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준비와 받을 은혜

 

1987. 6. 14. 주일새벽

 

본문:사도행전 2장 1절∼4절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우리 구원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죽음은 세 가지 이유로 죽으셨습니다, 세 가지 이유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하는 그래만 아는 것보다 세 가지 이유로 죽으셨다 그렇게 아는 것이 정확하고 확실합니다.

다 여게까지 나아가지 안하고 ‘대속해 죽으셨다’ 이래만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대개 모든 조직신학입니다. 그러나 거게서 세 가지 대속으로 죽으셨다 하는 것은 다 별로이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학에서도, 신학교에서도, 또 서적에서도 저는 많은 독서를 안 했기 때문에 그렇츰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셔서 그렇게 하시는데, 세 가지 종류로 죽으심을 죽으셨고 또 부활하심으로 세 가지 죽으심으로 설정해 놓은 공로의 혜택을 입고 살 수 있는 중생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생할 수 있는 중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예수님의 살아나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구원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 구원이 완성됐습니다. 완성된 이 구원은 자기가 입고 벗지만 안하면 입고 벗지 안할 그때부터는 구원은 완성입니다. 입고 벗지만 안하면 자기 구원은 모든 면으로 완성입니다.

완성인데, 입는 거는 쉽지마는, 그만 입으면 됩니다. 그러나 입고 난 다음에는 입고 있지 못하고 입고 살지 못하도록 벗기는 역사가 세상에 마귀에게 속한 운동은 다 단합해 가지고 벗길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애를, 벗길라고 애를 쓰나 그 사람이 깨달은 것과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면 안 벗을 수 있는 그런 정도로 벗길라고 애를 씁니다.

왜? 주님이 승리하시고 마귀를 종으로 부리기 때문에 자기 있는 것만 다 들이면 벗지 안하고 살 수 있는 정도로 벗길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힘이 다른 사람의 백 배 있는 사람이라도 다하지 안하면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은혜 주신 것이 다른 사람의 백분지 일을 주셨으니까 백분지 일밖에 못 가졌다 할지라도 백분지 일을 다만 하면은 이 대속은 안 벗고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제 하늘나라 가면은 아주 사람 보기에 허무한 사람이 좋은 구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대단히 위대한 사람이 구원을 가지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거는 뭐이냐? 다하는 데서만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 이랬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고 저는 많으니까 ‘작은 것 그까짓 거 암만 해 봤자 나 많은 것 한번만 해도 그것보다 양이 많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많이 받은 것은 생각지 안하고 적게 받은 거는 생각지 않습니다.

금 맡긴 비유라든지 모든 데 보면 자기가 받은 대로 다해야 됐지 많이 받았으니까 닷 냥중 받은 사람은 장사 안 해도 두 냥중 받은 사람이 죽자껏 장사해 봤자 넉 냥밖에 안 됐는데 장사 안 해도 닷 냥중이니까 한 냥중이 더 많습니다. 만일 닷 냥중 받은 사람이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그 사람은 주님에게 쫓겨나고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입고 벗지 않는 데에서 영생됩니다. 입고 벗지 않는 데 영생됩니다.

입기는 쉽습니다. 이런데 요 교리가 지금, 그전에 약간 약간 하나님이 주셔서 말씀했는데 이번에 대구 가 가지고 거게 대해서 장시간 동안 말했습니다.

이라는 가운데서 지금 우리 총공회측에 있는 목사들도 좀 이 세상 지식이 많아서 썩어질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이해를 안 하고 있습니다. 안 하고 지금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저거는 틀렸다’ 조롱하고 있지마는 언제 꺾어져도 꺾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이 정확합니다. 시간이 갈수록이 정확하고 정확하고 정확하다 하는 것이 확실히 나타납니다.

제가, 현재에 세계에 조직신학자들이 박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뭐 수천 명인데.

그들이 오늘까지 다 연구하고 연구하는 데에 그 연구에 없는 것을 새로 말하는 그런 것으로서 이단으로 정죄받는 그런 것을 내가 사람에게 배운 것 아닙니다.

배운 것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알려 줘서 나도 주님에게 배워서 알려 줬지 내가 연구해 가지고 요렇다 요렇다 연구해 가지고 안 것 아닙니다. 그저 나는 주님이 알려 주신 대로는 그대로 믿을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고 당신이 나를 주관하시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어떨 때는 말해 놓고도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이말 해 놔서 이거 정죄로 몰리겠다. 정죄로 몰리겠다.’ 이러기 때문에 말해 놓고 난 다음에는 찾습니다. 말하고 난 다음에는 ‘이거 야 성경과 어찌 되노?’ 성경과 대조를 해 볼 때에 확실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기도 생각 없이 푹 말해 놓고 나중에 뒤에 가서 차차 차차 성경대로 대조해 가지고 바르다 참되다 자꾸 증거를 해서 강하게 증거해 나온 것이 오늘까지입니다.

이제는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이것은 뭐 얼마든지 강하게 외칩니다. 그것이 오늘까지 없었습니다. 오늘까지 세계에 조직신학자들 신학자들에게 그게 나오지 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반대했어.

우리 한국에서는 박윤선 목사님이 제일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그 신학자 ‘중생된 영도 범죄 한다, 안 한다’ 나하고 대립돼 가지고 동성로교회가 갈라진 것이 그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또 기본구원 건설구원 하는 그것도 없습니다. 그 조롱했지마는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얼마든지 강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왜? 바르기 때문에.

이러니까 그들과 논리를 안 해 그렇지 논리하면은 결국은 다 이해를 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그렇게 다 논리되지 안하고 처음 들을 때는 얼떨떨해서 다 이러나마 차차 그들도 연구하면 알아집니다.

그러기때문에 올바른 진리를 말해 놓고 난 다음에는 시비하지 않습니다. 시비하지 않는 건 시비를 하면 그 사람들이 다 그리 밀어붙여져 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그만 그래만 해 놓고 던져두고 내비둡니다. 내비두면 그걸 제 모가치 자기네들, 이단이니 뭐이니 수근거려 쌓아면서 자꾸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 돌아오게 된다 그거요.

또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거게 있는 기록돼 있는 사람은 가라지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든지, 뭐 그물 속에서 악한 노릇을 한 사람이라든지, 돌짝밭 길가밭 노릇을 한 사람이든지 그 행위만 멸망받지 그 행위를 한 사람은 멸망받지 않는다.

그러면 행위라 말은, 행위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그 행위한 기능만 멸망받고 거게 소속한 것들만 멸망받지 그 영은 멸망받지 안하고 구원 얻는다 하는 이것도 이거 시비가 많습니다. 많아서 학자들이, 우리 진영에도 학자들은 조롱합니다.

어떻게 거게 인격이 없으면 그거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게 무식해서, 인간 지식만 알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양성원 학생들도 더러 있는데 그것 모르고 하면은 헛일입니다.

암만 지금 장담해 봤자 내가 장담해 봤자 이 장담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또 세계에서 인정을 받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 그분이 요게 옳다 인정해야 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하요.

또 여러분들이 이 주일날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의 공로의 완성과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이 공로가 완성된 것이 주일날 됐다. 주일날은 두 가지 이 구원의 완성이 주일날 됐고 그런고로 이 주일날 두 가지 대속의 재료되는 능력, 대속의 이 근본을 우리에게 주신다. 주일날 주신다. 이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이 대속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원료를 받아 가지고, 권능을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은 이 받은 은혜 생활을 해서 실지로 자기 구원을 이루는 역사를 한다.

이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이 사활의 대속의 이 은혜를 다 주일날 주신다. 다른 날보다 주일날 주시고 주일날 원동력을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에 받은 그 원동력대로 실행하여 사니 그것이 자기 일이다.

자기 일은, 주일날은 주님의 일하고 다른 날은 자기 일 한다고 요렇게 다 해석하고 있는데 그게 틀렸다 그말이오. 제가 손양원 목사님이 주일에 대해서 해석해 놓은 것을 봤는데 거게도 보니까 엿새 동안에 자기 일 한다 하는 데서, ‘자기 일 하는 것이 주일날 은혜받은 그 은혜의 그것을 실천해서 연습하고 연성하는 것을 엿새 동안 한다. 그게 자기 일이다.’ 그렇게 밝혀서 말한 주일 해석을 못 봤습니다.

그래, 이 주일날은 이런데 제가 하나 잘못 증거한 것을 지금 이 시간에 증거합니다. 토요일날 열두시부터 또 주일날 영시부터 주일날이라 이랬는데 그것은 잘못됐습니다. 잘못된 것이 제가 말한 가운데 잘못됐어. ‘주일날은 대속을, 죽으심의 대속을 완료하신 것과 또 부활하심의 대속을 완료하신 것이 주일날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 주일날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토요일날 열두시까지는 죽으심의 대속이 완료된 날이고 또 주일날 영시부터는 부활하심의 완료된 날이라’ 이라니까 갈라진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이거 갈라져. 그 말을 잘못했어.

그러니까 토요일날 열두시까지가 아니고 주일날 새벽까지 주님의 죽으심의 대속이 완료됐고 또 새벽부터 그 남은 주일날 주님의 부활하심의 대속이 완료됐다. 그러면 이 사활의 대속의 완료가 죽으심의 종결, 죽으심의 종결 또 부활하심의 시작 이것은 주일날 한 날 됐다, 하루됐다. 한 날 됐다. 요렇게 말하는 그 말씀을 내가 증거를 했고 그거와 ‘토요일날 열두시까지라’ 이라니까 그게 주일날이 안 돼.

이래서 그것은 열두시까지 아니고 죽으심은 주일날 새벽까지고 또 부활하심은 새벽부터 그날 종일로 이래 가지고 주님이 대속을 완료하신 것입니다.

이랬는데 ○○○선생이 그 소리를 듣고 그래 또 다른 책을 이거 뭐 기독교 백과사전을 봤는지 뭘 봤는지 이래 가지고 역사를 그래 보고 ‘실은 토요일날 오후 열두시부터 주일날 오후 열두시까지를 하루로 삼아 가지고 주일로 하는 이것이 사실상은 역사에는 옳습니다. 역사를 누가 꾸미고 이랬는데 주님의 나시기 사십륙 년 전에 그 역사를 꾸민, 그 달력을 꾸민 월력을, 달력을 꾸민 그대로 지금 그대로 계속하고 있는데 거게서 뭐 열흘인가 얼마, 하루 뭐 몇 초씩 이래 돼 오랫 동안 몇천 년 가니까 십 일이 거석해서 십 일을 그 뒤에 보탠 거라도 그때와 꼭 같이 그 날짜인데 그걸로 말하면은 토요일날 오후 열두시부터 주일날 오후 열두시까지를 하루로 삼아서, 주일뿐 아니라 모든 날이 시작이 언제부터냐? 새로 영시부터 시작해 가지고 오후 열두시까지가 하루로 그래 돼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게 지금 정한 그대로 말하면 맞습니다.’ 이래 말해서, ‘네가 참고해서 수고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필요 없는 것은 예수님이 삼 일 동안 무덤 속에 계셨다는 그 말씀도 금, 토, 주일까지가 돼야 삼 일이 되고 또 주일날은 주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이 둘이 결합되어서 우리 구원을, 양구원을 완전히 이룬 날이 주일날이기 때문에 양구원이 완전히 이룬 완성되는 그것으로 해도 주일날 그 둘이 다 됐기 때문에 주일날 새벽까지 다 되고 새벽부터 시작해서 또 이래 되고 하는 그것이 옳다. 그러니까 그뭐 달력에 따질 것 없이 요게 옳다.’ 그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날 열두시부터 주일날 아침 영시부터 시작이라는 그것은 제가 취소를 합니다. 그것은 고쳤습니다. 설교록에 나가는 것은 그것을 고쳤습니다.

테이프는 고치기 어려워, 고쳤는지 모르지만, 고치라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이렇게 주일날은 중요합니다. 오순절 성령도 언제 받았느냐 하면은 주일날입니다. 주일날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거는 내가 지금 외우고 있지는 안하는데 미국에서도 그때에 교회들이 좀 쇠퇴해질 때에 한 산골 조그만한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가지고 그 역사가 퍼쳐 나와서 자꾸 미국 나라 전체를 다 부흥을 시켰고 우리 나라도 선교를 받아 가지고 예수를 믿기는 믿지마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었는데 그때 한국에서도 어느 교회라 하는 그것을 제가 잊어버렸는데, 오래 돼서. 거게서 주일날 새벽에 성령의 강림이 임해 가지고 그 성령 역사가 퍼져 나와서 전국에 퍼졌다 그런 말을 제가 어느 책에 읽은 것 같습니다.

이래서, 저도 경험에 주일날 새벽에 특별히, 새벽에든지 주일날, 그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이 구원 또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이 구원은 그 역사가 주일날 강하게 역사하고, 강하게 역사한다 그렇게만 저는 그때 봤지 주일날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이다. 이 주일날은 그래 주셨다.

그래서 안식일은 일차 창조의 것 진동될 것 변동될 것들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한 것들이 복받도록 거룩과 복을 줬고 이제 이차 창조는 예수님의 사활로 창조한 것이 이차 창조입니다. 이차 창조는 예수님의 사활로 진동되지 안할 영생하는 이 나라가 창조됐는데 그 창조된 그것은 주일날 주셨는데 주일날은 사활로 구속한, 창조된 그 구원을 완전히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실상의 재료를 주시는 것이 주일날이다.

그러면 주일날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 받은 그 은혜 가지고 잘 활용해서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이 엿새 동안이다 하는 그것을 제가 깨닫고 증거한 것은 벌써 지금이 아니고 좀 오래 됐습니다.

됐는데, 그래서 우리 교회서는 그동안, 제가 거창서 쓰는 것은 ‘주일날, 다른 날은 새벽기도 못 나와도 주일날은 새벽기도 나오라. 다른 날은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서 성의가 모자랐을지라도 주일날은 제일 성의를 기울여야 되기 때문에 주일날 성의 기울이는 것은 주일날 새벽부터 시작해서 성의를 기울여야 된다.’ 이렇게 주장을 해서 가르쳐 나왔습니다.

이랬는데 이 부산 와 가지고 모두 자꾸 이 뭐 주일날 되면 이거 뭐 조니까, 조는 판이니 이거 안 되겠다. 아무래도 배워야 되지 뭐, 예를 들면은 ‘나는 술 먹는다.’ `술먹고라도 교회 나오너라.'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그게 변화되는 것처럼 그만 이 주일날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되지 말씀 안 듣고 이거 그만, 왜 그거 어데서 고장났느냐? 열두시까지 일을 다 해 놔야 된다 하니까 열두시까지, 제가 배우기를 그전에 한부선 목사님도, 어짜든지 열두시까지를 일을 다 할라 하니까 있는 신경을 다해서 열두시까지 다 일한다. 그 일하니까 결국 피곤해서 주일날은 존다 그말이오.

또 어떤 책자도 볼 때에 그 처녀가 ‘너는 지금 장정이 해도 하루 해야 될 일을 너는, 그라면 네가 주일날 예배당에 갈라면 이 명떼를 다 메고 가거라. 명떼는 장골이 메도 하루 메면 메야 될 그런 많은 명떼를 메고 가라.’ 이러니까 이 처녀가 주일 지키기 위해 가지고 명떼를 메다 보니까 나중에 명떼에 다 피가 묻어 있고 어짜든지 죽자 살자 해 가지고 열두시까지 딱 그것을 마치고 그래 주일날을 봤다. 인제 그런 것도 많이 기록되어 있고 이래서, 사람들이 모두 다 인식하기를 ‘열두시까지 어짜든지 할일을 다해라’ 요게서 그만 사람들이 다 과로돼 가지고 주일날은 고기덩어리만 와서 앉았지 완전히 피곤해서 그날 그만 졸아버리고 예배를 못 본다 그말이오.

그래 그것을 이 좀 극기하기 위해서 ‘어쨌든지 주일날 아침에 잠을 좀 늦게까지 잘지라도 주일날 오전에 졸지 않도록 그리 해라’ 이렇게 해 나왔었는데 지금부터는 인제 그 방편이 벌써 이만치 장성했기 때문에 완전히 바꿉니다.

그러니까 준비하는 것을 언제까지 준비하느냐? 토요일날 열두시까지 준비할 게 아니라 늦어도 열시까지는 다 준비해 놓고 다른 때보다 조금, 평소에 열시 자던 사람이면 아홉시에 자고, 또 아홉시 자던 사람이면 여덟시에 자고, 조금 더 자서 주일날을 위해서 까랑까랑하게 준비해 가지고 주일날은 순전히 예수님의 사활에 대한 이 은혜를 우리가 받아야 되고, 그러니까 그날 할 일이 세 가지 일이라 하는 그것도 제가 그전에는 설교하지 안했는데 이번에 또 하나님께서 저에게 알려 줘서 그것을 말했습니다.

세 가지만 하는 날이라. 하나는 이미 이 사활의 대속의 은혜 받은 것을 자기가 생각해서 다른 날 발견 못 한 것을 그날 발견해 가지고 다른 날 감사 못 하던 것을 그날 감사의 새 종자를 받고, 감사의 새 종자를 받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지금 새 은혜를 받고, 감사의 새 종자를 받고 또 사활의 대속의 은혜의 새 것을 받고, 이미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를 다 못 한 것을 새 감사 새 대속의 은혜 이걸 받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남은 시간은 뭘 하라 했습니까? 받은 것을 그 주일날 연습하는 것. 그라니까 다른 것 할 여가 없어. 또, 감사하는 걸 또 생각해 보고 또 감사하고, 받은 바의 은혜를 또 생각해서 또 받고 또 받고 이래 가지고 연습을 하고 이래 가지고 주일날은 이 사활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연습하는 것이나 종자적으로 받아 가지고 그 종자를 뿌려서 가꿔서 추수하는 거는 언제냐? 월, 화, 수, 목, 금, 토까지를 이것을 연습해서 연성해 가지고 완성을 이루라. 그렇게 증거를 했는데, 어짜든지 요 주일날, 주일날 이제부터는 새벽부터 주일날을 하도록 요렇게 요걸 연습하고 또 차차 차차 그래 가지고 거석한 사람은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하고 오후부터는 어짜든지 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해라.

이랬는데 그것은 어데가 돼? 그렇게 그것부터 돼 가지고, 오전까지는 일하고 오후부터는 일을 하지 안해 가지고 준비하는, 준비하는 그것이 있고 또 준비를 하면서 차차 차차, 열두시까지 준비하던 사람이 이제는 조금 더 신앙을 지키면은 열두시까지 준비하던 사람이 열한시까지 준비를 하면 될 것이고, 열한시까지 준비하던 사람이 잘하면은 그 일이 정리돼 가니까 열시까지만 준비해도 될 것이고, 또 열시까지 준비를 잘한 사람은 그다음에는 아홉시까지 준비를 해도 될 것이고 차차 그래 가지고 토요일 오전까지만 자기 할 일 하고 오후부터는 준비를 해도 될 수 있다. 이것은 자기가 자꾸 이렇게 준비를 해 나감으로써 자기가 일이 정리가 돼야 되지 일이 정리 안 되면 안 되니까.

그러면 자기가 주일을 준비하는 것은 낭파 없도록 준비하기 때문에, 낭파가 없도록 자꾸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이니까 그 준비가 낭파 없도록 준비가 됨에 따라서 준비 된 것만치 자꾸 준비하는 시간이 당겨집니까 준비하는 시간부터 당겨 놓고 그 실상이 당겨집니까, 어떤 것입니까? 자기가 준비를 한 데 따라서 자꾸 준비할 시간이 많고 일하는 시간은 줄여뜨리고 하나님께 바치는 준비하는 시간은 늘어지고 일하는 시간은 줄어지고 하나님 앞에 바치는 시간은 더 늘어지고 이래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준비함에 따라서 자꾸 일하는 시간이 줄어집니까 일하는 시간을 줄여뜨림에 따라서 준비하는 시간이 자꾸 많아집니까? 어떻습니까? 준비함에 따라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지는지, 자기가 준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에 따라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지는지 자기가 일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지? 어느 것을 취해야 되겠습니까? 일하는 시간을 줄임으로 하나님의 축복받는 그 길을 택해야 됩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으로 점점 일하는 시간은 줄어지고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이 늘어지겠습니까 요 둘 중에 어느 것입니까? 남반에 요 계산을 한번 해 보십시오.

어느 것입니까? 어느 것이요? 자, 여러분들이 잘 구별 못 하면 내가 일호 이호로 말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열두시까지 일을 해 가지고 주일을 준비를 했는데 그 사람이 이제는 열시까지 일을 하고 열시부터 주일 준비를 하고, 또 그 사람이 이제 나중에는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일하고 오후부터는 주를 섬기는 일을 준비하고 자꾸 일하는 시간은 줄어지고, 일하는 시간은 줄어지고 주님 섬기는 시간은 자꾸 늘어집니다. 늘어지는 것 요것을 일호, 일호라 합니다. 일호라 합니다.

또, 일하는 시간은 줄어지고, 일하는 시간은 줄어지고 주님 섬기는 시간은 늘어지고 요거 이호, 이호. 일호 이호. 그러면 우리는 일호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이호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일호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이호를 취해야 되겠습니까? 자, 일호 취해야 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시오. 또 이호 취해야 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일호와 이호에 대해서 뭣 때문에 일호를 취합니까? 일호를 취하면 그 사람 주일 보는 일이 일호를 취하면 그 사람 주일을, 하나님 섬기는 일이 원만히 되겠습니까 이호를 취하면 하나님 섬기는 일이 원만히 되겠습니까? 일호를 취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이 지장이 없이 원만히 되겠습니까 이호를 취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 지장이 없이 원만히 되겠습니까, ○○○씨? 저 ○집사? 일호.

○집사? 어? 그 지금 아마 얼떨떨해 모르는 사람 있는 모양이라.

여러분들, 일호는 취하면 나중에 가서 점점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하고 오후부터는 하나님 섬기는 준비하고 하나님 섬김이 될 게 아니라 일호 방식을 취하면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이 일주일 동안에 하루만 일하고 나머지기 엿새 동안은 하나님 섬기는 일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됩니까? 그러나 정반대로 이호를 취하면, 이호를 취하면 나중에 가서는 주일 오전예배도 못 봅니다. 오후예배도 못 봅니다. 주일은 예배를 보지 못하는 사람 되고 맙니다.

요걸 이해를 해야 되지 요걸 이해 못 하면 헛일입니다.

그 사람이 공장에 들어가 가지고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주인이, 밥을 못 먹을 지경이니까 뭐 ‘나는 주일 안 지키는 데 나는 일 안 합니다.’ 아무도 일 안 시켜 줄라 하니까 제까짓 게 굶어야 안 됩니까? 굶어도 죽을 지경이니까 못 굶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할 수 없어서 ‘나는 주일 그뭐 빼라 해도, 주일 못 지키구로 해도 이 회사에 들어와서 우선 밥을 먹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자기가 자꾸 그 회사 가서 일을 하는 데 따라서 나중에는 ‘내가 잠깐 열시 되면은 한 시간 퍼뜩 좀 갔다 와서 그다음에 나머지기 일을 보충을 할 터이니까 그래 좀 해 줄랍니까?’ ‘안 된다.' 이랬지마는 가만 보니까 다른 사람 뭐 그 한 시간 안 빼고 일 하는 사람보다 그 사람이 많이 하니까 그 사람을 한 시간 빼 주고라도 일을 시키는 게 낫다 말이오.

자꾸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자꾸 이래 보니까 일 하는 양은 많고 품은 적고, 주인이 수지 계산을 맞춰보니까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예배드리기 때문에 뽑아야 되겠는데 어째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수지 계산이 그 사람이 안 뽑는 사람보다 그 사람의, 뽑는 사람이 주인의 회사에 유익이 되고 필요가 있으면 그 사람 쫓아내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을 주일을 다 지키게 할 것입니까? 어떻게 합니까? 지키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지켜 나가는 법을 우리가 취하는 것은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손가락으로?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다같이 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일호라, 맞았어. 일호라. 이게 우리 취하는 길이라.

이래 놓으니까 어떤 사람은 뭐 그게 없어. 이번에 대구집회 가는 것도 아예 어떤 그 학생은 그만 뭐 집회 간다는 말도 안 해. 말도 안 하고 그저 결석계 써 내놓고, 또 어떤 사람은 간다 말하고, 이랬는데 갔다 온다니까 잘 다녀오라고서. 이렇게 해서 자꾸 자유 얻는 것은 자기에게 실력이 있는 것만치 자유가 돼지지 실력 없이 자유를 가지는 그거는 죄가 되고 마는 것이라 그말이요. 알겠습니까? ○○○장로님, 어때요? 이해가 돼요? 그래, 이게 이해가 돼야 됩니다.

그런데 주일날이 이렇게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내가 여기 와서 아예 성경도 보지 안하고 이제 오늘은 주일날이기 때문에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이들이 주일을 범하지 안하고 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모두 기도하고 반사들은 그 공과를 다 외우고 있으니까 그 공과를 자기가 명상하면서 ‘내가 이 오늘로서 이제 끝인데 이걸 이 지혜 얻는 것, 야고보서 1장 몇 절입니까? 5절 이하에 있는 설교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수요일날 ○목사님이 재독을 해 주셨고 또 금요일날 ○○○조사님이 또 재독을 해 주셨고 두 번이나 재독을 받았어.

이랬는데 이걸 명상하면서 아무래도, 이 전부가 그것뿐이니까. 그것이면 되니까.

이러니 이 중요한 것을 내가 책임지고서 나도 행할 뿐 아니라 내게 속한 배우는 학생들에게 요것을 가르쳐서 이 학생이 요걸 알아야 살지 요거 모르면 죽는다.

이거 큰일났다. 이렇게 자기 속에 느껴서 요걸 학생들에게 알려서, 모든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서 하나님께 지혜 받으면, 그 지혜라면은, 그 지혜 받으면 지혜를 받으면 뭘 받는 겁니까? 예? 지혜를 받으면 뭘 받는 겁니까? 뭘 받는 거야, 저 ○선생? 지혜를 받으면 뭣 받는 거야? 지능 받는 것. 맞습니다. 그러면 지능을 받는 것은 뭘 받는 겁니까? 지능을 받는 건 뭣 받는 것이요, 이 ○선생? 영감과 진리 받는 거라. 또 영감과 진리 받는 거는 뭣 받는 것입니까, ○○○집사님? 지혜와 능력, 만날 그만 돌아가서 장, 지혜와 능력 받는 게 또 영감과 진리 받는 것이라 자꾸 뱅뱅 돌아가? 인제 자꾸 앞으로 나가야지. 영감과 진리 받는 거는 뭣 받는 것입니까, 저 ○○○조사님? 하나님의 충만 전부를 다 받는 거라! 여게 다 매여 있다 말이오. 이걸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이 학생들에게 이거 안 가르치면 안 되겠다. 이 학생을 만들어 놓으면 그 사람 인류 중에 머리되는 인류가 될 것 아닙니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것 아니요? 이거 자기 속에 명상해서 이걸 꼭 가져서, 그래 보니까 수요일날 ○목사님도 이 공과에 대해서 처음에 설교할 때보다 차차 차차 설교를 하면서 능력이 자꾸 더 깨달아지니까 자꾸능력 있는 실력 있는 그런 설교가 나옵디다. 또 ○○○조사님은 아예 또 처음부터 시작하는데 또 더 능력 있어 그거는 그만 절대성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있어. 그 믿음의 중량이 다르고 능력의 중량이 다른 것을 여러분들이 볼 수가 있다 그거요.

‘지혜’ 하는 건, `지혜' 하는 것은 지혜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능을 말하는 것이요, 지능을 말하는 것은 영감과 진리를 말하는 것이요, 영감과 진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은 뭘로 가지고 줍니까? 우리에게 뭘로 주시요? 영감과 진리로 줘. 그거 ○○○조사님은 그걸 말했어. 영감과 진리로 줘. 하나님의 충만은 영감과 진리로 줘. 딴걸로 주지 안해. 영감과 진리로 주는데 그것 받아 가지고 그대로 사니까 실상이 돼져요. 요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 이러니까 자기 맡은 학생들이 어떻게 돼? 이러니까 어짜든지 한 자리에서 들어도, 한 자리에서 들어도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 하더니만 참 그뭐 천층 만층도 더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도할 건데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오늘 주일 범하지 안하고 주일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반사들은 명상하면서 ‘이걸 가르쳐야 되겠다! 이걸 알아야 되겠다.’ 이걸 가르쳐야 되겠다 이걸 알아야 되겠다 하는 그 속에 불타는 그게 있어야 돼. ‘이것 모르면 그까짓 거 온 천하 지식을 다 가져도 소용 없다. 이거 아니면 온 천하의 권세를 다 가져도 소용 없다. 부요를 다 가져도 소용 없다. 이것 가지면 아무것도 없어도 이것 가졌으면 모든 하나님의 충만은 제것이니까 땅위에 있는 것도 다 제것이 된다. 요 비결을 확실히 잡아야 됩니다. 그거 안 잡으면 소용 없어. 진리를 가지지 않으면, 믿음이 없으면 세상을 이기는 자 없어. 믿음은 뭐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충만을 자기가 중간에 연결된 그게 믿음입니다. 연결된 것 안 가졌으면 아무 소용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걸 특별히 기도하십시오. 오늘 뭐 비오는 것 걱정하지 말아요. 비오는 것, 비오는 것 걱정하는 그런 그 기도 하지 마. ‘오늘 비가 와 쌓는데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아니야! ‘주여! 어짜든지 비를 소낙비도 주시고 뭐 전쟁도 주시고 이래서 전쟁을 이길 수 있는 신앙, 소낙비를 이길 수 있는 신앙, 겨울에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신앙, 썩은 것도, 썩은 것 배우는 데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상관이 없는데 영생을 배우는데, 아 인간이 깨닫지 못해 그렇지 왜, 그걸 왜? 얼마든지 비가 오고 얼마든지 시험이 있고 이걸 이길 수 있는 능력,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그 속에 역사해 가지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거 우리가 기도해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이 주일을 지키도록 우리가 기도합시다.

인제 오늘은 주일날 새벽이라 이래 안 나왔는데 이제는 다른 날은 새벽기도를 못 나와도 주일날 새벽에는 꼭 나와야 되도록 이제 그렇게 또 지금 좀 새로 작정을 하고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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