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영감의 가치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25일 화새

 

본문 : 엡5:15-21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는 죽은 영이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성령은 곧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영감을 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하는 말은 성령의 역사로  거듭났다는 말인데 성령의 역사는 영감입니다.

영감과 진리로 거듭났다, 영감은 어떤 것인가? 영감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기쁨이십니다.

뭐 그 수는 말할 수 없는데 한 말로 말해서 영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영감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말은 과거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정반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은 당신의 마음과 꼭 같은 그런자를  만들어 당신도 만족하고 모든 피조물도 만족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진리는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의 마음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이루는 것이 진리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 진리는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 이루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처음에 무슨 일을 이루었는고 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이룬  것이 진리요. 다음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한 것이 진리요 창조한 것이  진리요. 그 다음에 보존하고 섭리하고. 보존하고 섭리하고 오늘까지 영원토록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 이루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마음과 꼭 같은 것이 가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되어진 것들이 가서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당신은  완전자시요 영원이요 불변이요 생명과 사랑과 성결이 충만한 마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이 영감인데 영감으로 우리가 살아났다 하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났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났다 하는 말은 하나님의 그  온전함과 영원함과 불변함과 지극히 거룩함과 전지 전능 그 모든 완전 영원  무한의 하나님의 것 그것을 좋아하고 또 그것을 원하고 그것만을 가치로 여기고,  거기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대로 되기를 원하고 힘쓰는 그런 우리 영이 된  것입니다.

영감으로 중생됐다 말은 이러니까 하나님을 제일 좋아하고, 평가적으로.

하나님을 제일 좋아하고, 기뻐하고. 높이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그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감이요  하나님만을 위해서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그를 높여 사는 것이 그것이  영감입니다.

 영감이 우리에게 오는데 그 영감은 그만 완전한 것이오 영감은 완전한 것이요  진리는 완전한 그대로 실행을 해서 실상으로 성취시키는 것이 그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이 되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또 같은  행사를-행사는 진리에 속한 것입니다.-행사를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 중심으로, 당신 위주로 당신만을  좋아하고 당신만을 소망하고. 당신같이 되기를 원하고 당신만을 소망하고,  당신에게 속한 것 당신의 것 당신의 것 보다 당신 당신을 제일 높이 평가하고  높이 비판하고 제일 비판적으로 그분 이상이 없다 권능이나 뭣이나 그  실력적으로 그분 이상이 없다. 참됨이 그분이 이상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 말은 유일신이라 말인데 말로 이래 하기는 쉽지마는 하나님 그분이  제일 좋은 분이며, 제일 완전한 분이며, 깨끗한 분이며 그분이 제일 좋은 것을  가진 분이시며, 그분이 이 피조물들에게 제일 좋은 생각과 소원과 목적을  가지시고 이 진리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또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분을 제일  소망하고. 이분을 제일로 평가하고 '어떻게 하면 이분을 기쁘게 좋게 할까?'  기쁘게 좋게 한다고 하면 내 주관이 객관을 따라서 가는. 주관은 멸시되고  객관을 따라가는 그런 것으로 참깐 오해하기 쉽지마는 나의 전부가 하나님  그분을 좋아하는 자가 되기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그자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제일 좋아하느냐? 하나님은 당신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당신을  유일로 평가하십니다. 당신을 제일 위하고 기뻐합니다. 왜? 당신이 완전이시기  때문에, 완전이시기 때문에 완전을 좋아 하는 그것이 완전입니다. 완전을  기뻐하는 그것이 완전입니다. 완전으로 살고 완전만 위하고. 완전이 아닌 것은  다 근심하고 걱정하고 그것을 미성의 존재라 계산하여 그 미성되고 불완전하고  망하고 죽을 그런 요소가 섞여 있는 그것을 당신 좋아하는 자로, 당신을 만족해  하는 자로. 당신만을 제일 평가하는 자로. 높이는 자로 이렇게 당신이 당신에게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는 것같이 그런 평가 되는 자 되기를 원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감과 진리로 다시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다시 살아났다  그말은 하나님을 제일 높이 평가하는 자로 살아났다, 평가 하는 자로 되었다  그말이오. 살아났다. 그말은 평가하는 자 됐다, 하나님을 제일 높이 평가하는 자  됐다, 제일 좋아하는 자 됐다. 제일 바라보는 자 됐다, 위하는 자 됐다. 그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됐다. 이렇게 내 자체가 그런 것으로 살아난 것. 그런 것이  내게 생겨져서 시작되어서 그것이 점점 자라가고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23절 이하에는 보면은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말씀의  씨로 됐다. 그말은 말씀의 종자로 됐다. 종자로 됐다 말은 차차 차차 자라갈 수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종자라 그렇게 말했고,  '항상 있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됐다' '말씀으로 됐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뭐인가? 진리인데. 진리는 뭐인가? 영감이 나와 가지고 진리  됐습니다. 영감이 나와 가지고 진리 됐습니다. 영감은 뭐인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만나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이  영감입니다. 영감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안하지마는 우리의 심령으로는 보이고  우리의 영으로는 잘 보입니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영원 자존자가 이 신령한 그 영체로 되어 있는  영에게 접해서 보일 수 있고 또 영이 아닌 육이지마는 육 가운데 물질이지만  물질 중에 신비한 물질로 되어 있는 우리의 혼 우리의 마음 여기에도 접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접하는 그것이 우리의 영이 영감을 접해 느끼는 것과 또 우리의 이성  우리의 감정 우리의 마음이 영감을 접하여 느끼는 것과 차이가 있고 우리 마음이  영감을 접해 느끼는 것과 우리의 이 몸이 영감을 접해서 느끼는 것이 차이 있고,  우리의 몸이 영감을 접해서 느끼는 그것보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물이 그것이  영감을 접해서 느끼는 것이 심히 둔하고 회박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전부 영감으로 된 그것이 가 있고 영감이 나와서 역사할  때에 진리가 역사합니다. 진리는 어떤 역사를 하는고 하니 진리는 그는 볼 수  있는 이 유형의 존재를, 유형의 존재를 이루는 것이 진리요 진리는 어느 능력을  받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가? 영감의 그 움직임을 받아 가지고 그 움직임이  진리가 되어서 엿새 동안에 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는 영감에서 나왔고 영감은 영원 자존하신 홀로 계시는 그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우리를 목적하신 것은 그 영감으로 되기를,  영감의 존재가 되기를. 영감의 존재로 움직이기를 원한 그것이 목적인데 영감의  존재로 움직이는 것이 진리의 능력으로 움직이는 것이요 영감으로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그 역사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것인데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 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살아계신 하나님의 씨로 된 것이니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  사랑하라 말은 뜨겁게 외부적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서 죄에서 헤방시키라.

삐뚤어진 데에서 해방시키라. 또 하나님에게 자존자 유일하신 그분에게  피동되도록 해라 그분과 자꾸 연결이 되어서 점점 그분과 연결이 쉽고 가깝게  되도록 그렇게 해라.

 다시 말하면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은 이제 그렇게 해서 외부적으로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외각을 만들고 그 외각을 만들어 놓은 그 속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인정하고 높이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바라보고 두려워하고 그를  섬기고 그런 속꺼풀이 되고. 그런 속꺼풀이 되고 그 안에는 하나님 당신이  당신을 제일 높이 평가하는 제일 좋아하는, 또 당신으로 만족하는. 이런 당신과  같은 그런 자체 로 변화돼 버리라 그러면 하나님같이 돼라.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해서 피조물을 벗어나서 창조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피조물인 것과 창조주인 그것만 다르지 꼭 하나님 과 같은 것,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독생자라고 말했고 우리는 양자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양자라 말은 우리의 하나님의 형상의 요소가, 하나님과 꼭 같은 요소된 이  요소가 하나님에게 창조함을 받아 된 것이지 자존자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피조물 요소가 완전히 신화되어서 하나님화 된 것을 가리켜서 양자라 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요소가 피조물에게 와 가지고 그 신적 요소가 인적 요소로  나타난 이를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피차에 뜨겁게 사랑하라" 너도 상대방을 사랑하고 상대방도 너를  사랑할 수 있도록. 너도 상대방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은혜로 점점 충만케  하는 역사를 너도 하고 또 상대방도 네게 대해서 할 일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자로 점점 변화되도록 할 것이 요 그러면 그것이 뭘로 됐느냐? 그것이 진리로  됐다. 네가 너는 상대방을 진리되게 하고,-진리되게 한다 말은 진리의 모형이라  말입니다. 진리 자체는 아니오.-진리 되게 하고 상대방은 너를 진리되게 하고.

너는 상대방을 영감되게 하고 상대방은 너를 영감되게 그렇게 하는 이 일에  열중을 다하라.

 그러면 영감되게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영감되게 한다는 말이 하나님의  형상되게 하라. 하나님 꼭 하나님같이 되게 하라. 하나님이 완전하심 영원하심  불변하심같이 너도 그렇게 되고 하나님이 완전인 당신을 제일 좋아하고, 당신을  기뻐하고, 당신을 제일로 인정하고 당신을 높이고,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이  당신을 제일 좋아하는 이와같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것같이 너는  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상대방에게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고 상대방은  네게하고 피차에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게 이루어짐으로써 피차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이 피차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라 피차에  이루어져서 피차가 다. 그리스도의 형상 그리스도와 같이 그리스도의 본체 되는  것은 아닌데 꼭 그리스도의 본체와 꼭 같은 자 사상도 같고. 정신도 같고.

희로애락도 같고 모든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만족하심같이 너희도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이런 자가 되는 이 일을 열중해라.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은 당신이 당신을 좋아서 그보다 더 좋은 게 없고,  그보다 더 완전한 게 없고, 평가적으로 제일 좋고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만족히 여기는 이 당신과 같은 자를 만들기 위해서 목적을 정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희로애락이 당신 같고. 우리 소원이 당신 같고 우리 성품이 당신  같고. 우리의 역사가 당신 같고 이러면 이것이 완전 합니다. 완전에는 사망이  없는 것이오. 완전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기를 우리에게 원하시는데  그것이 뭐이냐? 영감으로 진리로 살아나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의 중생된 영은 영감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다. 그 말은  하나님을 제일 좋아하는 자로 살아났고 제일 기뻐하는 자로 살아났고. 제일  높이는 자로 살아났고 제일 그 이상이 없는 제일의 유일의 존재로 상대하는 자로  살아났고 그만을 기쁘게 그만을 영화롭게. 그에게만 소망을 가지는 이런 자로  살아났다 그말입니다. 이런 자로 살아났는데, 진리로 살아났다는 말은 이런 자로  살아 났는데 이런 자로 행동할 수 있게 됐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피차에 뜨겁게 사랑하라' 이런 자 되기를 위해서 피차에 노력을 하라  그런데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때에 무엇이 와서 역사를  하는고 하니 그 현실에 우리 심신 기능은 아직까지 속량을 받지 못한  존재입니다. 속량을 받지 못한 존재라 말은 예수님의 삼대 구속을 입지 못한 그  심신의 기능이요 물론 입은 것도 있지마는 입지 못한 심신의 기능이 이 현실에서  세 가지 이 공로를 입을 수 있고 세 가지 공로를 입어서 그것이 영감화 진리화  됩니다. 자체의 그 기능이 현실을 통해서 영감화 진리화가 돼 버립니다.

 영감화 진리화가 되고 그 다음에 닥치는 현실에서 또-영감은 하나 요 진리는  하나입니다.-그러기에 영감화로 진리화로 살면 영감화된 것은 영감화로  자랍니다. 영감화로 견고해지고 충만해지고 진리화로 충만해지고 견고해집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 우리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의 세가지  대속을 입도록 하려고, 대속을 인도록 하려고 영감과 진리 자체가 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역사해서 영감과 그 진리를 우리가 배척하지 안할 때에 그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기를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를 가지고  역사합니다. 그 공로가 아니면 역사 못 합니다. 그 공로가 주님과 우리 사이가  끊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를 잇깁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는데 그 공로가 가까이 하도록 가까이 못  할 것, 그를 만나면 소멸될 것 그와 가까이 못 할 이 모든 지장을. 지장되는  것을 전부 다 대속해서 해결했고. 그분과 갖추어야 될 요소를 다 갖추었고. 또  그분과 밀접한 것. 자존하신 하나님과 밀접한 그런 관계를 다 가질 수 있도록  이렇게 공로를 베풀은 이 공로를 인해서 우리 현실에 영감과 진리가 옵니다. 그  공로가 없으면 안 오고.

 그러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는 이 공로가 없는 자에게도 가지마는 이 공로가  없는 자에게는 어떤 영감과 진리로 가느냐? 심판의 영감과 진리로 갑니다. 그  현실에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아니한 사람은 심판의 영감과 진리로 현실에 가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는 그것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하는 그런 결과로  갑니다.

 그러면 영감과 진리는 우리에게 오면 우리가 그대로 있으면 그대로 오면 이거는  심판하고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그것이 그분의 본질과 본성이요 우리는 완전한  그분에게 접하면 완전으로 인해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아주 더럽고  불완전한 존재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심판과 멸망으로 와서 역사할 그 영감과 진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우리를  영감화 진리화 이렇게 되도록.

 영감화 진리화가 되도록 이렇게 역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가리켜서 생명  역사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감과 진리화 되도록 역사할 때에 그때에 그 역사를  입으면, 그 역사를 입으면, 영감과 진리화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 놨는데 그 공로를 벗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를 영접해서 영감과  진리화가 되면 그 현실에 해당된 우리 심신의 기능은 영감화 됐고 진리화됐고.

영감화되고 진리화된 그것이 곧 영감과 진리되고, 점점 영감과 진리쉽고 영감과  진리되어서 모든 존재들에게 영감으로 역사하고,  진리로 역사하고 그러면 영감과 진리화가, 영감과 진리로 점점 이렇게  견고해지는데 견고해지면 차차 그것이 변화되어 가지고 창조주가 되느냐?  하나님의 신적 요소가 되느냐? 신적 요소는 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피조물의  요소가 됩니다. 신적 요소는 되지 안하고 피조물의 요소가 되어지는 그것이 이제  하나님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래 그 현실에서 어떤 현실에서든지 그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영접해서 영감화 진리화 됐으면 그것이 영감됐고 진리됐는데 영감되고  진리됐으면 뭐 됐다 말인가? 영감되고 진리된 그것은 완전한 생각이 됐소,  완전한 기능이 됐소, 완전한 소원이 됐소. 완 전한 성품이 됐소 완전한 뜻이  됐소. 완전한 욕심이 됐소,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진리화됐으니까 이것은 그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는 그것은 영감화된 것을 말합니다. 자체가  영감화되고 '의를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하는 그것은 진리화된 그  진리는 의를 행하는 그 능력을 가리켜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리 안에 영감 역사 영감 안에 그 안에는 바로 막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그러면 그 현실에서 어떤 현실 좋고 나쁜 현실이 있겠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좋고 나쁜 현실이 있고 또 우리의 자체는 좋고 나쁜 것 있습니다.

참 정금같은 사람도 있고 똥같은 사람도 있고 정금같은 아주 실력가도 있고 아주  죽은 송장같은 그런 무능한 자도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인간과의 차이 있는 것인데 정금같이 실력있는 그 자가 영감화  진리화 되고 송장같은 그것이 영감화 진리화 됐습니다. 됐으면 송장같은 게  영감화 진리화 됐거나 정금같은 것이 영감화 진리화 된 것이나 꼭 같은 동등  가치, 동등 보배, 동등 존귀, 동등 동질의 희로애락 동질의 그 능력, 동질의 그  지위 그것을 다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며칠 전에 '우리의 보배는 질그릇에 담긴 것 같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 '우리의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  질그릇에 담겼다 그말은 우리의 자체의 가치가 질그릇 모양으로 우리의 자체  가치는 허무하다 또 우리의 이 몸의 기능은 허무하다. 허무한데 지극히 보배로운  이 영감과 진리가 와서 담기게 되니까 뒤에 가서 그 가치를 우리는 생각할 때에  '나는 아주 송장같은 그런 존재고 아무것이는 참 제일 존귀한 귀인같은 그런  존재고 이 차이가 너무 많으니까, 이 차이가 너무 많으니 아무리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영접해서 영감화되고 진리화된다고 해도 이 가치가 이렇츰 크니  그 가치가 클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질그릇과 같다. 이러기에 그 안에 담겨 있는 영감과 진리가  가치있고 영감과 진리가 위대하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가 많이 들었느냐 적게  들었느냐 그 영감과 진리로 평가하지 담긴 그릇 그까짓 것은 천한 것이고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육체로 자랑하지 말아라.

 이러기에 아무리 모든 면이 가난한 자라도 영감과 진리가 조금만 더 들어  있어도 그것이 지극히 가치가 무한히 크고, 아무리 이 육적으로 첫째 아담의  것이. 아담 하와의 것이 아무리 천하에 제일 귀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영감과  진리가 조금만 덜 들어 있어도 그것이 그만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런고로 가치도 능력도 영원함도 온전함도 불변함도 존귀도 참 이렇게 가치를  따지면 그 가치 있다 하는 그걸 평가라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영감과  진리 그것만이 인생의 가치요 인생의 행복입니다.

 영감과 진리만이 인생의 행복이라 그말은 한 가지 다른 말로 말하면 영감과  진리 그것만이 인간이 기뻐할 것을 기뻐하고 좋아할 것을 좋아하고, 원할 걸  원한다.

 그러면 그 사람 속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이 어떤 사람은  악령으로 기뻐하는데 악령으로 기뻐하는 그것은 뭐이냐? 그것은 악령화되어  가지고 있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은 영감화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하고 높이 평가하고 이렇게 자체가 변화되어  있는 그것이 인생의 가치요 인생의 실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감이 뭐라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영감이 뭐이며 진리가 뭐이냐? 영감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 마음. 진리는  뭐이냐? 그 마음은 하나님은 역사하시기를 그 마음으로 역사합니다. 마음으로  역사하지 딴 걸로 역사하지 못해. 하나님의 전능이 뭐이냐? 하나님의 전능은  하나님의 영감이라.

 하나님의 영감은 전능이요 전지요 완전이라. 완전이신 그 영감이. 영감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은 다 완전인데 완전의  그 움직임이 나와 가지고 일단 그 밖에 나와서 무엇을 역사할 때는 그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이미 하나님 창조해 놓은 것에 대해서 역사할 때도 진리라. 또  없는 가운데서 창조의 역사할 때도 진리라.

 그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진리가 지었습니다. 진리가 지었습니다. 그러면  진리가 지었는데 진리는 어디서 나왔느냐? 영감에서 나왔습니다. 영감이 진리를  통해서 지었습니다. 영감이 진리를 통해서 지었는데 그 영감을 그것을 사람들의  말로 듣기에 알게 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었다' 말씀으로 지었다  할 때에는 벌써 영감이 나와서 역꾼, 영감이 나와 가지고 역사하는 그 역꾼,  역꾼이 돼 버렸습니다. 역꾼이 됐을 때에 진리라 하고 역꾼이 되기 전에는  영감이오 영감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 자체라.

 하나님 자체에서, 하나님 자체가 뿌스러기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영감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자체는 완전이기 때문에 거기는 가감을 못 합니다. 가감이 안  됩니다. 완전자가 움직이는 그 움직임을 가리 켜서 영감이라 하는데 그 영감은  하나님의 그 전부 하나님의 능력의 지혜의 온전의 전부라.

 그것이 일단 나와서 역사할 때에 진리가 역사한다. 진리로 역사한다. 그 진리로  역사하는 그 진리를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를 말씀이라 이렇게 말씀해.

말씀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현실에서 그 영은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의 자체로  만들었는데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과 몸의 기능 이것은 영감화 진리화 이래  가지고 영감이 되고 진리가 되게 한 이것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같이 존귀하고, 하나님같이 영광스럽고. 하나님과 꼭 같은 지능을 가졌고,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역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역사가 뭐이냐? 하나님의 그 능력이 와 가지고 그분이 없는 가운데  우리를 지으심같이 일차 창조한 이것을 이차적으로 영감과 진리가 와 가지고  우리를 영감화되어서 영감이 되고, 영감화되어 가지고 영감이 되고 진리화되어  가지고 진리가 되고. 우리 자체가 진리와 영감이 되어서 모든 피조물에게  역사하게 되는 것이니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이렇게 지극히 존귀한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분담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일에 역사를 다하라.

 이제 무궁세계는 여기에 이 동질이 아닌 하나님에 동질이 아닌, 동성이 아닌  동욕. 같은 욕심이 아닌. 같은 소원이 아닌 같은 취미가 아닌 같은 성질이 아닌.

하나님과 꼭 같은 그것이 아닌 것은 그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용납을  할 수가 없고 그게 다 사망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말하자면 완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완전화 되고 완전이 되고 영원 불변화되고 영원 불변의 것이  되고 불변이 되고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본 말씀 가운데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지혜 없는자 같이 말고 하는 말은,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아라 그 말은 미래에 대해서는 무식한 자로 살지  말아라. 이 지혜는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가리켜서 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서 무식한 자로 살지 말아라.

 이런 비밀이 있고 이런 완전이 있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완전과 영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우리에게 지어 주셨고 이 세상을 만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해 주신 것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 없는 것은 뭐냐  하면은 악령이 미래관을 주는 대로. 악령이 미래관을 주는 대로, 악령에게  소속한 인간 주관이 미래관을 가지는 대로 인간 자체 피조물들이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그대로 하는 그것이 전부 지혜 없이 하는 것이요 지혜  있게 하는 것은 영감대로 진리대로 그대로 미래를 아는 것이 그갓이 지혜 있는  자입니다.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지혜 있는자같이  하여"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 말은 예수님이 이 미래관에 대해서 바로 보고  역사했습니다. '예수님의 미래관과 같이' 하는 말이요 지혜 있는 자같이는  미래관이 영감과 진리대로의 미래관을 가지라. 영감과 진리대로의 미래관을  가지라 영감과 진리대로 미래관을 가지는 것이 도성인신하신 그분의 미래관과  같은 미래관을 가졌다.

 우리가 요 미래관을 바로 가지지 못하는 데에서 현실에 당황합니다. 현실에  분주합니다. 현실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분주도 하고 우리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미래관을 가지면 성령이 인도하는 그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는데, 그  외에는 다 죽는 것뿐인데. 우리가 죽는 일 하느라고 분주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시간을 요  현실이라는 요 현실은 이렇게 하나님화, 네가 말하면 진리화 되고 영감화되고  다시 말하면 네가 하나님 된다 그말이오. 하나님 된다 그말이오. 하나님 되는데  언제든지, 그걸 가리켜서 하나님은 원형이라면 하나님은 원형이라면 우리는  모형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창조 피조 그것만 다르지 신적 요소가 아니고 피조물 요소로  됐으나 그것이 완전히 신화되어서 하나님화된 것 그러기에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의 썩어질 그 정욕대로 생활하는 그 생활을 폐하여"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성품이라 말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완전자, 완전의 그 형상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더욱 힘써 너희들이 믿음에 덕을"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요  그마음에 덕은 또 피조물 인간을 향해 가지고 이 여러면 전체의 이 구비  조건들을 다 향해서 거기에 대해서 다 자기가 구비하려고 해야 온전한 자가 되지  잘못하면 이리 저리 치우쳐 가지고 못된 자 기형적인 자가 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때가 악하니라' 네 주위 환경에서는 악하다 말은 주위 환경은 영감  반대, 진리 반대, 하나님 중심 반대, 하나님 위주 반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  반대, 이러니까 전부 망할 생각 망할 소원. 망할 지식, 망할 비판, 망할 평가,  이게 전부 한 말로 말해서 이것이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라 하기 때문에 네  주위 환경이 전부 이렇게 돼 가지고 있읍니다.

 네 상관도 전부 이 악, 부하도 악, 또 이웃도 악 부부도 악 전체 온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니 네가 인간 중심으로, 네 중심도 피조물 중심이라  말이오. 네 중심대로 인간 중심으로 이 세상 중심으로, 네 중심대로, 네  취미대로, 네 뜻대로, 네 견해대로 네 비판대로, 네 욕심대로 그렇게 하기 쉬운  세상이기 때문에 너는 요 시간을 빼앗기지 안하도록 네가 악에게 빼앗겨서  악으로 현실을 살면 영원 멸망이요 네가 영감과 진리로 살아 영감화 진리화  되면은 너희들이 영생하게 된다.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아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 술취하지 말아라 방탕하다.

그말은 ''술취한다" 무슨 말인가?  술취한다 말은 세상에 타락한 후 배암이 인간을 점령해 가지고 인간을 붙들고  수많은 사상과 주의들을 말했습니다. 수많은 지식 사상 주의들을 말했지마는  이것은 사람이 어찌 됐든가 이리 저리 어지럽게 만들어 가지고 방탕하게  만드는거라. 이리 저리 어지럽게 만들어 사람을 흔들어서 다 흩어서 해이하게  만들어 가지고 멸망하게 만드는 그것이지 하나도 사람을 긴장하고 몽쳐서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술취한다 말은 세상 사상  세상 지식 그걸 말합니다. 그거화되지 말아라. 이건 다 사람을 흐리게 만든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가 왔으니까 영감과 진리 그것만 취해라 영감이  모든 걸 만들었고 진리가 모든 걸 만들었다.

 예를 들면은 네가 일자무식일지라도 정말 모든 하나님이 일반 사회 지식을  이것을 무엇 때문에, 마귀는 제일 하려고 내놨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하기  위해서 내놨기 때문에 이런 걸 이런 걸 해 가지고 목적은 영감화 진리화 되기를  목적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영감화 진리화만 되면은 모든 것 다 알아. 사무엘은 아무 배운 것  없었지마는 그는 영감화 진리화로서 그는 인류로서 최고의 지식을 가졌고,  최고의 지혜를 가졌고, 실수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시작한 것이 선지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선지 학교라 말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을 인간들이 알아  가지고 그 무한함을 아무 없고 가난한 피조물에게 무한함을 전해 주는 그  역꾼들을 기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말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난밤에 여기 와서 기도한 사람은 오백사십이 명. 자기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느냐? 천팔백여 명이, 천팔백여 명은 자기 곳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기 곳에서 산에서 들에서 직장에서 이렇게 우리 기도회를 생각하고  기도회의 이 기도 제목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안 되면 눈을 뜨고 기도해도  됩니다.

 일하면서 눈을 뜨고 한 제목을 생각하며 그 제목을 생각하면서 '주여, 내가  이와 같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를 들면 기본구원이면 '주여, 내가 기본구원  입은 자로 살게 해 주옵소서.' 이러면 그게 기도고,  그 기도하면서 '나는 전능자 아버지의 아들로, 지극히 거룩한 자의 아들로,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상속받아서 만왕의 왕으로 살 자로 자기의 존귀성, 자기의  자존성 그 자존성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기본구원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 와서 하고 기도하고, 엊저녁에 장로님들로서는 여덟 분이  와 가지고 여기 와서 기도했고 남은 장로님들은 다 각각 자기 처소에서 다  기도하기로 등록했으니까 기도하는 줄 압니다.

어짜든지 이래 가지고 지금 이천삼백칠십육 명이 등록했는데 우리가 이래 나가면  나가서 어짜든지 열심히 해 가지고 한 사오만 되는 식구들이 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벌써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그런 기미가 보여집니다. 그런 기미가  보여지는 것은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모든 반사들도 다 권찰들도 힘을  얻고 이래서 여러 달. 한 벌써 약 일 년 동안 떨어져 내려갔던 장년반도 벌써  삼천을 올라섰습니다. 주일학교도 자꾸 이렇게 부흥된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그거 우리가, 제가 힘을 안 들이고 얻어 놓으니까 그걸 시뻐 보지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천하가 달라들어도 예수 믿구로 만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로서 모든 게 다 됩니다. 요새는 또 뭐  소련이니 중공이니 이래 쌓는데 아레도 뭐 미국서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그렇게 했다 하는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이랬는데 그 모든 게 우리에게  다 재촉하는 것이요. 우리를 독촉 하는 것. 이러니까 어짜든지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하면 기쁨이 있을 것 평강이 올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가 없고 평강이  있고, 그러면 다 구원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두려워 하는 두려움이나 염려 가지지 자기를 위해서 그런 의심에서 하나님이  돕지 안할거라 하는 그런 염려가 없어집니다.

 이러기에 꼭 같은 사람으로 같은 입장 만났는데 마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믿어져서 기쁘고 즐겁고 웃으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 보자' 우습고  즐거워하는데 어떤 사람은 기절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절해요. 그 홍해에서  그렇게 되지 안했습니까?  6·25 때도 그렇게 됐소. 6·25 때도 어떤 사람은 다. 그 인민군 이래 가는 것  보고 그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이러면서 가 가지고 웃음으로 상대하면서 예수  믿으라고 전하고 또 그들에게 이래 거석하고, 뭐 거기서 막 폭탄이 내려와  떨어지고 이래도 구경하고 있어.

 '아, 저기 한 개 떨어졌다 저기 떨어졌다.' 이래 쌓으며 구경을 하고 모두 있다  말이오.

 그래 내가 있다가 '너거 어떤 사람들은 지금 두려워서 도망을 쳐 가지고  부산까지 한걸음에 지금 도망쳐 가지고 있고 모든 목사들이 다 도망쳐 가지고  있는데 인민군 속에 있으며 너희들이 뭐이 두려우냐? 인민군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너희 두려우냐? 너거 폭탄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인민군도 두려워하지  안하지.' 그게 뭐이냐? 두려움을 주지 안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강과 담력을 줄 때는 피조물들이 두렵게 하지를 못합니다.

피조물이 두렵게 하지를 못해.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면  우리는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마음에 평안하고 만족하고 가난해도 만족하고 참 행복되다. 자기의  행복을 자기가 찾아 가지고 행복된 자기로 확실히 확신이 되기 까지 우리가  기도합시다. 그러면 샛별이 떠올라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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