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01:48
의를 위해서는
1987. 2. 9. 월새벽
신명기 28장 15절∼19절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오늘도 예배 끝난 뒤에 교회 주변 청소 하는 것을 그대로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또 오늘 예배 끝난 뒤에 권찰회가 있습니다. 저녁에 일곱시부터 구역장님들의 성경 공부가 있사오니 구역장님들께서는 다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루 특별히 자타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요 삼십 분 기도를 잃지 아니하고 기도하도록 힘을 씁시다.
그러고 양산동에나 다른 데 구역별로 기도하러 가는 일이 있는 줄 아는데 혹 그 일과 여게 학습 세례 문답하는 것이나 또 여기 성경 공부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서로 상치가 돼 가지고 지장이 있을 때에는 그런 것을 미리 말해 가지고 상치되지 안하도록 할 수 있고 또 사정에 따라서 개구역별로 그렇게 시일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미리 사전에 행정실에 와서 말을 하면 저와 의논해 가지고 혹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오늘 저녁에는 구역장들 모아 가지고 성경 공부하는 것이니까 만일 그 구역에서 성경 공부를 일찍부터 시작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장려하고 있는 그런 구역은 특별히 모이지 안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 구역에서 만일 성경 공부를 벌써 삼분지 이나 반이나 이만큼 공부를 시작해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런 구역은 그 구역장이 모일 필요 없고 그렇게 다른 사람은 또 시켜서 공부를 해도 구역장 자신은 공부를 시작하지 안한 그런 구역장은 오늘 저녁에 다 모여야 됩니다. 자기가 구역장으로서 성경 공부를 시작하지 안한 분은 다 모여야 됩니다. 시작하지 안한 분으로서는 안 모이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얼마 전부터 다시 한번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증거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다른 해석은 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게 오늘날 네게 명하는 말씀을 지켜야 된다 하는 여게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날이라 하는 것은 그 날을 말하는 것은 오늘날이라 특별히 그래 말한 것은 현재를 표시해서 중심하고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지마는 자기 현재에 닥친, 현실에 닥친 거게 해당되는 말씀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특별히 여게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때하고 장소하고 또 그 모든 사물들하고 그것이 뭉쳐서 일치된 것을 가리켜서 현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현실에는 때로 말하면 바로 지금 이 현재라는 현실이라는 이 현시고, 현재의 때이고, 또 그때에 장소를 말한 것이고, 현재 자기가 예배당에 있든지 시장에 있든지 혹은 직장에 있든지 길가에 있든지 방에 있든지 그 장소를 말하는 것이고, 현재라는 시간과 장소 둘을 합해 가지고는 현실이 혹 될 때도 있지마는 별로이 안 됩니다. 또 거게는 반드시 사람이 있든지 물건이 있든지 또 관련된 사건이 있든지 그런 것을 다 한테 뭉쳐 합해질 때를 가리켜서 현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현실에서 자기에게 해당된 하나님의 인도를, 하나님의 가르치시는 명령을 지켜 행해야 되지 그것은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성경 말씀을 아무리 행한다고 해도 그것은 다 원수 자기 주관만 자꾸 강해집니다. 그러면 사람이 모든 하는 일이 어두워지고 바르지를 못합니다.
자기 현실에서 사람 닥친 것은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뭐 내 일만 잘 하면 되지’ 그라면 그것도 틀립니다. 또 ‘일이나 그런 거 뭐 물건이나 그런 거야 잘못돼도 사람에게만 뭐 서로 비위 맞구로 하면 되지’ 또 그것도 또 안 됩니다.
‘사람도 물건도 장소도 가릴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는 하면 되지’ 그것도 광신이 됩니다. 미치괭이 신앙이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야 복 받을 줄 알기는 알면서도 자기는 그 현실에 해당된 거, 현실에는 사건도 해당됐기 때문에 거게는 사건도 생각하고, 또 사람도 해당되기 때문에 그때 당한 사람도 생각하고, 물건도 생각하고, 하나님도 생각하고, 자기는 신자이기 때문에 신자라는 것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다 전부를 생각을 해야, 둘만 생각하면 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생각날 것이고, 하나만 생각하면 거게 하나님의 뜻 하나만 생각이 될 것이고, 열 가지가 거게 관계됐는데 열 가지를 생각하면은 열 가지에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날 것이고, 만일 자기 닥친 일은 현실에는 한 너댓 가지가 관련돼 있는데 그것을 생각지 안하고 거게 관련되지 안한 모든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건들, 거게 현실에 관련되지 아니한 것들을 생각하면은 자기는 또 하나님의 말씀에 그 현실에 관련되지 안한 그런 말씀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신앙 생활들이 다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 꼭 관련된 그것을 하나라도 빠주면 안 됩니다. 또 그 현실에 관련 안 된 것을 또 자기가 생각을 해서 한테 간추려 넣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 현실에 관련된 그것이 하나든지 둘이든지 셋이든지 넷이든지 열 가지든지, 열 가지 됐으면 꼭 열 가지를 생각하고 열 가지에 대한 해당된 말씀을 다 생각해 가지고 종합을 하면은 그 열 가지가 종합이 돼 가지고 하나가 되어서 ‘요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게 나옵니다.
자기는 그때는 아무런 사람은 없고 자기 혼자 있고 또 아무런 다른 물건도 없고 단지 자기와 자기 시간과 장소, 빈 방에서 자기 혼자, 빈 굴에서 자기 혼자 있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 있는 장소가 산인지 들인지 방인지 감옥 속인지 자기 현재에 형편되어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 시비 중에 있는지 뭐 그 관련된 그것을 꼭 생각하고 거게서 하나님이 ‘너는 요 현실에서는 요렇게 해라’ 하는 그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다 노도 풀어질 수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되는데 현실이라 하는 것은 시간 없어도 안 돼요. 시간으로 말하면 현재가 현실에 해당되는 시간이오.
그러기에 시간은 언제든지 해당 안 될 때는 없습니다. 언제든지 시간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장소는 언제든지 따릅니다. 또 거게 자기는 거게 언제든지 관련돼 있습니다.
그러면 이 셋이 되고 난 다음에 거게는 혹 이 사람이 거게 관련될 때도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때도 있고, 물건만 있을 때도 있고, 또 자기는 물건도 없지마는 자기가 현재 당하고 있는 모든 형편과 사건들, 자기가 당하고 있는 그 자기 형편 처지 그것이 또 현실에 가담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현실에서 가담된 그 모든 각종의 종류를 빠짐 없이 다 알아야 되고 그러면 그 종류를 다 종합한 이 가운데에 내가 있으니 나는 여게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발견해 가지고 하면은 그게 하나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니까 축복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안하고 자기는 언제든지 그 말씀만 생각하고, 언제든지 그 행위만 생각하고 그라면 그게 뭐이냐?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악습 행위가 돼 버립니다. 알겠습니 까? 악습 행위.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 주관으로 행동한 그 행동 하나 둘 모아 놔서 그것이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됐다 말이오. 기도도 버릇 기도가 있습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버릇 기도가 없어요, 버릇. ‘그 사람은 늘 그것이 습관이 돼 그렇다’ 습관 기도가 없습니다. 또 주관 기도가 없고. 습관 행동이 없고 또 주관 행동이 없습니다.
습관 행동하는 사람은 그거 신앙 행위 아니야. 그 신앙 행동에 습관 행동, 하나님이 그 습관으로 둡니까? 그때 그때 당신이 자꾸 천태만상으로 변해져 가는 그 형편에 따라서 이래 하기 때문에 하나도 습관될 일이 없고 자기의 또 습성될 일이 없고 자기는 주관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걸 보면은 자기 주관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꼭 자기 주관대로 요렇게 할라 하면 하나님은 꼭 현실을 조렇게 하도록 바꿔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력하시는 것은 우리 주관을 다 죽여버리고 어짜든지 하나님 그분에게만 피동되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안하고 안 믿는 사람들이 자기 습성과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처럼 믿는 사람도 믿는 사람의 습성과 주관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은 항상 기도도 해도 장 그래 기도 하고 생활도 장 그래 생활 합니다.
그러면 그것만 하기 때문에 그것만 하니까, 그 종류만 하니까 그 종류 하는 그거는 맞는 줄 알아도 그 종류만 하기 때문에 맞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종류 해야 될 때 그 종류 하니까 맞지 안하지, 또 그 종류는 그 종류를 그때 한다 할지라도 그건 자기 습성에 따라서 주관에 따라서 했지 하나님께 피동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여게 순종이라 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해야 그게 가치가 있지 순종으로 하지 안하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거 오늘 아침에 하나 생각하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사람이 무엇이든지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하나님에게 있지 자기에게나 또 모든 자기의 형편과 사정에나 또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물건에게나 장소에게나, 어떤 사람은 ‘나는 이만치 내가 실력이 있기 때문에, 실력이 있으니까 된다.’ 자기 행복이 실력에 있다고 하는 그자는 하나님이 꼭 망쳐 버립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당장 망치는 꼴을 봅니다. 그래 망쳐서 ‘이거 내 실력 가지고는 소용 없다’ 이거부터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구원을 시킵니다.
그러나, 자기는 공부를 했다, 자기는 기술이 있다 해서 자기 실력대로 무엇을 밥을 먹고 살 수 있고 형통해진다고 하면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저주한 사람이고 버린 사람이라 그렇게 봐야 됩니다. 좋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은 다 실력 가졌으면 되는데 자기는 실력 가졌어도 안 되는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 까? 실력 가져도 안 되다니? ‘나는 이 실력 가졌으니까 이 실력만 하면 살 수 있다’ 이라는데 그 사람은 망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실력 가졌기 때문에 내 이 기술이나 이 실력 가졌으니까 실력 가졌으면 되지’ 이라니까 잘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무슨 교육대학인가 사범학교인가 그런 데 졸업을 해 가지고 ‘나는 이 졸업했기 때문에 나는 뭐 학교 교편 생활하면 얼마든지 잘 할 수가 있다’ 이랬는데 교편 생활 떡 해 가지고 하니까 잘 되는 사람 있는데 그 교편 생활 하니까 거게 지장이 생겨 쌓아서 교편 생활 할 수 없게 되는 그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왜? 다 같이 그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는데 이 사람에게는 탈이 나 쌓아 가지고 안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어떤 실력을 가졌든지 자본을 가졌든지 또 자기는 어떤 부동산을 가졌든지 동산을 가졌든지 기술을 가졌든지 또 자기는 모든 인인 관계에 그 좋은 뭐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든지 어떤 걸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 흥망성쇠는 여게 있다, 이만하면 된다 하는 그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꼭 망쳐 버립니다.
그것 가지고 되는 사람이 대개 많습니다. 그것은 그거 가지고 되니까 뭐 거게만 맞추면 됩니다. 하나님께 맞추든지 안 맞추든지 거게만 맞추면 된다 해 가지고서 그것만 맞추요.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기술이 우상이요 직업이 우상이요 자기의 부동산이나 동산이나 재산이 우상이오.
그게 우상돼 있어도 하나님이 그대로 둬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지 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징계가 없으면 네가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아들이 아닌 줄 알라” 이랬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거 그런 것을 다 다른 사람보다 더 구비하게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안하면 자꾸 탈이 나 가지고 망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오.
이러니까 이 사람은 나중에 자꾸 신앙 생활 해 보니까 ‘아이구 내가 암만 이런 조건 좋고 뭐 형편 좋아도 그것도 아무 소용 없다’ 그거 소용 없다 하는 걸 자꾸 보여줍니다. 그게 암만 있어도 일이 안 되거든.
소용 없다 하는 걸 이거 보여 주고 ‘이거 다 소용 없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니까 그 있는 것이, 자기 가지고 있는 것이 효력이 돼지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니까 있는 그것이 아무 효력이 없게 된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만드느냐? 땅위에 이 모든 형편과 사정과 처지와 자기 어떤 실력과 거기에 생사 화복이 달린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주님 그분 한 분에게 그 모든 생사 화복이 달렸다 하는 것을 알리도록 할라고 하는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요 그런 관계가 생겨지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거는 뭐 땅위에 있는 거 이거 안 믿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고 사는 거와 같이 하나님 빼놔 버리고 그것만 가지고 살아도 형통하게 되는 사람은 그거는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아직까지 그거는 착수하시지 않고 집어내 던져 버리고 방임해 두는 거, 방임해 두는 것이지 하나님이 간섭하는 친아들은 아니고 하나의 사생자라 그말이오.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참아들이 아니요 사생자라” 참아들이면은 하나님이 어떻게 간섭하는가? ‘장소 없어도 좋고 자본 없어도 좋고 네 실력 없어도 좋고 나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하나님 나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이 진리로 인도하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진리에만 복종하면 요 진리는 없는 가운데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네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이 진리만 하겠나? 또 암만 실력이 없어도 이 진리대로 네가 하는데 거게는 전능이요 만능인데 안 될 게 뭐 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가 아주 그 교회가 아주 약한 교회인데 어떤 부흥회를 해 가지고, 어떤 강사가 와서 부흥회를 해 가지고 그때에 은혜를 받아 가지고 연보를 했는데 생각 밖에 연보가 많이 작정이 됐습니다. 연보 작정이 많이 됐어.
작정이 많이 됐는데 내가 그분에게 말하기를 ‘이거는 일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 가지고 했기 때문에 은혜 받아 가지고 은혜를 받아서 네가 생각하기를 말하면은 여게는 이것의 한 십분지 일이나 날까 했는데 십 배나 났으니 그거는 그 강사가 은혜 있는 설교를 해서 그때 감동 받아 가지고 은혜 받아서 작정한 연보이기 때문에 이 연보는 연보가 될 수도 있고 나중에 죄가 될 수도 있다.’ 암만 작정해 봤자 제가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으면 못 내지 않습니까? 낼 수 없으면 못 냅니다. 낼 수 없으면 뭐 신앙이 참 있어서 자기 있는 방 한 칸이라도 내놔 가지고 돈을 내놓고 이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마는 그렇기가 쉽습니까? ‘이러니까 이 연보는 죄가 될 수도 있고 의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 앞에 상을 받을 수도 있고 벌을 받을 수도 있다. 뭐이냐? 이거는 네가 이 은혜 받아 가지고 그 사람이 연보 작정한 요 은혜를 네가 계속시켜야 된다. 계속시키면은 그 사람이 그 은혜 받은 것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이렇게 행하게 되면은 이 연보 작정한 것으로써 연보 낼 수 있는 사람만 될 뿐만 아니라 이것으로 인해 가지고 부자된다. 이러니까 교회라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을 뭐 종노릇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굽신거려 가지고 그렇게 영접해서 보배덩어리 영접하듯이 돈 많은 부자를 영접시켜 가지고 교회를 부요케 할라고 하지 마라. 그거는 네가 종노릇만 하지 아무 소용이 없다. 교회는 아주 제일 가난한 거 거지 그런 것만 주 모아라.’ “내가 모든 온갖 병신들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세례 요한에게 가서 전해라” 주님이 말씀한 것처럼 이렇게 아주 못나고 병신같은 거 등신 같은 거 이런 거 주 모아 가지고 더뎌도 하나님 말씀 한 말씀 두 말씀 가르쳐 가지고 요대로 딱딱 순종해 살면 등신이 똑똑한 사람되고, 또 거지가 부자되고, 병신이 건강한 사람 돼지고 이래 돼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 당신이 오셔 가지고 완전히, 우리는 원죄와 본죄로써 영육이 완전히 멸망 가운데에 있는 것을 이것을 불러 가지고 이 복음으로 다 살리고 행복된 자 만들어 가지고 하늘나라 데리고 갈라 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아예 그런 거 말고 부자나 잘난 사람 영접해서 그놈 하나 구원할라 하면은 종의 종이 돼야 되고 뭐 오히려 가난한 거 그거 데려다가 못난 거 데려다가 아주 위대한 자들 만들어 가지고 교회를 부강케 하는 게 낫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이거 잘못 또 깨닫는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을 청해 가지고 그라면 연보도 많이 나오고 교회가 부자가 되니까 유지가 잘되겠다 이래 가지고 하는 그것도 유물주의자요. 그것도 유물주의자. 하나님 믿는 게 아니라 물질 믿는 유물주의자라.
또 어떤 교회는 보면 ‘부자 그까짓 거 필요 없다. 부자가 무슨 소용 있노?’ 이래 가지고 그만 부자라고 적대시해 버립니다. 아예 부자라고 적대시하고 잘난 사람이라고 적대시해 가지고, 이라면 거지만 좋아하지 부자는 적대시해 버린다 말이오. 적대시하고 부자라고 공연히 공격을 하고 집중 사격을 하고 이와같이 하는 그런 교회도 있다 말이오. 그거는 또 뭐이냐 하면은 염세주의자요. 세상을 무시하는 자기 때문에, 세상을 무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도 또 치우쳐서 망하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잘난 사람 부자 그 사람을 예수 믿구로 만들라 하면은 자기 주관에 잘난 줄 알고 이렇게 제가 이렇게 교만하고 높아져 있으니까 그놈을 당장 꺾어버리면 그거 죽어 버립니다. 그만 가 버리고 안 듣습니다.
이러니까 부득이 가치 없는 것이나, 지위가 가치 없고 권세가 가치 없고 부요가 가치 없는 줄 알지마는 이렇게 높여 주는 것은 그 사람 붙들기 위해서 높여 주는 것입니다. 붙들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그 사람 뭐 권세 있다고 권세의 혜택을 볼라 하는 거 아니고 또 그 사람 돈 있으니까 돈 그거 연보해서 그 혜택 볼라 하는 게 아니고 이 사람은 그게 제일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그뭐 구렁이를 구렁이라 하면 다 듣기 싫어한다고 말을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걸 그라면 듣기 싫어하니까 슬슬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속에 깨닫지 못해 그러니까 구원하기 위해서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을 차차 옳은 사람 만들어 가지고 구원하기 위해서 존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그저 부하거나 가난하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존대하는 것은 다 좋습니다. 거지도 거지지만 그 사람을 구원한다는 건 제대로는 또 저 자존심이 있거든. 거지도 가난도 병신도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존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존대해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부자도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존대하는 것은 기뻐하십니다. 잘난 사람도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존대하는 거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을 존귀히 여기지 안하고 그 사람에게 돈 있으니까 돈 보고 존귀히 하고 권세 있으니 권세 보고 존귀히 하고 그런 걸 보고 존귀히 하고 그걸 내가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 혜택을 보기 위해서 존귀하게 하는 것은 그게 뭐이냐 하면 우상이 돼 버리고 맙니다, 아무것이라도.
‘이 사람은 이 권세가 있으니까 이 권력 있는 사람을 우리 교회 거석해야 이 사람의 권력을 우리가 좀 혜택을 보겠다’ 하면 벌써 우상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자기 현실에 해당되는 주님의 명령 그 명령을 아 가지고 지켜야 된다 그것을 생각하고, 그러면 자기에 관련되는 그뭐 ‘나만 예수 잘 믿으면 되지’ 관련된 사람을 상관하지 안하는 그것도 죄가 되기 때문에 그것도 신앙 사욕입니다. 신앙 사욕이기 때문에 그게 헛일이라.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이 다 바로 돼야 되겠다 말이오. 전체를 바로 하기 위해서 바로 되도록 하는 그 일이 아니면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또 우리는 뭐 ‘어떤 내 배경이 있다, 어떤 자본이 있다, 나는 장소가 좋다, 좋은 직장이 있다, 이것만 하면 살 수 있다, 나는 좋은 기술이 있다, 나는 누구보다 명철이 있다, 또 나는목회자들도 꼭 같소나는 설교 잘하고 뭐 이렇게 지식이 훌륭하고 이 성경을 잘 알고 이러니까 이것만 하면 어데든지 살 수 있다’ 하는 그 마음을 가지면, 백 목사도 그 마음을 만일, 가져지지도 안하지마는 그 마음을 가졌다고 하면, 나는 가지지 안했는데도 그 마음이 조금 가져질 상바르면 하나님께서 죽을 쓰게 합니다. 그만 은혜 안 줘 버리요. 은혜 안 줘요.
은혜 안 주면 뭐 온 천하를 다 차지해도 소용 없고 은혜 안 주면 그만 죽을 지경이라. 생명보다 은혜를 귀중히 여기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꼭 줍니다.
이러니까 교역자도 그래요.
이러니까, 어떤 것도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권하지 못하고 주님에게 있다는 고거 알고, 그러면 또 우리가 망하는 것도 말이요, 우리가 망하는 것도 어떤 인간이 망친다고 소용 없어. 자기가 병신이라고 망하는 것도 아니요 자기 못났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요 꼭 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망칩니다.
망치는 것도 하나님밖에는 망칠 자가 없고 우리를 행복되게 할 자도 하나님밖에는 행복되게 할 자가 없기 때문에 그분이 주권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비위에 거슬리면 암만 잘나도 망쳐버리요. 현재는 그냥 나가는 상발라도 그것이 치료할 수 없도록 그만 차차 차차 망해 놓으면 뒤에 회복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 망치는 건 대번에 딱 망쳐버리면 좋겠는데 그리 안 하고 슬슬 해 가지고 이래 망치기 때문에 모든 주위 환경을 다 바짝 말려 가지고 이 망치니까 망했다고 발견이 되고 난 다음에는 다시 회복하지 못해. 그러기에 사랑하는 자는 망쳐지는 걸 즉시 하십니다. 즉시 하나님의 징계가 오면은 그거 사랑하는 자야.
그러기 때문에, 망하고 흥하는 것은 다 주님에게 있다. 그러기 때문에 죄 지으면 망하고 의를 행하면 흥한다. “나는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행함이 뭐인데? “나는 사람의 마음과 그 뜻을 내가 감찰한다” 이랬습니다. 껍데기 보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껍데기는 이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그 죄 지은 원인은 이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속 마음과 뜻을 살피는 자이신 줄 너희가 알지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행동만 보고 평가하지만, 세상 법은 어리석습니다. 세상법은 결과를 중요시합니다. 세상법은 결과 나타난 결과를 따져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그게 세상이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지 안하고 뭘 중요하게 여깁니까? 뭘 중요하게 여기요? 동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세상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은 동기를 중요하게 여겨요. ‘그 동기가 어데서부터 그게 생겨 나왔노?’ 그 뿌럭지를 찾습니다. 그걸 중하게 여겨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흥망 성쇠는 망하는 것도 하나님에게 흥하는 것도 하나님에게, 또 하나님은 계명 지키면 복 주신다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 현실에 거게 여러가지 해당됐으니까 그 모든 걸 종합할 때에 그때에 이 네 형편이 엉망진창으로 한 스무 가지 열 가지가 막 얽혀 가지고 있는 네 현실을 가지고 있으니까 요게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거게서 할 일을 가르쳐 준다 말이오.
뭐 백 가지가 얽혀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헤어날 수 없지마는 거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그 뜻이 있습니다. 그것만 찾아 가지고 하면 그만 실마리 풀리듯이 살살 풀려 나가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그라고, 흥망성쇠가 네게 있지 않다. 어떤 피조물에게도 있지 않다. ‘주님, 창조주 주님 당신, 나를 구속하신 당신 한 분에게 있습니다.’ 요렇게 만들라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요걸 깨닫고 어짜든지 말씀대로 살면 다 형통해지는데, 나는 그래서 ‘이거 뭐 우리가 지금 장소가 좁아 가지고 모두 이라고 있는데 이걸 사야 되는데’ 이라는데, ‘뭘 이게 뭐 어데 좀 먼 데 가서 사나 어짜나?’ 이래 하고 있습니다. 그래 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잘 안 되는데 어떤 신앙 좋은 분이 하나 있다가 말하기를 ‘아마 아직까지 살 때가 안 됐는갑습니다. 그거 지금 연보한 것이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좀 우물에 샘물에 물 푸러 가면은 있는 물 쏵 다른 사람이 따라 가 버렸으면 좀 기다려서 개펴야 또 푸지 개피기 전에는 암만 퍼 봤자 박지기만 닳지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그런 말로 해요 ‘이러니까 아직까지 아마 모인 게 없는갑습니다’ 그 말에 말이지, 그 말에 내가 가슴이 뜨끔한다 말이오.
뜨끔해서, 그러면 나는 지금 자꾸 이거 말씀을 가르치니까 이들이 행해 가지고 지금 자꾸 축복을 받아서 자꾸 차차 차차 축복이 받아져 가는 줄로 이렇게 알고 있는데 그라면 형편이 축복이 없이 지금 빠짝 말라 가지고 마른 데다 참 우물에 자꾸 물도 개피지 안했는데 물은 나오지 안하는데 자꾸 박지기만 거석하면 박지기만 닳지 소용 없는 것처럼 이런 격인가? 그래 내가 묻습니다. 그 좀 형편이 어떻소, 그 구역에는 형편이 좀 어떻소 이래 묻습니다. 이래 묻는데 그 말이 맞은지 혹 그분, 말하는 그분이 믿음이 없어서 지금 ‘자꾸 또 연보하고 또 연보할라 하면 이거 되겠나?’ 믿음이 없어 그런 것인지 실지로 이제 형편에 따라가야 되겠는데, 형편이 자꾸 하나도 늘어나가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면 그분 말이 맞고 내가 오산이고,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착수하셔 가지고 무엇을 축복을 해 주시는 형편 같으면 그분이 오산이고 내 말이 계산이 바로 정산이 되겠고, 이래서 그래 지금 내가 묻습니다, 혹. ‘그래, 그 형편이 좀 어떻소?’ 이래 가끔 가다 묻는 거는 내 속에는 그런 게 뭐 있어서. 왜! 주의 말씀대로 하면 당장에 돼.
뭐이 문제라, 그까짓 거. 무슨 문제 있어? 나도 경험이 많이 있어요. 말씀대로 그대로만 살면 형편이 어쩐지 모르게 술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 축복해서 그 형편이 열리게 되면 모든 게 다 열립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살펴보면 알아요. 우리 집에는 하나님이 지금 좀 형편을 열어 주신다, 우리 집에는 이거 골치 앓는 암병이 있는데 이 암병이 흔들흔들하면서 암병이 이게 자꾸 회되기가 도니까 암병 이놈이 곧 빠져 나가겠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집을 지금 치료하고 계신다, 치료하는 축복이 오고 있다, 또 하나님께서 지금 이제 축복을 하나씩 둘씩 오고 있다 이거 알 수 있다 말이오. 알 수 있어.
어떤 집은 속에 죄를 짓는데 무엇이 형통해집니다. 그러면 그거는 자꾸 망하라 하는 것이오. 알겠습니 까? 그러면 죄 짓는 것을 자기가 말로 해도 안 되고 이라면 말을 하는 날이면 원수가 되고 이럴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놈을 쳐 가지고서 회대기를 돌려 잡아 뺍니다. 그만 꼼짝도 못 하게 망쳐 댑니다.
이라면 그럴 때에 망쳐 대면은 말이오, 망쳐 대면은 나는 어째야 됩니까? ‘이놈 잘 됐다. 이놈 어찌 됐던간에 이거 이게 골치고 하나님에 거슬리고 이게 제잘난 놈이고 교만한 놈이고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놈인데 이놈이 뿌럭지가 빠지게 되니까 잘 됐다’ 웃고 꼬시다 하면 되겠소 침을 가지고 눈에 바르면서 눈물을 흘려야 되겠소? 어째야 돼요? 누가, 아이들이 잘 알아요. 너 한번 말해 봐, 중간반 반사. 몰라? 또 너는, 너 옆에 말해 봐. 잘 됐다, 잘 됐다 이래야 되겠어 눈에 침을 바르고 울어야 되겠어? 잘됐다 해야 돼? 또 ○○○이 너는? 왜 큰 소리로 못 해? 잘 됐다 해야 되고 울어야 되겠다 하고 이놈은 참 모를세.
그럴 때는 잘 됐다 하면은 원수돼요. 원수돼요. 속으로는 기뻐 좋지마는, 눈물이야 안 나오지요. 속으로는 기쁜데 눈물이 날 턱이 있습니 까? 이래 침을 발라 가지고라도 눈물 내면서 ‘야야 야야 그거 참 안 됐다, 안 됐다, 그거 어찌 됐느냐?’ 자꾸 이래서 자꾸 또 이래 쌓아면 이놈이 반동될 건데도 ‘뭐 괜찮습니다. 염려 마이소.’ ‘야, 어째 그러노?' 이라면 자꾸 그게 차차차 돼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가족이나 뭣이 망할 때에 속으로는 좋지만 겉으로는 슬퍼하고 탄식을 해야 되고 또 어떨 때는 겉어머리는 좋아해도, 겉어머리로는 좋아해도 속으로 근심하는 것도 있다 말이오. 속으로 근심하는 것도 있어.
죄를 짓는데 뭐이 잘됐는데 이놈 죄 지어 잘 됐는데 이거 인제 저주를 받을 거다 하면은 나중에 엄마가 아버지가 저주를 해서 망했다 이랄 것이거든. 그러면 죄 지어서 잘 될 때는 겉어머리로는 잘 된다 하지마는 속으로는 ‘주님이여, 왜 주님이 버리십니까? 이래 죄를 지어 가지고 이러니까 이래 되겠습니 까?’ 속으로는 근심하고 하나님 앞에 이래야 되겠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좀 그것도, 의를 위해서, 거짓부리 하는 건 그렇지마는 의를 위해서는 연극도 해야 된다 그말이오. 슬프지 않으며 슬픈 척도 하고, 다른 연극은 안 되지마는. 기쁘지 안 해도 기쁜 척도 해야 된다 그말이오.
다윗은 옆에 거석하러 왔는데 그라니까 그때는 달리 변동이 없으니까 이제 하나님이 지혜를 줘서 침을 질질 흘리고 섰으니까 저게 다윗 같다, 저거 잡자 이라니까 침을 질질 흘리고 있으니까 ‘침을 질질 흘리는 미친 자로구만. 침을 질질 흘리고. 미치괭이를 자꾸 다윗이라 하고 있나?’ 다 가 버렸다 말이오. 실은 다윗이라 말이오.
여러분들, 어짜든지 하나님의 축복하시면 잠깐 됩니다. 그런데 이 우리 교인들 형편이 뭐 어찌 되는지? 그러면 잘 봐요. 망하면 죄가 있으면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착수하는 것이라. 그 사람이 신앙 생활 할라 하면은 그만 하나님이 착수해서 막 수술을 해재낍니다.
또 자꾸 흥하게 되면은 그것은 하나님이 축복으로 흥하게 하는 것인지 망하는 것으로 흥하게 되는 것인지? 망하는 걸, 망하기 위해서 자꾸 무엇이 형통하게 잘 되면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알고 좋아할 게 아니라 속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이여, 왜 하나님이 이래 버리십니까? 마귀가 주는 이거 자꾸 저주받을 일 자꾸 하게 됩니까?’ 자꾸 위해서 기도하면은 그게 멈춤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대로 행하고 기도한다는 것이, 기도라 하는 건 만능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