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영접-전도사인허

 

1979. 9. 7. 금야

 

본문: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에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하는 이 분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문을 두드린다 하는 이 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에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어달라 하신 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문밖에서 두드립니다. 이 문은  우리 마음과 고깃덩어리로 되어있는 육을 가르쳐서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중생시키신 영 안에 계시지마는 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건너오지를 못하시고 우리 몸에도 건너오지를 못하시고 우리 생활에도  동참하지를 못하고 계실 때에 우리의 전 생애는 죽은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문을 열면" 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면 하는 말입니다. 문을 열면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영접하면 문을 두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여러  면으로 감화 감동도 시키고 권면도 하고 또 보여주기도 해서 우리 마음이  움직여지도록 문을 두드린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고 계신다 그말이요.

 문을 두드린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신다. 문을 열면 그 말은 우리 마음이  주님을 영접하면 하는 말입니다. 영접하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예수님은 나로 더불어 양식을 잡수시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영접한 너  사람 너는 예수님으로 더불어 양식을 먹으리라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먹는다 하는 것은 이 고기 덩어리는 물질을 먹어야 힘이 나고 또 배도  부르고 장성해 갑니다. 고기 덩어리는 움식을 먹어야 힘도 나고 자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격을 닮은 그 인격성 다시 말하면 마음과 고기 덩어리의  인격적 기능, 신성과 같은 기능 하나님과 같은 이 은 인격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고량 진미를 잘 먹어도 이것 먹어 가지고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모형인 인격성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 영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마음, 마음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이 고기 덩어리  이것은 음식을 먹고 배 부르는 것이 아니고 힘을 얻고 자라는 것이 아니고 암만  음식 먹어야 안됩니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의로운 한 생각과 한 행동, 의로운 생각과 의로운  소원과 의로운 행동 이것을 하나 하면 이 인격성이 힘을 얻습니다. 또 하나  더하면 그만큼 그 기능은 강해지고 장성해집니다.

 그러기에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은 나의 도움을 입어서 하나님이지만 당신 혼자 하실 수 없는  일을 나의 도움을 입어가지고 하나님이 계획한 그 모든 행사를 다 하시고 옳은  행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하는 것은 그리되면 나는 이제 하나님이 나를 돕는 도움을 힘입어 가지고  내가 할 일을 다 하게 됩니다.

 내가 영접하면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은 나의 도움을 입어가지고  당신의 할 일을 다 이루시고 나는 당신의 도움을 입어가지고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을 다 하게 된다 하는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실 일은 무엇인가? 내게 대해서 하실 일은 무엇인가? 내가  대해서 하실 일은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온전자를  만드시는 것이 주님이 내게 대해서 할 일입니다. 이 일을 다 완성한다는  말입니다.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씀은 나는 나 혼자로서는 절대로 내가 할 의로운  일을 내가 걸어갈 거룩한 걸음을 내가 맡은 바의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감당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가지고 내가 이것을 잘 감당하여 이 세상에서  나 할 직분, 나 할 책임, 나 할 본분, 나 할 의무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요구하시고 명령하시고 목적하신 일을 다 이루어 가지고 간다 그말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그 말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을 입어가지고  당신이 당신 할 일을 다 하시고 나는 당신의 도우심을 입어가지고 나 할 일을 다  한다 그말입니다.

 그래 주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그 말은 하나님은 도움을 입어가지고 당신이 할  일을 다 하시고 나는 당신의 도움심을 입어가지고 당신이 당신 할 일을 다  하시고 나는 당신의 도움심을 입어가지고 나 할 일을 다 한다 그말입니다.

 주님이 하실 일은 무엇인고 하니 나를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 만드시는 것이  당신의 할 일이요. 또 나 할 일은 무엇인가? 나 할 일은 내가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참 영원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만물이 소원하는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내가 되어지는 것이 또 나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과 내가 하는 그 일이 내게 대한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께 대한 내 일이 결국은 같은 일입니다. 이런데 영접하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을 입어가지고 당신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또 나는 당신의 도움을  입어가지고 나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그러면 좀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엇이 부족해서 내 도움을 입지  않으면 당신이 그 일을 못하시는가? 내 도움 없이 못하시는 일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과 같은 온전한 자 만드시기 위해서는 그  요소 중에 제일 귀한 요소가 자유인데 이 자유는 내가 하나님께 드려서 내가  이걸 소원합니다 하고 내 이 자유가진 이 자유를 내가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되지 하나님이 내 자유를 강제하면 내 구원은 절단나기 때문에 이것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고 하니 내 자유 이것을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이 일을 하는 것이 내  자유를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하는 이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제일  어려운 일이요. 뭐 그 외에야 우주를 복종시키는 것 뭐고 어떻게 하는 그런 것은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대해서 자유를 살려야 이것이 되겠는데 내 자유  이것은 강제도 못하고 능력으로도 못하고 내가 내 자유를 하나님께 바쳐야 하기  때문에 내가 자유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 자유를  가지고서 이제 하나님에게 복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원합니다.

나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데 내가 자유를 가지고 나는 하나님 싫습니다. 배척이요. 내게서  나가십시오. 이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이지마는 내 이 자유성을 살려가지고  구원할려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쫓겨나가야 합니다.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내가 이렇게 주님을 영접하면 내 자유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배척할 수도 있고 영접할 수도 있는데 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이것과 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영접만  하면 그 다음에 능치못할 게 없소. 못할 게 없소. 다 할 수 있소.

 이러나 내가 자유를 하나님에게 바치지 아니하면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도움을 입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수 없는 내게 대한 것은 내 자유를  내가 하나님에게 바쳐야 되지 하나님이 강제로 뺏들 수도 없고 탄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합니다. 나는 너의 도움을 입어서 내 목적을 달성하고 내  도움 입을 게 무언가? 내 자유를 가지고 마귀를 영접하려고 하면 마귀를  영접하고 마음대로 하는데 하나님을 영접해 드리는 이것이 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 내 자유를 가지고 자유를 하나님 영접하는 이 자유로  쓰는 이 도움을 입어서 하나님이 내게 대한 뜻을 다 이루고 그리되면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면 이제 나는 전지 전능의 사랑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지혜의  부족함이 없고 능력의 부족함이 없고 사랑의 부족함이 없어서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목적하신 대로의 나는 완성인이 됩니다. 완성인, 완성인이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 구속받은 성도에게 대해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어냐?  할 수 없는 일이 무어냐? 제일 어려운 일이 무어냐? 우리의 자유를 감화  감동시켜서 내 자유를 능동적으로 하나님에게 내 자유를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도록 내 자유를 가지고 내 자유를  하나님에게 바치도록 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제일 어렵고 우리에게는 무엇이  어려우냐? 하나님의 전지 전능 이 분의 도움이 아니면 내가 이 어두운 사이비한  세상에서 완전한 행위와 완전한 사람 성공을 할 수가 없는데 이 분의 도우심을  입어야 이것을 할 수 있지 인간의 힘으로라도 아무도 할 수 없는 이 어려운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이면 다 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이 일이 제일 어렵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도움을 입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도움을 입는 것은 내 자유를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배척할 수도 있고 영접할 수도 있는데 영접하는  이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제일 어려운 것이 내가 하나님을  영접하게 하는 이게 제일 어렵고 영접하기만 영접해서 하나님이 들어오기만 하면  그 다음에 나는 능치못할 것이 없소. 알지못할 것이 없고 능치못할 것이 없소.

이루지못할 것이 없소. 이런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며칠동안 귀신 공부를 합니다. 제 1 계명에 "너는 나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하지 말지니라" 제 2 계명은 "너를 위하여 네가 절하고 섬길 수  있는 그런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것이 2 계명입니다.

 그래 영계에서 천사 중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앞에 범죄해  가지고서 쫓겨난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 천사들의 수는 굉장히 많습니다. 영계는  이 우주 이것으로 형언할 수도 없을만치 영계는 수가 광대합니다.

 이러기에 영계에 한 천사가 범죄해서 타락할 때에 그 천사에게 속한 그 단체는  한꺼번에 범죄해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로 영원히 어두운데 머물게 했다  하는 그 말은 이 천사는 제한없는 활동을 했었는데 이제는 극히 제한을 받았고  하나님의 빛을 보지못하는 털끝만치도 옳은 것이 없는 전부 삐뚤어진 이  가운데에서 삐뚤어진 자로서 머물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본 지위에서 쫓겨났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실 때에  전투해서 이것을 이겼습니다. 그때에 이것은 영계에서 완전히 쫓겨나서 우주로  오게 됐습니다. 이제 우주에서 지금 하나님의 성도들로 더불어 저희 때가  얼마남지 아니했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예수님 재림 때 쫓겨나면 이제는 무저갱에  갇힙니다. 무저갱에 갇혔다가 예수님의 재림 후 천년 왕국 때에 천국 왕국이  끝날 때에 잠깐 이것이 해방을 받습니다. 받아가지고 천년 왕국 번식 민족을  완전히 범죄케 해 가지고서 전멸을 시킨 다음에 자기의 많은 부하를 만들어  가지고 영원 무궁토록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어두움의 왕으로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천사를 이름하기를 그 대장을 말하기를 사탄이라 이렇게 이름했고  이것은 통치성을 가진 천사 타락한 그 장을 가리켜서 사탄이라 하고 그 밑에  사람들을 이렇게 미혹을 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일을 실패케 하는  실패하게 하는 이 천사를 가리켜서 마귀라 이렇게 성경에 이름했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혼돈시키고 혼잡시켜서 어지럽게 만들어 가지고 삐뚤어지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귀신들이라 이렇게 성경에 표시했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 이것을 총칭해서 악령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숫자가  많아서 한 사람 속에도 여러 수천 악령이 들어가서 머물 수 있습니다. 군대 마귀  들린 그 사람에게는 이천 마리 도야지 떼가 있는데에 그 귀신들이 한 마리에  도야지 한 마리에게 한 악령이 들어가니까 이천 마리가 다 모든 생각이 거꾸로  되어가지고서 바다로 들어가면 죽는데 스스로 다 바다로 들어가서 몰사했습니다.

이것은 악령이 들어가면 어떤 사람이라도 생각과 소원과 비판과 평가와 주장이  정 거꾸로 됩니다. 이 군대 귀신들린 이 사람은 돌로 제 머리를 제가 치고  사랑하는 가족과 있는 그 좋은 처소를 버리고 죽은 송장들이 있는 무덤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거처를 하고 좋은 옷을 벗어버리고 송장입던 옷을 입고 이렇게  모든 게 거꾸로입니다. 이것은 귀신들린 자를 하나 보여서 우리에게 귀신이  들어가면 이렇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악령은 그 수가 사람의 수의 몇배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악령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 사람을 주장하는 그런 사람도 있고 그  속에 들어가 가지고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그런 사람도 있고 악령을 다  쫓아내서 악령이 그 사람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그 사람 밖에서 이 사람 넘어  뜨릴려고 이렇게 우는 사자와 같이 둘러싸고도 돌아 다니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많은 악령은 우리 주변에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령은 사람보다 힘이 굉장히 강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로서는  아무리 잘났다 해도 악령의 군졸이 되어있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사람을 대하든지 사건을 대하든지 물건을  대하든지 내가 대할 때에 반드시 그 배후에 하나님의 신과, 악령이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물건을 대할 때에 좋은 물건이나 나쁜 물건이나 귀한 물건이나 천한  물건이나 아주 값이 헐한 물건이나 비싼 물건이나 반드시 물건 배후에는 보이는  물건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과 악령의 신이 그 배후에 둘이  있습니다.

 있는데 불택자에게는 둘이 있을 때에 어떻게 있는고 하니 악령은 불택자의  왕으로 그 배후에 있습니다. 왕으로 이것은 벌써 원죄로 정죄 받아서 악령의  것이 되어있기 때문에 악령이 왕으로 자기의 군졸로 지금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계시느냐? 불택자의 배후에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으로 자연 은총의 하나님으로 그 사람을 정죄하신  하나님으로 심판하신 하나님으로 저주하신 하나님으로 사망케 하신 하나님으로  그 배후에 계셔서 그가 세상에서 오래 살든지 또 잠깐 살고 말든지 그 기간은  악령은 저희 통치를 완성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적인 은혜와 자연 은총의  은혜는 죽는 날까지 그대로 베풀어 주시고 다만 그들 심판하실 심판의 완성을  이루고 정죄의 완성을 이루고 이제 저주의 완성을 이루고 사망의 완성을 이루면  그 사람은 세상 살이가 끝이 납니다.

 이것이 불택자에게 보이는 사람이나 사물 이면에 있는 두 영입니다. 우리도 꼭  그와 같은 자이었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이것을 완전히 면제받았습니다.

이제는 면제받은 우리에게는 사람과 사물을 내가 상대할 때에 그 배후에 있는  악령은 어떤 악령으로 배후에 있느냐? 과거에는 나에게 왕으로 있었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왕권을 빼앗기고 다만 그를 유혹시켜서 나의 구속을  이루려고 하는 이 구원을 실패하도록 하려는 패잔병처럼 나를 유혹시키는 이  악령으로 그 배후에 붙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택한자라도 미혹할 수 있으면  미혹하려고 달려듭니다.

 이래서 택한 우리들이 그의 미혹을 받아 옛날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실패한 것과 같은 그런 실패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배후에 따라 붙어 있습니다.

이게 언제까지 따라 붙어 있느냐? 내가 세상을 떠나는, 그 떠날 때까지 떨어지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따라붙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촉하는 현실에는 반드시 나를  유혹할 수만 있다면 유혹해서 넘어 뜨릴려고 하는 이 악령이 뒤에 따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그 배후에 계시느냐? 과거에는 창조의 하나님으로  자연 은총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 정죄의 하나님, 저주의 하나님, 사망케  하는 하나님으로 배후에 계셨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자연 은총은  사망케 하는 자본으로 주시지 아니하고 구속을 받을 수 있는 자본으로 주시는  하나님으로 바꾸어졌고 심판의 하나님이 나에게 사죄를 입혀주신 하나님으로  정죄를 하신 정죄의 하나님으로 있던 하나님이 나에게는 칭의의 하나님으로 나와  원수되어 사망케 하는 하나님으로 계시던 이 하나님이 나에게는 생명의  하나님으로 이렇게 배후에 계시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나는 현실에서 사람이든지 일이든지 물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과  악령이 둘이 지금 나란히 따르고 있습니다. 따르고 있는데 거기서 나는 자유를  가졌습니다. 자유를 가져서 악령을 영접할려면 악령을 영접할 수 있고  하나님이신 성령을 영접할려면 성령을 영접할 수가 있습니다. 절대 성령님도  나에게 자유로 침입 못합니다. 악령도 나에게 자유로 침입 못합니다.

 과거에는 자유로 침입했지마는 예수님의 이 승리로 인해서 저가 예수님에게  패전했기 때문에 왕권을 가지지 못했는고로 자유 출입하지 못하고 에덴 동산에서  타락 이전의 사람이 그것을 영접할 때에 들어온 것처럼 내가 이 자유를 가지고  영접하면 이것이 내게 들어오지 강제하지를 못합니다.

 또 하나님도 내게 자유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자유성을 아껴서 이것을 살려 구원하려고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해서 나에게 자유 출입을 못하고 악령은 왕권을 빼앗기기 때문에  자유 침입을 못하는 이런 현실 입장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내가 자유를 가지고 어느 것을 영접하느냐 하는 이것입니다. 이제는  성령님도 참 가슴이 도곤거리면서 이제 나를 영접할건가 하시고 고대하십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마음, 그 안타까움을 가리켜서 "내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하신 것입니다.

 또 악령도 갖은 수단을 다 들여서 제 부하 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불택자들을 다  통해서 우리의 악습을 통해서 마구 미혹을 시켜가지고 네가 이렇게 해야 된다.

저래야 된다. 이렇게 미혹을 시킵니다. 그럴 때에 마치 성경에 말하기를 한  여인에게 두 남자가 있는데 지금 두 남자를 이 여인이 자유 선택으로 어느  남자를 네가 선택해서 영접하든지 영접하고 하나를 영접하면 하나를 배척하는  것이고 이를 영접하면 저를 배척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면 악령을 배척하는 거고  악령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인데 그럴 때에 꼭 이와같다고 얼마나  시기 질투 가지고서 참 말할 수 없는 그 마음의 뜨거움을 가지고 기다라고 있을  때에 만일 그 사람이 악령을 척 영접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은 그때  굉장한 ( )을 당합니다. 자가 애인 뺏긴 것과 꼭같다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은 음행하는 여인같은 너희여 네가 세상을 좋아해서 그것을  영접하는 것이 곧 음행, 본 남편 버리고 음행하는 것과같은 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 성경에 시기하기까지라는 말씀을 네가 헛된 줄로 아느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나와의 영영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끊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현실마다 이게 따라옵니다. 따라와 가지고서 그 현실에서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을 영접하면 성령이 가져오신 법적 사죄를 내가 받아가질 것이요  그 현실, 내 기능이 법적 사죄를 그 기능이 받아서 그 기능은 사죄를 받아가진  기능이기 때문에 그 기능은 다시 정죄가 없습니다. 그 기능은 법적 정죄를 받아  가지고서 그 기능이 요 칭의를 자기가 받아 가지고서 의를 받은 의로운 기능이  됩니다. 다시는 이를 저주하지 못합니다. 법적 하나님의 화평 결합의 새생명을  요 기능이 그 현실에서 하나님을 영접하므로 영생을 가져오신 그 영생을 내가  받아서 내 기능이 살았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을 영접한 그 심신의 기능은  사죄를 가진 기능이요 칭의를 가진 기능이요 영생하는 새생명을 가진 기능이기  때문에 그 기능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  기능은 죽음이 없소.

 그때에 거기 이용된 동참한 모든 사물들도 그것이 다 영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도 동록도 세월도 해하지  못하고 모든 죄악도 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그것을 빼앗지 못한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하나님께서 사죄, 칭의 새생명 주신 것을 그 현실에서 내 기능이  그것을 받아가지는 것입니다. 주를 영접하므로 받아가지는 것이요 그것이  일차적으로 사죄로서 사죄받은 자로 행동하는 것이요 칭의받은 자로 행동하는  것이요 새생명받은 자로 행동해서 그 기능이 이제 사죄, 칭의 새생명 가진 자가  되어진 것으로서 완전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졌고 그것이 곧 양자, 몸의  구속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주님과 접한, 이제 친밀을 가졌습니다. 그때에 그렇지  아니하고 그 현실에서 악령이 자꾸 유혹시킵니다. 유혹시키기를 네가 봐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가정이 낭패 안되나 사업이 낭패 안되나 돈이 손해  안되나 네가 이런 억울한 것 보고 어찌 견디겠노 네가 이런 매장 당하고 견딜 수  있나 억울함 당하고 견딜 수 있나? 네가 이렇게 정직하다고 세상 따라 살지 그래  뾰족하게 하다가는 사업도 절단나고 네 모든 것 절단난다 참 그놈이 그렇게  꼬운다. 꼬우면 그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대로의 그 법칙대로 그대로  딱 따라 나가면 그것이 이제까지 일한다고 따라오시는 성령님이신 하나님을  내몰라라 딱 배반해 버리고 악령을 딱 영접해 가지고서 이제 좋다하고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그 현실에 죄냐 의냐 무죄냐 유죄냐 생명이냐 사망이냐 이  귀로에서 주님이 구속하신 것은 내가 받지를 안하고 배반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능은 구속을 입지못했고 악령의 미혹으로 인해서 사망에서 벗어나게 했던  예수님의 구속을 다시 배반했기 때문에 옛날 사망으로 돌아가서 둘째 사망의  해를 입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평소에 자기가 어떻게 하는 것보다도 참 우리는 일생동안 주님과 나와의 요  애정적인 이 세상에서 남녀 애정적인 문제와 같은 요 자극이 극심한 요런 그  현실 현실을 일생 동안에 수백 번 수천 번 통과합니다. 거기서 둘이 이래서 서로  따라서 서로 차지하려고 이렇게 쌀 때에 그때에 악령을 척 물리치고 '주여!'  하고 영접할 때에 주님은 얼마나 만족하시고 그걸 잊지 못해 그것 잊지 못해 그  끝이 영원히 있어.

 그럴 때에 이제 있다가 모른 척 하고서 주님을 척 배반하고 '미안합니다' 하고  주님을 척 배반하고 악령을 딱 영접했을 때에 주님이 그 섭섭한 것은 말할 수  없어. 말할 수 없어. 요 현실로 우리는 영원 무궁의 주님으로 더불어 애정을  맺고 끊는 이것이 현실 현실에서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래서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린다 둘이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나를 영접할래  그를 영접할래 어쩔래 어쩔래 이럴 때에 내가 문을 열면 네가 나를 영접하면 네  자유성을 가지고서 '주여! 나는 당신을 영접합니다. 당신을 딿습니다.' 하는  것으로 당신의 법칙을 내가 채택할 때에 그것을 내가 택할 때에 악령은 낯이  벌거이 해 가지고 분해서 돌아서게 되고 이 분을 착 영접하면 그 현실에 당한  것은 당신은 내 자유를 당신에게 바쳤기 때문에 내 자유를 당신이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는 당신의 도우심을 위하여 내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게 분담된 구원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르기를 오늘밤에는 우리 ○○○집사님을 전도사님으로 인허해 가지고 남해  북림 교회에 ○○○조사님의 후임으로 이제 부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화평인데  그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강한 자가 누구요 강한 자가 누구요 문  밖에서 두드리는 주님을 영접하는 자 이 자가 강한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요  능력있는 자요, 땅위에서 제일 기쁘고 즐거운 자가 누구냐? 결혼의 첫사랑이라고  결혼의 첫사랑, 이제 남녀의 부부가 척 만날 때에 얼마나 기쁜데 기독자는  하나님은 남편, 자기는 신부로서 하나님과의 신인이 애정의 과제가 시간  시간마다 새 결혼이 이루어져 하나님과 나와의 결혼의 첫사랑이 시간마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 기쁨을 누리는 사람보다 기쁨이 있는 사람이  없어. 이것이 기독자의 행복인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소망을, 희망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4356 주님과 대립된 자리에 서지말라/ 요한복음 11장 36절-44절/ 821001금새 선지자 2015.12.19
4355 주님과 나와 상호내주 하면 새사람이다/ 요한복음 15장 5절-8절/ 880108금새 선지자 2015.12.19
4354 주님과 그날을 보고 살 것/ 고린도전서 4장 3절-5절 / 830616목새 선지자 2015.12.19
4353 주님과 결합/ 요한계시록 18장 3절/ 810112월새 선지자 2015.12.19
4352 주님,나,믿음 생각할 것/ 요한계시록 3장 18절 상반절 871030금새 선지자 2015.12.19
4351 주님 한 분에게 얻고 피동되는 사람 / 이사야 31장 1 절-4절/ 850216토새 선지자 2015.12.19
4350 주님 중심-삭개오/ 야고보서 4장 1절-5절/ 830421목새 선지자 2015.12.19
4349 주님 중심-삭개오/ 요한일서 5장 5절-8절/ 830228월새 선지자 2015.12.19
4348 주님 재림의 날 준비/ 마태복음 24장 32절-51절/ 870907월새 선지자 2015.12.19
4347 주님 잊어버리면 환난온다/ 마태복음 14장 22절-28절/ 871126목새 선지자 2015.12.19
4346 주님 잊어 버리면 환난온다/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71127금야 선지자 2015.12.19
4345 주님 잊어 버리면 마귀된다/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71128토새 선지자 2015.12.19
» 주님 영접-전도사인허/ 요한계시록 3장 20절/ 790907금야 선지자 2015.12.19
4343 주님 사모의 이유/ 요엘 2장 15절-27절/ 830220주후 선지자 2015.12.19
4342 주님 사모의 이유/ 시편 73장 25절/ 830417주전 선지자 2015.12.19
4341 주님 사모-동행-피동/ 갈라디아서 2장 19절-21절/ 860223주후 선지자 2015.12.19
4340 주님 사모 동행/ 시편 73편 12절-28절/ 841211화새 선지자 2015.12.19
4339 주님 사모/ 시편 73편 25절-28절/ 840618월새 선지자 2015.12.19
4338 주님 사모/ 시편 73장 13절/ 830306주후 선지자 2015.12.19
4337 주님 사모/ 아가 4장 6절-10절/ 821009토새 선지자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