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3:58
유월절에 갖출 4가지
1987. 11. 20. 밤 (금)
본문:출애굽기 12장 5절∼11절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출애굽기 12장 29절∼30절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요사이 며칠 계속해서 이 유월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실 때에 백성들의 정도를 따라서 가르치십니다. 그러기에 제일 쉽게 가르친 것은 창세기요 또 구약이요 그 다음에 신약 시대 와서는 신약 성경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는 그 방편이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만물 하나님의 섭리 이것을 가리켜서 자연계시라 하는데 자연계시로 가르치시고 또 신구약 특별계시로 가르치시고 제일 어렵게 가르치시는 것은 영감으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에 있는 이 역사적인 사실이나 형식적인 그 사실을 하나의 역사로 보고 기억이나 지나보내면 안 됩니다. 그 형식도 형식을 구경하고 그저 지식하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다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얻는 길을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하나에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거게서 깨닫지 못하면 다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큰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에 세 차례 큰 절기를 지키라 했는데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이 세 절기를 지키는 것을 대대 영원토록 지켜야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구약 때는 형식으로 지키지마는 지금은 그 도리를 우리가 신앙 생활로 지키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 큰 재앙이 내렸던 그 장자 재앙입니다. 성경에 애굽을 가리키시고 또 애굽에 대해서 행한 일은 오늘로 말하면 무엇인가? 애굽은 세상, 바로는 마귀, 이스라엘은 오늘에 택함 받은 중생된 사람들, 또 홍해는 애굽 사람과 완전히 관계가 끊어지는 중생, 세례, 또 광야는 땅위에 있는 교회, 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하늘나라로 이렇게 모형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것은 오늘에 이 세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구출하신 것을 하나의 모형으로 그렇게 이루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사람들이 같이 애굽에 있을 때에 이 장자 재앙이라 하는 큰 재앙이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큰 환난입니다. 애굽 생긴 이후에 그런 큰 환난이 없을 만치 그렇게 큰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환난은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데에 닥쳐지는 그 환난을 우리에게 모형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환난은, 이 환난에 잘 하면 이 환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큰 성공 세 가지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 잘못하면 이 환난에서 큰 실패 세 가지를 하게 됩니다.
유월절 환난,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어떤 그 어려움이든지 어려움이 올 때에는 다 유월절 환난으로 그렇게 해석을 하면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환난은 개인적인 환난이나, 가정적인 환난이나, 또 사회적인 환난이나, 교회적인 환난, 교계적인 환난, 또 국가적인 환난, 시대적인 환난, 또 무슨 경제적인 환난, 사업적인 환난, 자기의 신체에 질병적인 환난, 그 모든 환난은 유월절에 속한 것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유월절 환난은 아주 전무후무한 큰 환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난을 잘 치르면 큰 성공 세 가지를 하게 되고 또 이 환난에 잘못 하면 세 가지가 실패되게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 성공은 어떤 성공을 하게 되는가? 첫째는 생명의 구원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만일 유월절에서 이 구원을 얻지 못했으면 그들은 다 생명이 멸망받게 됐습니다. 첫째는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되고 또 둘째로는 해방과 자유의 축복을 받게 됐습니다. 또 셋째로는 뭣을 받았는고 하니 아주 소유적으로 부강해지는 이런 성공을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큰 환난 작은 환난, 또 좁은 환난 범위 넓은 환난, 여러가지 환난을 겪는데 우리는 환난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근심하고 불행스럽게 여겨서 이 환난이 닥쳐지지 않고 없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이 대개 많습니다. 기독자가 세상에 있어서 환난이 없으면 생명이 좀 더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생명 구원과 또 해방과 자유의 구원과 자기가 물질적으로 모든 소유적으로 부강해지는 이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환난을 통해서 우리들이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면 자기의 사업 생명도 있겠고, 직장 생명도 있겠고, 가정이라는 그 가정의 생명도 있겠고, 또 개인의 건강의 생명도 있겠고, 평강의 생명도 있겠고, 쾌락의 생명도 있겠고 있습니다. 쾌락 그런 것이 죽는 것이 기쁨이 죽는 것이 그게 다 사망이오. 그런 것이 살아나는 것은 다 생명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무조건 싫어할 게 아니라 이 환난에서 평강이 살아나기도 하고 또 평강이 죽기도 하고, 또 그 쾌락, 기쁨이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또 사업이, 자기의 지위가, 권세가, 모든 직장이, 가정의 그 모든 행운이, 행복스러운 운이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모든 면이 유월절에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하는 요것을 기억하시고, 또 이 환난에서 이전보다 더, 매여 있는 그 모든 매인 데에서 해방, 어떤 사람은 세상 돈에 매여서, 지위 권세에 매여서, 사업에 매여서, 이런 모든 사건들에게 매여서 자꾸 매여 가지고 도무지 신앙 생활을 자유를 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은 환난을 통해서 그런 모든 얽어매여 있는 그 모든 속박되어 있는 거기에서 우리가 해방되고 여러가지 것들에게 종되어 있는 데에서 자유하는 자가 됩니다.
이 환난을 통해서 죽음의 종에서 죽음에서 자유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이 근심에서 자유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 이런 모든 세력들에게서 자유하는 것도 뭐, 죄에서 자유, 마귀에게서 자유, 사망에서 자유 이 자유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유는 환난을 통해서 자유를 얻지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자유를 못 얻습니다.
또 하나는 기독자들이 이 세상적 성공, 자기 모든 물질이나 자기의 소유의 성공, 그 부자도 부강되는 것도 세상에 물질이나 세상 이 자연은총의 것으로 부요해지는 것도 환난을 통해서 부요해집니다. 또 믿는 사람이 영감에 부요해지는 것도, 진리 깨달음에 부요해지는 것도, 믿음에 부요해지는 것도, 또 소망에 부요해지는 것도, 자기가 성결한 그 행위나 모든 그 성결에 대해서 부요해지는 것도 전부 이것이 이 환난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환난을 원치 않는 자가 돼서는 안 되고 이 환난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서 이 환난에서 이 세 가지 성공을 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환난을 무서워하고 환난 없는 것을 원하는 그런 사람은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성공과 승리인데 이것을 원치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좌절되고 도태되고 소멸되는 그런 생각입니다. 환난은 우리가 얼마든지 올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됩니다. 이래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것이 다 이런 면에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환난에 세 가지 성공은 이제 말했습니다. 살아나는 것 생명을 얻는 것, 또 해방과 자유를 얻는 것, 자기의 소유를 부강하게 얻는 것, 돈 얻는 것도 소유 얻는 것이요, 진리를 많이 깨달아 얻는 것도 소유 얻는 것이요, 영감을 다른 사람보다 더 충만히 받는 것도 자기의 소유에 부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에 우리는 이 환난은 잘 하면 행복이요 잘못 하면 실패기 때문에 환난을 당할 때에는 조심해서, 내가 잘 하면 성공하고 잘못 하면 실패하니까 이 환난을 닥쳤을 때에 우리는 주의해서 잘 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잘 하는 것은 어떻게 잘 할 수 있는가? 인간 생각으로 제가 조심한다고 암만 해야 소용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요 방법대로 해야 잘 하는 것이지 이 방법을 떠나서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대개 어려움을 닥치면 사람들이 그 어려움에서 구원되려고 애쓰는 것은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 유일한 방법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신 방법대로 하는 것은 네 가지입니다. 네 가지를 바로 하면 이 구원에서 세 가지 큰 승리와 성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네 가지 하는 것이 뭣인가? 첫째 중요한 것은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안에 들어앉았었습니다. 양 피 안에 들어앉았습니다. 양 피 안에 들어앉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화친의 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 가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해 주신 이 구속, 이 구속을 자기가 의심 없이 확실히 믿는 것이 이 피 안에 있는 것이요 또 믿고 자기는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구속을 받아 가지고 있는 자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받아 가지고 자기는 구속 안에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양 피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구속 안에 있으면 나는 완전히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은 내것 됐습니다. 자기가 자기 것으로 아는 것은 주님의 대속을 벗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 것이 아니라 자기는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것인 것을 자기가 확실히 믿어서 이거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내맘대로 할 게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할 것, 사나 죽으나 주님의 뜻대로 하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요것이 확정짓고, 그 다음에 주님이 대속해 주신 죄 없는, 죄 없는 것은 내것이요 사죄는 내것이요,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한 의는 내것이요, 하나님과 화친된 하나님의 아들된 것은 내것입니다. 요것을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은 자기 것으로, 자기 것은 예수님의 것으로 요와같이 바꾸어서, 마치 물건 살라 하면 내게 있는 돈을 줘야 사는 것처럼 나를 주고 주님을 산 것입니다.
주님이 대형 대행 대 화친 으로 당신이 죽어서 당신의 전부는 대형 대행 대 화친 이 대속의 주님이 됐습니다. 대속의 주님이 됐는데 대속의 주님 이 대속의 주님은 내것되고, 주님은 내것 되고 대속도 내것되고, 주님은 내것되고 대속도 내것되고, 주님은 내 주님 됐고 대속도 내것됐고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이러기 때문에 나는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당신이 뭐 어짜든지 당신의 뜻대로 하지 나는 권리 없고 주님의 뜻대로 하고 나는 다만 내것은 뭣이냐? 주님이 내것됐기 때문에 나는 주로 삽니다. 나는 주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죄 없는 자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의로운 자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의 이 화친자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 생활은 밤이든지 낮이든지 얼마든지 자유로 하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거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나는 당신 마음대로 하고 이와같이 바꾸는 것이 예수님의 피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피를 바른 피 속에 있을 때에 장자 재앙은 그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해하지 안했습니다. 거게는 다 넘어가서 거게는 하나도 해를 받지 안했습니다.
이러기에 세상에 어떤 환난을 우리가 닥칠지라도 요 대속을 똑똑히 깨달아서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은 내 대속주로서 내것된 것을 요것을 확실히 믿고 요대로 살고 있으면 절대로 어떤 환난이라도 털끝만치라도 해하지 못하고 자기는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도 살고, 언행심사가 전부 살았고, 다 영생됐고, 하나도 죽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생명 얻는 것입니다. 생명 얻는 거.
그 다음에는 자유와 해방과 소유를 얻는 것은 뭘해야 되는가? 세 가지를 해야 됩니다, 세 가지. 세 가지를 해야 되는데 애굽에서 그들이 예수님의 양의 피 속에 있으니까 사망에서는 구출됐습니다. 장자 재앙에 사망을 당하지 안하고 사망에는 구출됐습니다. 사망에는 구출돼서 장자 재앙에 죽지 안하고 살아 있기는 있지마는 애굽에서 나오지는 못합니다. 애굽에서 나오지는 못합니다.
애굽에서 나오려고 하면 이 세 가지 양식을 먹은 그 힘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세 가지 양식을 먹는 그 힘 가지고 나오지 그걸 먹지 안하고는 나오지 못합니다. 만일 양의 피 속에 있었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 양고기, 또 누룩 없는 떡 무교병, 또 쓴나물, 요 세 가지를 같이 먹을 때에 애굽에서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세 가지를 한목 양식으로 먹고 난 다음에 이제 애굽에서 자유로 나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나의 형식으로 보여 주신 것은 우리에게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에 도리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세 가지를 먹음으로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먹어야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벗어나오게 됩니다. 세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세상에서 구출되게 됩니다.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을 뭘 가리킨 것인고 하니 죄악에서 구출되는 것, 사망에서 구출되는 것, 마귀에게서 구출되는 것, 다시는 죄 사망 마귀에게 종이 되지 안하고 거게서 완전히 자유하는 사람, 사망에 종이 되지 안하고 사망에 대해서 자유하고, 마귀에 대해서 자유해서 마귀가 우리를 침노하지 못하고 죄가 우리를 침노하지 못하는 이 자유를 얻게 되는 그것은 이 세 가지 양식을 먹는 힘으로만 됩니다.
양고기를 우리는 지금 어떻게 먹는가?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다” 이랬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다 마지막에 살아나고 하나도 죽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너희 조상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은 것과 같이 그렇게 죽지 안하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다 영생을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오늘 우리가 먹는 것은 어떻게 먹는 것인가? 예수님의 세 가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무와 책임의 본분을 대신하시기 위해서 죽으셨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기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이렇게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와 하나님의 공심판과 하나님과 원수된 데에서 구출해 주신 이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떠한 사랑으로 어떠한 고난을 어떻게 그 어려움의 순서를 겪어 가지고서 우리 구원해 주신 것을 자기가 자꾸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 새사람의 힘이 생깁니다. 양식을 먹으면 기진한 힘이 이제 다시 힘을 얻어서 생생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과 그 어려움과 또 모든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린 것, 모든 부요를 다 바친 것 이것을 이래 자꾸 이래 생각할 때에 우리 새사람이 힘을 얻습니다.
새사람이 힘을 얻어서 ‘나도 주를 위해서 한번 살아보겠다. 죽는 데까지 살아보고 주를 위해서 나도 죽고 주를 위한 고난 나도 당하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사랑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셨기 때문에 나도 주님이 원하시는 이 복음에 헌신하겠다.’ 자꾸 이렇게 해서 새사람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자꾸 생각하고 느끼고 할 때에 성신의 감동이 와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믿어지게 하고 깨닫게 하셔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새사람으로 강건함을 얻게 하고, 또 그때에 같이 먹을 것이 뭣인고 하니 무교병을 먹으라 했습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데 누룩이 있는 사람들은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야 그때 구원 얻었습니다.
우리는 오늘에는 누룩 없는 떡이 뭣인가? 성경에 “바리새 교인들의 누룩을 삼가라” 누룩은 적은 누룩이 많은 가루를 부풀게 해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썩혀 버립니다. 누룩이 들어가면 가루를 부풀게 만들어서 가루와 가루 사이에 벌어져 가지고서 구멍이 나고 뻐끔뻐끔 나고 가루가 그만 이래 퍼슬퍼슬하게 이래 아주 뭐 괴어 가지고 이래 아주 그 부풀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더불어, 누룩 없는 떡은 속에 공간이 없는, 사람과 자기와의 사이에 그 사이가 벌어지는 그런 틈이 없고 불목이 없고 화친으로 되어 있는 그 화목을 가리켜서 누룩 없는 떡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환난이든지 그 환난에서 좋은 성공을 하려고 하면 이 화목을 가지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나도 이 주를 위해 살겠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거게서 은혜받아 가지고 자기도 주를 위해서 살 뿐 아니라 나는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주님 위해서 사나 죽으나 뭐 먹든지 마시든지 주만 위해서 살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생겨지는 거게다가 뭣을 덧붙여야 되느냐 하면 아무리 원수라도 이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이 대속을 생각하고 자기가 다 용서하고 관용하고 화친을 합니다. 화친하는 것.
이것이 무교병 먹는 것입니다.
또 그리고 난 다음에 쓴나물을 같이 먹는 것은 쓴나물은 곧 요새 우리로 말하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자기가 주와 이 진리와 형제를 위해서 고난받는 그 고난을 가리켜서,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하는 그 모든 어려움, 자기가 기도에도 십자가가 있고, 기도도 평안히 하는 기도가 있고 자기를 참 어려움을 무릅쓰고 하는 기도, 희생하는 기도, 십자가의 기도, 또 전도를 하고 심방해도 십자가의 심방, 주일학교 반사들이 주일날 새벽에 잘 대로 실컷 누워자고 나머지기 뿌시시 떨고 일어나 가지고서 그래 늦게사 가니까 아이들은 뭐 다 놀러 나가 버리고 다른 교회 다 가 버리고 하는 그자는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다니는 사람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으니라” 말했습니다.
‘내가 이 형제를 구원해서 요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하면 내가 자고 싶은 잠을 다 자서는 안 되겠다. 놀고 싶은 것 다 놀아서 안 되겠다. 저녁에 놀고 싶고 테레비 보고 싶지만 일찍 자야 되겠다. 또 새벽에 좀 습관이 됐으니까 버릇이 돼서 좀 늦게 자고 싶지만 일찍 일어나야 되겠다.’ 일찍 일어나니까 일찍고 춥습니다. ‘이래도 내가 가 가지고서 일찌거니 여섯시에 출발해 가지고 가 가지고 그 집에 만일 일어나지 안했으면 문 앞에서 기도하고 벌벌 떨며 기도할 때에 이제 그 사람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주님은 그 충성하는 것과 그 십자가 지는 것을 압니다.
이래서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나물 요 세 가지를 양식 삼아서, 요 세 가지를 자기의 믿음의 양식 삼아서, 마음의 양식 삼아서, 생활의 양식을 삼아서, 인격의 양식을 삼아서 먹으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죄악과 사망과 마귀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요 세 가지를 한목 자기의 믿음의 양식을 삼아야 되지 요 세 가지 외에는 환난 닥친 그 환난이 자기에게 없는 것보다 몇천 배 몇백 배 더 좋은 이런 성공으로 바꿔지는 것은 요 세 가지 양식을 먹어야 되고 거게서 생명이 살아나는 데에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내가 자기가 입고 있는 것을 믿고 그 공로를 벗지 않는 것이 그것이 생명의 구출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자들이 땅위에 환난 잘하면 없는 것보다 크게 좋은 것이고 잘못하면 없을 때보다도 더 망하게 되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 환난에 네 가지가 있으면 세 가지가 성공이 되고 네 가지 없으면 세 가지가 다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도 애굽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나와서 성화되는 것, 우리가 어두움에서 나와서 성화되고 옛사람에서 나와서 성화되고 자꾸 성화가 되고 새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인 것을 우리에게 이렇게 하나의 모형 계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화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화될 수 있느냐? 성화되는 것은 세 가지 양식을 먹어야 성화된다. 또 우리가 무엇이든지 생명적인 구원을 얻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피공로를 힘입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믿을 때에 되는 것.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우리는 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러고, 여게 또 양고기를 먹고 무교병을 먹고 쓴나물 먹을 때에 어떻게 먹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여게 주의를 줬습니다. 주의 준 것이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고기를 생 걸로 먹지 말아라, 날 것으로 먹지 말아라. 또 물에 삶아서도 먹지 마라. 불에 구워서 먹어라. 먹는 데 즉시 먹고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거 있는 것은 불에 태워서 없애 버려야 된다. 그 뒤에 먹겠다고 그 이튿날 아침에 먹겠다고서 미루지 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것이 우리에게, 그러면 성화되는 양식 이 주님의 피와 살과 또 화목의 양식과 십자가의 양식을 우리가 먹을 때에 어떻게 먹어야 되느냐 하는 방편에 대해서 여덟 가지를 가르쳐 말했는데 양고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날 걸로 먹지 말고 물에 삶아서도 먹지 말고 불에 구워서 먹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사모하고 거기서 연구하고 깨닫는 일은 그저, 날 걸로 먹지 말라 말은 예수님의 이 대속은 대속이고 예수님이 뭐 죽으셨거나 말았거나 대속은 대속이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나와의 상관없이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그런 것은 금지했습니다. 그것은 소용 없습니다.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 아무 소용 없고 말로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지식과 말로 가지고 있는 것을 금한 것이 이것이 날 것으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상관없이.
또 물에 삶아서도 먹지 말라 그말은 구운 것보다 물에 삶으면 양고기의 모든 것이 물에 다 퍼져서 헤쳐지게 됩니다. 그게 그대로 있지 안하고서 퍼져집니다.
이래서 이것은 네가 주님의 대속의 이 피와 살을 생각할 때에 생각하다가 또 집어던져 버리고 딴것 생각하다가, 이제 예수님의 피와 살을 사모하고 생각하다가 딴것 생각하다가 이렇게 자꾸 이래 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이 대속을 합당하게 자기가 사모하지 안하고 이렇게 아주 예사롭게 조심 없이 그렇게 아무런 속되게 이렇게 예수님의 피와 살을 그저 얘기삼아 또 자기 마음에 조금 생각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걸 말합니다.
“불에 구워서 먹어라” 불에 구워서 먹어라 하는 그 말씀은 우리가 아주 간절한 마음 가지고, 뜨거운 마음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가지고, 주님 앞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 주님의 이 대속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궁구하는 데는 간절함과 또 자기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 마음 뜨거운 마음 가지고서 간절한 마음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해야 되지 그렇게 무시하는 마음 가지고 생각하는 그런 것을 금지한 것을 여게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아라” 그것은 지금 그렇게 먹다가, 불에 구워서 먹다가도 이제 그만 배가 불러 다 못 먹으니까 냅뒀다 내일 아침에 먹자 뒤로 미루는 걸 말합니다. 뒤로 미루는 걸 아주 엄금했습니다. 그 다음에 내려보면 있습니다.
이래서, 언제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사모하고 생각할 때에는 그때에 자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님의 대속을 사모하는 여기에서 자기에게 양식이 됩니다.
그러면 사모하는 그 간절한 양대로 자기에게 양식이 되고 이렇게 아무런, 양고기는 양고기대로 날 걸로 그래 내비 두고, 날 걸로 먹는다는 것은 아무 거게 대해서 자기의 마음을 뜨겁게 거게 감미해서 느끼지 안하고 그냥 이래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 말로만 이래 하는 것 그런 것을 가리켜서 다 “날 걸로” “물에 삶아서” 말하는 것이고 “불에 구워서” 하는 그 말은 뜨거운 그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주님의 이 대속의 피와 살을 언제든지 우리는 사모해야 된다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만찬 먹을 때에 다 생각하는데 그때나 꼭 같이 언제든지 주님의 대속의, 이 대속을 생각할 때에는 장난삼아 놀기삼아 예사로 생각해 안 되고 언제든지 간절한 그 마음을 기울여서 생각하고 사모하고 연구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 말도 그것 뒤로 연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만 생각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사모하고 또 다른 것 거석하면 달리 옮겨지고 이래도 그저,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자기가 사모하다가 또 뒤로 연기하는 그런 일은 금했습니다. 대속을 자기가 사모하다가 끝내면 끝나고 대속을 사모하다가 또 하나님이 다른 걸 지시하면 딴걸 이래 할지라도 이것 대속에 대해서 ‘뒷날 또 연구하자’ 그렇게 뒤로 미루는 것, 연구하는 그 마음을 뒤로 두고서 자꾸 그렇게, 다른 것 보류하듯이 그렇게 보류하는 그런 것 아주 엄금해서 말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먹을 때에는 반드시 허리에 띠를 띠고 먹으라. 허리에 띠를 띠고 먹으라. 또 신을 신고 먹으라. 또 지팡이를 짚고 먹으라. 서서 급하게 먹으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애굽에서 즉시 출발할 그 모든 출발의 준비입니다.
이래서, 이 세 가지 양식,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을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이 명령하시면, 주님 명령하시면 즉시 순종할 요런 각오를 가지고서 이 양식을 먹고 사모하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 나도 지고 갈 그 십자가를 생각하고, 또 주님이 이렇게 화목의 제물이 되셨으니 나도 어짜든지 내가 손해가든지 뭐 어떤 부수모수가 있고 어떤 돈에 무슨 원수가 되고 원망될 것 이런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것을 이제 주님 만나는 데에 주님이 싫어하시고 또 주님이 이것 때문에 죽기까지 하셔서 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을 가져야 되겠다 하는 이 화목을 가지는 것이나 예수님의 대속의 이 대속을 생각하는 것이나 이 생각하는 데에는, 허리 띠 띠는 것은 힘을 쥐는 거라. 허리 띠 띠면 딱 준비하고, 또 신 신고, 지팡이 잡고, 일어서서 급히 먹으라 하는 이 말씀은 이 세 가지 양식을 먹을 때에는 내 마음에 간절한 뜨거움ㅡ구워먹는 것. 뜨거움ㅡ간절함도 중요하고 언제든지 급하게 먹으라. 일어서서 다 준비해 가지고 먹으라.
언제든지 이렇게 세 가지 신령한 양식을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사모하는 게 먹는 것이요, 연구하는 게 먹는 것이요, 거게 대해서 또 자기가 느끼는 것이 먹는 것이니 이렇게 할 때는 중요한 게 뭣이냐 하면 허리 동이고, 또 신 신고, 또 지팡이 짚고, 서서 급하게 먹으라. 언제든지 주님이 명령 떨어지면 즉시 순종할 그 각오를 가지고서 준비를 해 가지고서 이제 양식을 먹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이 모든 환난이 변하여서 자기에게 큰 성공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땅위에 환난 오는 것을 이 네 가지를 갖추어 가지고 자기가 급하게 먹으라 하는 요대로의 자기는 네 가지에 심신을 다 기울여 가지고서 언제든지 네 가지를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깨달아서 ‘이래 해라’ 깨달으면 즉시, 만일 그래 생각하다가 누구와 너와 불목한 것이 있다 하면 즉시 그 불목을 풀도록 해서, “급하게” 즉시 단행할 그런 각오를 가지고서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고 복있는 자로 만들 수가 있고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29절에 보면 밤중에 이 일이 됐습니다. 밤중에 이 일이 시작해서 유월절은 밤중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환난에, 환난을 닥치나 그 환난에 성공은 어데 있느냐? 이것 유월절에 잘 하면, 네 가지를 갖추어 가지고 있으면 대성공을 하는데 이 네 가지를 갖추어 가지고 있을 때는 자기 마음을 기울여서 간절한 마음으로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해야 되고 언제든지 내가 단행하겠다, 언제든지 주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단행하겠다. 요것을 가지고 하는데 그때에 그 성공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초저녁부터 그때 양을 잡았습니다. 초저녁부터 양을 잡고 초저녁부터 다 문인방에다 피를 바르고 이랬지만 그 일의 성공이 이루어진 것은 언제 이루어졌느냐? 밤중에 이루어졌습니다.
29절에 보면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신 유월절 이 환난의 고비가 시작됐습니다. 이래서 이 일이 성공은 밤중에 됐다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서, 환난이 오지마는 기독자에게 여러가지 환난이 오는데 그 환난에 성공은 언제 성공이 있느냐? 그 환난에 최 고비, 그 환난에 그대로의 그 환난에 최고의 절정, 절정되는 거기에 우리는 성패가 달린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주일날 아침에 네시 반에 각각 자기의 교실에서 모여 가지고 부장 모시고 예배드릴 것을 기억하고, 또 그날 아침에는 모여서 서로 예배보고 난 다음에 여섯시 되기까지 기도도 하고 또 부장이 주의도 주고, 의논도 하고, 계획도 짜고, 또 어떻게 방편도 짜고 그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부장은 토요일날 자기 통솔하고 있는 반사 선생님들에게 전화로, 또 방문으로, 여러가지로 해서 주일날 아침에 반사들이 다 참석할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