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01:47
의를 놓지 말라
본문 : 로마서 1장 14절∼17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영과 육이 아울러 멸망 가운데에서 얼마든지 헤고 나와서 영육의 행복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그 방편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셨는데 바울이 이 방편을 전하지 못해서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영과 육이 멸망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식을 전달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에서 구출돼야 될 터인데 구출되는 이 소식을 전하지 못한 그 일에 대해서 빚진 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주셨는데 다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진 자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다른 빚이 아니고, 전도를 하면 이 전도는 영육이 멸망 가운데서 다 구출되는 전도인데 이 전도를 다 하지 못해서 전할 전도를 하지 못한 그 빚을 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제는 아시아에 돌아다니면서 다 전하고 로마에 가서 전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가 알기로는 권찰님들 가운데에서는 이 빚진 감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사들 가운데도 있기는 있지만 반사들 가운데 있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아직까지도 중복적입니다. 끊어졌다가 잇겻다가 어겼다가 잇겼다가, `내가 이 복음을 전해 주면 저희들 이 멸망에서 구출되는 것인데 전해 주지 안해서 멸망받는다' 하는 그런 것을 일시적으로는 깨달아서 열심히 전하지만 그만 눈에 이런 거 저런 거 보이고 이런 거 저런 거 접하면 그만 거게 마음이 끌려가 버리고 이 빚진 마음이 계속되지를 못하고 중복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제가 가집니다.
그러나 권찰님들 가운데에 몇몇 사람들은 제가 보기에 이 계속 빚진 자의 부채자 빚이 진 자인 것을 알고 이 빚을 어짜든지 죽기 전에 벗을라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죽기 전에 내가 사람들에게 전할 것을 전해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도 전해야 되지만 이미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이치를 올라 가지고 자꾸 흑암 가운데로 기어 들어가고 스스로 멸망하는 것을 자꾸 자취하고 있기 때문에 또 가서 권면 해야 되겠고 또 붙들어 줘야 되겠고 위로해야 되겠고 책망해야 되겠고 이래야 되니까 그저 피곤해도 곧 병이 날 직전에 있어도 쉬지를 못하고 그라다가 병이 나고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은 이 빚진 감에, 느끼는 그 감에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인 줄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랬습니다. 복음. 복음이란 말은 기쁜 소식이라 말입니다. 기쁜 소식을 내가 전하는 것을 이 기쁜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기쁜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기쁜 소식은 능력이 있다. 무슨 능력이 있느냐? 믿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여기 능력있다 하는 이 말은 다이나마이트의 터질 때에 능력있는 그 능력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능력도 있지만 여게 기록한 능력은 원어의 뜻은 다이나마이트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터질 때에는 굉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여게 인용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을 구원하되 그 능력이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그런 능력을 나타낸다. 다니엘이 늘 그 직책에 있으면서 조심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늘 눌린 사람으로 살았고 약한 사람으로 살았고 지는 사람으로 살았고, 속으로는 존경을 받지만 멸시받는 사람으로 살았고 이렇게 살았지만 그가 이 복음을 받아서 믿기 때문에.
이 복음은 왜 복음이냐? 이 복음은 이 세 능력으로 더불어 연결을 하는 그 소식을 전해 주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세 능력.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인 영감과 영감이 우리에게 와서 닿았을 때에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닿였는데 이 셋은 다 하나입니다. 이랬는데, 이 복음이라고, 왜 좋은 소식이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절단이 돼 가지고 인간이 다 멸망을 받는데 이 절단된 것을 재연결 시킬라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 연결을 시키느라고 죽기까지 형벌을 받아서 이 절단시킨 그 절단은 죄가 시켰는데 절단시킨 죄를 없애고. 다시 재 연결을 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을 했고. 연결해서 이제는 하나님이 그를 주관하고 다스려서 하나님이 그이의 생명이 되고 그이의 지능이 되고 그이의 전부가 돼 가지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움직여지는 이 지극히 큰 기쁜 소식 인간이 이 결합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결합을 한 이 결합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이랬습니다.
여게 `하나님의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의라는 것은 뮐 가리키느냐 하면 이 세 능력과 결합된 것을 의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결합된 것을 의라. 그러면, 이 의를 주님이 만드실 때에 뭘로 만들었느냐 하면 믿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믿음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아버지에개 전권을 줬고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이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한 이거, 아버지를 믿고 바라보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이 순종 가지고 했다 말이오. 순종 가지고 했는데 빌립보 2장 8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모든 것들이 다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했고 또 마지막에는 그를 주라 이렇게 시인을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말은. 의는 이 세 능력과 연결이 의입니다.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의는 연결이 의입니다. 이런데 의를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만드실 때에 믿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의는 예수님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데 예수님이 이 의를 만들 때에 어떻게 만들었느냐? 신성이 인성과 일위가 돼 가지고. 인성은 피조물이요 신성은 하나님이신데 인성과 신성이 일위의 이 결합을 가지고 인성이 신성에게 절대 복종했지 복종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성이 신성에게 복종했는데 그 신성은 곧 성부요 성자요 성령이십니다. 직책만 다르지 본체는 하나이십니다.
이런데, 하나님께 복종으로 가지고 이 의를 만들었다,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의라 이랬는데.
이 밑에 끝에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은 뭐이 의인인가? 의인은 이것은. 의인은 이 세 능력과 결합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의인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 인간은 이 세 능력과 결항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결합이 되며 영감과 결합이 되며 진리와 결합이 되는가? 그건. 결합할 수 없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영원히 해결 못 할 죄가 있기 때문에 이 결합은 될 수가 없고 또 한 가지 어려운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율법이 요구하는 그 요구에 만족을 할 만한 그런 복종을 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복종할 수가 없는데, 이래서, 신성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인성을 붙들고 유한한 인간으로써 할 수 없는 사람을 붙들고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법을 만족할 만한 이런 완전 복종을 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복종이 어려워서 사람 단독으로는 아무도 이 의를 이룰 수가 없고 또 복종보다도 끊어 놓은, 끊은 그 무서운 해독이 되어 있는 삐뚤어진 거, 죄, 죄가 있기 때문에 이 죄를 어떻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결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둘 수가 없어 가지고 도성 인신 하셔 가지고 친히 오셔서 이 끊은 죄를 멸하셨고, 또 하나님의 지성 지공이 만족할 만한 이 복종을 했습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만족을 이루었다' 그래 말했소. 율법에 만족을 이루었다 말은 지성 지공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룬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게 왜 복음인가? 왜 이게 기쁜 소식인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 세 능력과 완전히 절단되어 있는 것을 우리를 대신해 가지고. 택한 자를 대신해 가지고 이 대신 결합 역사를 해서 완전 결합을 이루었습니다.
완전 결합을 이루고 이 결합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주신 결항을 우리가 가지는 데에는 믿음으로 가진다. 그러면, 예수님도 믿음으로 만들기도 만들었는데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 이 의를 우리가 가지는 것도 믿음으로만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가질 수 있는데. 믿음은 뭐인데? 믿음은 알고 거게 대해서 알고, 인정하고. 믿고, 바라보고, 거게다가 내 전부를 맡겨 놓고, 그 능력을 의지하고. 그에게 하나도 반동이 없이 하나 하나가 전부 다 동해서 거게 피동이 돼 가지고 그대로만 피동이 되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됩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의인은 ale음으로 산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를 만들었고 믿음으로 의를 받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받았고, 요거 이해가 됩니까?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았다. 또 의를 받아서 의인 된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그렇지 않소? 믿음으로 살아야 되지.
이런데 우리 현실을 만났을 때에 내가 믿음을 지키는 것은 이 의를 놓지 안할라고 믿음을 지키는 것인데 그만 믿음을 놔 버리면 의는 떠나가 버립니다.
의는 끊어집니다.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은 끊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을 놓지 안했을 때에, 믿음은 뭐인데? 믿음은 그를 인정하고 확실히 믿고 바라보고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데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내가 알고. 인정하고, 다른 거 아무것도 바라보지 안하고 그분만 이제는 그분이 다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바라보고, 이러니까 다 할 수 있는 이런 분이기 때문에 내것을 내가 가지고 할 게 아니라, 그분을 믿는 증거는 뭐이냐 하면 내가 내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겨 버립니다. 그분에게 맡기고, 그분에게 맡겨 버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그분을 의지해서, 그분을 의지해서 그분이 동하라면 동하고 정하라면 정하는.
그 동하고 정하는 것이 거게 따라서 동하고 정할라고 하면 온 세상이 이런 유혹도 주고 이런 협박도 주고 마구 그라는데 아무리 유혹을 주고 협박을 줘도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분에게 모든 것이 다 부요함을 알고, 이라니까, 세장에 좋은 거 준다고 해 봤자 그분에게 있는 것만 못하고 그분이 모든 걸 다 만들 어 놓은 것이고 그것도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 주마 하지만, 아는 사람은 `이것 주마' 하면 `네까짓 게 무슨 권리가 있나? 네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주님의 것이라' 그러니까, 좋은 걸 줘도 유혹받지 안하고 그들이 어떤 협박을 해도 `너는 털끝만한 권세도 없어. 주님이 너를 통해서 이리 저리 할 때 그런 것이기 때문에 네가 단독 권세가 없고 이분의 권세가 네게로 가 가지고 나를 시험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위협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니까, 이래 믿어서 복종하니까 그 의를 그대로 제가 보존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 복종을 그만 버리는 것은 이 의를 믿지 않는 것이라 하나님과 결합된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 결합된 사실을 우리가 믿고 이 결합된 사람으로 있으면 그 의는 나를 구출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결합된 것을 인정하지 안하고 `이 결합된 것이 참말로 결합이 돼서 무슨 실효성이 있느냐' 이렇게 써 가지고 날뛸 때에 그때에 내가 벌써 의를 인정치 않기 때문에 의가 내게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의를 놓지 안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만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올 때에 아 무리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그 어려움 오는 것이 다 이 지극히 큰 세 능력 이 조종해 가지고 내게 어려움이 왔고, 또 어려움 오는 그런 것을 해결 할 분도 이 세 능력 가지신 이분이 해결을 하는 것이고. 또 모든 것이 다 그분이 주권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개미 수염 하나 흔드는 것도 그분이 주권적으로 개별적으로 다 섭리, 지극히 작은 그런 걸 개별 개별이라 말합니다. 개별 그런 것도 지극히 큰 이 세 능력이 주권해 가지고 섭리를 하기 때문에 이 지극히 큰 능력과 나와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있으면 경제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까짓 게 문제가 없는 것은 그분이 나를 줄라 할 때는 온 천하에 제일 뛰어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하기 때문에, 또 아무리 그분이 나와 연결이 되어 있으면 불 속에 들어가도 불 냄새도 안 날 수 있는 것이고 그분이 나와 연결되어 있으면 사자 구덩이의 사자가 삼킬 수도 없는 것이고, 이런 것은 다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 이 계시로써. 우리가 이 신앙 생활 해 나갈 때에 세상에는 여러 가지 불과 같은 그런 혹독한 일이 있다 말이오. 불과 같은 여러 가지 뭐. 정치적인 혹독한 일 있고, 직장적인 혹독한 일도 있고 가족적인 혹독한 일이 있고 모든 혹독한 일이, 어떤 혹독한 일이 있다. 불같은 혹독한 일이 있다 해도 이제 이 의만 내가 놓지 안 하면 다시 의만 놓지 안하면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 능력과 연결만 놓지 안하면 된다, 연결만 놓지 안하면 불이 상관이 없고 사자가 상관이 없고 사자 구덩이로 그렇게 계시해 보이는 것은 그것은 사자와 같은 어떤 맹수성이 있고 어떤 악독성이 있는. 어떤 악독 잔인성이 있는, 뭐 공산주의의 김일성이나 김일성보다 몇 십 배 더 큰 게 있다 할지라도 그는 상관이 없고 또 어떻게 혹독한 정치나 혹독한 모든 운동들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다 그말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앞으로 살아 나갈 때에 여러 가지 경제적인 어려움도, 활동적인 어려움도 사업적인 어려움도, 가족적인 어려움도. 많은 어려움들이 옵니다. 와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와 봤자. 나는 그 어려움이 오니까 그거하고 어떻게 해결을 지울라고 해 가지고 이래 하다 보면 그만 의를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의를 버리면 실패자요. 그 어떤 것이 와서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의만 놓지 아니하면 결국은 그것이 해결돼 가지고 성공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를 우리가 놓지 아니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그 어려움은 우리에게 올 때에 이 의를 내놓으라고. 의를 뺏을라고, 말하자면, 의를 뺏을라고. 의가 뮈인데? 진리와 나와 하나된 것이 그것이 의요 영감과 하나된 것이 의요.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 의이기 때문에 그 결합된 이것을 끊을라고, 와서 뭐 오만 미혹도 주고 오만 협박도 줍니다. 아무리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이 있을지라도 `내가 이 장 기간의 고문과 고형 가운데 있을 때에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그런 사람 말을 들었고 또 저도 혹 그렇게 생각할 때 더러 있었습니다.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으로 이렇게 뭐 불로 태운다, 또, 과거의 그 형벌을 보면 이 엄지 손가락 둘을 야전줄로 달아 가지고 이렇게 공중에 당글어 매 놓으면 몸의 중량은 무겁지. 이 조그만한 손가락의 신경이 요래도 요게 둘을 달면 끊어지지는 안합니다. 끊어지지는 안하는데.
그러니까 모든 신경이 막 그리 따라 돌리니까 이거는 뭐 목을 끊어 죽이는 것보다 아주 고민이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고문도 하고 또 전기로 가지고 감전을 시켜 가지고 고문하는 것도 있고, 또 이거 칼뼈. 칼뼈라 하는 거 이거 앞 정강이 아니오? 칼뼈 이거 아픈 거 아니오? 칼뼈 이걸 네모 배기 네모되는 각재, 네모배기 각목, 각재 말이오, 네모배기 기둥 같은 네모 반듯한 나무 말이오.
거게다가 모떼기에다가 이래 딱 거석하면 오래 동안 있으면 뼈가지가 나중에 산 뼈가지이기 때문에 잘크라져 가지고 이제 뼈가지가 주먹 이만한 것이면 나중에 반은 끊어져서 잘크라지고 이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럴때에 그 신경이 되게 아프게 되고. 또 이래 이 뒷젖힘을 이래 가지고 든다 그말이오. 뒷젖힘을 이래 가지고 드니까 그 신경이 거석해 놓으니까 죽을 지경이라 그 얼마나 어려움이오? 또 그라다가 사람을 차운 데 내놔서 얼구니까 사람이 몸이 얼어 들어오니까, 그거는 좀 덜한데 얼어 들어오면 그거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얼어 들어 오다가 나중에는 거기다가 이제 찬물을 자꾸 끌어다 부으면 녹습니다. 명태 녹는 것같이 녹는다 말이오. 녹을 때에 그때 그 쓰리고 아픈 그것이 뭐 상상도 못 할 만침 크다 그거요.
그라다가 또 어떨 때는 밥을 한 이레 동안이나 굶겨 가지고 이래 있다가 그다음에는 밥을 먹으라고 밥을 갖다 주는데. 이레 동안 굶었으니까 밥이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밥이 맛있는데, 거기다가 간을 넣어서 아주 짭구로 만들어 가지고 이래 주니까, `이제 수고했다 하면서. `그동안에 고생 많이 했다. 네가 항복만 하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하느냐? 너는 기어코라도 항복을 안 하니까 너는 이제 승리를 했다' 이렇게 하니까 이제 마음을 놓는다 말이오. 그래 놓고 밥을, `그동안에 배를 곯아서 좀 고생했다' 하면 밥을 떡 주는데 그 밥이 소금밥이라.
소금밥을 먹으면, 소금 밥 아니라도 금식하고 난 다음에 음식을 먹으면 자꾸 물이 쓰입니다. 물이 쓰이는 거는 단식하면 몸에 수분이 다 없어지기 때문에 수분이 자꾸 요구된다 그거요. 물이 쓰이는 것인데 소금 밥을 먹여 놓으면 또 더 물이 많이 쓰여. 물이 많이 쓰이는데 그때 물을 앞에다 철렁철렁 갖다 떠다 놓고서 `물 좀 줄까' 이러면서 물을 보여 놓고, 이거 물먹고 싶은 마음이 죽을 지경이라.
이런데 그래 놓고 이제 이 의를 내놓으라 합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한 이 의를 내놓으라 해. `그렇게 될 때에 이걸 어떻게 견디나 아픈 것을 어떻게 견디나, 또 불을 온 몸에다가 쏴 붙여 가지고 이제 불로 가지고 몸이 타니까 그거 뜨거워지니 그때 어떻게 견디나? 고문과 고형을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 순교자 복자전이라는 그런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읽어보면, 그 책이 한 요만침 되는데 그 책을 읽어보며는 거게 이제까지의 기독교에서 순교한 것을 죽 기록했는데 그 기록한 거는 대개는 로마 교회서 순교하고 또 천주교에서도 한 건데, 천주교가 본래 기독교가 천주교로 타락하면서 온 박해들이 많이 있어. 온 박해들이 많이 있는데, 타락할 때 그때 타락하지 안하고 천주교가 되지 안할라 함으로 말미암아 고문한 것이 많았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고문, 공산주의에게 고문받은 것보다도 천주교에게 고문받은 것이 많습니다. 요새 천주교. 그러기에, 바로 예수 믿지 말고 이렇게 삐뚤어진 예수 믿으면 의는 벌써 팔았기 때문에 의를 팔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고문과 고형이 있었는데 그 책에 보면 다 대개 기록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 되니까 입에다가 화약을 질러 놓고 `네가 그라면, 안 하며 이 화약을 불로 지른다' 그러니까. 안에다가 불을 이래. `항복하면 지금이라도' 항복 안 한다 하니까 도화선에다 불을 딱 지르니까 이게 타 들어가 가지고 그라니까 온 전신이 파산이 돼 가지고 된다 말이오. 그러면 옆에 사람들 많이 잡아다 놓고 `너도 이와 같이 죽는다' 이래 가지고 협박을 해 가지고 여러 가지 하는데, 그때에 이 고문과 고형에서, 어떻게 이 고문과 고형에서 예수를 팔지 안하게 되겠느냐. 예수는 뭐이냐 하면 예수는 우리의 의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의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의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능력과 절단된 것을 결합시킨 것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으로는 우리의 의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한 분을 내놓지 안하는 것은, 예수님을 안 내놓는 것은 어떤 것이 예수님을 안 내놓는 것이냐? 진리를 내놓지 않는 것이요. 영감을 내놓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과 결합된, 하나님이 내 주격이 돼 가지고 내가 그분에게 피동되는 이것을 내놓지 아니하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을 내놓지 않는 것이니 예수님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이 셋 능력과 결합된 의를 내놓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의를 내놓지 않는 것이 예수님 내놓지 않는 것이요 예수님과 의를 내놓지 않는 것은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본체와의 이 연결을 내놓지 않는 것이 그것이 의를 내놓지 않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므로, 그럴 때에 `이 고문과 고형을 내가 어떻게 이기나'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걸 어떻게 이기나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고 셋 결합을 놓지 안할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셋 결합만 놓지 안하고 결합만 놓지 안하고 가지면 불에 타도 상관없고 죽어도 상관없고. 명예와 생명과 친척과 재물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있느냐. 즉시 돌아온다 그말이오. 즉시 돌아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의만 내 주지 안하고 의만 가지고 있으면 내가 그때에 죽어서 제일 가치 있으면 죽어 가치있게 하시고. 그때 살아 가치 있으면 살아 가치있게 하시고, 그때에 이 세 능력이 들어서 나를 제일 복있는 길로 인도해 가지고 걷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에 `아픈데 이거 어떻게 할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 `아야' 하면 그만 헛일이라. `아야' 하고 그만 굴복해 버리면 헛일이라. 그때 `아야' 하면 벌써 그에게 꺾여 들어가는 것이니까 꺾여 들어가기 시작하면 못 견딥니다. 그때 `아야' 할 게 아니라 그때 주를 불러야 돼. `주여 이랍니다 주를 부를 때에. `주여' 할 때, `주여' 할 때에는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이라 이렇게 생각하고 부르는 사람 있고, 그것보다도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와 영감과 진리와 결합을 시켜 가지고 이 결합을 나에게 주신 것이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을 내가 놓지 안하면 이 결합을 놓지 않는다, 결합을 놓지 않으면 그 결합은 지극히 큰 능력이기 때문에 이런 거 뭐 땅 위에 이런 거 다 만든 것이요 다 주권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이제 이 결합과 끊어지지 안할라는 거게다가 주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주여' 하는 것도 좋습니다. `주여' 하는 것도 좋은데. 이제 이 결합을 우리는 가지고 그때에 말해야 돼. 결합, 결합' 그리 안 하면 `의, 의, 나는 뼈가 부러져도 의는 내가 양보할 수 없다. 나는 목숨이 끊어져도 의는 양보할 수가 없다. 어떤 고문과 고형이 와도 의는 놓지 못한다.' 의는 놓지 못한다 그 말은, `이제 세 능력과 나와 결합은 내가 양보 못 한다' 하는 이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세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거 뭐 고문과 고형 할지라도. 불 가운데 있었으나 불 냄새가 나지도 안했고 사자 구덩이에서 사자가 입이 막혀서 그를 해하지 못한 이것을 우리에게 하나 보인 것입니다. 어떤 혹독 속에 어떤 악독 속에 고문과 고형을 받는다 할지라도 이 의만 놓지 안하고 의만 뺏기지 많고 의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삽니다. 그래서 `의인은 살리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불에 타서 하늘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체질이 다 녹아지려니와 의는 불타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이제 옮겨가게 된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의를 여러분들이 놓지 마라 하는 것을 그것을 강조하는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거라도 오면, 뭐 살림살이가 패가가 돼도 의만 놓지 말아라. 또 내가 어떻게 매장을 당해도 의만 놓지 말아라, 어떤 일이 낭파가 당해도 의만 놓지 마라. 의만 안 놓으면 이 지극히 큰 능력이 그 모든 것을 다 완전히 이루어 가지고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이 내것이 되고 모든 면에 완전 성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는 결합인데 이 결합만 뺏기지 안하면 됩니다. 결합을 안 야 됩니다. 결합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시험해서. 지금 병낫는 것도 이 결합이 되면 되는데 결합이 뭐이 들어 결합이 안 되고 있다 말이오. 결합이 안 되고 있는데 그 때, 어떤 사람이, 어느 분인지 내가 그걸 잊어 버렸는데 그 사람이 자기 가 요번에 집회에 가 가지고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은 다 이런데 자기는 그 병은 `나는 안 됩니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이러니까 안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어찌 내가 주님 앞에 구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안 됩니다. 나는 뭐이 없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자꾸 안 된다고, 또 생각하고. `아이구 나는 아무래도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자꾸 안 된다고 이러면서 자꾸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혼자 이래 쌓는데, 그라다 보니까 다른 사람 다 가고 없더래요.
그게 뭐이냐? 자기를 반성하면서 안 거라 말이오. `나는 이렇게 이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이렇게, 자격이 없다 하니까 자격이 있는 거라. 자기를 부인하니까 됐다 그말이오. 자기를 부인하니까 주님밖에 바라 볼 주님을 바라보기는 바라봐야 되는데 그분을 바라볼 만한 자격이 없으니까 `그분은 좋지만 내가 부족해 바라 볼 수 없다' 이라기 때문에 세리의 기도라 말이오, 세리는 `나는 죄인이니까 내가 어떻게 당신을 바라보겠습니까?' 베드로가 있다가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 가십시오.' 고기 잡고 난 다음에 그때에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 가십시오.' 하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 주님과 연결, 자기를 부인. 연결이니까 `베드로야 네가 근심하지 말아라 이제는 네가 사람을 취하는 어 밖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했다 그거요. 이러니까 , 이것을 연결을 놓지 안 하면 여러분들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내가 무슨 고문과 고형을 이기겠소? 나는 못 이깁니다. 내가 뭐 내가 이기겠다 하는 사람은 다 지요.
(둘이 내외 꼭 같다. ○○○조사님하고 ○뭣이하고, ○뭐이지? ○○○반사하고 둘이 꼭 같이 조네. 그까짓 걸로 그래 가지고 헛일이라. 얼마나 해 가지고 지금 달음박질을 쳐야 될 건데, 어떻게 쳐야 될 건데? 낙관시 하고 뭐 그까짓 걸로 하기 때문에 중간반 반사들도 부흥이 안 돼. 낙관시 하면 안 돼요. 학생도 찍해야 뭐 몇십 명 한 백여 명 되는 거 그거 간수하기가 뭐 그거 뭐 그래요? 그거 간수하는 것과 몇천 명 몇 만 명 간수하는 거와 다릅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는 있는 힘을 다 써야 돼. 죽도록 충성하라 그 말은 있는 거 다해서 충성하라 말이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은 주님을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라 말은 이 결합을 사랑하라 말이오. 이 결합을 놓지 말라 말입니다. 이라면 돼져. 이런데. 낙관시 하고.
이번에 내가 어떤 사람한테 기쁜 소식 들었어. 말하기를, 어짜든지 그 모든 교인들이 전부 와 `어짜든지 이 기도해야 된다' 기도해야 되는 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나와 결합하는 그것이라. 어렸을 때는 그걸 다말 하지 안해도 자꾸 주님 부르니까 주님과 나와 자꾸 결합이 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기도하는 교회는 일어나지. 그래서, 늘 공동 묘지 밤마다 남녀 반사 선생님들 이분들이 밤마다 가 가지고 기도하고, 남녀 권찰님들은 그렇게 가 기도하지 안한대요.
이러니까 반사들이 기도하니까 반사에게 능력 줘서 반사에게 이 셋 지극히 큰 능력하고 연결이 되어지니까 ○○지방에서 주일학생이 천 명이 됐어. 주일학생이 천 명 됐다 말은 그거는 놀랠 일입니다. ○○○교회가 아마 지금 주일학교가 주일학생 한 이백 명 될까 말까 그렇지 삼백 명까지는 안 갔습니다. 내가 분명히 그거 압니다. 삼백 명까지 안 갔을 거라. 물어 보면 알지만. 그런데, 천 명이 됐다는 그거는 놀랠 일이오. 아마 그 읍에 있는 국민학교가 그게 천 명이 될란가 모를 만치만치 그런 소읍인데 거기서 이제 천 명이 됐어. 그 천 명 된 일이 거게 과거에 한 번 있었습니다. 제가 거창 있을 때에 그때 모두 반사들은 은혜를 받아 가지고 불을 받았을 때 그때 천 명이 모였습니다. 천 명이 모일 때 뭐 어떻게 간수할 도리가 없었었어. 그때 모두 예배당들이 모두 구 예배당, 조그만했기 때문에 간수하지를 못했어. 그래서, 저 대숲에, 죽림에 거기 뭐 미국집 있지? ○○○권찰님 알아요? 대밭 밑에 미국집 거게 가서, 거게, 거게 가서 분교를 해 가지고 거게 모이고 여게 모이고 그래 모였어. 그래 내가 거게 가서도 모일 때 인도하고 또 여기 인도하고 이렇게 해서 그때 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때 추순덕 전도사님이 거게 주일학교 반사로 있고 할 그때입니다. ○○○권찰님도 그때 반사 노릇했지? 네. ○○○권찰님도 반사 노릇하고 그때입니다. 그때에 새로 은혜 받아 가지고 모두 기도하고 열심히 해서 천 명이 모였는데 지금 천 명이 됐어. 벌써 천 명이, 주일학교 천 명이 모였으니까 벌써 ○○읍에 교회로서는 ○○교회가 압도를 했습니다. 모든 교회를 다 누르고 있고 그 위에 올라섰다 말이오. 압도가 됐다 말이오.
`그래 뭘 보고 네가 그랬느냐?' 이래 물으니까. ○○교회 있었거든요. ○○에 ○○교회에 있었는데. ○○에 ○○○목사님 동생이 거게다가 개척 교회를 하나 세웠는데 개척 교회를 세울 때는 처음에 조그만한 셋집에 세워 가지고 모두 몇이 모여 가지고 예배를 보는데 그 사람은 항상 교인들 전체가 공동 묘지 가 가지고 항상 밤마다 거기서 철야 하더래요. 공동 묘지 가서 철야하는데, 그거 예사로 알았는데 공동 묘지가 가지고 철야 했는데 그만 다이나마이트라. 이러니까, 이 연결이 지금, 자꾸 기도하니까 그게 연결 가지는 거라 말이오. 연결 가지고, 연결을 가지니까 꽝 터졌 버렸어 꽝 터졌는데. 그래 내가 지금, 물어 보니까 얼마나 되느냐 하니까 삼천 명 된다고. 벌써, 얼마 안 됐어. 그거 시작했단 말이 이 년 됐는가 삼 년 됐는가 모르겠습니다. 이랬는데. 그만 결합이, 하나님의 결합이 콱 터져서 그 결합의 역사가, 역사가 폭발된, 그 결합의 역사가 폭 발되니까 그만 셋집 가지고 있었는데 예배당도 커다란 거 짓고 교인도 삼천 명이 모였다고.
이거 뭐이냐? 이렇게 여러분들은 가르쳐 줘도 이것을 안 하기 때문에 탈이라. 뭐 기도록에 기록해 가지고 기도하라 해도 안 하지, 이 결합만 끊어지면 제가 천하를 얻어도 소용, 없습니다. 저는 멸망입니다. 우리가 근본 적으로 영은 멸망받지 안하고 기본구원은 얻지만 이 결합이 끊어졌으면 제까짓 게 온 세상을 다 차치해도 저는 가련한 사람입니다. 영만 구원 얻었고 형체만 구원 얻었지 기능이 다 없어졌으니까 뭐 합니까? 기능이 빼였으니까 그거 바보고 등신이고 무능자 아닙니까? 몸에 기능이 없으면 안 돼.
우리 ○○집사님은 빼빼해도 철봉에 달리면 이래 가지고 열 다섯 턱걸이를 해. 열 다섯 턱걸이. 그래 내가 역부러 슬 한번 해 보라 해. 이러니까 열 다섯까지 해. 힘 없다고, `나는 기운이 없어 죽는다 하는데, 내가 힘 있는 줄 아는데, 실실 한번 추 올리면서 턱걸이 해 보니 열 다섯 까지 해. 나는 그거 당글어 매달리지를 못해.
당글어 매달리지를 못하는 데 이번에 거창 갔다 와서 당글어 매달릴 거라 했는데 지금은 이제 당글어 매달립니다. 당글어 매달려 가지고, 턱걸이는 못 해요. 당글어 매달려 가지고 이래 한참 있기는 있는데 그저 턱걸이 한다는 것이 찍해야 해봤자 요만치 와. 요만치, 이 만치 오릅니다. 거창 가 가지고 나는 요거는 낫았어. 요만치 오는 거. 도무지 요래 당글어 매달리지를 못해. 당글어 매 달릴라하면 그만 팔이 여기 떨어질라 하고 아파서 당글어 매달리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그 지극히 큰 능력으로 더불어 연결만 되면 되는데, 모두 다 준비하다가 준비하다가 병 나은 사람, ○○○집사님, 손들어 봐. ○○○집사님 어디 있어? 인제 안 오고, 새벽 기도 안 나오고 저 엉뚱하게 보면 그만 다시 재발해 가지고 뒈져. 어쨌든지 그 연결이 끊어지지만 안 하면 그것만 된 게 아니라, 그것만 된 게 아니라 연결되니까 일이 된 그것을 봐서 연결되면 오만 거 다 된다 그말이오. 이 연결 될라고 해 가지고 서 이 연결 놓지 안해야 돼요.
연결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대신 연결해 줬기 때문에 그 연결을 내가 놓지만 안하면 돼요. 그 연결은 뭐인데? 진리하고 나하고 연결이요, 영감과 연결이요, 하나님과 연결이기 때문에 그 연결을 현실에서 진리만 내놓지 안하고 영감만 내놓지 안하고 하나님 본체와 연결된 하나님만 내놓지 안하면 돼요.
이러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하나님 내놓으라고, 또 다니엘에게는 기도하는 진리 내 놓으라 하는데 진리 안 내놓고 뭐 사자 구덩이 갔지만 무슨 상관 있습니까? 이러니까 여기서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연결을 끊지 맙시다. 이제, 나는 날마다 그거 기도합니다.
여기 꽃마을 기도원과 꽃마을에 우리 기도산, 또 대신 공원에 그 기도산 이 산에 대해서 어짜든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분들이 가고 오는 데에 다른 사람에게 신덕을 끼쳐서 감화를 줘서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조심있는 생활해서 모든 관민들과 모든 백성들이 다 기뻐하고, 또 거기서 이 연결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들과 산천들이 다 기뻐할 수 있고 거게 가는 사람마다 이 연결의 지극히 큰 보배로움을 깨닫고 연결을 더 굳게 가져. 진리와 연결을 굳게 가져서 거기서 죽어도 진리와 떨어지지 않겠다 영감과 떨어지지 않겠다.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겠다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 연결을 떨어지지 않는다 말이오. 의를 버리지 않겠다 말이오. 그런 사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양산동 기도원에 대해서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대구 기도원과 장생골 기도원을 기도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장생골 기도원에도 요번에 모든 공사한 것이나 그것은 공사가 더듬어 봐도 그거는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큰 능력의 연결이 역사했습니다. 연결 역사 아니면 그 역사가 안 됩니다. 우리가 한 천여 평을 무허가로 이렇게 지어 놨는데 이것이 고발이 들어가 가지고 지금. 다른 사람이 `뇌물 먹어 그렇다' 그래, 내가 그 고발서를 봤는데, 보니까 `이것은 돈을 먹고 이랬다.' 우리가 돈을 주지 안했다 그말이오. 이랬는데, 이렇게 고발 해 가지고 뭐 도청에서 야단이 나고 사람이 오고 이랬는데, 우리는 그래서 이걸 어디 좀 운동을 할까 이라다가, 운동한다고 한 게 나중에 보니까 오히려 재만 저질러 놨어. 재만 저질러서 모르는 사람들까지 다 알게 해 가지고 도리어 엉뚱한 짓만 해 놨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라면 그 뒤에는 또 불이 와서 `그만 내비두자. 하나님께 맡겨 두자' 했어, 그만 다 온 것을, 밤에 두시에, 새벽 두시에 0○0목사님이 얼마나 콩이 튀었던지 왔어. 와서, 그래 나는 전화를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작정을 했습니다.
왔기 때문에, 기도 하고 안심을 시키고 `이제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안 해 주는 거 우리에게 필요 있습니까? 하나님이 안 해 주는 것은 돼도 필요 없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라면 안 되는 것도 필요하고 되는 것도 필요하니까 맡기십시오.' 맡기고 났는데 이것이 어떻게 됐는지, 이래서, 그 사람들 지금 그래 이 거창은. 거창 기도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도 다 거게 관련된 사람도 놀랩니다. `아 여기 워 있다.' 이러니까 어떤. 참가한 파출소, 파출소가 뭐고? 면에 있는 거 지서가? 지서라 하는가? 하도 지서니 주재소니, 뭣이 공산주의도 자꾸 거쳐갔으니까 그만 그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워. 거게서 그주임으로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다른 면에 와 있어, 아예 믿는 사람들 거창 장생골 기도원에 대해서 무조건 협조해라. 무조건 협조해라. 어짜든지 협조 안 하는 사람은 박살 다 된다. 협조 안 하는 사람은 박살 다 되고. 무조건 협조해라.
협조하는 사람은 다 축복 받는다' 그만 거기서 그만 주상에서 좀 겪어 봤거든.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래 합니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과 연결되면 돼요. 연결되면. 연결이, ○○○씨는 집회 가 가지고 자궁암이 낫은 게 아니라. 자궁암이 제가 재발되면 죽어. 재발되면 뭐 수술하면 되는가? 암은 한 번 수술해 가지고 사는 사람이 없고 두 번 수술하면 그거는 백 프로 죽습니다. 이랬는데, 수술하게 돼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기가,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꼭 자손들이 가자 하는데 이거 수술해야 됩니까?' `하나님 믿으면 되지' 이러니까, `나는 하나님 믿으므로 낫을랍니다' 이러면서 하나님 믿으므로 낫을라고, 이제 팔월 집회 때 낫겠다고, 그때에 한 달포인가 얼마인가 남아 있는데 팔월 집회 때 가셔 하나님과 연결돼 낫겠다고, 연결돼 낫겠다고 그라니까 집회 가기도 전에 연결이 돼 버렸다 말이오.
연결이 되니까 그만 낫아 버렸어. 이래서. 그 뒤에 보니까 집회 준비하다 낫았어, 집회 준비하면서든지 산에든지 들에든지 어짜든지 이 세분과 연결만 하십시오.
연결만 하고 연결만 하면 불 가운데 있어도 상관없고 원수 가운데 있어도 상관없고 온 천천 만인이 다 달라들어도 이 셋과의 연결만 끊지 안하면 결국은 내가 승리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가 부러져도 목숨이 끊어져도 불 가운데 가도 어쨌든지 이 의는 내 주지 말아라 의가 뭐인데? 하나님 본체와 영감과 진리와 결합된 것이 의이기 때문에 이 결합만 내주지 마라, 이것만 가지고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셋과 결합이 되면 우리의 모든 생활도 향기가 납니다. 향기가 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모든 사람이 본받고. 만일 제가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당한다 하지만 예수를 믿으면 제가 이 셋과 연결이 된다면 그 가정에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존경을 할 것이오. 모두 존대를 할 것이오. 존대를 할 터인데 이제 셋과, 껍데기는 예수 믿는다 하지만 이 셋과 실상이 연결이 되지 안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조롱을 받고 멸시를 받지. 이제 이 셋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조롱하면 조롱하는 사람의 입이 터져 버릴 거라 말이오. 그 사람이 자꾸 조롱을 하고 박해한다면, 교회 목사가, 아주 신임 있는 목사가 연결 그걸 방해하고 있으면 그 목사의 직장이 떨어져 버려. 목사가 그만 배척을 당합니다. 그런 걸 나는 많이 봤습니다. 그만 그 교회서 그만 배척을 해 가지고 목회를 옳게 못 합니다. 또, 많이 핍박하고 난 다음에는 평생 목회해도 가련하고 불쌍하게 돌아다니지 한 번도 목회자로서 그렇게 권위있는 목회를 못 하게 된다 말이오.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십니다. 이분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이분과 연결을 방해하면 그 씨족을 멸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우리가 언행 심사에 이분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돕도록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고 어짜든지 기도록에 등록하고 기도를 많이 해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이 연결이 끊어지지 안 할라 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주님이여, 나와 진리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내 언행 심사가 진리와 하나 되고 언행 심사가 진리에 탈선되는 언행 심사가 없게 해 주옵소서. 영감에 탈선되는 언행 심사가 없게 해 주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본체와 이탈되는 그 언행 심사가 없게 해 주옵소서, 희로애락이 없게 해 주옵소서. 지정의가 없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자꾸 기도해 가치고 연결만 돼서 내 현실 행위가 이 연결된 행위를 하면 세상에 빛이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거기에 지극히 큰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라 그거요.
그라고 어제 연보궤를 보니까. 연보궤에, 조 앞에 있는 저 연보궤인데 연보궤가 위에가 열려 가지고 있어요. 위에 열려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언제 열렸느냐 하니까 어제도 열렸더라 하고 아래도 열렸더라 하고 그런데. 열렸더라 하는데.
열려 가지고 그래 있고 또 엊저녁에 연보도 내도 안했는데 그거 어짠 일인지? 예? 누가 그거 관리합니까? 왜 열어 놨어요, 위에 열쇠를? 예? 뭐라 하노? 뭐라 해? 잊어 먹을 수 있지. 잊어 먹어서 못 잠궜다 하면 그라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요. 잊어 먹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안 잊어 먹도록 기도를 하십시오. 이런데, 벌써 이러니 저러니 변호를 해서 이리저리 빈적거리면 안 돼.
언제 내가 말하기를, `왜 이 와이샤쓰 단추를 안 달았어?' 이러니까 `실 이 없어 안 달았습니다.' `실이 없어서 왜 안 달았느냐 하니까 실 살 돈 이 없어 안 달았다고. 그거는, 자꾸 그 사람은 왜, 쫓아내야 된다고 그때 내가 손 들라 하니까 다른 사람은 다 드는데 우리 ○○○권사님은 안 들어. ○○○권사님 잘못 들은 모양이라. 왜 그러냐 하면 `아, 그 허물 있다고 쫓아내면 어찌 되느냐?' 쫓아낸다고 말만 듣고 딴소리는 잘 안들린대요 거기서, 나중에 이야기하니까 아이구 나는 그런 줄 몰랐다고. `그러면 그거 쫓겨날 행위이지' 이랬는데, 이제 한번 손 들어 봐요. 그런 사람 쫓겨날 행위라요 쫓겨나지 안할 행위라요? 쫓겨 날 행위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봐. 이제 든다. 그때 못 들었대요.
여기 있으면 잘 안 들린답니다.
이런데 그거 왜 쫓겨나야 되느냐 하면. 단추 하나 안 달았다고 쫓아내는가?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어짜든지 이거는 무엇이든지 찾아서 옳게 바르게 할라고 하는 사람이어야 될 터인데 어짜든지 안 할라고 요리 조리 핑계하는 사람이니까, 어짜든지 안 할라고 핑계하는 사람은. 그 사람하고 살면 일이 안 된다 그말이오.
어짜든지 안 할라고 핑계하는 사람은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이렇게 뭘 할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그런데 `아, 내가 잊어 버렸습니다.' 잊어버릴 수 있지. 그거는 좋다 말이오.
그런데 요래 핑계대고 조래 핑계대는 그자는 지금 할라 하는 자 가 아니라.
핑계가 나오거들랑은 벌써 그자가 안 할 줄 알고 쓰지 말아요. 그런 자는 쫓아내 버려야 돼요. 쫓아내야 돼. 사람을 등용해도 벌써 핑계하는 자는 요래 핑계하고 조래 핑계하는 자는 그 사람은 속에 진실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썼다가는 뒤에 망하고 말아요. 그 사람은. 회사 지금 사장들 있거든 그런 사람을 찾아 추려 내요. 그리 안하면 고치게 하든지. 그런 사람 두면 그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셋 되고 자꾸 염병 모양으로 자꾸 감염이 돼서 마지막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셋 결합이 끊어져 있다, 네가 뭐 뭣이 끊어져 있다. 뭐이 들어서 끊었다 이라면 `아이구. 감사합니다. 요게 끊었으니까 요걸, 이 끊은 요걸 요걸 어쨌든가 다 소멸해 가지고 연결이 돼야 되겠다 이래야 될 터인데 `네가 이것 때문에 연결 끊어 졌다' 하면 `나에게 억울한 소리 한다' 이래 가지고 분발 노발대발 하면 더 끊어지지. 그러면, 자, 끊어진 게 잇겨지겠소 더 끊겨지겠소 '예, 어찌 돼요? `이것 때문에 끊겨졌다 이라면 그걸 자기는 몰랐는데 그거 때문에 끊겨? 자꾸 끊 이라면서 끊겼다하면 찾을라고 애를 써 가지고 그걸 찾아야 될 터인데 찾지는 안하고 `아, 나에게 이런 소리 한다. 이러니 섭섭하다' 하면 그 사랑 자꾸 더 끊겨질 사람이요 잇겨질 사람이요? 자, 더 잇겨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끊겨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들어 봐요.
끊겨져, 끊겨져.
이러니까.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해 주면 감사해서, `요게 들어서 끊었다. 요게 이 세 능력과 끊겨진 죄다. 요걸 뽑아야 된다' 아 그러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잘못 말해 봤자 손해는 없다 말이오. 그거 뽑을라고 하다 보면 다른 것 좋아지니까 좋지 뭐.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책망은 다 줘 그 칭찬은 다 해독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꺼꾸로 돼 가지고 칭찬은 좋아하고 책망은 다 싫어한다 말이오.
책망에는 거기 금이 나오고 칭찬에는 똥이 나옵니다. 부패가 나와요.
그러고, 여기 지하철이 인제 여기 돌아옵니다. 여게 하러 돌아왔는데, 이제까지는 참 아주 그 사람들도 감동을 받아 가지고 이렇게 잘 의논이 돼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했는데, 앞으로도 지금 문제입니다. 여기 지금 공사하는데 그 공사 할 때에 집이 무너진 집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오늘 아침에 의논할라 하는 것인데, 여러분들 다른 거 없어. 우리는 힘 없어요. 힘 없기 때문에 이 세 능력에게 구해야 돼. 세 능력에게 그래 가지고 세 능력에 구하면 뭐 온 부근이 다 타도, 공중에. 이거 집 얼마 됩니까 이까짓 거? 이 지구 땅 덩어리도 공중에 달아 놓고 있는 주님이신데. 이런 거 공중에 달아도 될 터인데. 그분이 이걸 보수할라 하면 문제가 없는 거라. 자꾸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요 믿는 사람이라. 기도 안 하는 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과 어떤 분과 관계를 우리가 가졌다는 것을 안 믿는 증거라. 기도하지 않는 거는 안 믿는 증거라.
기도하는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믿으면 자꾸 기도할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