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2:10
인간의 연약성과 최고의 계명
본문 : 마태복음 13장 3절∼9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13:18-19절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어제 오후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또 필요한 하늘에 있는 신령한 것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데 그 받으려는 방편을 우리가 잘 몰라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약속은 가졌지만 우리가 그 계약대로 세상과 하늘나라와 영과 육의 그렇게 풍성한 자가 되지를 못하고 곤고하게 지내는 것을 우리가 해결하는, 풍성히 받아서 풍성히 살 수 있는 그 제약대로의 방편을 어제 오후에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삼십 삼 년 사 개월 생애하신 것은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시고 또 우리에게 있는 그 모든 죄악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오셔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세상에서 부강을 가질 수 없는 입장이며 가질 수 없는 책임을 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속의 은혜를 입고 또 대속의 은혜중에 부활하신 그 대속의 은혜도 입고 우리는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대속의 은혜를 입었으면 죄 없는 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의 자녀이요, 또 하나님과 진리로 동행해서 영생을 가지고 영생을 하는 자요. 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벌써 상속을 받기를 시작을 하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 다스릴 수 있는 이런 자로 지금 우리가 살 수 있는 입장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하기를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고 또 가난한 자 같으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 풍부를 나누어 줄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부자됨을 말을 했고, 또 '가난에 처하기도 부요에 처하기를' 하는 그것에 가난에 처하나 부요에 처하나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분의 뜻을 이루는 데에 모든 것이 족족하지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그 부강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 은혜의 권능을 받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족하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그랬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구비한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받기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 배척해서 던져 버리는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순 속에서 하나님도 우리에게 대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도 이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원죄와 본죄와 이 악령 이것, 다시 말하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 세 가지가 합작되어서 한 형체를 이루고 있는, 소위 성경에서 말하는 옛사람, 육체의 사람, 이 옛 사람이 와 가지고 미혹해서 우리는 옛 사람 그것이 자기 주인인 줄 알고 그것이 자기인 줄 알아서 그것을 환영하고 그것을 모시고 그것이 소원하는 대로 인도하는 대로 그렇게 하면 자기가 잘될 줄로 그렇게 착각하고, 죽여야 할 옛사람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와서 이런 모든 재를 저지르고 우리를 미혹해 가지고서 넘어지게 하고 실패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쫓아내는 방편을 어제 배왔고, 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그 은혜를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하나님이 주시기로 정하시고 원하시는 그 양을 따라서 우리가 모든 면에 흡족하게 받을 수 있는 그런 방편도 어제 우리가 공부를 했습니다. 그 방편은 또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방편입니다. 받고 빼앗기고, 받고 빼앗기고, 받는 것이나 받지 못하는 것이 그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이나 그런 것을 이 변동이 있는 시기는 언제든지 현실이라는 시기입니다.
현실이라는 이 시기에 새로 많이 받을 수도 있고, 또 이미 받아 놓은 것을 다 빼앗길 수도 있고, 또 받을 기회에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이렇게 이 현실이라.
하는 것은 참 아주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현실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그 방편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 그대로의 고 한 방편으로만 우리에게 주시지 다른 방편으로는 주시지를 못합니다.
고 한 방편으로 주시는 그 방편이 무슨 방편인고 하니. 하나님이 순종하라 하는 대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요 한 방편으로 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종 없는 데에 하나님의 은혜가 올 수 없고, 순종 있는 굿에 하나님의 은혜를 오지 못하게 가로 막을 세력은 없습니다.
또 순종 안하고 어기는 데에, 어기는 데에 하나님 앞에 이미 받아 놓은 은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 없습니다.
어기면 받아 놓은 것도 다 이것이 없어지게 되고, 또 순종하면 새로운 은혜가 오게 되고, 있는 것도 보존되고, 잘 사용도 되어지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되고, 이런데, 사람들이 이 복종만 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 복종이라면 복종은 다 복종해야 되지 하나만 복종하면 그것이 구비하지 못 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복종하는 순서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당신만 바라봐라, 우리에게는 나쁜 것을 다 제거해 주실 이도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뿐이시요, 또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도 주님 한 분 뿐이시요. 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조절해서 그것이 다 적당하게 고렇게 잘 조화가 되어서 활약하게 하는 것도 주님 한 분만 우리에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주님 한 분만 나에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기가 인식을 하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을 바라는 것이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일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들어 놓으신 모든 창조물을 통해 가지고 당신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것도 있고, 또 당신이 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통하지 아니하시고 직접 우리에게 해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을 통해서 우리에게 해 주실 때에는 그것을 가리켜서 은혜의 기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부모라든지 스승이라든지 어떤 그 이웃이라든지 또 모든 이 자연의 만물이라든지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도 있고 직접 주실 때도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그 은혜의 기관이 변동되면 또 하나님께서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은혜의 기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만 제시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시면 그 주시는 것을 아무도 방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온갖 것이 올 때에, 이것을 통해서 오고 저것을 통해서 오고 좋은 어떤 것이 왔을지라도 왔을 때에는 먼저 주님 앞에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 주님 이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난 다음에 두번째로 감사하는 것은 뭐인고 하니 '아. 주님이 이것을 나에게 주실 때에 그 주님의 심부름을 해서 이것을 나에게 전달해 주시느라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하는 것이 둘째로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사은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 계명도 내나 사은의 제명입니다. 그것은 오 계명에 부모가 우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내실 때에 부모라는 그 기관을 통해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 내셨기 때문에 첫째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다음에는 부모에게 감사해라 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입니다.
다른 모든 사건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농사를 지어서 잘 농사가 됐을 때에 그 감사하는 것을 두 군데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금년에 이렇게 추수가 많도록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주실 때에 이 땅을 통해서 주셨고 모든 하나님이 만드신 이 공기나 모든 이 분위기를 통해 가지고 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 땅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그 자연의 분위기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번에 그 교황 바오르가 와 가지고서, 교황이 와 가지고서 먼저 오던질로 한국이라는 이 땅에다가 입을 맞추면서 감사하는 그런 일을 했다 하는 것을 내가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경에 뜻이 있으나 천주교에서는 후란시스의 그 신앙 사상의 영향을 많이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후란시스는 성자요 그는 겸손과 사랑의 그 위주로 박애 사상을 가지고서 나가는 그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향을 입은 위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혹 거기에서 입을 수도 있기는 있겠지만 우리는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것도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다를 통해서 고기를, 생선을 줬다 할지라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바다를 은혜 기관으로 우리에게 삼았기 때문에 그 바다를 우리가 소중히 여겨서 보배롭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좋은 것이 왔을지라도 그것은 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인 것을 우리가 깨닫고, 또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유리에게 주시는 그 일에 협조한 모든 그 은혜 기판에 대해서도 요 리는 고맙게 이렇게 생각을 가져야 하고, 또 우리에게 어떤 원치 안하는 고런 어려움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에게 화가 왔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징계가 왔습니다. 어려움이 왔습니다.
왔을 때에도 그것은 우리가, 이것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줬다 그것을 원수로 삼고, 저것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줬다 원수로 삼고 이라면 그 사람은 외식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도 주님 한 분이 혼자 주권하셔 가지고서 어려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주실 때에는 '아 주님이 나에게 이것을 주시는 것이니까 무슨 이유인가?'하고, 반드시 주실 때에는, 어려움이든지 뭐 팔다리가 부러져도 그것은 반드시 주님이 이런 거 저런 것을 통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근본 계획하신 분과 근본은 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 구원에 대해서 필요가 있어서 당신이 하신 것이지 필요 없이 하신 것은 아닌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어떤 그 피조물을 상대해서 원망 불평하는 그런 일을 하면 바로 들어맞지 아니하고 삐뚤어져서 반드시 뒤에 이제 책망 받을 일이 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우리를 고치라고 그렇게 하시는 그런 때에는 우리가 고쳐야 하겠고, 또 깨달으라고 하시는 때에는 깨달아야 하겠고, 또 우리는 그럴 때에도 연단을 받아서 아무리 그게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요동치 아니하고 참고 견디는 이 인내를 거기에서 양성해야 될 때에는 인내를 우리가 거기에서 길러야겠고, 또 거기에서 우리의 그 교만을 깨트려서 겸손케 하시기 위해서 왔을 때에는 우리가 거기에서 겸손을 가져야 하겠고, 그러면 주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이 그 일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님께는 기쁨이 되어지고 우리에게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하여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이 복종 하나로 주시는 것인데, 복종하는 이 복종이라 하는 것은 대번에 복종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위에 복종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 예배당을 지을라고 하면 그만 기둥 이런 거 하나도 없이, 걸거치니까 기둥 없이 위에 이 스레트가 이 만큼 널리 위에 덮여 가지고 있으면 참 좋기는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이 쇠기둥을 세우고 또 내리 앉지 안하도록 여러 가지 그 구비한 것을 꾸며 가지고 그 위에 스레트로 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그 순서가 있어 가지고서 그 순서를 밟아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복종 하나로만 하면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첫째가 하나님만 바라봐라 이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봐라.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 한 분에게 있다. 필요한 것도 하나님에게 있고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징계와 그런 것도 하나님 한 분에게 있고 이러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에게 있으니 하나님 한 분으로 더불어 모든 것을 해결을 지울려고 이렇게 해라.
네기에 좋은 것 원하는 것도 나하고 의논해야 되지 달리는 안 된다. 너희가 원치 안하는 모든 것 있는 것도 나하고 의논해야 내가 그런 것들을 다 제거해 주지 나 외에는 아무도 할 자가 없다.
이거는 주님이 혼자 이 권세를 가지시고 이 권세는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습니다. 당신이 주권하시는 이 주권은 아무에게도 양보하지를 아니하십니다.
아들에게도 양보하지 안하고 성령님에게도 양보하지 안하고 양보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혼자 주권해 가지시고 있는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데, 성부 안에는 성자 성령이 다 내주해 제시고 성자 안에는 성부 성자가 다 내주해 제시고 성령 안에는 성부 성자가 다 내주해 제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타나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삼위의, 성부도 하나님.
성자도 하나님, 성령도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세 분 같으나 그 위가 셋이지, 위가 셋이지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히 주님을 부를 때에는 혹 우리가 생각할 때에 주님 부르면 아버지 부른 거 아시니까 주님, 아버지, 성령님 이렇게 세 분 불러야 다 되는 줄로 알지만 주님을 불렀으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다 부른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기뻐하시면 삼위일체가 다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하나님의 본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 주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데, 주님이 성부의 위와 성령의 위와 성자의 위가 다른 것은, 성자의 위가 우리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관제를 가져 영원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요긴한 하나님이 되고 복의, 생명의 근원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모든 생명과 평강과 부요를 겸해서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을 시켜 주신 그 인성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사람이시요. 우리의 중보자시고, 복의 근원이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평강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바라보고, 그다음에 의지하고, 또 그다음에 바라보고 의지하니 그로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라보는 거, 의지하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고, 또 복종하는 것도 마음에서 시작해 가지고서,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것이 마음에서 시작해 가지고서 몸에까지 나오고, 몸에까지 나오고. 몸에 나온 것이 모든 사물에까지 퍼쳐 나가야 그래야 이제 그 효력이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발원된 것이 그 순서대로 그 독생자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또 우리의 영을 통해서, 마음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모든 사물에게까지 뻗쳐 나갈 때에 사물에 대한 그 혜택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게 중단되고 연결되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그 작용하시는 일은 저 안에 지극히 거룩하신, 지극히 높으신, 우리가 가까이 가지 못할 지극히 거룩하신 그곳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오는 것은 그것이 나와 가지고 우리를 통해서 만물에게까지 가야하고, 또 만물에게서 우리가 작용하는 것은 그 작용이 자꾸 들어가고 들어가 가지고서 하나님에게까지 도달이 돼야 그것이 비로소 온전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에서 나와서 밖으로 퍼져 나오는 것도 있고, 밖에서 시작해서 안에까지 이제 들어가는 것도 있기 때문에, 안에 있는 것은 밖에 와서 라야 성과를 이루고 밖의 것은 안에 하나님에게까지 가야 성과를 이루는 것입니다.
밖의 것은 하나님에게까지 가야 그 성과를 이루고, 하나님에게서 발원된 것은 밖의 이 만물에게까지 다 나와야 성과를 이루는 것인데 그 가운데 끼어 있는 중보자가 하나님의 교회요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이든지 얻을 때에는 반드시 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 자라야 하나님이 주실 수 있습니다. 왜? 그자에게 주셔야, 그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그에게 참 복이 되고 영광이 되지 그것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셔서, 피조물 바라보고 의지하고 피조물에게 복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어떤 귀한 선물이라도 주셨다고 하면 (저 열심쟁이 그만 잔다. ○○○, ○○○이가? ○○이가? ○○이가? 그 둘이, 아. 둘이가 있으니까, 뒤에 있는, 한번 찔벅거려 뭐. 저 우리 ○집사님 옆에 앉은. 뒤에 앉은, 그 열심쟁이 그만 졸고 있네, 엊저녁에 기도를 너무 많이 한 모양이로구만)하나님께서 이것이 바로 되지 안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돈을 줘도, 건강을 줘도, 권세를 줘도, 주면 그것을 전부 우상 만들고, 이미 있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우상 만들어 가지고서, 악령이 주관하고 있는 거기에 따라서 움직일 터이니까 주면 줄수록 그 사람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면 줄수록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데에는 이것을 어떻게, 아무래도 돌라고 우리가 기도해도 요 세 가지가 바로 돼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자기에게 보배가 되어지고 또 구원이 이루어지지, 요 세 가지가 바로 되지 안하고 꺼꾸로 되었을 때에는 주시는 것이 꺼꾸로 오용을 하다 보니까 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꺼꾸로 사용하니까 화가 되어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반드시 먼저 이것을 주셔서 그 본인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되고 구원이 되도록 하시는, 먼저 이 복을 감당할 수 있고 복되게 할 수 있는 그 기초 작업부터 먼저합니다. 기초 작업 기초작업을 먼저 하시고 그 다음에 거기다가 복을 실어 줍니다.
그러면, 기초 작업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을 가리켜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핍박이라, 박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핍박이라, 박해라. 와 그것이 핍박이 되고 박해가 되는가 하면 대대 손손이 우리가 바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것이 전부 그 대상이 피조물이었는데, 피조물이었는데 이제는 그 피조물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던 그 대상을 바꾸어서 하나님으로 바꿀라고 하니까 이 피조물은 안 뺏길라고 야단을 지기고. 피조물을 점령하고 있는 마귀는 더 안 뺏길라고 야단을 지기고 있고, 우리에게 있는 이 부패성 원죄도. 안 뺏길라고 야단을 지기고 있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악성. 악습도 안 뺏길라고 야단을 지기고 있으니까, 이 세 가지,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 세 가지를 바꿀라고 하니까 내 밖의 것과 내 몸 안에 마음 안에 있는 이 모든 죄악에 속한 것은 전부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이렇게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앞으로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때에는 이제, 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다 선하신데 이것을 이렇게 가지고 작용하고 있는 악령-악령은 영 중에 자기중심인 그 영을 가리켜서 악령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악령. 모든 인간들의 악성, 또 인간들의 모든 행동한 악습 이런 것을 촐촐 추려서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에 넣고 나니까 하나님의 창조하신 고것만 남으니까 그거는 다 선하고 모두가 다 하나님과 동지요 하나님과 꼭 같은, 사상도 같고, 목적도 같고, 성품도 같고, 소원도 같고 이러니까, 하늘나라에는, 그리스도의 나라,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된 그 나라에는 하나님과 배치되는 것이 없고, 하나님과 이질적인 것이 없고, 하나님과 이성적이 없고 전부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지음을 받은 것들이 하나님의 속성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전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는 범죄가 없고, 거기에는 쇠해지는 것이 없고, 거기에는 죽는 것이 되고, 거기에는 고통되는 것이 없습니나. 그것은 전부 다 잘못 되고 삐뚤어진 그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그런 일이 없으니까' 거기에는 하늘은 곤치 않고 장생 불로입니다.
그것을 어제 공부를 우리가 했습니다, 요것을 놓지 마십시오. 무엇이든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복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놓고 주시지 복되도록 변화시키지 안하시고 주시면 탈난다 그거요. 그렇지 안해요? 아이가, 쉽게 말해서 아이가 필요 있는, 참 필요 있는 과학물이지만 그 필요한 것 만치 위험성이 따릅니다. 그렇지 않소? 필요한 것 만치 위험성이 따른다 그거요. 전기가 필요하지만 얼마나 위험성이 있습니까? 이런데, 그 필요한 전기를 주는 데에는 전기에 대한 상식을 넣어 줘 가지고서 전기를 가지고 필요 있게 이용하지 전기로 말미암아 감전돼서 죽는 자 되지 않도록부터 먼저 해 놓고 전기를 줘야 되지, 그러면, 감전하는 것을 모르고 감전할 자에게 전기를 주면 어찌 됩니까? 죽게 된다 그 말이오, 그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이 참마음은 하나님이 가지신 마음이기 때문에 다 알 수 있는 것이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은혜를 참 은혜로 복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상식을 줘야 되겠고 방편을 줘야 되겠고 지식을 줘야 되겠는데, 그것을 통털어서, 그 수많은 것을 합해 가지고 하나님이 간단 명료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에게만 복종해라.
그러면,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거는 해석할라 하면 그 해석이, 그 해석 책을 둘라면 온 세상에 둬도 다 모자라요 그만치 복잡해요 복잡하니까, 그저 무조건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이러니까, 뭐든지 하나님 의지하면 하나님이 안보해 주신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된다. 시키시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시키심이요 또 성경 시키시는 대로 하고 나면 그 다음에 보중하는 것은 성경 안에는 성신의 감화가 모든 세밀한 것, 은밀한 것까지를 우리에게 다 시켜 주시니까 그대로 하면 다 된다 그거요. 얼마나 간단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뭐 좋은 것을 구하는데 그것이 오지 안할 때에는 이 기초 작업이 안돼 그렇다 그것을 생각하고 기초 작업에 분발해야 되겠고, 우리가 원치 안하는 것이 이것이 물러가지 않는다 할 때에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그 기초 작업이 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가 기초 작업에 힘을 써야 됩니다.
우리가 원치 안하는 것이 물러가는 데에는 원치 안하는 그게 없어도 벌로 쑤다가 강에 빠져 죽지 안 할 수 있는 그런 조심 있는 사람이 돼야지, 이제 위에나 부득이 끈으로 당글어 매 놨는데, 당글어 매 놨는데 끈을 끌러 주고 싶지만 끈을 끌러 주면 벌로 날뛰다가 빠져 죽을 터이니까 끈으로 맬 수밖에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원치 안하는 그것은 다 우리를 붙들어 매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우리를 벌로 날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원치 않는 것은 우리에게 겸손케 하고 깨닫게 하고 조심 있게 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이 있는 것이니까 그런 그 기초 공작이 다 완료가 되면 그런 것들이 서서히 다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어제 오후에 한 가지는 가르쳤는데 한 가지 더 가르쳐서 두 가지 가르칠라고 생각을 하고 왔는데 한 가지는 가르치지 못했다 하는 것을 어제 오후 시간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아침에 공부를 하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길가에 떨어진 씨, 돌밭에 떨어진 씨.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진 씨 다 실패했습니다. 그랬는데, 옥토에 뿌린 씨만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가졌습니다. 우리와의 상대하고 있는 것은 첫째 우리 상대가 하나님이요, 둘째 상대는 사람이요, 셋째 상대는 우리에게 항상 송사하던 이 악령이 우리의 상대입니다. 이래서, 하나님 상대도 만점되고 악령 상대도 만점되고 인간 상대도 만점이 되는 데에는 옥토에 뿌린 씨는 다 만점이 되게 되어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그 씨는 무엇을 말씀했는가? 고 밑에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도라,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 복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또 밭은 뭐이냐 하면 밭은 우리 마음이라. 넓게 말하면 우리 전부라.
내 자기 자아라. 이러나, 쉽게 처음에 마음을 말했으니 마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잘 보수하고 파수해서 도둑맞지 안하도록 해야 되는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파수를 해야 뇔 것은 우리의 마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우리 마음은 모든 구원의 생명 역사가 그 마음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마음을 뺏기면 그만 모든 것이 다 전부 중앙청 뺏기는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옥토에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읽든지 듣든지 우리가 받았을 때에 우리가 아는 그 말씀, 들은 말씀, 또 읽어 본 말씀, 우리가 한 번 생각난 말씀, 그 모든 말씀이, 듣는 것도 우리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인정되고, 우리 마음속에 귀로 들어오고 눈으로 들어오고 들어와 가지고서 그 말씀이 일단 우리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하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귀로 들어갈 것이고, 또 강사를 보니까 눈으로도 들어오는데 약간 도움이 될 것이고, 이 감각으로 들어와서, 그래서 모두 요새 시청각 운동이 많이 있는데, 이래 가지고 우리 마음에 이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들어왔는데. 들어온 이 말씀이 우리 마음이 옥토가 되면 이 성과가 모든 면에 다 참 백프로 성과를 할 수가 있는데.
우리 마음이 이 말씀을 받아서 마음 안에 말씀이 들어왔는데 이 말씀이 어떻게 하면 모든 면으로 다 좋은 결과를 맺아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할 수가 있느냐 하면 마음에 들어온 이 말씀을 쫓아내 보내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창조의 능력을 가졌고 전능의 능력을 가진 이런 그 말씀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이 진리는 독자적 전능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왔으니 이 말씀을 쫓아내지 안하고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이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되면 전능자가 내 마 음 안에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전지자가 나를 지키시고 내 안에 제시니까 다른 것들이 와 가지고서 나를 해하지 못합니다. 이 전지전능의 사랑의 이 진리가, 이 진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 왔노 하면 이제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 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 사랑이 어떻게 왔느냐?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신데, 사랑이요 전지전능의 이 말씀을 우리가 배척하지 안하고 모시고 있으면 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보호할 때에는 보호하고, 또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될 것이 있을 때에는 하라고 지도하고, 또 우리에게 금할 것은 금하라고 지도를 하시고. 먹을 것은 먹으라고 지도를 하고 이 진리 말씀이 지도를 하는데, 이 진리 말씀 혼자만 하는게 아니라 그속에 하나님이신 또 성령님이 이 진리와 함께 진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고 지도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뭐 우리가 실족할까 실수할까 혹 넘어질까 그런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아무래도 이것을 가르쳐 놓고 가야 되겠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는 것은 내가 그런데에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데 있지 않는가 해서 그래 내가 염려성이 돼서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만 자꾸 생각하고, 말씀만 생각하고 또 주님만 생각하고 그러면 내 마음은, 옥토에 뿌린 씨는 보니까 그 마음을 덤불도 차지 못했고, 그 말씀을 돌도 차지 못했고, 그 말씀은 딴딴도 차지 못해서 딴딴하게 야문, 밟힌 딴딴도 차지 못했고, 그 땅은 그 씨가 전부 다 빨아먹는다 말이오. 씨가 독차지했어.
옥토에 뿌린 씨는 씨가 독차지했습니다. 씨가 독차지해. 혼자 독차지했어요.
아무것에게도 뺏기지 안하고 독차지했어요. 씨가 독차지. 씨가 독차지했다는 말은 말씀이 독차지했다는 말인데. 말씀이 독차지했다 말은 말씀과 성령님이 독차지했다 그 말이오, 말씀과 성령님이 독차지했으니까, 말씀과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고 하니 말씀이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이 이 말씀이요, 또 엿새 동안에 말씀에게 모든 우주와 영게를 다 창조하라고 이렇게 시키신 분은 누군가? 시키신 분은 누군가? 그렇게 말씀은 진리인데. 진리에게 시키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신데,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하는 것은 그 직책을 특별히 드러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에 주님과 주의 말씀, 주님은 누가 주님인고 하니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주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주님이시요, 성령님이 무슨 영인고 하니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안에서 이렇게 죽으시고 살으신 이 일을 성공하신 그 성공은 누구로 인해서 했는고 하니 성령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역사돼 가지고서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점령하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됐고, 교회의 머리가 됐고, 만물을 발등상으로 삼았고 이렇게 한 것이 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작해 가지고 이렇게 하셨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 분이 한 분이신데,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이 이 일을 할 때도 있고 저 일을 할 때도 이렇게 있어서, 이 일 하고 저 일 하시는, 하나님이 한 분으로서 이렇게 이면 저면 그렇게 분야로 역사하실 때에 이 위치에서 일 하실 때에 성부라 저 위치에서 일하실 때에 성자라 저 위치에서 자하실 때에 성령이라 이랬는데, 그 세 위에서 일하시는 그 세 위는 한 분이 세 위로 나타나 가지고서 일을 하셨는데, 일하실 때에는 다 진리 가지고 일했다. 진리 가지고 일했다. 그러면, 진리가 어디 있느냐? 진리가 삼 위에게서 나왔는데, 삼 위에게서 나올 때에 그 나오는 이름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감은 성부에서 나올 때 영감이라, 성자에게서 나올 때 영감이라, 성령에서 나올 때 영감이라, 한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 영감이라 이라는데, 우리 마음에 이 진리가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게 되면 이 진리가 다 차지 한 마음이 되고.
진리가 다 차지한 마음은 영감이 다 차지한 마음이 되고. 영감이 차지한 마음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가 다 차지한 마음이 되어지므로 이제 우리 마음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하나님의 집이라, 또 우리 몸을 다 차지했을 때에 우리 몸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래서, 우리의 영도 마음도 몸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전이 되어 있는데.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고린도전서 3장16절, 고린도전서 3장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가 모르지 와서 계신다 그 말이오. 우리가 대속을 받아서 중생될 때는 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우리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중생될 때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계십니다. 중생된 자는 성령님이 계시니 성령, 성부, 성자가 다 와서 삼위일체가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면, 우리의 몸을 더럽히면, 우리의 영을 더럽히면' 그 말인데 이 더럽히는 것은 어떤 것이 우리 영. 마음, 몸 이것을 더럽히는고 하니 하나님을 모셔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것인데 이것이 못되게. 못되게 다른 것을 접하는 것.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 다른 것에게 복종하는 것, 다시 말하면 이 대속하신 이 하나님의 것이 다른 것의 것이 되는 것, 또 하나님에게만 복종할 것이 다른 것에게 복종하는 것. 또 하나님만 바라봐야 되는 것이 다른 것을 바래보는 것. 하나님만 위하고 섬기고 그분만 사랑해야 되는 것이 속살거리로 다른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것아 더럽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것이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만 하나님만 사랑하면 여기에서 혹 남편되는 사람이나 아내되는 사람은 '아. 이 공연히 집회왔더니만 하나님만 사랑하라 하니까 나는 남편 사랑만 바라보고 사는데 남편이 날 사랑하지 안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면 어짜는고?' '나는 재미가 지금 우리 사랑하는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그 재미로 사는데 그러면 우리 아내가 하나님만 사랑하면 나는 어짜노?' 이래 가지고 이래 하지만 그것이 그리 돼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남편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그대로 그 남편을 사랑해야 참사랑이 되고. 아내를 사랑하라 하는대로 그대로 사랑해야 참사랑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면 당신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나를 사랑할래? 나를 사랑할라거든 네가 남편에게 대해서는 요렇게 사랑해라.' 하신 대로 그대로 사랑하며는 고것이 옳고 바르고 참 꽤서 영원히 가도 깨짐이 없고 후회함이 없고 속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는 자는 주님이 요렇게 저렇게 당신을 사랑함을 인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 옳게 바르게 되지만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요렇게 저렇게 사랑하라 하는 대로 사랑치 아니하고 저거끼리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랑이 되는고 하니 인간의 사랑 뱀의 사랑이 됩니다. 인간의 사랑 뱀의 사랑이 되니까 인간의 사랑 뱀의 사랑은 무슨 결과를 맺는고 하니 에덴동산에서 뱀의 사랑이 들어와 가지고서 인간 사랑이 됐는데. 하와가 그 사랑을 가지고 남편을 사랑하였으므로 선악과를 먹여서 죽었고, 또 아담은 그 사랑의 전염을 받아 가지고서 그 사랑 가지고 하와를 사랑하므로 시키는대로 그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서로 다 죽여서 박살이 나 버렸습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면 다른 부부 같으면. 그만한 여러가지 분쟁의 십분지 일만 있어도 벌써 이혼을 했을 터인데, 십분지 일만 해도 이혼했을 터인데 십 배나 그런 어려움이 있어도 이혼을 하지 안하고, 십 배나. 어려움이 있어도 그 남편을 꼭꼭 섬기고 사랑하고 또 그 아내를 꼭꼭 사랑하고 붙들고 섬기고 이렇게 하는데, 그 끊어지지 안해요, 그 끊어지지 안해요, 떨어지지 안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됐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함이 됐기 때문에 이제 그 그래 안하면 주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 되고 주님이 섭섭해 여기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 때문에 못 하겠다 그거요. 주님 때문에 못 하겠다.
사람들이 얼마 결혼하고 난 다음에 권태성이 나지만 그라다 보니까 사랑하는 옥동자가 났어, 아들이나 딸이나 났어. 낳았으니까 그것 때문에 마음대로 못하겠다 말이오. 그래서 아들 딸을 놓으면 그게 그물장이라. 그물장이라 하는 것은 이 물건과 저 물건을 한테 둘어붙이는게 그물장이오. 그 그물장이라고.
꺽장이라고 있는데 지금은 그거 잘 안 써. 꺽장이라고 있는 것은 이 기역자, 기역자 두 개 붙인 거라. 기역자 두 개 붙인 것인데, 그래 맨든 쇠인데, 이 나무하고 이 나무하고 둘을 갖다대고서 그놈을 뚜드려 박으면 이 나무하고 이 나무하고 둘이 딱 들어붙어 가지고서 못 잡아맵니다. 그래서. 그 자녀는 꺽장이라, 그물장이라. 들어 붙였다. 그래 놓으니까 이제 권태성이 나지만 그만 부부 생활이 그대로 다 결합되어 나갑니다.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은 부부 사랑의 그 제일 근본되는 그물장이요 꺽장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함으로써 이제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사랑이 인간이라는 그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해도 그것을 미워할 수 없고 얼마든지 용서하고, 왜? 주님 때문에 사랑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했기 때문에, 주님 때문에, 했기 때문에 그걸 미워할 수가 없고 별 수가 없고, 개망나니 노릇을 해도 그저 참고 또 용서하고 또 소망을 가지고, 왜? 그까짓 거 본다면 발길로 차서 집어내 버리고 싶으지만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으로 인해서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 한다 그 말이오. 또 사랑해야 되고 또 붙들어야 되고 또 지켜야 되고 또 소망을 가져야 되고 또 길러야 되고 또 고쳐야 되고 또 이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해라 하는 것이 그것이 잘못된게 아니고 그게 바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라는 것. 이래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원인이 돼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과 관계를 맺은 것은 그것은 변하지 안하고 틀리지 않습니다. 원인이 바로 되면 결과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원인이 없어지지 않으면 결과는 없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원인이 돼 가지고 된 것은 그것이 깨지지를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쁨도 하나님이 원인이 돼 가지고 시작된 그 기쁨은 세상이 뺏들어 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인이 돼 가지고서 된 담대는 세상이 그 사람을 공포에 눌루지를 못합니다. 끊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모든 면에 생명이요 보배요 능력이요 지혜요 평강이요 쾌락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우리 안 에 들어오셔서 계시는데,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오, 벌써 중생 될 때 하나님의 성전이 됐어. 중생 될 때 하나님의 성전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이 거하시면 성령은 말씀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된 것이 성령으로 중생됐다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다 이랬습니다. 성령과 물로 거듭났다 하는 그 물을 우리는 이런 물인 줄로 알지만 성경에 진리를 물로 많이 표현을 했습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 작용 그 역사로 표현하기 때문에 물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을 하기를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너희들이 항상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살아났느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거기다가 해석을 붙여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실 때에는 진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러니까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또 깨우쳐 주시고 이래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성화 역사입니다.
우리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킬 때에 진리가 백 개가 있으면 백 개 중에 한 쪼가리를 가지고서 중생시킨 것이 아니고, 성령 성부 진리 전부가 다 합해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성령과 진리가 다 구비해 있는데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자꾸 깨우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깨우치는 것인데, 이 자리에 온 것도 성령님과 우리 중생된 영이 합작돼 가지고서 우리 마음을 달래고 달래고 타이르고 타이르고 우리 몸을 달래고 타이르고 이렇게 해 가지고 이제 우리의 발이 걸어서 비로소 여기 왔습니다. 마음이 오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래 가지고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백 목사가 전하는게 아니라 백 목사 전하는 것도 여러분들 속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를 통해서, 이제 또 진리가 나를 통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또 성령님과 중생된 영이 여러분들 마음을 움직여서 듣게 하고 또 이렇게 깨닫게 하고 하는 것은 안에 있는, 이미 안에 계시고 있는 내재하신 이 성령과 진리를 만나게 하는 것이요. 만나게 하는 것.
이러기 때문에, '문을 두드리라' 하는 것도 우리의 모든 객관적으로 와서 제시는 것과 우리 주관이 또 인식하도록 계시는 것을 가리켜서, '문을 두드리라.
열면 내가 들어가겠다.' 그 말은 객관적으로는 우리에게 와서 이 미 와서 계셔서 우리가 영이 살아났지만 우리 마음에 이해시켜서 자유성을 살려 가지고서, 유기적으로 이해시켜 가지고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감동해서 우리의 주관이 영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 일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그 일이 자꾸 차차 차차 견고해지고 온전을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 하실 때에 벌써 우리 구원은 다 이루어졌는데, 이루어진 그 구원을 성령님이 와서 뒷처리를 해서 우리의 주관에게까지 되어져서, 우리의 행동에게까지 되어져서 우리의 관련되는 사물에게까지 이루어지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이 하는 것인데, 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복종인데, 복종이 안됨으로써 자꾸 현실에서 이렇게 완전 영생화 될 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는, 첫째 사망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다 살려 놨는데 살려놓은 것이 다시 사망되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제 성전을 더럽힌다는 것은 이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 예수님의 창조로도 당신의 것이지만 그거는 일반적인데,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 어떤 피조물의 것으로 생각하는 고것이. 더러워져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말이오. 더러워져 가지고 있는 것. 또 주님에게 속한 것이 다른 데 속해 가지고 있는 그것이 더러워져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말이오. 또 주님만을 소망하고 주님이 다 해 줄 것을, 모든 것은 좋은 것도 다 해 주시고 나쁜 것도 다 치료해 주시고 전부 내게 대해서 모든 면으로 전부 좋은 것은 당신만이 나에게 주실 분으로서 이렇게 바라야 되는데 다른 것을 바라는 이것이 더러워져 있는 것입니다. 더럽힌 것이라 말이오.
또 그분의 안보만 바라서, 그분만 의지해서. 그분이 다 해 줄 터이시까 그분에게 맡겨 놓고, 누가 죽인다고 해도 그분이 처리하시지, 내게 대한 것은 그분이 다 맡았기 때문에 나는 나 전부 가지고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거 당신이 하라 하는 대로, 당신 바래보라만 당신 바라보고 당신 의지하라면 의지하고, 순종하라 하면 순종하고, 마음의 순종 몸의 순종 이것만 지금 나 할일이오. 내게 대한 것은 당신에게 맡겨요. 네 몸뚱이 죽는다. '아 그거는 내가 책임 안 맡았다.' '누가 맡았노 네 몸뚱이 죽고 사는 것을?' '주님이 맡으셨다. 내게 대한 것은 당신이 다 맡으셨고 나는' (○, 그냥 안 조는 듯이 앉아 가지고 졸면 어쩔 거라?) 이래서. 오늘 이제 나오게 됐소. 광고를 하나 할라합니다. 여기 교역자들이 다 누워자요, 보니까 왜 누워자는고 하니 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녹음 뭐 편집실에서 녹음 해 줄라 하니까 녹음에 다 있다. 그 녹음이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 아니오. 이래서, 누가 와서 말을 해. '이거 혹 어떤가?' 이라는데 그거 아멘이 됐어. 뭐이냐? 이 교역자들 반사 선생님들, 또 교역자 안 온 데는 권사님들, 집사님들, 장로님들이 분들이 자기에게 소속한 그 양떼를 이제 먹일 책임을 지고 이래 가지고서 집회 턱 마치거덜랑 얼른 자기 무리, 자기 양뗴를 쭉 끌고 말이요, 자기 양떼가 쭉 따라올 터이니까, 따라 와서 이 뫼등이나 저 구석에나 저 언덕 밑에서나 가 가지고서 그 양떼를 앉혀 놓고 이제 배운 말씀을 전부 새김질 해 줘요. 한번 새김질을 해서 가르쳐 줘. 가르쳐 주면 그분들이 한번 듣고 두번 들으면 잘 압니다. 가르쳐 주고 그래 가지고서 모여 가지고서 '기도하자' 기도할 제목을 말해 주면서 '기도하자.' 같이 기도하고, 또 거석하면 작은 데는 돌아가면서 '네가 한번 기도하고 내가 한번 기도하고 기도하자.'이라고 이래 가지고서 어쨌든지 요번에 불을 붙여 가지고 가야 되지 이대로 가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면 '야, 이거 인도자라고 하면서 가서 인도할 때에 인도 받는 사람은 세 가지를 다 기억하고 있는데 인도하는 사람은 두 가지 밖에 기억 못 했으면 고만 그것이 인제 가치가 떨어지는 거라. 권위가 떨어지는 거라.
그러니까, 이 인도자도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인도를 할라 하니까 눈이 바짝 띄이고 정신이 차려지지, 이 보니까 가 가지고서 인도 받는 그 양떼는 두 가지밖에 몰랐는데 세 가지를 말하니까 '아이구 참 과연 목사님은 목사님이로구나. 선생님은 선생님이로구나. 조사님은 조사님이로구나. 장로님은 장로님이로구나. 집사님은 집사님이로구나. 권찰님은 권찰님이로구나.' 이런데, 떡 가 가지고서 그 받을 사람은 세 가지나 열 가지를 기억하고 있는데 자기는 그 한가지밖에 기억 못해. 그러니까, 떡 있다가서 '그 한 가지 빠졌는데, 아 뭐 한 가지 빠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만 성을 내 가지고서 '뭐 빠지기는 뭐 빠져?' 그게 억지라, 억지. 그게 똥을 덮어쓰는 거라 말이오. 그게 똥을 덮어쓰는 거. 그때 '한 가지 빠졌습니다.' '아, 잘 알았어. 나보다 훨씬 잘 들었어. 거기에 대해서 내가 선생님으로 모시겠어.' 이러면 자기 몰랐던 그 수치가 활딱 벗겨지는데 벗을 줄 모르고 자꾸 덮어쓴다 말이오. 그래서 이번에는 그래야 되겠다 그래요. 오전에 아침에 공부한 거 가서 쭉 새김질해요. 시간 많으니까.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제 더럽히는 거. 이제 더럽히는 거 우리가 배웠습니다. 더럽히는 거.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느니라' 이 깨끗한 것이 이십 세기의 과학이 깨끗함 같은 그 깨끗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 깨끗은 더러운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없어서 볼 때에 아주 번쩍번쩍하고 깨끗하나 그 더럽소. 정금도 볼 때에 아주 똥 칠갑을 해 가지고 있는 정금도 있습니다. 더러워.
깨끗한 것이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기 때문에 주님은 어떻게 깨끗했는가? 아버지가 하는 말만 했지 당신이 독단으로 말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알게 하는 것만 알았지 독단으로 알지를 안했습니다. '그날과 그시는 아들도 모르느니라.' 이랬기 때문에, 아버지가 알아라 할 때 알고, 그것이 절대 아버지에게 복종입니다. 절대 복종.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아버지만 바라 봤고 의지했고 복종했고, 그만 좋아했고 그만 두려워했고 그만 높였고 그에게만 순종해서 그로 전부를 삼았어. 아버지로 전부를 삼았어. 요게 깨끗입니다. 요기 깨끗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그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리라.
이라니까 자, 우리가 성전을 지금 더럽히고 있습니까 깨끗이 하고 있습니까? 한번 말씀해 봐요. 성전을 지금 더럽히고 있습니까 깨끗케 해 가지고 있습니까? 예? 예, 그래. 그 말이 맞았어. 우리가 더럽히고 있습니다. 더럽히는 줄 모르고 더럽히고 있습니다. 자꾸 딴 거 의지하고 딴 거 바래보고 딴데 복종하니까 그 더럽히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매일 생활이 그 생활하고 있지 않소? 우리가 더럽히면서 더럽히는 거 모르고 '깨끗하게 하고 있습니다.' 뭐 깨끗하게 하고 있어? 지금 깨끗하게 할랴고 지금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지. 이러니까, 이제까지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으니, 다른 것을 바라봤으니 하나님은 나를 멸하시고, 다른 것을 의지했으니 하나님은 나를 멸하시고, 다른 데 복종했으니 하나님은 나를 멸하시고,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시는 이 멸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도 기가 찬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깨끗이 되면, 깨끗이 되면 당신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 가지고서 '아, 그 일을 어찌 하려고? 그라면 복잡한 내 사업을, 내 복잡한 내 사무를, 이 무거운 책임을' '얘얘, 어리석은 자야. 그소리 하지 마라. 네까짓게 아무리 똑똑하고 세밀하고 총명스럽고 뭐 모든 것이 구비하다고 해도 주님만은 못할 거라. 주님만은 못할 거다.' 주님이 와서 하시는데 못 할 거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제가 오래 전에 가르칠 때에 주님만 사모하라 이렇게, 자꾸 주만 바라보라 하는 것을 벌써 몇십 년 전에 말을 했는데, 그라면서도 그 때에 내게 그 회의증이 들어서 문제되었던 것이 생각이 나서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 때에 그라면, 자, 그렇게 하려고 하면, 처음에 제가, 처음에 예수님 빌을 때에 그 때 개명 교회 있었는데, 개 명 교회, 있을 때 그 교인들이, 참 놔둬도 그 때 저 시키는 대로해요. 시키는 대로 하니까 시키는 대로 하니까 이제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못 하게 하니까 가정에서 일이 나고 뭐 죽이니 살리니 하는 일이 나고, 나한테 와 가지고서 자기 아내 차지하라고도 말하고, 또 톱으로 가지고서 그 아내 다리를 써는 사람도 있소, 또, 홀랑이를 가지고서 끌고 저 땅 가시밭으로 끌고 다니면서 막 이라는 사람도 있고, 두드려서 피 흘리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됐는데, 그래 내가 그 때 '하나님만 사모하면. 하기는 세상 일 이것 저것 자꾸 생각해야 되지 하나님만 생각하니까 그게 빠지니까 이런 모두 분란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이래 생각을 했다 그 말이오.
이랬는데, 그 뒤에 많은 번민을 가지다가 자세히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만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잘해 주시는데, 잘해 주셔서 잘해 주시는 불이 일어나 가지고서 그 불의 효력이 크게 나타났다 그 말이오. 그 핍박의 효력이 크게 나타났소. 그 뒤에 보니까 성도를 또, 마태복음 10장에 보니까 '내가 세상에 온 것이 화평을 일으키러 온 것이 아니고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 이래 가지고서 모든 부자간에, 모든 부부간에, 형제간에 그렇게 분쟁이 난다. 분쟁이 나는데, 이 분쟁이 내가 오기 전에 분쟁이 붙었으면 좋을 뻔 했다.' 그게 뭐이냐? 성령과 악령이 이렇게 시비하는 것이요, 생명과 죽음이 시비하는 것이요, 모든 의와 죄가 지금 시비를 하는 것이요, 사람을 망치게 하는 것과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시비하는 것이니 그 분쟁이 없이는 그 가정을 구출하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이래서, 그때 그랬기 때문에 혹 사람들 가운데서 이걸 모르고 '살림 사는 사람이.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중대한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교편생활 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 그라면. 하나님 말씀이 그 마음 다 차지해 버리고 나면 그래 그 중한 책임을 어떻게 하나?' 그것을 염려했다 그거요. 오늘도 그렇게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그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 차지하게 하고. 네 마음은 성령님이 다 차지하도록 해라. 그라면 모든 이 무거운 그 교사의, 선생의 책임은 어떻게 하고? 그 공무원 책임은 어떻게 하고? 사장 책임은 어떻게 하고? 주부 책임, 어머니 책임, 남편 책임은 다 어떻게 하고? 이 책임들이 많은데 그만 주님만 생각하고 진리만 생각하고 마음을 진리와 주님이 다 차지해 버리면 그 마음 가지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다 차지하면 어떻게 되라고? 이 참 번민이라.
고민이라 그 말이오. 이게 난제라.
이랬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신실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하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맺는다. 백 배라니? 인간 상대의 만 만점을 네가 가지게 된다. 인간 상대에 하나도 심판 받을 것이 없이 완전 행위를 네가 할 수가 있다. 인간 상대의 완전 행위를 할 수가 있다. 또 이 세상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마귀요 세상 왕이 마귀인데 마귀에게 대해서도 심판 받을 것 하나도 없이 마귀에게 대해서 완전한 만점의 행위를 할 수 있다. 마귀에 대해서 대적한 것도 아주 심판에서 칭찬할 만치 바로 대적했고, 그의 일을 깨트린 것도 만점으로 깨뜨렸고 그것들에게 사로 잡혀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는 데도 만점을 했고. 마귀에게 대한데 책임도 완료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의 상대인데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네가 완전 이행을 해서 '충성된 종아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모든 것을 다 너에게 맡기겠다.'하는 이 사람이 되어진다. 성경에 그렇게 해 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해 보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지혜 전지하신 지혜로 이렇게 판정을 지워서 보증으로 딱 이렇게 말씀을 해 놓고 계약의 선포를 다 이래 해 놨는데도 우리가 어둡기 때문에 이해가 안돼서 고민이요 번민이라 그거요. 그 번민과 고민은 무슨 번민과 고민입니까? 세 가지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소망, 의지, 복종 이 세 가지를 바꾸지 못한 폐단이 나온 것이니 그 폐단을 가리켜서 핍박이라 말했는데, 이제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이 핍박, 이 모든 어려움이 올 때에 또 그것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맡기고 그분에게 복종해 봐라. 그러면, 그분만 생각하면 밥은 어째 먹고? 그분이 얼마나 세밀히 가르치는가? 세밀히 가르치나? 우리는 밥도 먹어야 되고 장도 떠먹어야 되고, 잠도 자야 되고, 세수도 해야 되고 또 출근도 해야 되고. 대인 관제도 해야 되고, 사물 관계도 해야 되고 모든 것 다해야 되는데, 모든 것 다 해야 되는데.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행위를 다 해야 우리가 참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데 다 해야 되는데, 그 모든 것을 다 하되 '내가 시키는 대로하지 않은 것은 다 죄다.' 이래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행치 안하는 것은 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시키는 대로하지 않은 것은 다 죄라. 자, 그러면, 그분이 시키지 않은 건 죄라 했으니까 그분이 밥 먹는 거 시킵니까? 안 시킵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시키신다 그 말이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시키신다 그 말이요, 다 시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시켜서 출근할 때 출근하게 하시고 퇴근할 때 퇴근하게 하시고, 친구하고 친절하게 할 때 친절하게 하고 또 친절하게 하라 하고, 친구를 끊어야 될 때에는 끊어라 하고.' 또 먹어야 할 것은 먹어라 하고, 먹지 말 것은 먹지 말라 하고, 이제 우리의 심신의 움직임은 그 움직임의 숫자를 헤아릴려고 하면 굉장히 많은 것인데. 그 굉장하게 복잡 많은 모든 순서를 다 시켜 준다. 다 시켜 주겠다.
이렇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것은 다 죄다.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건 죄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 한번 해석해 대답해 보십시오. 시키는 대로, 믿음으로 하지 안하는 건 죄라 그 말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은 죄라 하는 말인데,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우리 ○○○선생, 한번 대답해 볼까?) 네.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않는 건 죄라 그 말이 뭐야? 죄라 그 말이 무슨 말이야? 그걸 묻는 거라.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안 하는 것은 죄라 했으니까 죄라 말이 무슨 말이오? 비뚤어졌다 그 말이오. 비뚤어졌다.
내가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은 전부 비뚤어졌으니까 그 결과는 사망이 된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믿음으로 행치 안하는 것은 죄니라.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하는 것은 다 비뚤어지는 것이다. 죄의 결과는 뭐라 했습니까? 사망. 죄의 값은 사망이라,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 그러니까, 하나도 망하지 않게, 하나도 생명과 청청하게, 모두가 다 복되게 이렇게 바르고 옳게 참되게 잘 시키신다 그 말이오. 잘 시켜 줘요. 구비하게.
이분이 이렇게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이 풀 한 포기속에도 하나님의 그 조화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 가지고서 우리 사람이 암만 이 십 세기의 과학이 저거들이 어쨌다 큰소리 해 쌓아도 이 속에 있는 요소를 다 모릅니다. 그렇게 세밀하게, 하나님이 세밀하신 분이라 그분이 우리를 만들었는데, 우리 머리 속에 이거 콤퓨터가, 콤퓨터 하나만 해도 다 잘 안 다는데 콤퓨터를 몇개나 만들었다 하더라? 우리 ○목사님, 잘 알아요.
○○○목사님, 어디 있어? 천억. 우리 머리 속에 콤퓨터를 그 천억을 만들어 넣어 놓고 있대요. 이러니까, 사람이 발달시켜 생각할라 하면 굉장한 것을 생각하도록 다 만들어 넣어 놨습니다.
이렇게 세밀하신 분이 당신이 약속하기를 나만 모시라, 내 내 뜻만 모시라, 말씀과 영감만 모시라. 이제 하나님의 성전이 돼 가지고 있는데 성전 된 것인 것을 알고 네가 성전을 더럽히지 말고 성전으로 살아라. 그라면 이 전지전능하신 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 통해서 할 거하고 안 할 거 안하고 우리 할 거 모든 것을 다 주관해서 시키실 터이니까. 자, 이제 직장의 낭파가 있겠소? 자기 의무와 책임이 실패가 있겠소? 어찌 됩니까, 자기 맡은 일에? 잘못된 일이 있겠소? 없겠소? 없습니다. 믿읍시다.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면. 자, 이렇게 주님을 우리 안에 모셔서 우리 마음을 그분이 다 차지하도록. 다 차지하도록 하면 다 차지하면 당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데, 다 차지할 때 당신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어떻게 주시지요? 뭣을 겸해서 주시오? 핍박 겸해 주시오. 다 자기에게 주실 때에 우리 이 미련한 마음으로는 꼭 안 될 것같이 보이는 그런 순서를 통해 가지고서 주신다 말이오. 그 안 될 것으로 보이게 되는 그것은 뭐인가 하면 옛사람 그놈이 꼬우는 것이니까 하거나 말거나 집어 던져 버리고 그대로 해 나가는 그것이 이제 바꿀 것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주실 수 있고 받아서 복되게 잘 이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이것은 전지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나를 위하여 하시도록 하는 것이니까, 내가 하는 것을 전지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니까 내가 하는 것 보다 조금 잘 되겠습니까 많이 잘되겠습니까? 저 ○선생. 예? 많이 얼마나? 열 배? 억 억 억, 그래. 무한히 잘됩니다. 무한히 잘돼요. 무한히 잘됩니다. 이런 복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이 자꾸 복을 깨트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치 안하시는 우리에게 자꾸 멸하시는 일만 하고 있다 말이오. 멸하시는 일만 우리가 하고 있게 됩니다.
한 말씀 더 봅시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다른 데는 보면 '다 이루리라' 했는데 다라는 말을 해도, 다라는 말을 해로 뭐 다라는 말 있으나 없으나 한가지입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소원 성취가 다 됩니다. 소원 성취가 다 돼. 소원 성취가 다 돼요.
이 성구가 제가 믿기 시작할 때에 내 표어입니다. 제 표어가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 궁덩이가 터져서. 궁덩이가 터져서 방석을 깔고 앉아 가지고서 이렇게, 양쪽 궁덩이가 이만큼 터졌는데, 자꾸 앉아 읽으니까 나중에 지금 나았습니다. 나았는데, 그때 읽을 때에 읽는 가운에 제 표어가 요한복음 15장7절입니다.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는 그 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가 마귀의 소원을 우리가 가져도 그것을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십니까? 마귀의 소원을 우리가 가지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수 없지 않습니까?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그 말씀은 우리 소원하는 것이 절대자이신 주님의 소원과 꼭 같은 소원이기 때문에 그 일은 안 이루어질 수 가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 뜻,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 뜻과 꼭 같기 때문에 그것은 다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시고 안 이루어 줄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리가 주 안에 있고, 주 안에 있는 것은 주님의 대속 안에 있는 것이요, 우리의 행위가 주의 말씀 안에 있으면 우리가 안에 있는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이 옥토에 뿌린 씨와 같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으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으면,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으면,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으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으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으면 우리 마음이 누구와 같다고 했습니까? 우리 마음이 누구와 같습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같습니다. 진리와 같습니다. 이러니까,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 있는데 창조된 것을 변화를 못 시키겠습니까? 창조물 그까짓 거 몇 닢 푼치 되는 그것을 관리를 못하시겠습니까? 믿읍시다, 믿어! 믿어야합니다!! 믿는 데서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 말이 네 안에 거하면', '네가 내 안에 있고' '네가 내 말에 거하면' '네가 내 안에 있고' 주의 말씀 안에 우리가 행동하고 말씀대로 행동하고 주의 말씀이 내 마음 가운데에서 내 마음을 다 차지하면, 주님의 말씀이 나를 차지하면, 진리는 하나라, 수많은 말씀이지만 그 말씀은 다 실은 하나이라. 연결돼서 하나라. 이 말씀 차지하니까 저 말씀하고 차지하고, 이제 한 말씀 사모하니까 쭉 연결되니까 육십육권의 말씀이 다 하나입니다. 말씀이 차지하니 성령이 차지하고 성령이 차지하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차지하고 이러니까 내 마음이 뉘하고 같습니까? 하나님하고 같소. 삼위일체와 같소. 내 마음이 진리와 같소. 영원 자존자와 같소.
이러니까, 그분이 없는 가운데서 영원을 예정하셨고 창조하셨는데, 그분과 같이 되니까 모든 것이 다 영원적이요 전지적이요 전능적이니까 이제 실수가 없어, 빠질게 없어. 그러니까 선생 노릇도 잘하고 공무원 노릇도 잘하고 모든 것 다 잘해. 이러니까, 만물의 종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이 돼 버려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을 힘입어서 다 이루어지고. 이러니까 우리가 염려 없이 주님의 말씀을 잡으면 놓지 말고 이 말씀이 내 마음을 다 차지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라면 됩니다. 그것이 기독교요, 마태복음 16장 13절에서 한번 읽어 봅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한 이는' 이를 너로 하여금 말하게 한 이는 말하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제신 네 아버지시니라' 그러면 이 베드로에게, 베드로가 말했는데 누가 베드로에게 말하게 했어요?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게 했소.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내나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이 알게 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말하게 해서 말했는데 그 말하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말하게 해서 말하는 것. 하나님이 말하게 해서 말하는 거, 하나님이 출근하게 해서 출근하는 거, 하나님이 판단하게 해서 판단하는 거, 하나님이 경영하게 해서 경영하는 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그것은 그것이 실수가 많고 낭패될 일이고 다 그 미치괭이 하던 일같이 그렇게 전부 다 허탄한 일이 될 건가? 그 다음 말했어.
'또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이제부터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베드로는, 반석은 뭘 말하는 것입니까? 아버지가 말하게 하시는, 말하게 하시는 그 말, 아버지가 말하게 하시는 말 그 말은 반석이오.
알겠습니까? 아버지가 말하게 하시는 그 말은 영원무궁토록 멸해지지 않습니다.
권위 있습니다. 그 말 위에, 아버지가 말하게 하는 것, 아버지가 하게 하는 거, 아버지가 출근하게 하는 거, 아버지가 밥하게 하는 거. 아버지가 밥 먹게 하는 거, 아버지가 잠자게 하는 거, 아버지가 하게 하는 그것은 반석이라, 영원불변이라 그 말입니다.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영원불멸은, 영원불멸은 이 위에 섭니다. 영원불멸은 이 위에 서요. 뭐 위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말하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움직이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말도 하게하고, 움직이게도 하고, 생각하게도 하고 가고 오게도 하고, 먹고 마시게도 하고, 이것 저거를 하게 하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서 하시는 그 일만이 반석이요. 영원불멸이요 그 일만이 세상에 빛이라, 그 일만이 모든 피조물의 중보라, 왜 우리가 못 믿습니까?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움직여서 하나님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이 직무를 하라는 대로 하고, 이 사무를 보라 하는 대로, 이렇게 처리하라는 대로 당신이 우리 안에서 모든 걸 주관해서 하는 그대로 우리가 하는 것은 영원 반석이요, 세상의 빛이요, 영원불멸이요, 영생이요. 모든 그로 인해서 만물이 다 사는 만물의 중보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어디다 준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그 속에서 움직여서 그에게 피동되는 거기에 천국과 세상을 다 완전히 주권하는 권세를 준다 그 말이오. 열쇠 준다는 말이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다 주권하는 주권의 권세를 준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마음놓고 안심하고 우리 마음을 주님의 말씀이 다 차지하게 합시다.
다 차지하게 하면, 이 말씀이 내 마음을 다 차지하게 하는 것은 내가 이 말씀만 사모한다 말이오. 이 말씀만 생각해. 밥하면서도 이 말씀 생각하고 길가면서도 이 말씀 생각하고 이라면 이 말씀 생각할 때에 그 속에 하나님이 제십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 말씀만 생각하니까 이것도 생각하고, 이 말씀 생각하니까 '아' 아무데 가야 되겠다' 생각납니다. 그라면 가고, 아무것이 와 말하여야 되겠다하면 생각하고, 이런데, 어떻게 이 말씀을 자기 안에 모셔서 옥토 같은 자기가 되어 가지고 이 말씀이 자기 전부를 차지하도록 마음을 차지하도록 이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 주관이, 자기 생각이 자기 마음을 차지하도록, 하나님이, '하나님이 내게 차지한다 하나님이 내 안에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이라는 사람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그만 삐끄러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은 말씀 안에 계셔서 우리 안에 오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씀이 내 마음을 차지하도록 말씀을 내 마음에 사모해서.
말씀을 사모하면 말씀 안에서 그 성령님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을 나에게 더 깨닫게 하시고. 나에게 확실하게 하시고, 더 믿어지게 하시고, 또 소원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할 때에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니까 이것이라야 되는데, 이 말씀은 집어 내던져 버리고 그저 하나님이라는 이 하나님만 가지고. 진리 밖에 있는 이 하나님을 자꾸 찾고 이러니까 하나님은 안 계시고. 진리 밖에 이래 자꾸 찾으니까, 이제 집을 깨끗하게 쓸어서 깨끗하게 만들아 놨으니까 깨끗하게 맨들어 놨으니까 이제는 '아, 가보자 집을 깨끗하게 쓸어놨다.' 저거 동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가니까 후환이 더 불안하다. 그게 다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이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말씀이 마음 안에 주장을 하지 아니하고, 마음 안에 말씀이 주장하면 말씀 안에 주님이 또 서서히 그 다음에 나오셔 가지고서, 역사 하시는 데.
말씀을 버리고, 이제 말씀을. 말씀 안에 계시는 주님을 모시지 안하고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자꾸 그러니까 상당히 자기 마음은 깨끗해지고 있으니까 그 때에 자기 생각대로 들어가 강한 마귀, 강한 옛사람, 강한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 그것이 들어가 가지고 그 사람을 주관하기 때문에 불건전한 신비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하나님도 이 사람도 세상도 다 망치는 그 걸음을 걸어가면서 가장 위대한 옳은 걸음을 걸어간다고 생각을 가진다 그 말이오.
그 ○ 집사라고 그전에 서부 교회 있었는데. 어디서 집사 돼서 왔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집사를 세왔는데, 아무래도 보니까 안 됐어. 그래서 그 사람을 '안 된다. 그라면 네가 불쌍하게 된다. 불건전한 신비주의자가 된다.' 자꾸 말을 해도 안 들어. 안 듣고 이라더만 그때 서울로 갔었는데 제가 원일 교회 집회를 하러 가니까 그분이 왔어. 그분이 왔는데, 벌써 보니까 사람이 못 쓰게 돼버렸어요. 그때 내가 있을 때에 집회할 때에 박윤선 목사님하고 이 상근 목사님하고 그때 나와 가지고서 서울서 개혁 신학교를 하려고 시작을 하고 저한테 찾아와서 좀 같이 협조 좀 해 달라고서 내려 왔었는데, 그래 와서 그때 차인가 뭐인가 그것을 대접을 했습니다. 대접을 하니까 이분이 떡 들어오더만 척 앉아, 앉아서 차를 한잔 부어서 떡 대접을 하니까 이래 떡 거머쥐고 들디만, 들디만 한참이라더만 '아, 안먹겠습니다. 이 차를 주님이 못 먹게 하십니다. 그 또 안 먹는다고 떡 놔. 또 그라디만 또 무슨 말 한 마디 하더만 또 있더만 '아, 안녕히 제십시오. 주님이 가라합니다. 또 나가요. 나가더만 한 오 분인가 십 분인가 있으니까 다시 들어와요. 아, 주님이 다시 오라 해서 왔습니다.' 그라더만, 오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왔다고서 그래. '이 오차나 드시이소.' 이러니까 '네. 주님이 먹으라합니다.' 오차 마셔. 주님이 그렇게 경거망동하는 그런 주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들어왔다가 방금 나갈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실수하는 그런 일을 하게 하지 안하십니다. 완전히 그래 돼 버렸어. 완전히 아주 못 쓰게 돼 버렸어요. 나중에. 나중에 들어보니, 그사람이 어떻게 됐는고 이래 보니까 그 사람이 ○○ 교회로 갔다 이래. ○○교회로 갔다. ○○ 교회로 가서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인간이, 인간이 그 옛사람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이 옛사람인데, 옛사람 자기를 파고 들어갈라 하면 그 파고 들어가는 그 구멍이 무저갱입니다.
밑이 없는 구멍이오. 밑이 없는 함정. 그래서 요한계시록 9장에 무저갱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주관대로 자기 사욕대로 나가는 그 깊이를 가리켜서 무저갱이라, 밑이 없는 구멍이라, 거기에 마귀를 다 가둡시다. 마귀의 처소가 거기에요. 그 무저갱이 마귀의 처소입니다. 거기에다 다 갖다 가두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이 하나님의 말씀만 사모하고 그라면 미치광이 된다, 못 쓰는 사람된다, 그런 미혹을 받지를 말고, 다 그것은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그 말씀을 생각하면 고 말씀을 생각하고 한 말씀을 생각할 때에 말씀에 말씀에 자꾸 연상이 돼 가지고서 모든 말씀을 생각할 때에 모든 말씀 그 말씀은 진리요. 그 말씀이 모든 것을 지으셨소. 모든 말씀은 그대로 지음을 받은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은 그 진리대로 관리하면, 이제 진리대로 관리하면 창조되어 있는 피조물이 파괴되지 안하고 피조물이 점점 승격돼서 영생으로 자꾸 영생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심하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차지하게 합시다.
차지하게 하면 그 말씀이 내게 대한 모든 것을 다 옳고 바르고 참되게 알려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요한 1서에 너희들이 어떻게 행할 것을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배울 필요가 없다.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시 그대로 행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성구가 어디 있습니까? 요한 1서 2장, 참 성경 잘 압니다. 2장, 어데? 네, 2장 27절. 네 그러면 한번 읽어보지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이는 성령을 합니다.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가르치며' 가르쳐 준다 그 말이오. 안심하게 해요.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가르치는 것이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네.
이러니까, 안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 우리 확정합시다. 우리 마음은 주님이 다 차지하도록 확정을 합시다. 주님이 이것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데, 이제 오늘 마치고 나서 모두 다 목자 되신 분들은 목자 되신 분들은 자기 양떼를 거느리고, 아무도 없는 사람은 자기 아내가 있으면 자기 아내, 남편을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가 가지고라도 다 새김질을 시켜서 알려주고, 또 이웃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다 해도 갔으면 또 알려주고 이래 가지고서 어짜든지 이 말씀을 다시 재독해서 그들이 한 번 더 이 말씀이 그 마음속에 박혀서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당신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심으로써 말씀을 선포해 놨는데 이 말씀 안에는 내재적 영감이 계십니다. 그 안에는 바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러니까 이제 여기에는 하나님이, 성령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거 알지 못하느냐.'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이 거하시는 것을 인정을 못 하기 때문에 인정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을 가르친 이 말씀을 가르친 이 말씀을 버리지 안하고 말씀을 새김질하고 새김질하면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요. 그러면 그 하나님이 자기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지배하기 때문에 직장 문제. 사업 문제 책임 문제, 의무 문제 다 그것을 옳고 바르고 참되게 거짓이 없이 지도 하니까 그대로 하면 되는데, 그대로 하지 아니한 것은 다 죄니라. 믿음으로 행치 않는 건 다 죄니라.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이 시간 해골 같은 것을 주님의 피로 소생시키시고 주님의 피공로와 주님의 피공로로 인한 성령님의 역사와 피공로로 인한 진리의 역사가 이 시간 하나되어 주의 말씀을 증거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도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공로의 역사와 이 피공로로 말미암은 성신의 감화 감동의 역사와 피공로로 인한 진리의 이 능력의 역사가 저희들과 하나가 되어 증거하는 자나 증거를 받은 자 전부가 이 시간 주님의 피 안에 있게 하시고 성령의 감화 감동 안에 있게 하시고 진리의 능력 역사 안에 있게 하여 주사 옛사람은 완전히 죽어서 매장되고 주의 부활로 연결된 이 새사람으로 소생되고 새사람이 머리를 들고 강건케 하여 주시고 이 새사람이 선지를 못하고 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이 사용하던 이 마음 몸, 이 육을 이제는 주님께서 완전히 탈환하여 가지고서 새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주께서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쓰시기 위하여 저들에게 미혹시키는 이 미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주님이 표적으로 이 모든 병도 다 낫게 해 주옵소서. 소경으로 온 자들도 다 눈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시고 모든 문둥이도 깨끗케 하시고 모든 신경통도 깨끗케 하시고 암병도 낫게 하시고 모든 귀머거리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벙어리가 말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이 일을 역사하시는 것을 저희들에게 나타내사 이 표적으로 말미암아 의심을 완전히 깨뜨리고 믿는 자 되어서 주님 앞에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