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대해서

 

1984. 9. 28. 금새

 

본문: 에베소서 6장 18절∼19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우리가 기도할 제목은 첫째로 자기가 모든 면에 하나님을 힘입어서 살 수 있는  이런 자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첫째 기도 제목이요, 두 번째는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다 자기와 같이 이렇게 믿음 생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달라는 기도를 우리가 할 것이요, 또 셋째로 기도할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그 비밀을 담대히 자기들에게 전해 주시기를  그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증거하는 그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은 이  성경에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이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무신론자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유물주의자들도 읽을 수 있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그 기독교의  대적들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그런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로 기록한 그 속에 성령의 감화를 입어서 문서 계시 속에 우리의  구원의 곧은 길. 아주 첩경으로 지름길 그 길을 가르칠 수 있도록 간단하고  명료하면서 우리의 구원을 확실히 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렇게 길을 바로  인도할 수 있는, 복음의 비밀이라는 것은 문서 계시 안의 성령 계시를 발견해  가지고 문서 계시와 성령 계시를 함께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기도하는데, 특별히 거기에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  그러면, 이 문서 계시는 누구든지 다 볼 수 있지마는 문서 계시 안의 영감  계시는 아무나 다 알기가 어렵고, 택한 자면 다 알 수 있지마는 그 힘씀에  따라서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힘쓰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고로 다 알기  어려운 일인데, 이 일에는 특별히 담대를 붙여 놨습니다.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담대가 없으면 알리지를 못합니다.

 왜? 복음의 비밀을 말하면 반드시 그 시대에 거리끼고 또 그 환경에 거리끼고  모두 다 삐뚤어진 것들에게 거리끼기 때문에 대적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선지자  중에 순교를 안 당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선지자 중에는 다 거의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순교 당하는 것이 왜 순교를 당하는가? 그것은 복음의 비밀을  말하니까 대적들이 많이 생깁니다. 복음의 비밀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리 예수  믿으면 좋다 하고서 그것을 칭찬하고 안 믿는 사람도 좋아하고 믿는 사람도  좋아하고 다 좋아하는 그게 있고 참 믿는 사람에게는 좋고, 참으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좋고 하나님의 복음을 이용해 먹는 악한 무리에게는 거슬림이  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악한 자들 세상이기 때문에 악한 자가 왕 노릇하고  권세를 잡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하늘나라는 의인들의 나라요. 의인들의 나라요  의인들이 권세를 삼기 때문에 하늘나라에는 악인들이 거기에는 용납지를 못하고  이 세상에는 의인들이 용납하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저 하는 사람들은 다 핍박을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그 비밀을 성신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깨달은  사람들이 차차 차차 성신의 감화로 깨달은 그 깨달음이 엷어지고 얕아지고  희미해지고 그렇게 똑똑해지지를 안합니다. 왜 그리 되는가? 반드시 거기에는  마찰이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박해가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박해가 오게 되니까  그 박해를 면하기 위해서 차차 차차 조금씩 유하게 이렇게 말을 해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유하게 말하니까, 유하게 말하니까 하나님에게는 불충이  되어지고, 또 더 유하게 말하니까 세상은 좋아하지마는 하나님은 싫어하시게  되고 이래 가지고 차차 차차 복음의 비밀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저도 그런 일을 합니다. 이래 놓으니까 이 편집실에서 말하기를 안식교니 그런  데 대해서도 '이 안식교는 이단으로 이렇게 정죄를 하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안식교를 그전에는 이단이라 했지마는 지금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는데 이 목회  설교록이 나가면 다 그런 사람들 손에도 들어갈 터인데 그런 사람들이 이  안식교를 이단이라 한다고 그렇게 달라 들어서 그걸 시비를 걸면 어떻게  됩니까?' 하는 그런 염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 사람들은 다  박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면, 미국서는 어떠냐?' 미국서는 벌써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옛날은 이단이라고 다 했지마는 뭐 옛날 아니오. 해방 전에는 다  이단이라고 했는데 해방 후에 한국만이 아니고 세계의 복음은 해방 후에  가속도로 속화돼 가지고 가속도로 세상화 되어졌습니다. 요새는 지금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데요.

 또 천주교는 분명히 이단입니다. 천주교가 이단이기 때문에 천주교와 이  개혁교가 생길 때에 한 달에 죽은 사람, 뭐 개혁할라 하면 하루 이틀에 합니까?  여러 해가 걸리는데. 한 달에 제일 많이 죽은 사람의 숫자가 십 만 명이라  이랍니다. 그러면 십만 명이면 십만 몇 천 명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달에  천주교에서 우리가 믿는 이 개혁교, 교회서 바로 사도가 믿는 그대로의 사도적  신앙을 가지려고 이렇게 함을 인해서 죽임을 받은 사람들이 한 달에 십만 명이  죽임 받았다, 그거는 역사에 기록해 있으니까,  그렇게 죽임을 받은, 그렇게 삐뚤어진, 한 달에 십만 명이 죽으면서라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니까 바로 믿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바로 믿는 그 말을  하다가서 뭐 죽은 사람이 무시로 않습니다. 옳은 교리를 말하다가 죽임 받고  옳은, 교리를 말하다가 죽임 받고 이러다가, 죽임 받았는데, 그 한 달 동안에  죽임 받은 숫자가 제일 많을 때에 십만 명이 됐다, 나는 그걸 모르는데 박 윤선  목사님 주석에 '한 달에 개혁하기 위해서 죽임 받은 사람이, 한 달 동안에 죽임  받은 사람이 제일 많이 죽임 받을 때에는 십만 명이 죽임을 받았다' 이렇게  기록한 것을 봤습니다. 그거는 아무나따나 짐작해서 기록하는 게 아니고 다  여기에 어디든지 근거를 해서, 역사가들이 근거하고 그래 또 그런 걸 근거를 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인데, 그렇게 십 만 명이 죽었으니까 몇 십만 명이  죽었는지 모르는, 그래도, 죽어도 이거는 이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개혁을 해 놓은 건데 요새는 합동 번역을 합니다.

 천주교를 또 이단이라 한다고 '이거 해 놓으면 큰 일 납니다.' 이러고, 우리  교회서도 신고함에 편지가 길게 왔어. 그래서 그걸 내가 늘 보관하고 있었는데  내가 대략 짐작도 하고 또 회개도 하는 것 같고 이래서 그걸 대중 앞에 읽어  줄라 하다가, 대중 앞에 그는 안 읽어도 조문 조문으로서 부부적으로는 늘  여러분들에게 말을 해서 다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천주교를 이단으로  정죄한다고 우리 서부 교회 교인 가운데서 신고함에 써 넣었어. 써 넣었는데,  그분이 말하는 것이 한 마디도 맞지 안해요. 전부 육 백 육십 육이라. 이래서  그거 고쳐 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가졌었는데 차차 차차 고쳐지는 것이  보여져서 그래 그만 그걸 편지를 아마 한 일 년 인가 얼마인가 아마 간수해  가지고 늘 가방 안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 가 없애 버렸습니다. 이젠 됐다  싶어서.

 이랬는데 그 천주교가 이것은 이단이라 하는 그 말을 그것을 해야 복음의  비밀인데, 다 죽으면서도 한 그 복음의 비밀인데, 오늘에는 그 말을 하면은.

대적이 되고 박해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차차차 그 말이 축소되고, 축소되고  감소돼 감소돼서 지금은 천주교를 이단이라는 사람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담대히 십만 명 순교자와 같이 '죽어도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바로 우리에게  전해 주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를 하라는 그 말입니다.

 그렇게 해 봐야 하기는 사람들이 벌써, 말세가 되어지면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가요. 해가 기운다 그 말은 주님의 영감과 진리의 역사가 차차 차차  감소되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 역사의 은혜를 덜 해 그런게  아니라 사람들이 차차 차차 인본의 행위를 해 가지고서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고  자꾸 이래 대적하니까 인간들이 들어서 영감과 진리의 역사를 가룬다 그 말이오.

가룬다고 그랬는데, 요한계시 9장에는 뭣이 가룬다고 말했습니까? 저 가만히  있거라. 저 화원부에 일하는, 화원부에 일하는 저 청년, 요한계시록에는 뭣이  가룬다고 했지? 예? 뭐이 가룬다고 했지? 자. 이 ○선생, 뭐이 가룬다고 했어?  ○○○동생, 그래도 몰라? 요한계시 9장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리워진다고 했는데  뭣에게 가리워진다고 했어? 인제 성경 아니까 그렇지 지금 자기는 조불라서  몰라야 되는 사람이라. 죽은 호랑이보다 산 개가 나아. 그 까지 거 조는 그런 거  암만 거석한 것보다도 안 조는 처음 믿는 사람이 더 잘 깨닫는다 말이오.

거기에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가리운다 이랬습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거기에 무저갱은 뭘 말하는 건고 하니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 그놈  욕심 참, 하나 알면 다이요. 욕심 그게, 그 욕심이 돈 욕심도, 오늘 돈 욕심도  한 번 있으면 될 줄 알아도 그게 아니오. 돈 욕심도 돈 욕심도 오늘은 요 욕심  또 내일은 요 욕심 또 요래 욕심 조래 욕심 자꾸 욕심이 언제 그 욕심을 놓을  여가가 없이 계속해서 쭉 계속해서 끌고 갑니다. 명예 욕심도 그렇소. 지식  욕심도 그렇소, 그것을 가리켜서 밑이 없는 구멍이라 빠지면 그만 유황불  구렁텅이에 아주 빠져 내려가는 밑이 없는 구멍이라. 그 인간 욕심이 올라 와  가지고서 그 욕심으로 인해서 가리워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재림 때가 오면 해가 기울어집니다. 해가 기울어지고  그림자가 갈 때라. 그러니까, 해가 기울어지니까 음지 양지가 없어. 진리가  가리워지니까 바로 예수 믿는 것이 뭐인지 삐뚤어지게 예수 믿는 것이 뭐인고  그것이 구별이 없어. 이러니까 또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구별이  없어. 천주교나 개혁교나 구별이 없어. 안식교나 정통 교리나 구별이 없어.

기독교나 다른 불교나 구별이 없고 또 이 민주주의 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이나  이게 구별이 없어. 이래 가지고 똘똘 뭉쳐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  단합이 될 것입니다.

 우리 ○○○ 집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제법 잘했는데 내가볼 때에  제일 안 됐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운다고 이라면서 설교를  하면서도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바로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고 대적한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도 안했다 그 말이오. 생각해 보지도 안했어. 그런  세력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서 바로 예수 믿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  세력이 있을 때에, '그 세력이 있으면 얼마나 두렵겠느냐? 참 그때에, 지금  가정에서만 가정에 그까짓 거 사람 남자 하나만 대적해도 이런 때 온 지방  관청과 모든 백성들이 다 대적하면 어찌되며, 전국이 그렇게 대적하면 어찌  되며, 세계가 그와 같이 되어지면 그 세력이 얼마나 크며 얼마나 두렵겠느냐'  여기에 대해서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도 안하고 그냥 그 말씀을 증거하기  때문에 그게 제일 생명이 없다 말이오.

 그래서 지난번에 여기 설교한 사람들을 모두 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평을  했었는데, 평 안 한 사람도 있는 그런 것은 또 괜찮다고 평을 했습니다. 평 한  그것은 그것을 고치지 안하면 마지막에는 잡탱이가 되어질 수 있는, 이 지남침을  가르키는 그 나침판을 놓고, 남쪽을 가리키는 그 옆에다가 오른쪽에다가 바늘을  놓으면. 바늘을 놓으면 바늘이 그리 끌려가든지 바늘이 안 끌려가면 침이 끌려  오든지 반드시 요래 딱 가리키는 요게 요래 정남을 가리키지 못하고 조금  빼딱하게 돌아갑니다. 고, 나침판에서는 빼딱하게 돌아가지마는 고대로 방향을  정해 놓으면 멀리 갈수록 자꾸 틀려서 마지막에는 몇 백 리도 틀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조금 틀리면 그다음에 많이 틀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의 단번에, 한 오 년 십 년 보고 그 사람 신앙 행위가 좋다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십 년을 보면 그 사람 신앙이 어찌 됐는고, 이십 년을  보면 어찌 됐는고, 그 사람이 몇 십 년. 벌써 사오십 년을 보면 그 사람  신앙생활이 어찌 됐는고, 사오십 년을 보고 그 사람 신앙생활이나 모든 교리나  신조나 이런 것을 볼 때에 그것이 바로 됐으면 그래도 인정할 수가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라 말은 무슨, 교리라 말은 성경 보고 깨달았다는  깨달음을 가리켜서 교리라고 그렇게 말하고 또 그 신조라는 것은 그 사람이 믿는  모든 조건들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하는데, 이 교리라는 것은 두 가지 성격을  가져야 됩니다. 역사성을 가져야 되고, 교리라 하는 것은 역사성을 가져야 된다  말은 성경에 대해서 깨달음은 역사성을 가져야 된다. 세월성을 가져야 된다,  세월 세월성을 가져야 된다, 그 깨달음이 그 당시도 다 사람들이 옳은  깨달음으로 인정을 하고, 또 몇 십 년을 지나 봐도 그 깨달음이 옳고, 또  평상시에도 옳고 대환난 때도 보니까 그 깨달음이 옳고 그런 것이라야 비로소  교리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걸 고쳤습니다. '아, 이라면 이거' 편집부에서 '이라면 어찌  됩니까?' 이래서 '그래 고만 그걸 고쳐라. 안식교에 대해 고쳐라.' 안식교에  대해서 이단이라 그렇게 하지는 안하고 뭐라고 하느냐? 그래 '안식교는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그렇게 안식일에다가 구원을 근거 두기 때문에 이것이  교리적으로 틀렸다'고 말 할 수가 있고, 또 그들은 영혼을 사람의 영을 부인하기  때문에, 사람의 영을 부안하고 생명이 영이라 이렇게 생각하고 영을 부인하기  때문에 우리 믿는 거와 교리가 다르다 이 말밖에 이제 못 했다 그 말이오. 그 말  하면 당장 무슨 시비가 날 터이니까 도리어 그 말만 해 놔도-예수님의 피공로의  신앙에 우리 구원의 근거가 있고 하나님의 선택에 구원의 근거가 있지 안식일  지킨 거기에. 안식일 지키면 구원 얻고 안식일 안 지키면 구원 없다 이걸  자기네들이 주장을 했다 말이오. 그 말은 너무 많이 주장을 하고서 책에 많이  써서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말해도 괜찮다 그거요. 또 안식교에서는 영을  부인합니다. 이래서 영 부인한 걸 말하고, 또 십사만 사천 인 구원과 흰옷 입은  사람들의 구원이 달라서 십사만 사천 인 구원은 하늘 구원이고 다른 것은 땅의  구원이다 이렇게 구별하기 때문에 그게 틀렸다, 부득이 그 말만 했지 안식교는  이단이기 때문에 안식교는 믿으면 안 된다 이 소리는 못 했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게 다 뭐이냐 하면 이렇게 말하면 바로 말해 주는 것인데 이러면 반드시  박해가 오게 될 터이기 때문에 다 그것을 감춘다 그거요  천주교도 그렇습니다. 천주교에 대해서도 바로 말하면, 또 불교에 대해서도  바로 말하면, 불교는 그거는 제 이계명에 범하는 우상 종교인데 불교에 대해서  바로 말하면 불교는 구원이 없습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 얻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 얻는다 하지마는 불교에 구원이 없다 하면은  불교인들이 달라들어 가지고서 야단이 난다 그거요. 그래서 그때 ○○○  목사님이 불교에 구원 없다 하다가 마구 불교인들이 뭐 얼마? 백 명이  동원됐더란가 그래 가지고 왔는데 군대를 풀어 놓고 그래 가지고서 그때 진압을  했다고서. 그러니까 누가 그런 말 할 마음이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만 살살 에누리해 가지고서, 말해 봤자 말해 봤자 듣지도  안하고 효험이 없는 거 뭐하려고 그렇게 할 게 뭐 있나 이래서 차차 차차 이와  같이 설교가 해이해지고 속화되어지고 이러니까, 암만 생명 내놓고 설교를 해  봤자 뭐 잠이나 자고 꾸벅 꾸벅 졸지 아무 그렇게 여기지 안하고 '저 사람은  공연히, 백지 지금 자는 범 코 차기로 저렇게 소용없이 자꾸 위험성이 있는 거,  모험성이 있는 거 자꾸 그런 설교만 한다. 그 취미가 있는 모양이라.' 이래  가지고 사람을 도리어 교인들까지도 낙인을 찍고서 듣기 싫어한다 그 말이오.

'모두 다 좋다 어쩌든지 모두 다 서로 사랑해라.' 이 정욕의 사랑, 또 동류  사람, 또 혈육 사랑 이런 사랑을 해라, 해야 좋아한다 그 말이오.

 얼마 전에 추석을 닥쳤는데 '어쩌랍니까?' 이래서, '추석에 집에 가봐야  됩니까?'아 그래, 모두 추석에 가 봐야지.' 추석에 가보라 했더니만 모두 좋아서  야단입니다. 또 서로 사랑해서 혈통으로 돌아가서 모두 친척 찾고 이래 가지고  좋아하라고 이라면 모두 좋아합니다. 혈육 사랑을 가지라 하면 좋아하요.

이래서, 저 우리 진영에서도 어떤 교회는 혈육 사랑을 하면 좋아하기 때문에  '자, 우리 교회는 상관없습니다. 저거 가족끼리 앉으십시오.' 이라니까, 남녀반  구별이 없고 저거 가족끼리 돌박돌박 이래 앉으니까 그 교회가 좀 많이 오고  이래 좀 재미있으니까, 가족끼리, 이제는 남녀 동반해서 상관없이 어떤 남자하고  둘이하고 한 자리에서 얘기해도 되고 뭐 상관없이 앉으라, 하면은, 그라면  인간들이 좋아한다 그 말이오. 이런데 '그래, 하지 말아라.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렇게 해라. 가족들도 그렇게 해라.' '별스러운 교회, 어라.

재미있는 교회 가자' 재미있는데 찾아간다 말이오. 재미있는데 찾아가고, 천국  갈 인간은 천국 가기에 바르고 옳고 하는 그것을 따라가고. 땅에 있는 인간은  땅에 저거 재미있는 거 찾아가고. 이라니까 망할 자는 망하고 흥할 자는  흥하는데 이것을 바로 말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생명 내놓는 일인데 그게  되겠느냐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담대히 우리에게 알리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라' 그거요.

 이러니까, 6.25 때도 그 설교를 가지고서 나를 찾아서, 6.25가 떡 나고 난  다음에 거창 지방에 들어서 가지고는 '여기에 백 영기라는 사람이 있다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 하는데 그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래 가지고 찾아서  교회마다 갔어. 교회마다 갔는데 '백 영기 백 영기. 백 영기는 우리가  모르는데요.' '회' 자를 '기' 자로 그 사람들이 고만 잘못 알았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교회마다 다 물으러 다 다녔어. 하나님이 딱 가리어 놓으니까 글자  한 자가 틀려 가지고서 잡들 못했다 그거요. 설교를 다 듣고-그래 여기서  설교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 앉아서 '뭐라고 설교하는가' 다 듣는다  생각하고 설교를 합니다. 또 여기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이 모든 그 정보계에서  와 가지고서 듣는다고 생각하고 설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과거 ○정권  때는 여기에서 설교한지 십 오 일이나 그래 아니면 혹 이십 일, 그래 아니면 십  오 일, 십 오 일 만이면 반드시 정부에서 그대로 행해 나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 이 ○ 정권은 꼭 목사님 설교한 대로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거요. 지금도 정보 정치 그것이  바로 하면 하는 건데, 이래 가지고 유력한 그런데 가지고 이리 저리 들으면 그걸  자기네들이 바로 알 수 있도록 눈이 밝아지기 때문에 듣는다 그거요.

 제가 삼각산에 집회할 때에 중앙청에 있는 어떤 사람이 우리 집의 아이를  보고서 말하기를 '백 목사님이 내나 부친 아니냐?' 된다 하니까 '그 백 목사님  설교한 것이 하나도 안 빠지고 전부 중앙청에 다 옵니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서.

다 온다 이라니까 또 거기에서도 지금 또 기압이 온다 말이오 다 온다 하니까  이제 거기에 걸리는 소리는. 걸리는 소리는 또 한 말 하려면 참 아예 박해당할  요량해야 하지 그래 안 하면 못 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를 가르치는 설교자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서 그 비밀을  전해야 되지 공산주의도 줄줄 보는 문서 계시 이것만 전해 가지고 안 된다  말이오. 그 속에 있는 비밀의 뜻을 전해야 되지. 이 비밀을 깨달아야 되겠고  비밀을 알라 하면은 전부 이 세상 마귀 나라를 다 깨트리는 역사기 때문에  그들이 다 싫어서 박해 줄 터이니까 박해를 각오하고 이래 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꾸 그런 말 하니까 우리 교인들도 그래 들어요 '우리 목사님은  공연히 그런 소리는 안 해도 될 건데 큰소리만 뻥뻥 하고서 남 듣기 싫어하는  소리 그게 무슨 재미인가?' 그렇게 한다고. 삐죽삐죽거리지 요 대로 요 말을  하는데는 생명을 내놓고 지금 하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신중히 들어야  되느냐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적다 말이오. 적든지 많든지 그 사람들 보고  설교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주님 보고 한다 그  말이오. 뭐 층암 절벽에 있는 꽃이 일 년에 한 번 피는 것인데 사람들이  알아주고 뭐 어짜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알든지 말든지 조물주 한 분만  보고서 그대로 지켜 피는 거라 말이오. 그 들판에 꽉 찬, 저 산중에 가서 피는  꽃 그 꽃을 누가 봅니까? 폈다가, 평새 폈다가 져도 아무도 봐 주는 사람 하나도  없다 말이오. 인간들은 봐 주는 인간 보는 사람은 인간 볼 수 있는데 도시에나  피지마는 그거는, 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조물주 한 분이 봐 주시는 것으로  족하고 조물주 한 분의 주시는 은혜로 족하기 때문에 피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래 한다 말이오.

 그래 하지마는 옆에서 '담대히 전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것이 또 설교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 절 위하는 거라. 담대히 전해야 제 구원도 되고 그럴 뿐  아니라 '담대히 전하게' 설교하는 데에 얼마나 자기가 앞으로 희생활 것이며  얼마나 대적이 많을 것이며 얼마나 박해를 자취하고 있는 구원이면 박해가  반드시 따르는 설교라는 그것을 알아야 될 터인데 그 소리 하니까 듣기도  싫어하니까 벌써 교회들은 참 굉장하게 타락했습니다. 암만 봐도 뭐 한국 교회에  어린 아이들 보고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한국 교회 다른 목사나, 백 목사나 모두  다 목사들을 보든지 장년반을 보면 하나님의 몽둥이가 와서 두드릴 것밖에는  없지 뭐 하나님이 감동되어서 긍휼을 베풀 만한 그런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년반 놓고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기도가 안 돼요. '매를 맞아야  마땅합니다.' 매를 맞아야 그저 죽을 지경이라야 마땅하다 그 말이오.

 텔레비전 보는 것도. 엊저녁에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게 무슨,  나는 그거 언뜻 봤는데, 놀부인가 뭐인지 모르겠소. 놀부인가 뭐인가 모르는데,  이게 이래 뭘 이래 하다가, 그러니까 어데 뭐 천사인가 뭐이 하나 내려와 가지고  야단을 치니까 얼마나 겁이 났던가 엎드려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막 빌고  발발발발발 떨고 그런데 그걸 볼 때에 내가 퍼뜩 생각했어. '아, 하나님께서  남한에 있는 우리 기독교를 아주 박멸해서는 안 되겠고 조렇게 발발발발발발  떨도록 조렇게 좀 만들어 가지고 좀 고래라도 좀 회개를 시켰으면 좋겠다.'  발발발 떨구로. 발발발 떠는 거, 그래 놓으니까 뭐 어떻게 떨면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요.

 이거 모양으로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죽이지는 말고 발발발발발 떨면서 이렇게  이 모두 다 교만하고 망령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저거 좋도록만  이렇게 꾸며서, 뭐 요새는 어떻게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 그거 꾀우는  돈이라, 꾀우는 돈. 돈이 나와 가지고서 뭐 한 장에 적어도 돈이 많이 들겠는데,  그림도 그리고 이래 가지고 광고판이라는 걸, 뭐 얼마가 오는지 모릅니다. 전부,  아따 기독교 백 주년 기념이라 하는 백 주년 기념이 그만 밉게 돼 버렸어. 전부  백 주년 기념 기념 그걸 근거를 대 가지고서 뭐인지, 뭐 팜플렛도 내고 무슨  광고도 내고 해 가지고서 그걸 근거해 가지고 야단을 지기는 이런 일이  있으니까, 너무 악용을 해 먹으니 밉다 말이오  크리스마스를 하니까 크리스마스에 술 먹는 사람도 크리스마스를 그렇기 때문에  많이 먹고 죄도 더 많이 짓고 이래 이렇게 되기 때문에 참 크리스마스 축하를  이제는 그래 하지 말고 아주 신중히 정중히 그렇게 겸손히 하자 이렇게 하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기쁨을 가지고서, 기쁨을 가지고서 자꾸 뭐  기쁘다 이래 떠들어 쌓는데, 제가 여기에 부산에 와 가지고 처음에 설교할 때는  크리스마스 설교 때에 이 스피커를 달아 놓고서 그래 가지고 이 시내에 여기  교회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할 때에 그때에 내가 말하는 것은 '크리스마스를  기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참 울음과 웃음이 함께 있어야 된다. 울음과 웃음이  함께 있어야 되고 자복과 감사가 함께 있어야 된다.' 그저 기쁘게만 자꾸 하지  말라는 그 설교를 그때에 해마다 많이 했습니다.

 이러니까,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할 것이니 이를 위하여' '이를  위하여' '이를 위하여' 이 비밀을 전하는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제 이것도 좀 기도하면 자기가 그런 줄 알 터인데 도무지 기도 안 하면  듣기가 싫어하는 거라. 듣기가 싫어하는 것. 그러니까 남 욕하는 목사가 돼. '저  목사님은 남 듣기 싫은 소리만 자꾸 하고 욕하는 소리만 하고 전부 독선주의로  자기만 거석하다 하고' 이라니까, 그 사람들에게 죽임 당하면서 뭐 말해 줄  필요가 있는가? 그러니까 말 안해 준다 말이오. 차차차 속화돼 가지고서 그만  목사도 속화돼 버리고 복음의 비밀도 그만 목사도 모르게 되고 또 알려 줘 봤자  전하지도 안하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알려 주지도 안하고 이렇게 돼 가지고  나간다 그거요.

 그러지 때문에 사람보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낙심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보고 할 게 아니라 주님 보고 해야 돼. 이러니까, 교회 무슨 일하는  사람들도 주님 보고 하지 안하고서 백 목사 보고 하는 사람이 많아. 백 목사가  좀 알아주면 또 기분이 있어 잘하고 안 알아주면 안 하고 그러면 그것이 다,  마지막에 심판에서 백 목사 위해서 한 거 그까짓 거야 다 불 타 버리지 무슨  가치가 있겠소?

 오늘 아침에 설교할라 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그만 서론 하다가 시간 다  갔는데.

 여기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한다 말은, 무시로 기도한다 말은 아홉시에 기도 할 시간  다섯시에 기도 할 시간 열시에 기도할 시간, 시간을 어느 시간은 기도할  시간이라 그렇게 정하는 일을 하지 말라 그 말이오. 무시로 기도하라 말은  기도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안해. 정해져 있지 않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저 새벽에 한시도 기도 두시도 기도 세시도 기도 세 시 일 분도  기도 세시 십분도 기도 세시 오 분도 기도 세시 이십분도 기도 세시 삼십분도  기도 세시 사십분도 기도 세시 오십 분도 자꾸 세시도 기도 네 시도 기도 이  기도가 계속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기도하되  성신의 감화를 받을 수 있는 그 영감을 받아 기도해라. 무시로 기도해라. 그것을  오늘 아침에 설교하려고 내가 가지고 오기는 가져온 것입니다.

 오늘은 다른 거 설교 다 내두고 오늘 연습 하나 합시다. 무시로 기도하는 것은  오늘 이 시간부터 설교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에게 주님을 사모하지 안하면, 대상  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 주님!' 인제 주님을 좀 불러  보자 말이오.

 자, 한번 따라해 봅시다. 이제 자꾸 따라해 봐요. 주님! 주님! 자 같이 따라해  봐요. 주님! 주님! 주님! 주님! 주님! 저 뒤에도 따라해요. 주님! 주님! 주님!  주님! 주님! 주님! 주님! 그리 안 하면 또 주여 하든지. 이래 가지고서 옆구리  쿡 찌르면 '주님' 그래 그거 연습 해 놔야 돼. 공산주의자가 독침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협박을 하면. '주님.'  우리 가르치는 가운데에 그거. 좀 실행 잘하는 사람, 여기 ○○○선생 왔나?  아, 기도하러 갔지. ○○○ 선생. 고함을 꽥 지르면 '주님' 이랍니다. 또 뭐  말하면 '주님' 이랍니다. 뭐 말하면 주님이 쑥 나와. 많이 주님을 사모해서 지금  그게 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좀 겸하지 못해 가지고 있으니까, 신앙이라  하는 것은 자꾸 신앙생활 할수록 담대가 되는 것인데 신앙생활 하는데 좀 담대가  안 되는 그거는 뭐이 치우쳐서 잘못돼 가지고 그렇다 그 말이오.

 주님을, 오늘 종일 주님을 생각하고 그저 주님을 사모하고. 일하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주님' 그냥 속으로 '주여! 주여!' 자꾸 이렇게 안 되거들랑 그만 그  소리를 내서라도 '주님! 주님!' 이래 하자 그 말이오.

 제가 거창서 있을 때에 그것을 연습을 많이 시켰는데 어떤 장로님 부인이  주님을 말하다가 그만 노다리 건너가다가. 도랑에 도랑물이 있는데 건너가면서  요 돌 디디고 조 돌 디디고 노다리 건너가다가 그만 주님을 잊어 버렸다 그  말이오. 이래서 도로 뒤로 꺼꾸로 와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주님! 주님!'  하면서 노다리를 건넜다고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종일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좀 사모해 보자 그 말이오.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요거 한번 연습해요.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사모를. '주님'  밥 먹으면서, 일하면서도, 밥 푸면서도, 변소 가서도, 또 누구하고 얘기할 때  그때 잊어버리기 쉬워. 얘기할 때 누가 또 말하면 그 사람하고만 얘기하지 고만  주님은 고만 배척해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얘기 하면서도 주님하고 속으로는  둘이 얘기하고 하나 돼 가지고서 그 사람하고 서로 대화하면은 실수가 없습니다.

이 주님은 참 이상해. 완전자시기 때문에 자기가 선한 사람이 될려면 자꾸  주님만 사모하면 선한 사람 돼 버려. 자기가 정직한 사람이 될려면 자꾸 주님만  사모하면 정직한 사람이 돼 버려. 자기가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될려면 주님만  생각하면 자꾸 강하고 담대해. 옳고 좋은 것은 자꾸 주님만 사모하면은 자꾸  돼집니다. 자꾸 닮아 져요  그 ○○○장로님이 좋은 거 설교했는데, 자꾸 같이 있어야 친해지지, 음성도 알  수가 있고, 자기가 같이 살면서 부부간에는 다 부부 음성을 아는데 전화할 때에  '여보, 당신이 누구십니까?' 이래 물으면 그 남편이 꽥 고함을 지를 것이라고서.

'이제까지 살면서 내 음성도 모르고 뭐 뭐라 해?' 또 남편도 그러고 아내도 그럴  거라 말이오. 그럴 거 아니겠소? 아내도 이래 전화하니까 '누구십니까? 남자가  와 나한테, 여자한테 전화합니까? 누구십니까?' 그러면 그 남편이 또 달리도 해  볼 거라.

 나도 더러 그거 해 봐요. 해 봐서, 우리 집사들 가운데도, 이게 내 음성을 알고  지금 얼마나 연습하고 있는가 싶어서 전화할 때에, 전화할 때에 어벙이 같은  전화도 하고 큰소리도 하고 이래 해 봅니다. 하면 그래 '아, 목사님' 이라면  '어찌 목사님인지 아요?' 이라면 '네, 제가 압니다.' 가정에 전화를 해요.

가정에 전화하면은 조그마한 꼬마가 받습니다. 꼬마가 받는데, 떡 받으면서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엄마 엄마, 목사님 전화다. 목사님 전화다.' 그 알면  내 마음에 만족이 있다 말이오. 만족이 있는 것은 날 알아 줘서 만족이 아니오.

그렇게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니까 그 아이들이 그렇게 여기는 것은,  그 아이들이 그래 되는 것은 부모들이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 돼진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아이들에게 암만 날, 소리를 딴소리를 해도 딱  알아맞힌다 말이오. 고 가정은 살아서 믿음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 연습 한번 해 봅시다. 주님을, 오늘 종일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만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거. 주님을 사랑하는 거, 주님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것.

 기도는 네 가지 종류 기도면 다 합니다.

 첫째는 주님을 사모하면서 '주님, 참 이런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기도 또  뭣 잘못된 것 있으면 주님 앞에 '내가 이런 거 잘못했습니다.' 자복하는 기도 또  하나는 이 일을 '어째야 됩니까? 어째야 됩니까?' 주님한테 의논하는 기도 '내가  사정이 이렇고 이렇습니다.' 의논하는 기도. 도고의 기도라고도 합니다. 또  하나는 '주님 이거 해 줘야 되겠습니다.' 간구의 기도, 감사의 기도, 자복의  기도, 도고의 기도, 간구의 기도 이 네 가지 종류면 돼.

 오늘 종일 시간에 끊어질 새가 없이. 끊어지지 안하고 하루 종일 계속이 되는가  안 되는가 해 보자고. 하루 종일. 주님 사모하고 이 네 가지 기도하는 것이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면서도 계속할 수 있는 거 요것이 되지도록 우리가 노력합시다.

노력을 해서 오늘 종일은 주님 사모하고 주님에게 대해서 기도하는 일이  끊어지지 안하고 계속 되도록 요거 한번 연습을 해 보자 그 말이오.

 평소에 주님과 나와의 끊어지지 않는 그것이 대환난 때에 주님과 나와 끊어지지  않는 그겁니다. 바로. 그러니까, 오늘에 끊어지지 않는 이것을 가치 없이  생각하면 안 돼. 오늘에 끊어지지 않는 이것이 온 전국 사람들이 다 주님을  배반하는 그 대환난 때도 주님을 배반치 안하고 주님을 놓지 안하는 그 생활이  되어지고 그 실력이 되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요거 기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종일은 고만 기도는 내비두면. 기도는 다 못 하거든 기도도 해 가면서  하고, 주님 사모하는 거,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을 하셨느냐, 또  내가 주님 앞에 대해서 무엇을 내가 거리끼는 일을 했느냐 내가 또 이 모든  사정을 주님 앞에 뭐 이런 거 저런 걸 참 의논해서 고해야 되겠다, 나는  '아이구' 이라다 보니까 주님 앞에 나는 간구를 해야 되겠다.

 우리는 잘못하면 그러다가 잊어버립니다. 주님 앞에 감사한 은혜를 생각해  가지고 주님 앞에 감사하려고 이러다 보면 그만 감사는 그 감사한 그 사건만  생각하고 그만 주님 잊어 버렸다 말이오. 주님 잊어 버렸는데 감사하는 사건만  그까짓 생각하면 뭐 합니까? 주님을 놓지 안하고 주님을 놓지 안하고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내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계속 주님과 이 사모의, 간구의,  감사의, 이 모든 의논의 이 주님 앞에 이런 관계가, 네 가지 관계가 끊어지지  안하도록 요것을 한번 오늘 한번 연습해 봅시다. 그래 가지고서 내일 한번  시험을 쳐 볼까요? 그래 가지고  자, 그러면은, 하루 종일 연습을 하는데 몇 번이나 끊어졌는지 몇 번이나  주님을 잊어 버렸는지. 한 번도 안 잊어 버렸는지, 백 번 잊어 버렸는지, 뭐  수도 헤아릴 수 없이 잊어 버렸는지, 그래서 내일 아침에 내가 묻는 사람에게는  발표를 해야 될 것입니다. 발표. 제일 굵닥 굵닥한 우리 ○○○ 목사님에게 내가  물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얼마나 주님을 사모했는데 몇 동가리나  끊어졌습니까? 한 동아리도 안 끊어졌습니까?' 또 ○○○ 장로님에게도 '몇  동아리나 끊어졌습니까?' 저 ○○○목사님에게도 '몇 동아리나 끊어졌습니까?'  저 뒤에도 모두, ○장로님에게도 몇 동아리나 끊어졌는지 그래 물을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끊어지지 안하고 주님과 주님 사모 주님 간구, 주님을 상대하는, 이  주님 상대하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끊어지지 안하도록, 동행이라 하는 것은  끊어질 수 있습니까? 동행은 밤이나 낮이나 같이 있지 안하요? 동거 동행하기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또 차 탈라 하다가 잊어 버려요. 어쩌든지 일찍 나가서 차 탈라 하다가  잊어버리기 쉬워. 오늘 종일 잊어버리지 안하고 이 일을 하나 연습을 하루 동안  해 보고 그다음에 이틀 계속해 보고, 자꾸 안 되면 하루 일흔 번 씩 일곱  번이라도 고치라 그 말이오. 그런데, 살고자 하는 자에게 어려움이 있는 그걸  가리켜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것이지 아무나따나 죄짓는 그 자에게 말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의 뜻대로, 영감과 진리대로 살라고 하다가 또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라 하는 그런 데 대해서, 건설면에 있어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말하는 것이지 타락하는 자에게 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상관하지  안하고 또 자복만 하면 돼진다 그런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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