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노를 풀어드리는 것과 기쁘시게 함

 

1985. 12. 1 주일오전

 

본문: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 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 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 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심판은 두 가지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심판입니다. 공심판은 하나님이 전지 완전의 그 능력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대한 법을 세워  놓으시고 그 법을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심판하시는 심판입니다. 그러기에, 이 심판에서 첫째로 사망과 생명 이 결정되고 또 거처하는 처소인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법을 가지 고 죽일 자 살릴 자, 죽고 사는 것을 결정지우시고 또 영원히 거처할 지옥과 천국 을 결정지우시고 또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 그의 일체의 모든 대우가 결정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공심판입니다.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몰라서 그저 이렇게 저렇게들 생각도 가지고 소원도 하고 계 획도 하고 행동도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며 또 두려운 일입니다. 왜? 절대의 그 불변의 법이, 조금도 가감하지 못하고 그대로 영원히 실시되는 이 절대 적인 이 완전 법이 전능자의 그 심판에서 판정될 터인데 사람들은 이것은 전연히 모르고 그저 그날 그 장소 그  사건에서 자기를 중심해서 자기에게 유익되도록만 하면 슬기있는 사람이고 자기를 위하지  뭇하는 사람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간단하게 인생을 판정하고 사는 것이 온 세상들인 것입니다.

또, 그보다도 더 어리석은 일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된다,  이 무슨 민주주의의 다수 가결하는 것처럼 많은 무리들에게  인정만 받으면 된다, 여 러 세대에 인정받으면 된다 해서 자기의 주장하는 것이 시대를 따라서 요동치 않 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그 단합이 힘이 있고 무엇을  이기고 취하고 하는 그런  면으로 사람들은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개  종교 창설자들과 모든  철학가들과 모든 도덕가들입니다.

그보다도 훨씬 차원적으로 낮게  이 세상에서 권세나  영광이나 명예나 행락이나 평안이나 그런 것들을 많이 가지면 행복되다 이렇게 평가하고 인생살이를, 인생살 이의 가치를 거게다가 두고 모든 사고 방식도 하고 계획도 하고 희로애락을 가지 는 것이 이것이 이 세상 사람인데 이것도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이 하나님의 절대인 하나님의 입법, 하나님의 이 공심판 이것 을 모르고 사는 사람 중에는 세상이 평가하기를 잘났다, 많은 무리들을 점령했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켰다 이래서, 어떤 자는 어떤  사상가가 되어 가지고 사상으 로 사람을 많이 점령할라고, 어떤 사람은 도덕가가 돼 가지고서 도덕으로 많은 점 령을 해서 사람들을 그렇게  도덕화시킬라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정권을 가지고 그런 것으로써 사람들을 많이 정복을 할려고  하는 그런 사람, 이것보다도 어떤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 자기 종교가 대 종교가 되어 가지고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또 그것이 뭐 천추만대라도 계승돼 나가도록 할라 하는 그런 야욕을 가지 고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이 제일 불쌍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람해 본 다고 하면 좀 잘났다고 선천 후천에 그렇게 뛰어난 그런 사람들이 제일 불행스러 운, 자타를 멸하는 그런 잘못을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만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를 우리가 영접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은  깜깜 어두워서 모든 존 재에 대한 정상적인 지식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는 이런, 전부 삐뚤어져서 배암 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져 있는 이 세상에 영원히  가고 가도 변동 없는 올바른 이 진리, 다시 말하면 대주권자요 영원 완전자요  창조주이신, 주재이신, 만왕의 왕이 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이분의 그 지극한 입법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이분이 입법 해 놓은 이분의 그 법을  알았습니다. 이분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뭐 금생이나 영원 무궁이나 모든, 하나님이 지으신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하 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다 이 법을 가지고서  통치해서 생사와 또 지옥과 천국 그 의 모든 소유의 참 영광과 비참 이런 것으로 결정이 되어지는 이 법을 아무도 모 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대 종교가들, 그 큰 종교 창설자들이 그들이, 딿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안심하고 있 지마는 그것도 참 불쌍합니다. 왜?  절대자가 세워 놓은 그 법이  있는데 이 법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제가 주장해 놓은 그 법을 가지고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켜 서 사람들이 많이 따라오니까 안심을 하는 거  어리석습니다. 영원 자존자 창조주 대주재가 있는데 그분에게는 관계도 없이 그저 아무  질팡갈팡, 힘도 없고 책임도 없고 지능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물과 같이 아무 존재 없는, 코에 호흡이 있는 이 인간들의 다수 찬동으로 힘을 삼고 있는 그런 것도 대단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런 대 종교 창설가들이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자요, 그 다음으로 차차는 도덕으로 인간을 끈 사람들, 사상으로 끈 사람들, 그보다 더 둔하지마는 무슨 어떤 정권으로 사람들을 끈 사람들, 이렇게, 물질로 사람들을 끈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절대자가 법을 세워 놓고 이 법대로  내가 하겠다 하고서 그 법대로 털끝 만치도 가감이 없이 착착 해서 노아 홍수 때도 다 이 법으로 다 전멸시키고 말았 는데, 이다음에는,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경건치  아니 하고 경건한 자를 구별해서, 경건한 자라 말은, 이 법을 두려워 떨면서 이 법을 준 해서 사는 자와 이 법을 무시한 자가 판정될 때까지 이 모든 것을 냅뒀다가 그게 판정되면은 모든 것을 다 불로 사르기 위해서 간수해 뒀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 니다.

이랬는데, 이 큰 존재인 큰 세력, 늙으면 늙어서 죽고 나면은 뒤에 뭘 할 수  있는 데 이거는 늙지도 안하요, 이거는 뭐. 이분은 이 법을 세워 놓은 이분은 늙지도 안 하지, 피곤하지도 안하지, 죽지도 안하지, 변하지도 안하지, 이분이 법을 세워 놓은 이 절대 법이 있어 놓으니까  이거는 참 싸우지도 뭇하고  대항하지도 못하고 뭐, 대항해 봤자, 억만 년 지나면 죽을까 하니까 억만 년 지나도 억억억억만 년이라도 아무 변동이 없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이런데, 이 큰  분이 계시는 것을 모르고 이분의 절대의 법이라는 이걸 모르고 인생은 오늘에 숨을 쉬면서 살 았다고 꼬물거리지마는, 이 시간 제 모든 생애가 끝나 버리고  이 심판 앞에 설란 지도 알지도 못하고 그저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제 성질대로 제 주관대로 제 게 좋으면 하하 하고 제게 미우면 오만 거짓말 참말 할 것 없이 이렇게 사람들을 매장을 시키고 이렇게 하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 가다가  갑자기, 갑자기 끝이 딱 되면, 그만 ‘스톱’ 해 버리면 그만, 그만 코로록 하고서 딱 숨져 버리면 들어다 가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갖다 세웁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말하기를 각 사람의 행위를, 언행 심사의 행위를 기록하는 행동록에 기록된  대로 다 심판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지극히 큰 능력이 절대의 법을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 고 날뛰는 사람도 참 불행스러운 사람이고, 또 이 피조물인 인간들이 옹호를 한다 고 그저 뭐 의지가 된다고 해 가지고서 안심을 하고 교만한 것도 참 불쌍한 사람 이고, 그것보다도 ‘나는 물질이 많으니까 지금 물질로 뭐 어떻게 하겠다.’ 그 물 질이 오늘 이 시간에 어찌 될란지도 모르는데  그런 것이 있다고 ‘이것은 이 물 질로 방어하고 저것은 저 물질로 방어하고’  아무래도 역사에 인간의 죽음을 방 어한 물질이 없고 인간의 죽음을 방어한 사상이 없고 종교가 없습니다. 기독교 외 에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에녹과 엘리야가 산 채로 승천한 것은 기독교에는 죽지 않는 길이 있다는 것을 하나 계시로 보여준 것이오. 예수님께서 죽은 가운데에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그는 인생이 첫째 아담으로 죽으나 둘째 아담으로 살아서,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안하고 또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말씀 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참, 좀 전에 우리가 오순절 절기에 대해서 감사하는 감사 주일을 지켰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척을 분별 못 하는  우리들을 호리도 틀림이 없 이 지극히 작은 것까지 요래라 조래라 요래라 조래라 요렇게 환하게 완전로를, 완 전로를 우리에게 주시고, 완전로를 걷는, 완전에 도달하는 완전 걸음을 걸을 수 있 도록 우리에게 해 주신  이 진리와 영감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각각 감사한 것은 다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가 말씀해서 기념은 했 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이것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이런 축복이 왔는가? 이 하나님의 법으로 심판하는 것이 대심판인데, 대심판이요 공심판인데 이 공심판을 우리가 다 면제당하고, 공심판을 다 통과했어. 공심판을 다 통과해 가지고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친의 이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공심판에서  죄 없는 자로 통과됐 고, 의로운 자로 통과됐고,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통과해서 영생을 가지게 된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이리  돼서 이렇게 됐는가? 우리가 그 거는 늘 말하는데, 아무리 말해도 우리가 다 아는 것은  아니고 죽는 날까지 연구 하고 영원토록 연구해도 이는  다 끝을 보지 못하는  깊이와 높이가 길이가 심히 무한한 것입니다.

쉽게 그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죄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지은 죄를 다 대 신 형벌받으시고 우리에게 사죄의 공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사죄는 하나 님의 모든 입법한 그 법을 우리가 다 어긴, 그 법을  우리가 범한 그 죄를 예수님 이 대신 형벌받으셔 가지고 우리에게  사죄를 주신 것이요, 칭의를  주신 것은 그 모든 법을 우리가 지켜 행하지 못한 것을 주님이 대신 다 지켜 행하셔 가지고 우 리에게 칭의를 주셨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이 그 법에 어긋난 것으로 써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됐던 것입니다.  그 법을 어겨서 원수  됐는데 주님이 그 법을 다 이행하고 또 그 법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친의 이 화목의 제물이 되 셔 가지고 우리는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은 데 대해서 우리는 내가 어떤 죄가 있었 는데 주님이 대형했는가 이것도 우리가 평생 연구해야  되겠고, 어떤 죄가 있었는 가 하는 그거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으면 성경 말씀에서 이런 죄 저런 죄 죄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또 주님이 우리를 대신 행하신 것은 뭣 뭣 행하셨는가 그것 도 신구약 성경을 우리가 연구하면  ‘아, 이것도 저것도 주님이  몇 가지나 대신 행하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 화친한 것도 성경을 보면은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과 절단 돼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이 성경 법대로 어떤 법을 어떤  것을 구비해 가지고서 우리와 서로 화 친의 이 관계를 맺도록 이렇게 해 주셨는가  하는 것을 그것은 성경을 보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참 일생 동안에, 일생 동안에 이런 죄 저런 죄 지은 것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사람 앞에서도  용납 못 할 그런 죄를 많이 지 었고, 사형받을 그런 죄를 많이 지었고, 평생을 감옥 생활을 해야 될 그런 죄를 많 이 지었고, 또 사형도 그냥 당할 게 아니라 뭐 참혹한  그 사형을 당해야 될 죄를 많이 지었고,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들도 다 사형을 받아야만 되 는 그런 참 한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부끄러운 죄도 지었고, 형벌 받을 죄 도 지었고, 참 멸시받을 죄도 지었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그런 못쓸 그런 죄도 많 이 지었고 수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죄를  자기가 깨닫고 마음에 원 통해서, 그 죄를 깨닫고 자기가 마음에  원통해서 후회도, 후회를 해도 시원치  않 고, 또 그걸 가지고서, 그 죄를 가지고서 자살을 해도 시원치 않고, 그 죄를 뭐 어 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참 비참하고 무서운 그런 죄를 많이 지었는데, 다른 사람은 아는 사람도 있다 할지라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말이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또 아무도 모르고 또 저만 아는 죄도 있다 그거요. 이런데, 이 죄 를 인해서 참 가슴을 친다고 해도 이것이 뭐 어떻게 될 수가 없고, 후회한다고 될 수도 없고, 자살한다고 해도 그것이 없어질 수도 없고 이런데, 그 죄를 인해서 항 상 ‘나는 이런 죄를 지었다. 내가 사람을 대할 때마다 나는, 저 사람은 모르지마 는 저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이렇게 못 할 일을 했다.’  또 뭐 사건만 봐도 전부 가 자기가 죄 지은 것뿐이니까 기가 막혀서  못 견뎌서 그저 번민 고통하고서 마 음에 항상 그 사람이 참 우울해져 가지고 그만 참 정신병이 들 만치 환장을 할만 치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 을 하셨습니다. 네가 과거에 지은 죄, 네가 과거에 지은 죄만 가지고 네가 지금 생 각을 하고 있지마는 현재도 네가 지은 죄가 네 아는 죄뿐 아니라 네가 모르는 죄 가 더 엉망이고 더 기가 찬다. 또 네가 지금은  이렇지마는 앞으로 미래에는 네가 지을 죄가 어떤 죄인지 너는 더군다나 더 모르고 있다. 이런데, 과거 죄, 현재  죄, 미래 죄, 네가 아는 죄 모르는 죄, 큰 죄 작은 죄 모든 죄를 너는 몰라도, 너는 몰 라도 전지의 하나님, 심판하실 하나님은 하나도 그것을  모름이 없이 낱낱이 정확 히 다 알고 계신다. 다 알고 계신다. 알고 계시는데,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지금 짓 고 있는 죄, 미래로 앞으로 네가 지을 죄 이 모든  네가 범할 죄에 대해서 하나님 은 하나도 빠짐 없이 정확히, 더 과장도 안 하고 과소도  안 하고 이렇게 꼭 정확 하게 네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다 그것을 낱낱이 알고 계신다.

그런데, 그 모든 죄를 그것을 내게 다  부담시켰다. 그 죄를 너는 몰라도 그 죄를 낱낱이 다 나에게 부담을 시켰다. 네 과거 현재 미래에, 앞으로 언제 뭣이 있을 터 인지 그것을 전부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내 어깨에다가 다 부담을 시켜서 다 내게 부담을 시켰다. 부담을 시켰다. 그것을 내가 부담을 하고, 거게 대 한 형을 낱낱이 내가 다 받았다. 그 형을 다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 과거 범죄 에 대해서 내가 그 형을 받지 안한 죄가 하나도 없다. 현재의 범죄에 대해서 내가 네 죄에 대하여 형을 내가 받지 안한 죄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모르는 죄도 없 고 나한테 그 죄를 내 어깨에다가 정죄시키지 안한 죄도 없고 내가 그 죄에 대한 댓가로 형을 받지 안한 죄도 하나도 없다. 다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너는 과거나 현재나 혹  미래에도, 미래에 네 죄가 있다  할지라도 죄가 나타날 때에 ‘아, 이 죄에 대해서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은 하지 말아라.

내가 그 정죄를 다 받고 형을 다 받았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말 아라. 또 이 죄의 댓가로, ‘내가 지금 어떻게 이 죄의 댓가로 내가 무슨 화나  멸 망을 받지 안할까’ 네가 그런  염려도 하나도 하지 말아라. ‘아,  이 죄가, 죄를 과거에 이렇게 지어서, 이렇게 죄를 지어 가지고서 주님을 형벌받게 했다. 이러니 까 이거 참 원통하다. 분하다. 슬프다.’ 네가 그 죄에 대해서 분하게 여기는 것도 하지 말아라. 그것도 공연히 소용없다. 암만 분하게 여겨 봤자 벌써 죄는 지어 가 지고 내가 형벌까지 다 받았는데 거게 대해 네가 분하게  여기는 것도 너는, 네게 는 필요 없는 일이다. ‘아, 그러나 과거 죄 지은 걸 생각할 때에 슬퍼서 못  견디 겠습니다.’ 네가 슬퍼하는 것도 그것도  공연한 소용없는 일이다. 슬퍼하지도 말 아라. ‘내가 심히 고민합니다. 고민이 됩니다.’ 고민도 공연히 쓸데없는 고민, 고 민도 하지 말아라. ‘내가 이 죄를 지었으니까 어찌 되느냐, 이거 참 아주 마음에 근심이 되고 걱정이 됩니다.’ 근심도 하지 말아라. 걱정도 하지 말아라. ‘아, 이 죄가 있는데 이 죄는 어짭니까?’ 그 죄도, 그 죄도 그 죄에 대해서, 너는 지금 보 고서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이래 말하지마는 하나님은  네가 범죄하기 전에 그 죄 지을 것을 하나님이 다 그 죄를 전부  똘똘 뭉쳐 가지고서 내 어깨에 다 지웠 다. 나에게 정죄를 다 했다. 그래 가지고 그 죄를 빠짐 없이 나에게 정죄 다 하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뭐 정확하게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사정 한 내끼도 두지 안 하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하나도 사정 두지 아니하고 낱낱이 그 형벌의 그 양을 낱낱이 정확하게 내게 형벌을 다 가해서  내가 그 형벌을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네가 슬퍼하지도, 염려하지도, 걱정하지도, 후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근심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염려하지도, 고통도, 분히 여기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네 죄에 대해서는 내가 다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대형했기 때문에 거게 대 해서 하나도 생각지 말아라.

그런데, 다만 네가 할 거 하나 있다. 뭐이냐? 네가 나한테 담당시킨 죄가 어떤 죄 인지 그래도 그 종류는 알아야 될 것 아니냐? 그  종류나 알도록, 그 종류는 빠지 지 말고, 내게 담당시킨 그 죄는 무슨 무슨 죄라 하는  그 종류를 네가 아는 이거 는 네가 알아야 된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네가, 신구약 성 경 말씀에 빠진 거 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그 성경을 나벼 보면은 네가 나한테 부 담시킨 죄가, 나한테 형벌시킨 죄를 거게서 다 알게 되니까 신구약 성경으로 먼저 간추려서, 네가 내게 부담시키고 나를 형벌받게 한 그 죄가 무엇인지 성경으로 그 걸 찾아서 알아라. 어떤 죄를 네가 나한테 부담시켰는지 그거는  알아야 될 거 아 니가? 그 죄를 범했다. 범한 데 대해서 뭐, 범한 데 대해서 형벌에 대해서 원통하 다 후회다 그런 거는 백지 소용없는, 쓸데 없는 일이다, 그거는 할 필요가 없다 다 만 네가 네 죄에 대해서, 네가 네 죄에 대해서 내게  부담시킨 죄가 뭣 뭣인고 그 가지 수나 종류나 그것은 네가 알아야 할 것이고, 또, 둘째로 네가 알 것은, ‘내가 죄 지었다’ 그런  거는 아무 생각할 필요 없다.

없고, ‘아, 그러면, 내가, 이 죄로 주님이 내 대신 형벌 받으셨으니 그러면 주님이 내 죄 대신에 어떤 형벌을 받으셨느냐? 내가 네 대신 형벌받은 형벌 그거나 네가 알아라. 무슨 형벌을 받았는지, 어떤  형벌을 받았는지 그걸, 그거나 네가  알아라.

이렇게 형벌을 받는 데는 주님이 어떤 형벌을 받았다 하는 그걸 알고 또 한 가지 남아 있는데, 한 가지 남아 있는데 내가 네 죄의 형벌을 받느라고 내가 어떻게 가 난해졌으며 어떻게 천해졌으며 어떻게 낮아졌으며  어떻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는 지, 내가 네 죄의 형을 그것을 내가 받아서, 어떻게 형을 받았는가 그 형 받은  그 형은 네가 알아야 될 거 아니가? 네가 과거에 죄 지은, 지은 죄 그거는 네가 암만 해 봤자, 해 봤자 그거는 변동을 못 하고 그거는 네가  또 그것은 어떻게 할 도리 가 없다. 이러니까, 무슨 형을 받았는지,  어떤 죄, 어떤 형을 받았는가 고거  네가 알고, 세째로 하나 알것은, 이러니까, ‘이렇게 내가, 이렇게 이 죄로 이런 형을,  주님에 게 이렇게 내가 형을 받도록  이렇게 했으니’ 너 할  것이 뭐이냐? 이제는 네가 이 가지 가지의 이 죄에 대해서 네가 언제 깨달았든지 깨달은 그때부터 너 할 일 은, 네가 깨닫고 또 범죄했으면 또 그때 또  깨닫고 할 거, 이제 너 할 거는 뭐이 냐? 너 할 거는 ‘내가 이런 죄로 주님을 이렇게 그 죄의 값인 형을 받도록 했으 니, 했으니 다시는 내가 이 죄를 짓지 안해야 되겠다’ 고것만 네가 해라. 네가 무 엇을 뭐 울고 원통해 해 봤자 그거는 다 소용없은 일이다.

이러니까, 내가 네 죄를 어떤 죄를 내가 부담했는지 정죄를  받았는지 그 죄의 종 류나 가지수나 알고, 그 형을 받을 때에 어떻게 형을 받았는가 그거나 알고, 네가 내게 대해서 갚을 거는 딴거 없다. 그것을 알고, ‘내가 이랬으니 이제는 내가, 주 님이 나 위해서 이랬기 때문에 이제는 주님이 이 형 받은 것을 내가 그것을 알아 주님이 내 죄의 형을 받은 이 형과 같은 이런 형이, 내가 범죄하지 안할라고 함으 로써 이런 형이 온다 할지라도, 주님이 내 죄의 이런 형을 받아서 내 죄를 속하셨 는데 내가 범죄 안 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어려운 형이 있다고 해 가지고 서 내가 다시 범죄할 수가 있겠느냐’ 이제는 네가 이  사죄를 네가 보수할 때에, 주님이 이런 이런 해 가지고서 이렇게 형을 받으셔 가지고 나에게 사죄를 주셨기 때문에 이 사죄는, 주님이 나에게 이 형을 대신 받은 그것을 생각해서 네가 이 사 죄를 보수할라고 할 때에, 이  사죄를 보수할라고 할 때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네 죄의 형을 받을 때의 그 형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이렇게 이런 형을 받 으셔도 나에게, 받아 가지고 나에게 사죄를 줬는데 내가 어떻게  죄를 범할 수 있 겠느냐?’ 네가, 죄가 와서 죄를 범하게 할 때에 네가 내가 너 위해서 한 그 형과 같은 그런 형을 받으면서도 참으면, 받으면서도 네가  죄를 범하지 안하면 그것으 로써 내 노는 다 풀린다. 그것으로 내  노는 다 풀린다. 그저 네가 어떤, 다시,  네 앞으로 다시 어떤 죄를 범해야 될, 그 죄를 범죄케 할라고 사회가 달라들고, 또 국 가가 달라들고, 모든 친구가 달라들고, 가족이 달라들고, 모든 사람들이  달라들고, 세계가 다 달라들어서 너에게는, 내가 입혀 준 이 사죄를  네가 그것을 벗지 안할 라고 하면은 네가 적지 않은 고난이 올  것이다. 그 고난이 와도 그 때에 고난을, 고난을, 이제 올 때에 그 고난을 네가 받지 않기 위해서  이제 내가 네게 입혀 준 이 사죄를 벗어 버리면 내가 그보담 더 분한 일은 없다.  그보다 더 노한 일은 없 다. 그때에 네가, ‘주님이 이렇게 받으셔서 형을 받아서 나에게 사죄 주셨는데 내 가 어렵다고 내가 이 사죄를 벗겠느냐?’ 그래서, 그 사죄를 벗지 안할라고, 죄 없 이 함을 벗지 안할라고 네가 형을 받을 때에 그것으로써  내 섭섭함은 다 풀리고, 내 노는 다 풀리고, 그것으로써 내가 위로 받는다. 그 외에는 내가 그 노를 풀  일 이 없다. 내 노를 풀 것, 내 마음에 섭섭한 거 내 마음에 꾹 끼여 가지고 있는 그 것을 푸는 길은 그 길밖에 없다. 내 노는 네가 사죄를  벗지 안할라고 내가 너 위 해서 형받은 그런 형이 와도 네가 다시는 형 때문에 사죄를 벗지 안하고, 형을 받 았으면 받았지 사죄는 놓지  않겠다 하고서 이 사죄를  보수하는 그거 외에는 내 노를 푸는 길이 없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이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공심판이 아니고, 공심판에서는 당신이 다 담당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암만 해 봤자,  우리는 죽는다 해도 공심판 에 통과는 못 시킵니다. 공심판에,  공심판에서 죄 안 짓는 그런  자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지어 봤자 우리 소경이 볼 때에, 더듬어 볼 때  죄 안 짓지 그 안 에 전지한 자가 세밀히 볼 때는 우리는 죄를  안 짓고 의라고 하는 것이 깊이 살 펴볼 때는 하나님의 눈으로, 현미경 같은 하나님의 눈으로 살펴볼 때는 의라고 하 는 것이 욥도 볼 때에 때 묻은 옷과 같다 했습니다. 성령이 볼 때는, 의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죄 뭉텅이입니다. 우리 사람으로서  그렇다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에 우리는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당신이 주신 사죄를 내가 보수할라고, 칭의를 보수 할라고, 하나님과 화 친시켜 주신 이거는 다 주님이 죽으심으로써  이렇게 베푸신 공로로 이루신 것인 데 내가 이것을 보수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고난 당할 때에 고난을 당해도 내가 이 세 가지 대속을 나는 이제는 벗을 수 없다 하는 그것으로써 당신의 노는 다 풀리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의 노는 다 풀립니다. 당신의 노는 다 풀리고,

‘떠나든지 거하든지’ `그런즉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은 이것이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이고, 주님 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다른 거 없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주님이 날 사랑함과 같이, 주님이 날 사랑함과  같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죄를 입혀 주기 위해서, 칭의를, 내가 한 거는 아니고 주님의 것이지마는 사죄를 전달해서 그가 사 죄를 확실히 입고 칭의를 확실히 입고 화친을 확실히 입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을 모르는 자에게 이것을 입히도록, 입히기 위해서, 그것을 입힐라고 할 때는 내게 수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주님이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시기 위해서 어떤 고난 당하 신 그것을 생각하면서 나도 형제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을  전달해서 그도 입어서, 그도 입어서 구원 얻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냉수 한 그릇의 손해를 보면 내가 그 걸 갚겠다. 네가 그것을 위해서  네가 눈물 한 방울  흘렸으면 내가 그걸 갚겠다.

네가 그것을 위해서 매를 맞았으면 내가 그것을 갚겠다.

네가 그것을 위해서, 반도 한국에 와 가지고서 그것을 전해 주기 위해서, 내가 너 를 이 공로 입히기 위해서 내가 죽음으로 입혔는데 네가 이 공로를 깨닫고 이 사 랑을 깨닫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한국에 가 가지고 이걸 전해 줄라고 하다가 도끼에 쪼여 죽은 토마스 목사야, 나는 그것으로서 만족하다. 그것으로 만족하다.

내 노를 풀 일이 어데 있느냐? 내 노를, 내 노를 푸는 길이 어데 있느냐? 내 노를 푸는 것은 내가 이렇게 해서 너에게 입혀 준  이 세 가지 공로를 네가 벗지 안하 는 그것이 내게, 그것이 내게 만족하고, 벗지 않기 위해서, 네가 고난 받아도 벗지 않기 위해 하는 거게에서 내 노는 다 풀어지고 내게 감정은 다 없어진다. 너 위해 서 내가 죽은 데 대해서 뭐 조금도 내가 마음에 불만 불평이 없다. 그것으로써, 보 수로써 내 노는 다 풀어지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내가 너에게 행한 이걸 네가 깨닫고 너도 네 형제에게, 내가 너한테 한 것같이 너도 네 형제에게, 네가 공로는 베풀지 못하지마는 내가 베풀어 놓은 이 공로를 형제에게 전해서 그의 공로가 되 어서 그가 구원 얻어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거 위해서 네가 여러가지로 고난받는 거, 여러가지로 희생하는 거, 네가 낮아질 때에도, 낮아져도 그걸 낮아지면서도 전 하는 거 그것이,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땅에까지 하나님이 죄인 되기까 지 낮아진 그것을 네가 생각하고 네가 낮아져도, 네가 가난해져도, 네가 천해져도, 네가 외로와져도, 모든 사람에게 멸시와 해를 당해도, 네가,  내가 너를 구속한 이 것을 생각하고 그 형제에게 그와같이 했으니 이제 후로는 너는, 너는 나의 친구요 내 종이 아니라. 내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상속받는 것처럼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 다 상속시켜서 내 보좌에 너도  함께 앉게 하겠다 하신 이것을 심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은 제사장 심판이요 선지 심판이요 왕의 심판인데, 이 세 가지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한 것 은 이 세 가지 직책을 행한 것이 이 세 가지 대속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 그리스도의 심판이라고 말씀했는데 이 그리스도의 심판은 주 님의 노를 네가 얼마나 풀었느냐, 네가 주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했느냐 하는 그것 을 낱낱이 판단해 가지고서 영원한 세계에서  당신이 갚아 주는 그것이 그리스도 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은 우리의, 우리의 죄와  의와 모든 불목된 것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당담하셨으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공심판은 다 통 과됐습니다. 공심판은 다 통과됐습니다. 공심판은  통과됐지마는, 통과됐지마는 그 렇지마는, 공심판은 통과 됐지마는 내가 이렇게 너에게 이 큰 대속을 줄라고 내가 어떤 고난을 당해 했는데 네가  여게 대해서 네가 어떻게  이 대속을 보수했으며, 이 대속을 어떻게 보수했으며, 네가 이 큰 대속을 입었으니  네가 그 형제에게 대 해서 어떻게 행했는지, 그것으로써 주님의 노를 격발케  한 것과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것과 주님의 노를 다 푼 것과 주님을 기쁘시게  한 이 네 가지가 이제, 여기는 공심판은 아닙니다. 공심판 아니고 사심판인데도 이 네 가지대로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영원히 갚아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보면은 비유하기를 일만 달란트 이 렇게 빚진 자를 탕감해  줬더니마는 백 데니라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 안하고 법관에 송사했기 때문에 주인이 잡아다가서 감옥에  가둬 버렸다 하는 이것이 이 그리스도의 심판을 두고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이 큰 대속을 받았지마는 우리가, 큰 대속 받은 우리들이 주님이 나한테 이래 했으니까 나도 사 람에게 어떻게 해야 될  것이 그것이 확실히 판정  나건마는 주님이 대속 이것을 업신여기고 저는 사람에게 대해서 저는 제대로, 저는 ‘제 일  제 하면 됐지’ 하 고서 주님의 이 사랑에 대한 것을 느끼고 여기에 참 큰 빚진 자로서의 살지 안한 고것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낱낱이 심판해  가지고서, 영원한 감옥에 가둔다 그 말은, 하늘나라 감옥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감옥이 있소. 하늘나라 감옥 있다  그 말하면은 이제, 이제 또 나가면은 ‘봐라, 하늘나라, 천국에 어데 감옥이 있노?’ 또  이단이라 할 것입니다. 저거가 몰라서 이단이라고 하지, 아니오. 하늘나라 감옥이  있는 것은 뭐이냐? 그 사람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네가 거게서 놓여 나오지 못하 리라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우리의 생명 구원은 다  같이 얻었지마는 우리의 이 모든 영광이나 활동의 범위는 다 제한돼 있습니다. 다  제한돼 있소.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은 만리, 비유컨대는  만리 평방을 자유로  활동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평, 한 평밖에는 자유 못 해. 한 평 안에서만 요리 조리 돌아다니지 십리도 못  나 갑니다. 그것이 뭐이냐? 하늘나라의 영광의 제한의  감옥입니다. 그것이 감옥이라, 그 제한이라 말이오. 하늘나라에  제한이 있습니다. 왜  제한이 없습니까?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말했는데.

이러기 때문에,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그와같이 한 그 자를 감옥에 가둬서 다 갚 기 전에는 나오지 못한다 했습니다. 요만한 제한된 범위에 든 자가, 제한된 범위에 든 자가 그 범위를 벗어날 만치  자기가, 벗어날 만치 그리스도의 모형의  행위를, 그리스도를 노를 풀어야 요  범위 속에 갇힌 자가  요 범위를 벗어날라고 하면은 고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주님의 노를 풀어야 벗어나고, 또 고 범위를 벗어날 만 치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그 범위를 벗어나지, 하기 전에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 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그 나라에는 시작은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종자가 있 고 기초가 있는데 기초 위에 해 나가지 이  세상에서 못 한 것은 그 나라에서 새 로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나라에 제한 받은 것은 영원한 제 한입니다. 그 제한은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호리라도 갚기 전에 나오지 못 한다 말은 갚을 수 있다 말이 아니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잘 듣지  안하면은 도리어 더러워질 것입니다.

‘아, 뭐 범죄는 얼마든지 그것은  주님이 다 담당하실라 한  것이기 때문에 상관 없겠구나.’ 제가 오늘도 범죄하면서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 알 게 있습니다. 뭐이냐? 오늘이  끝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 오늘이 끝인지 모릅니다. 자, 오늘 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 있습니까? 오늘이 자기 끝이 아니라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오늘이 자기 끝이, 마지막 시간인지 알지 못 하는 사람은 손들어 봅시다. 오늘이 내  끝 시간인지 모릅니다. 이런데 내가 마귀 란 놈의 유혹 받아 가지고 ‘아, 이래도 다 하나님이  다 담당한 죄악이기 때문에 이것도 담당한 죄악이 아니냐’ 하고서, 자기가, 이 시간이 주님의 노를 풀 시간이 요 이 시간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시간이라  요 시간밖에는 노를 풀 시간이 없고 요 시간밖에는 기쁘시게 할 시간이  없고 남은 시간은, 노를  풀거나 기쁘시게 할 시간은 남은 시간이 없는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이요, 만일 남은 시 간이 있다 할지라도 없는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 에, 우리는 내일 날을 자기 날로 알고 계산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퍼뜩 들어도 언제 가르칠지 모르는데, 깊이 영감 가운데에 들어가면 잘 깨달을 것이고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느끼지 를 못합니다. 영감 가운데 들어가면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없이 기쁘고 즐겁고 안심입니다. 한없이 기쁘고 즐겁고 안심이나  내 소유와 몸과 생명 은 일 분 일 초도 내가 가지고 내 자유는 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요런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의 영생이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님이 노를 푸는 것과 기쁘시게 하는 거  두 가지밖에는 우리에게 할 일이 없습 니다. 과거 가지고 끙끙 앓는 것도 필요 없습니다.  원통해하는 거 필요 없습니다.

모든 거 필요 없고, 이 시간부터 노를 푸는 것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 두 가 지에만 전력 기울여야 합니다. 노를 푸는 것은 보수하는 것이요, 기쁘시게 하는 것 은 내가 제이 예수가 돼 가지고서 주님의  십자가를 내가 지고서 주님의 하신 그 일을 계대하는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기도> 주님,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사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에 대해서 정확히 가 르쳐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은 이 세 가지 대속을 보수 하는 데에 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대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입혀 주는 데 있음을 똑똑히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두 가지를 위하여 남 은 여생의 우리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여기에 바쳐서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 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어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주님을 믿는 다 할지라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있지마는 주님의 노의 대상이 되고 주님을 근심되게 하는 자 되고 주님의 노를,  노 풀으심을 받은 자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자는 되지 못한 이 사실을 깨달아,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서 수십 년 신앙 생활 해도 항상 주님의 노의 대상이요 주님을 근심되게 하는 대 상으로 세상에 살다가 끝을 마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 이 땅위에서 우리로 하 여금 공연히 헛되이 믿고  미직지근하게 더웁지도 안하고  차지도 안하고 죄인인 줄도 모르고 노엽게 하는 자인 줄도 모르고  기쁘게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그날 그날 땅의 것만 생각하고 날뛰는 우리들이  되지 않도록 똑똑히 증거해 주셨사오 니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이제 남은  때는 우리가 죄를 거머쥐고 우는 것보다 도 주님이 입혀 주신 이 대속을 보수하기  위해서 우리의 전부를 다 바치는 것이 주님의 노를 푸는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이 대속을 전하여  입히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 외에 다른 우리의 할 일 이 없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신앙으로 나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 다. 이제는 마귀에게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거느려 주시고, 이제는 아버지 의 아들이 되었고 딸이 되었사온즉 모든 것을 주님 앞에 의논하고 인도받아서 시 온의 대로 행복의 대로를 든든히 안심하고  걸어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 서. 믿는 자로서 믿음 지키지 안할 때에는 다 천해지고  믿음 지키면 심히 존귀해 지는 이 사실을 굳게 잡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 씀하신 대로 지금 믿는 자라도 요대로 지키면  일찍부터 믿는 자보다 앞서 갈 수 있는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음에  굳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는 말씀을 어겨 무엇을 할라고 하지 안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이 믿음 생활에서 복과 기적으로 우 리들은 살아야 되는 것을 굳게 잡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없는 애로와 기도와  모든 인내를 가진 사랑하는 종들 을 주님이 기뻐하실 줄 압니다. 주님의 기쁨의  선물인 능력을 저희들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지금 당상된 이 세 구역을 주님이 축복하사 앞으로 더욱 더 주님의 이 진리, 우리의 생명인 이 진리를 궁구하는 데 열중되게 하시고 남은 우리 식구들도 죽기 전에, 주님의 재림이 오기 전에, 환난이 이르기 전에, 자유 있을 때에 썩어진 마귀 의 지식을 가질라고 애를 쓰지 말고 이 지식을 열심히 상고하여서 저들이 살아갈 길이, 해야 할 일이, 모든 만 존재관에 바로 가지고 후회 없는 걸음을 걸을 수  있 는 저희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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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주를 기쁘시게 한 것이 성공/ 히브리서 11장 5절-6절/ 1987. 2. 1.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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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 주를 위해서 법도대로 한 것은 책임짐/ 고린도후서 5장 14절-15절/ 1986. 3. 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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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주의 음성/ 신명기 28장 14절-15절/ 1979. 10. 20. 토새벽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