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6 10:34
주님의 공로는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1986. 12. 8. 새벽 (월)
본문:요한복음 8장 31절∼36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우리가 참 천한 죄인으로서 만물을 더럽히는 만물의 때와 같은 우리들입니다. 인생이 만물 중에 제일 더럽고 만물까지 *더럽히는 인생인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 타락한 *천사와 *사람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변질했습니다.
처음에 사탄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이 제가 뭣을 좀 높아져 보겠다고 제가 하나님 위에 올라갈라고 하다가 타락한 것이 천사입니다. 그것이 마귀입니다. 그 마귀가 이 우주 안에 쫓겨 들어와 가지고 에덴동산에 자유하고 있는 인류 시조에게 와 가지고 꾀웠습니다.
제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므로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던 것이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 제 위주로 제 중심으로 살려고 함으로 인하여 천해졌고 쫓겨났고 또 사망의 그 정죄를 받았으니까 사람도 저와 같이 인간 중심 인간 위주로 살면 멸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와서 꾀우기를 ‘네가 하나님 말 듣지 안하고 네 중심으로 살면 네가 하나님 된다. 하나님이 너한테 지금 그래 말하는 것은 당신같이 될까 해서 그래 지금 시기해서 그런 거 아니냐?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그 선악과 먹으면 당장 네가 하나님 같이 된다.’ 이렇게 말하니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그 죄값으로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어서 그때부터 자유의 에덴동산에서, 생명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고 또 사망하게 됐고 이제 그때부터는 모든 만물을 더럽히기 시작합니다.
타락성은 자기가 모진 병이 들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모진 병에 다 같이 들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부패성입니다. 부패하기 전에는 자기가 모진 병에 들어 있으면 ‘다른 사람은 나와 같은 이런 병에 들지 안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바른 정신인데 그렇게 되어지고, 불이 났으면은 저거 집만 불이 나야 되지 ‘다른 집에는 번지지 안해야 될 건데’ 이럴 건데 저거 집에 혼자 불이 났으면 이렇게 마음에 고통스럽고 안 됐다가 여러 집이, 저거 집에 이미 탔는데 온 동네가 다 타면 마음에 흐뭇함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그 심리입니다.
이래서 타락한 후에는 자꾸만 자기와 같이 모두 다 하나님에게 미움이 되고 하나님에 반대가 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자들이 되도록 그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마귀요 사람들도 그만 본능이 본성이 그렇게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서는 제일 더러운 것이 인생입니다. 왜? 영계에서 제일 더러운 타락한 천사에게 감염돼 가지고 거게 물이 들어 가지고서 이러기 때문에 그때부터 자꾸 만물을 더럽힙니다.
이래서, 우리가 산에 기도하러 간다 하지마는 아무래도 가서 뭐 깨끗이 한다해도, ‘자연을 훼손하지 말아라, 자연을 보호하라.’ 이렇게 해도 가면 자연을 더럽힙니다. 한 번 갔으면 그만치 더럽혔고 두 번 가면 그만치 더럽혔고, 이래서 안 더럽힐라고 우리가 ‘산도 파지 말아라 나무도 꺾지 말아라’ 이래도 가면 자연히 안 파고 뭐 안 꺾어도 보금자리 치면 누가 봐도, 여기는 그만 자연이 그대로 있지 안하고 파괴가 돼 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조심을 하니까 여기 꽃마을에 있는 산 감시원들은 말하기를,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은 오면 산도 깨끗이 하고 아주 그렇게 자연을 잘 보호한다고 그렇게 칭찬한다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말이 사람 쳐 놓고는 자연을 많이 훼손하지 않는다 하는 그말이지 훼손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피조물 가운데에 이 우주 안에서는 제일 못쓰고 더럽고 나쁘고 추하고 악하고 거짓된 것이 인간이요, 이래서 만물의 때와 같습니다. 만물을 자꾸 더럽힙니다. 만물에게 때를 끼워서 더럽히는 것이 인생이라 말이오.
이렇게 이것이 인생인데 그러기 때문에 비참도 제일 비참합니다. 인생이 제일 비참한 것입니다. 다른 만물은 불타 버리면 원소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입니다. 짐승도 짐승이 죽어서 원소로 돌아가 버리면 다시 그 짐승의 존재는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죽으면 없어져? 죽으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죽으면 또 그대로의 보응을 받은 더 엄한 세계로 타락해 갑니다. 또 거게서 내려가면 더 타락해 갑니다. 더 비참해지고 영원히 비참해지고 또 행복되면 영원히 행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렇게 그 천한 인간이 하나님이신 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 내 중에 내가 되고,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 중에 여러분보다도 더 속 여러분이 된다 말이오. 자기 중의 자기가 된다 말이오.
이리 되면 과거에는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고 있다가 이제는 전지 전능자가 주관하니까 전지 전능자가 됐고 완전자가 주관하니까 완전자가 되어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어제도 말씀한 대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 그말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그 인도를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성령이 그 일을 우리를 붙들고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힘이 없는 자지마는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능자가 우리를 붙들고 일하니까 우리가 전능자가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 사람이 아무 보잘것 없지마는 정권을 잡은 만일 ○대통령이 그 사람을 붙들고 일한다면은 그 사람은 ○대통령의 그 권세를 다 쓰고 그와같이 권력 있는 자입니다. 만일 ○대통령이 붙들고 직접 일할 때에 그 사람을 대항하는 것은 곧 ○대통령을 대항하는 것이요 그 사람의 세력은 ○대통령의 세력이라 그렇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주관하게 되면은 우리는 전지 전능자로서 우리가 행동하고 살게 된다. 이것이 인제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이렇게 만물 가운데에 제일 천한 것이 제일 존귀한 것이 돼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을 다 우리가 주관합니다. 우리가 주관해서 사망도 호령치고 마귀도 호령치고 모든 걸 다 주관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들인데 그 실력을 지금 갖추느라고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실력은 뭐이냐? 그 실력을 갖추는 것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주관하시고 나는 성령님이 계시는 보좌가 되고, 성령님이 계시는 집이 되고, 성령님이 계시는 성령님의 수족이 되고 성령님의 몸이 되고 이러니까 전지 전능자가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우리는 그 주관의 능력으로 우리가 모든 행동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계시는 것이 이것이 이렇게 존영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늘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소원하는 것이 나는 주님의 것이 되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종 되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성전 되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지체 되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몸 되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신부 되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제사장 되기를 소원하고, 선지자 되기를 소원하고, 왕이 되기를 소원하고, 나라와 백성 되기를 소원하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서 우리의 주가 되셔 가지고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무한히 탁월한 이런 존귀한 영광을 우리가 가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님을 우리가 모시면 성령으로 행하는 이 영광스러움이 되는데 성령님을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할라고 하면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싶어서 원하고 계십니다. 왜? 성령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지 무능자로 되는 것을 원치 안하시고 우리에게 오셔 가지고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전지 전능자의 완전자 되기를 원하신다 그말이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이 뭘 모자라는 걸 부모가 도울 수 있으면 부모가 도와서 뭐 어떻게 할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경기장에 가서 보면은 그 민족과 민족끼리 국가와 국가끼리 다투기 때문에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이북에 있는 선수하고 이남 선수하고 둘이 서로 이렇게 서로 이기기를 경쟁하면은 그때 이남 사람들은 모두가 다 이남 사람이 이북 사람보다는 제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저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손뼉도 치고 뭐 가슴이 쪼리쪼리 앉아서 자꾸 이기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럴 때 뭐 좀 법이, 법에 범하지 안하면 도와 줄 수 있으면 가서 도와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 말이오. 법을 내놓지 않으면 그만 잘못하면 나중에 이남 사람 이북 사람 막 남북 싸움이 거게서부터 일어날 수 있
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능이라.
성령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의 모든 약함으로 말미암아 죄 사망 마귀 이런 것들에게 이렇게 피해를 보고 또 이렇게 자유하지 못하는, 여게 걸리고 저게 걸리는 이걸 볼 때에, 하나님의 법에 걸려서, 또 마귀란 놈이 ‘이 법에 걸렸다’ 하면서, `네가 이 법에 걸렸기 때문에 너는 죽어야 된다’ 이라면서 이놈이 와 가지고 위협을 하고 뭐 잡아 노리고 이용하는 걸 보면은 성령님이 그거 기가 찬다 말이오. 얼른 들어가서 이것을 당장 성령님은 전능자기 때문에 마귀고 사망이고 죄고 막 뚜드려 부숴 버리고 쫓아버리고 이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마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싶으기는 들어오고 싶어서 문 밖에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두드리니까 누가 문을 두드리냐 하면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님이시요 성령님이십니다.
이런데,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성령님이 우리에게 뚫고 들어올 힘이 없어서 못 들어오는지 뚫고 들어오면은 우리가 멸망하고 절단나기 때문에 못 들어오시는지 어느 것입니까? 힘이 없어 못 뚫고 들어오는 것입니까 뚫고 들어오면 우리가 멸망받기 때문에 들어오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자, 힘없어 못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우리가 멸망하기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녜, 이겁니다.
왜? 비유컨대 우리는 어두움과 같고 하나님은 빛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두움 있는 데다가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견딥니까 녹아버립니까? 녹아버립니다. 하나님은 옳고 바른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삐뚤어져 가지고 있으니까 옳은 것이 오면 삐뚤어진 것이 절단납니까 안 납니까? 절단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시는 것은 이 이유로 들어오지를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실 수 있는 것은 어떤 길이냐 하면은 성령님이 빛이시면은 빛이 들어와도 빛에게 녹아지지 안할 수 있는 우리가 빛이 돼야 되겠고 성령님은 옳고 바르신 하나님이시니 옳고 바른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들어와도 우리가 절단나지 않는 것은 성령님이 들어와도 우리가 그 성령님의 옳은 것에게 우리가 녹아지지 안하고 바른 것에 녹아지지 안하고 우리에게 모든 잘못된 그런 것이 없어져야 녹아지지 안할 것이라 그거요. 알겠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성령님에게 해를 받지 안할라면은 성령님은 진리시기 때문에 진리가 들어와도 우리에게 절단날 것이 없는 비진리가 없어져야 될 거라 말이오.
성령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주님이 들어오셔도 우리에게 거룩하신 성령님에게 녹아지는 죄가 없어야 될 것이라 말이오.
성령님은 깨끗이니까 깨끗의 근본이신 성령님이 들어오실 때에 녹아지지 안할라면 우리에게 더러운 것이 없어져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더러운 것이 없어지고 어두운 게 없어지고 삐뚤어진 게 없어지고 우리가 옳고 바르고 참된 우리가 돼야 되는데 우리가 언제 그 사람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런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죄없는 깨끗한 자가 되는 것을 공자니 석가모니니 모든 종교 창설자 노자니 뭐 소크라테스니 뭐 톨스토이니 이런 사람들 다 도덕가입니다. 굉장한 도덕가요 일생 동안 깨끗하게 살라고 애를 쓰는 모든 도덕가들이요 다 절제가들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애를 써 가지고서 자기를 깨끗게, 하나님 앞에서 흠과 점이 없이 깨끗게 한 사람이 땅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아는 분들?
공자니 뭐, 석가모니 그런 사람은 얼마나 깨끗할라고 애를 썼습니까? 불교인들은 전부 석가모니는 다 깨끗하고 다른 사람까지 깨끗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불교 아닙니까? 불교인들은 석가모니는 자신만 깨끗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깨끗하게 해 줄 수 있다고 해 가지고서 모두 다 불교 믿는 사람들은 그래 믿지 않습니까?
석가모니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사람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여러분들 확실히, 아닙니다.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공법 앞에서 걸리지 안할 인간이 어데 있다 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일찍부터 ‘공부를 시킬라면 법을 시키라’ 법학을 시키라는 것은 구원을 표준해서 법학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학을 시키라 했고 또 사학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학을 하라 했습니다. 제가 예수 믿은 지 얼마 후에 그 말을 해서 오늘까지도 변동이 없습니다.
그거 뭐이냐? 깨달은 면이 있어 가지고 했더니마는 그거 오늘도 말해야 그거 뭣 때문에 그런지 그걸 몰라. 그거 나는 그 깨달은 것을 내가 깨달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깨달아 준 것으로 알아요. 이래서 우리 양성원에는 법을 가르칩니다. 또 역사를 가르칩니다. 이런 것도 다 이 법을 알아야 이 경우를 안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에게 삐뚤어진 것이 있으면은 그 법에 법 조문에 어긴 게 있으면은, 어긴 것이 있으면은 다른 사람이 ‘이 사람 이거 법 조문을 어겼다’ 이라면 그 사람이 잘난 사람이라도 법 조문에 어겼을 때에 다른 사람이 ‘법 조문에 어겼다’ 이렇게 고발을 하면은 잘난 사람이 견딥니까 끌려가야 됩니까? 끌려가야 돼요 견디요? 벌금을 하든지 그리 안 하면 징역을 가든지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게 법이라. 이러니까 법을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성경 진리를 가르쳐야 모른다 그거요. 그래서 내가 모두 법 공부를 하라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님은 우리 속에 들어오실라 해도 이런 이유 때문에 들어오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실라면 성령님이 들어와서도 우리에게 멸망할 요소가 없고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서 성령님이 기뻐하셔서 얼마든지 우리를 도울 수 있고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고 역사하실 수 있어아 될 터인데 이게 문제라 그말이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님이 들어와도 우리에게 멸망할 것이 없는 완전자가 될 수가 있습니까? 아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되나 안 되나 손 들라 하면 손 들면 교만한 것인 줄 알고, 우리 서부교회는 그거 또 그게 탈이라. 손 들라 하면 손 들면 아는 체로 교만하다 싶어서 손 들라 해야 안 드는 사람 많은데, 그러면 안 드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모르는 사람은 솔직해. 모르는 사람은 둘밖에 안 들었는데 다른 사람은 어째서 손 안 드요, 안 들기를? ‘뭐 아는 척 손 들어’ 이것도 알면, 아느냐고 물으면 알면 안다고 대답해야 솔직하고 정직하지 않소? 알아도 모르는 척 하고서.
우리가 성령이 와도 우리에게 멸망을 당하지 안할 수 있도록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그 길이 뭐입니까? 알 수 있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다 따라서라도 둘어요. 어이구, 그렇츰 가르쳐도 모르고 그라면 어찌 돼요?
녜, 어제 아침에 언제 물으니까 누가 대답을 하더라? 누구한테 내가 물었지? ○○○조사님에게 물으니까, ○○○조사님? 나 여기 보니까 안 있기 때문에 또 늦게 자빠져 자고 늦게 나오는가 싶어서 내가 했더니마는 저 그래 중간쯤, 중간에 좀 더 밖에 나왔구만. 일찍 나와요. 어짜든지 새벽기도 나오는 새벽기도 준비는 언제 있어요? 새벽기도 준비는 새벽에 있습니까 밤에 있습니까 초저녁에
있습니까? 초저녁에 일찍 자야 돼. 어쩌든지 일찍 자야 되지 별수 없어.
그거 여러분들, 열두시에 자는 열 시간보다 열한시에 자는 아홉 시간이 낫습니다. 열한시에 자는 아홉 시간보다도 열시에 자는 여덟 시간이 낫습니다. 열시에 자는 그것보다도 또 아홉시에 자면 아주 달라. 낫아요. 그래 자 보십시오. 한 만일 여덟시에 잔다고 하면 여덟시에 자 가지고는 한 너댓 시간 자면은 피곤이 확 풀립니다, 여덟시에 자면. 그 열두시에 자 가지고는 열 시간 자도 피곤하고 풀리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제 경험도 그렇고 다른 사람 말도 그래 하는데 저녁으로 일찍 자면은 한 시간 자는 것이 늦게 자는 두 시간을 당할 수가 있고 더 늦게 자면 세 시간도 당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여덟시에만 자면 참 좋아요. 이러니까 김현봉 목사님은 늘 여섯시에 잤어요. 그 어른은 뭐 어떤 일이 있어도 여섯시에 자. 그러니까 그만치 자유했어. 자기가 옳다 생각했으면 그대로 뭐 자유했어. 물론 좀 유명하니까 찾는 사람이 많지 않겠소?
제가 한번 가 봤어요. 어째 그날, 가 보니까, 일찍 갔는데 중간에 또 사람 만나고 이래 가지고 해 놓으니까, 내가 그 여섯시에 잔다 했나? 아니야. 다섯시에 자요, 다섯시에. 다섯시에 자는데 그래 보니까 다섯시 그때가 뭐 십 분인가 넘었어. 그래 가지고서 그 밖에서 문을 두드립니다. 암만 두드려야 안 열어 줘요. 그 목사님이 그래 보니까 시간이 얼마나 갔어.
그래 나중에 물으니까 같이 ○○목사하고 같이 갔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왔었어. 한 번밖에 안 만나 봤는데 그분이 유명하다 해 한번 가 만나 볼라고 갔었는데. 그래 그라니까 ‘아, 우리가 늦었습니다. 다섯시부터 주무십니다.’ 이래. ‘다섯시부터 주무셔도 자꾸 깨우면 되지 뭐 안 나올까?’ 하고서 자꾸 뚜드려 댔다 말이오.
뚜드려 대니까, 그 뒤에 내가 그 어른을 내가 좀 만나보고 난 다음에 그래. 뚜
드려 대니까 ‘문을 부숴 봐라 열어 주는가? 허, 저런 무례한 사람들이 주인이 안 열어 주면 갈 일이지 저 *저렇게* 짐승같이 무례한 일 한다.’ 속에서 그라고 누웠을 거라 말이오. 암만해야 *안 열어 줘요.
안 열어 줘서 할 수 없어 말고 인제 그 이튿날은 일찍 갔습니다. 가서 말해 그말 했어. ‘엊저녁에 여기 와 가지고서 다섯시 몇 분에 와서 막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 줬다’ 하니까 뻘쭉하이 웃으면서 이라면서, 잘 놀아났다 그말이지. 이라면서 ‘나는 다섯시부터 잡니다. 다섯시 넘으면 뭐 아무가 와도 서로 면접을 안 합니다.’ 그게 잘난 사람이라. 그렇게 자유한다 그말이오.
나는 암만 그거 해 봐야 그거 못 합니다. 못나서 못 해. 오늘 몇 시에 잘랍니다 하고도 뉘가 오면 그 사람하고 얘기하다 보면 그만, 얘기하다 그만 ‘가십시오’ 이래야 되는데, 그 김현봉 목사님은 그란대. 시간되면 ‘시간 됐습니다. 가십시오.’ 그라고 난 다음에 뭐 그만이지 암만 있어 봤자 그 있거나 말거나 그라면 자기는 그만 침구 펴고 드러눕는대요, 그만. 누워 가지고 누워 자, 그만. 자거나 말거나. 가라 소리 해서 안 가면. 이런데 이런 용단이 없어 그런 거라. 못나 그렇습니다. 그 어른 참 잘났어요. 저녁으로 일찍 누워자야 새벽기도 나와요.
그런데, 이렇게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려고 하면은 우리가 완전히 깨끗한 자가 돼 가지고서 성령님이 와도 우리에게 탈 잡힐 것이 없고, 정죄받을 것이 없고, 죽을 것이 없고, 책망받을 게 없고, 멸망받을 것이 없어야 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우리가 완전히 깨끗해져야 돼요. 완전해져야 돼요.
죄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또 마귀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사망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하나님 율법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또 하나님과의 그 관계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또 모든 생애도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완전이 되고 이 일곱 가지가 완전해야 된다 말이오.
일곱 가지 완전해아 되는데 일곱 가지 가운데에 사람이 자기 일생을 바치면 일곱 가지 가운데에 하나에 대해서 완전하게 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못 해.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와같이 일곱 가지 나를 대신해서 완전을 이루신 일
곱 가지를 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것을 이루어 주신 것이라 말이오. 또 하나님이 이 피조물로 다시 부활하셔 가지고서 이것을 이루어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말이오. 이것을 믿어 이것이 내것이라는 것을 믿을 때에 내것 돼 버립니다.
그러면 내것 되면은 믿어서 내것이 되는데도, 자기는? 예수님의 대속도 자기 것, 자기 것도 자기 것 이렇게 되는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렇게 되는 수가 있소 없소? 쉽게 말해서 상점에 가서 물건을 이거 샀는데 돈도 안 주고 물건도 내 물건, 돈도 내 돈 그리 되면 그 주인이 물건을 도로 뺏드요 줍니까?
자, 흥정해 가지고서 돈을 안 주고 물건 가지고 옵니다. ‘여보 여보 돈 안 냈습니다.’ `돈은 내 돈인데 왜 내가 줘요?’ 그 물건만 가지고 온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물건을 뺏기고 맙니까 이놈 도둑놈이라 달라들어 가지고서 물건을 뺏겠습니까? 도적이라고 달라들어 가지고 ‘왜 네가 값도 안 내고 내 물건 가지고 가느냐?’ 그럴 것 아니겠소? 간단하게 그와 마찬가지라. 법을 배운 사람들은 그걸 좀 알아요. 이러니까 이거 도무지 이면 경위를 모르고 이 사리를 모르는 사람하고는 참 일하기가 안 됐소. 이 세상 법이라도 좀 알아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쓰는데 일꾼들 보면 이 사회 생활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이 다릅니다. 사회 생활 안 한 사람은 이거 도무지 벽창호라. 막혀서 도무지 그 사람하고는 통하지 안해 말 못 해. 이 사회 생활 좀 한 사람은 으레히 사회 생활한 사회 법이 그렇기 때문에 아예 법이 그런고로 다 그렇게 알아서 하니까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말하기 전에 그 사람도 ‘이거 사회 법에서 이러니까 이거는 내가 잘못했다. 이런 건 이라면 안 된다. 이래아 된다.’ 이러니까 서로 통해서 말할 게 없어.
하늘나라는 참 좋아요. 하늘나라 말이 있는 줄 압니까? 하늘나라 말이 있소 없소? 하늘나라 말이 있소 없소? 없어. 하늘나라는 말 없어. 하늘나라는 말이 없어. 다 영감으로 이렇게 충만하기 때문에 말할 것이 없어. 아예 이라면은 저 사람이 섭섭할 것이라, 또 이라면 저 사람 좋아할 것이라, 이래 하면 이래 다른 사람이 욕하지 안하고 바로 칭찬할 것이라.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모든 율법과 선지자 이대로 된 사람들만 하늘나라 가 있기 때문에 거게는 무례한 일이 하나도 없어요. 말을 해야 알아듣는 일이 없어. 말 하나 안 하나 다 동감이고 모든 사리 판단이 꼭 같은데 뭐 말할 게 뭐 있습니까? 말 안 해도 다 피차 알고 있는데.
이러니까, 우리가 이 경위를 알아서 예수님이 죽기까지 이와같이 수고하셔 가지고서 노력하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일곱 가지 대속을 주셨으니까 이 대속이 내것 되면 나는 누구 것 돼야 됩니까? 주님의 것이 돼야 된다 그말이요, 주님의 것이.
암만 이 대속을 내것이라고 이와같이 내가 믿어도 나는 내것 돼 있으면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됩니까 안 됩니까?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내것 됩니까? ‘주님이 나 위해서 대신해서 이와같이 일곱 가지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서 이 완전을 나에게 주셨으니까 이건 나 위해 하신 것이기 때문에 내것이라’ 하는 것을 믿고 그다음에 또 뭐 해야 됩니까? 믿고 뭣 해야 됩니까?
나를 대신해서 죽고 모두 살고 모든 거 하셔 가지고서 이거 베푼 걸 나에게 줬으니까 주님이 나 대신 했으니까 나는 누구 대신이 돼야 됩니까? 주님의 대신이, 주님의 것이 돼, 주님 대신이 돼야 된다 말이오. 이제는 주님 대신 살아야 된다 말이요, 주님의 것 이 돼야 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공로는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이 될 때에 이제 나는 완전자가 됩니다. 그러면 내가 완전자가 되는 것은 어떻게 완전자가 됩니까?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돼야 완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라면 뭣이 들어옵니까? 이라면 뭐이 들어오요? 성령이 뭐입니까?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오.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거라.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하나님 들어오셔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역사하시니까 나는 어떤 자가 됩니까? 전지 전능자가 되는 것이라 그거요. 오늘 아침에는 요것만 배우고 단단히 기억해요. 그런고로 자꾸 잊어버리면 안 돼.
이복순 집사님이 저 양산동에 산에 가 가지고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말이오. 은혜를 주시니까 은혜를 받았어요. 이러니까 걷지도 못하고 곧 죽을라 하던 사람이 살아 가지고 제법 거석해서 아, 산에서, 나는 그 반동가리밖에 안 되는 데요. 산 밑에 중턱에 있어요. 반동가리밖에 안 되는데 거게서 내려올라 하면은 십오 분 걸리요. 살살 이래 작지하고 내려오니까 십오 분 걸려. 십오 분 걸리는데 나도 막 뛰어내려 올라 하면은 십오 분 걸리는 거 한 오 분에 내려올란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빠져 처박히면 인제 탈이지마는. 내려올지 몰라. 이런데 그 위에서 사 분에 내려와요, 사 분에. 사 분에 내려와.
사 분에 내려오니까,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까 내가 얼마든지 하면 된다.’ 사 분에 내려오는데, 사 분에 내려오는데 그 뒤에 빨리 내려오다가 구부러져서 그만 한번 다쳐서 한번 지금 절단이 나 가지고서 있습니다. 자, 사 분에 내려오니까 ‘사 분에 내려오니 도와 주시니까, 또 도와 주시면,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까 이 분에 내려와도 또 도와 주시겠다.’ 그러면 자꾸 그라면 나중에 가서는 어찌 됩니까? ‘내려갈 게 뭐있나? 제일 까풀막진 데서 위에 휙 뛰면 될 것이라.’ 이래 할 터이니까 자꾸 그래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그거 사람 죽이는 것이요 살리는 것이 되겠소?
이러니까 뭣이든지 하나님이 도와 주실수록, 도와 주실수록,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으니까 도와 주실수록 ‘아, 뭐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었으니까 그까짓 부스러기,’ ‘여기 야 알밤만한 부스러기 있다.’ ‘아, 그까짓 거 뭐 밟아 문대 버려라. 그까짓 무슨 상관 있노, 뭐.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이렇게 불어지는데 부스러기 그런 게 할 게 뭐 있느냐?’
이런데 주님이 뭐라고 했소? 부스러기 어짜라 했소? “부스러기를 남기지 말고 주워라” 이래 놨으니 내 생각에는, “남기지 말고 주워라” 주님이 그렇게 엄하신 주님이 능력 있는 주님이 주워라 해 놨으니 그들이 그 콩내끼만한 것만 주웠을까? 눈에 하야이 보이는 건 다 주웠을까? 어떨 상바릅니까? 하얗게 보이는 보스래기도 가루도 다 주웠을까? 알밤만한 것만 주웠을까? 자, 알밤만한 것만 주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떡 보스래기 하얀 보스래기까지도 다 주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보스래기까지 다 주웠어. 어느 명령이라 안 주울 수가 있어?
이러니까, 은혜를 주셔 은혜를 받을수록이 은혜를 아껴야 됩니다. 아껴서 소중히 해야 되지 뭐, 예수 믿어서 ‘야, 예수 믿으니까 사업도 잘되고 돈 잘 벌리니까 주님이 주신 돈이니’ 이 돈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조심해서 이거 한 푼도 벌로 남용하지 안하고 아껴 써야 될 터인데 ‘아, 이거 주님이 축복했으니까 어제 내가 돈을 얼마 벌었다, 뭉텅뭉텅 벌었다.’ 이라니까 돈을 제 마음대로 쓰는 그놈은 이제 박이 터져야 돼요 거지가 돼요? 거지가 돼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거지가 돼야 돼요. 이거 알아야 돼요.
그래 인제 조심해서, 이건 암만 줘도, 암만 주고 또 시험한다 말이오. 암만 주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하나님이 이렇게 주시니까 야 너 그렇게 쭈물쭈물할 게 있는가? 한번 훅 뛰어봐라.’ 이래도 ‘이것은 주님이 시키는 거 아니다. 필요 없이 힘을 쓸 수가 없고 필요 없어 이거 지나치게 보일라고 지나치게 과용할 수가 없고 이거 지나치게 쓰는 건 지나치게 쓰면 안 된다. 꼭 절제해서 합당하게 써야 된다.’
이거 옆에 속에서 ‘야, 이럴 때 이 층층대가 있는데 훅 두 층어리 한번 뛰어 건너볼까?’ 이래 마음이 난다 말이오. ‘이거는 남용이다, 이거는 내 마음이 아니고 이놈 사탄이 들어왔구나. 주님이 아니로구나. 주님, 내가 이거 세 발 네 발 뛰는 게 이게 옳습니까?’ 꼭 뛰어서 빨리 가아 될 때는 가야 되지마는 그럴 필요 없는데 하는 것은 하나님을 뭐하는 겁니까?
‘성전에 뛰어내리라’ 할 때에, 뛰어내리라 할 때에 그때 뛰어내리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고거는 하나님께 순종이요 마귀 순종이요? 마귀 순종이라. 그렇게 뛰어내렸으면은 예수님의 다리가 상할까요 안 상할까요? 고거 참 알쏭달쏭해. 나는 상한다고 이제 깨달았소. 그전에는 안 상한다고 했는데 상한다고 깨달았소. 왜? 그 마귀에게 순종, 예수님은 마귀에게 순종하면 절단나요 안 나요? 예수님도 마귀에게 순종하면 내나 우리와 같이 죄인 돼 버리고 절단나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알겠소?
이러니까, 우리가 과용하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 또 인제 그것이 ‘봐라, 열심히 이래 쌓더니마는 이제 다쳐 가지고서 지금 이렇다.’ 이라니까 그 자꾸 막 열심을 내라, 새벽기도 나오너라, 산에 만날 가서 추워도 기도를 해라 이래 쌓으니까 보니까 권능이 있어서 이렇게 자꾸 돼지니까 그 식구들이 떡 복종했다 말이오.
복종하다가서 지금 그만 탁 꺼꾸러져 가지고서 지금 걸음도 옳게 못 걷고 이라니까 아마 그 구역 식구들이 지금 자꾸 막 강행을 시키다가 이거 애를 먹은 식구들은 좋아하겠소 안 좋아하겠소? 좋아하겠소 안 좋아하겠소? 그 식구들 좋아해? 겉어머리 안 좋아도 속으로는 좋아합니다. 속으로는 좋아해요.
그래 김현봉 목사님이 막 시간 지키라고 자꾸 이래 강행을 이래 하다가서 그때 일 분인가 늦었다 말이오. 삼 분 전에는 와야 된다 하는데 이 분 전에 왔다 말이오. 일 분이 늦었다 말이오. 이라니까 오니까 모두 다 와 나서 가지고서 ‘목사님, 지금 삼 분 전에 와야 된다고 말씀했는데 지금 이 분 전입니다.’ 뭐 전부가 다 달라들어 ‘이 분 전입니다, 이 분 전입니다.’ 막 이래 가지고 김현봉 목사님을 해 댔어. 지금 강행을 당하니까 좀 한번 어짤꼬 이라다가 한번 인제 흠이 나니까 막 그래서 그래 김현봉 목사님이 있다가 ‘예, 제가 일 분 늦었습니다. 여러분들 앞에 사과를 합니다.’ 이래 사과를 기어코 사과를 합디다.
사과하는 것, 그 사과하는 것은 어짜라고 사과해요? 예? 사과하는 건 어떻게 사과해? 왜 사과해? 사과하는 것은 ‘나도 일 분 늦은 거 사과하니까 너거도 늦으면 사과하고 늦지 않도록 회개하라’ 그말이오.
그래서, 내가 이복순 집사님한테 ‘그와같이 시험한 그런 일 했으니까 하나님 앞에 그 기도를 해서 내가 그와같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지 안하고 자꾸 주시니까 훅훅 뛰어 돌아다니다가 그랬으니까 이제 그걸 회개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자기 주관대로 너무 은혜를 남용했으니까 그걸 회개하십시오. 회개하면 당장 낫아 주실 것입니다.’ 이랬는데 그 어짠지 하나님께서 많이 낫아 주셨어요. 그래 그만 자꾸 낫아 주시니까 나았는데 그게 완
전히 인제 완전히 회개하면 완전히 나아.
‘다시는 주님의 주시는 은혜를 내가 남용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은혜 주셔도 하나님에게 꼭 피동으로 내가 행동하지 내가 피동 아니고 내가 능동으로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요것만 딱 작정만 하면 대번 지금 그 환하게 또 그래 뛰어 돌아다닐 수 있어요. 뛰어 돌아다닐 수가 있는데 그게 지금 덜 됐는가 낫기는 나아서 지금 이래 다니기는 다니지만 그전만 조금 못한지 모르겠어요.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세밀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 세밀하지 않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도, 인간들도 세밀한데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세밀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딱한 사정 다 아시고, 우리의 형편 다 아시고, 억울한 것 다 아시고, 또 우리가 공연히 피해당하는 것 다 아시고, 우리가 참는 것도 다 아시고, 견디는 것도 다 아시고, 손해보는 것도 다 아시고, 다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이 모든 거 다 알기 때문에 이분이 계시니 우리가 살 맛이 있지.
참 요새 차차 예수 믿어 보니까 이분이 계시기 때문에 살 맛이 있지 이분이 안 계시면 살지 못해요. 이 세상은 모든 전부 하나도 믿을 수 없고 전부 억울한 것 꺼꾸로 된 것뿐인데 이 어떻게 살 수 있겠소? 이분이 계시기 때문에 안심이라. 종말은 최종은 그분이 다 모두 다 처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분 처리는 옳고 바르고 참되기 때문에 그분 한 분으로 만족해요. 그분의 통치로 만족해요. 그분이 왕이 됐기 때문에 그렇지 그분이 왕이 안 되고 누가 왕이 돼도 우리는 그밑에 살지를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대속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이래서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된 내것과 주님의 것 된 나와, 주님의 것과 내것과 둘이 이래 합한 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어요? 둘이 합한 걸 뭐라고 말했어요? ○○○씨? 생명? ○○이? 에이고 틀렸어. 틀렸어 틀렸어. 뭐? 상호내주? 해석은 엔간히 잘하네. 결혼, 결혼. 결혼. 주님은 일곱 가지 대속 가지고 장가왔고 나는 일곱 가지 더러운 것 가지고서 주님에게 시집갔어. 이래 가지고 둘이 결혼했다 말이요, 결혼.
뭐 남자 여자 이성 가지고 결혼했소? 암컷 수컷 가지고 결혼했소? 그게 아니라. 주님은 완전자하고 나는 더러운 것하고 둘이 이래 결혼했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게 원형 결혼입니다. 이것을 알리기 위해 가지고서 인간적인 육체의 결혼이라 하는 이 제도를 하나님께서 내셨다 그말이오.
다른 데서는 그게 없어요. 부부 결혼에서는, 이 남녀 이성 성교 그게 아니고 이 부부 결혼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정사라 하는 것이 부부에게만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정사. 그 정에 못 견뎌서 정사에서 죽는 것은 부부 결혼에밖에 없어요. 뭐 부자간이 모자간이 형제간이 동료간이 뭐, 전쟁에서 친한 전우가 좋다 하지만 전우에도 그게 없어요. 없는데 여게서는 변치 안하는 원 정상에서는 그 남편이 죽고 나면은, 남편이 죽고 나면은 그 아내가 얼마 있다가 따라 죽어요.
주기철 목사님의 사모님도 주기철 목사님 딱 순교당하고 나니까, 그 젊은 분인데. 순교당하고 나니까 그다음에 얼마 후에 죽었지요? ○○○씨가 잘 아는데. ○○○집사? 이거 봐, 또. 새벽에 못 나왔네. 그걸 나와야 되는데 그게 못 나오니까 그거 이겨야 돼.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돼요. 새벽에 일어날라 하니까 ‘아이 피곤하다.’ `이놈의 새끼' 막 안 되거든 바늘로 찔러요. 찔러 가지고 ‘이거 네가 또 새벽기도 안 나오고 또 지금 이 행세 하는구나.’ 마구 바늘로 쿡쿡 찔러 버려요. 그라면 그놈 뻘떡 일어나 가지고 갑니다.
그라면서, 네가 새벽기도 가야 너도 영광스러운 몸되고, 또 마음 나도 영광스러운 마음되고, 또 영도 좋고, *금생도* 내세도 좋지. 너 이놈 네가 복종 안 해서 안 된다고서. 자기 몸을 쳐서,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바울이 말하지 안했어요? 고린도전서 9장에.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 이놈을 복종시킬 줄 알아야 되지 복종 안 시키면 안 돼요.
녜, 자꾸 와서 배워야 돼요. 오늘 아침에도 뭐 얼마 안 돼. 이래 와도 보니까 그저, 얼마 안 되겠어. 한 팔백 명이 될란지. 구백 명도 안 될 것 같애. 저 뒤에 좀, 저 뒤에 좀 있기는 있지마는 구백 명도 안 될 거 같애요. 천 명은 어림도 없어.
천 명은 여기 꽉 앉으면 저리 앉고 하면 천 명이 돼요. 이렇게 모두 다 무능한 사람들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