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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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빌립보서 2장 1절∼1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장 1절 초두에 '그러므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이 말씀은, 1장에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주를 위해서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아야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 이 고난을 받는가? 고난받는 것은, 세상의 지식이 하나가 되고 모든 사상과 목적과 방편이 하나라면 충돌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인데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의 종류가 있고 또 수많은 사상과 목적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지식과 지식의 다툼이 있고. 사상과 사상의 다툼이 있고 욕망과 욕망끼리 다툼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서로 대립되고 마찰되고 이렇게 투쟁하여야 하는 이런 일들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신앙 걸음을 걷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고저 하는 사람마다 핍박을 받기 마련이고 또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일을 양보하지 아니할라고 하면 온갖 박해와 죽임을 당하고 그런 일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들은 바라' 바울이 그가 무슨 참 잘못됨이 있어서 그렇게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는 옳은 것 하나만 있다고 하면 그런 일이 없지만 옳은 것 하나 외에 잘못 된 것이 심히 많아서 잘못된 것 속에 삼키워 있는 사람을 구출할라고 할 때에는 자연히 옳은 것과 삐뚤어진 것이 서로 대립이 되고 또 거기에서 모든 충돌되는 그 투쟁을 통해서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것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니라' 그러면, 믿는다고 하다가 그 믿음과.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순종 생활 하다가 여러가지로 마찰이 오면 그만 순종 생활 집어 던져 버리면 마찰은 없어집니다. 순종 생활을 시작해서 여러가지 마찰이 있을 때에 너희들이 어떤 고난을 당하여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옳은 의인의 길을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서 내가 지금 고난 당하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이 싸움의 고난을 겪어야 한다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세상은, '그러므로' 세상은 이렇게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지식이 각각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욕망이 다르고 비판과 평가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이러니까 서로 서로 다툼과 싸움이 있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이렇게 수많은 종류가 있어 가지고 수많은 힘이 있어 가지고 수많은 종류의 목표가 있어 가지고 이 목표와 저 목표, 이 사상과 저 사상, 이 건설과 저 건설, 이 사상과 저 사상끼리 싸워 가지고 이것 때문에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이것 때문에 지금 선지 사도들이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니 '그런고로' 이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잘못하면 헛길 가기 쉬우니까 조심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라고,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인데 너희들이 부름을 받아서 예수 믿게 된 것은 그저 세상에서 너거 욕심대로 너거 좋도록 살기만 위해서 주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계대를 해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계대해 받아 가지고 감당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러서 구원시킨 것이니까, '그런고로 그리스도 안에' 제사장을 만드는 이 은혜 역사 안에, 선지자를 만드는 은혜 역사 안에, 하나님의 통치에 피동되는 왕을 만드는 이 은혜 역사 안에 우리들은 있는 것이요, 이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 세 가지 직책을 우리가 인계 받아 가지고 그리스도의 대리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대행 행위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려는 것이 우리들이요 실력 그것이 성도의 실력이요 그 실력의 영광이 성도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책 이것이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는 제사장 직책이요 하나는 선지 직책이요 하나는 직책이니까, 제사장 직책은 어떤 게 제사장 직책인가? 사람이 하나님에 잘못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서로 화평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고 공의로우심이 인간에게 막바로 오면 인간은 거기에서 녹아지고 멸망받기 때문에 그것을 잘 조절해서 하나님의 그 빛을 피조물들에게 올 때에 피조물에게 유익되게만 오고 피조물을 멸살시키는 빛으로 오지 못하도록 잘 거기서 조화를 해서 조절하고, 사람들의 그 모든 피조물의 잘못이 하나님에게 그대로 즉시 직접으로 연결됨으로 하나님 앞에 심판받아 멸망하지 아니하고 피조물들의 모든 잘못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잘못을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어서 도리어,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고 하심과 같이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한 그것이 하나님이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이런 조화를 하는 그 직책이 제사장 직책인 것입니다. 제사장 직책에 대해서는 구약 육체의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살펴 보시면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선지 직책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바른 뜻을 인간들에게 한 번 두 번 몇 백 번이라도 알려 가지고 인간의 지식이 사상이 소원이 정신이 옳게 됨으로 하나님 앞에 온갖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그 진리로 인간을 새롭게 깨끗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고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중간 역할 하는 것이 선지 역할인 것입니다.
또, 왕의 역할은 하나님은 절대 주권의 전능의 통치를 하시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위반되는 모든 사상이나 통치는 다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에 배치가 되고 대립이 되는 인간의 모든 정치성 모든 다스림성을 왕이 거시서 가르치고 설득하고 또 다스리고 또 막고 가리고 모든 사랑과 모든 징계로써 유강을 가지고, 유하게도 하고 강하게도 하고 이래 가지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에 반대되는 이것으로써 인간이 망할 수 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한 분의 온전한 통치에 거기에 다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그 안보를 입어 영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왕의 직책인 것입니다.
이래서, 선지 제사장 왕의 직책을 책임맡은 것이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소망과 구원을 가지고 있는 너희들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세상이 사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뜻이 다르고 욕망이 다르고 소원이 다르고 성품이 달라 가지고 이렇게 서로서로 싸워 가지고 멸망받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이루어 가질려고 하는 너희들이니, 이렇게 분쟁 많은 이 세상에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으로 성장할라고 하는 너희들이니 너희들의 할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그 다음에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안에서 무슨 권면이나' 무엇을 권면하는 것. 권면이라는 말은 해석을 안 해도 알겠지요? '무슨 권면이나' 권하는 것이 권면이요,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어떤 면으로 힘을 써야 될 것인가 그 사람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잘 인도해 가지고 바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권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무슨 권면이나' 무슨 권면을 하든지, 이런 면을 권면하든지 저런 면을 권면하든지 무슨 권면을 하든지. 또 '사랑에 무슨 위로나' 사랑하는. 사랑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공의로만 다스릴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용서하고 참고 기다리고 긍휼히 여겨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벌을 받을 자에게 위로를 주시고 또 낙망으로 멸망받을 자애게 소망을 줘서 이렇게 그 사랑을 가지고 위로하는 사랑의 무슨 위로를 하든지,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사람들을 사귀는 일 사람들을 이렇게 사귀는 일, 성령의 감동의 사귀는 일. 사귀는 것도 죄악적인 사귐도 많이 있지만 성령의 감동의 사귐이라 할지라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는 이런 감화의 사귐을 가지고 이런 종류의 사귐을 가져야 될터인데 엉뚱한 종류의 사귐을 가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의 사귐이라 할지라도 그 장소 그때 그 사람에게 그 형편 그 처지에서 그를 서로 교제할 것을 그대로 교제해야 되지 때에 틀리고 장소에 틀리고 또 형편에 틀리고 사람에 틀린, 그런 교제라면 성령의 교제라도 거기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라도 거기에 맞은 말씀이라야 되지, 성경 말씀 가지고 마태복음 4장에는 보면 뱀이 성경 말씀 가지고 예수님을 꼬왔습니다. 성경 말씀 가지고 꼬았어.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 가지고 예수님도 꼬울라고 하는데 마귀란 놈은 성신의 감화라도, 성신의 감화로서로 성령의 감화로 교제할라고 할 때에도 요 교제를 해야 될 때에 저 교제를 하도록 그렇게 자꾸 삐뚤어지게 만들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은 좋지만 긍휼도 사람이 이 면을 긍휼히 여길 때 있고 저 면을 긍휼히 여길 때 있는데 마땅히 긍휼히 여겨야 될 그 면을 긍휼히 여기지 안하고 엉뚱한 긍휼을 베풀면 틀린다 말이오. 긍휼도 좋은 것이지만 긍휼도 지나치면 죄가 됩니다. 또 긍휼도 거기에 해당치 않는 긍휼을 가지면 그것이 죄가 되고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불쌍히 여기는 자비. 긍휼은 다른 사람을 자기같이 생각하는, 자기와 꼭 같이 생각하는 고 성질을 가리켜서 긍휼이라고 말하고, 자비라는 것은 자기는 있고 자기와 같이 그를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고 관용하고 그렇게 아주 다정하게 순하게 연하게 그렇게 부드럽게 대하는 그런 모든 것을 가리켜서 자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비가 있거든' 얼마나 이게 좋은 일입니까? '무슨 권면이나 긍휼이 나 자비가 있거든'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마음을 같이 하라는 그 말은 그 일을 할 때에 상대방이 하는 것은. 제가 그 일 하면 좋아합니다. 제가 그 일을 하면 좋아하지만 상대방이 그 일을 하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상대방이 아무리 의로운 일을 해도 그 의로운 일을 제가 하는 의로운 일만치 기뻐하지 안하고 상대방이 의로운 일 하면 마귀란 놈이 거기서 '저 사람이 너보다 더 의로운 일 한다' 해 가지고 시기심을 일으켜 가지고 그렇게 서로 충돌하게 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이런 것 때문에 삐뚤어져 가지고 뒤죽박죽이 돼서 엉망진창으로 사망으로 가득 차 분쟁으로 가득차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같이 하여' 저 사람이 어떤 의를 행하든지 선을 행하든지 옳은 일을 하든지 곧은 일을 하든지 할 때에 네가 거기서 협조해 가지고 같이 해 줄 수 없으면 그 하 것을 네가 하는 거와 꼭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지, 남의 선은 싫어하고 네 선만 좋아하고 네가 잘되는 거는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잘되는 거는 싫어하고, 네가 실패하는 거는 싶어하고 다른 사람이 실패하는 거는 기뻐하는 이렇게 그 마음이 네게 대한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대한 마음과, 네 행위에 대한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대한 행위에 대한 마음이 다르면 안 된다.
다르지 말고 마음을 같이 하여,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처음에는 마음을 같이 해 가지고 그것이 차차 성장되어서 같은 사랑으로 하라. 그러면 저 사람이. 갑이 을에게 행할 때에 너도, 그 갑이 을에게 대해서 옳고 바른 일 할 때에, 그 사람을 동정하고 구원할 때에 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할 때에 너도 그 사람과 꼭 같은 동정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네가 가지고 사랑을 같이 해라, 그러면 네가 거기에 가서 같이. 맡은 직분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하는 일 냅두고 남의 하는 일 훌떡 뛰어들어 가지고 이래 하는 그것이 아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그러면, 그럴 때에 네가 몸이 가서 같이 할 수 있으면 몸이 가서 같이 하고 마음이 같이 해서 할 수 있으면 마음이 같이 하고, 성질이 같이 할 수 있으면 성질이 같이 하고.
소원이 같이 할 수 있으면 소원이 같이 하고, 그러면, 기도로 같이 하고 뜻으로 같이 하고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망으로 같이 하고 이렇게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해라, 같은 사랑. 같은 사랑, 같은 사랑이면 사람의 사랑은 천인 만인 사랑이 다 다른데, 많은 사랑을 가졌는데 같은 사랑이면 이거는 왜 같은 사랑이라 했느냐?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해라. 같은 사랑이라는 말은 이것 잘 모르면 모릅니다.
얼마든지 아무나 따나 주대서 해석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배우고 난 다음에는 주석이 여러 수백 종류가 많이 나와 있으니까 주석을 가서 찾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많은 주석을 찾아 가지고 양심을 써서 자꾸 연구하면 '아, 이것보다는 요게 낫다 요거는 틀렸다 옳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은 사랑을 가지라' 말은 같은 사랑은 무슨 사랑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한 분의 사랑. 사랑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지 피조물들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왜 없는가? 암만 오늘 사랑해도 내일 미움이 돼 버리면 소용이 있습니까? 오늘 사랑해서 그를 도왔지만 내일 그를 돕지 못해서 멸망 가운데 빠지는데 돕지 못하면 그 사랑이 무슨 사랑입니까?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질 수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고 영원하시고 전지 전능하시고 불변하시기 때문에 이 실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사랑은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의 사랑으로 해라 그라면,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해라, 하나님 한 분의 사랑을 가지고 해라 이렇게 말할 터인데 어떻게 해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라고 했는가? 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인데 하나님의 사랑 그거 하나 가지고 하는데 왜 같은 사랑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사람이 천인 만인이 다 있기 때문에 너 거 각자의 개인이라는 것과 개체라는 것이 없지 않다. 그 개체를 무시하고, 불교에서 말하기를 무아주의로 자기라는 것이 없다는 그 무아주의로 나아가는 그게 아니고, 네라는 자체는 똑똑히 있다. 똑똑히 있다. 그 개인이라는 개체는 똑똑히 있다.
너거 개체로서 하나님의 한 사랑을 김가도. 하나님의 한 사랑 이가도 하나님의 사랑 천 명 만 명 이라도 하나님의 한 사랑을 가지고 하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같은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같다 말은 수많은 사람의 개체성을 말하고 개별성 개인성을 가리켜 말하는데. 수많은 개인성 개별성을 가지고, 개인이 그 개체가 있지만 수많은 개체가 하나님의 한 사랑을 가지고 행해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랬습니다. 여기 같은 사랑이라 하면 예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라 그 말로 하는 거 아니오. 요 같은 사랑 이런 거는 아주 이 진리는 바로 깨달아서 알기가 아주 어려운 단어입니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뜻을 합하라는 말은 이 사람의 뜻 저 사람의 뜻 종합해 가지고 열 사람의 뜻이 있으니까 열 사람의 뜻을 종합 해 가지고 한테 뒤 타 가지고 그래 하라 말 아닙니다. '뜻을 합하여 하는 요 말도 그러면 네 뜻 내 뜻 둘 합해 가지고 너도 좀 양보하고 나도 양보해 가지고 합해 가지고 그것을 종합 해 가지고 종합 뜻을 가져라. 종합 뜻을 가져라 그말 아닙니다. 뜻을 합하라 맡은 하나님의 한 뜻을 행하되 개인 개인이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다 가지고 있는데 그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다 가지고 하지만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백 명이고 천 명이고 뜻을 가질 때에는 하나님의 한 뜻을 너희들이 각각 천 명 만 명이 다 그 한 뜻을 가지고 행하라 하는 그것을 표시해서 뜻을 합하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요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리에 서지를 못합니다. 도인이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걸어가는 도인이 못 됩니다.
'뜻을 합하여' 이제는 '한 마음을 품어라' 그 다음에 내려왔습니다. '한 마음을 품어' 이래 가지고, '한 마음을 품어' 한 마음을 품으면 그러면 뉘 마음으로 따라갈까? 여기는 한 마음이라 하니까 둘이 마음을 합해 가지고 위에서는 보면 합한 것같이 보이지만 그 다음에 마지막에 결론짓기를 '한 마음을 품어' 이제는 한 마음입니다. 그러면 네 마음 내 마음 조금씩 양보해 가지고 합한 그 종합 마음이 아니고 한 마음. 요 한 마음은 뉘 마음일 건가? 요 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위에서 이렇게,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또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나 그런 것이 있으면 '마음을 같이 하여' 여기서는 벙벙하다 그 말이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것도 복수입니다. 같은 사랑도 복수요 또 마음을 같이 하는 것도 복수요 또 그 다음에 뜻을 합하여 하는 이것도 복수요 한 마음을 품어 여게는 단수입니다. 그러면, 위의 복수는 뭐이며 밑의 단수는 뭐이냐? 복수는 모든 인간의 개체, 개인. 개인성을 말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단수를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한 분의 그 마음을 품어 예수님의 한 마음을 품어라 말은 예수님의 그 포부, 예수님의 소원인 그 포부. 예수님의 소원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의 소원 삼고, 예수님이 원하는 것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 삼고, 예수님의 소욕하는 것 모든 사람이 소욕하고, 예수님이 가지는 그 방편 모든 사람이 가지고. 예수님의 가진 목적 그 한 목적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일을 하라 그 말입니다.
"품어 아무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아라, 다툼으로 하지 말아라. 다툼으로 하지 말아라' 말은 네가 이 사람의 위로와 저 사람의 위로, 이 사람의 권면과 저 사람의 권면, 이 사람의 사랑과 저 사람의 사랑, 이 사람의 긍휼과 저 사람의 긍휼, 이 사람의 자비와 저 사람의 자비. 이 사람의 위로와 저 사람의 위로, 이 사람의 뜻과 저 사람의 뜻. 이 사람의 사랑과 저 사람의 사랑 이렇게 그것들이 서로 충돌되는 그런 것을 하지 말아라, 충돌이 안 되고 만나면 딱 들어붙는 것 요걸 해라 그 말입니다. 요게 예수 믿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데에 심방을 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장로가 만일 열 분이 있습니다. 열 분이 있는데, 그 사람이 가서 위로하는 말합니다.
위로를 할 때에 이 장로가 오더니만 위로를 해도 꼭 같은 장로, 저 장로가 와서 위로하는 것도 같은 위로, 이 목사가 와서 위로 하는 것도 같은 위로, 만 명이 와도 만 명 위로가 같은. 천 명이 와도 같은 책망 권면해도 만 명이 와도 같은 권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나온 것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돼야 그게 위로고 권면이고 바른 행위이지, 뭐 누가 이 집에 이 장로 가 가지고 이렇게 권면하고 저 장로 가 가지고 저렇게 말하고 이 목사는 저래 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위로나 권면이나 하나 일 터인데 고 하나를 찾아 가지고 하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하는 그까짓 거야 천도 만도 넘지 그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거기에 성신이 인치지를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신의 인을 받아서 영감 행위를 할라고 하면 신앙 양심 행위를 해야, 양심 행위가 자라서 아무것에게도 제재받지 않는 참된 진실한 양심 행위만 하면 성령이 보고 됐다 하고 성령이 감동시켜서 영감 행위가 되고 영감 행위가 되면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위가 되니까 이것이 천인 만인이 가서 권면해도 같은 권면합니다.
여러분들이 보면 알 것이라 그 말이오.
뭐 짜다라 대심방 하는데. 대심방 수백호를 대심방 하는데 목사가 뭐 알겠소? 안면 뭐. 암만 교인이 많지만 안면도 모르고 또 그 집도 알 수가 없고 이렇게 다 했는데 '삼 년 전에 대심방 와서도 이 집에 와 가지고 요 성구 줬다 이 년 전에도 요 성구 줬다' 그거 모르지만 모르지만 그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아시니 하나님의 성령이 '요 사람 집에는 요게 옳다' 고걸 회개했으면 그 다음에 또 다른 권면이 있지. 회개 안 하면 장 그 권면 입니다. 이라면 '아, 기억 좋다' 기억 좋다 소리는 마귀란 놈이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그때 한 권면을 지금도 하는가? 하나님의 성령이 권면시켜서 성령이 인도하시는구나' 그것을 알아야 살 것인데 고걸 모른다 그 말이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그것이 불쌍한 자입니다. 왜 그러냐? 양심을 죽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양심을 죽였기 때문에, 양심은 참된 인격의 신앙의 사람의 귀가되고 눈이 된다고 성경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툼이나' 다툼이나 하는 그 말은 다툼은 이 사람의 것과 저 사람의 것이 다른 것을 하지 말라 그 말이오. 한 가지 일에 대해서,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고 한 사람의 형편에 대해서 백 사람이 가도 그 위로나 권면이나 지도가 같아야 될 터인데, 같아야 될 터인데 이 사람이 지도와 저 사람의 지도가 다릅니다. 그것이 가짜입니다. 진짜는 하나뿐이오. 진짜는 하나뿐이니까 진짜 하나외의 거는 뭐 그거야 인간이 뭐 천 마디 만 마디 권면할 수 있고 지도할 수 가 있지, 그러나 하나님의 지도는 하나뿐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다툼으로 하지 말아라 그 말은 서로 이거와 저거와 다른 것이 되는 그런 거 하지 맡고 하나님 한 분의 것을 찾아 가지고 하면 이거는 천 명이 만 명이 해도 충돌이 없다 그 말입니다.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허영으로 하지 말아라, 허영으로 햐는 것은 뭐입니까? 허영으로 하는 것은 어떤 것이 허영으로 하는 것입니까? 허영으로 하는 것이 피조물의 영광 위해서 하는 것이 허영입니다. 피조물 영광을 위해서 하는 피조물 영광이 허영입니다. 다. 피조물 영광 암만 피조물이 영광스럽다 해도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다 멸해 버려요. 하나님 한 분의 영광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영광스럽게 함으로 그 사람이 영광스러워지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그 가정이 영광스러워지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그 교회가 영광스러워지고, 하나님 한 분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하나님 한 분을 완전 자 한 분을, 완전을 영광스럽게 함으로 그 영광스럽게 하는 그자가 영광스러워지고. 참을 영광스럽게 함으로써 그 참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자가 다 영광스러워지고 진리를 영광스럽게 함으로 진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그자가 영광스러워지고 하는 이것이 허영이 아니고 참 영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행동한 걸 성경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아주 주장을 해도 네가 네 열심도 죽어 있고. 네 간절도 죽어 있고, 네 큰 소리도 죽어 있고, 네 담력도 죽어 있고. 네 권력도 죽어 있고, 능력도 죽어 있고. 시간 문제지 반드시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고 만다. 어떤 사람이 다 죽어 가는 그런 무엇을 말해도 모든 세상 사람은 다 멸시 하지만 '아, 저거는 자존자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으로 인하여 났고. 진리로 인하여 났고, 불변으로 인하여 났고 영원으로 인하여 났고 자존자이신 유일이신 주권자이신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났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정죄받아 죽었지만 우주와 영계를 승리한다' 하는 것을, 예수님의 그런 것을 성령은 찬성했지만 인간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눈을 가져야 합니다 '허영으로 하지말고' 허영은 하나님 한 분만을 영화롭게 함으로 인하여 이 영광을 인하여서 자기가 영광스러워지는 그 영광이라야 그게 영원하고 참되지.
하나님 두고 뭐 국가를 영광스럽게 어떤 인류를 영광스럽게 어떤 세력을 영광스럽게 어떤 단체를 영광스럽게 어떤 교파를 영광스럽게 해도 이것은 다 허영입니다. 허영이 아닌 참된 영광과 허영과 이것만 구별해도 인간의 눈이 확 밝아집니다! 이것만 해도, 세상에 있는 것을 허영이냐 하나님의 참된 영광이냐, 이게 허영이냐 참된 영광이냐 이것만 구별해도 눈이 밝아져서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삼키지를 못할 것입니다.
이 위로나 권면이나 사랑이나 지도나 자비나 긍휼이나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이 하나님 한 분의 그것이냐. 열 사람이 오니까 열 사람이다 제 각각 가지고 합니다. 다 제 것 가지고 하요. 인간의 것은 다 불 타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라 그 말은, 부인하라 말은 자기의 나쁜 것만 부인하라 발이오? 자기의 장점도 다 부인하라 말입니다. 장점도 완전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의 그분의 뜻 그분의 마음, 그분의 비판 그분의 평가 그것 가지고, 이 사람도 와서 하나님 한 분의 비판 가지고, 이 사람도 오더니만 그 비판대로 하고 저 장로도 그 그 비판하고 목사도 오더니 그 비판하고 권사도 오더니 그 비판하고 그는 살았습니다. 이거 와서 보니까 이 장로는 이렇게 비판하고 저 장로는 저렇게 비판하고 열 명이 오고 스무 명이 왔는데 보니까 비판이 각각 달라. 그거는 죽었다 말이오. 참 하나님 밖에 탈선된 것이라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 너는 네게 완전이 없다. 영원이 없다. 전지가 없다. 전능이 없다 너는 만물보다 거짓된 자이다. 완전히 죽어서 만물의 때같이 되었던 자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네가 구속을 받아 그분에게 받은 지식.
그분에게 받은 권능, 그분에게 받은 사상. 그분에게 받은 사랑,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에게 피동되어 있는 그것만이 산 것이지 네게 있는 것은 다 죽은 것이라. 요 겸손이 뭐인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 한 분만이 완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니 그분의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분의 것을 찾아 가지고 그분의 것으로만 할라고 하는 이것이 겸손으로 하라 하는 그것입니다.
요 겸손을 해석하기를 다른 사람이 '아, 저 사람 겸손한 사람이라' 하기 위해서 퍼리를 굽신거리고 허리를 굽신거리고 예 예 이래 쌓아면 그것은 겸손이라는 고 껍데기를 이용해 가지고 자기를 높일라 하는, 인정받을라 하기 때문에 교만 중에 그거는 지능적인 교만이기 때문에 악 중의 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데 속으면 안 됩니다! 뭐 사람에게 이라고 예 이렇게 해도 그것이 교만은 아닌 것입니다. 교만은 어떤 것이 교만이냐? 하나님 한 분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그분으로 전부 삼지 않는 것이 그게 교만이요 겸손은 어떤 것이냐? 그분으로 전부 삼는 것, 그분이 울라 할 때 울고 말하라 할 때 말하고, 앉으라 할 때 앉고, 서라 할 때 서고 그분이 성내라 할 때 성내고, 그분이 미워하라 할 때 미워하고.
그분이 때리라 할 때 때리고. 그분이 죽이라 할 때 죽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겸손으로 하라 그 말은 하나님 한 분으로 동하고 정하라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 말은 '아, 나는 대학 졸업했는데 저 사람은 지금 국민학교도 졸업 못 했는데 저 사람의 지식은 나보다 낫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까? 죄 지어라 말이오? 그것 아니오. 이것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말은 우리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닙니다.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니고 자신은 천 인이고 만 인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있고 나를 위할 자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나를 위하기는 하나님만이 나를 위하고 또 나를 위하기는 하나님에게 피동된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하지 저는 위하지 못합니다.
손양원 목사님 내가 설교를 내가 듣지는 못했는데 전함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분이 설교하다가, '천국은 숟가락이 자루가 길어서. 자루가 길어서 거머쥐고 훅 떠 넣을라 하면 입으로 떠 넣으면 어만 데로 가 버리고 헛일이고 이러니까 숟가락을 떠 가지고 자기 입에는 못 넣고 상대방 먼데 사람에게 이래 입에다 떠 넣고 또 상대방이 떠 넣고 서로 떠 넣어 줘야 되지 제가 제 위해서 하는 것은 헛일이다' 얼마나 바로 깨달았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 종이 과거에 왜정 때에서는 제가 보기에는 여기 뭐 출감 성도 중에 그분이 신앙을 제일 바로 가졌습니다. 제일 바로 가졌어.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요 말은 다른 사람을 더 귀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아끼고, 자기보다 더 아끼고, 너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있고. 네가 너 위해 있지 않고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있다 그것을 가리켜서, 원리를 가리켜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라. 자기 일을 돌아보라 하니까 내 일 하고 남의 일 하라 말 아니고, 각각 자기 일 돌아보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너는 네 개인으로 네 개체가 아니고 너는 전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눈은 눈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눈은 전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눈썹이 하나, 이거 눈썹 이까짓 거는 무슨 아무 할 일 없지만 눈썹 이거는 전신을 위해 있습니다.
내가 언제 서울 갔다 내려오다 보니까 아주 키도 장성하고 몸집도 좋고 참 부틀로 잘 생기고 인물이 잘 생겼읍디다. 잘 생겼는데, 아마 옷도 잘 입은 것 보니까 부자인 모양이라. 부자인데 그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에게 뭘 사 주고 이렇게 친절히 많이 하는데, 많이 하는데 항상 이렇게 머리를 숙여 가지고 있고 이라다가 그리 안 하면 또 바깥에 나가 있고 '그거 저 사람이' 내가 뒤에 따라 다녀 봤어. '저 사람이 저렇게 사람에게 친절히 하고 좀 그런데 겸손한 사람이다.
겸손한 머리를 들지 못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이랬는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까 눈썹이 없어요. 문둥이라 눈썹이 하나도 없어. 문둥이라. 그래 놓으니까 그 사람이 남한테 굴욕적으로 살고 저자세로 살고 그런데, 요새 같으면. 그때는 지금부터 한 삼십 년 전이니까 그거 몰랐어. 지금 같으면 뭐 색깔 칠 하는 것. 요래 싹 칠해 버리든지 그리 안 하면 뭐꼬 가발이든지 싹 해 버렸으면 눈썹이 시커머이 이만큼 길게도 할수 있는 것인데 그때 그걸 몰랐어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 눈썹 하나 때문에 그렇게 천대받는 것을 봤습니다. 눈썹은 눈썹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눈썹은 전신을 위해 있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자기 일을 돌아보는 것이 뭐입니까? 자기 일 돌아보라 말은, 내가 모든 인류를 위해서, 모든 기독자를 위해서. 첫째는 하나님 위하는데, 하나님 위하니까 하나님은 뭐라 하느냐? 하나님을 위할라 하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구속받은 자들을 위해라. 구속받을 자들만 위할 뿐 아니라 불택자들도 위해라 불택자들도 위할 뿐 아니라 모든 만물들을 위해라 이라기 때문에 내가 다른 것을 위하는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위하는 그 일이 내 일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라든지 또 그 모든 순서를 지키는 것이라든지 그 모든 정도라든지 속도라든지 그런 게 다 바로 돼야 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사람 위해서 바로 하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이 자기 일 돌아 보라 하니까 이거는 자기 위해 하라 하는 것인가? 아니오. 우리는 자기 위해 하는 것은 다 사망이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밥 먹는 것도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농사짓는 것도 어떤 사람 보니까 농사지으면서 곡식 많이 해 가지고 배부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농사를 짓는데 이게 잘못되면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어도 헛일이라 이랄 터이니까 '아. 그 사람 농사짓는 것 보니까 참말로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가베' 이래 가지고 예수 안 믿는 사람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거름을 져 내는데 낮에 안 져 내 다른 사람 다 자고 나면 밤에 져 내. 밤에 져 내 가지고 밤에 논에다 이래 깐다 말이오. 깔아 가지고 이러니까 '아, 저 사람 풀도 안 베고 저래 가지고 농사짓는 데 저게 뭐이 되노? 아,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아니가. 예수만 안 믿나.' 삐쭉 삐쭉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만 곡식이 잘되니까 '야, 예수를 믿을라면 잘 믿어야 돼. 그 열심쟁이가 믿어 놓으니까 그 사람 보니까 아주 하나님의 뭐 돕는 게 하나님이 뭐이 이래 계시는 모양이라'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 일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일날이니까 큰 논빼미에 주일날 모를 심으다가 역부러 심으면서 일을 조정을 하기를 꼭 토요일날 반만 심으고 그 다음에 심으지 못하도록 그래 가지고 반 심으고 난 다음에는 그만 딱 중단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아, 저 사람은 와 논에 모를 심으다가 저렇게 뻐들트려 놓고 어디 갔노?' '아, 그 사람들이 모가 눈에 보이나? 주일날 주일 안 지키나. 예수 믿으러 안 갔나. 논에 뭐 모가 보이는가' '참 저래 놓으니까 예수 믿다 모두 망했다. 참 미친 사람이라.
요새 지금 이렇츰 바쁜 때 논을 멀거이 내비두고 주일 지킨다고 가다니' 부러 그 소리 하라고 하는 거라. 이래 놓고 난 다음에는 주일 딱 지키고 열 두 시가 딱 지나고 나니까 거름을 단단히 장만 해 놨다가서 밤에 지고 나갑니다. 열 두시 딱 지나고 난 뒤에 지고 나가서 모 안 심은 데만 자꾸 주 뿌렸다 말이오. 모 안 심은 데만 줄줄줄 뿌려 가지고. 다 뿌려 가지고 이래 이래 다른 사람 벌써 일어나기 전에 다 뿌려 놨다 말이오. 그 이튿날 떡 모를 심습니다. 심으니까 '자, 보자. 그 사람들 참 오뉴월 빛이 하루가 무섭다고 한 시간 늦게 심고 일찍 심은 것이 차이가 있는데 저래 놨으니 올 농사 굳혔을 것이다' 나중에 보니까 사람들이 모두 '아, 이상하다. 가만 있거라. 그때 어느 쪽에 먼 저 심었노'. 아, 저쪽을 먼저 심으지 안했어? 아, 검기가 이쪽이 먼저 검네. 그거야 이상하다. 저러니까 예수 믿는다. 그거 어째 그러나, 그거 어째 그러노? 그 사람 뭐 거름했나? 뭐 그런 것도 못 봤는데? 그 이상하다 보니까 땅내를 잘 맡고 더 잘됩니다. '야, 그래 놓으니까 그 사람들 주일 지켜, 주일 지키며는 뭐 하나님이 복 준다 그라는데 그 사람들은 주일만 지키면 다 돼. 예수만 잘 믿으면 다 돼.' 이래 놓으니까 모든 사람이 예수 믿어야 된다고, 예수 믿으면 망한다는 그 지방에 예수 믿으면 잘 된다 하는 그것으로서 완전히 인간 사상을 뒤비트려 놓으려는, 남을 위해서 자기 일도 돌아본다 그거요.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그러면 다른 사람의 일을 그 사람이 돕는 그것도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보아서 다른 사람의 일이. '에이. 내 일은 잘 되고' 그 말 있지 않습니까? '왜 배가 아프노? 외사촌이 논을 샀는 가베.' 외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하는 것이 인생의 죄악성입니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이 잘되면 시기가 나고 부애가 나는데 내가 가서 돕지 못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일이 잘되기를 내 일이 잘 되는 것같이 여기고 그 사람의 것이 뭐이 잘 되도록 이렇게 원해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그러면,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기 일과 같이 관심을 가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할 수 있으면 자기가 그 일에 대해서 잘 되도록 협조하려는 요 심지를 가지야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래야 복을 받아! 왜 예수 믿으면 복을 못 받습니까?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부자가 안 됩니까? 뭣 때문에 안 됩니까! 나 예수 믿고 부자 되었습니다! 다 있는 거는 술도가랑 다 팔아 버리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삼 년만 지나니까 부자가 돼! 뭐 돈도 많고 꽉차.
왜정 말년에 그때 예수 믿었는데 다른 사람은 먹을 양식이 없었는데 우리 집에는 양식이 넘어나. 이래 놓으니까 그때는 어떻게 쌀이 귀한지, 뭐 여기 부산에 있는 것. 뉘가 왔기 때문에, 와서 이거 없는데, '아 쌀을 지금 돈 받고는 팔 수 없고 뭐이 뭣이 필요한데요. 그거 필요한데요. 그거 필요하면 그러면 가지고 오면 쌀 얼마 줄랍니까' '몇 되 주지' 이라니까 이 사람이 어찌 됐던지, 부산이면 얼마나 멉니까? 뭘 어떻게 가 가지고 어떻게 뭘 해 가지고 왔는지고 이튿날 고 스물네 시간 만에 딱 가지고 왔어. 아 이거 어째 가지고 왔습니까?' '예, 뭐 참 고생한 걸 생각하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밤에 잠도 자도 안하고 막 이거 탈 때는 이거 타고 저거 할 때는 저거 하고 이래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떼일까 싶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만 거 뭐이든지 쌀이면 다 돼 이러니까, 공출 할 때에. 왜정 말년에 공출이 얼마나 엄했습니까? 공출 할 때에 공출하라는 사람이 없어. 나는 어째 이 사람들이 공출하라는 소리를 안 하는가 이랬는데, 할 마음은 없었어. 그게 군량으로 사람 죽이는 데 양식으로 가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일본 사람들 전쟁하는 거 나는 반대했었어요. 이러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이 목사들도 전부 단고 쓰봉 입고 각반 치고 이랬는데, 그때 머리 다 깎았는데 나는 내치 머리 깎고 있다가 그때는 머리 길렀어요. 왜정 말년에 머리 길러서 하이칼라 했었습니다. 이랬는테. 논에 있으니까 면에 있는 면서기 공출 담당. 관솔 가지 담당한 그 사람들 아버지가 오면서 역부러 우리 논에 찾아 왔어요. 찾아와 가지고 '아 이 사람아, 뭘 그리 해 쌓는가? 자네가 뭘 그리 하는가' '아, 뭐 합니까? 내가 해야 될 일 아닙니까?' '야 이 사람아. 부디 부탁하네. 부탁하네. 부탁하네. 그놈들이 몰라서 지금 그래 쌓고 있는데 혹 자네한테 와 가지고 무슨 말 해도 끼지 말게. 그놈들이 올라 그러네. 부탁하네.
아무래도 미국이 이기기는 이기네. 이기기는 이기니까 그때 미국이 이기고 미국 나라 될 때에 복수하지 말게. 그놈들이 알지 못해 그런 것이니까' 내가 그런 마음도 없었는데. 나는 또 친미파 아니오. 미국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
미국나라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 말이오. 이런데, 이 사람들이 와 이렇게 공출 내라 관솔가지 공출 내라 안 하는고 여겼더니만 너거 그런데 미국이 이기기는 이기는데 미국이 이기면 너거 나중에 다 복수해서 다 뒈진다. 함부래 그 집에 삽짝에 가서 말도 말고 말도 하지 마라, 이래 놓으니까 안 왔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말이오. 저거 바람에 자꾸 이리 돼져 버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당신을 높이는 자를 절대 높여 줍니다. 왜 하나님 높이는 다니엘을 매장했습니까? 높아졌소. 하나님 높이는 요셉이를 천대했습니까 높아졌소. 형제들은 죽일라 했는데 높아졌소. 여러분들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육체의 이스라엘 때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나의 기쁨이라 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쁘고 즐거워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보고 기쁘고 즐거워하고, 요다음에 빌립보 2장에 보면, 나가 보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자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을 참 이렇게 존귀히 모시는 자의 그 행동에는 돈을 들여도 아깝도 안하고, 자기의 노력이 들어도 아깝도 안하고 자기 뭐 어떤 걸 들여도 아깝도 안하고, 심지어 '너희들이 하는 그 일에는 내 피를 너희들의 하는 일 위에 점점이 뿌릴 것이다 생명을 그 위에다 뿌릴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고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그분을 영화롭게 존귀케 하려 하는 이것을 이렇게 기뻐해서 그 기쁨에는 자기도 몸도 생명도 소유도 돌아보지 안하고 기뻐 못 견디는 이것이 성령의 사람의 심정이요 예수 믿는 사람의 심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만 시기해서 저를 높여서 왕으로 하면 좋아하지만 주님을 높이 하면 그만 시기하고 장짜 가지고 회장이나 엎으고 뒤에 삐쭉하는 그것은 회개 안 하면 조만간에 망합니다! 이것 다 우리가 회개하고서, 요게 5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을 우리가 품어야 되지 안 하면 다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깨닫고 우리는 요대로의 살아야 됩니다.
한번 읽어봅니다. 이제 해석을 했으니까 여러분들이 읽으면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는 건 뭣 때문에 그런고로인가? 싸움이 많다 그 말이오. 세상이 이렇게 열 가지 백 가지가 싸우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열 가지 백 가지로 그라면 싸워서 망하고 만다. 너희들은 한 가지를 가지라. 한 가지를 가지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이 하라 하니까 그것 똑 보면 인간 종합 마음 같지 안해요? '같이 하여 같은 사람을 가지고' 이것도 종합 복수 아닙니까?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여기서 단수가 돼 버렸습니다.
위에서 복수 같지만, 단수, 하나라는 거는, 복수는 뭣 때문에 복수 말했는가? 그것을 해석을 했습니다.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충돌되는 것 하지 말아라. 하나가 하나하고 충돌이 됩니까? 하나가 하나하고 충돌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분의 지식과 권면과 사상과 목표와 그 모든 소망을 가지고 하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 아니기 때문에 투쟁이 있을 수가 없어.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허영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은 영광은 그거는 영원하고 참되지만 그 외의 것은 20세기의 문화 영광이라 하면 대단한 것 같고 인류를 박애하는 영광이라면 대단한 것 같지만 이것도 다 때가 되면 은 다 없어집니다.
여러분들, 눈을 널리 뚝 뜨고 시야를 넓혀 보십시오. 전체를 보십시오.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말고. 시간으로는 영원을 보고, 공간으로는 물질계 우주만 볼 게 아니라 영계까지 보고, 존재적으로는 피조물만 볼 게 아니라 창조주까지 보고 이렇게 널리 봐야 됩니다. 우리는 시야가 좁으면 못 씁니다!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 겸손한 마음은 뭐인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 아니라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요 사람으로 우리가 살면 후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