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6:09
인정-성화-행함
본문 : 아 4: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신구약 성경 기록하는 데에 쓰여진 사람이나 지방이나 물건이나 짐승 한 마리라도 그것은 천지보다 중량 무거운 정확무오의 절대성의 하나님의 도를 계시하는 계시의 도구로 썼다는 이 사실을 부인하면 그 사람은 성경 도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만물이 얼마든지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계시 기관으로 이용된 것은 계시가 정확무오하고. 그분에게 의논하는 그 사람에게 주님은 갑니다. 당신이 주권자인데 이런 성도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나 중공이나 이북에는 예수교가 다 절단 났으니까 예수님이 능력 없어서 그런 줄 알지만 그까짓 거 일시에 전멸시킬 수 있어. 거기서 당신을 참 아는 사람, 믿는 사람, 의지하는 사람, 영원토록 영광스럽게 할 사람, 그 사람 지금 구별합니다.
이북에서도 결단코 성도가 없는 것 아닙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해서 예수를 내놓게 하는 예수 믿는 신앙을 죽이는 이런 의심의 화살, 이런 위협의 화살, 이런 대중의 시대, 조류의 화살, 고독의 화살 별별 것이 뚫지만 갑옷이 두꺼워서 뚫히지 않습니다. 갑옷이 두꺼워서 뚫히지 않는 것이오.
"레바논 산에서 나와 같이 가자." 여러분들이 지명을 익히십시오. 레바논이란 백산(白山)이란 말입니다. 백산, 눈 산이란 말이오, 온 천하에 다른 데는 더위에 눈이 다 썩어서 없어졌는데 레바논 산에는 춘하추동 사시에 그 눈이 하얗게 있기 때문에 백산이라 했는데, 그것을 인용한 것은 온 세상이 다 세상 바람, 세상 부는 이런 운동, 저런 운동에 다 성결이 녹아지고 신앙이 녹아지지만 홀로 결백하게 성결하게 있는 "레바논 산에서 나와 함께 하고 나와 같이 가자."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인 줄 알고 향해 가야 합니다.
있다가 열 사람 썩어지니까 같이 썩어지고 온 군이 썩어지니까 같이 썩어지고 전국이 썩어지니까 같이 썩어지고 이거는 레바논 산이 아닙니다. 수십 교회를 접촉해도 주님으로 더불어 맺은 속죄의 성결을 지니고 그것 때문에 온갖 박해 다 당해도 그 성결을 버리지 안하고 있는 그 사람, 거기에 주님이 그 사람과 동행합니다. 동거합니다.
"아마나 산꼭대기에서 같이 하자" 그 밑에 꼭대기란 말은 하나만 있는데 그거는 시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위에 다 붙는 것입니다.
"아마나 산꼭대기" 굳고 잡고 놓지 안한 절정, 이 사람도 구속의 도리 신구약 성경의 소망을 잡았다가 열 사람 놓으니 자기도 놓고 세상이 놓으니까 다 놓고 다 흔들리고 다 놓고 저거 가는 대로 가는데 온 천하가 주를 버리고 주의 구속을 버려도 홀로 그 구속을 굳게 잡은 거기에 내가 동행하겠다. 우리가 신앙에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스닐 산꼭대기에서" 스닐이란 말은 갑옷이라는 말입니다. 공산주의가 죽이려고 죽음이 닥치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어도 살고 하는" 부활의 주님으로 갑옷을 삼아 부활의 주님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막으니까 상하지 안하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세상 소유와 형편과 처지를 애매하게 세상에게 다 빼앗기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모든 기업을 빼앗기고도 기쁨으로 참고 견디는 것은 더 좋은 기업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계약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아무도 와 가지고 그 사람을 찔러 해할 수가 없어. 그 기쁨을 찔러서 상우지 못하고 그 담대를 찔러서 상우지 못하고 그 평강을 찔러서 상우지 못하고 그 일편단심에 굳게 서서 나가는 것을 아무가 와도 찔러 상하지 못해. 흔들지 못해.
"그 절정에 나와 함께 가자" 지금은 아무나따나 믿지만 하나님께서 피 흘려 구속해 주신 것. 당신을 정말로 믿고 의지하고 당신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계약과 당신을 대우하는 것을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시해 버리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해와 같이 빛납니다. 영원토록 영광됩니다. 오늘에 주님의 계약 때문에 주님 때문에 주님 복음 때문에 이렇게 온갖 해독을 받는 그것이 세상으로 끝나 버릴진대야 하나님의 도가 서지 못합니다.
여러분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영원히 있습니다마는 주를 위해서 고난 당하고 손해보는 일은 세상을 떠나서는 다시 못합니다. 그분이 만주의 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해할 자가 없어. 그때는 지옥에 있는 무리들도 다 주님을 이렇게 따르려고 애를 써. 누가 주님을 멸시할 자가 있겠어? "헤르몬 꼭대기에서 나와 함께 하자." 단절의 절정, 단절의 꼭대기. 아무리 자기의 전 기업이라 전 생애라 전 가족이라 자기의 건강이라 자기의 몸이라 어떤 것이라도 주님 위하여 끊지 못할 것이 없고 주님 위해서 버리지 못할 것이 없어.
단절 상봉에서 나와 같이 가자. 갑옷 상봉에서 나와 같이 가자. 견집의 상봉에서 나와 같이 가자. 백산에서 나와 동행하자. 몰약산으로 가서 날 만나라. 내가 몰약산으로 가겠다. 언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겠으니 거기 오면 나를 만나리라. 주님을 만나리라.
왜정 말년, 6.25때도 인민군 속에서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 거기서 주님 만나는 위로와 평강이 있어서 외부에는 슬픔이요. 속에는 주님 만나 기쁨이요. 다 성도들이 유향의 작은 산에서 주님 만나 그 어려움을 기쁨으로 지냈던 것입니다.
요셉같은 사람도 참 원망 불평할 만한 어려운 그런 것도 그분이 유향의 작은 산을 차지해서 유향의 작은 산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주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절대 믿는 당신과 당신의 계약을 믿는 그것이 방패가 되고 갑옷이 돼서 아무것도 꿰뚫고 들어오지 못해.
아무리 상상 못할 것이 와도 주권자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니 사랑의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니 주님이 모든 것 주권하고 계시오. 전능자시라.
주님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주님의 하시는 솜씨기 때문에 거기서 사랑하는 주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할까? 일편단심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뿐이지 칼이나 독침이나 그런 것이 무서워 그것 상대가 안돼. 그런 것이 들어오지 못해. 독침에 찔려서 죽어도 자신의 담력과 평강과 기쁨은 상우지 못했어. 온전한 신자로 그대로 죽으면 죽었지 찔리지 안해.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이렇게 환경은 맹수의 굴과 맹수 속이 되므로써 그 맹수 때문에 맹수가 무섭고 두려워서 다글다글 뭉치는 것은 주님하고 한 덩어리 뭉쳐지는 것. 만일, 어떤 신혼 여행간 부부가 있었다면 의외에 맹수를 만나서 맹수를 닥쳤다면 아마 그 남편은 아내를 틈 없이 잡고 의지할 것이고 아내는 틈 없이 의지하고 잡는, 이렇게 주님은 우리와 밀접하시기를 원하시는 이 주님의 심정을 이 술람미 여인과의 관계가 아니고는 그것을 계시로 묘사해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계시 기관을 작성해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껍데기로 무슨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인간적으로 애착하는 그런 것으로 아가(雅歌)를 해석해 놓은 것은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것입니다. 그런 뜻은 하나도 없습니다.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라." 그 말은 이렇게 환경이 어찌됐든지 그 환경으로 인해서 그럴 때에 그 부부가 얼마나 의지하고 단합이 되며 얼마나 뭉칠 것인가? 그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는 영계 것이나 물질의 것이나 피조물 위에 탁월한 위치입니다. 주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결합된 이것이 영계의 영물과 물질계의 모든 물질 이것들을 탁월한 높은 자리에서 조물주 창조주 대주재 그분으로 더불어 결합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가나니 레바논에서 나와 함께 가고 함께 있다니 아마나 산, 스닐 산, 헤르몬 산, 사자 굴, 표범 산" 주님 만날 곳.
"네 눈으로 나를 한 번 보므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네 눈으로 날 한 번 보므로 기절하고 천 리 만 리 내가 달아나지 않을 수 없다"는 그 눈도 있겠지.
여러분들, 성도가 그 마음먹는 것, 그 마음 쓰는 것 하나에서 주님의 마음을 다 빼앗을 수도 있고 마음 쓰는 것 거기서 주님과 천 리 만 리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깃덩어리를 보고 사귀고 살지만 그래도 좀 믿음으로 신령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동보고 사귀지 않습니다. 행동 그까짓 거야 얼마든지 외식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중심보고 사귑니다.
이러기 때문에 중심보고 사니 억울하다 애매하다 하지만 그 중심을 보고 중심의 깨끗함 중심의 참됨. 중심에 대해서 어떻게 보지 않은 것. 껍데기는 이렇지마는 그 중심은 흉측한 야욕과 사욕을 가지고 그것 달성할라고 날뛰는 거기는 만정(萬情)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영의 사람들은 그 말은 천 번 만 번 거짓말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말보고 살지 않습니다. 말은 어떻게 청산유수 감언이설을 해도 말과 그 실상을 구별해서 절대 그 말에 감염돼 나가지 않습니다. 말보다 그 사람의 행동. 행동도 십중도 할 수 있소. 행동도 가치로 삼지 않소. 그 사람의 마음. 그 마음에 내가 나를 맡길 수도 있고 든든히 의지할 수도 있고 바라볼 수도 있는 그 마음.
"네 눈으로 나를 한 번 봄으로" 네 눈으로 나를 한 번 볼 때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내 마음이 그리 다 갔다. 여러분들, 주님은 참 예민하신 분이십니다.
주님, 참으로 예민하신 분이십니다. 사람도 예수 믿어 영으로 자란 사람이면 그 예민하기를 인간이 상상 못할만치 예민합니다. 절대로 껍데기 보이는 이런 속에 몇 번 들어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껍데기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데 주님이 우리 마음을 보실 때, 참 주님이 내 마음을 보시고 나에게 대해서 안심하고 나를 의지할 수 있고 나에게 맡길 수 있고 나를 든든히 인정할 수 있는 마음도 될 수 있고, 그 마음에 감언이설로 교회 일은 잘하면서 그 마음은 흉측해서 천 리 만 리 멀어 주님과 원수 되는 그런 마음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거 다 주님은 속지 않습니다. 제가 저 속이는 것뿐입니다. 주님은 속지 않습니다.
"네 눈은" 마음의 눈을 말합니다. "네 눈으로 나를 한 번 봄으로" 네 마음이 내게 대해서 내 구속에 대해서 그 아름다운 마음 하나 가지는 것보고 만 가지가 아깝지 않습니다. '아, 저 사람. 이런 중심을 가지고.' 제가 못나고 무능하지만 이런 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면 그 중심 하나보고 모든 것 맡길 수 있고 아무것도 아깝지 안해. 그 사람이 마구 '너 아니면 나 못산다.' 이래 쌓아도 그 마음을 보고 사람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들을 것도 없고 거기에 의탁할 수가 없어.
여러분들 주님은 예민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둔하신 분이 아닙니다. 지금은 다 이렇게 이렇게 하시지만 낱낱이 그것을 기억하셨다가 영원한 나라에서 그때 당신이 만족히 실컷 보응하고 실컷 대우하고. 지금에 참 당신이 높이고 싶어도 가만히 높이지 못하고 있으나 그날에는 이제 영원무궁 세계에 가서 만족히 높이고 위하고 위로하고 애착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고 맡기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우리가 마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얻고 잃는다는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적어도 이 생활은 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이야 어쨌든지 말만 감언이설로 해 붙이면 되는 줄 아는 자는 어리석소. 제가 속았소. 믿는 사람들도 속지 않습니다. 그 능란한 말에 속지 않습니다. 거기 이렇게 아니면서 그럴 때 그게 밉소. 죄인은 밉지 않습니다. 차라리 죄인은 죄인으로 있지만 그것이 가루어 덮어서 이렇게 할 때는 기가 찹니다.
주님이 "내가 이 짐을 지기에 곤비하다. 너희들이 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재물을 드리고 이렇게 하는, 너희들이 나 섬기는 이 섬김이 내게 무거운 짐이 된다. 내가 이 짐을 질 수가 없다." 곤비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도 어떨 때, 그럴 때는 그 말에 가슴이 탁탁 막혀서 하나님이 안 버리면 당장에 그만 화병이 나서 넘어질 만 해도, 또 절대자가 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 자가 계시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매수 당하지 안하고 옳게 바르게 하시는 이분이,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이 마지막을 다 처리할 것을 생각할 때에 모든 수수께끼는, 문제는 다 해결이 되고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네 목의 구슬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다." 사람이 오기대로 말하고 싶고 다 감정 있고 부패성 있는 사람인데 그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 한마디. 그 한 마디 한 마디 나온 그것이 참 속을 썩이고 정력을 기울이고 자기를 다 매장하고 재물로 삼아서 주를 생각하고 이 복음을 위하여 한 마디 한 마디 말한 그 말. 그 구슬 꿰미 그 구슬 한 개 한 개. 네 한 마디 한 마디 그 말에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이렇게 지극히 크시고 능하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예민한 인간을 주님이 만드셨고 20세기의 머리 좋은 과학자를 말하는데 그 머리 좋은, 놀랠 만한 명철과 두뇌를 가진 그 사람을 엿새 동안에 만들었고 수많은 인간을 틀림없이 만드신 그분이 주님이십니다. 모든 예민과 명철을 만드신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분을 우리가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뭐 억울하기도 하고, 억울함 당한 것은 잠시잠깐 후면 됩니다. 손해 본 것도 너무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한 것이 없으니 마음에 두렵고 떨릴 뿐이지 아무런 불만이나 불평 품을 것은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조심합시다. 지금은 해가 쨍쨍 쬐는 한 낮이오. 지금은 한 낮입니다. 좀 있으면 해가 기울어서 무엇이 흰 것인지 검은 것인지 흑백을 분별할 수 없는 때를 하나님이 만들어서 또 그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몰약 산, 유향의 작은 산, 레바논 산, 아마나 산, 스닐 산, 헤르몬 산꼭대기, 사자 굴, 표범 산, 거기서 모든 것을 발아래 모든 것을 눈 아래 두고 주님으로 더불어 지극히 높은 교제, 지극히 높은 인격 성화. "여기서 나와 함께 하자." 그렇게 그때에 하나 된 것처럼 이런 환경으로 살아도 주님과 하나 되는 이것을 원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세상과 하나 될 길이 열리고 세상에서 버림당해 주님과 하나로 주님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고 의지할 것이 없고 주님으로 더불어 더 갈급해지는 그 환경이 저주가 아니오 행복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주님을 중심해서 주님 한 분을 친근히 하려는 이것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우리 사고 방식이나 비판이나 평가나 모든 것이 다 삐뚤어져 있는 우리들입니다. 언제 이것을 고치고 언제 바로 잡아갈 지 하나님의 심사와 보응은 절대 하후하박이나 에누리나 하나도 거짓이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지명을 기억하고 고요히 가서 우리가 주님 만날 장소와 그날을 생각하면서 우리를 새롭게 깨끗이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