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환난

 

1987. 11. 23. 새벽 (월)

 

본문:출애굽기 12장 5절∼14절 너희 어린양은 흠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애굽은 세상을 모형했고, 유월절은 신불신자에게 닥쳐오는 모든 환난을 모형했고, 여게서 네 가지를 갖추면 이 환난 재앙에서 생명의 구출함과 자유의 해방과 또 모든 소유가 부강해지는 그런 일을 받게 되고, 그런 축복의 은혜를 받게 되고 이것이 없을 때에는 어떤 것이 있다 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그에게 임합니다.

마치 노아 때에 인간들의 온갖 방편과 과학과 노력이 있었지마는 하나님의 재앙은 인간들이 구비하고 또 방어하고 준비하는 그 모든 것보다 뛰어난 재앙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방어하지를 못하고 능가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홍수의 재앙이 내릴 때에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홍수에 매몰되었고 다 망했습니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꼬박꼬박 순종해서 해 놓은 것이 사람들 보기에는 정신 이상자의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만이 홍수 재앙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에게 각양 재앙들이 있고 환난들이 있습니다. 뭐 큰 것 작은 것, 넓은 것 좁은 것, 또 한쪽 귀때기, 가운데, 전체, 별별 땅위에 환난들이 있는데 이 환난들은 다 유월절 환난에 속해 있습니다.

이 환난에서 망하는 사람은 망하고 흥하는 사람은 흥하는데 다만 이 환난에서 재앙을 받지 안하고 흥하는 사람은 이 네 가지를 구비하면 이 재앙 중에서 도리어 자기의 구원의 승리를 세 가지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네 가지를 갖추면 세 가지를 가지고 옵니다.

이것을 그때는 간단한 것으로써 그렇게, 유월절 재앙에서 그렇게 구원 얻었으나 그후 여게 대해서 해석을 하나님께서 신약 성경에 다 해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해석한 것 모든 것을 간추려 보면 다 이를 해석했고 또 더 간추려 보면 에덴 동산 그 동산 생활에서 어떻게 됐다는 것을 다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경은 자꾸 간추려 가면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 인류 시조에게 행하신 그 일을, 그때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만 이렇게 제목으로만 해 놓고 세밀한 것을 그후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간추려서 강령적으로만 종류적으로만 말한 것을 성령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구약 시대 그때에도 그 도리를 밝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왜? 영감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와 지금과의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일관된 도리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이종교나 모든 철학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이 모든 인생관이나 만물관이나, 인생관이라 말은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말하느냐, 만물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말하느냐 하는 그걸 가리켜서 관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제는 다섯 가지 그 관을 가리켜서 서머나 교회서 공부했습니다.

이런데 모든 만물관들이 다 있습니다. 이 철학자는 ‘인생은 이렇다, 행복은 이렇다, 불행은 이렇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것을 그들이 많이 말하고 또 ‘이 우주는 무엇이라’ 그렇게 말을 했지마는 그들은 양심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제 생각대로 해서, 그걸 대략 추측한 자들은 추측을 하면서 ‘이러리라 생각을 한다’고 그렇게 한 자는 양심이 좀 있는 자고 ‘이렇다’고 말한 자는 양심이 없는 자입니다.

사도나 이런 모든 그런 것들은 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석가모니니 유교의 뭐 공자니 노자니 하는 그런 사람들은 별로이 아는 척하고 말하지 안했는데 그중에는 석가모니가 제일 양심 없이 그렇게 아는 척하고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랬는데 성경이 말하는 인생관이나 만물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꼭 일관입니다. 이렇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그렇게 걷지를 안했고 일관입니다. 지금도 에덴 동산을 해석할라 하면 신약 성경을 다 가져야 해석이 됩니다. 신약 성경이 다 그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것도 이러합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땅위에서 모든 환난이나 재앙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피하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낮만 있으면 식물이 자라지 안하고 밤만 있어도 자라지 않습니다. 낮이 있고 밤이 있어서 낮에 있다가 밤이 오면 싫은 것 같지만 그게 없으면 안 되고, 밤에는 또 낮이 있는 걸 싫은 것 같지마는 낮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야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셔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것처럼 환난과 평안 이것이 언제든지 밤낮과 같이 그렇게 교체돼서 우리에게 옵니다.

그러면 평안한 때는 그 평안을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평안을 누리는 것보다는 환난을 준비하는 그것이 모든 자동적으로 자연적으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안 믿는 그 불택자들은 이 환난에서 자기는 환난 닥치기 전보다 더 좋은 그런 미래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서 차차 차차 한 번 만나면 그만치 멸해지고 열 번 만나면 그만치 멸해지고 마지막에는 다 전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그 환난을 통해서 자기가 온전하고 구비함을 갖추어 가지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월절 환난 이 환난은 신불신자에게 닥치는 환난인데 이 환난은 우리가 당할 때에 먼저 근심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됩니다. 모든 환난을 닥칠 때에는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됩니다. 기쁘게 여기는 것은 환난이 좋아서 기뻐 여기는 것 아닙니다. 환난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뻐 여깁니다. 환난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뻐 여깁니다.

‘이 환난에서는 내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 인도에 약속을 지키지 안할 때에는 내가 멸하지마는 약속을 지킬 때에는 이 환난 있기 전보다 그 후는 훨씬 뛰어나게 낫게 된다’ 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이런 것을 위해서 이 세상에도 온갖 시험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시험을 치르면 올라갑니다. 시험에는 낙제되면 이전만 못한 것이고 합격이 되면 이전보다 나아지는 그것이 세상 모든 자연 법칙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시고 이런 것으로 전체를 삼아 가지고 그게 다 자연계시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신령한 면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고 있는 것이 자연계시입니다. 또 이 자연의 계시를 가지고 모를 때에는 특별계시인 신구약 성경과 영감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환난에는 네 가지가 구비해 있으면 세 가지 축복을 받는다.

생명의 구출을 받고, 해방의 자유를 받고, 또 모든 소유에 부강을 받는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뭐 천 명이든지 만 명이든지 모두가 다 이 자연 은총이라는 이 모든 소유, 이런 소유 저런 소유, 자연의 소유, 신령한 소유, 자기가 영감을 받았다 하는 것도 그것도 소유요, 성경에 지혜 지식을 받은 것도 소유요, 또 자기가 능력받은 것도 소유요 모두 다 소유, 그런 소유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이 자연 은혜라 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리켜서 자연 은혜라 일반 은혜라고 말하고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고 특별히 믿는 사람들만이 가지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그것을 특별 은혜라 그렇게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이 환난을 통해서 일반 은혜나 자연 은혜를 다 받아서 부강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환난은 먼저 기뻐하고 이 환난에서는 우리에게 좋은 성공과 승리가 있는 것을 소망하면서 이 네 가지를 구비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환난을 통하지 않고는 해방을 받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예수 믿으면서 어떻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지 안했으면 그 사람은 해방을 못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제일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라면 제일 많은 해방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제일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제일 강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그말은 세상에서 온갖 환난을 거쳐 이제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주님만으로 전부를 삼는 그것은 환난을 통해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게서 해방도 있어지는 것이고 자유도 있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그것이 생겨나지를 안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요 환난에서 네 가지를 갖추면 세 가지 큰 축복을 받는다. 모두 다 생명의 구출함을 받고, 생명의 구출함을 받고 또 모든 면에서 해방을 받고, 해방을 받는 것은 크게 말하면 우리는 죄에서 해방받는 거, 또 사망에서 해방받는 것, 마귀에게서 해방받는 것, 이런 것은 다 이 환난을 통해서 해방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환난을 통해서 우리 믿음이 생겨지는 것이지 환난 만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아직까지, 미나리 마디가 없는 것은 무성한 미나리는 마디 없는 대궁을 짜르면 이만합니다. 그거는 암만 짤라서 심어 놔 봤자 다 썩습니다. 암만 요 짤막해도 고거 마디 있는 마디 그놈은 짤라 가지고 심어 놓으면 뿌리 나고 움 나고 다 나서 그것이 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환난은 그 인격의 마디라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 어떤, 며칠 전에 내가 ○○○목사님을 만나 가지고, 오층에서 만나 가지고서 내가 말하기를 ‘이번에 내가 이런 이런 환난을’ `그게 네게 대해서는 마디가 생겨진 것이다. 그 생기기 이전과 이후와는 너는 사람은 달라졌다.’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겪은 환난을 다 겪어서 그 위에 환난에 벌써 초월한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견해와 사색과 비판과 평가를 그걸 겪지 못한 사람은 거게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다 경험과 체험에서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학생들이 이렇게 데모하고 할 때에 학생 떠들어 쌓는, 학생들은 뭐 지능의 사람이라지만 나는 학생들에 대해서 ‘너거는 몰라.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너희들이 이제 나이가 지금 삼십 세 미만인데 삼십 세만 지나가면 다 후회해.’ 아무리 명철한 자라도 스무 살 먹어서는 스물한 살 먹을 때에 그때에 아는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의 그뭐 명철하고 우둔하다 해도 그 차이점은 얼마 없소.

인간과 인간의 차이점은 서숙쌀 한 내끼의 차이밖에 없다 하는 그것을 제가 예수 믿은 지 한 일 년인가 된 후에 그때 그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거창 있을 때에.

서숙쌀을 나는 말했소. ‘서숙쌀 한 개 차이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이 신앙을 가지고 안 가진 데에는 하늘과 땅과 같은 그런 차이를 가졌다.’ 하는 그런 것을 그때 많이 설교를 했어요. 했는데, 인간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그저 예사로 지나가지 말고, 예수님의 양 피 안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 양 피는 그러면 사람들이 발랐는데, 혹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발랐는데 우리의 대속은 하나님이 해 주시지 안했는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 마귀가 들어가 놓으면 자꾸 꺼꾸로 깨달아 가지고 자꾸 트집만 잡고 자꾸 그렇게 책만 잡으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모든 자들이 책만 잡으려고 했어. 트집만 잡을라 하고. 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발랐지 하나님이 바른 것 아닙니다. 이런데 우리에 십자가의 대속은 이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속 주신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도 사람이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성을 입고 오셔 가지고서, 인성이 피가 있지 신성에는 피가 없습니다. 신인 양성일위의, 일위지만 피 흘린 것은 인성에게 피지 인성 피가 아니고는 피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이 대속의 피를 흘렸습니다.

대속의 피를 몇 가지로 흘렸습니까, 손가락으로? 대속의 피를 몇 가지로 흘렸습니까? 저 뒤에? 뻐뜩 들어 봐. 녜, 거의 다 맞게는 말하는 것 같은데. 그래 이 세 가지로 흘렸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세 가지로 흘렸소. 하나는 우리의 형을 받아서 흘렸고, 하나는 우리 대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을 위해서 순종으로 흘렸고, 하나는 우리 대신 불목한 것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위해서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죽으셨지마는 그 흘리신 것은 세 가지 면을 당신이 대속하시느라고 흘리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피 속에 있을 때에 이미 양의 피는 흘려서 발라놨지마는 그 피 속에 있어야 되지 피 속에 나오면 그들은 소용이 없습니다. 죽습니다.

이걸 우리들이 이 말로만 해서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형식을 가지고서 정확하게, 피 속에 있고 나오는 것은 하나의 것이지마는 말로 해 가지고는 어떤 게 피 속에 있는 것인지 나오는 것인지 잘 모른다 그말이오.

오늘에 예수님의 대속의 이 피는 우리가 벗으려면 벗고 입으려면 입고 그렇게벗고 입고 할 수 있습니다. 벗을 수 있고 입을 수 있습니다. 절대 벗을 수 없고 입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두 말이 양 말 하니까 ‘무슨 말을, 외통 말을 해야 되지 두 가지 질레 말을 하는가? 이렇게도 말하고 또 저렇게도 말하는가?’ 모르는 사람은 거게 대해서 마귀의 유혹받기 쉽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는 절대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죽어도 못 벗습니다.

일생 동안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부인하고 반대를 해도 입은 자는 벗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절대 벗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입니다. 피공로입니다. 또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는 하루 백 번 입었다가 백 번 벗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절대 벗을 수 없다는 것은 이것은 중생된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입고 중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서 예정에서 창조에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서 이루어진 이 대속은 우리의 영은 절대 벗지를 못합니다. 영은 벗지를 못합니다. 내라는 사람은 벗지를 못합니다. 암만 부인해도 예수님의 대속은 입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대속 입고 중생된 자는 일생 동안 예수 믿는 것을 반대를 했으면, 반대했으면 그 사람은 천국 갑니까 지옥 갑니까? 일생 동안 반대했습니다. 대속의 공로를 입기는 입었는데 일생 동안 반대만 합니다, 그 사람은. 반대만 합니다.

반대하면 그 사람은 지옥 갑니까 천국 갑니까? 지옥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반대를 했는데 지옥을 안 가?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요것이 바른 교리입니다. 천국 갑니다. 그것은 암만 반대해도 지옥 못 갑니다. 천국 갑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을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하루 백 번이라도 입을 수 있고 벗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자기의 심신의 주관이라는 것입니다. 심신의 주관. 심신의 주관, 감각, 또 자기의 지식, 어찌됐든간에 심신의 행동, 이 심신의 행동으로서는 백 번 벗고 백 번 입을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구비해서 가르치니까 거게서 단어도 새로 생겨지고 이라면 어찌됐든지 그 묵은 둥치만 가지만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서 다 배워 가지고서 제가 모르던 걸 다 깨달아 놓고 난 다음에는 ‘다 이것 옛날도 있는 것인데, 뭐. 거게 있다.’ 거게 있기야 성경 안에 다 들었지. 성경 안에 다 들은 것 그것은 예수 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거기 다 들었지, 그 한 마디에 다 들었지.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거게 대해서 알아야 거게 대한 대비도 하고 또 준비도 하고 모든 것을 다 치료도 받고 다 하지.

우리 진영에 있는 교역자들 중에는 그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르는 걸 배워 놓고 난 다음에는      가서 부흥회 해 가지고서 은혜받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이래 믿어야 되겠다 이러고 나면 떡 뒤에 말하기를, ‘뭐 배웠는데? 예수 잘 믿으라 말 아니야, 뭐? 그게 모두 다 다 예수 잘 믿으라 말인데 뭐 별스럽게 자꾸 쌓아, 예수만 잘 믿으면 되지.’ 예수 잘 믿으라는 말이지. 그말이 틀렸소 맞소? 맞아요 틀려요? ‘예수 잘 믿으라는 말인데 뭐 자꾸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쌓고 있어, 예수 잘 믿으라는 말이지.’ 그말이 맞기는 맞습니다. 예수 잘 믿으라 말이오. 잘 믿는 데는 어떻게 해야 잘 믿느냐 하는 데는 제가 모르는 걸 떡 알고 난 다음에는 ‘그게 예수 잘 믿는 것, 이게 예수 잘 믿는 것 아닌가?’ 이래 가지고서 자꾸 이것 새로운 깨달음을 말살시킬라 하는 것이 우리 진영에 있는 자들이오. 우리 진영에 목사들이오.

그런고로 제가 아직까지 예수를 믿어도 예수님은 몰라.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어.

저는 영감을 받지 못했어. 그리 안 하면 영감 받았다가 소멸했든지 했지. 반드시 엎드려 가지고 영감 받고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적그리스도라, 주님의 적이라 하는 것을 제가 발견할 터이니까 그런 짓을 안 하지마는. 그랬다가 또 회개하고 또 그 사람 됩니다.

왜 그 사람 돼요, 그 사람 되는 것은? 뭣 때문에 그 사람 됩니까? ‘기이하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가르친 것과 다르고 기이하다. 이것 참 놀랄 일이다.’ 아주 기이하게 놀랄 만치 깨달았는데 왜 또 옛날로 돌아갔어? ‘그 누이 동생이 우리들과 같이 있지 않느냐? 내나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이렇게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다시 껍데기로 돌아갔다 그말이오.

왜 돌아가게 되는지? 그것이 왜 그렇게 됩니까? 바리새교인들 서기관들이 다 예수님 말씀 듣고 난 다음에는 다 놀라면서 기이하다 이라고 난 다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그 사람은 그 행위 하고 말아요.

못박고 만다는 것은 환난 오면 결국은 예수님 팔고 말아요. 과거에 왜정 말년 때도 조선 교회로 있을 때에 그때에 신사참배를 이긴 사람이 몇 사람 안 돼. 조선 교회 그때 계수는 내가 똑똑히 모르지만 몇 사람 안 돼. 백 명도 안 돼. ‘나는 신사참배 안 했는데?’ 안 해도 따라가. 안 해도 한 자 돼. 다 같이 있어도 안 한 자도 있고. 어제 배웠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에 그때에 그 환난은 몇 사람을 옥에 가두어 시험하게 하지만 몇 사람만 갇혔는데 그 시대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결정 판정이 났습니까 안 났습니까? 판정이 났습니까 안 났습니까? 났어. 이것을 가리켜서 “의인을 대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고 선지자를 대접을 하는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 말은 밥떡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찬성하고 거게 속한다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 주관의 이 감각으로써는, 주관의 우리 심신의 주관으로서는 벗었다 입었다 합니다. 이 영은 벗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심신의 주관은 벗으면 마치 그것 비유가 잘 안 되지만 자기 호주머니에 지금 십만 원짜리 수표가 한 보케트 가뜩 있습니다.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서 말하기를 ‘야, 너 돈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것만 하면은 오만 거 다 사먹을 수 있다. 이거 주면은 오만 거 다 사먹을 수 있으니까 이만하면 네 노비가 넉넉하다.’ ‘이게 무슨 돈이어야지? 돈을 줘야 밥을 주지 이까짓 걸로 밥을 주는가?’ ‘그게 바로 돈이다' 암만 해도 안 믿어.

안 믿으면 그 사람은 이것 가지고서 밥먹고 만일 외상 밥 먹고 이것 내줬다가서 뒤에 돈 안 낸다고 야단 만나면 어찌 되겠느냐 하고서, 그게 돈인데 안 믿으니까 그놈이 사용을 못 한다 말이오. 사용을 못 해. 가지고 있는 덕을 보지 못해.

효력을 보지 못해.

차를 탈라 하니까 차표를 돈을 내라 하는데 이제 그러니까 돈을 이 믿지 안하니까, 돈으로 믿지 안하니까 쓰지를 못하니 효력을 받지 못하는 거라.

가지고는 있지마는 효력을 받지 못하는 거라. 그와 마찬가지요.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우리의 심신이 벗고 있는 게 아니라. 심신이 입고 있는데 이것이 자기 주관으로써, 주관으로써 믿지 않기 때문에 효력을 보지 못해.

믿지 않기 때문에 효력을 보지 못해.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나는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한 자다. 사망에서 해방되어서 자유된 자다. 마귀에게 해방되어 자유한 자다. 나는 자유자다. 죄와 상관이 없다.’ 이래도 죄란 놈이 와 가지고서 자꾸 덤벼듭니다. 덤벼 안 드는 게 아니라. 자꾸 미혹을 주고 이럴 때에 그만 꼬여 넘어가면 헛일이라. 암만 미혹을 줘도 그걸 부인하면 그놈이 와서 침노는 못 해. 손을 대지는 못해. 대지는 못하고, 대도 껍데기만 대지 속을 대지 못해.

이걸 참 알려면, 본인이 암만 죄를 반대한다고 해서 죄가 반대가 되는 겁니까? 안 돼요. 안 믿는 사람들은 죄를 자기가 암만 반대해도 반대가 안 됩니다. 사망을 아무리 안 당하려고 반대해도 사망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있는 사람은 자기만 부인하면 죄가 왕노릇하지 못합니다. 해하지 못합니다. 사망도 왕노릇하지 못합니다. 마귀도 왕노릇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알기 위해서 처음 믿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귀신 점 치는 데 가. 나 처음에 믿을 때 그것 좀 몇 번 해 봤어. ‘보자 이 점이 저거’ 뭐 정월달 되면 귀신들 점친다고 야단을 지겨. 그런데 슬며시 가 가지고서 멀리서, 나를 보면 안 될 터이니까 멀리서 이래 구경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저 귀신들린 저 여인에게서 귀신이 나오게 하고서 점을 못 치게 하옵소서’ 이러면 그 귀신 아주 나와 가지고서 막 줄줄줄줄 자꾸 엮어 그만 이리 해 대는데 그만 그래 기도하고 나면 그만 안 됩니다. 안 되니까 ‘이것 신이 안 내려서’ 신이 안 내려서 못 한다고. 또 대를, 대나무를 거머쥐고 대 잡으며 이러는 데 또 이러면은 그만 대가 안 내립니다. 안 내리면 못 해.

저 금정산에 가다가, 그것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가니까 막 이 장대를 가지고서 막 이라며 꽹매구를 치고 야단을 지깁니다. 저 올라가다가서, 떡 올라가면서 기도합니다. 올라가며 기도하면 그만 안 되니까 그만 이게 못 하고 그만 벌소리 하거든. 그만 그래 이러다가 그만, 안 되니까. 또 그러면 나중에 팔이 아파서 못 해요, 그만. 이래 그만 중단해 버려. 중단하고 또 그러면, 내가 이까짓 것 보고 뭐 그것, 저거 할 대로 하구로 냅두지. 그것 한번 시험해 보지요. 그러고 난 다음에 저 올라가면 또 막 야단을 지깁니다.

믿는 사람이 가면 귀신이 거기서 활동을 못 하는 것입니다. 믿은 대로 가, 자기 주관대로.

처음 믿을 때는, 귀신이 와 가지고 꿈자리를 시끄럽게 하기 때문에 이것 못 견디니까 하도 그게 믿음이 없으니까 ‘네가 이 성경을 베고 누워자거라. 그러면 괜찮다.’ 성경 벤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래라도 믿음이 생겨져 가지고, ‘성경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베고 누워자면 귀신이 못 온다 그래.’ 성경을 베고 누워자요. 성경을 베고 누워자면 그만 꿈자리가 안 시끄러워. 마귀가 와 가지고 꿈에 와서 해치지 못해. 고것 믿음이, 그만치 믿거든.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니까 마귀란 놈이 해하지 못한다 말이오.

나중에는, ‘성경을 벨 게 아니고 성경을 머리맡에 놓고 자면 귀신이 못 오게 꿈자리를 지켜 준다.’ 그것 인제 놓고 자는 거라. 또 ‘하, 괜찮습디다.' 이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 성경은 내비두고 예수님이 네 죄에서 해방, 마귀에게서 해방, 사망에서 해방시킨 것을 네가 마음으로 믿으면 됩니다’ 그만 믿으면 되는 거라. 이래서, ‘네가 교회만 나오면 돼. 그 성경 안 베고 누워자고 머리맡에 안 놔도 교회 나오면 돼’ 교회 나오고 나니 그날밤에 잠 잘 자거든.

이러구로 이러구로 해 가지고 자꾸 이끌어 가지고서 그걸 예수 믿는 사람을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관으로 자기가 호주머니에 있는 이것 돈으로 인정하면 떡 밥을 한상 잘 먹고 난 다음에 십만 원짜리 이것 수표인데 이걸 꼭 그게 돈으로, 돈이라 하니 돈으로, ‘이게 돈이라 하더라. 이러니까 돈이면 십만 원이면 아무리 잘 먹어도, 그것 얼마고? 아마 여기 천 원짜리 하면 백 상 아닙니까? 천 원짜리면 백 상 아니야? 백 상인데, 돈이니까 이것 쓰나 안 쓰나 보자 싶어서 돈을 이걸 십만 원짜리를 떡 밥 한상 먹고 난 다음에 이걸 척 주니까 그 사람이 보고서 ‘아이, 내 거스름이 없는데.’ 그것 뭐 괜찮다고. 아따야 이거 이것 종이 하나가 밥 한상 값이 되는구나. 보니까 더 좋아하고 그 사람들이 좋아하네. ‘거스름이 없는데 어짤까요?’ 괜찮아 괜찮아 그만. 냅두라고서. 이것 밥 한상 값은 더 되는 줄 알았다 말이오.

또 나중에 가서는 떡 밥을 먹어도 참 아주 보니까 몇만 원짜리 되구로 고급을 먹고 난 다음에 그걸 한 장 내주니까 ‘아이, 이거 거스름이 없는데.’ 그 거스름 없다 하거든. 하, 이거 한상 값이 아니라 몇만 원짜리 밥값이 되는구나.

이러구로 이러구로 나중에 사용해 보고 난 다음에는 가 가지고 밥을 떡 오만 원짜리를 떡 먹고 난 다음에 이걸 척 내주니까 오만 원을 돈을 떡 거스름을 턱 내주거든. 햐, 이것 십만 원 가치가 있구나.

이러구로 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간들이 깨달아 나갑니다. 대번에 확 깨달은 사람은 깨닫고. 일생 동안 경험해 가지고 해 보고 해 보고 나니까 효력이 나니 그래 가지고 깨닫는 자 있고.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자기 심신의 주관으로 믿으면 이런 것들이 사망과 죄와 마귀가 침해하지 못하고, 또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영생의 권세, 의의 권세가 자기에게는 환하게 배 가지고서 이 권세를 부리고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점점, 예수님의 대속은 무한한 이 대속이 있는데 이걸 믿지 못하니까 자꾸 믿구로 만들고 있다 말이요, 자꾸 믿도록.

그래 이 네 가지 가지면 세 가지 얻는다 하는 요런 것을 기억해 가지고 자꾸, 양산동도 기도하러 가면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기도하면 한 삼십 분만 기도해도 실컷 기도한다 하니까 말하기를 ‘녜, 기도는 뭐 삼십 분만 하지만 그래도 뭘 좀 생각해 봐야 되지 그만 생각할 시간이 없고.’ 그 사람은 조금 이 명상 기도를 해 본 사람이라. ‘생각해 봐야.' 그러면 이 네 가지만 있으면 세 가지 성공한다. 네 가지 있는 걸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그 양 피를 생각하고, 또 양고기는 무교병과 쓴나물과 같이 먹어야 되는 것을 생각을 하고, 또 이제 띠 띠고, 신 신고, 지팡이 짚고, 일어서서 급히 먹어야 되는 것을 또 이걸 생각하고 자꾸 생각하니까 자기에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이 온다 그말이오. 자꾸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이 오니까 이제 마지막에 한참 생각을 다 하고 나면, 헐떡헐떡 기운이 없어서 이랬는데, 기진맥진했는데 자꾸 밥을 먹으면 힘이 나오지 안해요? 이렇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 말이오. 예수님의 피와 살을 자꾸 먹지, 영감 먹지, 진리 먹지 하니까 ‘주여! 나도 주를 위해서 죽겠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무엇이 와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가 있겠느냐?’ 담력이 나온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처음에는 가 가지고서 기도하면서 저 산골짝에 가면 ‘아이구, 이 호랑이 올라? 뭐 올라?’ 자꾸 또, 불량자 오는 그걸 뭐라 하노? 괴악이라 하노 뭐라 하노? 괴한. 이거 잘 알아. 너 학교 얼마 했어? 국민학교 안 했지? 중학 했나? 중학 했어? 중학 했나? 공부 많이 했네, 그러면. 저게 나는 지금 소망 중에 하나인데, 나 어제도 어떤 조그만한 사람 보고서 내가 소망을 가졌어. 나는 주일학교에 소망이 있어요. 나는 대학 졸업맡은 그런 데에 소망을 그런 별로 안 가지요. 왜? 그것은 잡탱이가 많기 때문에 이 믿는 것을 한 자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 것을 한 자 가졌기 때문에 이놈이 짬뽕이 돼 가지고서 잘 안 된다 그거요. 인제 믿는 것이 많은 그것만이가, 이것보다 많은 그것만이 효력이 있는 거라.

괴한. 괴한도 겁나고 이랬는데 나중에 한참 명상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그만, ‘이제 호랑이가 한번 나왔으면 좋겠다’ 호랑이가 한번 나왔으면 ‘나는 너의 영원한 주인공이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나한테 경배해.’ 하며 설설 쓰다듬어 줄 수 있다 말이오. 쓰다듬어 주니까 이래 가지고 또 기쁘지 뭐 괴한이 암만  와서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거 아무 상관이 없어.

이러니까 이것이 자꾸 그렇게 하면 자기 심신의 주관이 믿으면 주관이 힘을 얻고, 주관이 효력을 얻고, 주관이 이 믿음 생활 합니다. 죄에 대해서 자유 생활 할 수 있고, 마귀 대해 자유 생활 할 수 있고, 사망에 대해 자유 생활 할 수 있어서 사망이 아무리 위협해도, 다니엘 같은 사람이 아무리 사자구덩이 위협한다 해도,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암만 불 속에 넣는다 위협한다 해도 ‘불에 들어가서 너거 하나님이 구원하겠느냐?’ ‘구원하실 수도 있고 구원 안 해도 좋고, 그건 당신의 뜻이고. 절대로 불 속에 들어가도 주님이 죽게 하셔야 되지 주님이 죽게 하지 안하면 불이 나를 죽이지 못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못 죽입니다. 주님이 죽게 하셔야 죽지. 그걸 만일 의심했으면 그때 타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의심 안 하니까 그렇지. 그 의심 안 하는 그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자기가 한 진리를 가지고서 명상하니까 얼마든지 나옵니다.

얼마든지 깨달아집니다. 이것이 자기가 명상하는 것이요 눈감고 고요히 도를 생각하면, 도를 생각하면 그게 뭣하는 겁니까?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거라.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거. “도의 젖을 먹으라” 도의 젖. 영감과 진리의 이 도를 자꾸 먹어. 그러면 능력이 나와요.

예배당 주변에는 오늘은 뭐 비가 오는 것 같은데 주욱 돌아보면서, 쓸지 못하면 뭐 주울 거나 줍고 그래도 한 분도 빠지지 말고 그 청소하는 일을 그대로 하십시오. 그럴 때에 덕을 세울 수가 있어. ‘저것들이 오늘 아침에는 비가 오니까 안 나올 거다.’ 아니, 비가 와도 보니까 빗자루로 못 쓰니까 설설 줍고 있거든. 거게서, 여러분들, 다른 사람이 감동받는 것은 큰 데서 받지 않습니다 아주 미약한 작은 데서 받습니다. 큰 거야 다 그래 마음먹고 이래 하니까 그렇지마는 조그만 사소한 것 거게서 사람들은 감동받고 그 큰 효력을 나타내고 해.

요것 잘못되면 귀신들어 죽여. 자, 원수가 어데 있어요? 원수가? 원수가? “원수가 제 집안 식구니라” 누가 죽이요? 남자가 여자 죽이고 여자가 남자 죽이고, 부모가 자식 죽이고 자식이 부모 죽이고, 외나 죽이는 거는 거게 있어.

거게 있어. 그건 냉정스럽게 깨닫지 못하면 다 헛일입니다.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자는 볼 줄을 몰라. 보는 자는 볼 수가 있어.

반사들은 공과를 외우도록 하고, 지하철 위해서 기도합시다. 인제 오늘이나 지금 뺄라고 그 사람들이 시작하련지 모르는데 여게는 빼면 안 됩니다. 그 빼기는 어짜든지 진동 없이 뺀답니다. 진동 없이 빼는데 메우지를 못해. 그것 빼고 난 다음에 그뭐 먼저 메운 그런 것 가지고서, 세멘은 한 군데 메우려면 한 그래도, 모래 하고 해서 한 대여섯 포 이긴 걸 메워야 거기 차져요. 그래 메워 주면 뭐 괜찮지. 메워 주면 이 쇠보다 낫지. 안 메워 주면 안 돼.

왜 우리 집을 그렇게 헐구로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안 하고도 할 수 있을 건데 왜 저거가 돈 작게 들이기 위해서 남의 집을 헐어서 부숴지도록 해? 그것은 법적으로 안 돼. 공법적으로 그것 안 되는 거라, 말하면. 그러니까 기도를 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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