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가운데 양이 할 일 세가지

 

1984. 2. 6. 월새

 

본문: 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내지의 성령이시니라

 

 이 말씀들은 다 기독교 사회성을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모든 사회는, 세상은 장소도 바뀌어질 때가 있고 또 그 성질이 바꾸어질  때도 있습니다. 바꾸어지는 사회, 바꾸어지는 그 장소. 또 바꾸어지는 모든  사건들 그렇게 접해서 자꾸 변동되는 그런 세상살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공간적인 장소가 바꾸어지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꼭 같은 사회로  이렇게 보지마는 장소가 바꾸어지지 안해도 그 우리의 환경인 사람이  바꾸어지든지, 용모가 바꾸어지든지, 모든 상관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 심리가  바꾸어지든지 이리 되므로, 우리의 이 세상살이는 내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나  생물들이나 또 무생물들이나 모든 것이 자꾸 바꾸어진다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그렇게 주님이 자꾸 변하지 않는 그런 상대로 일관되면 우리의 마음이  요동치 않겠고 좋겠는데 자꾸 그만 우리의 접하고 사는 그 현실을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또 눈에 보이지도 안하지마는 또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그 깊은 은밀한 면을 우리에게 바꾸는 그런 것들이 자꾸 생겨지는가 그런데  대해서 우리는 오해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세상에서 사는 이것이 우리의 살 곳이 아니고  세상은 우리가 여러 가지로 준비하고 연습하고 연단받고 연성하는 그 준비  기간으로 세상을 주신 것이지 영주처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러면 준비해 가지고  갈 곳은 어딘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곳입니다. 그러면, 그곳에 가 가지고 우리가 사는 데에는 그 모든  종류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또 공간적으로도 넓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가치적으로도 아주 복잡하고 또 비판적으로도 아주 복잡한 그런 곳을 우리가  향해서 갑니다. 그러면, 그 곳을 향해서 가니까 자기가 좁은 자기 가정에 있던  사람이 넓은 사회생활 할라 하면은 좀 복잡하고 얼떨떨한데, 이렇게 세상에 살던  사람을 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로, 죽어 부활해 가지고는 그곳에 가서 우리가 살  것인데 모든 면으로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복잡합니다.

 그러면, 그곳에 가서 사는데 그곳에 가 가지고 우리가 어떤 위치를 가지고  살건가?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직속 위치를 가지고 또 모든  피조물을 다 자기 아래에, 자기에게 속하고 자기가 그것을 통치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게 다 필요한 것을 계속 수시로 공급해 주는 이런 참 존귀한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만물은 발등상이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 교회는 만물 안에 있고  주님은 교회 안에 있다, 그 교회는 우리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지내는 기간이 길지를 못하고 불과 뭐 백 년 미만이요  넘어봐도 그저 백 몇 십 년밖에는 안 되는 그 짧은 기간에서 영원에 살 수 있는,  영원에서 우리의 그 복잡하고 고귀한 직책을 감당하는 그것이 우리의 준비하는  것이니까 그 준비하는 준비기간에는 복잡한 것 변해 지는 것 거기에 있는 종류를  다 우리가 접할라 하면 접하지 못하지마는 하나님이 간추려서 그저 세상에서  접해 보지 안하면 안 될 그런 것만 접하게 해서 하나 접하면 열 가지를 알고, 또  어떤 것은 하나 접하면 백 가지도 알고 이렇게 지름길로, 지름길적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접해 가지고 간단명료하게 해 가지고 그 하나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연상하고. 또 거기에 대한 모든 충분한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우리들은 이 변해지는 그 환경과 세상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만 그  수많은 당신의 능력을 써 가지고 변동시켜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그 교제를  자꾸만 이렇게 바꾸어 주는 이 사실인, 하나님의 광대하신 사랑과 세밀하시고  구비하시고 우리를 애끼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여기에 대해서 권태 낼  것이 아니고 짜증지길 것이 아니고 우리는 단 마음을 가지고 또 여기에서 새로운  지식도 방편도 모든 애로도 다 겪어보고 연단해서 준히해 보자 그렇게 이 바로  깨닫고 모든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건너다 볼 때와 자기가 그 자리에 설 때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것을 우리가 당할 때마다 이것은 무궁을 향하여 가는 내가 준비하는 기간이다  하는 그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되지 불신자들 모양으로 그저 여기에는 '아,  무엇이 풍성하고 궁핍하다. 여기는 대적이 많고 여기는 다 환영한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여기 똑똑히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그 모든  것을 대할 때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냄과 같도다' 너거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 이런 마찰 저런 마찰 이런 애로 저런 애로 전부 애로  속으로만 들여보내고, 마찰속으로만 들여보내고, 내가 도무지 모르는 그런  모르는 세계로만 자꾸 들여보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이 사랑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서 어떤 그 희망성을 가진 소망성을 가진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기 전보다도 원망 불평 낙망으로 그 사람은 배나 지옥의 자식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만 '예수 믿을 필요가 없다' 그래 가지고서 낙심하고 아주  방탕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님이 지극히 작은 것 머리털  하나까지도 주권의 그 능력을 가지고 우리 위해서 섭리하시는 이 지극히  세밀하고 광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 모든 것에 대한 준비를 갖추어야 할 희망이  지극히 광대한 우리인 것을 자기가 깨닫고 현실을 만나면 그 현실 속에서는  한없는 그 지혜와 능력과 또 그 덕과 영광이 가득 찬 것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하늘나라의 연습이라 그렇게 볼 수 있고 세상은 지옥 연습이라  어떤 사람은 지옥 연습을 하고 어떤 사람은 천국 연습을 해서 각각 실력을  갖추는 세상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현실은 양은 우리를 가리킨 것인데 양을 이리 가운데, 양을  제일 해하는 것은 이리입니다. 이리는 강하고 양은 순하고 약합니다. 이러니까,  네가 접할 때마다 네 환경은 전부, 아무리 신혼을 해서 신혼 부부라도 그 아내가  그저 친근한 줄만 알고 사랑인 줄만 이렇게 생각하고 그 아내가 이리도 될 수  있는, 이리도 될 수 있고 또 이리가 될 때도 있고, 될 수도 있고 이리가 될 때도  있고, 아무리 친근한 그 동지라도 이리도 될 수가 있고, 아무리 자기에게 필요한  물질이든지 또 그 일의 성사든지 그런 것이라도 일방적으로 '좋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알게는 '이리라' 그러기에 이리 떼로만 그렇게 생각을  가지면 우리는 치우침이 없고 잘못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리인 줄 알고  살아라.

 그러면, 왜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가? 양은 이리를 대항할 수도 없고 이리를  피해서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양보다는 이리가 아주 몇배 빠릅니다. 또  강합니다. 그러니까, 양. 이 이리를 발견할 때에는 자기는 이리를 두려워해야  되고 이리를 첫째는 두려워해야 되고 이리에게 자기는 잘못하면 삼켜지기 쉽다.

이리를 두려워해야 되고, 둘째로는 이러니까 목자에게 가까이 안겨지는  이것이라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좋다 마음 놓고 살고  내가 거기에 모든 것을 맡겨 둘 만하다.' 이런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두려운 줄 알고 살아라. 아무리 신혼부부라도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참 두려운 줄 알고 살고, 또 거기에서는 그저 주님 앞으로  가까이, 목자이신 주님 앞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아서 여기는 안심하고 참 마음  척 놓고 살 수 있다는 그것을 네가 생각하면 잘못 알았다 그것을 두려움인 줄  알고, 두려운 것인 줄 알고, 왜? 내가 그것을 이리로 알고 주님 앞으로 그로  인해서 가까이, 이로 인해서 주님으로 가까이, 저로 인해서 주님으로 가까이,  주님으로 가까이 되면 그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은택을 베푼 그 이웃이 되고 또  내가 그로 인해서 주님에게 가까이 갈때에 그것이 나도 그이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먹여 주는 것이 결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모두 '긴장 완화라 긴장하고 살지 말고 마음 툭 털어  놓고 살아보자.' 해서 그 긴장 완화라는 말이 지금 많이 나돌고 있고 이랬는데,  성경은 정반대로 긴장 완화할 것이 아니라 네가 긴장할 대로 하고 조심할 대로  조심하고 주의할 대로 주의하고 마치 세상살이를 그저 살얼음 디디는 것같이  그렇게 조심해서 살지 안하면 안 된다, 왜? 그것이 다 살얼음같이 네가 빠져  죽을 수 있는 것이지 여기는 아무리 구불어도 괜찮고 안심할 수 있다 그런 것  아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피곤합니다. 긴장을 가지는 것은 피곤하고, 이렇게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내심과 같이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둬 두시는 그 실상대로  그것을 정상적으로 알게 되면 아는 그 신앙생활은 피곤합니다. 그 피곤한 것은  그것은 필연성입니다. 우리가 무궁을 준비할라고 하니까 여기에서는 떨어지면  죽을 것이고 빠지면 죽을 것이고. 그래서 세상을 가리켜서 유리 바다라,  불바다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빠지면 타고 빠지면 죽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또  세상은 잘 보면, 참 유리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투명돼 가지고 환하이 보이는  것처럼 세상은 환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요, 빠지면 죽는 세상이요 빠지면  불타는 세상이라, 그러나 세상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잘 건너가 가지고서 언덕에 설 그때가 실력을 갖추어 주님  앞에 설 때에 참 만물에게 필요하고 주님에게 필요하고 또 주님과 만물도 내게  필요한 그렇게 다 영생이 되어지는 그 실력을 갖춘 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요  말씀을 굳게 잡아야 되지 이 말씀을 그저 이렇게 지내가는 말로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요 이리인 줄 모르고 사는 데에서 다 삼켜졌습니다. 뭐  삼켜지면 참 어떻게 무서운지. 삼켜지면 일 년도 삼켜질 수 있고 십 년도 이십  년도 삼십 년도 평생도 삼켜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 이리인 줄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게 일평생을 삼켜져서 마지막 죽을 때에서 눈을 떠  보니까,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제 죽음을 보고 죽음을 보고 부활도 보고  하나님의 심판도 보고 무궁 세계도 보니까 자기가 이리 인 줄 모르는 요 한  무지에서 일생 동안을 거기에 삼켜지고 손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요  말씀을,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주님이, 변치  않는 주님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애끼시고 사랑하시기를 생명을  버려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애틋하신 이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한 말씀도 허투런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씀의 그 신실성을 우리가  불변적으로 우리 전부를 다해 가지고서 확실히 믿고 바라는 준비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들을 이리 가운데에 보냄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 배암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말은 뱀은 이 에덴동산 배암을 두고서 말씀하는  것이고, 비둘기는 이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에  비둘기같이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배암이 하는 그 배암의 지혜와 지식과 행동을 알아야 하고,  성령님의 지혜와 지식과 하시는 일을 알아야 한다 둘 다 알아야 된다, 네가  알든지 모르든지 둘 다 접하니까 둘 다 아는데, 배암은 우리를 죽인 것이  배암이오, 성령은 우리를 살린 것이 성령이기 때문에 배암의 지혜와 지식과 그  모든 행동도 다 알아야 되는데 그것은 알 때에 그것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인류 시조가 배암에게 빠져  가지고서 죽었기 때문에 그 아는 것은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고. 또 이 비둘기같은 성령은 우리가 그를 따라서 살기 위해서 알아야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기 때문에 네 환경에 대해서  말하면 둘 뿐이다, 배암과 성령, 마귀와 성령이 둘 뿐이니까 네가 마귀에 대한  일을 알아야 되지 마귀에 대한 일을 모르면 안 된다, 또 성령에 대한 것도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 된다, 뭐 할라고 둘을 알아? 마귀에 대한 것은 모든  사람이 거기에 빠져 죽었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그걸 알아야  되고, 또 성령에 대한 것을 아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만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나기 위해서 성령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현실에 대해서 요 세 가지 지식을 똑똑히 가지도록  합시다. 요것을 똑똑히 가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또 의심하고 단정을 짓지  안하면 안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 세상을 이 세 가지로 압니다. '아,  내가 이 좋은 환경 이제는 외롭게 살다가 신혼 결혼을 했으니까 이제는 참  포근한 쉬는 그런 자리를 만났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제가 죽든지 그  사람을 죽이든지 둘 중에 다 죽여 버리지. 이제는 내가 혼자 있을 때보다도 좀  더 이리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으니 자기 환경을 이리로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이 틀림없으니까 이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지 이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거기다가 맡기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 외에는 맡길  자리가 없고. 믿고 의지할 자리가 없고, 바라볼 자리도 없고, 지도받을 자리도  가르침 받을 자리도 없고, 참 바라 볼 자리도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전부 주님 외에는, 내가 잘하면 그것이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유익을  보고 나로 인해서 그도 유익을 보고, 내가 잘못하면 전부는 내가 그 죽이고 그가  나 죽이고 하는 그 결과만 맺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환경은 언제든지 이리라, 이리라는 것은, 이리라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 지식을 가지는데 첫째는 두려워해야 되는 것,  그것을 두려워해서 아내가 신혼부부이지마는 이 신혼부부로 인해서 내 친구지만  친구로 인해서, 이 친구로 인해서 내가 삼켜 죽을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또 이로 인해서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갈 수도 있다, 그러면 이는 두려워함을  가지고 두려움으로 낙망할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깨닫고 주님 앞으로, 이 풍랑  인해서 더 빨리가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요 지식, 요 사회성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기에 대해서 두 가지 알아야 된다, 주님이  나를 향하여 역사하시는 그 역사도 알아야 되고, 또 마귀가 나를 향하여서  역사하는 배암의 역사도 알아야 되고 주님의 역사도 알아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직접은 듣지 안했는데 ○○○목사님이 철학을 가르치는,  그 철학 시간에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서. 우리가 철학을 배우는  것은 철학을 우리가 구원받는 지식으로 삼을라고. 이 철학을 써 먹을라고 우리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 철학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라 하는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을 제가 간접적으로 옆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그  강의를 하는데 그 무슨 강의고?' 하는 것을 한방에 있는 다른 학년이 와서  배우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듣고 '아' 그 말 들을 때에 나는  속으로 짐작을 하면서 그 참 경험있는 소리요 아주 실력있는 소리다.

 철학은 우리 타락한 인간 속에 있는 그 본능이요 본성이요, 그 원죄성 그것인데  철학은 자기 속에, 인간 속에는 완전이 들어 있다 완전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완전만 찾아가면 된다,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이렇게 보는 것이 철학이요 온  세상 사람들 전체가 다 그렇게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  벌써 선악과 먹은 후 자손이기 때문에 전부 정죄 아래에 있다 악이라 보는데  그거 영 다릅니다. 세상은 인간을 선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을 뭘 자꾸 디비고  날뛰고 연단하고 뭐 어떻게 하면 그 선하게 될 줄 아는데 그게 자꾸 연단하고  그것을 연구하고 자꾸 길러 가면 점점 작은 악이 큰 악이 되고. 또 좁은 악이  넓은 악이 되고 그것이 아주 한 악이 민첩한 악이 되어서 그 악이 점점 자라게  되는 것이지 절대 생명이라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보고 또 깨달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  그러므로 배암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어디든지 딱 가면 의논할  때에 '아 요게서 보자. 여기에서 배암이 역사하는 배암 역사를 보자.' 배암  역사를 보면, 제가 얼마 전에 권찰회 할 때에 배암 역사가 짝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참 아주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고 연약하다.' 또  거기에 성령의 역사도 또 일어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과 배암이 하는 일을  어디서든지 이 두 가지를 짐작해야 네가 배암하는 일에 빠지지 안하지 배암하는  일을 알지 못하면 배암하는 일에 삼켜 져 죽는다. 여기에는 또 성령의 하는 일이  반드시 거기에 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또 발견해서 알아야 된다. 그 성령의  감동된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그 개인 개인의 신앙 양심 속에서 역사하는 그  성령의 역사가 있을 터이니까 그 두 가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깊은 속에 있는 배암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 이 두 역사를  네 현실에서 언제든지 봐야 된다, 그런데, 그 현실은 거기에는 이리가 있고  목자가 있다, 네 현실에는 이리가 있고 목자가 있고 거기에는 배암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있다 하는 요것을 알고 처세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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