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6:30
주님과의 결혼
1983. 11. 2. 수야.
본문 : 마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도 예배 끝에 삼십 분 기도 한 후 남반은 일층 이층 신관과 삼층 구관에서 철야기도 할 수 있고 여반은 일층 이층 구관과 삼층 신축한 데에서 철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이 참석해서 기도하시기 부탁합니다. 또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이천칠백이십오 명입니다. 하루 평균 여기 와서 기도하는 분은 칠백삼십팔 명 됩니다. 또 기도록에 아직도 등록하지 안한 분은 삼십 분 기도 후에 나갈 때에 일층 입구에서 등록을 하고 있으니까 누구든지 가서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다섯 처녀는 신랑을 영접하지 못했고 다섯 처녀는 신랑을 영접했습니다.
영접하지 못한 처녀는 구원을 얻지 못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건설구원 곧 성화구원을 이루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본 구원은 얻었지마는 건설구원을 얻지 못해서 그 심신의 기능들은 다 주를 영접하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은 그 심신의 기능들이 주님을 다 영접했습니다.
이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는 모든 면이 꼭 같습니다.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도 같고, 신랑에게 대한 소망도 꼭 같고, 또 꼭 같은 처녀이고, 또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모든 약속들이 돼 가지고 있고, 또 둥도 꼭 같이 가졌고, 기다리기도 꼭 같이 기다렸고, 모든 면이 슬기 없는 처녀와 슬기 있는 처녀는 꼭 같습니다.
다만 다른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슬기 있는 처녀는 미리 기름 준비를 했고 미련한 처녀는 기름 준비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신랑이 올 때는 반드시 등불을 들고라야 맞이하는 건데 미련한 처녀는 등불이 꺼지고 없었습니다. 슬기 있는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에 등불이 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미련한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고 슬기 있는 처녀는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러면 거기에 열 처녀는 신랑의 신부될 처녀가 아니라 어마 그는 결혼하는 데에 신랑을 맞이하는 들러리 선 그런 처녀들인가보다. 그게 신부는 하나 더 안 될 터인데 아마 그 처녀들은 모두 들러리 선 처녀들인가보다.' 이렇게 또 모두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열처녀는 전부 다 예수님과 결혼할 수 있는 신부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혹 생각하기를 '한 신랑이 어떻게 열 처녀나 그렇게 아내를 삼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또 사람들은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신랑은 주님을 가리킨 것이고 신부는 교회를 가리킨 것입니다.
교회는 아담 하와 이후로부터 주님의 재림 때까지의 수많은 교인들이 있고 또 여러 교파 여러 교회들이 있고, 또 현재만 해도 온 세계에 교회의 수는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러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뿐입니다. 아담 하와도 우리와 한 교인이요 택한 자들은 전부 가리켜서 한 교회라, 또 한 몸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에서 '일남 일녀가 그게 하나님의 계명인데 어떻게 일남 십녀를 가질 수가 있겠는가?'그래서 거기에서 인간적으로 오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비유인데 기독자는 뭐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억만 명이든지 그 모든 기독자들이 한 진리, 한 영감, 한 구속, 한 주를 모신 한 교회입니다. 한 교회. 그러기에 역사나 세계에 있는 교회는 한 교회입니다. 우리 여러 사람들이 여러 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지마는 이것은 다 한 진리로, 또 한 지혜로, 한 능력으로, 한 생명으로, 천명 만명이 모여도 그거는 다 한 주격체로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열 처녀라고 이래 비유했지마는 열 처녀 아니라 억만 신자라도 신자는 다 합해서 한 신부입니다. 한 신부. 두 신부가 아니라 한 신부요.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몇 사람이 모였어도 그것은 다 합하여서 한 교회요 또 한 생명으로 살고 한 힘으로 삽니다. 마치 한 몸은 여러 세포가 있고, 여러 세포가 있고 여러 분자가 있고 여러 지체가 있지마는 한 몸은 한 생명으로 살면 그게 한 몸입니다. 한 생명으로, 또 한 힘으로. 그것 또 한 생명 한 힘, 한 소욕, 그러면 그것이 세포적으로 분산 시키면은 참 그 세포적으로는 수가 심히 셀 수 없을 만치 많지마는 그 모든 세포는 모든 지체는 다 합해서 한 사람입니다. 그 세포가 여럿 있다고서 여러 사람 되는 것 아닙니다. 여러 세포가 합해 가지고 여러 지체가 합해 가지고서 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그뭐 천인 만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합해 가지고서 한 교회요 예수님의 한 신부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어떻게 한 신랑이 여러 처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는가?' 그렇게 오해를 하고 '여기에 있는 열 처녀는 졀혼할 때에 들러리를 선 그런 처녀들이다. 신부는 아니고 들러리 선 처녀들이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 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여기에 한 신부가 있으면은 그 신랑이 한 신부하고 결혼했는데 한 인격체, 한 사람, 그 여인 한 사람과 결혼했지마는 그 한 사랍은 세포적으로 말하면 아마 수억도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러나 그 세포 그것 하나 그것이 다 그것도 그 사람의 신부입니다. 남편의, 신랑의 아내입니다. 세포도 남편의 아내요, 팔 다리도 남편의 아내요, 머리도 남편의 아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가 여럿 되는 것 아니고 내나 한 사람인데 한. 사람 중에도 자체로 말하면 여러 지체가 있고, 또 그보다도 세포로 말하면 수많은 세포로 되어 있다. 그것 모양으로 예수님은, 신인양성 일위어신 한 분이신 참 하나님어요 참 사람이신 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은 한 분 신랑이시고 신랑은 하나 뿐이고 또 신부도 하나뿐입니다. '그러면 열 처녀라면 신부가 열 아닌가?' 그렇지 않고 그 열이 다 합해서 한 교회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신랑으로 이렇게 여기에 비유했고 또 신부는 열 처녀로 이렇게 비유했지마는 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미련한 처녀나 슬기 있는 처녀는 다 예수님의 신부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될 사람인데, 예수님의 신부될 사람들이라 하는 말은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교회가 될 사람들이라 그말입니다. 교회가 될 사람들이라.
그러기에 우리는 전부가 합해 가지고서 한 교회인데, 우리는 교회 중에 한 분자, 나는 교회에 속하여 있는 한 분자라, 또 한 세포라 하는 그것도 우리가 알고 생각새야 됩니다. 나 한 사람이 교회 전부는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 속한 한 분자요, 한 지체요, 한 세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자꾸 하는 것은 여기에 열 처녀가 다 예수님하고 결혼할 신부들이라 그말입니다. 예수님하고 결혼할 신부들이라.
여기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하고 교회를 신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은 우리 사람들이 남녀 결혼하면 부부가 되는 그 모양으로 예수님은 신 랑이시요 우리는 신부라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신랑이시요 교회는 신부인데 그와 같이 사람들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면은 부부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부부 되는 것은, 사람이 남녀 둘이 합해서 부부 되는 것은 이것은 그림자요, 예수님은 신랑이시요 우리 교회는 이것은 실상입니다.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교회의 전부가 아니고 교회에 속한 한 분자라면 분자고, 한 세포라면 세포고, 한 지체라면 지체고, 그러나 또 우리는 자기라는 개체가 모든, 기독자들이 합해 가지고서 전부 합해 가지고서 우리라고 하는 한 존재가 됐습니다. 우리라고 하는 한 존재가 다시 이것이 이제 내가 됩더다. 그러면 교회라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합해 가지고서 우리가 됩니다. 우리가 돼 가지고 우리가 이것이 완성되면은 내가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천인 만인이라도 다 전부 자기입니다. 다 내요. 천인 만인이 뭉쳐 있어서 다 할 때에 우리라, 이렇게 우리라 하지마는 지금은 자꾸 이래 합해지는 때니까 우리라 하지마는 결국은 한 인격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라, 또 하나님이, 호세아서에는 보면은 하나님은 본남편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라, 세상은 간부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한 말은 무슨 말 하고 있는고 하니다 예수님과 신랑과 결혼할 전부 신부들이라, 결혼하려고 들이라 하는 그것을 오해를 하지 말고 이대로 믿으라는 말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 다 예수님의 신부로 결혼할 수 있는 약혼자입니다. 우리는 전부 예수님의 약혼자인데 이제 앞으로 결혼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혼인 잔치라 말은 결혼이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섯 처녀는 기다리고 있다가 혼인 잔치에 들어가서 결혼을 했고 다섯 처녀는 결혼을 못 했다. 그러면 결혼을 할 수 있는 그런 모든 희망을 가졌고 그런 자격을 가졌는데 그만 등불 하나 들지 못해 가지고서 결혼을 못 했습니다. 꼭 같은데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등불을 가졌음으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누구든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예수님과 결혼할 수 있는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그런 약혼이 다 돼 가지고 있는 신부들입니다. 그런데 약혼은 돼 가지고 있지마는 다섯 처녀는 등불을 들지 못해서 그만 그 약혼한 것이 헛일이 돼 버리고 결혼에 참석을 못 해서 약혼한 자요 결혼한 자는 아닙니다. 약혼한 자요 결혼한 자는 못 됐습니다.
결혼은 안 했고 약혼한 자인데 그 약혼을 했지만 결혼 때에 결혼을 못 하고 그만 거기에서 쫓겨남을 당했으니까 그 약혼한 처녀로서는 아주 크게 그건 참 기막히는 일을 당한 것입니다.
또 그 처녀가 우리대로 이 세상 사람대로 약혼한 그 처녀가 그 신랑에게 배척을 당하면 다른데 재혼을 해서 갈 수가 있고 하느냐 하면은 재혼을 해서 못 갑니다.
이 신랑은 권세가 어떻게 당당한지 그만 약혼해 가지고 자격이 모자라서 결혼을 안 하면 저만 영원히 외롭게 불쌍하고 가련하게 그렇게 돼 있지 '여기 결혼 안 하면 딴데 결혼하지' 하고서 마음대로 딴데 결혼을 해 갈 수가 없다 그거요.
또 딴데 결혼 할라 해 봤자 결혼할 데가 어데 있느냐? 간부밖에는 없는데 간부는 세상입니다. 그거는 호세아서에 또 그래 기록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간부 세상하고 결혼하지마는 결혼을 해 봤자 그저 간 부하고 얼마 동안 간음하는 그런 일은 하지마는 나중에 그 간부하고는 나뉘게 됩니다.
나뉘게 되는 것은 기어코 본남편이 끌고 가기 때문에, 본남편이 끌고 가기 때문에 본남편에게 끌려가니까 간부에게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따라가지 못하고 간부와 서로 이별하게 됩니다.
이별하고 가기는 그 본남편의 집에 가서 살게 됩니다. 본남편의 집에 가서 살게 되고, 살게 되지마는 약혼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가서 대면해 가지고 살지도 못하고 또 살 만한 자리도 없고, 또 산다고 해 봤자 죄나 잠깐 짓지 간부들은 다 쫓아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보내기 때문에 이 신부는 하늘나라 가니까 하늘나라에 따라오지를 못합니다.
뭐 그럴 수가 있겠는가? 세상서도 그런 법이 있습니다. 요새는 지금 안 그렇지만 옛날 제국시대 또 군왕시대, 군왕시대는 왕이 결혼하려 하면은 그 나라에서 좋은 처녀들을 다 이렇게 천거를 해서 이제 왕의 아내로 황후가 되려고 왕하고 결혼을 하려고 이렇게 모두 좋은 처녀들은 전부가 청혼를 해서 이렇게 합니다. 하면 한번 그 왕하고 결혼하기로 청혼을 한 청혼한 그 처녀는 다시 다른 데에 결혼을 못 합니다. 다른 사람이 왕하고 결혼하려고 했던 그 처녀에게 아무도 거기에 결혼 하러 갈 그런 남자가 없습니다. 못합니다. 또 그 처녀도 딴데 결혼하러 가지를 못합니다.
그래 가지고 일생 동안, 왕하고 결혼도 못 하고 그만 결혼 하려고 할 그런 희망은 다 가졌고 있었는데 그만 결혼도 뭇 하고 그래 가지고 딴데 마음대로 결혼도 해서 가지도 못하고 그냥 가지고 일생 동안 늙는 것이 뭐이냐? 그게 궁녀라 그래, 궁녀.
궁녀라는 것은 왕하고 결혼하려고 하다가 합격이 안 돼서 결혼은 못 하고 일생 동안 그만 크대로 늙어서 평생을 지내는 것이 그것이 궁녀 인데, 그래도 왕하고 결혼하려고 했던 사람이니까 딴데 가 있지를 아니하고 그 내나 왕궁에 거기 가 삽니다.
그래서 옛날은 뭐 삼천 궁녀라, 궁녀가 삼천 명이나 된다. 또 삼천 명을 다 천거해서 이래 천거를 했지마는 마지막에 합격이 안 되니까 그 나머지기는 왕하고 결혼도 한번 해 보지도 못하고 일생 그 왕궁에 가 가지고 궁녀로 독신 생활 하면서 참 평생 그 불쌍하고 가련하게 그렇게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궁녀라는 그런 이름은 갖고 왕궁에 가 살기는 살지마는 그만 거기에 휘떡 벗어내 버려 버리고 저 어디로 숨어 딴데로 도망 가 가지고 어데든지 서민하고 아무리 못난 사람하고라도 결혼해 가지고 그만 그래 서로 살면 그게 좋겠지마는 그래 못 합니다. 딱 왕의 통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어데로 가서 숨어서 도망도 못 해. 그러면 죽여 버립니다.
이러니까 가지도 못하고 꼭 그 썩은 세력에 매여 가지고서 일생 동안을 참 생과부로, 생과부로 그렇세 평생을 지내는 그런 제도가 옛날은 있었습니다.
꼭 우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마는 여기에 이 본문에 보면 열 처녀에 다섯 처녀는 신랑울 맞이해 가지고 들어가서 결혼을 했고 이제 황후가 돼 결혼을 했고, 다른 처녀는 결혼을 못 하고 맞이 못 하고 쫓겨났습니다. 이러니까 쫓겨났으니 그 사람은 왕궁에 있는 궁녀들과 같이 하늘나라 가서 있기는 있지마는 거기 보니까 하늘나라 가서 있기는 있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 같다' 참 택한 자는 또 지옥에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지옥에 갈 권리가 있는 줄 압니까? 택한 자들은 제가 지옥을 가려고 뭐 어떤 짓을 해도 지옥을 못 갑니다. 지옥에 안 보냅니다. 그저 잘 믿었든지 못 믿었든지 택한 자는 하늘나라 가지 지옥은 가지를 못합니다.
지옥은 가지 못하고 하늘나라 갔는데 하늘나라 가서 있으면서 보니까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 같다' '벌거벗은 구원을 얻었다' 벌거벗었다 말은 그 보니까 참 왕의 아내 그 황후는 아주 권세도 있고 왕에게 사랑도 받고 이렇게 존귀히 지내고 모든 의식도 넉넉하지마는 이 궁녀는 뭐 형편 없습니다.
궁녀들은 형편 없이 그래 가지고서 그저 참, 소설들 보면 궁녀가 그 참 일생을 비참하게 가련하게 지내는 그것은 뭐 참 볼 수 없는 눈물겨운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왕하고 떡 결혼한다 했으니까 딴데는 결혼 못 하지, 그때는 왕이 이 손목을 한번 잡으면 이 손목을 한번 잡았으면 그 손목을 그냥 이래 내 가지고 못 들고 다닙니다. 손목을 잡았으면 여기 이래 붕대를 감아야 됩니다. 붕대를 감아 가지고 평생 볕을 안 보입니다. 왕님이, 왕님이 잡은 손인데 이거 딴데 보여서 안 된다 이래 붕대를 감아 가지고 평생 늙어 죽도록까지 붕대를 감아 가지고 다닙니다. 그새 그 왕권이 그렇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궁녀가 불쌍한 그와 마찬가지로 다 결혼할 수 있는 처녀는 처녀요 다 약혼자고 결혼할 수 있는데 이거 뭐 자격이 그만, 자격이 모자라서 그만 결혼식에 가서 결혼을 못 하고 쫓겨나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처녀의 형편이 어떠노 그것을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그걸 요새는 저는 장 그걸 생각합니다. 생각하는데, 그 처녀가 어찌 됐을까? 그것 참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요,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이런 전지 전능한 참 훌륭한 신랑인데, 이보다 더 훌륭한 신랑이 어데 있습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훌륭한 신랑이 어데 있겠소? 이렇츰 더 이보다 더 잘난 신랑이 없다 말이오. 이렇츰 훌륭한 신랑이 없어. 이렇츰 훌륭한 신랑인데 마음만 좋았지 이 신랑하고 그만 약혼하기로 이래 해서, 약혼은 예수님의 구속을 딱 입었기 때문에 다 예수님의 신부될 자격이 다 있다 그거요. 자격이 있는데 꼭 기름 준비를 못 해 가지고서 등불 안 들어서 그만 배척당해 버렸어. 배척당했지마는 '쫓겨났다' 이랬지 어두움에서 이를 갈며 있다고는 하지 안했습니다.
다른 거는 보면은 어두움데서 이를 갈며 있다 했는데 여기는 어두움에 쫓겨나지 안하고 그저 쫓겨나기만 쫓겨나 가지고서 참 바참하게만 됐어. 섭섭하기만 섭섭하고 비참하게. 그러니까 '하늘 나라에 구원을 얻으나 불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 또 벌거벗은 것과 같다 보니까 나는 요새 지금 이뭐 들어앉은 사람이 돼서 그걸 모르겠는데 그전에 어릴 때에 일본 가 있을 때는 보니까 그때 어떤 여기, 저 만주에 전쟁하러 갔다가 온 그뭐 그리 높으지도 안한 사람인데 부대장이라. 부대장인데 '아 부다이쪼 온다'고 막 이래 가지고 가는데, 그 보니까 뭣을 여기다가 천지에 달고 뭐 여기 모두 울렁불렁하게 이렇게 쭈렁 쭈렁하게 뭐 얼룽덜룽하게 이래 가지고 모두 다 벼슬을 달아 가지고서 이래 왔습디다. 그것이 영광의 장식이요, 권세의 장식이요, 존귀의 장식입니다.
이런데 그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주 밑에 졸병이라서 그뭐 대우가 아무것도 아니야. 이래서 이사야 49장에 보면은 '모든 것을 신부처럼 띠고 장식처럼 띠어 가지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그것이 전부 장식이 되고 신부의 아롬다운 띠가 된다.' 이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그 연결을 시켜 보면 슬기 없는 다섯 처녀가 기름 준비 안 해 가지고 깜깜한 밤중에, 깝깜한 밤중이 되니까 그 사람도 깜깜하고 빛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결혼할 사람은 추위 환경이 새카맣게 깜깜한데 빤짝만짝하게 불을 들고 있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세상이 아무리 어둡든지 말든지 어떻게 하든지 저 사람은 속화되지 안하고, 세상에 속화되지 안하고, 세상에 감염되지 안하고 세상에 물들지 안하고, 세상과같이 어두워지지 안하고, 불의하지 안 하고, 더럽지 안하고 이렇게 깨끗하게 참 등불 든 것과같이 이렇게 은혜 있는 이런 성도는 신랑을 맞이해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됐다 그걸 여기에다가 기록해 놨습니다.
그러면 신부는 약혼식은 했으니까 결혼할 자격은 있지마는 그만 결혼하려 하다가 쫓겨났다 그말이오. 자격이 없어 그만 쫓아냈어. 쫓겨나 놓으니까 어짜겠소? 쫓겨나오니까 벌거벗고 살지 북. 쫓겨나왔으니까 무슨 영광을 입겠소 권세를 입었겠소? 황후야 얼마나 대우가 좋겠습니까? 황후야 대우도 좋고 이렇게 영광과 존귀가 있지마는, 궁녀들은 영광과 존귀가 없습니다. 아무 영 광과 존귀가 없어. 그저 그냥 한테 무더기로 이래 가지고 방이야 한 란씩 다 줬겠지요. 이래 가지고 그저 거기에서 밥 갖다 주면 밥 먹고 똑 짐숭 모양으로 돼서 꼼짝도 못하고 다른 데 나가지도 못합니다. 나가 지도 못하'니까 너무 적적할까 이래서 또 고자 대감이라고 병신 하나 떡 남자를 들여 보내 가지고서 그래 인제 이 방에, 이 궁녀 저 궁녀한테 이리 저리 다니면서 서로 말이나 한 마디씩 이래 하고 그 참 비참하게 지내는 그것이 삼천 궁녀, 궁녀들입니다.
꼭 이렇다는 건 아니지마는,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열 처녀에 다섯 처녀는, 다른 사람들 해석하는 대로 다섯 처녀는 천국 갔고 다섯 처녀는 지옥 갔다 하면 문제는 해결인데 그렇게 해석을 할 수가 없다 그거요.
왜? 우리의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의 예택에서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그 사람의 행동을 이래 했다 저래 했다 그것 가지고서, 행동 이래 하면 구원 되고 행동 저래 하면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벙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이 구원은 기본 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이지 기본구원이라 할 수가 없다 그거요. 이 러니까 분명히 슬기 없는 다섯 처녀도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인데 예 수님과 결혼식을 못 했다 하는 이제 또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가 즘 앞으로 더 연구를 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연구한 대로는 그러합니다. 지금까지 한 대로는. 열 처녀 다 천국은 가는데 다섯 처녀는 주님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참 배척당한 그 삼천 궁녀와갈이 그런 처지가 아니겠느냐? 또 다섯 처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아주 황후와 같이 그렇게 왕에게 사랑을 독점하고 그 영광과 존귀가 있는 그런 성도가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집니다.
왜 그런고 하니 밤중에 등불 든 그 비유가, 밤중에 등불 든 것이 뭐인고 하니 최고로 어려움 될 때에, 자기 앞에 최고로 어려움을 닥켰을 때에, 어려움을 닥쳤을 때에 그때에, 그 어려움은 무슨 어려움이냐? 그 어 려움은 예수님만 내어 주고 진리만 내어 주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예수님만 내 놓으면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데 그때에 생명을 빼앗겨도 어떻게 고문과 고형을 당해도-저 뭐 어린아이들만 자꾸 돌아다니며 왜 저 야단이야? 예수님의 신부되기 싫은가배 배척당해 가지고, 그 뭐라 합니까? 남편에게 배척당한 것 뭐라 하지? 실연이라 하나 뭐라 하노, 그걸? 소박. 옳지, 소박. 소박 됐어. 소박 맞은 그런 그 처녀가 되면 어찌 되겠어? 왜 그게 그러냐? 왜 그렇겠느냐? 밤중은 말이요, 우리가 신앙 생활을 이렇게 해 나가는 참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영감과 진리대로 이렇게 순종하고 사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인데 그 현실을 닥칠 때에 자, 주님을 모시고 영감과 진리대로 살려고 하면. 이 세상이 기합을 주고, 세상은 뭣이라 했습니까? 본부라 했소 간부라 했소? 간부. 세상이 기합을 주고 또 세상 좋도록 해서 세상하고 하나하려고 하니까 지금 본부인 이 하나님과, 본남편인 하나님과 또 그만 갈라지게 되지, 꼭 요 둘이 둘 다, 요쪽으로는 세상 사귀고 요쪽으로는 하나님 사귀고 요 둘 다 수단으로 사귀었으면 좋겠는데 본남편 된 이 본남편 지혜가 있다 말이오. 본남편이 지혜가 있으니까 속으로는 이 간부하고 서로 사귀고 있으면서 쩝데기는, 껍데기만 본남편 하나님에게 '당신밖에 없습니다. 당신만 바라봅니다. 의지합니다. 좋습니다. 당신만 믿습니다.' 암만해도 속지를 안한다 그말이오. 이 본남편은 속지 않는 지혜 있는 남편이라.
또 이거 간부 이것도 또, 간부 이것도 또 지혜가 있습니다. 간부 이것도 속으로는 하나님 믿고 이래 하면서 그저 겉으로 '세상도 좋다' 하면서 이래 하려 해 봐도 이것도, 이것도 지혜가 있기 때문에 '네가 둘 중에 하나 해라. 네가 하나님이냐 네가 내냐? 나를 반대하면 네 목숨을 네 생명을 끊을 것이고, 네 사업을 절단낼 것이고, 네 가정을 지금 파괴를 시킬 것이고, 너거 이혼을 시킬 것이고, 네 직장을 떨어뜨릴 것이고,' 막 이거, 그거는 세상 임금이 사탄이 간부가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것 이래 가지고 협박을 놓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양사이에 끼어서 죽을 지경이오. 자, 간부를 버리려 하니 이놈이 들어서 협박을 놓고 이러는데 그뭐 만일 간부를 배척하는 날이면 모가지 끊길 모양이지, 사업도 끊길 모양이지, 지금 직장도 다 절단날 모양이지, 모두가 다 절단날 모양이지, 또 하나님을 본남편 하나님을 버리려 하니 이것도 그럴 수가 없는 일이지, 양쪽에 이래 쌓다가, 등불 든 것은 어떤 것이 등불 든 것이냐? 그때 '목숨을 끊어가든지, 뭐 직장을 비든지, 네야 나를 어떻게 고문과 고형을 시키든지, 껍데기를 벗기든지 어떻게 하든지 나는 본남편 주님만은 나는 버릴 수 없다. 나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내 남편이요 나는 주의 것이다. 네가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내가 그 위협을, 협박을 하든지 나를 어떻게 박해해도 내가 목숨을 네가 뺏든다 해도 목숨을 네가 뺏들면 내가 목숨을 뺏겼지, 강제로 하면 목숨을 뺏겼지 내가 주님은 내놓지 않는다.' 다 이래 가지고 밤중에 지낸 것이 뭐냐 하면 등불 든 것이라 말이오.
등불이 그게 등 불이라 말이오. 그게 등불이라.
이러니까 그렇게 등불 들고 신랑 맞이한 그 처녀와 그만 깜깜하게, 등불 안 드니까 깜깜할 것 아니겠소? 깜깜하다 그말은 무슨 말이요? 세상하고 같이 됐다 그말이오. 세상하고 갈이 됐어. 어려움 당하면 세상하고 같이 당했으니까 그 신부가 주님 앞에 가 가지고 무슨 안면이 있겠소? 이러니까 삼천 궁녀와 같이 이제 소박당한 그런 가련한 신세가 안 되겠느냐 그것이 제 마음에 생각이 나져서 지금 거기 대해서 '내가 만일 그때 소박을 당하면 어찌 되노?' 내가 본부냐 본남편이냐 간부냐, 주님이냐 세상이냐 이 둘이 말할 때에 주님 버리고 세상 좋아했으면 나는 소박을 당해야지.
그렇다고 또 이 본남편이신 하나님께서 '너는 그만 그냥으니까 너는 지옥에 가 잘 살아라. 지옥에 네 사는데 가 살아라. 놔 주면 하지마는 놔 주지 않습니다.
'내가 피로 값주고 샀기 때문에 놓지 않는다 놓지 않는다' 했어. 안 놓습니다.
이러니까 기어코 끌려서 하늘나라 가기는 가는데 거기에 참 주님을 이 세상. 에 있는 동안에 괄고 배반하고 그저 기회 기회마다 주님 배 반하고 이 세상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래 흥청거리고 이래 있다가 주님 앞에 가 서니 무슨 안면이 있을 것이고 무슨 영광이 있을 것이고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여기 신랑을 그만 맞이를 못했다 말이오.
우리가 결혼하면 신부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라도 결혼하면은 그만 신랑의 모든 것이 아내 것이 안 둬니까? 아내 것이 당장 됩니다.
사장님이 어제 결혼했다고 하더니만 어제 결혼했더니마는 오늘 아침에 보니까 어떤 새파란 계집이 하나 나와 가지고, 떡 나오더니마는, '왜 이것 이래요? 이거 치우시오. 이것 뭐이야?' 야단을 친다 말이오. 이 사람이 있다가 '어떤 조그만한 새파란 세집이 나와 가지고 야단을 지겨?'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사장 부인이라. 당장 그만 그 회사가 저거 회사가 돼 놓으니까 그 여자를 사장과 갈이 모셔야, 되지 사장과 같이 안 모셨다가는 큰 일이 나겠다 그거요. 그것이 결혼입니다.
결혼이라 하는 것은 성경에 말한 대로 아내의 모든 것을 남편이 다 책임지고 아내의 부족한 것은 전부 남편이 댜 책임져서 충족하게 해 주고 남편의 모든 것은 아내의 것이 되어지고 이것이 결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혼 잘 하면은 남편의 것은 다 아내의 것이 되고 또 남편이 아내의 모자라는 것은 전부 책임 다 지는 것이 그것이 이 세상에서 결혼하는 그 남편이고 이런데 성경에는 보면 더 말했어. 예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얼마나 책임을 졌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주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는데, 이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모든 걸 책임졌는데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현실에서 주님을 배반치 안하고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기만 모시면 등불만 들면 혼인 잔치에 들어가 가지고 영원히 주님이 우리 신랑돼셔서 하나님의 충만은 내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내것이오.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내것이오. 하나님의 권세는 내것이오.
하나님의 모든 소유는 내 소유요.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인데 등불 들고 맞이하면 신랑의 그 모든 영광, 모든 존귀, 모든 권세, 모든 소유, 그 신랑이 내게 있는. 모든 인간으로서 부족한 것은 하나님으로서 전부를 보충해 가지고 충만케 해준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런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 잘 가고 이 결혼하면 얼마나 이거 참 영광입니까? 자, 전지한 실력이 있는 신랑이라, 전능한 실력이 있는 신랑이라, 모든 만유의 모든 것에 다 주재되는 신랑이라, 없는 가운데 모든 걸 창조한 신랑이라, 주.
권을 가진 신랑이라, 만왕의 왕이라, 만주의 주라, 영생이라, 그분에게는 뭐 죽음이 없어. 영생이라.
이분하고 결혼만 하면 이분이 다 모든 것 담당하니까 여기에 이 결혼하면은 얼마나 행복이겠습니까? 그런데 결혼은 할 수 있는데 등불 안 들어서 쫓겨났습니다. 등불 안 들어서.
요렇게 내가 깨달아 가지고 설교 하는 건 처음인데, 이것 처음이라요. 요새 자꾸 내가 이것 생작하니까 이게 생각이 돼서 내 마음에 마음이 고민이 돼집니다. 이래서 이분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주님하르 결혼하는 것은 의사가 같고, 기쁨이 같고, 욕심이 같고, 목적이 같고, 또 같이 동거하고, 또 같이 동락하고, 또 부부는 방신이 말씀하기를 두 몸이 한 몸이라 했어. 주님하고 또, 신성과 인성이 다르기는 다르지마는 또 한 몸이라. 일체는 안 되지마는 일체적인 행동은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분하고 결혼만 했으면 이는 좋겠는데 만일 결혼 못 하고 그만 배척을 당하는 날이면 어찌 되나 하는 이걸 생각하니까 참 잠이 안 와요. 얼마나 기막힙니까? 여기 처녀들 많이 있는데 처녀들 이 세상에서도 결혼하는 것 좋지 마는, 성경에 그래 놨어. 음행 안 하고 살 수 있거든 결혼 하지? 말라 했어, 남자고 여자고.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좋다 했어.
왜? 결혼 하면은 마음이 나누어져.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이렇지마는 결혼 안 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그 마음이 전부 외식으로만 주님에게만 기울어진다 이랬어.
그러나 불 같은 정욕이 타오름으로써, 결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데 결혼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한 그런 음행죄를 범해 가지고 자기 구원을 전부 절단낼 것이기 때문에 한 남자마다 한 여자를 취해서 결혼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다 그말이오. 허락해 준 그게 뭐 그리 영광된 건 아니라 그말이오. 음행하는 그것 때문에 결혼을 허락하셨다 그렇게 고린도전서 7장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세상에 결혼 잘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 결혼이야 잘해 봤자 뭐 몇해 갑니까? 또 아주 잘하면 결혼 잘함으로 인해서 구원을 잘 이루면 참 그것 영원에까지라도 유익이 있기는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결혼 잘하면 좋아요. 좋기는 왜 좋으냐? 그 결혼을 잘 하면 본남편 예수님하고 결혼할 수 있도록, 결혼 잘해 놓으면 그 결혼한 그 남편 때문에 아내가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결혼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을 마련하게 되고, 남편으로 인해서 아내가 그런 신앙이 마련되고 아내로 남편이 그런 신앙이 마련되고 하니까 그것이야 신앙을 도와 주는 것 이니까 좋기는 좋지마는 그만 그건 중간에 다리를 놓지 말고 직접 주님하고 딱 이렇게 그만 결혼하는 요것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의 지금 영원한 영광이냐 존귀냐 참, 한숨이라고 참 영원히 한숨 쉰다 그 소리는 내가 못 하겠 는데 성경에 있는 대로 '영원히 부끄럽다' 영원히 부끄럽다 '영원히 불가운데 있는 것같이 낯이 화닥화닥하게 부끄럽다' 그 부끄럽기는 분명히 부끄러운 것은 분명 합니다. 또 '벌거벗은 자다' 영광이 있나, 칭찬이 있나, 또 주님을 위해서 무슨 선물한 게 있나, 주님 위해서 고생한 게 있나요, 주님 위해서 수고한 게 있나요, 주님 위해서 견딘 게 있나요, 주님 위해서 뺨 한번 맞은게 있나요? 주님 위해서 뺨을 탁 때려 주면서 '너 예수 믿으면 너 죽인다' 이래 하니까 뱝 한번 맞고 나니까 그만 '아이구 예수 그만 예수 믿던 것 예수 안 믿겠습니다. 내가 주일 뭐 그만 주일 안 가지요.' 이렇게, 주를 위해서 '내가 맞아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처녀 둘이 있었는데 그 동생은 지금 우리 교회 나오고 있소.
동생은 그때 그 어길 만치 신앙이 좀 어렸었어. 이랬는데 그 언니는 아버지가 월남해 가지고 그 딸 들을 보고 그렇게 뭐 있는 전부 희생을 다 해 사는데 그만 예수 믿으면서 신앙이 들어가 놓으니까 똑 딸 하나 잃아버린 것 같으니까 어떻게 마음이 섭섭해 놨는지? 자꾸 신앙을 방해하다가 하다가 한번 내가 술을 잔뜩 먹고 와 가지고, 작두, 작두 압니까, 짚 써는 것? 이제 처렁처렁 이래 작두를 갈더니마는, 갈아 가지고 시퍼렇게 이래 갈아 가지고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어. 이래 쌓으며 휘뜩 자빠졌다 일어났다 이래 쌓아면서 떡 그래 가지고 '너 이놈, 네가 예수 믿으려면 너 죽고 나 같이 죽자. 너 예수 믿으면 내가 이 작두에 네 모가지를 끊어 죽일란다. 네가 어떻게 할래?'붙들어 가지고 작두에다 모자기를 넣었다 말이오.
떡 이래 넣어 놓고서 '말해라. 말해라.' 술이 취해 가지고 뭐 툭탁툭탁 이래 쌓아면서, 눌리면 쌈박 건너가는 거라 말이오. 눌리면 쌈박 건너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술이 취해 가지고 이래 쌓아서 이건데도, 입을 다물고 기도를 한참 하고 있다가서 '아버지, 내가 다른 일에는 아버지에게 있는 것을 다해서 충성하고 효성하고 하겠습니다. 마는 나와 아버치를 위해서 내가 주님은 배반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창조주시요 또 우리를 대속 하셨는데 아버지의 구주요 내 구주인데 어떻게 내가 그 구주를 버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죽어도 나는 주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그 아버지가 작두를 휘떡 뒤집어 왈칵 잡아당겨 내 던지면서 그만 욕을 하면서 '야 이년아 내나 죽지 안됐다. 나 죽을란다.' 하고 이러면서, 거세서 면해 나왔는데 지금 목사 아내가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뒤에 내가 만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무슨 이런 영광의 옷이라도 있어야지? 그 처녀는 아마 주님 앞에 갈 때 보면은 아주 작두 밑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안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믿겠다고 그렇게 작두 속에서도 그렇게 했다 한 그것이 아마 여기 이만한 울긋불긋한 아름다운 표가 있을 거라. 아름다운 울긋불긋한 장식이 여기 뭐 금으로 했는지 보석 장식으로 했을 거라.
그런게 하나도 없으니까 벌거벗어 놨으니까 그것 주님 앞에 가 설 때 뭐 볼품이 있겠소 하늘나라 가 가지고 볼품 아무것도 볼품 없을 거라.
그런 걸 많이 쭈렁쭈렁 단, 사도 바울 갈은 이는 그런 걸 많이 달 았으니까, 오십에, 하나씩 감한 매 네 번이나 맞고, 또 바다의 위험, 광야의 위험, 본족의, 이방의 위 헙, 이렇게 옥에 갇힌 것, 이런 모든 것이 그래도 주를 위해서 한 그것이 그게 모두 장식이라. 이러니까 그게 귀걸이도 될 것이고, 그게 코걸이 될 것이고, 이게 팔찌도 될 것이고 뭣도, 그게 그저 쭈렁쭈렁하게 이래 있으면 영광이 있을 것이고 그게 하나도 없으니까 벌거벗었다 말이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덧입고자 함이라. 이것은 벗은 자로 주님 앞에 나타나지 않기 위함이라. 여기에 대해서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탄식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등불 들고 주님 맞이하면 그만 전능자가 우리의 신랑입니다.
전지자가 우리의 신랑이오. 대주재가 우리 신랑이오. 만 왕의 왕이 우리 신랑이오. 만주의 주가 우리 신랑이오. 이분이 나를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셔 죽기까지 하셨는데 이분이 영원히 그 전부를 다해 가지고 나를 사랑하실 것이라.
우리를 복되게 할 것이라. 이러니까 그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자, 오늘밤에 예수님 앞에 소박받고 싶은 사람, 우리 영원한 신랑, 이러면 또 여기 남반에는 아이구 신랑 한다 하니까 자기 마누라 뺏길까 그런 걱정 하지 말고, 여러분 남반들도 예수님의 신부라 그말이오. 나도 예수님의 신부요.
신부되고 싶고 나는 지금 결혼하고 싶어서 마음에 지금,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요한계시 21장에 보면은 '신부가 지아비를 보고? 단장한 것과 같다' 그 예루살렘이 교회입니다.
이러니까 그 신부가 여러분들 우리는 남녀라 하는 것이 하나님과 다른 것은 남녀 이성 교제 그것만 다르지 하나님은 그게 없고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그 부부의 일신되는 것, 유별한 것, 희로 애락이 같은 것, 동거 동락 하는 것, 한 행복을 같이 누리는 것 이런 면으로 같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는 기본구원도 다 얻었지마는 보니까 이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보니까 꼭 같은 미혼 처녀지, 또 약혼 처녀지, 신랑 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 맞이할 수 있지, 등도 들었지, 하루 종일 기다렸지, 이랬는데 뭣이 달라서 그만 소박을 당했습니까? 뭐이 다 르지요? 밤중에 등불 들지 못해서, 밤중은 깜깜해, 세상이 깜깜한데 세상에 반대되는, 세상은 깜깜 죄악으로 깜깜할 때에, 공산주의가 되면은 공산주의 죄악으로 깜깜한 세상일 때에 그때에 성령과 진리의 불을 든다 말이오. 진리의 라으로써 예수 믿는 빛을 똑똑히 나타내는 이것이 등불 드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그때에 어려움이 있지마는 어려움은 잠깐이요 영원토록 주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자, 영원한 신랑 예수님에게 소박당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소박당하고 싶은 사람? 소박당해도 세상에서 우선 좋도록, 우선 곤란 없도록, 우선 지혜 있게 꾀있게 요렇게 세상하고 살짝살짝 한덩어리 돼 가며 타협해 가며 요렇게 살아 가지고 예수님에게 소박당할 사람, 당해도 좋은 사람 손 들어 봐요.
하나도 없는가배. 하나도 없는 게 옳습니다. 하나도 없어.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명을 내대고라도 그때 현실에 빛을 빤짝빤짝, 성령의 빛 진리의 빛 이게 빛인데 요 빛을 빤짝빤짝 나타내고 그래 가지고 신랑이 와서 '수고했습니다.' 하고 영접을 하면서 그래 예수님의 신부로 영원한 황후로 그렇게 영접하는 그 영광의 결혼을 자, 생명 내놓고 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생명 내놓고 하고 싶은 사람? 다 생명 내놓고, 나도 생명 내놓고 하고 싶소. 정말로 이것만 되면 할렐루야.
자, 한번 해.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녜, 이것이면 다입니다.
예, 우리는 잠깐 있다가 갑니다. 나그네 세상에 잠깐 있다 갑니다.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안 그래도 죽습니다. 무엇이 아까와서 대적하고 내가 예수님하고 영원한 수치의 이것, 안면을 가루고 수치스러운 그런 영원을 지내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밤중에 오든 사람이 다 이제 주를 팔고 이럴 때에 주님을 그대로 모시고서 진리를 그대로 증거하고 신앙 생활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이 등불! 앞으로 어떤 밤중이 올런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지금 기도 많이 하고 단단히 각오를 가집시다.
우리가 현실에서 생명하고 영감하고 바꿀 수 없고, 생명하고 진리하고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돈이나 그런 것하고 영감하고 바꿀 수 없습니다. '.
왜? 영감이 등불 들 수 있는 그 실력입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준비해야 돼요. 평소에 어쩌든지 기름 준비해야 됩니다. 평소에 현실에서 영감을 버리지 안하고 영감을 착착 영접해서 쌓아야 돼, 진리를 쌓아야 되고.
확정지웁시다, 확정지워요, 뭐. '제야 생명을, 뭐라 하든지 나는 등불 들고 주 맞이 하겠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생명을 내놓고 기도합시다. 아무래도 가기는 한번 갈 건데 뭣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내 주고 영감을 내 주겠습니까?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님과 나와의 영원한 좋은 관계 맺고 또 영원한 부끄러운 관계 맺는 것이 오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