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바꾸라

 

1988. 11. 12. 토새벽

 

본문: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 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그  신앙생활 하기에 애로가 없으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 안 하고 세상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애로가 있는데 그 애로가 처음에 애로가 있고 애로 뒤에 평안이 있는  그런 방편이 있고 또 처음에 평안하고 뒤에 애로가 있는  그런 방편이 있습니다. 애로는 꼭 있습 니다. 꼭 있는데 그 애로가 처음 있느냐 나중  있느냐? 평안이 처음 있느냐 나중 있 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됩니다.

세상하고 내가 하나됨으로 평안을 가지는 그 평안은 당장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안 끝에 애로로 변해집니다. 또 하늘에  속한 그 신앙 행위에는 처음에는 고통 이 있고 뒤에 평안이 있습니다 꼭 평안과 고통이 없는 사람  없습니다. 꼭 있습니다.

있는데 그것이 처음에 있느냐 나중에 있느냐 하는 그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십자가는 먼저 죽고  뒤에 삼 일 만에 부활해서 이제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그러면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처음에 고통이 있고 고통스러운 그 고통을  이겨서 고개를 넘으면 그 다음에 오는 평안은 세상이 빼앗아가지 못하는 영원한 평안이 됩니다.

그러나, 우선 평안을 원해서 이렇게 사는 그  걸음이 뭐인고 하니 육체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요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것이니 육체의 소욕과 육체의  생각대로 사는 그 결과는 뭐라고 했습니까? 그 결과는 뭐입니까?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장차 사망이 겠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반드시 사는 그때에 마찰이 옵니 다. 왜? 세상은 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마귀 세상이 돼 가저고  있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뜻은 의로운데 세상은 죄악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시작하면 그만 여러가지 애로 있고  마찰 옵니 다. 그게 뭐인가? 그것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나 를 좇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럴때에 사람이 그 어려움을 닥쳐도 자기가 어려움을 닥쳤지 십자가의  도를 배반 치 않는 사람, 자기가 어떤 어려움을 닥쳐도 마지막에 생명이 죽어져도 생명이 죽었 지 하나님의 도를 배반치 않고 진리를 배반치 않는 이 사람으로 살게 되면  그 고개 가 넘으면 이제는 나를 어렵게 하는  고통스럽게 하는 그 세력이 내가  믿음 지키는 그 세력으로 더불어 싸우다가 내가 지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지키면 어두움의 세력 이 그때는 부숴져 버립니다. 깨져 버립니다. 나는 하나님하고 함께 하고 그거는 악령 의 세력이기 때문에 깨져 버립니다.  그것을 정복하고 이제 얻는  평강은 다 그것이 영생이 되는 것이요 완전이요 아무도 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는 말씀은, '너를 부인하라' 말은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  뜻, 자기 의견, 자기 판단, 자기 비평, 자기 지식대로 사는 그런 것을 버리라 말입니다.  왜? 그거는 마귀적이요 세상적이요 사망적이요 멸망적이요 모두가 다 죄악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선은 세 상에 죽을 때까지는 그냥 지내지마는 그 다음 무궁에 지옥이  되는 것이고 세상에서 도 또 하나님의 택한 자는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런 것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는 중생되기를, 진리로 중 생됐고 성신의 감동으로 중생됐고, 진리로 중생됐고  또 성신의 감동으로 우리는 살 아났어. 중생이라 말은 살아났다 그 말이오. 거듭 중(重)자 날 생(生) 자니까 새로 났 다 그말은 살아났다 말이오. 뭘로 살아났는가?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또 성령의 감동 으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힘은 무슨 힘인가? 중생된  자의 힘은 무슨 힘인가? 진리의 힘이오. 진리가 우리 힘이오. 진리를 내가 떠나지 않고 진리가 같이  있을 때에는 진 리가 내 힘이 됩니다. 진리를 내가 지키고 싶으면 지키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게 아니 라 진리는 천하 인간을 다 뚜드려 뭉쳐도 한 진리를 당하지 못합니다. 한 진리는 이 는 우주를 다. 창조한 실지의 시공 역사를 한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무한히 큽니 다. 제가 뭐 진리를 지키면  진리를 보수하면 진리가 사람에게  보수를 당하고 지켜 보호함을 받는 줄 알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진리를 떠나지 않으면 진리가 나를 지켜 주시고 내가 진리를 죽어도 떠나지 않으면 죽어도 다시 부활하고 또 죽지 않고 삽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진리가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 힘이요, 진리 가 우리의 주장이요, 진리가  우리의 사상이요, 진리가 우리의  본질과 본성이요, 또 진리가 우리의 모든 힘입니다. 또 영감이 우리의  힘이요, 우리의 본체요, 우리의 성 격이요, 우리의 지식이요, 우리의 본능입니다. 또 예수님의  사죄가 본능이요, 칭의가 본능이요, 화친이 본능이요 또 힘이요 지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새사람으로  사는 거는 어떤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인고 하니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위 공로로, 죄없이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의롭게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돼 가지고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 이요, 진리로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라.  아따 많이 복갑하다. 만일 진리로 살면 이 모든 게 다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모르기 때문에 진리에 맞춰 보고, 영감에 맞춰 보고, 또 예수님의  사죄에 맞춰 보고, 칭의에 맞춰  보고, 화친에 맞춰 보고 이대로냐 이걸 떠났느냐 이렇게 하는 것이지 전말로  그 사람이 진리대로 살았으면 진리대로 사는 것 하나만 하면, 진리대로  사는 것 하나 하면 영감으로 산 것이 됩니까 안 됩니까? 영감으로 산 것이 됩니다. 또 진리로 살면 예수님의 사죄로 산 것 됩니까 안 됩니까? 사죄로 산 것 됩니다. 진리로 살면 예수님의 칭의로 산 것 이 됩니까 안 됩니까? 칭의로  산 것이 됩니다. 내가  진리로 살면 하나님하고 화친 생활이 됩니까 서로 벌어지는 생활이 됩니까? 화친 생활이 됩니다.

그런데 왜 여러가지를 말하느냐? 여러가지를 말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하나인 데 단일성에서 그것이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사람들이 살펴보는 데는 진리 면으로도 네가 살펴보신, 영감면으로도 살펴보고, 죄가  있나 없나 그 사죄면으로도 살펴보고, 또 의로운 면으로도 살펴 보고, 하나님과 화친된 면으로도 살펴보라 하는 것은 하나 지마는, 제가 살펴서 알기 위해서 이렇게도 심사해 보고 저렇게도 심사하고 자꾸 그 렇게 해 보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내나 하나면 그 전부입니다.그러기에, 이 렇게 살려고 하면 이것이 뭐이냐? 너희를 자유케 자유하기 위해서 불렀다. 너희들을 자유 생활, 아무데에도 종이 되지 말고 네 자유 생활, 재 자유 생활이라는 것은 제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자유 생활입나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자유 생활이 오.

그러면 자유 생활,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자유 생활인데  중생된 자의 소원은 뭐이 소원입니까! 중생된 자의 소원이 몇 가지가 소원이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소원? 세 가지가 중생된 자의 소원이라. 무슨  소원? 진리대로 사는 것이제 소 원이요, 진리가 소원이요 영감이 소원이요 예수님의 피, 사죄 칭의 화친이 자기의 소 원이라.

그러면 자유하는 거는 뭐입니까? 자유케 하기  위해서 너를 불렀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종이 되지 말아라.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이랬는데 그러면 자유하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하는 것입니까? 녜, 세 가지로 사는  짓이 자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로 사는 것 자유하는 것 이것이 영생입니다.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을 누가 정죄를 할 것이며 누가 훼방할 것이며 누가 방해할 것입니까? 이 세 가지로 사는 자를 저주하는 자는, 이 세 가지로 사는 자를 저주하는 자는 누 구를 저주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요 진리를 저주하는 것이요 영감을 저주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을 저주하는 것이니까  저주하면 그게 망 하겠습니까 흥하겠습니까? 천하가 저주해도, 뭐 우주가 저주해도, 모든 전부가 다 저 주해도 그까짓 게 문제 없여. 저주하면 저주하는 것이 망하지 저주한다고 저주를 당 하는 그것이 망하지 않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아브라함아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 하는 자는 저주 하리라' 그말은 아브라함이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그때는 미래의 공로인 데 이 공로와 하나된 그 생활을 네가 해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 하는 곳으로 가면 내나 그 생활이라 그 말이오. 그  생활이라. 그 생활해라. 그 생활 하면 너를 해하는 자는 해하는 자가  제 해하는 것으로 망하게 되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그 축복하는 것으로 도리어 제가 축복받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자유하는  생활, 참 새 생명의  생활, 중생된 자의 영생하는 자의 생활, 우리는 영생하는 자로 살아났는데 내가  영생하는 자로 살 수도 있고 멸 망할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멸망할 자로 사는 그것은  자기입니까 자기 아닙 니까? 멸망할 자로 사는 건  자기입니까 자기 아닙니까? 자기가 아닙니다.  악령, 악 성, 악습 그놈이 내인 척 하고, 나인 척 하고,  내 주인인 척 하고 그게 날뛰니까 이 마음 이게 어리석어. 마음 이것이 어리석고 몸이 어리석어. 어리석으니까 그건 줄 알 고, 목사가 돼도 자기 옛사람 그 자기 중심 그걸 옹호를 하고 자기 중심에게 따라가 니까 자기편이다 좋아하는데 그러면 자기 중심으로  자기가 하는, 자기 중심으로 하 는 그걸 다른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하는 걸 찬성을 하고 사람 중심으로, 사람 중심 으로 말도 하고 일도 합니다.

요번에 교역자회 때도 보니까 사람 중심으로 간교하게 그 말 한 마디 해 가지고 그 사람 얻으려고, 간교하게 그 말할 때 침을 탁 뱉아 버리면 싶어. 어떻게 추접하고 더 러운지. 그 사람 하나 얻으려고 간교한 그 말을 하고 또 그 사람 편이 돼 가지고 한 번 또 그 영웅의 말을 하고 이렇게 하는 그게 다 그게 뭐이냐? 자살하는  행위라 그 말이오. 그러면 자기를 위하는데, 자기  중심을 위하는데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계획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계획도  하면 그것은 자기 생활입니까 남의 생활입니까? 남의 생활 어떤 자의 생활입니까? 몇  자의 생활 입니까, 손가락으로? 몇 자의 생활? 내나 세 놈의 생활이라. '몇 자' 할 게 아니라 몇 놈의 생활입니까, 그러면? 세 놈의 생활이라, 세 놈의 생활. 세  놈의 생활이라. 무슨 어떤 놈? 악령, 악성, 악습 그 세 놈의 생활이라.

세 놈의 생활은 자기 원수를 돕는 생활이요 자기를 돕는 생활이요? 원수를 돕고 자 기를 죽이는 생활입니다. 요걸 똑폭히 아는 사람은, 요런 짓을 하지 않아요. 자기 중 짐 자기 위주 그것이 악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버릇, 습성 가지고 습관 가지 고 사는 것 고게 다 자기 아닌 자기요,  자기를 죽인 자기요, 원수인 자기요, 그놈대 로 살면 원수 그놈은 커져서 힘이 점점 세지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은 점점 약해서 죽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산 사람은 그놈 생활은 익숙해서  살고 그놈이 왕이 돼 놓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중심으로  살아. 세상에 교역자회 하는 데도  자기 중심으로 지금, 제딴에는 말은 설교는 잘하지요, 설교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이렇게 해 도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해도 실은 행동은 자기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자기 속에 들어 가지고 그놈이 자기 왕이 돼 가지고 있어.  자기 왕이 돼 가지고 있기 때 문에 자기 딴에는 모든 사람 사람을 돈을 주면서도 자기 사람 만들고 또  음식을 사 주며 자기 사람 만들고 말 한 마디라도 자기 사람들을 만들고 집회를 할 때도 그 사 람 강사 청하는 것을 자기 사람 만들기  위해서 자기 위주로서 이렇게 집회해, 전체 가 사는 게 하나도 없고 전체가 죽는  자살 행위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살리려고 하면 원수가 되어져.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의 심신을 죽이는 자가  누가 심신을 죽입니까? 안 믿는 사 람들의 심신을 죽이는 것이 누가 죽입니까?  우리 OOO집사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 오. 안 믿는 사람들의 심신을 죽이는 것은  누가 죽입니까? 신자로서 옛사람이 죽이 지, 옛사람이 죽이는데 옛사람 그게 뭐인지? 몇이  무엇 몇 사람이 옛사람인지 손가 락 한번 가리켜 봐. 아, 인제 그거  알았구만. 연구하면 알아요. 옛사람이 죽여요. 자 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의 모든습성.

그러면, 자기 중심의 악령 고놈하고 자기 중심의  이 자기의 본성하고 자기 중심의 자기의 모든 연습하는 그습성 버릇 그거하고, 습관 말이오. 이게 합해서 자기를 죽이 는데 안 믿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그게 들어서 죽이는데 믿는 사람들은 그  생활 할 때도 있고 피파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피로  살고 성령으로 살고 진리로 사는 것도 있는데 피로 성령으로 진리로 사는 그 생활은 그것이 뭣 됩니까? 그거는 뭣 됩니까? 그게 영생 이오. 영생돼요. 크게  영생 됩니다. 그러면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그 생활은 뭐입니까? 멸망이 됩니다. 멸망. 요것을 알아야 되지.

그러니까 어쨌든지 인간이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바꾸어져야 되지 주인이 바꿔지 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자기 주인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헛일이오. 말 한 마디라도 자 기 죽이는 말 하면 호호하이 듣기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자기를  살리는 말은 싫어합 니다. 살리는, 자기 살리는 말이 뭐인데? 진리와 영감과 피공로로  살아라 하는 것이 자기 살리는 말인데 자기 살리는  말을 하면 얻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살리는 말을 하면 싫어해. 어떤 사람은  자기 살리는 말 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면 싫어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자기 살리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그 주체가 뭐이 주체인가? 그 사람 주체가 뭐이요? 자기를 살리는 말을 하면 영생하게 하는 말 을 하면 그 사람이 싫어합니다. 진리로 살라고,  영감으로 살라고, 예수님의 사죄 칭 의, 화친을 버리지 말고 입고 살라고 이렇게 말하면, 네가 하는 것은 그 죄다, 네가 하는 것은 의가 되지 못한다, 네가 하는 건 하나님과 서로 떨어지는 그일이다. 네가 하는 것은 그 영감이 아니다. 네가 하는 건 진리가 아 니다.' 이렇게 아닌 것을 말을 이렇게 하면 그것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 하는 사람 있습니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듣기 실어하는고 하니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되는  그것이 주체성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듣기 싫어합니다.

그놈이 듣기 싫어하는데 속에 중생된  자는 저 속에 파 묻혀  가지고 아삼아삼하게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놈을 죽여 주십시오. 그놈 원수 죽여 주시고 나를 좀 도와 주 십시오.' 속에는 이러지마는 겉어머리 주체성이 '뭐 이놈 하는고?'  뿔끈 눌러 버리면 그거 말을 못 해.

이러니까 그 사람이 언행심사를 하는 데에 그 사람에게 옛사람이 주체성이 돼 가지 고 있나 새사람이 주체성이 돼 가지고 있나 그것을 살펴야 돼요, 그걸 모두 살펴, 암 만 설교는 가서 잘하는 것  같은데 살필 줄을 몰라.  엣사람이 주체성인지 새사람이 주체성 있는지 교역자도 살피지를 못하고 이 세상에서도 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진리에 탈선되고 영감에 탈선되고 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 친에 탈선되는 그 행위를 하는 것을 칭찬을 하면 좋아하는 그것은 뭐이냐? 옛사람이 그 사람이 주체성이라 그 말이오. 이제 그게 틀렸다 합 때에  자기가 깨닫고, 틀렸다 할 때에 처음에는 섭섭해 하지만 틀렸다 할 때에 '아,요것이 옛사람  원수 요놈을 죽 이는 것이고 새사람을 도와서 힘있게 하는 것이로구나. 이 사람이 나를 새사람을 나 를 구원 하고 옛사람을 꺾어 주는 옛사람 꺾는 데에 나를 응원을 하고  옹호를 하고 나를 협조해 주는  사람이로구나.' 이래서  처음에는 섭섭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아이구 감사합니다.' 요렇게 하는 것이 자기 속에  옛사람이 주체성 된 것을 비로소 깨닫는 것이고 그것을 모르고 끝까지 오히려 그걸 섭섭하게 생각하고  하는 그 사람 은 옛사람이 주세성이 돼 가지고 그럴 때도 일어서지 못하니까 저 혼자 있을  때 의 례히 전생활이 그놈 생활이지, 딴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범사에 두 가지로 구별해야 됩니다. 참 자기인지 자기 아닌 자기 옛 사람 그놈 자기인지, 또 자기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지금 모든  걸 비판하고 있는지 인간 지식으로 비판하고 있는지?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지혜 는 배암같이 하고 배암은 이 세상 지식, 악령,  악성 그 모든, 인간들이 악령하고 악 성들하고 악습하고 이것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 모든 세상 사람들이요, 인간들이 오.

이러니까, 이놈을, 다른 이가 그걸 좀 협조해서 도와 주고 그걸 칭찬하고 위하면 그 러면 옛사람을 살찌우는 것입니까 새사람을 살찌우는 것입니까? 옛사람 살찌우는 것 이라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옛사람 살찌우는 것이 라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알기는 아는 모양인데, 옛사람 살찌우는 거라.

그놈만 자꾸 살을 찌워 놓으니까 그놈이 힘이 셉니다. 그래 놓으니까 제까짓 게 진 리로 살지 못해, 영감으로 살지 못해, 예수님의 사죄, 칭의로  살지를 못해. 그러니까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그 결과가 뭣 됩니까? 사망 돼.

그것으로 사는 것을 성경에 가리키기를 뭘로 산다 했습니까, 그걸로 사는 것을? 육 체의 생각, 육체의 욕심으로 사는 것이라. 그거는 사망이라. 이걸 똑똑히 알아야지요.

논리적으로는 알고 지식적으로는 알아도  자거가 현재 현실에서  모르면 소용 없어.

현실에서 알아야 옛 사람 그놈이 죽어지고 새사람이 좀 힘을 얻어, 진리에 어긋난 것, 영감에 어긋난 것,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난 것 그놈이 재미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난 그것이 재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어기는 것이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재미 있는  그것은 참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까 영생이 됩니 까? 참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 그거는 뮐로 사는 것입니까?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라.

현실에 고놈을 죽이고 고놈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어. 현실에 그놈을 죽이고 이겨야 되지 이래 가지고 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어려움이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사람으로 살아서 어려움 있는 것도  있고 또 옛사람 으로 살아서 하나님 앞에 징계받아  가지고 어려움 있는 것도  있고, 옛사람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이 징계를 주는 징계로  어려움이 뷜고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세상이 나를 방해해 가지고 어려움이 있다 그거요.

그럴 때에, 빗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에게 징세배아  어려움 오는 것이나 새사람으 로 살아서 세상에게 이제 방해받아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나 그 어려움 두 종류 있 는데 이 어려움이나 저 어려움이나 그럴 때에 목자에게로 달려 들어가면 둘 다 해결 이 돼요 하나만 해결 돼요? 둘 다 해결이 돼요 하나만 해결돼요? 둘 다 빼결 돼, 둘 다, 해결 돼.

그런데 목자에게로 갔는데 내가 백지 입술로만 내가 갔는지 내가  마음으로만 갔는 지 참 갔는지 거짓부리로 갔는지 참  목자를 만났는지 거짓부리로 목자를 만났는지, 만났는가 안 만났는가 참 만나고 거짓  걸로 만난 것은 뭣 보고 알아요?  폭발 보고 알아요, 폭발 보고 폭발이라니 무슨 폭발? 믿음의 폭발이 나와. 소망의 폭발이 나와.

평강의 폭발이 나와. 강하고 담대함의  폭발이 나와. 그때부터 자기 마음도  모두 다 변해서 악령 악습으로 옛사람이 마구  폭탄에 맞아 죽고 새사람으로  뻘떡 일어서는 폭발이 나온다 말이오. 폭발이 나와. 그러면 그만 그게  벌써 은혜 받은 거라. 뭐 병 도 문제가 없어. 병도 생각이 안 나.

이래 놓으니까, 병이 나을 때에 그때에 믿음을 가지고 살면 병이 더하지 않고 나을 때 믿음 고 믿음과 같은 믿음을 더 장성해 가면  그까짓 거 문제가 없고, 해결이 다 되고, 이래서, 우리가 고걸 양의 목자를 만났나 안  만났나 그것을 자기에게 체험으로 안 다 말이요, 체험으로. 체험으로 알아. 또 경험으로 안다는 것은 뭐이오? 체험으로 아 는 것은 자기 속에 마음이나 모두  변화가 되고 생각도 지식도 모두  기쁨도 평강도 이게 변화되는 것은 자기 마음으로 체험해. 그러고 목자 만나고 보니까 자기에게 과 연 자기 몸에서 겪은 그 체험이 있다 말이오.

자기 몸에 나타난 증거가 있어 자기 몸에 나타난 증거 있는 것을  가리켜서 체험이 라 이래요. 자기 마음에 나타난 것도 자기에게  나타난 것이고 몸에 나타난 것도 자 기에게 나타난 것이고 병낫는 것도 그 체험이고 몸에 나타난 것이고, 경험이라 하는 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자기가 경영하는 모든 일들에게 나타나.  일이 이상스러워져.

일이 이상스러워져.

내가 어떤 사람 말 들었는데 여게 OO병원에서  데모가 나 가지고 막 그래서 차들 이 그만 오다가 못 오고 도로 이래 가지고 멈추고 있는데 이것들은 막 불량자들이기 때문에 마구잡이라, 뭐. 그때 뭐  소용이 있어야지? 아무 법도  없어. 그것들이 악이 발달돼 가지고 그렇게 막 야단를 치고 날뛰는데 어떤 여학생이  오다가 이제 이렇게 막 들어 붙이고 이러니까 이거 뭐 어쩔  도리가 없고 기가 막히고 이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래요. '하나님이여 나를 여게서  보호해 주시옵소서. 나를 보호해 주옵소 서.' 이래 보호해 달라고 이래 기도하니까 뜻밖에 저거 아버지가 나타나더래요. 저거 아버지가 나타나더니마는 그래 그만 딱 인도해 가지고 그래 저리  데리고 가 가지고 차를 태여서 그래 보내 주더라고, 저거 아버지가 어데 가면서  말이지. 그게 뭐이냐? 그게 뭐이냐? 체험해 닥친 것이요 그거는 경험이오? 그거는 경험에 속한  것이요 체 험에 속한 것이오? 그거는 경험에  속했습니까 체험에 속했습니까? 경험에 속한  거 라, 경험에 속한 일이 그래 됐어.  체험은 자기 몸 안에서 닥치는 그런  것이 체험이 오. 그거는 경험에 속한 거라.

체험과 경험을 얻으라 하는 그 말이 뭐이냐 하면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해 보니 까 그 하는 경영하는, 경험이라 하는 지낼 경(經)자요. 지낼 경(經)자라 말은 하나 둘 순서적으로 진행해 나간다 그 말이오. 진행돼 나가는 그게 보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 는 것이 환하게 표가 난다 그거요.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갔는데 그 사람이 지금 내 대적이 돼 가지고 반 대를 하는 사람인데 이 반대하면 모든 일이 안 되겠는데 그거 마귀 세력이  들어 반 대를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갔다 말이오. 많이 하고 가서 '그 사 람이 나를 반대해서 오늘 일을 낭파를 만들겠는데 하나님이여 그  악령과 악성과 악 습으로 된 그걸 죽여 주시고 그  사람을 돌이켜 변화된 피와 성령과  진리의 사람이 되어져서 옳은 것을 찬성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고, 나 혼자 기도했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말이요, 예를 들면. 그 사람이 혼자 실 컷 기도를 많이 하고 갔는데 가 보니까  그 사람이 반대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 사람이 그 일을 찬동을 하고 협조을 해  줍니다. 그거는 경험에 속한 것이요 체험에 속한 것이요? 그거는 경험에 속한 것이요 체험에 속한 것이요? 경험에 속한 것이라, 경험. 그거 내나, 경험과 체험을 몰라요? 그거는 자기 몸이 아니라 그 일을 경영하는 데 그 사람이 나를 협조하니까 경험에 속하는 것 아니요? 자기가 그 일을 경영해 보 고 그 모든 알을 통과해 보니까 표가 난다 말이오.  경험이라 하는 것은 자기 몸 밖 에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자기가 만나 보는 것이 경험이요  체험이라 하는 것은 자기 몸 안에서 이제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을, 나타내는 그걸 보는 것이 체험 이라 그 말이오. 알겠소? 이래서, 그저 목자에게만 가면 돼. 목자에게만 가면 그만 간 표가 뭐이냐 하면 폭발 이 나와. 이러니까 그 사람의 막 상이 똑 이거  창호지 뽈끈 쥐어 놓으면 막 오글오 글하게 그렇지 않아요? 막 상이 오그럽지 않아요?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기도하러 가 가지고 다른 사람이 봐도 아따 그거 똑 귀신 얼굴 같다 이랬는데 가 가지고 주님 만나 놓으니까 폭발이 됐다 말이오. 그라면 그  사람 얼굴이 환하게 펴이요 안 펴이 요? 환하게 펴이고 번들번들해져 버려요. 다른 사람이 봐도 표 나고 저도 보면 표가 나. 이렇게만 되면 문제 해결 안 둬 일 문제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배암같이 지혜롭 고 하는 것은 배암의 지헤를 네가 모르면 안 된다. 배암의 지혜를 전부 관찰해야 된 다. 네 정도에 속한 배암의 지혜는 관찰해야 된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걸 다 조절 하는 것인데 요만한 어린 사람에게는 배암의 그 역사를 요만한  것을 상대하게 하고 이만한 사람에게는 배암의 역사를 이만한  걸 상대하게 하고 이렇게  큰 사람에게는 배암의 역사를 이렇게 큰 걸 상대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시험 받는 거와 여러분들이 시험 받는 게 달라. 이러기에 이렇게 차이 있으니까 자기 정도에 자기에 게 해당된 배암의 역사는 자기가 다 관찰해야 된다. 배암같이 지혜롭고 배암의 모든 지혜를 관찰해야 된다. 그러면, 자기가 동회 서기면 동회 서기는 또 서기 안 하는 사 람보다도 그 사람은 또 조금 다른 면으로  자기에게 시험이 온다 그 말이오. 장사꾼 은 장사꾼으로서. 뭐 하나님이 그 형편에 따라서, 그러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치 않게 한다 그말은 그 사람에게 모두  적당한 정도의 것을 다 주신다. 그러니까 '배암같이 지혜롭고' 배암의 역사를 낱낱이 자세히 보고 살펴보고, 관찰이라 하는 건 볼 관(觀)자 살필 찰 (察)자, 이래 보고 자세히 살핀다 말이오.

이렇게 살피되 뭐하려고? 따라 가려고? 어쩔려고? 따라 가려고 살펴요? "비둘기 같 이 순결하라" 관찰하되 네가 거게 감염되지 말고 거게 따라가지 말고 거게 휘말리지 말고 거게 피동되지 말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너는 그럴수록 성신의 감화로, 마 귀 역사가 주먹덩이만치 오면 그걸 자세히 살펴보고 주먹덩이만한 마귀 역사가 왔으 니까 너는 성신의 감화를 주먹덩이만치 이래 되어지면 탁 부딪혀  가지고 이놈이 깨 져 버리고 만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는 건 그 말이오.

이러고, "사람들을 삼가라" "사람들을 삼가라" 어떻게 삼갈까? 지금은  네가 좋아서 입에 밥을 서로 내 먹고 '우리 둘이 사이야 뭐 아무것도 없지. 여게서야 어떤 비밀이 라도 좋지. 관계 없지.' 이렇게 네가 생각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은 제 가 주관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제가 주관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제가 주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 사람의 마음으로서는 이 사람하고야 뭐  어떤 비밀이라도 지 킬 수 있고 어떤 것이라도 둘이 함께 도모할 수가 있고 이렇게 그러하지마는  그 사 람이 정반대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홱 뒤비트려  놓는다. 그런 줄 알고 네가 사귀 라.

그러니까 사람은 좋을 때만,  이거 우리 부부기 때문에  뭐 이렇지만, 아니, 부부가 정반대로 자기의 남편과 아내에 대립이 돼 가지고 역사 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딱 만든다 그 말이오. 만드니까 아예 너는  암만 부부간이든지 친구간이든지 어떤 것이 라 할지라도 나중에 이것이 다 나를 송사할 자인 줄 알고 그렇기에 송사해도  일 없 도록 그렇게 사귀라.

'사람을 삼가라' 삼가면 그렇게 할 자이기 때문에 멀쭘하게  떨어져야 되겠느냐? 그 러면 그렇게 될 자이니까 멀쭘하게 떨어져서 이제 그런 사람으로  더불어 대립이 되 고 아예 가까이 하지 않아야  되겠느냐? 삼가라 말은 사람을 접하라  말이요 접하지 말라 말이요? 접하라 말 이라. 접하는데 어떻게 접하는가? 내나 양이 목자에게로 달 리는 거와 같은 그 생활이라. 새사람 생활해.

새사람 생활하면 나중에 그 사람을 뒤비트렀을 때에 뒤비트릴 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이 사람은 새사람으로 살았다 그 증거하겠소 이제 옛사람으로 살았다고 증거하 겠소? 어떻게 해요? 뒤벼지면 어떻게 증거해요? 뒤벼져도 새사람으로 살았으면 새사 람으로 살았다는 증거밖에 못 하지 옛사람으로 살았다고 증거하지는 못할 거라 말이 오.

이러니까,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그 사람이 대립이 돼서 송사할  때에, 고발하고 송 사할 때 그때 효력이 나와요 지금 효력 나와요? 새사람으로 살면 그때  송사를 만난 그때가 좋아요 지금이 좋아요? 언제가 좋아요? 새사람으로 살았으면 그 사람이 그리 친하던 사람이 대립이 돼 가지고 이렇게 송사를 하고 할  그때에 과거세 새사람으로 살았던 그 광이 나, 그 빛이 나와. 그 영광이 나와. 이런 줄 알고 사람을 사귀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아무리 친근해도 친근한 사람이 제일 멀리 될 때가 있다 는 걸 생각하고 재일 멀리 될 배도 네게 거리낌이 없고 멀리 될 때에 오히려 너에게 유익이 되도록 그렇게 사귀라. 그렇게 사귀어야 끝까지 사귀는 것이 되는 것이고 인 간 관계를 바로 해서 후회할 것이 없게 된다 고 말을 가리켜서 여게 말씀했습니다.

'사람을 삼가라' 그 사람이 너를 고발도 할 것이고 또 총독들에 잡아  줄 것이고 또 어데도 할 것이고 그거 다 된다. '하이,  다른 사람이야 그렇지마는 우리 부부간이야 뭐 자녀도 낳고 뭐 이랬으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면 어쩔  것이오? 그렇게 만들 면 만들어지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운동하기를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로 하나되도록 요렇게 사는 생활 나도 하고 그 사람도 살게 하고, 그러면 상대방도 피와 성령과 진 리로 살고 나도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면 어쩌 되겠소? 그리 되면 뭐 뒤에 갈라뜨릴 자가 있어요? 없어. 갈라뜨리려고 자꾸 그거 깨면 어찌 돼요? 깨면 저주돼요 축복돼 요? 깨면 그 사람에게는 저주되지마는 내게는 어찌 돼요? 내게는 축복돼. 요렇게 원 만한 튼튼한 생활을 하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러기에 성경대로 사는 생활에는 사망이 없어요. 모두가 다 평강이지.

이래서, 자꾸 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이 리 가운데 두는 것, 이리는 누가 만들었어요? 주님이 만들어요.  그러면 이리는 뭐하 려고? 우리 망하라고, 잡아 먹히라고?  주님하고 가까와져서 주님하고 밀접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그거요. 요걸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고, 자기가 실행하면 뭐이 나와요,?  체험과 경험이 나와요. 체험은 자기 몸 안에서 그 결과를  보는 것이고 경험은 자기의 모든 활동하 는 활동에서 증거를 보는 것이라. 이렇게 경험과 체험을 얻으면 확신이 있어요. 그래 가지고 양떼들을 가르쳐. 그래 가지고 이제 자기의 맡은 학생들을 가르쳐요. 그래 가 지고 부장도 반사들을 가르쳐요. 이러면  그게 젖이 돼 가지고  꿀떡꿀떡 먹고 살이 쪄요.

만일 그게 경험 체험 없이 이 진리를 가르진다고 하면 그것은 어머니가  채소 먹고 그걸 젖을 내 가지고 먹여야 될 채소을 아이 입에다가 틀어 넣으면 아이  죽어 버려 요. 그와 꼭 갈습니다.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가르치도록 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지금 예사로 이거 조롱 같지만 하루 삼십 분 기도 자기 미래를 위해서 삼십 분 기도 어짜든지 잊지 마.  꼭 삼십 분 기도라 하는 것은 밤에 할 것이 아니라. 밤에도 하고 낮에도 좋아요. 밤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길 가면 서도 하고 차 타고 가먼서도 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자기 미래와  자기에게 소속한 모든 미래, 자기 미래가 뭐인데? 교회  미래가 자기 미래지, 모든 구역  미래가 자기 미래지, 또 자기의 교역자 미래가 자기 미래지, 이거 다 자기 미래라. 이러니까 이제 자기 미래를 위해서 삼십 분 기도하는 것 이거 잊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고, 반사든지 부장 선생님이든지 보조 반사 선생님이든지 모두 자기 새끼를 어 데다가 길러요? 믿음의 새끼는 어데다가  길러야 돼요? 마음 속에  길러야 돼. 마음 속에. 그러면 육신의 새끼보다도  기르기가 힘이 들어요 쉬워요?  마음 속에 기르는 거는 낙태됐다가 떨어졌다가 자꾸 이래 돼. 몸에 밴 거는 그거 뭐 둔한 것이기 때문 에 떨어지지 않아. 마음은 예민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는 낙태됐다가 또 잉태됐다 가 자꾸 이러면 안 자라. 그러니까 수십  번 잉태됐다가 낙태되는 거 모양으로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이러니까 안  된다 그 말이오. 마음에다 꼭  품어 놓고 놓지 않으면 빨리 자랍니다.

말씀이 생명이오. 말씀을 등한히 하고 하지 마.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중심 자기 위 주 자기 욕심 사욕 그놈을 죽여요, 어찌 됐든간에. 죽여야 평안하지  그놈 안 죽이면 영육이 다 비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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