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5:49
장성한 분량
1989. 2. 3. 금저녁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14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을 우리 대속하신 구주로 주신 은혜는 꼭 같습니다. 우리들이 꼭 같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은혜와 또 이로 인해서 성령의 은혜와 진리, 영생을 꼭 같이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속의 은혜를 주신 목적이 어데 있는가? 그 목적은 첫째로 말하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 첫째 목적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돼야 뭐이 되기 때문에 첫째로 역사하는 일이 온전한 사람 이루는 첫이 첫째 목적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어떤 것이 온전한 사람인가? 이는 세상이 모르는 곧 하나님의 모형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는 것이 온전한 사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어떠한 위대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그 사람을 우리의 표본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우리의 표본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형상 날마다 덧입어 가기를 힘써서 하나님을 배우고 닮고 본받고 해서 하나님과 같은 자 되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분량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분량은 곧 제사장 분량, 선지자 분량, 왕의 분량 이것이 그리스도의 분량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 말은, 그리스도도 처음에 도성인신해서 말 구유에 누였을 그때는 모든 것이 어립니다. 차차 차차 장성해져 가지고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를 완성하신 그때에 예수님은 장성할 대로 다 장성하셨고 승리할 대로 다 승리를 하셨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 말은,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을 완수한 그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자라갈 수 있는 그런 희망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면 우리는 우리 소망이 이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우리에게 충만해져서 그리스도의 장성함과 같은 장성에 이르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면 우리가 차차 차차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린 아이를 버려서 장성하고 자라가 가지고 나중에 끝에는 어데까지 도달하느냐? 모든 사람들의 그 궤술, 사람들이 별별 꾀우는 꾀가 많습니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는, 사람을 통해서 꾀우는 꾀가 얼마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간사한 유혹이라는 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악령이 우리 사람들을 꼬울 때에 그 사람의 모든 형편과 사정도 잘 알고 또 그 사람의 본질과 본성도 취미도, 모든 걸 다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참 들으면 녹을 만치 그 사정을 알아서 사람 좋게 기쁘게 하는 이것이 간사한 유혹인데 이 유혹에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자기 좋게 하고, 자기 위하고, 자기를 높이고, 공연히 없는 것도 높여 주면 그거는 놀려 주는 건데, 놀려 주는 건데도 그걸 좋다고 사람들은 간사한 유혹에 빠집니다.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모든 교훈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는 시대를 따라서 아무런 일정됨이 없는 갈 지(之)자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유행되는 교훈, 유행, 유행되는 교훈, 유행되는 모든 세상 지식, 유행되는 그 과학들, 전부 다 그것이 모든 교훈인데 그건 교훈의 풍조에 밀려 이 말은 아주 물결 흘러 내려가듯이, 이 세상의 모든 교훈이라 하는 것이 다 간사한 교훈들인데 이런 교훈이 물결 흘러내려가듯이 흘러내려갑니다.
이런 데에 요동치 않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장성해지면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서 그리스도가 하는 그 직책을 우리들이 영원히 감당해야 되는데 그 감당하는 데는 굉장한 것들이 많이 있으나 다시는 그 유혹이나 마귀의 궤술에 빠지지 안해야 이 일을 감당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의를 행하는 데 열심 있는 것이나, 충성있는 것이나, 절제하는 것이나 이건 것은 다 잘할지라도 그런 것은, 그거 가지고 장성한 것은 아닙니다. 오만 간사한 유혹과 마귀의 궤술, 이 시대의 교훈 풍조 이런데에 흔들리지 안하고 그대로 일관되어 나가는 그 신앙이 장성한 신앙이요 그 사람이라야 무슨 일을 합니다.
그러기에 시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교파든지 또 위인 신앙가든지 그런 사람들은 시대를 구별하지 못하고 또 미래를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 성공이라 하는 것이 실패로 되어지고 자기를 위한다는 것이 자기 자멸하는 함정을 파는 일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런 모든 데에 유혹받지 안할라고 하면은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는가? 성경에 선생님은 한 분뿐이시라 말했습니다. 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선한 분은 누군데? 하나님 중심의 존재는 하나님 한 분뿐이라. 또 모든 것을 옳게 바르게 지도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이런 모든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또 시대의 교훈과 이런 저런 모든 유행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아니하는 사람이 돼야 되지 이것을 방어하지 못하고 여게 피동되면 제가 아무리 뭐 위대하고 열심 있고 충성한다 할지라도 어데로 끌려가 가지고 멸망을 받을란지 모릅니다.
내가 말은 안 하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참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좋은 신학교를 하나 세워 놨습니다. 또 세우고 나서 보니까 거게는 좋은 부속 기관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또 부속 기관을 또 아주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세웠습니다.
세웠는데, 불과 한 이삼십 년도 지나기 전에 자기가 세워 놓은 그 전심전력의 신학교는 거게 필요해서 요긴하다고 세운 부속의 그 모든 기관이 완전히 삼켜 버리고 신학은 그만 아주 거게서 뿌리까지 뽑히다시피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지혜자가 없고 선비가 없고 말 잘하는 변사가 없습니다. 모두 다 인간은 유한한 것인테 무한한 그분이 설계 해 놓고 계획을 짜 가지고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데 그분의 그 계획과 그분의 그 설계의 지능에 도달하지 아니하니까 그것은 항상 제 발등 제가 쫏기로 그저 자멸하는 일 자살하는 일 이 외에는 딴 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런 장구한 영원을 내다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분만이, 하나님만이 완전자시요 전지자시요 영원히 실패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그분을 따라서 피동되는 것으로 네가 숙달되고 성장돼라. 그분은 네 원동이 되고 너는 그분에게 속해서 피동되는 이 방편 외에는 인간으로서 온전한 지혜도 가질 수 없고 온전한 능력도 가질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 봉독한 것은, 그런 설명을 다 할라 하면 한정 없고 그래서 간단하게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할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대속을 받은 우리들이고 또 이 네 가지로 중생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성령과 진리와 영생으로 우리 영이 죽은 영이 살아나서 다 중생돼서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같이 입었습니다. 뭐 이 은혜는 누가 더 입고 덜 입고 한 사람 없고 꼭 같이 이 은혜는 입었습니다. 입었는데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뭐이냐?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로 중생된 우리들인데 어떻게 하든지 영원을 향해서 준비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실력 있게 장성하도록 이렇게 길러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빌립보서 3장 4절 이하에 보면은 바울이 과거에 참 그걸 얻을라고 애를 써서 귀한 학벌을 얻었습니다. 그분의 학력이라 하는 것은 굉장한 학력을 가졌고 또 그분이 문벌도 베냐민 지파의 좋은 문벌을 가졌지마는 또 그분이 그때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요새 뭐 미국 시민권 같은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면 어데든지 자유할 수 있고 로마 시민권은 다른나라의 사람들이 다스리지를 못합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이 전도하는 것을 보고 바울을 박해했다가, 형을 주다가 나중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로마의 시민이라 하는 소리를 듣고 모든 관리들과 옥사장들이 다 떨었습니다. 와서 살살 빌었습니다. 이러니까 뭐 학벌, 문벌, 또 시민권, 자기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유대인에서는 제일 참 존귀한 그런 학원을 거쳐 나온 그런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말하기를 '이제 이런 것은 다 배설물로 여기게 됐다' 이래. '이런 것은 다 배설물로 여기게 됐다' 그런 것을 내가 다 배설물로 여긴다. 다 똥 오줌으로 여긴다 그말입니다. 그와 같은 말이오.
왜 그러냐? '이는' 그런 것은 다 헛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이것이 참되고 영원한 것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버려 버리고 다시는 자기 입으로 그건 걸 쓰지도 안했고 그런 것을 의지하지도 안했고 완전히 그런 것을 버려 버렸습니다. 배설물로 여겨서 버렸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보고 바울을 아마 미치괭이같이 그렇게 취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왜 그런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기가 자라가는 이것이 자기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던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너희들이 예수 믿는다 해도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다 배로 하나님을 삼고 사는 것인데 그 마지막은 멸망이다. 우리의 나라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잠시 잠깐 후면은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그 능력 가지신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당신의 영화로운 몸과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3장 21절로 23절에 보면, 이거는 한번 읽어 봅시다. 우리가 잘 아는 말이지마는 너무 자꾸 사람들이 실감을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이랬어.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대국의 왕일지라도 자랑하지 말아라. 이는 참 미국 갚은 대국을 가진 왕으로, 또 저 중공 같은 대국을 가진 왕으로, 소련 같은 대국을 가진 왕으로 그런 광대한 대국을 자기가 손아귀에 쥐고 있는 그런 왕일지라도 자랑하지 말아라.
자랑하지 말아라 말은 그까짓 걸 가치로 삼지를 말아라. 이말입니다. 자랑하지 말라 말은 '아, 이거 위대하다' 그렇게 가치로 삼지 말아라 그말이오. 자랑하지 말라 말은 가치로 삼지 말라 그말이오. 또 어떤 대학자라도, 어떤 대학자라도, 세계의 유명한 뭐 한둘을 겨누고 있는 그런 대학자라도 자랑하지 말아라. 세계 또 어떤 제일 위대한 과학자라도 자랑하지 말아라. 어떤 많은 재벌을 가졌어도 자랑하지 말아라. 어떤 예술가, 예술을 가졌다, 또 어떻게 그 용모가 잘났다. 뭐 무조건하고 어떤 것이든지 자랑하지 말아라. 그런 것을 가치로 삼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말라' 왜? 눈을 떠서 보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니라' 만물이 다 너희 것으로서 지금 소망되어 있는데 이 소망을 달성하는 그것이 가치지 그까짓 거야 아무리 가져도 주님 구름 타고 오시면 다 없어질 것이요 자기 개인이 세상 떠날 때에 다 없어질 것인데 그거 무슨 가치 있느냐? 이 영원 무궁토록 만물을 다 인생의 것을 삼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만물을 다 네것을 삼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이거 하나님의 말씀인데 뭐 거짓말 있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걸 믿는 사람들은 땅위의 것을 배설물로 여기지 안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 못났든지 잘났든지 자기 일생을 도에다 바치고 자기의 심지어 생명도 바쳐서 생명이 죽을 만한 그런 일들이 몇 번이나 있어도 생명을 돌보지 안하고 이 도를 따라서 호리도 양보치 안할라고 한 것은 다 이런 면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니라' 지금 우리의 소망으로 돼 가지고 있지 우리 것 된 거는 아닙니다. 우리 것이 돼 있으니까 우리 것을 만들어야지요, 지금부터.
'것이니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 이런 것을 전부 자기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통일이 됩니다. 지금 뭐 세계가 지금 이 나라 저 나라 서로 화친을 하고 이라니까, 암만 해 봤자 그까짓 거 지구 땅덩어리 하나지 뭐입니까? 이제 영계의 그 무한한 것과 이 우주 물질계의 그 많은 것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됩니다. 한 정치, 한 사상, 한 권세로 되는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라 천 년 억만 년 가도 변함이 없어. 다시는 변하지 않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요. 다시는 변하지 안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될 터인데, 이 나라가 너희의 것이 될 수 있는 이런 소망을 네가 가진 자이다.
그런고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임이니라' 네가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이 모든 것은 너희 것이 된다. 이런, 인생에게 이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 희망에 착수하지 못한 자, 이 희망을 가지지 못한 자 그 인간 수에 헤아리지 말라 말이오. 인간의 가치로 두지 말라.
또 이것을 착안하고 여기에 소망을 가지고 이 일을 하나씩 둘씩 이루어 나가는 그게 가치 있지 이것을 착안하지도 못하고 여게 대한 소망도 가지지 뭇하고 오늘 떠나면 그만 내일 떠나면 그만 그런 것만 보고 날뛰는 그 소경이요 곧 죽은 자요 인생의 가치가 없는 짐승 같은 자라. 내 말이 아니라, 내 말 같으면 욕을 하지마는 사람이 비록 존귀한 위치에 있기는 있지마는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이니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나라를 우리가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바라본 사람들마다 다 땅의 것은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을 바라본 사람은 다 자기가 땅위에 얼마든지 존귀를 누릴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고 마음대로 재미있게 살 수 있지마는 그런 것을 다 억제하고 영원 자존하신 대주재이신 하나님, 완전자이신 하나님 그분이 선포해 놓은 계약에 준해서 이 소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절제하면서 이 십자가의 걸음을 걸어서 뿍뿍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다 같이 우리가 믿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이제 이러면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회복된 사람을 가리켜서 온전한 사람이라, 하나님의 신성과 꼭 같은 그 인격성을 가진 자 이것이 온전한 사람인데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것이 우리의 욕망인데 이 일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고 여게 대해서 우리가 소망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소망의 투구라 이래. 투구. 투구는 이 두상을 이것을 보호하는 것이 투구인데, 소망의 투구라 그말은 소망이, 소망이 자기를 보호하는 데 제일 중요하다 그말입니다. 소망이 자기를 보호하는 데 제일 중요하다. 이러니까 이런 소망을 자기가 가진 사람이라야 자기라는 존재를 귀하게도 보고 자기라는 존재를 참 성공시키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지 이 소망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은, 이 소망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한다 해도 그 사람은 참 생명된 가치는 다 뺏긴 사람입니다.
이래서, 이제까지 한 말은 이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그 장성,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의 분량 그리스도가 어떻게 장성함같이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장성해지는 것,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장성해지는 것, 이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장성해진다 말도 좀 듣기가 어려운 말이지마는 제사장, 예수님은 제사장 선지 왕 이 세 가지 직책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완료했습니다. 이래서 '다 이루었다' 하시는 그 말씀은 이 세 가지 직책을 완료했다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직책을 완료했는데 우리들도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이 큰 소망을 우리가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소망인 그리스도와 같은, 그리스도의 본질 본성, 그리스도의 요소, 그리스도의 요소, 다시 말하면 제사장 요소 선지 요소 왕의 요소로서 그리스도가 완료하심과 같이 우리들도 완료하는 여게까지 이르도록 우리가 힘쓰는 이것이 우리가 땅위에서 할 일이지 이외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모두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뭐 땅위에서 다 썩은 것을 지금 욕망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 이하에 보면은 '스스로 속지 말아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어떤 사람은 육체로 심어서 썩어진 것을 거두고 그 말은 이 육체를 위해서 일생 동안 노력한다 말입니다. 심는다 말은, 심는다는 것은 오늘 수고해 가자고 미래의 추수를 바라서 하는 일 아닙니까? 모두 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미래의 추수를 위해서, 미래의 수입을 위해서, 미래의 유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아닙니까? 그걸 가리켜서 심는다 그렇게 말한 것인데,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사람은 자기가 많이 거뒀든지 적게 거뒀든지 세계에 제일 많이 거둬서 모든 것이 제일 부자든지, 그 사람이 지식 부자, 권세 부자, 또 물질 부자, 명예 무자, 뭐 행락 부자, 무슨 이런 저런 실력 부자, 용모 부자 무슨 부자든지, 어떤 부자라도 육체 위해서 한 것은 따 그것은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다 그거는 썩어진 것이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썩어질 게 아니라 썩어진 것을, 지금 눈이 어두워서 안 썩고 있는 것 같지 실은 눈을 똑 뜨고 보면 그거 다 썩은 것입니다.
다 썩은 것이요, 벌써.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은 자는'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그분을 위해서, 하나님 그분의 뜻에 어긋나지 안하도록, 그분에게 거슬리지 안하도록,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위해서 그분에게 맞도록 이렇게 심은자는 영생을 거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이것은 다 종합해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우리들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영생으로 중생된 우리들은, 이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참사람이라 이렇게 말하고, 악령·악성·악습, 악령과 또 악령으로 인해서 악성, 자기 중심의 인간의 원죄성, 악습, 자기 중심대로 산 그 모든 나쁜 버릇 이런 것 이것은 옛사람인데 성경에 이 사람은 죽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죽이라는 그 죽이라는 사람으로 날마다 삽니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사는 것이 죽이라는 사람으로 살고 있소. 마귀가 유혹 주는 대로 자기 중심으로 살아 가지고 자기 중심의 일이 달성이 돼지면 오늘 성공했다고 쾌감을 가집니다.
암만 가져봤자 그거 다 멸망이요 아무 소용 없어. 이래서 우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 영생으로 중생된 우리들인데 중생된 우리들이 이 새사람의 씨, 참사람의 씨, 참사람의 종자는 우리에게 있는데 이것을 길러야 이것이 되는 것이니 이거 기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래서 이 온전한 자람, 이 사람은 곧 하나님의 모형이라,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람인데 이 사람이 되면은 희망이 얼마나 있는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저희 것이요 사망이나 생명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그이의 통치 아래에 있고 그이의 다 소유로 돼 가지고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봉사하고 또 시은하고 하는 이런 영광스러운 직책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참사람 새사람으로 장성해지는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장성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돼라 하는 그 말 하기 위해서 자꾸 이제까지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말한 것은 그것 말 했어. 뭐 이것은 다 우리가 알고 있는데 알고 있지만 자꾸 잊어버립니다.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따져 보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없는데 안 생각하고 밤낮 돈은 눈에 보이고 이 세상 마귀는 계속해서 자기에게 보여지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그것만 가치 있는 줄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예수님외 대속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이 새사람 된 것 참사람 된 것 하나님의 자녀 된 것 이렇게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할 이 영광의 이 구원된 이 사람은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보면 참 자기가 감사가 나오고 이렇츰 기쁜 일이 없어서 세상 것을 배설물로 다 여길 수 있지마는 안 생각해 보기 때문에 그래요.
또 어떤 사람은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 안 믿으니까 하거나 말거나 저거 다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 있느냐? 그럴 리가 있느냐? 그렇츰 그럴까? 그럴 리가 있느냐 이렇게 믿지 않기 때문에 모두 거짓말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해도 다 저 말로만 저래 하지 속으로 그럴진대야 뭐 속으로 그러면 어짤 겁니까? 속으로 그래도 그래밖에는 못 산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밭에서 같이 일하고 한자리에 같이 누워자고 매를 같이 가는데, 꼭 같이, 껍데기 생활은 꼭 같소. 꼭 같지만 속에 알맹이가 달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어.
이러니까 저런 사람들이 참으로 이렇게, 세상에 우리 조그만한 우리 한국 같은 나라도 거기서 해 봤자 오 년 대통령 하거나 그럴 건데 그것도 할라고 뭐 생명 내놓고 야단을 지기고 이렇게 하는데, 또 어떤 공부를 한다고 해 봤자 성공해도 찍해야 사십 년 더 못 누립니다. 뭐 사십 년 더 못 누려. '이런데, 그것도 할라고 이렇츰 이래 쌓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만물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게 다 네 장중에 있게 된다 하는 이런 것은 말뿐이지 그럴 리가 있느냐? 그러면 지금 뭐 굉장할 건데, 그 사람들이 참말로 그럴진대야 뭐 굉장할 건데 그렇게 살겠나? 이거 모두 예수 믿으라 전도나 하고 또 한 달에 사례 얼마 받고 목사도 사례 얼마 받고 전도하고 이렇게 하겠나? 그 사실 사실이 그렇다면 굉장할 것인데. 사실이 그렇다면 굉장하게 뛰고 굴리고 야단일 터인데 이제 그렇게 하는 거 보면은 말뿐이지 실상으로는 그 사람을도 믿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이 그 사실 없이 확실이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겠소, 그래? 믿는다고 하면은 그 믿는 일, 이 장성한 분량에 나아가는 것은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인데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안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니까 제 맘대로는 하나도 못하고 총총 그래 하는 것이 그거니까 껍데기 보기는 네나 내나 뭐 별수가 뭐 있느냐 싶으지마는 잠시 잠깐 후에 가면 이제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 그말은 이거 제사장 장성 분량, 선지 장성 분량, 왕 장성 분량, 제사장은 뭐이 제사장이냐 하면은 창조주와 피조물과 그 사이를 조화 붙여서 그 사이를 화합시키는 이 역사를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부닥트리면 다 피조물이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분은 완전이고 이 피조물은 더럽기 때문에 그 사이를 잘 중매 조화를 붙여 가지고 하나님도 좋고 피조물도 좋도록 그 사이를 잘 화합시키는 것이 제사장직이요, 선지직은 하나님의 충만은 피조물들에게 줄 때는 하나님의 법칙을 피조물들에게 줄 때에 피조물이 그 법칙대로 지키면 하나님의 충만이 저희 것이 됩니다.
하나님외 충만을 피조물돌에게 갖다 주는 운반 역사 하는 것이 그것이 선지직이오.
또 왕직은 하나님의 단일 통치를, 이 모든 것이 다 단일 통치에 순종해서 이 단일 통치를 받으면은 거게 안보를 받고 거게 있는 모든 기업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왕직입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단일 통치에 지배받도록 하는 것이 왕직이라. 그러면 이것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
이래 뭐 이것을 참 좀 잘 알아들어서 여게서 '야 이라면, 지금 이라면은 우리 나라 대통령된다' 이런 소리를, 뭐 이런 이 뭐 하나 있으면 모두, '암만 유무식간에 이렇게만 하면 다 대통령이 된다' 이라면은 좀 실감을 가지고 들으니까 좀 힘이 나겠는데 이거는 거기다가 비교할 수가 없어. 그와는 비교가 안 돼.
억억억억…배도 더 돼. 비교가 안 돼. 이렇지마는 듣는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지 않고 실감을 가지지 안하니까 이제 증거하는 사람도 이거 힘이 안 난다 그거요.
여러분들 이것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새사람을 장성케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제 새사람 기르는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새사람 기르는 것. 우리가 새사람을 길러서 장성케 하면은 어떤 사람인가? 이거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자기가 권력을 가지고 통치도 할 뿐만 아니라, 통치도 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이제 오늘에 만물이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동경하고 원하는 거와 같은 이런 것으로 그 모든 것에게 다 시은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이 사람이 없으면 안된다 하는 그건 앙모의 자, 또 그 모든 것들에게 영원히 주고 주고, 시은을 해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이 부자의 자 이것이 새사람의 역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 것은 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라지마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이것은 모든 존재가 다 찬성하고 앙모하고 다 이렇게 높이고 원하고 하는 이런 존재이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영광의 구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광의 구원이라 많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좋아서 감탄하고 진심으로 찬양하고 높이는 그런 구원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가는, 이 구원을 장성케 하는 데에 어떻게 하면 장성하게 되느냐? 이러한 사람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이 땅위에 있는, 땅위에 있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든지 그런 사람들은 여게 따라오지를 못합니다. 어떤 사람보다도 존귀한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으로 장성해지는 데에 장성 시키는 그 방편이 무엇인가? 그것을 지금 간단하게 말을 하겠습니다. 요것도 여러분들이 들으면 뭐 그렇게 마음에 감흥 많게 들을 수도 있고 또 귀넘어 들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사람을 장성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한 사람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아주 쉬운 방편입니다. 자기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온전한 사람이 되는가? 지혜도 온전하고, 능력도 온전하고, 도덕도 온전하고, 영광도 온전하고, 소유도 온전하고, 모든 면에 실력도 온전하고 모든 면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이 방편이 무엇인가? 이제 간단하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자라는 데에는 녜 가지로 자라면 됩니다. 네 가지로 자라면 되는데 하나는, 첫째는 진리로 자라야 됩니다. 진리로 자라야 된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야 된다 하는 말입니다. 진리로 자라야 된다 말은 하나님 말씀으로 자라야 되는데 어짜든지 이거 해 봐야 되지 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말씀으로 자라야 되는데 이제 성경 말씀을 자꾸 읽읍시다. 성경 말씀을 그저 시간 나는 대로 밤이나 낮이나 시간대로 성경 말씀을 자꾸 읽고, 읽고 또 외우고 또 생각해 보고 또 이 말씀대로 행해 보고, 읽고 외우고 생각해보고 또 요대로 행해 보고 자꾸 요것을 자꾸 하는 가운데에서 진리로 자라가게 됩니다. 이러면 자란 것만치 우리를 꾀워서 멸망케 하는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이 차차 차차 곯아서 이것이 자꾸 약해지고 절단납니다.
이러니까, 그저 이거 어리석은 소리 같지마는 해 보지 안하면 이거는 모릅니다.
그저 어쨌건 뭐 시간이 있는 대로, 나는 대로 자꾸 성경을 읽고 외우고 또 거게서 자꾸 이렇게 생각해 깨달아 보고 또 그대로 실행해 보고 이것만 자꾸 되풀이를 해요. 그저 일하면서도, 직장에 가서 일하면서도 그저 펴놓고 읽고 난 다음에 또 그것을 덮어 놓고 또 외우고, 외우는 거는 어데든지 외울 수가 있기 때문에 읽고 외우고 또 생각해 보고 그대로 행해 보고 요 일을 자꾸 계속한다 말입니다.
요렇게 계속하고 그다음에는, 인제 그라면 진리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다음에는 영감으로 충만한 사람이 돼야 되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 성경 말씀을 자기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뜻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고 했는데, 자기가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에 양심을 써서 생각합니다. 양심으로. 참 내가 이 말씀대로 이와 같이 하고 있나 안 하나? 또 이 말씀에 내가 지금 해야 되겠다 하는 자꾸 자기 양심을 쓰기를 힘을 써 보라, 자기 양심을 써서.
양심을 써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자꾸 읽고 생각하고 또 외우고 또 실행해 보고 자꾸 이제는, 처음에는 입으로만 하고 또 자기 마음으로만 하고 자기의 행동으로만 하고 뭐 또 이성 판단으로만 하고 이랬지마는 이제는 이 말씀을 그걸로만 할 게 아니라 양심을 가지고 양심을 써서 양심으로 가지고 자꾸 이 말씀을 외우면서 양심으로 양심을 써서 외워 보고, 양심으로 생각해 본다 말이오.
양심을 가지고 외워 보고 양심을 가지고 또 읽어 보고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고 양심을 가지고 이와같이 행해 보고 요렇게 하면은 내나 그런 것 같지마는 해 보면 이제 구별이 납니다. 그라면 그것이 차차 차차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 되면 아주 사람이 변해집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예수님의 피공로로 들어갑니다. 피공로를, 피공로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은 세 가지인데, 사죄 하나, 칭의 하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화친 하나 이 세 가지인데,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이 세 가지로 처음에는 자기 마음, 생각, 이성, 또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 이걸로써 이와같이 하다가 양심을 써 가지고 자꾸 내나 이것을 이래 하는 가운데서 영감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또 이라면저 이 말씀을 가지고 이제, 죄인지 의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 말씀대로 이와같이 할라고 하면은 이 많씀을 어기게 하는 것들이 자꾸 부딪혀 옵니다.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옵니다. 방해하는 그게 뭐인가? 그것을 가리켜서 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내가 살라고 할 때에 죄가 나에게 부딪혀 와서 나로 하여금 범죄자가 되도록 할라 할 때에 그 죄를 범하지 안하고, 범죄자가 외도록 자꾸 범죄하도록 할라 할 때에 죄를 범하지 안할라고 애를 씁니다. 죄를 범하지 안할라고 애를 써서 죄하고 싸우는 것, 죄로 더불어 싸우는 요 일을 자꾸 해 보라 말이오. 죄로 불어 싸우는 요 일을 자꾸 해 봐요. 그저 이번에도 설이 왔는데 설이 오면은 설에도 뭐 뽀스래기 죄 그런 것이 많이 달라듭니다. 뽀스래기 죄. 큰 죄는 이런 데는 없어요. 설 이런 데는 없고 뭐 앞으로 공산주의가 되면 어찌 될란지? 언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 가지고서, 단군신사에 대해 가지고 단군신사가 앞으로 날 터인데 거게 대해 어찌 됩니까 하면서 자꾸 그래 가지고, 나 모르는 사람이 와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걸 내가 들었습니다.
이제 무엇이든지 말씀대로 처음에, 처음에 진리로 자기가 자꾸 이래 살면 진리로 충만해지면 우리가 자라가게 되고, 또 영감으로 자꾸 충만해지면 자라가게 되고, 그라고 나면 그다음에 죄가 와서 부딪치는데 죄가 부딪쳤을 때에 이 죄에게 양보하지 안하고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죄를 이기는 것으로 하나 둘 자꾸 이래 자라가게 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의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성공을 하는 거, 하나님의 뜻대로 달성하는 의를 건설하는, 이 의를 건설하는 일에 자꾸 힘을 써서 한번 해 보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하나님 모시고 사는 거, 잘못하면 그만 우리가 의를 행해도 하나님 잊어버리기 쉽다 말이오.
자기가 의를 생하고 전도를 부지런히 하고 하루 종일 뭐 전도를 부지런히 하면서도 실은 하나님은 다 버려 버리고 하기 쉽다 말이오. 하나님을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그러면 자기가 일을 해도 하나님 생각하면서, 또 무슨,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잊어버리기 쉬워. 기도하면 사건 생각하고 자기 형편 생각하고 또 제 삼자 생각하고 이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은 통통 잊어버려 버리고 하기 쉽다 말이오. 하나님하고 자꾸 동행해서,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자꾸 힘을 써서 한번 해 보라 말이오. 힘을 써서 해 보고, 그라고난 다음에는. 이제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 뭐이지요? 하나 뭐입니까? 하늘의 소망, 하나님께 대한 소망. 영생이라 하는 거는 어떤 게 영생이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소망입니라. 하나님을 향한 소망 그것이 영생이오. 이러니까, 이제 땅에 있는 걸 소망하지 안하고 그저 하나님 하나님을 내 하나님 삼는 그 소망,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걸 그걸 다 순종,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나님이 만족하도록, 내가 하나님 기쁘시게 하니까 하나님이 나 좋게 합니다.
하나님으로 자기가 충만해지기를 소망하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 하나님께 대한 소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소망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 소망이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는 것이 우리 소망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이 소망이요,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는 게 소망이라. 소망. 이 소망으로 자꾸 이와같이 지금 자랍니다.
이렇게 자꾸 하면은 이런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사람은 완전히 변해집니다.
변해져서 자기가 죄를 어떤 죄든지 하나, 욕심의 죄든지 감정의 죄든지 또 무슨 두려움의 죄든지 이런 거, 자기로서 이길 수 없는 거, 욕심도 자기로서 이길 수 없는 그런 욕심이 있습니다. '아주 이것은 죽어도 꼭 이거는 이 소원은 이뤄야 되겠다.' 자기를 능가할 수 있는 욕심, 또 자기를 능가하는 두려움, 또 자기를 능가하는 감정, 복수, 또 자기를 능가하는 모든 습성, 취미 이런 것을 이기지 못하는데 새사람으로 자라는 이 일을 척 얼마 동안, 얼마 동안 하게 되면은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보이지 안해. 그만 그렇게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안하고 살살 녹아져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이 방편으로 가지고 자기를 기르는 사람은 중에 가다 보면은 온전한 사람이 되어, 온전한 행위가 욕망자가 되어, 온전한 봉사자가 되어, 온전한 회생자가 성공을 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밤에 이 새사람이 장성하는 그 방편을 네 가지를 말했는데 이 네 가지가 아주 참 뭐 어려운 게 아니고 쉽습니다. 쉽고도 어렵습니다. 할라면 병신도 할 수 있소. 앉은뱅이도 할 수 있소. 무식꾼도 할 수 있소. 거지도 할 수 있소.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늙은이도 할 수 있소. 누운뱅이도 할 수 있소.
할 수 있는데 이 일은 잘난 사람들이 못 합니다. 잘난 사람들이 못 해요.
이것은 참 할라면, 할라면 뭐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도록 쉽고 또 이것을 그렇게 제일로 중하게 여기지 안하고 그저 반힘 들여서 달라드는 사람은 천하 사람이 다 달라들어도 한 사람도 하나도 못 합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자기가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존귀한 사람으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모든 만물들에게 혜택을 입혀서 만물들이 좋아하고 기뻐할 수 있는 참 영광 있는 이 자기로 만드는 데에는 요 네 가지 방편밖에 없읍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 방편을 착수해 가지고 해 본 사람은 자기가 알 수 있을 것이고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 말은 물에 넣어도 붇지 안할 그런 말로 아주 저버려 버리고 거기서 확신을 가지지 안하게 됩니다.
이런고로, 요 네 가지 일을 우리가 착수해서 하루를 해 보든지, 한 시간만 해 봐도 효력을 볼 것이고 하루를 해 봐도 효력을 볼 것이고, 효력을 봐서 요게서 요래 가지고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되고 자기에게 참사람이 자라간다는 거 요것을 자기가 보고 재미를 느끼고 가치를 느끼면 거게서부터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썩어질 것도 하나 둘 이렇게 배우면 자꾸 그 순서가 있고 자라가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이제 그런 것을 하는 거와 같이 이것도 여게서 참사람이 자라가고 참사람이 힘을 얻어가고 참사람이 점점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의 이 장성한 분량이 자기에게 이루어져 가는 요것이 되나 안 되나 요것을 실지로 좀 보라 말이오.
요렇게 해 가지고 실지로 이루어지나 안 하나 그 실상을 보고 거게다가 가치를 두고 그 실상이 이루어진다는 요것을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거게다가 재미를 붙여 나가면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네 가지로 나가는 사람은 그 사람은 금생도 성공이요 내세도 성공이오. 육도 성공이요 영도 성공이오. 그 사람은 항상 천국이요. 평안하고 기쁘지마는 요 외의 것은 천하를 점령해도, 뭐 지금 소련에 제일 정권을 잡은 사람이 평안한 줄 압니까? 아니오. 우리 나라 또 정권 잡은 사람이 평안 한 줄 압니까? 아니오. 미국 정권 잡은 사람이 평안 한 줄 압니까? 아니오. 재벌가가 평안 한 줄 압니까? 아니오. 미남 미녀가 그런 줄 압니까? 아니오. 대학자 예술가가 그런 줄 압니까? 아니오! 꼭 인생은 여게서만 행복을 얻고 여게서만 평강을 누리고 여게서만, 자기의 육신도 건강 장수를 여게서만 하지 딴데는 할 데가 없어. 평안은 요 자리뿐입니다.
이래서, 노아 홍수 때에 방주 밖에는 전부 사망뿐이요 방주 안에만 생명이 있던 거와 마찬가지로 요 네 가지,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네 가지 은혜를 가지고 네 가지로 살아난 우리들은, 네 가지로 살아난 우리들은, 네 가지로 살아난 우리들은, 돈으로 우리를 키우지 못합니다. 권세로 키우지 못합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달라들어 나를 협조하고 나를 도와주고 높여도 안 큽니다. 요 네 가지로 중생된 우리들은 요 네 가지로만 자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네 가지로 자란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늘과 땅의 것을 차지할 사람이오. 하나님의 대잇는다, 하나님을 대잇는다 했어. 하나님의 계대자로서 하나님의 모든 영계와 물질계의 피조물을 유업으로 상속받을 자입니다. 말을 해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뭐 돈벌라 하면 실감이 나지만 이거는 그래 실감이 나지 안해. 실감이 안 나나 요것을 한 시간 해 봐. 한 시간이라도 요래, 네 가지 배웠으니까 요 네 가지를 한 시간 해 봐요. 뭐이 나오는가 안 나오는가? 한 시간을 해 보면은 뭐 죄로 더불어 싸울 일도 거기서 생겨지고, 의를 건설할라 하니까 방해하는 게 있는 데도 뿌리치고 이 의를 건설하기가 힘드는 것도 있고, 힘이 들어야 거기 또 효력이 나는 걸 자기가 체험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래서 첫째 둘째 셋째, 첫째는 진리 이걸로 길러요. 진리로 나를 길러요. 진리로 나를 길러. 진리로 기르는 건, 제가 신구약 성경을 뭐 백 번 외워도 소용 없어.
암만 외운다 해도 소용 없어. 그것만 가지고 안 돼요. 외우고 생각하고 또 읽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자기가 그대로 실행을 해 보고 요라면은 그 진리로 자라갑니다. 진리로 자라 가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영감으로 자라가는 데는 양심으로 영감을 길러요. 양심으로, 자꾸 양심으로 생각해 가지고 양심 작용으로 요 진리를 그렇게 진리 기름과 같이, 진리로 자기가 자라는 것같이 양심으로 가지고 진리로 자라게 되면은 영감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영감으로 자라게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예수님의 사죄로 자라고 칭의로 자라고 화친으로 자라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소망하는 이 소망으로 이렇게 자라고 요렇게 해 가지고 요걸 한번씩 실행해서 해 보면은, 만일 한 시간을 해 보면 다르니까 '하, 과연 실효가 납니다'하는 걸 알지마는 안 해 본 사람은 소용 없어.
한 시간만 해 보면, 지금 돌아가서 여기서 오늘 이거 이 설교 듣고 뭐 부인을 하든지 믿든지 말든지 이제 배운 대로 가 가지고 한 시간만 꼭 해 봐요. 한 시간만 꼭 해 보면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깨달음이 날 거라. 한 시간을 해 보면 거게서 사람이 변화되는 걸 알 수 있어.
만일 그래 가지고 하루 동안을, 다른 거 치워 버려. 그까짓 다 치워 버리고 하루 동안 쉬면서 하루 동안만 요 일을 자기가, 처음에는 힘이 약하니까 다른 데 못 하거들랑은 뭐 산에 굴에 가든지 그리 안 하면 혼자 가 가지고 해 보든지, 이라다가 나중에 좀 장성해지거든 시장에 가서도 해 보고 또 양사방 이래 가지고 해 가지고 하루를 해 보고, 하루 해 보면은 거게 나오는 수입이라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나와서 사람 말로 할 수 없는 그런 것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들이 체험할 것이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새사람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장성시키는 이 비결을 말했습니다. 비결을 말했어. 이거 그냥 아무나따나 이래 줄줄 말하는 말이 아니라. 다 많은 경험 속에 체험 속에서 자기 속에 뼈아피 느껴지는 거게서 다 나온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냥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꼭 가서, 뭐 귀넘어 들어, 모두. 귀넘어 들어도 이제 한번 좀 해 봐요. 한 시간만 해 봐요. 한 시간 하다가 넘어지거들랑 또 해 봐요. 이러니까, 이거는 이상합니다. 이 일은 할수록이, 할수록이, 세상에서 공부는 말이요, 공부는 입학하면 교만해지고 일학년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이학년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졸업하면 교만해지고 또 박사 따면 교만해지고 자꾸 교만해지지마는 이거는 안 그래. 이 네 가지는 자꾸 할수록이 자꾸 겸손해집니다. 할수록이 자기 무능한 자라고 자꾸 하고 있고 자기는 죄인이라고, 무능한 자로 죄인으로 자꾸 나타나니까 이거 사람이 머리를 들 수 없지마는 다른 사람은 보고 그 사람을 의인이라 성자라, 하나님은 그 사람을 세계의 인물로 자꾸 이래 들춰 올려서 자꾸 이와같이 나가게 되는 것자니다. 이러니까 이 일은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안 좋은 면이 하나도 없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 공과에 대해서 외우고 실행 실천하고 깨달은 것을 가르칠 것.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으면 안 됩니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다 나오도록 해요.
부장 선생님은 자기 맡은 소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마음 속에 잘 보호해서 기르도록 바랍니다.
요새는 기도를 좀 열심히 하는데 어짜든지 이제 기도하면은 요 말씀 듣고 하나씩 이루어 가야 돼요. 하나씩 이루어 가. 거게서 하루 밤 기도하는 거게서라도 그라면 새사람을 기르는, 요 네 가지로 기르는 일을 해 봐요. 요새 늘 그거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이냐 저주하느냐 그뿐인데, 그래 그 부모네들이 자꾸 돈 그런 거 물려 줄라고 말고 죄를 물려 주지 말고 죄의 값을 물려 주지 말아라. 또 의를 자손에게 물려 주고 의의 값을 물려 줘라. 이라면 절대 안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