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1:44
이웃사랑을 네 몸같이
1987. 11. 12. 새벽 (목)
본문: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렇게 주님에게 묻고 또 주님이 묻고 또 저희가 답하고 한 이것을 그저 우연히 만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원 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실 때에 이런 일이 다 예정됐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가르치신 이 모든 가르치심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영원 전에 이렇게 계획을 세우시고 이런 모든 순서들을 다 예정하셔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와 섭리로 예정하신 것을 다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이와같이 말했으나 이것이 예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런 시험할 질문의 말을 하게 하시고 또 주님이 거게서 대답하시고 또 저희에게 물어서 제가 또 대답하도록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율법사는 그가 현재 영생을 이루고 있다고 하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읽기는 읽었지만 실상으로 이와같이 행하지 아니함으로 인해서 그 영생은 말로만 영생이지 실은 얻지 못했기 때문에 속에 있는 사람이 변화되지 안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그 책잡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게서 우리도 알기만 하고 우리가 실행을 아니함으로 생명이 사는 생활을 우리가 맛보지 못할 때가 많고 생명이 사는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가끔 하고 계속하지 못하는 일이 되기 쉽고 또 계속을 한다고 해도 하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만 엉뚱하게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아닌 외에 마음이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작용할 때 많습니다.
주님만 사랑하는 이 마음은 새사람 영이 지배하는 마음이요 주님만을 사랑치 않는 마음, 다른 어떤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중생된 영이 주관하지 안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주관하고 있는 마음입니다. 옛사람이 주관하는 마음은 사망이요 중생된 새사람이 주관하는 마음은 영생입니다.
우리 마음은 그러면, 어제 아침에도 ‘주 하나님만’ 여게 주 하나님이라고 말했는데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주’라는 것은 우리를 영원히 책임지신 분이라 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라고 했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두고서 주 하나님이라 이랬습니다. ‘주’ 우리를 책임지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주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함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일 합니다. 주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뿐이기 때문에 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것 저것 하지 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가 아닌 사랑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면 옛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뿐이지 다른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주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뿐이지 주 하나님 외에 딴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도록 자꾸 힘을 쓰고 연습을 하고 또 지식으로 알아야 되겠다고 또 연습하고 익히고 또 그렇게 실행해 보고 이 일을 평생 합니다.
평생 해 가지고서 죽기 전에 그 마음에는 주님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고, 주님만 사랑하는 전 목숨이 되고, 또 주님만 사랑하는 전 힘이 되고, 주님만 사랑하는 내 전부의 뜻이 되도록 이렇게 이 네 가지를 자꾸 연습하고 또 이렇게 사랑하지 못하도록 할 때에 그것은 뭐입니까? 그것은 시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연단받는 것입니다.
주님만 사랑할 수 없도록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우리가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 그 계속하면 우리는 정금같이 잡탱이는 없어지고 순전히 하나님으로 인한 그 사랑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만 사랑하는 마음뿐이요, 주님만 사랑하는 목숨뿐이요, 주님만 사랑하는 힘뿐이요, 주님만 사랑하는 뜻뿐인데,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딴것은 생각할 수 없는가? 사랑할 수 없는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도 부모도 형제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찌 사랑할 수 없습니까? 주님만 사랑하는 마음이 전부됐으니까 남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 형제는 어떻게 할 건가? 주님만 사랑하는 이 마음이기 때문에 주님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가 그것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순종으로 사랑합니다. 또 주님이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또 주님이 그래야 기뻐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사랑하라 명령했기 때문에 사랑하고, 또 둘째로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고,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그러면 인간 중에 자기의 원수가 있습니다. 원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수도 주님이 사랑하라 하셨기 때문에 사랑해야 됩니다. 그 사랑도 변치 않습니다.
원수도 주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시니 내가 원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내가 원수를 사랑해야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그 원인은 꼭 같습니다. 또 사랑하는 정도도 같습니다. 왜? 주님으로 인했기 때문에.
이래서, 다만 그 차이가 있는 것은 주님 외에는 사람이 있고 주님 외에는 모든 만물이 있습니다. 그러면 만물은 어떻게 할 거냐? 만물은 어떻게 하는가? 만물도 주님이 사랑하라 명령했습니다. 또 주님이 만물을 선하다, 또 사랑하십니다.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만물을 사랑합니다. 만물을 사랑하는 것은 그를 애끼고 소중히 사용하는 것이 만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어두운 데서 구출해서 하나님에게로 인도해서 하나님과 사귀어서 화친한 화친된 자가 되도록 이렇게 노력을 하고 하나님의 모든 긍휼과 은혜를 그 사람이 받아서 구원을 얻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을 우리가 존중히 여기는 것도, 애끼는 것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도, 그에게 온갖 참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희생하는 것도, 그에게 대해서 관대하고 관용하는 것도 모두 다, 전부,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또 내가 내 명예나 지위나 권세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욕심이나 감정에 기쁘도록 만족하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순전히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를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심판을 면하고 영생합니다.
전부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완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되는 것은 다 완전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또 끝까지 변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내게 좋은 것이 있으니까, 내 젊음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내 건강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내가 육체가 아름다우니까 사랑한다, 내가 기술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내가 저를 잘 봉사하니까 사랑한다, 저를 애껴 주니까 사랑한다, 저를 위해 주니까 사랑한다, 또 사랑하면 무슨 부가 있고 소망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이런 것은 다 정욕의 사랑이요, 또 혈육의 사랑이요, 동류의 사랑이요, 욕심의 사랑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부 폐단이 생겨집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은 사랑해 갈수록 더 깨끗해지고 거룩해지고 온전해집니다. 이러나 그만 사랑하다 보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혼돈시켜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시작한 사랑이 나중에 가 사랑하다 보면, 용모가 아름다와서 사랑하는 것, 또 내게 잘하니 사랑하는 것, 내 욕심을 인해서 사랑하는 것, 엉뚱하게 이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 가지고 사랑하는 사랑이 자기도 모르게 변해 가지고서 육덩이의 사랑 마귀 사랑으로 변질돼 버리고 맙니다. 마귀 사랑으로 변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남자마다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랬습니다. 왜? 그는 멀리 사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고 좋지만 약할 때는 잘못하면 하나님의 사랑 가지고 시작해 가지고서 마귀 사랑으로 변질돼 나가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녀를 구별해서 멀리 해라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여 인간 사랑으로 전락하기 쉽고 또 인간 사랑으로써 차차 향상 돼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화되기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혈육의 사랑, 핏줄 사랑, 또 동류 사랑, 또 이성끼리 사랑하는 정욕 사랑, 이 사랑이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변화되는 한 소개가 될 수 있고, 한 줄기가 될 수 있고,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도화선이.
도화선이라 말은 만일 다이나마이트를 재어 놓고 불을 지르면 불이 피피피피거리며 물 속에라도 타고 들어갑니다. 그래 가지고 그 다이나마이트에 대이면 크게 폭발을 하는 그 불을 연결시키는 그 줄을 가리켜서 도화선이라, 불을 끄는 선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이것 저것 모든, 배암의 사랑으로 사랑하던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화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해서 배암의 사랑으로 아주 변질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배암의 사랑이 있느냐? 그 사랑을 가지고 차차 차차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시킵니다. 성화시킵니다. 그것을 우리가 있으면 그렇게 하고 없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화시키기 위해서 배암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은 그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백이면 백 시험에 들어서 사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있는 배암의 사랑이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점점 성화시키도록 노력을 하고, 시작하거든 아예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해야 되지 배암의 사랑으로 시작해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화되는 사람이 없고 자기는 그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도, 또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직장을 사랑하는 것도, 예술을 사랑하는 것도, 또 자기는 모든 경영한 사업을 사랑하는 것도 다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을 사랑함을 인해서 그것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함을 인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떠나서 그것만으로써 독단이 사랑하기 때문에, 돈뿐만 아닙니다. 사람도 주님 떠나 독단이 사랑하면 망합니다. 모든 만물도 자녀들도 부모들도 형제들도 주님을 떠난 독단으로 사랑하면 망합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이 되지 안할지라도 그 사랑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 형제 부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사랑할 때에는 그 사랑을 자꾸 하나님 사랑하는 사랑으로 사랑하려고 변화시켜서 성화시키려고 애를 쓰는 노력이 부절히 계속해서 있어야 됩니다. 계속해 있으면 어느 단계가 되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부모 형제 자매를 사랑합니다. 그 사람은 다릅니다.
만일 그 부모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사랑이 되면 그 사랑을 끊어 버립니다. 그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요 말 한 마디는 안 함으로써 요 부부 부모 형제 자매가 사랑할 수 있는데 요 말을 안 하면 주님이 노여워하신다 할 때에는 그 말을 하면 혈육의 사랑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 말을 안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말을 안 하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 앞에 자꾸 기도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 발표를 안 하고 어째 그게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도록 애를 써서 그 말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가지고서 그것을 방비해서 그 사람과 사이가 끊어지지 안하고 이렇게 어떻게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도록 애를 씁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 가지고 그렇게 속으로만 기도해 가지고 그렇게 되어지면 다행이고 그래 안 되도록 하나님이 시험하십니다, 또.
그래 안 되도록, 네가 하나님을 사랑할라 하면 이 형제를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부부를 사랑할 수 없고, 부부를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요런 요리도 조리도 요동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만을 사랑함으로써 그 형제를 불의의 사랑을 불법의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다 지나가고 난 사람들은 뭐 으례히 하나님만을 사랑함으로써 부모 형제 자매 부부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하는 것이 실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나 부모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나 그 사랑이 한 군데서 나왔고 또 한 종류요 하기 때문에 한 정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의 그 모든 만물이나 인간이나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함을 인해서 거게서 벋어나와 가지고서 사랑해야 하고, 우리의 삶의 목숨이라는 것 우리 생명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이 이것 저것을 모두 다 접촉하는 모든 산 생활, 이것 저것 뭐 접촉하는 사는 생활, 이것 저것 접촉하는 모든 생활 말이요, 이것 저것 접촉하는 모든 살이, 요것 생활이라고도, ‘생활’ 하면 딴 말로 삐끄러져 나가지 `살이라' 사는 것 살이, 살이라 말 하면 돼요? 어째요? 사는 것을 살이라 하면 됩니까? 사는 것이라 그러면 사는 것을 제 삼자격으로 말하는 것이 이제 살이라 하는 말이 되는데 우리 말에는 살이라 말하면, 사는 살이, 사는 것, 사는 그 자체를 말할 때는 살이라 말이오. 살이. 또 생활이라 하면 벌써 자기가 이것 저것 하는 것을 말하니까 요 살이라는 말을 해야 되는데 우리 나라 말로써는 요 살이라는 말이 요것 잘 공통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라.
우리가 사는 모든 것 말이요, 우리가 사는 모든 것도 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삽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가지고서, 모든 물질에 대해서 사는 것도, 또 사람에게 대해 사는 것도, 일에 대해서 사는 것도, 모든 사는 살이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살이 가지고서 삽니다. 알아듣겠습니까? 그러면 내가 어떤 예술품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자연의 풍경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산이나 저런 데 모든 자연 만물을 볼 때에 우리가 그것을 사랑합니다.
사랑으로 감상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살이 가지고서 그 모든 돌도 사랑하고 나무도 사랑하고 또 짐승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목숨 가지고 그것 사랑한다 말이오.
또 이렇게 사랑하는 모든 힘을 합니다. 그것 짐승을 사랑하면 쓰다듬어 주고, 또 화초는 사랑하면 물을 주고, 모든 자연은 사랑하면 보고 감상을 하고 하는 그 힘이 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힘 가지고서 그것들을 사랑합니다.
‘내가 이 돌을 어데 정원수를 갖다 놔야 되겠다, 요 꽃을 하나 심어 가지고 요것을 어떻게 길러봐야 되겠다.’ 요렇게 ‘화분을 사다가 심어서 길러보겠다' 하는 그 모든, 그것이 계획이요 그것이 뜻입니다. 계획이요 뜻이오. 그 뜻도 주님을 사랑만 하는 뜻, 주님만 사랑하는 뜻, 주님을 사랑하는 뜻 그 뜻 가지고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를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사랑하는 계획과 뜻을 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 목숨 힘 뜻 이 전부는 주님만을 사랑하는, 주님만을 사랑하는 마음뿐이라야 되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목숨뿐이라야 되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힘뿐이라야 되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뜻뿐이라야 돼. 이렇게 되기를 우리가 목적하고 지금 노력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여러 수천 년을 대대로 이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서 배암의 사랑 가지고 살아왔던 우리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당대애 고쳐진다는 것이 참 힘듭니다. 잘 고치면 당대에 고쳐질 수 있고 당대에 고쳐지고 나면 그 다음에 이세는 고치기가 쉽고 이런데, 이거 저 외국에 종교국 그런 미국 나라 영국 나라 그런 나라는 위의 선조가 가진 것을 자손이 더 많이 가지고 이러는데 우리 나라는 못된 이 마귀의 습성이 들어 있습니다. 아주 나쁜 습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다 남의 나라보다 앞서 가는 그런 선진국들은 자기의 부모가 하는 것이면 자손이 따라 하려고 애를 씁니다. 대개는 부모의 하던 장사를 자손이 하고, 부모가 하던 그 기업을 자손이 가지고, 부모가 하던 그 예술을 기술을 자손이 하는 것인데 한국 사람은 부모가 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부모가 하는 것은 싫어하고 반대합니다. 분명히 부모하는 게 나아도 부모 하는 건 싫어합니다.
목수의 아들이라면 목수의 아들은 목수를 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나은데, 보고 듣고 어릴 때부터 했었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부모가 목수하는 그 목수를 자손이 하면은 누구보다도 뛰어납니다. 목수 직업은 나쁜 것입니까? 나쁜 것 아니오.
만일 음악이든지 뭐이든지 부모의 하는 것을 자손이 이대를 계대하면, 이대를 계속하면 다른 사람이 못 따라옵니다. 삼대를 계속하면 못 따라옵니다. 삼대나 사대를 계속하면 세계가 못 따라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나라는 모든 세계에 다 선진국이라 하는 그런 위치를 가지게 됩니다.
한국 사람은 그렇지 안해. 부모가 하는 그 일에 너무 애로가 있고 고통스럽게 하니까 그렇기는 그럴 수 있지만 ‘아이구, 우리 아버지는 목수 일 하는데 아이구 목수 일 하는데 그 고통스러운 것. 그것 나는 목수 일은 죽어도 안 한다.’ ‘목사 일은 죽어도 안 한다' 부모가 하던 일이면 자손이 하기를 원치 않는 그런 자손들이 되어지는 것이 한국 종자입니다. 한국 인종이오.
물론 위에 선조가 잘못 산 것도 있겠지만, 하는 것을, 뭣이냐? 그 자손 보기에 기쁘고 즐겁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그런 원인이 하나 제일 큰 원인입니다. 부모가 목수노릇 하면서 ‘참 기쁘다’ 목수노릇 하면서 기쁘고 즐겁고 세상에 자손이 ‘아버지가 목수노릇 하는 게 그렇게 기쁜가배’ 자꾸 이래 가지고 자손이 흉내를 내도 아버지 목수 하는 흉내를 내고 기쁘고 즐거워하면 그것들이 다 그래 할 터인데 목수노릇 하면서 자기 직업을 하면서 짜증을 지겨 놓으니까 그 자손들이 그만 그 직업은 짜증나게 하니까 그 자손들은 말도 듣기 싫고 꿈에도 보기 싫다 그거요.
이런데 무슨 직업을 할 때에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부부 삽니다. 내외 삽니다.
내외 사는데 그 남편이 목수노릇을 합니다. 그 아내가 ‘야, 참 목수노릇 하는데 아버지는 참 돈도 잘 벌어오고 참 목수노릇을 하는 것 좋다.’ 아버지 하는 그 직업을 좋다고 품안에 젖을 먹이면서 이것을 가르쳐 놓으면 자손이 아들이 목수노릇 할 건데 이것이 ‘아이구, 너일랑 목수노릇 하지 마라. 아이구 목수노릇 그 진저리 난다.’ 이래 놓으니까 그놈이 목수노릇 할 리가 없어.
데리고 앉아서 ‘야, 너거 아버지는 목사노릇 하는데 참 목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너는 목사 돼라.’ 자꾸 목사노릇 하는 것 좋다고 이렇게 해 놓으면 자손이 목사가 됩니다. 이런데 안고 앉아서 ‘에이구 징그러, 목사노릇. 에, 시어머니 많고. 간섭하는 사람 많고, 보는 사람 많고, 자유 없고, 에이구 목사노릇. 너는 커서 목사노릇 하지 마라. 너는 목사한테 시집가지 마라.’ 요렇게 가르쳐 놓으니 그게 될 리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망합니다.
부모의 업은 무슨 업이든지 다 업은 좋은 업이오. 하나님이 특별히 빼서 옮기는 건 어짤 수 없지만 할 수만 있으면 부모 하던 그 직업을 자손이 계대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누구보다도 앞서 합니다.
여러분들, 여기 테레비 뭐 비디오인가 테레비인가 저 하는 것 사층에 학생들 때문에 둘 갖다 놨고 또 일층에 앉는 사람들이 강사 얼굴을 못 보니까 안됐어서 그것 이번에 갖다 놨는데 이번에는 잘 좀 싸게 해 가지고 와서 두 개에 천칠백만 원 줬습니다. 또 사층에는 일제인데 그것은 이천만 원 줬습니다. 그까짓 것 그런 나라와 무슨 상관 있어? 그것도, 그것도 벌써 몇 대를 계대한 그 사람들이 땄다 그말이오. 그 사람들이 땄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죽자 살자 하고 골빠지는데 앉아서 슬슬 재미로 이렇게 저렇게 연구해 가지고서 해 놓으니까 그것 하나에 천만 원이니까 열 개면 얼마지? 열 개면 얼마고? 일억이가? 또 백 개면 얼마고? 십억이라. 그것뿐이요? 뭐이든지 다 그렇습니다.
직업은 귀천이 없어. 직업은 꼭 같애. 죄 짓는 직업이 아니면 꼭 같애. 이러니까 부모의 직업을 왜 자손이 계대하지 않느냐? 요것은 한국 사람은 협동심이 없고 개성을 가지기 때문에, 요 죄악을 완전히 깨뜨려야 된다 말이오. 그걸 동상이몽이라 해. 한 침대에 둘이 거머안고 누웠기는 누웠지만 속은 꿈은 딴 꿈 꾸고 있어, 딴 꿈 꾸고. 꼭 제 주장, 요 개인 주장, 개인 주장, 개체주의, 요것은 개체주의는 망합니다. 개체주의라는 그것이 전체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면 그것은 다 도태되고 망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거는 조금 다른 데로 이어서 말했는데, 어제 아침에 말한 것과 같이 주 너의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뿐, 주 너의 하나님만 사랑하는 목숨뿐, 주 너의 하나님만 사랑하는 힘뿐, 주 너의 하나님만 사랑하는 뜻뿐. 이 마음 가지고, 이 목숨 가지고, 이 힘 가지고, 이 뜻 가지고, 주 하나님을 위해서, 주 하나님을 위해서, ‘위해서’ 오늘 아침에 말했는데 몇 가지를 위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를 위한다 했습니까? 저 뒤에 손가락으로, 뒤에 와도 그거야 몰라? 손가락 들어 봐요, 자꾸 안 오기 때문에 모르지. 다섯 개? 다섯 개 들고 있네. 세 개. 주님이 명령했기 때문에 주의 명령 순종으로. 또? 주님이 좋아하시기 때문에 내가 좋아해야 돼. 또 하나는, 마지막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 전생활이 이래 됩니다. 이거는 전체가 주를 위한 생활이요, 주를 위한 생활이 뭐 위한 생활입니까, 딴 말로 말하면? 너 한번 말해 봐. 주를 위한 생활이 딴 말로 말하면 뭐 위한 생활이지? 진리를 위한 생활이요, 참을 위한 생활이요, 곧은 걸 위한 생활이요, 완전을 위한 생활이요, 완전 생활이니까 행복이 될 수밖에 더 있는가요? 오늘 아침에 그 다음 말씀을 할라 했는데 시간 많이 지나갔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웃에 대해서는 뭐 하나님이 이래 사랑하라 저래 사랑하라 말하지 안하고 간단하게 쉽게 가르쳤습니다. 네 몸같이 사랑하면 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깜깜하게 모르는데 뭣할 것이요? 오늘 아침에도 평소보다 좀 많이 나왔는데 나오면 살아요, 안 나오면 죽어. 그까짓 것 암만 재미 있게 자빠졌어도 소용 없어.
‘오늘 돈벌이 갈라 하면 피곤하니까 좀 누웠어야 된다.’ 또 `공부할라 하니까 피곤하니 누웠어야 된다.’ ‘아이구 깨우지 말고 그저 좀 더 누워자구로.' 그게 들어서 죽이요. 하나님 섬기는 데는 섬겨 가지고 손해가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 가지고는 마음도 손해 안 가고, 목숨도 손해 안 가고, 힘도 손해 안 가고, 뜻도 손해 안 가고 모든 활동이 손해가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나왔는데, 어제 아침까지는 못 나오고 오늘 새벽에 처음으로 나온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들어 봐요, 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나온 사람들 손 들어 봐. 녜, 저 하나 있네. 정직하게 드는데, 그러면 자꾸 나오던 사람뿐이라, 보면. 못 나오는 그것은 뒈졌지 못 나와.
‘에이고, 서부교회 목사는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다 뒈졌다 하더라.’ 뭐이 뒈져? 새사람이 지금 파묻혔고 새사람이 지금 골케골케거리고 있지, 뭐.
참사람은 벌써 병들어서 약해졌어.
그것도 하루 아침도 제맘대로 못 하는 고기덩어리를 그까짓 놈 가지고 뭐하구로? 불에 태워버리지. 김현봉 목사님은 죽을 때에 ‘내 시체는 태워라’ 기어코라도 태웠어. 자기 부인도 요번에 죽었는데 꼭 태우라 해서 태웠어. 왜? 그놈은 보배는 보배지마는 복종시킬라 하니까 그놈이 어떻게 안 듣는지? 성화된 것은 다 부활할 것이고 성화되지 안한 것 나머지기 성화되지 않은 찌끄러기 그놈 때문에, ‘요놈은 불에 바짝 태워버려야 된다. 바짝 태워서 재가 되구로 태워버려라’ 분해서 말이지.
자기 고기덩어리지마는 새벽기도 못 나오구로 하는 그 자기 고기덩어리를 미워할 줄 알고 요놈은 쳐서 복종을 시켜야 돼. 고린도전서 9장에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난 다음에 내가 버림이 될까 두려움이라” 고기덩어리도 주님을 위하는 고기덩어리는 보배라 얼마든지 위해 줘요. 주님을 위하는 고기덩어리는 보배지마는 주님을 위하는데 반대하는 고기덩어리는 그놈은 죽여야 돼. 그놈은 밥을 굶겨야 돼요. 주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고기덩어리는 보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고기덩어리 이것도 마음도 달래고 고기덩어리도 달래요.
달래 가지고 ‘네가 이대로 순종하면 영생하고 순종 안 하면 너는 망한다.’ 살살 달래 가지고 되면 되고 안 되면 그만 밥을 굶겨요. 안 되면 밥을 굶겨버려.
‘요놈 새벽기도 안 나왔지? 밥 안 먹인다. 새벽기도 안 나갔지? 점심도 안 먹인다. 새벽기도 안 나갔지? 저녁도 안 먹인다.’ 그래 놓으면 몸뚱이 그놈이 ‘아이구 내일 아침에는 내가 새벽기도 나오고 밥 먹는 게 낫겠다.’ 만일 새벽기도 안 나가면 밥 굶기기로 작정하고 계속만 하면 그놈의 몸뚱이가 새벽기도 꼭 나갑니다. 나흘만 굶겨보십시오. 사흘만 굶겨보십시오. ‘아이고 굶는 것보다 새벽기도 나가자.’ 요것만 작정하고 새벽기도 안 나가면 밥 굶길란다 요것만 실행하면 고기덩어리가 그만 당장 복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