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1988. 9. 4. 주전.

 

본문: 롬 8:4-11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절에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3절로부터 4절까지 보면은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법을 세워 놓으신 그 법은 이 법대로  하면 절대 사망이 해하지 못하고 다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법을  세우시고 이 완전법을 가지고 하나님이 공심판을 하시는데 이 공심판 곧  완전법에 걸리지 아니한 자는 사망이 그를 해하지를 못하고 다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심신이라는 물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연약해서 그 법만 지키면 다 완전 생명으로 살 수 있는 법이지마는 이 사람의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육체가 연약함으로 그 완전법을 이행하지 못해 가지고 다  정죄받아서 죽게 됐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 법을 어김으로 멸망하는 그 멸망된 사람을 멸망 가운데에  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 멸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사람 대신 당신이 이  전지의 입법을 다 이행해서 의를 설정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우리가 법을 지키지 못해서 범죄한 그 죄를  예수님에게 다 부담을 시키셨고, 또 우리가 이 법을 완전 이행해야 영생을 하게  되는 이 율법을 예수님에게 부담시키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를  부담하셔서 이 죄의 형으로 영원한 사망을 받으셨고, 또 우리가 영생할라면  이행해야 되는 완전자의 완전법을 예수님이 대신 행하심으로써 우리 대신  행하셔서 의를 건설하셨습니다.

 이래서 죄 문제 의 문제가 해결 된 다음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되었던  그것을 다시 당신이 대신 책임지시고 화목의 제물이 되셔 가지고 화친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 가지 우리 대신 속하는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우리들이 구원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속하시고 우리 대신 죄를  형을 받아 없애셨고 대신 행해서 완전 의, 공심판을 통과를 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이룬 이 대속하신 공로를 자기를 대신해서 해 주심을 믿고  자기 공로로 믿고 인정하는 자들을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을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중생은 우리의 노력으로 중생된 게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그 은혜로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중생된 자들은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피로 중생시키셨기 때문에 중생시킨 그 피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는  중생시켜 놓은 영 속에 영원히 내주하게 됐습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들 중에  중생된 사람은 언제든지 그 속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내주하게 되셔서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영은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영원히 범죄하지 않습니다. 중생된  영은 영원히 범죄하지 않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다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히 죄도 범하지 안할 뿐 아니라 죽지도 않습니다. 죄를 범하지 아니하니까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데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그 이유는 성령과 진리가 그 영  속에 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아니할 수 있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죽지 안하고 다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영은 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도 했과 또 이 율법 범한  것을 완전히 해결도 지웠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도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영만이 아니고 영과 육으로 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유는 영계만  우리가 통치하고 살 것 같으면 영 만이면 되겠는데 물질로 되어 있는 이 물질계  우주도 통치해야 될 이 상속권을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양계에서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영물은 영물로만  창조됐고 또 물질은 물질로만 창조됐지 영물이요 물질이요 양물로 창조된 것은  사람뿐입니다. 이래서 영은 중생으로 완전 구원을 이루었지마는서도 우리의 이 몸,  육이라는 이 몸, 마음과 이 몸을 합해서 육이라 이라는데 이 육은 아직까지 완전  구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율법을 우리 대신 행하셨기 때문에 영도 이 공로를 입고  중생됐고 우리 육도 이 공로를 입었는데 이 입은 공로를 자기가 남은 현실  현실에서 이 공로를 벗지 안하고 이 공로를 입고 살면 그는 완전히 예수님의  공로를 입있기 때문에 영생하게 됩니다. 이래서 우리가 지금 노력하는 것은 어떤  것을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가 하면은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재세의 노력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으로 된 이 입법을 우리 심신으로 된  육으로서는 완전 이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없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대형, 대행,  대화친하셔 가지고서 이 공로를 우리 영에게도 입혔고 육에게도 입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육이 이 남은 때가 길든지 짧든지 주님의 대속의 완전 공로를  입은 이 사죄, 칭의, 화친. 사죄라면 죄 없는 것이 사죄요, 칭의라면은 하나님  공심판 통과한 의가 칭의요. 화친이라면 하나님과 완전한 친 결합을 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이 하나님의  완전한 이 율법을 이행하는 것은 주님이 대신 이행해 주셨는데 이행해 주신  이것을 우리 남은 때의 현실에서 이 대속의 공로를 벗어버리면 헛일입니다.

대속의 공로를 벗지만 안하면 하나님 율법을 완전 이행자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현실 현실에서는 이 대속의 공로를 벗으면 다시 죄 있는 자가 되고  불의한 자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이 공로를 현실에서 벗지 안하면 벗지  안한 그 부분의 양만큼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의롭고 죄 없는 이 육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게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육신이 말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육신을 좇지 않고 하는 말은 육체를 좇지 않고 하는 말입니다. '육체를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육체는 자기 마음이 하자 하는 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몸뚱이가 좋아하는 대로 살지 아니하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 몸 안에서 지도할 때에 성령을 따라서  순종하게 되면은 어찌 되느냐?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에 완행자, 완전히 완수한 자, 하나님의 율법을 완수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자가 현실에서 성령을 따라서 행동할 수도 있고 자기 육을  따라서 행동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라서 행동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또 그의 은혜가 역사해서 우리 심신만 뭉쳐 가지고 성령을 따라서  행하면 하나님의 율법에 완수자가 됩니다. 하나님 율법에 완수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소망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으로 입법해 놓은 것을 완수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심으로써 완수자가 되어 있는데 우리들이 남은 때 살 때에 그 율법을  낱낱이 다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 현실마다 몇 가지 시험해서 그저 자기  현실에서 닥쳐지는 그 현실에서만 하나님 율법을 배반치 안하고 지키게 되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이 율법 완수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주일 첫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성령을 좇아 행하느냐 육신을 좇아 행하느냐에 따라서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율법의 요구를 완수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완전히  지킬 수가 있다. 완수한 자가 된다. 그러나 육신을 좇아서 행하면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라 말은 육신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육신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요 육신 생각대로 살지 아니하고 성령의 생각대로 사는 것은 이것은  다 생명이요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우리 현실에서 두 가지 갈래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두 가지 갈래길을 만나 가지고 이 기로에 있는데 자기가  육신을 좇아서 육신 생각대로 사느냐 성신을 따라서 성령의 생각대로 사느냐  하는 이 두 가지로써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영원한 사망이 되고 또 성령의  생각을 따라서 살면 다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요 자기 마음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이요 자기 몸뚱이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무지해서 멀리  보지 못합니다. 넓게 보지 못합니다. 한 부분적으로만 보지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생각, 우리 마음의 모든 지혜, 우리 마음이 선택하는  것은 다 그거는 부분적이요 전체적이 아닙니다. 또 우리 몸뚱이는 마음보다도 더  어두워서 당장 좋은 것만 생각합니다. 먹어서, 배고플 때 먹으면 즉살될 것이라도  우선 먹고 싶으면 먹을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또 당장 먹어서 자기에게 큰 병이  걸릴 것이라도 우선 배고프니까 먹기만 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몸뚱이라  하는 것은 그저 짐승과 다름이 없는 그렇게 우매무지해서 보는 면이 아주 좁고  짧고 가깝습니다.

 또 우리 몸보다는 마음은 좀 광대하고 명철하지마는서도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도 그 시야가 심히 좁습니다. 좁고 짧고 또 얕고 그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이 율법을 이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자기가 부인하고 '내 마음대로 하면 무지한 자 된다. 또 내 생각, 내 뜻, 내 욕심,  내 주장, 내 성품, 내 계획, 내 지식대로 하면은 이거 무지한 자 되어서 멸망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령을 좇아서 살아야 되겠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살라고 하면은 성령이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을 따라서 살면 신구약 성경 말씀이면 다가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따라서 살면 성령을 영접하게 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따라서 살면 양심이 살아나게 되고 양심이 살아나게 되면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이신 성령의 감화를 받게됩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게 되면 그때는  그는 깨끗하고 온전해서 당한 현실을 영원 무궁에 가도 후회될 것이 없는 올바른  비판과 평가로 한 자욱 한 자욱 현실을 밟아서 영생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은 성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네가 육신에, 있지 안하고  영에 있다 말은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네가 육신대로 사는 자가 되어  있지 안하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서 사는 자가 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따라서 사는 자가 되면 그 사는 생애가 다 영생이 되고 자기 마음 자기 생각대로  사는 자가 되면 다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에서 잘났고 명철하다 하는 사람들이 멸망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장에 세상에서 명철하고 학벌 좋고 문벌 좋고, 문벌 좋다  말은 선천적으로 좋은 종자를 타고 났다 말입니다. 이런 사람 중에는 그 구원에  우수한 구원을 얻은 사람이 별로이 없다, 많지 않다. 다만 우매무지하나 그저  하나님을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사는 사람들은 영생의 구원을 이루어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영에 속해서 있다 말이오. 영에 속해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중생된 사람이라도 예수 믿는 사람, 택한 사람. 중생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하는 말씀은 그 영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 영은 죽은 영이 되고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영  속에 계셔서 영은 살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그 마음과 몸에 계시지  안하면 그 마음과 몸은 죽은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안 믿는 것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이 중생시키지 안했으면 예수를 못 믿기 때문에 중생된  자니 자기 마음에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도록 노력해서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마음과 몸 안에 계셔서 주장하면 그 모든 움직임이 영생이 되어지고 아무리  중생된 자라 할지라도 제가 입으로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으로 훌륭하고 또  아무리 높은 성직을 가지고 뭐 부흥사를 하고 뭐 무슨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  심신 속에 성령이 주장하지 아니하고 제 마음 제 욕심, 내나 자기 심신이  주장하면은 그 산 생활은 전부가 다 멸망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예수님을 죽은 가운데서 살리기를 누가 살렸느냐?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살리신 것은  성령이 살리셨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영 하는 건 이  성령을 말합니다.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살리신 이가' 하나님이  말입니다. 살리신 하나님이 '너희 한에 거하시는' 중생된 자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면 죽을 몸도 살린다 말은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기 전에  죽었던 몸인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법적으로 산 몸이 됐습니다.

법적으로 산 몸이 된 이 몸이 앞으로 대속을 벗어 버리면 죽게 됩니다. 대속을  벗어 버리면 죽게 되기 때문에 대속을 벗지 않고 그 영원히, 법적으로 얻은  구원은 버리고 영원히 멸망받을 그 심신을 영생을 시킬라고 지금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런데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시는데 성령님이 우리 중생된 몇 안에는 항상  계시지마는서도 우리 심신이라는 요거는 악하고 못돼서 어짜든지 마귀는 잘 청해  들이고 성령은 배척을 합니다. 이래서 성령을 배척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서  우리 마음이 배척하면 성령은 전지 전능자기 때문에 우리를 억만 명이라도 일 초  동안에 싹 멸해서 가루를 만들 수가 있지마는서도 능력이 있지마는서도 이  배척을 할 때에 배척 당하는 성령님께서 쫓겨 나가야 됩니다. 왜? 배척당할 때에  배척당하지 안할라 하면은 그 우리의 심신이 전멸을 당하기 때문에 전멸당하면  구원이 안 되니까 또 쫓겨 나갔다가 또 달래 가지고 또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의  심신을 구원할라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마음 안에 성령이 와서 계시면 그 마음과 몸이 다 영생이 되어지고  자기 마음에 성령이 계시지 안하고 자기 심신이 주장하면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으로 있던 이복순 집사님이 어제 세상을 떴습니다. 떴는데  그분은 우리 교회에 큰 구원을 줬고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왜? 모두 우리 교회  교인들로 말하면 몇 가지 등급의 교인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제일 하급은 자기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자기는 항상 살아 있는 줄만 알고 살아 있는 튼튼한  그 생명을 가지고서 살아 있는 줄만 아는 그 기독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꿈  속에 사는 인간입니다.

 그보다 조금 깨어난 자는 '우리가 이거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고서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보다 조금 나은 이 학년 정도의 신앙이라고 그렇게  비유할 수가 있겠습니다.

 또, 그보다 좀 더 나은 삼 학년 정도의 신앙은 '아무래도 우리가 이 신앙 진리를  지켜 나갈라고 하면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어려움 중에 물질  어려움도 있고 또 자기 출세 어려움도 있고 또 이 세상에 무슨 행락 어려움도  있지마는서도 물질 어려움 그것이 첫째 어려움이요 그보다 더 어려움은 우리의  신체상 어려움이 어려움이라, 우리 신체에 어려움이 와 가지고 오면은 신체상  어려움이 어려움이요 셋째로는 우리의 생명적 어려움이 어려움인데 '과연 오늘  내가 예수 믿는다고서 이렇게 잘 준비해서 신앙 생활한 것이 내 생명에 관계되는  그런 문제가 있을 때에 내가 생명을 내 주고라도 이 구원을 가질 수가 있겠느냐  없겠느냐?'  이래서, 항상 이 도를 배반치 안할라고 함으로써 '내게 어떤 고문과 고형이  있으면 어찌 되겠는가? 이 어려움이 오면 내가 견디겠나?' 이래서 스스로 자기가  고문 고형을 역부러 고생을 해 보기도 하고 또 어려움도 겪어 보기도 하고  자기가 뭐 고통이 있으면 고통을 면하지 안하고 그 고통을 참아서 견뎌 보기도  하고 이라다가 '나는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니 이게 문제다' 해서 '나는 고문과  고형을 당하면은 그때 이 도를 내가 지키지 못하고 내가 입술을 잘못 놀릴까'  심히 두려워서 떠는 사람, 또 자기 생명이 끊겨지는 지경 되면은 생명에  애착심으로 인해서 죽기가 두려워서 자기가 도를 배반하게 되지 않겠느냐 이래서  이 고통 가운데, 죽음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이 우리 교회로서는 삼학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위에 사학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겪어 가지고서 이제 죽음을  초월해서 뭐 어떤 죽음이 온다고 해도 죽음은 두려워하지 안하고 죽으면은  그것이 완전한 생명으로, 살아 있는 것보다 이제 어려운 모든 수고를 다 그쳐  버리고 완전 생명에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주 가장 기쁘고 즐거운  것으로 이렇게 알고 있는 사학년 신앙가들도 좀 있기는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말  듣고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울고 있으나 너희들이 참으로 나를 사랑하면 내가  지금 십자가 못박혀 죽는 것을 너희들이 기뻐하였으리라. 왜? 이는 내가 땅에  있는 것보다 아버지에게 가면은 더 좋기 때문에 내가 더 좋게 좋은 곳에 가니까  내가 십자가 못박혀 죽는 것을 너희들이 더 기뻐할 터인데 죽으면 다시 영원히  죽지 안하는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되고 고생과 수고가 없어지게 되고  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면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할 수  있고 하나님 바로 다음 직위를 가지고서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이 사실을 네가  알면은 내가 가는 것을 더 기뻐하지마는서도 너희들이 어두워서 지금 죽기를  두려워함으로써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그 세계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 교인들은 일학년이 제일 많고 이학년이 약간 있고 삼학년이  그저 참 약간 숫자에 있습니다. 이래서 어떻게 하면 잘살꼬 하는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하면 내가 생명을 내놔도 주님을 배반치  안하고 죄를 짓지 안하고 죄에 대해서 자유하고 내가 의에 대해서 자유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완전한 화친한 생활을 가질 수가 있을까 거게 대해서 근심  걱정하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서는 삼학년 정도인데 그 정도에 있는 사람들이  제법 내가 많은 줄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그런 데 대해서는 꿈도 안 꾸고 그저 살아 있는 그것만 보고  일학년 교회가 많고 이학년 교회가 약간 있고 삼학년 교회는 별로이 없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하면 지금 부자될까 세상에서 형통할까 거게 대해서만 기도하고  있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죽을 때에 잘 죽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도를 배반치  않는 이 구원을 팔아먹는 이런 자가 되지 안할까 하는 그런 고차원에서 지금  기도하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교회도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 숫자가 많지는 못합니다.

 또 여게서도 벌써 사선을 넘어서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을 한없는 영광스러운  것이요 존귀한 것이요 이 헌옷 벗고 새옷 입는 것이요 모든 이 제재하는 이 모든  방해물을 입고 있다가 완전히 해방되어서 자유하게 되는 마치 감옥에 들어 있던  죄수가 해방되는 것처럼, 이렇게 착고에 치여 있던 짐승이 거게서 해방되는  것처럼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죽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또 그것은 그래도 그 말을 해도 다 말쟁이 말로 듣습니다. 아무리 그 말해도  실지로 보지를 못하니까 다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데 그 의문이 요번에  이복순 집사님으로 통해서 완전히 해결 지은 것을 여게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서 제가 보는 가운데에서 이 삼학년에 있는 사람들이 이번에 사학년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권사님들, 이 모두 잘 믿는 집사님들, 그뭐 거게서  장로님도 거게 가야 그게 무슨 세계인지 알지도 못하는 그 아직까지 일학년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하십시오. 나는  일학년인가? 나는 이학년인가? 나는 삼학년인가? 사학년인가? 사학년은 벌써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겨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영광이고 존귀하고 더  평안하다는 그 모든 실험의 경험과 체험을 겪은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 별로이 없어.

 이랬는데 이번에 이복순 집사님은 그분이 암병입니다. 암으로서 그래 고생했는데  그분이 그라다가 그 다음에 몸이 건강해져 가지고서 뭐 저 산에 뛰어  돌아다녔습니다. 이라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또 마지막에 데려갈 때가 되니까,  그때에 여게서 밤이면 예배 보면 한 여덟시 돼서 다른 볼일 보고 나면은 한  아홉시 열시 되는데 그때 나서도 하룻밤도 안 뺏습니다. 가면 거게서 팔송까지는  차 타고 가고 거게서는 공동묘지를 통해서 그 산만당까지 가는데 그 상당히 그  산이 깊고 높은 산입니다. 그 산만당까지 가는데 비가 오든지 눈이 오든지 춥든지  바람 불든지 한번도 안 빼고 갔습니다. 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다고  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안 가고는 못 견뎠습니다. 안 가고는 못  견디는 건 아마 내가 그때 생각하기를 주님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믿었고 또 기다리고 계셔서 주님을 가서 만나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받는 그 연결이 됐기 때문에 저거는 암만 금해 봤자 못 금한다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때에 그라고 있는데 사람은 내가 보니까 자꾸 변화가 됐습니다. 자꾸 변화가  돼서 뭐 얼마 동안, 몇 달 동안은 그분이 땅위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뭣이든지 말하면 요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이  나에게 좋게 해 주실 터인데 우매무지한 내가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이래 해 달라  저래 해 달라 그렇게 한다는 것은 도리어 자멸 행위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해  주시는 것은 뭣이든지 나를 사랑하심으로 유익되게 해 주시는 것인 것을 내가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분이 해 주시는 대로 나는 감사하고 기쁘게 받을  것뿐이라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이랬었는데 이번에 고통당할 때에 이제 음식을 먹지 못하니까 주사를 놨습니다.

주사를 놔도 얼마 동안 놓다가서 그만 주사 물이 안 들어가고 바늘도 들어가지  안하고 물도 들어가지 안하고, 피가 딱 굳어져 가지고 있으니까 그 물이  들어가지를 안합니다. 안 해서 주사를 끊었습니다. 주사 끊고, 음식은 끊은 지가  좀 더 되고, 주사 끊고 난 다음에 한 열흘 동안 그는 물 한 방울도 마시지를  못했습니다. 물을 입에 대면은 그저 입에 적시고 난 다음에 속에 고이는 거는  휴지로 닦아내고 한 모금도 들어가면 아파서 못 견뎠습니다. 이래서 그 고통이  말할 수 없는 고통, 그 굉장한 고통이지마는서도 그분은 죽음의 고통을 이기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래서, 열 하루 동안 아주 그라면 그 몸은 뭐 핏기 하나도 없습니다. 완전히  가죽하고 무슨 똑 여기 완전한 참 그게 해골이라 뭐, 피는 한 방울도 없고,  없습니다. 이랬는데 그저 어떻게 기뻐하는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그 입에서 감사와 기쁨과 찬송 이것이 뭐 늘 어떻게 계속되고 그  얼굴이 어떻게 환한지, 그 본 사람들마다 평생에 그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답고 광채 있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뭐 아주 굉장한 그 광채가 있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 맛을 보고 난  다음에는 자꾸 가고 또 어떤 구역은 자기 구역 식구를 거기다가 데리고 가  가지고 구경시킬라고 데리고 갔는데, 그래 딴 사람 여게 있던 사람 어데 가  가지고 죽었는데 여기 있다가서 그 사람은 저 딴데 가서 죽었는데 죽을 때  보니까 어떻게, 그 사람도 암병인데. 다 같은 암병인데, 암이라 하는 것은 지금은  그래, 옛날이라 지금이나 사람 죽는 사람은 다 전부 암병으로 죽는 것 같습니다.

그 암병인데 얼마나 아팠던지 못 견뎌서 그 혀를 깨물어서, 아파서 못 견디니까  혀를 깨물어서 그 입에서 혀가 피가 어려 가지고서 온 몸이 다 피투성이고 그저  그렇게 그라며 막 못 견뎌서 이렇게 악을 피우고 이래 가지고 그라면서 가끔  가다 하는 말이, 과거에 통일교회 다녔더랍니다. 그 통일교회 것만, 통일교회  교리를 더러 말하면서 그렇게 고통을 가지더랍니다. 여게 와서 얼마동안  있었지마는 그 통일교회 그 도 위에 하나님의 도가 속에 들어가지를 안 합니다.

안 받아들입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도 따라갔어. '그라면, 너 그라면 거게 가서 어째 죽었더나?'  '이렇더라. 그라면 너 예수 바로 믿은 사람을 가 볼래? 한번 따라가 봐.' 가보니까  그보다 얼마나 육체는 해골이 됐고 벌써 먹지 못한 지가 얼마고 주사도 안 놓고  그랬는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쁨이 넘치고 오니까 그렇게 환영을 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것을 봤어. 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이래  들어가니까 꽁꽁 앓는 게 그래 아파서 자꾸 이래 뭐 앓는 게 있어서 아픈갑다  이랬는데 가니까 그래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환영을 하면서 말하기를 '아,  미안합니다. 내가 괴로운 것을 보여 줘서 죄송합니다.' 하고서 지금은 괴로움이  하나도 없다 하면서 그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래 하더랍니다.

 그래 가지고서 어떤 교인이 가 가지고, 그렇게 밤에 항상 비가 오든지 눈이  오든지 그 밤에 가는 것은 이렇게 기쁨을 맛볼라고 그래 그때 다니신 모양이라  이라니까 듣다가 '맛봐? 맛봐? 내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야.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해.' 그라면서 그래 기뻐하며 그라더랍니다. 그라면서 '이 기쁨이 부러워?  부러우면 다 가질 수 있어, 이 기쁨은 곧 주님의 기쁨이요 나의 기쁨이요  여러분들의 기쁨이기 때문에 다 가질 수 있어. 이 기쁨을 가질라면, 그 부럽지?  부럽기만 하면 안 돼. 이 기쁨은 평소에 만들어야 돼.' 그렇게 말하더라고서.

 이래서, 어떤 사람은 나한테 와서 말하기를 '나는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무슨  문제가 해결됐느냐?' 죽음이 제일 걱정이 돼 놔서 이거 만일 죽음의 고통에  고문과 고형이 오면 내가 그때 가서 예수 믿는 도를 어찌 하나? 나는 죽은 것을,  아픈 것도 참지 못하고 죽는 것도 두렵고 이런데 이번에 아픈 것을 참고 남음이  있는 기쁨이 주님에게 있고 어떤 고통이라도 고통을 이기고 남음이 있는 주님의  사랑의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았다고.

 이 보기에 그보다 더 고통스러움 없는데 그 보니까 고통이 있는데도 주님의 그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과 그 은혜에 감격 그 하늘의 소망에 대한 기쁨이 그  모든 고통을 눌러서 흔적이 없이, 흔적이 없고 찬송하자 하고 찬송을 하면은,  삼십이장 찬송 하더라는데 하면은 그뭐 해골인데 그때는 뭐 온 양쪽 팔로  가지고서 기뻐하면서 춤을 추는데 그 얼굴이 완전히 어린 아이 얼굴이 돼 버렸어.

어린 아이 얼굴이. 어린 아이들이 이라면 그뭐 그 흉내를 내지 못하게 아주  아름다운 그 얼굴을 가지고, 그래 내가 있다가서 전화로 '너무 자꾸 그렇게 외부에  대하는 사람들에게만 기쁨을 줄라고 또 기쁨을 발표할라고만 하지 말고 속에  기쁨이 넘치도록 주님을 좀 더 사모하라' 하면서 말을 하지 말고 이라라 하니까  그라고 난 뒤에 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 전화 듣고 난 다음에는 이 손가락으로  이라면서 웃으면서 하나님의 종이 말하지 못하게 한다고 아주 웃기를 저거끼리  서로 돌아앉아 웃는 것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그 기쁨과 웃음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고통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그런 것은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주님에게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순교 당해, 고문  고형 뭐 장기간의 고문 고형 어떤 게 와도 능히 이기고 남음이 있는 것이 주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서 이제 많은 교인들이  깨어났습니다.

 깨어나서, 그뭐 집사 죽으면 그분들은 교회에서 자기 자녀들이고 뭐이고 다 할  이가 없고 교회 책임이기 때문에 공로가 많은 것보다도 그저 교회서 그분들은  교회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교회장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면 교회장을  하기로 했다가 또 죽었으면, 도시락 한 이삼백 개 만들고 이래 가지고 차 한  두서너 대 내고 이래 장례할 건데 그거 보니까 많은 사람이 은혜 받았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시고 이렇게 축복해 주시고 또 우리 교회에 큰  역사하는 것 보니까 아마 이거 저 장례에 만일 너무 빈약하게 준비했다가는  우사당하겠다 이래서 도시락은 천 개를 맞췄습니다. 천 개를 한 개에 이천 원씩  했는데 아주 그 도시락이 참 좋아요, 보니까. 이천오백 원 짜리인데 이천 원씩 해  주더래요. 이천 원씩에 만들고 버스는 스무 대를 대절했는데 비가 온다 해  가지고서 다섯 대는 취소하고 열다섯 대만 했는데 이 열다섯 대 했다가 또  나중에 급한 꼴 안 볼까 모르겠습니다. 갈 사람은 다 얼마든지 차는 뭐 급하게  내면은 만 원 했던 거 이만 원 줘도 내 가지고서 댈 터이니까 다 가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참여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이래서 우리 기독자들은 이 심신만 있으면, 심신이 주장하면 영하고는 한테  있지마는서도 사이가 끊어집니다. 영과 연결 안 되고 이 심신 이 둘만 있으면은  거기에는 내나 이를 갈면서 혀를 깨물어서 피가 나오고 막 고통스러워 못 견뎌서  그렇게 못 견뎌 죽습니다. 못 견뎌서 죽게 됩니다. 죽음이 제일 고통이 제일 큰  고통입니다. 못 견뎌 죽는 그 죽음인데 성령이 오시면은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고  평안하고 거게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평안을 줄 수가 있고,  옆에 사람이 있다가서 '너무 사람들이 많이 오고 이라니까 괴롭다' 하니까  말하기를 내가 평생 기도한 것이 그것인데 이제 얼마든지 오라 하라고. 와  가지고서 이 기쁨도 같이 나누고 이 감사도 같이 나누고 내가 마지막 숨질  때까지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 하면서 그뭐 이  건강한 사람도 그 몇 분지 일만 한다 해도 그만 피곤해 쓰러질 것인데 그 어데서  힘이 나오는지 그래 가지고서 손을 거머쥐고 쌓고 찬송하면은 뭐 춤을 막 이래  추는데 그래 평소에 나는 춤 주는 줄 몰랐는데 춤을 그렇게 잘 춰요, 누워서. 이  기뻐하고, 기뻐하는 얼굴이.

 그래 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 죽는 사람을 내가 많이 봤습니다. 내가 송장  치르기를 얼마나 치뤘는지 모릅니다. 많이 봤는데 모두 보면 다 해결을 짓지  못하고 고통당하다가 마지막에 그저 죽는 그 한 일분 이분, 일분 이분 동안에  평강을 얻고 가는 그런 사람은 내가 많이 봤습니다마는서도 아주 몇 시간을  걸쳐서 며칠을 걸쳐서, 십여 일을 걸쳐서 이래 기뻐하는 사람은 내가 한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몇 시간 걸쳐서 기뻐하는 사람은 저 대티에 OOO씨인가 그분의 딸이 처녀가  세상 떴는데 그분이 죽음을 초월했고 주님과 연결되는 참 영이 장성하고 성화가  많이 된 것을 봤습니다. 그 처녀는 일 년에 신구약 성경을 십 육 독을 해서 우리  교회서 일등상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도 옆에서 접해 보면은 한번도 죄짓는  말하는 것은 뭐 평소에도 들어보지를 못한다는 그런 말을 들었는데 제가 그때 가  가지고서 그날 밤에 저 오고 난 다음에 운명했습니다. 제가 가서 보니까 어떻게  참 영이 장성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있는지 기쁘고 즐거워서 나도 이 사명만  아니면 그만 그럴 때 그만 같이 모두 그 나라에 같이 따라가면 싶은 그런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분보다 이복순 집사님은 그 영이 더 장성했습니다. 이라고 그 평소에  들은 교리와 신조가 어떻게 그 똑똑한지, 이러니까 그 교리 신조를 그렇게 외우고  읽으면서 그럴 때마다 교리와 신조로써 큰 힘을 얻고, 그래 한번은 저 공동묘지  가니까 하나님이 시험하셨던 모양입니다. 비가 오고 하는데 큰 짚동 같은 시커먼  자가 꽉 앞에 나서며 길을 막아서 깜짝 놀래 가지고 놀라면서 퍼뜩 나오기를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 외에 딴거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하니까 그것이  물러가더랍니다. 물러가고 나중에 가서 자세히 보니까, 그 뭐꼬? 그 소각통인가  뭐인가 그거 불로 태우는, 소각통이 거기 커다란 게 그 도라무 같은 거 있습니다.

그거더래요.

 평소에 하나님의 도리를 듣고 성경 말씀을 기억하고 올바른 교리를 깨닫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지 몰라. 사탄이 올 때 올바른 교리만 내 대면 사탄이가 쭉쭉  뻐드러집니다. 그만 도망을 쳐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평소에는 모르지마는서도  사망이 올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오는 것입니다.

 저도 왜정말년에 신사참배 때문에 그래 쌓을 때에 지서에 잡혀 가 가지고서  신강할 때에 저희들이 천조대신에 절 안 한다고. '그거는 신도 아닌데 내가 거게  어떻게 절할 수가 있겠나?' '그라면 벌 받는다' '너거 그라면 그걸 나 달라. 내가  너거 앞에서 내가 불에 태울께. 태우면 나 벌받을 것 아니가?' 그러니까 그 일본  부장이 있다가 '그러면 국기도 그래 절 안 할 거냐?' '국기 그까짓 것도 국호인데  표시인데 무슨 절 할 거고? 절하면 우상된다. 그것도 날 달라 내가 너거 앞에  태울께.' 이렇게 태운다고 이렇게 해도, 그때 그 말을 어떻게 했는지? 그때 가장  왜정말년에 어려움이 제일 극심할 때인데. 그렇게 해도 그들에 내게 대해서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 신사참배 때문에 그래도 개명 교인들은 신사참배 한 사람  학생 하나도 없습니다. 제일 유명하니까 그들이 단속은 제일 했는데 매일 그  부장이 올라왔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까 돼요.

 이러니까 요한복음 8장에 말씀하시기를 '진리가 자유케 하면 자유 하리라' 진리가  자유, 진리가 그 사람을, 자유가 뭐인데? 그 다음에 해석하기를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 죄를 범하지 안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되지 지켜 주시지  안하면 안 됩니다. 진리가 지켜 줘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래서 이번에 모두 사선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이말출 권사님도  이제는 죽기 두렵지 안하지? 죽기가 두려워요? 두렵지 안해요. 아마 죽기 두렵지  안한 사람 많을 것입니다. 많았습니다. 또 이 고문과 고통 당하면 어찌 되느냐?  고문과 고통 그것을 고린도후서 1장에 그 말씀이 있어. 고난이 극심한 것같이  주님의 위로는 더 극심해서 그런 고난을 이기고 남음이 있다 이랬어.

 그런고로, 어짜든지 우리들이 오늘 지금 오전에 설교하다가 그만 그거 다 못  마치는데 이제 마지막에 결론합니다.

 여러분들, 우리 기독자들은 속에 성령으로 살면 우주와 천하 것이 내것입니다.

우주와 천하 것이 다 나를 돕고 위로하고 내 편이 됩니다. 공산주의도 그 하는  행동은 내 편 행동해서 내게 유익되게만 하지 해하게 할 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살지 안하고 육체로 살면 제 생각에는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지마는서도 전부가 사망밖에는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다 성령으로 살지 육체로 살기를 원하는가? 육체로 살기를 원치  안하지마는서도 육체로 사는 것은 마귀가 들어오면 육체로 살게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그 배암의 유혹받고 보니까 그만 해와가 육체로 살았습니다. 배암의  유혹받고 보니까 선악과가 자기 전멸되는 대대손손이 망하는 선악과인데 배암의  유혹을 받고 보니까 그 선악과가 그렇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탐스러워져서 하나님도 배반하고 남편도 배반하고 안 먹고는 안 됐습니다. 그렇게  좋아 보입니다. 귀신이 들어가면, 자기 멸망할 것도 귀신이 들어가면 꺼꾸로  오해를 시키기 때문에 그렇츰 좋게 됩니다.

 이렇게 돼서 우리 속에 귀신이 들어오면 마귀가 들어오면 생각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이 전부 자살 행위 자멸 행위 외에는 하나도 없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합니다.

 그러면 이 귀신이 안 들어와야 될 터인데 귀신 들어오는 그놈이 옛날 에덴  동산에 해와에게 들어올 때도 그 들어오는 것을 해와가 그 귀신 말 들으면, 배암  말 들으면 자기 망할 줄 알았으면 그거야 안 하지요 어떻게 달콤하게 꾀우든지  몰랐다 그말이오. 오늘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귀신이 들어오면 우리의 모든  생각이나 마음이나 지혜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비판이나 평가나 모든 쾌락이나  전부가 다 꺼꾸로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꺼꾸로. 좋은 거는 나쁘게 보이고,  나쁜 거는 좋게 보이고, 죽는 거는. 사는 걸로 보이고 사는 거는 죽는 걸로  보이고, 유익은 해로 보고 해는 유익으로 보고 정 꺼꾸로 보인다.

 그라면 마귀 그놈을 청해 들일 필요가 뭐 있겠소? 마귀 그놈을 청해 들일  필요가 없는데 마귀 그놈이 들어올 때에 지혜 있게 들어옵니다. 마귀가 들어올  때에 어떻게 지혜 있게 들어오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마음,  안 할 생각, 안 가질 마음, 사람을 미워하는 그거야 뭐 미워하는 미움 없는 사람이  있어? 사람을 미워하는 그거는 보통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오. 사람을 미워하는,  미워하는 걸 예사로 아는데 미움이 들어올 때에 자기가 사람을 미워하는 미움이  있을 때에 거게는 벌써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미움이  들어올 때에 마귀가 같이 들어옵니다. 시기가 들어올 때에 마귀가 같이  들어옵니다. 허욕이 들어올 때에 마귀가 같이 들어옵니다. 허영이 들어 올 때에  마귀가 같이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을 허는 훼방이 들어올 때에 마귀가 같이  들어옵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진실되고 진실되고 양심대로 거룩하게 거룩하게  깨끗하게 온전하게 원수를 제몸 같이 사랑할라는 요 진리의 말씀이 들어올 때는  마귀 그놈이 배기지를 못하고 나가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갖 죄의 생각, 죄의 마음, 죄의 뜻, 죄의 입술, 죄악의 행동,  죄악의 눈초리,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막 성을 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엉크리고  이래야, 사자같이 이래야, 황충이 모양으로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겁이 나 가지고  떨지 싶어서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게 벌써 제 마음이 아니라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 자기를 그런게 만드는 것이오. 그것이 다 자살 행위요, 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덕 볼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걸 행위기 때문에, 비참한 그  병신인 것입니다. 우리는 도를 깨닫고 바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죄악의 마음, 죄악의 생각, 죄악의 성질, 죄악의  소원, 죄악의 말, 죄악의 행동, 죄악의 눈초리, 죄악의 안면, 죄악의 그 모든 뜻, 이  죄악의 복술 이것이 곧 마귀하고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놈 들어오면 마귀  들어오니까 마귀 들어오면 전부 비판과 평가와 지식이 꺼꾸로 되기 때문에  자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귀 들어오고 나니까 해와가 선악과 보니까  대대손손이 망하는 것이지마는서도 귀신 들어오고 나니까 선악과가 그렇게 좋게  꺼꾸로 보이지 안했습니까? 이것을 깨어서 알아야 됩니다.

 그런고로, 자멸 행위를 자살 행위를 말아야 합니다. 따라 합시다. 자멸 행위!  자살 행위! 이것을 금하자! 과거가 족하니! 남은 때는! 자살 자멸하지 말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참 복음을 주셔서 이 복음으로 인하여 확신을 주시고  주님의 대속의 이 사랑에 대해서와 하늘나라의 소망에 대해서와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셔서 세상 모든 것을 이기고 남음이 있는 이 믿음들을 주어 점점  성화시켜 주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그네 세상에서 완전히 죽음을  초월하고 영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신령한 사람으로 사는 생활이  되어서 완전히 세상을 발 아래 두고 사는 믿음의 생활로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생애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복순 집사님을 이렇게 깨끗하게 구원시켜 주시고 확실한 믿음을 주셔서  우리에게 큰 은혜와 힘을 끼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일 유해를 장례할  때에도 주님이 함께 하사 영광을 받으시고 뜻을 이루시고 또 주님이 하시는  역사를 나타내시옵소서.

 이렇게 많은 형제들을 불러서 구원해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이 되었사오니 이 염려 많고 거짓된 나그네 세상에서 주님을 바로 믿고  의지함으로써 아무 염려없이 거짓이 없는 진실의 세계에서 날마다 죽음에서  생명을 마련하고 거짓된 세상에서 참을 마련하며 없어지고 두고 가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마련하는 참사람으로 사는 이 생애와 사람이 점점 자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들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그  능력이 저희들 속에서 날마다 불붙게 하여 주사 피곤치 아니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여기에 모든 걸 매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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