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과 영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6일 수새

 

본문 : 요 3:6-7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자는 육이요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그전에는 "영으로 난 자는  영이니" 이랬는데 영이라면 사람들이 성령인 줄을 잘 분별 못하기 때문에  '영으로 난 자는' 하는 그 영을 성령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육으로 난 사람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전도로 인해서  성령으로 난 영의 사람이 됐습니다. 우리가 영의 사람으로 영으로 살면 영생이  되고, 아무리 중생된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도 육으로 살면 영원히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으로 살수도 있고 육으로 살수도 있는데 영으로 사는 것을 달리  말하기를 새사람으로 산다 이렇게도 발표했습니다. 새사람으로 산다 말이 내나  중생된 영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또 속사람으로 산다 하는 이 말도 중생된  영으로 산다는 말이오. 또 옛사람으로 산다 그것이 육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또  겉 사람으로 산다, 겉 사람이라 그렇게 발표한 것이 내나 육으로 난 자를 표시할  때 그렇게 표시합니다.

 그러니까 겉사람이란 말이나 옛사람이라는 말이나 육이라 말이나 육체라  말이나, "육체의 생각은" 하는 그것도 옛사람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것 같은  말이오. 또 새사람이라, 속사람이라, 또 영의 사람이라 다 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알려고 하면 알 수 있는 길도 있고 알 수 있는 힘도 있지마는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주셨는데 제가  그 은혜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배반치 아니하고 써먹는  것이고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이 제가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고자 하는 그게 있어야  됩니다. 그것 없으면 안 됩니다. 성령을 거스린다는 그 말과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이 같은 성질의 말인데, "성령을 거스린다" 그말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바르게 살고자 하지를 아니한다 그말입니다. 간단하게.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지를 않는 그것이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요,  또 자기가, 성령 훼방은 어떤게 성령 훼방이냐? 어떤 사람이 성신의 역사를  자기가 하면서 무슨 참, 성령의 역사라도 신유의 은혜나 이 설교에서 은혜 받는  것이나 그런 것을 훼방하는 그것이 성령 훼방이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우리 역사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두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인데 이것을  훼방하면 성령 훼방이다. 이건 사함 못 받는다.' 그렇게 말하지마는 그런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헐뜯는다" 성령을 헐뜯는다 그말은 어떤 것을 말한 것인고 하니 자기가  옳고 바른 것을 '이게 옳다 바르다' 하는 것을 자기가 비판해서 알 수 있는 것,  자기가 옳다 바르다 하는 것을 자기가 똑똑히 판정은 안 했지마는 이것 옳고  바른 것을 따져서 이렇게 말해 나가려고 하면 그만 뒤에 옳은 것이 환하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옳은 것이 환하게 나타나고 난 다음에 자기가 그것을  거슬리면 양심에 더 가책이 되니까, 그것을 좀 생각해 보면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자기에게 비추어 보이는데 그것을 따져보지 않고 그만 중간에  가다가, 따지면 옳고 그른게 환하게 나올 것이기 때문에, 누구하고 둘이  말하는게 아니라 자기 혼자 말이오. '자, 이게 옳으냐 저게 옳으나?' 따져  나가면 넉넉히 알 수가 있는데 따져 나가 보니, 좀 나가보니까 옳고 그른 것을  벌써 자기가 말은 안 하고 생각은 안 해도 비추어 집니다. 이러니까 '아, 이래  나가면 아마 무엇 이 옳고 무엇이 그르겠다.' 하는 것이 비추어 지면 그만 그  다음에 그르다 하고 하는 것도 가책되지 옳다고 하는 것도 하고 버리는 것도 안  됐지 이러니까 그만 생각하지 않고 맙니다.

 예를 들면 어떤 방탕한 몹쓸 사람이 섣달 그믐날이 됐는데 자기가 모든 일을  계산을 대 가지고, 계산을 대려고 하니까 계산을 대면 그것 다 실마리가 나와서  확실히 계산을 다 판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있으나 나중에 그래 봐야 별수  없겠고 이러니까 도리어 그게 환하게 결산이 나지면 도로 마음에 불쾌하고  고민스러울 터이니까 '어라, 그만 말고 술이나 한잔 먹자.' 술 한잔 먹고 그만  취해 가지고 그만 그날은 잊어버려 버리고 이래 넘겨 버리는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을 자기가 이렇게 비판하면 비판할 수 있는 데, '내가 이리  가야 되나 이리 가야 되나?' 비판할 수 있는데 비판하면 옳고 그른 것이 확실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그만 그 비판을 중단해 버리고 계속하지 않는 그것이  성령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령을 대적하는 것.

 또 자기가 '이게 옳다' 판단이 됐습니다. 이게 옳다 판단이 됐어. 자기가 벌써  옳고 그른 것이 판단이 됐는데 판단이 됐지마는 옳은 것이 밉다 그말이오. 옳은  것이 미워.

 서로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우리 교회서는, 자기 교회서는 이렇게 하고 딴  교회서는 저렇게 하고 하니까 이걸 자기가 생각해 보니 그 교회서 하는 것이  옳고 바르고 자기 교회서 하는 것이 잘못됐다 이렇지마는 자기 교회는 자기에게  속한 것이고 남의 교회는 남에게 속했기 때문에 남의 것은 옳은 줄 알면서도  그것을 찬성하지 않고 어쩐지 좀 그른 틀린 자기 것을 옹호하고 싶고 옳은  그것을 대적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령이란 건 옳고 바른 것을 그것을 깨닫는 것이 성령인데 옳고 바른 그것을  자기가 알고 그것을 환영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그것을 반대하는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 훼방하는 죄가 없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뭐 자기 것이 옳든지  남의 것이 옳든지 옳은 것이면 옳은 것인 줄 알면 그만 옳은 데로 따라버리고,  암만 자기가 오늘까지 이 시간까지 말했더란대도 자기 그른 것을 알고 옳은 것을  알면 을은 것을 칭찬하고 옳은 것을 따라가고 주장하고, 자기가 어떻게 수치를  당하고 꺾어지고 해도 그른 것을 그것을 정죄하고 옳은 것으로 따라가는 그것이  성령을 환영하는 것이요, 옳은 줄 알고도 제게 불리하니까 제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적하는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에게 대해서 무슨 죄를 지었느냐? 성령  훼방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옳은 줄 알았어 바른  줄 알았어. 이렇지마는 자기들에게 불리하고 자기들의 현 형편과 사정과 생활과  이제까지 해 나온 일에 대해서 반대가 되어지니까, 옳은 줄을 몰라서 반대한게  아니라 옳은 줄 알고 반대했다 말이오. 그게 성령의 훼방죄요. 이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훼방하니까 이것은 따라가서, 옳은지 그른지 모르지마는  사람들이 반대를 하니까 거기에 따라서 피동이 돼 가지고 그와 같이 한 그  사람은 성령을 훼방한 죄가 아니고 그 사람은 성령을 모르는 사람이오. 성령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두운 사람으로 자기가 무지해서 범죄했다 하는 무지  범죄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찾아 나가다가 그만 잘 찾지를  못하겠고 그러니까 자꾸 좀 찾아 나가니까, 조금씩 조금씩 이러냐 저러냐 따져  나가다 보니까, 따져 나가기는 나가는 데 옳고 그른 것을 그것을 찾으려 하면  힘이 들겠고 그만 시간도 걸리고 너무 고생스러우니까 하다가 중단을 해  버립니다.

 그만 거기에까지 안 나가고 중단해 버립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집사님 한번 대답해 보지요. 이것 여기 지금  오늘 아침에 말한 데는 아닙니다. 혹 딴데로 뛰어 넘어갔는데, 혹 알까 싶어  내가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은, ○○선생? 그전에 내가 많이 말했는데 그 사람은  진실이 없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거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거룩과 진실이 없는 사람이오.

 진실은 하나인 거기에 자기 않으면, 그게 아니면 상대하지 않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고, 거룩이라는 것은 많은 것 가운데 비판해 가지고 그 진실에 도달하기  전에는 중단하지 아니하고 찾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거룩이 없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은.

 또 자기가 찾아나가 보니까 이래 나가면 옳고 그른 것을, 제가 판정은 안  했지마는 옳고 그른 것이, 이래 따져 나가면 옳고 그른 것이 나온다 하는 것이  환하게 자기에게 보여집니다. 나온다 하는 것이 환하게 보여지는데, 따져 나가면  옳고 바른 것이 나올 터인데 자기는 그래도 옳은 것이 싫고 그른 것을 좋아하는  그 사람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따져 나가면 도로 알고 범하는 죄가 될 터이고  이러니까 따져 나가다가 따지지 않고 중단을 하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 가다가 자기가 옳고 바른  것을 환하게 깨달아져서 '이게 옳고 이게 그르다.' 했는데 그게 옳기는 옳지마는  자기는 그것이 달갑지 않고 환영되지 않고 그것을 반대를 합니다. 옳은 줄 알고  반대를 합니다. 그것은 뭐입니까? 그것이 성령 훼방죄입니다.

 그러기에 이 죄가 무섭습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죄, 성령을 훼방하는 죄,  성령을 거스린다 말은 성령을 소멸한다 그말입니다. 성령 거스리는 죄, 성령을  훼방하는 죄, 또 거룩과 진실이 없는 죄, 이런 사람은 방종하게 됩니다. 그만  방탕하게 되고 그 사람은 마치 말하면 송곳이 끝이 부러졌습니다. 끝이 부러지면  송곳 못 씁니다. 암만 뚫어봤자 안 들어가요.

 또 이 식물이 자라오는 데 위에 지금 벼가 올라옵니다. 벼가 올라 와 자꾸  자라오는 데 원줄기, 잎사귀 그거는, 잎사귀 그거는 뚝 뜯어 봤자, 내나 하나 둘  뜯어봤자 줄기만 있으면 그대로 자라 가지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지 마는  가다가 그 가운데 줄기 이걸 똑 부러 뜨려 버리면 다시 그거는 그만 희망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당면한데, 우리 당면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거룩입니다. 거룩이 있어야 됩니다. 거룩이라는 것을,  거룩을 지금 가져야 된다 말이 아니고 거룩을 만들려고 거룩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복잡한 가운데 자꾸 구별해 가지고 바른 것 을은 걸 찾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라서, 언제든지 '이것도 같고 이것도 같다. 이것도 맞고 이것도 맞다.'  이거는 콩이라 하니까 '콩이란 말도 맞고 팥이란 말도 맞다.' 그랬으면 그게  하나가 둘이 될 수 있습니까? 둘이 될 수 없지요. 둘이 될 수 없는데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성경 해석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이랬으면 그 사람은  거룩이 있는 사람입니까 거룩이 없는 사람입니까? 거룩이 없는 사람이오. 그  성질을 죽여야 됩니다. 못씁니다.

 어디든지 자기가 성경 해석도 '보니까 이게 나은 건 나은 것 같지마는 아무래도  좀 이거는 미심한데, 그러니까 크게 장담하지를 못하겠고 그저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할 정도지 꼭 이거라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이러니까 그거는 항상  자기의 숙제로 남궈 놓고 또 연구하고 연구하고 자꾸 이래 하튼 사람은 거룩이  있는 사람입니다.

 확실히 자기 마음에 자기에게 '이것이다' 하는 그 확실한 하나인 '이것이 맞다.

옳다. 이것이 참이다.' 하는 그것을 잡기 전에는 그것을 됐다 하지 아니하고  미결로 둬 둬서 연구할 문제로 둬 둘지라도 거기에서 쉬지 않고 미결로 둬두는  사람은 거룩이 있는 사람이오. 그러기에 교리를, 믿는 교리를 따지는 데도  '이것도 정통 이것도 정통이다. 이것도 정통 이것도 정통이다.' 둘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거룩이 없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이오. '이렇게도  말하고 이렇게도 말하고 이렇게도 말하고 이렇게도 말한다. 이것 둘 다 정통, 이  서이 다 정통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럴리가 없다.' 어느 것이 하나가 옳지  서이가 옳을 리가 없고 둘이 옳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옳은 게 하나인데 그것, 나는 하나인데,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지 나도 그걸 인정하는 건 아니다. 어느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래 하는데 이 서이 중에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 서이가 다 틀렸는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참인 하나를 찾도록 노력하는 그 사람이 거룩을 지금  마련하려고 거룩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오, 그러다가 자기 마음에, 그게  삐뚤어졌다 말입니다. 삐뚤어졌다 할지라도 자기 마음에는 그게 확실히 옳다  하고 단정을 짓고 나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무지의 거룩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 있는 거룩 가지지 않고 죽은 거룩, 죽은 거룩을 가져도 거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단자들이, 이단자들이 그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틀린 줄 알고 틀린 걸  옳다고 하는 사람이 이단자입니까 틀린 줄을 모르고 틀린 그것을 옳은 줄 알고  주장하는 그 사람이 이단자입니까? 뭐요? 알고? 알고? 틀린 줄을 모르고 옳은 줄  알고 틀린 것을 주장하는, 틀린 것을 옳은 줄 알고 주장하는 그 사람이  이단자입니다.

 자기가 틀린 줄을 알면서 공연히 '그것이 옳다.' 이래 주장하는 것은 그건  이단자가 안 됩니다. 그것 힘이 없습니다. 자기 속에 양심이 있으니까 힘이 없고  그 사람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삣고 깎고 이래 해야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이  거룩을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라야 되고 또 성령의 감화를 소멸치 않는  사람이라야 되고 성령을 환영하는 사람, 성령을 환영하는 사람이라면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아무리 이래도 옳고 그른 것을 딱 말해서 옳다 싶으면  수치가 되든지 말든지, 자기가 절단 나든지 말든지, 자기가 하던 것이 깨지든지  말든지 옳은 줄 알면 옳은 데로 딱 달려들어. '옳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몰랐습니다. 이겁니다.' 이래 하는 사람이 있고,  옳아도, 옳고 옳은 줄 알아도 자기 여건들이 다 손해가 되어지고 하니까 옳은  줄 알면서도 빌빌 둘러서 변명을 하고 자꾸 이래 이렇게 해서 옳은 줄 알면서도  그걸 환영하지 않고 하는 그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성령을 훼방하기 쉬운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 그거요.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자꾸 이렇게 구별을 해야 됩니다. 그래 구별한다고 해서  성도라 말은 거룩한 무리라 말은 구별하는 무리들이라, 자꾸 따지는 무리들이라  말이오. 자꾸 따져야 돼요. 자꾸 따져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금정산에  집회를 하니까 목사인데, 나를 불러 가지고, 그때 내가 목사가 됐던가  조사이던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것 성경 말씀을 자꾸 이렇게 쪼개고  이런다고 해서 일반 교인들이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습니다. 그저 성령이 오면  사람들은 다 깨달아집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콩팥을 따져서 쪼개서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할머니들 무식한 사람들이 뭘 알겠습니까?' 그걸 반대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보고, 그때 그 사람은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이고 나는  대적으로 훼방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라도 하나 나를 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놓지 않으려고 좋은 말로 '목사님, 성령 역사가  뭐입니까? 진리를 그것을 이리 저리 구별해 가지고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캐내는  그것이 성령의 감화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우리 지능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알도록 그것을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자꾸 이렇게 찾아야 되는  것이지 성령이 오면 알려 줄 터이니까 공부할 필요도 없다, 성령이 오면 알려 줄  터이니까 연구할 필요도 없다, 거기서 비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것은 성령의 은사를 거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러면 참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목사님 그 걸 고쳐야 됩니다.' 내가 좋은 말로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척 만나 보면 벌써 그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병은 무슨 병이냐? 옳고 그른 것을 말로만  따지고 실행하지를 않으려 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아주 몹쓸 자입니다. 이제  옳고 그른 것을 밝히려고 애를 쓰면서 옳고 그른 것을 판정만 해 놓고 옳고 그른  것을 자기가 취할 때에 그른 것을 취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이 되겠고 옳은  것을 취하면 그 사람은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옳고 바른 것을 따져  가지고 옳은 것과 동행하면 그만 그게 성령과 동행이오. 옳은 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영의 사람 육의 사람, 그 말이 다른 말로 말하면 속사람  겉사람, 또 다른 말로 하면 새사람 옛사람 이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무조건  자기라고 그만 자꾸 환영해서 '이건 나인 데' 자기라고 환영을 하고 자기라고  위하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타났는데 이 자기 이것이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속사람인지 겉 사람인지, 영의 사람인지 육의 사람인지 이걸 따져야  됩니다. 이걸 따지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람이 이것만 작정을 해도 큰 힘이 있습니다. 이것만 작정해도. '주여, 내가  이제는 나와 나를 구별해서 내 형편에서 살림살이가 다 절단 나든지 내가 낯에  똥칠하든지 내야 뭐 죽든지 어쩌든지 옳고 그른 것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옳은 것은 환영하고 그른 것은 내가 이것은 대적하겠습니다.' 이것을 작정하는  사람, 또 '겉사람인지 속사람인지,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육의 사람인지 영의  사람인지 이것을 알게만 해 주면 나는 육의 사람을 대적하겠고, 옛사람을  대적하겠고, 겉사람을 대적하겠고, 새사람으로 속 사람으로 영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이것을 확정 지워 놓고 '어떤 일에든지 이건 내가 변동 안  하겠다.'  먼저 베드로후서를 공부할 때에, 3장 공부할 때에 정과 욕이 우리의 적이다  그렇게 말했지요? 이스라엘 열 지파가 실패한 것이 그것이 정으로 움직이다가  실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정으로.

 그만 르호보암이 말하기를, 옆에 다른 연로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좀  순리로 해야 되지 자기 아버지 솔로몬이 이래 좀 강경한 그런 정치를 썼기  때문에 모두 다 이 백성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도 그런 정치를 쓰면 안  되니까 유하게 어쩌든지 하도록 해라, 우리 아버지는 강경 정책을 사용했지마는  나는 온유한 그런 정책을 쓰겠다 이러면 그들이 소망을 가지고 좋아할 것이다.'  이러니까 이것이 그만 귀골로 컸던 아들이 돼 놓으니까 르호보암이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가 채찍으로 때렸으면 나는 몽둥이로 때리겠다. 아버지보다 더  강경한 그 정책을 나는 취하겠다.' 이러니까 백성들이 그만 분해서 '야, 이것  이리 되면, 이것이 이리 되면 나중에 어찌 되겠느냐? 아예 그까짓 것 배반하고  치워버리자.' 그래 가지고 배반하고 여로보암을 취해서 나간 그것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두 지파와 열 지파로 갈라진 것입니다.

 두 지파는 그때 감정으로 하지 않고 '암만 그렇지마는 우리가 그런 계통으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이 계통을 왕통을 우리가 지키지 않고 그렇게 어떻게  이방인을 취해 가지고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느냐?'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두  지파는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고 열 지파는 감정으로 움직여서, 감정으로 움직인  그 선조들의 자손은 대대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마지막에는 씨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전쟁에서 그만 다 포로 돼 가 버려, 남은 것은 포로 되어 가  버렸는데 포로 되어 간 사람들이 그 뒤에 역사에 종적이 없어. 어디 가 있다는  종적이 없어. 그만 그건 완전히 전멸이 됐는지 물라. 그러기에 감정으로 사는  것, 이 정이 그렇츰 무섭습니다.

 참 욕심이 처음에는 끌지만 나중에는 정이 됩니다. 정사하는, 정사하는 것,  처음에는 욕심이 끌었지 마는 차차 정이 붙고 난 다음에는 정이 이놈이 얼마나  강했든지 정이, 자기 정든 자가, 애정자가 죽으니까 자기도 따라 죽어버렸다  말이오. 그게 정사 아닙니까? 정이라는 건 그렇게 강합니다.

 또 자기 마음에 감정이 생겼다 말이지, 분하다 말이오. 감정이 생겨 가지고,  어제도 내가 말 들으니까 어떤 여기 중학교 2학년 학생을 2학년 학생이 칼로  찔러 죽였는데 저거 동무라요. 찔러 죽였는데 하나가 자꾸 부애를 지르고  이러니까 그래 그만 감정이 올라 가지고 칼로 가지고 그만 찔러 죽여버렸다  말이오.

 찔러 죽였는데 그 학생이 과거에 오래 전에 교회에 나왔다가 낙심해 버리고,  낙심한 것을 또 마지막에 성탄 때라도 와 가지고 이걸 제자라고 찾아 가지고  성탄에도 오라고 이렇게 찾고 이래도 그 학생이 안 온 모양이라.

 성탄에 오라고 가선 심방을 해서 안 왔는지 심방 안 해도 제가 성탄이라도 그래  안 왔는지, 어쨌든지 24일 날은 죄가 많은 날이니까 이날은 통지를 우리가 돌려  가지고 '24일날 밤에는 학생들이 제일 과오를 많이 범하는, 범행이 많은 밤이기  때문에 이 학생들을 다 모아놓고 그날 밤에는 아무데도 못 가구로 하고 여기에서  좋은 말씀으로 훈계를 하고 주의를 시키고 그날 밤을 이끌어 이렇게 선생님들이  딱 간섭해서 시켜 가지고 남녀도 딱 구별해 가지고 이렇게 시켜서 그날 밤을  무사히 지내고, 죄지을 밤을 오히려 성화를 시키는 이런 밤으로 지냅니다.

그러니까 이해를 하시고 안 가도 양해를 해 주십시오. 또 그날 밤에는 이리  보내야 그 아이가 선도가 되기 때문에 보내 주십시오.' 하는 그런 통지를, 그런  성질을 통지를 다 집집마다 보냈다 그말이오.

 보냈는데, 그 아이는 그때 교회 안 나오는 아이니까 심방을 했든지 안 했든지,  그런 연락이 갔든가 안 갔든가 모르지마는 24일날 밤에 여기 안 오고 가 가지고  저거끼리 놀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말이오. 이런 것도 여러분들이 가질 재료가  많이 돼.

 이 다음에 통지를 할 때 그 부모들이 반대하면 '아무 날 아무 때 몇 해에  어디서 어느 학교의 학생, 어느 학교의 학생 그 학생 어떤 학생이라 이름하는  학생이 24일날 밤에, 과거에 교회 나오다가 집에서 못 나오구로 해서 안 나오고  한 그 학생인데, 또 제가 낙심해서 안 온 학생인데 그때 24일날 왔으면,  자기네들이 믿다 낙심했더라도 24일은 아무래도 교회로 가야 되겠다, 성탄을  교회 가 세워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나온 아이들은 다 그때 재를 면했는데 그  아이가 하나 안 나오다가 그래 가지고 그날 밤에 칼에 찔려 죽었다.

 그것 하나만 죽은게 아니라 그와 같이 죽을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것  사실이라 말이오. '실로암 탑이 무너져 가지고 열 여덟 사람이 치여 죽었지마는  너희는, 그 사람들만 죄가 많아 죽은 줄 아느냐? 너희 예루살렘 사람들이 전부  다 그와 같이 죽어야 될 인간들인데, 그것을 보고 너희들이 깨라고 해 그런  것이지 너희가 다 죽어야 될 그런 죄인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이러니까 그런 것도 우리가 자꾸 싸 가지고 있어야 된다 말이오. 그걸 싸여  가지고, 그런 그것이 인제 우리가 죄를 범하고 멸망하는, 멸망케 하는 마귀의  방편, 또 멸망하는 그 길 그런 걸 우리가 많이 기억해 가지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고 이렇고' 자꾸 이렇게 말 해 나가면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 말이오.

 저 아레 밤에도 내가 그 사람하고 상당히 긴 시간을 말했습니다. 뭐 변호사  사무실에 있다던가 검찰 사무실에 근무한다던가 이러는 데 마구 성을 내가지고  '한 번만 오면 다리뼈를 뿌지른다'고 이래 쌓고, 그뭐 '봉투를 보내? 이런 수가  어데 있을까보냐'고 이래 쌓아서 그래 슬슬 유유하게 자꾸, 이래 말을 하면서  슬슬 몰아서 '그것이 교회서 어떤 사람이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이웃 돕는, 불우한 이웃 돕는 그런 것을 가르쳐 가지고 선한 일에 눈이 띄도록  자꾸 그래 하고 나쁜 악한 일에, 잔인한 일에, 욕심으로 인간이 망하는데 그  불의한 욕심에 눈이 뜨이지 않도록 자꾸 옳은 것에 눈을 띄워 주기 위해서 그래  한다'는 그걸 자꾸 서서히 말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나도 존경하는 목사님이  있기는 있습니다.' 또 이러더니만, 보니까 벌써 꺾어지기는 꺾어졌고 속에 풀은  죽고 다 이랬는데, 마지막에 '그래도 우리 집에 한 번만 오면 다리를 부러뜨릴  것입니다., 내가.' 그러기 때문에 '선생님도 나오시이소.' 예수님 믿으라고 자꾸  이래 전하니까 '다를 때 지금 하지 지금 내가 지금 이래 분해 가지고 하는 이  마당에 지금 그런 말 해 됩니까?' 떡 그렇게 말을 하고 그래 나중에 웃으면서  끝을 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 한 재료를 대고 또 두 재료, 이런 것도 재료를  대야 된다 말이오. 만일 통지를 갖다 주니까 '우리 아이는 안 보내겠습니다.' 안  보낸다고 하면 혹 이런 것을 예를 들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예를 들 수가 있지마는 그것도 봐 가며 예를 들어야 효험이 나지 그 사람이  보면 '그러면 우리 아이는 거기 안 가면 그런 꼴 당하는 아이인 줄 압니까? 안  보냅니다. 안 보내도 보십시오. 우리집은 그런 가정이 아닙니다.' 이렇게 또  그럴 거라. 그러면 그것을 또 써먹어야 될 때도 있고 저걸 써먹어야 될 때도  있고 자꾸 그렇게 해서 그런 걸 재료로 가져야 된다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한 것은 자기와 자기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감정이 나도 정으로 움직이면 큰일납니다. 인간이 뭣 때문에 망했습니까? 망친  자가 누구입니까? 그 정과 욕의 인간들이 들어서 다 죽였습니다. 정과 욕의  사람이.

 애정도 무섭습니다. 처음에는 보니까 욕심을 냈지마는 그게 나중에 짙어지면  애정이 되면 나중에 자기를 완전히 그놈이 끌고 자유 자재합니다. 또 감정도  무섭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데, 그때 내가 종이 쪼가리를 한번 주워 보니까 그런 말이  쓰였습디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은 특수한 그런 권위가 있다.' 안 믿는  사람인데 말하기를 그래 써 놨어요.

 '무슨 권위 있느냐? 그 사람들은 아무리 부애를 질러도 그 부애 지르는 데에  약발을 받지 않는다. 아무리 부애를 질러도 일단 그것을 받아 가지고 웃으면서,  아무리 부애를 질러도 웃으면서 받아 가지고 한번 척 생각을 하고 한 모퉁이를  넘겨 가지고 사고도 하고 말도 하고 하더라.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참 아주  특이한 권위가 있다.' 그분들도 그걸 좋아하는 모양이라.

 사람이 아무리 잘나고 훌륭해도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여러가지 방편이 있소.

그 사람은 이게 옳다 그르다, 옳은 것은 암만 꺾어대도 죽었으면 죽었지 옳은 걸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어떤 말로써 촉분을 지르고 감정으로  감정을 딱 일으켜 버리면 감정에는 그만 죽을뚱 살뚱 모르고 그만 날뛰는 사람  있나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을 죽이지 못하고 꺾지 못하고 이 정이라는 것을  이용해야겠는데, 이놈을 잡아 놓으면, 무섭기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게  없지마는 호랑이 한 마리 잡아 놓으면 부자가 됩니다.

 그때 제가 웅양에 학교 다닐 때인데 뭐 호랑이라면 어떻게 무서워하고,  양각산이라는 그 산이 큰산이 있는데 '그 산에는 호랑이가 사람이 돼 나올 때도  있고, 산신령이라고 큰 호랑이가 있는데 그 호랑이가 해마다 손해를 많이  지운다'고, 그 양각산에 있는 호랑이 -지금 호랑이는-큰 호랑이라고 유명한  호랑이입니다.

 호랑이인데, 언제 한번 '그 호랑이를 어떤 포수가 잡았다.' 하니까 모두  말하기를 '야, 그 사람 큰 부자 됐다.' 지금은 그렇지만 그때 호랑이 한 마리  잡으면 호랑이 한 마리 값이 참 많아요. 호랑이 고기 요만치만 떼 줘도 초학  앓는 사람은 호랑이 고기만 조그매만 쌀내끼만치만 먹으면 그만 그 초학이  달아난다고 이래 가지고 한 마리 잡으면 큰 부자라. 그놈이 참 잡기만 잡아  놓으면 참 가치 있습니다. 있지마는 살아 놓으면 고놈이 뭐 누구든지 닥치면  그만 잡아먹어 버린다 그말이오.

 이것 모양으로 우리에게 정 이놈을 잡기만 잡아 놓으면 이놈이 참 가치가 있고  보배이지마는 이놈을 때려잡지를 못하고, 이놈을 산채로 그놈이 제 주장대로  하도록 정 이놈을 내비두는 날이면 그 사람은 그것에게 물려 죽습니다.

 "너희들이 동정하는 사람이 돼라" 하는 그 정은 그 정을 잡아 가지고 이 복음에  썼습니다. 형제 구원에 그 정을 사용했어. 이러니까 그 정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효력이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정이니 욕심이니 그놈을 잡아 가지고 진리와  영감으로 쓰면 그것은 참 부자가 되고 가치가 많지마는 그놈을 잡지 못하고 정  욕 그놈이 나를 주장해서 내가 정 그놈에게 끌리는 사람이고 욕 그놈에게 끌리는  사람되면 볼일 다 봤습니다. 아무리 위대해도 소용이 없소. 가다가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뭐 시간이 많이 가서, 앞으로 지금 이것을 더 말씀하겠는데. 급하게, 자기와  자기를 빨리 구별하십시오. 아무리 급해도 '이게 옛사람이가 새사람이가?' '내가  분하다. 이게 옛사람이가? 새사람이가?' '이게 하고 싶다. 이게 옛사람이가  새사람이가?' '지금 뭐 무서워 두려워서 못 견디겠다. 옛사람이가 새사람이가?'  새사람도 두려워하고 옛사람도 두려워합니다. 새사람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에  속한 두려움이고 옛사람이 두려워하는 건 땅에 속한 두려움이오. 땅에 속한  두려움 그놈은 죽여야 될 것이고 하늘에 속한 두려움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은 속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겉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 그래 뭐이요? (둘이 앉아서, 나이  많은 둘이 앉아서 자 놓으니까 뭐 잘 듣는가? 그걸 알고 나가면 사는 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속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소? 속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고. 하나님하고 공산주의하고 둘이 있는데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공산주의 두려워하는 그것은, 공산주의를 하나님보단 더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은 겉사람입니까 속사람입니까? 속사람도 공산주의를 두려워합니까? 안  합니다.

 이러니까 이게다, '겉사람이냐 속사람이냐 어느 사람이냐?' 이것을 구별해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자기가 뭐 분해도 옆에 사람이 말하기를  '야, 너 분해하는 그게 속사람이가 겉사람이가?' 이렇게 깨우쳐 주면 '그거야 뭐  겉사람 이지요. 옛사람이지요. 그렇지마는.' 하고 달라드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요.

 그러면 평소에 자기가,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옆에 사람이 말할 때에 '그거야  뭐 겉사람이지요. 옛사람이지요.' '옛사람이지요' 자기 말로 딱 했으면  '옛사람이면 죽여야 되지 내가 그놈에게 내가, 그놈으로 내가 살 수는 없지'  이것을 평소에 많이 따져 놓으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옛사람인 줄 알면 그것을 죽여 꺾어버린다고 하면 이 사람이 희망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넘어지지 않아요. 함정에 빠져서 죽지는 절대 않습니다.

실수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당장 이래 살아날 수가 있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생각한 것도 이 자리에서 자꾸, 이 자리서 생각해요. 생각해서 이  이치를 환하게 알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것을, 내가 이런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다' 이것을 자기가 작정을 하고, '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권능을 주옵소서'  하는 것을 이 자리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가지고 능력을 얻어 가지고 나가자  그말이오. 이 이치를 자기가 알려고 여기에서 떠나지 말고, 그만 예배 딱 끝나면  도망치는 것, 예배 딱 끝나면 그만 집에 가서 '누가 만나러 올 것인데, 뭘  중요한데.' 예배 딱 끝나고 나면 세상일이 자꾸 와 가지고 기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그놈이 귀신이고 그놈이 자기 죽일 귀신이라 그말이오. 그놈이  자기를 죽일 귀신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또 이러니까 '뭐이 급하다.' 아무리 급해 봤자 하나님이 안 도와 주면 그 일  성공 못 해. 아무리 급해도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 이것을 생각하는 것, 적어도  10분, 적어도 10분, 그리 안 하면 20분 30분, 그날 일을 성공하려면 적어도 30분  여기에서 그 모든 일을 해서 확정하면 자기가 변화되니까, 그걸 진리를 깨닫고  그걸 원하는 사람이 된 것은 자기 변화요. 이 옛사람이 새사람이 됐다 그말이오.

그대로 능력을 받으려고 부르짖는 그거는 옛사람이오 새사람이오? 새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새사람이면 하나님과 진리와 한덩어리 된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부분적으로는 전능의 사람이요 전지의 사람입니다. 이것부터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 돼요. 이러니까 기어코라도 이 세 가지를 따져 가지고 이 자리를  떠나십시오, 그냥 떠나지 말고.

 그러고 내가 오늘 아침에 생각이 나서 그러는데, 여기에 말이오, 이 자리 장  앉는데 나이가 한 40 됐을까 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이마가 제일 많이 벗겨지고,  그 사람이 아마 공무원 살이를 생활하는 사람 같은데 그분이 늘 오다가 지금 안  오는데 누가 그 인도했습니까? 우리 교인 가운데 그때 누가 인도를 했는데,  ○○○씨 그 어디 친구 가운데 누가 인도한 사람 아닌가? 그분이, 인도한 분은  잘 나오는 분인데 그분이 요새 전혀 안 보입니다. 어찌 됐는지?  그것 기억 안 납니까? 그 인도한 사람이 ○장로님이 인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교인 가운데, 좀 그 사람도 얼굴도 잘 생겼고 잘 믿고 좀 보통  사람이 아닌 그런 좀 사람인데 그분도 얼굴이 잘 생기고 아주 이마가 벗겨지고  그랬는데 그 사람이 안 보여요. 그 사람 인도한 사람은 내가 잘 표가 안 나도 그  사람 이마가 너무 많이 벗겨졌기 때문에 표가 났는데. 얼굴이 희고 얼굴이 잘  생겼습니다. 늘 여기에 많이 앉는데. 앞에 와 잘 앉아. 여기에 앉거나 여기에  앉거나 앞에 잘 앉아요. 여기 앉고.

 기억 없습니까? 그 사람이 지금 안 보이는데 그 인도하는 사람은 어찌 되는지?  인도하는 사람은, 내가 잘 모르겠어. 그때 여기 고대가, 고대가 독창한 사람  있었지요? 여기 고대가 독창한 사람 내가 잘한다 했는데 그 사람 이름이 뭐이요?  ○○씨. ○○씨, 새벽에 나왔습니까? ○○씨가 새벽기도 나왔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잘, 그전에 안 나왔습니까 잘? 왜, 새벽기도 잘 나왔는데. 그분이 인도를  했는가 모르겠어요.

 자기가 인도하다가 안 나와도 자꾸 챙기면 그 사람이 성령이 역사해서 감동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걸리면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고 살아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마귀란 놈이 이래 가지고 있다가 마귀란 놈이 놓을 때가 더러  있다 말이오. 마귀란 놈이 딱 놓을 때 그때에 딱 걸리면 일어섭니다. 또 성령이  붙들어 가지고 이래 역사해도 또 놓을 때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끈질기게  하면 그리 끌려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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