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35
잃은 양과 살리는 능력
1984. 2. 7. 화새
본문: 마태복음 10장 1절∼15절 예수께서 그 옆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보고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 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함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여기 열 두 사도의 이름을 밝히고 열 두 사도를 복음을 전하도록 내어 보내면서 몇 가지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하는 이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고,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도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시고 또 이방인에게도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 여인인데 그 여인에게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니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그 여인이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럴 때에 참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 하시고 그 시로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 말은,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 나를 다른데 보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셨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실 때에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셨다 다른데 보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똑똑히 주님이 밝히셨고. 또 그 여인에게는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아니 하니라' 이렇게 말씀을 분명히 해 놓고 그 딸에게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 하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이방인에게는 가지 말고 잃어버린 양에게만 가라 요렇게 딱 제한해서 명령을 하셨는데 예수님이 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다른데 가지 말고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다 이렇게 예수님이 스스로 자증을 하셨는데 자증하시고 이방 여인에게 이렇게 믿음이 참 크다고 칭찬을 하시고 거기다가 주님이 은혜를 베푸신 이것이 무엇인가 하나가 좀 틀린 것 같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을 유태인으로만 국한해 가지고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면은 아버지가 명하지 안한 것을 행했으니까 예수님께서 그것은 잘못이 되겠고 또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이렇게 단정을 지워서 말씀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까 이것도 그러면 예수님께서 일구 이언, 한 입으로 두 말을 해서 이렇게 일구 이언한 말이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에게 받은 그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든지 또 당신이 말한 것이 일구 이언의 못 쓸 말이 되든지 그렇지 안하면 뭐,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 틀림없는 진실한 말로 또 아버지의 명령을 절대 복종하시는 주님으로 이렇게 해석을 할라고 한다면 무엇을 바꾸어져야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거기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과 사람들이 듣고 깨달은 그 깨달음이 서로 착오 있지 안했는가? 그러니까, 주 넘은 말씀하신 일이 틀린 말을 할 리가 없고 또 당신이 일구 이언을 할 리가 없고 이러니까 무엇이 잘못됐겠습니까? 만일 말이지요,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낸다, 다른 데는 보내지 아니하고 보냈다 하는 그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에 영원 전 당신의 형상대로 온전한 자를 만드시기 위한 그 예택.
미리 '이런 일 하겠다' 그렇게 예택하신 일이 당신의 목적인데 그 목적을 정하신 목적 안에 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그것이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만일 해석이 된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다른데 보내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셨다' 하신 말씀이 그 말씀이 틀림없이 바로 하신 말씀이 되겠고, 또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하는 이 말씀도 너는 인간이 볼 때는 이방인이니 뭐이니 이렇게 사람들이 작정한 것이지마는 하나님 앞에서는 네가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내가 믿는 너에게 택한 너에게 와 가지고서 은혜 베풀기 위해서 왔는데 내가 너에게 은혜 베풀라고 이게까지 찾아왔는데 그 은혜를 내가 누구에게 주겠느냐 너에게 준다 이렇지마는, 말씀을 했지마는서도 그 여인이 들을 때에나 모든 사도들이 들을 때에는 자기네들에게 잘못된 선입적 관념이 있으니까 아 이 여인은 버린 여인이라 상관치 않는다는 말씀을 주님이 선포하셨다 이랬지마는 실은 주님은 네게 은혜 베푸시지 안하고 누구에게 은혜 베풀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인데 제자들과 그 여인은 선입적 관념을 가졌기 때문에 '아 이거는 이 여인에게는 상관없다는 이 말씀이로구나' 하기 때문에 그 여인이 '개도 주인의 상에' '옳소이다마는 개도 주인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것은 자기의 선입적 관념과 주관을 초윌한 그 소망을 가지고서 주님을 믿기 때문에 이것을 장하다 네 믿음이 크도다 이스라엘에 내가 이런 믿음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주관을 다 초윌하고 또 자기의 선입적 관념을 다 초월한 소망과 초월한 주님을 바라 보고 의지하는 이것을 주님이 장하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이방인 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렇게 말씀을 해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을 가진 육신의 이스라엘과 또 육신의 이방인 이것을 사람들은 다 기존 지식으로 선입적 관념으로 딱 가지고 있는 저들에게 주님께서 육체의 이스라엘 이 이스라엘 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라 하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시니까 그들에게는 모순 되이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에도 가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주님이 사마리아 가 가지고 그 여인에게 복음 전한 것이 요한복음 4장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도 이상하게 여겼고 또 그 여인도 이상히 여겼지마는서도 주님은 그 여인을 찾아서 말씀을 전하고 난 다음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먹을 양식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해석을 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다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 말씀하신 것 보면 아버지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확실히 증거를 당신이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되겠는가? 이 사도들을 보내면서 외부적인 지역에 전하는 그 지역을 너희의 전도처로 또 전도의 대상으로 그렇게 삼지 말아라, 지역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라 그 지역을 네가 목표하고 전하는 범위로 삼지 말아라, 너는 이 지방이나 지역이나 또 인간들이 이렇게 이 민족이나 저 민족이나, 인간들이 모두 다 민족의 경계를 만들어 놓고 지경과 모든 국경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그런데를 그 범위 속에 네가 사로잡히지 말고 그것을 네가 전도할 그 범위와 표준으로 삼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하나님의 택한 자를 네가 표준으로 삼고 상대로 삼아 가지고 복음을 전해라 그러면 네가 아무데 가도 '아 나는 이 지방에서 지금 선교하겠다' 그런게 아니고 이 지방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자, 지방에 구애받지 말고 하나님이 택한 사람으로서 아직까지 중생되지 못한 그 사람을 지금 나는 모르지마는 그 사람에게 왔기 때문에 딴데 가지 안하고 그 사람에게 보내서 내가 왔으니까 나는 이 집 저 집 방문할 때에 나는 이 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집에 택하고 아직까지 중생되지 못한 그 사람, 하나님의 택한 백성 그 백성으로서 중생되지 못한 사람은 중생을 시키기 위해서 내가 왔고, 또 중생된 자로서 아직까지 신앙생활을 줄발하지 못한 자에게는 신앙생활을 출발시키기 위해서 내가 왔고 또 신앙생활을 출발하기는 했지마는서도 흐리멍텅하게 자꾸 자다가 깨다가 이렇게 하는 자들에게 깨우기 위해서 네가 왔다 이것을 네 전도의 표준으로 목표로 삼고 이렇게 하고, 껍데기 지역이라 하는 그런 것을 장대해서 네가 하지를 말아라 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밝혀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차라리라는 이 말이 좀 애매한데, 원어로서는 나는 차리리라는 말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마는서도, 또 원어는 엣날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사람이, 한 마디 가운데에 그 범위가 열 마디도, 뭐 스무 마디도 더 들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말을, 그 범위 안에 여러 마디가 들어 있으니까 여러 마디 들어 있으니까 이 말을 여기에 말한 말로서 번역을 할 건가 무엇으로 번역할 건가? 그것은 다 같은 그 차라리라는 그 원어를 가지고서 아마 번역을 하려면은 열 사람이라면 열 마디로 각각 번역 할 수가 있으리라 나는 생각합니다.
왜? 모든 옛날 그 고전어 이거 모두 다 미개어기 때문에 그 미개어는 지금 이 발달된 말과 비교할 때에는 한 말이 여러 말로 그렇게 자꾸 많이 번역이 되어서 그때는, 예를 들어 새는 꼭 한마디 가지고서 죽는다 기쁘다 반갑다 운다 하는 그걸 '짹.' 하는 소리 하나 가지고서 다하고 이런데 사람은 그보다 많이 발달이 되어 여러 말 합니다. 옛날은 문이면 '문' 하면은, '문' 하면 닫아야 될 때는 닫고 열어야 될 때는 열고 또 이라지마는 지금은 문을 열어라 닫아라 좀 빨쯤하게 해라 반만 열어라 어째라 거기에 대해서 문 여는데 대해서 여러 마디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번역할 수가 있으니 우리는 성경에 번역문 성경을 볼 때에 이 '원어가 이렇다.' 원어만 주장해 가지고 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은 그렇지마는 아는 사람은 미개어를 가지고서. 미개어를 가지고서 말한다 주장한다 그렇게 밖에는 나는 안 듣습니다.
이러니까, 원어도 거기에 찬 진의를 알기 위해서 참고로 해야 되겠고, 또 '이런 나라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했다' 그것도 참고로 하고, 왜? 그 나라의 모두 다 받는 바의 은혜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나라에서 이렇게 듣고 깨닫고 말하고 저렇게 깨닫고 말하고 이랬으니까 아마 여러 번역문을 어학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고 하면은 거기에서 '아 이렇게 저렇게 번역을 하고 했으니까 이 안에는 이런 저런 뜻이 있는데 내가 보는 데에는 요 뜻이 제일 옳다' 요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 다른데 가는 것 그거 '차라리' 하니까 꼭 가야 된다는 확정성, 확정성이 없고 그저 거기 가는 것보다는 이것이 낫다 이런 말로 들어서, 사람들이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 간다는 그 단정짓고 절대 불변적인 하나님 절대 명령이라는 이런 견고성은 거기에 없고 그만 흐리게 된다 그말이오. 이래서 차라리라고 이렇게 번역된 이 번역은 보다라는 번역이 아닌가? 보다라는 그런 뜻의 번역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왜? 내가, '아 나는 지금 한국에 와 가지고 선교를 하겠다.' 한국에 와서 선교하겠다 네가 한국이라는 그 나라에 와 가지고 선교하겠다, 네가 그렇게 하는 껍데기에 있지 말고 알맹이에 들어 가라. 나는 여기에 하나님의 택한자를 지금 구원할라고 왔다, 뭐 사람 많이 있어도 여기 이 모든 사람 내가 전하는게 아니라 여기에 택한 사람이 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택한 사람이 있다고 보고 택한 사람에게 나는 전한다, 미중생자에게. 택자로 미중생자에게 전한다, 또 중생된 사람으로서 아직까지 신앙 출발 하지 못한 자에게 지금 전한다. 신앙생활을 출발하고서 잠자는 그런 자에게 경성을 내가 하기 위해서 전한다 요렇게 그 실상을 잡아라. 그것이 옳다 하는 그런 것으로서 '차라리' 하는 그 말을 그런 것보다 이것이 더, 참 칼로 바로 찌르는 것처럼 탄환으로 바로 자기가 잡을 그 짐승을 보고서 놓는 것처럼 그렇게, 이렇게 에누리가 많고 외부적인 그런 것 가지고 나는 이 민족에게 전한다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이 민족에게 전한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전한다 그렇게 해라 네가 활을 쏠 때에 그렇게 '아 저거는 동쪽에 내가 쏠 푯대가 있으니까 나는 동으로 쏜다.' 네가 동으로 쏜다는 그걸 하지 말고, 너는 저 지금 푯대를 세워 놨는데 저 푯대를 향해서 쏜다 그렇게 하지 말고 푯대를 동으로 쏜다는 것보다도 동쪽에 있는 푯대를 보고 쏘는 것이 옳고 푯대를 보고 쏘는 것보다도 푯대에 그 쏘는 점을 찍어서 딱 점을 찍고 돌뱅이를 쳐서 딱 해 놨으니까 그 돌뱅이 점 그것을 보고서 딱 쏴서 돌뱅이 속에 점 고놈을 딱 맞칙서 과녁을 딱 뚫어내도록 요렇게 해라 하는 거와 같은 고, 이렇게 흩어진 것을 버리고 정확한 것을 가르치면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 요렇게 말씀하신 것인 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것도, 나는 이 집에 전도한다 이라는 것과 아 나는 지금 오늘 이 성에 와 가지고 전도한다 이거와, 이 성에 전도하다는 거와 이래 전도한다는 것보다도 그 모돈 에누리되는 외부의 껍데기 허탄한 것은 다 제거해 버리고 나는 이집에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 지금 내가 중생을 시키러 왔다, 택한 자를 중생시키러 왔다, 또 중생된 자가 있는데 그가 신앙 출발 못 했으면 신앙 출발을 시키기 위해서 왔다, 또 신앙 출발은 했지 따는서도 지금 신앙생활 못 하는 자에게 신앙생활을 지금 다시 재출발시키기 위해서 왔다 힘을 주기 위해 왔다 하는 그것이 우리가 복음 전하는 데에 정확하고 이탈되지 안하는 그런 전도 방편이라 그것을 우리에게 당부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주님이 사도들을 보낼 때에 부탁하신 말씀 중에 제일 첫 말씀입니다. 첫 말씀. 그뒤 여러 가지를 부탁했지마는서도 부탁 중에 제일호로 부탁했으니까 제일호가 제일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 가서 전할 때에 '내가 뭐 부산 사람을 다 구원하러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 택한 하나님의 백성 그 백성 구원하기 위해 왔다' 할 때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발랐으니까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하는 말은 바라는 대로 되리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자기가 믿는 것 뭐이냐? 주님이 이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 하는 것을 바라는 그 소망을, 소망을 가지라 소망을 가지는데 이 소망에 대해서 틀림없는 그 확실성이라는 확실성을 가지고 네가 바라봐라 하는 그것을 믿음을 가지라 한 것이라 말이요.
이런데, 그 바라는 것이 만일 잘못된다면 바라는 것, 바라는 것은 지금 내가 총을 가지고 쏘는 것은 지금 귓대기 저게 있는데 나는 그리만 보고 쏘면 된다, 아 새를 잡을라고서, 이 새는 공중에 날아 다니니까 공중만 보고 쏘면 된다 그것보다도, 궁중에 보고 쏠 것이 아니라 새를 보고 딱 쏘아야 되지, 보고서, 삐뚤어지면 새 안 떨어진다 꼭 들어맞아야 떨어진다 이렇게, 허탄한 모든 허망, 모든 허망 또 헛된 대상 그런 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꼭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네가 소망하고 이 택한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주님이 딴데 보낸 것이 아니라, 다른데 보낸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에게 주님이 나를 보내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거와 같이 내가 저희를 세상에 보냅니다.' 꼭 같은 책임을 인계시켜서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 주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다른데 가지 안하고 이스라엘에게 잃어버린 양에게 갔다, 자녀에게 준 떡을 개에게 줄 수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스라엘, 택한 백성들에게 은혜 주러 왔다 요렇게 그 정확하게 소망을 하고 정확한 대상을 가지고 거기다 복음을 전하는 여기에 택한 자가 있으면 이 말씀 가지고 중생 된다, 또 중생된 자는 이 말씀 듣고 출발한다, 또 중생되고 신앙생활 시작했지마는서도 신앙에 잠자고 있는 자는 이 말씀 가지고 반드시 일어난다 그럴 때 그 세 가지는 확실성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영원 전부터 작정했기 때문에 뭐 인간이 방해한다고 안 되겠습니까 그 사람을 다른 사람이 못 믿도록 방해한다고 안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올바른 소망을 가지고 쓸데 없는 모든 외부적인 범위 그런 걸 다 제하고 바로 그 실상을 향해서 이래할 때에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영원 전 택한 것인데 너거가 아무리 막는다고 영원 전 택한 자가 여기에서 구원얻지 안하겠느냐? 또 하나님께서 벌써 택한 자가 중생될 시기가 됐는데 내가 복음을 능하게 전하지 안하고 그저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생 안 되겠느냐 또 중생된 자가 이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 믿고서 하늘나라 구원을 준비하라 하는데 이 말씀 듣고 그 사람이 일어서지 않겠느냐 이것이 전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정확한 도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일 먼저 부탁한 말씀인 줄 압니다. 여러 가지 부탁했지마는서도.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 첫째 명령입니다. '명 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그러면,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가지 말라 했다 말이오. 또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 두 가지 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두 가지 하지 말라고 명령한 그 명령이 뭐인가 이 명령을 우리가 알아서 또 지켜야 되겠다 말이요. 이 명령 안 지키면 그만, 제일호 이호 명령을 안 지키는데 그 다음에 벌써, 명령을 어긴 자이면 마귀의 자식이고 하나님과는 이별이 돼 버리는데 무슨 능력이 나겠습니까? 이거 중요합니다. 제일호 명령을 지키고 이호 명령을 지키는데 우리는 일호 명령 이호 명령에 대해서 무관심 했다 그 말이요. 여기에 대해서는 아주 무관심하고 우리는 뭐 어느 고을에 어느 또 나라에, '대만에 가 가지고 지금 나는 선교한다.' 그거와 '내가 대만에 영원전 하나님이 택해 놓으신 그 사람 내가 중생시키러 간다' 하는 거와 아주, 활을 쏠 때에 남쪽이라 하고 남쪽으로 향해서 쏘는 그 범위와 거기에서 아 저 지금 둥그러이 돌뱅이 해 놓은 저 판을 세워 놓은, 판을 세워 놓은 저걸 향해서 쏜다 하는 것은 많이 축소가 됐습니다.
정확하게 축소가 됐어. 거기다가 또 돌뱅이를 그려 놓고 돌뱅이 저걸 지금 보고서 내가 활을 쏘아서 그 돌뱅이 안에 들어가면 된다 이거보다도 돌뱅이 안에 점을 꼭 찍어 놨는데 조 점을 내가 맞추겠다 하는 그것이 정확한 욕망이요 정확한 투쟁이라 그말이오. 일호와 이호를 이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거 '차라리' 하기 때문에 요 말이 그만, 요거는 번역을 잘못했다 그 말이오.
요거 좀 원어 아는 목사님들은 요런 걸 좀 한번 해 보십시오. 차라리라 하는 요 말이 내가 그게 대한 걸 말을 해석은 했지마는서도 또 원어에 보면 어떤고 원어에 봐야,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이런 관념 가진 사람은 이렇게 번역하고 저런 관념 가진 사람은 저렇게 번역하고 얼마든지 그 번역을 넓이가 한-원어는 예를 들면-백 평쯤 되니까 그 속에는 이쪽 구석도 저쪽 구석도 있으니까 별별 사람들이 많이 들어 있다 말이오. 그렇지만 자꾸 이거 발달된 언어로 말하면 그 범위가 좁아지니까 거기에는 고거 하나밖에는 표시 못한다하는 그런 것으로 지금 아주 발달된 어학이 지금 요새 이십 세기의 어학입니다.
이렇게 '차라리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요것 또 셋째 명령입니다.
그러면 그냥 '차라리' 요거는 안 써 버렸으면, '이스라엘 잃어 버린 양에게로 가라' 요렇게만 했으연 더 우리가 듣기에 정확하고 좀 솔직히 깨닫기 쉬운데 왜 차라리라는 말을 여기 넣었겠느냐 그 말이오. 이 없는 걸 넣지는 안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필요없는 걸 주지 안했을 터이니까 이 차라리라는 이 말은 일호 이호를 삼가 거기에 가지 말고, 그것을 네가 전도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그것을 네가 전할 그 표준으로 범위로 삼지 말고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이 모든 것을 축소시켜서 더 강조한 말씀은 분명히 더 강조한 말씀이라. '차라리' 하는 말은 강조한 말씀은 강조한 말씀인데, 강조한 말씀으로 우리가 알면 뭐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강조한 말씀으로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잘못 알면 일호나 이호나 이 삼호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 흐려지기 쉬운 흐리게 만드는 그런 말로 듣기가 쉽다 이거요. 이거는 분명히 흐린 것은 아니고 더 강조하는 말씀은 강조하는 말씀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차라리라는 말이나 또 보다라는 말이나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 것보다 이게 옳다.' 그 보다라는 말도 또 어색하다 그말이요. 이러니까, 너희들이 그렇게 지방을 상대해서, 지방을 상대해서 지방에 전하는 그것보다 이게 낫다 그렇게 그 보다를 쓰면은 또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래서,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것이 셋째 명령입니다. 셋째 명령. 그러면 우리는 이게 있을 때에 힘이 있습니다. 전도를 할 때에, 저도 종종 말합니다. 전도 갈때에 아 이거 뭐 힘이 없다 뭐 어짠다 할 때는 내가 종종 그런 걸 가르쳐 줍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시고, 보내는데 뭐 그 사람들, 전하는 그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이 도를 전해 가지고서 예수 믿도록 만들라 하는 그거냐? 아니다. 영원 전 택해 놓은 자가 있다.
그자에게 전해라. 그자를 누가 방해해 가지고 그자를 누가 구원얻지 못하도록 하겠느냐. 그자는 제가 영원 전 택해졌는데 제 까짓게 예수 안 믿겠느냐. 아무리 무신론을 주장하고 반대해도 네가 택했으면 된다. 우리가 강한 명령을 가지고 전할 수 있습니다.
종종 저는 그것을 말합니다. 택한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 불택자를 위해서 가느냐? 택자가 하늘나라 안 가고 어디 갈 것이냐? 택자가 구원 안 받고 어데 받겠느냐? 아, 택자를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는데, 그 자가 이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천하가 방해해 봐라, 되는가. 아 천하가 방해해도 내가 전도하는 거는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그 전도를 한다 그말이요. 천하가 방해를 해도 그 전도를 해, 전도하기를. 억센 사람들이 방해하면. 무신론 국가에서 방해하면 안 되는 그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영원전 택자에게 전도하기 때문에 이 택자를 천하가 들어서 방해하면 되느냐? 천하가 이 택자 구원얻도록 택자가 예수 믿도촉 하기 위해서 이 천하 만물 존재들이 다 그래 창조를 받았는데 그렇게 되느냐 이걸 자꾸 해석했을 때에 우리 믿음은 자꾸 강해지고 그 솔직해지고 정확해지고 여러면 그 믿음의, 믿는 대로 되리라고 했으니까 그 믿음이 정확해지니까 하나님은 거기에서 역사할 수가 또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요 일호와 이호가 아주 중요하고 삼호가 중요한 줄 압니다.
그러면, 일호 이호 삼호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사호를 명령할 때에 무엇을 명령했습니까? '가면서' '가면서' 사호에,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요것이 사호라 말이요. 사호 명령이라. '천국이 가까웠다.' 그러면 천국이 가까왔다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그 천국이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주관하는, 그 나라를 가리켜서 천국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왔다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다.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이 찾아 오셨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찾아 오실 때에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찾아 오셔 가지고서 예수님으로 나타나셨다 이거요. 이러니까, 도성 인신하여 마귀와 죄와 사망을 멸하고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이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왔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아라 너희 안에 있다.
그때에 우리는 그것을 잘못듣고 해석하기를 우리 마음 안에 있다 심령 천국을 이걸 말했지마는 실은 그게 아니라 이거요. 그때에 제자들이 둘러싸고서, 예수님을 중심해 가지고 둘러 싸고 있을 때에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아라 너희 안에 있다 너희들이 지금 둘러 싸고 있다 너희들 안에 내가 있는데 내가 천국이다 말씀했습니다.
천국의 씨, 천국의 씨는 하나님이 인간을 점령한 종자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이 피조물을 점령한 종자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요. 피조물인데 신성이 인성을, 창조주가 피조물을 점령한 그 종자가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인데 그 종자가 펴져 가지고서 세계에 펴졌고 이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이것이 그 종자가 커 가지고 이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이것이 인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 오신 것을 이것을 전하라.
그러면 신구약 성경은 뭐인가? 신구약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 예수님의 사진판이라고 말할까요. 성장을 둘로 나눈다면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런 이런 분이 오신다, 전부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표적으로 한 것이 성경의 반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고 난 다음에 이런 분이 지금 왔다, 이런 분이 왔다 하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성경의 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사진판이라 할 수 있을까, 예수님온 나타내신, 예수님을 문서로 나타낸, 나타냈는데 정확하게 정확무오하게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 신구약 성경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시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진리의 영감, 주님의 공로, 이제 증거하는 이가 셋이 있으니 성령과 물과 피니라 이랬습니다. 그 물은 진리를, 물로 이렇게 증거 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성령과 물로 거듭나지 안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안하면 하늘나라를 보지도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또 다른 데는 보면 성령을 말하지 안하고 중생된 걸 말할 때에 '살아 계시는, 항상 있고 살아 계시는 말씀의 씨로 중생됐다' 또 베드로전서 1장에는 거기에 서는 증생을 말씀을 말했으니까 말씀을, 물을 진리로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 있으니 곧 성령님과 물과 피니라' 이랬으니까 물이 무슨 물이, 물을 진리로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천국이 가까왔으니 그 천국 안에는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 도성 인신이 있고 신인양성일위가 이 천국 안에 들었고, 또 이 예수님을 나타내서 가르쳐 주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을 알려 주는, 예수님이 나타나 있는 그 나타남이 신구약 66권이요 영감입니다. 이러니까, 너희들이 전할 때에 도성 인신하신 예수님, 또 십자가의 대속하신 예수님, 또 보증하신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 또 더 널리 펴져서 신구약 ○○권에 하나도 빼지 말고 그 66권 도리를 전해라, 또 그와 함께 영감이 같이 전해지도록 해라 하는 이것이 넷째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넷째 명령은 우리가 잘 감당한다고, 감당해야 될 줄도 알고 이 넷째 명령을 제일 우리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넷째 명령은 제일 강조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는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실력도 있어졌고 여기에 대해서는 증거하는 증거가 힘있게 증거하는데, 우리가 과연 일호 이호 삼호의 이 명령을 우리가 엄격하게 지켰는가. 거기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생각지도 못하고 있지 안했는가? 해석하면 이렇지마는서도 우리는 단도직입으로, 단도직입으로 그만 직입적으로 그렇게 요렇게 명중하는 요런 믿음의 사상을 가지고 뭐라 할 때도 뭐 반대해도 속으로 너거 암만 반대해도 나는 영원 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찾으러 왔어! 그 사람에게 전하러 왔어. 너희들이 암만 해도 택한 백성은 너희들이 막지 못해.
우주가 이 택한 백성 위해서 지음 받았어!' 이 믿음을 가지고 올 때에 그 믿음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이 강한 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은 일할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일호 이호 삼호를 우리가 명령인 것을 알고 거기에 대해서 이 명령 순종이 흐렸던 것을 우리가 회개해서 확신을 가지고서 이 명령을 순위대로 이렇게 경중을 삼아서 지키는 것이 옳은 줄 압니다.
그 넷째 명령은, 넷째 명령에만 우리가 힘을 쓰고 있어요. 넷째 명령에는 힘을 쓰고 있으니까 이것은 잘못하면 말쟁이 되기 쉽다 말이오. 말뿐이요. '너희들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 하도다' 하는 말씀과 같이 입술만 이렇게 하고 속에 뭐 그 실상이 있는지 없는지 표시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사호만 가지고 이러니 자다가 그래도 될 수 있고 뭐 아무 기도 안 해도 그 하는 말이야 줄줄 할 수가 있고 이러니까 아무런 인격성을 가진. 인격성의 근원이 되는 이 신성을 가진 하나님을 향할 때에 우리의 인격은 기울이지 안하고 다만 뭐 장사꾼이 자다가 일어나 가지고서 말하면 그 '얼마요?' '녜, 그 얼마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아무런 우리가 인격 대 그 신격의 교제하는 이 교제의 실상이 없이 죽은 복음을 전하고 자꾸 죽은 설교를 하고 있는 우리가 되지 안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호에 말씀하시기를, 8절에 들짱 이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진리와 영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나타 내기….
이거 어디까지든지 이거는 표적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이것을 실상 사도 바울도 병든 자를 고쳤고 사도들도 병든 자를 고쳤고 또 지금도 유력한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병든 자를 고치고 기적을 다 행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멜리데 섬에 걸려 가지고 있을 때 그때에 너희들에게 생명의 도를 우리가 전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고 뭐 어떻고,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그 아주 특효, 특효의 전도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그 사람들이, 저거 각각 모두 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 신이 제일이다 우리 신이 제일이다 하는데 뭐 그 말을 그렇게 신중히 들을게 뭐입니까? 아 이랬는데 불을 놓다가서 이 섶을 이래 놓으니까 그 섶 속에 들었던 독사가 그만 손가락을 물고 이래 디비졌다 말이오. 디비졌는데 그 때에 사도 바울이 그걸 보고서 '아이구!' 이라며 놀라서 그만 기절했으면, 왜? 거기에는 열대 지방이기 때문에 독사에게 물리면 거기는 죽는 곳인데, '아!' 모든 사람 보기에 '아, 저 사람 독사에 물렸으니 저 사람 인제 죽는다.' 또 미신을 많이 섬기기 때문에 '아,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짓고 풍랑에서는 겨우 살아났지마는서도 저 사람은 이제 독사에 물려 죽는다. 이러기 때문에 죄지어서 벌받는 사람에게 가까이 갔다가는 우리가 다 우리까지 망한다.' 아 이래 가지고 모든 사람이 지금 도망칠라 하는 판이라.
배에서 풍랑 만난 사람이 왔으니까 모두 구원해야 된다고 와 가지고서 동정 할라고 왔는데 아, 독사가 사도 바울의 손가락을 물고 드리드리 지니까 모든 사람이 놀래고 이거는 죄인이라 하고서 지금 다 도망칠라 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있다가서 이래 떡 드니까 모든 사람이. 사도 바울을 무니까 사도 바울이 놀래지 안하고 이래 자랑삼아 이래 떡 들고 이래 흔들 흔들 하니까 모든 사람이 보고 아 이제 죽는다 이랬는데 이래 떡 이래 턱 이러니까 밑에 떨어지고 난 다음 '곧 죽는다 보자' 죽는가 보자 이랬는데 붓지 안하고 보니까 생생하이 아무것도 나지 안해.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아이구야, 저는 참 능력있는 신이로구나.' 기적이 아니면 그 사람들이 거기에서 항복을 안 했을 것이고 속히 이해와 납득을 못 했을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거기에서 말하기를 '아이구, 아마 당신들은 참 신이 같이 하시는 분들인데 섬에 주인되는 그분의 아버지가 병들었는데 우리 집에 지금 환자가 있으니까 어떻게 고쳐 줄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데리고 오라. 데리고 오라.' 데리고 오니 척 기도하니 그만 썩 나아버렸다 말이오. 아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만 거기에서 증거를 받고 석달 동안을 거기 머무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석달 동안 생활비를 대어서 아주 그렇게 후한 대접을 하면서도 조금도 '이거 참 신을 대접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얼마나 기쁨으로 대접을 하고 거기에서 복음을 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다섯째로 병든자를 고치는 이것을 우리가, 이 권능으로 다 받았는데 우리는 앞뒤를 다 떼 버리고, 앞뒤를 다 떼 버리고 천국이 가까 왔다는 요 하나만 가지고 일하니까 우리 싸우는 이 전법이 심히 빈약하고 또 전쟁하는 그런 실력이 빈약해서 우리의 승리가 그렇게 많은 효력을 내지 않는 것 아닌가? 우리가 요것을 금번에 꼭 잡아야 되겠옵니다. 다 그래. 여기에도 저기에도 보면 그 뭐 겉으머리야 이런 말 저런 만 이 다 말로사 다 잘해요. 제가 얼마 전에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 사람에게는 뭘 줄까' 이라면서 이건 좀 책을, '사후의 생활'이라 하는 책을 사서 전해 줬습니다. 사후의 생활, 인간의 사후의 생활, 죽고 난 뒤의 생활이 어떠냐 하는 사후의 생활이라는 그 책을 사다 주고서 나 혼자 이래 가만히 기도하면서 생각하니까 '사후의 생할이라는 그 책을 사다 줘도 세상에서는 테레비에서 보면 죽고 난 다음에 어떻다 하는 그런 테레비가 많고 불교도 많고 이러니까 그런 종류들을 사람들이 듣느냐 하면은 다 모두 궤변쟁이들이 꾸며 가지고 사후가 있다는 걸 그렇게 다 들으니까 모두 꾸며낸 말쟁이의 거짓말로 듣지 누가 참말로 듣겠느냐?' 요게 내게 딱 걸려요.
그러니까, '암만 사다 줘 봤자 다른 사람들이 그래 여기면 헛일이지 그 무슨 소용있노. 모든 사람이 죽었다 살아난 꿈 이야기도 많이 있고 뭐 얘기 옛날 이야기 주, 뭐 어떻고 옛날 얘기 많아. 그러니까, 옛날에 죽은 사람이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 보니 이렇다 저렇다 그런 이야기, 뭐 용왕에 가보면 이렇다 어떻다 하는 말이 많이 있으니까 그와 같은 유로 보지 그것은, 그것은 무슨 거석으로 보겠느냐 그런데 이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 그런 유가 거석이 아니라 참 절대자이 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다 하는 이걸 무엇으로 보일래?' 이게 나왔습니다. '무엇으로 보일래?' 그럴 때에 제가 이것을 생각했습니다. '무엇으로 보일래?' '아! 이는 보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모두 이런 기적 저런 기적, 저거의 눈으로, 육안으로 볼 때에 환하게 들어나는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돼지지 어디 돼었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전부 타락했을 때에, 바알 선지가 전부 이스라엘 선지들을 다 죽이고 이렇게 했을 때에 그들이 뭘 보고 정복을 당했느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오지 않게 해서 곤고하게 해 놓고서, 자 나무 벌여 놓고 그 제물을 그 위에 얹어놓고 그라면 그 이방신이 능력있고 참신이냐 이스라엘 백성 너거들이 믿었던, 너거들이 버리고, 믿다가 버린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이냐 하는것을 한번 시험하자. 이래 불을 벌여 놓고 불을 붙이지 말고 너거 모두 제각각 신에게 기도해 가지고서 이 제물을 불로 사루면 그 신이 참신이요, 불을 사루지 못하면 거짓신이라. 불을 사루지 못하는 그 신에게 속한 선지들을 다 죽여 버리고 또 나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했으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불을 이래 사루지 못하면 날 죽이라 이라니까 백성들이 '옳소이다.' 모두 박수를 하면서 막 그랬는데 아 기도 한 결과에 그쪽에서는 불이 딩기지 안하고 이쪽에서는 불이 딩겨 가지고서 그 제물과 나무와 모두 물까지 흙까지 다 타 버리니까 모두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싹 돌아왔다 말이요. 싹 돌아오고 난 다음에 저거가 섬기던 이방 선지인데 이방 선지 하나도 도망 못하게 해라. 전부 붙잡아 가지고 모두 다 하나님이 분개한 분개의 같은 동일의 분개를 가지고 다 붙들었다 말이요. 붙들어 가지고서 자 이걸 기손강가로 다 끌고 가자 기손강가에 전부 여기 다 무찔러 죽이라, 사백 오십 명을 한 칼에 다 무찔러 죽이지 않했습니까? 전부 다 단번에 다 무찔러 죽였다 말이요. 이게 뭐이냐? 그들이 볼 수 있는 그 이적이 나타나는 데에서 됐다 이거요.
구약에 있는 모든 성도들도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마는,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들도 그랬소. '내가 뭘로 믿겠습니까?' 이러니까 '아 네가 제물을 이렇게 해 가지고서 이래 해라.' 제물을 벌여 놓고 그러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가지고서 그 제물을 태웠다 말이요. '아! 하나님이 나한테 하신 말씀이 사실이로구나.' 이렇게, 초절적인 허영과 허욕으로 하지 안하고 실상으로 그래 가지고 하나씩 딱딱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딱딱 쌓아 나갔더라 말이요.
이러니까 자기 속에 확신한 신앙을 가지고서 이래 나갔는데, 이, 말씀이 '보고 믿는 자는 복이 적고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했다 말이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얼마든지 말씀을 했소.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꼭 보이는 그 물질 그거 증거 그거 보다도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한 그 사람이 더 복있다 그말이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있다 그 말은 이제 영감의 말씀을 전했는데 영감받은 사람이 그 사람이 복있다 그 밀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너에게 알게 한 것은 육신이 알게 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알게 하셨다 이 위에 교회 세우겠다' 이랬으니까, 이 성경을 자꾸 주관대로 해석을 해 가지고서 우리 신앙을 막 떨어트렸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이분을 사귈라고서. 이분을 영접할라고. 이분에게 붙들려 일할라고. 하지 안하고 이렇게 애써 가지고서 이분을 상대해서 이분과 사귀고 이분에게 붙들려 가지고 일한 그 사람들이 그 영감과 그 내용에 보이지 안하는 신령한 모든 것은 사람에게 말할 수가 없으니까 그것을 그저 껍데기로 말해 놓은 것이 말로서, 저술한 이 모든 글이라 그 말이요 이걸, 글 이거는 껍데기 중에 껍데기요 대략 그때 것을 짐작하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부인 줄 알고 여기에만 주력하고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는 이런 일이 다 희박해졌기 때문에, 그만 신학교라 하면 그 신학교가 점점 타락해지고 신학교는 사람들을 자꾸 버려서 이 속화 사람, 무능의 사람. 전부 지식의 사람 만들기 때문에, 신학교가 처음에 개혁해 가지고 시작할 때에는 하나님을 좀 중심으로 하고 위주로 하는 그 사람들이 개혁해서 신학교를 직접 세웠는데 얼마 세우고 난 다음에 그 신학교도 별 수 없이 자꾸 가르치는 것도 지식이요 배우는 것도 지식이요 이러니까 지식이 위주고 지식이 제일이지 영감이라 하는 거는 흐미하다 그 말이요.
제가 ○○신학교 갔을 때 그때는 처음에 신학교 세울 때이니까, 초창기니까 아주 하나님에게 대해서 강조를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밝을 때입니다.
이랬지마는 내가 처음에 그 신학교, 제일 처음에 개혁할 때, 신학교 처음에 ○○신학교 시작할 때에 시작하는 그때에, 시작하는. 바로 시작하는 그 시간에 제가 참석을 했습니다. 저도 거기에서, 옥중에 있는 모든 종들과 신앙의 승리자들이 그렇게 했고 또 ○○○ 목사님이 세운다 하기 때문에 나도 거기 가서 참석을 했습니다. 가 가지고서 나흘 있으니까 '이 무슨 이런 죽은 일 할까?' 도무지 영감이라는 것은 없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강조하지 안하고 다른 것만 말하기 때문에 그만 거기 안 있고 '나는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여기 이러고 있을 여가 없습니다.' 그랜 그만 거기에서 퇴학을 하고서 그만 나와 버렸습니다.
나흘 만에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박 영기 조사님이라는 그분도, 경남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라 하면은 그분을 칠 것입니다. 그분이 다 이거. ○○신학교 처음에 세울 때에 그분이 세우는데 제일 공로자입니다. 간판은 있는 옥중에 있는 성도라 하지마는서도, 그리 간판 좋으니까 따라 나섰지마는 실은 한 교회 한 교회 일으켜 세운 것은 그분이 제일 많이 세웠고. 두번째로 많이 일으켜 세우기는 제가 두번째로 제일 많이 일으켜 세웠을 것입니다. 제가 ○○ 신학교에 공부할 때에는 언제든지 하루도 안 빠졌소. 금요일날 딱 마치면 금요일날 밤부텀 시작해 가지고서 월요일날 아침까지 집회 마치고 한 주간도 빠지지 안했습니다. 그래 가면은 간 곳마다 그 교회는 의례히 ○○교파로 돌아오고 또 그 교회 참석한 사람들은 한 교회에서 셋 교회 넷 교회 ○○교파로 돌아왔습니다. 그 집회를 마치면. 이러니까, 학교에서 '아무래도 여기에는 백 조사님이 가야 되겠습니다.' 이라면서 그때 ○○신학교에서 공부를 못 했다 이거요. 신학교 교수들이 '아무래도 가야 되니까, 그러면 나는 공부도 못하고 그러면 학점도 못 따고.' 아 학점 따나 안 따나 그거는 다 되니까 학점 딸 수 있는 실력이 있으니까 그만 염려하지 말고 가라고. 공부하다가 또 들리가고 급하면 돌리가고 이래 가지고서 못 했다 말이요.
이랬는데-그 뒤에 두번째 신학교 갔을 때 말이요. 처음에 신학교 갔다가 막살하고서 그만 돌아가 자꾸 복음만 자꾸 전하고 돌아다니는데 제가 요 ○○교회 와 가지고서 집회했습니다. ○○교회 와서 집회를 하니까 ○○신학교 학생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싹 다올라왔어 다올라왔는데 '어째 올라왔느냐?' 이래 물으니까 ○○○목사님이 와 가지고서 경건회에 설교를 하면서 '공연히 글자만 가지고서. 아무 생명없는 글자만 가지고서 지식으로만 가지고 이라지 말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라. 그 백 조사님이 그분이 성령의 권능 받으니까 얼마나 지금 복음 운동을 하고 있느냐.' 성령 받으라고 얼마나 야단을 쳤든지, 지금 ○○ 와서 집회 하니까 빨리 가라 해서 신학생들이 하나도 안 빠지고 싹 다 왔어요. 내가 그걸 누구한테 물어봤느냐 하면은 신학생 다른 사람들은 와도 직접 내가 대면하지를 안했는데 대만 가서 선교하고 있는 ○무슨 목사님입니까? 대만 ○○. 교파에 선교사로 보낸 ○○○? ○○○? ○○○목사님이 돈을 한 봉투 가지고 왔어요. 가져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그걸. 그라기 때문에 '나 이거 내게 만일 이거는 연보하고 이거는 내가 받지 많겠다.'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 어머니가 보낸. 우리 어머니는 하루 두 번 가든지 세 번 가든지 예배당에갈 때에는, 하나님의 종 앞에 갈 때에, 예배당에 갈 때에, 하나님의 종 앞에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간 일이 없고 예배당에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간 일이 없는데 내가 여기 온다 하니까 이걸 갖다 드리라고 이래 하셨으니까, 어머니가 이제까지 일생 동안 쌓아 나오는 이 제단이니까 이것은 좀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그걸 받으면서 물었다 말이오. 물으니까 그래. '신학교에서 엊저녁에 야단이 났었습니다.' 그때 그○○○목사님이 총노회 총노회 장입니다. ○○ 신학교, ○○ 교파가 처음 나설 때에는 노회가 없으니까 그때 노회 겸 총회 겸 이래서 그 이름을 총노회라 이랬는데 총노회 회장이라. 총노회장이라. '그래서 다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 교회다 참석을 하고 갔습니다.
참, 그 뒤에 얼마 후에 내가 신학교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보니까 그 학생들이 전부 지식에만 붙들려 있지 하나님은 만나 보지도 못했어. 영의 역사에 대해서는 만나 보지도 못했어요. 그라다가 차차차 신학교가 그리 되니까 그만 제일 뭐이냐 하면은 학점 많이 따는 사람이 우등이요 이러니까 재주 있는 사람, 재주 있는 사람 또 이 세상에서 공부 많이 한 사람 그 사람이 위에 사람 우등이지 그 뭐 하나님 찾고 믿음 있는 것은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닌 걸로 봤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때 통계가 본과 졸업한 학생들은 교회 쫓겨다니는 판이고 다, 본과 학생은 다 쫓겨 다니요. 별과 학생들이 전부 교회로 오면 부흥을 다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본과는 실력없는 학생. 별과는 실력있는 학생 그렇게 누가 봐도 뚜렷이 말이, 소문도 났고 말도 났고 다 그렇더라 이거요.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오호, 오호의 이 명령을 우리가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자기네들이 안 되니까, 본약 신학교를 가면 학자들이 다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학자들은 어짜든지 자기 배운 학 그게 제일이다 이럽니다. 책임도 없이 말이요. 이것이 전체로 체계적으로 전체로 보면 이것이 눈 이 눈에 있는 눈썹 하나 택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간 하나 택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팔 하나 택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온 전체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이것도 알지도 못하고 자기하는 이것이 이 전체의 비중을 달아 '이거 하나면 다 된다.' 이렇게 비중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이 체계적이라하는 말은 하면서도 은혜 받은 사람들이 말한 그걸 앵무새 모양으로 말은 따 가지고 말은 하지마는서도 체계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자꾸 지식만 강조하지, 이러니까, 학점 안 따면 안 되겠지, 뭐 많이 가르쳐 놓고서 이것을 시험본다 하니까 그거 머리에다 집어 넣을라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이러니까 새벽 기도를 나왔는데, 세상에 신학생들이 새벽기도를 나오지 안하고서, 나와야지?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이 없어. 다 거석하고. 그러면 자느냐? 가보면 전부 이불 덮어 쓰고 빛을 가리고 숨겨 가지고 요래 가지고 전부 앉아서 엎드려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말이요. 그거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전심 전력을 것다가 기울이니까 나중에 가서 지식의 사람만 돼 버렸지 하나님은, 영감은 가고 없어 버리고 하나님은 잊어버렸다 이거요. 그래서 모두 말하기를 '신학교 사 년에 믿음 팔지 안하면 권능 있는 종이 된다.' 신학교 사 년을 졸업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을 제일로 모시고 그 지식과 하나님의 둘로 이래 두고서 지식보다 하나님을 높은 위치에 두고서 그 다음으로 두기가 어려워요.
그렇게 한 사람들은 그 신학교 함으로 말미 암아 안할 때보다 훨씬 권능있게 했습니다. 그렇지마는 대개는 보면 이 바꾸어 버리고, 나와 가지고 본과 학생들은 아무나 하나님도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자기는 자기 딴에사 그 원어를 떠 갖다 놓고 이 원어에 이렇고, 원어 한 줄 읽어 놓고서 이거 모두 다, 그 별과 학생들 그 별과 학생들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아무리 말해봤자 그 양떼가 들어 보니까 맛이 없고 양식이 아니라 그 말이요. 자기 혼자 좋았는데 배척합니다.
내가 여기 ○○교회라 하는 ○○교회를 가니까 그때 그 ○○○ 목사님이 지금 ○○교파에 유력한 목사. ○○○목사님이 거기에서 본과 학생인데 거기에서 날 청해. 청하되, 그저 비쭉거리며 청하지. '뭐 별과 학생 그거 뭘 하겠느냐?' 이래 청하는데 한 시간 설교하고나니까 뭐 교인들이 짝 모아 들었는데 '우리 목사는 뭘 원어만 가지고 원어니 뭐이니 하면서 이거 책을 가지고 원서라고 이걸 영어로 썼느니 뭘로 썼느니 이래 가지고 말하는데 도무지 예수 믿는 어린 아이들이 말하는 것도 하지 안하고 진리는 없는데 무슨 그런 것만 가지고 이라니까 우리가 죽을 지경입니다.' 이래 말해. 가서 한 시간 하니까 마구 교회가 디비져요. 그만 그 다음부터 마구 장소가 없어 디리 모아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울고 불고 야단을 지기는데, 그것이 살리는 것이지.
제가 거기에 있을 때에 새벽에 나오니까 교수들이 마구 방마다 찾아다닙니다.
막 문을 두드리면서, 새벽 예배 와 안오느냐고. 이 교수들은 자기네들이 가르치기는 이 지식이, 이 가르치는 지식이 제일이라 강조를 해 놔서 그래 사람을 만들어 놓고 이제 새벽기도를 안 나오니 안 됐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가 가지고 깨우지만 자꾸 숨어서 그래 공부를 합니다. 새벽기도 하고 나서 설교 딱 마치면 와당탕 합니다. 막 도망쳐서. 얼른 가서, 그래 공부를 해야되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기도하다 보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 대개는 저 혼자 있소. 저는 그때 무슨 마음이 있느냐? '내가 여기에서 이 지식은 인간 지식도 성경 지식도 있는데 성경 지식은 산 지식이요 나머지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인데 죽은 지식 이것 받기 위해서 하나님하고 바꾸지 않겠다 나 여기 신앙이나 하나님께 대한 걸 양보하지 않겠다.' 이러니까, 언제든지 나중에 거석하면 자꾸, 밥도 몇 번 굶었어요. 밥 먹으러 오라고 이래 새로 기별하면 가 가지고 언제 뭐 정적으로 양치하고 낯 씻고 할 여가가 없어. 이러니까, 물은 없어서 똑 한 두 홉이나, 두 홉이나 되는 물을 주는데 요라면 넥타이 맨 채로 그만 요래 가지고 해비 해비 해 가지고 씻고 그래 가지고 언제 밥을 급하게 먹고 이래. 그러나 그 하나님을 사귀는 기도하는 고거는 잊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학생들이 많았지마는서도 다른데 가 가지고서 복음 전하는 것은 절 늘 보냈고 종종 ○○○목사님도 절 찾아 가지고서 말하기를 기도해 달라고 자꾸. '조사님 날 위해서 기도 좀 해 주십시오.' '둘이 기도하는데 내가 무슨 기도합니까? 하늘 같은 이 ○목사님인데 내가 뭐 지금 제자가 기도하겠습니까,' '하도 그래 쌓아서 또 인제 그래 같이 기도하고, 꼭 기도를 해 돌랍니다. 이라면서, 다른 사람 말하기를-나 지금 많이 변질이 됐어요. 사람이 변질이 됐어. 그 ○○○ 목사님이 평가하기'는 '백 영희 조사님은 그분은 성자라' 이래 다른 사람 말해서 성자라 그런 말을 해서 내기에 많이 들렸어.
'○○○ 목사님 그라더라.' 이랬는데 요새 그만 얄궂게 그만 여기 부산 와 가지고 깡패도 된 것 같고 얄궂이 목사를 버려 놨어. 그래 인제 새로 한번 목사가 돼 볼라고 시작을 합니다.
그랬는데.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실 때에 이것도 가지고 가라 이것도 가지고 가라 이것도 가지고 가라 이것도 가지고 가라 이렇게 이 가지고 가라는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우리는 다 빼 버리고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 요것만 우리가 가지고 다른 것은 앞뒤로 다 빼냈으니 우리가, 전쟁하는 사람이 전쟁할 때에 필요한 것은 갑옷도 가져야 되겠고 뭐 탱크도 가지고 가야 되겠고 뭣도 가지고 가야 되겠고 비행기도 다 가지고 가야 되는데 다 놔두고 한 가지만 가지고 갔는데 다른 데서는 여러가지 가지고 가니까 우리는 능률이 오르지 안하고 전투에 승리가 적다 이거요.
그래도 초창기에는 어짜든지 우리가 영감이 역사해야 된다 영감은 최고의 은혜이니까, 최고의 은혜인데 앞뒤에 발이 없어도 그 최고의 은혜가 강하니까 우리가 다 부흥이 됐다 말이오. 다른 데는 기도할 줄 모르는데 기도실 지어 놓고, 우리 이 개교회로 다니는 우리 총공회 교회가 기도실 짓기를 아마 제일 먼저는 됐는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먼저 지었습니다. 먼저 지어 가지고 이래 힘쓰고 이랬는데 지금은 인제, 이 기도실 지은 이런 것도 하나님이 같이 하거나 안 하거나 내 언변만 있으면 된다 또 하나님이 같이 하거나 안 하거나 나는 지식만 있으면 된다, 높은 논리만 주장하면 된다 이라니까, 그거는 자꾸 읽고 외우니까 더 할 것이 없고 환하게 이러니까 애쓸 것 없고 게을하기만 돼 버렸고, 교만하게만 돼 버렸고 이제 아주 무능하게만 돼 버리고 이러니까 제 딴에는 설교를 잘 한다고 하는데 교회는 자꾸 내려갑니다.
이게 뭐이냐?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시면 병난 자를 위해서 이라면 병을 고칠 수 있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이 기적과 이적이 나타나야 다른 사람도 알 것이고 또, 나타낼라 하면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해야 되지 그거는 조작배기로 자기 수단 방법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와서 역사해야 되는 것이니까 직접 그분이 와 가지모 역사해야 된다는 요 요것을 표준하고 직접 역사하도록 그분과 자꾸 사귈라고 교제하다 보니까 신앙이 새로와지는데 그게 없어져 버리니까 우리 신앙이 완전히 낡아져 버리고 썩어져 버렸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일호 이호 삼호 몇호입니까? 사호, 또 그 다음에 오호입니까? 오호의 일까지 우리가 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전쟁할 때에 전쟁할 때에 우리에게 명령한 것이 이것이 일호 이호 삼호. 오호까지 오늘 아침에 우리가 열람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다 가져야 되는데 앞뒤는 다 내버려 버리고-천국이 가까왔다 하는-이것만 가지고 이라니까, 앞뒤가 있어야. 울타리가 있어야 뭐 집이 견디지 울타리가 없으니까 안돼. 이적이라 하는 그거는 속에 진짜는 아니요. 그거는 표적이라. 그러기에, 표적이라 하는 거는 속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말이오. 표적은, 하나님, 우리가 전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을 뭘 보고 알겠느냐? 인간이 할 수 없는 뭐 그것이 나타나야 '아이구. 하나님 말씀이라.' 다 그랬지 그거 없이는 안 되는데 그런 지금 꺼풀이 없다 이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요번 교역자 회에서는 우리도 요 말씀하신 대로 병을 고칠 수 그 귀신을 좀 기도하면 귀신이 나가고 병자를 위해. 병이낫고 하는 이런 것이 될 만한 주님과 밀접한 교제를 가지고, 이것을 가지고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피의 공로를 증거해야 효력이 백프로 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