, 지위라 말은 이 세상 모양으로 높고 낮은 그거 아니고 지위라 말은 직책을 맡은 그 위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예수님은 거게서부터 예수님의 신성은 그리 하셨고 때에도 믿지 안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복음 전한 것이 내나 예수님이시고 또 '윽에 갇힌 영들에게 가서 전했다' 하는 그 옥을 천주교에서는 연윽설을 말하지마는 그 옥이 자유하지 못한 그 죄악의 갇혀 가지고 있는, 사망의 감옥 또 죄의 감옥, 마귀가 통치하는 마귀의 나라의 그 감옥 그 속에 갇혀 있는 것을 가리켜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 1장 5절에 보면 '주께서 그 죄에서 해방하시고' 하는 그말은 갇혔던 감옥에서 해방시켰다 그말입니다.
다 말하지 못하니까 성경에 이리 저리, 진실하게 가면 알 수 있도록 연락이 있도록 이래 해 놓은 걸 그 단절만 한 절만 가지고 떠들면 그만 다 실패가 되고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것을 지금,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보내신 이를 믿는 게 뭐이냐? 보내신 이는 예수님이 한 분의, 도성인신 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셨지마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각 부분의 각도를 우리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은 신구약 성경 말씀은 그분이오.
신구약 성경 말씀이 예수님이라 말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사진이라고 할까, 예수님의 소개라고 할까? 신구약 성경 말씀은 진리요 인격체는 아니지마는 인격체이신 예수님을 요면 조면 오든 면을 다 문서로 나타낸 것이 신구약 성경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자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 그말은 신구약 성경은 그분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믿는 것이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신구약 성경은 그분을 나타낸 것이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은 주님을 가르치지 안한 성구가 없고, 주님을 나타내지 안한 성구가 없고, 주님을 가르치지 안하고 주님을 나타내지 안한 주님 외에 딴것을 말해 놓은 성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탄을 말한 그것도, 사탄을 말한 그것도 그 사탄이 예수님과의 어떤 관계를 가진 그것을 나타냈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시요. 신구약 성경의 전부는 예수님이시오.
예수님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교훈면, 예수님의 역사면, 예수님으 구원면, 예수님의 심판면, 예수님의 권위면, 예수님의 지혜면, 예수님의 그 존재면, 모든 면을 가르쳤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는 요 말씀은,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예수님을 연관하지 안하고 신구약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어 이렇다 저렇다 한 그대로, 그대로 그만 인정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 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신구약 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그대로 하라' 할 때 또 하는 것이 일입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인데 '요렇다' 할 때 '그렇습니까? 내가 그대로 알겠습니다.' 그게 믿음이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요렇게 해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종하는 것.
그것이 믿음인데, 신구약 성경을 왜 그래 하느냐? 그것이 성경 말씀 그 법도를 지키는 게 아니고, 요거 잘 알아야 돼요.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1 그 법도를 지키려고 지키는 게 아니라, 그거는 율법에 속한 자라. 율법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자는 정죄만 받지 그거는 소용이 없습니다.
고것이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고 성경 말씀 고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걸 순종하는 게 예수님을 순종하는 것으로 요렇게 해야 되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고거, 고것이 내나 영생하게 하는 양식인데, 양식이라 하는 그거는 그전에 많이 말했기 때문에 그거 말할라 하면 지금 뭐 시간이 바빠서, 양식이라는 것은 그 자체를 쇠약하지 안하고, 쇠퇴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또 힘있게 만들고 장성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 양식입니다.
그러기에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 이라 말은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중보자 되셔 가지고 모든 영생에, 영생, 완전, 불변, 모든 좋은 그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우리에게 을 수 있는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을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오느냐? 오는 것은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 시키는 대로 행하면 된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을 거석할 때는 그 성경을 글 보고 문서로 그런 법칙으로 지키는 게 아니라 바로 신구약 그것이 주님에게, 주님을 말씀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이라.
신구약 성경을 할 때에 이 법칙을 지킨다고 생각지 말고 법칙읕 지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라. 그것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오 주님에개 순종하는 것이라.
요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보낸 자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하나님께서, 주님이 '이렇다 저렇다' 기록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시겠다 어떻게 하겠다' 하는 그런 모든 말씀, '네 모든 의식주일랑 염려하지 말아라 네 생명 죽고 사는 것도 염려하지 말아라.' 하는 그 말을 주님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주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은 성경대로가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내가 인정하는 것이요 또 그 말씀을 주님에게 순종하는, 그러기에 살아계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나와 대화해서 나는 살아계시는 그분에게 그분의 말을 내가 인정하고 그분을 인정 하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이라. 그래 순종하지 신구약 성경에 순종 하는 게 아니라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이요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라 요렇게 믿으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거,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이라. 우리는 그 일만 하면 됩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타낸 고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또 신구약 성경에서 행동하라 할 때는 행동을 하고 두 가지뿐이라 요것을 인정해서 확신을 가져라 또 고대로 행동해라 하는 그 두 가지뿐인데 그 두 가지 그것이 우리가 할 하나님의 일이오.
그것이 우리가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목회를 해도 그것만 하십시오. 내가 지금 이 말하는 건 어떤 사람들이 와 가지고 아직까지 목회를 하는데 그걸 몰라서, 이 ○장로 똑똑히 들어.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에 주님께서 이래라 할 때에 그 성경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그대로 행하는 것이 주님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라 하신 대로 하는 것뿐이라. 이러니까 인정은 하나님을 인정 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라는 것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해 가지고 하나님께 피동되는 것이라.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법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저 혼자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하나님은 능동이요 우리는 피동이라. 내가 이렇게 인정하는 것은, 인정하는 것도 하나님이 인정하라 하기 때문에 나는 인정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지금 연결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로 인정도 행함도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행한 것, 그러면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인정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그분 움직임에 내가 따라서 움직이는 것 요것이 지금 믿는 요 생명 있는 거라 말이오. 우리 그것 할 것.
그것만 하면 또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묻는 데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는 그 말에 붙여서는 믿는 것이 하나님, 우리가 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우리가 하나님 일 하는 것.
그 끄트머리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는 그것은 고렇게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일은 뭐이냐? 우리가 하는 일이요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 요걸 똑똑히. 우리가 하는 일이요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
가 자꾸 좀 새김질을 하라 말이오.
신구약 성경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 직접 그분 능동 나는 피동, 인격, 인격보다 인격을 창조한 그 신격과 나와 둘이 합작해 가지고 동행해서 하는 것이라. 그렇게 인정하고 순종하는 성경에 이래 말했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성경에, 성경은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은 생명이 없소. 성경은 생명체가 아니오. 성경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하나 이치뿐이오. 독자적 권위가 있지마는 그 이치뿐이라 말이오.
그 이치로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직접 동행하는 이것을 믿으라 말이오. 동행하는 요것뿐이라, 그만. 그분하고, 그분이 요렇게 알라 하는 대로 그대로 알고 행하라는 대로 그대로 행하는 것 그거 나 할 일, 그러면 그 일은 무슨 일이 되느냐? 하나님이 일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요리 해라 할 때에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라 '너거가 훙해 바다로 건너가라' 하는데 건너가라 하는 것을 주님이 나에게 그렇게 시키기 때문에 홍해 바다로 건너가는데 홍해 바다로 건너가는 그게 홍해를 갈라뜨린 게 아니라. 홍해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 할 일, 사람 할 일은 믿음, 그게 사람 할 일이요 믿을 때에 하나님의 할 일은 홍해 바다를 갈라뜨려 가지고 육지와 같히 건너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할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요것은 주님을 나타낸 것인데 문서에 자기가 순종을 하지 말고 살아계시는 주님에게 직접 연결해 가지고 서로 동행하는 것으로 요렇게 하는 그것이 뭐이냐? 영감과 동행하는 것이라 말이오. 바로 하면 영감과 동행이 돼. 영감과 동행이 되면 그것은 우리 할 일, 우리 할 일 하면, 우리 할 일 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통해서 당신 할 일을 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건마다 우리 할 일 있고 하나님 할 일 있어 우리 할 일이 하나님 할 일이라. 우리 할 일을 하면 하나님이 할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하지 안하면 하나님이 할 일 못 해.
그러니까 우리는 무능자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하면 할 수 없는 것 영생은 당신이 하시지 우리가 뭐 할 수 있습니까? 못 하는 것은 당신이 하신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요 믿음을 가지고 하면 세상을 점령을 해요. 모든 걸 점령을 해요.
요 믿음을 가지고 하지 우리가 '내가 뭐 일해 가지고 뭐 한다' 그렇게 하지 말아요. 일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일은 하나님이 하셔. 인간은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라.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인데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이 하라는 것,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 그게 뭐냐 하면 문서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죽은 문서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살아계시는 주님이 이러기 때문에, 문서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주님 보고 하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처음에 설교할 때에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설교하면 '오늘은 무슨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 말씀과 하나님이 곧 하나인데 껍데기는 말이요 속에는 알맹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시간애는 무슨 말씀으로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자꾸 표시를 해서 설교를 했다 그말이오.
그게 뭐이냐? 그게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금 자기는 자꾸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제 그걸 다 알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고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고거 똑똑히 아십시오. 믿는 것은 우리가 하는 하나님의 일과 또 하나님이 우리 일을 해 주는 일과, 하나님과 우리가 같이 일하는 일하는 일입니다.
믿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또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일을 하는 것, 그러면 믿는 그 한 사건에는 우리가 하나님 위해서 일하는 일과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일하는 일과 둘이 합작됐는데 우리가 하는 건 껍데기고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이 하신다 그거요. 요걸 똑똑히 잡아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게서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자기가 무슨 사무실에 앉아서도 요걸 가지고 그 하나 하나를 요렇게 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요. 능력이 나타나는 건 뭐 대번에 무슨 지떡지떡하는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거게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왔기 때문에 일해 놓은 걸 사람들은 몰라. 하나님 하시는 건 은밀히 일해요. 해 놓은 걸 아무도 보지 못해요. 보이지 안하나 그것이 날이 갈수록 점점 흥왕하고 완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