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모시고 말씀 생각하고 살자

 

1989. 1. 19. 목새.

 

본문: 계 1:9-20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자기가 꼭 실천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거게서 자기의 깨달음이 나오게 됩니다. 또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잊어버리지 말고 이것을 꼭 계속해야 됩니다. 뭐 밤에 하든지 낮에 하든지 자기  미래를 위해서, 삼십 분 기도는 이거는 필연적으로 다 해야 되고 마음만 가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똑 밤에만이 아니고 언제든지, 늘 우리가 다른 기도하지마는 자기와 자기에  관련된 사람들의 장래를 위해서 장래, 앞으로 그 환난을 위해서 환난에는 신앙을  계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사짓는 사람이 다 지어 가지고 추수할 때에 다  비맞혀서 썩혀 버리는 것 마찬가지로 마지막 추수기와 같은 그런 요긴한 때 가서  신앙 없어 망령부리고 의심하고 두려워 떨려 가지고 일생 동안 신앙 생활하는  것을 다 헛일하기 쉽다 그거요. 그래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계속합시다.

 또 권사님들은 다 나왔고, 장로님들은 다섯 분만 나오고 다른 분은 그 동안에  다녀서 갔는지 어쩌는지 밤으로 기도하는 데에 오는 데에 안 왔다 그겁니다.

 또 성경 공부에는 백구십일 명이 참석해 가지고 계속, 또 이백 얼마 됐다가 자꾸  이렇게, 이 참 아주 여게 참석해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거 얼마나 복있는지  모릅니다. 부모네들이 신앙이 있는 정신 차린 사람 같으면 서울대학 보내려고,  애쓰는 그런 것의 백 배도 더 여게 성경 공부 하는 데 참석시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거는 실효가 있지마는 그 가는 거는 다 자기 망하는 길이 되는 사람이  대개 뭐 백의 구십구나 되고 참 공부해서 자기에게 유익된 사람들은 많지를  못합니다.

 꼭 평가하기를 세상만 보기 때문에 공부하면 세상에서 뭐 사기 협잡을 해도  낫지. 그렇지마는 그게 신앙 생활까지를 연결해서 본다고 하면 공부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영원한 준비에 대해서 실패하는 사람이 많지 유익 보는 사람은 뭐  백에 하나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영원 무궁세계는 떼놔 버리고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살이만 생각하고 계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러나 이 성경 공부 하는 이런 것은 세상만 계산해도 그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 있지, 망할 수 있는 그런 죄짓지 않지,  또 무궁세계도 그렇지. 이런데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서 제가 늘 이래 계산을  가만히 대 보면 나도 그렇고, 나도 그때는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다 하지마는 믿는  지식이 일방적이고 전체를 몰랐어 전체를 모르기 때문에 자녀에게 대해서 행한  일은 전부 내가 들어서 자녀를 망쳤지 다른 이가 망친 거 보다 내가 들어 자녀를  망쳤어. 나는 그때는 그걸 몰랐기 때문에 이제 후회가 돼서 말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효력이 있을 수 있는, 참 지금은 또 암만 옆에 사람이 말해도 안 듣는다  그거요. 개인 개인을 따져봅니다. 내가 아는 대로. 그 사람은 자녀를 누가 망쳤노?  전부 부모가 자녀 망치는 일만 하지 유익되게 하는 일은 하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부모가 없어서 비참한 그것이 다 성공을 하고 부모가 들어서 세상 일  성공 시킨다고 하는 거게서 전부 다 망하고 죽고 맙니다. 그래 성경 공부, 하는  학생들이 벌써 백구십여 명이 한 이백여 명씩 매일 모여서 성경 공부하는데 저는  자녀에게 대해서 그걸 묻습니다. 반사 하나? 묻고, 아직 어려서 못 한다 하면  '성경상 받았나?' 묻습니다. 뭐 반사 할 만한 연령에 반사하고 또 성경상을 받을  만한 연령에 성경상 받으면, 거게도 혹 잡것이 있기는 있어. 없는 거는 아니라.

이렇지마는 대개는 성공입니다. 보니까 이학년에서, 이학년에서 성경 통신과  초등강 고등강까지 졸업한 그 학생이 있다 하니까 그거 어찌 됩니까? 그것을  끝까지 그렇게 시키면 성공이 되는데 부모네들이 잘못해 가지고 그 보배로운  것을 순전히 실패하기 쉽다 그말이오. 그거 자꾸 다스리고 지도를 해 줘야 되지  이러니까 이 귀하다 하고 그대로 냅두면 헛일이라.

 요 지금 와서 앉았는지 모르지만, OOO목사님의 딸들 손 들어 봐요. 딸들? 아들  손 들어 봐요. 저희 딴에는 별세계를 만나고 발견했다 싶어서 '내가 이래도'  네까짓 게 암만 해 봤자 뭐 고시 공부를 준비 해 가지고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나  또 어떤 고시에 통과를 했으면 그 뭣할 건가? 어리석어. 그 가치를 다 우리는 다  경험하고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내가 칭찬을 하고 '그 참 귀하다' 이래  칭찬했는데 그만 그것을 그 뒤에 단속하지 아니하고 이래 버려서 뭐 신앙 다  팔아 버리니까 헛일이라. 뭐 별수 없어.

 저 저 하나 앉았네. 저 뭐꼬 O 뭐꼬? OOO. OOO. 그거 여기 주일학교 학생  때에 유명한 사람들이오. 이래 놓으니까 이것이 그때부터 조심을 해서 그러면 될  터인데 이게 그만 저희를 칭찬하니까 이 조금 예수 믿다가 저 바깥에 나가  보니까 이 사람도 접촉해 봤자 그까짓 거 몇닢푼치 안 되고 저 사람도  접촉하니까 몇닢푼치 안 되고 돌아다니며 접촉해 보니까 '내가 잘났다 조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까 조금 소견을 열어 주고 지혜를 열어 주니까 접촉해  보니까 모두 다 깔보고 제가 으뜸 같거든. 그래 가지고 신앙 버리고 이래 가지고  나가니까 될 것인데 다 헛일되고 말아. 깎쟁이만 되고 말지 위대한 사람들이 안  된다 말이오.

 그것들도 내가 칭찮했더니만 그래. 그래 놓으니까 모두 말하기를 그래 말해.

'목사님 칭찬하면 그만 그뒤부터 그 사람이 시험에 들어 헛일입니다.' 내가  칭찬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줄 알지마는 칭찬하는 이유는 뭐이냐? 그거 하나  옳게 되는 걸 칭찬하면 그것 보고 다른 사람도 따라서 되어지면 이거 많은  사람에 수입이 있을 거고 다 거석하겠다 이랬는데 칭찬하면 그게 그만 그  다음부터 교만하기 때문에 망하고 마는 거라.

 예수 믿으면 똥덩이가 금덩이가 됩니다. 성경대로 살고 이래 하면 아주 굼벵이  같은 그게 용사가 돼요. 이러니까 제가 '내가 이만하니까 차차차 세상에 나가 보니  세상에 자기가 활무대가 되고 잘난 사람이 되어지고 이러니까 나도 이거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어북 잘났구나' 하고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와지면 망해 버리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될라 하다가 망하고 되려  하다가 망해. 저 OOO하고 OOO하고 대티고개서는 둘이 제일이라. 남녀간에  제일이야. 그런데 그 뒤에 신앙을 버려 버리고 교만해 가지고 신앙을 고대로 해  나가지 아니하고 겸손이 없고 그 버려 버리니까 뭐 지금은 그때 같으면 거게  제일이고 우리 교회서도 제일이라고 할 만치 되지만 지금은 제일 아니야. 저  꼼뱅이서 끄트머리 오는 데서 몇째나 될런지 몰라. 찍해야 세상으로 하면 근근히  밥먹고 살고, 이제 새벽기도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됐는고? 새벽기도도 빠질 때  많이 있어. 내가 이것이 어데서 내가 비참하게 됐노? 어데서 이거 보배롭고  굉장한 성공할 이거 희망 있는 것이 어데서 꺾어져 버리고 어데서 큰 침을  맞았노? 그걸 찾아, 원수를 찾으면 '이게 세상이다. 세상은 나의 원수다.' '그래  세상을 내가 잡아 먹어야 되지 세상에 내가 잡아 먹히면 망한다' 이걸 알 수가  있을 터인데.

 사람이 모르면 멸망합니다. 연구 안 하면 모릅니다. 연구해야 되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연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뭐인가? 자기 자신을 연구해. '내가 어데서 망했으며 어데서 흥했으며 어데  내가 미혹을 받았으며 내가 어떨 때 내가 시험에 들었던가?' 요걸 연구해 가지고  망한 것은 촐촐히 추려 가지고 책에도 기록해 가지고 '내자 요게 망했다, 요거  내가 요거 조심해 가지고 안 하겠다.' 이런 것을 책에다 기록을 뭐 몇십 번 하고  다 그래 하는 사람들이, 몇십 번 하고 몇천 번 몇만 번 자꾸 재독하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참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성공을 하는 것이지 그대로 되는 것  아니오.

 내가 어떤 사람 만나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달라서 암만 회개하려 해야 회개가  안 된다고 보면 참 네가 참 교만하다. 나는 회개하려 해도 회개가 안 된다.'  교만하다. 회개라 하는 것이 그거 얼마나 힘들여 가지고 회개하는데 너는  회개한다 하는 그것이 회개에 나가려고 하면 회개 하는 거 저금 천분지 일도 안  하고 있어. 그 힘에 천 배는 더 들여야 회개가 되어지는 것이지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회개해라 했기 때문에 도무지  그 회개하는 마음이 없다고,' 회개하는 마음이 없다고. 그 사람은 회개 못하는  그것만 보기 때문에 마음이 없다 하고 이거는 회개를 하는 그것만 보니까 항상  회개하는 시간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또 못 알아들을  거라.

 어쨌든지 우리 믿는 사람은 그만 제일 먼저 어릴 때는 할 것이 뭐이냐?  지난밤에도 내가 어데 산에 기도하러 간다 하기 때문에 '가거든 무조건 재독부터  해라. 재독을 몇 번이나 하노?' 이러니까 뭐 세 번 한다는가 그래요. 그 세 번  하면 그거 한 서너 시간 가요, 어찌됐든간에 거석한 재독은 자기가 몇십 번 해야  됩니다.

 그래 내가 또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 그거 살 만 하면 녹음기 조그만한 거  요만한 거 있어요. 요만한 녹음기 조그만한 거 있으니까 요런 거 거석해 가지고  요 위에 남자들 혹 포켙트에 찌르면 돼. 여자들은 보니까, 여자들 옷도 내가 보니  허무하데. 내가 보니까 이거 뭐 전부 여게도 주머니 있고, 그 겉어머리  주머니뿐이지 주머니라 표뿐이지 속에 보니까 손을 넣어 보니까 손이 안 들어가.

이것도 거짓부리 주머니 이것도 거짓부리 주머니 모두 거짓부리 주머니라. 이래  가지고 주렁주렁 달아 놓고. 이게 이렇게 사람을 자꾸 외식을 만든다 말이오.

자꾸 없으면 말이요 조그만한 주머니 하나 딱 달아 가지고 거기다 넣어 놓고. 또  이러면 끼워 넣고, 다른 사람 보면 그뭐 병신이라 하든지 말든지 내 실속 차려는  것이 문제지 그까짓 거 뭐 거석해야지.

 이러면, 다 이 귀 안에다 끼우면 귀가 아프기 쉬우니까 못 거석하면 여기다 이래  걸어가지고, 요 근방에다 달아만 놔도 돼요, 달아만 놔도. 다른 사람 보면 다른  사람 뭐라 하든지 말든지 다른 사람한테 요래 가지고라도 그거 들려진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저 말씀 속에서 한 시간 있고 두 시간 있고, 한 달 있고 두 달  있고, 몇 해 동안 있고 자꾸 그 속에 이리 되어져야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냥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증거도 하고 자기도 또 말씀을 자꾸 듣고 이러는  가운데 되어지니까 어릴 때는 재독을 들어요. 재독을 듣고, 좀 거석하면 이제  성경을 읽어요. 성경만 읽으면 또 모르거든. 재독 듣다 성경 읽다 재독 듣다 성경  읽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그리 되면 진리는 독자적 권위성이 있어. 이 우주를 이  우주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님이 만들었어. 우주는 주님이 만들어. 주님이  만들었는데 주님이 손으로 만들었습니까? 주님이 명령만 하고 당신의 능력으로  만들었는데 능력은 뭐이냐? 진리입니다. 진리가 만들었어,  집을 짓는데 말하자면 주님은 제일 도편수로서 그 집을 짓는데 모든 전체를  총괄해 가지고 하는, 그 주격으로 일하는 총감독이요 총주인이요 건축하는 데  제일 주인공이요, 그 다음에 인부들이 시공하지 않습니까? 인부들이 뭐 철근 끊고,  이기고, 이래 바르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 끊고 이기고 바르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시공자라 이래, 시공자라. 그 실지로 공사 해 가지고 만드는 시공자라  합니다. 우주를 만들 때에 시공자가 누가 시공자입니까? 저 OOO조사님. 녜,  말씀이 시공자라. 말씀이 시공자.

 저 OOO 조사 말이요, 그거 또 생기기도 미남으로 생겼고 또 건방졌어. 꺼뜩  꺼뜰 꺼뜰 이러는데, 아주 건방졌었는데 그 중간반 반사 들어오고 난 다음에 영  사람이 돼 버렸어. 저게 뭐이야 저거 대학을 졸업해서 저게 저거 그렇다, 그래  가지고 내가 그걸 붙들어 쓰기 위해서 건축계 그때 일을 좀 보라 해 가지고  그때부터 붙들려 가지고 차차 차차 와서 그래 인제 중간반이 됐는데 지금은 제법  공부한 것이 이제는 예수 믿는 데 이용이 돼. 그 같이 힘쓰지마는 대학 안 한  사람보다 대학 한 사람들이 그 사람이 훨씬 예수 믿는 데에 도움이 돼. 그게 인제  뭐이냐 하면 세상 지식이 이게 종이 돼 그런 거라. 세상 지식 이거면 산다 하고  세상 지식이 왕이 됐을 때는 등신 바보가 되고, 제 혼자 잘났지 남이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제 그 지식을 이용하면 그래.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르요.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지식은 둘뿐인데 하나님의 지식 이 주인이 되고  세상 지식은 그 종이 되면 그 세상 지식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고, 하나님의  지식이 종이 되고 천하게 보이고 세상 지식이 왕이 되면 그 사람은 그 지식으로  인해서 망하고야 맙니다. 이래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 군데서, 모든 데서  다 한 군데 하나 보면 다른 데 열 가지도 스물도 다 깨달아야 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이를 사랑하면 저를 미워하고 이를 중히 여기면 저를  천하게 여긴다.' 내나 지식도 그래. 이 지식을 보배로 여기면 저 지식은 천하게  여기고 저 지식을 보배로 여기면 이 지식은 천하게 여기는 거라. 그게 꼭 그대로  되고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 공부를 하면서 세상 지식을 자기가 더 필요하고  요긴하고, 가치로 여기기를 더 으뜸으로 여기나? 또 하나님의 지식을 으뜸으로  여기나? 이거 하나님의 지식은 참 이거는 절대적이고 이렇지마는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위해서 하지 하나님의 지식을 버리고 세상 지식 위해서  하나님의 지식을 버릴 수 없다 하는 요런 단계에 있을 때에는 세상 공부를 해야  되고,  만일 그 사람이 그만 공부시키다가 세상 지식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그만 못하게 아주 적게 평가하고 자기에게 그렇츰 요긴하지 아니하다고  이렇게 생각할 새 되면 그만 제가 모르면, 제가 모르거들랑은 부모네들이 중단을  시켜요. 부모네들이 중단시켰다가, 이게 또 하나님의 지식을 더 고조하고 강조하고  이 세상 지식은 거게 속한 것이라, 하나님의 지식은 예를 들어서 크기가 얼마나  크냐? 크기가 이 우주만치 크다고 하면 인간 지식은 그까짓 거 콩알 한내끼에도  지나지 못한다고 이렇게 평가해도 잘 못 평가해. 그렇게 평가해도 더 됩니다.

 이런데 하나님의 지식은 그뭐 켸켸묵은 한글로 써놓은 켸켸묵은 것이고, 이거 뭐  에이비씨니 배워 가지고 뭣을 외국말 원어로 읽으면 '이게 큰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놈은 썩은 놈이고 그놈은 등신 놈이라. 그놈은 속에 인간은 없어져  버리고 그거는 짐승덩어리라. 그까짓 게 무슨 성공해? 이러니까 그것만 가진  것들이 다 이 세상에 주 모여 가지고 뭐 하니까, 내가 보니까 참 서글퍼.

 국회에서도 보니까 그 어떤 사람들은 말 같은 거석하지마는 어떤 데는 뭐 너무,  어떤 사건을 말하는 것 보면 너무, 저래 가지고 우리 국민의 대표로 해 가지고  뭐이 되겠나 싶을 때가 많아. 거게서 조금 뭣한 거는 보면 그래도 성경도 알고  그렇지 않으면 참 아무래도 이거 이 세상 지식 그게 아니라 사람이 지식, 사람이  지식보다 가치 있다. 사람이 가치 있다. 이래서 그때 뭐 임시 모두 빈적거려  가지고 일을 해 나가려는 그것보다도 이게 역사는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뒤에라도 사람이 사람노릇을 해야 되지 하는 거게다 좀 정신을, 가치를 두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아, 보니까.

 어제 저녁에는 보니까 OOO집사님 구역에는 밤 양산동에 기도하러 열세 명이  갔고, OOO집사님 구역은 밤에 양산동에 일곱 명이 갔고, OOO집사님 구역은  밤에 꽃마을로 스물네 명이 갔고, 중간반 반사들도 밤에 꽃마을로 일곱 명이 갔고,  내가 이거 광고하는 거 왜 광고하느냐 하면 이러면 남을 보아서 깨달으라고, 남을  보아서 깨달으라고, 자기들도 좀 깨닫고 그리 못 하면 예배당에서라도,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있는 숙소에서라도 어쩌든지 하나님과 좀 밀접하게 하도록 그렇게  위해서 이 광고를 합니다.

 장로님 광고한 것은 장로님이 다 나왔으면 이거 온 교인이 보고 '아, 장로님도  그렇게 힘을 쓰니까 나도 그래야 되겠다' 이런데 장로님이 아 나오고 이러면  '장로님도 안 나오니까 뭐 우리 안 나오는 것이야?' 그러니까 믿음이 없는 장로는  교인들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믿음 있는 장로는 교인들의 믿음을 올려 준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여게서는 돈 있는 거, 권세 있는 거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보지도 아니합니다.

 이 서부교회는 말이요 돈이나 권세나 지위나 뭐 이런 거는 가치로 안 보거든.

하나님께 대해서 저 사람이 어느 정도 회개를 하나 어느 정도 깨끗하나 어느  정도 거룩하나 어느 정도 의로우나 어느 정도 진실하나 그 신앙 생활은 어떻게  어느 정도 다른 사람에게 모본이 되나 장로는 모든 양무리의 본이 되라 했는데.

이런 것을 가치로 여기니까 가치로 여기니까 다른 교회와 달라.

 이러니까 앞으로 장로들도 한 해 띄워서 삼 년 만에, 그러면 금년에 했으면  명년에 안 하고 그 다음 명년에, 예를 들어서 팔십일 년에 신임투표 했으면  팔십이 년에 넘겨서 팔십 삼 년에 또 신임투표 한다 말이오. 이럴 때 장로님들 다  투표해요. 투표해 가지고 '저 장로는 장로가 돼서 그 신앙 생활 하는 것 보니까  우리에게 모본이 돼서, 우리에게 힘이 되나 안 되나 우리에게 손해가 되나 안  되나?' 얌전한 거 그까짓 거 아무 소용 없어. 돈 많은 거 아무 소용없어. 권세  많은 것도 소용 없고. 어쨌든지 믿음에 본이 되나 안 되나 이것을 해서 이제  신임투표를 할 거라 삼 년 만에. 신임투표해서 신임투표에 떨어지면 장로는  장로지마는 아무 권세는 없어.

 이러면 요 마귀들은 내가 요 말 하면 딱 요 말 듣고 '아, 저 말은 아무 장로님이  저 말 들으면 목사 그래 그 참 덜 좋아해서 욕할 것이고 하니까 요 말 들으면 요  말 어느 장로에게 가서 말해 가지고 고거 내편 만들어야겠다' 요래 하는 그 마귀  새끼들이 있어, 마귀 새끼. 그 불쌍해서 하는 거라. 그러면 제가 망하지 그까짓 게  무슨 힘이 있어?  과거에 교역자들도 모여 가지고 내가 그 사람 책망을 합니다. '너 이렇고 이렇고  나쁘니까 이거 고쳐라. 잘못됐다.' 책망을 하면, 책망하고 난 다음에 조것들 동무가  누구니까 요 책망하면 저희끼리 다방에 가 만나 가지고 '목사님 그렇지마는 그거  너무 그래 가지고 자꾸 인신을 공격하고 그 교역자를 그러면 교역자 어떻게 해?  참.' 이러면 꾸중들은 그놈도 떡 가 가지고 '그래' 딱 들어붙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평생 원수로 지냈는데 예수님 죽이는 데 대해서는 한 덩어리가  딱 돼 버렸어. 그걸 알아. '너희는 다 가 가지고 그럴 것이다' 그놈들 다 망해  가지고, 어데로 갔든지, 뭐. 아직까지 망했는지 안 망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심판  앞에 가 보면 비참하게 망해.

 이래 놓으니까 여기 와서는 뭐 그런 걸 '에헴' 소리 할 게 뭐 있어야지? 전부  신앙 행위만 보고 가치로 삼지 딴것을 가치로 안 삼으니까 여기 와서 뭐 '에헴' 할  게 뭐 있어? 에헴 한다 그말은 무슨 말인지 모를 건데 옛날은 양반들 수염을 쭉  길러서 에헴(수염을 쓰다듬는 모양을 표현) 이래 이러기 때문에 그걸 말하는  거라. 교만을 말하는 거라. 그런 거 부릴 수가 없어. 이래저 우리가 언제 죽을 지  모릅니다. 공연히 배짱을 내고 뽑시지마는 오늘 하나님이 부르면 그만 송장될  터인데 뭐 준비했다고? 그러니까 자꾸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자기 살리려고 하는  것인데 감사한 줄 모르면 헛일이라.

 오늘 아침에 요 말씀 봉독한 건 다른 게 아니라 사도 요한은 사도 중에도  신앙이 아주 견고했습니다. 베드로 저런 분들은 신앙이 왈칵왈칵 이렇게 했기  때문에 위대한 일도 했고 실수도 하고 이렇게 그 신앙이 참 조금 뭣인가 좀  고성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니까 실수도 많고 이랬지마는 이 사도 요한은  신령한 면으로 아주 깊이 들어간 사도요. 이랬는데 이분이 기름가마에다, 끓는  기름가마에다 넣어도 거게서 타 죽지 않고 아무 상관없이 나왔다고 그만치, 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 들어간 것같이 그만치 신앙이 좋았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데 이분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진리대로 살려고 하니까 그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 저거 과격하다' 너무 과격하니까, 저희들의 잘못한 걸 말하고  이러고 하니까 그만 사도 요한을 미워서 단합을 해 가지고 저 밧모섬이라 하는  그 섬으로 귀양을 보내 버렸습니다. 그 섬에는 사람이 사는 섬이 아니라. 사람  살지 않는 섬으로 귀양을 보내면 죽으라고 보낸 것 아닙니까? 그 가 가지고 뭐  처음에는 뭘 갇다 줘 놓고 갖다 줍니까? 죽으라고 보냈다 말이오. 보냈는데,  그러니까 세상 줄이 다 끊어져 버렸고 인인 관계가 끊어지고 그러니까 주님  때문에, 말씀 때문에, 진리 때문에, 복음 때문에 외롭게 되고 비참하게 되고  허무하게 됐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 때문에 이 세상과 인간과 인연은 끊어지니까 하나님과 인연이  들어붙어져 버렸어. 세상과 멀어지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져. 그래 가지고 거게  가서 다른 거 뭐 생각할 게 뭐 있어야지. 평소도 항상 주님 생각했지마는 거기  가서는 주님 외 딴거는 생각할 게 없어. 신앙 동지도 다 없는데 암만 생각해 봤자,  자꾸 친구를 생각해서 우리 같은 사도들을 생각해 봐도, 또 사도들도 암만 생각해  봤자 만나지 못하니까 더 그립기만 그립고 그렇지, 또 가족들도 생각해 봐야  그렇고, 또 거게서 없는 음식을 생각해 봤자 갈급만 나오지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런데 주님은 생각하니까 뭐 거게도 저게도 제한이 없거든. 주님 생각하니까  주님이 생각해져. 주님이 가까와지고 주님이 생각이 되어 집니다. 자꾸 주님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니까 주님이 자꾸 좀 더 가까와지고 더 보여졌습니다.

이러니까 나중에 주님을 보니까, 밧모섬에 가기 전에는 주님이 아주 자기로서는  자기가 참 친하고 그저 존경하는 하나님이라 이렇게만 봤는데 거기 가서 보니까,  똑똑히 눈을 떠 가지고 보니까 두려워서 못 견뎠어. 그만 어떻게 주님이 자기  사랑하는 것도 생각하니까 주님이 자기를 사랑함에 대해서도 알았다는 것이 뭐  백분지 일도 몰랐고 천분지 일도 몰랐고, 또 주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얼마나  거룩하시고 깨끗하신 분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평소에 안 데는 그 근방에도 가지  않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스스로 그만 자결해서 죽어 버렸어. 자결해서 그만,  자결을 해 버렸어. 그만 뭐 자물셨다 말이오. 자결했다 말은 자물셨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이 와 가지고 등어리에 손을 대고 등어리를 어루만져 주면서  위로를 하며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나 네가 내 품에 안겨서 내게 기대서 눕기도  하고 뭐 이렇게 그렇게 만만스럽게 할 그때에 내나 내가 지금 내고, 너희 눈이  어두워서 보이기가 좀 덜 보였지. 지금 눈이 밝으니까 차차 더 보이지 무궁세계  가면 더 내가 누구인 줄 너희들이 알리라' 이래 가지고 위로를 주면서 다시 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라 해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어.

 그러니까 그 세상과 떨어졌을 때에 하나님과 가까와졌고 주를 위해서 세상과  비참해질 때에 하늘나라가 영광스러워졌다 말이오. 예를 들어서 산기도 가는 것도  방에 따뜻한 데 누워자는 것보다 산에 가니까 세상적으로는 곤란한 것 아니오?  곤고한 건 아니오? 요 속에 들어 자는 것보다는 저게 산에 가 가지고, 그 추운데  산에 가서 비니루 한 장 두터쓰고 기도하면 좀 육신적으로는 불리하지 않아?  불리하지마는, 육신적으로는 불리하지마는 심령으로는 더 새로와지고 주님과는 가  까와지니까 반드시 거게는 갔다가 올 때는 기쁘고 즐겁다, 훨씬 기쁘고 즐거울  것이고. 갈 때는 '이거 쓸쓸해서, 모두 오늘 거기 가 있을 터이니까 뭐 오래 되면  어쩌노?' 이러니까 자꾸 가는 사람은 늦춥니다. 가는 사람은 시간도 늦춰. 이거  아홉시에 가자 하면 아홉시 반이야 오지, 또 여덟시에 가자 하면 여덟시 반이나  아홉시나 오지. 자꾸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뒤에 오는 사람이  늦게 와서 자꾸 시간을 늦춘다 그말이오. 그게 뭐이냐? 가기 싫다 그말이오. 가기  싫어 억지로 끌려, 마음은 가기 싫어. 내가 많이 경험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알아요.

 산에 금식기도 하러 가려 하면 가야 되기는 되겠는데 가려 하면 가기가 싫고,  공연히 산에 산기도 가려면 짜증을 지깁니다. 짜증을 지겨, 백지 뭣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말이오. 짜증을 지기고 이래 가지고 뭐 이래 되는데, 그래도 갔다가 올  때는 기쁘고 즐겁다 말이오.

 또 내가 이 내 속에서 하나님과 가까이 가려 하면 방해물이 있다가 또 그  다음에는 뭐이냐? 산에 금식기도나 이래 가려 하면 꼭 사고가 생겨. 사고가  생기는데 무슨 사고가 생기느냐? 나는 그때, 그때 하나님이 주셔서 소가 많이  있었는데, '소가 지금 그 제일 좋은 소가 또 죽는데 여기 와 좀 한번 잠깐 좀 봐  보이소.' 이래 나는 그걸 처음에 모르고 그걸 그거 뭐 생각하고 좀 갔다가, 그래  갔다가 가니까 그만 그때 그것 보고 이러다 보니까 시간 늦어 가지고 못 가고  그만 그 하루 늦을 때가 있었다 말이오. 그 다음에는 그 시험에 안 들었어요.

그러면 그거는 그만 안 될상 바르거든 어서 그만 푸줏간에 거석해 가지고 갖다가  잡아 가지고 갈라 먹어라. 그거는 돈 한푼도 할 필요가 없고 고기 먹어라. 그만  병들었다 하면 갈라 먹어라 해요. 갈라 먹어라 하고 그만 그래 가버렸어.

공짜배기로 뭐 갈라 먹으라 하면 그러면 그 일 추어 버려요.

 이러는데, 나중에 그 시비 지나고 나니까 기도하러 가는데 그런 게 없어. 그게  그러고 난 다음에 사람 시험이 들어와요. 가려 하면 또 그 없던 병이 식구가  아파요. 교인들이 아파서 이거 뭐 위험하고 위독 중에 있다고 이래도, 그거 나는  처음에 또 속았어. '죽거나 살거나 그거는 하나님이 하시지 내가 있다고 무슨 소용  있느냐?'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나 하라고 '나는 또 산에 가서 기도하겠다' 그래  그만 다 이것 저것 다 떼고 이래 가면 나중에 가서는 뭐 아무것도 거석 없는데,  그 나중에 안 되면 제 몸뚱이가 마지막으로는 몸뚱이가 아파서 못 견뎌, 아파도  이놈 또 끌고 가요. 이게 내나 그 시험이라 꼭 같은 시험이라, 이래 가 놓으면  가다 보면 중간에 가다 다 나아 버리고 뭐 갔다 올 때는 기쁘고 즐거워서 이래  뛰어옵니다.

 이렇게 아무리 좋은 거라도 우리와 같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우리와 같이 따라가지 못하고, 권세도 따라가지 못하고, 돈도 따라오지 못하고  끝까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 주님을 지금 사귀는 것은 지금도 사귀고, 또 산에 가도 보면 그분은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산에 가도 사귈 수 있고, 들에도 사귈 수 있고, 또 환난  중에도 사귈 수 있고 이 평소에 자꾸 이분을 사귀어 가지고 주님이 자기와 같이  계시는, 사귀어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런 사람이  뭐입니까? 주님과 같이 계시니까 사람들은 몰랐는데 이제 그거 나타났다 말이오.

 세 사람을 풀무 속에 집어 넣었는데 네 사람이 돌아다녀. 네 사람. 하나  주님이야. 그러니까 주님하고 평소에 장 같이 이래 동거 동행하고 이래 늘  있으니까 같이 있던 그분이 같이 계시는 그것이 사람에게 보여졌다 말이오.

그분들은 평소에 주님과 항상 동거해, 같이. 동거한 다는 그 증거를 풀무 속에 가  가지고야 보여 줬다 말이오. 그러니까 불내도 나지 않았어.

 이분은 말이지요, 아무리 자기를 사랑하고 뭐 친밀하다 해도 그분이 뭐 밤에  따라옵니까? 못 따라와. 이러니까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은, 저는  그렇게 기도했어요. 이래 산에 가면 낮에 함부래 딱 거석해 가지고, 늦게 나서면  안 돼. 일찍 나서야 돼. 일찍 나서 가지고 뭘 좀 먹을 것 준비해 가지고 일찍  나서 가지고, 준비하면 인제 갈 동안에 먹는 거라, 갈 동안에 그만 얼마든지  달아나요. 막 빨리, 그때 뭐 젊으니까 얼마나 날래지 않습니까? 저 첩첩 산중에,  제일 인간 먼데 달아나. 달아나면, 그만 가다보면 깜깜해 어두우니까 거게서 그만  거석하면 인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고 거기 있으면 뭐, 가까우면 돌아와요.

만일 달음질 한 시간 쳐 가지고 내려올 것 같으면 내려와 버려. 이는 원청 멀리  갔으니까 가 봤자 산중. 있어 봤자 산중 이래 가지고 처음에는 길을 들여. 거게서  이래 있어 보면 이것도 저것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저 주님밖에는 찾을 이가  없어. 억지로 주님 찾아. 주님은 거게도 좋고 저게도 좋고, 아무 때라도 급하면  주님 찾아요. 이러니까 주님을 사귀어 놓은 사람은 어데든지 그분 떨어지지 않고  나와 동행해 주시오.

 이러니까, 그러면 우리 주관적으로, 우리 감정적으로 주관적으로 되는 것이냐?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실지로 가 주님을 모실 때 그분에게서 실지로 객관의  은혜가 와 가지고 나를 도와 주시는 그걸 내가 실지로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거든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기 때문에 차차 차차 '이제 세상 것보다도 주님이 낫고  인간보다도 주님이 낫고 뭣보다 주님이 낫다.' 이러니까 자꾸 주님과 가까와지려  하는 것이라.

 이래 밧모섬에서 이분도 주님 만나 가지고 거게서 도리어 밧모섬 가기 전 사도  요한과 갔다가 나온 후의 사도 요한과가 달랐어. '죽기 저에 하늘나라를 볼 사람이  있다' 그말은 뭐, 그러니까 모두 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살아 있을 사람이  있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지마는 그 자리에서도 애를 쓰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주님과 동행해. 다 뭐 하늘나라 가는 걸 벌써 세상에서 다야 모르지마는  거의 다 알고 있다 말이오. '하늘나라 이런 나라.' 자기가 뭐이냐 하면 기도  가운데서 영안이 열리면, 신령한 눈이 열리면 다 하늘나라가 어떻다 하는 걸  확실히 알고 보이지 않습니까?  이래서 어데서든지 주님 동행은 우리에게 동행해 주시고 주님은 제한을 받지  않아. 이러니까 주님을 실지로 모시게 되면 실지로 우리에게, 실지의 효력이  자기에게 오기 때문에, 그런 걸 조그매 맛본 거라. 자기가 심방 갔다가, 갈 때는  다리를 줄줄 끌고 이래 가지고 막 억지로 가 놓고 갔다 올 때는 힘을 얻고,  반사들도 심방 갈 때는 힘없는데 갔다 올 때는 힘 얻고 그게 뭐이냐 하면 주님  만나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평강이요 기쁨이라 말이오. 이렇게 하나 해  봐서 무슨 일이든지 주의 말씀대로 하면 이거 낭패된다 했는데, 낭패된다 했는데  그 일이 낭패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에 가서 보니까 잘 되어져 버렸어.

 이러니까 요 맛을 본 사람은 자꾸 뭐이냐? 산다싱은 말하기를 '십자가 없으면  나는 하늘나라 가 가지고 십자가 있는 데로 보내 달라 하겠다' 왜? 세상에서  십자가, 주를 위해서 손해보는 그 일은 '해다' 했는데 그 해가 들어서 도로 유익이  되고, 자기에게 고통이 평강이 되고, 마음의 근심이 기쁨이 되어지고, 세상 것  좋아서 못 견디는 그런 것은 딱 회개해서 끊어 버리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보니까  그 뒤에는 뭐 얼마나 속에서 평안하고 그 자기 마음만 평안한 게 아니라 몸도  평안하고 자기 사건도 평안해지고 모든 행복도 전체가 다 성공이라.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있는 연습을 하자'  그말이오. 잡아야 돼요.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뭣 때문에 자기와 자손들이  다 망했습니까?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 잊어버리고, 둘 잊어버렸어.

하나님 잊어버렸는데, 하나님 잊어 버렸다 말이 무슨 말이오? 하나님 잊어버렸다  말이 무슨 말이라? 저기 O. 하나님 잊어버렸다 말이 무슨 말이지? 아버지가  대답해 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잊어버려서 그만 죄짓고 실패했거든.

마귀 유혹 받아 가지고. 하나님 잊어버린 게 뭐이요? 아들 말해 봐. 저거  새벽기도만 끌려 나오지 지금 말씀 듣는 귀가 아직까지 안 열려졌는 가배. 요  조그만한 꼬마들 여기 오면 이 성경 공부 한 것들은 싹싹 다 알아요.

 아, 나는 그거 뭐 여자를 저까짓 거 와 가지고 식모살이나 하고 하니까 '그런  따위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그걸, 그게 아주 보배라. 저거 형의 아들하고  동생 아들, 둘이 이 학년인데 성경 통신과 초등강 고등강을 다 통과했대요. 졸업을  했어. 언니 아들도 그렇고 동생 아들도 그렇대. 그래 나는 '저게 뭐인가?' 내가  놀라고 귀하게 봤습니다.

 그래 나는 그래서 그거 좀 신앙이 차차 자라는 줄은 알았지마는 그렇게 자기가  암만 떠들어 쌓아도 그 밑이 캄캄하면 헛일이라.

 그래 뭐 암만 제가 뭐라고 쌓아도 그 아들이 통신과를 이 학년에, 이 학년이면  제가 한글 겨우 읽지 않아요? 이 학년에 통신과를 뭐 고등강까지 마친 것이 그  형제의 자녀라. 이 학년이라 하던가 뭐 삼 학년이라 하던가? 형제의 자녀인데 둘  다 그래 놓으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 표시판이라. 예수를 믿는 표시판이라.

 그래 놨는데 이상하게 들리는 거는 그대로 나가면 그대로 나갈 터인데, 이번에  그 아들을 부산대학에나 여기 공부를 시켜 놓으면 말씀 듣고 자꾸 이래 나갈  터인데 큰아들은 그래 하지 않고 저 서울대학 간다고 이래 하다가 뭐 합격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몰라서 내가 욕을 한번 해 줬다 말이오. '서울대학이 뭐  하나님이가?' 이랬는데 가서 떨어졌대요.

 떨어졌는데 그 학생이 여기 와 있는지, 그것들이 지금 떨어졌으니까 막 재수해,  재수한다 하면 또 죽는다, 자살 자살 자꾸 자살이라. 재수는 뭐한다고 뭐 그러고  있어? 떨어졌으면, 잘못 경영했으면 그만 그냥 공부 그만 하고 돈벌이나 할  일이지. 그까짓 거 공부한다고. 뭐 될 건가? 또 기어코라도 죽으려고 서울대학  재수하려고. 부산대학은 어때서?  아마 내 생각에 그게 지금은 후회가 돼서 이제 막낭 자식들은 어린 자식, 막낭  자식들은 그렇게 신앙이 좋은데 맏새끼는 뭐 그렇게 믿음도 좋지 않고 뻑뻑  어겨서 그런가보다.

 그래 나는 말이요, 자녀를 낳으면 말이오. 자식을 낳을 때에 맏자식을 낳으면  좋아하지 않아. 자식들은 남자 자식은 낳아 놓으면 억세서 그거 지도하기가 참  힘이 들어. 딸 그거는 지도하기 쉬워. 그러니까 맏딸을 낳으면 신앙 지도하기가  쉽지마는 맏아들 낳으면 뻑뻑해서 지도가 잘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맏새끼가 잘되면 그 다음에 줄줄 잘 따라서 잘 돼요. 이러니까 맏아들을 낳으면  '네가 기도 많이 하고 힘을 많이 써야 잘되지 잘못하면 너무 뻑뻑해서 지도하기가  힘들 거다' 그렇게 말해, 모든 사람들보고.

 이러니까 어쨌든지 슬기 들자 노망한다고 그만 다 모든 것 깨닫자 그만  노망해서 죽어 버려. 이러니까 일찍부터 참 하나님의 도를 배워 가지고, 내가 지금  이거 가르치는 것은 내가 그래도 예수 믿은지 오십륙 년이 나는데, 오십륙 년  나는데 그 동안에는 죽자 살자 하고 내가 성경을 읽고 연구했어. 뭐 저거 박사  하지만 나는 오십륙 년 해 가지고 박사 하려 하면 박사 못 될 게 어데 있겠소?  이래 가지고 신앙 경험하고 체험한 걸 말하기 때문에 지금 무슨 소리인가  이러지마는 다 내가 실지로 해 보니까 되는 것을 말하고 또 손해본 것을 내가  보고 말하고 하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듣고 믿어야 돼요.

 어쨌든지 주님 모시고 떨어지지 않기를 힘써야 됩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말씀  잊어버리니까 그만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말았어. 우리 믿는 사람이 주님  잊어버리고 말씀 잊어버린 그 시간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루고 열흘이고  전멸입니다. 전멸. 주님 잊어버리면 귀신 들어와서 오만 죄 다 지어. 주님 잊으면  거기서 귀신 생각만 들어와, 가지고 그 자기 망할 귀신, 하나님이 노여워하실 그런  것만 자꾸 연구가 나오고 생각이 나 가지고 그런 언행심사를 하니까 안 망할  수가 없어. 이러니까 주님 모시고 살기를 좀 연습하고 힘을 자꾸 써야 됩니다.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 잊어버렸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는데 그 하나님이 누구시요. 저 대답해요. 그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지난밤에 내내 그 하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라면  자기가 멀어지고 주님이라면 자기가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내나 창조하신 그분이 주님이시요, 또 에덴 동산에  이끌어 들인 이가 주님이시요, 또 죄짓고 숲에 숨었을 때에 찾아와 가지고 찾으신  이가 주님이시요 또 짐승의 꺼풀로 옷을 해서 입히신 이가 주님이시요, 내나  주님이시라 말이오. 이러니까 어쨌든지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을 모시고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고 살기를 힘써야 됩니다.

 그러면 이 말씀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과 다릅니까 같습니까?  OOO씨 말해 봐. 어때요? 달라, 같애? 같다 말이오? '같습니다.' 이래 말해야지 왜  뭐 겁이 나서 그래 소리해. '같습니다.' 이러면 들릴 건데 같습니다. 같습니다. 이래  놓으니 안 들리지. 그래 같애. 요거 아는 게 사는 거라, 요거 아는 게. 이 쉬운  거라. 다 그거 어렵지 않고 알기 쉽지 않아요? 요것을 알고 잊어버리지 않고 살면  거게서 모든 생명과 지혜와 능력, 옳고 바른 축복이 거게서 졸졸 나와요. 하나님  생각하고 말씀 생각해서 하나님 모시고 살고 하나님의 말씀 고대로 하려고 애를  쓰면 그러면 거게서 오만 축복이 다 나와요. 모든 문제 해결이 거게서 다  나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뭐 새벽기도 안 나오고 드러누웠으면 고기덩어리 그놈은 좋아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또 그 날이 확 새고 일어나면 후회될 거라. '에이고, 새벽에 또 못 갔다'  후회가 될 것이고, 새벽기도 나오려 하면 고통스럽지. 고통스럽지마는 새벽기도  마치고 갈 때에는 기쁘고 즐거워서 다리가 거뿟거뿟 떼놓을 거라.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일은 처음에는 안 됐어도 뒤가 좋고, 마귀 세상으로 가까이 가는  일은 처음에는 좋지만 뒤에는 후회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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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4 주님 사귀는 직책/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840422주새 선지자 2015.12.19
» 주님 모시고 말씀 생각하고 살자/ 요한계시록 1장 9절-20절/ 890119목새 선지자 20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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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1 주님 맞을 자세/ 마태복음 24장 35절-43절/ 840717화새 선지자 2015.12.19
4330 주님 만날 수 있는 신앙형태/ 아가 4장 6절-16절/ 881102수야 선지자 2015.12.19
4329 주님 만날 수 있는 신앙형태/ 아가 4장 6절-10절/ 881104금야 선지자 2015.12.19
4328 주님 뜻에 명중한- 죄 찾는 법/ 누가복음 15장 3절-7절/ 830415금야 선지자 2015.12.19
4327 주님 기쁘시게 하는 법/ 고린도후서 5장 9절/ 84030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9
4326 주께 맡긴 자의 할 일/ 디모데후서 1장 12절/ 821017주후 선지자 2015.12.19
4325 주권 하나님/ 출애굽기 19장 3절-6절/ 890806주후 선지자 20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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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9 주관을 깨야 참 믿음/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51003목새 선지자 2015.12.19
4318 주관 믿음에서 / 누가복음 21장 33절-30절/ 881202금야 선지자 20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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