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5:51
주님과 대면 대화 동거동행
본문 : 신명기 28장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본문 : 신명기 28장 15절∼19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맡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28장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해서 개적으로 대하시는 너, 네 이렇게 개적으로 상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백 칠십 칠 번 있습니다. 백 칠십 칠 번을 너 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거기에 복수로 너희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열 한 번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개인적이요 단체적은 약간 섞여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 받는 많은 사람 속에 싸여 있을지라도 그 축복이 그 사람에게 영향적으로 다소는 가지마는서도 그 개인이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축복을 받고 저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의 혜택으로 약간의 영향은 있지마는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고 큰 징계와 재앙 속에 파묻혀 있다 할지라도 그 개인이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 저주받는 것이 축복 받는 자에게는 상관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노아 홍수 때의 일이나 여리고성을 멸할 때의 일이나 소돔 고모라성을 멸하실 때의 일이나 그런 하나님의 심판과 그 약속의 법칙을 그대로 하나님께서 지키고 계십니다.
또, 28장에 여게 보면은 하나님이 '내가 네게, 내가 네게' 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세 번 있고 '내가 너희에게' 라고 이렇게 복수적으로 상대해서 말씀하신 일은 한번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상대 하실 때에 개적으로 상대하시는 것은 사분지 삼이 되고 단체적으로 상대하시는 것은 사분지 일이 된다 그렇게 우리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 여기에 1절에 '내가'라고 하신 하나님, 13절 14절 15절에 '내가 내가 내가' 이렇게 말씀해서 1절과 13절 14절 15절 여게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네게'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세 번 기록되어서 있습니다.
그중에 한 번은 네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너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실 때에 일 대 일로 개적으로 상대하시는 일이 많고 단체적으로 이렇게 상대하시는 그 숫자는 적다 그렇게 여게서 볼 수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에는 내라는 개적이라는 그 표시가 없고 언제든지 우리라고 그렇게 단체적인 대아(大我)를 가리켜서 주님이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함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향해 나 아갈 때에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 그런 것을 허락지 아니한 것을 거기에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상대 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개적으로 상대를 하십니다.
여기에 내가라고 하신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요한복음 1장 이하에 보면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시요.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보면은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그분이 없는 가운데에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그 교회를 당신이 책임지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이 되셨고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게 '내가 네게, 내가 네게' 직접 내가 네게 라고 하신 이 분은 영원 자존자시며 모든 것을 예정하신 분이시며 또 창조주십니다. 모든 것의 주재인 대주재십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십니다.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홀로 주권적으로 관리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통치의 왕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분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일을 하셨고 또 창조하신 것을 이렇게 저렇게 조화해서 운영하셔 가지고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수 많은 종류들이 이렇게 저렇게 화합하고 분리하고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자기 백성에게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모든 인류는 택자나 불택자나 산자나 불신자나 무신론을 주장하는 자나 모르고 모든 사신 우상 미신 종교에 빠진 자이나 모두 다 사람은 당신의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오되, 자기 소유인 인생들에게 오되 사람이 대접지 아니하더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자기 땅에 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사람 되어 오신 주님은 이 땅도 자기 당신이 만드신 당신의 것이요 세상도 당신의 것이요, 사람도 당신의 것이요. 우주도 당신의 것입니다. 이 주님이 우리 사람만으로서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유한한 것이 유한한 것으로만 성장되고 전진됐지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변질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모든 유한한 것과 불완전한 것을 이것을 유한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타락으로서 영원한 사망을 인간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고 이렇게 하신 것은 피조물로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하신 대로 영원하고 완전하고 불변하는 그 영생 하나님처럼 온전한 그런 것이 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이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당신의 그 모든 온전하심과 무한하심을 가지고 우리들을 영원하고 무한하고 완전한 것을 만드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양면을 행했으니 일면은 타락으로 모든 잘못된 것을 다 당신이 지극히 공평된 법으로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서 공의를 지켜서 다 해결을 지으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당신이 모든 것을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의 위에 위치를 가지고 하나님의 수족처럼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의 온갖 그 충만한 은혜를 모든 피조물 들에게 전달해서 충만케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위치요 그 실력인데 이런 실력자로 만드시기 위해 가지고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석가모니나 공자나 노자나 같은 그런 그런 도의 성현이라고 자기네들이 하는 그런 사람과 같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분명히 밝히시기를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다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셔 가지고 우리 모든 것을 대신해서 우리의 못 쓸 그 모든 못 쓸 것을 당신이 대신해서 벌로 받아 가지고 그 일을 해결을 지우셨고, 우리가 행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행해서 우리에게 의를 입혀 주셨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당신이 화목의 제물이 되셔 가지고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화친을 시킨 것이 제이위 성자가 도성 인신 해 가지고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두 가지 구원을 받았으니 첫째 구원은 기본구원입니다. 기본구원 열 가지를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합니다.
기본구원 열 가지를 받은 우리들이 이 기본구원을 자기가 벗을 수 없습니다. 이 기본구원을 벗고 싶다고 벗지 못합니다. 이 기본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인데 벌써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시작돼 가지고 우리의 중생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자녀가 되는 천국 시민이 되는 여기까지의 그 넓은 범위의 구비한 구원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생된 것이 하나님으로 중생됐습니다.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하나님과 진리로 이렇게 중생됐느냐? 하나님과 진리로 중생된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의 대속을 받아서 예수님이 대신 나쁜 걸 하셔서 정리하시고 대신 책임 지신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서만 성령과 진리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고로,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새사람입니다.
이 새사람인데 우리에게는 살아난 것도 살아나지 안한 것도 있으니까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은 살아나지를 안했고 지금 법적으로는 살아났는 데 법적으로 살아난 그것을 벗지 안하고 믿으면 영원히 살아버립니다. 영원히 산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법적으로 우리가 건설구원 얻은 이 심신의 구원을 믿느냐 안 믿느냐, 또 입고 있느냐 벗어버리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통해서 이 일이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첫째로 이 하나님이신 지극히 크신 이 하나님이신 창조주이신대주재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홀로 주권 가지고 섭리하시는 이 주권의 의지를 가지시고 주권의 능력을 가지신 이 하나님, 이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또, 둘째로는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상담할 수 있는 교제할 수 있는 이것이 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셋째로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거 동행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같이거처하고 또 같이 일하고 같이 행하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이시요 대주재이시요 창조주이신데 우리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우리의 능력은 믿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믿음에서 나온다는 말은 믿음은 세 가지 믿음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의 그 지식대로의 지식대로의 자기가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신 그대로 지식하는 것이 믿음이요.
둘째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이요, 그 셋째로는 그대로 내가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이 우리 구원 이루는 것인데 성경에 기록한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이 말한 대로 인정 해야되겠고, 믿어야 되겠고, 행해야 되겠고 이라는데 그게 뭐이냐? 그 결과가 뭐 되는 것이냐? 믿음이 뭘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지식하는 대로 내가 지식하고 하나님이 지식한 것을 내가 믿고 그대로 사는 그것이 무엇을 만드느냐? 그것이 직접 주님을 대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주의 주를 대면해야 됩니다. 만왕의 왕을 대면 해야 됩니다. 창조주를 대면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이신 이 주님과 서로 언거 언례를 할 수 있는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분과 동행해야 됩니다.
이분과 같이 역사를 해야 됩니다. 에녹이 동행해서 사망을 이겼고 아브라함이 동행해서 하늘의 모든 것을 다 상속 받았고 노아가 동행으로서 땅위에 세상 것을 상속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화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거 동행하고 하는 이것이 얼마나 크며 얼마나 사실이라는 것은 자기가 행해 볼 때에 알지 행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정권자라도 그 정권자를 만나보면 대단히 우쭐해지고 또 그 정권자를 자기 마음대로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하면은 얼마나 그 권세에 대해서 자부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는 참이고 이는 거짓입니까? 아니 이는 더 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모든 기쁨과 능력과 평안과 고통이 어디서 오느냐? 외부에서 오는 그까짓 거는 상관할 것 없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거는 그런 거는 가치로 볼 것이 없고 있다고 인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모두가 다 우리 생각 속에서 나옵니다. 생각에서 하나님의 능력도 나오고 담력도 나오고 평강도 나오고 두려움이 나옵니다. 생각에서 나오는 그 두려움은 두려워해야 되지 그 두려움을 무시하면 저는 망하고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 이라"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늘에서부터 사람되어 오신 그 모든 순서에 절정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입니다. 그 절정을 말합니다. 그 피와 살이 양식된다 말은 주님이 나 위해서 하늘에서부터 쭉 역사하신 그 순서를 자기가 명상하는 것이요. 자기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성경대로 생각해야 됩니다. 성경대로 생각해서 주님을 아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주님을 알면 높아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어떤 궁지에서라도 구출됩니다.
그러기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다는 내라는 이 주님이 어떤 분이시 것을 아는 자면 '내가 네게, 내가 네게' 대화했습니다. 상대했고 대면했습니다. 대면하는 그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면 이외에 더 딴것을 구할 필요가 없고 이외에 더 두려워할 것도 아무것도 없고 바라볼 것도 의지할 것도 믿을 것도 없습니다.
이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로만 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대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도 하고 낙망도 하고 염려도 하고 헛된 우상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말씀하신 것은 1 절에 '내가 네게' '내가 오늘날 네게' 이것이 주님이 우리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대면하는 것, '내가 네게' 여기 에는 '내가 네게' 말했습니다. '내가 네게' 요것이 주님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요것이 주님과 나와의 대화하는 것입니다. 요것이 주님과 나와의 동행하는 것입니다.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주님으로 더불어 대면하는 것, 내가 주님으로 더불어 같이 마주 대화하는 것, 내가 주님과 동거하고 같이 역사하는 동행하는 것 요것은 어느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어떤 장소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다른 데에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이라는 것을 똑똑히 밝혀서 말씀했습니다. 주님과 나와의 대면하고 대화하고 동거 동행은 꼭 현실에서만 됩니다. 다른 데서는 못 만납니다.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요 현실에서만 대면할 수 있고 현실에서만 대화할 수 있고 현실에서만 동거 동행을 할 수 있는데, 요 현실에서만 당신을 배척할 수 있습니다. 다른 때에 배척하는 거는 암만 배척해도 상관없습니다. 현실에서 배척하는 것이 당신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당신을 영접하는 것이 당신을 영접하는 것입니다.현실에서 당신을 부인하는 것이 부인이요, 현실에서 당신을 동행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내가 오늘날' '내가' 주님이 직접, 내가 네게 오늘날 명하는 것이 있으니, 내가 네게 지금 이렇게 이렇게 너한테 말을 하니 내가 고 말을 지키면 주님을 대면해서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으로 더불어 대화해서 그분의 의사를 딿는 것이요. 주님과 동행해서 그분의 지극히 큰 능력 가지신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모시고 그분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쩌 되느냐? 그리되면 내가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거는 뛰어납니다. 뛰어나는 것을 사람들이 자기 지식대로 견해하기를 무슨 정권을 잡는 그런 면으로만, 또 무슨 경제면으로만, 이 무슨 학문적으로만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모든 민족에 뛰어나는 것은 이 자연계에 속한 것으로서 뛰어나는 것 있지마는서도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신령한 것으로 뛰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직접 대면하면 뛰어났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그분과 대면했으면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 났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뿐만 아니라 모든 천상 천하 피조물 위에 뛰어 났습니다. 그분과 대화를 하고 그분과 서로 의논하고 대화의 상대가 됐다면 뛰어났습니다. 그분과 동거 동행해서 그분이 내 모든 것을 다 책임 맡았으면 나는 뛰어났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되느냐? 예수님의 피공로로 구속을 받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요 현실에서만 고 일이 가능합니다. 현실에서 그분을 대면할 때에 내가 그분을 영접할 수 있고 대화할 때에 그분으로 더불어 의논해서 합의할 수 있고 그분을 영접해서 동행 할 수 있을 때에 지극히 큰 능력은 고 행위를 통해서 그 행위가 뭐인데? 고게 믿음입니다.-고 행위를 통해서 지극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썩지 안할 것을 합니다. 죽지 아니할 것을 합니다. 욕되지 안할 것을 합니다. 영광될 것, 능력 있는 것, 영원한 것, 완전한 것 이것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는 간단한 설교를 하고 그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투표를 할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요합니다. 오늘 또 남전도회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요 시간에 간단하게 우리는 지극히 크신 분 이분을 우리는 만나서 한덩어리 될 수 있는 이런 권세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열어 주셨습니다. 믿으면 열리고 부인하면 가리워집니다.
이런데 예수님의 공로를 익은 중생된 자는 지극히 크신 분을 대면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대화라 말은 의논한다 말이오. 대화할 수 있고 동거할 수 있고 동행할 수 있으니 고것은 현재라는 고 시간과 그 현재라는 고 시간과 현실이라는 고 장소 고 환경 고게서만 가능합니다. 고게서 가능합니다. 고게서 주님하고 얼마든지 친할 수 있고 얼마든지 배척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평소에 주님을 부르고 주를 위해서 뭐 생명을 바치고 어떻게 한 다 할지라도 고 현실에서 주님이 나에게 명하시는 고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주님을 배척하는 것이요, 주님을 대항하는 것이요, 악령으로 더불어 간음하고 음행하는 그 간부와 음녀로 더불어 사귀어서 주님을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현실에서 우리에게 모든 대우도 받으시고 현실에서 배척도 받으시고 현실에서 기쁨도 누리시고 현실에 섭섭함과 통분함도 내리시고 현실에서 복도 주시고 현실에서 저주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기억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