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21:57
주일
1987. 6. 7. 주일오후
본문:요한복음 2장 13절∼22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오전에 주일 지키는 일에 대해서 약간 좀 말씀을 했습니다. 안식일이 변경해서 주일로 된 것은 여러번 말했기 때문에 그것은 다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안식일은 참된 것의 그림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구약의 모든 속죄 제도는 예수님의 그 대속의 실상을 모형으로 해서 예약적으로 줘서 예표의 구원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원을 이룬 사람은 헛되뇨? 아닙니다. 그 구원을 이룬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난 그후에 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표로 성전 휘장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루고 있는 성전 휘장도 찢어졌고 또 바위도 갈라졌고 무덤 속에 죽어 있던 성도들도 다 일어나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을 지키는 이 주일은 어떤 것이 주일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두 가지 일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예수님이 우리 구원에 대한 근본인 기초 구원 역사를 한 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거는 어데까지인고 하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곧 예수님의 신성 안에서 예택된 것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대형, 대행, 대화친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성령과 진리와 피공로로 중생돼서 하나님을 향해서 진리와 영감대로 영생을 하여 제사장, 선지, 왕의 직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성숙시키는 그것이 또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하신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 주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대속하신 일은 십자가에 못박혀, 금요일날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고 주일날 새벽까지 무덤 가운데 계시고 주일날 바로 첫새벽에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시간으로 그렇게 논리한다고 하면 주일날 새벽 죽어 계실 때까지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기초 역사를 했고, 또 우리를 그 기초 구원 위에다가 건설 구원 역사는 바로 주일날, 주일날 새벽 부활하신 때에 시작을 하셔 가지고 그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합치된 그 토막을 우리에게 주일날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주일날은 예수님의 그 사활로 우리에게 주일을 주신 날입니다.
그런데 혹 이 주일 지키는 데 대해서 사람들이 저 구미 같은 나라 미국 같은 나라 그런 나라에는 서양에서는 여게보다 약 반 날이 떨어져 있으니까 그러면 거게는 어찌 되며 여게는 어찌 되느냐? 그것은 우리에게 날에 뭣이 있는 것보다도 그 날은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 역사를 베푸시는 날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그 나라대로 그렇게 주일날로 지키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지금 서양에는 이 우리 나라로 말하면 주일날 새벽이 거게는 토요일날 밤이 되겠고 또 우리의 주일날 오후가 거게는 주일날 오전이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그 시간은 어느 지역을 표준해 가지고 지켜야 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나 그것은 우리가 나라와 족속과 방언을 다 하나님이 정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그곳의 그 스물네 시간을 주일로 그렇게 지키면 우리에게는 아무 정죄받을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서양과 이 동양에는 약 열두 시간 차이가 있으니까 그거 그라면 어느 날부터 어느 시간부터 시작해 가지고 어느 시간까지가 주일인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어쨌든지 그만 주일날 영시부터 주일날 밤 열두시 마지막까지 하루 동안을 주일로 그 지방에는 정해 주신 것인 것을 알고 그대로 지키면 됩니다.
그런데 이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성도들은 참 생명을 내놓고 주일을 지켜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다른 데는 내가 모르지마는 6.25 때 거창 지방으로 말하면 주일을 지킬라고 하다가 순교당한 사람이 두 사람입니다. 박기천 조사님과 배추달 선생은 주일 지킬라고 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변판원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때문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면 그 순교에 우리는 모르지마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조금 차원은 있다고 그렇게 생각이 돼집니다.
그런데 이 주일을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오늘 열두시까지만, 밤 열두시까지만 지내면 주일이 끝났는데 지금 서양서는 내일 오전까지를 지켜야 주일이 끝나니 그 어기는 것은 어찌 되느냐?’ 그 말 하는 것이 그러니까 요렇게 어떻게 해 가지고 요리 당길 수도 있고 미룰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그런 것을 무시하기 위해 가지고 그런 그 복술을 꾸며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데 대해서 우리는 침노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네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느 날이 주일날인지 주일날 그만 영시부터 그만 밤 열두시까지만 지키면 주일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변론을 하거들랑 거게 대해서는 ‘나는 이래 지키는데 너는 또 뭐 네 자유로 해라. 주일을 월요일날 지키든지 토요일날 지키든지 뭐 금요일 지키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그만 제게 붙여 내비둘 것이지 거게 대해서 뭐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어, 그거는.
정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산업 전도라 하는 그런 유혹이 들어와서, 산업 전도라 그말은 산업을 위주로 해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주일 지키는 것이 큰 것이 아니라 업을 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그 업에 따라서 월요일을 주일로 지키든지, 수요일을 주일로 지키든지, 금요일을 주일로 지키든지 자기의 자유로 어느 한 날을 정해 가지고 주일을 지키면 된다 그렇게 말하는 이 산업 전도의 운동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거는 이단이라, 이단인지 이단 아닌지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가 성경을 알고 성경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는 그거는 이단이라 그렇게 해 놓고 거기 대해서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알아 볼 필요도 없습니다. 또 이러니 저러니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비하면 ‘너는 그게 좋거든 그래 지켜라. 나는 그게 안 됐기 때문에 그래 안 지킨다.’ 요것으로 그만 끝나버려야 되지 그 이상을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일 지키는 데 대해서 주일을 잘 지킬라고 하면 주일 지킬 준비를 하는 것은 언제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토요일날 오후, 토요일날 열두시까지 일하고 새로 한시부터는 내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그 준비를 하는 것이 그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반 교인들에게 선포하지 못하고 자기만 그렇게 지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포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해야 잘 살 줄 알고 또 자기 능력으로 잘 살 줄 아는 그 사람이니까 주일 하루 일 안 하는 것도 지금 기가 막히는데 또 토요일날까지 반만 하고 마니까 이라면 이거는 망한다 이리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어리니까 그런 말 하면은 도로 믿음에 손해가지 않겠느냐 이래서 말을 늘 하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이 부지런히 하는 그것도 문제는 문제고 또 사람의 실력도 문제는 문제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여하에 있지 인간 근로에 근거되어 있지 않다 하는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는 ‘토요일부터 주일을 지키도록 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전에도,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 지키는 일을 시작해서 그날은 주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일 지킬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모든 것 정리할 걸 정리하고 정돈할 걸 정돈해 가지고 그래야, 오전까지 할 일들을 하고 오후에는 그런 내일 주일 지킬 준비를 해야 바로 지킬 수가 있지 그렇지 안하면 준비가 구비하지 못해 가지고 실수하는 일도 있고, 또 열두시까지는 주일이 아니기 때문에 꼬박 일을 하고 내일 주일 지키자 하는 사람은 벌써 열두시까지 일한 그것은 주일날 일한 것은 아니지마는 그 영향으로 피곤해 가지고 오전예배 오후예배 그저, 그렇게 죽자 살자 하고 일하다가 하루 예배당에 앉아서 고요하게 있으니까 진리는 들어오지 안하고 그만 피곤해 가지고 예배당에서 실컷 자다 가니까 그 사람이 아무 은혜도 받지 못하고 주일을 왔으나 범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교회서는 그리 못 할 판이면은 너희들이 새벽기도 나오고 주일 오전 오후예배에 조는 것보다는 새벽기도를 차라리 나오지 말고 집에서 누워 자고 오전예배에 참석할 때나 그 좀 피곤해서 조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그렇게 해 나왔댔습니다. 제가 그렇게 처음에 말할 때도 그렇게 선포했었습니다.
예배 드릴 때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전부 졸고 이러니까 예배 봐야 다 헛 예배 보니 주일날은, 자꾸 열두시까지 일하고 그라니까 그리 된 것이니 주일날 새벽에는 안 나와도 좋으니까 새벽기도를 나오지 말고 실컷 자고 오전 예배 때에 졸지 말아라 그렇게 말을 그때 했었습니다. 요런 말을 다 했었습니다.
이랬는데 이제는 좀 신앙이 자라게 됐으니까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일하고 오후부터는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의 주일 지킬 준비를 위해서 모두 다 오후에는 기울이고 일하는 일을 그쳐두고, 일은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반, 닷새 반만 일을 하고 하루 반은 주일 지키는데 바쳐라 그것을 오전에 말했습니다. 말해서 그랄 사람 있느냐 하니까 손 들라 하니까 거의 다 들기는 들었는데 어느 정도 실행을 할란지 모르겠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들은 대개 내가 알기로는ㅡ지금은 몰라도ㅡ직장에 가면 으례히 ‘나는 토요일날 오후부터는 반사 일을 맡아서 못 나옵니다.’ 또 자기 업 하는 사람들도 오전 하고 오후에는 그만 준비하고 그런 일을 대개 하는 줄 아는데 요새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좀 더 나태해지고 그만 속화가 돼서 타락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이 선생 물어 보자. 요 선생, 어째 지키요? 토요일날 오전 일하요 오후 일하요? 오후에 해? 오후 몇 시까지? 다섯시까지? 다섯시까지 하는데 그 모두 다 축복을 덜 받아 그래. 축복을 덜 받아 그러니까 열두시까지 딱 일하고 되도록 그라는 데에는 회사가 돼야 월급도 받고 뭐 월급 받아야 밥도 먹고 그라지.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평소에 기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면 토요일 오전까지만 일하고 오후에 주일 예배를 드릴 그 준비를 하면 그 회사가 잘되고 더 잘되고 해서 여러분들도 복받고 사장도 복받는 것 알 수 있을 것이야.
이번에는 좀 그래 한번 해 보라 해요. 사장에게 가 가지고 ‘우리가 이제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일하고 오후에는 우리가 일을 안 하고 주일 준비해서 심방도 하고 또 맡은 사람 심방해 가지고 내일 예배 잘 보도록 준비도 하고 우리도 또 준비도 하고 그래 가지고 한번 시험을 해 봅시다.’ 그래 가지고 만일 그 회사 되는 것이 그래 하는 것이 더 잘되면 뭐 상관 없어? 잘되면 우리 월급도 그대로 줘야 될 것이고 사업은 잘될 것이고.
그라면 일하던 것을 좀 못 하니까, 반 날 못 하니까 회사가 좀 지장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그 하는 것이 잘못됐기 때문에 이제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자꾸 많이 하고 그래 가지고 또 엔간히 되거들랑 ‘또 한번 해 봅시다’ 그래 가지고 그대로 토요일날 오후부터 주일 예배를 준비하고 또 다른 사람 내가 맡은 사람을 준비를 시키고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토요일까지 꼬박 일하는 것보다 낫게 돼야 되지. 낫게 돼야 권위가 있지. 그 아니면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 바로 하지 못해 권위 없는 거라.
또 주일 일하는 회사에 들어가 가지고 ‘우리는 주일 지키니까 주일 일 하지 못하니 주일 일을 하지 못해서 이 회사가 손해가면 안 되고 주일날 일하지 안해도 손해가지 안하고 도리어 유익이 되거들랑 우리에게 주일 지키도록 해 주십시오’ 한번 시험해 보자고 그렇게 하십시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 사람들, 환관장에게 ‘왕의 진미를 먹으라’ 할 때에 `먹지 안해도 우리가 공부하는 데 지장 없고 건강은 나을 터이니까 우리를 한번 시험해 보고, 열흘 동안 시험해 보고 그거 안 먹어도 오히려 낫거들랑 우리에게 그것을 안 먹는 걸 그렇게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허락해 주십시오.’ 그 시험해 보자 했어. 시험해 보니까 오히려 열흘 후에 보니까 다른 사람 진미 먹는 사람보다 훨씬 공부도 잘하지 몸도 건강하지 윤기도 나지 하니 그라니까 그만 그리 돼 버렸거든. 우리가 시험해 봐 가지고 결과가 나와야 돼요.
요셉이가 처음에 갈 때야 하나님을 모르는 무도한 애굽 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 믿는 일이 되겠습니까? 거게서 잘 믿으니까 보디발 대장도 보니까 ‘이 사람이 뭐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자꾸 뭐 섬기고 그라는데 이 사람 오고 난 다음에 그 일이 보자 우리 가정이 좀 잘 된다. 잘되는 데도 이 사람에게 맡긴 일이 잘되나 다른 이에게 맡긴 일이 잘 되나 보자.’ 그 사람에게 맡긴 일은 자꾸 더 잘됩니다. 그 사람에게 맡긴 일은 몇 배나 더 잘돼. 이러니까 나중에 그 시험해보고 나서 ‘너는 하나님 섬기는 사람인데 우리 살림살이를 전부 네가 맡아 가지고 총감독하고 모든 일을 네가 주관해라. 네가 주관만 하면 복을 받으니까 네가 주관해라.’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로 우리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해서 축복해 주시는 것이 모든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알도록 그렇게 해 가지고 그들도 하나님 섬겨 우리 신앙 자유를 주도록 해야 되지 그 사람들에게 아무 뭐 예수 믿는 효력은 보이지 안하고 자꾸 주일만 지킬려고 뻑뻑 하면 그만 쫓아내 버리지 어짜겠소?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순리로 하고 역리 행위를 하지 안해야 됩니다.
주일을 지킬라고 토요일날 오후부터 자타를 위해서 준비를 해 가지고 지키는 그 사람이 있고, 주일날 일 안 할라고 열두시까지 모든 일을 다 해서 다 간추려 다 추려 놓고 열두시까지 해 놓고 그래 주일 지킬라 하니까 그만 곤해서 새벽기도도 못 나오고 나와서 예배 볼 때 졸기도 하고 그라니까 자, 그 두 사람 가운데는 어느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입니까? 주일 잘 지키는 사람이요? 열두시까지 일하고 할 일 열두시까지 다 하고 주일 지킬 때에 몸이 피곤해 가지고 새벽기도도 잘 못 나오고ㅡ우리 서부교회는 새벽기도 못 나오는데ㅡ못 나오고 또 주일날 오전에도 피곤하니까 꼬박꼬박 졸면서 그래 하는 그것이 주일 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니라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 주일 잘 지킨 게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왜 저분 안 들어? 내가 보니까 저 집사님 말이요 아마 ‘열두시까지 일하면 되니까 어짜든지 이게 내일 우리가 지장 없이 막 하자’ 이래 가지고 열두시까지 신나게 하는지 몰라. 열두시까지 막 부지런히 열심히 일을 해 가지고 ‘열두시까지 일해도 된다. 그러니까 내일 일 못할 터이니까 우리 할 일 다 해 놓자.’ 열심히 하는 그것도 잘합니다. 잘하지마는 그게 일등입니까 이등입니까? 일등이요 이등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일등입니까 이등입니까? 이등.
저 ○집사님도 그래 하지? ‘열두시까지는 내가 주일 아니니까 열두시까지는 막 열심히 해서 이래 하자, 하고 내일 주일날은 잘 지키자.’ 그라면 그렇게 하는 사람 이등이요 일등이요, 손가락으로? 들어 봐요. 내가 봐야 되지, 한번. 예, 고거 이등이야, 이등. 일등하면 잘 살 건데 뭐할라고 이등을 할 필요가 뭐 있어? 이등 그거 하지 맙시다.
또, ‘아이구 열두시까지 뭐 그랄 게 아니라 내일 예배만 보면 되지’ 하고 열두시 지내가도 이제 일을 하고 그라면 열두시까지 되니까 피곤하다, 어라, 내일 일하자 하고 예배 시간 전까지, 우리는 지금 예배를 열시 반에 보지요? 열시 반이지? ‘열시 반이니까 반 시간 걸릴 거라. 열시까지 일하면 바쁠 거고 그만 아홉시까지 일하고 열심히 일하고 한 시간 준비해 가지고 가자.’ 이래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까 와서 꼬박꼬박 졸면서 또 예배를 옳게 못 봅니다. 그거 이등입니까 삼등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그거는 삼등이라, 삼등. 삼등. 그것도 하면 안 돼요. 그라면 안 돼.
또 그 사람은 그저 예배 보는 시간만 지키면 되지 예배 보고 난 다음에는 그 남은 시간은 가서 자기 부지런히 다른 일을 하고 이렇게 해서 ‘남한테 핍박 들으면 안 된다. 남한테 못산다 하면 안 된다. 살림살이도 집도 구질구레 했다고 욕 얻어먹으면 안 된다. 부지런히 하자.’ 예배 보고 부지런히 가서 일해 가지고 그래 집안을 깨끗하게도 하고 자기 일도 감당을 하고 그렇게 주일 지키는 사람은 그게 일등입니까 이등입니까 삼등입니까 사등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그게 잘 해 봤자 사등밖에 안 돼. 사등이면 뭐 낙제인데 뭐. 사등밖에는 안 돼요.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이라니까 일 부지런히 해야 살림 못산다 소리 안 듣고 핍박 안 들을라 해 가지고. 일을 부지런히 한다고 해서 오전예배만 보고 안 보는 사람 그 사람 주일 지키는 사람이요 안 지키는 사람이요? 안 지키는 사람입니다.
‘오전에는 바쁘니까 오후에나 가자’ 오후예배 보는 사람 그 사람 주일 안 지키는 사람입니다. 주일 안 지키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또 주일날 예배 볼 때는 내비두고 예배 보기 전에는 아침에는 문을 열어놓고 아이들이 장사하고 자기 또 장년 예배 보고 와서는 또 자기가 장사하고 이렇게 모든 사업을 예배 보는 시간만 빼고 남은 시간 일하고 장사하는 그런 사람들 그 주일 지키는 겁니까 안 지키는 겁니까? 안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래라도, 안 지키는 게 낫습니까 지키는 게 낫습니까 안 지키는 게 낫소 지키는 게 낫소?지키는 게 낫습니다. 그라니까 그래라도 지키라고 권할 수밖에 없어.
그렇지만 그게 좋은 거는 아닙니다. 좋은 거는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나는 술장사 하는데 그래도 예수 믿어도 됩니까?’ ‘예, 괜찮습니다. 술장사 하며 예수 믿으십시오.’ 그라는 것은 술장사 하며 예수 믿으라는 그것은 그 사람이 일등으로 잘 믿지는 못할 사람이니까 우선 그래 믿으며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차차 그 불의의 사업은 모두 그만 둘 것이다 해서 그 사람이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그래 믿어도 됩니까? 그래 믿으면 되는 것 아니라. 안 되는 겁니다.
또 이제 밥 굶는 데 대해서 또 한번 합시다, 밥 굶는 데 대해서. 하루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다 굶고 주일 보는 사람과 또 아침 점심만 굶고 주일 보는 사람과 그 두 사람 가운데에 어느 사람이 일등입니까, 손가락으로? 자, 세 끼 굶는 사람이 일등인가 두 끼 굶는 사람이 일등인가 어느 사람이 일등인가? 자, 세 끼 굶는 사람이 일등이라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이소, 손가락? 두 끼 굶는 것이 일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가락 들어 봅시다. 그거는 모르는가배. 녜, 그것은 심사해 봐야 됩니다.
그 사람이 주일날은, 우리가 주일날은 몇 가지만 하면 된다 했지요? 손가락으로, 몇 가지만? 이 세 가지. 이 열한 가지 구속에 대해서 찾아 가지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점점 감사가 강해지고 뜨거워지는 그것이 우리 할 일, 감사를 기르는 것이 우리 할 일 하나, 하나는 예수님의 이 구속의 열한 가지 은혜를 받고 또 받고 받고 받아서 점점 충만케 하는 것이 또 하나 할 일, 또 셋째로는 뭐입니까? 이 두 가지를 연습하는 일, 이 두 가지를 연습하는 일, 알겠습니까? 이 두 가지를 연습하는 일. 그라니까 그날은 이 세 가지 할라 하니까 바쁩니다.
그런데 주일날 우리가 일 안 하는 것은 노는 날이라 일을 안 합니까 일을 할 시간도 여유의 힘도, 일을 할 수 없어서 안 합니까 노는 날이라 일을 안 합니까? 노는 날이라서 주일날은 일 안 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그날은 이 세 가지 할라 하면은 일을 할라 해야 할 수가 없어서, 일을 할래야 할 수가 없어서 못 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녜, 이것이라야 됩니다.
그러면, 그 밥을 세 끼 굶는 사람과 두 끼 굶는 사람, 세 끼 굶는 사람, 생각해 봐야 돼요. 그 사람이 세 끼 굶는데 ‘오늘 주일이라니까 오늘 주일날은 밥을 그래도 굶고 내가 예배를 봐야 되지’ 이라면서 아침 굶고 나니까 그만 점심 때는 배가 고픈데, 점심 때 예배 볼 때는 배가 고파서 자꾸 밥 생각만 나고 예배를 옳게 못 드립니다. 예배를 못 드립니다.
또 그 사람이 ‘그저 하루 굶으니까 주일날은 굶어야지’ 저녁을 안 먹어 놓으니까 잠도 안 옵니다. 잠도 안 오면서 그뭐 구원은 다 냅두고 자꾸 배고픈 것만 생각하고 ‘얼른 날이 새면 뭘 좀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 가지고 하루 세 끼 굶은 거 그거 의가 됩니까 마귀에게 속은 것 입니까? 마귀에게 속은 것이라.
그것은 자기 공연히 자기 주장으로 공명심, 자기로 하여금 의롭다 하기 위해서, 자기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 자랑하기 위해서,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거는 순종의 은혜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또 세 끼를 굶는데 아침 굶어도, 아침을 먹으니까 좀 띵띵한데 아침 굶으니까 주님의 이 세 가지가 더 잘 되고, 점심 굶으니까 더 잘 되고, 저녁을 굶으니까 뭐 밥 생각은 없고 이 세 가지가 더 잘 됩니다. 세 가지가 더 잘 돼서 자꾸 주님의 이 구속에 대해서 생각하니까 더 깊이 깊이 생각하는 것이 자꾸 눈물이 나오고 더 감사가 더 나오고 또 열한 가지 구속을 자기가 또 밥을 굶으니까 성경 봐도 더 생각이 나오고 더 은혜가 되고 설교 말씀도 더 은혜가 되고 자꾸 영감이 자꾸 더 와. 영감이 자꾸 충만해져. 자꾸 더 와.
이러니까 가만히 시험해 보니까 ‘내가 아침 굶고 점심을 굶으니까 이 세 가지가 더 잘 된다. 또 저녁을 먹나 안 먹나? 저녁을 안 먹어 보니까 더 잘 된다. 먹어 보니까 좀 덜 된다.’ 이래서 세 가지를 세 끼를 안 먹고, 주일날 세 끼를 안 먹고 이 세 가지 하는 그 사람은 이 세 끼 굶은 것이 그것이 의가 되겠습니까, 성신의 감화입니까 마귀 작용입니까? 성신의 감화입니다.
그러니까 세 끼 굶었다고 정죄할 수도 없고 또 의롭다 할 수도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오전에 말하기를, 자기 건강과 자기 형편과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그 조건에 따라서 해야 되지 남 보고 따라가면 안 돼요.
자기는 아침하고 점심하고 다 먹고 하니까 아침 먹고 할라 하니까 이 반사를 감당하는 데에 언제 뭐 아침 먹고 이래 갈라 하니까 좀 안 됐고 또 얼른 주일학교 예배 보고 난 다음에 퍼뜩 가서 밥 먹고 와야 되겠다고 좀 갈라 하다 보니까 그만 또 예배 시간이라 안 되고 ‘어라 이 아침은 굶어야 되겠다.’ 아침을 굶을 요량하고 딱 작정하고 굶을 요량하니까 오전 예배 주일학교 예배드리는 데에 다 지장이 없고 아무 거석이 없습니다. 그래 굶으면 지장받아 가며 먹어야 되겠소 굶어야 되겠소? 굶어야 돼, 굶어야 돼. 굶는 것이 더 의가 돼요. 주일 잘 지키는 거라.
또 그라고 아침은 굶었는데 아침 굶었으니까 나중에 점심을 닥치니까 배가 고프니 닥치니까 그만 입맛이 꿀떡꿀떡하니까 그만 과식이 돼 많이 먹게 됐다 말이오. 많이 먹게 돼서 많이 먹으니까 그만 배가 부르니까 피곤해서 자꾸 졸음이 와 가지고 오후예배 졸아집니다. 이러니까 ‘이거 안 됐다, 이거. 이러니까 나는 아침 굶고 낮에 점심을 먹으니까 피곤해서 졸아지니 안 되겠다. 그라면 굶어보자.’ 또 그래 또 한번 해 봐요. 경험해 봐.
또 한번은 점심을 안 먹었다 말이오. 점심을 안 먹어 놓으니까 안 먹으니 오후예배 볼 때에 보니까 점심 안 먹어 놓으니까 자꾸 배가 고픈 것이 자꾸 밥 생각도 나고 도리어 예배드리는 데에 정성이 안 되고 안 됐다 그말이오. 아이구 이거 이라면 먹어도 안 됐고 안 먹어도 안 됐고 어째야 되겠습니까? ‘어라 그라면 반만 먹어보자.’ 그래 인제 점심에 반 먹어요.
내가 여기 오전에 이래 설교를 했거든. 했더니마는 우리 ○집사님이 이라니까 오늘은 반밖에는 안 거석할 터이니까 함부레 이걸 좀 조화를 부려야 되겠다 싶어서 함부레 떠 가지고 와, ‘오늘은 밥을 반밖에 안 떴습니다’ 그전만치 뜨기는 떠놓고 ‘반밖에 안 떴습니다' 이래. 이래서 내가 있다가 그래 내가 ‘내가 집사님의 미혹에 빠지지 안합니다’ 그라고는 인제 오늘 낮에는 반만 먹고 딱 말았어요. 그라니까 몸이 가뿐하니 좀 괜찮아요. 그전에 그만 또 한 끼를 다 먹을 때에는 보니까 안 됐어. 그래 이거는 오늘 아침에 내가 연구해 가지고 이제 오늘 낮에부터 실시합니다. 오늘 인제 요다음에는 주일날 점심은 반 끼만 먹고 설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거 그만 낮에는 반 끼 먹으니까 괜찮다. 요게 됐다. 그러면 밤에는 어떻게 할까? 밤에는 배대로 먹을까? 밤에 배대로 먹고 이래 놓으니까 그만 밤에는 재독할 때부터 잠이 와서 그만 듣지도 못하겠고 이거 안 됐다.
이러면 반을 먹나 또 어짜노?’ 이거 또 이게 좀 문제라 말이오. 각각 달라요.
다른데, 그러니까 ‘이거 반을 먹고 그라면 하니까 재독할 때는 괜찮거든. 재독할 때는 괜찮은데 반 먹고 그라니까 아침 굶었지 점심 반 저녁 반 이래 했으니까 얼마? 두 끼 굶고 한 끼 먹은 택밖에 더 됩니까? 이래 놓으니까 그 이튿날 직장에 일하러 가니까 허덩허덩 하며 힘이 없어서 안 됐어. 또 안 돼.
또 계산해 가지고 또 계산을 해야 된다 말이오. ‘이거 안 됐다. 이러니까 낮에는 반 끼 저녁에는 예배 다 봤으니까 온 끼 먹자’ 온 끼 먹는데 많이 먹어 놓으니까 재독도 못 듣고 그만 야단이 납니다. 이러니까 ‘안 됐다. 이러면 나는 밤에는 한 끼만 정식으로 먹고 점심은 반 끼 먹고 이래 보자.’ 그라니까 조금 배가 고프고 좀 먹고 싶고 배가 좀 덜 찬듯 하지마는 재독도 들을 수 있고 재독 듣고 나서 누워 자고 나니 그 이튿날 일하는 데도 지장이 없거든.
이 보니까 이 사람은 낮에 반 끼 먹었지 그만 저녁에 또 그 한 끼밖에 안 먹었지, 이라니까 그 이튿날 일할라 하니까 허덩허덩하이 기운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째야 됩니까? 저녁에 어째야 됩니까? 저녁에 맘껏 먹어버려요, 그만. 한 두 그릇이든지 세 그릇이든지 맘껏 먹어버려요, 그만. 그 낮에 뭐, 사람은 영양을 취하는 게 있는데 이게 칼로리가 그만침 들어가야 되지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다 그 과학적이기 때문에. 저녁에 실컷 먹고 나니까 그만 재독은 듣지 못하고 그만 누워서 그만 자 버립니다. 자고 나니까 아침에 일어나니까 네시라. 그 새벽기도 되니까 가고 그라니까 몸이 거뿐한 게 소화도 잘되고 그 이튿날 일하러 가니까 일이 척척 잘 돼.
이러니까 자기로서, 다른 사람대로 따라 갈 게 아니라 자기는 자기대로 자기를 연구해야 됩니다.
따라합시다.자기를!연구하라!자기를 연구하라!자신을 연구하라!자신을 연구하라! 자기 연구는 자기라는 사람이 어떤지 그걸 연구하는 것을 자기 연구라 이랍니다.
또 자신 연구라 하는 것은 자기 신체를 연구하는 것이 자신 연구라. 자신은 자기 몸이라. 이제 자기와 자신을 조금 구별했어요.
그래 가지고 내 몸은 이러니까 그걸 알아서 잘 연구해 가지고 자기 몸을 잘 연구해 가지고 하면은 병이 안 납니다, 자기 몸을 잘 연구해 가지고 하면은. 또 자기라는 인격성을 잘 연구해 가지고 하면은 실수가 적고 실패가 적습니다. 자꾸 이래 가지고 뭣이든지 우리는 노력을 해야 되지 게을리 하면 안 돼요.
이러니까 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이제 아침밥을 못 먹는 데 아예 아침밥 안 먹기로 작정해야 편 소 먹을라고 허덕거리다 예배도 보지 못하고 그렇겠소? 이러니까 반사 선생님들 ‘예배 볼라니 배고파 안 됐다. 얼른 집에 가서 뛰어가서 밥먹어야지.’ 쫓아갔다가 또 밥 먹고 뛰어와 놓으니까 곤해서 그만 오전예배는 헛일이라. 저 한쪽에서 그만 자 버려요. 남, 학생들은 구원하고 저는 구원 못 얻어.
자, 그라면 아예 아침은 그만 굶기로 작정하든지 그리 안 하면 빵이라도 한 쪼가리 싸 가지고 있다가서 그만 가면서, 요새 뭐 군인들 빵 그거 이름 뭐이요, 그 빵? 무슨 빵이라? 뭐라 하노, 여기 말해 봐. 건빵, 마를 건자 그라니까 좀 알겠다.
건빵. 그거 건빵이라도 그만 얼마치 사 가지고 보켓트 넣어 가지고 이라면서 가면서 주걸주걸 먹으면서 자꾸 뭐라 하든지 ‘저거 길가 다니며 먹는다’ 하거나 말거나 주님 기뻐하시고 내 계산 맞으면 됐지 무슨 소용 있소? 그래 가지고라도 하고 이래 가지고 자꾸 연구해요. 그래서 남의 형편이 내 형편과 다르기 때문에 자기 형편, 자기 사정, 자기 몸, 자기 처지, 또 자기 습성, 또 자기 본성 본질, 형편, 사정, 처지 마구 이런 걸 연구해 가지고 거게 제일 이상적으로 맞은 것을 연구해 가지고 차차차 이래 해 나가면 됩니다. 꼭 그래 하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이 주일날은 어떤 것이 주일날인고 하니 주님이 죽으심으로 건설하신 공로, 죽으심으로 설정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공로에 소속한 은혜, 또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설정해 주신 공로 이 두 가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기초 작업은 주님의 세 가지 죽으심으로써 건설한 공로 가지고 다 이루고, 또 우리의 건설구원은 주님의 부활하심의 그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건설구원을 다 이루는 것인데 죽으심으로의 기초 공로는 재료가 되고 터가 되고 원동력이 되고, 부활하심으로써의 우리의 대속한 구원은 건설에 구비한 영감, 진리, 피의 혜택이 우리에게 있어 가지고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러면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이 뭐인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완성을 이루어 놓은 구원이 뭐인가? 우리는 선택받은 우리들인데 선택 받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 이룬 것이 무엇 무엇인가 한번 해 봅시다.
첫째는 우리의 범죄한 형을 대신해 가지고 대형으로 우리에게 세 가지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대형으로 세 가지 구원 이루어 주신 것은 뭐인고 하니 죄에 해방, 마귀에 해방, 사망에 해방 이래 가지고 이 세 군데서 해방한 무죄 자유를 줬습니다. 사죄 자유, 사죄와 자유를 줬습니다. 세 가지 자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세 가지 자유 줬고, 또 예수님의 한번 죽으신 죽으심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의 공심판을 우리 대신 행하기 위해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심판을 대신 이행하셔 가지고 주신 하나님의 의, 칭의, 칭의를 주셨습니다. 그라면 몇 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그라면 몇입니까? ○○○집사님은 몇이요? 손가락 들어 봐요. 몇? 왜 아까 둘 들다가 또 인제 서이 들어? 이제 그라면 네 가지지요? 네 가지.
또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과 불목된 것을 화목하기 위해서 화목의 제물로 당신이 화목시키기 위해서 당신이 모든 걸 다 바쳐 죽으셨습니다. 화목할라 하는데 화목을 못 하도록 마귀가 해 가지고 예수님이 화목하려는 걸 못 하도록 했는데 예수님은 화목하시는 것으로써 세상을 떴기 때문에 마귀는 실패했고 예수님은 화목을 성공했습니다. 다 했으니까 화목이 다 안 됐습니까? 그라면 몇 입니까? 다섯 가지. 다섯 가지 요것이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속해 주신 공로입니다. 알겠습니까? 다섯 가지. 이 다섯 가지.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주일날 죽어계실 때까지 당신이 하신 것은 이 다섯 가지를 완성하신 일을 했습니다. 완성하신 일 했고, 또 주일날 부활하심으로써 무슨 일 했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한 일이 있는데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대로의 영생, 또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대로의 영생, 또 예수님이 우리에게 천직으로 유업으로 주신, 대제사장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사장직의 연달, 또 선지직의 지금 연달ㅡ연습하고 자꾸 숙달시킨다 그말이오. 연달이라 말은 연습하고 숙달한다 말이오. 자꾸 숙달 달통이 된다 말이오, 숙달.ㅡ또 왕직 연달, 이라면 몇 입니까? 몇 입니까? 열. 열. 이래 가지고 우리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우리를 이렇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하는 것은 주님이 이것을 대신 다 해 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만족하게 돌릴 수 없지마는 내 대신 영광 돌리신 예수님의 이 부활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한 이 두 가지 생활, 또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 직책 생활, 또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만족히 영화롭게 존귀케 하는 이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신 생활 예수님의 요 여섯 가지 대속을 나 위해서 했기 때문에 그 대속을 내것으로 입고, 내가 요 대속을 입고 사는 생활만 계속하면, 계속하면 우리는 우리 건설구원은 완전히 되는 것입니다. 기초 위에 완전히 됩니다.
이래서, 그러면 기초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 기초, 기초 공로 설정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기초로 설정해 주신 공로,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 공로를 설정해 주신 것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좀 해 봐요. 가만 있지 말고 손가락으로 해 버릇 해요. 그래야 자라 올라가지. 몇 가지입니까? 다섯 가지, 다섯 가지.
또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셔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들과 같이 한다” 지금까지 같이 하고 계시요. 지금까지 같이 하고 계시는데 이제, 늘 같이 계시요.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하신다 했어요. 같이 하는데 같이 하심으로써 이 공로로써 우리에게 설정해 주신 이 건설구원의 공로는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요, 뻐뜩. 뻐뜩. 뻐뜩 들어 봐.
여게는 이라고, 또 여게 이라고, 쪼그마이 조거는 또 요란다. 얘, 너 이름이 뭐야? 저 쪼그만 게 요래. 한번 일어서 봐. 일어서 봐. 의자 위에 올라서 봐. 저게 이라고 있어. 몇이냐 하니까 이래. 이거 맞았어 안 맞았어요? 이거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맞았어, 맞았어. 할렐루야 박수 한번 합시다. 그 옆의 사람 아버지야? 아버지라? 아버지보다 더 잘 믿는 것 같다. 저거 잘 길러요. 잘 길러도 저게 대학을 졸업하면 자기 주관으로 가버립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오만 꾀 다 파고 뭐 요꾀 조꾀 파고 오만 장난 다 합니다. 안 돼. 어짜든지 변하지 안해야 돼. 여섯 가지, 여섯 가지.
그라면, 주일날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여섯 가지, 열한 가지를 똘똘 뭉쳐 가지고 열한 가지 요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알겠습니까? 주일날은 우리가 몇 가지 받는 날이 주일날이라요? 가리켜 봐요. 주일날 몇 가지 받는 날이 주일날인가? 몇 가지 받는 날이 주일날이라요? 벌써 여기는 둔해 갔다.
이래 이래. 자, 주일날은 몇 가지 우리가 주님 앞에 받는 날, 주님이 주시는 날, 우리는 몇 가지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까?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이래 열한 가지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이 중요합니다. 주일날을 연구하면 사람들이, 나 암만 설교해야 다른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기기 때문에 내가 그 설교를 자꾸 자주 못 해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도 주일날이지, 죽기 전에도 안식 후 첫날이라 그말이오. 변화산에 가서 변화하신 것도 주일날이지, 또 예루살렘에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실 것을 모형으로 한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에 왕으로 입성하신 것도 주일날이지, 또 부활하신 날도 주일날이지, 또 성령 강림도 주일날이지, 이렇게 주일날 모든 일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우리가 몇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요, 손가락으로? 또 저게도 서이는 뭐이야? 뭐 서이야? 저 한번 말해 보지. 자, 따라해요. 열한 가지.
손가락으로 열한 가지 해 봐. 옳지. 열한 가지 그래. 열한 가지야, 열한 가지.
열한 가지인데, 이제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또 부활하심으로 여섯 가지.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다 알지요? 사죄에 세 가지, 칭의에 한 가지, 화친에 한 가지, 다섯 가지. 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또 영생 두 가지, 또 뭐이요? 영생 두 가지, 또? 제사장, 선지, 왕직 또 세 가지 그라면 다섯 가지, 하나는 뭐이요?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 이거 다 주님이 해 놓은 것을 내것 삼으면 됩니다.
이라는데 이것을 언제 주시느냐 하면은 주일날 주십니다. 이 열한 가지를 자기 것으로 주실 때에 받는 날이 주일날이오. 주일날 받으면 이것을 뺏기지 않습니다.
‘주일날 열한 가지 받으면 그다음 주일은 뭐할라고?’ 첫째 주일에 열한 가지 받고, 또 둘째 주일에는? 둘째 주일에 또 열한 가지 더 충만히 받고, 셋째 주일에 더 충만히, 넷째 주일에 더 충만히, 다섯째 주일에 더 충만히, 자꾸 충만 충만 자꾸 충만히 받습니다. 주일날 이 열한 가지를 받은 것만치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받은 것만치 이 열한 가지에 대해서 능력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열한 가지 구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실력을, 그 실존을, 그 실상을 언제 받습니까? 주일날 받아, 주일날.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주일날 안 받은 자는, 주일날 안 받은 자는 다른 날 암만 입술로 그래 쌓아도 제게 없기 때문에 그대로 살지를 못해요.
그러면 열한 가지 이 능력은, 이 열한 가지 능력은 어떻습니까? 미국의 대통령 얻는 것만 합니까 못합니까? 이 열한 가지 능력은 얼마나 있어요? 저 ○집사님 말해 봐요. 얼마나 있습니까, 열한 가지 능력? 누구만치 있지요? 왕만치 있는가? 어떻게? 뭐라 해? 이래 가리켜요. 하나님만치 있다고.
우리 오층에 있는 우리 ○집사님은 뭐꼬 벙어리노릇 잘해요, 벙어리노릇. 이래 가지고 이래 어째 가리키면 말 다 알아듣습니다. 이런데 그것도 좀 해 버릇 해.
나는 벙어리들, 한번 해수욕 가서 보니까 벙어리들이 모였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그거 구경했어요. 이래 보니까 저거끼리 이라는데 뭐 이거 가지고 다 해요. 이 손가락 가지고 다 해.
그 능력은 이거라. 이거 뭐이요? 제일 이거 왕이라는 것 아니겠소? 제일이라, 제일. 전능의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능력을 받으면 이 능력을 능가할 세력이 세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없어요. 주일날 눈꼽재기만치 받았으면 그거는 세상이 없앨래야 없애지 못해요. 항상 눈꼽재기만치 합니다. 그 열한 가지 그만치 그게 있어요. 주일날 주먹덩이만치 받으면 그 사람에게는 뭐 어떤 파란 속을 거쳐도 주먹덩이만치는 열한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주일날 받은 것만치 있습니다. 요거 꼭 기억하십시오. 주일날 받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받는데 온 세상을 이길라면은 뭣만치 받으면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우리 저 ○장로님? 온 세상을 이기는 것을 주일날 받을라면 그 얼마나 받으면 될까요? 한번 대답해 봐요. 주저주저하는구만. 인제 그 왕이 벌받아야지. ○조사님 대답해 봐. 둘다 먹통이다. ○○○목사님? 주님같이. 세상을 이길 만치만 받으면 되지요. 답이 바로 됐어요 못 됐어요? 녜, 세상보다 좀 더 받으면 돼. 세상보다 좀 더 받으면 돼요.
이러니까, 자, 우리가 그라면 세상을 이길라면은 뭣 가지고 이기요? 육신의 힘 가지고 이기요? 이 열한 가지 능력 가지고 이깁니다. 이 열한 가지는 무슨 능력인데? 이 열한 가지는 전지 전능입니다. 이 열한 가지는 전부 신적 요소요.
성령도 하나님이시요, 영감도 하나님의 것이요, 또 왕 같은 제사장도ㅡ이 제사장이 내나 예수님이 대제사장 아닙니까?ㅡ하나님의 것이요, 선지자도 하나님의 것이요, 왕도 하나님의 것이요 열한 가지 예수님이 구속해 주신 이 전부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거는 전지 전능의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사람이 계산하다가 계산이 꼰지가 서 놓으면 하루 종일 해도 못 맞춥니다. 그럴 때는 그만 가만히 바깥에 좀 쉬고 거기 가야 대번 싹 맞추지. 제가 앉았으면 계산이 꼰지가 서지면 안 맞아요. 이거 모양으로 자꾸 계산이 꺼꾸로 돼 놓으면 안 돼.
이러니까 이 열한 가지 주님의 구속이 이게 전부 다 전능이요 전지요 완전이요 영원이요 불변이요 이 전부 이는 완전입니다, 이 완전.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능력인데 이 능력이 있는 만치는 세상이 해하지 못합니다. 비유컨대 여게 불이 있는데 성냥불을 탁 켜 가지고 확 불어 끄니까 그 성냥 끄터머리에 불이 빛이 있소 없소? 빛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냥 불 이래 딱 그렸다가서 확 불어 끄면 그 끄트머리에 빨간 불이 있어 없어, 학생들? 있지? 그 조그만하지? 쪼그만해도 마구 이 우주에 어두움이 깜깜할 때에 그놈이 이리 대들면은 이기요? 빛을 이길 어두움이 있어? 이 빛을 이길 어두움이 있어? 없어.
막 이래 흔드니까 막 이리 가면 척척 비끼고 저리 가면 척척 비끼고 제마음 대로 가도 어두움이 하나도 건드리지 못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 능력을 가진 것만치 세상을 이깁니다.
그런데 이 능력을 우리가 받는 데는 언제 받아요? 주일날 받아요, 주일날.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주님의 죽으심의 절정이요 주님의 부활하심의 절정인 요 두 가지 절정이 딱 마주 떨어 가지고 음전기 양전기 두 전기가 이래 탁 그러니까 ‘꽝!’ 이렇게 지금 하는 것 모양으로 이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가 일치될 때에 우리에게 큰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주일날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은혜를 받을라고 하니까 다른 일 할 여가가 없어. 밥도 안 먹고는 또 안 되겠어. 이러니까 이 날은 다른 일 하지 안하고 여게다가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라는 것이지 뭐 놀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이런데 미국 나라서는 이제 타락해 가지고 그만 주말이라, 일주간 중에 끝날 주말은 놀러가는 날이라. 그거 나를 미국에 뉘가 데리려 놓으면 말이요, 내가 가자 해도 안 가요. 가기만 하면 내가 주말에 대해서 한번 벼락을 때릴라고 내가 한번 하고 있습니다. 내가 트루먼 대통령 한번 내가 호통을 한번 칠지 몰라,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마는.
6.25 때 그날이 토요일인데 그때 그만 그때 그 한 장 명령을 내렸으면 아무 일 없는 건데 그 명령을 내리지 안하고 중얼중얼하고 ‘우리 주말인데 놀러 가는데 귀찮게 하고 있다’ 놀러 갔다 오니까 그만 6.25 지금 전쟁이 벌써 벌어져 버렸다 말이오.
그런데 거게는 인제 토요일날 주일 준비하는 반날인 줄을 모르고 그 날은 노는 날이라 했으니까 얼마나 엉망입니까? 그런 것을 내가 뭐 마이크 대고 고함을 질러 외쳐도 미국 사람 아무도 항거할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데다 항거할 거야, 항거하기를? 그런데 우리는 거게 가서는 그래도 여기서는 뭐, 여기서도 우리는 자유 있지마는 토요일날 일만 하고 준비하지 안해요. 이제 오늘 지금부터는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일하고 오후부터는 심방해서 전도하기로 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는데 자유 있어서 그렇게 할 사람 손 들어 봐. 아이구 몇 사람 없다.
자, 우리 여기 ○○전자는 우리 교인들이 한 사오십 명 되는데 거게는 그냥 그렇다고 그만 토요일날 오후에 쉬어버리면 공장 그거 절단납니다. 문 닫습니다.
내가 말했지요. 직공들 다 모아 놓고 ‘자, 우리는 이래 주일 준비할라면은 토요일날 오전만 하고 오후부터는 일 안 해야 되는데 오늘까지는 통계가 요렇게 요렇게 통계가 나와 가지고 일 능률은 얼마 올랐고 수입은 얼마 됐고 요렇다.
요렇다.’ 그라면 월요일 딱 선포하기를 ‘요번에 닷새 반 동안 하고 토요일부터는 주일 준비하러 딱 쉴 터인데 그때 능률 오르는 것이 이 토요일날 다섯시까지 하는 것보다 나으면은 그만 이다음부터는 자꾸 그래 할 것이고 만일 그만 못하면 너희들은 주일 준비할 자격은 없다.’ 이렇게 선포해 놔요.
알겠습니까? 그래야 회사도 잘 되고 교인도 잘 되고 하나님 기뻐하시고 다 잘 되지. 그거 그래야 돼요. 우리 살 길이 있어요.
그래, 이제 이 주일날은 두 가지를 몽뚱거려서 주는 날인데 그러면 이날은 토요일날부터 준비하면 토요일날 주일 잘 지킬 것 준비하고 모두 다 다른 사람과 인인 관계 다 정리하고 사물 관계에 정리하고 또 자기에게 소속한 식구 있으면 주일 잘 지키도록 준비 시키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또 뭐해야 돼? 뭐해야 돼요? 목욕도 하고, 또 헌옷이라도 빨아서 또 입고, 또 그라고 아이들은 주일날 귀찮다 하거든. 그라니까 그거 살살 꼬우고 달래아 돼요. 달래야 되니까 시장도 많이 봐 가지고 그날은 미리 딱 해 놔요. 미리 딱 해 놓고 떡 아침 조금 잘해 주고 점심 도시락은 잘 싸요. 이래 놓으니까 ‘야 오늘 예배다’ 가 가지고 점심 하니까 ‘아이고 엄마 이거 오늘 무슨 날이요, 이거?’ ‘무슨 날이야? 오늘 주일날 아니가? 주일날이니까 주일날 하나님 공경하고 축복받는데 잘 먹어야지.’ 이래 놓으면 인제 아이들이 그거 안다 말이오. 자꾸 ‘아이구 그날 주일날’ 형님이 동생한테 동생이 형님한테 ‘주일날 그날 그거 참 맛있더라. 요번 주일에도 해 줄 건가?’ 이래 놓으니까 있다가서 ‘엄마 언제가 주일날, 주일날 며칠 남았어요?’ ‘야, 오늘이 며칠 안 남았나?' `그날 또 맛있는 것 해 줄라요?’ 이래 놓으니까 음식 때문에 주일 기다리는 거라. 그래 살살 하다가 이제 맛있는 음식 먹고 주일 예배 잘 드려서 은혜 받고 나면은 그다음부터는 주일날이 제일이야.
이래서 탄일날을 설로 만들어 가지고 모두 탄일 이래 잘 새기 때문에 그만 지금 미국같은 그런 나라에는 설이 없어요. 탄일날이 설이지. 그래 자꾸 이모 저모로 모두 입체적으로 말이요, 입체적으로 이리도 저리도 앞뒤로 전부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예수를 믿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돼지는 것이지 그저 ‘예수 믿어라, 예배당에 가거라, 자꾸 기도해라, 예수 잘 믿어라.’ 이 말만 해 가지고는 되는 게 아니라 그거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한 것은 이거 참 너무 시간이 가서 그것만 아십시오.
여게 말씀하시기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성전이라. 성전에는 이 열한 가지 구속이 다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성전에. 오만 것 다 그 모든 기관들 다 보면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예수님은 성전이신데, 그러면 예수님은 성전이신데 예수님은 열한 가지 구속입니다.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예수님은 성전이신데 예수님은 열한 가지 구속입니다. 요 말이 건너갑니까?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은 죄에 해방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해방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 해방입니다. 맞습니까? 맞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공법을 다 이행한 하나님의 의입니다. 맞습니까? 또 예수님은 하나님과 화친이십니다. 맞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영생입니다. 맞습니까? 예수님은 진리의 영생입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예수님은 제사장이라. 우리는 그분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연결돼 가지고 대제사장입니다. 알겠습니까? 연결돼 가지고 대제사장이라요.
내가 이 옷을 입고 있지 안해요? 옷을 입고 있는데 옷을 입고 있다 말이오. 옷이 백 목사 아니지. 옷을 입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있다가서 ‘목사님 갑시다.
갑시다.’ 끌면 `목사님 갑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있다가서 ‘여보, 그거 뭘 그걸 자꾸 거머쥐고 하느냐?’ 하니까 우리 백 목사님 아니냐고. 이게 백 목사입니까? 내가 입었으니 이게 백 목사라. 알겠소? 이거 끌며 자꾸 가자 하면 되는 거라. 백 목사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이 목사를 그라며, 이 목사를 욕을 하면 이 옷을 거머쥐고 욕을 하면 백 목사 욕이 돼요.
이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시요 우리의 선지자시요 우리의 왕이시요 그분과 우리와 연결이 돼 가지고 되기 때문에 그럴 뿐 아니라 실은 그분이 또 공로를 베풀어 이래 만들어 냈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제사장 만드신 이가 예수님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 됩니까 안 됩니까? 하나님의 찬미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인데 그 영광의 찬미는 우리 것입니까 우리 것 아닙니까? 우리 것이라.
이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는데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은 예수는 이 열한 가지 구속의 공로의 전부라, 완전이라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구속의 이 공로를 우리는 다 가졌습니까 조금 가졌습니까? 다 가졌습니까 조금씩 가졌습니까? 우리 영은 다 가졌습니다. 다 가졌으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러니까 그러면 이 주일날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하나님 섬기는 것은, 섬기는 것이 은혜 받는 것인데 하나님 섬기는 건 어떤 게 하나님 섬기는 것인가? 이 열한 가지 구속을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이 열한 가지 구속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이 열한 가지 구속의 근본되는 이 권능을 받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또 이 열한 가지 구속을 깨닫고 감사하고 받아서 가지고, 감사하면서 가진 것을 또 감사 연습 가진 연습 이 자꾸 연습 하는 것이 그것이 뭐하는 겁니까? 주일 지키는 것이요,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그것이 성전노릇 하는 것이요, 그것이 예수님의 지체노릇 하는 것이요,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저 뒤에는 얼떨떨한갑다. 틀림 없어요. 이러니까 이 재독을 한 열 번이나 한 몇십 번 들어요. 몇십 번 들어.
오늘 아침에 내가 어떤 분 만나 가지고, 그분이 예수를 잘 믿을라고 애를 쓰는 분인데 내가 오늘 늦게 보니까, 여기 왔는가 모르겠어. 왔으면 손 한번 들라 하면 좋지마는 안 하겠어. 이제 여기서 보니까 어떤 분이 뭣인가 갈급해서 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를 내가 가 가지고 그걸 좀 뭘 좀 그래도 좀 면제해 줘야 되겠다, 내가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와 줘야 되겠다 하고 가서 딱 만나 가지고 얘기하니까 내가 도울 그런 점이 있어요.
그래서 아침에 내가 좀 돕는 얘기를 하고 말하기를 ‘어짜든지 그 문제는 여게 와 가지고 이 오전 오후 설교하거들랑 테이프를 사십시오. 사 가지고 집에 가서 녹음기 대 놓고 틀어 가지고 그저 하나 열 번씩만 듣고 열 번 들으면 자기와 자기 생활과 그 말씀과 대조해 보고 또 대조해 보고 이래서 열 번 대조해 보면 귀가 열릴 거고 또 새로 대조해 보면 능력 받을 것이고 자꾸 그래 해 보십시오.’ 이렇게 말했는데 그분이 여게 오전 오후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왔으면 살아납니다, 왔으면 살아나.
자, 따라합시다.살리는 것은 영이니!육은 무익하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라 말은 살리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진리요 영감입니다. 딴거는 살리지 못해. “육은 무익하니라” 이 인간의 지식 인간 말은 그까짓 거 암만 해 봐도 사람 속이는 것뿐이지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주일에 대해서 확정을 해요. 확정을 하고 요대로 꼭 실행을 한번 해 봐요.
주일에 대한 똑똑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주일을 지키는 데에 정상적으로 주일을 지켜 가지고, 잘 지켰나 못 지켰나 하는 것은 그 결과에 효력이 왔나 안 왔나? 효력 오면은 이 세상을 그만치 이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