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본능

 

1980. 11. 22. 토새

 

본문 : 유다서 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나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또 저희는 또 저희는 이성없는 짐승같이 그러면 우리는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요 사람이요 일반인도 아니요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난 우리들입니다.

우리 속에는 무한한 진리가 우리를 살렸고 무한한 하나님이 우리를 살렸으니까  하나님의 그 전지 전능의 그 모든 속성과 진리에 그 세밀과 능력이 우리를  살려서 그 힘으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가 우리는 무한으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무한으로 살아난 자들 무한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무한히 그것이 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한이라면 완전인데 완전은 달성되는  것은 아니나 그 모형적으로 그를 닮아갈 수 있고 거 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인데 우리가 이렇게 에 유력한 존재요 유망한  존재인데 이것을 벗고 짐승같이 살기 쉽습니다. 짐승이 아닌데 짐승같이 살기  쉽습니다. 우리는 짐승과 같이 살 수도 있고 하나님같이 살 수도 있고 진리같이  역사할 수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심한 양극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짐승같이 그렇게 허무한 자로 살 수도 있고 하나님같이 살 수도 있고 진리같이  역사할 수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심한 양극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짐승같이 그렇게 허무한 자로 살수도 있고 참 하나님과 진리같이 그렇게  세밀하고 권위있고 바르게 살수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되지는 안하지만은서도 하나님 같이는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되지는 안하지만은 하나님 같이는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창조주 될 수는 없지만은  피조물로서 하나님 같이는 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도덕면으로 지능면으로 하나님 같이 되어져라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없는 짐승같이 되어져라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이성 작용이 없이 그만 본능대로  사는 기 뭐인데 자기 ㅈ관대로 자기 감정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에게 이매 있는  그것 대로 사는 것이 본능대로 사는 것입니다. 남이 쥐 박으니까 아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손해 보인까 손해본 그 사람으로 다른 사람이 욕을 하니까 욕 얻어  먹은 그 사람으로 추우니가 추운 그 사람으로 더우니가 더운 그 사람으로 다른  사람이 추키 올리니까 추키 올리지는 그 사람으로 다른 사람이 멸시하니까  멸시받는 그 사람으로 자기 된대로 자기가 현재 되 가지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본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능으로 사는 것 자기가 현재 되 가지고  있는 그대로 사는 것 우리는 수많은 현실과 세상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에게 충격을 받습니다. 또 모든 것을 다 봅니다.

듣습니다. 접촉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마치 이 거울과 같소 이 거울이 어디든지  닥치면 거울은 여 와서 다 비추지지 않습니가 무엇이든지 갖다가서 새 있으면 새  비추고 개 있으면 개 비추고 사라 있으면 사람 비추주고 꽃 있으면 꽃이 비추고  모든 것이 이 거울에 다 반사되는 것처럼 비추워지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우리가 접하는 대로 돌려지는 대로 보여지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느끼지는 대로 우리에게 이것이 반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가 그 씨름하는데 가면 씨름하는 씨름 잘하는 사람 되고 싶고 춤추는데  가면 춤 잘추는 사람 되고 싶고 노래 잘 부르는데 가면 노래 잘 부르는 사라  되고 싶고 그기 뭐이냐 그것이 다 그것들에게 존재들에게 반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응을 받은 고대로 반사하는 그것이 뭐이냐 본능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비추워지는 그대로 나타내요 거울 그놈은 사람이 비추워지면 사람만  갖다가 사람 그대로 나타내요 아무 것다 갖다가 이상 작용은 없습니다. 그 본능  그대로요 비추워지는 그대로 나타낸다 그말이오 자기에게 반응된 그대로 사는  것이 본능으로 사는 것이요 그것을 갖다가서 그 이치적으로 따지는 그것이  이성으로 사는 것이니다. 자기 뭐 비춰지지만은 여게 대해서 아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이 어찌 되는냐 일단 좀 비판해 보라 그말이오 비판해 본 요것이  이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 비판 없이 자기 생각나는 대로 자기  욕심나는 대로 자기 뜻 나는 대로 자기 지금 갖다가서 충격 받은 대로 무엇에게  반응이 됐든지 거게 반응된 대로 이대로 살면 멸망합니다. 그러니가 우리는  본능으로 사는 것은 그것은 자기로 사는 것 같지만은서도 자기로 사는 것이  아니고 그거는 모든 세상 만물 그대로 생명없는 거울같이 사는 인간이요  거울같이 사는 인간 이거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 생활은  멸망이라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서 언제든지 내가 이성으로 살아야 된다 이성으로  살아야 된다 그 일단 이성입니다. 첫걸음이 이성이냐 본능이냐 그러면 이성이  되면 이성이 갖다가서 어 어디로 끌고 가는가 우리는 주의 구속을 받은 구속받은  사람입니다.

구속받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이성으로 비판해 보면 내가 어떤 재를 저지른 어떤  자로 어떤 멸망 받을 나를 어떤 분이 어떻게 큰 분이 어떤 분이 나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해서 어떻게 나를 구속해서 나에게 어떤 희망을 주셨고 이 희망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그 지극히 큰 어떤 도우심이 내 배후에서 지금 나를  밀고 있는 이것을 생각하는 이것을 가라쳐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말했습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이 있고 그러면 주님의 피와 살을 어떻게 우리가  입으로 먹겠소 성만찬을 떡과 포도즙을 입으로 먹으니가 그것이 주의 피와 살을  먹는 것라고 그것은 주의 파와 살을 먹는 것을 하나 표시한 의식입니다. 그 먹는  것 아니요 그거 안먹어도 되요 의식입니다. 주의 피와 살을 참 먹어야 되요 주의  피와 살을 참 먹어라 말은 입으로 먹는 기 아니고 이성으로 먹습니다. 이성  이렇게 저렇게 모든 이치를 생각하는 그 이치 생각하는 이성으로 먹습니다.

이성으로 먹어서 주님의 피와 살을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주님이 내가 무엇  때문에 주님이 피 흘려 내가 어떤 재를 저질렀기 때문에 어떻게 비참하게 됐는데  그분이 어떤 분인데 그분이 나를 이렇게 구속하는 데는 어떤 희생을 해서 대속을  해야만 되는 그런 깊은데 바졌던가 그러면 대속해 주신 것이 뭐이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인데 이 대속해 주신 이 대속의 그러면 소망이 뭐이냐 소망이  기막히게 측량 못할 지극히 큰 소망입니다.

그러면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배경에서 지금 밀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는 어떤가 그러면 이를 내가 입을라면 내가 어떻게 입을 수 있는가 믿음으로  입을 수 있는데 믿음으로 입는 기 뭐인가 이제는 중심을 바꿔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겠다 하나님 중심에서 삐뚤어진 다른 것 때문에 이렇게 큰 힘 드려서  이렇게 됐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지 안하고 내 중심으로 살면 자기  중심으로 사는기 뭐이냐 그것이 이성을 사용하지 안하고 본능으로 살면 그거는  필연적으로 자기 중심이 되고 맙니다. 자기 중심 돈에 충격 받았으면 돈에 충격  받은 그 중심 어떤 감정에 충격 받았으면 감정에 충격받은 그 중심 어떤  남자에게 어떤 여자에게 충격 받았으면 그 남자 여자에게 충격받은 그 중심 그  본능대로 그것이 중심이 되 버리고 맙니다. 그 본능대로 그것을 중심해서 그것을  위주해 가지고서 모든 걸 비판하고 평가하고 경영하고 자기가 경영하고  다스립니다. 이러니가 이성 없이 살면 필연적으로 본능 곧 자기 중심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가 우리가 무엇을 닦칠 때에 어 중심이라면 내가 이 중심으로 저 중심으로  살면 하나는 구원이요 하는는 멸망입니다. 하나는 한 없는 권능이요 하나는 한  없는 비차이요 못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이성입니다. 이러니까 뭐  닥칠 때에 중심도 생각지도 안했고 이러니가 무슨 중심으로 결정도 안햇고  그러니가 순전히 자기 본능 본능이면 자기 주관 자기 욕심 자기가 현재에 충격되  가지고 무엇에게 반응을 받았던지 반응받은 그대로 이러니가 만물보다 거짓되지  만물은 그래도 제 정체 정색 정질을 가지고 있지만은 인간이라 하는 것은  기이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것을 접촉하는 데에 그 수많은  것이 내게 반응이 되서 반응된 그대로 내가 반사를 나타내고 있어진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이 가지지 못한 이성을 가졌습니다. 이성을 가지고 이걸  비판하면 그 모든 내기에 반응되는 그것을 내가 다 작용할 수 있고 요리할 수  있고 그걸 조작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이성이 없으면  그만 그대로라 이성 비판이 있다고 해 가지고서 그것이 능히 그 모든 것을 바로  정평 정가할 수 있으냐 없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만 할 수 있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는 이것을 하나님처럼 진리처럼 비판할 수 있습니다. 평가 할  수 있습니다. 거게 대한 대책을 또 경영을 한다고 해서 인간은 못하지만은서도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믿음은 연단하는 것은 금을 연단하는  것보다 낫다 그말은 이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은 뭘 하시느냐 무엇을 남구고  무엇을 절단내버리느냐 인간의 지능이라는 인간의 요소라는 것은 완전히 절단내  버립니다. 인간의 요소는 하나도 절단나지 안할 수 없으빈다. 처음에는 요만침  인간의 요소를 절단내는 현실을 주기고 마지막에는 이만침 절단내는 요소를  주시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자기에게 있는 인간 요소를 절단을 내고 순전히  하나님과 진리로만 되어지는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입니다.

이러니까 이 손은 있지만은서도 이것이 내게 있는 생명의 그 주관대로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생명은 아니지만 산 것일 생명은 그에게 완전히 피동되서  그대로 움직였던 것이 순연히 살앗다 그말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진리로 피동되는 이것으로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어디서 작용되느냐 일단 이성으로 살으라 그말이오 일단 이성으로  살으라 좀 생각해 봐요 생각해서 살으라 이것 없이 이성 이성이 자기를 주관하고  이성이 그 다음에는 양심이라는 선배에게로 인도를 하고 양심이 이제는 주님의  구속으로 인도해서 구속을 관련시키면 벌서 거게 새사람 납니다. 새사람 나오면  그만 그것이 영입니다. 그 나오면 그러면 진리와 하나님과는 하나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유기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자기가 자의식으로 신앙 생활  하는 것이 자의식이 없이는 안됩니다. 자의식으로 자기의 의식으로 신앙 생활  하는 그 것이 뭐이냐 자의식이라는 그것이 하나님으로 진리로 인해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참 사람 자기 입니다. 자의식으로 사는 이것이 둘이 되어서  하는는 자기의 본능대로 사는 그거는 자의식으로 사는 기 아니라 본능대로 사는  거기 때문에 그거는 저로 사는기 아니요 본능대로 사는 것은 제가 사는 것이  아니고 본능대로 사는 것은 이 거울같이 거기에 비추주는 모든 만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자기 밖에 있는 이 사람 만나면 이 사람 되고 저 사람 만나면 저 사람 되고  돈 만나면 저 사람되고 짐승 만나면 저 사람되고 꽃만나면 저 사람 꽃되고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그 본능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사는 그것이 이제  제일 껍데기 생활이요 고 안에 들어 있는 양심 생활이 고 안에 들어가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소개해서 구속이라는 줄을 타고 구속이라는 이 문으로  들어가면 자기 만납니다. 이러기에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이 생명길 인간이 참  자기를 찾는 데는 주님이 구속하신 이 대속하신 이 대속을 자기가 생각하고  사모하고 사모하는 가운데서 참 사람 자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성이  없으면 이성으로 살지 아니하면 벌써 생명 생활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천리 만히  거리가 멉니다. 이성으로 산다고 그것으로서 이성 생활이 성공을 하면은 뭐이냐  신앙 양심 생활에 도달합니다.

신앙 양심 생활에 도달하요 신앙 양심 생활에 도달하면 신앙 양심은 뭘  가르치느냐 우리의 양심은 순전히 주님의 이 구속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  양심이라는 거는 주님의 구속을 가르치고 있어 주님의 구 빠져있는 어떤 자를  어떻게 크신 분이 어떤 사랑으로 어떤 큰 희생으로 어떤 큰 욕망을 가지시고  어떻게 큰 사랑의 역사를 베풀어서 이러니가 나 욕하는 그것도 주님의 사랑 내  것을 빼들어 갈라하는 들어온 도적도 주님의 사랑 그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사랑으로서 그 모든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작용해서 나를 어떤 그 사죄 칭의  새생명 받은 자로 이렇게 살게 한 이것을 생각하고 여게 관련해서 내가 이런  사람이로구나 이런 사람으로 살아야 되는구나 내가 이런 자로구나 하는 그때에  그 자가 영입니다. 중생된 영입니다. 그 자가 새사람이요 참사람이요 그러면  이제는 그의 생애가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면 이제  진리로 인하여 주님으로 인하여 진리는 주님의 역사요 주님은 진리의 주인공이요  이렇게 우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성 없이 이성 없는 짐승같이 그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가지고  멸망하느니라 우리가 이 두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사느냐 이성이 있는 이성으로 비판해 가지고 사는냐 자기 이성이 예수님의  대속을 전문으로 전공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한다면 그거는 이성이 아닙니다.

자기가 아 돈이 내게 왔는데 이 돈에 대해서 내가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어떻게 해서 돈벌이를 할까 요라면 손해가 되겠다 유익이 되겟다 하는 고것이  이성인 줄 알고 이성 아니요 고 물욕입니다. 고 욕심이 하는 것이요 이성이  아니고 욕심입니다. 욕심인지 이성인지 비판하지 못하고 욕심으로 살면서  이성으로 사는 줄 알면 안됩니다. 이성은 이치를 상대한다는 그 욕심 이치를  생각하는 그 이성이 아니요 그거는 물욕이 들어서 정욕이 들어서 색욕이 들어서  행락욕이 들어서 생욕이 들어서 음욕이 들어서 명예욕이 들어서 안일욕이 들어서  욕심 그놈이 지금 하는 것이지 이성이 하는것 아닙니다. 이성은 양심으로 이끌어  드리는 것이 그것이 이성이성입니다. 양심이 외부에 나와서 작용하고 있는 고것이  이성입니다. 그러면 양심으로 들어가면 양심은 주님의 구속을 소개합니다.

이러니가 이성이 구속을 소개해서 구속으로 들어가면 벌써 갖다가 양심하고  동행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예수님의 구속 안에서만 비로서 자기를  찾을 수가 있고 자기는 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일단 외부에서 본능으로 사는 이것을 우리가 싸워야 되겠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같이 그 본능으로 하는 것으로 멸망받느니라 본능이 주장하는 그대로  본능 생각대로 본능 마음대로 본능 비판대로 본능의 지능대로 그래 살면  멸망되고 맙니다. 그거는 짐승은 이성이없어 본능 뿐이라 인간이 본능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 인간의 본능으로 사는가 자기가 과거 현재에 모든 세상에게 비춤을  받아서 자기에게 반응되어 있는 그것이 자기 본능이라 그대로사는 것이 그것이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밤에 그 중심이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 갈다  그말은 고기 갖다가서 중심이 하나님은 선악을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선악을 규정지웁니다. 선악에 대해서 이기 선이다 악이다 이렇게 자기가  지적하고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이요 아 하나님 이 이거는 나를 안  좋아 하니가 이거는 악이다 이것은 날 좋아 하니가 선이다 이것은 나에게 가까이  하니 흥한다 나에게 벌리하니 망한다 자기가 뭐인데 자기 좋아하면 좋은 것이고  자기 싫어 하면 싫은 것이고 자기 가까이 하면 살고 자기 멀리하면 안된다 자기  위하면 복받고 자기 위하지 안하면 안받고 자기가 뭐인데 자기가 뭐인데 자기가  완전이요 자기가 완전이기 때문에 이 완전은 그래야 되지 안전이 갖다가서 완전  위하지 안하고 다른 것 위하는 것을 갖다가서 산다면은 그거는 완전히  범죄했습니다. 완전히 범죄할 수도 없지만은 널리 주가 말하면 그렇다 그말이오  이러니가 하나님은 자체가 완전이기 때문에 당신 중심으로 이렇지만은 인간은 자  자기 귀에 눈에 몸에 모든 신경에 접촉되는 그대로 반응하는 이 반응성이  강합니다. 반응의 존재로 갖다가 이 지음받은 이것이 자기 눈에 귀에 들린 모든  접촉하는 이대로 반응됐으니까 이기 짐승됐다가 이기 사람 됐다가 이기 뭐 감정  됐다가 별별 것이되어지는 만물은 그대로 변하지 안하지만은서도 여래 백으로  천으로 변해지는 천태 만상으로 변해가는  이러니까 만물보다 거짓되지 아무 정체가 없어 정함이 없어 그 실체가 없어  이렇게 변해지면 변해지는 그대로 자가 거 따라서 사니가 그것이 어찌 됩니까  그것이 자기 중심이라 자기 중심이 뭐 하나가 있는기 아니라 자기 중심 뭐  하나가 있는기 아니라 돈 접촉할 때는 돈 중심되고 어떤 갖다가 부자 아들이  기상 접촉할 때는 기상 중심이 되고 도장에 갈 때에는 도장 중심이 되고 이렇게  되는 인간이라 그말이오 응 그러기 때문에 에 자기 중심은 하나가 아닙니다. 천인  만인이 보면 중심이 천가지 만가지요 하나님 중심은 하나뿐이지 이러니가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면 그 다음에 암만 애써야 헛 일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다 하나님이 그런데 이것이 돈 중심으로 되어 있는 자기가 돈 중심인지  과연 돈 중심이 되어서 됐는데 돈 중심인 자기를 좋아하면 그것은 선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반대하면 나쁜 것으로 인정하고 자기를 도우면 자기는 좋다고  하고 자기를 반대하면 그건 싫다고 하고 이러니가 이거는 참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입니다. 얼마나 죽는지 몰라 그러기 때무에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다 그말은 선악을 그 사람이 선악 규정하는  것이 성부가 당신 중심으로 성자가 당신 중심으로 그는 완전자 이신데 곧 역사는  셋이지만은서도 실은 위는 셋이지만은 한 분이십니다. 본체는 하나십니다.

이러니가 그 모든 행사가 다 완전이라 이러니까 그분은 완전이 아닌데 자기  중심이라 모든 것을 저 좋도록만 할라고 꾀를 쓰고 이기 망하는 기라는 것을  멸망인 줄 모르고 어떻게 멸망인 줄 모르고 저 좋도록만 꾀를 쓰고 저  유리하도록만 꾀를 쓰고 제가 완전입니까 절 위하도록만 이걸 떠나기 전에는  멸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엇을 당하든지 그거 우리에게  비추오는 것은 하나님이 지어 놓은 그대로 반응이 옵니다. 오면 그 다음에 내가  뭣 하느냐 이성으로 비판해 자 이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느냐 내 중심으로  하느냐 우리 아내 중심으로 하느냐 남편 중심으로 하느냐 아들 중심으로로  하는냐 우리 상관 중심으로 하느냐 우리 민족 중심으로 하느냐 국가 중심으로  하느냐 다 죽었어 하나님 중심 하나만 살아 자 내게 이것이 반응되 왔는데 이걸  어떻게 할까 하나님 중심한 그것은 뭐이 됩니까 그것이 내 양식이 됩니다. 내  밥이 되요 그기 뭐냐 밥이요 내 인격의 밥이요 그것이 내게 비추어서 반응되  들어 왔는데 돈이 들어 왔소 뭐이 들어왔소 지위가 들어 왔소 어떤 사람이  들어왔소 뭘 접촉햇어 그래 내게 접촉 했으니가 내게 갖다가서 반응이 되어서  내가 그걸 느끼지 않읍니까 그끼는데 이것을 비판 이성으로 비판해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그걸 처리하면 그것이 나를 키우는 좋은 요래가 됩니다. 그것이  나를 길러서 힘있게 만드는 밥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아니하고 이성 없이 비추워지는  그대로 내가 갖다가 움직여졌으면은 그것은 나를 삼켰어 나는 그것의 밥이 됐어  나는 멸망받았습니다. 이러니가 우리가 좀 생각해서 살아야 될 터인데 어짜든지  멸망받을 옛사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그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거는 비판도 못하는 것 같애 뭐이든지 그놈 중심이라 말하는  전부가 여게서 저게서 보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는데 거게 보면 이면이  빤질빤질하고 좀글을 좀 공부도 좀 하고 똑똑하고 한 사람들은 접촉해 보면은  그기 교회 두통거리 애먹이는 것입니다. 분명히 보면 잠시 앉았다가 말하는데  자기 중심이라 하나님 중심이 거게 없어 사욕적이라 주관적이라 세상적이라 이  세상 처세술이고 세상에 속한 사람 아주 갖다가서 그것만 위하고 거게 맞추어서  번들번들합니다. 번들번들 하요 민첩하요 말 잘해요 그러나 너는 교회 두통거리다  보면 이거는 좀 갖다가 거죽밤시 같은데 속에 살았어 참 놀랠 일이 있습니다.

목회자들도 목회하는데 놀랠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기 목회를 막  부흥시키고 아주 훌륭한기 교회를 망치고 이것도 놀랠 일이지만은 아 말이야  얼마나 잘하는냐 하늘 나라는 뭐라 했읍니까 말에 있지 않고 뭐라 했읍니가  권능에 있어 말 그거만 안되 말하고 뭐고 같이 있으면 그기야 괭장하지  이것보다도 이 다음에 심판 넘어 가면 참 기막힙니다. 심판 넘어가면 참 놀랠  일이 있습니다. 거 가면 참 놀랠 일이 있어 거게는 매수 당하지도 안햇고 설복  당한 것도 없고 충격 받은 것도 없고 완전자 그분이 아무 것에게도 자존하신  그대로 주권적으로 자존 그대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서 정당하게  딱해서 고대로 대우하고 보응을 해 놓기 때문에 좋은 날이 그기 있기 때문에 살  맛이 있어 땅위에 있는 인간 같으면 살 맛이 없어 왜 악한 자가 선한 척하면  이중 삼중 심겁 열가지 겁데기도 더 입고 있으니가 무얼 바라고 살기라 갖다가서  응 또 그기 언제 어찌 될지 압니까 참 우리의 희망 중에는 완전하신 그분이  계셔서 그분이 마지막에 모든 최후처릴르 최후 심판을 가릴 것이기 때문에 살  맛이 있어 살 희망이 있어 왜 옳은기 억울해도 다 그것이 그대로 나타내서  억울함을 다 나타내줄 것이요  거짓된 것을 그대로 다 나타내 줄 것이요 아무대로 충격 받지 안하고 피동되지  안하고 매수 당하지도 아니하고 정평 정가도 될 그 나라가 그 나라를 세우는 그  나라 왕이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다 이리저리 치우쳐서 헛 일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런 자기 됐기 때문에 날마다 고치는 것이  우리 전부요 우리 전업이요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고치는 것이 전공이요 사이비한  것들이 가득 찬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이성이라 하는 이 무기를 가지지  안하고는 살 수 없어 이성이라는 무기를 가져야 되 그 다음에는 양심이라는 이  양심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야 되 그 다음에는 내가 구속을 타고 들어가면 진리로  성령으로 구속 안에 들어있는 내가 있어 이것이 자기를 찾은 것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리면 온 자기 잊어버리고 온 천하를 얻어도 소용 없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얻기 위해서 자기를 잊어버립니다. 자기를 놓치 버렸어 자기를 찾은 것은  온천하를 얻은 것보다 낫다 했습니다. 그기야 낫지요 자기 잊어버리면 무슨 소용  있읍니까 이러기에 우리의 생활이라 하는 것은 이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복잡하고 세밀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예  인간의 힘으로 할수 없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했습니다. 없는데  전지 전능의 하나님과 이 진리만이 이 생활할 수 있는 이 어려운 생활인데  이러니까 우리 할 것은 무엇이냐 우리 할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을 다 기우려서 이 생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기 뭐이냐 이성이요  그것이 양심이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의  하나님의 능력에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말은 믿음으로 인해서 능력의 보호가  우리에게 오게 되 가지고 있습니다.

고걸 우리가 다 입고 있습니다. 능력으로 인한 이 그 믿음으로 인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도록 되 가지고 있는 기라 우리가 입었으니 우리가 되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이 능력의 보호를 입는 데는 믿음이 아니고는 안되 믿음이  뭐입니까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접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이성 없이는 찾아 가지는 못 하는 기라 그러므로 요 절수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하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이  사람들이 무엇인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느니라 어짜든지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아닌 거는 전부 삑고 깎는데 나가 말이냐 그말은 무슨 말이냐  자기 자기는 자기가 무슨 돈 중심이 됐든지 무슨 현재는 무슨 중심인데 오늘 이  중심이었다가 내일은 저 중심이었다가 자꾸 중심이 바뀌집니다. 이런데 그걸로  사니가 자기 아닌 모든 것은 다 대적이 된다 그말이오 다 대적된다 그말이오  얼마나 고립입니까 얼마나 고립이요 얼마나 비참이요 자기의 대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까짓기 뭐인데 갖다가서 자기 아닌 모든 것을 다 능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화약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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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736 이간/ 창세기 3장1절-19절/ 880205금새 선지자 2015.12.16
1735 이간의 의미/ 창세기 3장 1절-7절/ 880206토새 선지자 2015.12.16
1734 이간죄/ 창세기 3장 1절-19절/ 880205금야 선지자 2015.12.16
1733 이계명/ 출애굽기 20장 6절/ 890113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6
1732 이계명-우상/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30830화새 선지자 2015.12.16
1731 이김을 주시는/ 고린도전서 15장 56절-58절/ 791102금새 선지자 2015.12.16
1730 이단에 대해서/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840928금새 선지자 2015.12.16
1729 이단-여호와의 증인/ 로마서 8장 5절-11절/ 870525월새 선지자 2015.12.16
1728 이단이라 핍박할 때의 전투 방법/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80924토새 선지자 2015.12.16
1727 이동을 전제한 투표/ 1988년 10월 교역자회의록 선지자 2015.12.16
1726 이리가운데 양이 할 일 세가지/ 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840206월새 선지자 2015.12.16
1725 이방인의 행불행의 원인은 교회/ 신명기 28장 47절-51절/ 870905토새 선지자 2015.12.16
1724 이복순 집사 장례/ 디모데후서 4장 7절-8절/ 880903입관예배 선지자 2015.12.16
1723 이삭의 신앙/ 창세기 26장 1절-33절/ 811206주후 선지자 2015.12.16
» 이성과 본능/ 유다서 1장 10절/ 801122토새 선지자 2015.12.16
1721 이스라엘/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30831수새 선지자 2015.12.16
1720 이스라엘로 돌아오라/ 출애굽기 12장 8절-10절 / 791123금새 선지자 2015.12.16
1719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4가지/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31019수야 선지자 2015.12.16
1718 이스라엘의 범죄/ 이사야 9장 8절-12절/ 1976년 25공과 선지자 2015.12.16
1717 이스라엘의 범죄/ 민수기 25장 6절-13절/ 830717주전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