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바꿔라

 

1987. 12. 4. 새벽 (금)

 

본문:요한일서 5장 5절∼12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 증거라는 말씀을 많이 나타냈습니다, 증거. 증거라는 말씀을 많이 했는데 이  증거를 이렇다 저렇다 그렇게 알려 주는 그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증거는  알린다는 것이요 증거는 나타낸다는 뜻이 더 중요하게 들어 있습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그러면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우리에게  나타내서 알리는 이는 성령이시라.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나타내는 이, 나타내는  것은 소리로도 나타낼 수 있고, 또 행동으로도 나타낼 수 있고, 또 자체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하나 증거할 때에 ‘그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라’ 말로  증거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나와 가지고 행동하면서 ‘이 행동하는 지금 이 일  하고 있는 이분이 이라’ 그렇게 증거할 수도 있고, 또 그 사람이 나타나 가지고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 이렇게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나타내는 방편은  말로도 할 수 있고, 또 행동으로도 할 수 있고, 또 자체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누구를? 예수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이도  성령이요, 또 예수님의 그 행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그 역사를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이도 성령이시요, 예수님 자체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이도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니라” 곧 성령은 또 진리입니다. 성령은 그 역사가 진리로만  역사하고 바로 ‘진리’ 하면, `진리' 하면 참된 이치인데 `진리' 하면 참된  이치나 인격이 없습니다. ‘진리’ 하면 살아 있는 인격이 없는데 `성령' 하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격 그 우리의 인격과 같은 인격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은 진리라” 그말은 인격 같은 생존하신 인격을, 인격이라면  사람의 격위를 가리켜서 인격이라고 말하고 신격이라 말은 하나님의 격위를  가리켜서 신격이라 말합니다. 인격은 신격의 모형이요 그림자요 인격의 원형은  신격입니다.

“성령은 진리라” 성령은 곧 그분은 참된 이치라. ‘이치’ 하면 격위가 없기  때문에 ‘성령’ 하면 격위가 있고, 격위 있는 성령이신데 곧 성령은 참된 이치라  그말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하는 것은 셋이 나타낸다  말입니다. 셋이 지식으로도 알려 주고, 또 행위로도 알려 주고, 자체로도 알려  주고, 그러면 어떻게 증거하는가? 증거하는 이는 셋이니 셋이 뭣뭐 셋인가?  “성령과 물과 피라”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그러면 이 셋이 증거를 하는데, 증거를 하는데 증거는 그 위에 많지마는 간단하게  여러분들 정도로서 알려고 하면 증거하는 것이 증거하는 그 방편이 몇 가지라고  오늘 아침에 배웠습니까? 증거하는 방편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추워도 손 내 봐요, 이래. 셋.

그러면 우리에게 지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서 지식으로 우리가 받아서 알게도  하고, 또 행위로 우리에게 나타내서 행위로 우리가 받아서 증거를 받게도 하고, 또  자체를 우리에게 나타내서 증거를 받게 합니다.

그러면 “성령과 물과 피라” 물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성령은 하나님이신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과 물과 피” 피를 뒤에 말한 것은 이것은,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이런데  또 예수님이 피공로 베푸신 것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또 베푸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      t3  t2피” 성령과 진리 피공로 이 셋은 어느 것을  앞에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다 하나입니다. 하나입니다. 역사가 성령을 먼저  말해도 되고, 피를 먼저 말해도 되고, 진리를 먼저 말해도 됩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이 셋이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다. 그러면 우리가 지식으로 받아서 아는  데도, 행위로 우리가 받아서 가지는 데도, 또 자체로 받아서 가지는 데도 이 셋의  역사로만 가질 수 있지, 내가 그러면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아는 데도 이 셋의 증거로 우리가 알게  되고, 또 예수님의 그 행위가 내게 나타나 가지고서 내 행위가 되어서 나타내는  것도 이 셋으로 말미암아 되고, 또 예수님 자체가 우리에게 나타나 가지고서 내가  예수님의 자체의 모형이 되는 것도 이 셋으로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주님이 지식으로 증거하면 우리가 지식으로 증거합니다. 지식으로  증거받아 가지고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렇다 증거합니다. 행위로 우리에게  증거해 주실 때는 우리가 그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 나타냅니다. 또 자체로  증거할 때는 우리 자체가 예수님 자체와 꼭 같은 자체로서 타나내서 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요 지식을 알면 아는 것만치 또 다른 데에  나타내게 됩니다. 아는 것만치 필연적으로 나타납니다. 또 행위를 내가 행위의  증거를 받은 것만치 나는 행위로 이 세상에 나타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자체로  증거를 받았으면 내 자체가 예수님의 자체로 증거받아 예수님의 자체화됐기  때문에 내 자체로 또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피와 성령과 진리” 또 “성령과 진리와 피” 물은 진리를 말합니다.

물은 진리를 여게 말했습니다. “물과 성신으로 거듭난다” 그러면 물로 뭐이  거듭납니까? 물이 뭐인데? 물 그거야 하나님이 주신 좋은 우리에 선물은  선물이지만 물이 무슨 사람을 영생으로 살아나게 합니까? 이것은 물이라 말은  진리를 가리켜서 물로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1장에는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되지 않고 항상 계시는 하나님 말씀의 씨로 됐다”  이랬어, 말씀의 씨. 말씀의 씨로 됐다 했는데 다른 데는 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이랬어.

그러기 때문에, 요런 것 하나 가져야 돼요. ‘물’ 하면, `물은 곧 진리를 말한  것이다’ 이래야 되지 이것도 똑똑히 믿지 못하면 이걸 가지고서 이 말씀을  ‘물은 진리라’ 이러니까 물로 가지고 이래 많이 말해 놨는데 물은 진리라는  것을 믿지 않는 그자가 무슨 이 진리에 관해서 알겠소? 하나도 모르지.

그런데 여게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증거가 있다 말은 몇 가지가 있다 말입니까, 증거가 있다 말은? 몇 가지 있다  말이요,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 뭐 춥기는 뭐? 세 가지로 있다 말이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무슨 증거? 자기 안에 진리가  있어. 자기 안에 영감이 있어. 자기 안에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가 있어.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은 뭐입니까?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이 뭘 믿지  않는 것이요 몇 가지 믿지 않는 것입니까? 세 가지를 믿지 않는 것이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이러니까 진리도 다 부인하고, 영감도  부인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도 부인하는 자라 그말이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또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그러면 증거는 뭣이냐 하면, 증거받은 자는, 증거받은 자는 뭣이 있습니까?  증거받은 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영생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고  생명이 있는데 그러면 생명이 몇 가지가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가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그러면 또 영생은 뭣이 행동한 것이 영생이  됩니까? 몇 가지가 행동한 게 영생이 됩니까? 세 가지가 행동한 게 영생이  됩니다. 요것을 자기가 눈감고 명상해서 알면 요것이 통해서 하나가 돼야 되지  이걸 모르면 헛일입니다.

또 이걸 알아도 앎으로써, 증거를 받는 것은 뭣이냐? 증거를 받는 것은 자기 안에  피와 성령과 진리가 자기 안에 주권이 돼야 되지 주권이 되지 안하고 자기가  주장이 돼 가지고, 자기가 주장이 돼 가지고ㅡ하나님의 이 진리에게 피동돼,  자기는 죽어버리고 이 진리가 와 가지고 자기를 주장해서 이런 사람 있고 자기가  살아 가지고 이 진리를 이용합니다. 이용하는 그자는 암만 뭐 성경 학자가 되고  성경 박사가 되고 아무리 유명한 목사가 돼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것은 가짜,  생명은 없어.

생명 없는 것은 뭣이냐? 농장에 가면, 농장에 가면 농장에 제일 일 많이 하는  것이 뭣입니까? 저 농장에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쟁기가 제일 많이 합니다. 쟁기가  제일 많이 해도 쟁기는 생명은 없어, 그것은 농사짓는 데 이용만 당하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 이용만 당하지 저는 산 자가 아닙니다. 제게는 생명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악을 버려야 돼! 자기 중심을 버려야 되지 자기 중심 가지고서  예수 믿는 거는 암만 믿어봤자, 장로노릇 하고, 목사노릇 하고, 뭐 권사노릇 하고,  집사노릇 하고 암만 해봤자 자기를 죽이지 못해서 자기가 주장하는 자는 그것은  하나님의 이 복음 운동에 도구로 이용은 되지만 저는 산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기구가, 농구가 필요한 농구라도 농구를 누가 호주라 하고,  농구를 누가 자기 아내라 하고, 농구를 누가 자기 자녀라 하고, 농구를 누가 저거  식구라고 합니까, 그것은? 기구지.

이와 마찬가지로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러면  이 아들이 예수님이신데 이 예수님이 몇 가지로 왔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몇  가지로 왔소?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요. 버뜩 한번 들어 봐, 좀. 뻐뜩 들어  알구로, 좀. 그래, 예수님이 세 가지로 왔습니다. 성령과 진리와 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자기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이랬는데 아들이  그러면 우리 안에 몇 가지로 있습니까? ○○○장로님? 아들이 우리 안에 몇  가지로 있습니까? ○장로님? 아들이 우리에게 몇 가지로 있습니까?  ○○○집사님? 뻐뜩 들어 봐. 안 보이네. 세 가지로 있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진리가 있을 때에는낑  셋은 하나입니다.

    있으면 반드시 영감과 피가 같이 있고, 피 있어도 진리와 영감이 같이 있고,  또 영감이 있어도 피와 영감과 진리가 같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뭣이 우리 안에 있을 때입니까 뭣이  우리 안에 있을 때요? ○○○씨? 뭣이? 말로 해 봐.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  안에 계실 때입니다. 그러면 하나만 있을 수 있습니까 셋이 한목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만 있을 수 있어요? 하나만 따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 못 있어. 있으면 셋이 함께 있고 없으면 셋이 다 없어.

그런고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뭐라 했습니까?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 생명은 고기덩어리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새사람의 생명을 말하는 건데 새사람의  생명이 영에게 있는 걸 말하는 게 아니고 이 심신에게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심신이 이 생명 생활을 할 수 있다 말이오. 심신이 생명 생활하면  그것이 다 영생입니다. 이러니 심신이 생명 생활을 하려고 하면, 심신이 생명  생활을 하려고 하면 우리가, 생명 생활을 하려고 하면 생명 생활은 뭣이 생명  생활이지요? 생명 생활은 뭣이 생명 생활입니까? 생명 생활은 뭣이 생명  생활이요? ○○○씨? 생명 생활은 뭣이 생명 생활이요? 생명 생활은 뭣이 생명  생활이라? 저 ○선생? 생명 생활은 피로 사는 것이요, 영감으로 사는 것이요,  진리로 사는 게 생명 생활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것이 생명 생활인데 생명 생활을 하려면 누구를  모셔야 됩니까? 누가 있어야 생명이 있습니까? 아들이 있어야 생명이 있어.

그러니까 제일 우리가 쉬운 것이 주님을 생각해서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면,  모시면,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면 모실 때 ‘주님 내 안에 계셔 주시옵소서 나를  주장해 주옵소서’ 이러면 주님만 자꾸 생각하고    b지 못하면 안 됩니다. 주님  생각할 때에 주님 생각하면 곧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하면 진리가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장해 주옵소서 하는 그말이요,  영감이 내 안에 계셔 주장하여 주십시오 하는 말이요, 주님의 피공로가 내 안에  있어서 주장하여 주십시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잡기가 뭣이 쉽습니까? 진리 잡기가 쉽소, 영감 잡기가 쉽소,  예수님의 피 잡기가 쉽소, 예수님 잡기가 쉽소? 뭘 생각하기가 쉽습니까? 뭘 자기  안에 모시기가 쉽소? 예수님이 제일 쉬워. 주님이 쉬워. ‘주님’ 하면 벌써  연결이 되기 때문에 ‘주님’ 하고 난 다음에 주님을 영접해 가지고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피공로 영접해. 그건, 그 영접하는 건 뭘로? 생각하는 것이라.

진리를 생각하고, 진리 생각하고 나면 진리 생각하고 난 다음에 한참 생각해서  진리를 바로 올바로 생각하면 뭐 생각하게 됩니까? 영감 생각하게 돼. 진리와  영감 생각하면 그다음에 뭐 생각하게 됩니까? 예수님의 피공로 생각하고 깨닫게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잊어버린 때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 생활이 우리  마음이나 무엇이 주님이 오셔서 내 마음을 주장해 가지고 움직일 수도 있고 주님  없이 내 마음을 내가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가 움직일 때에는 내 마음을 누가 주장하는 것입니까? 누가  주장하는 것이요? 옛사람이 주장하는 것이요, 내 마음을 옛사람이 주장하는  것이오. 옛사람이 주장하면 옛사람이 주장하는 건 뭣이 주장하는 것이 옛사람이  주장하는 것입니까? 뭣이 주장하는 게 옛사람이 주장하는 것이지요? 몇이  주장하는 게 옛사람이 주장하는 것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악령, 악성, 악습.

악령은 자기 중심의 귀신을 악령이라 말합니다. 악성은 자기 중심의 인간 그것을  가리켜서 악성이라 합니다. 인간의 본성. 자기 중심의 본성. 자기 중심의 본성  그놈이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제게 유익하도록, 뭐 서로 얘기할 때 내게 유익하도록 ‘나를 욕한다’ 나! 나!  그놈이 뭣입니까? 그놈이 딴말로 하면 뭣이요? 악성! 악성! 따라합시다.악성!악성!악성!우리 원수 악성!우리 원수 악성!우리 원수 악성!자기  중심 원수!자기 중심인 우리 원수!자기 중심인 우리 원수! 이놈 죽이기 전에는 이놈을 원수로 삼기 전에는 구원은 헛일입니다. 영생은  헛일이라. 기본구원만 있지.

인간들 말 들어 봐서 벌써 그게 자기 중심으로 얘기하면 그만 밉소. 왜? 그런 건  죽여야 됩니다, 미울 게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참 영의 사람은 이제 자기 중심의  인간이라 하면 벌써 겉어머리 미운 것을 나타낼 수가 없어 그렇지 행동은 밉고  속에 주격자 놈은 ‘요놈을 죽여야 될 터인데!’ 그놈을 죽여야 돼.

항상, 이런데 예수 믿는 평소에 예수 믿는 것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돼도 자기  중심으로 자기 중심 옛사람 그놈을 치켜 올리면 좋다 하고 그놈을 치면 싫다  하는 그까짓 게 무슨 영생을 얻어! 그것 믿으나 안 믿으나 한가지라. 영으로  하늘나라 가는 건 가는 것이고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자기 중심 그것이 원죄입니다. 자기 중심이 그게 원죄요. 자기  중심. 어데서든지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좋게, 그러면 영감과 진리와  피로 움직이지 안하는 그 마음은 뭘로 움직이요? 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요, 자기  중심 원죄 악성으로 움직이는 것이요, 또 악습인 죄악의 습성 그걸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걸 죽여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런 것이 자꾸 암만 들어봐야, 나중에 여러분들이 들으면 길바닥 됩니다. 길바닥  돼. 왜? 듣고는 새김질해서 자꾸 명상하고 생각해서 이로 인해 자체가 변화가  돼야 되지 변화 안 되고 들어 버리고 들어 버리고 이래 버리면 그만 자기 심령이  굳어져서 한번 듣고 두 번 들으면 처음에 들을 때와 좀 다르고 또 몇 번 들으면  다르고 자꾸 마비가 돼 가지고서, 그게 뭣이냐? 길바닥이라 그거요, 길바닥.

이러니까 듣고는 새겨야 될 터인데 새김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뭣인가? 보면  변화가 되는 사람이 있어요. 암만 죄 지어도 변화되는 사람 있습니다. 과거에  김재순씨라 하는 분이 아주 뭐 그 사람이 칠계를 얼마나 범하고 이런 사람이라.

몇 군데나 돌아다니고 이런 사람이라. 그래도 내가 심방 가 가지고서, 이  권사들이오. 다 신윤필 집사님 집에 갔었는데 ‘여러분들보다 김재순이가 훨씬  영은 자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주를 위해서 순교할 때면 순교합니다.

여러분들은 다 내놔. 속에 주님이 안 계셔.’ 내가 그런 말 했어. 그 말한 걸  기억해요, 누가 기억하는 사람 있어요? 녜, ○○○권사님 기억했다 하는데 다른  사람은, 저기도 모두 기억했네. 그래요. 그분은 순교해도 여러분들은 순교 못 한다  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어. 많이 달라졌어.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주인을 바꿔야  됩니다. 주인을 바꾸기 전에는 장 옛사람 그놈만 기르고 있는 거요. 주인을  바꿔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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