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5:27
주님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가깝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곧 구원의 종말, 우주의 종말, 개인의 종말 다 이것이 같은 성질에 속한 것입니다. 이 남은 기간이 많지를 않기 때문에 이 구원 이룰 기간이 급박하니 얼마든지 세월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저 낙관하는 그런 마음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이룰 시기가 많지를 못합니다. 젊은 사람이라도 그러하고 나이 많은 사람도 그러하고 이 우주의 종말이나 우리 구원 기간의 종말이나 개인의 종말이 아주 급박하다는 그 느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종말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도록 해 놨습니다. 아무도 모르도록 그렇게 아버지만 아시도록 이렇게 해 놓은 이유가 뭐인가? 멸망할 자는 멸망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자는 구원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교만하고 강퍅한 자는 이 종말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남았지 하고서 죽는 그 시간까지, 예수님의 재림하는 그 시간까지 망령과 강퍅을 부리고 있음으로 택한 자도 교만하고 강퍅한 자들은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또 불택자들도 다 같이 그렇게 종말 시간을 모르도록 두었습니다. 택자나 불택자들이 다 슬기로운 자는 아, 종말 시간이 일 년이 남았다든지 한 달이 남았다든지 그라면 남은 기간을 알겠는데 그 시간을 언제인지 모른다, 밤사이에 도적같이 임한다 이랬으니까 오늘도 그 시간인지를 모르겠고, 이 시간도 그 시간인 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한 시간도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심히 급박함에서 살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그렇게 알리지를 아니한 겁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때가 가까움이라 말했습니다.
시간에 대해서 또 한 군데 말한 데가 있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속히 될 일이라 말은 신속히 된다는 뜻입니다. 신속히 된다 무엇보다도 빠르다 이것은 유다서에 말한 거와같이 우리의 이 구원이라 하는 것은 시간이 많지만 단번 구원이다 하는 말입니다. 단번 구원.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수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시간에는 이 심신의 기능의 속량함을 받고 또 저 시간에는 저 시간에 속량함을 받아야 할 심신의 기능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이미 받아 놓은 것이고 이것을 강직하면 거게서 능력 나오고 지혜 나와 가지고 심신의 속량, 구속, 곧 심신의 기능구원을 이루는 것이 건설구원이요, 행위구원이요, 성화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영광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단번으로 끝나 버립니다. 이 시간에 해당된 그 심신의 기능은 이 시간에 세상과 주님이 주신 대속과 두 사이에 끼어 가지고 있는 우리들인데 이 현실에서 세상을 내가 영접하면 예수님의 대속은 그 시간에는 내놔야 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이미 법적으로, 심판적으로, 계약적으로는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대속의 구원을, 사죄, 칭의, 화친의 이 구원을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을 현실에 내어 주지 아니할라면 세상을 내줘야 되고, 이 둘 중에 하나만 취하지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 이거든지 저거든지 결정을 지우고 그 현실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정지운 그 현실에서 자기는 이미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이것을 실상으로 영원히 입어서 내것 만들었는지, 대속을 입기는 입었었는데 실상이 되는 현실에서 부정했기 때문에 자기는 대속을 입었던 것을 벗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에 둘째 사망의 해라 말은 처음에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망을 첫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얻은 이 구원을 제가 버려서 영원히 멸망받는 것을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단번 단번으로 끝난다 그러면, 이 시간에도, 이 시간에 해당된, 이 시간에 내가 전투하는, 투쟁하는 이 시간 전투에 참전한 내 심신의 기능이 있으니 이것은 이 단번으로 영원 멸망이 되든지 영생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 결정된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능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 기능 전투에 참전한 것은 내 몸 안에 있는 것뿐 아니고 나를 바라보고 내게 속한 모든 만물들이 거게 있습니다. 거게 참관한 모든 만물들이 있는데 그 만물들도 내가 이 전투에 승리하면 그것들도 다 구원을 받게 되고 내가 패전하면 그것들도 다 멸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뭘 고대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하는 것을 고대한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뭐이 자유인고 하니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중생됐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것이, 그것이 자유 생활이요, 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강제에 눌리고 미혹에 끌려서 이 세 가지 대속을 벗고 사는 것은 자유를 뺏긴 것이요, 그 상대방에게 종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현실 구원에서 내 심신도 구원 얻고 만물도 구원을 얻고 내 심신이 멸망당하면 만물들도 멸망당하기 때문에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는 것을 만물들이 고대하고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소망하고 있다.
탄식한다는 말은 애타하는 것과 걱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히 될 일이라는 요 뜻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 요거는 조금 뭐 여러번, 내가 요새 여러번 이 말씀을 했습니다. 아마 양성원 학생들은 '뭐 할라고 자꾸 저렇게 자꾸 그 말씀만 하는가?' 하는 그런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또 '아, 말씀하고 또 말씀하니 여러 번 그 말씀을 하시니까 여러 번 말씀할 아마 이유와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말씀하니 한번 들어보자. 뭣 때문에 자꾸 그 말씀을 하는가?' 또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또 아, 여러번 말하는 가운데서 처음 들을 때에 자기가 이 말씀을 이해한 것, 깨달은 것 있을 것이고, 두번째 말할 때에 또 더 깨달은 것 있을 것이고, 세번째 말할 때 더 깨달은 것 있을 것이고, 네번째 말할 때 더 깨달은 것 있을 것이고, 이러니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져서 깨달음이 확고해지고, 또 깨달음이 확고해질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이 광대해지고, 그 범위가 넓어지고, 또 그 깨달음의 힘이 강해져서 자기가 깨닫는 대로의 실상으로 만드는 그 실상이 만들어지는 그것이 차차차차 달라진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아마 그렇게 해 주지를 안해 그렇지 백 번 말하면 백 번에 더 좋고, 천 번 말하면 천 번에 더 좋고, 말할수록 자꾸 거기서 수입이 나니까 이제는, 수박을 겉으머리로 핥았다가 알맹이 먹는 것처럼 이렇게 자꾸 이 말씀을 듣고 읽고 새김질하니까 거게 자기의 인격이 살찌고, 믿음이 살찌고, 자기의 소망이 살찌고, 또 참고 견디는 인내가 살찌고 이렇게 자꾸 살찌는 그것을 보니까 자꾸 좋아서 달라드는 그런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마지막 말한 이런 학생들은 뭐 앞으로 그대로만 나가면, 참 지금은 우리가 이 총공회 산하에서 너무 빈약하고 우리가 길을 바로 닦지를 못해서 빈약하지만 그런 분들은 우리가 닦아 놓은 이 그래도 토대 위에서 나가면 뭐 세계를 아주 주름 잡을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복음 역사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또 이 교역자회기 때문에 이 말씀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증거하는데, 나도 증거하면서 자꾸 새로 깨닫고, 새로 또 힘을 얻고, 새로 또, 소망을 가지고, 새로 용기가 나서 새 발족 새 발족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재미 없는 것 뭐 누가 합니까? 실은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 젖 먹이는 것도 젖 먹이면 어머니가 아이를 위해서 젖 먹이는 줄 알아도 젖 먹이는 재미가 있어야 되지 젖 먹이는 재미 없으면 젖 못 먹입니다. 나중에 가만히 보면 처음에는 아이에게 젖을 안 빨리면 못 견뎌. 아이 젖을 빨리면 자기도 시원하고 이래 기분이 좋아서 그 안 빨리면 안 돼서 아이를 찾습니다. 이래도 나중에 젖 빨리는 재미가 없으면 그만 그 아이를 보면 두드려 됐니다. 자꾸 젖 달라 한다고 자꾸 뚜드려 패고 이렇게 짜증을 내고 이래요. 그래 내가 그걸 가만히 물어 봤어.
그 젖을 빨면 어찌 되느냐? 젖을 빨면 아주 시원하니 그렇게 아주 지긋지긋하게 아주 간질간질하고 좋대요. 그렇습니까? 그렇대요. 그런데 아 젖 뗄 때가 되면 젖 꼭지 물면 징그럽고 아무 맛이 없대요.
그것 모양으로 여러분들에게 이거 여러 번 가르치는 것이 아, 이 교인들이 몰라서 이렇게 이러니까 한 번 가르쳐 모르니까 두 번 가르쳐 주자, 세 번 가르쳐 주자, 교인들에게 뭐 알리기만 위해 가지고 가르친다면 그거는 재미없으니까 젖 뗄 때 되면 젖꼭지 무는 것이 징그러워서 그만 짜증을 내고 뚜드려 패고, 또 이 아이는 또 젖이 안 나오니까 또 자꾸 젖꼭지를 깍깍 무니까 더 또 지금 기가 막히고 이런 것 모양으로 여러분들에게 여러 번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번 말씀을 하는데 나도 재미가 있습니다. 왜? 여러분들이 알아들어 깨달아서 구원 잘 이루니까 재미있는 그 재미보다도 나는 또 내대로의 내 구원 이루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니까 자꾸, 한 설교를 또 하고 한 설교를 또 하고 자꾸 그라는 것이오.
요 간단하게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은 이 계시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이 계시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는 말이오 그 안에 들어가서 내용에 하는 말은 예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 안에 나타나 있다 예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계시되어 있다. 계시되어 있다 말은 나타나 있다 말입니다. 나타내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계시했다 하나님이 나타내셨다 그말입니다. 예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여게 계시되어 있다 하는 말이오. 그 안에 더 들어가서는 예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것을 택자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있다 주시기 위해서 있다 이 세 가지 뜻을 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그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예수의 계시라는 것은 뭣인가? 예수의 계시는 예수의 은혜가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따로 있는데, 예수님의 은혜는 무슨 은혜인가? 예수님의 은혜는 이 영원 자존하신 그 하나님, 하나님이 삼위인데 삼위 일위 이위를 말하는 게 아니고 삼위 일체이신 그 하나님, 근본 자존하신 유일 한 분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과 우리 택자들과 완전 연결을 시킨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완전히 화합을 시킨 것이 예수님의 은혜요, 또 그리스도의 은혜는 뭐인가? 화합된 자가, 화합된 자가 영원히 영생을 할 터인데 영생을 하면 어떻게 영생하느냐? 영원히 사는 법칙이요, 영원히 행할 직책이요, 영원히 자기의 사업이 되어 있는, 기업이 되어 있는 기업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러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뭐인가? 제사장의 은혜요, 선지자의 은혜요, 왕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영생하는 생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 영생하고 선지자로 영생하고 왕으로 영생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직책이 있는데, 천직이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직책이 있는데 그 직책을 잘해야 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고 은혜 주시지 직책 그거 안 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시지 뭐 복 줄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직책이 있는데 그 직책이 뭣인가? 제사장직, 선지직, 왕의 직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우리가 생활하는 생활의 법칙이요 영원한 우리의 직책이요 영원히 모든 피조물들과 우리와의 관계를 맺는 이 관계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인 것입니다. 세 가지, 만일 우리가, 하늘나라 가면 모든 만물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환영하고 이렇게 예수님을 주라고 했고 예수님에게 속한 우리도 주라고 이렇게 할 터인데 그들이 우리를 주라고 이렇게 소망하고 기다리고 환영하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곧 그들과, 내나 하나님이신 예수님 말이오. 그들과 예수님 사이에 우리가 중보노릇합니다. 제사장노릇을 합니다. 선지자노릇을 합니다. 왕노릇을 합니다. 이 일을 하니까, 그 일 하니 만물들이 고대하면서 탄식하고 기다리는 거는 뭐입니까? 아, 내가 그렇게 세 가지 직책을 하니까 그게 전부 위로는 주님이 좋고, 주님이 좋아서, 주님이 좋아. 주님이 좋고 옆으로와 아래로는 모든 피조물이 다 좋아합니다.
어머니가 좋고 또 장자가 좋습니다. 좋은 거는 왜 그러느냐 하면 아버지가 그 아들들에게, 그 다음 아들들에게 좀 노함이 있어서 이놈을 종아리를 치든지 어짜든지 치든지 이거 이라고 말 잘 안 들으니까 이라는데 아버지가 노할 것은 형이 노하고 아버지가 타이를 것을 형이 타일러 가지고 맏아들로 말미암아 그 밑에 모든 자녀들이 그것이 아버지에게 접선 될 때에는 벌써 잘 조화가 맞아 가지고 아버지가 아들들 보면 항상 좋아 하기나 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기나 하고 그 모든 것을 수습하는 것이 장자 책임이라 말이오. 그러면 그 장자는 참 가치 있는 장자라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 우리의 직책인 것입니다. 아, 또 어머니가 좋은 것은, 아버지가 그 자녀에게 대하면 그만 성낼 일이고 '안 된다' 안 줄 수 있는 일인데 아, 그 사이에 중보자 어머니가 들어서 아버지에게 살살 이해를 키고 또 여러가지 말하니까 안 줄라 하다가서 '그래, 주지.' 이러니까 아버지와 자녀와 그 사이에 어머니가 중보 역할을 잘하기 때문에 어데든지 가정 거석한 집은 아버지에게 말 안 합니다. 어머니에게 말을 하고 그래 어머니를 통해서 말하면 일이 잘되거든. 그러니까 어머니 있기를 원하고 자꾸 그 기회를 노린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직책을 받는 것은 이것이 주님이 이 세 가지 직분 때문에 당신이 우리를 좋아하시고 또 그 직분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이 좋아하고 그것이 우리가 모든 피조물과 우리의 머리되신 주님과 그 사이에 중보 역할 하는 것이 이 그리스도의 직책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일을 세상에서 연습합니다. 이 세상에서 또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는 그것이 모두 인간을 구원하는 것.
제사장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조화를 잘 맞춰 가지고 하나님께 직접 가면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직접 오면 우리가 갑셔서 죽고 이럴 터인데 그 사이에서 이거 조화를 잘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올 수 있고 우리의 것이 하나님에게 얼마든지 갈 수 있어서 이래서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인데 원수 사이에 이거 제사장으로 인해 가지고 서로 화목해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못 견디고 우리는 하나님을 좋아해서 못 견디는 이 조화를 맞춘 것이, 그것이 제사장이라 그거요.
그러면, 예수님의 그 대제사장직으로 말미암아 그와같이 된 것입니다.
또, 선지직이라는 것은 어떤 게 선지직이냐?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충만할 것을 피조물들에게 줘야 이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그 충만을 그것을 받아 가지고 그들이 유지도 되고 성장도 되고 행복도 누릴 수가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그 충만한 것을 주실 때에 우리에게 그거 뭣을 직접 주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걸 주실 때에 이 말씀을 주시요. 말씀을 주셔 가지고 교훈으로 주시고, 또 계명으로 주시고, 또 이해로 주시고, 진리로 줘 가지고 자꾸 이렇게 줘 가지고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선지는 뭐이 선지냐 하면 인간들이 모르는 것을, 하나님에게 있는 그것을 인간들에게 알려 줘서 알려 준 그대로 하니까, 그대로 하니까 돈도 되고 그대로 하니까 건강도 되고 그대로 하니까 권세도 되고 그대로 하니까 뭐 옷도 되고 밥도 되고 다 됩니다. 평강도 되고 영생도 되고 다 돼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그 무한한 것을 이것을 이 피조물들에게 전달해 주시는, 전달해 주는, 말하자면 운반역입니다. 전달역, 전달의 직책, 전달역, 운반역, 전달 직책이 그것이 선지직인 것입니다. 인제 그것이, 이러니까 아, 우리로 통해서 그들이 얻지, 아니면 못 얻으니까 얼마나 요긴하겠습니까? 실상 세상에서는 예수님 다음에는 교역자요, 예수님 다음에는 교역자가 제일입니다. 왜! 교역자가 하나님의 것을 잘 선지자노릇해서 전달해 주면 아, 전달한 대로 말씀대로 행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돈도 되고 부자도 되고 뭐 뭐 밥도 있고 지위도 되고 출세도 되고 입신도 되고 양명도 되고 다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 이 주시는 것을 뭘로 주시느냐? 그 진리로 주시는데, 그 진리를 교인에게 잘 전달해서 교인들이 그 진리대로 행하니까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행복이 다 된다 그 말이오. 그것이 선지직이기 때문에 목사는 선지자요, 그러기 때문에 실상 교인에게는 예수님 다음으로서는 제일 보배가 뭐이냐 하면 교역자입니다. 교역자가 제사장이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다음으로는 제일 보배요.
그러면, 왕직은 뭐이 왕직인가? 왕직은, 하나님은 영원 불변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계획한 대로 그분의 법칙대로 모든 것을 통치하시지 그분의 법칙을 어겨서 통치하지 않는다 말이오. 그러면 그분 통치와 우리 행동은 영 천리 만리 거리가 먼데 우리 행동은 우리 행동하고, 그분 통치는 그분 통치대로 하고, 그분 통치와 통치가 대립이 되어지면 약자가 강자에게 패망하는 거는 정한 이치 아닙니까? 그럴 터인데 이제 왕직이라는 것은 그분의 통치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 우리가 잘 조화를 해 가지고 그것을 이 간접적으로, 또 하나님이 직접 아니고 우리를 통해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접이라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모든 만물들에게 이렇게 이 전달해서 그 만물들의 모든 움직임이, 모든 택자들의 움직임이 그것이 하나님의 움직임에게 피동돼 가지고 단일 통치에 다 그것이 화합돼 가지고 통일 통치를 되게 하는 것이 왕직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는 참 좋은 은혜요, 보배로운 은혜요, 이 이상이 없는 이 은혜인데 이 은혜가 어디 기록돼 있느냐? 이 계시록에 기록돼 있다 그 말이오. 계시록에 기록돼 있다 그러면 계시록에 기록돼 있으면 이 계시록은 뭐인가? 마지막에 육십육 권째 되는 이 요한계시록을 말합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을 말하는데, 요한계시록 속에 들어 있다. 이 구원이 요한계시록 속에 들아 있다. 요한계시록 속에 들어 있는데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냐? 이 책은 신구약 육십오 권에 있는 모든 내용을 마지막으로, 이 사람들이, 때가 가까운데 사람들이 귀넘어 듣고 하기 때문에 육십오 권을 간추려 가지고 마지막 결론으로 내려 놓은 것이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육십오 권을 간추려 놓은 것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해석은 육십오 권을 아는 사람은 내나 그것을 그대로 다 강령을 한테 간추려 가지고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해석은 뭐 가장 쉬운 것이 요한계시록 해석이오. 육십오 권을 간추렸기 때문에, 육십오 권을 안 사람은 요한계시록을 안 봐도 그것을 다 기록해 낼 수 있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이오. 육십오 권을 이것을 자기가 전면적으로 알고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알지 못하고 육십오 권은 모르면서 마지막 결론 내놓은 요한계시록만 자기가 연구해서 알라고 이래 하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의 깨달음은 천리 만리로 다 탈선돼 나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석 쳐 놓고 탈선 많은 주석이 뭐인가? 계시록 주석입니다.
그러면 이단이 어디서 제일 많이 나왔는가? 이단이 제일 많이 나온 것이 창세기서 제일 많이 나왔고 요한계시록에서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시작에서 많이 나왔고 끝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이 한 권으로 간추려 말했으나 이것은 실상 육십오 권에 있는 게 다 내포됐기 때문에 이 육십오 권이 다 간추려 된 것이 이 계시록이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어디 담겨 있느냐 육십육 권 신구약 성경 속에 담겨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요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 담겨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2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증거했다' 요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말씀과, 예수 그리즈도의 증거, 자기 본 것 이 세 가지로 말했는데 요 세 가지는 하나입니다. 요 세 가지는 하나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곧 사도 요한이가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 발에 끌리는 옷을 입었다. 일곱 금 촛대가 있었다. 또 그 얼굴이 햇빛같다.
또 그 털이 눈같다. 또 피 뿌린 옷을 입었다. 또 말을 타고 싸움을 일으키신다. 또 여인이 낳은 아들이다. 이 아들을 죽일라고 모든 이 붉은 용이 마구 물을 토해 가지고 아들을 떠내려가게 하려고 하니까 땅이 여자를 도와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물을 삼키더라 이제 계시록에 기록한 전부가 그게 뭐이냐 하면, 곧 본 것이 뭐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라 그 말이오. 본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은 예수를 이런 예수라 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했는데 이런 예수라 하는 것이 요한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렇게 형식 그 상징 계시를 가지고 이렇게 보여 줘서 나타나 있다. 그러면 이 계시 내용 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계시되어 있는 이 계시인데 그 계시는 어떤 것이냐? 요한계시록인데 곧 신구약 육십육 권 전부다. 요게 이해가 돼 야 됩니다. 이해가 안 되면 소용없어, 마귀란 놈이 자꾸 안 되도록 한다 말이오.
엊저녁에 내가 증거한 말씀도 증거하니까, OOO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OOO목사님이 나를 아끼고 혹 다른 데 염려가 돼서 말하기를 그거 잘 말해 줬어 '아, 그 베드로가' 그때 내가 해석한 것은 베드로가 처음에 부름 받아 가지고 주님 앞에 이와같이 각오하고 주님 따랐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지금 나갔다 이렇게 해석을 했고 그래야 그 해석이, 내 해석은 맞는 것인데, '아, 그런 게 아니고 그 베드로가 그때 처음으로 예수님 만나 가지고 처음으로 예수님 딿게 된 그 사실입니다. 아, 마가복음에도 있고 요한복음에도 있고 누가복음에도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아, 그게 그렇게 되는 날이면 공연히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에 맞지 안하고 해석한다 하면 그게 화딱 다 뒤집어지고 만다 말이오. 이래서, 그래 그라기 때문에 내가 '아, 예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라고 내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끊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라 그거요. 요한복음에 나타난 것이 제일 첫째 베드로가 그때 처음에 예수님 믿기로 시작하고 그때 벌써 주님이 게바라는 이름을 그때 줬습니다. 게바라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그때 증어 마태복음 16장에 줬지만 요한복음에는 1장에, 1장 몇절인가 거게 줬습니다. 그래 만나 가지고 그런 과거 가지고, 그 다음에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가 만난 것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돌아갔던 그 자책에서 자기가 굴복도 하고, 예수님 배반하고 간 것은 뭐이냐 하면 자율이요, 주관이 그 세상 지식 따라서 갔기 때문에 이제 그것이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이오. 그라고 보니까 이 전부 자기가 알고 있는 이 세상 지식 모든 이것,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 그 말은 이 복음 말고 복음 전에 있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지식은 다 뱀의 지식이요 인간을 망친다는 것입니다. 이거 다 비교해 보니까 '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두려워 견디지 못하겠다 그 말이오. 아, 요렇게 함축돼 가지고 우리 구원이 지금 좌우되는데 요걸 성경을 모르면 아 그게 제일 처음에 만난 거라 하면 이 해석은 다 거짓말이고 다 틀려 버리고 말았다 그 말이오. 성경은 그런 게 아니라 말이오.
성경은 그게 맞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로 알지 안하고 하면 그 구원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도 늘 하는 말이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교리와 신조를 가져야 되는데 교리라면 어떤게 교리인가? 교리로 말하면 어느 시대라도 그 깨달음이 변동 안 하는 그 깨달음이라야 되지고, 또 그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다 깨달음이 다 공통이 돼야 되고, 공통성과 역사성이 있는 것이라야 교리가 되지지 그렇지 않으면 교리가 안 된다 말이오. 개인이 아무리 자기 교리라고 해도 자기 교리라고 오늘은 이래 깨달았다 또 내일은 저래 깨닫고 평안할 때는 이래 깨닫고 급하면 저래 깨닫고 그렇게 하는 그거는 교리가 그거 단일 교리가 아니라 그 말이오. 이래서 모든 중복적인 다수의 교리와 신조를 가지지 말고 너는 단일 교리와 신조를 가지라 하는 그걸 많이 말을 했습니다.
그 OOO 목사님이 어떤 신학자의 그 교리서를 읽어보고 '말은 잘했고 많은 말은 해 놨고, 해 놨지만 이 책은 생명이 없는 죽은 책이다 그래 정죄를 해 버렸어. 그 모르는 사람이 '아, 세계에 유명한 이거 교리서인데 그렇게 말하는가?' 뭣 때문에 그렇습니까? 이것은 이 책에는 이 사람은 이렇다 저 사람은 저렇다만 말했지, 그러면 저자 본인은, 나는 이렇게 믿는다' 하는 그때 그 말은 안했어요, 그분이 그분이 '단일 교리와 신조를 가지라' 그 소리는 안 해도 '자기 신조와 교리가 없으니까 그 사람은, 그 책은 책보따리 책이지, 그 사람은 책보따리지 그거는 산 사람이 아니라. 신앙으로는 산 사람이 아니라.' 꼭 옳은 말했습니다. 이거 대신학자들이 다 들어야 될만한 참 정금같은 보배로운 말이지만 그 말을 정죄하고 교만하다 그렇게 조롱하고 있지 그렇게 가치 있는 줄 또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귀 있는 자는 듣는데, 귀 있는 자는 들을 건데, 양심 있는 사람은 들을 건데 양심 없고 명예 영광주의로 있으니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저거 가르치는 거와 예수님 가르치는 것이 다르니까 예수님 가르치는 게 분명히 옳기는 옳은 줄 알지만 긍정하는 날이면 자기 가르치는 것이 다 똥이 돼 버리고 다 짓밟힐 것이기 때문에 알고 반대했다 말이오. 알고 반대했어. 그와 마찬가지로 양심을 썼으면, 그말이 옳다. 내가 과연 뭘 믿느냐? 이 뭐 이 박사는, 이 신학자는, 이렇게 이 사람의 신조는 이렇고, 저 사람의 교리는 이렇고 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어떻게 믿나?' 요게 대해서는 자기가 결정을 짓지 못하고 벙벙하이 이래 놓으니까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신조로 말하면 환난이지만 이 신학 박사의 신조로 말하면 환난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때는 이 교리와 신조로 피하고 저 때는 저 교리와 신조로 피하니까 자, 그라면 구원이 됩니까 그게 마귀의 유혹에 제가 빠져서 실패입니까? 구원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안 되지 다 실패지. 그러기 때문에 이제 하나로 알아야 돼.
어제 우리 O목사님이 좋은 것 말했어. 그래 가지고 이거는 아무데가 이렇다 저렇다 해도 이거는 틀림없다 요렇게 확고하게 성경적으로 알아 가지고 알아야 자기가 생명을 내댈 만한 가치가 있고, 이거는 주님이 말씀하셨다. 전능자가 말씀했다. 대주재가 말씀했다. 이는 창조주가 말씀했다 주권 개별 섭리자가 말씀했다. 만왕의 왕이 말씀하셨다. 우리 구속주가 말씀하셨다.
이러기 때문에 이분은 신실하신 분이니 이분이 말씀한 건 틀림없다 이분이 말씀하셨다. 이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죽는 데 나가도 이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것이니까 죽으면 굉장한 영광의 죽음으로 됐으니까 영광의 부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또 때가 안 됐으면 천지가 다 죽여서 불 가운데 집어넣었으니까 불에 타는 거는 정한 이치지만 타지 안하고 솟아날 것이고, 사자 구덩이에, 굶은 사자 속에 들어갔으니까 의례히 죽는 일이지만 때가 안 됐으면 거기서 살아 나올 것이고 뭐 든든하다 말이오.
그러니까 염려 없이, 하루 종일 자꾸 이리 쌓아니까 하도 애가 타서 뭐 그 사랑함으로 이리 쌓고 애가 터져 쌓는데 마지막에 있다가 '안 됩니다.' 입 아프니까 다른 사람 실컷 말하고 나니까 '안 됩니다. 왕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우상에게 절 안할 줄 아십시오.' 이게 온유입니다. 이게 온유. 온유라는 거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그 온유는 껍데기 온유고 이게 온유라 온 천하가 어찌 된다 해도 자기는 주님이 요렇게 하라 하는 그 주님의 말씀을 단단히 잡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딱 잡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천지가 요동돼도 천지를 만드신 그분하고 나하고 한덩어리인데 문제가 뭐요? 예? 천지가 다 요동하고 반대한다 할지라도 천지를 만드신 그분하고 나하고 단 둘이 단짝이 딱 돼 가지고 한덩어리가 됐는데 그분 의사하고 나하고 틀렸으면 하지만 그분 의사하고 나 하고 한 의사, 그분 행동하고 나하고 한 행동, 그분하고 나하고 딱 들어 붙어 하나가 됐는데 그까짓 게 문제가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아무데나 든든하고 평안하다 말이오. 그것이 온유의 올바른 해석인 것입니다. 그게 온유요 물론 그게 있으니까 사람들한테도 조급하지 안하고 따뜻하지요 유유하고 여유가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그러면, 이제 뭐 시간 없으니까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이 예수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원은 신구약 성경 속에 들어 있다.
신구약 성경을 제 신구약 성경으로 삼아야 이 구원은 제 구원이 된다 이 구원은 신구약 성경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 구원을 차지할라면 신구약 성경을 차지해야 된다.
또, 하나. 그런데 신구약 성경은 곧, 신구약 성경 속에는 이 천상 천하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것과 이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이 보고 말하기를 '아, 이거는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이로구먼. 피조물이로구먼'한 사람이 그걸 한 모때기에서 보니까 '아, 이 신구약 육십육 권은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이 이 안에 들어 계시네. 그러면 이 신구약 육십육 권은 창조주요 피조물이로구먼.' 또 그렇게 말 한다 그 말이오 이 모든 것이, 모든 영계나 물질계 모든 피조물 뭐 여게 있는, 이 시에 집이 있다, 들이 있다, 산이 있다, 나라가 있다, 뭐 모든 것 말이오. 하나도 빠짐없이 그 모든 것이 성경에 다 들어 있거든.
그 모든 게 성경에 다 들어 있지 않소? 이 성경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이 성경 속에 나타나 있다.
성경 안에 들어 있다. 그 체 안에 들어 있다 하면 요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안에 들어 있으면 자, 큰 그릇이 안에 들어가요 작은 그릇이 안에 들어가요? 예? 뭐 이 안에 들어가? 작은 게 안에 들어가지. 그라면 이 육십육 권 가운데에 창조주와 피조물이 다 들어 있다 하니까 육십육 권은 그보다 더 크다 말이요? 신구약 성경은 그보다 크다 말이요? 자, 큰 게 안에 있습니까 작은 게 안에 있습니까? 작은 게 안에 있는 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큰 게 안에 있는 줄로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허 그 참, 그 들기 어렵지요 나 같으면, 큰 게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손 들고) 작은 게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 (손 들고) 왜? 큰 게 안에 들어가는 것도 있고, 또 작은 것이 안에 들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언제 내가 물으니까 큰 게 안에 있다고 다 그래 모두, 이 설교하고 난 다음에 물으니까 큰 게 안에 있다 해.
여러분들, 저 지금 만 명 군대가 있으면 저 맨 가에 변두리에 포위하고 있는 그 군대가 높은 거요 저 속에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 가지고 저 속에 알맹이에 앉아 가지고 있는 그게 큰 겁니까? 어떤 게 큰 거요? 뭐이 크요? 속에 있는 게 크다 말이오. 인제 그 가치가 없으면 겉으머리 겉으머리 가마니로 싸고 가마니로 싸고, 가마니 속에는 가마니보다도 더 좋은 이거 판자, 판자로 싸고, 또 판자 속에는 이거 뭐 스치로폴이니 뭐 이 푹석푹석한 이런 걸로 싸고, 또 그 싸고 난 다음에 보니까 좋은 아주 원단 가지고 좋은 복슬복슬한 것을 싸고 그 속에 뭣 들었느냐? 그 속에 보석이 뭐이 들었더라 그거요 그렇지 않소? 이 껍데기보다 그러면 가치적으로 말하면 그 안에 있는 게 가치 가 더 있지 않습니까? 이제 그런 것을 자꾸, 왜? 사람들이 자꾸 의견이 넓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이런 말 한다 말이오 의견이 좁기 때문에 자꾸 일방적 지식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을 이해를 못 한다 그 거요.
그러면, 이 신구약 육십육 권에는 아,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가뜩 계시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을라면 신구약 성경을 자기 것을 삼아야 된다. 아, 신구약 성경에 들어 있다. '신구약 성경?' 또 하나가 자세히 보고는 '아니다. 이 계시 속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들어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 천하 만물 천상 천하의 모든 만물이 이 속에 들어 있다. '이라니까 이제 한 사람이 있다가 '이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들이 다 들어 있다.' '아, 여게는 육십육 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들어 있다. 이 구원 들어 있는 거는 육십육 권이 성경이다.' 나중에 가서 자꾸 의논을 해서 갑론을박하다 보니까, 나중에 88가서 자꾸 갑론을박해서 하다 보니까 '아, 이 셋이 하나로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발견이 될 거라 말이오. 이 셋이 하나로구나. 이 셋이 하나로 발견됐구나. 계시돼 가지고 있구나.
이 셋이 하나에 계시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가? 신구약 육십육 권을 알아야 된다. 그러면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기의 것을 삼을라고 하면 어떻게 삼을 수 있는가?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를 자기 것을 삼아야 한다. 또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를 자기 것을 삼을라고 하면 또 어찌 해야 되는가? 이제 그거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육십육 권 도리를 자기 도리로 삼을라면 어떻게 삼아야 됩니까? 인제 모르지 언제 삼아야 됩니까? 언제? 똑똑히 말해 봐. 언제 삼아야 됩니까? 현실에 삼아야 돼. 현실에 삼아야 돼. 현실에 삼아야 돼. 아, 현실에 삼고 나니까 육십육 권 도리를 내것을 삼고, 현실을 내가 내것을 삼고 현실에 현실을 내것 삼지 안하면, 현실을 내것 삼지 못하면 육십육 권 도리는 내것 못 삼습니다. 현실에 그때에 육십육 권 도리를 내가 긍정하고 믿고 내가 그대로 육십육 권 도리와 자기와 어느 진리든지 말이오. 현실에 자기와 나눠지지 안하고, 현실에 나눠질래 합해질래? 그때 나눠지지 안하고 딱 합해 가지고 있으면 그 진리는 영원한 자기 진리가 됐습니다. 자기 것이 됐어. 자기 것, 그 진리가 자기 것이 됐습니다. 자기가 됐고, 그러면 그 진리가 자기 것 됐소. 또 그라면 현실이라는 모든 피조물은 누구 것 됐습니까? 피조물은 누구 것 됐소? OOO목사님. 피조물은 그 현실 그거는 누구 것 됐어? OOO목사님은 뭐 그만 그 꽉 막히는가배. 자기 것 됐어. 현실에서 이 육십육 권 도리는 다는 아니지만 그 부분적으로 육십육 권 도리는 현실에서 내것 되고, 현실에서 내것 되구로 살았으면 그때에 있는 현실 모든 피조물 그것은 누구 것 됐습니까? 누구 것 됐어? 내것 됐지 내것됐으면 또 나는 누구 것 됐습니까? 나는 누구 것이 됐습니까? 진리의 것 됐지, 주님의 것 됐지. 이러니까, 내 이하의 거는 이 현실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다 내것 되고, 나는? 이 현실로 말미암아 나는 내 위에 영원 자존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이분의 것이 됩니다.
이것이 요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그 말이오.
요것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에는 이 셋이 합했는데 하나 얻으면 서이 다 얻을 수 있고 그 하나 못 얻고 뺏기면 서이 다 실상은 뺏겨 있다.
저는 현실에서 진리를 뺏겼으면 하나님도 저는 뺏겼고, 또 진리도 뺏겼고, 만물도 뺏겼고, 자기도 뺏겼고 다 뺏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셋이 합해서 하나라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가지고 대번에 모르면 또 새기고 또 새기고 해 가지고 아, 과연 아멘! 하고 자기의 그 모든 그 지식과 자기의 욕망과 모든 것이 이 계시와 일치가 됐을 때에 자기 구원이 되어졌고 자기는 이제, 통일한,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되는 여기에 그 시민권을 자기가 자꾸 성장시켜 나갑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보배로운 현실인데, 현실을 뭐한테 뺏기겠어? 뭐 한테 뺏기겠어? 이 영원히 안 뺏기고 모든 거 다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뭣을 얻기 위해서 뺏긴 사람, 뺏을 얻기 위해서 이거 내놓은 사람 얻기 위해서 진리 내놓은 사람은 진리만 내놓은 것 됩니까? 뭐 내놓은 것 됩니까? 예수님 내놓은 것이오.
진리와 예수님만 내놨습니까? 또 뭣 내놨습니까? 예? 만물도 내놨고 또 뭣 내놨어? 자기도 뺏겨 내놨고, 또, 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도 내놔 버렸습니다.
완전히 전멸되고 말았어. 완전히 망해 버리고 말았어.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에서 진리 버리면 하나님 잊어버렸고, 자기 잊어버렸고, 만물 잊어버렸고, 구원 잊어버렸고 다 잊어버렸어. 요 현실에 진리 잡고 나가면 진리 차지하고 보니까 모든 거 다 차지했어.
요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요게 말씀을 해놨 고, 이러니까 누구들만 받습니까? 아무도 받지 못해요 그 여러 종들에게 줄라고 이제 계시했다 했습니다. 종들만이 얻어요 종들만이 이러니까 여기 사도도 '사도에게' 하지 안하고 "그 종 요한에게" 종이라고 들먹였다 말이오. 여게는 종이 제일 중요성을 가졌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원은 종, 주님의 피로 값 주고 피에 팔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이 내것 됐으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되는 것이 그게 합당한 법리 아닙니까? 너희들이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합당한 그 법리적 예배니라. 예배라면 하나님 섬기는 건데, 법리라 말이오 그 법리. 법이라 그거요. 아, 주님의 대속이 내것 됐으니까 내거는 주님의 것 돼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그 종이라.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아, 종은 세 가지 종이 있다 안 했어요? 그 말 못 하는 종은 농구, 도 구, 또 움직이는 종은 소 이런 것, 또 말하는 종은 사람, 그러면 뭐 그 도구나 자기 부리는 소나 종이나 꼭 같이 취급해 팔아먹을라면 팔아먹고 죽일라면 죽이고 없앨라면 없애고 그것이 근본 종의 제도요. 그 암종, 여자종, 돈이 옹색하니까 이 암종을 팔아먹어야 되겠다 이런데 장에 가지고 가니까 '아이구 배 안에 뭐 그게 들어 가지고 있으니 안 사겠다 하니까 할 수 없이 새끼 낳고 난 다음에 팔아먹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그 그걸 지금이라도 잡아 빼내 버리고 팔아먹을 수 있으면 하지만 잡아빼내 버리면 죽을 터이니까 헛일이라 말이오. 제가 낳도록 내둬야 돼. 낳고 난 다음에, 이제 낳았으니까 가자' 아, 낳았으니까 낳아 가지고 지금 가지고 갔다 말이오. 새끼가 쫄쫄 딸린 걸 가져갔어. 가져가니까 '아, 이거 쓸모는 있고 좀 좋기는 좋고 값은 비싸도 쓸모는 있겠는데 요거 사면 싶은데 이 새끼가 딸려서. 아이가 딸려서.' '아, 그건 내가 감당하지요. 그거 내가 떼어 가겠습니다.' 금방 낳은 것 아이 딱 떼고 팝니다. 팔면 사 가지고 갑니다. 그러면 아이는 어짜요? 아이 그거는 키우느냐? 아이를 그날 죽여도 관계 없다 말이오.
어디 똥구덩이 넣어도 아무 데도 관계없어 죽여도 관계없어. 이게 종의 제도요.
이런고로, '그 종에게' 이렇게 종된 자만이, 이래 가지고 이거 대속의 은혜를 똑똑히 깨닫고 나는 사나 죽으나, 살아도 주의 것이요 죽어도 주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다시는 네 자신을 위해 살지 안하고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종들만 이 구원을 얻습니다. 이러면 그 종질하면 이게 손해입니까? 이 종질하는 것 종질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성공이 됩니까? 이거 알고는, 알고는 예수 안 믿을 사람이 없고 알고는 실행 안 할 자가 없고 알고는 순교 닥치니까 순교 안 할 자가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하루 30분기도 요거 여러분들이 자꾸 30분기도 계속하는 걸 예사로 여기지 마십시오. 요것이 큰 뜻이 있어 가지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인데 요것이 뒤에 가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괴로운 것 같지만 뒤에 참 바짝바짝 철판 그 벌거이 달군 철판 위에 놓고 마치 다글다글 볶는 그때의 그 어려움을 지금 조금 어려움으로써 다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움을 주 모우면 나중에 그만한 어려움이 되기 때문에 양이 되는 것 만치 자기에게는 피난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