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살아난다

 

1988. 6. 6. 월새

 

본문: 고전 15:36-41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우리 영은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단번에 살아나서 완전히 살아  있습니다. 다시는 죽지 않을 영생으로 완전히 살아나 있고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는 살아나 있지마는 실상으로는 죽어  있습니다.

 그러면, 죽어 있는 것이 그것이 현실을 통해서 실상으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통해서 실상으로 살아나는 것은 그 현실에 심신이 행동할 때에 저를  법적으로 살린 대로의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면 법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 실상으로 살게 되고,  또, 그것이 현실에서 입술로는 아무리 믿는다고 이렇게 말을 해도 현실을  닥쳤을 때에 현실 생활 행동에서는 자기가 어려움이 있으니까 진리와 성령과  대속의 공로대로 살라고 하면 어려움이 있고 또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살라고  하는 강한 세력이 유혹도 하고 또 강압도 하고 꾀우기도 하고 이러니까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이 법적으로는 살아나 있으나 실상으로 죽은 그것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죽은 것이기 때문에 이제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현실에서 행동하면 살아나는 것인데 또 그 현실에서 악령, 악성, 악습대로 살아  버립니다. 살아 버리면 그 현실에 해당됐던 그 심신은 완전히 영원히  죽어버립니다.

 죽으나 그 사람에게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은 이것은 죽었지마는 그 요소만  죽었지 그 부분만 죽었지 지금 남은 전체는 살아 남아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면  많이 살아 있겠고 나이 많은 사람이면 남은 것이 얼마 안 되겠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심신이 많이 죽은 사람도 있고 또 많이  살아나 있고 죽은 것은 적고 살아난 것은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은 것이 많다 말은 자기 심신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살려고 하는 그것이  많은 사람도 있고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심신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살라  하는 사람은 조그매 있고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살라고 하는 사람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땅위에서 성화된 그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어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노력한 사람은 산 부분이 많고  처음으로 믿는 사람, 이제 믿는 사람이나 잘 못 믿은 사람은 법적으로는 다 살아  있지마는 산 부분은 적고 죽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면, 법적으로 살아난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법적으로 살아난 일이 없다고  하면은 절대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살아있기 때문에 그것이  실지의 행동만 산 행동 하면 살 수 있는 것이지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살지 안했으면 법으로 죽어 있으면은 절대 살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또, 죽은 것은 다 죄값이기 때문에 그 형을 받아야 되지 안 받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형을 받았기 때문에 그거는 지금 법적으로는 살아 있지마는  실상으로 죽어 있는 것을 그것을 실상으로 살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죽으면 살겠고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면  죽으면 살아난다 그말은 현실에서 무엇이 죽으면 살아난다 말인가 하면 현실에서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난다 하는 말입니다. 옛사람이 죽는다 말은  옛사람으로 살려고 하는 그 심신의 실상이 그것이 옛사람으로 살게 하는 그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을 물리쳐서뽑고 꺾고 죽여버리면 그걸 죽여버리면, 다시  말하면 자기 생각, 자기성질, 자기 욕심, 자기 뜻, 좋아하는 대로, 자기 모든  비판 평가 그놈을 꺾어서 죽여버리면 피와 성령 진리의 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살아나면 한 번 그라면 또 한 번 고거 살아났고 두 번 하면 두 번  살아났고 이래서. 점점 살아난 것이 모여서 많아지고 장성해지고 강해지고, 또  그 사람이 그만 현실에서 저 살고 싶은 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욕심  제 뜻은 이거 전부 마귀 것이요 이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이 미혹시키는 그  미혹이지 자기가 아닙니다. 자기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성질대로,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그것은 자기인 줄 알지마는 자기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참 자기는 에덴동산에 범죄하기 전 자기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  좋아하도록 사는 사람이었는데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서 하나님 좋은 대로 살지  말고 너 좋은 대로 살아라 이렇게 유혹을 해서 저 좋은 대로 살기 위한 첫걸음이  그 선악과를 먹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서 완전히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고 죽어 있는 것인데  예수님이 대속하셔서 법적으로는 살아 있지마는 실상으로 죽어 있는데 실상으로  죽어 있는 것이 현실에 네가 죽은 자로 사느냐 현실에서 산 자로 사느냐?  죽은 자로 사는 것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것이 죽은 사람, 옛사람 곧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기로 사는 것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현실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살지 아니하고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진리로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를 입고 이로 살면 옛사람으로 사는 옛사람은 죽어지고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난 부분이 많은 사람도 있고 또 죽은 부분이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라면 현재 살아 있습니다. 살아 남아 있습니다. 살아남아 있으면  그 사람에게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산 부분이 않습니다. 산 심신이 많습니다. 산 심신.

 산 심신 그것이 다 현실에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아난 그  심신인데 산 심신이 많고 죽어 있는 그 죽은 심신은 그 사람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 OOO집사님. 있다. 잘 믿는 사람인데, 아주 잘 믿는 사람이오. 잘  믿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지금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죽은 심신이 그 사람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게 저 도장쟁이 있어? 네,  있습니다.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산 이 심신은 크고 많고 세력이  강하고 죽어있는 심신은 조그매 남았기 때문에 그 세력이 강하지를 못합니다.

 그때서, 예수 믿는 사람이 차차 나이가 많아져 가면은 이제 악령, 악성,  악습대로 살려고 하는 그것은 약해집니다. 그거는 아주 약해지고 바로 예수님을  믿고 살고 싶은 것이 자꾸 강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은 것이  살아나는 것은 현실 생활에서 살아나는데 현실에서 악령을 영접하면 악령의 것이  영원히 돼 버리고 말고, 악령 악성, 악습을 영접해서 현실에서 살았으면 산  그만큼은 완전히 그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됐고, 그 현실에서는 이리도 저리도  좌우 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 그것을 다 물리치고, 자기 생각을 물리치고 자기  욕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욕심대로, 자기 생각 물리치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자기 뜻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그 현실에서 산 자는 산 것만치의,  그 분량의 그 심신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서 있습니다.

 살아서 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죽은  것도 있고 또 산 것도 있고, 두 가지가 있는데 두 가지 있다는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믿어집니까? 믿어지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네, 저 뒤에도  다 알아듣기는 다 알아듣는 모양인데, 네, 둘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데 남아 있으면 지금 남아 있는 그 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남아 있는 산 사람은 아직도 그 사람은 시험을 받아서 이긴 사람이지 마는  아직도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악령, 악성, 악습에게 침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악령, 악성, 악습의 이 침노를 받을 수 있는  분이었습니까? 그것은 받지 안할 수 있는 분입니까?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그것들에게 이 침노를 받을 수 있는 예수님의 심신입니까? 아예  받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침노하지 못할 수 있는 그런 심신이었습니까?  어떻습니까? 받을 수 있는 심신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네, 받을  수 있는 심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딱 죽었습니다. 죽은 것은 예수님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인해서 죽었습니까? 진리와 성령과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사죄, 칭의, 화친을 위해서 죽었습니까? 뭘로, 살다가 죽었습니까? 진리와  성령과 우리를 대속하신 사죄. 칭의, 형벌을 대신 받는 대형하기 위해서  대행하기 위해서 대화친을 하다가서 죽었습니다. 하다가서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죽인 것은 누가 죽였습니까? 악령, 악성, 악습들이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지금 이와같이 승리로 그것으로 끝을 냈기 때문에 그분은  다시는 패전이 없고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승리자입니다. 끝까지 승리자입니다.

 그래서, 승리했는데 예수님이 살아 있어서 침노는 받을 수 있지 마는 범죄는  하지 안하고 그렇게 살아 계셨는데 살아 계시다가서 이제 죄를 짓다가  죽었습니까? 영감과 진리 우리 대속 때문에 죽었습니까?, 대속하기가 어려우니까  대속을 버리고 죽었습니까? 대속을 하느라고 대속하는 것으로서 죽었습니까?  대속하는 것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 살아 계실 때에는 시험을  받을 수 있는 그 육이 있었는데 이제 죽은 후에는 시험을 받을 수 없는 자  됐습니다. 또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시험을 받지 않는 자,  시험을 그들이 할 수 없는 자로 살아서 이제는 아무것에도 사망이나 그런 것에게  시험받지 안하고 완전 승리자기 때문에 영원히 그들이 침노하지 못하는 자로  살았고 이제는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을 영원히 통치하는 사탄도 통치하는 분으로  살았습니다.

 죽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 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승리했으면 지금 잘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몸이 많고  죽어 있는 몸은 적게 남았습니다. 적게 남았습니다. 그런데, 죽어 있는 몸은  그것은 살아날 수도 있고 그것은 영원히 죽을 수도 있고 살아서 남아 있는 그  몸은 그것은 시험을 받을 수도 있고 시험을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다시 살아 있는 그것이 죄를 지으면 다시 시험을 받을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죄를 짓지 안해도 침노는 받을 수 있다 말입니다. 죄는 범하지는 안해도 침노는  자꾸 이 귀찮스럽게 자꾸 와 가지고서 침노하는 침노는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라다가, 이제 그 사람이 진리와 성령과 영감으로 살다가 세상을 떴다든지  어째 떴다든지 만일 그 사람이 떴습니다. 세상을 떴습니다. 세상을 떴으면 그  사람은 이제 죽었습니까? 그 사람은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네, 그 사람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는데 어떤 것으로 살아 있느냐?  다시는 시험을 받지 안할 사람으로서 살아 있습니다. 다시는 시험을 받지 아니할  사람으로. 아니할 육체로 살아 있습니다.

 다시는 시험받지 안할 육체로 살아 있고 그전에 살아 있는 것과 지금  죽음이라는 것을 통하고 난 다음에 살아 있는 것과 다릅니다. 죽음을 통해서  살아 있는 것은 다시 이 사망과 악령에게 침노를 받지 안할, 침노하지 못할,  다시는 시험을 받지 아니할 자로 살아 있고,  한번 죽음을 보기 전에는 늘 그거 살아 있는 그것도, 죽어 있는 그거는 의례히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지마는 살아 있는 그것까지도 침노를 받을 수 있기를  마치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침노를 받는 것처럼 그렇게 침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살아 있다가 죽으면 이제는 침노를 받지 아니 할 것으로서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으면 이 육체가 살아 있는데 이 마음이라는 부분은 그때에  낙원에 가 가지고 살아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부분은 낙원에 가서 살아  있고 그 사람의 이 고깃덩어리의 부분은 그것이 변화되지 않고는 낙원에는 가지  못합니다.

 이 고깃덩어리라 하는 것은 공간이 있어야 들어가지 공간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고 또 물질을 소멸하는 세계는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영계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영계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고깃덩어리는 이 물질계에 하나의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물질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물질 요소로 남아 있고,  마음은 그는 영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물질입니다. 마음은 영계에 들어갈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 마음은 세상을 떠날 때에 영과 함께 낙원에 가서 있게  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낙원에 가서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그 심신이 갈라집니다. 마음은 영과  함께 낙원에 가고 이 몸뚱이는 낙원에 가지 못하고 물질계의 어느 요소에 있든지  땅 속에 있든지 풀 속에 있든지 어떤 짐승 속에 있든지 우주에 어떤 요소로 남아  있든지 고 사람은 땅 위에 있습니다. 있다가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사람이 낙원에 가서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예수님과 함께 온다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온다.

 그러면, 함께 오는데 그때에 뭣뭣이 함께 옵니까? 예수님과 함께 올 때에  뭣뭣이 함께 옵니까? 마음과 영, 마음과 영이 예수님과 함께 옵니다.

 그러면, 그때 예수님 올 때에 부활한다는 것은 마음이 부활합니까 몸이  부활합니까? 이 고깃덩어리 이 물체 이것이 부활합니다.

 이래서, 마음은 물질은 물질이나 신령한 물질이기 때문에 이 신령한 물질은  영계도 자유로 활동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은 활동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옥중에 매였으나 양심은 자유 있다 하는 말은 양심은 그 물질의 감옥이  가둘 수 없기 때문에 그 양심은 어데든지 자유로 활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면 ‘죽으면 살겠고’ 죽음을 몇 번 죽습니까? 몇 번 죽고 몇 번  살아납니까? 몇 번 죽고 몇 번 살아납니까? 이제 여러 수 백차례로 죽어  가지고서 살아나지마는 이제 하나가, 살아난 하나가 그라면, 하나로 말하면, 그  부분적으로 말하면 그 부분이 몇 번 죽고 몇 번 살아납니까? 한 번 죽고 한 번  살아납니까? 한 번 죽고 한번 살아난다고 깨달은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두 번 죽고 두 번 살아난다고 깨달은 사람들 손들어 봅시다. 이렇게 가르쳐도  몰라? 처음에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의 요소로 살아나고 새사람의 요소로 살아  세상에 있는 것이 다시 그게 죽습니다. 다시 죽으면 이제 죽지 아니할 수 있는  것으로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는데 마음은 살아나 가지고서 낙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고 이고  깃덩어리는 살아나 가지고서 낙원에 갔습니까? 어데 있습니까? 이 물질계에  있습니다 물질계에 있는데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셔 가지고서 살릴 때에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빌립보 3장에 보면은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천한 몸을 당신의 영화로운 몸과 같이 다시 살리시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만물을 복종시키는 능력 가지고 우리를 부활시킨다 하는 그 만물을  복종시킨다는 말씀은 무엇 때문에 그 말씀을 했겠습니까? 뭣 때문에 그 말씀을  했겠습니까? 만물 속에 우리 몸의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제 만물을 복종케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아니면 그 안에 있는 요소를 다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다 나오라. 물의 요소에게도 명해 가지고서 나오도록 하고 공간에 있는 것도 땅  속에 있는 것도 또 그 사람이 죽어 가지고 벌써 흙이 돼 가지고 흙이 돼서 풀이  돼 가지고 풀이 돼서 짐승의 밥이 돼 가지고 짐승의 고기가 돼 가지고 또 고기를  먹어 가지고 사람이 먹어서 사람이 돼 가지고 또 사람이 대소변을 또 이래  누니까 또 그것이 또 퇴비가 돼 가지고 또 어떤 풀이 되고 이렇게 뭐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이렇게 그 요소는 이리저리 다녀 있으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것이  다 만물을 복종케 할 수 있는 능력 가지고 만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다  살려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때는, 영 혼 몸 셋을 가진 것이 우리들인데  예수님 재림 때에 우리가 부활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중에 몇 가지가 부활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가 부활합니까, 손가락으로? 이렇게 몰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게 들어도 몰라.

 이러니까, 참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그 사람이 굉장히 세상적으로 명철하고  아주 명철하고 예민하고 아주 똑똑하고 판단력이 많고 참 탁월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영안은 어두워서 깜깜해. 말을 해 보면은 모든 것이  육백 육십 육이지 육백 육십 육을 초월한 그 세계를 모른다 그말이오.

 아주 이 사람은 둔하기는 둔한데 육백 육십 육에 대해서는 무식해도 영계의  영안에 대해서는 아주 눈이 밝고 밝은 그런 사람 있어요. 여러분들이 영안을  밝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보면 그 사람이 그래서 아주 신앙이 어려도 그 사람이 영안이 밝은 사람, 송의  지에가 있는 사람, 또 영이 강건한 사람, 영의 사람, 또 그 사람이 아주 예수를  잘 믿는 성자라고 해도 그 사람이 육의 사람이고 영의 요소가 아주 빈약한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전에 여게 한부선 목사님이라고 그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분이 참 모든 면에  영안이 밝았습니다. 영안이 밝았는데 그분이 언제 그렇게 말합디다. 나는 그  하천풍언 씨라는, 일본 사람인데 ‘가가와 도요히꼬’라고서. 그 사람의 그  서적을 제가 좀 여러 번을 봤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대해서 좀 사생활이나  전기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데 그러나 안면은 없습니다.

 안면은 없는데 나는 그 책을 보고서 그 사람 자기가 썼는데 그걸 보고 이  사람이 조금 의문이 나는 사람이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부선 목사님이  언제 설교를 할 때에 그때에 왜정 말년 때 아주 여게 한국에서는 너무 이  신사참배 때문에 탄압이 심하고 이렇게 투쟁이 심해서 잠깐 동안 만주 가 가지고  거게서 망명해 가지고 있으면서 거게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때에 그  하천풍언 씨가 만주에 와가지고 그 사람이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설교하는 소리를 듣고 ‘이 사람이 아직까지  예수님의 대속과 연결이 되지 못한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봤다고,  그분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그 피는 오늘 우리 피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그 피와 우리 피와 연결돼 가지고서 우리들이 살아난다’ 예수님의  피가 죽고, 완전히 죽어 버렸고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살아났고 우리도 죽어야  살아난다는 요 도리를 그가 깨닫지 못하고 있더라. 그러니까 그분은 신앙의  사람이 아니다.

 그때는 뭐 아주 그분이 위대하게 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일본서는 아주  위대하다고 유명한 사람으로 그때 일본과 조선, 내선이라 하는데 일본이라 말은  내(內)자를 쓰고 우리나라는 조선이라 쓰고 그 내선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내선  일체의 이 교섭을 할라고 총대로 보낸 사람이 하천풍언 씨였습니다.

 또, 인도에도 그 일본과 아주 화친의 국교를 보내기를 하천풍언 씨를  보냈습니다. 그분이면 세계가 다 성자라고 다 듣기 때문에 가장 유리하다 착  가지고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했었습니다.

 했었는데, 그분이 죽고 사는 요 도리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사람에게는 주님과의 직접 연결이 없으니까 항상 영안은 어둡고 육안으로,  육적으로 생각하고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영적면을 그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은 신앙의 사람은 아니다. 그 사람이 하나의 기독교  사회주의자다.’ 하는 그 말을 했습니다. 그때에 내가 그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랬습니다.

 왜? 내가 그 서적을 보고 ‘이 사람은 아무래도 신앙의 사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성자라고 그 사람이 미국을 갔을 때에 얼마나 일본에 있는 그 서적을  보고서 놀랬든지 성자 온다고 해 가지고 나라에서는 특별한 열차를 내게 됐고  사람들은 어떻게 망이 모였든지 뭐 지금은 또 모든 이 기구들이 다 좋아서  이렇게 소리도 얼마든지 확성기를 가지고서 이와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때로 말하면 벌써 오십여 년이 전이니까  그런 것이 미국 같은 나라에도 아직까지 발달이 안 됐었어요.

 이래서, 하천풍언 씨가 높은 단 위에 서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데, 소리는  들리지 안하고 다만 그이가 이래 손을 들 때에 그 손만, 치켜들은 하천풍언 씨의  손만 보고 모든 사람들이 대성 통곡을 하고 회개를 하고서, 그 사람의 전기를 다  보고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성자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땅을 밟는 가운데에 그 성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선다싱을  성자라고 생각했는데 선다싱보다도 유명하기를 하천풍언 씨가 더  유명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안이 어두웠습니다. 영안이 어두웠기 때문에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 할 때에 그 사람은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육백 육십 육이라. 기독교 사회주의였습니다.

 그러니까, 왜정 말년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하천풍언 씨는 어데 처박혔는지  그 다시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도 일본서 대학의 유력한 교수로는  활동을 하고 있지마는 신앙계에서는 제거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두 사람을 만나 보면 아주 신앙 어린 사람. 이제 믿는  사람도 영안이 열려 가지고서 영안이 열린 사람 있고 영안이 어둡고  육안으로서만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잠깐 들어봐도 압니다.

 육안으로 보고, 이 육안으로 보고서 모두 견해하는 사람은 그대로 한덩어리가  되고, 그것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라 그랍니다. 영안으로 된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하나가 됩니다. 오래 예수 믿었다고 그런 게 아니고 예수를 오래 안  믿어도 그 영안이 열린 사람이 있고 또 육안으로 사는 사람 있습니다.

 내가 그때 제일 처음에 여게 서부교회 와 가지고서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이 있었는데 그때에 모두 다 여게 뭐 권사님들 다 믿을 때입니다.

믿을 때인데 내가 저 OOO권사님 집에 가서 대심방 예배를 볼 때에 거게 가서  내가 말하기를 OOO이라는 사람은 엉망진창의 그 행위가 아주 더러운 사람입니다.

더러운 사람인데 그래 내가 말하기를 OOO씨는 영안이 열려 있지마는 당신들은  영안이 아직까지 열리지 안했다. 영안이 안 열렸다. 영안이 열리지 안했기  때문에 영계를 보지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만일 어려움이 오면은  그분은 생명을 바쳐서 순교할 수 있어도 여러분들은 순교 못 한다. 내가 거게서  그 말을 거게서 했는데 그 말을 지금 기억하고 있는지? OOO권사님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 OO권사님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다 기억하고 있어. 내가 그때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그분은 죽었습니다.

 행위 가지고도 그런 거 아니고 영안이 열린 사람은 영계 것을 알고 영의 말을  듣고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영안이 안 열린 사람은 영의 말은 못 듣고 자꾸  육적으로 이 세상적으로 듣습니다.

 그러면, 영안이 열리지 안한 그 사람보다 더 껍데기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그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을 과학적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과학적으로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택한 자면 구원 있지마는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깨닫고 영안을 밝혀 달라고 자꾸 말을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은 지금 영안이 열려야 되는 말인데 ‘죽어야 살겠고’  그라면 한번 옛사람이 그만,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나고 새사람으로  살아나 있는 그것이 죽으면 다시는 시험을 받지 안하고 미혹을 받지 안하는  그런, 완전자로 이제 살아났다.

 완전자로 살아났는데 그러면 완전자로 살아났으면 그 사람이 어찌되느냐? 영과  마음은 낙원에 세상 뜰 때에 가게 되고 이 몸뚱이는 이 모든 물질계 속에 머물고  있다. 있다가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그 영과 혼, 영과 마음은 예수님과  같이 와 가지고서 각각 자기의 육체를 찾아 가지고 이제 부활을 해야 되겠는데,  자기 육체 그걸, 찾아 가지고 부활해야, 그 육체 가지고 죄도 짓고 오만 거 의도  다 행했기 때문에 그게 동참해야 되기 때문에 그것이 부활을 할 때에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능력 가지고서 타 부활을 시키는데 불신자들은 불신자의  부활을 받고 신자는 신자의 부활을 받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무슨 부활이라고  말했습니까? 무슨 부활이라고 배웠습니까? 크게 해 봐. 또? 하나는 생명 부활  하나는 심판 부활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생명 부활을 받는 자는 어떤 행위를 한 자가 생명 부활을 받습니까?  OOO 장로님, 선한 행위를 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 받습니다. 또 심판 부활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심판 부활 받습니까? 심판 부활 받는 사람은 악한 일을 행한  사람입니다.

 그거 뭐이냐? 선한 일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산 요소는 다 그때에 영원히 살기  위해서 살아나고 또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이나 위주나  그런 것으로 산 요소는 살아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둘로 살아나겠습니다. 그 몸이 둘로 살아나서  하나는 지옥가기 위해서 살아나고 하나는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 살아납니다.

 이러니까, 자기 심신이 잘못 살아 가지고서 살아나 가지고 지옥에가 가지고  불타는 것을 거게서 지옥에서 호소를 한다 이라니까 말하기를 호소하다니? 그거,  영이 안 가는데 어찌 호소하느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거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 희로애락을 발표하고 있는 그  중생되지 안한 사람이 그 사람이 희로애락을 발표하고 있는 것은 영이 합니까  순전히 이 육이 하고 있습니까? 육이 하고 있어. 영은 있기는 있지마는  기능적으로는 없는 거와 같은 완전히 죽은 영이기 때문에 기능 작용이. 전연히  없고 육만 가지고 지금 하고 있다 그거요,  그게 하고 있는데 이 세상에 그 모든 사람이 다 그래 하고 있는데 이 택하고  중생된 자의 이 심신이 영계에 가자 못하고 이것이 남아 있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같이 타고 있으니까 그게 호소를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이게 없다는 것이 이해 안되는 것은 영안이 열리지 안해 그래.

영면이 어두워서 그래. 암만 처음으로 믿어도 그게 확실히 믿어지는 사람은  믿어져요. 그것이 뭐이냐? 영안이 열리고 안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거 예수 믿는 데에 좋기는 좋은데 아주 예수 믿기 어려운 것은  과학자들입니다. 과학자들. 왜 과학자들은 그러냐? 과학자들은 전부 자기네들이  이 육안 위주로 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안 본 것은 믿지 않습니다. 이 육안  위주요.

 천하 인간의 육이 다 육안이 다 달라 들어도 옷 보는 그것을 그 영안의 사람은  다 볼 수 있는데 그 육안 위주로만 하니까, 예수 믿어 구원 얻는 거는 전부 이  육안으로 봐 가지고서 영안으로 보고 영계로 들어가는 것인데 영안이 없이  육안만 표준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과학자는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그분이 모든 걸 창조했지마는 이제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라 해도 믿어지지를 안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실은 분석을 해보면 나중에 들어가다 보면은 안 믿고  말고,  참 이제 그걸 초월해서 영안이 밝아 가지고서 이 모든 과학을 연구해서 물질에  대한 걸 연구할 때에 연구함으로서 하나님이 더 보이고 하나님이 위대함이  보이고 하나님의 능하심이 보이는 사람 있습니다. 자꾸 연구를 하니까 ‘하,  하나님이 이렇게 인체만 연구해도 이거는 상상도 못할 그 기능으로 창조하신  분이 계시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과학자는 더, 신앙을 가지면은 과학자는  벌써 보는 것을 다 보고서 보는 것을 위주로 하던 사람이 보는 것에 초월한 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신앙이  똑똑하고 굳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그리 되기 어려운 고로 이 과학 공부를 믿음의 사람들은  잘 안 시킬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안 시키고 이 인문계를 공부를 시킬라고  애를 씁니다.

 또. 철학을 공부를 안 시킬라고 애를 씁니다. 왜 철학 공부를 안 시킬라고  하느냐? 철학 공부 그거는 사람이 자기 심령으로 자꾸 찾아 들어가는, 자기  주관으로 자꾸 찾아가 들어가 가지고서, 딴데야 볼 수 없으니까 자기 속에, 자기  속을 찾아 들어가 가지고 자기 속에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그것을 자꾸 연구해서  발견하는 그 면으로 주력하는 것이 철학이라. 그래 철학은, 통틀어 말해서  철학은 자기 찾는 사람인데 자기를 바로 찾는 게 아니라 자기에 대해서 자꾸  연구하는데 하나님이 객관 세력이 가르쳐 주지 안하니까 제 주관으로 자꾸  요렇다 요렇다 하니까 철학자는 전부 추측이요 추론입니다. 철학자는 전체가  추측 추론이오.

 이럴 것이다, 이럴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추측한 것을 실상으로 만들고  추론한 것을 실상을 만들고 그 다음 후대 사람이 만들고 자꾸 그래 가지고서  철학은 전부 공상과 같이 추측 추론으로써 자기를 찾아서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이 피조물을 찾아 들어간 것이고, 이거 철학은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찾아  들어간 것이고  기독교의 이 도리는 뭐라고 말합니까? 인간이 찾아 들어간 것입니까? 뭐입니까?  계시 종교라, 계시 도라 합니다. 하나님이 객관 세력이 보여줘서 그렇게 보여  줌을 받아 가지고 보는 것이지 제가 찾아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 성경과 땅 위에 있는 모든 책과  정반대입니다. 모든 책은 인간들이 이렇게, 이렇게 인간 생각, 인간 궁구, 인간  추측, 인간 추론, 인간의 그 모든 가정 이런 것들이 주 모아 가지고서 인간  지식이 된 것이고 신구약 성경 지식은 저 창조주 그분에게서 열어 줘서 그분에서  내려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영안을  밝게. 해 달라고서 하는 그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이거 또 여러분들한테 말하면 좀 미친소리 같지마는 박인순선생님이라고 그분이  한국에 여성으로서는 제일 신앙이 위대했습니다. 참 깨끗한 동정녀로 세상을  늙었는데 지금 미국 가서 일하면서 자꾸 나온다고 이렇게 지금 하고도 나오지를  못하고 벌써 그 제자들이 저게 영도에 집도 다 마련해 놨고 이랬는데도 나올라  해도 거게서 붙들어서 여게 저게 다니다가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나를 고신에서 그때 제명할 때에 ‘이제 고신에 눈을 빼 버렸다.

그분이 고신에 눈이다.’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을 내가 간접적으로 내가 누구에게  몇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는 좀 영안을 밝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가 그것을  밝기 원했고, 이러기 때문에 모든 데 대해서 견해가 좀 다릅니다‘. 이래서, 이  뭐 정계에 대해서도, 내가 말은 안 합니다. 말은 안 하지마는 보는 것이 광대,  그 전체를 보고, 전체를 보고 피조물들이 보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그것을 기다리고 그분의 가르쳐주는 것을 볼라고 애를 쓰기 때문에 기울인  사람은 다 듣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육안만 밝을라고 애를 쓸 게 아니라 그 영안, 신령한 눈이  밝을라고서 애를 써야 됩니다.

 이러니까, 요 신령한 설교를 하면은 잘 못 들어요. 이러니까 설교중에도 땅에  속한 말이 있고 하늘에 속한 말이 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무슨 말음 잘 듣는다 했습니까? OOO권사님,  땅에 속한 사람들은 무슨 말을 잘 듣는다 했소? 땅에 속한 자는 땅에 속한 말을  하매 잘 듣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말을 하매 잘 듣는다 이랬습니다.

 아무리 명철하고 유명해도 설교 못 듣는 사람 있습니다. 설교에 대해서, 제가  말이야 다 듣고 말이야 다 듣고 외우기도 하고 다 하지마는 인간의 방언으로  말을 해서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없는 그 영계의 것을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받도록, 영감으로 받도록 하기 위해서 아무리 말해서  그거 일 년 그거 삶아대도 모릅니다. 안 들립니다. 안 들려.

 그러기 때문에, 그 영의 세계를 모르는 그 사람은, 영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이 해도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윤리주의, 또 기독교  이 모두 정치주의, 기독교 물질주의 이런 그 세계에 힘을 쓰고 있지 그 사람이  기독교 영계주의, 신앙주의, 하나님과 연결된다 이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돼. 전지에 연결돼서 전지자가 되고 전능에 연결돼서  전능자가 된다.

 그러면, 다니엘은 이 공부를 하느라고 애를 썼다. 그가 십 배나 뛰어난 것은  그들과 이 인간 지식의 학과를 배운 게 아니라 그분은 그 배우는 가운데에  그것은 둘때에 두고서 하나님과 연결해서 하나님에게 배우는 그 면을 힘을 썼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면 알고 안 가르쳐주면 모르는 그 사람  됐었습니다.

 이러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잡아다 놓고서 ‘네가 내가 무슨 다른  사랑 이 모든 술객들은 몰랐기 때문에 다 사형을 시키기로 지금 사형 선고를  내려 놨다. 내려 놨는데 너도 보자. 너도 날 속이는 자가 아니냐? 내가 꿈을  꿨는데 내 꿈을 어떤 꿈을 꿨으며 그 꿈의 해석이 뭐이냐?’ 꿈을 말해 주며  해석하라 하면은 막 거짓말 할 거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이 그때 사람이지마는  아주 머리가 열렸고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꿈을 말해 줬으면 이래저래 막 해석할 자가 있을 건데 아예 그걸 말해  주지 안하고 ‘내가 말하면, 너거 다 거짓부리기 때문에 말해 주지 안하니까  무슨 꿈을 꿨으며 그 꿈의 해몽은 뭐인가 말해라’ 이라니까 이 자들이 꿈을  말해 줬으면 뭐 아무나 따나 거짓말로 주 대지마는 무슨 꿈을 꿨느냐 하는 거게  대해서 그만 딱 막혀 가지고서 몰랐다 그말이오.

 다니엘에게 하니까 다니엘이 말하기를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시면 내가 왕에게 가르쳐 줄 것이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안하시면 나는 가르쳐 주지를 못합니다.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야 압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라면서 ‘그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물어보고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가르쳐  주는 거,’ 그래 얼마 동안 기도하고서 하나님께 물어 보고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니까 ‘이렇게 이렇게 꿈을 꿨다. 네가 신상에 대한 꿈을 꿨다.’ 하는  그것을 말했다 말이오. 그 우상을 이제 하나님이 상징해서 그 나무로 비했는데,  그 나무 꿈을 꿨는데 그걸 다니엘이 딱 말하니까 그만 등용을 하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 다 죽일 것인데 죽이지도 안 하고 인제 그를 높이 들었고,  그래 그러니까 그분은 그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면 내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께 물어 아는 그것을 공부를 했기 때문에 파사나라에 가서 총리대신  하라 했지마는 그거 자기 마음대로 한 거는 하나도 없어. 하나님이 이라라면  이라고 저라라면 저라고 하나님에게 물어 가지고 시키는 대로 했어. 요것을 어릴  때부터 공부해요.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것을 공부하는 그걸 해야 되지 인간의  대가리에 나는 그까짓 거야 뭐 통틀어 뭐 도매금으로 다 털어 봤자 배암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결론을 지우면은 우리 사람을 속여서 영원한 구원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능가해서 이용을 하면은 효력을 보지마는  그리 안 하면 그것이 뭣이 옳다고 인정했다가는 내 구원에 손해 보지 유익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걸 통틀어 말해서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 하는 이것도. 이것도  영안이 안 열리면 그 범위를 잡지를 못해.

 그게 ‘이거는, 하, 과연 맞다, 이거는 죽은 지식이다.’ 그 죽은 지식  그 지식의 활동이 우주에 가득 찼는데 그 지식의 활동이 이 전체 이거 통틀어  말할 때 ‘이거는 죽은 지식이다’ 이거는 결론을 이래 보니까, 마지막에 결론을  보니 이거는 그것만으로써는 사람을 죽이고 멸망하는 것뿐이지 이제 그 멸망에서  하늘나라로 생명 세계로 옮기는 거는 하나도 없다. 그거 죽이는 역사다.

 이렇게 그라면 이렇게 보여지는데 과학자들은 말하자면 이거 지금 기어갑니다.

과학자들은 기어가요. 과학자들은, 이 육안으로 보는 것은 기어가는 것이라면  영안으로 보는 것은 뭐입니까? 영안으로 보는 것은 젯트기 비행기같이  날아다니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영안은 비유로 말하면은 억억만리를 볼 수가 있고 육안은 한  뼘을 못 봅니다. 육안은 한 삠을 못 봐. 육안은 자기가 초지장한 장의 그 너머를  몰라. 그 너머를 보지 못해. 그 너머를 보는 것은 그 추측을 해도 확신이 있어.

꼭 그것을 봐야, 그냥 못 보면 현미경으로 봐도 봐야 되고 현미경으로 안 되면  요새 뭐 원자 현미경이라 하든가? 몇 천 배 몇 억 배 그리 돋보기라도 꼭 봐야  인정하지 보기 전에는 인정하지 안해. 그러니까 영의 나라는 보지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없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영안이 아니면 보지를 못해요.

그런고로, 영안이 밝도록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몸이 몇 번 죽고 몇 번 살아납니까. 손가락으로? 두 번 죽고  두 번 살아납니다. 처음 죽는 것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이제 살 몸이 거게서  죽어야 돼.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몸뚱이가 죽어야 그 시간에 변화돼  가지고서 그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피공로로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있어.

알겠어요? 살아날 수 있는 것이 돼,  또, 이제 살아난 그것은 그것이 다 완전히 침노를 벗어난 것이 아니고 항상  침노 받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일단 또 죽으면은 다시는 침노받지 아니할 수  있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살아나면은 살아나 가지고서 그 육이 어데 가 있습니까? 살아나 가지고 그 육이  어데 가 있어? 너 한번 대답해 봐. 꼬마. 보자 너, 새벽기도 나오는 꼬마 대답해  봐. 육이 어데 가 있어? 육이 어데 가 있어? 너는 어데 가 있어? 안경쟁이 몰라?  너는? 자, 여기 누구든지 대답해 봐, 그러면. 대답해 봐. 이거 채 탈이네. 너는?  어데 가 있어? 이 영안이 열리지 안했기 때문에 들어도, 영의 귀가 열리지  안했기 때문에 들어도 그게 아직까지 믿어지지를 안해요. 이거 참 탈이네. 몸은  물질계에 있고 마음과 영은 낙원에 가 있어. 이게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  믿어져야지. 그게 뭐이냐 하면은 영안이 어둡고 영의 귀가 어둡고 영의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네, 오늘 아침에는 이제 좀, 많이 나오고 자꾸 나와서 자꾸 배워서, 하나님께  기도해요. 나에게도 그 영안을 밝게 해 주시고 영을 장성케해 달라고서 자꾸  기도해야 돼요. 영을 장성케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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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 죽도록 충성/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1984. 8. 27.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1074 죽도록 충성하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1986. 9. 1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1073 죽어야 산다/ 고린도전서 15장 35절-39절/ 1988. 5. 31.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072 죽어야 살아난다/ 고린도전서 15장 36절-38절/ 1988. 6. 1.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071 죽어야 살아난다/ 고린도전서 15장 36절-38절/ 1988. 6. 3.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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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9 죽으심과 살으심에 연합/ 로마서 6장 5절-7절/ 1982. 5. 30.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068 죽은 것이 살아는 방편/ 요한복음 5장 25절-26절/ 1980. 12. 8.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1067 죽은 신앙과 산 신앙/ 야보고서 1장 2절-4절/ 1987. 4. 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1066 죽을 몸/ 로마서 6장 12절-14절/ 1985. 1. 5.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1065 죽음으로 사는 것/ 로마서 6장 5절/ 1981. 7. 24.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064 죽음으로 사는 것/ 로마서 6장 5절/ 1981. 7. 25.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1063 준비구원 결실구원/ 로마서 1장 16절-17절/ 1986. 5. 2.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062 준비구원 폭발구원/ 로마서 1장 16절-17절/ 1986. 5. 3.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1061 준비는 평소에, 현실에서/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3. 11. 2.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060 준비와 시험/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3. 11. 1.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059 준비할 것 두 가지/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4. 2. 10.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1058 준비할 것과 조심할 것/ 사무엘상 16장 6절-7절/ 1986. 4. 10.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1057 중간반 반사 유급보수/ 요한이서 1장 4절-11절/ 1989. 5. 31. 수저녁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