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연관성 연결성

 

1986. 2. 17. 월새벽

 

본문: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도합시다.

처음 만나는 첫시간 주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으로 더불어 서로 모든 것을 교제하여 주를 아는 지식으로, 믿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지하고 맡기고 순종하는 이 생활로 새로워지게 하시고 좀 더 알게 하여 주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은 날마다 노력하는 것이 영과 육이 진정 행복되기를 진정 원하는 저희들이며, 또 영과 육의 온갖 저질러 놓은 불행스러운 또 우연히 오는 뜻밖에 오는 모든 불행스러운 이런 모든 불행을 다 피하고 복을 받으려 하는 저희들입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경제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이 사회적으로나 온갖 면에 저희들이 잘못 저질러 어려움을 일으켜 놓은 모든 복잡한 것들도 많이 있고 또 저희들이 경영하고 원하나 이 모든 것이 경영뿐이지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답답한 일도 많은 저희들입니다. 이런고로 날마다 틈날 시간이 없이 분망한 저희들이지마는서도 아무런 결과는 없는 저희들인 것을 오늘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학개 선지에게 또 모든 선지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의 결과를 저희들이 먹고 있는 것인 것을 알기는 알지마는서도 잊어버리고 아주 까마득하게 생각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 이 시간에도 우리는 참 어두움이 어떻게 빛을 알며 죽은 것이 어떻게 생명을 알며 마귀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호응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이것이 와 가지고서 내 심신을 삼킬라고 노략하고 있는 것이지마는서도 이것이 내인 줄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똑똑히 분별하여 이것이 원수인 것을 깨닫고 우리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영생력으로 다시 살아난 우리들이오니 이것으로, 이 힘으로 살라고 할 때에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되고 우리에게는 모든 허락한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인 것을 확실히 믿는 저희들이 되게 하사 이제는 그런 데에 해결짓고 건설하려는, 그런 데에 노력하는 이 힘을 완전히 전환시켜 바꾸어서 주님을 아는 이 지식에 전력을 기울이고 아는 대로 인정하고 아는 대로 요대로 또박또박 하나 하나 실행하는 여기에 모든 것을 기울여 바쳐 정말로 믿음으로 사는 저희들이 됨으로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의 만 가지의 축복과 성공과 해결이 있는 이 사실을 확신하고 얼마 동안 어려워도 요대로 지켜 나감으로 빛을 보는 저희들 되게 하사 빛 가운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 그 집에 있는 아주 말단 종업자를 그 주인을 위하여, 주인을 대접함으로써 그를 존귀히 대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심부름을 올 때에 그 심부름을 보내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지마는서도 보낸 이가 있기 때문에 그 보낸 이를 인해서 그를 존귀하게 여기면 그것이 바로 보낸 그 사람을 직접 존귀히 여겨 대우하는 것보다도 그 대우가 실효가 있고 그 대우는 또 매력 있는 대우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간 소지품이 하나 있는데 그 소지품을 그걸 그 주인은 아주 존경을 하면서도 소지품 그것은 그까짓 거 뭐 아무나따나 주 쳐박아 놨습니다. 그러면 그 쳐박아 놓은 것을 그 주인이 가 가지고 그걸 찾을 때에 아무나따나 쳐박아 놓은 걸 보면은 뭐, 갔을 때에 그 소지품의 주인을 어떻게 대접하면서 이렇게 해도, 해석은 안 해도 사람이라 하는 것은 이 심령은 빠릅니다.

연해서 생각하는 그 연상이라 하는 것은 뭐 비행기니 이까짓 거 그런 것 그 억억만 배도 더 빠릅니다. 여게서 잠깐 지금 그 사람이 미국이라면 미국을 찰나에 미국을 삑 돌 수도 있고 이런 것이 사람의 이 정신이요 연상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 말을 안 해도 그 속에 벌써 사진이 딱 찍혀 버렸습니다. ‘이 사람이 내것인 줄 알고 이렇게 아주 허투르게 이렇게 그만 취급 했구나’ 그 마음에 섭섭함을 가지게 됩니다. 보니까 그것을 아주 위해 놨습니다. 딱 위해 놓고 ‘이거 미안합니다. 이걸 보낼라고 했는데 지금’ 사정을 말해서 ‘사람이 이렇고 이래서 보낸다고 하는 게 보내 드리지를 못하고 여게 있습니다’ 하면서 위해 놨습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놨다 말이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그걸 보고서 ‘이 사람이 내게 대해서 이렇게 존중히 여기고 있는데 내가 혹 이 사람에게 기대에 어긋나게 실수한 일이나 없나, 또 이 사람에게 무슨 실망 준 그런 사람같잖게 내가 한 일은 없나’ 거게서 온갖 것이 반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이치를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갔는데 개가 그만 따라와 버렸습니다. 그 어데 손길 가는 데에 개를 데리고 다닐 건 아니지마는서도 매어 놓지 안해 이놈이 그만 따라왔다 말이오. 따라오니까 암만 쫓아도 그렇게 따라왔는데, 갔습니다. 가니까, 그 집에서 ‘이 개가 어짠 개고?’ 아무것이를 따라왔다고서 그 집의 개라고 이라니까, 그 주인이 개 임자 그 손님에게 대해서는 아이구, 오셨습니까? 뭐 인사는 이래 하지마는 언제 대접할 것 없고, 대접을 하지 안하고 먼저 ‘얘들아 그거 개, 아무것이 그분이 데리고 온 개 조심해라. 그 개를 어데 뭘 먹을 걸 줘라.’ 보니까 개에 대해서 이거 뭐 관심을 가지고서 야단지기는 것이 방 안에 들으니까 문구멍으로 들어와서 그게 들려진다 말이오.

들려지니까 처음에는 ‘그 개를 데리고 와 가지고서 공연히 주인에게 염려을 끼치고 안 됐다’ 이래도 그 보니까 뒤에 돌아올 때까지 그 개에 대해서 후대를 하고 이래 하면은 그만 그 사람이 음식이 좀 맛이 없고 뭐이 잘못 돼도 만족입니다. 왜? ‘이 사람이 나를 대우하고 있고 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우하고 있구나’ 이러니까 그만 그 사람하고 정이 딱 들어붙고 ‘이 사람에게 대해서, 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우하고 있는데 이 사람에게 무슨 언행 심사에 실족을 하지는 않겠나, 또 이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는데 내가 이 사람에게 사람노릇해서 유익을 끼칠까’ 온갖 긴장과 조심이 다 생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지한 사람은 그뭐 이이가 가져온 물건이니까 그까짓 거야 ‘이거 뭐 할라고 이거 작지는 뭐 할라고 여기 갖다 세워 놨노? 저 내 던져 버려라. 그거 불에 태워 버려라. 불 때는 데 때라.’ 그라든지, 개를 뚜드리니까 깽깽 거리면서 그만 그라고 있습니다. 그라면 그 주인이 마음에 말을 하잠도 안 되고 안 하잠도 안 되고 마루에 살며시 나와서 개를 불러 가지고서 그 개를 어떻게 달리는 지체할 수 없으니까 저기 갖다 매어 놓고서 ‘그만 저는 지금 바빠서 가야 되겠습니다.’ 왜? 냅두고 있으면 그 개가 깽깽거리고 쌓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고 도로 폐를 끼칠 터이니까 고만 개 데리고 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이러는 거보다도 그에게 소속한 것, 그가 가지고 있는 것, 그의 것, 그것을, 그 사람을 존중히 대접하는 것이나 그걸 존중히 여기는 것이 오히려 더 효력 있는 그런 대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우리가 누구든지 ‘이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고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고 이렇게 대우를 하고서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것이 막바로 주님을 대우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이 되어지고 또 주님을 그렇게 ‘이 주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 하고서 대우를 하면은 그는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까지 다 존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겨서 그렇게 숭배하고 대우하는 것이 되는 그런 연관성, 연결성 있는 그런 것을 여게 들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41절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라 말은,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 선지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이 도를 전하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뭐 선지자라 하면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선견자 그런 것만 선지자로 알지마는서도, 반사들이 다 선지자요 또 중간반 반사 남녀 권찰들이 다 선지자요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이래서, 우리 교회에서 여게 ○목사라고 하는 그분을 매월 삼만 원씩을 대접을 합니다. 또 그분이 뭐 오면은 그저 그분에게 마음에 섭섭하지 안하도록 삼만 원씩 대접하는 것을 혹은 두 달 걸 달라 하면 두 달 걸 드리고 석 달 걸 한목 달라 하면 석 달 걸 드리고 또 그분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분도 전국에 다니며 전도를 하는데 어데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한테 전보를 칩니다. 전보를 치면 제가 그 전보를 받아 가지고 거게 대해서 그저 부족하지마는서도 특별히 기도를 합니다.

그라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라.

이 구원 얻는 도를 전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이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구속하시기까지 하신 이 생명의 도를 이것을 전해서 그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이요 주님이 피흘리기까지 하신 그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가지고서 사람을 구출하려고 하는 사람이라. 이 사람인 연고로 대우를 하면은 그 대우는 주님이 다 책임을 지십니다.

또 이 사람은 나와의 경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대우를 해야 된다. 활동 관계, 사업 관계 또 내가 무슨 사회적인 관계, 이런 모든 관계로 가지고 하는 것은 주님은 거게 대해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주님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주님과 상관이 없어. 그거는 자기가 자기 일에 있어서 그래 하는 것이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 그런 것도 ‘이 사람이 이 사업이 이것을 나와의 관계가 있는데 이 사업 관계가 나와 있는 것 그거보다도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니 이 사업이 이것이 바로 돼야 이거 신앙 생활 바로 하겠는데 이거 잘못되면 안 되겠다’ 이래서, 어짜든지 주를 인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또 대우하고 염려하고 수고하는 것은,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다 아시고 당신이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그 사람은 선지자가 아니지마는서도 복음을 전하지 안한 사람이라도 복음 전하는 복음을 위해서 협조하고 협력하고 관심을 가지고 애썼기 때문에 그 상, 복음 전하는 일군의 상을 그 사람에게 준다 그말입니다.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대로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

하는데 그래 그 사람이 아무리 못 살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고 점을 귀중히 여겨 가지고 고 점 때문에 그 사람에게 조심하고 대우하고 또 그 사람에게 후하게 하고 또 그 사람에게 자기가 뭣이든지 박하게 하지를 안하고 대우하는 고 대우는 주님이 다 갚겠다는 그말입니다.

선지자 상을 줄 때에 의인의 상을 줄 때에 다 기억하고 그 상을 주겠다 ‘아이구, 그거 말뿐이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할까?’ 사람들도 이 세상 사람들은 잘난 사람이 되어갈수록 그 사람이 사람들의 하는 것을 다 무시하고 모두 다 하는 것이 ‘대인은 대수이 불가 소지하요’ 대인은 큰 것을 받고 적은 그런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오. ‘소인은 소수이 불가 대지니라’ 소인들은 적은 것만 받고 큰 거는 알지 못한다 이라는데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그것을 관심을 크게 두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그것을 소중히 여겨라 하는 것이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것을 귀중히 여기는 자는 지극히 큰 것도 귀중히 여긴다. 지극히 작은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큰 것도 무시하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된 사람들은 자기가 사소한 일 늘 이래 교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조심하고 또 열 번 만난 사람보다는 아홉 번 만난 사람을 조심하고 자꾸 멀수록이 조심하고 가까울수록이 좀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래 자주 만날 시간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좀 덜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우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어떤 대우한 것이라도 한 거 있으면은 그것이 심히 힘이 쥐여지고 어려워지는 일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 늘 목사님에게도 대우하고 하는 그런 대우는 그것은 돌이켜 버리고 고만 거게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에게 예물 가지고 와서 뭐 이래 한 사람 그 예물을 누가 가져 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 이름을 그만, 벌써 가지고 왔을 때부터 이름을 무시하고 모릅니다. 또 거게 대해서 기억을 안 합니다. 왜? 안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사람이 이걸 이래 했으니까, 어떠노?’ 뒤에 그 반응을 볼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반응을 안 보이면 이 사람이 오히려 믿음에 손해가서 낙심을 하게 되겠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는 것이 주를 위해서 하지 인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주의 종이라고 위해 하는 것이면 주님이 상급을 주지, 뭐 갚아 주시지 내야 갚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없기 때문에 요 진리를 아는 사람에게는 온 것을 기억을 안 할라고애를 씁니다. 그러기 때문에 뭘 거석해야 열 번 해야 아무것도 모릅니다. 뭐 이거 혹 뭘 가지고 오면 이것 누가 가지고 왔는가 거게 대해서 전연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 사람은 그걸 아니까. 하나님에게 그 사람이 상을 받을 것이고 그저 오면은 ‘이것을 주의 종이라 대접하는 것이오니 주님이 대접을 받으시고 나라로 임할 때에 상을 기억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런 거는 다 잊어 버립니다.

잊어버리지마는서도 어떤 사람 거석한 것은 그것은 몇 해가 되도 잊어버리지 안하고 딱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는 그건 뭐이냐 하면 아주 그 사람은 믿음이 어린 사람이고 아직까지 땅에 속한 것을 벗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기다리기 때문에 그것은 얼마나 짐이 되는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아는 척도 해야 되지 또 거게 대해서 그 사람이 실망하지 안하도록 해야 되지 그러니까 그런 거는 참 짐 중의 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그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사람이 무슨 대인이 됐다든지 또 위대한 위인이 됐다든지 하면은 그 사람은 자기에게 대한 행한 것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 사람을 위해서 거게 대해서 신중히 세밀히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치가들은 도덕가와 사상이 다릅니다. 정치가는 많은 사람을 붙들어야 정치가가 되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제일 힘쓰는 것이 뭘 힘쓰느냐 하면은 사람들의 이름 기억하는 것을 힘을 씁니다. 한번 만난 사람이면, 한번 인사한 사람이면 반드신 그것을 적어 놓고 자기 머리다 넣을라고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만났는데 몇 해 지나고 난 뒤에, 복잡한 가운데서 만났지마는서도 뒤에 만나니까, 인사를 하며 ‘아이구, 아무것이 아닙니까?’ 인사를 하니까 ‘저를 압니까?' `아무것이 아닙니까?’ 그랄 때에 사람들은 거기 깜짝 놀라고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구나’ 해서 그 사람에게 대해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가져지니까 그 사람이 자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련된 그런 모든 성사를 그것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그것이 성공을 하는 사람이고 또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고 쓸모 있는 사람이지 그런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못쓸 사람이 점점 되어서 그만 해이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말씀 하시기를, 42절에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제자의 이름이라 말은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 제자라 말은 예수 믿는 사람,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대우하는 그 사람은, 냉수 한 그릇 대우한 요것은 극히 미약한 대우를 말합니다. 목마를 때야 돈보다도 물이 좋습니다. 귀합니다. 그런 거를 말하는 게 아니고 냉수 한 그릇이라, 뜨신 물은 힘이 들었지마는 냉수 그거야 뭐 있는 거 푹 떠 주면 되니까 힘 안 든 지극히 적은 수고요 적은 대우 그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고 다 갚아 주겠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 보면은 그것이 오히려 이 정통측, 보수측보다도 저 신신학 모든 속화된 교회○측이나 그런 교회에서 인간미가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면은 자기가 장사를 하면서도, 이 사람이 거짓말로 말합니다. 거짓말로 믿는 척 합니다. 믿는 척 하면은 떡 만나 가지고 ‘교회 다니십니까?’ ‘예' 이건 거짓말쟁이라. 순전히 저짓말쟁이가 `교회 다닙니다. ’ 이래도 그만, 그만 대우를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 대우를 해서 그 사람에게 뭐 파는 물건이라도 친절하게도 하고 또 뒤에 그 사람이 보고 ‘물건 속았다’ 하지 안하도록 정직을 지키고 신을 지킬라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말이오.

오히려 ‘진리 진리’ 하면서 이렇게 보수파들은 그런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항한 그 면은 힘을 쓰고 인간을 향하는 그 면은 힘을 쓰지 안하기 때문에 인간미가 없는 그런 것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신앙 신앙 하지 인간미가 없다’ 물론, 하나님의 비위를 맞출라고 하면은 인간 비위를 맞추지 못하고 둘이 서로 배치가 되는 그런 때도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대개는 사람 비위 맞추는 것이 하나님 비위 맞추는 것이고 사람을 친절히 하는 것이 하나님을 친절히 하는 것이고 사람 대우하는 것이 하나님 대우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우하다 보면은 사람을 대우하지 안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이것이 바로 원리 원칙입니다.

그러나 가다가는, 다니엘이 하나님을 대우할라 하다 보니까 자기의 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다리오 왕을 대우할 수가 없었던 그런 일이 있었지마는서도 그런 일은 그렇게 많이 없는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그만 이 믿는 사람들은 ‘뭐 사람 대우야 그거 뭐 그렇게 크게 여길 게 뭐 있는가’ 이래서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일들을 정통 가진 사람들이 많이 가집니다. 그것은 아주 착각이요 잘못입니다. 요한1서 4장에 말씀하시기를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보는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안하는 자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니’ 하고서 그 대우하는 거 그거 주님을 참 대우하는 것입니다.

뭐 주님은 ‘주여 ’ 하며 눈물도 흘리고 `주여 주여' 이라면서도 주님에게 소속한 것을 대우하지 안하는 그것은 주님이, 그걸 다 보시기 때문에, 마치, 자기가 짚고 간 작대기가 있었는데 ‘뭐 작대기를 꼬쟁이를 여기 갖다 놨노?’ 그래 가지고 이 지끈 뿔라 가지고 이라니까 그거 아무것이가 가지고 온 거라고 그라니까 ‘작대기를 뭐 가지고 와서 그라면 작대기 뉘가 가지고 오라 했나?’ 이라며 던져 불에 훅 넣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만일 손님이 안다면 그 집은 어떻게 좋게 해 가지고서 빨리 피해 버립니다. ‘이 집은 나를 죽일 자다’ 이 작대기와같이 나를 불에 사뤄서 이렇게 멸살시 킬 적이 여기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서 경계를 많이 하고 그래 가지고 있다가서 그 자리를 피하고 그다음부터 그 사람에게 속한 거게 대한 사람들을 아주 삼가 조심해서 그저 겉어머리 이래 친한 척 해도 속으로는 아주 적같이 조심을 하지 안하면은 그 사람은 거게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반사 선생님들이든지 권찰님들이든지 또 일반 교인들이든지 여게서 주님과 연관성 있는 이런 것을 우리가 조심 있게 이래 취급하지 안하면 주님에게 매우 섭섭함을 끼치는 그런 일이 되게 됩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계명지켜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이 일 하라 하는 것은 내가 기뻐서, 내가 십자가 상에서도 기뻤고 항상 기뻤고, 기뻐한 이 기쁨이 너거 속에도 있어 가지고 너거도 이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 계명은 곧」 그러면 이 계명이 뭐인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계명을 총 간추려서 똘똘 뭉쳐서 그 계명을 한 말로 말하면,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키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나도 너희들을 전지 전능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가지고 이제는 너희들을 사랑하니, 너희들을 사랑하는데 내 사랑을 받고 내 사랑 안에 거할라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 지켜 아버지 사랑 안에 거하는 것처럼 너희들이 내 계명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그러면 내 계명이 뭐이냐?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너희를 위해서 어떻게 한 것같이 너희들이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그것이 막바로 나 사랑하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내가 그전에도 들었지만 아래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거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는 것이오. 알고 있는 것인데, ○○전자라는 그 회사에서 이래 사람을 이리 저리해 가지고서 어떻게 해서 사람을 몇 해 동안 길러 가지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됩니다. 쓸모 있는 사람 돼. 쓸모 있는 사람이 돼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은, 그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니까 믿음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쓸모 있다고 보지 않습니까? 쓸모 있는 사람이면 두말 할 거 없어 차출합니다. ‘아무것이 지금 우리 교회서 써야 되겠으니까 그 사람 좀 어떻게 줄수 있느냐?’ ‘아이고, 뭐 교회서 쓸라 하면 그렇길요' 아주 중직을 지고, 거기서도 아주 중직을 지고 요긴한 사람이라 이래도 고만 복음에 쓰겠다고 하면 지체 안 하고 그만 이래 보내 버립니다. 그러기에 거기서 길러 가지고 나와 가지고서 여기서 우리 교회에 일군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데, 저 먼저 뭐 요번에 여반사가 하나 모자라는데 그 여반사에 대해서 이리 저리하니까 ‘○○전자에 일하고 있는 종업자가 하나 쓸모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좋기는 좋습니다. 회사에는 어떤지 모르지마는 그렇습니다.’ 그래 인제 그걸 이래 말하니까 사장이 있다가, 아이구 예, 그뭐 복음에 쓸라 하면은 우리가 그거 외에 뭐 있느냐고서 지금 아무리 우리 여게 지금 참 중한 책임을 지고 있지마는서도 그거 상관 없으니까 거석하라고서 그래 하니까 그 소리를 중간반 부장이 나한테 그래요. 그래 내가 있다가, 알고 말하기를 ‘그러면은 이제까지 하던 일거리에 대해서 그 회사서 무슨 어려움이 없는가?’ 이라니까 ‘그뭐 ○○전자는 이제까지 그저 어짜든지 뭐 교회서 쓰겠다 하면은 두말 할 것 없이 그만 참 기뻐 내놓는 회사입니다. 거게서 사람 만들어 가지고 교회 쓸 수 있도록 자꾸 이래 내놓는 것이 그 회사입니다.’ 이라면서 감탄적인 그 말을 하는 것을 내가 봤어. 그 말을 들을라고 했어. 그게 복받을 일이라. 그게 복받을 일.

복받을 일. ‘암만 교회에 쓸모 있지마는 내가 쓰고 있으니까 안 된다 이거는 내거다’ 탁 제가 취하는 거 있는데 ‘이놈아, 네가 그랬으니까 이놈 나도 너한테 그라겠다!’ 제까짓 게 어데 가서 발을 붙이며 어떻게 살 것입니까? 우리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에게 이름은」 고통 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고통 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내 기쁨, 예수님의 기쁨은 영생하는 기쁨이오. 그 기쁨은 불탈 기쁨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원히 변동될 기쁨 아니오. ‘이런 참된 기쁨을 네 속에도 충만케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그러면 그 계명이 뭐입니까?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에 이 정신에서 일을 하면은 그이에게, 가 가지고서 뺨 맞으니까 기쁘고, 수고해 가지고서 얻지 못했으니까, 얻어도 기쁘고 얻지 못해도 기쁘고 또 천대받았으면 기쁘고 욕 얻어 먹었어도 기쁘고 죽임을 당해도 기쁜 것이 그것이 다 이 산 생활 가지고서 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신을 가지고서 복음의 일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분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분이 갚아 줄라면 그분이 거지가 아닙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모든 금도 내것이요 은도 내것이요 천산에 있는 모든 짐승도 내것이요 만물이 다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리석게, 내가 내 일을 할라고 애를 쓰는 거기다가 주력을 기울이는 자이고 주님의 일을 내 몰라라 하는 자는 주님은 또 당신이 그라면 네 일은 네가 해라 하고서 당신은 당신 일 보지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 일도 모르고 주님의 일만 자꾸 애를 쓰고 힘을 쓰고 자꾸 이래 하니까 주님이 그 일을 봐 줘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일을 하면서도 또, 자기 일을 하면서도 이것은 자기 일로 하지 안하고서 이것은 ‘이것 잘못하면 주님에게 욕이 돌아가고 빛이 되지 안하고 복음이 가리워진다’ 전부 주를 위해서, 제일 하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모든 것 다 주를 위해서 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그걸 책임지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 비결을 알고 요대로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이 자꾸 주님이 축복 하십니까 자꾸 성공이 돼.

어떤 사람, 그 사람이 빈손 쥐고 이렇게 뭘 한다는 것이 몇 해 안 됐어. 몇 해 안 됐는데, ‘그 사람이, 그게 밥이나 먹고 지내나?’ 나는 이랬어. 여기 사람이 아니라. ‘밥이나 먹고 지내나?’ 이랬는데 말하기를 `뭐 아주 잘 됩니다. 사업을 잘 합니다’ 그라면서 ‘사업을 잘 합니다' 이라는데 `그래 뭐 그분이 전화를 한번 해 달라 합디다. 나한테 한번 알리라 합디다.’ ‘무엇을?' `어데 한 돈 천만 원 넘어 연보를 할 건데 어디다 쓰면 좋은고 좀 알려 달라 합디다’ 그래서 ‘내가 거게 대해서는 뭐 제가 할 일이 있으면 와서 하든지 그리 안 하면 그렇지 내가 뭐 이래라 저래라 내가 그렇게 말할 게 뭐 있겠느냐?’ 하지 안하고 냅뒀다 그말이오. 냅뒀는데 또 그뒤에 하기를 ‘그이가 지금 이런데 어데 뭐, 하면은 아마 그 뭣이 어데 좀 어떻게 좀 할라고 하는 것 같습디다’ ‘뭐 하면은 얼마나 할 건데?' 이라니까 `한 일억쯤 말해 보십시오.’ 이래. 그래 내가 ‘그게 무슨 그래 돈을 벌었나?' 이라니까 `예, 뭐 아주 축복을 받아서 잘 됩니다. 정신이 그래 놓으니까 아마 제가 뭐 그렇게 뭐 여유 있는 돈은 없을 거고 딸딸 긁어서도 말하면은 그래 할 거 같애. 그 사람 말 들어 보니까. 그것은 내가, 믿음은 알아요.

아는데.

하나님이 하실라 하면 못 할 게 뭐 있겠소? ‘이까짓 거 뭐 사탕 장사 이까짓 거야 돈 몇 푼 안 되는데 사탕 장사 이거 가지고서 뭐 축복을 해 봤던들 이까짓 것이 무엇이 몇 억대가 되겠느냐?’ 사탕 장사도 그것으로서 몇 억이 아니라 몇백억이라도 세계의 부자라도 만들 수가 하나님이 있다 그말이오. 사탕 장사에서는 안 됩니까? 사탕 장사 하나 팔던 게 열 팔고 나중에 사탕 장사가 과자 장사 되고 과자 장사가 세계의 제일 일등 과자를 하나님이 발명해 가지고 과자 장사 하게 하면 그뭐 그것도 잠깐 될 거라 말이오.

일본 나라에, 그거 지금 내려 앉았습니다. 그 모리나가라고 삼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래 가지고서, 엿장사라. 엿장사가 이래 커 가지고서 일본의 제일 갑부됐었습니다. 제일 갑부됐는데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죽고 자기 아들이 인계를 했는데 그 사람의 정신으로 하지를 안했다 말이오. 하지는 안하고 돈벌이 하기 위해서, 그라니까 자꾸 이거 뭐 식품으로 나왔는데 우유 장사를 했는데 우유 장사하다가 잘 팔기 위해서 돈은 유익하지마는서도 아이들 몸에 해로운 그런 것을 독약을 섞었다 말이오. 섞었는데, 그러니까 막 이래 부자가 돼 가지고 돈이야 그대로 유지됐지마는서도 삼영이라, 모리나가라 하면은 일본서 제일 갑부였습니다.

이랬는데 그게 발견이 돼 가지고 나중에 시비를 해서, 오래 지나갔지마는서도 그 소송에 걸려 가지고 마지막에 그걸 배상을 하게 됐다 말이오. 사람들이 하나, 아이 하나 병 들었으면 그 아이 하나 배상이 얼마나 큽니까? 이 큰 문제가 생겼어. 이 배상하니까 톨톨 털어서 그만 거지가 되다시피 완전히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내가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한테, 직접 대면한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 세상 떴고 그 아버지의 아들도 그래도 신앙이 좋더래 아주 나이가 백발 노인인데 가니까 고만 신앙 말을 하고서 그거 자녀들이 신앙으로 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더래요. 걱정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시비가 안 났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만 그게 그 뒤에 폭로돼 가지고 배상했다 말을 내가 신문에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그래 그만 내려앉아 버리고 말았어. 이렇게 이 세계는 좁습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거와같이 환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보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모든 걸 아시는 분인 줄 알고 그분을 대우해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뭐이냐? 아무래도 우리 남녀 권찰님들과 또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과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 이거는 자기가 알 터이니까 오늘 내로, 다른 데는 몰라도 여게 온 사람들은 오늘 내로, 또 자기에게서 분구된 구역에게는 다 전달하십시오. 오늘 내로 주일 학생은 한 달 이상 안 나온 학생, 한 달 이상 안 나온 학생은 다 기록을 해서 주소와 그 성명을 기록해서 내고 또 중간반은 두 달 이상 안 나온 학생은 고것을 주일학교 반사와 또 권찰 고 이름을 기록해서, 주일학교 반사, 고 학생의 주일학교 반사 이름과 고 학생의 권찰 이름과 그 학생 이름과 이름 서이를 기록을 해서 고것을 오늘 내로 다 내 주십시오. 오늘 내로. 이거는 ‘이이구, 그거 언제?’ 우리가 왜 그거 자기가 다 반 맡아 가지고 있는 건데 쪽쪽 기록해서 못 할 게 뭐입니까? 뭐 세상 일도 다, 천한 일이고 죽을 일이지마는 그보다 더 급속히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 보면 이 세상에서, 나는 그래서 좀 공무원 생활 좀 해라. 말단의, 네가 안 되면 동회라도 가서 좀 공무원 생활해라. 안 되면 좀 급사노릇이라도 해라. 이렇게 좀 이 사회물을 좀 먹은 것은 사람 가치가 있지마는 이거 없이 예수 믿어 가지고 목사된 거는 가치가 하나도 없어. 이거 아무짝에도 못쓸 농땡이뿐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회성 없는 것은 이것은 못쓴다 그말이오. 뭐 그런 것도 하면은, 이 세상에서 그러면 대번에 데깍데깍 그래 하지 않습니까? 이것도 말하면은, 언제까지, ‘한 달 돼도 안 냅니다. 두 달 돼도 안 냅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거 오늘 내로 그걸 내십시오. 오늘 내로.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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