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살아난다

 

1988. 6. 3. 금새벽

 

본문: 고전 15:36-38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죽어야 살아난다는 이 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 비유에 씨종자는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의 행동하는 그 행동의 종류입니다. 씨 종류는 행동의 종류요  그 사람의 행동한 것은 곧 그 사람의 생애의 씨입니다. 행위의 씨입니다.

 그것을 심으기는 어데다가 심으는가? 현실이라는 현실에다가 심으는 데 심으는  것은 행동한 것입니다. 벌써 행동이 지나갔으면 행동한 것은 심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심어진 것이, 씨라 하는 것은 심어져 가지고 죽습니다. 심어져  가지고 씨는 죽고 고 속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있는 씨는 씨가  죽으면 고 생명이 고 씨를 다 삼켜 버립니다. 또 생명이 없는 씨는 그만 생명이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생명이 없으니까 먹을자 없으니까 그대로 썩어 버리고  맙니다.

 요 밀알로 가지고서 비유를 했는데 밀알을 보면은 잘 알 수가 있고 이 개암씨  같은 거는 그거는 좀 알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개암씨는 심으면은 고것이 고게서  나오는데 고건 또 형체는 고대로 있고 속에 영양만 쏙 빼서 먹습니다. 복숭씨  같은 것도 그것이 고 씨는 그대로 있고 속에 영양만 쏙 빼서 먹어 버립니다.

 그것이 만일 처음에 났을 때에 움이 터 오르는 것을 보고 이 씨는 뭐 자라고 난  다음에도 그대로 있는 거니까 씨 이걸 없애도 안 되겠느냐 하고서 고 씨를 딱  쪼개 가지고서 고것을 빼버리면 죽어 버립니다. 그 떼보면 고 안에 움 있는 그  움에 자잔한 그 선이 가에 쫙 박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씨가 박혀 가지고 있어  고걸 빨아먹고 고걸 빨아먹으면서 차차 씨 밖에 있는 지기를 빨아먹어서 고걸 다  빨아먹으면 그 씨 밖에 있는 지기를 빨아먹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됩니다. 모든  게 다 같습니다.

 사람도 배면 어머니의 태 속에서 어머니의 그 요소를 다 빨아먹고 그것이  빨아먹을 대로 다 빨아먹고 이제 배 밖에 나와 가지고 그 어머니의 요소라도  아주 원 요소 그것을 빨아먹다가 그 다음에는 어머니의 젖을 빨아먹게 됩니다.

어머니의 젖을 안 빨아먹고 요새 다른 것으로도 대용으로서 할 수 없습니다.

그래 먹으면 그 기간이 지나면 차차 차차 이제 이 세상에서 밥도 먹고 이것저것  먹고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자라는 과정이 육체로 된 것은 어머니가 때 속에서  어머니 요소를 빨아먹을 만치 빨아먹어야 그것이 자라서 나오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이씨 같은 것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이 세상살이라는 그것이 말하자면 씨종자의 때와  같습니다. 씨종자의 때와 같고 이 씨종자가 자기가 씨종자가 씨종자 속에 있는  그 요소를 빨아먹을 만치 빨아먹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과 종류에 제한된 그런 것만 먹다가 이제 그적이 아닌 시간과 공간과 종류에  대해서 무한한 그 무한한 세계에 거게서 생출하게, 출생하게 돼 가지고 그것들을  먹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이 구원 도리를 둘로 우리에게 이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을 가리켜서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계시라 말은 열  계(啓)자 보일 시(示)자, 열어 보인다.

 그러면, 우리 구원 도리를 두 가지로 열어 보여 줍니다. 두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가르치는 방편은 뭐인고 하니 이 모든 하나님의 창조,  또 만물, 또 사람들의 그 마음의 수많은 복잡한 천도 억도 넘은 사람들의 마음의  그 모든 형태 구조 이건 것들이 일반계시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데에 이용한 계시 도구로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이래서,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일반 계시만 하면 족했습니다. 일반 계시  가지고서 능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과의 피조물 된 인간과의 그  관계를 잘 알 수 있도록 거게서 가르쳤는데 타락한 이 후부터는 심령이 어두워져  가지고서 안 됩니다.

 타락하기 전세 에덴동산에 있을 때에 그 아담이나 해와가 이 찍해야 자연 계시  모든 이런 것 밖에는 안 봤는데도 그때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나  또 자체에 대한 지식이나 구원에 대한 지식이나 족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타락 안 했으면 지금도 계속해서 타락 안 한 그것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배암에게 꼬임받아 가지고서 심령이 어두워짐으로 하나님이 그때에  이 특별 계시라는 이 영감 계시를 줬습니다. 영감 계시를 줘서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과 배암의 후손이 싸울 것과 여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다시 얻어야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 도리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두 가지 방편을  쓰셔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는 이 자연 계시, 그것을 신학적으로는 자연  계시라고도 하고 일반 계시라고도 합니다. 자연계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하나는 특별 계시라고 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 이 특별 계시로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래서, 이 두 가지로 가지고 우리 구원 얻는 도리를 깨달아서 우리가 고대로  실행을 해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래서 특별 계시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에 농사짓는 그 농사를 통해서도 말씀하셨고 장사를 통해서도 말씀하셨고  또 이 모든 어부 고기잡이를 통해서도 말씀하셨고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인용해  가지고서 구원 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는 특별 계시와 자연 계시 이 두 가지 가지고서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성경만 보고 연구하는 사람과 성경만 자꾸 읽고 보는  사람과 또 이 모든 자연 계시를 알고 성경을 보는 사람과 깨달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을 깨닫는 것이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이 다릅니다. 농촌 사람이  깨닫는 것이 훨씬 도시 사람보다 잘 깨닫습니다.

 도시 사람이 농촌 사람만치 깨달을라고 하면은 어떤 노력이 있어야 되느냐?  도시 사람은 도서실에 가 가지고서 농촌에는 실물로 되어있는 것을 이것을  실물을 문서로 다 기록해 가지고서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꾸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이래서, 예를 들어서 밤나무라면은 밤나무 하나는 그만 시골에서는 늘 보기를  어릴 때부터 그 밤나무를 보고 보고 이라니까 밤나무에 대한 것을 자기가 관심을  가진 대로 밤나무에 대해서 박식이 되고 또 암만 관심을 안 가질라 해도 눈뜨면  보이고 또 자고 나면 보여지고 이라기 때문에 그것이 그 실물 교재에서 자기가  배우게 됩니다.

 그렇지 안한 사람은 그것은 문서에 밤나무에 대해서 기록한 그 문서를 그 넓게  깊게 읽고 그라면은 자기는 실물 안 봤지마는 문서로 통해가지고 밤나무는 이런  것이다 설명도 할 수가 있고 또 볼 때에 처음 봐도 ‘이게 밤나무로구나.

밤나무가 여기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데도 문서에서  배워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연 계시를 잘 아는 것이 그것이 특별 계시를 깨닫는데에 많이  도움이 됩니다. 또 특별 계시를 잘 아는 사람이 자연 계시를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래서, 성경을 모르는, 자연 계시라면 모든 과학입니다. 자연 계시라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자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모든 만물, 인간의 마음의 구조 그런 것이 다  자연 계시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평생 그 과학으로 늙어서 세계에 과학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성경을 모르면 그 과학을 바로 모릅니다. 그  물질에 대해서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전반적인 지식은 가지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 아는 사람이 이 자연 계시에 대한 것을 알기가 쉽고 또 자연 계시  안 사람이 특별 계시를 알기가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특별 계시를 깨달을 때에 이 자연 계시를 우리가  가지고 깨달아서 그 자연 계시를 아는 그것을 특별 계시 깨닫는 데에 사용을  합니다. 사용을 하면은 잘 세밀히 바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자연 계시를 깨달을라 할 때에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이 특별 계시를 알므로 그것을 이용하면은 이 자연 계시 무신론자들이 이 자연을  보고 모르는 그런 것을 다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게도 부활에 대한 것을 알기 쉽도록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일 우리 우둔한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데에 제일 깨닫기 쉽도록 하는 방편을  사용한 것이 이 씨뿌리는 종자 이걸 가지고서사용을 하셨습니다. 또 이런 모든  곤충이나 모든 것들이 부화되는데 대해서 가지고서 또 가르친 일도 있습니다.

 이래서, 이게 특별 계시인 이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것만은 못하지마는 이  자연 계시가 곧 특별 계시를 알게 하는 그 뒷받침올해 주고 거게 보조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연 계시 이 씨뿌리는 거 가지고서 비유한 것은 자연계시인데 이  자연 계시로 아는 것과 또 성경에 문서 계시로’ 이렇게 기록한 거 아는 것이  차이가 있어서 자연 계시로 아는 것보다도 문서계시로 기록한 문서 계시로 아는  것이 좀 더‘ 정확하고 또 광범위하게 알게 되고 이것보다 이제 이 특별 계시인  문서 계시를 통해서 자기가 마음을 양심을 써 가지고 이래 하면은 성신의 감화를  받았을, 씨에 성신의 감화 계시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 계시라 그랍니다. 영감  계시, 은밀 계시.

 그러면은 문서로’, 나타나지 안한 그런 모두 은밀한 것을 알 때는 광범위하고  더 성경에 표현하기를 ‘높고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인간의 지식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초월한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우리가 알아서 그러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것을 인간의 지식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지식은,  초월했다면 인간의 지식이 갈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라 말인데 인간의 지식의  초월한 것을 누가 가르쳐 주는가? 성신의 감동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아무리 설교를 그 사람이  잘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말 이상은 못 합니다. 인간의 말 이상을 못 합니다.

인간의 말밖에는 못하요. 인간이 말해 놓은 그 방언으로 발표하고 또 그  방언으로 발표하는 것을 그 방언을 아는 사람이 방언을 알아듣는 그것이지 그  이상은 뭘 말을 해 봤자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고 또 저도 지어 가지고서  말을 해서 그렇게 발표할 수도 없고 인간의 방언을 가지고서 발표를 하는데  인간의 방언을 가지고 발표하는고 발표에서 뭣이 있느냐? 인간의 방언이 발표할  수 없는 성령의 발표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의 발표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가르치는 사람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 말하기를 내가 가르치는  것이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의 감동’ 있기를 원한다고 그래  말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가르칠 때에 인간의 방언 이상을 가르쳤느냐? 인간의 방언  이상으로는 말을 못 합니다. 인간의 방언 이상으로는 말을 못하는데 그가  소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적하는 바는 인간의 방언으로 가르치는 여게서  끊치지 말고 인간의 방언으로 가르치는 요것을 통하여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요것이 너희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가르침이 내 입술로 유한한 인간의 방언으로  가르치는 요 가르침을 통하여서 무한한 성령의 가르침이 너거들에게 같이 가기를  원한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또 배우는 것도 인간의 가르침의 여게서 멈추지 말고  인간의 말로 가르침을 받는 거기에서 인간의 말로 표시할 수 없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도록 너희들이 노력을 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꾸 아는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것은 그것은 성령의  가르침을 그 사람이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층하는 다르지마는, 도수도 다르고 층하는 다르지마는 다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그 어린 교인들에게 가서 말을 할 때에 어떤 그  교인은 상대해서 말을 하면은 예수 믿는 도리가 입에서 솰솰솰 나옵니다. 솰솰  나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도리를 가르칠라 할 때에 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지 않고 하는 그 차이는 뭐이냐?  그것은 그 받는 듣는 사람이 자기가 그걸 받아들이지 안하기 때문에 그 내게서  그저 인간의 말로만 할 수 있는 것뿐이지 그 속에 뭐 열려지지를 안합니다.

 또, 잘 열리는 사람은 가르치는 가운데에 자기가 과거에 알던 것만 가르치는 게  아니고 모르던 것을 가르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가르치는 가운데에  과거에 모르던 것을 그 사람에게 말할 때에 내가 말을 해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가르칠 때 그것은 자기 속에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을 가지게 되고 또 듣는 사람도  잘 듣게 되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깨달은 것은 세 가지로 깨달은 것입니다. 첫째 깨닫는  것은 내가 성경을 읽고 아는 대로 실행을 하는 가운데에서 깨달아졌습니다. 제가  처음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고 말씀한 대로 고대로 꼭 실행을 해 볼라고 애를  써서 실행하는 그 일을 좀 강하게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했습니다.

 그래 그때 믿고 난 다음에 제가 영업하던 그 술도가는 그거는 사흘만에 그걸  정리해 버렸습니다. 그걸 하나 이루는 데에 논 한 삼사 년 계속해 가지고서  이루어졌습니다. 왜? 그것이 그때에 그 현 당국 그 관청과 그 일본 사람들 식민  정책 시대이기 때문에 심히 어려웠습니다. 그걸 그래 가지고서 삼 년 공을 들여  가지고서 그것을 만들었는데 그때로서는 한국 사람으로서 조선 사람으로서는  업이 술장사 업이 제일 컸습니다. 제일 크고 돈벌이 제일 잘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뭐 다른 이런 공장 이런 거 없었어.

 또, 그라고 누룩도가 했던 거는 열 이레 만에 그것을 다 없애 버렸어. 그러니까  누구든지 할 사람 있으면 그걸 안 맡기고는 안 되고 하기 때문에 책임상, 이래서  공으로 주다시피 이래 가지고서 그렇게 정리하고.

 술은 그거 내가 끊는 데에 담배는 당일 끊었고 담배는 그때 삐종이라는 담배  있었는데 그 삐종이라는 담배를 매일 하나 이상 씩은 꼭 피웠습니다. 한 갑씩  피웠어. 삐종 누가 압니까? 아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삐종. 삐종 아는 사람  더러 있네. 그 제일 좋은 담배요. 제일 좋아. 요새로 말하면 뭐 어떤 게 좋은지  모르지마는. 그러고 술은 나흘 만에 끊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거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그것은 불의하게 모은 재산은 다  흩쳐 버렸습니다. 하나도 없이 전부 뭐 이래 흩다가 보니까 나중에 주다 보니까  도로 주어서 해가 되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성서 공회로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고대로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깨달아진 게 제일 많고,  그라고 난 다음에 깨달아진 것은 내가 설교하고. 새벽으로, 아침으로 새벽 예배.

제가 집사 할 때부터 믿은 지 한 열흘 된 후부터 설교했습니다. 설교해서 제가,  교회서는 안 하고 교회는 멀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서 가정 예배를 인도하고 그랬  했는데 그래 인도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나는 혼자 거게서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성경 연구하고 기도하고 이라는 새벽으로 기도할 때에 깨달아진 것이  둘째로 많았습니다.

 그러고, 일반으로 알기 어려운 이 특수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단이라고 하는  것, 이단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다 정죄를 하는데 이단이 아니고 실은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이런 것은 제가 새벽으로 기도하다가 깨달은 것도 아니고 행할  때에 깨달아진 것도 아니고 설교할 때에 깨달아진 것입니다.

 설교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설교할 때 그 말이 튀어  나왔는데 그말 내가 하고 나서 그 말한 사람이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저는  ‘말하고 난 다음에 뒤에 이래 버리면 되지’ 그런 것을 내가 가져보지를  못했습니다. 말을 했으면 그 말한 데 책임을 가지기 때문에 반드시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그걸 대중에게 사과하지 안하면은 나중에 심판 받을 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뒤에 가서 잘못됐다는 그런 것을 그런 일이 없도록 할라고 애를 씁니다.

 이랬는데, 설교하다가 뜻밖에 여기 지금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이라고  여러분들이 배웠으니까 지금 쉽지마는 그건 것도 설교하는 가운데서 그게 나와서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라 이 말을 하고 나서 그 뒤에 설교  그치고 나서 고통을 오랫 동안 하게됩니다.

 왜? ‘이것을 이건 말을 내가 해 놨는데 이게 지금 이단을 정죄받지  않겠느냐?’ 오랫동안 고통하다가 성경에서 확실한 근거를 똑똑히 그라고 난  다음에 잡고 나서는 담대합니다.

 지금 그래서 뭐 여러 가지 여러분들이 배운 거에 대해 또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하는 거 이 구속에 대해서 모두 다 이건 거 이런 것은 특수한 것은  설교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하는 가운데서 알게 해 주셨어. 깨닫고 난 다음에  어떨 때 고통을 하다가 나중에 많은 연구해 가지고서 비로소,  제가 믿는 사람의 그 심신의 기능도 불순종한 것은 지옥을 간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한다 하는 그것을 설교할 때에 나도 안 할라 했는데 뻐뜩뻐뜩 나와  가지고서 그런 게 나와서 고통스럽다가서 그때에 대구집회 때에 신강이 있어서  그것을 내가 O목사님에게 물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중 앞에서. 이거 O목사님은  이거 인정 하는가 안 하는. 가?’ 인정을 잘 못 하겠다고. ‘다른 이에게  증거하겠나?’ 증거할 수가 없겠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왜? 그분들은 다 널리 공부도 하고 외국에 모두 다 세계에 신앙들이  다 종합되어 있는 집합되어 있는 그런 교리와 신조들을 배우기 때문에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래서 내가 물었던 것입니다.

 그걸 제가 발표한 거는 일찍 저 혼자 설교하는 가운데서 깨달아졌지마는 몇  사람이 앉아 설교할 때는 깨달아봐야 그거 알아듣지도 못하고 상관없지마는  대중들 앞에다 발표해 놓으면 그분들은 다 많은 사람들이 별별 유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듣고 기억하고 깨닫는다 그거야.

 그래서, 거게 대해서 오랫동안 걱정을 하고 이래 하다가 지금은 내가 확정을  지웠습니다. 확정을 지워서 이제는 믿는 사람의 그 중생된 사람의 심신의 기능도  믿음 지키지 안한 기능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간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가지고서 그것이 지금 호소를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을 확고히 잡았습니다.

지금은 담대히 그걸 증거합니다. 이것이 지금 증거하나 이 밖에 나가면 지금  아마 이단으로 몰릴 것이 백의 구십 구입니다. 그러나 확실합니다.

 그래서, 왜 그들은 말하기를 ‘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지금 고통을 느낄  수가 있느냐?’ 그렇게 하는 말들을 했는데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거 희로애락과 지정의를 알고 있는 그것은 그 영의 활동이 거게, 안  믿는 사람이 희로애락을 알고 지정의를 말하고 하는 그것이 영이 거기에, 그  희로애락을 발표하는 발표에 거게 영이 같이 발표한 거게 가담이 됐습니까?  가담이 안 됐습니까? 심신만이 그라고 있습니까? 영이 가담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이것을 이런 것도 지금 세계에 지금 확정 지우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은 게 아니라 조그매 남아 있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도  도덕이 있고 모든 윤리가 있고 옳은 것이 있다. 그거는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지  안하고 조그매 남아 있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됐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세계  조직 신학에 반수 이상일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과 육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얼마 며칠 전에 또 묻는 사람이  있어. 안 믿는 사람에게는 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 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한 번 손들어 보십시오. 안 믿는  사람에게 영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모르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뭐이요, 그라면? OOO씨가? 이름 뭐꼬?  OOO? 그래 OOO, 안 믿는 사람에게 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래 똑똑히 알아야  돼.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영하고 육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서 사람이 돼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 했는데 죽었던 자가  그거 죽은 자가 무슨 말 하요? 죽었던 자니까 뭐이 죽었다 말이요? 영이 죽었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또, 우리 중생된 사람은 영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영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너, 하나라? 저것도 영이 하나래, 봐. 저거 우리 교회서 제일  병신이라 머리도 못 이래 장 이라고 다닌다 말이오. 그래도 일단 정신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데는 일등이야. 나중에 가보면 인제 부활해 보면은  몰라요. 부활해 보면은 굉장히 이상해요.

 이러니까,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산 영과 이 심신의 육과 합해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중생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영과 심신이 합해 가지고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그러니까 영은 있기는 있지마는 영의 작용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능 작용적으로는 그 영은 없는 거와 꼭 같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없는  거와 꼭 갈소. 아무 작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무슨 생활이냐? 그 영이 가담된 행동이냐  순전히 심신의 행동이냐 영은 있어도 아무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없는 거와 같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심신만이 들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심신만이 들어서 행하고 영은 기능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그 아무 작용을 못 합니다.

 그래서, 그 생활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은 육신의 생각이라, 육신의  생각이라, 육신의 욕심이라, 육신의 행위라, 육신의 주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중생되면은 산 영과 심신이 있기 때문에 중생된 후에는 사람 생활이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뭐이냐? 중생된 영 혼자 활동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생된 영 저 혼자 활동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생된  영 저 혼자 활동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OOO집사, 중생된 영 혼자는 활동할  수 없습니다. 뮐 해야 할 수 있느냐? 그 심신을 이용해야 활동하지 심신을  이용하지 앉으면 활동을 못 합니다.

 우리 마음이 내가 이 마음으로서 지금 OOO집사님을 부르고 싶습니다. OOO집사님  집사님 부르고 싶은데 내 마음으로는 부르고 싶은데 내 입이 딱 들어붙어서 말을  안 들으면 부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입을 통해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작용도 몸이 이용되지 않으면 마음의 작용을 못하고  영의 작용도 영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듣지를 안하면은  작용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중생된 사람의 생활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뭐이냐? 영이, 중생된  영이 그 사람을 지배해서 영과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하나가 돼 가지고서  움직이는 그 생활을 가리켜서 새사람의 생활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중생된  사람이라도 이 심신이 영의 말을 전연히 듣지 안하고 심신 제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말합니까? 육신의 생각이라, 육신의 욕심이라, 육신의  뜻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음을 보고자기 좋아하는  대로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므로 사람이 뭐 됐다 했습니까? ‘육체가 되었으니’  그 말은 벌써 영하고는 딱 끊어져 버리고 영으로는 작용이 없고 순전히 육만으로  작용이 됐기 때문에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그 말은 영의 활동은 전혀 죽어  버렸고 완전히 육체활동만 있다 그말입니다.

 그때에 구약 때는, 구약 때는 우리와 같은 중생이 아니고 그때는 영으로  활동하다가 영에 접선이 됐다가 없어져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도  영이 육하고 접선해 가지고 있다가서 영이 죽어버리니까 그만 그 영이 육의  활동에 아무 도움이 없습니다. 작용이 아무 도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육체가 됐기 때문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뭐라  말했습니까? 영원히 같이 할 수 없다 이랬습니다. 영원히 같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신과 같이 못 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심신과  같이 못 하요.

 하나님은 우리 중생된 영을 통해서, 영을 통해서 우리의 심신에게 작용할 수  있지 하나님이 성령님이 직접 우리 이 마음에나 고깃덩어리에 와가지고 작용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식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마음과  고깃덩어리에게 모든 것을 증거해준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영과 이 심신이 합작됐을 때에 영육이 함께  움직이는 행동을 가리켜서 참 사람의 행동이라 또 새사람의 행동이라 이렇게  말하고 믿는 사람이 영과 함께 작용하지 안하고 이영은 뒷방으로 처박아 버리고  거절하고서 마음과 고깃덩어리 이 둘이 주장해 가지고서 활동하는 활동을 그것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하느냐? 옛사람의 행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옛사람의 행위와 새사람의 행위는, 옛사람의 행위는 악령이 그 심신을 주관해서  인도하는 것이고 새사람의 행위는 중생된 영이 그 심신을 주관해 가지고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인제 이해가 됩니까? 알아듣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새사람과 옛사람이 달라. 이런 것은 뭐 신학교 가가지고서  가르치는, 저는 신학교 사 년 다녀도 하나도 그런 거는 내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그거 뭐 알게 뭐 있는가?’ 그걸 모르면 우리가 그 단계 이  하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지마는 그 단계 이상이 갈 때에는 혼잡해 가지고서  미혹을 받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아는 것이 더  뛰어나 버려야 됩니다.

 관철을 해서 마귀 지식 이상을 돼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마귀. 그놈이 꼬우되  그거 다 이렇게, 달콤한 거 가지고서 미혹을 시키지 우리를 강제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그렇게 설득시키는 그런 일은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또 요새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니까, 그 잠깐 하나만 더  말합시다. 죽어야 살아나겠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에 있어서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 수 있고 옛사람이 죽지 안하면 새사람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사람으로 하나님이 살릴라고 할 때에는 옛사람부터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리는 일을 합니다. 이래서 죽어야 산다는 것이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았으면 그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을 자꾸 해봐요. 살고  있습니다. 살고 있으면 그러면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그 심신이 움직여서 살고 있는 것이 그것이  새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새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그 사람은 완전입니까?  아직까지 미완성입니까?, 완전입니까? 미완전입니까? 미완성입니다. 아직도  세상에 있기 때문에 시험을 받을수가 있고 미결입니다. 아직까지 완성이 안 됐기  그 다음이 패전할란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그러면, 기독자가 이 새사람으로 산 그 생활이 완성되는 것은 언제가  완성됩니까? 세상에 있을 때 완성이 됩니까 세상을 떠나야 완성이 됩니까?  떠나야 완성이 돼.

 그래서 부분적으로, 부분적으로는 그 부분적의 심신의 요소가 끝이나 버려야  완성이 되고, 그러면 십분지 오는 끝났기 때문에 안성이 되고 십분지 오는 남아  있기 때문에 완성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기독자의 심신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공로대로 사는 그 생활이  그 생활이 계속되는 것이 좋습니까? 그 생활로 끝맺는 게 좋습니까? 끝맺는 게  좋습니까? 아직도 그대로 이 세 가지 피, 성령, 진리로 심신이 이리 합작돼  가지고서 영육이 합작돼 가지고 살고 있는 게 좋습니까? 끝나는 게 좋습니까?  끝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뭐 안 드네. 끝나는  게 좋아.

 끝나는 게 좋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끝나는 게 좋다 말은 끝나는 게 좋으니까  좋은 걸 원 하겠습니까? 안 좋은 걸 원하겠습니까? 좋은걸 원하지. 끝나는 걸  원하지. 끝나는 것을 원하는 것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OOO장로님 안 보인다.

OOO장로님. 묘하게 알지. 안보이네. 끝나는 것을 원한다는 말은 OOO집사님, 무슨  소리입니까? 모르겠어? 저 OOO집사님, 죽는 거 원한다 말이지. 그런 거  아니겠소?  믿는 사람이 자, 죽기를 싫어하는, 죽기를 싫어하는 그것은 새사람의 성공을  원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지금 그 사람이 새사람의 성공이 아니라  새사람의 미결 또 옛사람으로 사는 거 그걸 원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그것은 새사람으로 지금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옛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입니까? 옛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증거입니다. 그게 표시요.

 세상에서 죽기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죽기도 두려워하지 안하지마는 죽음은  두려워하지 안 하면서도 어서 죽지는 원하기는 원해야 될 터인데 죽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서 바울이 말하기를 이래 했습니다.

 자기로서는 어서 죽어서 주님 앞에 가서 그만 이 구원 생활 완성해 가지고 가는  게 좋기는 좋겠는데 미완성인 세상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그 이유를 뭐라고 말했어? 그 이유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OOO권찰,  복음을 지금 자기가 전해 가지고서 다문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 때문에 자기로서는 어서 그래 떠나 버려야 그거 완성이 되는 것인데 이  복음을 자기가 지금 자기에게 하나님이 맡겨 놨으니까 이 복음을 전해야 될  것이라서 내가 있는 것이 너희들의 구원에 유익이 되기 때문에 부득이 있지 나는  어서 떠나가기는 가는 것이 내게는 좋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할 사명을 땅위에 다 했다고 하면은 떠나는 것이 옳다마는  사명을 다 하지 못해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땅에 있는 것이지 사명 할 일  없다면 뭐 할라고 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그 나라에 가면 모든 게 더 좋은데.

몸도 좋고 눈도 좋고 귀도 좋고 코도 좋고 뭐뭐다리도 좋고 팔도 좋고 환경도  좋고 취미도 좋고 다 좋은데 전부. 다 좋은데 뭐 할라고 이 더러운 데 있겠소?   이제 부활에 대해서 증거 하겠으니까 좀 나와야 되지 이거 모르는 그게 언제  들어서 알겠습니까? 모릅니다. 이러니까 모르면 모르는 것만치 구원은 안 돼요.

이러니 이 자꾸 여러분들이 전화를 해서 이 좀 배워야 될 터인데 이거 모르니까  깜깜하니까 자꾸 마귀란 놈에게 꼬여 가지고서 자살 행위만 자꾸 하고 있다  말이오. 자살 행위만 자꾸하고 있어. 모르기 때문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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