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결혼

 

1983. 11. 3. 목새.

 

본문 : 마 25:7-13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중간반 반사들은 왜 여기 있으면서 나을 때 깨워 가지고 나오지, 깨워 나오지  뭣 때문에 자기만 나와요? 본야 깨워 가지고 나오면 깨우는 깨움을 받는 사람은  오만 변명 다 합니다. 나도 일어났다고. 누워서 있으면서 나도 일어났다고,  지금. 갈 터이니까 앞에 가라고. 그렇게 마귀가 속에 들어서 거짓말 합니다.

자는 사람 깨우면 그뭐 그때는 예민한 말로 어떻게 유혹을 주는지? 오늘 아침  중간반 반사 중에 또 안 나온 사람 있네, 지금도.

 이 반사들이 죄를 짓는가 힘이 없어. 도무지 배짱이 없어. 저 ○선생 손 들어  봐, ○선생 오층에 있지 안하지? 오층에 안 있지. 봐. ○선생이 가면 좀, ○씨  왔으면 손 들어 봐, ○? ○선생? 그 사람은 그것 참 불쌍한 사람이야, 마귀에게  붙들려 있어, 지금.

 그리고 자기 구역에서 장로님을 세워서 장로로 장립을 시켰으면 끝까지 길러야  됩니다. 장로는 상급과 영광이 있는 동시에 잘못하면 큰 화와 영원한 수치가  있습니다.

 뭐 길러야 되지 그래 놓으면 자꾸 장립만 시켜 놓으면 되는 줄 압니까? 길러도  꼭 절대를 붙이는 건 아니야. 길러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기르는 데까지는  길러봐야지.

 우리 서부교회 장로님들은 장로로 선택할 때에 진리와 세상 둘을 보고 선택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세상면과 신앙면 양면을 보니까 그래도 그 중에서는 장로로  선출해야 되겠다 해서 한 것이지 불타지 않을 신앙면만 본다면 아주 어립니다.

뭐 아는 줄 알아도 알아야지? 모른다 그거요.

 예수님 믿지마는 자기네들에게 시험을 치면, 내나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도  시험을 치면 답을 하나도 못 할 것이 많이 있을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와서  들어야 되고 배워야 안 되겠습니까?

 여기에 '등불이 꺼져간다' '등불이 꺼져간다' 이 비유는 사람이 빛의  생활을-빛, 광명-빛 생활을 하다가 그 빛이 차차 차차 작아지고 흐려지는 것을  그걸 꺼져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꺼져간다고 합니다.

 그 빛 생활이 차차 작아지고 흐려간다 그말은 그 사람이 만난 현실에서  진리대로 사는 그 진리 생활이 차차 흐려간다, 성령의 감동대로 사는 그 성령의  감동이 차차 흐려간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흐려간다, 또 진리가  흐려간다 그말이오.

 처음에는 진리대로 살았지마는 차차 자기 현실이 어려워지니까 진리대로 사는  생활이 흐려지고 성신의 감동은 그만 복잡한 현실에게 다 마음이 다  기울어지니까 성신의 감화는 언제 들을 여가가 없고 받을 여가가 없게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등불이 꺼져간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꺼져간다'  그러니까 그때에 말하기를 기름을 좀 나눠 달라'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나도  당신같이 좀 이럴 때에 진리를 힘입을 수 있고 영감을 힘입을 수 있도록 나도  진리와 영감에 대한 이 똑똑한 그런 은혜가 좀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하는  말입니다.

 도와 준다는 것이 그것이 그때에 사람이 어떻게 그 사람을 진리가 충만하도록  영감이 충만하도록 해 줄 수가 있습니까? 못 해 줍니다. 그러니까 나눠 주지  못한다 그거요.

 그런고로 시험도 평소에 예비 시험이 있겠고 또 정식 시험을 치겠는데, 정식 그  시험에 합격이 되면 과거와 같은 그런 지위가 아니고 높은 지위를 높은 권세를,  더 가치 있는 대우의 사람이 될 것이요 정식 시험에 낙제되면 준비할 때는 같이  준비했지마는 시험에 떨어지면 더 천해지고 지위는 낮아지고 대우도 낮아지고  그것 필연한 일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밤중이라 말하는 것은 비유컨대 이거는 정식 시험이라 하는  것어고 밤중이 되기 전에는 예비 시험이라, 지금은 정식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미리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예비 시험과 같은 것이라 그말이오.

 이랬는데, 공부를 시키고 예비 시험을 치게 하는 그런 때에 처음에는 제법 하는  것 같더니마는 나중에 가 차차 차차 이제 문제 전부를 다 통틀어서 이렇게  내니까 정식 시험에 가까우니까 그만 깜깜하다 말이오. 몰라.

 깜깜 모르니까 거기서 아이들 말로, 그것 뭐라 하노? 칸닝구라 하나? 컨닝구  하려고 눈이 불금불금해서 옆에서 뭐 어짜는가 보자 이래 뭐 봐야 옆의 사람이  도둑질이나 할까 갑자기 암만 친한 친구라도 그 사람에게 그 지식을 속에 넣어  줄 수는 없고 또 넣어 주지도 못하도록 지금 법이 돼 가지고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차차 차차 시험 문제가 정식 시험에 어려운 문제가  나오니까 처음에는 아는 것 같더니마는 쓰려고 보니까 하나도 모르겠다 그거요.

하나도 모르면 등불 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식 시험에 하나도 바른 정답을  하지를 못하게 되더라 그말이오. 그와 뭐 비슷한 것, 그와 같은 것이오. 내나  성질은 그와 같은 것이오.

 밤중에는 정식 시험을 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인데 밤중은 제일 어려운 것,  신앙 생활 하면서 신앙 유지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 견디기도 어려운 것, 옳은  것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것, 또 옳은 것을 주장하기도 어려운 것, 음은 대로  행하기도 어려운 것,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을 계속하기도 어려운 것, 그 모두  어려운 것을 비유해서 밤중이라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밤중에 신랑을 맞이했다" 시험을 치다 정식 시험에 합격된 것 한 가지라  그말이오. 신랑을 맞이했다 이말은 신랑은 누구를 비유했습니까? 신랑은  하나님을 비유했습니다. 신랑은 하나님.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을 우리가 가까이 접하지도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이 꺼풀을  입고 오셔 가지고서 하나님이 사람하고 접하도록 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와 가지고 사람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게 됐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접촉하게 됐고, 서로 밀접하게 친밀하게 된 그가 우리의 중보자이신 신인양성  일위 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거기에 신랑으로 비유한 것인데 예수님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주권자시요, 모든 것에 주인되는 대주재시요, 또 창 조주시요, 모든  것 예정하신 분이시요, 영원 자존자시요, 홀로 계셨기 때문에 모든 것은 원인  없는 것이 없지마는 주님은 원인이 없습니다. 당신이 원인입니다. 스스로 홀로  계셨고 당신 혼자만 있고 모든 존재는 당신이 원인입니다. 당신으로 인해서 모든  존재는 생겼어.

 이러니까 이분이 존재 중에는 제일 위대하고, 제일 깨끗하고, 제일 옳고  바르고, 사랑도 제일 충만하고, 지능도 제일 충만하고 하신 분인데 이분을  가리켜서 비유하기를 신랑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신랑은 지난밤에도 증거했지마는 육신의 인간의 이 부부 이것은 그림자요  인간의 부부는 실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의 이 부부성을 하나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하나의 형식계시입니다. 그림자와 같소. 형식계시오.

 하나님과 성도 사이, 하나님과 교회-신부는 교회인데-하나님과 교회의 그  관계를 성경에 가르쳐도 사람들이 둔하기 때문에 뭐 잘 알게 가르쳐야 될 터인데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이 남남이 만나 가지고서 부부되는 이 부부의 제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에베소 5장에 보면은  기록해 놨다 말이오.

 이렇게 부부가 되면은 어찌 되는가? 요새 뭐 이혼하는 부부, 요새는 또  연애하는 부부, 안된 찌끄러기인 부부 그것은 말할 것 없지마는 정식 부부 참  아주, 아주 서로 잘 되어 있는 그런 부부, 잘 되어 있는 부부는 어떤 것이 특색  있습니까? 그래서 '부부 유별이라' 사람과 사람 모든 사이보다도 부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없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은 두 사람이 합했는데 꼭 한 사람이 되는, 두 사람이  그러니까 '부부 일신이라' 부부는 두 몸이 아니라 한 몸이라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말합니다. '부부 일신이라'그게 정식이라 말이오 '부부 일신이라'  이러니까 희로애락이 전부 하나요. 남편의 희로애락이 아내의 희로 애락 되고  아내의 희로애락이 남편의 희로애락 되고, 남편의 부요가 아내의 부요 되고  아내의 가난이 남편의 가난 되고, 이게 전부 하나라 그말이오. 희로애락이  같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남편이 아내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진다 이랬어. 모든 모자라는  것을 전부 책임져. 하나님의 그 충만이 그 아내의 것이 돼버려. 아내의 그 모든  모자라는 것이 전부 남편의 것이 돼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십자가 못박혀 가지고서 모자라는 것을 전부 다 보충을  해서 대형으로 사죄를 해 주셨고, 대행으로 칭의를 해 주셨고, 또 대신 화친해  가지고서 화친의 새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경에 "결혼의 첫사랑이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인간이 둔해서  그렇지, 둔해서 그렇지 처음에 결혼할 때 첫사랑은 그것은 뭐 그만 아내 불행이  남편 불행이요. 아내 그 모든 수치가 남편 수치요 이렇게 책임을 딱 지고  둘이지마는 한 사람이라 말이오.

 그래 가지고 또 두 사람이 합해 가지고서 한 자녀를 낳는데 '두 사람이 합해서  한 육체가 됐다'고 에베소서에 말씀하신 그 말씀은 한 육체 됐다 그말은 두  사람이 합해 가지고서 한 육체인 자녀를 낳았다 그말이 아닙니다. 그말이 아니고  두 사람이 합해서 한 성화구원을 이룬다 그 말입니다. 육체 구원 이룬다 말은  심신의 구원은 두 사람이 합해 가지고서 한 사람 구원 이룬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 일신의 구원이 있고 또 개별적인 구원이 있고 있는데  결혼하면 벌써 부부 일신의 구원이기 때문에 아내의 그 영광이 남편에게  돌아가고, 아내의 수치가 영원히 남편의 수치로 돌아가고, 또 아내의 실수가  남편의 실수로 돌아가고, 남편의 실수가 아내의 실 수로 돌아가고 이건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은 둘이지만 과거에 결혼하기 전에는 각각 다 제 구원  이루었지마는 이제는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이것이 둘이 한 심신의 성화구원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처녀지마는 그 부요의 신랑하고 같이 결혼해 버리면  부요자의 그 모든 것이 다 제것이 되고 만다 그거요.

 성경에 말하기를 아주 피투성이라, 피투성이가 있어 피투성이라서 그저  집어내던져서, 길가에 누가 낳아 가지고 집어던져 버려서 그만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죽는 그걸 데려가다 기르니까 차차 차차 이게 자라 가지고서 유방이  뚜렷하고 어북 이제 결혼할 만한 그런 정도가 되고 이래 가지고서 결혼을 이렇게  하려고 했더니마는 그게 못되세 간음해 가지고 음행해 가지고서 결혼할 자격이  없는 그걸 가리켜서 뭐냐 하면은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들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유방이 뚜렷하다 그말은 그게 제법 예수 믿어 가지고 이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줄도 알고 남에게 심령의 양식도 먹일 줄도 알고 어북 제법 이제는 참 하나님과  서로 부부될 수 있는, 하나님과 본체는 하나가 안 되지마는 행위적으로는 일체가  될 수 있고 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이런 하나님의 부부될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이렇게 해 가지고서 이제는 저 왕궁으로 모시게 될 터인데 이게 범죄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분개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신랑을 맞이했다, 기름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했고 나머지기는  소박을 당했다. 이래, 그러면 주님이 여기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12절에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자기는 그 남편하고 결혼하려고서 지금  하는데 그 남편은 참 자존자요, 독존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대주재자요,  주권자요, 모든 것을 다 홀로 섭리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자요, 지극히 공평된  자요, 지극히 깨끗한 자요, 전부가 다 지존 전부 지극은 다 가졌다 말이오.

 이런 분하고 지금 결혼하려고, 결혼한다 말은 이제 그분의 모든 것이 내것  돼요. 내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 돼. 이래 가지고서 그분과 나와의 하나가 돼  가지고 내게 모든 것을 그분이 다 책임지고 그분의 모든 것은 다 내것이  되어지는 이런 신인 관계, 이 신인 관계 이것은,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에게  대해서는 전부 하나님 노릇 합니다.

 이러기에 말하기를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게바나 아볼로나 모두가 다 너희 것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결이 됐기 때문에.

 하나가 됐으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이런 권세를 얻는데 그만 다 같이 처녀로  기다리고 있기는 있었지만 마지막, 결혼을 하고 신랑을 맞이해 가지고 혼인  잔치에 들어가서 이제 결혼식을 할 판인데 그때 그만 등불이 없어서 맞이를 못  했습니다. 등불 가지고라야 맞이되지 딴것 가지고 맞이 못 하고 등불 꼭  들고라야 맞이하는데 등불이 없어서 그만 맞이를 못 했다 말이요.

 못 하니까, 등불 안 가졌으니까 등불 가진 자라야 당신이 당신의 신부로 맞이를  하지 등불 안 가졌으니까 뭐라고 말했습니까? 등불 안 가진 자를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했으니까 이것  배척이요 소박입니다.

 아마 그까짓 육신의 부부야 많이 살아봤자, 또 어떤 사람은 회혼례 잔치라고서  결혼한 육십 년을 지낸 사람이 있어서 그런 사람은 회혼례 잔치한다 하는데  회혼례 잔치하는 사람은 뭐 참 그것은 백에 아니라 천에 하나도 어렵습니다.

아주 없습니다.

 그런데 많이 해 봤자 한 오륙십 년 살다가 말 거기에도 아주 자기의 상대방 그  신랑되는 그런 상대가 그렇게 구비하고 모든 것이 도덕적으로나, 예의적으로나,  체면적으로나, 권능적으로나, 사랑적으로나, 책임적으로나, 의무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모든 면이 그저 제일 구비한 그런 사람하고 결혼하고 떡 한다고서  약혼해 놨다가 턱 소박을 당해서 배척을 당했으면 환장해 죽을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있는 여자들 다 죽을 것이라. 다 환장해서 그만 정신이 없을 거라.

 이런데 이제 주님과 이와같이 지금, 우리는 다 약혼했어. 예수님의 십자가  보배피 공로를 다 입었습니다. 이제 이랬는데 그때에 이 신랑이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니까 할 수 없어 문을 열어 주지 안하니 용납지 안하니  들어가고 싶지마는 용납지 안하니까 그만 거기 들어가지를 못하고 버림을 받아  놓으니까 그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영원입니다.

 그러기에 뭐 삼천 궁녀니 몇천이니 하는 그거는 다 왕하고 결혼하려고 말씀이  있었는데, 와서 등용이 됐는데 등장됐지마는 그만 합격이 안 되니까 평생 이리도  저리도 못 하고 참 비참하게 된다 말이오.

 우리 택한 자들은 지옥을 가려 해야 못 가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 안 믿고  그러면 지옥 갈 줄 아요? '내가 하늘나라 준비 못 했으면 내가 지옥 가지'  지옥을 가려고 자살하고 자살하고 암만 해도 지옥 못 갑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는 지옥을 못 가는 것이오. 그게 기본구원입니다.

 그런데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구별하지 안하기 때문에 '네가 회개 하면 천국  가고 회개 안 하면 천국 못 간다' 그것은 기본구원과 건설 구원을 분리하지  안하고 '회개 안 하면 천국 못 간다' 회개 다 한 자가 어데 있습니까? 회개 다  한 자가 있소?  어떤 유력한 성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 오면 내가 정죄하겠소. '네가 요 일을  행했느냐? 요 죄가 없느냐?' 물으면 그 사람이 죄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말이오.

모두 사람들이 어두워서 그 사람들을 정죄 못 해 그렇지. 이러니까 누가 회개 다  하고 천국 갈 수 있느냐?  어떤 사람이, 제가 김천에 가서 집회를 하니까 오더니만 양반질 딱 쪼글쳐  가지고서 앉는데 뭣인가 원수같이 이래 겨누고 있어. 그래 나는, 어쩐 저런  사람이 있노?'하고 집회를 했는데 그래 나중에 이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말하니까  그만 무릎을 딱 꿇더니마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 시간 마치고 나중에  왔어요. '아이고 내가 강사 목사님' '나는 조사입니다. ' 강사 조사님 내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처음에 내가 어찌 교만스럽게 했는지 내가 이 집회 저  집회 돌아다니면서 그저 회개한다고 재산도 다 털어봤고 있는 것 다 간증도 해  봤고 오만 것 다 했지마는 또 이 집회 하면 또 죄가 나오고 저 집회 하면 또  새로 죄가 나오고 저 집회 하면 또 새로 죄가 나오고 자꾸 죄가 나오니 평생  죄를 완전히 회개는 못한다는 것 내가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은 결과적으로는 다  지옥 가고 마는 것인데 저 사기꾼들이 자꾸 그래 한다. 오늘도 저 백영희라 하는  저 사기꾼이 와 가지고 또 저 강단에서 입술 놀리고 있다.' 그 밉어서  밉상스러워 내가 꼴아보고 그랬다고.

 건설구원과 기본구원을 말하니까 그때사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깨  달았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는 하늘나라에 영광의 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하기를 '제가-제가 그때 고신에 있을 때입니다.-이제부터는 제가 본교회  돌아가 가지고서 얘기를 해서 온 본교회가 다 들으면 본교회가 다 고신으로 이제  귀속을 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제가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뒤에 말 들으니까 몇 달 안 돼서 그 사람이 있는 재산을 다  털어 가지고서 거기에 있는 교회 안 나오려 하는 사람이 몇 사람 있으니까  내비두고서 새로 교회를 세웠어. 그래 가지고 고신의 교회를 주 모은 것이 다  몇몇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서 고신의 교회들이 모인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다 얻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본구원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이렇게 부부 이 결혼을 할 수 있는 그 약혼 된 저라. 그러니까 이 열  처녀는 꼭 같은 처녀성을 가졌고, 꼭 같은 약혼을 가졌고, 꼭 같은 둥을 가졌고,  꼭 같은 한 신랑을 맞이하려고 바라보고 있었고, 꼭 같습니다. 하나도 다른 게  없어. 다만 다른 게 뭣이요? 기름 없어 밤중에 등불 켜지 못한 그것만 달랐지  않것 하나도 없어. 그것 다름으로써 배척 당했고 환영당했고 그래 됐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를 '슬기 없는 처녀는 지옥 간 처녀라' 이렇게 말하고 '슬기  있는 처녀는 천국 갈 처녀라' 이렇게 분리해 가지고서 해석한 그 해석이  비성경적입니다. 성경대로 안 됐습니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순전히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고  행위구원이라는 그 행위구원, 행한 대로 갚아 주는 행위구원이 있는데 여기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영접함을 받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버림을 당한 것인데  그것이 무슨 기본에 예수님의 대속에 뭐 그런 게 아니고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되지 안했습니까? 행위를 이 사람은 이래 하니까 환영받고 이 사람은 배척당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행위를 근거한 것은 행위구원이지 기본구원이 아니라 그거요.

 그러면 또 말하기를 '일남일녀로 결혼하는 것이 성경인데 어떻게 그러면 성경의  주인되는 근본되신 주님이 일남십녀로 더불어 결혼할 수가 있겠노? 그게 그럴 수  있겠나?' 그러면 다섯 처녀는 일남오녀로는 결혼할 수가 있는가? 일남오녀로는  결혼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말하기를 '이 처녀들은 신부된 처녀가 아니고 이거는 결혼할 때,  들러리-뭐 들러리라 하던가?-들러리 선 그런 처녀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부될  처녀는 아니다.' 그러면 신부될 처녀는 어데 있는고요, 있기를? 없다 그거요.

 그것은 깨닫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열 처녀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만수를  말한 것이지 숫자로 하나 둘 열이 아니라 그거요.

 신구약 시대에 있는 아담 하와로부터 역사에 있는 그 모든 역사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성도, 또 온 이 지구상에 나왔다 간 그 모든 성도 그 전부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교회라 했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단일  교회입니다. 단일 교회. 하나님의 교회는 둘이 아니고 하나요. 억억만 명이 그  안에 들어도 내나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 한 신부요 한 교회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교파가 많이 있지마는 이다음에 주님 재림하실 때에는 다  하나만 되는 그 교회 안에 이렇게 다 포함이 되고 하나가 될 수 있어야 되지  요거는 또록또록하게 제대로의 딴 교회를 만들어 가지고 단일 교회에 합하려고  해 보니까 전부 이색돼서 이질이 돼 가지고 합해지지 못합니다. 그것이 뭐이냐?  우리가 되지 안한 것이요 영감과 진리로 되지 안한 것은 다 도태당해 버리고  맙니다. 기본구원을 얻어도 건설구원에는 하나가 또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처녀를 열 처녀로 말하는 것은 인간의 만수를 말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전부, 인간이 아는대로 전부, 전부의 숫자지마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부라,'  호세아서에는 '하나님은 본남편이요 세상은 간부요 우리들은 신부라' 하는 것은  개인을 말한 게 아니라 교회를 말한 것입니다. 교회를 말한 것이요 또  개인입니다. 개체가 없으면 전체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이래서 여기에 열 처녀가 다 택한 자요 다 신부될 자격이 있는데 행위로 인해서  되지 못했다 그러기에 다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하늘나라 갔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기뻐 영접한 그 신부가 되고 하나는 '내가 모른다. 진실로 너회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했습니다.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래 놓으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있기는 있지마는  그분 한 분 바라보고 그분의 전부에, 그분의 사랑, 그분의 역사 그분의 기쁨,  그분의 행복에 다 동참해 가지고 그분으로 이래 살아야 될 터인데 가 보니까  알지 못한다 하니까 그게 그 좀 견디기가 좋겠소 괜찮겠소?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견디기 괜찮겠소?  모두 보니까 잠깐 동안도 그 남편에게 뭐 즘 서로 이래 가지고 충돌이 있어서  그만 버림당한다고 이러면 막 당장에 눈이 빠꼼하게 들어가 가지고 죽을  지경으로 하고, 남자들도 그래. 남자들도 아내에게 이래 서로 맞지 안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뭐 이혼하니 어짜느니 하면은 남자도 죽을 지경이라.

 그러기에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것과 같다' 이렇게 말했어.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 그렇게 주님이 "내가 모른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뭐이냐? 이걸 여 러분들이 얼마나 듣고 기억을 해야  되는데.

 진리가 영감에서 나왔습니다. 영감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무형의 완전자이신 무형의 존재인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하나님이 그 영으로  볼 수가 있어도 볼 수 있을지라도 그분이 움직이실 때에 그 움직이시는, 그분이  움직이시는 움직이심이 영감입니다. 그게 영감이오. 그 영감이 우리 사람에게  와서 부딪쳤을 때에 그것을 가리 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는 하나인데, 영감과 진리는-요 잘 들어-영감과  진리는 하나인데 사람들이 진리는 영접하고 영감은 영접 하지 못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외부의 형체를 이렇게 동행할 수 있고 조정할 수 있지마는  영감은 그 외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진리는 자기가 지키고 진리는 모시고  있고 진리와는 하나가 된, 진리 대로 자기가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마음도  가지고 이렇게 할 수가 있다 할지라도 영감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거요,  영감과는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는 영감을 맞이하게 하는 중매쟁이와 같습니다. 그러면  진리로 영감을 맞이해서 영감이 돼야 믿음이 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불타지  않을 영원성이 있게 되는 것인데 자기가 진리로 행해도 자기는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고 이 진리를 도적질 해 가지고서 진리로 껍데기로 이렇게 저렇게 행해도  마음은 딴데 가 있어. 쩝데기 이목구비 수족으로써는 진리를 행해도 그 마음은  지금 아주 딴판으로 지금 딴데 가서 있을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마음을 다한 것을 목숨보다 먼저 말했어. 마음을 다하는 것.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 말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몸으로는 진리를  행해도 마음으로는 다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합해서 될 때에 그때에 그것이  전인격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오. 그 인격을 다해서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 그때에  성령님이 그이에게 진리대로 행하는 거기에 성령님이 와서 동행하시는 성령님이  인정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성신의 인을 쳤다' 성령의 인쳤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무리 진리대로 행동한다 할지라도 진리대로 행동하는 것 그  외에, 진리대로 하는 행동을 성령이 '됐다' 인정하는 것이 뭐냐? 성신의 감화가  와서 인정하는 것인데 수족으로는 행동 하지마는 마음은 딴데 가 있으면 영감이  인정 안 할 것이요, 영감을 영접지 않는 것이요, 영감과 이렇게 교제할 수가  없다 말이오. 이 고기덩어리는 영감을 교제할 수가 없어. 우리 마음이라야  영감을 교제 하지. 그래서 진리와 영감은 하나인데 인간이 진리만 접하고 영감은  접하지 못할 수 있다.

 또 영감과 성령은 하나이다. 영감과 성령은 하나인데 그건 따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따로 떨어지게 영감은 영접해도 하나님은 영접하지 못하는  그런 일을 못 합니다. 영감 영접했으면 성령 영접했지요.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성령 영접하면 하나님 영접했고 또 영감 영접했으면 하나님 영접했고  영감을 자기가 영접지 못했으면 하나님을 영접지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진리는  말하자면 우리의 중매쟁이입니다. 진리는 무슨 중매를 합니까? 진리는 영감을  중매합니다. 비유요. 영감을 중매해. 진리는 영감과 하나되도록 이래 하는데 그  진리는 하지마는 영감은 영접지 못하는 것은, 영감을 영접지 못하는 것은 뭘 다  안 해 그렇습니까? 무엇을 다 안 해 그렇지요? 마음을 다하지 안했다 말이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리는 행해서 안식일에 닭 모이도 안  줬습니다. 모이를 주면 혹 한 내끼라도 흘러 가지고서 떨어져서 움이 나오면은  씨뿌린 것이 되기 때문에 성경에 위반된다 해 가지고 모이도 안 줬다 말이오.

그렇게 했지마는 그들이 마음은 따로 했기 때문에 "너희들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으로는 멀리 했다" 그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영감이 없으니까 그들이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이래 떠들어  쌓았지마는 정작 메시야가 오니까 세시야인 줄을 모르고 메시야를 배척하고  말았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런 것이 구약 시대의 그것이 우리에게 그림자가  됩니다.

 진리는 영감을 영접하게 하는 것이요 영감은 하나님 아닙니다. 영감은 하나님  아닌데 그 영감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이렇게 영접하도록 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성령님이 누구냐? 성령님이 누굽니까?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영이오.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말은 성령님이 내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의 신성이시오. 그 위가 달라서 역사가 다르지  내나 한 본체신데 그 역사가 다릅니다.

 그러기에 요걸 인제 결론인데 단단히 들으십시오. 우리가 다른 데서는 다  그거는 공상에 지나지 못하고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뜻인 진리가 있고  자기나 다른 사람 모든 인간의 뜻인 인간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둘이  반드시 내 현실에 와서 부딪치고 있으니까 내가 그때 인간의 뜻을 따르느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느냐 둘 중에 하나, ○○○목사님 조는데 당장 물어도 지금  답을 못 할 거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 도가 들어가지 안하니까 졸음이 오는  거라. 도가 들어가지 안하니까 통하지 안하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런 거라.

전연히 모르는 소리를 지금 듣고 있는데 이걸 안 배우고.

 자기가 이 현실에서, 현실에서,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오. 또 그 반대는 인간의  뜻이오. 그러니까 이 현실에서 인간의 뜻을 영접하느냐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느냐 둘 중에 하나, 보다 어느 것이냐 그게 결정됩니다.

 거기서 평소에서 인간의 뜻을 버리려고 하면은 이것은 세상을 버려야 되는  것이고 자기를 버려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쉬운 게 아니라 그 말이오. 현실에서  인간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을 뜻을 거기에서 영접합니다.

 또 그다음에 뜻 안에는 뭐이 있는고 하니 영감이 있는데 영감, 영감과 인간의  마음 둘이 한테 있어. 인간의 마음대로 하느냐 영감대로 하느냐? 인간의 마음이  나와 가지고 인간의 뜻이 됐고 영감이 나와 가 지고서 하나님의 뜻인 진리가  됐습니다. 영감이냐 내 마음이냐? 인간의 마음이냐 하나님의 영감이냐 그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현실에서 결정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뭐이 있는고 하니 이제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인간 중심이냐 둘 중에 어느 중심이냐 하는 것이 이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현실에서 몇 가지 배척하고 몇 가지 영접하지요? 세 가지  배척하고 세 가지 영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졸졸 길러서 세 가지  배척하고 세 가지 영접하는 이 일이 차차 차차 도수를 높여 가지고서 차차  어렵게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 주신다 말이오.

 현실은 누가 만들어요? 하나님 혼자 만듭니다. 이것도, 이것도 통일돼 있지  않습니다. 이 현실은 하나님 혼자 만드신다 하는 것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맣지를 못하다 그말이오. 왜? 외식이요 눈이 어둡기 때문에 그 속에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겉어리만 보기 때문에 '현실은 사람도 거기에 가담됐고, 뭐 정치도  가담됐고, 과학도 가담됐고, 그 모든 자연도 가담됐고, 모든 것 다 가담이 돼  가지고 우리 현실이 되어지는 것인데-또 제가 번연히 제가 의를 행해 가지고  현실되고 제가 죄를 지어 가지고 현실 된 것인데-하나님 혼자 됐다.' 하나님이  혼자 내 현실을 만드시는데 이것 저것 도구로 이용하고 재료로 이용하기는 오만  걸 이용하지만 만드신 이는 그분이십니다.

 그 현실을 차차차 만들어서 이제 도수를 높여 가지고서 어렵게 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오늘 현실에서 세 가지 버린 또 세 가지 영접한 요것이, 요것을 했으면  반드시 요다음 현실에 또 버리고 영접하고 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나 오늘에  못 했으면 그다음에 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 산을 올라갈 때에 천 메타 산을 올라가려 하는데 한 자욱씩 밟아  올라가면은 다 올라갈 수 있소 없소? 있지요? 그러나 열 자욱을, 안 올라가고  있다가 열 자욱을 한목 뛰어올라가려 하면은 열 자욱 한목 뛰어올 사람 여기 한  사람이나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소. ○○○씨 뭐 운동을 잘 한다 하는데 그러면  열 발자욱 올라갈 걸 당장에 뛰어서 열 자욱 뛰어 올라가겠어? 한목 뛰어서 못  올라간다 말이오, 절대 불가능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극히 작은 것이 지극히 큰 것 되고, 지극히 작은  패전이 지극히 큰 패전되고, 지극히 작은 승리가 지극히 큰 승리가 된다  그겁니다.

 이렇게 해서 자꾸 이래서, 그러면 현실에 내가 세 가지 버리기가 힘들지 않소?  힘들지만 세 가지 버린 그것이 갈수록이 더 버려지고, 버리기가 어렵고, 그런데  그래도 현실에서 요 버리기 시작하면 항상 어렵기는 그만치만 어렵지 더 많이 더  어렵지를 안해요. 천 메타 올 라가도 그 한 자욱씩 올라가면은 한 자욱씩만 밟아  올라가면 되는 것이지 더 먼 게 아니라 말이요, 그런데 좀 피곤하기야 하지마는.

또 이 세 가지를 영접하기가 더 힘든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밤중이 되니까, 밤중이 되니까 평소에 기름 준비, 기름 준비 그게  뭐이냐 하면 영감과 진리와 이제 성령이십니다. 이런데 성령과 영감은 하나라.

떨어지지 못해요. 떨어지지 안해요. 진리와 영감은 우리가 접촉할 때에 우리가  접촉할 때에는 떨어지게 접촉할 수 있지마는 영감과 성령은 떨어지게 접촉할 수  없어. 영감과 성령은, 영감은 하나님의 행위요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은  하나님이시라 말이오. 영감은 하나님 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사지.

그거는 진리되지 하나님 되는 건 아니오.

 이래 나가다가 밤중에 제일 어려울 때라 말이오. 제일 어려울 때, 내가 평소에  버리던 그것이, 이제는 단합이 돼 가지고 강하게 와서 서두니까 평소에 버리던  그것을 내가 버려야 되는데 그게 세력이 강해졌으니까, 밤중되니까 왜 불이  꺼지느냐? 밤중되니까 내가 버려야 될 이 세 가지가 그 힘이 강해졌기 때문에  내가 버리기가 어렵다 그 말이오.

 그러면 평소에 버리는 데에서 이 세 가지 버리는 숙달도 되고 성장도 되고  능력이 된다. 평소에 이 세 가지를 버리기를 계속한 자라야 이제 밤중에 이것을  버릴 수가 있다. 평소에 이 세 가지를 영접한 자라야 이제 밤중에 영접할 수가  있다.

 그러면 평소에 온 세 가지와 밤중에 온 세 가지가 다릅니까 하나입니까?  어떻소? 자, 평소에 온 왼쪽편 세 가지 오른쪽편 세 가지 이 세 가지와 밤중에  오는 이 좌우편 세 가지가 다른 겁니까 내나 그것입니까? 다른 것이라고  샌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내나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녜, 그게 그겁니다. 그게 그거요.

 이런데 하나님께서 도수를 높여서 처음에는 우리 힘에 적당하도록 대적하게  해서 우리 힘으로 힘쓰면 이기도록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는 힘을 조금 더 써야  이기도록, 그러니까 처음에 이긴 것을 그 재료를 삼아 가지고서 더 보태야  이기도록 자꾸 주님이 더 강하게 대적하고, 당신이 부리는 악령이라. 악령을  지금 당신이 부리게 됐어, 이제는.

 예수님이 점령했기 때문에 악령은, 십자가 못박히기 전에는 악령 제가 예수님을  제맘대로 시험하고 오너라 가거라 뭐 성전에 가자 또 높은 산으로 올라가자 이래  했지마는 이제는 그 악령이 졌기 때문에, 왜 예수님이 뭣 때문에 성전에  올라가자 하니까 성전에 안 올라갈 권리가 왜 없습니까? 없는 건 우리를  대신했기 때문에 안 올라갈 권리가 없다 말이오. 졌기 때문에 그 명령이니까 그  명령에 이렇게 끌려야 된다 말이오. 그러나 속에 죄 짓지 안했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자, 밤중, 이제 밤중에 그때에 온 왼쪽편에 있는 것 왼쪽편에 있는 것 세 가지,  왼쪽편에 있는 것 세 가지 뭐이지요? 마음 하나. 또 그 위에는? 자기. 또 그  밑에는? 뜻. 이 세 가지 아니요? 오른편에는? 하나님의 뜻, 진리 또? 영감. 또?  성령. 이렇지요?  이런데 밤중에는 모두 다 이 왼쪽 세력이 강하고 오른쪽 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그만 그런 사람은 불이 등불이 꺼져가고 패전합니다. 그러면 그때 이래 하는데  평소에 계속해서 이겼으니까 왼쪽은 약하고 오른쪽은 강합니다. 그 사람은  그때에 오른쪽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때에 등불 들었다 했는데 그 등불 든 그것이 어떤 행위를 가리켜서  등불이라고 말합니까? 자, 대답해 보십시오. 어떤 행위가 등불입니까? 어떤  행위가 등불이지요? 두 가지가 등불 행위요 세 가지가 등불 행위요? 세, 가지가  등불 행위라. 그때에 진리대로 하는 행위가 등불 행위요, 영감대로 하는 행위가  등불 행위요, 성령을 영접해서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 등불 든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제 불이 꺼졌다 하는 그말은 무엇을 배척했다 그 말이요?  무엇을 배척하고 무엇을 환영했다 말이요? 뭘 배척했어요, ○○○목사님? 성령  하나만? 또? 또? 인제 잠이 꼭 깨는구만. 그래, 이 셋을 배척하고 누구를  영접했소? 인간의 뜻, 인간의 마음, 인간. 이제 완전 인본화돼 버렸소.

 이러니까 이걸 좋다고 하고서 이것을 영접하고 배척하기를 진리와 영감과  성령님을 배척했는데 그분이 뭐입니까? 그분이 누굽니까? 그분이 누구요? 그분이  손님이요, 그분이 이제 혼인 잔치에 축하하러 온 축하인이요, 그분이 혼인  잔치에 얻어먹으러 온 분이요, 그분이 혼인 잔치를 주관하는 분이요, 그분이  누굽니까? 그분이 신랑이요, 여러분들! 그분이 신랑이라 말이오. 그분이  신랑이기 때문에 제가 신랑을 배척했기 때문에 신랑이 내나 모른다 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만유의 대주재의 이 대리권을 가지고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이래서 말하기를 얼마나 밀접하게 말 했느냐? 교회는  하나님의 몸아요 하나님은 교회의 뭐이라 했습니까? 머리. 그리스도는 교회  머리라 하는 건 그리스도는 내나 성령님을 가리켜서 여기 말하는 것이고  자존하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하나님의 몸이요, 이보다 더 밀접할 수가 있습니까?  이게,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이 구원이 이렇게 지극히 큰 것인데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제 진리와 이 돈과 바꾸고, 영감과 돈과  바꾸고, 하나님과 자기와 바꿔서 자기로 살고,  제까짓 게 자기로 살면 뭣할 겁니까? 여기에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도 전부  바꿔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가 봐!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지?  뭐 왕권이 무슨  소용 있으며, 그것 다 그분이 엿새 동안에 만든 것들이라. 이렇게 지극히 큰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 돼 가지고 오셔 가지고서 역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영접한 진리와 영감과 성령이 영접하고 영접해서 최고로  어려울 때도 내나 그 진리, 그 영감, 그 성령님이신데 평소부터 영접해서  "지극히 작은 데 충성한 자" 평소에 영접하면 나중에 대환난 때도 영접할 수가  있고 대환난 때에 영접해서 네가 둘 중에 어느 것이냐?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령의 감동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령님을 따르겠습니다.'  했는데 그분이 막바로 신랑입니다. 알겠소?  그분인데 신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왜 신랑이라고 표시를 했느냐? 신랑이라  표시했느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그와 결합함으로써 그 신부에게 다 준다  그말이오.

 이렇게 성령님과 영감과 진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신랑되게 하시는 중매쟁이  하나요. 신랑되게 하려고서 이와같이 씻지마는 이제 신랑을 영접하게 된다 말은  하나님이 이제는 자기에게 성령으로만 역사하지 안하고 영감으로만 역사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는 우리의 신랑의 위치에서  신랑적으로 우리에게 관계가 되고 우리는 신부적으로 관계가 돼 가지고서 영생을  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평소에 버려야 밤중에 절정에 올라가 가지고  버마 수 있고, 평소에 영접해야 절정에 올라가 가지고 영접할 수가 있다. 이  영접이 신랑에게 영접받는 것이요, 내가 이 영접하니까 신랑에게 영접받지. 내가  이 셋을 버렸기 때문에 신랑에게 버림당하지. 이자 필연한 이치요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그런고로 우리가 이런 일은 그냥 듣고 말 게 아니라 명상을 해서 참 깨달으면  밥도 굶고 잠도 못 자고, 잠이 안 와요. 기뻐 즐거워서, 처음에 깨달을 때는 다.

 이렇게 땅위에서 무엇이 죽음이 충격 주는 것 어떤 것이 충격 주는 것보다도 이  진리가 자기를 충격 주는 그 충격의 힘이 더 강해야 세상 충격을 다 이기고  영감의 충만으로서 이겨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는데는 우리가 묵상을  자꾸 해야 된다 말이오. 자권 묵상하니까 힘이 나오나까 이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같이 모든 일이 다 형통해질 수가 있지. 형통해지는 것은 신앙 걸음이  형통해진다 그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것 참 인제 잘 안 자라는구만.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이 이천칠백 삼십오 명.

도무지 안 늘어나가네요, 이제는. 많은데, 권면을 자꾸 해요. 권면해서 주일학교  반사들도 권면하고 또 중간반 반사도 권면하고 권면해서 권찰들 남녀 권찰들도  권면하고 권면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우리 교인들이 다 참석해야 됩니다.

 참석해서, 이번에 주시는 이 기도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큰 사랑이요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세계에  제일 큰 어린이 교회다' 이것 누가 이래 했소? 그렇게 하신 그분이 이것 또  기도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는 믿지만 안 믿으면 그것 뭐  아주 업수이 보이고 그렇지마는 믿는 자는 지극히 큰 운동입니다.

 십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사충에서 모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뭐 의논할 것이 좀 있으니까 할 수 있으면 장로님들은 다  참석하면 좋겠고 또 더 바쁜 일이 있으면 가서 볼 일 보고 뒤에 전달로써 들어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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