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선지자선교회 1982년 7월 16일 금야

 

본문 :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에 육신의 생각이라 영의 생각이라 이렇게 표현한 육신의 생각은 사람의  지능이 하는 일이요, 사람의 지능이 하는 일이요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지능이  일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에 영은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하고, 육신은  하나님 없는 인간만을 가리켜서 육신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인간은 죄와 허물로 영은 완전히 죽어 기능적으로는 없는 것과 같이 됐고 그  심신의 작용으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활동하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욕심이라 육신의 생각이라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령이  없는 인간 단독이 하는 것을 육신의 일이라, 육신의 욕심이라, 육신의 생각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는 말은 하나님 없이 인간끼리 하는 일은 인간의  숫자가 많든지 적든지, 능한 자든지 졸한 자든지 숫자가 어떻게 되든지 그 일은  하나도 섞인 것이 없는 망하는 것과 죽는 것뿐이다 하는 이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이 성령의 함께 하심이 없이 인간 단독이 움직인 것은 중생된 자의  생활이든지 불신자의 생활이든지 그 전부는 망하는 것 죽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의 지혜의 눈, 마음의 눈이 소경이 되어서 망하는 것을 볼 줄 모르고 너무  망각성이 많아서 몰라 그렇지 사망 외에 다른 것 섞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정지워야 됩니다.

 여기에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곧 행동까지를 포함한 걸 말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성신의 감동의 생각이 아닌 인간  단독의 소원이나 경영이나 행동이나 지혜나 뭐 천하사람이 다 뭉쳐 가지고  행동한다 할지라도, 온 세계가 놀라서 크다 크다 이렇게 찬양한다 할지라도,  성령이 역사하심이 없이 인간끼리만 한 행동 그 행동은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사람들이 볼 때에 영광이라고 하든지 수치라고 하든지 모조리 사망뿐입니다.

우리가 요것을 확실히 잡고 알아야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말은, 생각이라는 이 속에는 '육신의 행동은' 하는  말과 갈은 말입니다. 인간만이 모여서 소원하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경영하고, 움직이고, 역사하고 아무리 해 봤자 거기에는 사망뿐이라 하는 요것을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이것이 위인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단정짓고 이 지식이  요동치 않는 사람이 위인이오. 그 사람은 인간을 초월한 사람이오.

초자연인입니다. 대인이오.

 제가 아무리 세계서 위인이라고 뭐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인간끼리 행동한 것은  하나도 섞임없이 전체는 사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날뛰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또 '영의 생각은' 하는 이 영은 사람의 중생된 영을 가리켜서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영(靈)자를 말합니다. 하나님. 성령을 가리킴인데 곧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의 생각은 하나도 섞임없이  전부가 다 영원히 사는 것과 평강이다. 그 말은 능력과 영광이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에 영의 생각이라는 이 생각,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지능이 와 가지고  순전히 일하신다. 하나님의 지능이 와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해 놓은 일이  전부가 생명과 평강뿐이다.

 사람인데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순전히 하나님의 지능이 와 가지고 그 사람이  하는 것같이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일을 하여 하나도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은  섞여 있지 않고 전체가 생명과 평강만 이루어지는, 완전만 이루어지는, 영원만  이루어지는, 불변만 이루어지는, 사람이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제가  하는 일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런 접붙임이 인간에게 이루어지고 허락되어 있다  하는 지극히 큰 위대함을 이 시간에 우리가 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입술로만  아는 것 가지고 안 됩니다.

 아무리 봐도 하나님은 안 보이고 사람만 보여서 사람이 하는데, 하나님은 안  보이고 그 사람이 하는데,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이 행동하는데  그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행동은 하나도 아니고, 사람 보기에는 사람  행동이지마는 실은 하나님의 지능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능의 행동이다, 이러기  때문에 해 놓은 것이 전부가 생명과 평강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생명을 말합니다. 인간의 육체의 생명은  그것이 생명이 아니라 사망이 지금 사망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는, 사망이 사망해  가고 있는 것이지 그거는 산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생명이라고 말한 것은  끝없는 영원한 생명이라, 영원한 힘이라, 영원한 능력이라 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하는데, 사람이 행동하는데, 사람 보기에는 사람이 행동하지마는 실은  사람이 행동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능으로 친히 행동하신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 보기에 행동하는 사람 행동은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지능으로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 역사를 찾아가서 그 역사를 접선하게 하는 것이요, 썩지  않고 완전하고 영원한 것에 껍데기를 만드는 것이 사람 행동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피조물이 보기에는 사람이 한 것 같으나 실은 하나님이 한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하신 그 일에 대해서 칭찬이나  영광이나 존귀는 사람이 얻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동하는 그 속에 하나님이 순전히 역사하실 수 있는 길이 인간에게  열려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결과는 전체가 생명이요 평강이라. 평강이라 말은  모든 소유의 좋은 소유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기쁨도, 평안도, 즐거움도,  성공도, 영광도 그 모든 걸 합쳐서 평안이라, 생명은, 생명은 자체의 실력을  가리켜 말합니다. 실력이 무슨 실력인가? 하나님이 그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하는 이 말씀을 가서 오늘 밤에 가르쳐  주시는 이 뜻을 따라서 오랫동안 깊이 해석을 하고 확신을 가지십시오.

 영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감각이 생각하는 그것을 말한 것이 아니고, 그  껍데기에서 알맹이 생명과 평강이라는 그 결과를 맺어진 결과까지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생각이라는 것은 시발에서부터 완성까지의 모든 것을 다 합해서  생각이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사람이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육신의 생각은 어떤 것이 육신의 생각인가?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억만 명이든지 인간의 마음 인간의 고기덩어리. 인간의  심신 뭉텅이들이 뭉쳐 가지고 조성해 놓은 모든 지식 지혜, 이것들이 조성해  놓은 모든 힘, 과학도 다 이 속에 든 것들입니다. 과학은 생명과 평강을  이루지를 못하는 것들입니다.

 성령의 지능의 역사 이 외의 것은 전부가 다 인간 지능의 역사라, 쉽게 말해서  인간 지능의 역사를 가리켜서 육신의 지능이라, 육신의 생각이라, 육신의 생각이  행동해서 맺어진 결과 사망, 생각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완성의 사망까지  그것을 말씀한 것인데 인간의 생각은 사망뿐이라. 이것을 우리가 단정지워야  합니다.

 이것을 단정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우리가 입에 익어서 '하나님  하나님' 말하지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자기가 알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 심히 드뭅니다.

 하나님을 알면 그 사람은 자꾸만 가속도로 기어 올라갑니다. 제가 기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저는 내려오려 하는데 자꾸 올리니까 어데까지든지  올라갑니다. 아버지 우편까지 올라갔어.

 그러나 하나님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 이하에 보면 '영생은  곧 이것이니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참  앎이니이다'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참 건방돼서 아는 척 하고 입술로는 수백 번 수천 번 부르지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참 자기가 자기 지능이라도 다해서 알 대로  알려고 이렇게 애를 써 보는 사람은 심히 귀합니다. 돈벌이 하는 과학을 알려고  하는 것만치, 장사하는 이익점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만치 애를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연구를 하지 않소. 안 됩니다. 이러니까 무시하는  사람에게야 아무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 속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지능으로 그 사람의 하는 일을 온전히  한다. 껍데기는 사람이 하지마는 알맹이는 하나님이 한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뭘 이루는가? 생명과 평강을 이룬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능력인데 영원한 능력을 인간이 어떻게 만들겠소? 영원한  존귀와 행복을 어떻게 만들겠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성령의 지능 역사 없이 인간만의 지능 역사는 전체가  망하고 죽는 것밖에 없다. 도매금으로 딱 결정지워 버려야 됩니다. 에누리하면  안 됩니다.

 뭐 소련이니 중공이니 이북이니 '하나님 없다' 그 사람들 다른 것은 모르지마는  하나님 없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크고 작은 것 없이 완전히 망하고  죽는 것뿐입니다. 외에 하나도 섞인 게 없습니다. 사망뿐이오. 아무리 예수 믿는  집사 장로 목사라도 하나님 없이 인간의 지능만으로 한 행동은 전체가  사망뿐입니다. 섞인 것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지능으로 일할 수 있고 인간의 지능으로 일할 수 있는 이것이  둘이 섞이는 줄 압니까? 섞이지 못합니다. 절대 섞이지는 못 합니다. 하나님의  지능만으로 일하든지 인간의 지능만으로 일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둘이 섞여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의 행동은 사망이 아니면 생명과 평강이요 생명과 평강이  아니면 사망이니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현실 현실을 우리가 밟아 나가고  있습니다. 현실을 생명과 평강을 이루어 나가는 이 현실 현실로 밟아 나가든지,  현실을 사망을 이루는, 사망으로 현실 현실을 이루어서 이 현실에도 사망. 다음  현실에도 사망에서 사망을, 사망을 꿰뚫어, 이렇게 사망을 구슬 꿰듯이 사망만  줄줄 일생 동안 꿰어 가지고 가는 현실도 될 수 있고, 생명과 평강을 이루어 갈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둘 중에 하나이지 섞여 있지는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아무리 성령으로 시작해서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육체의 것이 섞였으면 성령의 역사는 떠나 버리고 육체만으로  되지 둘이 섞여서 한테 나가는 것은 아니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이를 중히 여기든지 저를 경히 여기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섬기지  둘은 섬기지 못한다' 요렇게 단정을 딱 지워 버렸습니다. 인간들은 영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한테 섞여서 될 줄로 알지마는 크게 속았습니다. 이게 아니면  저것이요 저것이 아니면 이것이지 둘이 섞이는 그런 일들은 없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습니다.

 그러기에 영으로 하는 일에 육의 것이 섞이면 벌써 영은 떠나 버리고 육신의  역사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일서 3장에 보면, 거기에 보면  '속지 말아라. 선을 행할 때는 하나님의 자녀요 당장에도 악을 행할 때는 마귀의  자식이 된다.' 1초 동안에 하나님의 자녀 됐다가 마귀 자식 됐다가 돼 버립니다.

사람은 둔해서 에누리를 많이 하고 너무도 구별성이 너무도 둔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성령의 생각으로 살아 생명과 평강을 이루는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목적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를 설정해 놓았지마는 이 공로를 우리에게 효력있게 역사해서 실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이 책임을 지고 오셨습니다.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가  책임지고 역사하는데, 자기가 성령의 생각으로 살면 생명과 평강만 이루고  육체의 생각으로 살면 사망을 이룹니다.

 왜 여기에 생각이라고 말했는고 하니, 생각은 생각입니다. 이 생각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그 지능이 이 천한 죄인 속에 와 가지고 그 지능이 역사해서  생명과 평강의 결과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지극히 큰 것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 그말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라.

 너무도 넓고 무한한 그 진리를 함축했기 때문에 요 성구를 보고 깨닫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껍데기로 다 훑어 지나가 버리고 마요.

 그러기에 우리가 생각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은 할 수  있는데 이 생각이 지극히 크고 무서운 역사를 일으키고 결과를 끌어 온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지능이 내게 와 가지고 나를 대신해서 나 하던 일을  인계맡아 가지고 전지 전능자가 일할 수 있게, 그분을 모셔들여 그분이 나의  모든 부족한 것을 채워 생명과 평강의 결과를 맺을 수 있도록 역사하게 할 수  있는 이런 차원의 권위가 우리의 생각이다 그말이오. 차원의 권위가 우리의  생각이다.

 또 내가 원치도 않는데 악령과 모든 죄악이 와 가지고 내 속에서 역사해서  순전히 망하는 것과 죽는 것, 부자가 돼도 망하는 것 죽는 것, 권세를 얻어도  망하고 죽는 것, 천하에 유명이 돼도 망하고 죽는 것, 어떤 도덕가가 돼도  망하고 죽는 것, 이 사망만을 이루게 하는, 사망을 일으키는 이 사망의 주인공이  되는 악령과 죄악이 내 속에 와 가지고 영원한 사망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사망의 이 세력을, 사망 만드는 세력을 내가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생명과 평강을 이루는 하나님의 지능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사망의 결과를 맺을 수 있는 악령과 죄악의 무서운 해독의 세력을 내가  끌어들이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각을 예사롭게 여깁니다. 생각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높이  평가했고 우리의 생사화복이 이 생각에 완전히 매여 있지마는 우리는 '생각  그까짓 거야 얼마든지 변개할 수 있고 얼마든지 가졌다가 던질 수 있고 자유할  수 있다' 해서 이 생각을 아주 사소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 생각으로 사망을  이루는 그 세력을 끌어들여 놓으면 저는 그 다음부터 그것에게 종이 됩니다.

생명과 평강을 이룰 수 있는 그 능력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성령의 생각, 육신의 생각 말했는데 우리는 내가 육신의 생각도 가질 수  있고 성령의 생각도 가질 수 있어, 내 생각이 성령의 생각이 아니요 또 중생된  자는 육신의 생각도 아니지마는 내 생각이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끌어올  수 있는, 끌어올 수 있는 이 권위성과 자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각에 생사화복 존비귀천 승패가 생각에 달렸다 요렇게 이  생각의 이 중대성을 알고 생각에 대해서 선택하고 심사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나님 같은 사람입니다. 조만간에 영계와 물질계는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게 악령들이 말해서 권세 좋다 하니까 권세는 큰 줄  알고 가치있는 줄 알고, 황금은 큰 줄 알고 가치있는 줄 알고, 과학은 크고  가치있는 줄 알고, 문화는 크고 가치있는 줄 알지마는, 생각은 그런 것으로  비교할 수 없는 크고 큰 금생과 영원의 모든 것을 그것이 결정지운다 하는 이  생각의 가치성과 중요성을 알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 중대성을 알아야 그자가 찾지 '돈은 생각보다 낫다, 권세는 생각보다 낫다,  명예는 생각보다 낫다, 자기 고기덩어리의 생명은 생각보다 낫다.' 그까짓 것  생각 잘못되면 일찍 죽는 게 낫지 살아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도 더 살면  비참하요.

 왜? 인간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을 끌어올 수 있고 성령의 생각을 끌어올 수  있어, 인간 생각이 성령 생각과 육신의 생각으로 이렇게 성화돼 나가는 것, 다시  말하면 영접해서 인간 생각이 육신의 생각에 접붙임을 받고 성령의 생각에  접붙임을 받아. 성령의 생각이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고 육신의 생각이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는 무서운 결과를 맺는 이것이 인간이 무시하고 있는  중요한 비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돈보다, 권세보다, 지위보다. 자기의 모든 재산 보다,  사업보다, 자기가 죽음에서 살아나오는 그까짓 것보다 생각이 이것이 무섭다,  생각이 중요하다. 이 생각을 자기로서는 제일 요긴 한 것이라, 하나님도  생각으로 내 하나님 삼을 수 있고, 사망도 생각으로 내 사망을 삼을 수 있는  이것이기 때문에 생각은 지극히 보배로운 것이며 무서운 것이다 하여 이 생각에  대해서 신중성을 가지고 생각 구별을 힘써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 종류를 분류하면 두 가지 생각뿐입니다. 성령의 생각 육체의  생각 두 가지뿐이오. 이게 아니면 저것이지 둘이 섞여 있는 일도 없고 또 이것  저것도 없는 생각도 없고, 인간이 가지는 생각은 둘 중에 하나라.

 그러기에 육신의 생각을 가지면 나와 내게 속한 것이 금생 내세가 다 망해  버려. 완전히 방해 버려. 내가 성령의 생각을 끌어들이면 영과 육, 금생과 내세  내게 속한 모든 것이 다 생명과 평강을 이루니, 돈을 찾는 것보다, 세상 어떤  부귀 영화 권세를 찾는 것보다 이 성령의 생각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성령의 생각의 이 귀중성을 알고 성령의 생각에 소망을 가지고 바짝  달려드는 사람에게라야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성령의 생각을 영접하는 그  방편을 말해 주면 가치있게 듣지, 이 생각을 말할 때에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고, '돈' 하면 귀에 쏙? 들어 가지마는 '생각이라, 생각, 뭐 생각이야 한  시간에 열 번도 백 번도 더 할 수 있는 생각인데' 그 생각에 대해서 말하니까  '그 무슨 말인가? 생각이 뭐 귀중한가?' 이렇게 여기는 자들에게는 이 말이 가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어. 그러나 믿음으로, 성령이 역사하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을 것을 알고 믿음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인간면에서 보면 증거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현실은 이 생각이냐 저 생각이냐 두 가지  생각으로써 이 현실은 사망을 이루든지 생명과 평강을 이루든지 둘 중에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실을 만나면 그만 현실에게 피동됩니다. 현실을 따라서  움직이요. 현실에 슬픈 현실이 오면 공연히 눈물을 쫄쫄 흘립니다. 사람 죽어서  출상예배 보러 가 가지고 출상예배 보면, 예배를 봐서 상주들이 울면 그만  훌쩍훌쩍 간 사람들이 다 운다 말이오. 창피스러워서 보지를 못하겠어.

 우는 것 보면 울고, 웃는 것 보면 웃고, 귀에 들리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접촉하는 대로 이렇게 환경을 따라서 움직이는 자는 벌써 생명이 없는 죽은  자입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라, '자리를 들어라' 동산을 다스리라' '네가 세상에  끌리지 말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라' 하는 것이 다 환경에 지배를 받지 말라는  말씀인데,  우리 현실이라고 하면 우리 현실은 그 현실 속에 뭣뭣이 들어 있는가? 우리  현실 속에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 현실에는 자기가 첩첩 산중에  들어가 만난 현실이라도, 자기가 원수에게 끌려서 탄광 속에 납치되어 가 있는  그 현실이라도 감옥 현실이라도 현실은 다 같은 현실입니다.

 반드시 그 현실에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고, 그 현실에는 자타의 인간이라는  것이 거기에 개입돼 있습니다. 또 거기에는 사탄이 그 속에 현실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그 현실 속에는 악령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그 현실 속에는  과거라는 그 과거, 원인이나 동기, 원인 동기, 모든 움직임, 그 과거가 자기  현실 속에 들어 있습니다. 자기의 미래 목표라든지 결과라든지, 목표도 그 속에  들어 있고 결과도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는 그 집에서 그 일만 하다가 늙어 죽었으니까 자기 현실은 꼭 같은  현실인 줄 알지마는 소경이 돼서 볼 줄 몰라 그렇지 그 현실은 시간마다  바꾸어지는 현실입니다. 왜? 거기에 이제 여섯 가지를 말했는데 여섯 가지가 다  바꾸어졌어.

 이 현실에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현실로, 이 현실에는 요구하시는 현실로,  이 현실에는 진노하시는 현실로, 이 현실에는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하나님도 바꾸어지지, 자기도 변해지지, 사람도 변해지지, 악령도 거기에서는  계속 다른 공작을 변해하지, 사물들도 그러하지, 그 현실에는 과거 이런 원인이  거기에 연결됐고 저 현실에는 과거 저 원인이 연결됐고, 그 과거에 그 동기가  어떤 동기가 여기에는 현실에 연결됐고 어떤 행위가 연결됐고, 여기에 내가 지금  닥친 요 시간에 무슨 요 사건 여기에는 어떤 그 미래에 목표가 여기에 연결돼  있고 결과가 여기에 연결돼 있다. 사망의 결과든지 생명의 결과든지 그것들이  여기에 달려 있다.

 이렇게 현실의 귀중성과 현실의 복잡성을, 가치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만 어떤  현실이 닥치니 '같은 현실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현실을 구별하지 않고 현실에  파묻혀 가지고 현실이 동으로 가자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자면 서로 가고,  현실이 울라 하면 울고 웃으라 하면 웃고, 현실이 욕심내라면 욕심내고 현실이  노하라면 노하고, 현실에 끌려 피동돼서 현실대로 움직이는 그 인간은 죽은  인간입니다. 죽은 행동이오. 그것 죽은 사람이요, 죽어 있는 사람이요, 중생된  사람이면 자는 생활입니다.

 현실과 현실을 구별할 줄 알아야 되고, 현실을 현실에게 끌리려고 하지 말고 이  현실을 두고 일단 생각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현실을 두고 생각해야 됩니다.

안 믿는 불택자들도 현실에게 끌리는 사람은 다 종의 종밖에 안 됩니다. 그는  종밖에 안 됩니다. 인간의 머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불택자 불신자들이라도 현실을 두고 생각으로 현실을 분석해 봅니다. 생각으로  현실을 요리해 봅니다. 생각으로 현실을 해부해 봅니다. 분석해 봅니다.

생각으로 현실을 분석해서 현실에게 다스림받지 않고 현실을 생각으로 요리하고  현실을 다스리고 현실을 이용하고 하는 그 사람들이 다 영계의 위인들이요  세상의 위인들입니다.

 세상의 위인들은 자기 현실을 만났을 때에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현실을  분석하고, 분해하고,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현실에게 삼키워지지 않고 현실을  씹어서, 현실을 씹고 씹어 현실을 맛있는 음식처럼 현실을 요리해 가지고 먹고,  현실을 먹고 살려고, 현실을 먹고 살찌고 자라려고 하는 이 사람들이 다 이  세상에서도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을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요리해 먹으려고, 이용해  보려고 하고 현실에게 삼켜지지를 아니하는 사람들이 현실을 다 뛰어넘었고,  현실을 이용했고, 현실을 극복했고, 현실을 이용해서 그 현실이 비참한 현실이  변하여서 큰 성공의 자본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불신자들도 현실에게 피동되는 자는 두말 할 것 없이 종밖에는 안  됩니다. 어떤 위급하고 다급한 일이 일어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네가  벼락에게 피동되는 자 되지 말아라. 벼락이 떨어졌으면 일단 생각해서 벼락을  아예 잡아먹을 음식으로 알고 벼락을 잡아먹어라.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영의  사람들의 식물이라 이렇게 말했어, 영의 사람들의 식물이라.

 무엇이든지 현실을 닥치면 잡아서 요리를 해서 먹을 요량 하지 아니하고  현실에게 피동돼서, 말 한 마디만 이상한 말 들어도 그만 감정주의자가 돼  가지고 팩팩 틀려지니 그까짓 게 무슨 사람이라?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 속싹속싹  해 가지고 거짓말 한 마디만 하면, 이간 한 마디만 붙이면 사람이 홱 변해지니까  그까짓 것에게는 사망밖에는 안 와. 그게 무슨 사람축에 갑니까! 여러분들! 깨야  돼! 인간이 인간답지 못해.

 귀에 들리는 것도 현실이요, 눈에 보이는 것도 현실이요, 감각되는 것도  현실이요, 접촉되는 사람도, 접촉되는 사물도, 접촉되는 악령이나 성령의  감화도, 연관되는 과거도, 연관되는 미래도 다 이것이 현실인데, 현실에는 여섯  가지 요소를 말했는데, 사람들은 현실에 삼켜지고 사니, 현실은 우리의 양식으로  줬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잡아먹어야 합니다. 요리를 만들어서 꾹꾹 씹어먹어  현실로 내가 살찌고 배부르고 힘을 얻어야 됩니다.

 이런데 아예 현실에게 삼켜지지 아니하고 현실을 생각으로 잡아 먹으려고,  이용해 먹으려 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벌써 어떻게 삼키든지 삼켜서 이용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나누면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으니 육신의 생각으로 그  현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성공도 하고 위인도 되고 구사일생으로서 별별 연단받은  사람들이 많지마는, 어떻게 유명하고, 어떻게 크고, 어떻게 부강하고, 어떻게  아름답고, 어떻게 찬란스럽고, 어떻게 존귀함을 받아도 육신의 생각으로 하는  것은 모조리 섞임없이 사망뿐이다.

 얼마나 큰 말이며 얼마나 우리에게 지혜로운 말을 줍니까! 여러분들, 얼마나  능력있는 말을 우리에게 줍니까! 얼마나 능력있는 말이오!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함이 없습니다.

 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증생함을 입은 자로서 육신의 생각으로  사망 뭉텅이가 커 가고 벌 뭉텅이가 커 가는 걸 보고 뭣 때문에 부러워하며, 뭣  때문에 구원을 의심하며, 구원을 오히려 등한히 여기고 사망에 헤엄치고 사망에  갈급해서 망령을 부립니까?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망상이 들어오고  망상의 상당한 값으로 자기가 고통을 당하고 사망을 일으켜 귀한 현실을 다  허비하고 마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이라도 생각을 가지고 현실을 잡아 양식으로 먹고 자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썩을 성공이라도, 사망의 성공이라도 합니다. 사망의 성공이라도,  사망의 영광이라도, 사망의 존귀라도, 사망의 부강이라도, 사망의 권세라도  잡습니다.

 이러니까 현실에 종된 자는 현실을 생각으로 잡아먹은 자들의 종이요 다 그  부하에 끌려서 거기에 줄줄 따라서 생사가 그에게 맡겨 있는 이 천한 인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육체의 생각으로 생각해서 썩어질 성공을 썩어질 존귀를  누릴 우리들이 아니고, 이 현실을 성령의 생각으로 이 현실을 잡아서 먹으면  생명과 평강을 얻습니다. 영원을 얻습니다.

 성령의 생각으로 현실을 생각하면 현실은 이 생각이 잡아먹고 그 현실로써  영생하는 생명과 신령과 평강에 속한 것을 조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 깨어 살아야 되지, 믿는 사람이 전부 자기  현실이라는 환경에 속해 가지고 움직이니 그 인간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소?  실컷 10년이나 5년이나 가르쳐 놓으면 말 한 마디에 팩 돌아가서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마니 그거는 그걸 어떻게 한다 말이오?  여러분들, 현실에 피동되지 아니하여 현실로 더불어 발을 버투고 안 끌려가려고  싸우는 이 싸움부터 하는 자라야 희망이 있지 현실에 종이 돼서 무슨 현실이든지  이 현실이 오면 여기에 굽신 저 현실이 오면 저게 굽신, 이런 저런 현실에 굽신,  이래 가지고 현실에 끌려서 현실의 소산이 되어져 있는 그런 사람은 살릴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스스로 돌아서야 됩니다.

 이 말도 참 얼마나, 오늘 밤에 이 시간에도 '주여, 내게 들리는 소리도  현실이요, 이간 붙이는 소리도 현실이요. 거짓말 오는 소리도 현실이요, 나에게  애매한 소리 오는 것도 현실이요, 욕하는 것도 현실이요. 칭찬하는 것도  현실이요, 높이는 것도 현실이요' 이 귀로 수없는 현실이 들어오고, 이 눈으로  수었는 현실이 들어오고, 이 접촉으로 감각으로 수없는 현실이 들어오고,  사람들의 마음,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역사 이루어진 이 모든 것이 뚤뚤 뭉쳐서  와 가지고 내 현실 속에 들었는데 크게 분류하면 여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그 속에 들어 있으니 무조건 하고 '이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인데 이것은  내가 잘 요리해 먹기만 하면 살도 찌고 자라기도 하고 큰 성공도 한다' 하는 이  선입적 관념을 딱 가지고, 불변의 관념을 가지고, 불변의 신앙을 가지고 현실을  달려들 때에, 현실을 닥칠 때에 침을 꿀떡꿀떡 삼키면서 달려들자 그말이오.

 제가 어릴 때 도야지 잡는 걸 봤는데, 어른들이 도야지를 잡는데, 지금은  고기가 많지만 엣날은 고기가 참 없습니다. 1년에 도야지 동리에서 한 마리  잡거나, 한 추석 설 두 마리 잡지, 뭐 많이 잡지 못해. 이러니까 이 도야지  고기를 구경해 보지 못해. 지금은 그때 요량하면 우리 경제 정도가 뭐 백 배도  더 넘습니다.

 이런데 도야지를 잡아 오면서, 잡아 가지고 목을 찌르는 것 보니까 우리는 겁이  나 가지고 막 이런데 어른들은 잡는 사람이 모두 꿀떡꿀떡, 침이 꿀떡 넘어가고  꿀떡 넘어가고 자꾸 입맛을 꿀떡꿀떡 해. 그래 놓으니까 우리는 도야지가  무섭지만 그 사람들은 무섭지 않고 잡으면서 그저 속에서 침이 꿀떡꿀떡, 도야지  고기 한 모타리 먹을 걸 생각하니 맛있어.

 이것 모양으로 어떤 현실이든지 오면 '오, 좋은 요리 왔다. 요놈을 잡아먹자.'  잡아먹어서 양식 삼을 그 마음을 식욕을 가지고, 마음의 식욕을 가지고 꿀떡꿀떡  침을 넘어 삼키면서 '오, 요 사람이 나에게 요런 소리를 준다. 요놈을 잘 요리해  먹어야 된다. 요게 요래 한다고 내가 그 말에 피동되고, 요래 보이는데  피동되고, 이게 죽인다 한다고 죽인다는데. 죽음이 왔는데 여기에 피동되고.

죽음 요놈을 잘 요리해 먹어야 되겠다.'  현실을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능력은 뭐이요? 뭘로 요리해 먹습니까? 무슨  능력으로 요리해 먹소? 생각이라는 능력 가지고 요리해 먹습니다.

 육신의 생각 가지고 현실을 요리해 먹으면 먹기는 먹었지마는 결국은  사망밖에는 이루지 못하고, 성령의 생각으로 요리해 먹으면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이룹니다. 생명과 평강으로 나도 살찌고 소유도 그러하고 생명과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게 삼켜지지 말고 현실을 생각으로 잡아먹어라. 현실을 잘  이용할 수 있는 권세는 생각에 있다. 생각은 두 종류 있으니 하나는 육신의  생각이요 하나는 성령의 생각이다. 육신의 생각은 그것을 잘 이용했지마는  결과적으로 사망만 이루지 사망 외에 다른 것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성령의  생각으로 현실을 요리해 먹으면 그는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얻게 된다. 내세와  금세에 생명과 평강을 얻게 된다.

 그러면 성령의 생각이, 우리가 생각하면 성령의 생각이 되면, 성령의 생각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내가 현실을 두고 생각하기는 내가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할  때에 육신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성령의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내가  생각하기는 성령의 생각을 했지마는, 시작은 내가 성령의 생각을 내가 했지마는  성령의 생각을 내가 한 그것은, 그것은 성령의 생각 하는 그것이 성령의 지능이  와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능에게 내가 접선하는 그 생각이니, 내가  성령의 생각을 끌어올 수 없는 이런 지극히 큰 능력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무서운 지극히 큰 사망의 해독이 있는 그 무서운 해독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지극히 큰 것을 끌어올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생각이요  지극히 무서운 해독을 끌어올 수 있는 것도 우리 생각이기 때문에, 현실을  닥치거든 현실에게 삼켜지지 말고 현실을 한 번 생각으로 잡아서 먹도록 이제  용감을 용기를 가져라.

 가지는데, 네가 현실을 생각할 때에 성령의 생각이 현실을 생각 하면 이 결과가  생명과 평강이 되고, 육신의 생각으로 가지면 사망이 이루어지나니, 네가 현실을  생각할 때에 성령의 생각이 되도록 네가 노력해라.

 성령의 생각이 되도록 어떻게 노력합니까? 네가 성령의 생각도 영접할 수 있고  육신의 생각도 영접할 수 있으니, 네 생각이 성령의 생각에 접붙을 수도 있고  육신의 생각에 접붙을 수도 있으니까, 네가 생각은 두 종류 중에 하나이니까  이걸 알고 네가 성령의 생각에 접붙이려고 네가 애를 써라.

 성령의 생각에 접붙이려고 애를 쓰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생각에 접이 붙느냐?  성령의 생각에 접이 붙는 것은 네가 인간의 지능 가지고 그것을 생각지 말고,  인간의 지능 가지고 생각지 말고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성경 지식 가지고  그것을 생각해라.

 성경 지식 가지고 네가 생각한다고 성령의 생각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생각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게 영감은 아니다. 영감으로 우리에게 하나 문서 계시를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서 계시는 영감에 도달하게 하는, 율법보다 나은  영감에 인도하는 길잡이는 되지 바로 그것이 영감은 아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 지식대로 네가 생각하다 보면 성령의 감화의 생각이 와서  접선된다. 그때에, 성령이 와 가지고 너에게 접선해 가지고 성령의 생각대로  생각할 때에 그때는 그 생각에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같이 와 가지고 그 일은  순전히 하나님이 와서 일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썩지 아니할 것, 영원한 것,  생명과 평강에 속한 것들이 이루어진다.

 그런고로 네가 성령의 생각이 이렇게 귀한 줄 알고 성령의 생각을 영접하도록  네가 해라. 성령의 생각을 영접하는 데에는 먼저 성령이 길잡이로 인도해 놓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노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율법은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은 성령을  접선시킵니다. 주님의 피공로를 접선시킵니다. 이래서 성령으로 네 현실을  생각하도록 노력을 해라.

 성령의 생각이 오면, 성령의 생각이라 말은 하나님의 생각이라 말인데,  하나님의 생각이라 말은 하나님의 지혜라 말인데, 하나님의 지혜라 말인데,  그러면 생명과 평강의 열매가 맺는다 했습니다. 생각만 가지고, 지혜만 가지고  열매가 맺습니까? 능력이 이루어야 열매가 맺지, 지혜와 능력이 함께 움직여야  열매가 맺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 성령의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능을 다 겸해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성령의 지능이 내 현실에 와서 지극히 큰 하나님의 지능으로 내  현실을 생명과 평강으로 만드는 이 역사를 하게 된다. 이렇게 이 생각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권리되어 있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이것 거리가 멀면 신앙 높은 사람들이 사는 생활인가?  아니오.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 생활 해야 돼요. 이것 아니면 구원  건설구원 없습니다. 너무 껍데기로, 껍데기로 살기 때문에 도무지 이 말씀을  해야 먹어들어가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거리가 머니까 입만 아프고  자꾸 소리만 하지 속에 아무 감각이 없어. 이러니까 내게 힘이 안 쥐여져.

 여러분들, 이제 신앙 생활 하는 사람이라도 요 순서가 이루어질 때에  건설구원은 이루어집니다. 그저 섞여서 제 욕심, 제 뜻, 제 생각, 제 감정대로  예수님과 진리를 이용해 먹으려고 왕은 제가 왕이 돼 가지고 주관해 가지고  이렇게 살면서 그런 신앙 생활에서 건설 구원이 이루어지리라는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오늘 밤에 지금 여기에서 나가서, 어떻게 하면 성령의 생각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쉬운 방편을 그 위에 말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거꾸로 올라가는 걸  말하고 그 위에 내려오는 쉬운 방편을 말할 건데 시간 다 지나갔지. 아무리  말해야 못 알아들으니.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헛일이오. 이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 들은 이 재독을 가서 몇 번이든지 들으십시오.

 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너무  믿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도다' 어떻게 죽었어? 죽었다 말은 구원 구원 말하지마는 실은 구원은 다  헛일했다 그말이오. 왜 구원이 헛일해? '내가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아보지  못했다' 했어. 온전한 행위 된 그것만이 산 구원이 되어졌다 그말이오. 어려운게  아니라, 어렵게 예수 믿는 게 아니라 이래 안 믿는 것은 하나도 구원이 안  이루어져.

 이런데, 이 교회도 가면 이렇게 가르치고 저 교회도 가면 이렇게 가르치면  '아무데도 예수 믿으면 그래 해야 되는갑다' 하면 사람들이 힘을 쓸 터인데,  여기에는 '이렇게 예수 믿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데. 저게는 '아무나따나  믿어도 된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쉬운 대로 다 기울어지지 그자가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어떻게 이 행위가 안 이루어지고 구원이  이루어지겠다고 사람들에게 위안제를 마셔서 '너무 까다롭게 까다롭게  까다롭게만 말한다. 께까다롭게만 말한다. 그게 구원인가?' 이렇게 조롱하는 그  입술들이 어찌 될는지?  천하에 있는 목회자들이, 예수 믿어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말한 대로 '네 다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야 영생이 이루어진다' 말하지 않았소.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네게 준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 산 것이 하나도 안 됐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성경 전부가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이 건설구원을 에누리 해 가지고 쉽게  된다고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말합니가? 무슨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밤에 그만 말하겠소. 부탁드리는 것은 부디 현실에 종되지 마십시오.

현실에 놀라나지 마십시오. 어북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이 그만 사업이 턱  무너지니까, 무너지고 부도가 나 가지고 감옥에 턱 들어앉으니까 신앙이 휘떡  뒤벼져. 그거는 뭐인데? 그거는 현실 아닌가? 신앙의 사람이 그런데 삼키워져?  원수가 죽이려고 와 가지고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들이대니까 그거는 현실  아닌가? 죽인다 하는 자에게 종이 되어서, 죽기를 두려워 일생 종노릇 한다 하는  말과 같이 죽이려 하니까 뻘뻘 떨고 그 죽음 앞에 굴해 죽음이 일어서라 하니까  일어서고, 죽음이 가라 하니까 가고, 죽음이 구덩이 파라 하면 구덩이 파고,  그게 현실에 종이지. 이것을 극복하고 현실에 종되지 말자 그말이오. 쉬운 말이  아니라!  상관없이 들으니까 놀라나지 않지. 현실을, 여기 지금 현실이 닥치면 현실에  삼켜지지 아니하고 현실을 잡아서 먹으려고 용기를 가지고 달려들 사람이 여기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어. 모조리 현실에게 삼켜 가지고 현실이 울라 하니까  울고, 놀라라 하니까 놀라고, 둥 떠올라 가라 하니까 떠올라 가고, 현실이  거짓말 하라 하니까 거짓말 하고, 현실이 욕심 품으라니까 욕심 품고,  현실에 종되지 말고 용감스럽게 현실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서 양식으로  잡아먹으라. 현실을 잡아먹으라. 현실을 뭘로 잡아먹느냐? 생각이라는 이빨  가지고 깍깍 씹어먹으면 아주 맛있는 것으로 잡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은 두 종류가 있으니 (저 봐, 암만 그래도 자꾸 조는구만. 요새  새벽기도 안 나오니까 지금 예배볼 때 자꾸 졸지. 그것도 현실에게 끌려 그래.

뭣 때문에 현실에 끌려 가지고 새벽기도 안 나와요, 안 나오기를? 뭐 좋은 게  있어서? 오늘이라도 죽으면 후회될 것뿐이라. 아무것도 좋은 게 없어.)  현실을 잡아서 먹어서 '아, 맛있다.' 그러니까, 현실 잡아먹고 나니까 살도  찌고,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또 보배로운 보배도 되어지고, 이런데 현실을  잡아먹는 이빨이 있으니까 이빨이 두 종류 있다. 하나는 육신의 생각이라는  이빨이요 하나는 성령의 생각이라는 이빨이다.

 육신의 생각의 이빨로 찝어도 씹힙니다. 먹고 살찝니다. 그러나 결과가 전체가  사망 이루는 것뿐이고 성령의 생각으로 잡아먹으면 전체가 생명과 평강만  이룹니다.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은 마음뿐이지요. 생명과 평강의 결실이 이루었기  때문에 그 육신까지 들어갔지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능이 와서 생명과 평강을  이룬다 그말이오.

 요 비밀이, 우리가 성령의 생각을 영접할 수도 있고 육신의 생각을 영접할 수도  있고 자유성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의 생각이 성령의 생각을 영접만 해 가지고  성령의 생각에 연결이 돼서 성령의 생각이 와 가지고 나를 붙들고 현실을  요리한다면 그 현실은 전부 생명과 평강의 결실만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성령의 생각을 내가 영접하는 데는 어떻게 하면 영접하느냐? 그는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자기가 아는 대로의, 아는 대로, 하나 알면 하나 둘 알면  둘, 아는 대로의 성경 말씀 가지고 '보자, 성경에는 뭐라고 했느냐? 성경에는 이  현실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이 현실은 무엇이라고 했느냐?'  아는 대로 성경 말씀 가지고 그 현실을 똑똑히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는 대로 요대로 하려고 성경 말씀대로 현실을 분석도  하고, 현실을 이용하려고도 해 보고 현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도 이와같이 지금 하다가 보니까 그만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생각이 와 가지고 자기 생각을 통해서 그 현실을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고 요리를 했는데 그 결과는 생명과 평강이라. 쉬워, 다른 길로 미끄러질  길이 없어.

 이러기에 이 기독교 구원이라 하는 것은 진실한 사람이 이루지 진실치 아니한  인간은 천하에 아주 천재의 재능을 가져도 저만 속았어. 헛일입니다.

 내일 아침에 계속해서 그 위에 쉬운 방편을, 성령의 생각을 영접하는 쉬운  방편을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밤에 증거한 요것을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요. 눈  감고 고요히 굳게 잡아요.

 내일 건축에 많은 봉사원들이 필요합니다. 내일 건축하는 데에 봉사원들  필요합니다. 오늘도 봉사 많이 했습니다. 봉사 한 번도 못 한 사람들 있어요. 못  한 사람 뒤에 와서 후회해야 소용없어. 내일은 세숫대야 이런 것 가지고,  고무장갑 끼고 그때 가지고 내일 수 백 명 나와서 그만 꽉 들어차서 뭐 일도  못하구로 그만. 그것도 좋아. 어짜든지 하나라도 복 더 받고, 화받지 말고  복받는 사람 돼라 그말이오.

 내일 봉사원들 뭐 일곱시에 나와도 좋고, 여덟시에 나와도 좋고, 열시에 나와도  좋고, 좋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나오고, 또 이 건축에 대해서 일곱 가지 기도를  계속하십시오. 이러니까 일이 아주 쉽게 거짓말 되듯이 됩니다. 제가 이래 삐쩍  마르니까 '목사님이 건축 때문에 마르는갑다.' 건축 때문에 마르는 것 하나도  아니오. 영 건축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어떻게 수월하고 편한지 걱정 하나도  없습니다.

 마르는 것은 요새 어째 그것 두 끼 먹는데 현미밥을 먹으니까 똑 모래 같아서,  한 끼만 흰밥을 먹으면 그만 살이 좀 찌는데. 이것 이래 놓으니까 이것 똑  모래알 먹듯이 좀 그런데 좀 있으면 괜찮을 거라. 좋은 효력은 모기가 와  달려들어서 그렇게 물지를 않아요. 그 전 같으면 야단을 치는데 와 무는 걸  모르겠어. 체질이 변해진 연고랍니다.

 예배 마치고 1층에서 재독도 있고 철야가 있습니다. 종전과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걸 똑똑히 잡아요. 똑똑히 잡아. 요걸 고요히 굳게 잡아. '주여 이제 요대로  결심하고 요대로 살겠습니다. 주여. 요대로 살겠습니다.' 결심을 해요. 굳게  잡아요. 이 진리가 여러분들을 살려요. 다른 것은 여러분들을 살리는 길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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