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들여야 함

 

1984. 5. 5. 토새

 

본문: 누가복음 16장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김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을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가 우리 구주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크게 말해서 두 가지로 그 섬기는  종류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주님 섬기는 그 섬김을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가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그것이 하나 있고, 또  자기를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그 섬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 참 자기의 가진 지능을 다해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고, 또 자기의 소유를 다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해도 그 자기를  하나님에게 드려서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섬기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가진 것은 다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자기는 하나님에게  바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바쳐서  섬길라고 해 봤자 아무것도 없으니 바쳐 섬길 만한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기의  있는 것을 주님에게 바쳐서 섬기지마는 늘 자기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하나님  섬기는 일에 너무 허무하다. 어떤 사람은 많은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많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많은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기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 봐야 뭐 자기의  가진것을 다해서 섬기기는 섬기지 마는 너무 그것은 심히 빈약하고,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는 완전히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그저 없어서 그렇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자기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자기의  전부를 주님에게 바쳐서 이렇게 살고자 하고 또 산다 할지라도 그것이 참 그  양이 얼마되지 않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자기를 바쳐서 자기를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에게 소유라는 그것이 대개는, 많지를 못합니다.

자기를 바쳐서 섬기는 사람이니까 자기의 소유도 뭐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자기의  소유도 바쳐서 하나님을 섬겨서 이렇게 섬기는 그런 사람,  그러면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섬기는 사람, 또 자기는  바치지 안하고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섬기는 사람 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섬기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소유는  의례히 바쳐 섬기는 사람이 벌써 그거는 거석할게 없지 마는 그래도 주를 위해서  사는 데에 자기를 가지고 주를 위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는 두고 자기의 그 모든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생활이 다 귀중한 생활은 귀중한 생활입니다.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갚으실 때에 자기의 가진 모든 것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값을 주기를 하나님의  가지신 하나님의 소유로 그에게 삯을 주십니다. 삯을 그에게 행한 대로 많이  수고 했으면 많이 또 적게 수고 했으면 적게 많이 바쳤으면 많이, 적게 바쳤으면  적게 이렇게 하나님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그것을 썼느냐 바쳤느냐 노력을  했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그것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면 그걸 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댓가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댓가를 그에게  지불하십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가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우리가 행한 대로 값을 받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댓가를 하나님이 치뤄 주시는 그런 일이 있고, 또 하나님께서  갚으실 때에 그 댓가 그 삯으로 주지 안하고 삯을 주지 아니하고 당신의 소유를  주지 아니하시고 당신을 주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그의 하나님으로 그에게 주시는 그런 일이 있고, 또 소유를 주는 일이 소유로 그  품삯을 주는 일이 있고 그 두 가지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받는 것을 받을  터인데,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있어서 소유를 바치는 그 부분이 있겠고, 또 자기를 바치는 그  부분이 있겠고 두 가지 부분이 있어서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그 사람에게 주시고, 또 자기의 소유를 바친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소유를 그 사람에게 주시고, 두 가지 행위가 있을 수 있고 두 가지  대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사는 사람은 뭐 자기의 소유야 의례히 그럴 수  있지마는, 또 그래도 자기는 바치되 자기 소유는 바치지 않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자기 소유는 바치되 자기는 바치지 않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어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소유로 그에게 삯을 그 댓가 값을 삯을 그에게 일을  했으니까 일한 품삯을 줘야 되니까 하나님의 소유로 그에게 품삯 주듯이 그 삯을  주시는 그 일도 있겠고, 또 당신을 그에게 주시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을 잘 구별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아침 봉독 한  말씀에는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섬기지 못한다. 이를 사랑 하든지  저를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사랑하지 둘 다 사랑할 수는 없다 그거야 둘 다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팔방미인 창기들은 열 남자 만나면 열 남자 다  사랑하는 것 같고 백 남자 만나면 백 남자 다 사랑하는 것 같고 그렇게 하는  그것은 창기성인데 그것은 껍데기로 그렇게 발라서 외식하는 것이지 진정  사랑하는 일은 그래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말씀 하시기를 사랑이  아니면 미움이요 미움이 아니면 사랑이라고 고렇게 둘로 만 딱 했기 때문에 그  둘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 말은 한 종이 두 주인을 사랑할 수 가  없다 하는 말입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졸면서 뭐 은혜받는 듯이 자꾸  모가지만 머리 끄떡끄떡 하면 안돼. 이 외식이라 그걸 확 벗어나야 되지 한  종이 두 주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기는 그것을 여기에서 금했습니다. 그거는  제가 어리석어서 속는 일이지 한 종이 두 주인을 사랑할 수가 없다 성경에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왜 사랑할 수 없느냐? 이를 사랑하며 저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면 이를 미워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한 종이 한 주인만 사랑할 수 있지 두 주인은 사랑할수 없다  이래 놨는데, 우리 사람들은 명이든지 자기가 사랑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다 외식이요 자기가 진실을 찾아보지 안했기 때문에 깊이 따지고 따지고  들어가 보지 안했기 때문에 자기는 어느 것을 최종으로 최고로 제일로  사랑하느냐? 이것 사랑하고 저거 사랑하고 둘이 서로 견제가 될 때에 둘이  비중이 될 때에는 어느 것은 반드시 내어놓고 어느 것은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둘 다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둘 다 사랑할  수가 있다고 고렇게 생각하는데에서 악령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두 주인을 사랑할 수가 없다. 또 경중이 여기는 것도 이를 중히  여기며 이를 경히 여기거나 저를 경히 여기면 이를 중히 여기고 둘 다 꼭 같이  중히 여길 수가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고것은 사람이 둘 다 꼭 같이 중히 여기고 둘 다 꼭 같이 사랑한다고 해 도  자기는 그렇게 이거나 저것이나 둘 다 꼭 같이 사랑하고 꼭 같이 중하게 여기고  꼭 같이 섬긴다 할지라도 자기는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상대방 이 그것을 그렇게  받지를 아니합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받지를 아니합니다. 상대방이 둘 다 꼭  같이 사랑할 때에는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받지를 아니합니다.

 그렇게 둘 다 사랑할 수 있고 셋이 다 사랑할 수 있는 그것을 그런 외식을  껍데기를 당신은 받지 안하시고,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시험하셔서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 나를 중히 여긴다. 나를 섬긴다 하는  이것을 둘을 사랑하고 둘을 똑같이 중하게 여기고둘을 꼭 같이 섬기는 이런 일을  네가 하는 줄로 이렇체 알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네가 그렇지 안하고 둘 중에  너는 하나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자인데, 최종이라는 그 최종에 너희는 나아가지  안하고 거기에까지를 생각하지 안하고 네가 중간에서 어물거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지 네가 최종으로 따지면 너는 하나밖에는 사랑하지 안하고  하나밖에는 섬기지 안하고 하나 밖에는 중하게 여기지 않는 네인데 네가 속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죽기 전에 회개를 시키시기 위해저 그런 현실을 만들어  주십니다. 현실을 만들어서 이를 사랑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은  저것은 내어놓아야 되겠고 저걸 사랑할라 하면은 또 하나님은 내어 놓아야  되겠고 이렇게 둘 다 섬길 수 없는 고런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느니라고 큰 힘을 들입니다. 큰 힘을 들여서 둘 다 사랑할 수 없고 둘 다  사랑할 수 없고 둘 다 중히 여길 수 없고 둘 다 섬길 수 없는 고 하나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을 딱 만들어서 줍니다.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 현실을 닥쳐 놓으면 제가  처음에는 이것 둘 다 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고런 현실을 만나게 되면 그 때야  제가 아, 이거 할라면 이걸 사랑할라면 저걸 버려야 되겠고 저걸 사랑할라면  이걸 버려야 되겠고 둘 중에 하나는 버려야 되지 둘 다 할 수는 없다 하는 고런  입장을 딱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면 그때야 제가 좀 당황합니다. 당황하면서 그때  그것으로써 비로소 하나님만이 자기를 알고 계시고 자기도 자기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자기를 모르고 있는 그것을 고런 현실을 통해서 알게 해 주십니다.

 현실을 통해서 거기에서 시비를 하다가 내가 이렇게 둘을 섬기고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는 것을 이것을 얼버무려 가지고서 버물버물 해 가지고 이것을 똑똑히  진실되이 구별하지를 안했다. 진실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러기에  거룩이라는 것은 요렇게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마지막에 진실에 도달한 것이  그것이 거룩인데, 구별하고 구별해 보니까 아니다. 나는 둘을 이래 그석했는데  둘 중에 둘을 다 섬기고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끝까지 따져 보니까 요런  현실을 만나 보니까 요것을 귀중히 여겼고 요것을 천하게 여겼고 둘 중에  하나밖에는 섬기지 못할 때에 내가 둘을 가지고서 얼버무렸고 버물버물 했고  그것을 진실되이 최종 최말에 자기가 진실되이 가지는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자기가 그때사 알고 씨름을 합니다.

 이걸 취하자니 저걸 버려야 되고 저걸 취하자니 이것을 버려야 되고 그렇게  되는 그것이 뭐이냐? 자기가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을 껍데기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똑똑히 모르고 공연히 그렇게 지나치게 높이 평가 한 일도 있고  지나치게 적게 평가한 일도 있어서 그것을 바로 알리기 위해서 그 현실을 줘서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래 신강하기 전에 그 일이 닥치기 전에는 이건지 저건지 분별을  못 했는데 막상 그런 일을 닥치고 보니까 '하, 이거 내가 외식을 했구나. 내가  여기에 대해서 좀 주저하고 신강하는 것보니까 내가 이것은 둘을 얼버무렸지  하나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뭣을 여기에서 결정을 지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거기에서 둘다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만 사랑하고 하나는 사랑치 안했다는 고 판명을 자기가  보게 됩니다.

 판명을 보게 돼서 땅에 있는 것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판명을 자기가 보게 되기 때문에 판명 보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머리가 숙어져서  무엇이 그리 한 듯이 떠들어 쌓고 이래 쌓지마는 고 판명을 현실 통해서 딱 보고  난 다음에는 암만 우매한 자기지마는 자기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 나는  하나님 사랑한 것이 아니고 나는 물질 사랑 하는 자라.' 자기가 판정을 하게  되고, 거기에거 뭐 얼버무려 가지고서 버물버물 해 가지고서 그래 그만 구별하지  안하고 도매금으로 싸 넘기는 그런 못된 버릇을 안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실이 없으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진실이, 요런 데도 진실이  하나반 되는 고것을 따져 들어가야 되는데, 그래 가지고 '내가 이제까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만 그럴 수 있나?' 그때사 단정을 짓고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을 피조물을 충히 여기는 것을 피조물을 섬기는 것을 이제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서 단정을 지우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단정을 지어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으로서 단정을 지어서 자기는 하나로 그 진실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그만 세상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되면 이거냐 저거냐 할 때에 버물거리 가지고서 이것도 저것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안하려고 그걸 구별 하지 안하고 고만 두덕거려서 그만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아닌 그만 그렇게 해서 넘겨 치우는 그런 의식도  있습니다.

 그러면, 고게서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거기에 나타나든지 둘 다 구별하지  안하고 고만 한테 두루뭉실히 해 가지고서 도매금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버물거려서 구별하지도 안하고 고만 그래 가지고 넘어가는 고런 못되 자도 있고  또 고것보담은 고것보담은 '나는 이거다. 훈명히 하나님 아니고 피조물이다,  나는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이다.' 이렇게 확정을 단정을 판정을 지우고 가는  고것은 세상을 사랑해도 고 진실은 가진 사락이 그 진실은 가진 사람이오.

그러나 고것도 가지지 안하고 한테 두루뭉실히 버물러 가지고 이래 하면서 이것  자꾸 따져 들어가면 그게 나올 터이니까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 나올 터이니까,  나오고 나면 양심에 가책이 될 터이니까 어라 그만 따지지 말고 얼버무리자 그래  가지고 중간에서 구별하지 안하고, 구별이라 하는 거는 자꾸 이래 따지고 따지고  비교 비교 해 가지고서 참이라는 하나에 네가 어데 속했느냐? 마지막에 하나의  규정을 지우는 것이 그게 거룩인데, 그걸 지우지 안하고 거룩이 가지 안하고  마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거룩을 가지지 안한 사람이 있고, 거룩을 가져서 자기는 참인 온전하신  그분에게 귀속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나는 내가 따져 보니까 내가 나는 분명히  이 현실에서 피조물을 나는 섬긴다. 하나님 섬기지 않는다. 하나님을 섬기지  안하고 피조물을 섬긴 자이고 피조물을 귀중히 여기는 자다 나는 피조물에 속한  자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은 받지 못하고 피조물의 혜택을 받을 수밖에는  없는 자이고 나는 이런 자다.' 고걸 단정을 지우는 그 자는 거룩은 되지  못했지마는 그 면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구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당신이  지혜가 모지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모지라서 뭐 우리에게 지혜를 요구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풀 한 포기에도 오늘 이십 세기의 자연  과학자들이 아주 자기네들이 큰 소리 텅텅 치고 하지마는 또 요 풀 한 포기에  대한 그 지식을 다 완전히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발명과 십 년 후이면은 또  딴 발명이 나옵니다. 몰랐던게 또 새로 나옵니다. 이러기에 거기에 대해서  완전히 다 알았다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이 한 포기에도 하나님의 재휘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쉬나님의 사랑 이 굉장히 세밀한 그것을 이 풀  한 포기애 대한 것도 인간이 이십 세기 학자들이 다 달라들어도 모릅니다. 안다  하면은 그 자는 거짓 돼요. 안다고 다 알았다고 화면 이 다음에 더 발전이  없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 다음에 새로운 발명이 나온다 그말이오.

 이런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이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가  모지라서 지혜를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능력이 모지래서 능력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는 당신에게  드리지 못하지마는 나는 당신에게 드려서 당신의 것이 되지 못하지 마는 내가  지혜로 당신의 하시는 일을 돕겠습니다.' 그래 정확한 품삯을 주십니다. '또  내가 힘을 가지고서 당신을 돕겠습니다.' 정확한 계산을 해가지고서 댓가를  주십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것이지마는 자기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서 하나님 섬겼으면 '아, 네가 이 소유를 가지고 이래 섬겼으니까  이 소유에 대해서 정확한 계산을 해 가지고 너희에게, 그 값을 치르겠다.'  정확한 댓가를 치릅니다. 정확한 댓가를 치르고 정확한 품삯을 치르고  치러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그저 품삯 줬으면 그만 아닙니까? 일군을 데리고 와서 고 일을 했어도 그 사람이  와서 일을 합니다. 일을 하면은 일 한 데 대해서 일 삯을줄게 있고 사람이 다  같이 와서 일군이 일을 여럿이 하는데 품삯을 줄 것이 있고 그 품삯으로 주지  못할 품삯으로 주지 못할 그 사람이 나를 인격으로 섬겼으니 내가 그 사람을  섬겨야 되는 그 자신에 대해서 내가, 그 자신을 내 자신으로 대우해야 될 일이  있고, 그냥 돈만 주면 계산 다 청산 돼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데우리는 생각하기를 나는 소유를 많이 가졌다. 녜,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사람 있습니다. 또 지혜와 능력도 많이가지고 적게 가진  사람 있습니다. 또 자기의 그 활동성 부지런한 것. 활동성 이 있고 부지런한 것  그 활동성도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사람 있습니다. 그 활동성 가지고서 자기  소유 가지고 자기 기능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자기를 바치지 아니하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돕는 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자기를 배 놓고 그걸  가지고서 하나님 섬기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계산할 때에 품삯으로 계산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품삯으로,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섬기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기를 자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기 위해서 자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부득이 자기에게 있는 물질로 섬길 때는 물질로  섬기고 지능으로 또 섬겨야 될 때는 지능으로 섬기고, 이러니까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자기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 섬기는 일을 하는 데에 이런  것들이 따라 들어가고 이런 것들이 따라 들어가는 사람 있고 또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기는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 섬기지 안하고 자기의 가진 거만  자기는 내어 놓고 자기 가진 것만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있고 이래 있는 이  두 종류가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의 소유 있는 것은 그 분에게 필요한 대로 그분이 요구하는 대로는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걸 바쳐서 섬기게 되지 안 바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주님에게 바쳐 섬김으로서 자기의 모든 가진 것 들이  거기에 따라 들어가는 그런 사람이 있고 자기는 두고 자기의 소유만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사람이 있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두 종류가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두 종류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도 그것을  정학하게 행한 대로 갚아 준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댓가를  치르고 또 그 삯을 줍니다. 삯을 주고 댓가를 치러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기라는 그 자기라는 인격 자기 다시 말하면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친 그것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에게 바친 것은 따져보면 그까짓  것 몇 닢푼 치 안 되지마는 자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삯으로 줄 것은 얼마 안 되니까 삯은 삯으로 따져서, 또 그걸 그대로  계산하지 마는 이제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은  당신의 소유를 가지고서 대우하지 못합니다. 이 사랑은 자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는데 하나님께서 '아나, 네가 날 섬겼으니까 뮐 좀 대우를 만이 받아라,  크게 받아라' 그런 것 가지고는 줘 가지고는 그것은 공의가 아니고 공의가  아니고 그거는 법도 아니고 그거는 아주 정의도 공의도 아닙니다. 아니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님 당신을 줘야 된 다 그말이오. 당신을 줘야 돼요.

 그러니까, 보면 그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가 모르는게 아니고 우리가 다  압니다. 다 아는 것은 그사람은 그저 내가 그사람에게 대해서는 빚진 것이, 그  사람이 아, 내 일을 도왔다, 지혜를 가지고 도왔다, 능력을 가지고 도왔다, 돈을  가지고 도왔다, 힘을 가지고 도왔다, 시간으로 도왔다. 뭘 도왔다. 도왔으니까  내가 그게 빚이 졌습니다. 빚이 졌으니까 내가 그것을 갚아야 되겠습니다.

갚아야 되겠고, 그 사람은 뭐 도운 거는 없지마는 도운 것은 없지마는 그 사람은  어깼든지 자기를 다해서 자기를 나를 위해서 섬 겼다. 하루 동안 일을 해도 그  사람은 둔해서 일한 것츤 몇 닢 푼치 안 되지마는 그 사람은 자기를 그 주인  나를 위해서 바쳐서 오늘 일했는데 일한 것 보면 그까짓 것 품삯 다른 일군  십분의 일 도 줄 것이 없다. 없지마는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를 다해서 일했기  때문에 품삯 주는 것으로서 그것은 끝을 낼 수가 없다. 그는 자기가 나를 섬기는  거와같이 나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부득이 책임을 져야 되겠다 책임을 져야  되겠다 이게 되어지는 것이 이제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형대로 된 것이  인생이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도 사람을 관계 가질 때에 제일 두려운 것은 뭐이  두려우냐? 그 사람이 우매무지하나 참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섬기고 나를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고 나를 사랑하는 그것을 하니, 그  사람은 이게 있어 봤자 일에 도움도 하나도 없고 지혜에 도움도 하나도 없고  소유에 도움도 하나도 없고 아무 필요 없어. 도움이 없어. 도움이 없지마는  그것이 나와 관련이 있는데, 내게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그에게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되지, 내게 있는 것을 저가 있는 것 다해서 그렇게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또 복종하고 좋아하고 그에게 속한 것으로 이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은 그에게 다해서 그에게 나를 다 그에게 주지 안하고는 안  됩니다. 인간도 그런 것이오.

 그러나 그 사람이 뭐 아무리 내게 대해서 큰 일을 해 줬다 할지라도 일은  일이기 때문에 댓가 치르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댓가를 치르면 끝나요. 이 말이  여러분들이 인정이 됩니까? 어?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녜, 사람이면 다 이것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갓난 그 어린 아이 그까짓게 부모에게 항상 누나 끼치고 애나  먹이고 패나 끼치고 뭐 골탕이나 쥐어 먹이고 이러지마는 그것이 아무것도  의지하고 바라보는게 하나도 없고 부모 하나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 옳은  부모라면 자기의 생명과 그 생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고, 자기 몸과 그의 몸을  같이 할 수 밖에 없고, 자기에게 뭐 있는 한은 남겨 두고는 할 수가 없다  말이오. 그이가 다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할 때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이지 안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 동물이 가지지 못한 인간만이 가진 그  특수성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구별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뭐이냐? 뭐 그것도 다 댓가는 치러 주지마는 노동력을 원하지 않습니다.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소.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고, 또 지혜나 능력이나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안하고, 뭐 소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고 인간 전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뭐 이 모자라서 인간에게 그걸  요구하시겠습니까? 그런 것을 주시나 주면 섬기면 댓가로 치러 주고 그다음에는  없습니다. 아 그 사람이 만 원짜리 일을 했으면 만 원 주으면 됐지 그 이상  그에게 뭐 빚질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나 그 사람이 못났지마는 있는 걸 다 기울어서 이렇게 나에게 기울어서  저는 전적 있는 것을 다 바쳐서 나를 이래 바쳤으니 내가 그에게 대해서 돈을  준다고 해결도 되지 안하고 뭐 얼마 어떻게 해 준다고 해결되지 안하고  그것가지고 해결이 안 된다 말이오. 부득이 그거는 내가 그 가 나보담 낫든지  나와 동등될 때까지는 내가 책임을 지지 안할수 밖에 없는 것이 그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자, 어느 것을 의지 하느냐? 당신을 의지하는 것을 당신이 가치로  여기시고, 당신을 바라보는 것을 가치로 여기시고, 또 당신을 사랑 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시고, 중히 여기시는 것을 가치로 여기시고, 섬기는 것을 가치로  여기시고, 복종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십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전부다 뭐이냐?  이것은 자기의 기능도 소유도 거기에 다 이용되기는 이용되지마는 이용되기는  이용되지마는 자기의 인격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는 그것은 아무 딴 거 아니요 그건 자기  인품 인격이오.

 그러면 못났고 잘났고 그대로 가진 사람 있다 그말이오.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다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그걸  요구하시지 딴거 요구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되지, 대개 보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그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줄 알고 그거 있기 때문에 교만 하고 그것 있기  때문에 교만하니까 하나님 앞에는 시원찮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귀찮아요. 그거  있으니까, '얘, 그것 다 내가 만든 건데 내가 그것 요구하지 않는다.' 그걸 다  할 때에 와서 섬기니까, 계약을 선포해 놨으니 그가, 그 섬김으로서 나중에  인격이 따라 들어올까 해서 그래 그걸 기다리는 것이지 그거 섬기는 건 볼 때에  시원찮습니다.

 섬기면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가와 맞이하지 안하고 섬기는 것은 띠이! 할  것이라. 띠이하이 섬기니까 그래, 띠이하이 해서 띠이하이 해 가지고서 받기는  받지마는 아무 쾌감 없습니다. 아무 쾌감 없습찌다. 아무 쾌감 없어. 왜? 그거  요구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라면서 허, 내가 이렇게 섬겼으니까 이렇게  했으니까 다 그라면 내가 나 뭐 네게 대해서 품삯 주면 그만이지. 삯을 주면  그만이지. 삯을 내가 많이 주지. 그러나 당신은 그에게 주지를 않습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하나님을 내가 내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을 나에게 주실 수 있게 하는 데에는 내 소유나 지능이나 아무것도 아니고  나를 당신에게 바쳐서 당신을 섬기는 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나를 당신에게 바쳐 섬길려고 하면 그라다 보면 내게 있는 소유나 기능이나  그런 것이 자연히 하나님 섬기는 데에 거기에 따라 들어가서 이게 섬겨 지는  것이니까 자연히 하나님을 섬기면 내게 있는 거 주고서 당신에게 소유 가지고  섬기지 안할 수 없고 지능 가지고 섬기지 안할 수 없으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섬기되 자기를 하나님께 바쳐서 섬김으로 모든 소유가 따라 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는 또록또록 내어놓고 자기  가지고서 하나님을 돕는 자로 하나님을 도우는 자로 하나님을 구제하는 자로  하나님을 이렇게 뭣을 이렇게 꿔 주는 자로 이렇게 하는 그런 것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시지도 안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자기를  다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 섬기는 데는 잘나고 못난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잘나고  못나고 유식하고 무식한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있는 대로 자기를 바쳐서  섬기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바둘기같이 순결 하라' 그  말은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말은 배암의 지식을 다 가지라 그말이 오. 다 가지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다 가지는 것이 필요 있는 것은 혹 자기가 요런  면에서 다 바쳐서 섬겼는데 섬 겼는데 배암의 지식이 배암의 지식이 딴 지식이  나와 가지고서 나를 흔드니까 다 바쳐 섬겼던 것이 딴 데로 고만 다 기울어져  가지고 섬기는것이 하나도 섬겨지지 안하고 딴 데로 기울어지기 쉽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배암의 미혹을 다 초월해서 배암의  미혹을 다 초월해서 배암이 어떻게 흔들래도 훈들 수 없는 그것으로써 하나님  섬기는 것을 목표로 두고 섬기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도 무슨 말인지 좀 알아 듣기가 어려운 말인데, 무식한 사람은 그래요.

무식한 사람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섬기는 것이 다릅니다. 유식한 사람, 예를  들어 지식이 백 개 가지고서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섯 개 가지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달라요. 다섯 개 가지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 바쳐서  섬기고 사랑했지마는 다섯 지식 외에 다른 지식이 열 지식이 들어와 버리니까,  고만 하나님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흔들려 버리고 그만 변동이 돼 버립니다.

그러나 백 지식을 가지고 다 판단 해 가지고 섬기는 사잔은 구십이 와도 문제  없고 팔십이 와도 문제 없고 요동치 안하지마는 백이 오니까 백 이 오니까  백까지는 감당했는데 백 오십이 오니까 고만 그 다음에 얼떨떨 해 가지고,  새로운 지식이 생겨지니까 자기가 하나님에게 다 바쳐 섬겨야 되는 것이 그것이  흔들리고 복잡해져 가지고서 요동이 되고 변동이 되더라 그말이오. 그러치  때문에, 지혜는 뱀 같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글을 안 배워도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 당신만  좋아하시고, ○○○ 목사님이 설교하는 걸 내가 들었는데 하나님과 끊어지면 안  된다. 좋은 설교했읍나다. 끊어지면 안 된다. 연결이 끊어지면 안 된다.

하나님과 끊어지지 안하고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에 끊어지지만 안하고  연결돼 있으면 그분이 전지자요 전능자기 때문에 그분과 끊어지지 안하면 그분의  양분이 포도나무 둥치의 양분이 가지로 다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에게  모든 것이 자기에게 흘러 나오기 때문에 현실마다 당신이 지도하실 것이고  당신이 인도할 것이 당신이 도울 것 이니까 모자라는 것이 언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 살펴서 내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지 나를 가지고  섬기는지 요것을 구별해서 나를 가지고 섬김으로서 내 소유가 따라 들어가는  것인지 나는 가만히 두고 내 소유만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 요것을 잘  구별해서, 낙망하지 말고 구별하는 것은 자기가 이제까지 소유를 드려서 하나님  섬기고 자기를 드려 섬기지 안하는것도 소유를 드려 섬기지 안한 것보다  낫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세게 드려도 그 소유는 아까와서 드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있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는 그거는 아브라함은 자기를  하나님께 다 드린 사람이오. 하나님에게 다 드린 사람이지마는 서도 백 세에  얻는 자기의 소유 자기 독자 그것은 이매 자기야 하나님께 다 드렸지마는서 또  자기의 가진 소유 그것을 하나님에게 드려 섬기느냐 안 섬기느냐? 그것을 보기  위해서 번제로 드려라 그래 하나님이 시험했어. 하나님이 허툴은 일 한게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그럴 수도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했을 때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를 기뻐 즐거워해서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말씀을 그래 말했습니다. '이제야,  이제야 네가, 너는 의례허 나한테 다 바쳤지마는 네 소유 중에 제일 귀한 백  세에 얻은 독자도 나에게 바치나 안 바치나 하는 그 여부를 알기 위해서 너를  시험했더니마는 번제로 드리니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이젠  자기의 소유를 다 바쳐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기를 바쳐 섬기는 사람이 의례히 자기를 바쳐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 자기의 소유는 다 그 섬김에 따라 들어가지마는 들어간다고 안심할게  아니라 들어가면서 자기 바치고 자기 바쳐 하나님 섬기니까 소유 이거야 문제가  있겠나 하지마는 자기 소유 가운데에 바쳐지지 않는 그런 것이 가다가는 생길 수  있다 그말이오. 가다가는 생길 수가 있어서 생기면 그것이 들어서 암병과 같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그것이 새끼를 쳐 가지고서, 암은 조그만한 혹이 하나  생겨 가지고서 혹 이 여러 천 개도 만 개도 많이 생겨져 가지고 된게  암병이랍니다. 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모르지마는 그것 모양으로 고 작은  쓴뿌리가 작은 쓴뿌리가 많은 사람을 더럽히니라. 작은 소스락의 조그만한 소유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께 바치지 안하면 고게 들어서 뒤에 화근을 만들어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 차차 그리 기울어지면은 하나님 섬기지 안하고 달리  변동이 되어진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하신 이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사람들 보면  크게 말하면 두 가지고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소유만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 있고, 자기를 바쳐서 섬기는 사람 있고 자기를  섬기는 사람 가운데에 자기의 소유는 바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보면 무식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무식한 사람에게 많이 있소. 자기를  바쳐 하나님 섬기다가 뜻밖에 자기에게 무엇이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독자 얻는  거와 같은 이런 뭣이 하나가 오니까 그 거는 바쳐 섬기지를 못하고 그라는게  있다 그말이오. 이래 크게 말하면 둘이지마는 세밀히 말하면 셋인데, 하나는  하나에 속한 것입니다. 자기를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혹 자기의  소유를 다 바치지 못하고 소유 고것이 우상이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버리저 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주님의  제자로 소유와 몸과 생명도 다 바치면서 뭐인가 뿌스래기 아무것도 아닌 고거는  바치지 못하는 그런게 있다 그말이오. 이삭 모양으로,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세밀히 아시고 모르는게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제일 중한 것이 자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당신이 내 하나님 됩니다. 그렇지  안해요? 내 어떤 잡지를 봤는가 어떤 잡지를 봤는데 그거 모르겠어. 그  순애보에서라 하는 잡지에서 내가 한 페이지를 봤던가 아주 여자는 못났고  등신인데 못났고 등신이고 죽을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 사람 이 많은  여자를 다 사귀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이제 내놓을 수 있는데 그거는 내어놓을  수가 없다. 이거는 못났고 등신이고 바보고 그런데 이것은 내어놓지를 못하겠다.

그게 등신이니 그걸 더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것 이 천치 바보니까 더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르니 그걸 사랑하지 안할 수 없고 이래서  그에게 상대방의 단점이 내 마음을 다 끌었다 하는 그 잡지 쓴 것을 내가 언제  본 것 같습니다.

 이러니까 고게 뭐이냐? 자기를 기울었다 그말이오. 자기를 다해서 바라보고  의지하고 맡기고 그로서 전부로 알고 있는데 상대방은 그래 알고 있는데 자기가  그렇지 않으면 자거는 그 책임을 지지 안하면 자기는 속이는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도 이런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우리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우리를 복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십니까?  이러니까, 그러기에 지혜 있는 사람이 딴지 못하고 슬기 있는 사람이 많지  못하고 학벌 문벌 좋은 사람이 많지 못해. 그 사람들은 제 꾀에 제가 다 넘어가.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다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는  볼게 없는데 하늘나라 가 보니까 꺼꾸로 됐어. 놀랄 일이, 어떤 그 성자가  기록한 책 가운데에 하늘나라 가면은 놀랄 일이 세 가지 있다 이랬는데 놀랄일  세 가지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뭐이냐? 저까짓 거는 저거는 저 밑에 있을 것인데  했는데 아, 그 사람이 최고의 높은 자리에 와 있는 그것 보고 놀란다. 저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 있을 것이다 했는데 가서 보니까 저 밑에 최하의 자리에 가 있다.

 그러니까, 인생들은 평가하기를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나타난 것으로 평가하지  마는 하나님은 나타난 걸로 평가하지 안하시고 나타난 것으로도 평가하지마는  나타나지 안한 숨어 있는 그걸 가지고 평가하시기 때문에 인간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그렇게 다르더라. 차이 있더라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은 다 참  놀랄 말이오 기가 막힐 뭐 우리에게 마음이 눌리는 말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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