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생활

 

1989. 7. 1. 토새벽.

 

본문: 아가서 4장 6절∼9절.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물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왔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번에 양성원 졸업반 학생들이 네 분이 계속 하나님 말씀을 증거를 했고 또  지난밤에는 사 학년이 아닌 OOO조사님이 증거를 했습니다. OOO조사님한테는  여섯시 십분쯤 돼서 오층에서 다른 일로 만나 가지고 그래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은혜를 받은 그 설교는, 다른 데도 다 은혜받았지마는 특별히 두  사람의 설교에서 저로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는 OOO조사님이 설교하는  테에 원한적 기도라는 데 대해서 나는 거게 해당이 돼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가  주님에게 간구해야 될 그런 일이 있는데도 그 간구를 그 원한적인 그런 소원이  되지를 못한, 그런 원한적인 소원이 아닌 그런 기도를 한 것을 제가 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는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원한이라는 것은 해석을 들은 대로 자기가 참 안 되면 안 되는 그런, 이루어  주시지 아니라면 안 되는 그런, 자기에게 있어서는 매우 아주 중요한 그런  문제인데 원한이라면은 필연적으로 거게는 자기 마음이 다 거게 끌려 있고 자기  힘도 뜻도 자기 목숨까지 참, 이거 안 되면 내가 뭐 죽는 게 낫지 이거 안 되고  내가 어떻게 내가 뭐 살아 봐야 그렇다는,  자기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이 다 기울어져 '이 소원을 주님이 안 이루어  주시면 나는 이거 참 살 수 없는 자이다' 하는 그런 그 네 가지가 다 기울어질  만한 그런 문제가 되어 있는 그런 것이 다 원한 있는 것들인데 나는 그런 기도를  그저 가지지 못하고 기도를 그저 하기만했지 원한적인 그런 기도를 가지지 못한  데 대해서 내가 회개하는 그런 마음을 또 그런 깨달음을 가졌습니다.

 제가 그런 설교를 많이 했지마는 그래 그 설교에서 내가 원한적인 그런 기도의  내용을 가지지 못했다 하는 거게 대해서 제가 회개를 하는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회개해서 뒤에 가서 얼마나 그 회개에 계속이나 결실이 맺어질지는 모르나  이거 내가 참 원한적인 그런 소원, 주님 앞에 소원할 것이 많이 있는데 그  소원들이 실은 다 하나 하나가 원한적인 소원 뭐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들이  원한적인 그런 사건 그런 것보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참  하나 하나가 전부가 다 원한적인 소원이 돼야 될 터인데 그런 소원을 가지지  못하고 그런 그저 껍데기 생활한 그것을 제가 회개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지난밤 설교에서 또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나 또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나 모두 다 만나는 곳도 모두 산에서 만났는데 이것은 모두  다 그 절정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해 놓은 것인데 주님은 이 모든 절정에서  만나게 되고 또 절정에서 동행하게 된다 하는 거게서 다시 새로와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과연 절정에서 주님 만나고 절정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인데, 처녀 비유에도 보면 밤중에 신랑이 와서 영접해 들어갔고 또 슬기 없는  처녀들은 등불 내나 켜고 있다가 밤중 돼서 신랑 오는, 밤중에 왔기 때문에 신랑  오는 밤중에는 그만 등불이 꺼져 가지고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그 열 처녀  비유의 말씀과 같이 이 절정에서라야 거게가 참 자기의 소원하는 이 모든  소원이나 자기가 노력하는 노력이나 그런 것이 다 성공이 있는 것인데, 절정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이 사실을 저도 힘쓰는, 그 더을 힘을 쓰기는  쓰고 그 면을 말을 하기는 하지마는 그 면에 대해서 흐려지는, 흐려지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새로와졌고,  또 그 면에 대해서는 제가 우리 진영 이 교역자들이면 온 교인들의 신앙  생활인데 그 교역자들을 볼 때에 이들이 도무지 절정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한다는 이것을 모두 부인하고 있는 그전 우리 진영 교역자라 하는 것을 제가  생각하고 늘 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지마는 내 자신도 자신을 생각해 볼 때에 그 절정에서  주님 만난다 하는 그런 것을 예사롭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이 도리에 굳게 서  있지를 못하고 깨어 있지를 못했다 하는, 내 자신이 그러하고 또 우리 진영  교역자들이 다 그러하다는 것을 제가 느껴서 오늘 아침에 다시 재독을 합니다.

 교역자들 볼 때에, 내 자신은 내 자신을 보는 것이 항상 흐미하고 남은 건너다  봐서 잘 볼 수 있는 건데 모든 교역자들을 볼 때에 절정에서 주님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이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약인데, 이 사실을 깨닫고 이 사실에  생각해서 사는 그런 교역자가 별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살던, 좀 산다 해서 이 사람은 참 주님을 만날라고 산만당에,  절정이라 말은 산꼭대기라 말입니다. 제일 만당 제일 꼭대기. 꼭대기를 올라가는  그런 종들은 가 버렸습니다. 홍순철 목사님이 늘 절정 생활을 했었는데 그만  그분이 하나님이 불러서 갔습니다. 또 그 후에 전성수 목사님이 또 그 절정  생활을 했었는데 절정 생활하다 그만 가 버렸습니다. 또 그후에 서영준 목사님이  절정 생활을 했었는데 절정 생활을 하다가 갔습니다.

 이러니까 자타가 인정하기를 이분들은 다 신앙의 절정에서 주님을 만날라고  노력을 했고 또 신앙의 절정에서 주님과 동행을 했고, 본인들도 그렇게 신앙  생활을 절정에서 주님 만나고 주님과 동행할라고 노력을 했고 제삼자들이 또 볼  때에 그렇게 절정에서 주님 만나고 동행할라고 노력을 하는 신앙 생활이라 하는  깃을 자타가 인정할 만치 그렇게 힘을 썼는데 그라다가 그만 다 아주 청년에서  그만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진영 교계에, 평신도는, 그거 뭐 평신도는 따라갑니다. 교역자가  어떠한 데 따라서 평신도들은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따라서 일반  성도들이 순교도 하고 순생도 하고 교역자 하나와 꼭 같이 되는 그것이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입니다. 요한계시록 l장에 말씀해 놨는데,  교역자가 절정 생활을 못 하는 데에 그 밑에 있는 교인으로저 절정 생활하는  그런 교인이 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절정 생활을 할 때에 그  교역자에게 소속한 교인들은 서서히 절정 생활로 점점 따라가게 되고 변화되게  됩니다. 그라다가 교역자가 바꾸어져서 다음에는 아주 평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교역자가 가면 그뭐 불붙었던 절정 신앙 생활 하는 그건 교인들도 다  타락하고 속화돼 가지고 평지 신앙 생활을 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을 보면 그 교인들의 모든 동향과 그 형편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그렇게 같이 보면 그만 됩니다. 교역자의 사진판이 교인들이라, 교인은  교역자의 사진판이라 교역자와 꼭 같이 된다 그렇게 봐서 지내침이 없고 틀림이  없이 되는데 우리 진영 교역자들은 그만 그렇게 절정 신앙 생활을, 이 절정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고 또 주님과 동거하고 하는 치 도리를 그대로 받아  가지고 신앙 생활 하던 사람들은,  그래도 사도 요한 같은 분은 그런 신앙 생활을 해도 순교도 안 했고 그는 아주  사도 중에 제일 장수를 했는데 우리 진영에서는 그만 그렇게 살던 사람들은  청년으로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니까 무슨 지금 평가들이 돼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사는 것도  좋지마는 그렇게 살아서 짧게 살아 일 년 그렇게 사는 것보다 조금 무르게  살아도 십 년을 살면서 일하는 게 낫다. 그러니까 짧게 그렇게 뜨겁게 사는  것보다 길게 좀 뜨뜻하게 그렇게 사는 것이 낫다.' 하는 이것이 다 모두 비판이  되어 있고 평가가 되어 있어서, 그분이 사는 걸 보고 '나도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저렇게 살다가 가야 되지 이렇게 평지 생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 생활  하다가 갑자기 주님이 부르면 이 부끄럽고 낭파된다' 하는 그런 깨달음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성신의 감화일 터인데 모두 그래 가지지 안하고 '너무 저렇게  지내쳐서 저래 하다가 보니까 일찍 죽었다. 나도 그래 하면은 일찍 죽는다.

그렇게 그만 잠깐 살고 일찍 죽는 것보다는 좀 속화적으로 그렇게 아주 널펑한  그런 신앙 생활을 할지라도 오래 좀 있으면서 일하는 게 낫겠다' 하는 이런  마귀의 오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면이 지금 제게 대해서는 큰 고통입니다. 마음에 그 면이, 나도 그래  살지는 그렇게 뭐 못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라고 애를 쓰기는 쓰고 있는데, 그래  내가 어떨 때에 말하기를, 나는 금년에 나이 팔십인데 젊은 사람들이 그 신앙  생활 하는 데 있어서,  요한일서에 보면 '젊은이들에게 내가 이 복음을 기록해서 보내는 것은 너희들이  악한, 자들을 다 이기었음이라' 이래서 청년 신앙이라 하는 것은 전투력이 강한  것이 청년 신앙인데 '너거 젊은 사람을의 전투력이나 팔십이라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는 이 영감탕구 보다도 너희들의 전투력이 이 나만도 못하다,  빈약하다. 내가 지금 나이가 이래도 너거보다는 더 충성한다.'  제가 잘못 봐서 그렇기를 원하지마는 내가 어느 젊은 교역자를 봐도 힘쓴다는  것이 그렇게 팔십되는 노인 나만치 힘을 쓰는 그런 교역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만침만 그래도 힘을 쓰면 교회가 당장 부흥할 수 있는 이 복음인데 이 복음을  저희들이 받아 가지고도 복음을 제 복음 삼을라고 힘쓰는 것도, 없는 가운데서  깨달은 사람이야 얼마나 힘썼겠는데 알아 가지고 제 복음, 삼는 거야 그거 쉬운  것이지마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별로이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거창을 한번 가서, 뭐 가서 돌아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가니까 여게  가도 교인들 교역자들이 꽉 모이니까 그 사람들 만나 가지고 뭐 얘기하는  가운데서 내 맘대로 돌아다닐 수 없고 그래 먼데서 이래 보면서, 제가 생각하기를  제가 그 골짝에 가서 이렇게 볼 때에 산만당마다 제가 안 간 산만당이 없었고,  험한 바위틈마다 바위 틈에 제가 안 간 곳이 없었고, 또 날 좋을 때만 아니라 비  올 때는 가서 풀을 베서 위에 움막을 지어 놓고 있었고, 또 내가 단독이 갈 때는  양산 한 개 가지고 가 가지고 비 오면 그 양산 밑에서 그렇게 지내왔던 그런  것을 제가 한번 다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어떤 사람이, 그때 사람이 하나 거기 따라왔기 때문에 '저기 갈 때는 그 기도하러  갔더냐?' 하니까 그 사람들 몰라요. 지금 살아 있는 OOO씨가 거기 있어서 혹  OOO씨가 그때 사람이라 '저게 기도하러 갈 때 따라갔더냐?' 하니까 그 간적이  없다 이래.

 그렇게 발동을 했었는데 이 기도산을 다 그걸 개척을 해서 이래 만들어 놓고  한대도 석기 뭐 양산동 기도산에 가 가지고 그렇게 힘써 기도하는 사람들이  교역자 쳐놓고는 서영준 목사 혼자가 그래 하다가 없습니다. 지금은 여기  OOO목사님이 늘 기도하러 늘 계속해서 가는데 요새는 조금 늙어져서 또  게을리 하는 것 같고 날마다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교역자들은 전부  개을해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뭘 하는고 하니 항상 사람 붙들고 일합니다. 제딴에는 교인 붙들고  이 사람 붙들고 또 요렇게 해야 되고 저 사람 붙들고 저렇게 하게 되는 것이  전부 사람 죽이는 일만 하고 있지 사람 살리는 일은 못 합니다.

 제 수단 방법으로 '이 사람에게는 요럴 때 이 말을 해 가지고 내가 붙들어야  되겠다. 저래 붙들어야 되겠다.' 전부 하나님 상대한 걸 사람 상대해 가지고,  저거는 그래도 바빠서 못 합니다. 바빠서 기도실에도 못 가고 기도산에도 못  갑니다.

 이래서 모두 다, 그라면 귀신이 와 가지고 말하기를 '야, 너 홍순철 목사  모양으로 그래 하다가는 일찍 뒈진다. 조심해라. 그렇게 살다가는 전성수 목사  모양으로 일찍 뒈진다. 청년 죽음 한다. 그라다가는 서영준 목사와 같이 일찍  죽는다. 천천히 하고 그래 해라? 그래 해 가지고 얼마나 위생적으로는 그뭐  단단히 준비하는지 모두 육체는 살이 번들번들하게 쪄 가지고 있지마는 살은 쪄  있어도 속에는 다 병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만  바라보는 자에게 일찍 죽어도 병 없이 죽었습니다. 일찍 죽어도 병 없이 죽고 다  이렇게 건강하게 이래 지내지마는.

 그래 가지고 우리 진영 교역자들은 이 신앙은 절정에서 주님 만나도 주님과  동행한다는 이것을 아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와 같이, 내가 그렇게 절정  생활하면 이 교역자들이 나에게 속했기 때문에 할 터인데 그들이 안 하는 건 내  눈에 보여서 안 한다고 탄식이 되지마는 내 자신은 하지 못한다 하는 그런 걸  느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쨌든지 기독교는 절정에서 주님 만나고, 절정에서 주님과 동거하고, 절정에서  주님과 동행합니다. 평지에서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열 처녀 비유에 모두 등불  들고 기다리고 있었지마는 그 등불 든 데는 슬기 없는 다섯 처녀도 다 등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라니까 그 등불이 밤이 깊어 가니까 '등불이 꺼져간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등불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이라다가 주님은 그때 오지 안하셨고 밤중 될 때 그때 주님이 오셔  가지고 만나게 됐는데 등불이 밤중까지 계속되지, 못한 사람들은 다 기름이  모자라서 그리 됐는데 거게서는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절정에 밤중에 주님 만난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내나 절정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것입니다.

 이래서 신앙의 절정, 절정이라 하는 것은 그 주관성 절정도 있고 객관성 절정도  있는데 주관성 절정은 자기 자체로서 그 신앙 계속하기가 어려운 때를 가리켜  말합니다.

 자기가 신앙 계속하기가 어려운 때, 자기로서 어려운 때, 힘드는 때, 또 자기가  제일 힘이 쥐어지고 힘이 쓰여지는 때, 그런 것이 다 자기 주관의 절정이요 또  객관 절정은 내 주위 환경에 그 현실이라 하는 것이 나로 하여금 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모든 역사의 때를 가리켜서  객관성이라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신앙 생활에는 자기가 그 신앙 생활 하기가 힘드는, 자기 주관으로  힘드는 때가 있고 '피곤하여 낙심하지 말라' 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피곤한 것,  피곤한 때가, 기도라든지 자기가 모든 또 순종 생활이라든지 자기가 무슨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신덕적으로나 아주 힘드는 힘드는 그런 것이 자기  주관 절정이 되겠고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위 환경을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줘서  내가 신앙 유지하기가 아주 어려운 그런 절정기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절정기에 다, 떨어지고 넘어지고 또 그것을 피할라고 거게까지 가지를 안  합니다. '이 만당에 올라가면 되고 한데 그뭐 만당에 올라갈 게 뭐 있나? 만당에  올라가면은 그건 것도 보이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데 그저 그건 줄 알면 되는  것이지 만당에 내가 실지로 땀흘리며 올라갈 게 뭐 있느냐?' 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신앙의 절정에 올라갈 라고 하지 안하고 약아서 게을하게 그래서 '그렇게  신앙 생활 하면 너무 지나치고 치우치고 그것은 다 너무 편벽되고 그렇지 보통  신앙 생활이 좋다.'  이래서, O대통령이 '나는 보통 사람이라' 해서 이 보통이 어떻게 유명하게 돼  놨는지 모두 다 인제 보통을 좋아하고 그렇게 기독교에 이 신앙 절정을 객관  절정이 오면 아예 그런 걸 만나지도 안하고 피해서 딴데로 둘러가고, 객관적으로  어려움이 자기에게 어려운 현실이 오면은 그건 현실을 만나지 안할라고 자꾸  그런 현실을 피해서 가고,  또 자기 주관적으로 모든 절정되는 그런 때는 자기가 그만 그것을 잘 조절해  가지고 절정에 이르지 않는 그건 신앙 생활을 하는 그건 것이 온 한국 교회 세계  교회가 다 그것으로서 다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하고 있는데 그들이 세상일을 그래 하느냐? 세상일은 그래 하지  않소. 세상일은 아주 열중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싸 짜매고 뭐 썩은 박사  그까짓 것도 하나 얻을라 하면은 참 머리를 싸매고 죽을 지경으로 이렇게 하고  또 정함이 없는 재물 물질 그런 것도 사업 성공을 하기 위해서 물질 성공하기  위해서 아주 뭐 전심 전력을 기울이다시피 기울이지마는 신앙 생활에는 그렇게  기울이지 안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욕망을 가지는 노력만치도 신앙에 대해서  욕망을 가지지도 안하고 노력을 하지도 안합니다.

 이래서 지난밤에 그 절정을 말해서 참 거게 대해서 지금 내게 해당됐고 우리  진영에 교역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 절정 신앙 생활을 가져야 절정에서  주님 만나고 주님과 동행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했기 때문에 제가  거게서 은혜를 받았고,  또 하나 은혜받은 것은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하는 이 레바논은 백산인데 일년 내내 눈이 썩지 안하고 눈이 아주  희게 그렇게 눈과 얼음으로 일 년을 내내 계속되고 있는 거와 같이 그렇게 은  세상이 다 부패해져도 오직 그런데 따라서 속화되지 안하고 참 '백설이 분분한데  낙락장송되리로다' 하는, 안 믿는 사람이 충신으로서 시를 지은 거와 같이 그렇게  온 세상은 다 썩어져 들어가도 이제 자기 혼자만은 그 썩지 안하는 그런 데에서  주님을 동행한다 하는 거게 대해서 제가 또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거창 있을 때에는 그때는 신앙이 어려서 보는 면도 좁고 상대하는 면이  좁으니까 힘도 덜 들기는 덜 들었지마는 그때는 참 레바논 산에서 주님과 동행을  해다고 보여지고 그래서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가 그렇게 그래도 내게는 날마다  싸웠어.

 이번에 가서 집을 그 집을 O조사님이 가면서 판다고 했는데 나는 그 생각을  가지지 안했는데 집을 산다고 이래서 OOO장로가 그 집을 샀습니다. 사서, 그래  자기가 거기서 나고 이랬다고 사서 그기 가 봤습니다.

 가보니까 모두 다 구조를 변경하고 고쳐서 제가 그 왜정 말년에 육 년 동안을  계속해서 매일 일본 부장하고 신사참배 하나 안 하나 하는 그 시비했던 그  창문을 OOO목사님이 그래 알기 때문에 '요 창문 밖에 일본 부장은 와서 서서  인사하고 목사님은 여기 창안에 마루에서 성경 연구하면서 그들이 와도 들어보라  소리도 안 하고 그저 하나는 문 밖에서 인사하고 하나는 문안에서 인사하고  그라면서 늘 신사참배 때문에 신강하던 그 문이 이 문 아닙니까?' 이래서 그  문이라고.

 문은 보니까 다 그 문은 그만 봉해 놨던가 뭘로 해 놨던가 해서 그래 구조를  모두 변경해 놨습니다. 그 변경해서 OOO장로가 갔다 오더니마는 다 구조도  변경되고 하니까 아무 가치가 없습디다. 없어서 이제 뭐 달리 뭐 어떻게 한다고  말하는 걸 나한테 하는 소리를 약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내가 아무래도 내 힘으로는 되지 안하는 것인데 주님과  동행해서. 그때 예배당마다 다 그 사람들이 다 차지했었는데 그 예배당을 우리  예배당은 그들이 차지할라 해도 안 주고 이래 신강하다가 마지막에 그거 또  묘하게 믿음으로 참 이래 가지고 그들이 나중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랬는데 부산 와 가지고는 이 교인 수는 많지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함께 가자' 하는 레바논 생활이 내게 없는 것 같애요. 레바논 생활이 없어서  이거 백산 뭐 이 주위 환경에 따라서 내가 뭐라고 한다 해도 그때 모양으로  그렇게 좀 까랑까랑하지 안하고 이래서 다른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백 목사님이  옛날 요량하면 속화됐다' 이렇게 말한대요. 속화가 된 것 같애요. 그래서 그래 그  면을 다시 한번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번 새로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그러고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이 한 군데만 꼭대기 붙였지마는  다른 데도 다 꼭대기입니다. 헤르몬 꼭대기라, 이것은 단절의 절정인데 단절의  절정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데 단절의 절정이 내게 대해서는 지금  흐리고 있다.

 이래서 그뭐 그저 다른 거는 그럴 게 없고 이러니까, 새를 기르다가 이거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새에 대해서 새를 기르면서 재미 붙일 만하면 주님이 때라 하니까  또 그만 그 새 처분하게 되고, 또 고기 키우는 데도 재미 붙을 만하면 그거 그만  고기 그거 없애 버리라 해서 또 없애 버리고 그런 거는 그라는데도 단절한  거게서 계속되지를 못하고 만날 반복되고 반복되고 이라는 내 신앙의 허무한  것을 발견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하는 이것도 내가 지금 그렇게 아주  이 부산 와 가지고는 이 고신에 있을 때에 그 총노회적으로 제가 교계적으로는  이 고독한 그 환경을 만났지마는, 뭐 가정에도 약간 그런 어려움을 좀 만났고  이랬지마는 별로이 그렇게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주님과 나와 동행하는 그런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 부산 와서는 참 편해요. 고통이 없고 편하게 살아요.

 왜정 말년에는 참 그 사자굴 표범산에서 주님과 동행 동거했고 또 6. 25 때도  거게서는 6. 25 인민군 사이에서 또 공비 속에서, 그때는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은  요 옆에 집이 보도연맹에 가 가지고 공산주의에게 가족들이 공산주의라고 몰려  가지고 죽은 가족들, 또 요 왼쪽에도, 또 바로 내 뒷집에도, 바로 앞에는 그  사람들이 그때 반장으로 내놨어요. 인민군들이 반장으로 내놓은 제일 무식하고  아주 상놈이고 하인이고 하는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을 반장으로 내놓으니까 그게  뭐 어떻게 날마다 와서 애를 먹이는지?  그래 옆에는 만날 웁니다. '어찌됐든간에 저,' 나를 친미파라고 저 예수 믿는 놈들  저놈들은 그러니까 저거 분 풀어 달라고 오른쪽에서 날마다 분 풀어 달라 하지,  왼쪽에서 분 풀어 달라 하지, 뒷집에도 또 분 풀어 달라 하지, 앞집에서는 그  사람들이 또 반장으로 내놓으니까 이거는 또 날마다 나한테 와 가지고 괴롭히지  그런 때가 그것이 참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주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인데 지금  부산 와 가지고서는 약간 교계적으로 그런 일을 좀 당했고 가정적으로 좀 그런  일을 당했고 이랬지 그때와 같은 그런 일이 별로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허리띠를 풀어 놓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가졌고,  그래서 이 헤르몬 꼭대가 헤르몬이라는 것은 단절이라는 그런 뜻을 가졌는데 그  단절에 대해서 내가 금방 끊었다가 또 뭐 해도 먹이다가 그만 만다 또 이러고 또  뭐 그동안에 이런 거 저런 거 또 이래 더러 닭도 먹이고 이래 쌓다가 뭐이든지  정 붙을 만하면 못 하게 해요. 그거 재미를 붙이면 그만, 연구해 가지고 재미 붙일  만하면은 말라 해서 그때는 또 말고,  이번에 대구 집회 갈 때도 대구 집회 가는 날, 첫 주일 보고 집회 갔는데 첫  주일 그 맞이하는 토요일날 열시까지 내가 고기 길렀습니다. 뭐 집회 준비고  뭐이고 그거 지금 뮈 또 거기 대해서 뭐 한번 알아본다고.

 이래 가지고 메기도 길렀고, 곰장어도 길렀고, 가물치도 길렀고, 잉어도 모두  길렀고, 떵어리도 길렀고, 시골에 있는 망태도 길렀고, 곰장어는 저 곰장어 새끼  똑 그 실나끈 같은 거 그놈을 제가 사다가 그것도 길렀어요. 기르니까, 그것도  인제 기르며 뭐 어떻게 기르는가 좀 뭐 깨닫고 좀 한다고 이래 기르니까 재미가  있어. 그래서 열시까지, 토요일날 열시까지 지금 그거 길렀어요.

 그 연구하고 재미를 붙었었는데 주일날 아침에 새벽기도 와 가지고 여기  엎드리니까 하나님께서 '그거 버리라' 한다 말이오. 그래서 그 마음에 아깝지만  버리라 하는 거 어짤 수 없어서 그날 아침에 '내가 버리겠습니다.' 그라고 그래  인에 '버리겠습니다.' 하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셔.

 은혜를 안 줘서 내가 그래 이거 어짠 일인가 발동을 치니까 그것을 말씀하셔서  내가 '그러면 그런 것 다 버리겠습니다.' 하니까 그날 주일날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몰라도 오월 첫째 주일날 그날 설교를 은혜 있는 설교를  했습니다.

 하고 그래 인제 그거 버리라는데 그거 버리니까 뭐 주님과 나와 동행하니까  집회에 대한 문제가 아무 걱정이 안 되고 집회에 대한 문제는 그거 버리는 것이  그것이 집회에 대한 모든 준비라. 버리고 집회를 오월 집회에 은혜 있게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작정을 하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안하고 내가 가면서  OOO집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가고 난 다음에 그 어항에 있는 물을 다 빼고  고거 소제하고 그래 그 고기는 전부 낙동강에 보낼 거는 낙동강으로 보내고,  오륜데 보낼 것은 오륜대로 보내고, 전부 다 보내고 그래 월요일날 그날 바로  출근하는 길로 다 보내라'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그것, 그것도  그런 게 말하자면 이제 말한 헤르몬 꼭데기라, 그거 헤르몬 꼭대기. 그래서  하나님이 그거 좋아하셔.

 그래서 뭐 그런 거는 그라지마는 참 뭘 이렇게 하나님께서 뭐이든지 이렇게  끊으라 할 때 딱딱 그걸 끊지 못하고 하는 그런 것 때문에 주님이 섭섭해하는  그거 내가 단절에 대해서, 그런 사소한 건 그렇지마는 단절에 대해서 단절력이  아직까지 빈약하다 하는 그런 걸 느끼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그러고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나의 누이라 말은 동태 형제간이라 말입니다.

동태 형제간.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늘 형제라고 말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우리와 동등으로 여기시고 주님이 우리와 동등으로 이렇게  여기셔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또 신부라 말은 주님의 배우자라 말이오. 너는  나와 근본이 같고 또 나의 배우자라 '이랬는데,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하는 여게 대해서,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하는 그것을 나는 그전에 그런 해석을 내가 안 가진 것  같은데 그런 해석을 했던지는 모르겠습니다. '네 눈으로 한번 봄으로' 눈은 마음의  눈을 말하는 것인데 마음으로 생각 한번 하는 것, 생각하는 그 한 생각에, 한  마음에, 한 뜻에 한 소원에, 마음에 한번 움직인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한번, 그 마음이 한번 작용하는, 마음에 움직인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다 내가 얻는 것이요 또 내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말로 주님을 얻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말로 주님과 천리 만리 멀어지기도  하고, 내가 마음 한 번 가지는 그 마음에서 주님과 나와 멀어지기도 하고, 내가  마음 한번 바로 가지고 잘 가지는 좋은 마음 좋은 생각 좋은 뜻 좋은 소원 좋은  말 그 한번 하는 거기에서 주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가 있다.

 이래서 내가 거창서는 그 생활을 좀 범위 좁지마는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게  와서는 그 생활을 못 해요. 요새도 지금 나이는 늙어서 힘은 없어서 쩔룩거리고  뭐이런데 잘 못 다니는데 힘은 없는데 힘 없으니까 할 일도 못 해. 그런데 뭐  일은 어떻게 분주하고 거석한지? 잠시도 혼자 있을 때가 없고 틈날 여가가 없어.

 그래 내가 어제 양성원에 가 가지고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저희들이 설교록을  자꾸 읽으라 해서 요새 실교록만 읽고 있어요. 아마 지루감이 있을 거라. 그래도  자꾸 내가 읽힙니다. 깨달아지라고 좀 이랬는데 어제 말을 하기를 '언제 그 한번  하루 좀 산에 가서 하루 종일 좀 명상할 수 있는 그런 명상 기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이 좋았어. '이것들이 설교록을 읽고 나서  뭐이 좀 아마 뭣을 좀 눈을 고요히 감고 주님하고 밀접하게 좀 관계를 맺고 싶은  그런 심령에 갈증이 있구나' 하는 그 말을 들을 때에 기뻤습니다.

 그래서 '뭐 그렇게 할 수가 사있지. 그라면 월요일날은 오후에는 여게서 또 내나  하나님 말씀 공부하고 화요일날은 그라면 하루 산에 가서 고요히 주님하고  교제하는 명상 기한을 하루 두지' 내가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래 그  제가 은혜를 받아서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그래 지금 여게는 내나, 그거는 다 엊저녁에 다 해석했기 때문에. 그 산마다,  몰약산에서, 또 유향의 작은 산에서, 또 레바논산에서. 또 아마나산, 스닐산,  헤르몬 꼭대기 다 그 절정. 또 사자 굴 표범산 거게서 주님과 동행하자 하는 것,  그기서 내려다 보자 하는 그것도 높은 차원에 있다는 뜻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절정이 아니면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하는 요것을 항상  명심하고 그처. 절정 생활이라 말이나,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나, 또 밤중에  주님 만난다는 말이나 다 일통되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기에 신앙 생활은 그런 데에서 성공이 있고 되는 것이지 그저 어째됐던간에  제 좋아하는 대로 해서 세상과 같이 이렇게 널펑한 그런 데에서는 다 썩기만  하기 거게는 주님 만나는 깨끗한 성결의 영생이 되는 생활은 안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실천해서 경험 체험을 가지고 할 것,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으면 안 됩니다. 또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자기에게 속한 모든 후배  자녀 제자를 마음 속에 품어 놓고 계속 기를 것,  오늘 아침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가서, 주일학교 학생들 또 중간반 학생들  새벽기도에 참석하도록, 그러면 요 나가다가 전화로 자꾸 하이소. 전화해  가지고라도 연락을 해서 다 새벽기도 어짜든지 많이 나오도록,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되지 안 들으면 딴데는 안 돼요 그 짓거 그린  서울대학이고 런 어데 미국에는 뭐 무슨 뭐 옥스포드나 하바드나 어떤 대학에  가는 것보다도 하나님 말씀 받는 게 낫습니다. 여게서는 다 모두, 거기서도 신앙  생활 하면 좋지마는 거기 가면 그래도 조금 달라집니다. 이런데 서울대학 일류  대학 갈라고 여기서 떠나서 가는 그건 사람들의 그 신앙이 안 떨어지면 좋지마는  떨어지면 손해입니다. 그러니까 간 사람들은 신앙이 속화되지 안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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