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1:47
인간 구원
본문 : 요한복음 21:15-18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또 주님은 모든 존재를 지으신 영원한 주인이십니다. 또 주님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요 나라도 백성도 세계도 우주도 영계도 모든 만물과 존재들이 다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이 지으셨고 그분의 것이고 또 그분이 마음대로 주장하십니다.
다만 그분이 하시는 일 중에 제일 어려운 일이 뭣이 어려운고 하니 사람이 자기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옳은 행위 하는 사람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고, 또 높일 대로 높이고 바라볼 대로 바라보고, 의지할 대로 의지하고, 섬길 대로 섬기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순종하는 이런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제일 힘이 듭니다.
그것은 왜 힘이 드는고 하니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 자유를 길러 가지고 자유 행동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하기 때문에 자유를 살려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점이 제일 어렵습니다.
또, 그 어려운 중에, 그러면 하나님을 그렇게 섬기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인데 그 중에도 하나님을 섬기되 어떻게 섬기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냐 하면 하나님이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로워하시는 그 일을 또 인간들이 그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또 제일 힘드는 일입니다.
사람이 강제하는 것도 자기 능력 이하에 있는 거는 쉽고 또 그를 이렇게 저렇게 꾀워 가지고 꾀워서, 사람을 꾀워 가지고, 마귀 모양으로, 또 마귀의 종들 된 간교한 인간들 모양으로 그렇게 사람을 꾀워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그런 일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옳게 바르게 모든 일을 바른 생각, 바른 소원, 바른 비판 바른 평가를 가졌음으로 그 사람이 '인생이 하나님을 섬기는 챰이 마땅하다'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 섬기는 것이 제일 합당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 하나님 섬기는 것이 제일 마땅하고, 또 하나님의 모든 주권면이나 하나님의 주재면이나 모든 그런 면을 다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아무래도 하나님 섬기는 게 옳다' 하는 이 사람을 만드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인간에게 자유성을 줬기 때문에 그 자유성을 길러 가지고 자유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 능동적인, 하나님과의 모든 일 되어지는 것이 유기 적으로 자유 의사를 다 용납하고 자유 의사가 능동적으로 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섬기고 하는 그런 사람 만드는 것이 하나님에게 제일 어렵습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또 사람이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귀속을 시키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을 만드는 그것도 하나님이 만드시는 방법 그대로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는 그 일을 할라고 하면은 그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우셔서 하나님과 인간이 합작하지 안하고는 그 일을 아무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전에 말한 대로 인간을 강제적으로 이렇게 해서 거게 복종시키는 그런 일은 쉽습니다. 예를 들면은 공산주의자들이 무력과 잔인을 가지고 무력과 잔인을 가지고 사람을 강제로 하니까 이북에는 벌써 한 사십 세 미만된 사람들은 그만 김일성이에게 완전히 거게 동화돼 가지고 그들은 참으로 김일성이가 티끌을 타고 대해도 건널 수 있고 그는 급하면 공중에 얼마든지 요새 이십세기의 이 비행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이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듯이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강제로, 반발하는 것을 다 학살을 시켜 버리고 나머지기를 어릴 때부터 자꾸 그렇게 길을 들여서 공을 들이니까 그외 같이 한 것입니다. 또 이종교, 이종교들이 하는 것은 다 사람들을 꾀워 가지고 그 이종교를 믿도록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이종교가 이종 교인을 만드는 것도 매우 쉽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을 만들 때에 강제로 만든 다면 강제법을 쓴다면 강제법을 써서 하는 일이 매우 쉽고, 또 그렇게 유혹시키는 궤휼의 법을 써 가지고 하면 또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의로워하시는 그와 같은 올바른 그 법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이저와 저거와 비교도 하고 또 세계도 비교하고 모든 것을 비교해서 그 사람의 양심을 살리고 자유를 살려 가지고 양심이 잘 자라고 자유를 자란 그것이, 양심이 자라고 자유를 길러서 자유가 자란 것만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진다는 그것은 참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는 사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당신을 위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평가할 때에 자기가 물질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자기의 무슨 사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의 무슨 권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사용할 온갖 보배로운 그런 것을 주님에게 바쳐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것도 다 귀합니다. 그런 것도 귀하지마는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는 것은 뭐이냐? 그런 것은 다 주님을 조그매만 사랑해도 되고 또 주님을 사랑치 아니하고 무슨 소망을 두고도 할 수가 있고 공명심으로도 할 수가 있고 있지마는 사람이 사람을 올바로 구원하는 그 일은 공명심 가지고도 안 되는 것 공명심이 있으면 그 일이 안 됩니다. 또 무력을 가지고 하면은 무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또 꾀우는 일도, 꾀우는 일 가지고 되는 것 같지마는 마지막에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그건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그 방법대로해서 해야 자유가 자라고 양심이 자라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유기적인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은 심히 어렵습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 방편이 어렵고 그 일거리가 어렵습니다. 일거리가 어려운 것은 두 가지를 살려서 길러 가지고 하기 때문에 어렵고 또 어려운 것은 그것이 다른 방법이 아니고 이렇게 두 가지를 살리고 길러 가꾸어 가지고 만드는 구원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거와 같은 꼭 그런 방편의 그런 종류의 성질의 자기 희생이 있어야 되고, 주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어 땅에 오심같이 그렇게 낮아짐도 가난해짐도, 꼭 뭐 주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되어 오심같이, 또 땅위에서 그렇게 삼십삼 년 사 개월을 사생활 공생활 하신 거와 같이, 또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푼 수고같이, 그저 성질은 꼭 그렇습니다.
물론 방편으로 쓰는 방편은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각각 다르지마는 일을 하는 방편의 본질과 본성은 꼭 같은 것이라 그거요 그 방편 외에는 되는 일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는 완전히 원죄를 벗어야 되고, 원죄가 그거니까, 그 뭉텅이가 원죄니까. 원죄를 완전히 벗어야 되고 또 본죄를 벗어야 되고 자기가 완전히 신앙의 것이 되어져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신앙의 것이 되어져야만 이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자체 변화가 되지 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체 변화가 된 것 만치 되지 자체 변화가 되지 안하고 그 일만 하는 그것은 되지를 안하고, 혹은 사람들은 눈이 어둡기 때문에 된 것같이 여깁니다.
여기는 그것이 뭐이냐? 지난밤에도 말한 것과 같이 성전 밖마당,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은 것, 사람 보기에는 무더기가 크고 덩치가 크고 양이 커서 뭐 몇 백만이 모였다. 몇 천만이 모였다. 세계적으로 움직인다 아무리 해도 풀과 나 무와 짚으로 짓는 것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이야 그거야 같이 시작하면 사람 보기는 외형의 덩치야 몇 백 배 할 수 있어. 그렇지 않소? 왜? 풀 나무 그것보다 금은 보석은 몇 백 배 아니라 몇천 배 더 귀하지 않습니까? 이 주먹덩이만한 나무덩어리야 그게 가치가 얼마일 것이며 이만한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으면 가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러니까 껍데기로 일해 놓은 형태는 아무리, 커도 속에 알맹이는 없을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어떤 자가 거짓 선지자인가? 나중에 와 가지고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한 일을 했습니다.' 할 때에 '이 악한 자야 전부 네 중심에서 일한 사람아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나를 떠나거라. 쫓아냈습니다.
그것이 내나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요, 모래 위에 지은 집이요, 내나 자기의 주관대로, -자기가 죽어진 것만치 되어지고, 낮아진 것만치 되어지고, 희생되어진 것만치 되어지고, 변화되어진 것만치 되어지지 자기가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인데 복음의 일을 해도 자기가 일한 것 있다 그거요.
자기가 있어 가지고 자기대로 일하는 것은 암만 해 봤자 한정이 있고 또 외형이 크지만 속에 내부는 점점 공허해서 세상과 꼭 같은 것이 되기 때문에 눈이 있어 볼 수 있는 자는 '저것은 이름만 예수교지 세상이다' 하는 그런 것으로 환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위하는 일 중에 주님이 제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어떤 것을 제일 높이 평가하느냐 하면 주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 본질 본성대로 그 방법대로 인간 구원하는 것을 주님이 제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기에 '네가' 위에서 '선지자를 선지자로 대우한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의인으로 대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고 또 그리스도의 소자를 소자로 대접하는 자는 냉수 한 그릇 떠준 그 수고도 상을 결단코 잃지 아니하리라 하는 그것은 물 한 그릇 떠주는 그것이 어렵고 가치 있다는 말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그 본질 본성대로 사람의 참 양심을 기르고 사람에게 자유성을 기르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리는 그 일에 대해서 수고한 것은 털끝만치 한 것도 하나님이 그 상을 잃지 안하고 그것을 당신이 보배로 여기시기를 우주 이거는 엿새 동안에 만들었지마는 그거는 단번에 그렇게 쉽게 만들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그말은 그것 뭐 이번에도 근 삼백 명이 다 불덩이 돼서 떨어져 죽고 또 6·25 때도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죽어지고 했는데 그 생명을 그렇게 귀하다는 말 아닙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된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귀합니다. 왜? 우주는 그를 위해서 있는 것이오.
아무리 부자집이라도 부자집에 외동아들이 있다고 하면은 그 부자집 모든 소유보다는 외동아들 하나가 더 큽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주와 영계가 많고 크지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하나님과 결합된 한 사람은 그보다 더 크고 또 그것의 주인공이요 하나님께는 그것보다 더 하나님이 더 필요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어린양 먹이라.' 또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또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먹이는데 마지막에, 마지막에는 '네가 양을 기르기 위해서 양의 형편의 사정이 너를 자유하고, 양의 형편 사정이 너를 자유하지 네가 너를 자유하지 못하고, 양의 형편의 사정이 너를 이리 가게 하고 저리 가게 하고 또 양의 모든, 양들이 너를 조심하게 만들고 네게 띠를 띠우고, 양들이 너를 조심하게 하고, 양들이 너를 잠 못 자게 하고, 양들이 너의 있는 전부를 다 기울이게 하고, 양들이 너 죽을 길을 뿍뿍 걸어가도록 하고, 양들이 너를 단속하게 되고, 양들 때문에 단속하게 되고 그말이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거룩하게 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양들 때문에 자기를 깨끗게 했고, 양들 때문에 자기를 단속하게 됐고, 양들 때문에 가기 싫은 곳도 가게 되고, 가고 싶은 곳도 가지 못하고, 양들 때문에 살고 싶은 것도 살지 못하고, 양들 때문에 죽고 싶은 것도 죽지 못하고, 전부 양들의 소원, 양들의 소원이라 말은 양들 저거들의 소원이 아니라 양들 그들을 구원하는 그 양들 때문에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가 되어지고 생사가 되어지는 거게까지 나아가라 말씀했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가 옆에 있는 사도 요한이를 보고 '이 요한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래 물을 때에 '그 요한은 내가 올 때까지, 내가 재림할 때까지 머물러 죽지 안하고 재림할 때까지 죽지 안하고 살고 있도록 내가 할지라도 네게는 상관없다. 그를 오늘 순교로 좋게 하든지 -예수님 의 재림이 오늘까지 그러면-한 이천 년이나 넘어 더 살고 땅위에 더 살고 그때까지 살아 있도록 하든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야 어떻게 하든지 너 상관할 것 없고 너는 나를 좇으라. 너는 다른 사람에게 대해 상관할 것 없고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한 이것만 할 일이지 다른 사람이 저래 안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내가 어떻게 그에게 할지라도 네게는 상관없다.' 했습니다.
'어떻게 할지라도 네게는 상관없다. 다만 너는 내가 네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니까 어린양을 먹이고 양을 치고 양을 기르고 또 양들로 인해서 네가 너를 단속하는 사람이 되고 양들을 인하여 네 오고 가고 죽고 사는 모든 일이 되어지는 여게까지 너는 나아가는 것으로서 끝을 마쳐라.'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참 사도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알고 해야 됩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 자기 욕심을 위해서 하는 것 있고, 또 세상적인 방편을 써 가지고 하는 것도 있고, 또 자기가 주장돼서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도 있고, 그래 하는 모든 것은 자유도 양심도 그것이 자라지는 안하고 그 양심은 자기 양심에게 속하게 되고 그 자유는 자기에게 속하게 되어지기 때문에 자유를 죽인 것이요 자유를 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보면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이어서 다 환난이 오면은 다 절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환난에 절단 안 나면 예수님의 심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면 다 절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깨닫고, 주님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도 양을 기르는 것이요, 또 두번째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내나 양을 위하는 것이요, 세번째 주를 사랑하는 것도 양을 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를 사랑하는 것도 또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또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다섯째도 모든 것을 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양을 사랑하고 위하는 그것 뿐이라 하는 것을 당신이 우리에게 결론지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닫고 우리가 이 일을 합시다. 참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렇게 보배로운 구원을 이루어 놓은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여게 모두 권찰님들 가운데서도, 또 반사들 가운데서도, 모든 제직들 가운데서도 복음의 일을 하는데 아직 어려서 내나 세상 방편과 같은 그런 방편 가지고 하는 사람들 많은데 이래 차차 차차 그런 가운데에서 자기가 진정코 그 양을 사랑해서 구원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면 하는 가운데서 차차 차차 바로 되는 것을 깨달아서, 주님이 하늘에 하나님으로 계시면서 사람되어 거게서부터 시작되어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 모든 순서, 그 모든 성질, 그 모든 형태, 그 모든 방편 그것이 아니면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다. 그것이 아닌 것으로써 구원한 것은 그것이 다 내나 세상이요 불탈 것들이지 살아 있을 것들이 아니라, 그는 반석 위에 지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된 것이 아니라, 내나 세상 만들었고 마귀 자식 만들어서 택한 자라도 그의 심신은 순전히 마귀 자식이어서 멸망받고 구원에 참여할 요소는 없다 하는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자기가, 인간이 가다가는 마음이 약 해지지 안할 수 없어서 가다가 약해지고 약해지고 하지마는 그래도 자기가 깨달음에 '참 내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으며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일을 바로 할까?' 하는 진정한 그 소원이 자기에게 불붙는 그런 것이 있어 가지고 하는 그때만, 그것만 진정한 양을 구원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 됩니다.
그것이 없이 뭐 명예를 위해서, 구역이 큰 구역이 되고 몇 사람이 나가서 물론 구역 욕심 그거 있습니다. 있는 거는 주님으로 해서 해도 주님이 내게 대해서 명령하고 요구하시는 그 숫자를 다 할라고, 자기가 다 할라고 하는 그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더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바울이 애쓰는 것도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사람같이 나타나고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사람같이 나타나서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하고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같이 이렇게 온갖 자기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다문 몇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음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할라고 하는, 양을 원하는 것은 주님의 원하시는 그 한 사람이라도 빠지지 안하고 더 구원할라고 하는 그 성질에서 하는 것과 또 양을 자기가 욕심내서 하는 거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러기에 번연히 서로 구역에서 이렇게 저렇게 시비가 돼 가지고 그 사람의 믿음이 손해가도 그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은 그 속에 잡것이 들어 가지고 있어 그것을 고쳐야 될 것입니다.
또 그런 것도 보기에 자기 보기에 '아무래도 저 사람의 관리는 내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구원에 유익할 것인데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붙들고 하면은 구원에 유익이 없고 손해갈 터인데' 이렇게 자기가 판단이 될 때에 그 사람을 자기가 구원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식구를 가지고 다투고 교인을 가지고 다퉈도 하나님 보실 때에 기뻐서 '과연 네가 나를 사랑함으로, 사랑함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원하는 다툼을 하고 있다.' 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하나는 '야 이놈아 네가 흉측한 마귀의 욕심을 가지고 지금 내 피로 값주고 산 사랑하는 자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둘이 시비할 때에 둘 다 하나님이 참 마음에 노여워할 수 있는 그런 저거끼리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양을 그저 서로 제것 만들라고 날뛰는 분개한 그런 일을 하는 시비도 있을 것이고, 시비하는 가운데 한 사람은 주님이 기뻐하시고 한 사람은 주님이 노여워하시는 자도 있을 것이고, 또 '뭐 그거야 무슨 상관 있느냐? 그러면 양보하지. 그만 그리 저거 구역으로 붙이라.' 양보하는 데도 주님이 보실 때에 아주 괘씸한 그렇게 분개한 양보도 있을 것이고 또 양보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양보도 있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 중심이 뭐 이냐? 그 중심이 주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거와 같은 그 본질과 본성으로 그런 구원을 하기 위해서 그 방편을 싯는 데에서 하느냐 안 하느냐 거게서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원하는 일을 하되 이 일을 기독자라고 하면은 직접으로 하든지 간접으로 하든지 이 일 외에 하는 것은 전부가 다 주의 피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다 노엽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 외에 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 앞에 분개해서 심판대에서 다 싹다 삣고 끊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던져 버릴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 심판의 날에 심판거리를 살찌우고 있다' '심판거리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야고보서 5장에 말씀하신 그대로 그런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런, 하나님이 이런 방편을 맡겨서 그 방편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방편 맡겨서, 어떤 사람은 사도의 방편을 맡겨서, 어떤 사람은 또 설교자의 방편을 맡겨서, 어떤 사람은 또 잘 다스리는 방편을 맡겨서, 어떤 사람은 위로하는 방편을 맡겨서, 어떤 사람은 자주 돌보고 살피는 방편을 맡겨서,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하는 그 직장에서, 자기는 직접 다른 것 못 하니까 열심히 돈벌어 가지고 인간 구원하는 거기에 투자할라고 하는 돈 벌어서 돈을 복음에 바쳐서 하는 그 방편을 하나님이 맡겨 주어서, 또 어떤 사람은 큰 일은 못 하지마는, 아랍 나라에 하나의 식모로 되어 있던 그 여아이, 그 아이와 같이 비록 포로되어 있고 그저 층층시하에 식모로 있지마는 거게서 중심이 하나님을 위하는,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그 일을 평생 소원하고 소원해도 거게서 말도 한 마디 하지 못할 곳이오.
말도 하면은 제가 뭐 쫓겨나든지 사형을 받든지 해 버리지 말도 못 할 자리고, 그러나 평생 그 모든 일을 하면서 중심에 소원은 하나님께서 그런 지혜를 주시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늘 이러니까 나아만 대장이 그 여인의 소원을 인해서 병이 들었어. 문둥병이 들었어. 문둥병이 들이 가지고 아무리 치료하라 해도 하나님이 쓸데 있어 가지고 문둥병 들고 했으니까 의학이 그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암만 의학으로 치료해도 안 된다 그거요.
안 돼서 날뛸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여인의 입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에게 가 가지고 은혜를 입으면 그 선지자가 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선지자에게 가면은 못 할 것 없으니까 가보이소.' 나아만이 있다가 '그뭐 우리나라는 그 나라보다 과학이 발달됐고 무엇이 어떻게 부강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그 여인이 오랫동안, 일생 동안 한 기도의 그릇이 차서 하나님께서 그래 만들어 놨으니까 나아만 마음을 감동시켜서 '이걸 왕에게 고해 봐야 되겠다 왕에게 고하면서 '이렇고 이렇고 이렇다 하는데 임금님이 저를 거게 보내 주신다면은 한번 가 보면 싶습니다.' 이라니까 임금님도 '그래? 어짜든지 가도록, 그러면 가는 데 뭐이 필요하나?' '예, 필요한 거는 예물도 좀 가지고 무슨 그래 가지고 가면 싶습니다.' '얼마든지 소원대로 해서 가지고 가라.' 가지고 가라 하면서 이 큰 나라의 왕이 이스라엘의 조그만한 나라에게 왕이 왕에게 편지를 하기를 '우리나라에 지금 대공신 대장이 문둥병이 들어서 암만 치료해도 안 되는데 듣기에 왕의 나라에는 선지자가 있어 가지고 이런 일을 능히 치료해 줄 수가 있다고 하니 그저 어쩌든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그 선지자를 통해서 잘 치료해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거요.
이 왕이 뭐, 그때가, 그때가 엘리사지요? 엘리사입니까 엘리야입니까? 엘리사지? 그래 그 엘리사 선지들을 왕이 그거야 선지를 보더니만 '이 새끼' 하기도 하고 그리 안 하면 뭐뭐 그 선지자들을 아주 똥같이 여깁니다. 이런 것이 왕의 편지가 오니까 얼마나 혼이 났든지 그만 밥도 못 먹고, 밥도 먹을래야 밥도 먹지 못하지, 도무지 살 기운도 없지 이러니까 모두 옷을 찢고 '이제는 참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다. 왜? 저렇게 큰 강한 나라가 우리에게 이렇게 된지한 것은 누가 문둥병자를 고칠 만한 하나님의 선지가 우리 나라에 어데 있노?' 엘리사를 말하니까 '선지자 그까짓 게 뭐 할까, 그까짓 게?.' 이러고 '이제는 찍탈을 잡을라고 하는 것이니까 우리 나라는 전멸을 당한다' 이러니까 왕이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이 소식이 엘리사에게 들려갔습니다. 엘리사가 기별을 하기를 '왕이 왜 그렇게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근심합니까? 말 듣기에 그런 게 있다 하니까 나한테로 보내십시오. 왕이 처리 못 하거든 나한테로 보내십시오.' 이러니까 엘리사에게로 보냈다 그거요. 보냈을 때에 그 나아만 대장이 '아무래도 대국 대장이 왔으니까 이거는 크게 환영하지' 싶었는데, 저게 마차를 타고 오니까 하인을 시켜서 문 밖에서 딱 중단하고 대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딱 중단을 시키고 '여게 들어올 것 없이 네가 가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고 그래 가라. 가면, 나을 것이다.' 이러니까, 버선발로 나와서 환영할 줄 알았고 왕은 마구 버선발로 나와서 기면서 야단을 지겼는데 이 엘리사는 더 그럴 줄 알았는데 들어오지도 못하게 '여기 못 들어온다. 돌아가라. 요단강에 가다가 일곱 번 씻고 가라.' 이러니까 분해서 '이제는 내가 가 가지고 군대를 거느리고 요 나라를 전멸을 시킬 것이고 요 엘리사 이놈은 내가 어쩌든지 분개를 풀겠다.' 하고서 지금 분해서 돌아갈라고 돌아가니까 밑에 있는 군대가 하나 있다 따라오다 말하기를 '어려운 걸 시켜도 우리가 할 건데 그렇게 쉬운 걸 시키는데 안 해 되겠습니까? 해 보고 안 돼야 안 된다 하지 해 보지도 안 된다고 그래 가지고 그럴 수가 어데 있습니까?' 하니까 '참 네 말이 옳다. 그래 봐야 뒤에 우리가 말할 거리가 있지.' 가서 일곱 번 씻으니까, 그러니까 뭐 징성들여 씻었겠소? 씻지 안 했지만, 휘떡휘떡 이래 씻었지마는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그렇게 그만 깨끗한 새 살이 돼 버리니까 거게서 항복을 하고 자복을 했습니다.
이게 뭐이냐? 그런 중에서라도 얼마든지 큰 일 할 수 있고, 그러니까 그 다음에 아람 나라에 그 대장이 있다가 오만 것 다 선물 할라 해도 안 되고 이러니까 '이 나라의 흙이라도 한 바리 좀 주십시오. 주시면 그 흙을 재단 모아 놓고서 항상 당신의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나라 백성이 전부 하나님 섬기게 됐어.
이러니까 어느 처지라도 일 못 할 것 없고 어느 처지라도 일할 수 있는 그런 처지 없습니다. 거게서 예수님이 사람되심같이, 십자가 못 박혀 죽었다가 살으심과 같은 꼭 그와 같은 성질로서 그 여인이 일생을 노력한 그것이 마침내 때가 되매 그것이 폭발돼 가지고 구원됐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제가 사장 노릇을 해도 인간 구원 그걸 중심해서, 하나님 이걸 맡기셨기 때문에 인간 구원하는 그 소원에서 그 사장을 해야 될 것이고 종노릇도 그래야 될 것이고, 취직을 해도 그래야 될 것이고, 매를 맞아도 그래야 될 것이고, 배를 곯아도 그래야 될 것이고 모든 것이 그 소원에서 된, 거기에 기울인 정력, 진액, 정성 그것만이 다 하나님 앞에는 필요하고 무궁세계에 등용되지 그 나머지기 그런 거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모든 것은 다 유황불로 다 몰아뜨려서 타고 맙니다. 그것만 남아 있소.
그러기 때문에 제가 직접 못 하면 돈벌어서 하고, 돈벌어서도 못 하면 자기가 펑생 그 소원하는 마음을 가져서 한 사람을 마음에 조그마치라도 감동시켜서 예수 믿는 것을 자기 몸을 보고, 자기라는 사람을 보고 자기라는 행동을 보고, 자기의 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마음 쓰는 걸 보고 그래 가지고 겨우 좀 '야, 저 사람이 이상하다.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요렇게라도 알 수 있는 그렇게 간간접으로, OOO! 안 자나? 안 자나? 조불랐나 안 조불랐나? 조불랐어? 그래. 졸면 잘한다. ○○이는 그릇을 키워야 돼. 이 ○ 그릇이 그전에 내가 이래 늘 보면 늘 걱정하는 것이 예민하기는 예민한데 그릇이 조그만하 종자기 그릇이라. 사람이 작아도 큰 그릇이 있습니다. 우주를 채워도 그 안에 차지 않는 그런 그릇이 있어, 사람들이. 그 사람은 천국 외에는 안 차. 하나님을 차지해야 되지 그짜짓 거 뭐, 정말로, 입으로 하는 줄 압니까? 아니야. 세상 것 다 줘도 속에 요만한 구석에도 차지 안해, 그런 것 가지고는. 그릇이 커야 돼.
어데서라도 자기가 직접 되든지 간접 되든지 참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 구원이 자기에게 소원된 그 요소가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영생하고 또 인간을 사랑함으로서 구원하는 그 구원에는 자기의 모든 것이 제물로 희생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왜? 그래 돼야 그것의 자유성, 자유성, 그에게 양심, 그의 모든 것이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인격이라 그렇게 말 합니다.
신격의 모형이 되는 인격으로 기르는 거기에 든 진액만, 거기에 든 정성만, 거기에 든 마음만, 거기에 든 시간만, 거기에 희생된 모든 자기의 지식만, 그것 때문에 거기에 희생된 자기 지위 다니엘 같은 사람은 그 일을 위해서 자기 지위 권세를 희생을 딱 했다 그말이오. 그러나 빌라도는 하지 안했어. 빌라도는 그가 예수님을 옳다 했어도 자기 지위 권세를 보존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다 내주고 판 그것이 빌라도라 그 거요.
이러니까 간접이나 직접이나 주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하늘나라에 가서 있지를 못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중에 특별히 사랑하는 것 어린양 먹이는 것이요, 또 사랑하는 것도 그것도 양을 치는 것이요 또 사랑하는 것도 양을 먹이는 것이다. 이러니까 시작도 그거요 전부도 중간도 그거요 다 인간을 사랑함으로 구원하는 그것 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고, 그것 때문에 참은 것도 썩어지지 안하고, 그것 때문에 손해본 것도 썩어지지 안하고, 그것 때문에 하기 싫은 것 한 것도 썩어지지 안하고, 그것 때문에 바쳐진 것만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줄 알고 제알 우리가 할 귀한 일은 주님 사랑하는 것인데 주님 사랑하는 그 방편에 유일한 것은 어린양을 먹이는 것, 양을 다스리는 것, 양을 먹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하는 방편 중에는 제일 귀한 방편인데 이 방편을 할 때에 잘못하기 쉽다 말이오.
잘못하기 때문에, 이 방편을 하는 자가 이 방편으로 복음을 위해서 하는 자가 점점 복음으로 기어들어가고 점점 거게 충성하고 점점 더 바치게 되고 점점 그것이 자꾸 참돼지고 옳아지고 발라지고 순진해지는 그것이 갈수록 순진해지면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본질과 본성 종자가 바로 된 것이고 다른 이 세상 허영이나 허욕이나.인간의 젊음이나 인간의 뭐 육체의 힘이나 활동이나 그런 것 가지고 한 것은 껍데기기 때문에 이제 육체가 쇠잔한 데 따라서 그것이 점점 쇠잔하고 또 육체가 모든 한 거게 대해서 권태나는 것처럼 권태나고, 육체가 익숙하는 것처럼 더 익숙해지기 때문에 항상 새로워지고 새것이 없고 새로 의로운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 이냐? 가짜라 그거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정년퇴직이라는 것이 그것이 실은 가짜로 일한 표시라, 하나님께서 표시한 것이라 그말이오. 가짜로 일한 것. 가짜로 일하지 안하고 점점 그렇게 해서 바로 할 법대로 했다고 하면은 인간에게는 정년퇴직을 당할지라도 그에게 성령이 역사하니까, 방안에서 방 안에서 두서너 사람 모아 가지고 하는 데에 성령이 역사해서 그가 은혜 받으니까 두 사람이 네 사람 되고, 네 사람이 다섯 사람 되고 다섯 사람이 여섯 사람되고, 이는 교회 목회는 못 하게 하면은 길가에 될 것이고 안 되면 산비탈에 될 것이고 해서 자꾸 모아 가지고 점점 그에게 과거에 배우지 못한 것 새로 배울 것, 새로운 또 힘을 얻는 것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걸 얻게 되고 새로운 걸로 자기가 자라게 돼지니까 누가 그거 하나님이 하시는데 인간이 막겠는가? 인간이 막아서 막히는 것은 하나님이 막아서 막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지 안한 것이 안간에게 막혀지지를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를 위해서 할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공연히 되니 뭐이니 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 먹고 자기의 모든 건강, 주신 건강 자기 욕심대로, 어떤 자는 돈을 위해서 골이 빠지고, 어떤 자는 권세에서 골이 빠지고, 어떤 자는 이런 욕심에서 골빠지고 어몇 자는 저런 욕심에서 골빠지고 어떤 자는 심지어 육체의 성교 욕심에서 골 다 빠지고 이래 빠지고 저래 빠져 가지고 일 못 해 놓고 뭐 하나님을 핑계하고,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분노해서 어짜든지 차각차각 재서 모아 놓습니다. 모아 놨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이 때립니다. 뭐 그까짓 게 무슨 가치 있습니까, 있기를? 우리는 뭐 가다가서 오늘 차사고에서 갈려 죽지 안하리라고 단언을 지웁니까? 못 지우요? 어리석지 맙시다. 오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안하고 만홀히 여기는 그것이 저를 만홀히 여겨서 저를 속였지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우리는 인간 구원하는 일을 직접 하든지 간접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합시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 가지고 '할 일이 뭐이냐?' 하는 그것을 말하기 때문에 말해 줬습니다. 그저 나아만 대장 집에 있던 그 여인이 큰 일을 했어. 인간들이 막아서 일하지 못하게 해도 자기는 쉬지 안하고 일하면 그 쉬지 안하고 일한 그 일이 마지막이 폭발이 될 때에는 그저 사람 보기에 자유롭게 일한 것 그만치 그 큰 무더기가 한목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이 원하는데 인간 구원에 기울이는 정력이나 시간이나 정신이나 그런 것을 헛되이 냉수 한 그릇의 수고만한 그런 수고도 헛되이 홀리지 않습니다. 절대로 썩는 데 돌아가지 않습니다. 당신을 위한 거는 썩지 안하요.
당신의 법칙대로 된 거는 썩지 안합니다. 진리는 안 썩습니다. 영감은 안 썩습니다. 하나님은 안 썩습니다. 거게 속한 거는 썩지 안하고 다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깨끗이 일합니다.
그리고 알뜰히 일하고, 그러다가 그래, 사람이 미련해서 투쟁하면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조절하지 안하면 당장에 팍 그만 해 버리고 맙니다. 기계도 기름을 쳐서 쓰면은 십 년을 살려 써서, 그 기계를 살려서 쓰면은 십 년도 쓸 수 있소. 뭐 차 이런 것도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마는 그것이 밑에 뭐 철판이 삭아서 그렇다 하는데 삭아서 그거는 그렇지마는 안에 엔진이니 그런 거는 기름 잘 쳐 가지고 잘 쓰면은 일 년 쓸 것 삼십 년 사십 년도 씁니다.
안 쓰는 게 아니라. 기계라 하는 것은. 그러나 잘못 써 버리면 그만 기름 없이 당장에 기름 없는 한 시간만 써 가지고 바짝 타 가지고 헛일되는 것도 많이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절제하라 그말은 주를 위해 하지마는 자기를 살려서, 자기를 길러서 잘 이걸 보장해서 해야 되지 미련케 하면 헛일이라.
모두 다 전부 피곤한 것도 죄 지어 피곤하고, 잠 와서 새벽기도 못 나오는 것도 죄 지어서 잠 오고, 뻐쩍 마르는 것도 죄 지어 마르고 전부 죄라. 그래 가지고 망하는 거라. 어쩌든지 우리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