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선지자선교회 1982년 7월 17일 토새

 

본문 :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여기에 영이라고 말하는 영은 하나님 영을, 하나님을 말하고, 성령님, 하나님을  말하고, 육신으로 이렇게 발표한 것은 인간들의 그 심신의 기능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죄와 허물로 영은 죽었고, 이러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없는 거와  같습니다. 불신자들은 전부가 영의 작용은 없고 심신의 작용으로서만 남은  죽음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 살면 사는 생명이 더 강해지는 줄로  알지마는 하루 살면 그 생명은 그만치 짧아졌습니다.

 이래서 나이가 많아서 머리가 희끗 희끗하게 되면 그때는 이제 생명이 얼마 안  남아서 거의 다 죽었습니다. 나무를 베 놓으면 처음에는 청청하지마는 하루 이틀  지나가면 시들고 나중에는 마르는 것처럼, 그렇게 육신의 생명 가진 그거는 죽은  것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산 것 아닙니다. 심신으로 영이 먼저 죽고,  심신이 지금 죽는 일을 하는데, 죽은 심신들이 생각하고 마음먹고 이렇게 사용해  가지고 온전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알기 쉽게 말해서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생각,  성령의 생각이요. 육신의 생각은 성령 생각을 제외한 생각은 전체가 육신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20세기의 문화를 자랑하고 과학을 자랑해  봤자 그게 뭐이냐? 육신의 생각들이라 그말이오. 육신의 지식들이라 그말이오.

전체가 육신의 소욕들입니다. 그런고로 그것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습성이 되어서, 습관이 되어서 그만 아주 죽은 자와 같은 자는,  자기에게 현실이 오는데 그 현실은 제가 만든 것 같으나 주님이 만드셨습니다.

주님이 만들 때 사람을 사용해서 만들기도 하고, 정치를 사용해서 만들기도 하고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것을 이렇게  저렇게 종합을 해 가지고 우리 택자들의 현실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현실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이용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현실을  잘못 이용하면 죽고, 현실을 바로만 이용하면 크게 보배로운 결과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데 이 현실을 사람들은 그만 구습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현실을  닥치면 그만 현실에게 머리 숙입니다. 현실에게 머리를 숙이고 현실의 종이 돼  가지고 현실에 피동되어서 살려고 한다 그거요. 그것은 아주 사람들이 타락한  사람의 습성입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현실 닥쳤으면 그만 현실에서 현실에  부딪혀 가지고 이 현실에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해서 그 현실대로 움직입니다.

현실의 새끼가 돼요. 현실의 소산이 됩니다.

 이 사람이 제일 못난 사람이고 제일 불쌍하고 천한 사람이오. 현실의 소산,  현실의 새끼, 현실의 새끼 그 사람이 제일 불쌍하고 가련하고 못난 사람이고  천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현실을 그것을 자기의 상전으로 삼아서 현실에게 무조건 종 되려고  이렇게 하지 아니하고, 거기에다가 자기의 어떤 욕심이나, 돈 욕심 가진 자는  무슨 현실을 닥치도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돈 수입이 되겠느냐?' 자기가  현재 소욕하고 있는 그 소욕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이런 현실도 소욕 중심으로  해석하고 저런 현실도 소욕 중심으로 해석하고 이렇게 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고,  권세나 행락이나 그거는 밤낮 사모가 그것이기 때문에 이제 그것만 생각합니다.

이런 자도 있고,  또 어떤 자는 현실을 닥쳤으니까, 자기가 글을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이랬으니까 현실을 닥쳤으니 '이런 현실은 보자. 사학을 내가 공부했는데 사학을  두고 말하면 이런 현실을 어떻게 했느냐?' 이제 모든 과거 역사 사람들이 이  현실을 어떻게 처리했느냐 그렇게 또 하는 사람 있고, '나는 경영학과를  공부했으니까 경영학을 공부한 대로 이제 현실을 닥쳤으니 이 현실은 어떻게  해야 되나, 나는 상과를 공부했으니까, 나는 어떤 이종교를 잡았으니까 그  종교대로 현실을 한번 생각해 보자.' 어쨌든지 그 전체를 다 도매금으로 똘똘  뭉쳐서 육신의 생각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기 때문에 뭐 좋든지 나쁘든지 결과적으로 전체가 다  사망뿐입니다. 사망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 육신의 생각 그 하나가 있고,  하나는 영의 생각인데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현실을 비판하고 펑가하고 분석하고 잘 작용했다 그거요. 그것은 전부가 다  생명과 평강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게 먹히면 안 됩니다. 지난 밤에도 알아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은 우리의 양식이기 때문에 잘 못 먹으면 죽고 잘  먹으면 아주 영양가 높은 양식이라.' 그 현실을 알기 쉽게 그만 잘 기억해.

현실을 잡아 먹어라, 현실을 잡아 먹어라. 그 현실에게 삼켜지지 말고 현실을  잡아 먹도록 네가 현실을 달려들어라. 그런 데에는 그 현실을 네가 정확히  판단해야 되지 현실을 정확히 판단 못하면 먹다가 찔려 죽는다. 가시 있는  음식을 가시 없는 줄 알고 그냥 훌떡 넘겨 삼키면 가시가 속에 걸리면 그 사람  고생하지 않소? 그 음식은 뭐인지 잘 알고 해야지.

 이러니까 현실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현실을 파악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은 결국은, 뭐 이 생각 저 생각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이 실패입니다. 성령의  생각이 오면 성경이 그 사람의 현실을 아주 정확무오하게 파악하고, 육신이 오면  그 사람 현실을 정확무오하게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성령의 생각이든지 육신이 오면 그 현실을 파악하는 그런 역사를  시작합니다. 파악해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나? 그러면 파악하는 데는 미리  알고 있을 것은 그 현실에는 지난 밤에 몇 가지가 그 안에 끼어 있다고  했습니까? 여섯 가지가 끼어 있다 했습니다. 여섯 가지가 끼어 있는데 그 둘을  합해서 하나씩을 이래 말했으니까 아홉 가지나 열 가지가 그 현실 속에 끼어  있습니다.

 그것도 연구하기를 좀 오랫 동안 연구해서, 돌아가거든 새김질을 해 가지고  연구를 해서, 새김질하는 것은 어떤 것이 새김질하는 것인고 하니, 첫째로는  지식적으로 그 도리를 알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 새김질이요, 새김질은 소 이런  것이 사료를 먹었다가, 일단 먹었다가 첫째 위에 들어가 가지고 그걸 또 쭉 게워  내 가지고 또 입으로 꾹꾹 씹어서 이래 가지고 하는 그것을 새김질이라 하는데,  자꾸 돼새긴다 그말이오. 그러면 양분이 나오겠습니다.

 지식으로 똑똑히 알려고, 먼저 지식적으로 알려고 노력을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이대로 내가 살려고 하면 어떤 그 배경이 부딪히겠느냐, 어떤 애로가 있으며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겠느냐 그것을 미리부터 생각해서 연구를 합니다. 그것이  새김질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그때에 그대로 실행해서 살려고 하면 그때에 당면될  것은 한 둘쯤 당면될 터인데 자기는 서이쯤 당면되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준비한 사람은 그거 뭐 승리는 틀림없이 승리합니다. 승리하지마는 사람은  유한한 사람이기 때문에 둘만 해도 되는데 서이를 준비했기 때문에 하나는  허비요 낭비가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김질하면서 자기가 이렇게 살려고 결심만 하지 이렇게 살려고 할  때에 어떤 여건들이 거기에서 따라 일어난다 하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둘이나  서이나 일어날 터인데, 서이 일어날 터인데 둘쯤 일어날 것이라 이래 생각을  하고, 예산을 하고 자기는 거기에 대해서 대비를 했습니다. 준비를 했습니다.

기도도 하고, 또 어떤 거기에 대한 예비 지식도 가지고, 거기에 대한 모든  상식도 통계도 가지고 이래 가지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거 실행하려 하니까 그때  닥쳐진 것이 둘은 닥쳐졌으니까 미리 예비한 것이니까 구면이라 말이오.

 미리 다 생각한 것이 닥치기 때문에 그래 닥친 것은 '됐다. 요리 요리 하면  되더라. 했지마는 하나는 자기가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생전 보지 못한 처음으로  만나는 그 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럴 때 사람들은 당황하는  것입니다. 당황하고, 갑자기 뭐 준비할래야 준비할 수 없고 찰나적으로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새김질이오.

거기에 대한 준비를 잘 갖추는 것이, 정확하게 파악해 가지고 대비하는 것이  이것이 새김질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새김질이 완성되는 것은, 그러고 나서 자기가 작고 큰  현실마다 되는 거는 아니지마는 그것을 다시 되새길 수 있는 현실이 다가온다  그말이오. 반드시 주님이 지체하지 아니하고 자주 기회를 주십니다.

 자기가 깨달은 바를 실행할 수 있는 그 현실을 주님이 또 만들어 주실 때에 그  현실에 이제는 한번 실행을 했다 그말이오. 실행을 했으면 그러면 뭐이 되느냐?  '참 내 제자가 되고' 이렇습니다. 참 주의 제자가 됩니다. 실행할 때에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자기가 실행하고 난 다음에 아는 진리는 실행하기 전에 아는 진리와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실행주의 자는, 실행을 아주 위주로  하는 사람은 그 사람 말을 들을 때에 '순 저거, 설교 저거 저짓말 설교다.' 왜?  '저거는 말뿐이지 실행해 보지도 않았구만 그 일을 실행하려 하면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이래 말해야 될 터인데 저거는 얼토당토 안 한 말 하니까 저거는 참  말쟁이요 앵무새요, 저거는 생명도 없는 녹음기와 같이, 저거는 남의 말씀을  갔다가 팔아 먹는 도적이요 강도요, 거거는 양 같지마는 이리떼들이다.' 그렇게  안다 그거요.

 내 어떤 사람 말 들었어. '그분은 와서 설교를 하는데 자기가 모르는 말,  자기가 알지도 모르는 말 합니다. 말은 말이나 무슨 말이나 알고 하지마는 말도  모르면서 그 말을 노트를 보고 떠듬떠듬 하면서 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어. 이러니까 무슨 생명이 역사할 것입니까?  우리가 자기 현실을 이것을 잘 파악을 해서, 현실 속에 여섯 가지가 들어  있다는 이것도 가지고 가 가지고 아주 새김질을 잘 해서, 이래 보면 '아멘! 과연  현실 속에 하나님이 들어 있다. 내 현실 속에 하나님이 참석하고 계신다. 마귀도  참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나도 참가하고 있다. 거기에는  많은 사건들이 연관되어 있다. 또 물질들도 연관되어 있다.'  '아, 내 현실에는 과거가 연관되어 있구나. 과거 이런 이런 일들이 연관되어  있구나. 이 현실에 원인은 과거에 이것이 원인이었구나. 이 현실은 과거에 어떤  어떤 동기를 가지고 했는데 그 동기가 현재 이런 현실로 변화돼 가지고 와  있구나.' '아. 이 현실에는 미래가 들어 있구나. 이 현실에는 앞으로 지금 콩이  되나 팥이 되나, 구원이 되나 멸망이 되나, 앞으로 결과라는, 어떤 결과를  맺느냐 그 결과, 여러가지 결과가 이 현실 안에 들어 있구나.'  '그러면 이 결과는 내 속에 육신의 욕심 그놈이 목적하는 것도 있고, 성령이  목적하는 것도 있고, 현실을 만들어 주신 분이 목적한 것도 있고, 내가 목적하는  것도 있고 현실에는 여럿위 목적, 사탄의 목적도 있고, 다른 사람의 목적도  있고, 내 목적도 있고, 하나님 목적도 있고 이 목적이 있구나.' 이러니까 저거  목적, 저거 목적 저거가 달성하려고 애를 쓴다 말이오.

 '여기에는 이러니까 사람과 나와 마찰이 되겠다. 하나님과 나와 마찰이 되겠고  마귀외 나와 마찰이 되겠고, 이러니까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면 내가 이 일에  마찰해서 방해를 지길 것이고, 마귀가 방해를 지길 것이고, 이웃 사람이 방해를  지길 것이고, 이 모든 이제까지 만들어 놓은 일들이, 과거에 모든 내가 생활해  놓은 이 생활들이 여기에 거리껴 가지고, 밧줄같이 짜매 가지고 하겠다. 야,  어렵겠다.' 이것을 비로소 발견을 할 것이라 그거요.

 현재를 잘, 현실이라는 이것을 자기가 잘 파악을 하면, 파악을 할 때에 선입적  관념,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을 가지고 '이 현실은 맛있는 양식이라더라,  맛있는 양식이라더라' 하면서 무조건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 신앙의 지식  말이오. 지식을 가지고 '성경에 닥쳐오는 그 현실이라는 것은 영양가 높은  양식이라 하더라. 이걸 잘 잡아서 한번 먹고 살쪄 보자' 이러면서 입맛을 쭉쭉  다실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이 현실에 대한 욕망, 현실에 대한 취미 이것을  가져야 되지,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랬는데 그만 현실 닥치면 무조건 대가리 숙입니다. 현실만 닥치며 그만 대가리  숙여. 이 현실 닥치면 대가리 숙이고 '예' 그만 꾸벅 거리고, 저 현실 닥치면  저기 꾸벅거리고, 무슨 현실을 닥치든지 대가리를 숙여 가지고 꾸벅거리는 이런  버르쟁이를 하는 인간이 되든지,  그리 안하면 무슨 현실을 닥치면 그 현실을 파악도 안하고 그만 돈 욕심자는  '이 현실에서 돈을 어떻게 벌꼬? 저 현실에서 돈을 어떻게 벌꼬?' 무슨 현실을  닥쳤든지 거기에서는, 거기에서는 돈벌이 하면 즉사하는 그런 현실이라도 그만  거기에서도 지금 돈벌이 하려 합니다. 그런 자가 되지 말고, 현실을 잘 파악해서  현실을 이제는 참 요리처럼, '세상은 너희들의 식물이라' 했습니다. 성경에.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 현실은 우리가 먹고 살찔 수 있는 현실인데 잘못 먹으면  사망한다. 이런 줄 알고 현실을 잘 먹어야 되는데, 현실을 먹는 데에는 잘  씹어서 먹어야 되겠는데 현실을 먹는데 무슨 이빨로 씹어 먹어? 생각의 이빨로  씹어 먹어.

 (머리 들어, 머리. 머리 머리 머리. 머리 들어. 무엇을 생각하다 자꾸 머리를  숙여서, 머리를 숙이면 마귀 들어가. 머리를 빠딱 들고 하지 않고, 그게  엉큼하게 속에 들어서, 머리 숙여서 엉쿰하이, 쿡 숙여서, 보고, 자꾸 사람을  보면서, 강사를 보면서 이래도 어려울 것인데 머리 숙여 가지고 그러면 귀신이  들어가 가지고 속에 이런 작용 저런 작용 더러운 놈의 작용이나 하지 무슨 소용  있는가?)  현실을 육체의 생각으로 씹든지 영의 생각으로 씹든지 그 현실을 씹을 줄 아는  사람, 육신의 생각으로 씹어 먹는 사람은 세상 성공을 합니다. 세상 성공을  해요. 성공을 하지마는 그 성공이 다 사망의 것들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어쨌든 현실을 먹는 사람들, 다 위대한 학자들, 정치가들, 또  재벌가들, 사업가들, 예술가들 또 따뜻한 안락한 가정의 사람들, 농부들,  농업가들, 공업가들, 다 그래도 머리되는 사람들은 그 현실은 육신의 생각  가지고 씹어서 먹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먹어 보면 그런 사람들에게 참 자기를 삼키고 말 만한 그런 현실을 닥쳤을  때에, 언간하면 그 현실에게 그만 머리를 숙이고 삼켜지고 먹혀지고 말았을  터인데 그런 현실을, 그 어려운 현실을 생명 떼 놓고 그 현실을 육신의 생각으로  씹어 가지고 잘 먹어서 성공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 보십시오.

 돈 많은 그 ○○○씨도 가 물어보십시오. 그 사람이 닥친 현실은 죽고도 남을  말한 그런 현실이 많이 있었을 것이오. 그 현실을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자꾸  씹으니까 그 속에 큰 영양이 나와 가지고 이제 성공을 했다 그거요. 그거는 암만  성공해 봤자 사망뿐이오.

 이제 영의 생각으로 씹어. 영의 생각으로 씹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양분이 전부  생명과 평강이라.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을 말합니다. 생명은 이거 하나뿐이오.

생명은 뭐이냐? 생명은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언제  얻느냐?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중생됐다 그  말은 우리 영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영생이라.

 이렇게 영의 생각으로 씹으면 생명과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밑에서  올라가면서 참 생각의 잘못하고 잘하는 데에서 사람이 사망하고 생명과 평강을  얻을 수 있고 한다. 이러기 때문에 생각이 중요하다. 생각 없이 현실에게 머리  숙이고 기어 들어가서 그만 현실에 다스림 받고 현실의 것이 되어지는 그런  사람은 두 말 할 것 없이 죽은 사람이오. 죽은 사람. 그런 사람은 두 말 할 것  없이 죽은 사람이라. 이것은 보면 그래.

 어떤 사람 편지 나한테 어제인가 아래인가 붙여 왔는데, 서부교회 교인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마는 편지하기를, 그 사람 어떤 사람이 말하는 소리 한  마디 듣고 그래 가지고 그 뭐 속에 피를 토해 죽을 일이라고 이러면서  나한테까지 편지를 했는데, 서부교회 교인이라 편지를 했는지 모르나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으니까 서부교회 교인인 줄은 모르겠소.

 그러고 그런 것, 제가 듣는 말 가지고 챙겨서 그렇게까지 하려 하면 제 구원  헛일이라. 그거는 현실이 아닌가? 왜 현실에 피동돼? 그것도 영의 생각으로  씹어서 먹어야지. 영의 생각으로 씹어 먹으면 제게 양식이 되고 살 길이 있을  건데 잘못 먹으면 저는 죽어. 뭐 하나님의 구원이 아무나따나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줄 알아요? 물리도 그 물리에 조금만 틀려도 틀린 것만치 그것은  완제품이 못 되는 것입니다. 틀리면 틀린 것만치 힘이 없어. 백프로 힘이 안  나옵니다. 완성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도는 그게 아니라. 안 되면 다 안 돼  버려.

 이래서 말하기를 '된 것은 된 것만 됐고, 안 된 것은 하나 안 됐는데 모든 것이  안 된 걸로 되어 가지고 있다' 이랬소. 한 죄를 지으면 모든 죄를 다 지은  것이라 이랬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 안 되면 전체가 다 안 된 것으로 이렇게  판단해서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여기에 그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있으면 그것도 자기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에게 피동되지 말아라. 현실을 정말로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생각해서 그것이 너에게 좋은 양식이 되도록 해라. 그걸 생각하니까 자기에게  힘이 나옵니다. 생명과 평강이 맺어집니다.

 분명히 그 사람은 지금 생명과 평강이 맺어지지를 못하고, 그들은 말이  참말이나 거짓말이나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어. 상관이 없고, 자기가 요리를 해  먹어야 돼. 영의 생각으로 생각을 하면 반드시 그것으로써 생명과 평강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주여!' 이러며 벌벌 떨면서 '아, 나는 이러니까 이렇게  조심해야 되겠다. 이면을 힘써야 되겠다. 삼가해야 되겠다.' 생명과 평강의  열매가 맺어질 터인데...

 그러기에 현실을 자기가 상대할 때에 첫째는 내가 현실에 종 되지 않아야  되겠다. 현실로 더불어 싸우는 사람, 현실로 더불어 싸우는 사람 이 사람이 첫째  되어야 됩니다. 현실로 더불어 싸워서 현실에게 지지 않아야 뭣 되는 것이지  현실에게 벌써 삼켜 버렸는데, 죽었는데 뭐 하겠소? 현실에 삼켜졌는데 뭐 해?  항상 예수 믿는 거는 고것만 뱅뱅 돌아가며 해. 새로 깨달음이 있어야 뭐  되어지지. ○○○씨, 새로 깨닫음이 있어야 뭐 변화가 되어지지. 늘 하던 일,  어떤 사람 그거는 잘합니다. 주일 지키고 뭐 몇 가지, 세 가지면 세 가지 다섯  가지면 다섯 가지 항상 그것만 하요. 그것만 하면 그 사람은 늙은이 신앙이기  때문에 점점 타락해 갑니다. 다섯 가지 하다가 여섯 가지, 여섯 가지 하다가  일곱 가지, 일곱 가지면 그러면 다인가? 다섯 가지에 두 가지 더해 일곱 가지를  가지고 삽니다. 일곱 가지? 했소. 열 가지, 백 가지 점점 새로 하나씩 맺혀질  때에 되지,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신앙생활은 자전차 걸음이다. 자전차 걸음은  달리면 그게 힘이 있습니다. 세게 달릴 때에는 옆에서 발길로 탁 차도 그거 뭐  안 넘어가요. 휘떡 하며 획 달아나요. 이렇지만 꼿꼿하이 서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잘 타는 사람이라도 처음에는 뭐 이렇고 이렇고 하지마는 마지막에  넘어가고 만다 그말이오. 신앙걸음은 서 버리면 헛일이라. 달려야 되지.

 현실하고 싸워 현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 일단 현실을 정복해서 '이놈을  내가 이제는 파아 먹겠다' 하고 영의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돋파서 씹으면  거기에서 좋은 아주 영광도 나오고 존귀도 나오고 성공도 나오고 승리도 나오고  하나님의 큰 지능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지능이 나옵니다.

 그러면 영의 생각으로 생각하면 생명과 평강을 얻으니 영의 생각이 참 보배인데  영의 생각을 내가 가지려고 할 때에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거꾸로 네가 영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오지 아니하고, 내가 영의 생각을 역류적으로,  역류적으로 영의 생각을 만들려 하면 힘이 듭니다. 힘이 들지마는 만나는 길은  있기는 있다 그거요. 뭐이냐?  영의 생각은, 자기 생각이 첫째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야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고, 그 다음에는 진리의 생각을 이제는 가지게 됩니다. 진리의  생각, 진리의 생각은 진리는 인격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의 이치요.

진리의 생각을 내가 가지고, 진리의 생각으로 완전한 생각, 살아 있는 하나님의  생각 이 생각을 자기가 찾아가려고, 이래서 '세례는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 이제 본다는  것이, 거기에 본다는 하나님은 성령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모두 다 성령을  가리켜 말하고 하나님의 본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 아닙니다.

 진리의 생각, 진리를 가지고 생각을 하면 진리를 가지고 생각을 하는 가운데에  자기도 모르게 진리를 가지고 생각하는 이 생각으로 족하다 하는 그게 됩니다.

진리의 생각, 이거 안 들으면 구역장 해야 암만, 골만 빠져서 인도해 오지  그것들에게 뭘 줘야 가 가지고 호통을 치지? '야, 어제 주일날 배운 말씀이 무슨  말씀이고?' 이래 물으면 답을 못합니다. '그래 가지고 뭐 할 거라?' 그게 배울  때도 있고, 배울 시기가 있고 써 먹을 시기가 있어. 그럴 때에 틀린 것을 마구  대가리를 때려도 '예. 잘못됐습니다. 배우겠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이래 놓고, 나중에 그거 써 먹을 수 있을 때에는 시험이 닥친다 말이오. 시험이  닥쳤을 때 그때는 '너 말씀을 뭐라고 배웠어? 성경에 뭐라고 했어?' 이러니까,  벌써부터 배우고 이치를 알고 있으니까 '아, 성경에 그랬는데 내가 약해서,'  이렇지마는 그때 가르쳐 놓지 않은 자를 시험을 당했을 때 말하면, '이렇고  이렇다' 하면, 그때 말하면 그때 들려집니까? 이러니까 '헤, 남의 이야기는 식은  죽 먹듯이 한다고 무책임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듣기 싫습니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말한다고 이래 반발만 당하지 그거 건져 낼수 있어? 그러니까 말씀을  깨달아야 된다 그거요.

 자기가 현실을 진리의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것으로 족한 줄 아는  자는 그 사람은 진리 생각 가지고 해 봤자 헛일입니다. 현실을 자기에게 영양가  있게 바로 요리는 못합니다.

 왜?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양심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하나' 그 말은 신앙 양심을 말한 것이오. 진리 가지고 현실을 생각하는  이 생각을 자기가 해서, 진리 가지고는 틀림없이, 모든 진리 자기 아는 대로 다  이용해 가지고 진리대로는 생각을 했지마는 '내가 여기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 가서 설 것이기 때문에  내가 걱정이 가득 된다' 진리의 생각 가지고 만족이 안 되고 성령의 감화의  생각이 되어야 되겠는데 그걸 만나기 전에는 안 되기 때문에 그걸 만날려고 애를  쓰는 거기에서 이제 영의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행할 성경은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마는  네가 어떻게 행할 것은 성경이 가르친 대로 그대로 하라' 하지를 아니하고 '네  속에 기름 부음이 너를 옳고 바르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거하라, 그대로 행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진리의 생각을 가지면서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영감이 오기를, 뭐인가 영감이 오면, 진리 생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요  진리대로 맞았다 해도 속이 시원치를 아니하고 꺽꺽하게 이렇게 이렇지마는  성령의 생각이 와 가지고 판정이 될 때에는 속에 확신이 생기는 것이, 용기가  생기는 것이, 기쁨이 생기는 것이 '아! 이거다. 틀림이 없다.' 이렇게 아주 강한  능력이 속에서 나옵니다. 그것이 영의 생각이라 말이오.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통쾌를 가지고, 자신만만을 가지고 이러면 이제  그에게는 모두 다, 먼저 생명의 힘이 강해지고, 평강이 강해지고, 그 현실을  먹는 것도, 먹으면 그때에 영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알어난 생명이, 일어난  평강이요 현실을 잡아 먹어서 통과하고 나니까 그만 요 생명과 평강이 완전히  성장돼 버렸습니다. 완전히 그것은 결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완성을  이루었습니다.

 이러니까 고 부분적인, 우리의 건설구원은 언제든지 부분적으로 됩니다. 왜?  심신 이것도, 마음도 여러 수만 쪼가리도 더 돼요. 고기 덩어리도 여러 수만  쪼가리도 더 됩니다. 이런 쪼가리들이 주 모은 것이기 때문에 쪼가리 쪼가리를  살려야 되지 한목 못 살려요. 영은 단일체. 단일성이라. 이러기 때문에 한 번만  살리면 돼요.

 이러니까 밑에서 영의 생각을 맞이해 가는 데에는 이런 애로가 있습니다. 영의  생각을 맞이하는 데에는 뭐이라? 영의 생각을 맞이 할 때에는 처음에 뭐이지?  모르지. 뭐. 알 턱이 있는가? 내가 물으면 모두 위사를 할 것인데, 이 순서가  뭐이요?  현실에 종 되지 말아라. 현실을 네가 잡아 먹으라. 그러는 데에는 현실을 바로  파악하라. 파악하는 데는 육신의 생각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영의 생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육신의 생각으로 파악하면 암만 잘해도 썩어질 것이나  이루어지지 썩지 않을 것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망과 죽음과 고통만  이루어진다. 영의 생각으로 이것을 잘 씹으면 생명과 평강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영의 생각이 좋기는 좋은데 영의 생각을 내가 가지고 영의 생각으로  현실을 소화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내가 영의 생각으로 살수 가  있느냐?  영의 생각으로 살려면 첫째는 무엇을 제거해야 돼요? (내가 보니까 중간반 반사  하나 안 왔는데? 안 보이네. 내가 아는 4층에 있는 반사 하나 안 온 것 같아요.)  영의 생각으로 자기가 현실을 소화하려고 하면 첫째 제거할 것이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육신의 생각 이것을 벗어나야 돼요. 이놈이 원수이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고, 그 다음에는 진리의 생각을 가지고, 진리의 생각으로  가져서 다 됐다고 생각하면 저는 또 헛일이오. 속았습니다. 진리의 생각을  가지고 이것 가지고는 되지 않기 때문에 만족되지 아니하고 영의 생각에  나아가야 되겠는데, 성령이 동참해서 성령이 옳다 인을 쳐 줘야 되겠고 성령의  감화가 와야 되겠는데, 영의 생각을 자기가 사모하고 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영의  생각이 온다 그거요. 이것으로 만족하면 안 와.

 그래 바울이 말하기를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으나 이로 인해서 항상 두렵고  안심되지 않는다.' 왜? '여기에서 영의 생각이 돼야 될 터인데 영의 생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하다.' 영의 생각이 올 때에 그는 만족을 했어.

 이것이 밑에서 역류해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참 어렵습니다. 이  영의 생각 가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요. 자연스럽게 영의 생각 가지고 오는  것을 그 위에 말씀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이러니까, 그 시발이 영을 좇느냐 육을 좇느냐 이것은 아무 거리낌도 없고 저  혼자만 하면 돼. 이러기 때문에 이게 제일 쉬워. 영의 생각으로 살려면 영을  좇는 것, 거기에 좇는다 말은, 좇는다 말은 따른다 말이오. 좇는다 말은  소망한다는 말이오. 쫓는다 말은 그것을 목표로 한다는 말이오. 목표가 있어야  그리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 소망을 향하여 이루어 가는 것, 목적을 성취해  나가는 것.

 그러면 영의 생각은, 영의 생각은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 하나님에게 대한  목적, 하나님에게 대한 목표, 이러니까, 그만 사람이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을  가지느냐 인간에게 대한 소망을 가지느냐. 인간에게 대한 소망 가진 자는 전체가  인간 소망이오.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 가진 자는 전부 하나님의 소망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의 소망이냐 인간 소망이냐. 하나님께 소망하느냐 인간에게  소망하느냐 이것이 제일 쉬운 길입니다. 무식해도 그 사람은 밤낮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 좋게 할까?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을까?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까?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것을 할까?'  이렇게 자기는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목표로  하는 것, 이러면 자연히, 하나님만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만 생각하면,  이러면 하나님에게 속한 일을 자기가 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에게  속한 일을 하게 돼요. 육신의, 육신의 소망을 가지면 육신에 속한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일,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 뭐인데? 그 사람이 공장에  일하면서도 하나님 생각하고 보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심판에 통과될까?  하늘나라에 영광될까? 하늘나라에 부요할까?' 이것은 쉬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면 구원에 유익될까?'  그 사람이, 이 말이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에 것을 생각하라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 찾지  말고 생각지도 말라 했소.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살기 쉽다 그거요. '아.

어떻게 하면 구원을 잘 이룰까? 어떻게 하면 이 다음에 만물심판 할 때에 이제  그 심판에 걸리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무궁세계에 좋을 것을 할까? 아이구,  이것도 심판에 걸리지 않겠나?'  이렇게 영의 유익, 거기에 '영의 일' 하는 것은, 영의 일은 한 말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한 우리가 이루어 갈 건설구원을 말합니다. 구원을  가리켜저 영의 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의 일은 구원의 일이오. 우리의 구원,  구원만 생각하는 것, 구원만 생각하는 것.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구원 생각하고, 짐을 지고 가면서도 구원 생각하고,  부엌에서 일하면서도 구원 생각하고, 자기가 바쁠 때도 구원 생각하고, 수월할  때도 구원 생각하고, 전도하면서도 구원 생각하고, 설교하면서도 구원 생각하고  구원 생각하는 것 이것이 영의 일이라 그거요.

 구원을 생각하면, 구원의 일을 자기가 생각하면 그것이 뭐이냐? 구원을, 구원의  일을 생각했는데 그 구원의 일에서 영의 생각이 나옵니다. 영을 소망하면 영의  일이 나오고, 영의 일을 잡으면 영의 생각이 나오고, 영의 생각이 나오면 현실을  잘 요리를 삼아 먹어서 생명과 평강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만 순조롭게 쉽다  그거요. 이거는 자연스럽게 쉬워. 이것은 뭐 등신이라도 되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무식한 사람들, 아주 무식한 부인들 이렇게 들어 보면  그는 항상, 한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 사람 속에는 늘 영의 일, 영을  좇소. 영을 좇아. 성령을 좇고 살아. 그 사람은 혹 이렇게 말해 봐도 하나님이  쑥 나오고, 저렇게 말해 봐도 구원이 쑥 나오고, 하나님과 구원만 나오는 그런  무식한 부인들 많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말해 보십시오. 여기도 말하면 하나님 나오고, 조모로  말해도 하나님 나오고, 요모로 말해도 구원 나오고 나오지마는, 어른이면 잘할  줄 알아도 어른들은 보면 이거 기계적으로 지혜가 있어서 잘 꾀로 가지고 이렇게  때를 따라서 겉에는 쏙쏙 내놓지마는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 전부가 하루 종일  보면 제가 하루 종일 하나님 생각 한 번도 못 합니다. 구원 생각 한 번도 못하고  살아.

 그러기에 '구하라 주실 것이요' 하는 구한다는 것이 그것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구하는 것이요 원하는 것이 구하는 것이오. 그보다  더 큰 기도는 없습니다.

 이러니까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은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서 넘어져. 이러니까  '영을 좇는 자는' 영을 소망하는 자는 그말이오. 영을 따르는 자, 영을 소망하는  자, 영을 목적으로 하는 자, 영을 목표로 하는 자, 이렇게 자기가 영을  생각하면, 영을 생각하면 일이 나옵니다. 무슨 일? 천국 건설의 일, 구원 일,  구원 일이 나오요. 구원 일을 잡으면 거기에서 영의 생각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현실이 전부 구원화 되고 만다 말이오. 현실이 다 구원화되고 말아요. 이러니까  이것은 자연스럽게 영의 생각으로 살기 쉬운 순서입니다.

 그러기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이 나오고,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이  나오는데,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위에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 딱 끊어 놔 버리고, 그 다음에는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 해  놓고 생각을 딱 붙여 놨다 말이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요래  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둑 떼 가지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떼고 붙이고 요걸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됩니다. 요게,  자기가 생각만 하면 확고한 진리를 여기에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요동할 수  없는 길을 가르치고 있어.

 이러니까 영을 좇는 자는 영을 좇으면 거기에 영의 일이 나오고, 육을 좇으면  육의 일이 나오고, 영의 일이 나오면 거기에서 영의 생각이 나오고, 육의 일을  만나면 육의 생각이 나오고, 육의 일을 잡으면 육의 생각이 나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의 결실을 맺고, 육의 생각은 사망을 만든다.

 네가 육의 생각 가지고 뭐 성공해서 큰 재벌이 됐다, 정권자가 됐다, 무슨 어떤  따뜻한 깨소금같이 볶아지는 가정을, 따뜻한 안락한 가정을 만들었다, 무엇이  유명한 명예를 가졌다, 영광을 만들었다 암만 해 봤자 그까짓 거야, 팥이 솥  안에 들어서 삶으면 익지 별 수 있는가? 그까짓 거 다 사망 솥 안에 든 것이기  때문에 가치로 여길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사망의, 사망 솥 안에 들었어.

사망 솥 안에, 사망 솥 안에 든 것을 부러워할 것이 뭐 부러워할 것이 있소?  정말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안에 있는 것 외에 부러운 것이 있으면 그  사람은 진짜 예수꾼이 아닙니다. 아니오, 보면 공연히 말로는 허풋장을 다리고  이래 쌓지마는 실은 속으로는 부러워서 못 견딘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런 자는  가 가지고 결국은 사망을 입고 오지, 전도부인이 가 가지고, 권찰이 가 가지고,  심방하러 가서 똑똑하고 돈 많은 자에게 가면 똑똑하고 돈 많은 자 그자를  부러워서,  그자에게 높은 척 안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아이구, 이렇게 존귀합니다.

이렇게 귀합니다. 참 귀합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능력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그거 좋아할 것이기 때문에, 우선 붙들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서도 속으로 '이  도야지 새끼야, 아이고 불쌍한 이 송장아.' 속으로는 '송장아' 이러면서  겉어머리는 이러면서, 불쌍하고 가련하지마는 그렇지마는 이걸 안 알아 주면  이게 삐꿔도 망칠 터이니까 그러면, 붙들어 놔야 우선 뭐 살리지. 이게 없고,  그만 그게 부러워서 이러니까 '요번에 권찰님 지금 곤란하지요. 권찰님 요번에  집회 때에 이거 뭐 곤란하데 얼마 안 되지마는 이거 쓰십시오' 하면서 돈 봉투를  한봉투 척 내놓으니까 '아이구. 이거 참 감사합니다. 이거 참 뭐 얼마나 지금 낼  돈들이 많은데 이거 뭐 돈 내는 사람 있습니까? 좀 곤란합니다. 어쩌고' 이러면,  주면 좋아 하면서 그만 아주 '참 이거 이런 분이 믿음 있는 분이라' 하면서 그  사람의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  돈 내는 거야 옳지. 이래도 '네가 썩은 게, 썩은 게 썩은 것이라도, 그래도  이거라도 하나 저축을 해라. 그러면 네게, 뒤에 네가 살아나면 소득이 있을  것이다.' 받으면서 겉어머리로 '고맙소이다' 하면서도 '네까짓 이거 내가 안  받아 줄 것이지마는 내가 받아 준다. 네 썩어서 죄 짓는 그 재물을 내가 의롭게  쓰는 데 의롭게 써 준다.' 하면서 딱 말하기를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오늘 날짜  기억 하십시오. 오늘 날짜 준 것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몇날 며칠날 돈 얼마  준 것 아무것이 줬는데 그 돈이 뭘로 돼 가지고 있는가 뒤에 가서 단단히 계산  대십시오.' 돈을 떡 받고 난 다음에는 종은 말이나 그걸 떡 말합니다.

 이러면 돈 준 부자가 후회가 됩니다. '안 줄 걸, 안 줄 걸' 이래도 한마디  쿡찌르고 옵니다. '참 이렇게 안하면 지금 꼭 하라 하려 했더니마는. 하니까  됐지마는, 믿음 없는 게 집사도 되고 권찰도 되고 이러니까 아무것이는 돈 좀 값  있게 쓰십시오.' 이래서 슬그머니 거기다가 사는 생명의 주사침을 한개를 떡 놔  주고 옵니다. '이렇고 이렇고 이렇습니다.' 진리 한마디 가르쳐 놓고 옵니다.

 이래 가지고 주사침을 놓으면 그만 그 자리에서 반발을 합니다. '그렇지마는 뭐  권사님 보이소. 그래도 돈도 참 귀중합니다. 돈 없으면 뭐 대절도 못하고 움직여  집니까, 어데?' 이래도 속에는 먼지를 발에 떨어 버리고 와야 됩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것, '돈은 가지고 있지마는 너를 불쌍히 여겨서 하늘나라에  저축을 시켜 주시고, 혹은 재물 있는 곳에 마음에 있다고 한 그대로 네가 이런  걸 함으로써 하나님과 가까와져서 혹 살아날까 싶어서 그렇지, 송장이 살아날까  싶어서 그렇지 그게 무슨 내가 탐해서 내가 그런 것인 줄 아느냐?' 하면서,  거기에서 받을 것은 하나도 없고 먼지까지 떨어 버리고, 하나도 자기가 감염되지  아니하고, 그 사상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와야 될 터인데 여기에 동화가 돼  가지고, 사람이 돼 가지고 와 버린다 말이오. 이러기에 돈의 종된 자가 무슨  하나님의 종이 됩니까?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받은 말씀, 지금 시간이 짧아서-자연스럽게 쉬운 길로  영의 생각으로 나아가는 그 걸음. 요 걸음을 따라오다가 그만 피곤해 팍 자빠져  버려. 그런 사람은 살려 하면 살아집니까? 안 살아집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이걸 느끼고 느끼고 가슴을 치고 뼈를 조이고 뼈를 녹혀도 이거 될까 말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건설구원이 쉽게 되어지는 것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육신의  생각, 어떤 자랑하는 사람은 돈, 지위, 권세, 명예, 행락, 가정, 남자, 여자,  계집아, 머슴아, 공부 그런 것 다 육신을 좇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사모하고, 소망하고, 목표하고, 그것 사모하고 소망하면 그 일 나와. 두 말 할  것 없이 그 일 나와. 그 일 나오면 그 일에서 생각 나오지 딴 것 뭐 있습니까?  그러면 끝이 비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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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9 율법과 구원/ 마태복음 5장 17절/ 890224금새 선지자 2015.12.14
3788 율법과 구원/ 마태복음 5장 17절-18절/ 890222수새 선지자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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