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15:04
주님이 가장 노하시는 것
1984. 7. 21. 토새벽
본문 : 요한계시록 17장 13절∼14절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주더라" 그러니까, 이제는 짐승을 위주로 해 가지고 열 뿔 일곱 머리가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 됩니다. 이것이 세상주의요 인본주의라 그말입니다. 천국보다 세상을 위주로 하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위주로 하는 인본주의의 단체입니다.
"주더라" 그러니까,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으로 더불어 대립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와 대립이 된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예수교는 만주의 주의도요 만왕의 왕의도요 창조주의 도요 또 주권자의 도이기 때문에 예수교는 의례히 그런 것을 이깁니다. 이기나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해가 넘어가면 어둡고 음지 양지가 표가 안 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우면 진리인지 비진리인지 또 참교회인지 거짓 교회인지 이것이 표가 안 납니다. 왜 표가 안 납니까? 그때는 빛이 어두워집니다. 해가 기울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마지막이 됐기 때문에 그때는 진리를 증거하는 종들이 귀합니다. 진리를 증거하는 종들이 귀합니다.
진리를 말해 주는 종들 이 귀합니다. 벌써 거의 다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종들이, 왜? 그라면 당장 지금도 박해가 나옵니다. 지금 오는 박해는 뭐이냐? 고독입니다. 또 지금 오는 박해는 뭐이냐? 매장입니다. 마구 이런 말 저런 말 해 가지고 어쩌든지 매장을 시켜 재낍니다. 이러니까, 누가 그렇게 희생해 가면서 말할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희생하기 싫어서 말하지 않습니다. '남한테 말할 게 있는가? 내나 알고 준비하면 되지.' 이상한 것이 남에게 그 증거를 하면 저도 그 증거를 받아 가지는 자가 되지만 자기가 아껴서, 십자가를 두려워해서 그 증거를 하지 안하면 자기도 마지막에는 그 빛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기실 터이요 또 저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랬는데, 아주 이거 구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로마서 13장 찾아보십시오.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요런 성구 해석이 참 어렵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본주의 과거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가 있을 때에 사람들이 요 성구에서 다 미혹을 받았습니다. 신사참배 안 하려 하면 일본 정권에게 박해를 당하게 되니까 박해를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그 마음이 있는 사람이 요 성구를 볼 때는 요 성구가 박해 벗어나는, 일본 정권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그게 성경이라고 그렇게 깨달아집니다. 또 박해야 있든지 없든지, 죽든지 살든지 주님만 기쁘시게 존귀케 하려 하는 자는 요런 성구를 볼 때 처음에는 '아,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않은 게 없으니까 그러면 이 신사참배는 다 조선 총독이 하라 하고 위에서 일본 천황 폐하가 하라고 한 것이니까, 이것은 대단한 권세가 지금 하라고 하는 것이니까, 권세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심판받는다 했는데, 권세는 다 하나님이 준다 했는데, 권세에게 복종하지 안하는 것은 네가 심판을 자취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이거 이상하다. 그러면, 무조건 권세에게는 다 복종을 해야 되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할 때에 하나님을 위주로 중심으로 하는 자에게는 거기서 깨달음이 나오게 됩니다.
위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그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계명에 우상 섬기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했는데 이 사람들은 우상에게 절하라고 하니 이거 어찌 된 일인가 할 때에 '아, 이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는데,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렇다. 김일성이도 하나님이 권세 줘서 그렇지 아니면 제까짓 게 그런 권세 잡지 못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권세 주신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권세를 줬는데 하나님에게 권세받은 그 수권 범위 내에서 활동하지 안 하고 하나님의 권세를 받기는 하나님에게 권세 받아 가지고 행동은 제 심 차려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적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네가 모든 관원들을 두려워하지 안하려거든 선을 행하라' 선이 뭐인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라. 그라면 칭찬을 받으리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운동하는 자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를 징계하는 것이요, 하나님 중심의 것이 되도록 이렇게 한 것인데. 이 권세는 이렇게 줬는데 이 권세 받아 가지고는 전부 악용을 하고 있다 그거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주시고 이런 것은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줬는데 마귀란 놈이 와서 꼬우니까 주신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뱀에게 복종해 가지고 인간이 사망에 들어왔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다 넘어진 사람은로마서 13장 1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다 넘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 신사참배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까 이거 죄다.' 이렇게 죄라고 알고 못 견뎌서 그들에게 넘어간 사람은 넘어가도 속으로는 그것을 반대하며 회개를 하고, 넘어 가고는 또 회개하고 넘어가고는 회개하고, 이 뭐이 이 무슨 조사님이 있었는데 이인재 목사님 잘 압니다. 그때 창원 교회 시무도 한 사람인데. 나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왜정 말 년 때 만주 가 가지고 목회하는데, 신사참배 때문에 갇혀 가지고 너무 고 문과 고행이 심하니까 '신사참배 하겠습니다.' 이래 놓고 나와 생각하니까, 못 견뎌서 했지 속으로 해석을 해 가지고 합리적으로 하지 안했기 때문에 '죄를 범했다' 해서 나와 가지고 또 너무 견디지 못하니까 회개를 하고 경찰서 찾아 들어가 가지고 '내가 그 신사참배 한다 하는 그거는 내가 잘못했는데 내가 이제 신사참배 안 합니다.' 하니까 '안 하려면 이놈 갇혀라' 한 몇 번 가뒀다 말이오. 가둬 가지고 되게 고문이 심하니까 또 못 견뎌서 하겠다. 했다 말이오. 또 나와 가지고는 견디지 못해서 또 신사참배 안 하겠다 하고 들어가니까 나중에 가서는 들여 놓지도 안하고 '이놈 네가 뭐 신사참배 한다고 말해 놓고 무슨 잔소리가? 한다는 그거만 우리는 취급한다. 너 안 한다는 그따위 소리 안 듣는다.' 이라면서 그만 거부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분이 거기에 있으며 신사참배 안 한다고 자꾸 외치고 고함을 지르고 그러다가 그 사람이 세상을 떴습니다.
그라니까, 신사참배가 죄라는 것을 생각하고 고문과 고형에 못 견뎌서 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회개를 했습니다. ○○○집사님이 그 사람 이름 압니까? ○조사라고, 나는 이인재 목사님에게 들었습니다. 이인재 목사님께 들었고 또 한부선 목사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분이 한부선 목사님하고 같이 모두 만주에 그때에 피난 갔습니다.
죄라는 것을 알고 못 견뎌서 범한 사람들은 나중에 즉시 회개를 했지만 자기네들이 속에서 벌써, 겉으머리 아니라 속으로. 사람 보기에는 안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신사참배를 하고라도 평안을 취해야 되겠다하는 그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합리적으로 하고 환난을 피하는 그런 미혹의 길이 있다 그 말이오. 그 사람들은 전부 로마서 13장 1절을 보고 전부 미혹 받아 가지고 신사참배 했습니다. 그라면서 그 사람들은 그때는 주장들을 '신사참배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신사참배 안 하는 사람은 다 심판받는다.' 이러기 때문에, 신사참배 하라는 그 일을 양심에 가책 없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생각해 가지고 했기 때문에 유력한 목사님들이 다 모여 가지고 여기 송도 앞바다에서 천조 대신 이름으로 세례를 다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 말만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세례를 주고 그렇게 하면서 '이것은 국가 의식이라. 국가에게 복종을 하는 것이 성경이니까 이거는 국가 복종이요 우상숭배가 아니라' 이래 가지고 그 사람들은 그때 다 시험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인본으로 단합되는 이 단합에 신본 단합과 인본 단합이 둘이 서로 대립이 돼 가지고 환난이 일어날 터인데 인본 단합에 가입하는 것이 이것이 성경적이라 하는 그 사이비한 해석 속에서 사람들은 넘어진다 그 말이오.
또 한 군데 히브리 12장 14절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쏜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여기에는 또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취하고 거룩함을 취해라 이랬어.
사람하고 단합부터하고 거룩하게 깨끗함을 허해라 이래 놨으니까 이것도 문제라 그거요. 사람들이 인본 단합부터 하고 그 다음에 신본 단합 하라 하는 그런 말로 해석을 하기 쉽고 그렇게 주장하기 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는 참으로 살든지 죽든지 자기가 주만 존귀케 하려는 이 마음을 가져서 성령의 감동이 그 속에 감동되지 안한 사람은 얼마든지 넘어갑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러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히브리 12장에는 어떤 말이 기록되어 있는고 하니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다 인간 욕심 인간 주장으로 살다가 다 망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리끼고 얽매이는 죄를 다 벗어 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이신예수를 바라보라 그는 그 앞에 있는 십자가의 고난을 십자가 너머 있는 그 영광을 위하여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십자가에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해 가지고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런 말씀을 죽 내려왔습니다.
내려왔으니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행하라 하는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이는 자기만 거룩하다고 자기만 그렇게 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붙들어서, 주님은 당신이 깨끗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붙들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것이 주님이시니까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을 얻도록 노력해라. 사람 얻도록 노력해라.
사람 얻도록 노력하라 하니까 내야 더러워지든지 깨끗해지든지 사람 얻도록만 노력하라 하는 말입니까? '거리끼고 얽매인 죄를 벗어 버리라.' 주님은 하나님 명령대로 순종하려 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모든 세력들이 와 가지고 그렇게 해했지만, 하루 종일 박해당했지만 반드시 최후는 승리를 했다 이거부터 위에 말해 놓고 했습니다. 위에 그 말 있고 난 다음에 이러니까, 자기가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된 깨끗함을 가지고. 가지고 네가 할 일은, 깨끗함을 가지고, 너는 지금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어서 성결하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가 돼 가지고, 네가, 성결 한 네가 할 일이 뭐이냐? 모든 사람을 접할 때에 성결부터 네가 주장하지 말고 그 사람을 먼저 사귀기부터 하고, 사귀고 난 다음에 네가 거룩을 그에게 차차 넣어 줘라.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더 얻기 위해서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는 거와 같이 하고 야만에겐 야만같이 하고 모두 지혜 있는 자에게는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는 것은, 그런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자체가 변질되는 게 아니고 자기는 변질되지 않으나 자기가 하는 일은 사람부터 얻어 가지고 차차 차차 회개를 시켜야 되지 회개부터 먼저 말하면 사람들이 붙지 않는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술을 먹으면 술 먹는 사람 대해서 술 먹는 사람부터 얻어 놔라. '아, 술을 먹어도 좋습니다. 술을 자시면서 교회 나오십시오.' 이라면 다른 사람이 그렇지만 자기는, 술 먹는 사람을 교회 나오라 하는 것은 술을 먹어도 신앙생활 관계없다 그 말이 아니고 술을 먹는 사람을 교회 나오게 해 가지고 차차 차차 나중에 술 안 먹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또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나는 제사 때문에 교회 못 나갑니다.' '아, 제사를 지내면서 나오십시오.' 그 사람은 제사 지내는 사람을 얻어 가지고 차차 그 사람이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서 제사를 회개해야 될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남의 소실이라서 예수를 못 믿습니다.' '괜찮다.
소실 생활을 하면서 교회 나오너라.' '나는 아내가 둘 셋 있으니까 나는 예수를 못 믿습니다.' '아내 둘 셋이 있어도 좋으니까 어쩌든지 교회에 나오너라' 이렇게 해서 사람을 붙들어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을 가져야 그 다음에 거룩을 그에게 차차 넣어 줘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미혹받기 쉽다 그거요.
그러면, 이것이, 거룩보다 화평이 낫다 그 말 아닙니다. 거룩이 좋고, 먼저 거룩되지 않은 사람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셨다 할지라도 예수님에게 털끝만한 죄악이 있으면 소용없습니다. 그 죽음은 아무 소용없어. 아무 가치 없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이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하시면서 완전만 주장하면 죄인은 죄인으로 죽고 완전은 완전으로 갈라지지 소용없는데 완전을 가지시고 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인들에게 손을 대 가지고 죄인들을 붙들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죄인들을, 죽기까지 해서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한 덩어리된 그 죄인들을 자꾸 타이르고 권고하고 가르쳐 가지고 의인을 만든다 그거요. 이러니까, 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으로 말하는 것이지 자체가 더러워지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하면 이 화평하라는 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한 이 화평을 버리고 인간 화평부터 먼저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 화평 하라 말입니까? 하나님의 화평을 가지고 네가 인간을 하나님과 화평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네가 하나님과 화평된 네가 먼저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는 운동부터 해라 네가 사람부터 얻도록 노력을 해라, 율법 있는 자에겐 율법 있는 자와 같이 없는 자는 없는 자와 같이 하는 것은 사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바울이 그런 방편 쓰는 거와 마찬가지로 네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가 됐는데 사람에게 대뜸 하나님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되는 그것부터 네가 주장하지 말아라. 그 사람부터 먼저 얻어 놓고 그 다음에 얻고 난 다음에 서서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되는 그 일을 해라 하는 이 교훈인데 요 성구를 딱 들고 '보라. 사람으로 더불어 먼저 화평하는 이것부터 하라고 안 했느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해라 그 다음에 거룩함을 좇아라.' 이러니까 요런 성 구들이 요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요 성구로 사람들이 자기 소원하고 주장대로 요 성구를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소원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고난을 버리고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그 자는 그렇게 요 성구를 가지고 망하게 되고, 자기야 어쨌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려는 자는 요 성구로서 깨끗해서 확신을 더 가지고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요새도 '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으로 거룩함을 좇으라 하지 안했는가? 그렇기 때문에, 합동 번역이든지 또 어떤 단체든지 먼저 인간 단합부터 하고, 이러니까. 불교라도 먼저 단합하고 단합한 것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게, 인간 화평이. 먼저 인간 화평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거룩을 차차 성립시켜야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우리야 불교인과도 합하고 뭐와도 합하고 모든 걸 합하는 걸 그런 목적으로 합한다.' 이라는 이 유혹에 들기 쉽다 그 말이오.
불교인과도 합할 수 있습니다. 불교인과도 합할 수 있지만 자기는 경계선이 엄격하게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연결을 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을 끊어 놓으면 제까짓 게 다시 연결을 못 합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을 끊지 안하고 고 연결을 가지고 불교인과도 합할 수 있고 공산주의와도 합할 수 있고 뭐이든지 합할 수 있습니다. 합할 수 있는데 합할 수 있는 그 범위가 뭐이냐?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지 아니하는 내에서 합합니다.
그러나 합하면 그들이 또 '자, 합하려면 이런 면으로 합하자' 합니다. 이런 면으로 어떤 면으로? 어떤 면으로 합하자 하겠소? 진리를 버리는 면을 저거가 잘 압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면을 잘 압니다.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는 면으로 합하자 하는 그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그 합함을 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참 그렇게 하늘과 땅의 것이 다 네 것이 된다는 그 상속 받는 것이 그리 쉬운 것 아니오.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가기는 가지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하고 모든 천상천하의 피조물을 발아래 두고 하나님과의 연결되어서 모든 피조물의 중보가 되고 피조물의 제사장 되고 선지자 되고 왕이 된다는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권세는 위로부터 왔다, 하나님으로부터 권세가 은 것이기 때문에 그 권세에 복종할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명령이면 그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고 복종해라. 그러나 그 권세는 하나님이 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스려서 그 권세를 쓰거들랑 그 권세는 역적이니까 네가 그 권세에 복종하면 너도 역적된다 너는 대립해라 그 말이오. 그걸 똑똑히 알아서 해석을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십자가를 벗고저 하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십자가를 벗도록 해석할 수 있고, 죄를 범하는 자는 얼마든지 죄를 범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고, 의를 행하는 자는 의를 행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성경을 제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자유로 해석하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기 때문에 심판대에 가 가지고 그게 다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 그랬는데. 모든 사람으로 더 불어 화목하는데 '그 그래. 좋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는 게 좋으나, 그러나 네가 엄격한 경계를 두고 해야 된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과 화목하면 안 된다.
네가 진리를 버리고 화목하면 안 된다.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고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서 방편상 화목을 하는데 화목을 하니까 그 사람들은 화목을 하지만 그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라고 요구하고 하나님 버리라고 요구할 때는 네가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고라도 우선 그 사람과 화목해 가지고 하겠다고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한번 말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진리를 먼저 버리고 그 사람들이, 버려야 그 사람들로 더불어 화목이 될 때에는 진리와 하나님을 버리고 먼저 화목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진리를 지키고 하나님과 화합하라 그것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뭐 힘이 안 나와. 이 성구를 가르쳐 봐야, 가르쳐 봐야 참 지킬 자가 여기에 몇 이나 있나 없나가 문제입니다. 깨달을 때 '아멘' 하고 속에 혀를 깨물고 이를 갈고 이렇게 다져도 때가 오면 틀립니다. 오늘에 그 말은 그 말이 그렇고 그 말이 그 말 같고 그 말이 그 말 같고 이러니까 구별하지 못하고 속에 강한 느낌이 없는 사람이 뭐이 됩니까? 여러분들이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를 안 하고 그들과 더불어 대항해서 끌려가고 붙들려 가고 오만 박해를 당하면서도 신사참배 안 하고 신앙을 지켰다, 감옥에 끌려가서 매를 맞아 가면서 지켰다. 그들에게 매일 투쟁해도 감옥도 안 들어가고 신사참배 안 하고 강하게 지켰다 하는 그게 어떻게 지켰으며 어떤 것인지 여러분들이 못 느끼면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 느끼는 사람들이 없어. 인민군들이 와 가지고 박해를 할 때에 마구 인민군이 포위를 해 가지고 그렇게 예배 보는 것을 방해를 하고 위협을 하고 협박을 해도 거기서 꼼짝하지 안하고 설교를 하고 그대로 예배를 그대로 다 끝을 마치고 난 다음에 그들에게 하지 그들이 말한다고 예배를 중단하지 않는 그런 것이 그렇게 쉽다 그리 생각하는 게 틀렸다. 그 말이오. 죽음 앞에서 그와 같이 한다는 그게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 다 사람들이 죽음은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걸 들어야 뭐 예사라.
예사로, 예사로 들으니 그런 일이 오면 무슨 승리를 하겠습니까? 이 두 성구의 뜻을 깨달아서 '참 넘어가기 쉽다. 권세는 위로부터 오지 않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권세 없다.' 하나님이 권세 준거 뭐 죄 지으라고 줬겠습니까? 죄 지으라고 줬겠습니까? 하나님이 권세 준 것은 당신에게 복종하여서 단일 통치, 단일 정치 나라는 우리가 몇 가지 있습니까? 나라는 몇 가지 있다고 배웠소? 나라는 둘, 세상 나라와 천국 나라 둘, 정치는 몇 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치는 하나 그 말이 쉬운 말이 아니라 심히 어려운 말이라, 심히 어려운 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아롱아롱한데 그 말하면 휘뜩 두터 씌워 버리니까 박사가 두터 씌워 버리니까 '박사 말이 제일이지 뭐 그까짓 거 무식한 말이 제일인가?' 그 박사는 세상 지식 박사지 하나님의 박사가 아니라.
어제 어떤 분이 박사, 신학 박사 학위 받았다고 나한테 편지가 왔습디다.
편지가 왔는데. ○○○목사님이 저 먼저 편지 오기를 '어쩌든지 목회자 양성원에 졸업한 사람이면 다 목사님이 추천만 하면 다 학위를 받을 수 있으니까 어쩌든지 좀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하십시오.' 했는데 그때 내가 그 편지에 대해서 답을 안 했어. 이랬는데, 또 오늘은 아주 정통 신학입니다. 미국에 있는 정통 신학. '학위를 아무 날 받았습니다. 또 여름에 방학에 가서 아무 날은 서부교회 가 가지고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여기 오면 꼭 여기 와서 지켜요.
그날 또 내가 또 설교를 시킬 작정이라. 그랬는데. 그분은 그날 내가 박사. 신학 박사 아무것이라고 그렇게 내가 소개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뭐 박사면 제일인 줄 알고, 그 박사가 한상동 목사님도 내나 그 박사 받았고, 거기서 명예박사 받았고, 박윤선 목사님도 거기서 명예박사 받았고 내나 그런 박사인데 ○○○목사님도 거기서 명예박사 받았습니다.
백 목사는 이거 총공회가 한 칠 팔십교회 되니까 어북 칠 팔십교회를 들고 팔러다니면 상당히 돈도 나오고 대우도 나옵니다. 이래 가지고, 이거 합할터이니까 돈 달라 하면 돈도 굉장히 많이 줄 진영들이 있습니다. '당신들과 손을 잡겠으니까 돈을 주십시오.' 돈 많이 줍니다. 돈 많이 받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 또 이쪽에 '당신들과 합할 테니까 돈 좀 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끌어다가서 신학교도 만들고 병원도 만들고 다 이래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뭐인지도 모르고. 참 모르기 때문에 기가 찬다 그거요.
앞으로 이 싸움 인본으로 세계는 한 덩어리 되고 신본으로 세계는 한 덩어리 됩니다. 그러니까 두 덩어리요. 인본 덩어리와 신본 덩어리 둘이 되는데 신본 덩어리로 말하면 그 대장이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인본 덩어리는 어린 양으로 싸운다, 그 말은 예수님으로 더불어 싸운다. 그 말입니다. 싸우는데, 예수교는 의례히 이기기는 이기지만, 예수교는 이기지만 예수교에 속한 그 사람들은 이기는 자도 있고 지는 자들도 있다 그거요. 그러면 예수교에 속한 자들로서 진실한 자가 아니면 그들에게 다 끌려갑니다. 왜? 탄압이 심하니까. 사람들이 지금도, 저 사람이 뭐 때문에 저래 욕을 얻어먹고 있는가? 이걸 좀 눈을 뜨고 봐야 되지, 뭐 때문에 욕 얻어먹고 있는가 뭐 때문에 욕을 얻어먹고 있는가. 뭐 때문에 외롭게 있고 뭐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가? 지금이라도 합하려면 좋다고 막 이렇게 두 손 들고 맞이하지만 왜 저렇게 하고 있는가, 어리석게 하고 있는가? 그래도 그 사람 속에는 뭐인가 있어서 그렇다 그거요. 보고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가 알 수 있겠소? 정신 차려야 됩니다.
이 백 목사는 이단이라고 모두 다 욕을 하고 있는데 이래도 또 가서 합 하려 하면 다 좋아합니다. 좋아하지만 또 들어가서 진리와 하나님을 버리지 안하려 하면 또 거기서 또 쫓겨 나와야 합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해서 경기 노회 가 가지고 목사 안수를 받을라 고 경기 노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경기 노회는 그때 제일 '주장하기를 제가 먼저 주장챘고 그 다음에는 이병규 목사가 주장해 가지고 경기 노회가 됐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경기 노회가 보류 노회가 됐습니다. 보류 노회가 됐었는데 거기에 제가 가입하려 하니까 다 좋아해서 가입을 했습니다. 가입을 해서 그분의 안수를 받을 것인데, 가입을 했는데, 메켄타이씨 아이씨씨(ICC)와 그 보류 노회가 합한다 이래서 합하자 말자 의논이 분분 한데 다 합하기로 결의가 됐습니다.
아이씨씨와 합하기로 결의가 됐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가입 청원서를 철회를 하고, 아이씨씨이기 때문에 가입을 안 하고 거기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가서 참석한 사람 여기 누가 있습니까? 손들어 봐. 참석한 사람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요? 죽었어, 죽었어. 여러분들은 진리가 속에 없어. 그저 그래 지내지 그런 능력이 없어. 서울에 경기 노회 할 때 같이 여럿이 갔었는데 따라간 사람이 없어? 다 잊어 버렸지? 두 사람이 아니야. 더 갔어. 여러 사람 갔었어.
그때 따라간 사람 ○ 거기 없어? ○○○따라 갔었고, ○○○집사님 따라 갔고, ○○○집사님 따라갔어? ○○○손들어 봐. 안 나왔나? 죽었어, 죽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신이 없어. 그런 신앙 가지고 안 됩니다. 신앙은 제일 줄기부터 잡아 가지고 줄기부터 바로 내려와야, 그 계통이 바로 내려와야 되는 것이지 계통 없는 거 인간끼리 암만 화합하고 해 봤자 소용이 없어. 그 계통이 죽으면 죽는 건 데 무슨 소용 있는가? 그래 가지고 그때, 아니야. 그 두 분 외에 더 많이 있었어.
그때 철회하는, 점심 먹을 동안에 그때 철회 청원서를 냈습니다. 철회 청원서를 내니까 뭐 내가 들어가면 어지러워질 터이니까 얼마나 좋겠소? 아이씨씨하고 다 단합되자 한 사람들은 좋아서. 그만 그러시니까 철회시켜 달라 이랬습니다.
그라니까 좋아서 이랬는데. 내가 요구하기를 '백영희 전도사가 이 보류 노회에 가입 청원서를 냈다가 아이씨씨에 이 보류 노회가 가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시 철회 청원서를 내고 가입 청원서를 철회 해 갔다 그걸 노회 회의록에 기록하십시오. 그라면 내가 여기 지금 여기 이미 가입은 됐으니까 내가 여기서 철회를 하겠습니다.' 이라니까 '고거 안 해 주면 내가 안 할 테니까 그걸 해 주십시오.' 이라니까. '그러면 고거 고리 기록했다고 회록에 기록하고 그러면 읽어 보십시오.' 그렇게 기록을 해 놓고 내가 나왔습니다. 뭐 아무나따나 그래 두루 뭉실이같이 그렇게 사는 줄 압니까? 그게 그때 그래 놓고 노회의 회록을 뒤에 자기네들이 거석하니까 그것을 다시 뒤에 수정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날은 내 앞에서는 읽기는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씨씨가 내나 여기 한상동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목사님 이런 분들이 다 학위 받은 그 아이씨씨 였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면을 잘 구별해서 살아야 되지 구별하자 안하고 살면 어디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거는 여러분들이, 앞으로 죽을 곳이 어디가 죽을 곳이오? 이것이 자기가 죽을 곳입니다. 모든 뿔, 머리. 짐승이 한 덩어리가 되는 그때에 거기에 한 덩어리가 안 되려고 하면 죽습니다. 저만 한 덩어리 안 될 게 아니라 한 덩어리가 안 되도록 선봉장에 외치고 있으니까 그는 그 사람으로는 그거로 말미암아 자기의 죽음을 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벧세메스로 끌고 가는 법궤입니다. 법궤 끌고 가 가지고 끌고 간 그 구루마 패 가지고 번제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진리를 끌고 하나님을 끌고, 다시 말하면 진리와 하나님을 모시고. 모시고 간 그 행위가 있어야 죽임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것이지 그 행위 없이는 공연한 사람을 죽일 택이 뭐입니까, 저희의 물건인데? 저희의 물건을 뭐 하려고 죽이겠소 죽이기를? 이러니까, 하나 될 때에 거기에 하나 되지 안하려고 하면 죽습니다. 지금은 뭐인지 구별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거의 보는 사람은 다 보고 있습니다.
제가 빌리그레함 박사가 와서 할 때 그때 사람이 제일 많이 모았는데. 지금은 뭐 그런 거 유도 아니지만 그때 오십만 명이 모였다고 신문에 났읍디다. 오십만 명이 모였다고 신문에 났는데. 그때에 가니까 모두 다 숙소를 모두 정해서 큰 광장에다가 다 이렇게 꾸며 놨는데 내가 그때 몇 이 갔습니다. 가서 죽 돌아봤습니다. 어느 어느 교파 어느 교파가 와 가지고 여기 있는가 그래 몇 이나 와 있는가 나는 속에만 생각하고 죽 한번 돌아봤어. 돌아봐서 어느 교파도 여기 와서 다 지금 신청을 해 가지고 이렇게 하고 있고 있고 하는 그것만 나는 속으로만 봤는데, 지금은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 돌아볼 때에 그때 뒤에 따라다니지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런데 이런 넓은 자리를 다 돌아다니면서 이래 보는가 하는 것을 뒤에 목사들이 많이 따라왔지만 그 사람들은 모른다 그거요.
그러므로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할 일은 뭐이냐? 인간으로 더불어 화목하는 것 좋습니다. 모든 정치에 복종하는 거 좋습니다.
정치 복종 인간 화목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자기가 성경대로의 행위는 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의 행위는 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의 지식도 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의 사람도 버리면 안 됩니다. 이거 버리고 하나 되란 말 아닙니다. 이게 돼 가지고, 성경대로의 지식 성경대로의 행위 성경대로의 사람이 돼 가지고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어떻게 하든지 화평을 취해야 됩니다.
자기가 돈을 들여도 화평 취하고 뺨을 맞아도 화평 취하고 어떻게 이걸 가지고는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을 해서 사람을 위해서 죽어야 됩니다.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고 사람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사람으로 한 덩어리 되지만 성경대로의 지식 그 지식은 인간 전체보다 크기 때문에 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의 행위도 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의 사람도 버리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와 하나님을 버리고는 인간끼리 화합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진리와 화합하고 난 다음에 화합된 사람은 어쩌든지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기를 노력해야 되지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지 안하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면. 진리를 안 버리고 하나님을 안 버리고 진실을 가지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려고 할 때에 화평이 안 되는 것은 어떻게 할 건가? 자기가 속에만 진실을 가지고, 껍데기로 진실 진실 그래 쌓아면 안 붙으니까 껍데기에는 진실 진실 하지말고 속에는 변치 않는 진실을 가지고 껍데기는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로 없는 자에게는 없는 자로, 야만은 야만에게로 지혜 있는 자는 지혜자로. 술친구는 술친구로 이렇게 겉으머리는 그 사람들하고 이렇게 사귀도록 이렇게 하나 속이 변질되면 안 됩니다. 그 사귀는 목적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화 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들과 하나 되기 위해서, 내가 변질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변질 시켜서 신본주의에 화합하도록 하기 위해 그렇지 내가 변질돼서 그들과 더불어 화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알기가 어렵고 힘이 들어. 이것도 앞으로 설교록에 나갈 터이니까, 나가면, 지금은 아직까지 과도기지만 차차차 합하는 데는 요게 들어서 안 합해진다 하면 그것은 딱 불거져서 나중에 가서 그것은 어떻게 될는지, 안 하는 사람, 화합하지 안하는 사람은 몇 이든지 죽인다 했습니다. 이런 줄 알고 지금 증거하는데 듣기를 예사로 듣는다 그 말이오 듣기를, 여기 들을 때에 '아, 조거. 조거 자꾸 책망해서 밉상스러우니까 조것을' 그래 팔. 팔 좋은 걸 만들어 놨어. '그럴 때에 저 백 목사만 팔면 나는 한 번은 면하겠다.' 한 번 면할 것입니다. 아 백 목사가 이렇구 이렇구 하는데 백 목사 그라니까 그렇다고 꼬드겨 바치면 좋다고 상을 줄 것이오. 그래 가지고 나를 팔아 가지고 공부도 하고, 나를 팔아 가지고 대우도 받고. 나를 팔아 가지고 나와 사이좋은 사람들을 이간을 붙여 가지고 대립이 되게도 하고 그런 사람 내 밑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일 한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안타까운 것뿐이지 두렵지는 않습니다. 왜? 세상 것 다 내놓고 주님 한 분만 얻으면 돼 버렸지, 그러니까. 주장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가진 것이 몇 가지 있다 했습니까? 며칠 전에 공부하지 안했어요? 우리 가진 게 몇 가지요? 두 가지, 두 가지는 뭘 하기 위해서 있어요? 몇 가지 하기 위해서 있어요? 세 가지 하기 위해서 있어. 하나는 뭐이지요? 하나님 얻기 위해서.
하나님 내 하나님 삼기 위해서, 또 하나는 진리 내 진리 삼기 위해서. 셋째는 사람을 내 사람 삼기 위해서. 둘은 위의 둘은 절대 안 하면 안 되고 밑의 하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야 돼. 노력하나 이 둘을. 위의 둘을 안 버리고 밑의 하나를 해야 되지 위의 둘을 버려 가면서 밑의 하나를 할 수는 없는 거라 그거요. 이것이 주장이라. 이게 교리요 신조라.
이러기 때문에 까끌까끌해서 세상에 맞지를 안해. 맞지 안해. 이러니까. 점점 고독한 걸음이 돼지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금 멋모르고 벌로 따라오지 이걸 알고 보면 도망칠 사람들이 많을지 몰라. 그러나 죽음 너머 가서 생각하면 가장 복된 옳은 길입니다. 모두 다 죽기가 두렵고 고난 받기가 두려워서. 십자가의 원수의 사람들이 싫어하지 십자가를 자기의 걸음인 것을 알고 가는 사람에게는 가장 평탄한 걸음이요 행복된 걸음이요 성공의 걸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내나 그 말씀이 그 말씀 아닙니까? 그저 오늘 인본으로 그래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평안하고 존귀하고 다 유명해지고 하면 뭐 할 겁니까? 모든 천하 유명보다도 주님 당신이 인정하는 것이 더 가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