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14:54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마음을 기울림
1987. 6. 25. 새벽 <목>
본문: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 믿는 사람이 바라볼 소망을 자기 소망으로 삼지를 아니하고 엉뚱한 소망을 자기 소망으로 가지고, 또 자기의 수지 계산을 자기 수지 계산으로 삼지 아니하고 남의 수지 계산을 자기 수지 계산으로 삼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하실 수 없고 또 도와 주실 수도 없고 우리는 내 수입을 가질 수도 없고 또 내 성패도 나는 모르고 내 성공을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망령된 기독자들입니다.
히브리서에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자기의 장자의 기업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는가 살펴보라” 했는데 우리는 전부 망령된 자입니다. 잘났다고 하는 자는 더 망령된 자입니다.
제딴에는 틈없이 자기의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안 믿는 사람같이 땅에 있는 물질, 사람, 땅에 있는 모든 영광, 행복, 쾌락 이런 것이 제것인 줄 알고, 기뻐하는 자도 보면 미치괭이 기쁨이고, 제 기쁨 아닌 것 남의 기쁨 가지고 기뻐하는 그게 미치괭이 아니고 뭐입니까? 분망한 것도 미치괭이, 뭐 욕망을 가지고 정신없이 달리면서 아주 저는 희망 있는 자인 줄 알고 앞뒤 제 맵시를 재면서 ‘내가 지금 다른 사람이 나를 굉장히 지금 존대하게 볼 것이다, 또 유망하게 볼 것이다, 영광스럽게 볼 것이다.’ 공연히, 남자들보다 여자들은 그런거 많은 것 모양으로 사람들 중에 그런 것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내 눈썹 하나 그린 것 보고 오늘 그 사람도 보니까, 나를 보는데 보니까 그 보더라. 내 옷 한 벌 입은 이거 보고 오더라.’ 제까짓 게 옷을 입었는지 눈썹을 그렸는지 뭐 입술을 그렸는지 다른 사람은 보지도 안 하는데 공연히 제쪽에서 저 혼자 지금 그라고 있는 그런 것이 허영의 여인들인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남녀간에 다 공연히 제가 제 성공 아닌, 제 기쁨 아닌, 제 수지 아닌, 제 소망 아닌, 저 할 일 아닌 이런 것에서 완전히 정신빠져 가지고 그렇게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목회자들도 교인들에게 자기 인기나 끌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인정하나?’ 그 인간을 다 취하면 어짤 것이며 천하에 있는 기독자가 다 저를 존대하면 뭐 할 겁니까? 주님이 아니라 하면 그만입니다. 아무 소용없어. 주님이 인정해야 되지. 이런데, 우리가 공연한 일로서 분망합니다.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또 새로 보는 것은 지난밤에 몇 가지를 거게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별 관심 없이 있는 그런 것, 땅의 일에서 분망한 것,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오실 것, 모든 것이 다 불타서, 자기 개인 종말 우주 종말 이게 큰 문제인데 여게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우리의 소망은 또 새 하늘과 새 땅인데 그것도 생각지 안하고, 이런 것을 지난밤에 말했습니다.
그 모든 말을 다 해서 한 말로 말하면 우리의 성공이 뭐이냐? 네가 하루 종일 주님의 재림과, 또 ‘재림하실 때에, 내가 세상 마지막 끝을 마칠 때에 그때에 내 형편이 어찌 되느냐? 그때에 내가 어찌 되느냐? 그때에 내가 원만한 준비를 한 것으로 든든하게 평강 가운데서 맞이할 수 있느냐?’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기는 모든 준비가 다 됐기 때문에 ‘기쁘다. 즐겁다. 이게 있기 때문에 내 일생 생활이 잘 됐다. 이게 있기 때문에 일생 생활은 헛일했지마는 마지막 한 토막이라도 내 정신이 발랐다.’ 이렇게, 든든한 것도 마지막 시간에, 내 마지막 시간, 우주의 마지막 시간, 내 근심 걱정도 거게 있고, 그때의 근심 걱정이 아니면 그까짓 거 뭐 근심 걱정할 필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에 근심 걱정 안 되는 것이 무슨 가치 있어? 염려할 필요도 없어.
또 그때에 우리가 ‘이거는 준비 못 해서 참 후회된다.’ 그때에 후회될 그것이 우리 후회지, 그때의 근심 걱정이 우리 근심 걱정이지, 그때의 기쁨이 우리 기쁨이지, 그때의 성공이 우리 성공이지, 그때의 소유가 우리 소유지 그때 것이 아닌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때를 위해서 우리에게 있고 그때를 위해서 모두 다 투자해야 되겠고 그때를 위해서라야 이용해야 되지 그때에 관련 없는 이 현실만 보고 사는 것은 다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 말한 것은 내 마음이 내 개인과 우주의 종말 그때를 생각한 마음이 얼마나 있었으며, 시간이 얼마나 있었으며, 내 마음이 그때에 얼마나 눌렸으며, 얼마나 간절했으며, 그때를 내 마음이 사모해서 내 마음이 거게 다 기울어지는 그것이 얼마나 됐는가 이것이 우리의 성패입니다. 우리의 성패는, 성공과 실패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확실히 이거는 뭐 역사에 한 사람도 자기 종말이 없는 사람이 없고 다 종말을 갖고 종말 갖고 난 다음에는, 공연히 울던 것도 헛일, 웃던 것도 헛일, 탐하는 것도 헛일, ‘요거 있으면 나는 살겠다’ 제가 어떤 자는 돈을, 어떤 자는 미남을, 어떤 자는 미인을, 어떤 자는 지위를, 권세를, 영광을, 존귀를, ‘네가 오늘 떠난다면 이게 무슨 필요있느냐?’ 여게는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다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헛된 데에 기울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 생활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수지 계산을 이 면에 수입이 있었으면 ‘수입이 있었다.’ 이 면에 수입이 없었으면 천하를 다 받아도 ‘나는 어리석고 속았다. 나는 잠자는 사람이다.’ 자기가 아무리 모든 것을 정리해도 그 날에 정리되었어야 할 그 정리를 지금 해야 되지 그것은 상관치 안하고 공연히 오늘이라도 떠나면 그만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생활은 ‘오늘 떠날지 모르니 이 일은 안 할 수 없다.
오늘 떠나기 때문에 이 일은 뒤로 미루지 못하고 해야 되겠다. 오늘 구름타고 오시니 이 일은 안 할 수 없다. 구름타고 오시기 때문에 이 일은 빨리 해서 다 완료를 해야 되겠다. 이 일은 주님이 오시기 때문에 끝은 보지 못하나 이렇게 그분이 나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하다가 주님 만나야 되지 내가 이것을 등한히 하다가 주님 만나면 그때 부끄러울 거고 주님 노여워하실 것이고’ 하니까, 주님이 재림하시기 때문에, 내가 마지막 죽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때문에 우리의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 경영하는 것, 움직이는 것 이게 아니면 다 속는 생활입니다. 이거 뭐 마지막에 다 결론이 다 이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루 종일 내가 소망한 것이, 그 날에 소망한 것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됐으며, 간절적으로 얼마나 됐으며, 중량적으로 얼마나 됐으며, 뜨겁기가 얼마나 뜨거워졌는가? 그 날에 대해서 내가 경영한 게 얼마나 됐는가? 전부 우리 수지 계산은 그 날에다 두고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랬기 때문에 요것이 깨어 있는 생활이니, 나는 하루 종일 내가 내 마음이 딴데 하나도 허비되지 안하고 순전히 내 마지막, 우주 마지막ㅡ요 마지막이라는 걸 내가 모르기 때문에ㅡ요 마지막이라는 여기에 오늘 종일은 마음도 여기 다 기울어졌다, 힘도 여게 기울어졌다, 소망도 여게 기울어졌다, 근심도 여게 기울어졌다, 걱정도 여기 기울어졌다, 부지런히 날뛰는 것도 여게 기울어졌다.
여게 기울어진 이것을 자기의 성공으로 수입으로 삼으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자기도 광명을 볼 것이고 평강을 볼 것인데 자기 것 아닌 데에서 분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근심이요 노요 자기는 공연히 마귀에게 속해서 기뻐할 놈은 마귀나 기뻐할까 딴거는 기뻐할 놈이 하나도 없소.
이것이 자기 생활인 줄 알아서 성패가 여기에 성패가 있고 수지가 ‘오늘 수입이 얼마냐? 수입이 얼마냐?’ 그 날에, 내 소망과 간절한 사모가 그 날에 얼마나 있었느냐 하는 이것이 자기 수입인데 이 수입은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 어겨서 자기 사욕 그것 달성이 자기 수입인 줄 알기 때문에 이것이 다 마귀의 유혹에 들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는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 수입이 뭐인데? 그 날에 우리의 마음이나 정성이나 생각이나 근심이나 걱정이나 기쁨이나 모든 노력이나 전부 거기에 기울어진 그것이 한 시간 있으면 한 시간 수입, 그것이 강도로 만일 십도가 있으면 백도가 있었으면 그것이 내 수입입니다. 내 수입은 그게 내 수입이라. 땅에 있는 오만 제가 소원한 걸 다해 봤자 아무 그건 내 수입 아닙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하는 거는 소망하라 말이오. 소망은 거게 것만 소망하라 말이오. 그것만 소망해. “간절히 사모해라” 그 말은 내 마음 다 기울이라 그 말이오. 내 행동 다 기울이라.
그러면 그 날에 마음이나 행동이나 내 소망이나 그 날에 기울어진 것이 내 수입이요 안 기울어진 건 내 수입 아닙니다.
기독자들이 이렇게 살면 하나님도 얼마든지 축복하실 수 있고 저도 평강을 누릴 수가 있고 또 성공을 할 수 있고 참 기독자의 성공 하고 울면 마귀나 울까 우리는 다 평안할 건데 이것이 자기의 수지로, 자기의 소망으로, 자기의 성패로, 이것 있으면 성공 없으면 실패라. 성패도 여게 있고, 수지도 여게 있고, 또 자기의 모든 바라보는 것도 여게 있고, 기울일 것도 여게 있습니다.
이거 바꾸지 안하면은 기독자는 자기 속에 영은 이걸 바라보는데 심신은 딴걸 바라보니까 자기 속에 싸움이 있을 것이요 아무리 제가 옳은 일 해도 참 중생된 자라면 절대 평강이 없습니다. 항상 마음이 눌려지고 근심돼지고 평강이 없습니다. 이것이라야 자기에게는 평강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생활을 자기가 하도록 이렇게 깨어서 우리가 살아야 될 터인데 이것을 수지로 안 맞추기 때문에 항상 빛을 보지 못합니다.
자기가, 세상 사람은 돈벌이에 마음이 기울어지면 돈벌이에 마음이든지 근심이든지 걱정이든지 기쁜 것이 다 거기 가서 기울어지고 그의 희로애락이 다 거기에 그것이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나의 모든 생활 다 해 가지고 간추려 가지고 ‘나는 요것뿐입니다’ 가지고 주 앞에 설 날, 그 날의 내 소유, 그 날의 내 형편, 그 날의 내 지위, 내 권세, 그 날의 내것 요것만이 우리 소망이기 때문에 온 마음이 여게 기울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성패요, 수지 계산이요, 또 우리의 소망이요 이런 건데 이것을 다 놓고 남의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이라도, 그라면 먹고 살기를 뭘 먹고 살라고? 먹고 살기는 뭐 그거 하면 됐지, 뭐. 그거 하면 됐어. 그거 하면 그라면 우리는 가만히 굴에 사는가? 그것을 어데서 하느냐? 주님이 이렇게 재림하시고 내 마지막 종말에 주님 앞에 가 설 것이기 때문에, 주님 만날 것이기 때문에 주님 만날 것이니 오늘에 있는 데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 일 할 수밖에 없어.
이러니까, 우리는 그저 그 날 준비, 일하는 것도 그 날 준비, 먹는 것도 그 날 준비, 경영하는 것도 그 날 준비, 대인 관계도 그 날 준비, 내 소원하는 것도 그 날 준비, 내 근심도 그 날 준비, 그 날 준비는 뭐 그 날 뭐인데? 주님 만날 날이라. 마지막 끝나는, 영원을 지금 내가 문 열고 들어가는 날이라. 이러니까 여기에서 있으면서 하면 자기는 주님 시키시는 일 외에는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 시키시는 일만 하는 것이 뭐인가? 믿음 생활 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 하면 당신이 세상에 정권 줄라면 정권 주고, 돈 줄라면 돈 주고, 그거는 우리 소망이 아니라. 우리 소망 가지고 하면 당신이 내 구원에 필요한 대로 이것 저것의 현실을 주시니까 주시는 그 현실 어떻게 처리하나 하고 당신 뜻대로 처리해 나가면 우리 할 일은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우리 기독자들이 하루 종일 내 마음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재림에 대해서 기울이면 개인 죽는 그 시간에 기울이지 안해도 돼요.
재림에 기울였으면 그것 다 되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내 마음이 얼마나 기울어졌으며, 내 힘이 얼마나 기울어졌으며, 내 지식이 얼마나 기울어졌던가? 얼마나 기울어져 투자됐으며 내가 거게 대해서 결실한 것이 얼마나 결실했느냐? 요것이 우리 수지입니다. 요거 외에는 딴게 없어.
그러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일도 하고 이것 때문에 먹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사업도 하고 이렇지 주님이 시키지 안한 사업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주님이 시키지 안한 일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주님이 시키지 안하는 공부가 무슨 필요 있으며 주님이 시키시는 공부를 어떻게 자기가 안 할 수 있으며, 주님이 살라는 이 삶이 우리에게 어떻게 필요가 있지 안하며 또 주님이 죽으라 할 때에 그 죽음이 어떻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살든지 죽든지, 성공이든지 실패든지 당신이 시키시는 그대로만 하면 돼. 이러기 때문에, 왜? 주님 만날 것이기 때문에, 그게 영원이기 때문에.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계속합시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오늘부터 양성원 학생들 성경 공부입니까? 어제부터? 목요일부터, 오늘 목요일 아닙니까?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데? 나한테 통지보냈는 데 목요일 아닙니까? 앞으로 그래 하겠다는 것이고 어제부터 시작했습니까? 그라면 그 지난번에 하던 그것을 계속해서 하나라도, 여러분들 눈을 띄울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짜다라 할라고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외워야 돼요. 문제를 외우고, 그러면 성경 한 권이면 돼. 그 문제 외우면서 성경 읽어보면서 ‘요게는 요 문제에 해당된다, 요게는 요 문제에 해당된다.’ 이래야 되지 그 한 문제 가지고 한다 하는 그거 아직 몰라 그런 거라, 지금. 한 문제 가지고 하면 뭐 일생 동안 해야 다 못 합니다.
그 다 외워 가지고 그 문제를 가지고, 문제는 다 외웠는데 그러면 그 문제를 거기 찾으라 하는 것이니까 성경 가지고 ‘요 문제는 몇 호 문제, 일호 문제가, 이십호 문제가, 십구호 문제가? 여기는 십구호 문제가 요게 해당된다.’ 요렇게 해 가지고 그래서, 그 눈을 띄워 놓으면, 눈이 뜨면 이 세상의 교회들이 뭐이라 하는 거 보여집니다.
한 자리에서 회의에서 이 사람도 발언하고 저 사람도 발언하는데 ‘저거는 마귀 새끼다. 저거는 하나님이다. 저거는 뭐이다. 하나님의 역사다.’ 환하게 다 볼 수 있어. 눈이 어두워 문제라. 눈이 어둡기 때문에 이 마귀란 놈이 수입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눈을 밝혀야 돼.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안약 사 바르는 거라. 눈 치료하는 거라. 그러니까 그것을 그렇게 해서 공부를 하십시오.
그라면 제가 오늘은 못 가고 내일은 금요일이라서 제가 기도원에 가지 않습니다.
안 가면 내일은 그 어느 시간에 가 가지고 한번 가서 만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주님의 재림에 내 마음, 내 몸, 내 시간 기울어진 거 그것만 내 성공이오. 기울이지 안한 거는 온 천하를 얻어도 제 성공은 아닙니다. 저 할일은 아닙니다. 요거 간단하게 요것을 단단히 잡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