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날 수 있는 신앙형태

 

1988. 11. 2. 수밤

 

본문:아가 4장 6절∼16절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이 아가서를 기록한 이는 솔로몬인데 우리 믿는 도리를 상징으로 해 가지고 무슨 모양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4장 1절로부터 5절까지는 하나님의 신부가 된 교회는 어떻게 단장해야 되고 어떻게 구비해야 되는 것을 이런 저런 모든 모양들을 끌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6절로부터는 예수님으로 더불어 동거하고 동행하는 데에는, 주님으로 더불어 동거하고 동행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동거하고 동행할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간단하게 본문을 주해하겠습니다. 6절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그러면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그런 시대를 만나게 되는데, 날이 기운다 말은 날이 이제 해가 넘어간다 말입니다. 해가 넘어가고, 해가 넘어가면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해가 넘어가고 그림자가 없을 그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에 거게 가서 성도를 기다리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날이 기운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가 그만 가리워지고 또 진리가 가리워져서 마치 해가 없으면 음지인지 양지인지 그것을 분별 못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이 이렇게 가리워지면 뭐 음달 양지 모르는 것처럼 죄인지 의인지 모르는 이런 다 혼탁 세계가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왜 이 해가 가리워져서 해가 지는가? 요한계시 9장에 보면은 해가 지는 것은 사람들 속에 끝없는 욕심이 자꾸만 일어나서 전부 세상은 인간 욕심 세상이 되고 옳고 바르고 맑은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인간 욕심으로, 이 사람 욕심 저 사람 욕심 욕심으로만 가득 차서 제 욕심에게 자기를 비추어 살릴 수 있는 진리와 영감이 가리워져 버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욕심 행위로 인해서 진리와 영감이 가리워져서 진리와 영감을 찾아보지 못할 만큼 이렇게 진리와 영감이 가리워지고 인간 욕심만 마치 옹기점에서 연기 올라오듯이 풍풍 올라와 가지고 그 심령을 어둡게 해서 영감과 진리의 빛을 받지 못할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뭐 예수 믿는 사람들이지마는 자타의 욕심, 자타의 그 끝없는 욕심 이것을, 내 욕심 또 이루어야 하지 다른 사람 욕심 또 이루도록 협조해 줘야 되지 말세가 되면 전부 욕심 놀음입니다.

욕심 놀음이 돼 가지고 진리의 빛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음지 양지를 모르고 전부 새카매지는 거와같이 빛이 어두워지니까 이제는 처음에는 죄니 의니 뭐 저거는 비성경적이니 성경적이니 이렇게 말 있지만 이제 그런 것이 없어서 음지가 양지가 구별이 없이 그만 전부가 다 새카매지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지금도 뭐 교회는 많이 서고 믿는 걸 많이 말하지마는 실은 한 가지만 가지고라도 저게 저 진영이, 저 진영이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저 교회가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저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저게 세상주의냐 천국주의냐, 참말로 십자가의 운동이냐 십자가의 원수인 운동이냐? 이것을 도무지 분별하지 못할 만치 대단히 혼란돼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이 바로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데서 주님을 만날 것인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주님이 간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몰약산에 가서 만날 수 있고 유향의 작은 산에 만날 수 있다. 몰약산이라 말은 몰약은 방부제 약을 말합니다, 방부제 약. 그러니까 이렇게 온 세상이 다 의고 죄고 그런 것이 없고 뭐 다 혼탁해서 의니 죄니 말만 해도 듣기 싫어하고 또 하나님의 뜻이니 사람 뜻이니 이렇게 구별만 할라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징그럽게 생각하고 싫어합니다.

이래서, 도무지 진리를 만날 수 없고 영감을 만날 수 없는 이런 어두움의 때가 될 때에 그때에는 주님을 어데 가서 만나겠느냐? 그때 주님 만나는 그 길을 가르쳐 줍니다. 몰약산에 가 있겠다. 몰약산에 가야 주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 다 진리도 없지 영감도 없지 뭐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전부 뭐 세상주의고 자기 욕심주의인데, 그래서 악하니라 해,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하다. 때가 악하다 말은 네 주위 환경 전부가 다 피조물 중심 자기 중심으로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네가 아주 조심하지 안하면 다 거게 삼키기 쉽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는 몰약산으로 가라. 그렇게 주위 환경이 다 부패해질 때 그때에 네가 방부제 산으로 가라 그말이요, 방부제 산으로 가라. 몰약은 방부제, 썩는 것을 썩지 못하게 하는 방부제인데 방부제 산으로 가라 하는 말입니다.

방부제 산으로 가라 말이 무슨 말인가? 온 세상이 다 썩어도 너는 썩지 말고 참고 견뎌라. 뭐 장로도 썩고 목사도 썩고 또 집사도 권사도 반사도 부장도 다 썩고 나이 많은 사람도 썩고 젊은 사람도 썩고 다 이렇게 세상이 썩어져 가니까 너도 다 세상이 이런데 뭐 나 혼자 이렇게 이러니 저러니 뺄쭉나게 말할 게 뭐 있느냐? 이렇게 뭐 독선으로 이렇게 할 게 뭐 있느냐? 그래 가지고 네가 멸망하기 쉬우니까, 몰약산으로 가라. 그럴 때에 너는 썩지 말아라. 썩지 않는 데, 그때 썩지 않는 거기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썩지 않는 그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 이말은 유향은 기도를 가리켜서 말하는데 지금은 뭐 양산동 기도하러 간다고서 몇십 명씩 어떨 때 많이 갈 때는 하루 삼백 명도 사백 명도 가는데, 제일 많이 가는 날은 얼마 갔어? 한 사백 명 이래 뭉쳐 갑니다.

그렇지마는, 지금은 그렇지마는 이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가면 다 썩어지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 네가 모든 사람 움직이는 이런 큰 단체 운동에 거게 네가 휩쓸리지 말고 그저 너 혼자 어느 한 골방에서 한 구석에서 조용 조용히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거게서 만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부패해졌을 때에 그때에 나다나엘은 고요히 무화과나무 밑에 가 가지고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이랬는데 기도하니까 그는 썩어지지 안하고 모든 이스라엘이 패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고, 뭐 이라다가 잘못하면 ‘다 이런데 나 혼자 뭐 이 기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렇게 낙망하기 쉬운데 그래도 나다나엘은 꼭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는데 메시야를 보라 해서 나다나엘이 따라오니까 예수님께서 이는 참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간사함이 없어. 그는 참 원리적으로 자주 대격적으로 그 신앙 생활하는 굳건한 사람이다 이라니까 나다나엘이 깜짝 놀래 가지고 ‘선생님 나를 언제 봐서 아십니까?’ ‘무화과나무 밑에서 내가 봤다.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나에게 기도할 때에 내가 너의 기도를 듣고 거게서 내가 너를 만났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앞으로 세상이 점점 흑백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됩니다. 인제 해가 기울면 흑백이 없습니다. 검은 것 흰 게 없습니다. 해가 기울면 검은 것 흰 게 없소. 지금도 그때입니다. 지금 뭐 성경에 이러니 저러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듣기 싫어합니다. 저 무슨 저 인간은 항상 뭘 트집만 부리고 뭐 따지기만 하고 까다롭기만 하고 에이고 그놈의 교회 가니까 머리가 아파서 안 됐더라.

그래, 일주일 내 세상에서 돈벌이하고 양사방에 죄악에 시달렸다가 주일날 한번 가면 시원하게 사이다 마신듯이 좀 마음이 컬컬하게 좋고 그만 이래 시원해야 될 터인데 그 예배당에 가면은 꼭딱꼭딱 네가 요거 잘못했지, 요랬지 조랬지, 요거 또 요라면 망한다 요거 회개해라 이래 쌓으니까 에이구 징그러워. 다시 뭐 지옥을 가지 그놈의 예배당에 못 가겠다고 이래 가지고서 안 가는 그런 때가 옵니다.

그때가 뭐이냐? 해가 기울 때요. 진가를 구별 안 할 때. 요새는 그렇습니다. 요새는 그걸 말하면 싫어해요. 우리 총공회 진영에서도 그거 말하면 제일 싫어하는 신사들이 어데 있느냐 하면은 서울입니다. 서울 교회들은 다 신사들이오. 그런 것 말하면 ‘에, 째째하게 뭐 그런 걸 말해?’ 이래 가지고서 서울 교회가 신사 교회요.

그래 저는 서울 교회에 대해, 서울 다른 진영 교회는 내가 말하지 안해. 서울 우리 진영 교회는 완전히 속화돼서 부패됐다. 너거는 완전히 속화돼서 지금 눈이 가리워져서 뭐이 뭐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거보다 조금 나은 것은 대구가 조금 덜 돼, 속화가 덜 됐고 대구보다도 부산이 속화가 좀 덜 됐고 이제 참 아주 시골에서 성경만 보고 주님만 보고 믿는 그런 사람들, 이 밖에 것들이 침노 안 한 데 그런 데는 또 깨끗한 신앙이 있는데 이 밖의 것들이 막 저거 동무 삼을라고 들어갑니다. 들어가 가지고서 이렇게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없을 때에 어데 가서 주님을 만날 것이냐?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에 가면 주님 만난다.

그럴 때에 다른 사람이야 어쨌든지 네가 썩지 않는 몰약산, 썩지 않는 산, 산이라고 말하는 건 여기 산으로 말하는 것은 절정을 말합니다. 우뚝우뚝 솟은 절정.

산만당이니까 높지 않습니까? 몰약산, 썩지 않는 절정. 네가, 조금 우리가 어려움이 있으면은 그만 속화되고 더러워지는 그런 데는 소용 없어. 이래 가지고서, 속화되지 안하고 더러워지지 안하고 감염되지 안하고 타협하지 안하고 혼자 외로워도 꼭 이 속화되지 안하고 썩지 안하는 그 절정에 거게 주님 만납니다.

안 썩기 쉬운 곳이 아니고 범죄하지 않기가 쉬운 곳이 아니고 가장 범죄하지 않기가 어렵고 속화되지 않기가 어렵고 이 죄악으로 더불어 타협하지 않기가 어려운 그 절정에 거게, 어렵기는 어렵지마는 절정 거게서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이랬어.

거게 안 가는 사람은 주님 못 만납니다. 그저 초저녁 성결이야 누가 못 지키겠소? 밤중 성결이 돼야 주님 만났지요.

또,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모두 지금은 뭉떵뭉떵한 단체적으로 뭐 어데 기도회 뭐 몇천 명 기도회, 구국 기도회 뭐 어짜고 떠들어 쌓지마는 그만 그때는 다 썩어지기 때문에 뭉텅이 단체 기도하는 것은 속은 전부 마귀 놀음이오. 마귀 놀음으로 다 그라고 그럴 때에 네가 참 은밀히 계시는 하나님을 찾아서 고요히 조용히 골방에 계시는 너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이 사람이 되라. 거게서 나를 만날 것이다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또, 7절에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이래, 이렇게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는 흠이 없는 성도라야, 흠이 없는 성도라야 주님이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돼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행동에 참 감동을 하셔야 됩니다. 감동을 받아야 됩니다.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이래서 어여쁘고 흠 없는 것은, 어여쁜 것은 주님의 피공로 안에 있으면 어여쁘고 흠 없는 것은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면 흠이 없습니다. 흠과 점이 없습니다. 「없구나」 「나의 신부야」 나의 신부야 하는 것은 주님이 이 교회를 가리켜서 나의 신부야 이렇게 말했는데 왜 교회를 신부라고 하나님이 말씀했는가? 이 신부라면 똑 사람들의 육적 부부 모양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사람들의 이 부부는 하나님과 교회의 이 부부관계의 하나의 모형으로서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가지고 이렇게 하나의 제도와 형식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교회와는 원형 부부요 인간 남녀는 원형 부부를 모형한 모형 부부입니다.

부부로 말하는 것은 이것은 첫째는 그 아내의, 요새는 뭐, 요새 세상은 망한 세상이 돼 가지고 이거는 다 변질이 돼서 정상이 없어. 정상으로 말하면 신부의 모든 일은 남편이 다 책임입니다. 잘하고 잘못된 거 남편이 전부 다 책임이오. 신부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은 남편이 다 책임, 신부가 해야 될 그 모든 의무와 책임은 남편이 다 해야 되는 것, 또 남편의 것은 다 신부의 것이 되는 것. 그러면 이 신부의 흠과 점과 모든 신부가 해야 될 못 하는 것 이런 거는 전부 남편이 하는 것처럼 그 성도들이 해야 될 것 못 하는 것은 전부 주님이 다 담당하시는 그 면을 가리켜서 남편이요 신부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 아무 거지 같은 것이 신랑에게 시집 왔으면은 신랑의 소유는 다 그것은 그만 신부의 것이 돼 버려. 이 모양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교회라 하는 것은 피조물 사람인데 피조물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결합이 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교회의 것이 되는 것을 가리켜서 이 소유권적인, 소유권적인 유별. 소유권적으로 유별해 또 책임적으로 유별해, 의무 책임 대신 담당하는 것으로 유별해.

또 유별은 무슨 유별이냐? 동거 동락 동역이라. 일도 둘인데 하나 일이라. 남자 일이 아내 일이요 아내 일이 남자 일이요, 또 동거, 동행, 동역, 또 동락, 같이 즐거워하고, 동역, 같이 일해. 그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인 성도와의 이렇게 동거 동락 동행하는 이것을 이 유별을 가리켜서 신랑이라 신부라 그렇게 여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래서, 그다음에 하나는 이제는 아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남편 영광이 전부 아내 영광이 다 돼 버렸어. 남편 영광이 아내 영광이 다 돼 버렸어. 참 결혼을 해서 그 남편과 아내가 그래 뜻이 맞아 가지고 좋은 결혼이 됐다면은 그 남편의 명예고 권세고 다 그만 아내의 것이 다 돼 버립니다. 세상도 그래요. 요새도 ○○○씨가 ○대통령하고 그만 그 부부기 때문에 그만 그 권세 영광 다 차치했다가 요새는 좀 게워내느라고 애를 먹었지마는.

이것을 가리켜서 교회는 신부라 하나님은 남편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남녀 뭐 동침하는 그런 게 아니오. 하나님이 뭣을 동침을 합니까? 이런 면을 모든 것 다 책임지는 것, 의무와 모든 책임지는 것, 또 하나님의 것이 전부 성도의 것이 되는 것, 하나님과 성도가 동거 동행 동락하는 것, 또 남편의 그 영광이 다 아내 영광이 돼. 하나님의 그 무한한 영광이 전부 성도의 영광이 되는 이 무한한 면을 가리켜서 성도들을 신부라 하고 하나님을 남편이라 했어.

이 남편, 남편 의무, 이 육적으로 다만 육의 부부는 뭐 부부 동침이 있지마는 하나님과의 성도의 부부의 이 관계는 인간 부부에는 상관이 없어. 거게는 하나도 해당도 안 돼. 거게는 인간 부부에는 쓰지도 못해. 쓸 것도 아무것도 없어.

이래서,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그러면 어데서부터 이 신랑하고 신부하고 같이 하느냐 하면은, 동행하는 것 말합니다.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 이 레바논이라 말은 그 팔레스틴에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큰 산맥인데 제일 큰 산입니다. 그 산에는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안하고 있어서 그 산 이름을 백산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레바논 산에서 나와 함께 하고”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할 때는 어데서 동행하는가?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면은 어데서 동행할 것인가?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제일 큰 산입니다. 큰 산. 이래서 이 산은 백산이라 하는 것은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안하고 항상 산머리에는 눈이 허여이 얼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산 이름을 백산이라 하는데.

“백산에서 함께 하자” 그러면 이것은 아무리 땅에 오뉴월 뭐 칠팔월 이렇게 더울 때라도 그 산꼭대기는 그 눈이 썩지를 안해. 썩지 안하고 그대로 녹지 안하고 그대로 있어. 이와 마찬가지로 온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져도 썩지 안하고 그렇게 항상 성결을 지키고 있는 성결, 성결 절정, 그러면 하나님은 어데서 동행하는고 하니 성결 절정에서 동행합니다. 성결 절정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성결, 성결도 마태복음 25장 비유에 보면은 그 등불은 성결인데 초저녁에야 다 불이 있지.

초저녁에 불이 있지마는 나중에 밤중 돼 가니까 불이 꺼져 갑니다. 신랑 온다 하니 그때는 불이 다 꺼져 버려. 이러니까 불 있는 사람은 신랑 맞이하고 없는 사람은 맞이 못 했습니다.

이제, 처음에야 아무라도 다 성결을 가지지마는 성결을 가지다가 차차 차차 조금 세월이 지나가면은 그만 성결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레바논 그 백산에서 주님이 같이 하자 그말은 그 성결의 절정에서 같이 하자 그말이요, 성결의 절정에서.

그러기 때문에 성결의 절정, 성결을 할라 할 때에 모든 사람이 이런 어려움 되니까 성결 내버리고 저런 어려움 되니까 다 성결 내버리는데 나중에 인간으로서 극난 극난 어려움이 오니까 다 성결했던 사람이 다 성결 내버려 버리고 다 더러워지는데 다 더러워져도, 천하 사람이 다 더러워져도 자기만은 더러워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그것이 백산 레바논 산 꼭대기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은 성결산에서 같이 하는데 성결산 중에도 성결산의 제일 절정인 거게서 같이 하는 것은, 다 같이 하지만 거게서 같이 하는 거와 같이 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성결을 지키다가 조금 어려우면 그만 그 성결을 버리기 쉽습니다. 성결 최고의 절정, 모든 사람이 성결을 가지지 못하는데 자기만이 가졌으면 자기만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우리가 죄짓지 안하고 의롭게 살고 하나님 모시고 사는 이게 다 성결 생활인데 이 성결 생활이 앞뒤에 뭐, 장로도 썩어지고 목사도 썩어지고 동역자도 썩어지고 다 썩어지는데, 모두 다 썩어지는데 다 썩어져도 자기 혼자 참 낙락장송 모양으로 어짜든지 자기 혼자라도 그럴 때에 썩어지지 안하고 남이야 어쨌든지 나는 주님이 나를 피로 구속하신 이 구속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나를 구속해 줬기 때문에 나도 죽기까지 죄로 더불어 싸워서 범죄하지 안해야 되겠고 죽기까지 의를 행해야 되겠고 죽기까지 하나님 모시고, 주님 모시고 살아야 되겠다 하는 요것을 그렇게 해 나가는 그것이 레바논 그 백산에 올라가는 것이, 절정이 되는 것이니까 거게서 주님이 함께 하자,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백산에서부터, 백산에서부터. 모든 사람 다 썩는데 썩지 안하는 거게서부터, 거게서부터 「레바논에서부터」 이래 썩고 저래 썩고 물질 때문에 썩고, 명예 때문에 썩고, 권세 때문에 썩고, 또 행락 때문에 썩고, 뭐 일계 때문에 썩고, 이계 때문에 썩고, 삼계 때문에 썩고, 사계 때문에 썩고, 오계 때문에 썩고, 육계 때문에 썩고, 칠계 때문에 썩고, 팔계 때문에 썩고, 구계 때문에 썩고, 십계 때문에 썩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썩는데 다 썩어도 썩지 않는 그 레바논 산, 레바논 꼭대기 백산, 밑에는 다 썩어서 허연 것이 다 썩어 버려서 하나도 눈이 없어. 눈이 하나도 없고 다 썩어 버려. 눈이 하나도 없는데 그 오뉴월 칠팔월에도 눈이 허여이 있는 썩지 않은 거기에 이제 주님이 같이 하자,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자” 말씀하신 요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는 어짜든지 성결의 절정을 향해서 우리는 인내할 것입니다.

뭐 아무리, 성결의 절정을 인해서 사업이 다 뺏겨져도 거게 있고 생명이 뺏겨져도 거기 있고 주님 위해서 주님 때문에, 주님과 나와의 세 가지,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성결을 내가 지니기 위해서 어떤 걸 손해 봐도 다 거게 있지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거 다 영광스럽게 있지 뭐 손해가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이래 레바논에서부터 주님과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주님하고 이제 둘이 같이 동행하자 그말이오. 같이 동행하자. 이러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에는 성결에서 동행합니다. 주님과 동행에는 성경에서 동행하는데 성결에도 이거 산만당, 모두 다 여기 이름 한 게 다 몰약산이니 또 유향산이니 레바논 산이니 다 산으로 말하는 것은 다 절정을 가리켜 말합니다, 절정. 우리가 신앙의 절정, 성결의 절정, 인내의 절정, 진리의 절정.

이러니까, 다, 이거 사람들로 더불어 타협을 안 할라 하면 외로와지고, 외로와지고 다 천대받고 뭐 이래 하나마 그 절정, 어떻게 외로와져도 외로움의 절정, 고독의 절정,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아마나도 스닐도 헤르몬도 전부 레바논 산에 속한 우뚝우뚝 솟은 다 산만당들입니다. 이 레바논 산은 큰 산맥인데 거기에 아마나 산도 거게 있는 큰 산봉우리요 스닐도 산봉우리요 헤르몬 산 꼭대기도 산봉우리입니다. 헤르몬 산 다 이거 이 세 산이 다 레바논에 속한 산이기 때문에 전부 백산이라는 뜻을 다 가지고 있어. 성결의 산이라 하는 그런 뜻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랬는데, 어떤 사람들은 거게 대해서 아마나는 견고히 잡자 하는 견집의 절정이라, 뭣이든지 그만, 요새 지금 새벽으로서는 우리가 뭉치지 안할라 하는데 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 세계에 모든 머리 일곱 머리 열 뿔이 한덩어리되는데 그때에 내가 한덩어리되지 안할라고 거게 뭉쳐지지 안할라 함으로써 어려움 오는 그것도 하나의 성결의 산입니다. 또 우리가 거게서 끊어질라 하는 것, 또 예수님으로 더불어 뭉칠라고 하는 것, 이래서 어짜든지 여게서 다 말한 것은 절정을 말을 했는데 어떤 그 신앙 행위든지 그 신앙 행위에 시작과 절정이 있으니 절정을 찾아갈 때마다 따라오는 사람이 적습니다. 산이 밑에는 저 지리산도, 그 지리산 밑에 발치는 전라도 경상도 또 전라남북도 이거 셋 도를, 셋 도를 발을 뻗쳐 가지고 있는 그런 큰 산이지마는 속에 맨 위에 절정에는 이거 그저 저 예배당만도 못해요. 큰 방석 하나, 큰 덕석 하나만한 그렇게 솔아요. 밑에는 그래도.

이러니까, 밑에서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많지마는 마지막에 절정에 올라가는 데에는 끝까지 견뎌서 절정 가는 데에는 거게는 많지를 못합니다. 거기에 주님이, 작은 산에서도 주님이 가서 거게 있는 사람 만나고 제일 거석은 뭐이냐 하면은 헤르몬 산 꼭대기에서 나와 함께 가자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어짜든지 신앙의 절정을 향해서 갈수록이 주님과 가까와지고 주님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시작과 중간이 있고 마지막 최종의 절정이 있기 때문에 절정을 향하여서 우리는 나아갈 때에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애끼지 말고 어짜든지 이 성결의 절정에 나아가서 거게서 주님 만날 이런 각오를 가지고 우리는 인내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이라는 것은 그 태산이니까 거게는 맹수들이 가득 찬 곳이니까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거게서 이제 사자굴 표범산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 보아라. 이 무슨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이 성결을 뺏기지 안하고 이 성결을 가지고 나갈라고 하면 온갖 맹수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뭐 곰도 있고 사자도 있고 오만 뭐 표범도 있고, 요한계시록에 보면은 곰도 있고 표범도 있고 다 그런 것들이 있어. 사자도 있고.

이래도, 그런 것이 있는 데에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못 가요.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지금 그 표범산에 갈 때에 자기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표범을 만드신 분이시요 전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표범의 그 두려움보다 주님의 보호의 평안을 더 크게 누리는 사람이 가지 그리 안 하면 못 갑니다.

불미 속에다 ‘불미를 칠 배나 더 뜨겁게 해라’ 하고서, `이놈들 전부 불미에 다 불 속에 집어 던지구로 불미에 불을 칠 배나 더 뜨겁게 해라’ 칠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서 이렇게 하는데 그 칠 배 뜨겁게 해서 그 두려움, 뜨거운 그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배반할라 해도 하나님이 더 두렵고, 그 불보다 하나님이 더 두렵고 또 불이 그 청년들을 해하는 그 세력보다 하나님의 보호의 세력이 더 큰 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가지 그리 안 하면 못 가요, 그래.

이게 다 뭐이냐? 하나님께서 다 이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모든 정도와 그 실력을 이렇게 다림질하는, 이것을 달아. 이걸 달아 봐요. 중량을 달아. 다림질해 보는 거라.

이러니까 이제, 그 셋 청년이 불미 속에 들어갔으나 불내도 안 났어.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으나 하나도 상하지 안했어. 그 땅위에 불같은 혹독하고 사자같은 맹혹한 어떤 것이 있어도 그것이 뭐이냐? 주님이 하시는 것인데 그것이, 어느 정도 주님을 믿나, 그거보다 주님을 더 두려워하나, 그 두려운 해보다도 하나님의 보호를 크게 믿나 하는 이것을 당신이 이제 나타내서 영광을 받으실라고 하는 것이지 믿고 가는 사람은, 믿고, 믿고 가는 사람은 절대 자기 정한 생명 일 초도 전에 죽지 않습니다.

일 초도 일찍 죽어지는 일이 없어요. 믿어야 돼요.

이래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그러니까 거게까지 올라갔으니까 온 세상 모든 교계들을 볼 때에 이 교계들은 저 티끌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저 밑에서 모든 짐승들에게 다 삼키고 밟히고 이래 가지고서 짓밟혀 모두 다 삼켜지고 다 죽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올라간 사람들은 사자굴 표범산에서 얼마나 평안한지, 거게서 저 밑을 내려다 보아라.

그러면 이 말씀은, 주님이 주신 이 성결, 사죄 칭의 화친을 자기가 뺏기지 않기 위해서 어데까지 가도, 어데까지 가도 해할 자가 하나도 없다. 가는 자는 다 승리하고 주님하고 동행하지, 가지 않는 자는 그래도 가는 자는 주님하고 동행하고 승리합니다. 못 가는 자는 다 처박히고 말아요.

저 아래 저녁에도 ○○○권사님이 와 가지고서 이제 일본 나라에서, 일본 나라에서 일본 교회들이 막 연합으로 해 가지고, 연합을 해 가지고서 ‘과거에 우리 나라가 조선 나라의 그 조선 민족들을지금 말하면 한국 민족이라한국 민족에 대해서 그런 못 할 일을 많이 했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서 그들이 책을 많이 써 냈고 또 ‘하나님 앞에 우상 섬기라고 신사참배 하라 이래 가지고서 사람들을 고문과 고형을 많이 했다. 이렇게 했는데 그때에 그래도 지지 안하고 승리한 그런 성도들이 있어서 한국은 이렇게 교회가 부흥이 되고 우리 일본은 이 교회가 이렇게 망하게 돼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을 지금에사 깨닫고 그 연합회서 여기 먼저께 와서 섰던 ○○○목사님도 또 그전에 청해 가지고서 또 집회를 하면서 청해 가지고서 그 연합회서 또 하고 또 요번에 또 ○○○씨도 또 청해 가지고서 또 집회하고 그라면서 그들이 참 눈물 흘리면서 어짜든지 우리들도 이제는 신앙으로서 피를 흘릴 때가 왔으니까 지금 우리들도 피를 흘릴 때가 됐으니까 좀 그렇게 승리한 승리에 대해서 좀 간증을 해 달라고서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들 앞에는. 그 사람들은 체면이 있고 예의가 있어요. 이 공산주의는 체면이 없어요. 공산주의 앞에는 그거 거리끼면 그만 가 버립니다. 거리끼면 그만 대번에 죽여 버려요, 그만. 그때 6.25 때 전쟁 때는 그뭐 저거 비위에 서끌리면 그만 몇십 명이라도 그만 다 죽여 버려. 제가 있던 위천도 오십 명씩 야전줄로 이래 엮어 가지고 가면 그만 저거더러 구덩이 파라 하고 그만 다 묻어 버리고 다 그래요.

그때보다는 왜정 말년에는 좀 그만치 혹독하지는 안 했어. 이래도 두렵기는 뭐, 공연히 두려워하기야 다 두려워하지. 그래 가지고 그때에 참 신앙으로 그저, 천황도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 안 믿으면 다 지옥 간다, 예수 믿어야 다 천국 간다 하는 그런 말 그거 다 지금 지나가고 난 다음이니까 그런 말을 그뭐 그래 여기지 그럴 때는 그런 말을 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힘이 드는지 얼마나 몰라요.

그렇게, 이래서 오늘밤에 본 이 말씀에는 우리가 주님 만나는 곳은 어데서 만나는가? 성결산에서 만난다. 몰약산에서 만난다. 썩지 않는 데에서 주님 만난다.

썩지 않는 데서 주님 만난다. 또 어데서 만나는가? 유향의 작은 산에서 만난다.

은밀히 고요히 참 어느 구석에든지 어데 처박혀 가지고서 주님하고 속살거리는 거기에서 주님 만난다.

또 어데서 만나는가? 백산에서 만난다. 눈산에서 만난다, 눈산에서. 레바논 산은 일 년 내내 눈이 있습니다. 일 년 내내 눈이 있어서 그 산 이름을 백산이라 해요.

그러니까 삼사월만 돼도 다 썩어서 눈 온것 다 썩어져 버리는데 거게는 칠팔월이 돼도 한여름에도 눈이 썩지 안하고 그래 하야이 희게 있어. 그와같이 온 세상이 이와같이 부패할 때에 다 썩어져도, 뭐 형도 동생도 목사도 장로도 다 썩어져도 썩어지지 안하고, 썩어지지 안하고 거룩하게 거룩하게 깨끗이 깨끗이 성결을 지키고 있는 그 절정에서 주님 만나, 성결의 절정에서 주님 만난다.

아마나 절정에서 주님 만난다. 아마나는 굳게 잡는다는 뜻인데 굳게 잡는 절정에, 잡았다가도 슬며시 놔 버려요. 굳게 잡는 절정에서 주님 만난다. 또 이 끊기도, 처음에는 끊기 쉽지마는 아주 끊기 어려운 것 죄악이나 모든 불의의 모든 합세의 이 끊기 어려운, 끊기 어려운 절정에 거게서 주님 만난다. 또 백산 꼭대기에서 주님 만난다. 또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거게서 주님과 동행한다.

이러기 때문에, 주를 믿고 의지하고 세상이 가지 못하는 그 신앙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은 세상이 못 보는 주님 보고 세상이 만나지 못하는 주님 만나고 그는 세상이 입지 못하는 하나님의 그 능력을 입어서 경험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경험하고 체험하게 돼요.

저는 지금 앞으로는 내가 모르겠어. 6.25 때도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해 가지고 벌써 사람을 몇십 명씩 자꾸 매일 죽입니다. 죽이고 뭐 잡아다 놓고 이라니까 저거 아버지 저거 어머니도 자식들 다 안 죽인 사람 없어요, 뭐. 이렇게 하는 그 전쟁판 속에서도 그들이 집회하고 새벽예배 마치는데 군인들이, 그때 그 출입구가 세 군데 있어요. 설교하다 들으니까 막 뭐이 꽝 거리는데 서이 한목에 그만 했던 모양이라.

이 총을 가지고서 마룻장을 뚜드려 이래 놓으니까 뭐 벼락이 꽝 거려요. 이라면서 ‘빨리 나오라’ 이라는데 그때 내맘에는 기쁘고 즐겁고 평안이 있고 하나도 두려움이 없었어.

그래 ‘조용 해!’ 고함을 질렀어. `조용 해!' 예배보고 있는데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주저앉으며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예배보러 왔습니다’ 또 그만 금방 그 사람들이 그만, 제 마음이 아니라. 제 마음이 아니고 그만 그래 말해. 좀 있으니까 ○○○목사를 뒤에 독촉을 해서 데리고 나오라고 하며 여기 들어와. 저 들어오는데 내 마음에 아마 나 잡아 끌고 나오라 하는 그래 보내는 것 같아.

나오기 때문에 고함을 질렀어. 어데 예배보는데 예배 때에 들어오느냐고서 안 물러 가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떡 물러가. 그라니까 그 사람들 또 앉으면서 ‘우리도 예배보러 왔습니다’ 또 이래 해. 금방 변동을 몇번 해. 그것도 그때 못 그래 봤으면 그럴 건데 그때 그래 봤기 때문에 그것도 경험과 체험이 있어서 참 재미가 있어요.

어짜든지,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자. 네가 성결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를 만나고 표범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고 성결을 지키고 그대로 나가거라. 그러면 네가 성결 지킨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모든 이 속화되고서 세상 죄악에게, 세상에게 삼켜져서 참 죽을 욕 보는 그 모든 성도들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렇게 가는 데에 주님 마음 다 뺏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 그 신앙으로 주님 마음 다 뺏겨요. 네가 내 마음 다 뺏들었다. 내 마음이라 말은 주님 마음이라 말이오. 이 사자굴과 표범산에 동행하는 네게 내 마음 다 뺏겼다. 주님의 마음을 다 뺏들어 버렸어. 주님이 ‘아이고 네가 내 마음 다 뺏들었다. 내 마음은 전부 네게 다 가 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눈으로 한번 보는데 그만 내 마음 다 뺏겨 버렸다. 이런 성도들이 주님만 바라볼 때 주님 바라볼 때에 주님의 마음은 그 바라보는 그 성도에게 솔빡 다 기울어지고 맙니다.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목의 구슬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다 말은 목의 구슬 꿰미라 말은 그 모가지에서, 모가지에서 한 마디 톡톡 튀어나오는데, 그 모가지에서 한 마디씩 톡톡 튀어나오는 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주님 마음 다 뺏들어 버려. 톡톡 튀어나오는 데. 그 말에서, 그 입에서 신앙의 말, 원수 앞에 굴하지 안하는 진리를 지키는 말 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주님의 마음을 다 뺏겨요. 이거 이 신앙 생활이 이것이 우리 앞에 갈 걸음이 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도다」

이러니까 오늘밤에 우리가, 주님 만나는 곳은 어쨌든지 썩지 않는 절정, 뭐 처음에 안 썩어도 한 번 안 썩고 두 번 안 썩고 그라면 자꾸 안 썩는 것이 높아지지 않습니까? 썩지 않는 것이 높아지지 않소? 썩지 않는 절정 거게서 주님 만나고, 또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은밀히 고요히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거기에 주님 만나고, 또 백산에서, 레바논에서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나와 함께 가자,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네가 내 마음 다 뺏들었다, 네 목에 구슬 꿰미가 내 마음 다 뺏들었다, 네 입에서 한 마디 한 마디 증거하는 그 증거에 주님의 그 마음은 그 사람에게 솔빡 다 뺏겨진 것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도 이 신앙에는 절정이 있기 때문에 절정을 향하여 가는 데에는 피곤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절정 거게서, 밑에서 만나는 주님과 그 위에 절정에서 만나는 것과 또 한 층 올라가 절정에서 만나는 주님이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자꾸 절정에서 절정에서 올라가서 거게서 주님 만나서 가는 자마다, 다니엘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 사람들이,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기 이전과 이후와 주님 만난 만난 것이 다릅니다. 그라고 난 뒤에 그가 평강을 얻었어.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가기 전보다도 들어가고 난 다음에 그 믿음이 나아졌고 이제 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평안이 됐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양보하지 말고 진리대로 나가서, 우리 뭐 아무래도 죽을 것 뭐, 아무래도 한번 죽을 것, 한번 세상 뜰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뭐 몸을 아낄 게 뭐 있으며 의식주를 아낄 게 뭐 있으며 생명을 아낄 게 뭐 있습니까? 아끼지 안하고 진리대로 그대로만 나가면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봅니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만납니다.

과연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만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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