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7:42
전투교회
1987. 10. 7. 밤 (수)
본문:요한계시록 17장 14절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여게 싸운다 이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싸운다 이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게는 땅위에 있는 교회를 말씀하신 것인데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다 싸움 싸우는 전투 교회입니다. 땅위에 있는 교회는 다 전투하는 전투 교회입니다.
교회는 개인 교회도 있고, 또 가정 교회도 있고, 사회 교회도 있고, 전체 교회도 있고, 또 전체가 단일되어 있는 단일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다 같은 종자요, 같은 성질의 것이요, 같은 요소를 갖추었고, 같은 생명과 능력과 소망을 가진 것들입니다. 다만 양적으로 많고 적고 크고 작은 것만 다를 것뿐입니다.
이래서 땅위에 있는 교회는 전투 교회라는 이 말씀은 가정 교회도 전투 교회요, 개인 교회도 전투 교회요, 또 사회 교회도 전투 교회요, 우리 지금 서부교회 이렇게 된 것은 다 가정 교회들이 많이 모여 가지고 있는 사회 교회입니다.
어데서든지 교회라고 하면 크든지 작든지 그 수가 많든지 적든지 다 싸우는 교회입니다. 싸워서 이기면 참 영광스러운 성공이요 싸워서 지면 가련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기고 지는 그런 것이 섞여 있을 때에는 싸움은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다 동질 동성의 단일성의 것들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싸움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싸움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싸움이 두 종류와 종자가 없는 데에는 싸움이 있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싸움이 있는 것이 불행이요 화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종류가 있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싸움이 있어야 하나가 되지 싸움이 있기 전에는 항상 둘이기 때문에 둘은 투쟁하는 것은 투쟁하기 마련입니다. 투쟁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땅위에는 이 두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전투 있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 있는 일이고 좋은 것이지 전투 없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전투가 있는 것은 이기고 져서, 지는 것은 성경이 말한 대로 종이 되고 이기는 것은 상전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왕이 됩니다. 지면 이긴 자의 것이 되고 또 이긴 자의 종이 되어서 그 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요 이긴 자의 이용물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두 세력이 있는 데에는 전투가 없을 수 없는 이 전투는 필연적의 것이요 이 전투에는 반드시 이기든지 지든지 승패가 있는 것도 필연적의 것입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길입니다.
이긴 자는 쉽게 말하면 상전이 되고 이긴 자는 왕이 되고,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고 이긴 자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긴 자는 진 자를 자유로 이용하고 명령하고 진 자는 이긴 자에게 복종하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싸우는 이 싸움에 상대방은 무엇인가? 무엇으로 더불어 우리가 싸우고 있는가?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무엇인가? 여기 17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으로 더불어 싸운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이 짐승은 맞보기로 말해 놓으면 때로는 성도들이 이 계시 이 문서를 보존하기도 힘들고 자유로 연구하기도 힘드는 방해물들이 많기 때문에 말세지 말에 대한 예언을 한 예언서인 이 계시록은 거개가 실상 그대로 문서로 나타내지를 안했고 다 상징적으로, 비유적인 그런 것이 별로 없고 전부 다 상징적으로 이렇게 기록해서 나타내 주셨습니다.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그것은 전 시간에 제가 여기서 해석해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이런데 이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이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곧 세상을 상징적으로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싸우는 싸움의 대상은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 세상은 지구상에 베풀어져 있고 또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 사람들과 특수인 성도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 세계를 가리켜서 세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아주 형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잘 것이 없는 큰 형체를 가진 것도 아니고 또 무슨 그 가치성으로도 무슨 큰 가치를 가졌다 그렇게 우리가 보여지는 그런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 무궁한 신천 신지, 새 하늘과 새 땅, 다시 말하면 영계와 이 물질계의 통일되는 그 나라가 바로 이 세상에서 수립이 되고 조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지극히 크고 많은 우주와 영계의 하나의 한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도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도 투쟁하시기를 세상하고 투쟁해서 이긴 것이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과 싸워 이기시고 이기신 댓가의 대우 효력이 어떠하였는가? 성경에 말하기를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시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게 됐다.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아버지와 한 자리에 앉게 됐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우편이라, 아버지의 보좌에 앉게 됐다 그 말씀은 다른 데에 성경을 연결해 보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자존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고 주재가 되시고 만주 만왕이 되셨는데 이것을 세상을 이기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에게 이것을 다 상속시켜 주셨습니다. 이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고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보면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세상을 이기시고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고 또 관리하시고 또 그런 것들을 다 책임지시고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해서 행복되게 하는 하나님의 직책을 예수님이 위임 맡아 가지고 다 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조그만한 지구 땅덩어리지마는 여게는 우주와 영계를 좌우할 수 있는 모든 존재의ㅡ요새 우리 나라로 말하면ㅡ모든 존재의 중앙청이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이것은 조그만한 지구촌이지마는 영계와 물질계의 영원이 여게서 결정되고 여게서 수립이 되는 것으로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너희들도 세상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긴 자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됐을 때에 통일된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더불어 함께 왕노릇해서 통치한다는 것을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성경에 지금 본문에 있는 대로, 한 군데 내리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여게 저게 말씀을 인용해서 성경대로 여러분들에게 지금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기에 이 세상하고 싸워서 세상 이기는 것이 완전 승리가 되고 세상에게 패전하는 것이 영원한 완전 패전이 되는가? 이 세상에는 영계에 모든 질서와 조직을 문란케 하던 그 반역자 천사가 거게서 쫓겨나와 가지고 이 물질계 우주로 들어왔는데 우주에서 에덴동산 아담 하와를 침범해 유혹해 가지고 결국은 인류의 대표인 그 시조가 신인 계약한 그 계약을 어기는 범죄를 해서 완전히 마귀에게 점령을 당했습니다.
이래서, 세상은 영계를 하나님 다음으로 움직여 하나님을 능가하고 제가 하나님노릇 할라 하던 그 큰 반역자 큰 권세 있는 자가 거게서 쫓겨나와 가지고 이 우주 중에 지구라는 이 지구 세계에 들어왔고, 또 지구 세계에는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으로 예택받은 하나님의 기업과 영광의 찬미가 될 이런 존재들이 영원을 마련하고 하나님의 이 대리를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 마련한 거주처로 정한 것이 이 지구 세계입니다.
이렇게 큰 일을 꺼낸 사탄이 지구에 들어왔고 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 받을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진 피택자들이 지구상에서 나왔고 이래서 세상에는 악령이 점령해 가지고서 죄와 사망과 마귀 인간의 원죄 본죄 이것을 일으켜 가지고서 이 순전히 죄 속에 있는 죄악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지구라 하는 이것은 이 물질계 우주에 제일 중심되는 가치를 가졌고 또 제일 중심되는 그런 사역과 조성을 일으키고 있는 중요한 이 세상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은,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은 이 우주를 완전히 이겨서 점령한 것이요, 왜? 인류 시조가 이 악령에게 패전했을 때에 물질계는 전부 악령의 것이 다 됐습니다. 악령의 것이 다 됐고 영계에서는 악령을 쫓아냈지 악령을 정복해서 완전히 사로잡지는 못하고 거게서 쫓아냈습니다.
이랬는데 이 지구상에서 예수님께서 악령과 악령이 만들어 놓은 영원한 죄악, 과거 현재 미래의 영원한 죄악을 다 예수님이 정복했고 또 영원한 사망도 정복했고 사탄도 정복해서 이 세 가지를 이기신 것은 완전히 물질계를 점령하고 있는 물질계 왕이 되는 것을 점령했기 때문에 다 땅의 것은 완전 점령을 했습니다.
완전 점령한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영계의 것을 다 위임 통치로 상속시켜 줬습니다. 이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셔서 내가 받았다” 그렇게 예수님이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 말은 왜 하는고 하니 예수님이 누구로 더불어 싸웠느냐? 세상으로 더불어 싸웠다는 것을 지금 증거하기 위해서 이단들이 거게서 미혹할 그런 모든 요소들을 이 면 저 면을 간추려서 이것만 가지면 그들의 유혹에 빠지지 안할 만치 하기 위해서 범위 넓은 그런 것들을 여게 구비시켜서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이 싸운 싸움은 대상이 뭐인가? 대상은 세상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다른 말로 뭐인가? 이 세상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악령과 죄와 사망의 뭉텅이로 이렇게 견고히 단합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싸움의 대상은 세상인데,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님의 싸움의 대상은 악령이었고 사망이었고 죄였습니다. 이 셋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서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대주재의 보좌에 앉아서 대주재의 대리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을 다 통치하게 됐습니다.
이 통치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 통치하게 됐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신성은 근본부터 하나님이시지마는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신데 신성과 함께 피조물인 인성이 이 승리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이런 승리의 보좌에 앉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기면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는다”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보좌는 곧 아버지의 보좌를 상속받은 보좌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고 관리하고 그들에게 만족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시은의,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의 이 존귀한 존재로 등장된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전투하는 전투도, 곧 우리의 전투인데 예수님이 전투한 이 전투 승리하면 우리도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싸움의 대상은 세상이었는데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무엇인가? 우리 싸움의 대상이 곧 세상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 것같이 이제는 나도 저희들을 세상에 보낸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버지가 주님을 세상에 보내서 세상을 완전히 이기신 것과 같이 이제는 너희들을 내가 세상에 보낸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지금 전투하고 있는데 우리가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면 주님의 보좌에 앉게 되고 지면 영원히 세상에게 종이 됩니다.
이래서, 그러면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세상이라는 것도 성경에 많이 있지만 오늘 저녁에 본 이 본문 요한계시 17장에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뭣이냐? 그것이 곧 세상입니다. 15장으로부터 16장 내치 계속해서 읽어 나오면 곧 이 짐승이 세상을 가리킴이라 하는 것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싸우는 이 전투의 교회인데, 나 개인도 교회요 믿는 가정이라면 우리 가정도 교회인데 우리가 개인 교회나 가정 교회가 이 전투에서 이기면 자기 세상은 자기의 종이 되고, 자기는 세상의 상전이 되고, 세상은 자기에게 이용당하고, 복종당하고, 자기는 세상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하는 그 결과가 이 전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내가 이 세상에게 이용을 당하는, 이 세상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이 암만 세상에게 이용당하기 싫어도 결과적으로 이용을 당하는 자가 될 수 있고 또 세상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같이 보이나 결과적으로 세상을 완전히 이용해서 세상의 주인공으로 세상의 상전으로 세상을 이용하고 세상은 나에게 이용을 당하고 나는 세상을 통치하고 세상은 나에게 복종하는 종이 되어지는 이 결과가 우리 현실 현실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이 비밀의 큰 사실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래서, 세상에게 종이 되지 안하고 세상을 네 세상으로 이용하고 완전히 세상은 너를 위해서 있는 네 소유물로, 네 종으로, 너를 위하는 것으로 이렇게 삼을 수도 있는 너는 권세가 있다.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완전히 세상을 네것 만들 수 있고, 네 종을 만들 수 있고, 네 이용을 만들 수 있고, 세상은 영원히 너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는 세상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또 네가 세상에게 종이 되고 이용되고 영원히 세상에게 복종해야 되는 그런 존재도 될 수 있는 것이 이 간단한 이 현실 기독자의 생활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전투 세상인데 그 성과는 심히 크다. 이 전쟁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전쟁은 세상하고 세상하고 저거끼리 거기서 서로 잠깐 서로 충돌돼 가지고서 세상과 세상이 쪼갱이 돼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이지마는 우리는 똘똘 뭉친 온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오.
그러기 때문에 싸움도 기독자의 전투는 어떤 소인이라도 기독자의 신앙 전투를 하는 것은 온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앞에 당면된 것은 마귀 한 마리가 와서 당면되고 세상에 어떤 존재 한두 사람이 와서 당면했지마는 그 배후는 배경은 온 세상이 다 연결된 배경돼 있기 때문에 조그만한 그것을 이겼을 때에는 온 세상을 다 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거게 다 연결돼서 연합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긴 것은 모든 것을 이긴 것이 되나니 그걸 이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승리라고 벌써 인정해 버리고 그 다음에 다시 거게 대해서 전투할래야 전투하지 못하도록 패전자로 다 간주해서 하나님이 판정을 하기 때문에 다시 전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전투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온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전투라 하는 이 큰 전투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됩니다. 큰 전투이기 때문에 이 전투는 큰 전투입니다. 이 큰 전투이기 때문에 온 피조물하고 다 싸우는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 중에는 영계 것은 다 포함되지 안했지만 이 물질계의 피조물하고는, 물질계의 피조물은 다 마귀의 것이 다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계의 피조물 전부와 더불어 싸우는 이 싸움입니다.
이 싸움이기 때문에 땅위에 어떤 그 세력이나 존재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그것들 편이기 때문에, 무슨 제국주의니 군왕주의니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뭐 사회주의니 뭐 해도 그것은 저거끼리 이름을 바꿔 가지고서 이렇게 연극하는 놀음이지 그 뿌럭지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 싸움인데 이 싸움에 그 승패는 어찌 되느냐? 그것은 세상이 제 종이 되든지 제가 세상에 종이 되든지, 세상이 제것이 되든지 제가 세상 것이 되든지, 영원히 제가 세상에게 이용물이 되든지 영원히 세상을 제것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자가 되든지, 이렇게 참 전투도 큰 전투고 그 전투를 이긴 데에 대한 적산도 굉장히 큰 것입니다. 이 싸움 싸워 가지고서 거기서 얻어지는 그 모든 수익도 굉장히 큽니다.
이래서 이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하고 우리는 큰 것을 목적으로 두고서 전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다음으로 큰 성패를 가져올 이 전투 일선에 나선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전투를 이기면 예수님의 승리한 그 승리에 내가 동참하게 되고, 패전하면 우리는 세상 것 마귀의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중생된 영은 이는 완전 승리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지만 우리 심신은 완전히 세상의 종이 되기 때문에 이 전투에 지면 심신의 기능은 다 뺏겨버리고 예수님이 대속하신 다만 그 형체만 부활하지 부활한 자의 권능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전투 교회라는 것과 우리의 전투에는 소망이 지극히 큰 것과 우리가 이 전투에 패전하면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큰 패전으로서 가련하게 된다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세상이 나를 위해서, 세상이 나를 위해서 있도록 하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요, 세상이 나를 위해서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승리하는 것이요 세상이 내 종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내가 승리하는 것이요 세상이 내것이 되게 하는 것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전투를 모르고 땅위에서 뭐 과학전이니 또 문화전이니 국경전이니 민족전이니 또 이런 무슨 사업 전쟁이니 이 경제전이니 이것 다 아이들 말로 새발의 피입니다. 새발의 피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큰 마음을 품어라. 네가 큰 포부를 가지라. 이걸 가진 사람들은 벌써 세상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소망을 두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싸움은 세상하고 싸우는 싸움인데 이 싸움을 싸우는 승리의 유일한 비결은, 간단한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뭣이냐? 진실이라. 이 이기는 전법은 진실뿐이라.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진실이라.
그러면 이 진실은 언제 진실하라 말인가? 현실에서 진실하라 말인데 현실에서 진실하는 진실은, 현실에서 진실하는 이 진실은 온 세상을 점령하는 것이오.
마귀를 점령하는 것이요, 사망을 점령하는 것이요, 죄를 점령하는 것이요, 온 세상을 점령하여 이 점령할 때에 땅의 것을 점령하니까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하늘의 것도 다 줬습니다. 우리도 땅의 것을 점령하면 하늘의 것도 다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다” 그 말은 아버지 보좌는 이 물질계 우주의 것만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영계와 물질계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치하는 그것을, 통치하는 그 직위를 가리켜서 보좌라 그렇게 여게 상징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런 큰 소망을 가진, 이 일선에 전투하러 나선 사람들인데 이 전투는, 이 방법은 다른 법 없고 “진실한 자는 이기기로다” 이랬습니다.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그러면 진실한 것이 뭣이 진실한 것이냐? 진실한 것은 이것은 여게는 “진실한 자는 이기리로다” 이랬는데 이 진실은 세 가지 진실이니 이 외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진실은 그저 지식 진실, 지식 진실, 행위 진실, 사람 진실 이 세 가지뿐입니다.
그러면 지식 진실은 뭐이며 행위 진실은 뭐이며 사람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을 언제 마련하는가? 현실에서만 마련할 수 있는데 그 진실이 뭣인가? 현실에는 내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내가 열 가지, 유교의 지식을 알고, 불교의 지식을 알고, 이 사회 지식을 알고, 과학 지식을 알고, 또 모든 윤리 지식을 알고, 이런 모든 종교 지식을 알고, 또 미신의 지식을 알고, 자기가 지식을 아는 대로, 지식을 아는 대로 수많은 지식이 내 현실을 당했을 때에 그 지식이 ‘이래라 저래라’ 해서 우리 마음은 번민스러울만치 그런 지식들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그 자기 지식을 따라서 자기 지식을 따르라고 그렇게 하는 수많은 지식들이 다 등장하고, 또 내가 아는 지식뿐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그 지식을 다 가지고서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현실에서 수많은 지식이 `이래라 저래라’ 할 때에 우리는 모든 것 다 거부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영감 도리의 이 지식대로, 모든 지식을 다 거부하고 ‘나는 영감 도리 요 지식대로 나는 요 현실을 요대로 처리하겠다. 요대로 행하겠다.’ 하고서 그때에 하나님의 지식을 긍정하고 다른 지식을 부정할 때에 그 현실에 해당된 진리 지식은 자기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때 암만 뭐 외워도 소용이 없고.
그 현실에 ‘어느 지식을 네가 등용하고 어느 지식에 네가 속하겠느냐? 어느 지식을 따르겠느냐?’ 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가졌기 때문에 진실한 지식을 가지게 됐고, 그럴 때에 ‘이리 하라. 저리 하라.’ 우리는 그 현실에서 지식하고 난 다음에 행동하게 되는데 행동할 때도 ‘네가 그 지식을 딴것 가지면 안 된다. 이래 행동해라. 행동해라.’ 우리가 행동할 때도 수많은 것이 등장돼 가지고서 저를 따라서 행동하라 할 때에 그때에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이 진리 지식 이대로 나는 행동하겠다’ 하고 그때에 현실에서 행동할 때에 그 진실한, 진리대로 행동한 것은 진실한 행동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할 때에 자기는 진실한 행동의 사람이 됩니다. 진실한 행위의 사람이 됩니다.
또 이렇게 진실한 지식을 가지고 진실한 행위를 해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의 이 믿는 사람,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고 기다리는 사람 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입니다. 자기가 요대로의 행동할 때 자기는 성경대로의 사람이 되니까 요것은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게 현실에서 우리가 요 세 가지만 하는 데에는 이 세 가지 하면 세상을, 온 세상을 이기는 자기의 승리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많든지 적든지 조만간에 그것은 내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실에서 이 진실로 가지고 현실을 이기고, 현실에 진실해 이기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 우주와 영계는 내것이다’ 하면 다른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 할 것이라. 미친 사람이라 하지만 그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고 그 사람의 것이 돼.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큰 소망의 희망이 있는 우리 전투자이기 때문에 이 전투에서 땅위에 뭐 내 빌딩 집 한 채가 가나 오나, 또 내게 있는 물질이 가나 오나, 손톱만한 그 지역에서 내가 가진 권세와 지위가 가나 오나, 내가 뭐 잠깐 동안 사귀고 있는 그런 사람의 이런 사귐 저런 사귐의 그 사귐, 그 사귐의 그 사람을 잃나 얻나, 뺏기나 잊어버리나?’ 그런 눈꼽쟁이같은 그런 사소한 것을 우주보다 큰 이 큰 전투의 소망을 가진 우리들이 그런 사소한 것들을 돌아보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소한 것을 돌아보면 안 되기 때문에 “네가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결단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나를 따라오지 못하리라. 내가 승리하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이 전투 승리하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내가 승리한 승리를 네가 하지 못하리라. 있는 걸 다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는 그 말씀을 하셨어. 그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까? 그 말씀이 성경에 있어요? 누가복음 14장 33절에, “이와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전투에서 뭐 ‘야, 네가 이 전투를 이렇게 하면 네 생명 끊어진다’ `생명도 없어져도 좋다’ ‘네 가정 절단난다' `가정이 없어져도 좋다' 생명이 없어져도 좋은데 뭐 가정이 뭐 생명만치 큽니까? 생명으로 말하면 가정보다 훨씬 더 크지 않습니까?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사업 어떤 것, ‘내 생명이 없어져도 이 전투는 양보 못 하겠다’ 하는 요 전투의 승패에 지극히 큰 것과 이 전투에 패전하면 영원히 비참하고 승리하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얻어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는 이 지극히 큰 소망의 가치는 자기 육의 생명 이미 버릴 거 육의 생명 그런 것 천천 만 개보다도 더 하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승리하지 그리 안 하면 승리를 못합니다.
이래서 오늘밤에 제가 증거하는 것은 뭣이냐? 우리 현실에서, 우리는 전투의 우리들인데 우리의 전투의 대상은 세상인데, 세상으로 더불어 이 전투를 이기면 주님의 보좌에 앉게 된다. 주님도 전투의 대상이 세상이었다. 세상을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우리도 이 전투를 이기면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길라고 하면 어떻게 이기느냐? 세 가지 진실만 가지면 이길 수 있다. 어짜든지 현실에서 이것도 저것도 내비두고 이 전투에서 승리할라 하는 요 하나를 소망으로 가지고 이것 하나만 어짜든지 성공하려 하는 요 결심을 가지고서 이 전투하는 데에 ‘땅에 있는 것이 다 절단나도 이 승리만 나는 하겠다’ 요것을 유일한 자기의 소망으로, 유일한 지극히 큰 것인 것을 인정하고 가치를 여게다 두고서 전투하지 안하는 사람이라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우리가 현실에서, 무엇이 어쨌든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수많은 지식에도 ‘하나님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나는 요대로 하겠다’ 해서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자기가 취해서 진실한 지식 소유한 자가 되고, 또 거게서 무슨 수많은 방편이 있지마는 ‘하나님 말씀하신 요대로에 나는 생활하겠다.’ 하나님의 진리대로에 생활해서 진실한 행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어데서라도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모든 것 맡겨 놓고 참고 견디는 요 성경대로의 사람, 성경대로의 사람이 믿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요, 이제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요 하나님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요, 참고 견뎌서 하나님이 모든 걸 잘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인내하는 사람이 성경대로의 사람이라.
어쨌든지 요 현실 현실을 요렇게 해서, 나는 진실한 지식, 진실한 사람, 진실한 행위, 요 세 가지만이 나 할 일이요 요것만 성공하면 뭐 다 가져가도, ‘명예와 생명과 재물과 친척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무엇이뇨? 내 주께 있으리로다.’ 암만 그래 봐도 요 세 가지만 나는 현실에서 승리했으면 욕을 하든지 뭐라 하든지 내 목을 베어도 그것들은 다 내것 되고 맙니다.
목을 베었다고 어데 영원히 벱니까? 그 목을 베었으면 더 영광스런 생명으로 부활되지. 아무 소용 없어. 아무 손해 없어. 요것을 우리가 아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하십시오. 또 이 명절에 부패하지 말고, 이 명절 왔다고서 썩어서 자꾸 이리 저리 그렇게 흔들리지 말고, 그리고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워야 합니다. 외우고 명상해서 연구하면 오늘밤에 이 말씀 한 것도 그 속에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