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선지자선교회 1985년 2월 13일 수야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 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고난을 당하는데 그 고난 당하는 제자들을 구원  하실려고 주님이 오실 때에 때는 밤 사경입니다. 밤 사경이라고 하면은 한  밤중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제일 밤이 깊은 때에 그때에 주님이 구원하러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이 우연히 된 일이 아니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이 하나의 형식을 가지고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런 역사적인 이 사실이 있었고 또 우리에게 문서로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하다 보니까 밤중이 됐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영원 전 밤중에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시기로 그렇게 미리 예정 하시고 그때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기위해서, 또  우리에게 모든 잡된 믿음을 없애고 다 교만이니 그런 허영과 허욕인 그런 것을  다 깨끗하게 금에 잡철을 태워 없애는 거와 같이 그렇게 제하시기 위한 여러  가지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어려움을 닥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움을 닥칠 때는 조금 어려움을 닥칠 때가 아니고 그  어려움으로서 최고로 어려운 그때에 주님이 구원하러 오신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어려움이 차차 차차 짙어가고 더 그 어려움이 커져 간다고 해서  우리는 낙망할 것 아닙니다. 짙어가면 여러번 겪은 사람들은 아, 이렇게 차차  차차 어려움이 커져 가니 차차 내가 나를 부인하게 됐고 또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의지하고 바라던 것도 다 이제는 끊어졌고 이렇게 되어지니 아마  주님의 구원이 가까와올 그런 시기가 되었다 그렇게 믿음의 사람들은 짐작을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그 구원하러 오실 때에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방편으로 구원하러  오시지를 아니했었고 제자들이 보고 유령이라고 놀랠 수 있는 그런 주님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구원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정반대의 그런 방편을  가지고 우리 구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주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은 참 천부당 만부당한  그런 구원에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구원은 될 수 없는 그런 방편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 방편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구원을 받기가 제일 어려운 것은 뭣  때문에 어려우냐 하면 자기 주관을 부인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 주관을 부인하는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자기 주관 만 부인하면 구원이 되어지는데 자기 주관을  부인치 안하는 사람은 그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여게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 또 공과인데, 여게서 여러분들이 깨닫고 많이 기도하고 그때  가르치면 성령이 여러분들을 붙들고 학생들이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의  능력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게는 이 제자들은 바다 가운데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고 주님은 또 먼 산에  계셨지마는 주님은 그 제자들이 바다 가운데서 어려움 당한 것을 살피시고 그  제자들에게 구원에 가장 적절한 고런 시기에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하나 계시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 택하고 중생 입은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은 늘 살피고 계십니다. 살피고 우리의 어려움을 늘  살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뭐 어떤 그  어려움을 당하고 어떤 궁지에 빠져도 중생된 자에게는 주님이 항상 살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는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이 마치 독수리가 그  새끼를 그 연습 시키는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발로  이렇게 움켜 가지고 저 공중에 높은데 가 가지고 그만 휙 던져 놓으면 이게  거기서 힘이었으니까 훌훌 거려도 결국은 땅에 떨어집니다. 이제 땅에 떨어지면  그만 그 날개에 힘이 없으니까 떨어지면 죽을 터인데 그 에미가 떨어지는  그것을 땅에 부딪치기 전에 똑 기다리고 있다가 땅에 부딪히기 전에 부딪칠듯  말듯 할 때 그때에 다시 이것을 나래로 품어 가지고서 공중으로 올라가고 이와  같이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해서 자기를, 교만한 자가 교만한 자가 교만을 다 버리고, 또  거짓된 자가 거짓을 버리고, 모든 온갖 죄를 범하는 자가 그 죄를 버리고  깨끗이 회개하도록 아주 그 어려움의 절정까지 뒀다가 그 어려움으로 회개하고  난 다음에 그 어려움을 그대로 계속 두는 날이면 죽을 건데 죽어 버릴 건데 그  회개만 하도록 하시고 회개하고 그 다음에 멸망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이르면은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그때 우리를 구출하시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게서 여러번 말했기 때문에 요것을 잘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요것은 언제든지 외우고 있으면서 우리 일생 동안 신앙 생활하는 데에 늘  신앙의 그 잣대와 같이 목수의 잣대와 같이 이 신앙의 잣대로 삼아야 합니다.

 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배 타고 바다 건너로 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빨리 바다 건너로 가라 재촉해서 보내실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오래 동안 따라다니면서 참 하늘의 그 생명의 말씀을 많이 배웠고, 또  성신의 감화도 많이 받았고, 또 여러 가지 이적도 많이 봤고 이래서 제자들  마음에는 그만 예수님 한 분이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 하는  이것으로서 그 마음에 가득 찬 사람들이 됐었습니다.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이  배 타고 가라 할 때도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오천 명을  먹여서 그 떡으로 모두 배불리 먹는 그 기적을 먹고 난 바로 그때입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주님의 그 능력 있는 말씀을 많이 배워서 은혜를 받았고,  또 그 말씀을 받는 가운데에 성령의 감화 감동을 많이 받았고, 또 예수님이  베푸신 온갖 이적들을 다 그들이 직접 보았고, 이러니까 그 제자들은 그만  예수님 한 분만 자기들이 모시고 주님 한 분이면 뭐이든지 다 될 수 있다  이래서 주님 한 분 외에 아무 것도 필요가 없다, 주님 한 분 가지고 모자라서  주님 한 분 외에 무엇은 있어야 된다 하는 주님 한 분 외에 아무 것도 더 있을  것 없고 주님 한 분이면 다 될 수 있다 하는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또, 그라고 하나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으며 어떻게 생각을  가지며, 어떻게 말을 하며.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느냐? 이 세상에는 우리가  쉴새없이, 활동을 해야 살 수 있는 것인데 그러면 활동은 어떻게 할까 하는 그  활동에 대해서도 단정이 됐던 것입니다. 활동은 그저 주님이 말씀 하시는  그대로만 복종하면 된다. 주님이 말하라 하는 대로 말하고, 일하라는 대로  일하고, 또 이런 저런 모든 행동을 하라 하는 대로 행동을 하고, 또 마음도  이런 마음을 품으라, 저런 생각을 가져라 하는 대로 그대로만 하면 된다 요 두  가지로만 가득 찼던 것입니다.

 고 제자들이 예수님 한 분으로 소유는 전부라. 자기네들이 뭐 이것도 저것도  필요한 것이 세상에 가득찼지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성신의 감화를 받고,  또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이적을 많이 보고 이라고 나니까 가져야 할 모든  필요한 것들 다 하나도 필요 없고 예수님 한 분만 모시고 있으면 된다 고  사람으로 변화됐습니다. 이래서 예수님 한 분이면 어떻게 할라고, 예수님 한  분이면 뭐 건강도 되고, 양식도 되고, 돈도 되고, 자유도 되고, 평강도 되고.

모든 능력도 되고, 전쟁의 승리도 되고, 또 보국도 되고, 보신도 되고, 가정도  행복된 가정 되고, 예수님 한 분이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믿는 고 믿음을 제자들이 가졌던 것입니다. 또 행동은 이것 저것  많은 인간 행동이 있지마는 그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 고거만 하면 된다 하는 요것을 가졌고 요 둘만 가진 제자들이  됐습니다. 요것이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도 미국에서 편지가 왔는데 어쩌든지 이제는 좀 방학이 되면 봄 방학이  되면 허락만 해 주시면 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좀 절여져서 참 주님과 이렇게  제자들이 믿는 거와 같은 이런 그 신앙을 가지도록 이걸 준비하겠다고 그 외에  딴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마 깊이 느낀 모양이라. 깊이 느껴서 그렇게  편지를 했는데 그 참 편지한 걸 보니까 나도 은혜를 받았어요. 글자 한 자 한  자 쓴 것이 그 벌판 청년들이 말이지 글자 한 자를 쓰는데 글자 한 자를 쓰면서  발발 떨면서 이거 아마 그 큰 대자를 쓸 때에 조심한 것만침 그렇게 조심해서  펜글씨를 썼어요. 인제 허락을 할까 안 할 까 그거는 모르겠습니다마는서도,  이 제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됐습니다.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됐던가?  예수님의 그 복음의 말씀을 계속 다니면서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을 많이 들으니까 사람들의 지식이 변화가 돼 버렸지, 또 성신의 감화를  받으니까 그 마음들이 다 그만 변화가 돼 버렸지, 또 예수님의 행하신 모든 그  이적을 보니까 자기네들의 모든 그 비판과 평가들이 완전히 변화가 돼 버리지  그 사람들이 변화가 됐었습니다. 이래서, 그렇게요 두 가지로 변화가 돼서 요  두 가지로 가득 찬 그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로 갈라고 할 때에 그만 그  배가 그저 슬슬슬슬슬 항진을 해서 예수님께서 가라 하는 그곳으로 배가 술술  갔습니다. 아주 순풍에 될 다는 것으로 아주 그저 어려움 없이 갔었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풍랑이 이르렀습니다. 그 제자들이 그렇게 가다 보니까 가다  보니 예수님은 차차 멀어지고 하니까 옛날 어부 노릇하던 사람들이니까 배 타고  가니 옛날 생각도 나오고 또 노를 젓는 그런 일도 또 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하니까 그만 세상이 들어왔다 말이오. 세상이 들어 와 가지고서 출발할 때는  예수님 한 분만 하면은 더 이상 소유할 것이 없다고 자기들에게 필요한 거는  예수님 한 분이면 됐다 이랬는데. 배 타고 가다 보니까 이런 생각도 나고 저런  생각도 나고, 또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그만 잊어 버렸던 것을,  잊어 버렸던 걸 새로 되찾아 생각해 가지고서 뭐 필요한 것이 하나씩 둘씩  생겨졌습니다. 또 그라고 노를 저어 가지고 가다 보니까 아, 이래 저어야  되겠다, 저래 저어야 되겠다 그만 그렇게 자기네들의 활동하는 데에서 이런  활동도 해야 되고, 뭐 이런 수단도 부려야 되고, 저런 또 기술도 부려야 되고  하는 그런 활동이 자꾸 들어 왔습니다. 이래서 예수님 한 분으로서 자기네들은  그 이상 소유할 것이 없고 예수님 한 분만 모시면 다 된다 했는데 예수님 한 분  외에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씩 둘씩 자꾸 이래 들어왔습니다. 예수님 한  분 외에 이것도 필요하다, 저것도 필요하다, 그 예수님 한 분 외에 자기들이  가져야 할 것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둘씩 자꾸 생각이 났었습니다. 또 그러고  주님에게 순종하는 그 행동 하나만 하면 된다 이랬는데 그 배 타고 가다 보니까  그만 이래도 해야 되고 저래도 해야 된다, 노 젓는 거 뭐 이런 거 저런 거 할  일이 또 자꾸 하나씩 둘씩 들어왔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바람이 불고 배가 안 갑니다. 바람이 불고 배가 안 가니까 예수님은  차차 잊어버리게 되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이것은 차차 잊어버리게 되고.

그만 완전히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거는 완전히 잊어버려  버리고 그만 옛사람으로 돌아갔다 말이오. 옛사람으로 돌아가고 나니까 풍랑이  이르러서 배가 전진하지 못하고 그들이 큰 고생을 당 했습니다.

 우리가 여게서 예수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것  같고, 아, 예수님 뭐 이것도 저것도 필요한 것이 많이 있는데 예수님 한 분이면  소유의 전부가 된다 얼마나 그 어리석은 일입니까? 돈도 필요 하고 뭣도  필요하고 뭣도 필요한 것이 많이 있는데 예수님 한 분이면 다 된다 하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요 이치에 맞지 일는 일이겠습니까? 이래도 예수 믿는  것은 요렇게 예수님 한 분으로서 자기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요 사실을 믿으면  전부가 다 됩니다. 또 행동도 예수님에게 순종 하는 요 행동 하나만 하면 된다.

예수님이 이거 하라 하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 하면 저거 하고 예수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은 그 행동은 전지 전능의 행동이기 때문에 그 행동으로서 다 될 수  있다 하는 고것을 제자들이 믿던 고 믿음이 그만 바꿔졌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고 행동 외에 이것 저것 할 일이 많다고 하나씩  둘씩 들어오는 데에서 바꿔졌다 말이오. 예수님과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복종하는 거 요 둘로 가득 찼던 것이 차차차 요거는 배워지고 예수님 밖에 이런  행동도 필요하고 저런 행동도 필요하고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그  소유가 예수 밖에 딴 것이 하나씩 자꾸 이렇게 소유가 하나씩 둘씩 들어와서  채워지고, 행동도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행동 그 외에 이런 행동 저런 행동이  하나씩 채워지는데 채워지니까 채워지는 것만 치 자꾸 환난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어떤 환난이든지 뭐 경제  환난이든지, 자기 출세 환난이든지, 사업 환난이든지, 신체 환난이든지, 가정  환난이든지. 어떤 일 어떤 일이든지 자기에게 모든 구원 이루기에 방해되는  모든 어려움 모든 불행 모든 불행, 모든 어려움, 모든 고통 이런 것은 요 두  가지로 채워지면 이런 것이 하나도 없는데, 요 두 가지가 없어지고 이 세상  사람과 같은 것들이 채워지면은 요 두 가지가 없고 세상 사람과 같은 게  채워지면 그 풍랑이 일고 고생 하고 전진하지는 못하게 되는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제 다 자꾸 해석할 수 없으니까 요 두 가지로만  가득 찼을 때에 신앙생활은 평탄하고 모두가 다 형통하고 모두가 구원이 잘  이루어져서 형통하다 말은 무얼 말하는고 하니 성경 말씀대로, 진리대로,  영감대로 살기가 그저 술술 어려움 없이 진리와 영감대로 살게 된다 그  말입니다. 진리와 영감대로 의의 걸음을 걸을 수 있고 구원의 걸음을 걸을 수가  있게 되고, 요 두 가지가 세상 것으로 바꿔지고 요 두 가지는 없어지고 세상  것으로 채워지면 그이의 앞길은 절벽 같은 것이 꽉 막아서 제가 죽자껏 애를  써도 안 됩니다. 이 제자들이 그 풍랑 만나 가지고 어려움 당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와서 해결 해 줬지 그들은 죽어도 해결 못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 가운데 보면 이 두 가지는 없고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 그이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세상에 있는 그  모든 것으로 필요하다 하는 것으로서 자기 마음에 채워 있고, 또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것 외에 이것도 해야 되겠다, 저것도 해야 되겠다. 해야 될  일 가득 찼고 이런 사람은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속에  고통이 심해서 자살이라도 안하면 안 될 수 있는 거게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심한 고통으로 뭐 비참하고 가련하게 자꾸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것을  보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고통이 되어 있는 그 제자들의 고통을 면한 것은 어떻게  하니까 면해졌던가? 그 고통 가운데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서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만 주님의 음성 한 마디 척 들으니까 그만 그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모든 근심, 걱정, 염려, 온갖 그 죄악의 모든 고통이 다 삭아져  버립니다. 사라집니다. 이것이 삭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삭아진 걸 뭐  삭아졌는지 안졌는지 삭아졌다는 말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삭아 졌다고  그렇게 밥 삭듯이 삭아졌다고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삭아진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같이 있던 베드로가 그 주님 보고서 '나를 물 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  오라 하니까 물 위로 터뻑 뛰어 내린 것 보니까 벌써 그 분들이 다 같은  제자들이요' 같이 말씀 들은 사람들이니까 주의 음성 듣고 난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의 그 심령 속에는 다 평안이 왔고 근심 걱정이 다 물러갔습니다.

 이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일어나는 고통, 마음의 고통. 정신  고통, 경제 고통 몸의 고통. 모든 활동 고통, 출세의 고통, 뭐 사건 고통 어떤  고통이든지 고통 일어나는 것은 다 그 속에 주님이 안 계시고 주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그 믿음이 없고 해서 세상 걸로 채워 가지고 일어난 고통인데, 그  병은 그것 때문에 생긴 병인데 그 병 치료는 다른 것 없습니다. 그 어려움이  있으니까 이러니까 아, 돈이 없으니 어려움 있으니 막 돈벌이를 벌어야 되겠다.

돈벌이를 해야 되겠다. 돈벌이를 하다가 안 되니까 이거 죄를 지어 거짓말을  하고 사기 횡령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 도둑질을 해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 암만 벌일수록이 벌일수륵 이 믿는 사람에게 어려움 당한 것이 제가  그런 죄악이 들어 가지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회개를 해야 되지  자꾸 그리 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럴수록이 자꾸 더 심해집니다.

제자들이 자꾸 노를 젓 고 힘을 쓸수록 이 배는 더 안 갑니다. 또 풍랑은 더  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어려움은 자기네들 심령 속에 어려움이 하나 있었고 몸 밖에 어려움이 있었고  어려움이 두 개 있었는데 이 어려움 두 개는 뭘로 해결 지웠느냐? 다른 걸로  해결 짓지 못했습니다. 요걸 똑똑히 들어요. 어떤 어려움이라도 요거면 해결 다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라도 해결 다 돼요. 마음속에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까 그만 해결이 됐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니까.

 그러니까, 마음속에 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오늘의 주님의 음성이 뭐 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또 말씀이 영감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는 그만 무조건  그만 그 일로서 뭐 죽는 일이 나든지 뭣이 집에 불을 지르든지 뭣이든지  어짜든지 그 어려움이 있을 때는 그만 도망가야 됩니다. 그 어려움이 있을 때는  그만 어데든지 고요한 곳으로 가 가지고서 아무도 없는데 뭐 쌀 몇 주먹 싸  가지고 가든지 가면 됩니다.

 그전에 손 양원 목사님 말을 들어 보면 여러 가지 교회 어려움이든지 가정의  어려움이든지 그 어려움이 있었어. 그 사모님으로 말미암아 고통도 많았습니다.

이 어려움이 있으면 그만 마른 쌀을 싸 가지고 와요. 그 마른 쌀을 싸 가지고  먹어서 아마 이가 치근 이 없어졌는가 모르겠어. 이가 다 문질라 졌어요. 그만  보면, 마른 쌀 이래 한 웅큼 딱 싸 가지고는 고만 여기 수건에 싸 가지고는  그만 어디로 간지 몰라요. 그만. 담요 한 장 들고는 어디로 간지 몰라 가  가지고서 뭐 보름이고 열흘이고 뭐 이십 일이고 그만 못 견딜 상 바라면 한 줌  내서 꼭꼭 씹고 그만 물 마시고 이래 가지고 거기서 자꾸 성경 읽어. 성경 읽고  내려오면 다 해결 다 돼 버렸어. 그거 방법을 만들었어요.

 여게도 보니까, 주의 음성 들으니 그 마음에 고통이 없어졌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마음의 고통은 없어졌지마는서도 여전히 바람은 일고 있어. 풍랑은 일고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벌써 주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고통이 해결되고 난  다음에는 풍랑이 일든지 말든지 거게 대해서 관심도 없다 말이오. 그까짓  일거나 말거나 아무 문제가 없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 풍랑은 또 언제 없어졌느냐 하면은 그 풍랑은 예수님께서 배  위에 제자들에게 오시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시니까 그만 바람이 저절로  잔잔해졌어. 예수님 모시게 되면은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해결되다니?  인간이 저질러 놓은 일을 인간이 해결해야 될 터인데 인간이 해결하지 안하고  어찌 되느냐? 이거는 인간이 해결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이 전능자로 해결했소.

뭐 인간이 손대거나 전능하신 주님이 해결을 시켜서 해결이 된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모든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 하는 그것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것을 제가 뛰어날 수 있는 하나나 했습니까? 하나도 안 했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 일 하나도 안 했소. 하나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해 주지 안했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걸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도 몰라요. 고걸 그래. 해 보면  '과연 그렇구나' 여게서도 여러분들 가운데에 여러 가지 번민과 고통. 자기가  잘못 저질렀든지 어떤지 해 가지고서 어려움 이 풍랑이 일고 자기 앞으로  전진이 딱딱 앞길이 막혀 버리고 이 암흑과 절벽으로 딱딱 막히고 신세가  절단나게 된 그런 사람마다 그게 풍랑 만나서 전진 못 하는 것입니다. 바로 꼭  그걸 가르친 것이오.

 이러니까. 그런 문제가 된 것은 왜 그래 됐느냐? 하나님 모시지 안하고 세상에  다른 것이 이게 있어야 된다, 저게 있어야 된다 하는 그런 모든 필요한 소유가  많은 그 죄 값이오. 또 말씀 순종 고거 외에 제 생각대로 요래야 되겠다,  조래야 되겠다 하는 고게 많았기 때문에 고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잘못해 가지고 비참하게 됐으면 그만 거게서는 희망이 없느냐?  희망 없는 것 아니오. 비참하게 되어 있으면 그때에 비참하게 돼 있으니까  인간이 그 문제를 해결할라고 아무리 달라들어 날뛰면 날뛸수록 이 더 낭파만  되지 절대 해결 안됩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절대 해결 안 돼요.

그럴 수록이 자꾸 노를 더 젓을 라 합니다. 젓을 라 할 수록이 저희들이 죽을  지경입니다. 안 돼요. 그 해결은 주님의 음성 들으니까 해결되지 안 했습니까?  음성 들으니까.

 이러니, 그럴 때는 이것 저것 다 치워 버리고 그만 성경 자꾸 읽습니다. 성경  읽고 안 됐다, 나는 뭐 밥을 굶지 못할라면 어디로 가든지 그만 좀 조용한데 가  가지고 산으로 가든지, 요새는 추우니까 거석하지마는 좀 툭툭한 것 입고  산으로 가든지 가 가지고 성경을 자꾸 읽어요, 그만 자꾸 성경만 읽으면 속이  평안해집니다. 왜? 고통 주기를 뭐이 주느냐? 악령. 악성 악습 고놈이 들어서  고통을 줬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 고놈이 말라 죽습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고 놈이 말라 죽어요. 그러니까, 근심, 걱정, 고통케 했던 고 사상이 고  주의가 고 지식이 말라 죽어 버려요 말라 죽어 버리니까 심령 안이  평안해집니다.

 평안해지고 말씀을 자꾸 읽고 읽고 이라면 과거에는 하나님이 천 리 만 리  멀었는데 자꾸 말씀을 읽고 기도하니까 주님이 차차 차차 자기와 가까와져서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차차 차차 믿어집니다. 믿어져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는 것이 믿어지면 그때 벌써 내 몸 밖에 있는 사건들은  나와 보면 다 해결 다 돼 버렸어. 어찌 됐는지 해결이 다 돼 버려요. 이것이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둘 배웠습니다.

 또, 그러고 믿는 사람이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고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죽을 일이라도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순종하는 일은 사람 보기에는 물에 빠져 당장 빠져 죽을 일이지마는서도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이러기에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난것 바라보지 안하고  주님 한 분만 바라보는 이것이 제일 제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 한 분 만  바라보고 그 어렵든지 쉽든지 한 분만 바라보고 순종하는 그 순종은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순종하는 순종은 바다 위로 걸어갑니다. 세상 위로 걸어갑니다.

세상을 발 아래 밟고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그 분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고 주님의 뜻을 고 걸 찾아서 고 명령대로  복종하면서 자기에게 쉬운 복종하면은 쉬운 성공이 있을 것이고, 어려운  복종하면은 어려운 성공일 것이고, 이거는 절대 차한다 하는 그런 복종을 하면  거게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초인간의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배웠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주님만 바라보던 것이 또 세상 바람을 바라봤다 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던 것이 세상 모든 환난을 모든 이 세상 것들을 바라보니까 또  염려가 생깁니다. 주님만 바라보던 자가 세상 것 바라보니까 염려 생기면 염려  생기면 그때부터 믿는 사람은 권능은 떠나 버리고 저 혼자 날뛰기 때문에 천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천해졌을 지라도 주님에게 부르짖으면 또  주님이 또 구출해 주십니다.

 이래서 뭐 우리를 어짜든지 믿는 사람은 주님과 주님 명령 순종 이 둘이면  다라하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 두 가지. 요 두 가지니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이 전부 순풍에  돛달듯이 형통하고, 형통하니까 형통한 그거 걸음 가다가 형통한 그 걸음  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 두 가지를 잊어 버려 버리고 세상으로 자기 속에  채워지니까 그만 자거에게는 큰 환난 왔고,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잊어버리니  환난 왔고 이 두 가지로 가득 채우니까 순탄했고. 이 두 가지 잊어버림에서  환난 왔던 것 다시 이 두 가지 찾으니까 그만 환난이 물러가고 평안해졌고 또  이 두 가지만 하니까 이 두 가지만 가지니까 물 위로 떠벅떠벅 걸어갔고,  걸어가다가 또 이 두 가지 외에 세상 걸 보니까 또 빠져 들어갔고, 빠져 들어  가니까 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구출해서 구원해 냈고 이랬는데, 이제 고 두  가지만 더 증거하고 끝내겠습니다. 하나는 이 두 가지로 전부가 될 수 있는, 이  두 가지로 자기의 전부, 소유의 전부는 주님 한 분으로, 또 자기의 행동 전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요 거 하나로 요 둘로서 자기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대한 문제입니다. 요 사람 되는 것이 요게 제일  중대한 문제요.

 이래서 내가 미국에 보니까 그 학생들이 요 두 가지로 전부 되는 고 사람 되고  싶어서 지금 발동을 하는 모양이라. 만일 그것만 되면 세상을 점령합니다. 뭐  여게도 지금 일하러 나갈 사람들 많이 있지 안해요? 아, 뭐 주님이 계시는데  아, 전능자, 만주의 주, 만왕의 왕, 창조주, 주권 개별 섭리자, 이 계약의 절대  불변자 아, 이분에게 계시는데 요 얼마나 요런 말씀 보고서 요대로만 믿고 그만  나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믿고 놔가면 됩니다. 믿고만 나가면 되는데 그  엘리사가 요단강에 와 가지고서 그 요단강 물을 옷으로 치니까 강물이  갈라졌는데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데 계십니까?' 한번 시험해 봤다 말이오.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데 계십니까?' 하면서 한번 쳐 봤거든 떡 갈라졌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 지금 중간반 반사들이든지 남권찰님들이든지 여러분들  여게 붙들어 놓을라 하는 것 아닙니다. 아직까지 날가지가 안 났기 때문에  날개가 안 났기 때문에 나가다가는 독수리한테 채여서 죽을 판이기 때문에 그래  지금하고 있는 것이지 좀 그래 한번 해 보라.'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한번 갈라트려 봐요. 이래 가지고서 자기네들이 반사  노릇하면서 중간반 반사 노릇하면서 또 남권찰도 하면서 이제 이 권능으로 한번  해 봐. 권능으로 하면은 확 튀어날 터이니까 아, 튀어나면 튀어나면 절로  하나님이 보낼 것이요, 또 가라 할 것이요, 또 가면 대 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한번 시험을 해 봐요. 모두.

 이 두 가지로 전부되는 이 사람 되는 것이 요게 제일 어렵습니다. 요게 제일  어렵고, 두 번째는 요 둘로 자기의 전부를 만들었던 자기를 요 둘은 없어지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 주님 대신하고, 인간의 모든 방편으로서 주님 말씀  순종하는 것 대신하고 요거 바꿨다 말이오. 요 둘을 바꿔 버렸어. 바꾸는데  어떻게 해서 바꿨느냐 요게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바꿔졌느냐 하는 고것을  깨달아서 고 바꾸는 고 일을 안하는 요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노력할 것, 요  사람이 됐는데 요것을 바꾸는 요 바꾸는 일을 하지 안하도록 할 것. 요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요것만 하면은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렇게 하다가 보면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으로  전부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구하고 뭐 이야기나 사건 보니까 그만 주님  잊어버리고 사건하고 나하고 단 둘이 돼 버렸어. 사람하고 나중에 단 둘이 돼  버렸어. 이라니까 껍데기만, 주님 다 잊어버리니까, 그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능력 있게 역사할 수가 있습니까? 말 한 마디 보면 다 잊어 버렸는데 물건 하나  보고는 다 잊어 버렸는데 어데 가다가 급한 일만 있어도 다 잊어 버렸는데  이러니까 주님이 내게 역사하지를 못한다 그거요.

 그런고로,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기도 많이 해서 요 두 가지로 자기의 전부가  되는 요 사람이 되는 요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것만 하면 성공입니다. 이것만  하면 다요. 또 예수 믿는 모든 성자나 성녀들이나 뭐 순교자나 순생자나 그런  사람들은 요 둘로서 주님의 전부를 삼았습니다.

 오늘 내가 신문을 보니까 어떤 그 순교자가 참 그 분의 그 순교의 전기가  간단하게 기록돼 있는데 그 분 보니까 그 분도 요 둘로 전부를 삼았어. 요  둘로. 또 유재헌 목사님이라고서 순교했습니다. 그 공산주의에게 납치 돼  가지고 순교했는데 그 분도 이 복음 성가를 지어 놓은 걸 보면은 요 둘로  자기의 전부를 삼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요 둘로서 자기의  전부를 삼지 못한 사람은 신앙의 그 형통을 못 얻습니다. 그 신앙의 양심 자유,  신앙 자유를 하지 못했습니다. 다 여러 것들에게 종이 되어서 이거 한테 종이  되고 저거 한테 종이 되고 이 시대는 이거한테 종이 되고 저 때는 저거 한테  종되고 이랬지 자유하는 신앙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요러니까, 요 둘로서 자기의 전부를 삼는 요 일을 어짜든지 노력을 해  가지고서 자기의 전부를 삼아야 되겠고. 요 두 가지로서 자기의 전부 삼은  요것을 세상 어떤 분주 복잡한 필요한 중한 일로서도 바꾸지 말아야 돼요.

바꾸면 안 돼요. 바꾸지 말아야 돼요. 바꾸지 않도록 만드는 것과 바꾸지 않는  것 요게 주력해서 하면 됩니다. 고 만드는 것은 만들어진 것 같은데 어짜다  보면 바꿔 버렸어. 없어져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만드는 것, 바꾸는 것 요 두 가지 어짜든지 주력해서 지금은 옛날  같은 그런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저 지난 아침에 언제 아침에 증거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주님은 지금 생명의 복음을 원합니다. 생명의 복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시켜 가지고서 그래 있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포로시킨 거는 뭣 때문에 포로 시켰습니까? 포로 시킨 그것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서 그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또 다니엘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래서 복음이 전부 말살되는데 요 두 가지로 충만한 고 사람을  그 불미 속에, 사자 구덩이 같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통과할 수 없고  신앙주의를 가질 수 없는 고런 역경에서 이 두 가지 가진 사람이 그 세상을  이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이제 생명 복음으로 전할라고, 지금  있는 이 복음은 다 모두 넓은 범위에서 사선을 넘지 못한 복음이요, 사선 안에  죽음 밑에서 엎드린 복음이요, 이 사선을 넘은 지금 그 복음을 하나님이 원하고  제십니다. 혹 우리 교회를 그렇게 쓰실란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자꾸 준비가  사선을 넘는 그 복음을 자꾸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 둘, 예수님으로서 내 소유의 전부, 순종하는 것으로서  내 행위의 전부, 주님이 내 생명도 되고, 내 승리도 되고, 내 담력도 되고 내  평강도 되고. 원수를 승리하는 것도 되고 오만 것 다 되니까 요렇게 믿어지는  요 신앙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가진 신앙을 세상 이런 저런 현실에서 바꾸지  안하도록, 세상하고 바꾸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야 만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4596 지식믿음,사람의 성공/ 시편 1장 2절/ 1983. 5. 4. 수후집회 선지자 2015.12.28
4595 지식과 지혜/ 잠언 1장 1절-5절/ 1974. 2. 24. 제 8공과 선지자 2015.12.28
4594 지식 탐심/ 에베소서 1장 1 7절-20절/ 1983. 6. 4.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4593 지식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1절-14절/ 1983. 6. 14.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4592 지성적 연보/ 마태복음 6장 19절-20절/ 1986. 1. 1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4591 지사충성/ 요한계시록 17장 9절-14절/ 1988. 10. 3.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28
4590 지방정실 혈육정실을 하나님의 선물로/ 창세기 13장 5절-15절/ 1987. 10. 22.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4589 지방정실 혈육정실/ 창세기 12장 1절/ 1987. 10. 19.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4588 재림의 긴박/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1982. 4.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4587 지능을 하나님에게 구할 것/ 야고보서 1장 5절- 8절/ 1976년 33공과 선지자 2015.12.28
4586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7년 제13공과 선지자 2015.12.28
4585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7. 11. 11.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4584 지극히 큰 소망을 달성하는 법/ 고린도전서 1장 28절-31절/ 1988. 7. 14.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4583 지극히 큰 소망/ 에베소서 3장 14절-21절/ 1987. 2.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4582 지극히 큰 사명/ 베드로전서 5장 1절/ 1982. 6. 6.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4581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년 3 공과 선지자 2015.12.28
4580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13.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4578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1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4577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7절-33절/ 1985. 2. 5.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