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3:26
자랑
본문 : 고후 11:17-23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우리가 장년반 전도하는 것도 힘을 쓰지만 장년반 전도하는 것보다 중간반 전도하는 일에 더욱 힘을 쓰고 또 중간반 전도하는 일에 더 힘을 쓰는 것보다 주일학교 유치반 전도하는 데에 더 힘을 써야 할 것을 늘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주일학교가 점점 퇴락해지는가, 점점 아래로 저하해서 내려가는가 하는 그 원인을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반사들이 이렇게 저렇게 많이 말을 했는데 다 참고는 될 말들이지만 그렇게 그것이 원인 되지는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반사가 말한 그것이 그 원인이 된 것을 제가 인정이 됩니다.
원인 된 것 중에 제일 원인 된 것은 뭐이냐? 분반한 반사들도 아직까지 신앙이 어린 사람들이요 또 새로 보조반사를 내놓은 사람들도 신앙이 어린 사람들입니다. 어린 사람들이 처음에 반사직을 맡으니까 '이 일을 내가 감당해 봐야 되겠다.' 자기네들이 평소에 원하던 일이요 또 가치있는 일이라고, 참 제일 해야 될 만한 일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한번 해 볼려고 - 반사 쳐놓고 새벽기도 안 나오면, 중간반 반사 새벽기도 안 나오면 그거는 저 망하고 죽는 건데 귀신이 들려 놓으면 꼼짝 못하는 거라.
처음에는 반사직을 맡아 가지고 좀 힘있게 할려고 마음도 가졌고 또 모반사가 조금 협조도 해 주고 또 자기도 반사직을 맡기 전에 생각했던 그 은혜가 있으니까, 마치 힘이 약해도 짐을 짊어지면 한 바탕은 갑니다. 한바탕은 가지만 한바탕 가고 난 다음에는 그만 힘이 떨어져 두바탕째는 가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거와 같이 처음에는 얼마동안은 힘을 썼기 때문에 주일학교 학생들이 점점 불어서 오히려 이 반사들이 중간반으로 뽑혀 나오고 나면 위험치 않나 했는데 더 숫자적으로는 붓고 왕성했습니다.
또 인제 새로 분반된 반사들 보조반사된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자기네들의 그 힘도 약한 힘이 차차 시일이 지나가니까 기진해지고 또, 시일이 지나가니까 기진해질 뿐만 아니라 모반사의 배후에서 협조하고 관리하는 것도 차차 성글어지고, 또 막상 분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해 봐도 처음에는 나섰으니까 '이 공과를 아무래도 가르치려면 좀 정신을 차려 들어야 되겠다.' 이러니까 마음을 써서 오전예배 오후예배를 참석하고 이러니까 좀 깨달아지니 '내가 무얼 가르치겠노? 어떻게 가르치겠노?' 하는 그 마음이 있으니까 가르칠 그 실력은 없지만 조그만치라도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자기 어린 힘이 떨어져, 반사 협조의 힘이 떨어져, 자기가 그러니까 가르쳐 봐야 되겠다는 그 욕망이 떨어져, 또 공과를 가르치려고 하니까 모릅니다. 그 학생 놓고 뭘 가르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뭘 가르칠 게 있어야지? 이러니까, 가르칠 때에 자기가 힘을 얻어야 되는데 가르칠 때 가르치면서, 남을 가르치면서 자기도 거기서 은혜를, 가르침을 받는 사람보다 더 은혜를 많이 받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면 분반해서 공부시키기 전보다도 분반을 시켜서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진리가 자기에게 그 기회로 강하게 들어와 역사해서 힘이 나고 이런 건데 그만 분반할 때에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학생들에게 아무런 확신 없는 말을 하지, 또 진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지 하니까 학생들에게 위신도 떨어지지 또 아무 권위도 서지지 않지 용기도 나지 않지 이러니까 그만 차차 차차 쇠해져서 가속도로 떨어져서 심방할 생각도 없어 심방을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안하니까 그 학생들이 여기는 안 오는데 딴데서는 '나오라' 이러니까 가까운 교회로 나가기 마련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교회로 갔으면 됐다.' 그게 아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붙여 줘 가지고 구원하기로 했는데 그것을 관리를 하지 않아서 던져 버려서, 집어던져 둬서 다른 데로 이렇게 가면 그것이 내나 양을 버린 그 죄가 되기 때문에 양을 버리면 또 제가 버림을, 자신이 버림을 당한다 말이오. 양을 버리면 하나님 앞에 자신이 버림을 당한다 이거요. 이러니까 주일학생 절단나지 반사들 절단나지, 반사 절단나니까 또 자연히, 휘추리가 절단이 나면 대목가지가 마르는 것이고 대목가지가 마르면 차차 둥치가 마르는 것이고 그거는 필연한 일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교회의 흥망이 여기에 매였다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있는데 이것을 살리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반사들이 오전에 은혜를 받고 또, 그 반사 공과로 적은 그것을 그 반사들이 알리가 없습니다. 모릅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재독을 새벽기도에 대개는 계속해 하니까 그것을 새벽기도 나와 가지고 자기가 깨달으면, 그 많은 것을 다 가르칠 수 없지만 자기가 깨닫고 가르치면 듣는 자에게 그것이 깨달아지게 하는 영이 가 가지고 깨닫게 되지만 자기가 깨닫지 못하는 그걸 못한 그것을 암만 말해 봤자 깨닫게 하는 성령의 감화가 가지 않기 때문에 그 학생들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보면 부장들도 깨닫는가 못 깨닫는가 의문이 될 만침 그렇고 반사들도 그렇고 그런 정도입니다.
신고함에도 써내고 여기 써낸 데를 보면 부장들이 문답하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이 도무지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좀 더 정신 차려서 해 줬으면 좋겠다고. 또 유급의 부장을 써 가지고 주일학교를 운영하도록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런 청원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전에 통반으로 할 때에는 좀 문답할 때에도 ○○○집사님 문답하는 것이 제일 낫다 이랬는데 요새 2층에 가르치는데 그 전과 달라서 지금은 ○○○ 그 부장이 문답하는 것이 도무지 은혜가 되지를 않고 동문서답이 된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제가 볼 때에도 좀 부장들이 힘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에 나와서 깨달아야 될 터인데, 깨달아야 제가 사는데, 주일학교만 아니라 오늘이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가 얼마나 진리를 알고 있으면 아는 것만침 제가 변화되지, 알고 행하는 데에 변화가 되는 것인데 알지 못하는 행함이 어디 있으며 모르고 행하지 않는 데에 무슨 변화가 있을 것입니까?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래서 새벽에 계속해서 주일날 설교한 말씀을 다시 재독을 할 터이니까 자기 집에 반사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깨우쳐 가지고 참석을 시키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늘 설교하는 것이 깨닫기 어려운 깊은 깨달음이기 때문에, 또 그것이 아니고는 가르쳐 봤자 그때는 듣기가 좋아서, 사이다 설교로 듣기가 좋아서 시원하지만 속에 맺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의 도덕 설교가 될지언정, 사회주의의 설교가 될지언정, 그렇지 않으면 부자 된다는 유물주의의 설교가 될지언정, 그를 참 신앙의 사람으로 길러서 환란을 이길 수 있는 그런 참 신앙, 연단받은 신앙, 진실한 신앙의 사람은 되기가 힘드는 것입니다.
이걸 하려 하면 껍데기 사람들은 사이다 설교, 시원한 사이다 설교를 원하는데 또 그것은 해야 마른 개울에 홍수 지나가듯이 지나 가는 것이지 그것이 실효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안에 참된 진리가 있는데 그거는 냅두고 껍데기 그런 허풍선 같은 그런 노릇을 못합니다. 그런 설교를 못합니다.
또 참 살릴 수 있는 설교를 하면 그거는 깨닫지도 못하지 이러니까 어떤 걸 해야 되겠습니까? 헛일 해도 그래야 되겠습니까, 깨닫지 못하면 깨닫지 못할지라도 참 거기에 있는 진리를 말을 해야 되겠습니까? 어떤 걸 해야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새벽으로 다 나와서 들어야 될 터인데 이거 안 들으니까 제가 힘이 없지.
중간반 반사들도 제가 암만 애 써도 안 됩니다. 제 자신이 변화가 돼 가지고 해야 되지 자신이 변화 안 되고 하는데 무슨 됩니까, 되기를?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그의 정신을 보시는 것이요, 또 제가 일하는 것은 진리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할 터인데, 학생들에게 가 가지고 몇씩 몇씩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릴 때에 자기가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자기가 그것이 진정 소원이 되고 그렇게 살려고 애를 써서 안 되는 점을 안타깝고 안타까워 증거할 때 '일이 안되니 안타깝다.
되고저 하는 소원이 있다.' 하는 그것을 자꾸 이렇게 증거를 하게 되면 그 학생들이 다 은혜를 받을 터이니까, 중간반 반사를 바로 못하는 그까짓 게 가서 무슨 지금 목회를 가겠다고, 목회 가서 하면 우선 편키야 편코 사람들 꼬아 넘기기야 좋지. 꼬아 넘기기는 이렇게 저렇게 별걸 가지고 이러니까 좋지만 희망은 없습니다. 안 자랍니다.
중간반 반사노릇 하다가 목회로 나가면 잘못하면 평안할 거고 참 바로 할려고 하면 중간반 반사보다 굉장히 힘이 들 것이고 그러니, 이래서 중간반 부장은 반사들은 몇줄 이내로 오기로 했다 했지? 예? 여기에 몇줄 이내로 앉기로 했어? 그거 작정했더라면서? 남반은 다섯줄 이내로 앉기로 했고, 여반은 또 몇줄로 이내로 앉기로 했어? 다섯줄? 다섯줄. 다섯줄 이내면 다 되겠지? 이러니까 처음에는 좀 그래 몇칠 앉더니만 그만 다 떨어져 가지고 저 뒤로 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저 죽고 남 죽이고, 그 직책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돈을 번다면 한 달에 - 요새 돈으로 말하면 천만원 이상 더 됐을 것인데, 천만원도 더 될 거요. 이렇게 수입이 될 수 있는 그것을 버리고 3만원 받는 전도사로 나오는 그것이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3, 40만원, 그래도 제대한지 얼마 안 돼서 3, 40만원 수입을 하고 4 ,50만원 수입을 하면서 그것을 버리고 6만원짜리 중간반 반사로 나오는 것은 다 자기네들에게 깨달음이 있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 그런 것 없으면 무슨 뭐 명예로 나오겠습니까 뭘로 나오겠습니까? 이랬는데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쳐 버립니다. 끝은 육체로 마쳐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됩니다.
첫째로 자랑하는 것이 왜 어리석음이 되느냐? '내가 어리석은 말을 기탄없이 한번 해 보겠다' 하고 자기에게 재질을 말했습니다. 문벌을 말했고 학벌을 말했고 자기의 그 행위를 말해서,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자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요 제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또 베냐민 족속이라.
시민권으로서는 그 당시 세계 제일되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요, 이렇게 학문으로서는 아무도 앞서지 않을 대학자입니다.
이것을 말하면서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한다. 미친 말을 한다' 그 자랑하는 것을 어리석은 말이라 미친 말이라 했어. 또 자기가 복음 생활하면서, 사도직을 감당하면서 누구보다도 수고 많이 하고 고난 많이 겪은 그것을 말하면서 어리석은 말을 한다, 정신없는 말을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걸 세상이 이해 못하지 그걸 반사들이 이해할 리가 없다 그 말이오. 그것이 중간반 반사 자기네들이 배우지 않고 이해할 리가 없다 그 말이오. 모든 교회들은 어떻게 하든지 광고를 하고 자랑을 해서, 자랑을 좀 더 많이 하고 선전을 더 많이 하고 자기 조그만한 수고했으면 이걸 가지고 마구 얼마든지 팔아 가지고 선전을 해서 '이렇게 옥중 성도라. 나는 이렇게 또 환난을 이긴 사람이라. 이런 희생을 한 사람이라. 뭐이라 뭐이라.' 마구 간판을 드러내 가지고 선전을 많이 하는 그것이 승리자요, 또 그럼으로써 교회들이 알아주고 또 자기가 높아지고 이러니까 그거 못하는 자가 무능한 자요 잘 하는 자가 유능한 자요, 그걸 많이 하는 자가 수입있고 성공하고 그것을 감춘 자는 아무도 모르고 실패하고 손해가고 이런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 교회 들인데, 이러니까 안 믿는 세상이 꼭 그렇습니다.
안 믿는 세상이 그런 것처럼 교회도 그렇습니다. 안 믿는 세상이 그런 것처럼 교회도 그렇다 그거요. 안 믿는 세상은 그렇지요. 이러니까 자기 선전하기 위해서 벽보를 마구 들이 붙이고 돈을, 한번 국회의원 될려고 하면 어떻게 돈을 많이 들여 가지고, 출마비를 많이 들여 가지고 이렇게 하고 이런 사람들이 마구 나팔을 불고 돌아 다니고 이래 가지고 해서 그래 그 당선이 되고 승리를 하고 이러니까 세상은 그래 가지고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유력해지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게 되는 것이 교회인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이렇게 큰 고생당한 이것을 말할 때에 '정신없는 자의 말을 한다. 어리석은 자의 말을 한다 너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하게 됐다. 어리석은 말을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이랬어. 또 자기에게 있는 모든 실력, 모든 실력을 말을 할 때에 '어리석은 말을 하니 이것을 너희들이 이해하고 용납을 해라' 용서를 빌어놓고 또 그말을 했더라 말이오.
어떻게? 자기에게 있는 실력을 소개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워서 그러며, 자기가 주를 위해서 참 어려움을 당한, 수난당한 그것을 말하는 것이 무엇이 정신없는 말이며 어리석은 말인가? 이것이 이해가 안된다 그 말이오. 이해가 안되면 성경이 거짓말했는가? 성경이 잘못 말했는가? 성경은 바로 말하기는 말했는데 그게 이해가 안되면 성경이 틀렸는가, 우리 인간들이 틀렸는가? 인간들이 틀린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이오. 그러면 어째 틀렸는가? 그것은 설교를 할 때에 이제 세상에 붙여서 그런 것을 말할 때에 어리석다. 정신없는 말을 한다. 미친 말을 한다 이렇게 한 말을 잘못됐다고 설교를 해야 될 건가? 그 사람은 이렇게 겸손하다고 이렇게 붙여 설교할 건가? 겸손해 그런 것 아닙니다. 진리적입니다.
그게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참 어리석은 일이요, 참 미친 말이요, 참 정신없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 이것을 가르치지 않고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냐? 이걸 가르치는 것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지.
이러니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일학교 부흥을 위해서 '안되니까 좀 막 떠들려 메고 큰 북을 사다가 많이 놓고 쾅쾅 두드리고 또 나팔을 불어 재끼고 이래 가지고 지금 아주 흥미있게 해야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취미가 없으니까 좀 아이들 심리를 따라서 그 마음에 재미가 있도록 이렇게 해서 되야 되지 이러면 안된다.' 나는 전국에서 주일학교 시찰하러 오는 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그것을 나는 자랑을 하는데, 그것을 자랑을 하는데. 그 자랑은 할 만한 자랑인데 그거는 하나님이 하라고 한 자랑인데 그 자랑을 하는데 그것을 못쓴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못 쓴다고. 그 사람은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그 반사의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랑인가? 여기에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치 아니하며" 문벌 좋다 말은 가정이 좋다, 족속이 좋다 그 말이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 비밀이 속에 들어 있다 그 말이오. 영 거꾸로입니다. 세상에 아주 못쓸 것을 세상이 제일 존귀하다 하는 그것보다도 높이 들어 버리니까 세상에 존귀하다 하는 그것들이 턱턱 꼬꾸라지고 실지로 일을 하는 자는 그건 절단나고 아무것도 아닌 그것이 도리어 큰 일을 하고 일을 잘 합니다.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장 29절에 이는 무슨 연고냐?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무 육체도, 아무 육체라 말은 세상적인 실력, 세상적인 모든 그 이력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가치로 삼아서 그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것을 내놓고 그것을 써먹고 이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자랑이라 하는 이 말의 해석도 그 어느 사전에서 해석하는 해석은 이와같지 않습니다. 얼토당토 않은 자랑의 해석 같지마는 자랑의 정의는 이겁니다.
이러니까 저거들이 전부 모르는 걸 새로 들어야 되는데 세상이 모르는 것을 배우는데 그렇게 쉽게 배워질 줄로 생각합니까?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무리 세상 것으로 잘나고 훌륭해도 그까짓 거는 천국 못 가기 때문에 그런 걸 소망하고 그걸 의지하고 그것을 내놓고 내세우고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30절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하나님의 예정 속에,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나온 자들인데, 목적 속에서 나온 자들인데 목적 속에 있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그 기름부음의 이름을 가진 그 직책을 가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직명입니다. 예수님은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대속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역사로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의 대속 이 구속 안에 있으니 우리가 이런 자들입니다. 이런 자.
"있으니" "예수 안에 있고" 이러니까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왔는데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한다 말입니다.
"나와서 우리에게" 이분이 뭐이냐?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니" 이제는 신성, 예수님의 신성의 것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그것만이 우리 것이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신성의 것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그것만이가 우리의 것이라.
이것은 바울이 '내가 자랑한다' 했어. 참 자랑.
이 사람으로만 우리가 소망하고 이 사람으로만 자라가고 이 사람으로만 실력있어 가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꺼부적이, 다 죽은 것 그런 것들 자랑하지 말고 이것을 네가 소망하고 이것을 네가 참 가치로 알고 이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이것을 마련하는 것으로 네가 힘을 써라. 왜? 이것만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불변하고 다 영생의 것이요 참의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31절에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으니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으니라. 주 밖의 것이 주 안의 것이 되어지는, 주 안의 것이 있으니 주 밖의 것과 주 안의 것이 있으니 주 안의 것 그것만 자랑하라. 바라보라.
바울이 말하기를 14년 전에 입신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위하여, 내가 자랑하나 이런 사람을 자랑하라. 내게 대해서는 자랑할 것이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주 안에 있는 자요, 주 안에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성령과 예수님의 피공로와 자기와 합쳐 가지고 된 새것. 중생된 영.
심신의 성화된 것, 된 것. 이거는 뭐인데? 순전히 하나님과 진리가 뚜드려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거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 자랑이요 진리 자랑이요 예수님의 대속 자랑하는 자랑이라.
이러기 때문에 시편에서 '나는 완전자입니다. 나는 흠이 없습니다. 나에게 흠이 있는가 보십시오.' 하는 그것을 이걸 모르기 때문에 시편 주석가들이 다 삐뚤어지게 해석을 해 놨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그래도 이런 중심이 있다는 중심을 발표한 것이라.' 중심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발표한 거라, 새로 된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 찬양입니다.
하나님 자랑입니다.
그러기에 영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영의 도를 가르치겠소? 영이 중생되어도 죄 짓고 죄 지으면 또 죽어야 되는데, 중생된 영이 죄 지어서 죽었다가,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가 몇백번이든지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하는 그 교리를 가진 사람이 무슨 교리를 가르치겠소? 20세기는 어림도 없어. 암만 떠들어야 안돼.
노회적으로 이걸 이단이라고 정죄하는데 무엇이 지금 이 진리가 있다 말이오? 그렇게 여러분들이 알기가 쉬운 것인 줄 압니까? 사울왕이 왜 그렇게 버림을 당했어? 아각 안 죽였다고? 짐승 몇 마리 안 죽이고 남겨 뒀다고 버림을 받아? 누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룬 자가 누가 있소, 있기를? 없습니다. 짐승 몇 마리 남겨 놓은 그까짓 게 무슨 문제인데 그것 때문에 버림당하고 그것 때문에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를 해? 아니야. 다 못 죽여서 그렇다고 하면, 전멸하라 했는데 다 못 죽였다고 그렇하는 그것만 생각하면 안돼. 그것 때문에, 다 못 죽여도, 다 죽였다 할지라도 또 빠져서 숨어서 어디로 도망간 것들도 있을 것인데 그거는 다 죽인 건가, 어디? 두 가지입니다. '내 솜씨가 이렇게 있다.' 내나 자기 자랑하는 것 이 육체 자랑했어. 육체 자랑했으니까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 놓고 배후에서 암만 밀어 줘 봤자 제 육체만 커지고 저만 커지고, 이러니까 기념비 세웠어. 그것이 자격없습니다. 암만 주님이 키워봤자 저만 커져서 하나님이 해 놓으면 '실력이 이렇츰 있다. 하, 내 실력 이 이렇츰 있어 크게 했다. 성공했다. 기념비 세워라.' 또 하나 흠은 거기서 '하나님의 소욕이 뭐고? 하나님의 소욕이 뭐고? 하나님 소욕 찾지 않고 요거는 반들반들한 종자 좋은 짐승이니까 이거는 가지고 가서 종자를 해야 되겠다.' 사소한 것이지만 제 욕심 차렸소.
자, 일한 것은 제 솜씨로, 하나님이 해 왔는데 그것을 한 것은 제가 했다고 인정하는 게 불한당이라 그 말이오. 그 사람을 세워 놓고 하나님이 함께 할수록이 자꾸 제가 잘해서 저만 커지고 하나님은 까뭉케지고 이러면 나중에 가서 그것이 사탄 중에 사탄이 될 터인데 하나님이, 그 위에 하나님이 은혜를 줘서 도와 줄 수 있는 그 위치는 세울 수 없다 말이오. 하나님이 도와 줄 수 있는 위치를 세우지는 못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하나님 나타내게 하는 위치는 그거는 대금물이라.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하나님 나타내서 인간에게 하나님 알려주는 그 위치에 세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점점 저만 커지고 저만 나타낼 터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 정반대자라 그 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나도 모르겠소. 대대학생들을 다 데려 놓고, 지금 신학박사들을 앉혀 놓고 이걸 가르쳐야 되는데 뭐한다고 불학무식한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니 뭐이 될런지를 모르겠다 그 말이오. 그러나 이것이 잘 전달돼서 주일학교에 중간반에게 이게 전달이 되면 거기서 쓸모있는 것이 나오지 않느냐 그것 소망입니다.
다 같이 배운 공과인데 중간반에서 부장이 가르치는 것과 주일학교가 가르치는 거와는 100점이요 1점입니다. 100배 뛰어났습니다. 왜 그렇게 부장들이 못 가르치는지, 주일학교 부장들은? 진심으로 배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다른 교회서 오거들랑, 시찰하러 오거든 주일학교도 보이고 역부러 중간반에 안내해 가지고 거기 가서 들어서 거기는 좀 쉽게 하니까 은혜를 받도록 하면 그들이 왔다가 힘을 얻어 가지고 갈 거라 그 말이오. 그런 좀 소망이지. 또 무식해도 진정으로 원하면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 사무엘이 사울을 기름 부었다가 또 나중에 파직을 시키는 그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이 육체를 자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자리 둬 두면 자꾸 자랑할 터이니까 그걸 깨트리는 데에는, 그 자리에서 육체를 자랑했으니까 그 자리에서 육체가 바짝 오그라져 가지고, 바짝 오그라져 가지고 제가 할려고 날뛰고는 팍 실패하고 제가 할려고 하다가 팍 실패하고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 '실패가 됐다.' 이래야 저 자랑하는 것을 완전히 박살을 내 가지고 하나님이 세워 놓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타내지 않고 저 나타낸 것을 박살을 낼 것이고, 하나님 소욕을 이루라고 세워왔는데 제 소욕을 이루는 것을 박살을 내야 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자살해 죽도록 만들었더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어리석은 자랑이요, 정신없는 말이요, 자기에게 대해서는 미친 말이나 '내가 미쳐도 너희들을 위해서 미쳤고 어리석어도 너희들을 위해서 어리석었다. 너희들이 하도 나를 부인하고 내가 증거하는 말을 부인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육체만 보고 있기 때문에 육체로 나도 이런 자랑하는 것을 미친 자, 내게 있어서는 손해, 손해 뿐이지 유익은 하나도 없는 일이지만 너희들이 그냥 말하면 인정을 안 듣기 때문에 내가 말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여러분들에게 그런 말 했어. 혼자 신사참배 안한 게 대단합니까? 소속한 교인들 하나도 신사참배 하지 않은 그것이 대단합니까? 갇혀 있는 게 대단합니까? 전하고 돌아다니면서 얼마든지 전하고 돌아다닌 게 대단합니까? 그러나 그거 미친 소리인 줄 알았기 때문에 전혀 말하지 않았어. 전혀 말하지 않았어. 여기에 와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꾸 고신에서 이단이라고 하고 고신을 이렇게 그는 그렇고 여기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아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내가 말했어. 그래 그 사람들은 바로 섰어. 지금 교역자가 됐어. 이러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무엘하에 다윗이 하나님이 계수하라 해놓고 계수했다고 온역 재앙으로 7만명을 죽였습니다. 이해가 안돼. 무엇 때문에 노하셨는가? 암만 위에 훑어봐야 노하신 걸 알기 어려워. 자랑하지 말라 하는 이것이 어리석은 자랑이라고 이 진리를 깨달으면 다 통해. 하나라.
블레셋 사람하고 싸울 때에 그때 그 유공자가 37인, 대장이 37인 인데 마구 이 사람들이 생명을 내놓고 마구 싸워 가지고 이렇게 분투해서 전쟁해 가지고 이기니까 '참 생명을 아끼지 않고 이렇게 싸우는 이 모든 용사들 때문에 이겼다.
참 나라가 될려면 용사가 있어야 된다. 참 용사가 보배다.' 은연중 영광이 용사에게 돌아가고, 소망이 용사에게 돌아가고, 가치가 용사에게로 돌아가고, 이러니까 둘을 가질 수는 없지. 차를 타고 부산 가는 서을 가는 차를 양쪽에 거머쥐었으면 제가 어디로 가든지 한군데로 가지 양쪽에 다 거머쥐고 안 놓으면 몸이 짜게져 버리지.
이러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 아래 보면 하나님께서, 죽겠다고 저희들이 야단을 지기니까 손에 붙여 주겠다고 해 놨는데 이러고 나니까 다윗왕의 눈에 이 용사들의 분투 노력하는 참 충성만 보여지고 그 용감만 보여졌지, '하나님이 붙이시니까 이렇지 하나님이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힘을 주시니까 이렇게 소생 되어졌지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됐다.' 하는 그것은 잊어버렸다 그 말이오. 잊어버렸어.
잊어버리니까 사람 보기에 발표는 안했지만 인간의 중심을 아시는 이가 보니까 다윗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봄으로써 시켜 놨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그 마음이 속에 있으니 하나님이 분노해서 '이놈, 네가 어떨 때 내가 너를 왕을 세웠으며 네가 전쟁 한 번도 생각도 안 해본 너 같은 놈을 데려다가 네가 일국이 이겨도 못 이기는 골리앗 대장을 물맷돌 한 개로써 승리를 하도록 이렇게 했는데 내게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고, 네가 그렇게 군대장관 보고는 힘했다, 애썼다, 참 이들이 있어야 되겠다. 욕망 소망을 가졌지만 내게 대해서는 가지지 않았지?' 분해서 하나님이 '야, 너거 나라에 용사가 얼마나 되는가 군인을 한번 계수해 봐라!' 했을 때에 '아이구, 주여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했으면 될 터인데 마음이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을 어둡게 해서 딱 돼 버리니까 그 말이 자기 멸망시키는 말인지 모르고 좋다고 계수하라 했다 그 말이오.
모압 대장이 있다가 '왕이여, 어디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계수할 게 뭐입니까, 그까짓 수야 헤아릴 게 뭐입니까? 없으면 뭐하며 많으면 것하며 있으면 뭐합니까? 나 같은 인간도 있으면 뭣하며 없으면 뭐 하겠습니까? 주님 계시면 다이지.' 이래도 '헤아려. 하나님이 헤아리라 했으니까 헤아려.' 이래 가지고 헤아려서, 딱 헤아려서 다 수를 결산해 가지고 보고를 딱 받고 나니까 하나님이 눈을 활짝 펴 보였습니다. 눈을 열어 줬어. 그때사 팍 엎어지면서 '아이구,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죄를 범했으니까 죄값은 받아야 되지.
나단 선지가 '네가 하나님이 이렇게 노하셨으니 어떤 걸 받겠느냐? 7년 흉년의 벌을 받겠느냐, 석달 동안 네가 원수에게 쫓겨 돌아다니는 이런 징계를 받겠느냐, 3일 온역을 받겠느냐?' 제일 가볍다고 생각한 3일 온역을 구했습니다.
3일 동안 온역에서 죽은 사람 숫자가 얼마라고? 7만명, 7만명.
이런 하나님인 줄 알기 때문에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라 그 말이오! 정신없는 말이라 그 말이오! 미친 말이라 그 말이오! 어떻게 저를 나타낼려고 돌아다니고, 예수를 믿어도 '이러면 내가 좀 나타 날까, 이러면 좀 나를 알아줄까, 이러면 인정해 줄까?' 그자는 그것으로 망합니다. 일생을 망칩니다.
여기 부민교회에 어떤 사람 하나 있었는데, 그때 집사직입니다. 자기를 부민교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서부교회 와 가지고 부민교회를 슬슬 헐면서 '내가 이리 적을 옮기고 이리 오겠습니다.' 할 때에 좋아할 줄 알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지 않고, 그 어떤 놈인지 알기 때문에, 내가, 그 마음에 속을 알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고 '거기도 다 정통이고 진리인데 거기서 충성하지 거기서 충성하지 않고 뭐 여기 올 게 뭐 있는가? 거기 가서 충성하십시오.' 하고 나는 도무지 아는 체 안 합니다.
이러니까 무엇을 대접을 해도 내가 안 받고, 그 바람에 ○○○ 전도사라고 대접 잘 받았습니다. 그이가 오면 우리 개척교회 하는 데에 이렇게 뭐 예물도 주고 대접해도 그분을 통해서 그분이 신앙이 좋다고 나한테 자꾸 또 소개를 합니다.
난 그래도 안 받았소.
이러니까 그쪽에서, 왔다 갔다 이러니까 거기서 지금 직분을 줄려고 주일학교 부장을 줬습니다. 이제 주일학교 부장을 주니까 그 쪽으로 갔어. 또 주일학교 부장을 주고 난 다음에 또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이러니까 또 그걸 붙들기 위해서 이제는 그쪽으로 오면 주겠다고 청년회 회장을 줬습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종들을 놀려 가지고 자기를 올릴려고 하는 그 비참한 자입니다. 그자가 비참한 자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는 필요가 없어, 그대로 가다가 망해야 되지. 명예 가지고 망해야 되고, 지위 가지고 망해야 되고, 자기에게 있는 실력 가지고 망해야지.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학벌 좋은 자, 문벌 좋은 자, 유전이 좋은 자, 세상에 무엇이 많이 있는 것, 높은 것, 강한 것 이것은 다 멸시하시고 제일 낮은 그런 것들은 택해 가지고 높고 크게 만들어서 있는 것들을 없이하고, 큰 것들을 부끄럽게 하고, 강한 것들은 부끄럽게 하고 이기게 하고 이렇게 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왜? 하나님의 목적에서 출생시켜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로 인하여 거기서 나오는 것이 자기의 지혜요 능력이요 의요 거룩이요 모든 것이 다 되도록 하려는 것,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와서 만들어지는 것, 이것으로 만든 이것은 온전한 것이며 완전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며 불변의 것이며 다 영생의 것이며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이라 그 말이오. 이것으로 자랑하게 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만들어진 것 이것만을 자랑하라고, 이것만을 가치로 알고 이것만을 소망하고 이것만을 상대하고 이것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바로 알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수록이 이것이 금물입니다. 이러기에 이런 사함은 많지 못해. 많지 못한데 육체의 것을 많이 가지고 바울같이 이렇게 없는 것으로, 왜 없어? 있기는 있지. 있지만 그것은 없는 것 한가지라. 왜? 그거 없어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으니까 있으나 없으나 한가지지.
또 세상이 좋아하는 그것도, 세상이 좋아하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것을 좋게 활용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뚝 떼 버리면 세상이 다 좋다 하는 그것도 큰 악용이 돼 가지고 악한 결과를 맺게 되니까 그게 있으나 없으나 한 가지지.
그러나 많은 자가 부인하면 많이 부인하는 자이지. 큰 자가 부인하면 큰 것을 부인하니까 큰 부인을 했지. 여기에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게 있는 것이 있느냐? 버리라 약한 것을 자랑 한다.
조그만하게 있는 것이 약하다고 자랑하면 그만침 가치있고 큰 것이 있는데 그것을 부인하면 그만침 가치있지. 그만침 크게 높이 쓰여지지. 이게 예수믿는 도이기 때문에 이거는 껍데기가 알지를 못합니다. 세상 법칙 가지고 예수믿는 도리를 성경을 해석하고 하려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모두 다 보면 그거라. 사이다 설교라. 이러니까 으레 있지만 아무 속에 재인 게 없어. 절대로 환난 못 이깁니다. 그거 가지고 환난 못 이겨요.
왜? 진리가 도와야 되지 진리가 돕지 않고 제 각오 가지고, 결심 가지고 됩니까? 안 됩니다. 진리를 깨달아야 그 진리가 자기 속에 와서 역사를 하지 무식해도 진정코 주의 피로 구속받은 주의 것인 것을 알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만 쓸 권세가 있지 저는 쓸 권세가 없는 줄 알고, 주님이 큰 값으로 샀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하든지 감사할 줄 아는 이 사람이면 무식해도 유식한 사람을 능가합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자랑하는 것이 대 금물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자랑하는 것이 대 금물.
어제 히스기야 왕도 말했는데 히스기야 왕도 그래. 공연히 아무 것도 하지도 못해서 앗수르 군대한테 전멸을 당할 처지에 이르는 그것들이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하나님이 척 이기게 해 주셔서 18만 5천명이 손도 안 대고 죽어지고 보니까 너무 쉽고 너무 시뻐 보인다 말이오. 너무 쉽고 너무 시뻐 보이고 이러니까 '하, 그거 우리가 그래도 우리가 성전으로 들어가니까 그것들이 그만 기절해 죽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무기 이걸 가지고 한 번만 봤더라면 그까짓 거는 다 가루가 됐을 것입니다. 우리 무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니까 히스기야 왕이 어리석게 그 앞에서 알랑거리는 간신 그것들에게, 자꾸 이래 쌓고 '아무 대장은, 아무 대장 그 용기가 얼마나 됩니까? 그런 대장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래 죽겠습니까? 그 용감이 얼마나 큽니까?' 이놈이 저놈 올리고 저놈이 이놈 올리고, 자꾸 이거 올리고 저거 올리고 이러니까 히스기야 왕이 얼떨떨해 가지고 차차 차차 보니까 하나님의 크심은 파묻혀 버리고 자기네들이 막 주먹을 내면서 야단을 지기고, 막 이겼다고 막 궁창 궁창하고 야단을 지기니까 그놈들은 커 보이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대한 은총을 감사한 그 감사가 떨어지니까 하나님이 눈을 감겨버린 것이오. 눈을 감긴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보이지 아니하고 딴것이 가치로 보여지는 그것이 벌써 눈을 감겨진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바벨론에서 오니까 '아, 참 어떻게 그래 장합니까?' '아이구, 우리는 당신들 나라의 100분의 1도 안 됩니다. 신들메를 풀기에도 감당치 못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래 됩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면 되고 그분이 버리면 우리는 가루가 돼 버립니다.' 하! 얼마나 좋아? 이랬으면 바벨론 나라를 다 그 손에 다 붙일런지도 모릅니다.
이랬는데 망령되게 이렇게 했기 때문에 '네가 바벧론 사신에게 보인 것처럼 너희들의 보인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그리 옮겨가고 다 포로되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영광을 당신에게 돌리지 않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고 엉뚱한 걸 바라보고 의지하면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실력이 있다, 나는 지식이 있다, 이것이 있다, 젊다, 힘이 있다, 언변이 있다, 나는 이런 공적이 있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요 하나님과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미친 소리요 정신없는 소리요 어리석은 소리라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과거에 유엔군이 철수할 때에, 유엔군 철수할 때에 모든 교회들이 혈서를 쓰고 유엔군 철수하면 우리 죽는다고 마구 시가행진을 하고 온 교회 통원을 내 가지고 유엔군 철수하면 우리 죽으니까 어쩌든지 철수하지 않도록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또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다 성명서를 내야 된다고 마구 써 보냈다 말이오.
그게 뭐이 나빠? 뭐이 나빠? '신사참배한 것은 하기 싫지만 강제로 했기 때문에 강제로 당한 음행, 강제로 당한 것, 강간, 강간죄이지만 이거야 누가 아무도 그렇게 하라 소리도 않는데 이런 짓을 하니 이것은 제가 자원해서 범한 화간죄다. 어느 죄가 크냐?' 이것을 말해 가지고 이것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떠드니 그 사람 미워하고,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회개해야 돼. 안 하면 안돼.' 이인재목사님은 '아무래도 우리가 회개해야 돼. 회개 안하면 안돼. 이거 큰일났어.' 이러더니만 총회 때에 '이걸 회개해야 된다' 이러니까, '이거 노를 풀어야 되지 안 된다.' 이러니까 나서 가지고, 한 군데서 나서 가지고 '우리가 그걸 잘못된 줄 알고 다 그러고 있는데 그걸 하필 뭐 총회적으로 결의할 것이 뭐 있으며 또 그것을 회의록에 남길 것이 뭐 있겠는가?' 허! 그거 남기는 것이 살리는 것인데, 그거 결의하는 것이 하나님 노를 푸는 것인데! 그러니까 발언해야 나중에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몰라 그렇지 큰 지금 진노가 쌓여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뿌리가 뽑혀 버렸어. 보는 사람들의 눈은 보고 있어.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진영에 뿌리가 뽑혀 버렸어.
여러분들, 그래 철수하니까 단번 남한이 적화돼 가지고 절단났습니까? 유엔군 철수하고 난 다음에는 아직까지 전쟁 안 났습니다. 남침 하나도 못했습니다.
이래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알고 바로 믿어야 됩니다.
이러기에 껍데기로 믿으니까 몰라 무엇 때문에 반사들이 일하다가 힘이 떨어져? 왜? 그 일이 못할 만한 일인가? 그 일이 제2 가치의 일이니까? 어리석어. 참 어리석어! 공부하는 억억만배도 더 큰 지능을 얻는 거라. 암만 공부해서 지식 얻어 봤자 그 지식이 자기 망치는 지식으로 활용이 되면 자기는 불행이라.
아무리 무식해도 무식한 그것이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때에 이용되면 그 무식으로 인해서 영광스러워지고 존귀해지고 승리해져. 하나님이 어떻게 그것이 활용되도록 하느냐 하는 그게 문제인데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 뭐 자랑할 게 있어, 자랑하기를? 자랑한 것만침 망해. 어리석지 맙시다.
왜 자랑이 어리석으냐 하는 것을 오늘 아침에 말했는데, 이것을 반사들이 깨닫고 이걸 '아멘!' 깨닫고 해야 하나님과 가까와지지! 되지! 이걸 알고 이대로 살아야지! 자기에게 있는 것이 가치가 없는 줄 알아야 부인하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부인이 됩니까? 정말로 가치가 있습니까? 있는데 없다 합니까 참말로 없습니까? 참말로 없습니다! 왜? 없어도 하나님이 못할 것 없어.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부한 데도 가난한 데도 처할 줄 안다. 모든 비결을 알았다.' 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어. 그까짓 거 없어도 당신이 하면 하고 있고, 있어도 하면 하고 있고. 당신이 떠나 버리면 있어도 헛일 없어도 헛일이라 그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