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5:04
인류의 타락
1980. 1. 4. 금요일 저녁
본문: 창세기 2: 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 1-6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저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은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요사이 서부교회서는 이 말씀을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류 시조가 그 자손된 우리들에게 영원한 사망을 끼쳐준 타락에 대한 그 사실을 기록해 주셔서 우리들로 거울을 삼게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두 사람의 타락에서 우리의 타락을 거울 삼아 방비하여야겠고, 또 둘째 우리의 시조 아담에게서 구원을 이루신 그 순위를 공로를 힘입을 뿐 아니라 그 방편까지 우리가 거울로 삼아서 본받아 구원을 이루어 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해와의 입장도 가지고 있고 아담의 입장도 가지고 있는 양면 입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양면 입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담은 해와에게 은혜를 끼칠 해와의 머리가 되어있는 아담이요. 아담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해와는 아담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아담이 하나님에게 대리자로 위임을 받은 아담으로서 해와를 다스리고 양육하여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양면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 술어는 은혜를 받는 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기본교권이라. 이 평신도 신자들이라. 또 은사교권이라. 이래서 은혜를 입히는 사람들이라 그렇게들 술어를 쓰고 있는데 어쨌건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이런 입장과 의무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담은 은혜를 입히는 입장에 속한 사람이고, 해와는 아담을 통해서 은혜를 입어야 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게 된 이 타락이 아담에게서 시발이 되지를 아니했고 해와에게서 시발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타락의 조상 롯이 그시비가 생겨질 때에도 위에서 타락이 시작된 것이 아니고 아래에서 타락이 시작됐습니다. 타락은 아래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구원은 위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시대의 타락도 교회의 타락도 다 이 순서대로 이 방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 에덴동산이라고 타락전 우리 시조가 살던 곳이 있었고 타락후에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동산 밖 세상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본 지위,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받은 본 지위 여기에서 살 수도 있고 범죄로 본 지위에서 타락해서 죄안에 있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밖에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곧 심판의 때인데 노아 홍수때에 방주 안에서 사는 것들도 있고 방주 밖에서 사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새사람으로 산다고 할 때에는 인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을 받은 인간의 본 지위에 지위에서 참 사람이 사는 그것을 가르쳐서 새사람이 산다 이렇게 말하고 옛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본 지위를 빼앗기고 쫓겨나서 타락한 죄 아래에 있는 이 위치에서 사는 것을 가르쳐서 옛사람의 생활이라 그렇게 또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입기 전에는 인류 시조로 말미암아 범죄로 인한 타락으로서 영원히 본 지위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은 타락한 위치에서 인생의 본 위치를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이 불택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택자들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이 본 지위에서 쫓겨나게 된 이 모든 원인된 것을 다 대형, 대행, 대결합으로 이것을 대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타락으로 본 지위에서 범죄로 본지위에서 쫓겨난 택한 자들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생의 본 위치,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과 그 사이, 모든 피조물 위, 창조주 한 분의 아래, 그 위치를 다시 찾아서 가지게 된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한 것입니다.
사람은 영과육, 이 두가지 요소로 된 것으로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단번에 입어서 본 지위를 변동없이 영원히 탈환해 가지고 본 지위에서 영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심신으로 된 육은 하나님이 직접 살리시지를 아니하시고 그 육 주격인 영을 통하여 살리십니다.
육으로 인하여 영이 죽었고 이제는 영으로 인하여 육이 살아야 되는 것이 그 반복 역사인 것입니다. 이래서 성령은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함께 죽은 마음과 고깃덩어리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재세의 기간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그 기간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심신으로 된 육은 예수님의 안에 있다가 에수님 밖으로 갔다가 다시 말하면 이 심신이 중생된 영에게 다스림을 받아 영의 것으로 살다가 또 이게 망령되게 영을 배반하고 자기 아닌 자기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이것에게 유혹을 받아가지고 그것이 주인인 줄 알아 그것의 마음으로 그것의 고깃덩어리로 움직여 살 때도 있습니다.
문밖에 두드린다고 하는 것은 영안에 계시는 주님이 영으로 더불어 함께 마음 안에 주인격으로 내주하시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영의 모형으로 지은 이 심신은 영의 이 자유성과 같은 이 자유성을 가진 존재로서 이것이 만물 위에 특귀한 특권입니다.
이러기에 마음이 성령과 중생된 영을 주격으로 모실 자유가 있고 배반할 자유가 있고 악령을 주인으로 영접할 자유가 있고 배반할 자유가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육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기 전에는 심신이 악령에게 자유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왕이 되어서 심신은 악령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악령, 죄, 악성이 왕노릇하는 왕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심신이 악령을 배반하면 배반할 수 있고 성령과 중생된 영, 참 자기를 영접해서 심신이 그것의 것이 되어가지고 살려면 살 수가 있도록 되어 있어 육의 구원은 이렇게 중복적입니다.
이래서 수많은 육이 세포처럼 많은 세포로 되어있는 이 종합체가 마음인데 이것은 수많은 횟수를 통해가지고 그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살아나게 되고 수많은 그 요소가 살아날 수 있는 기회는 단번 뿐인데 그 기회를 잊음으로써 영원히 죽어 우리의 이 육인 육의 기능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이 현실입니다.
죽이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것이요. 죽이지 아니하고 살렸으면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영생하는 생명의 면류관,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지마는 있는 전부를 기울여서 노력하지 아니하면 결국은 둘째 사망의 해,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살아 났던 것이 실질적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면 부활할 때에 심신이 부활은 하지마는 부활자의 능력은 다릅니다. 이래서 빌립보 3장에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부활의 권능에 참예할려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죽고 하는 이 일을 그리스도가 하신 그대로의 거기에 동참해서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아담 해와가 에덴동산안에 살고 좇겨나서 밖에서 산 거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구속 안에서 살 수도 있고 밖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이 말씀하시기를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네 안에 거하면 너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해와와 아담이 어떻게 하여 타락을 했던가. 하나님을 배반하게 됐던가. 하나님에게 쫓겨나게 되었던가. 사망까지 이르는데는 어떤 순서로서 사망까지 이르게 되어서 자기에게 속한 자손들도 다 사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찾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의 모양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순서와 거게있는 모든 역사들을 살펴보면 나는 어떤한 사람인가 하는 자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첫째아담 해와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타락한 첫 인류 시조의 이 타락 생활을 그대로 하고 있는지 둘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속량 받은 둘째아담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를 우리는 여게서 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기 용모를 아는 것처럼 이 사실을 우리가 비추어 보면 자기는 어떤자라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에 가기 전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문서로 다시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문서로 다시 기록해서 주신 것입니다.
첫째로 해와가 먼저 타락했는데 해와가 타락한 고 순서를 우리가 여기서 찾아보겠습니다. 인류 시조의 타락은 해와로 말미암았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시발은 해와로 시발이 돼 가지고 결말을 짓기는 아담에게서 결말을 지었습니다. 오늘 시대나 교회나 가정이나 언제든지 타락하는 멸망의 시작은 은혜를 입어야 하는 밑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여기 우리 생활에 전부 지금 말하는 것이 매일 함께 하기 때문에 아무리 해와가 그렇게 타락했다 할지라도 아담이 타락지 아니했으면 해와는 다시 살아납니다. 아담이 결말을 지우지 아니했으면 배암의 수고는 헛됩니다.
롯이 아무리 그 밑에 하인들로 더불어 타락이 시발됐더라 해도 롯이 그것을 거부하고 같이 타락하지 아니했더라면 롯의 타락은 성립이 안됩니다. 아브라함도 꼭 같이 밑에서 시발은 했지마는 아브라함이 그것을 용납지 아니하고 그 결말을 거게 따라 짓지 아니하고 자기가 주격적으로 결말을 지웠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살았습니다. 롯은 죽었고 아브라함은 살았습니다.
해와의 타락 순위와 아담의 타락 순위가 다릅니다. 그게 지역적으로 말하면 수가 많지마는 크게 강령적으로 말을 하면 여덟 가지 순위로 타락한 것을 우리가 여기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해와의 첫째 타락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생각지 아니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살도록 되어있는 곳이요. 하나님만 자기의 대상으로 삼는 그것이 동산에서 살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타락의 첫 순위입니다. 은사교권에 있는 아담도 타락의 첫 순위는 같습니다. 첫 순위는 아담이나 해와나 같습니다. 둘째 순위는 다릅니다.
첫째 순위는 둘이 꼭 같소.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살 자격을 벌써 잃었습니다. 살 자격의 생명은 끊어졌습니다. 그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어떤 입장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면 그때 부터 그리스도 안에 이 생명안에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 자기도 모르게 새사람은 옛사람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 마음은 옛사람이 주인이 됐고 새사람은 벌써 배척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과 동거동행할 때만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은 하나님의 모형이 기능적으로 살아 역사하는 그것이 새사람이요.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이 없어진 것 아니고 영이 있기는 있지마는 기능적으로는 하나님과 끊어졌기 때문에 영의 기능 작용을 하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서 죽었다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혼자 있든지, 둘이 있든지, 열이 있든지, 제가 개혁을 하든지, 부흥사로 사경인도를 하든지, 설교를 하든지, 구제, 자선, 무슨 일을 어떤 귀중한 일 어떻게 요긴한 일 모든 사람이 참 감탄 할 만한 그런 귀중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면 전체는 사망입니다. 전체는 마귀 노릇이지 산 생활은 아닙니다.
어데서나 먼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자기가 기억해야 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졌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속받은 자기라는 것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은 창조주만 아니라 주재시요 주권자시요 모든 것의 주인이라 말입니다.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생명과 평강이 그에게만 있으시는 것,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공평으로 심판하여 보응하시는 이 하나님, 노여워하실줄도 알고 기뻐하실줄도 알고 아무리 강한 자라도 멸하실 줄도 알고 멸하실 수도 있고 어떤 그 처지에서라도 구원해서 존귀케 할 수도 있는 자기대로의 자기 지식대로의 자기 역량대로 자기 실력대로 자기대로는 이 하나님을 자기가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고 이 하나님을 보면서 모든 일을 합니다.
이럴 때에 동산생활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 새사람이 주격이 되고 마음은 새사람의 것이 되어서 새사람으로 움직입니다. '산 영'은 '산 영'이요 '새사람'할 때는영과 육이 다 이 생명에 속해서 심신이 중생된 영의 것이 되어서 영에게 다스림을 받을 때에 이 사람을 가르쳐서 새사람이라 참사람이라 이렇게 성경이 말합니다.
이래서 자기가 중요한 일,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 아니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잊어버리고 기도할 때는 그는 순전히 마귀입니다. 하나님 잊어버리고 제 사건만 생각하고 제 입장만 생각하고 인간만 생각하고 하는 그것은 기도 아니하고 제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 있지만 기도한다면서 그리하는 그것은 다 귀신 노릇입니다. 그것은 산사람의 생애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벌써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거게 같이 계시는 것,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 하나님이 비판하고 평가하고 계시는거, 하나님이 심판자로 계시는 거 하나님이 거게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 상당한 공평의 보응으로 갚으시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임을 자기가 알고 언행심사를 할 때에 그때에 새사람의 생활이요 산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인간끼리 모이니까 저거 둘이 갑은 을의 비유 맞추고 을은 갑의 비유 맞추고 을은 갑을 높이고 갑은 을을 높이고 을은 갑을 기쁘게 좋게 하고 갑은 을을 기쁘게 좋게하고 하나님은 빼놓고 저거끼리 지금 달콤하게 합니다.
내가 오늘도 어떤 교역자를 불러가지고 말했습니다. 개인지도 하지마라. 심히 위태하다. 하다가 보며는 하나님은 빼놓고 제가 하나님 대신 되어서 저와 그 사람과의 관계 이것만 잘 맺으려고 애를 써서 그러다 보며는 저는 저 사람의 사람되고 저 사람은 제 사람되고 주인이 저거 서로 저거끼리 이렇게 되어져 버리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그 역사는 아주 잊어버려서 엉뚱한 일을 하기 쉽다.
그러기에 공중으로 지도하는 일하고 개적으로는 하는 것이 심히 어렵다. 잘하면 효력있지마는 하기 어렵다. 또 개인의 사정은 그 속에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니까 그대로 하라.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고 했으니까 성경 원리는 말해 주지마는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영감은 뭐인지 누가 안단 말이요.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원리는 이렇다는 것만 말해 주지요.
이런데 어떤 사람은 갑이라는 사람은 만나면 요 사람에게는 요렇게 말해야 요 사람이 좋아할 것이고 요 사람이 나와 가까와질 것이고 요 사람이 내 사람이 될거고 요렇게 말해야 요 사람이 날 제 사람으로 알고 요렇게 말해야 요렇게 말해야 이 사람이 나를 제 사람으로 알고 또 제가 내 사람 되지지. 또 을이라는 사람을 만나면 그 을을 진찰해가지고 을에게 대해서는 요렇게 말해야 되지 해서 아주 처세술을 능하게 합니다. 요거는 마귀의 궤휼입니다. 마귀의 유혹입니다.
이래서 아주 그 지혜가 능한 사람 그기는 체세술이 능하지 성령의 권능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래서 이제 이것을 세상에서도 팔방미인, 창기라 그럽니다. 세상에서도 사람은 그 사람이 좋아하든지 어쨌든지 자기 중심에, 자기 중심이라 하는 그 중심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서 삽니다.
자기야 무슨 이념을 가졌든지 그것을 가진 것을 이것을 속에 두고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아무 중심없는 사람처럼 모든 사람에게 이래가지고 사람을 사귀어서 모든 사람은 자기를 저의 사람으로 알도록 그사람은 또 자기 사람이 되어지도록 하는 이것이 마귀의 대술책입니다. 기독자는 그거 아니요.
기독자는 어데서든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알려주고 보여줘야 되고, 또 그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는 중개 역할만 해야되지 그거 아니하면 저 죽고 남 죽습니다. 고게 처세술로 하면 고거 대단히 민첩한 것 같지마는 요것이 자라고 난 다음에는 한 마디하면 고만침 자랐기 때문에 자기를 그만침 사로잡을 수있는 자기 상전이 되고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둘이 있든지 셋이 있든지 혼자 있어도 하나님이 여기 함께 계시는가 하나님을 자기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아는 것,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요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때에 요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요것이 수많은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요개서 하나님의 빛이 자기에게 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접할 때에 이 사람이 하나님 없이 움직이는 사람인지, 하나님과 동거동행을 하는 것인지 고것만 따져 보면 그만 제일 알기 쉽습니다. 그만 인간 가치를 대번 평가할 수 있소.
만났을 때에 요모로 찔러 보고 저모로 찔러 봐서 요렇게 해 보니까 고 속에서 하나님이 나오는구나. 요렇게 해 보니까 요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하는구나. 조래 보니까 하나님을 정말로 생각하는구나. 요면을 보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구나. 요면을 보니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로구나. 이리 저리 봐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면 사귈 수 있소. 가까이 할 수 있소.
그러나 살펴보면 당장 압니다. 그 뭐 고게 대해서 이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모르지 제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사람을 보면 당장 압니다. 사람에게 속지 않아요. 당장 압니다. 알고 속는 척 하면서 상처없이 그것을 살살 길러서 어떻게 살려볼까 하는 그 방편으로 쓰지 사람을 모르는 일은 별로이 없습니다.
가까이 접촉하지 않으면 모르지요. 그 사람의 벌써 언행심사를 접촉하면 이 사람의 언행심사를 봐서 이게 참사람이냐 ,거짓 사람이냐, 의인이냐, 죄인인냐 이거 뭐 궤휼의 사람이냐, 나를 해할 사람이냐, 유익되게 할 사람이냐 이래 더듬어가지고는 모릅니다. 모르요.
첫째가 이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저 혼자 지금 날뛰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지금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인지 요 면을 보자 하면 당장 표 납니다. 당장 훤하요. 설교도 들으면 당장 아요. 청산유수의 설교, 기도를 요 면을 가지고 살피는 사람들은 압니다.
저 농산교회에 한 번 집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막 그 교회에 대 탄복을 주고 교인들이 그만 그 사람에게 솔빡 반했어. 남자인데 그때 인제 그 여 선교사가 와서 집회를 할 때인데 그래 나는 뒤에 갔으니까 그걸 몰랐어.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기도를 잘 하는지 모든 교인들이 그 기도하는데 솔빡 녹았어.
저는 그 기도할 때 아멘을 안했습니다. 보니까 이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경애심은 하나도 없어. 하나님을 완전히 빼버리고 제가 지금 주장이 되어 가지고 하지, 하나님은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라. 기도하고 나니까 온 교인들이 그 사람 있는데로 막 몰려 갑니다.
그래 내가 문 밖에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하고서 그래 가니까 말이 나오는데 그때 한창 신사참배 말이 날 때입니다. 궁둥이를 내보이는데 여기 궁둥이 양쪽 궁둥이 불로 지져서 이만츰 흠이 돼 가지고 있어 이만츰 불로 지져가지고 있어. 있는데 신사참배 아니할려 하다가 쇠를 달궈가지고 궁둥이를 지져서 이래 됐다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탄복 할 것 아니겠소.
하나님을 알고 사느냐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냐 하나님없이 사는 사람이냐 그 면을 가지고 살피니까 순대마귀라. 그래서 내가 교인들을 몇몇이를 주모자를 불러가지고 나는 그 한 십리 밖에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순전히 이거는 하나님 없는 사람이요 사기꾼이다.
이러니까 여게 넘어가지 말고 조심을 해라. 주의를 시켜놓고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미심스러워 그 이튿날 아침에 일찍 내려갔었소. 내려가니까 벌서 그 교회 제일 부자집에서 청해가지고 아침 대접하고 하는데 가니까 그 분이 그때에 추럭 차를 사준다고 차 한대면 그때면 제가 거창 있을 때에 거창 있을 때에 차가 거창 군내에 화물차 3대 밖에 없었소.
이랬는데 그 차만 사면 돈벌이가 굉장히 되는데 차를 사준다고 이래 가지고 뭐 돈을 내고 논을 어쩌고 가지고서 차 사러 간다고 있는 살림을 거의 톨톨 털다시피 이래 몽땅거려가지고 차 사러 간다고 이래 가지고 딱 단합이 돼 버렸어 그래 내가 왔다 하니까 아침 식사를 같이 청했는데 내가 갔습니다.
가가지고 아침 먹고난 다음에 가족을 저래 돌려가지고서 이거는 사기꾼이니까 가지말라고 내가 당부를 단단히 했소. 해도 예, 예, 그러면 그러지요. 그때는 나하고 친근하기 때문에 말을 그래도 다른 말은 다 신용하고 듣는 사람인데 요거는 원층 홍자 박지기를 닥친 일이 돼 놓으니까 잘 안 들어. 안 간다고 그랬지만 또 내 마음에 안심이 안됐어.
이래서 앞질러서 내가 그때 차가 없는 때이니까 20리를 내려가 가지고 대목에서 기다리고 앉았소. 이분이 같이 내려 오나 안내려 오나 보고 있으니까 같이 내려와. 이제 돈을 막 주 거둬 가지고 돈을 짊어지고 지금 내려온다 그거야. 어쩔려고 이러느냐 내가 말을 해도 아 그거 때문에 가는 게 아니고 딴 거 때문에 간다고 이러면서 그때 서울로 갔습니다.
갔는데 가 가지고 시골에서 서울에 가니까 잘 압니까? 이 골목인데 남의 집 같은데가 있다 말이요. 여기 계십시요. 내가 잠깐 좀 뉘 만나고 오겠다고 그래 돈은 그 사람이 다 가지고, 암만 기다리고 섰으니까 나옵니까? 해가 기울어가도 안 나와. 그래 또 그 양반이 또 점잖은 양반인데 이래 가지고 있다가 이 집에 들어 갔는데 이제 할 수 없이 물어봐야겠다. 실례지만 물어 봐야겠다.
들어가니까 뭐 집은 무슨 집 골목이 통로가 돼 가지고 저리 벌써 가버렸는데 벌써 간지가 여러 시간 됐는데 그래 가지고서 솔빡 떼였습니다. 그 여러분들 이 사람을 아는데에 인간의 타락의 첫 순서가 하나님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해와가 하나님 생각지 아니했습니다. 온전히 잊어버렸소.
나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숲속에 숨을 때에 그때 이제 소리 듣고 두려운 하나님으로 피해 갔지. 하나님 생각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첫 순서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언제든지 사람하고 말을 할 때든지 말을 들을 때든지 일을 경영할 때든지 생각을 할 때든지 무슨 행동을 할 때든지 할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할 그때는 벌써 옛사람이요 . 벌써 그게 타락입니다. 그 타락의 첫 순서 첫 범죄요. 그것이 첫 범죄입니다. 그다음 부터는 일사천리라. 하나님만 잊어버리면 일사천리라.
시간이 없어서 말만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잊어버린거. 둘째는 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했어. 자기 현실은 에덴동산이 우리 현실이요. 우리 현실이 에덴동산도 되고 우리 현실이 타락한 세상도 됩니다. 우리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로 통치하라 했소. 우리의 현실에게 절대 피동되면 안됩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우리 현실하고 부딪혀서 깨어지든지 말든지 하나님에게 피동된 것으로써 우리의 현실에 접선해야 됩니다. 부딪혀야 됩니다.
자기 현실은 하나님의 명령따라서 자기가 다스려야 돼요. 자기 현실을 자기가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에게 부딪혀서 현실이야 내가 제말 안 들으면 나를 죽이든지 말든지 현실에 대해서는 자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대로 행하는 것으로서 끝나는 것이 이것이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란 말이요. 너무 그다음에 많기 때문에 시간 없어서 순서만 말합니다.
세째로는 동산을 지키지 안했소. 네째로는 중보자를 바꿨소. 중보자를 바꿨소. 다섯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 말씀을 혼돈했소. 여섯째로는 이제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이 됐소. 별 수 있습니까? 일곱째로는 저 잘되는 길이라면 가름없이 하지. 하나님 된다 하니까 금했거나 말았거나 선악과를 따먹어 버렸지. 여덟째는 이제는 거꾸로 됐소.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였어. 이것이 해와의 타락한 순서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증거하겠는데 오늘 밤에는 제일 큰 죄, 첫째가 하나님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만 자기가 어떤데 있든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없었으면 그 사람 벌써 타락이요. 그 사람 벌써 옛사람입니다.
분명히 둘이나 서이나 저거 부부끼리나 저거 형제끼리나 저거 가족끼리나 저거 족속끼리나 저거 친구끼리나 저거 교인끼리나 저거 재직끼리나 어떻게 모여 앉았어도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 생각하면 거게서 생명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자기가 인정할 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도 알고 하나님이 저에게 함께 하실 것도 알고 하나님이 저를 배반할 것도 알고 하나님이 저에게 축복하실 것도 있고 저에게 저주하실 것도 알고 대번에 알아집니다. 당장 알아져요. 어렵지 아니해. 당장 알아져요.
우리의 심령은 밝아집니다. 하나님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는 제가 온갖 명철 가지고 이리 저리 여러면으로 아무리 다방면으로 진찰을 하고 심사를 하고 숙고를 해도 참을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깜깜 어둡게 만들어 버려요.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 생각하십시요. 주님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참사람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화가 나도 아무리 큰 일을 만나도 아무리 다정한 자리를 만나도 혈육 정실, 동류 정실, 지방 정실, 명예, 영광, 지위, 어떤거 만나도 하나님 생각하십시요. 하나님 잊어버리면 거게서 부텀은 사망입니다. 지척을 분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