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교양과 훈계

 

1987. 3. 13. 새벽 <금>

 

본문:에베소서 6장 1절∼4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마태복음 15장 3절∼4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종교 쳐놓고 부모에게 효하라는 그 효를 가르치지 아니한 종교가 하나도 없고, 사상 중에도 부모에게 효하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사상도 없고, 모든 도덕 중에도 부모에게 효하라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아니한 도덕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가르친 오계명은 성경에만 있지 온 인류 역사의 어느 책에라도 없습니다.

다른 무슨 어떤 그 사상이나 도덕이나 종교나 철학이나 무슨 그런 데에는 성경에 제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그런 계명과 같은 계명은, 그런 교훈 같은 교훈은 없습니다.

혹 생각하기를 성경에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모든 도덕론이나 종교론이나 사상론에도 다 효하라는 그런 효도를 하라는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여게 있는 교훈과 다른 데 있는 교훈이 다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외나 그 중심인 진수를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 하는 이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순종하라 말은 부모를 배우라 말이요, 또 부모를 따라가라 말이요, 부모를 닮으라는 말이요, 또 부모가 인도하는 대로, 교훈하는 대로, 지도하는 대로 순종해서 하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 법도인 계명이 있고, 하나님의 법도인 이 신구약 계명이 있고 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법도인 인간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그 사이에 들어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다 일치가 되면 좋겠는데 그 지식이 달라서 하나님의 지식에 순종할라 하면 인간 지식에 배치가 되고 인간 지식 인간 뜻에 순종할라 하면 하나님의 뜻에 배치가 되는 그런 형편을 우리들이 많이 만납니다.

우리가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에게 순종할라 하면은 그 부모에게 거역이 되고 또 하나님을 본받아서 따라갈라 하면은 부모는 본받지 못하고 반대가 되어지고, 하나님 닮아갈라 하면은 부모는 배치가 되어져서 닮아가지를 못하겠고, 하나님을 배울라 하면은 부모를 배우지 못하고 부모를 배울라면 하나님을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정반대로 되는 그런 것을 우리가 많이 봅니다.

거의가 다 우리가 그런 모순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요새도, 학생은 이 신앙 생활을 바로 할라고 애를 쓰는데 부모네들이 죽자껏 말리고 핍박하고 반대하는 걸 봅니다. 왜 부모가 그 자녀를 물론 제 뭐 좋게 돼라고 할라고 그와같이 하지마는 자기 닮지 안하고 자기 비위에 맞지 안하고 자기 모든 뜻과 사상과 같지 안해진다고 자꾸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순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이 가운데 끼어 있는 우리 사람의 생활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부모를 순종하라” 했는데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이것을 구별해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제가 말을 몇 가지만 해 볼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옳으면 옳다고 손을 들고 옳지 안하거든 가만히 있으십시오. 부모에게 순종하고, 먼저 부모에게 순종하고 그 다음에,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된다 이것이 옳습니까? 녜,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먼저 순종하고 그 다음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하는 것은 이것은 옳은 깨달음입니까? 녜, 옳은 깨달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주님에게 순종하고 그 다음에 부모에게 두번째로 다음으로 순종하라 하는 말이 옳은 교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 틀렸습니다.

그러면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두 군데 순종하는데 선후를 주님을 먼저 두고 부모를 다음에 두면은 그것이 옳다 하는 그런 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다 틀립니다. 주님에게 먼저 순종하고 부모에게는 그 다음 순종하라는 그 선후만 바로 가지면 된다 하는 그말이 틀린 말입니다. 그 사색이 틀렸습니다.

그러면 또, 부모에게 먼저 순종하고 하나님에게 다음 순종하라 하는 말이 맞습니까? 녜, 그건 틀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과 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꼭 같이, 부모에게 순종 하나님께 순종을 반반을 꼭 나눠서 아롱아롱하게 부모에게도 순종 하나님께도 순종하고 반씩 갈라 가지고 이래 반반으로 이렇게 순종하면 그것은 바로 되는 것인가? 바로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드십시오. 녜, 그거는 바로 알았습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을 하되, 부모에게 그 순종을 하되 하나님의 법도에 맞는 거는 순종하고 하나님 법도에 맞지 않는 순종은,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는 그런 순종은 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법도에 맞는 순종만 해라, 하나님의 법도에 맞지 않는 순종은 하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에 위반이 되지 않는 그런 순종만 해라 하는 것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다 손 들어 봅시다. 아무나따나 안 들고. 이것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고 부모에게는 순종하지 말아라,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면 되지 부모에게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 하는 이것은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것은 틀린 줄 압니다. 녜, 그거는 바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순종하고 부모에게도 순종하고, 하나님에게도 순종하고 부모에게도 순종하고 두 군데 다 순종해라 하는 이 말은 맞습니까 틀립니까? 녜, 이 말은 맞다고도 못 하고 틀리다고도 못 하고 맞는지 틀리는지 좀 더 물어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지 부모에게는 순종해서 안 된다, 어떻게 두 가지 순종할 수가 있느냐? 만일 하나님에게, 하나님은 동으로 가자 하고 부모는 서로 가자 하고 이리 되는 날이면은 두 군데 다 어떻게 순종할 수가 있겠느냐, 그러니까 그것도 틀렸다 하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고 부모에게는 순종하지 말아라 그 말은 맞습니까? 그 말은 틀립니까? 틀립니까? 틀립니까?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고 부모에게는 순종하지 말아라 하는 그런 말은 틀린 말입니까? 틀렸습니까?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고 부모에게는 순종하지 말아라 하는 그 말은 틀립니까 맞습니까? 틀린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녜, 그거 맞는다고도 못 하고 틀린다고도 못 하겠습니다.

좀 더 조사를 해서 물어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순종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할 때는 순종하고, 순종하라 하는 일에는 순종하고, 순종하지 말라는 데는 순종하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으로,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된다,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부모에게 순종을 해야 된다, 하나님에게 순종이 아닌 그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순종은 하나뿐이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은 모든 것이 구비하고 온전하고 참되고 하나도 빈틈이 없이 하나도 모자람이 없이 시키시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이 시키는 대로 하는 데에 그분이 시키시기를 어떨 때는 이런 면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말아라 이럴 때는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니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하기 위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지 부모에게도 순종하고 하나님에게도 순종하고 두 군데 순종하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할 수 있지 다른 데는 순종할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모는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이 부모에게 순종하라 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 순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종은 하지 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되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이 된다.

부모에게 효성 안 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성 안 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에게까지 효성을 안 하는 그 죄가 되어진다 하는 이 깨달음은 어떻습니까?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과거에 예수 믿지 안할 때에 세상 지식으로 배워 가진 것 많습니다. 배워 가진 것 많은데 그 배워 가진 것 그것을 거게 다 필요하고 좋은 것을 다 쓰고 싶지마는 그것을 알기는 알고 있어도 이 세상 학문이라는 것이나 모든 세상 지식 모든 것을 배워서 공부해서 알고는 있으나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런 걸 다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알고는 있으니까 그대로 하고 싶지마는 주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기로 했고 주님 한 분만 위하기로 했기 때문에 주님에게 거슬리는 것은 내가 배운 모든 지식 전부가 다 주님에게 거슬려 있습니다. 거슬리지 안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알고는 있지마는 그것을 내가 그대로 행할 수 없는 것은 나는 주님의 구속을 받았고 주님의 온전한 율법을 우리가 다 배웠기 때문에 그 법에 따라서 순종해야 되지 두 군데 순종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하는 요것만 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라면 부모에게 순종하는 그 일을 인인 관계에 있어서, 인인 관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인인 관계가 무엇입니까? 제일 중요한 인인 관계가 형제끼리의 관계입니까, 부부끼리의 관계입니까, 친구끼리의 관계입니까, 부모와 자녀와 관계입니까? 제일 중요한 관계가, 첫째되고 중요한 관계가 무슨 관계가 첫째되고 중대한 관계라고 성경이 말씀합니까? 녜,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것이 부부 관계보다도 크고, 형제 관계보다도 크고, 또 선생과 제자 관계보다고 크고, 왕과 신하의 관계보다고 크고, 부모와 자녀의 그 관계가 제일 크고 중요하다 한 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배치되어서 이것이 혼돈되어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오늘 그런 것을 다 바로 정리하지 못하고 성경대로 하지 안한 데에서 인간들이 다 화를 받고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결혼을 해도 부모와 자녀와 관계가 제일 큽니다. 2절에 “네 아비와 어미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첫 계명이라는 이 첫 계명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인인 관계에서는 제일 첫째되는 계명이라 그말입니다.

인인 관계에는 제일 첫째되는 계명이라 그말입니다.

이러기에 그 암만 부부가 좋고, 아무리 형제가 좋고, 친구가 좋고, 선생과 제자가 좋고, 또 왕과 신하 사이가 좋고, 상관과 부하 사이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보다 더 중하지는 못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가 인인 관계에는 제일 중요하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부모와 자녀의 그 관계가 잘못되면 그것은 제일 못쓸 사람이다 그말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잘못됐기 때문에 나머지기는 다 잘못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녀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또 사람과 하나님과 사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관계에는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 사람과 하나님 관계에는 사람을,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까 하나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까?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까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사람과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한지 하나님과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한지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합니까? 어느 게 제일 중요합니까? 사람과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하나님과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저 안 드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사람과 사람 관계에는 뭐이 중요합니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은 다른 데서 없고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다른 데는 저거 욕심대로 다 말해 놨습니다. 정치가는 왕과 백성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또 선생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선생과 제자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또 부모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부모와 자녀 관계가 중요하다 이러나 그거는 세력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하는 것은 아직까지 땅위에 나오지 안했습니다. 이 성경에만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복잡한 속에 살고 있는데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뭐이 제일 중요한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이 어느 것을 택정을 해서 옳다고 정할 건가 하는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뭐 이렇게 듣는 것을 예사로 듣고 있지마는 자기에게 당면될 때에 이것을 판단해서 이대로 하면, 성경대로 하면 그것이 멸망 가운데서 헤고나는 그 탈출구요, 멸망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요, 탈출구. 벗어나는 그 구멍이라 말이오. 멸망에서 빠져나가는 그 구멍이요, 또 멸망 속에서 생명으로 기어들어가는 구멍입니다.

멸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구멍은 무엇이뇨? 멸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다니? 여게는 전부 멸망인데 그 멸망에서 바다 속에서, 바다 속에 빠졌으니까 지금 죽는데 바다 속에서 살아나는 그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구멍 하나 모르면 못 살아납니다. 멸망에서 살아나는 구멍 그거 모르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 구멍이 뭐입니까? 멸망에서 살아나는 구멍이 뭐입니까? 그 구멍이 뭐이지요?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멸망에서 살아나는, 멸망을 헤치고 살아나는 구멍이 무슨 구멍입니까? 아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몰라요? 또 그러면 자기가 이 행복된 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 세계에서 멸망으로 빠져들어가는 구멍은 뭐입니까? 내나 그 구멍이 그 구멍이라. 모든 행복과 평강에서 멸망으로 들어가는 구멍 있고 또 멸망에서 생명으로 들어오는 구멍 있어? 그 구멍을 찾지 못하면 다 멸망에 있는 사람이 멸망에서 죽고 맙니다.

생명에서 있는 사람이 멸망으로 들어가는 구멍을 모르면 그만 그 구멍에 푹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 구멍이 뭐입니까? 예? 예? 그 구멍이 뭐이요? 그 구멍이 뭐라? 여기 그 구멍이 계명이라 말한 사람 있는데, 이 계명이라 말한 사람 있는데 그 말이 맞소, 그래? 맞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맞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이래 놓으니까 손 든 사람이 몇 사람 없구만. 맞아, 맞아요. 맞습니다. 백점이라.

멸망에서 구원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곧 하나님의 계명이오. 그 구멍으로 들어가면 사요. 그 구멍으로 들어가면 멸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구멍입니다.

또 생명에서 멸망으로 빠져나가는 구멍은 뭐입니까“ 그것도 계명이오. 계명 어기면 멸망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계명 어기면 바로, 계명 어기는 게 바로 멸망으로 들어가는 구멍입니다. 계명 지키는 것이 멸망에서 사망으로 바로 들어가는 그 구멍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계명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초자연의 능력, 전지 전능자의 그 사랑의 능력의 도움을 받는 유일한 길이 계명 지키는 길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계명은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런데 세상에 다른 데에서는 오계명 같은 부모에 효를 갖추는 것이 없다는 말은 세상에는 모든 계명들은 다 쪼갱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부모에게 효성해야 된다, 네가 부모에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사은으로서 부모에게 효성해야 된다, 효성은 부모 위해서 효성해야 되고, 또 남편에게 열녀는 남편 위해서 열녀해야 되고, 또 임금 섬기는 것은 임금 위해서 충성을 해야 되고 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세상 모든 교훈들이오.

성경은 그렇지 안합니다. ‘안 된다. 아무것도 못 한다.’ ‘부모를 장사하게 하옵소서.' `못 간다.' `가족을 이별하게 하옵소서.’ ‘안 된다.' 어짜라고, 그라면? 하나님 한 분만 네가 순종해라.

하나님 한 분만 순종하고, 한 분에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네가 그분 한 분만 순종하는 게 옳고, 또 그분 은혜로 전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 한 분에만 순종하는 게 옳고, 이것은 일반 자연 은총이라. 모든 사람이 다 그래 하는데 이걸 범해 가지고 멸망을 받는 것이오.

또 너는 이제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너를 대속하신 대속의 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이 열한 가지 구원에 팔린 자요 또 너는 예수님의 그 피와 생명에 팔린 자라. 예수님의 대속에 팔린 자라, 예수님의 구속에 너는 구속을 위해서 지음받은 존재한 자라, 너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인해서 네가 제일 처음에 목적 속에 든 자라. 그리스도의 목적 속에 든 네가 네라.

그러면 존재가 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런 거 저런 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님만을 위해야 된다. 주님에게만 순종해야 된다.

요것이 오계명이요, 요것이 왕에게 대한 충성 계명이요, 요것이 부부에 대해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계명이요, 형제끼리 사랑하는 계명이요, 주인과 종 사이에 있는 계명이요, 주님 한 분만 해야 되지 딴것 못 한다. 이러기 때문에 요런 말은 요런 계명은 땅위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요런 효를 가르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유교에서 부모에게 효하라고 했지마는 유교에서 효하라는 것과 성경에서 효하라는 것은 아주 근본적으로 판이하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할 수 있고, 그분에게만 순종할 수 있고, 그분만 섬길 수 있고, 그분만 높일 수 있고, 그분만 위할 수 있고, 그분만 두려워할 수 있고, 그분만 위해야 된다. 이 단일 종교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이러나 세상에서는 그 천지만엽으로 이거는 이것만치 네가 위하고 저거는 저것만치 위하고, 이거는 이것만치 사랑하고 저거는 저것만치 사랑하고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세상에 있는 말들이오.

하나님의 교훈은 하나님 한 분만을 해라. 한 분만을 네가 높이고 섬기고 관계 가지고 순종해라. 위해라. 그러면 모든 거는 다 어떻게 하라고? 모든 것은 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직접 관계를 가질 수는 없다, 직접 관계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면 모든 걸 다 포기할까요? 포기할까요? 모든 것을 너는 포기도 못 하고 관계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 한 분만 관계를 가져야 된다.

그러면 모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모든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빠짐이 없이 이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라 저것에 대해서는 저렇게 해라, 이것에 대해서는 요만치 사랑해라, 요만치 귀중히 여기라, 요만치 관계를 가지라, 요만치 섬기라, 요만치 높이라, 요만치 순종해라, 요만치 사랑해라 그렇게 한 그대로 해야 되지, 하나님 한 분이 시키시는 그대로 해야 되지 달리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 안에 부모를 공경하라” 또 “주 안에 순종하라” 하는 요것이 주님을 떠나서는 못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주님의 계명을 떠나서는 못 하고, 그러기 때문에 효도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하기 위해서 효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 효는, 그 부모가 만일 나쁜 부모면 어찌 됩니까? 나쁜 부모라도 주님이 시키기 때문에 주님 위해서 효를 하기 때문에 암만 나쁜 부모라도 자기는 불효할 수가 없습니다. 효해야 됩니다. 다만 효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시키시는 법도 안에서 효를 해야 돼. 법도 여기면서 할 수는 없다. 왕도 그러하고 모든 것 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또 이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그렇게 하면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한다” 잘 됩니다. 땅에서 잘 됩니다. 잘 되는데 지난번에 몇 가지가 잘 된다 했지요? 몇 가지 은덕을 본다 했지요? 일곱 가지 은덕 본다 했습니다. 그거 여러분들이 자세히 새기면 빠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4절에 “또 아비들아” 이 말은 아비들아 하는 말은 아비만 말한 게 아니라 어미들아 한 말도 다 합해. 아비들아 어미들아 다 한테 통합한 말인데 하나만 표시한 것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과” 교양이라 말은 주님이 가르치는 그 가르침대로 교양하고 또 주님이 훈계하는 그 훈계로 훈계하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순종하라” 그말은 “주 안에서 순종하라” 순종하라 말은 뭐하라 말이라 했지요, 순종하라 말은? 한번 말해 봐요. 부모를 배우라, 순종하라 말은 부모를 배우라 말입니다. 순종하라 말은, 부모가 행동을 요래 하면 나도 그래 하고 저래 하면 저래 하고 부모를 배우라, 순종하라 말입니다. 순종하라 말은 부모를 배우라 말이오.

배우는데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랬으니까 주의 교양이라 하면은 주님이 우리를 가르친 대로, 또 주님이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책망하는 대로,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우리가 주님을 배우는 것처럼 네가 자녀에게 대해서, 자녀는너를 배우는 자기 때문에 주님이 너를 가르친 거와 같이 그렇게 가르쳐서 네가 주님을 배우는 데에, 주님 배워서, 네가 주님을 배워 가지고 못 배워 탈이지, 안 배워 탈이지 주님 배워 가지고 틀린 것 없는 것처럼 네가 자녀는 너를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네가 자녀를 가르치는 데에 너 배워서 너 하는 본떠 가지고, 너 하는 본을 떠 가지고 잘못됨이 없도록 해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라”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자녀가 부모의 가르치는 대로 해 가지고 그것이 잘 됐으면 그 자녀들이 노하겠소 잘못돼야 노하겠소? 잘못돼야 노하겠소 바로 돼야 노하겠소?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불평하도록 하지 말아라, 분히 여기도록 하지 말아라, 부애내게 하지 말아라, 마음에 불평하게 하지 말아라 그말이오.

불평하게 하지 말라 말이면 그라면 요새 아이의 뭐 꽃주일이라 하더나 아이날이라 하더나, 무슨 날? 어린이날. 어린이날이라고 그날은 막 부모네들이 자녀가 백프로 틀린 말 해도 막 순종해 주고 이렇게 해 주는, 썩었어, 썩었어.

그게 썩었다 그말이오. 썩었다 그말이오.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그말이 다 그 안에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종이라 말은 부모를 배우라 말이요, 본받으라 말이요, 닮으라 말이요, 따라가라 말이요, 그와 같이 돼라 말이요, 이러니까 이리 되니 만일 부모를 닮고 배우고 본받고 닮아가고 또 부모의 제자가 되어 이와같이 가고 하면은 그것이 잘못되면 그 자녀들이 얼마나 노여워하겠소? 이러니까 노엽게 하지 말라 그말은 이제 네가 자녀의, 자녀가 너를 본받은 것이 뒤에 원망 없는 본받을 수 있도록, 너를 배운 것이 후회 없이 배우도록, 너를 따른 것이 후회 없는 따름이 되도록, 너를 닮은 것이 후회없는 닮음이 되도록 해라.

네가 만일, 닮기 마련이고 본받기 마련이고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네가 거기 대해서 본받지 못할, 본받아서 후회되고, 배워서 후회되고, 따라서 후회되고, 닮아서 후회되는 그것을 네가 하면 그러면 자녀들이 자연히 너에게 자연히 노할 것이라. 분히 여긴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 시키는 대로 하니 이랬다. 부모 하는 걸 보고 내가 본받아 이랬다.’ 이리 돼지니까 그게 노여워하는 거라. 그게 뒤에 자녀들이 너 배우고 닮고 본받고 따라가고 너와 같은 자 되어져서, 되어지고 보니까 ‘하, 감사하다. 부모되는 대로 닮아서 닮고 본받고 따라가고 이와같이 배우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고 보니까 후회될 것이 없고 잘 됐다.’ 이렇게 하도록 네가 해야 되지, 네가 네 자녀라 하는 거는 너를 안 배울래야 안 배울 수 없고 하나님이 딱 배우도록 만들어 놨기 때문에, 배우도록 만들어 놨기 때문에 너 배우고, 너 본받고, 너 따르고, 너 따라가고, 너와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이니 네가 세모잡이면 자녀는 세모잡이 되고, 네가 네모잡이면 자녀는 네모잡이 되고, 네가 동글동글하면 자녀는 동글동글하고, 이러기 때문에 네가 표본이 잘돼야 되지 표본이 잘못되면 그들에게 뒤에 가서 원망 불평하도록 하지 말아라. “노엽게 하지 말아라” 원망 불평하도록 하지 말아라.

그러기 때문에 너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너는 하나만 닮아가야 된다. 부모에게 순종 너는 네 애비된 자, 부모에게 순종 뭐 선조에게서 온 그게 아니오.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하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러니까 네가 주님 한 분에게만 따라가고 한 분만 본받고 네가 주님과 같은 자만 될라고 애를 써서, 주님과 같은 자가 될라고 되도록 애를 써 가지고 꼭 주님과 같은 자가 되면 그 자녀는 또 너와 같은 자 되어지고 너는 주님과 같은 자 되어지고 이리 되면은 그들이 뒤에 네게 대해서는 노할 것이 없다.

이러니까 네가, 자녀는 너를 본받고 배우기 마련인데 배워 가지고 뒤에 네게 대해서 원망 불평하고 노엽게 하는 것, 원망 불평하고 ‘이라다가 나중에 틀렸다’ 하는 그런 원망 불평이 나지 안하도록 이렇게 해라.

그렇게 할라면 어찌 해야 되느냐? 주님과 꼭 같이 되어 주의 교양과 교훈으로, 주님의 훈계와 교양으로 이렇게, 주님이 “나를 본받아라” 한 것처럼 이렇게 돼져야 되지 그렇게 되지 안하면은 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된 자들아 너희들은 자녀를, 자녀가 뒤에 너 배우고 너 따라오고 너 닮아가고 너와 같이 되어져 가지고 뒤에 후회가 되고 ‘이래 가지고 틀리고 망했다’ 이렇게 되지 안하도록, 꼭 부모를 표본해서 제이 부모와 같이 딱 되고 보니까 이거는 참 후회되지 안하고 어데 내놔도 잘되고 바로 되고 옳게 됐다 이렇게 되어지도록 네가 해라.

“노엽게 하지 말아라” 너를 보고 배우고 본받고 따라가는 그자로, 뒤에 배우고 따라가고 본받고 안 할 수가 없는 건데 이렇게 한 그것이 후회되어지도록 네가 하지 말아라.

후회되게, 그렇게 할라고 하면은 너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네가 주님을 닮아 가지고 ‘나를 본받아라’ 네가 주님 먼저 닮고 그 교훈으로 충만해 가지고 네가 주님을 따라가고 배우고 한 요 일이 바로 되면은 자녀는 또 너를 보고 배우고 따라가는 일이 바로 되겠으니까 네가 요래야 너도 되고 천 대까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돼지지 요 일이 바로 못 되면 요거 다 헛일이다 하는 걸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거게 대해서는 부모에게 대해서는 말했고 자녀에게 대해서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 부모들이 그렇게 돼 가지고 있으면 좋지마는, 제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모형이 꼭 돼 가지고 있으면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는 전부 하나님 모형이 다 돼 가지고 있으면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말 할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떻습니까? 부모가 전부 하나님을 꼭 닮아 가지고 있는 그런 세계라고 하면, 그런 세계에서 자녀들에게 대해서 “주 안에 순종하라” 하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다 주님화돼 가지고 있으면은.

안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부모를 닮기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필연적인데 네가 닮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닮아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이 신구약 성경의 사진판이라. 신구약 성경에는 주님이 어떻다는 거 나타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너는 부모라고 닮아가지마는 무조건 닮아갈 것이 아니라 이래 닮아가면서 ‘보자, 예수님과 같이 됐나? 예수님의 법도와 같이 되나?’ 법도와 같이 됐으면 닮아가고 법도와 틀렸거든 조심해라. 왜? 거게는 부모는닮은 부분도 있고 안 닮은 부분도 있기 때문에 닮은 부분은 그대로 따라가지만 닮지 안한 그 부분은 따라가면 안 되니까 닮지 안한 부분은 따라가지 말아라 하는 그 양쪽에 갈래길이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우리가 과거에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노엽게 하지 말아라” “아비들아” 하는 것은 어미들까지 합했어. “아비들아 어미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노엽게 하지 말고” 이말은 그러면 아이들 자꾸 비위만 맞춰서 자꾸 아이들 좋도록만 하라 말입니까 아이들이 뒤에 부모를 따라가고 배우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부모가 저희에게 본보이고 가르치고 지도하고 모두 한 것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뒤에 마음에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고 노여워하는 그점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녀의 비위를 따라가서 맞추라 그말입니까? 자녀의 비위를 따라가서 맞추라 그말입니까 네가 자녀에게 조금도 틀림이 없는, 틀림이 없는 모든 데 원형이 되어져라, 자녀에게 대해서 틀림 없는 원형이 되어져라, 완전한 원형이 되어져라, 자녀에게 대해서 네가 완전한 표본적인 모본적인 그런 인물이 되어져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런 인물이 되어지지 못할까 두려워해라 노워하지 말아라, 그런 인물이 되지 못하고 네가 잘못된 표본이 되지 말고 온전한 표본이 돼라 하는 것을 가르친 말입니까 아이들 비위를 따라가라 말입니까 무슨 말입니까? 요게 중요한데 우리가 요것을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이걸 몰랐고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도 이것을 성경을 깨닫지를 못해 가지고 이랬기 때문에 그 속담에 말하기를 선생이 있다가 제자에게, 선생 혀가 곧은데 ‘나는 바담 풍 하는데 너는 바담 풍 하나?’ 자기 틀린 줄 아니까 혀가 짜르니까 ‘바람 풍’ 해야 되는 건데 ‘바담 풍’ 하니까 틀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알기는 알고 있으니까 `나는 바담 풍 하는데 너는 바담 풍 하지 마라.’ 암만 해 봤자 장 그 말밖에는 못 해. 혀가 짜르니까 못 한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렇게 닮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이 말은, 주 안에서 순종하라 말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말은 부모에게 흠점이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흠점이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흠점이 있다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가다가는 큰일난다 그말입니다.

또 “아비들아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라” 하는 이 말은 부모가 앞서서 가는 부모의 교훈, 훈계, 또 모든 지도, 본받는 것, 본보이는 것, 이 부모들이 자녀에게 대해서 먼저 앞서서 본보이고 교훈하고 훈계하는 것이 이것이 흠점이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아이들 자꾸 뭐 어린이날이라고 그날은 자녀들이 무슨 소리 해도 어짜든지 내가 부모가 돼 가지고 어짜든지 하루 종일 자녀가 무슨 소리 하든지 자꾸 좋아하도록만 들어 주는 게 좋다. 이래 가지고 자녀 소원대로 다 들어 줘. 그거 망할 놈의 교훈이라 말이오. 망할 놈의 교훈이라, 그 망할 놈의 교훈! 이래 가지고 전부 막 썩어 들어가고 망하고 나갑니다. 안 돼.

그것은, 노엽게 하지 말라 말은 자녀 비위 맞추라 말이 아니오. 네가 자녀에게 완전한 모본이 되고, 지식도 지혜도 행동도 언행심사도 꼭 너를 닮으면 완전하다 할 수 있는 완전한 네가 근본이 돼져야 되지 완전한 근본이 되어지지 못하면 뒤에 가서 네게 대해서 원망 온다. 후회하고 뒤에 너를 멸시한다, 무시한다.

이렇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기억해야 되겠고 마태복음 15장에, 마태복음 15장 몇 절이지요? 마태복음 15장 4절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우리가 요 말씀을 기억해야 됩니다. 부모를 훼방한다 말은 부모를 존대하지 안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암만 그거 잘못 교훈하면 주 안에서 삐끄러지면 안 따라가지, 삐뚤어지면 그 면은 따라가지 말지.

훼방한다 말은 부모를 헐어뜯는다 말입니다. 헐어뜯는 그것은 “반드시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우리가 이것을 참 두려워해야 되겠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했는데 여기 죽으리라 했는데 무엇이 죽으리라 하는 그것을 말하지 안했습니다. 뭣을 죽으리라.

사람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재산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지위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자기 모든 사업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자기 출세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명예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권위 죽는 것도 죽는 것이고, 죽는 거는 많이 있습니다. 이제 부모를 훼방하게 되면은 너는 죽는다, 반드시 그것이 죽는다.

이러니까 이거 훼방할 말한 일이 있어 가지고 훼방을 했으면은 하나님의 법은, 훼방할 일이 있어서 훼방했으면 훼방한 것은 훼방할 일이 있기 때문에 훼방했으니까 훼방한 일은 바로 돼 버렸고, 그건 바로 됐고, 그러나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는 그 법에는 또 걸리게 되겠습니다. 이 법은 이 법대로 적용을 시키고 저 법은 저 법대로 적용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부모를 훼방한다 말은 삦고 깎는다 그말이오. 부모를 훼방한다 말은 고 깎는다 그말이오. 부모에게 순종할 것이 없으면 순종 안 하고, 순종 안 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부모를 거역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에게는 삐뚤어진 거 순종 안 하면 됩니다. 순종 안 하면 되는데 그 부모를 훼방하는 것은 또 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 가지고 심판하기 때문에 그거는 천상 훼방할 만한 일이 그렇게 암만 있어서 훼방했지 않느냐? 훼방할 일이 있어서 훼방했다 할지라도 또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했기 때문에 요 법은 또 맞춰 가지고 반드시 사형에 요거, 사형을 받는다 말이오. 그러면 경제 사형을 받든지 지위 사형을 받든지 출세 사형을 받든지 사형을 받습니다. 이거는 뭐 하나도 뭐 그 틀림이 없습니다.

있으니까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서 요 부모에게 대한 거, “훼방하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또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또 “부모를 공경하라 이거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한 요것도 기억하고, 이래서 부모에게 대한 것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요것을 지켜서 자꾸 이 하나씩이라도 복을 받으려면 자꾸 정리될 걸 정리해 가지고 이 화받는 것을 자꾸 없애야 돼.

“네 죄가 주홍같이 붉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했기 때문에 오늘까지 뭐 오계명에 대해서 잘못한 것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할지라도 지금 예수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잘못된 걸 진정 알고 회개하고 고해서 고치면 된다 그말이오. 고치면 ‘과거 이렇던데’ 그런 게 아니고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된다” 하기 때문에 조그매라도 과거가 거석 없이 완전히 사유함을 받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하나씩 둘씩 해서 우리가 망하는 그런 것을 자꾸 이거 치료해 가지고 멸망을 자꾸 치료하고 축복받을 그런 것은 하나씩 자꾸 마련해 가지고 이래야 우리가 되어지는데,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을 읽는 자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가다 자유로 돌아갑시다.

“노엽게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거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기를 자녀는 부모를 닮아가고 본받아가고 배워가고 따라가고 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놨기 때문에 암만해도 그거는 그래 됩니다. 그게 잘못되면 삼사 대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노엽게 하지 말라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을 아이들 자꾸 좋게 비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여게 어린이날이라 하는 거, 어린이날이라 하는 그거 그날 나는 테레비를 좀 봤는데 그 미워요. 테레비를 주먹으로 때려 뿌사 버리면 싶어, 어떻게. 그 부모가 꼭 자녀들 망치는데 망치도록 이 모든 인간 심리학자라 하는 것들이 다 그렇게 망치는 그런 일을 해 놨다 말이오.

그거 그 어린이날이라면 그날은, 다른 날 다 못 해도 그날은 아침부터 자녀에게 ‘나를 본받아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치 자녀에게 모본이 되도록 어찌 됐던간에 그것을 언행심사가 모본이 되도록 그렇게 그 하루라도 그렇게 살아서 ‘내가 다른 날은 내가 다 잘못 살았다, 오늘 내가 산 거는 내가 바르기 때문에 오늘 내 산 것만 보고서 오늘 내 마음을 본받고, 내 말을 본받고, 내 행위를 본받고, 내 생각을 본받고, 내 모든 것을 본받아라.’ 할 수 있어야 그게 자녀에게 다문 하루라도 말이지 멸망할 것을 주지 안할 터인데 멸망할 철없는 아이들 어짜든지 그 비위만 맞춰 주면은 이 부모 할 노릇 한다고 이렇게 가르친 놈의 심리학자들과 도덕가들과 이 정치가들이 어디 있다 말이요? 아주 이거 못써요.

그라고 여기 저 뭐꼬? 오락장인가 뭐 이래 가지고 그거 나는 안 가 봤는데 나도 한번 가봐야 되겠어. 한번 가 보고 싶어. 여기 뭐 빨가이 올라오면 그거를 탁 때리면 ‘깩 깩’ 거리며 죽으면 깩깩거리는 그 재미로, 그거 김일성이라.

김일성이 툭툭 뚜드리니까 좋아들 하는지 몰라도 김일성이 남의 수상을 때리는 것을 길들여 놓으면 저거 수상도 때리면 된다고 합니다. 알겠습니까? 남의 대가리를 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곧 저거 대가리도 때릴 수 있도록 그것 만드는 거라. 이거 도무지 어두워서.

이러니까 그 남의 대가리 때리는 걸 연습시키는 것은 우리 대통령 때리는 것을 연습시키는 거와 같은 거라. 그걸 알아야 돼요. 이 교훈이 쭉 나가야 돼. 나가서 청와대에 들어가 버려야 돼. 그래야 그런 것 금지하지. 그래 가지고 아이들 마구 절단내는 이걸 뭐, 누가 우리 교인 어떤 있다가 그거 뭐 오락장 그거 차렸다 하던가? 그놈 망할 놈이라. 그거 못써요. 남의 자녀를 망치는 것은 결국은 자기 자녀가 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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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교양과 훈계/ 에베소서 6장 1절-4절/ 1987. 3. 13. 금새벽 선지자 201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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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주의 음성/ 신명기 28장 14절-15절/ 1979. 10. 20. 토새벽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