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엣 것과 땅엣 것

 

1980. 8. 13. 수새집회

 

본문 : 골로새서 3장 1절 - 4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선지자선교회 우리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위의 것과 아래 것 모든 것이 이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죄와 허물로 죽은 사망 뿐이었고 또 하나님이  진노와 저주와 정죄 뿐이었습니다. 악령은 우리의 왕이 되었고, 죄도 사망도  우리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힘을 써도 울어도 아무리 계속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왕권을 가졌던 그 모든 것은 다  패전이 되었고 해결이 되어서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왕 노릇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나라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이것들은 패잔병과 같이  우리들에게 늘 괴롭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이기려고만 하면 능히 이기고 남음이 있는 우리들입니다.

왜? 이전 그것들은 우리에게 왕권을 잃어버리고 빼앗겼고 이제는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왕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서 그런 것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악령을 악성을 악습을 죄를 사망을 벗어날 수 있고 또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저주를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벗을 수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있고 또 우리는  입은 것도 있지만 앞으로 입을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좋은 옷을 갈아 입듯이 모든 인간에게  더러운 이런 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입은 성령과 진리의 도우심으로 이  더러운 것들을 벗어 버릴 수 있고 하나님 같은 온전한 인격과 실력과 행위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옛사람에게 속한 것도 있고 새사람에게 속한 것도 있고  이래서 무엇이든지 두 종류로 우리에게는 되어 있습니다. 양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마치 우리한테는 길이 하나다가 새길이 하나 나 가지고 두 길이 돼서  이제는 왼쪽 길로 가도 돼고 오른쪽 길로 가도 되는데, 왼쪽으로 가는 그 길은  옛날 가던 길 아닌 사망의 길이요 오른쪽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을 말미암아 새로  열려진 이 생명길인데, 이 오른길로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어떤 장소에서든지 어떤 때든지 우리는 이  두 갈래길로 모든 것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갈래길에서 잘못 하면 옛날  걸어가던 그 사망 길 걸어가기가 쉬우니 이 길을 걸어가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이 생명길을 우리가  걸어가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옛날 걸어가던 그 걸음은 사람에 그 주장하는 것이 우리를 주장하는 것이  옛날 길로 걸어 옛날 걸어가던 그 길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자가 누구였던가?  악령이 우리의 길을 인도했습니다. 귀신이 우리 길을 인도했습니다. 사탄이  인도했습니다. 용이 인도했고, 붉은 용이 인도했고, 뱀이 인도했던 길입니다.

순전히 귀신 마귀가 우리의 길을 인도 했습니다. '너는 이 시간에는 이렇게  말해라. 이 시간에는 이 일을 해라. 이 생각을 가져라. 이 욕심을 품으라. 이  마음을 가져라. 이 뜻을 가져라. 이 분노를 가져라. 이런 이 길을 내라.' 이렇게  순전히 악령이 우리를 인도하는 그 사망의 길 뿐이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른편에 이 생명의 길이 하나 나셨으니 '너는 생각도 하나님같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질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성질을 따라서 가져야 되고,  행위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옳고 참되고 바른 생각도 이렇게 깨끗하고  옳고 참된 생각을 해야 되고, 소원도 그리해야 되고, 마음도 네가 옳고 참된  마음을 가져야 되고, 뜻도 그렇게 해야 되고, 결심도 그렇게 해야 되고, 말도  행동도 생각도 마음도 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시는 그  하나님을 따라서 네가 바른 길을 걸어 가거라. 바른 생활을 해라.' '네 현실  현실에서 바른 사람 노릇, 바른 행위 이대로 걸어가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새길을 놓으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이것은 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길입니다. 옛날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고 악령을 저희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섬기던 악령뿐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이제는 악령을 이것을  정복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 가지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고, 우리의  구주가 되었고, 우리를 구원하실려고 힘을 쓰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옛날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찾았고, 원수되었던 하나님을 이제 화친해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고 행복되게 영생하도록 하시는 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하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옛날은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이 하나님인척 해 가지고 우리를 속이는  이 악령으로 된 거짓 하나님 뿐이었는데 이제는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고 모든 것을 홀로 주장하시고 크고 작은 것을  홀로 역사하시는 이 하나님을 우리가 찿아서 참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도 둘입니다.

가짜 하나님 참 하나님 이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순전히 가짜 하나님만  상대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참되신 이 하나님을 상대할 수가 있는데 이름은  믿는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속에 정신이라든지, 사상이라든지, 모든  욕심이라든지 이런 것은 안 믿는 사람과 같아서 참 하나님을 싫어하고 가짜  하나님은 좋아하는 자기를 속이는 이 신은 좋아하고 자기를 바로 인도하는 신,  이 하나님을 싫어하고 자기가 가치있고 옳고 바르고 참된 이 사람의 길을  걸어가는 이 길은 걸어가기 싫고 방종하고 몹쓸 사람으로 사는 이 생활은  좋아하는 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해서 예수 믿으면서 가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래 어만데서 온 것은 가짜 하나님과 참 하나님을 바로 알아 가지고 참  하나님을 영접해서 참 하나님에게 나를 맡기고, 이 참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참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 인도를 받고 악령을 배반하고  악령의 이 인도는 거부하고 악령을 의지했던 그 어리석은 것을 버리고 이렇게  하려고 우리가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우리가 이 두 하나님을 우리가 바로 알아 가지고 여기에서  배반할 그 가짜 하나님을 완전히 배반을 하도록 다시는 이놈에게 속지  아니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우리를 참 책임질만한 온전한 이 하나님을 우리는  영접해서 이 하나님에게 자기를 맡기고 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면  금생에도 행복되고 내세에도 행복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찾아서 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 자리에서 맺어야  합니다. 이 맺은 관계를 다시는 끊지 아니해야 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로 소개를 받아 가지고 바로 우리가 알았으니 이 하나님을  놓지 않도록 어쩌든지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참 하나님을 모시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그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안에 안긴  것과 같이 됩니다.

양이 이리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기절하는 그 가운데 있던 양이 선한 목자의  품에 안기었을 때에 그 양은 만사가 다 해결됐고 평안하고 기쁜 것처럼 우리가  참 하나님을 찾으면 이렇게 됩니다.

참 하나님을 찾으면 죽음에서도 기쁠 수 있고, 어떤 처지에서도 기쁠 수 있고,  어떤 원수에게도 참을 수 있고, 어떻게 못쓸 것도 사랑할 수가 있고, 어데서든지  못할 일이 없고, 못 견딜 것이 없고, 기뻐하지 아니할 것이 없고 언제든지  생명과 평강만으로 계속되는 것이 이것이 참 하나님을 찾을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하나님을 내가 섬기고 있는지 가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그것은 자기가 현실을 닥쳐보면 압니다.

현실을 닥치면 참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 현실 현실에서 다 의로운  결과를 맺지 그 현실로 인해서 죄짖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승리해서  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시편 1편에 그 시절을 따라서 과실을 맺으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현실 현실에서 결과 있는 무궁세계의 수익있는 그 수익의 생활을  하고 그 잎사귀가 청청해서 마르지 않는다 그 말은 언제든지 그의 기쁨도 변함  없고, 그의 평강도 변함 없고, 그의 담대도 변함 없고, 그의 소망도 변함이  없고, 그의 겸손도 변함이 없고, 화평도 변함이 없고, 그의 소망도 변함이 없고,  의로운 걸음을 의로운 언행심사를 하는 그 하나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청청하게  계속되는 것을 가르쳐서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 거와 같이 그렇게 그 생애가  청청하고 어디서든지 과실을 맺는다.

현실을 따라서 무궁의 준비가 되고 영원한 나라의 그 보배를 마련하게 된다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살필 것 중에 제일 많이 살펴야 할 것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참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있나 가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있나 이제까지  신조로부터 오늘까지 죽임을 받았던 우리를 속이는 악령 이놈을 내가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나 하는 그것을 살펴서 악령에게 속하고 악령 섬기고 있던 자가 참  하나님에게 속하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이 일만 됐으면 이제 성공에 기초가  되었고 성공에 종자를 찾았습니다.성공의 뿌럭지를 찾았습니다.

이제는 하루 있으면 새 움 돋고 이틀 있으면 그 움이 자라고 점점 새사람이  자라고 새사람의 생활이 점점 충만해져서 커지고 넓어지고 세밀해지고 강해지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 이 말은 참된 성신의 감화 감동과 악령이  감화주는 이 감화 요 두 가지를 우리가 잘 구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생각 외에 무엇인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있는가를 여러분들이 잘  깨달았을 것입니다.

어쩐지 그 마음이 식어지고, 그 마음이 생겨지고, 그 마음이 원해지고, 그  마음이 들어지고, 그 마음이 생겨지고 이렇게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충격주는 그 신이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경험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신이 있는데 내가 마음으로서는 이 옳은 일을 해야 되겠는데 이제 또  옳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삐뚤어진 일을 하게 합니다. 신사참배 이것은  않해야 되겠는데 또 신사 참배를 하게 하는 그 마음이 속에서 생겨 나옵니다.

자기는 아무래도 내가 술먹고 죄짓고 하던 그런 일을 이제 않해야 되겠는데  않해야 되겠는데 이래 싶은데 또 해야 될 해야 될 그 마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겨집니다.

거기 뭐이냐? 죄를 짓게하는 마음, 죄를 짓기 싫으면서 죄를 또 짓고 싶은 마음  이 마음 속에 두 작용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되겠다는 그 마음을 일으키는 그 속에 참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일으킬 때에 우리가 그때에 그 마음을 소멸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대로 실행을 하게 되면 그때에는 참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이 마음은 소멸을 하고 아닌 줄 번연히 알면서 아닌  이 일을 하고싶은 마음이 생겨질 때에 이 마음을 꺾고 이 마음을 뽑고 이 마음을  고만 없애버리지 아니하고 이 마음대로 자기가 삐뚤어진 그 언행심사를 하면  그것이 바로 참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이요 가짜 하나님인 마귀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 참 하나님이 가짜 하나님인 마귀에게 밀려나가는 걸 보니까참  하나님의 권능이 좀 모지래는가 보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참  하나님이 마귀에게 밀려나가느냐? 마귀에게 밀려나가는 것이 아니고 내게 밀려  나갑니다. 마귀는 그 참 하나님 앞에 꼼짝을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정복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부리는 종이지  마귀가 하나님 앞에는 꼼짝을 못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꼼짝을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하나님이 우리가 나가려면 나가고 또  들어오려 하면 들어오고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싶으면 모시고 하나님을  배척하고 싶으면 배척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보다 능력이  강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이  자유를 길러서 구원을 해야되지 자유를 꺾어서 구원하면 이것은 강제기 때문에  짐승을 길들인 거와 같이 짐승을 길들인 거와 같이 이런 것이 돼버리고 말지.

자기 자유성을 가지고 선을 행하고 모든 귀한 것을 물리치는 이런 능동적인 이런  의로운 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만물보다 달리 주신 것은  자유성입니다. 자유성을 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자유를 살려 가지고 이 자유적인 의로운 자가 되어지면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가치가 있고, 이 자유를 없이 강제로 해서 짐승을 길들이는  것처럼 이렇게 길을 들여 가지고 의로운 자로 만들어 놓으면 이것은 짐승, 짐승  길들이는 것과 같이 그렇게 이 길들이는 것이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한 이  능동적인 거룩한 자가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자유성을 줘 가지고 깨닫게 하시고  또 스스로 결심하게 하시고 또 자기가 자기대로의 의를 원하도록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를 참 하나님처럼 이 자유성을 가지고 의로운 자가 되어지도록  그렇게 하실려고 하기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자유성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마다하면 또 하나님이 또 밀려 나갑니다. 또 원하면 또 이제 옵니다.

그러나 신앙이 어릴 때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지만 신앙이 장성하고 난  다음에는 다릅니다. 신앙이 장성된 사람이 하나님을 한번 배반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좀처럼 안 들어오십니다. 안 들어오십니다.

그 다음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해도 안 돌아오십니다. 이러니까  장성한 신앙이 하나님을 한 번 배반을 했다가는 하나님을 그 마음을 노를 풀고  하나님이 참 섭섭해서 배척 당해 돌아가셨던 그 하나님을 다시 영접하려고 하면  장성한 신앙은 밥을 굶으면서 금식기도를 해도 안 들어 오시고, 산에가서 산  기도를 해도 안 들어 오시고, 또 눈물을 암만 흘리고 결심을 해도 안  돌아오시고, 이렇게 안 돌아오시다가 하도 그래싸면 하나님이 '네 이놈 네가  과거에도 나를 배반했지 네가 철이 없어 그럴 때에는 내가 얼마든지 용서했지만  네가 이제는 알만하고 철이 들었고 장성해졌는데도 네가 내가 누군데 나를  배척해. 내가 너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상에서 얼마나 고난을 당했으며, 또 근본  내가 구군데? 내가 하나님이요 창조주신데 능치 못할 것이 없는데 내가 너한테  업신여김을 받을 만한 내냐 고약한 놈.' 하나님께서 섭섭해서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이러나 이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안  돌아오시면 나는 죽는 낫습니다. 나를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내가 다시  하나님을 배척하는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러면 이놈 네가 이번에는  배척하는가 안 하는가? 보자.' 먼저와 같은 고런 형편을 딱 만들어 가지고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알랑 알랑 거리면서 자꾸 꼬우고 이럽니다. 꼬우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그런 현실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돌아 앉아 가지고  계십니다. 돌아서 가지고 떡 계시면서 '이는 어쩌는고 보자.' 이러니까 마귀가  와 가지고 꼬우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주님 모든 것 다해서  나 위해서 구출했으니 내가 어떻게 다시 죄를 지으며 어떻게 다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을 하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배척할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럴수록 '주여 주여 얼마든지 시험해 보십시오. 내가 이제는 다시는 주님을  배반치 않습니다. 주님 명령 어기지 않습니다.' 이제는 몸과 생명 다 드려서  주님 따라서 의롭게 옳게 살려고 내가 걱정하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그래봐도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제야 네가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 위해서 구속하기에  얼마나 힘들었고 애쓴 이것을 네가 알아서 내 사랑도 알고, 내 능력도 알고,  내가 네게 대한 얼마나 열심 있는 열심도 알고, 내가 너를 책임지고 복되게  하려는 것도 네가 이제는 아는구나! 이제는 네가 나를 배척했던 그것을 이제는  보고는 내 마음이 흐뭇해서 이제는 내가 너와 같이 하겠다.' 그 다음부터 같이  하십니다.

그러나 어릴 때는 그렇지 않소.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것이  어려서 또 아직까지 병의 치료가 인간병 죄병의 치료가 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럴 때에는 하나님 앞에 몇번 배척했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지 아니하시고  다시 회개하면 또 하나님이 그를 아듬아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이렇게 하십니다.

마치 비유컨대 아 그 집에 아버지는 대장이고 어머니도 참 아주 훌룡한 어머니고  오 이런데 여러 수만 명이 그 아버지가 망령하니까 쭉쭉 그 호령대로 딸코, 그  어머니도 그 집에 많은 식구들이 있는데 자녀들도 많고, 모두 식구가 많은데  명령하면 쭉쭉 따르는데 이러니까 그 가정에서도 그 사회에서도 아버지가 참  제일 권세 있는 어린이고 어머니도 그 집안에서 권세 있는 어린인데 아이 이  말도 이제 겨우 하는 그 쪼그만한 내라이 빼짝 말라 가지고 똑 거북이 등처럼  빼짝 마른 것이 하나 앉아 가지고 아버지가 들어 가니까 '나가 나가' 하니까 그  아버지가 꼼짝 못하고 쫓겨나갑니다.

또 '엄마 엄마' 하니까 '엄마가 와야' 하면서 들어 옵니다. 들어와 가지고 또  잘못하니까 또 '나가 나가' 하니까 또 나갑니다. 이러니까 고만 그 아이가  명령하는 대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쩔쩔매고 이럽니다. 고것은 그 아이가 힘이  세고 세력이 있어 그런 아니라 사랑의 그 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아버지,  사랑의 어머니가 그것이 알지 못해 그렇지 몸이 약해 병이 들어 그렇지 그게  짜증지니까 그것을 갑았다가는 기절해 죽을끼라 말이오. 이러니까 부득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이러니까 '아빠 그 누우' 하면 누야 되지, 또 '일어나' 하면 일어나야 되지 이거  꼼짝 못합니다.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릴 때에는 우리에게 있는 자유성,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이 인격성을 살려 기루기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 것이지 우리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영접하면 하나님이 들어오고 우리 마음에 들어오고, 우리가 또  마귀 영접하고 하나님 배반하면 하나님이 또 쫒겨 나가고 이러는 것이 마귀에게  쫒겨 나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애끼시기 때문에 우리가 철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까지도  병이 치료가 되지를 못하고 인간 병이 들어서 골케골케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는 실은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소. 밥도 필요 없고,  죽도 필요 없고, 옷도 필요 없고 엄마 아빠만 있으면 됩니다. 엄마 아빠 있으면  옷도 거기 있고 밥도 거기 있고 무엇이든지 필요한 거는 아빠와 어머니가 다  자기에게 구비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이 아이는 엄마와 아빠만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짜증에 못  견뎌서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고 그거 구별 못해 가지고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구 차차 차차 보니까 아파도 어머니, 괴로와도 어머니, 요번에는  어머니만 찾습니다.

어머니가 필요하거든 축축해 가지고 텁텁 해도 어머니가 오니까 오줌이랑 싹  씻겨서 귀저기도 딱 채이주고 옷을 갈아 입혀주지, 또 마구 으똥을 싸 가지고  몽게 가지고 마구 미끌 미끌 거리는 데도 어머니가 오니까 웃으면서 사랑하면서  그것 조차도 예뻐 가지고 '야가요 푸른 똥 누더니만 노란 똥이네. 똥이  정상인데' 또 좋아서 또 똥 눈걸 보고 좋아합니다. 똥을 또 가지고 코에 맡아  봅니다. '아 이제 똥 냄새가 정상이다. 아 좋다 반갑다.' 이러면서 똥도 반갑다.

똥 내음도 맡아 보고 이러면서 모든 거 좋은 것 필요한 것을 자꾸 다 줍니다.

이러니까 뭐 이제는 언제든지 엄마를 찾습니다.

차차 차차 자랐으니까 또 엄마도 필요하지만 이제 보니까 아빠는 그 외부에서  자기에게 더 크게 필요한 것을 착착 준비 다해 줍니다.

아 이거 뭐 그 학비가 뭐 등록비 없다 하니까 아버지가 등록 날짜가 도니까 척  수표를 떡 껀어 주는데 가져가니 그만 됐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아빠 엄마를 자꾸 엄마 아빠를 찾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가짜 하나님인지 진짜 하나님인지 이것은 분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마귀를 이것을 하님인 줄 알고 이놈에 꼬임 받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도 이  가짜 하나님을 영접했다가 진짜 하나님을 영접했다가 진짜 하나님은 어떻게  영접하는고 하니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살 때에 진짜 하나님이 이제  가까이 오십니다.

아 또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인간 생각대로 할 때에 가짜 하나님 마귀가  자기에게 옵니다. 가슴 속에 그만 밀고 들어옵니다. 이렇게 해서 가짜 하나님  이놈은 자기 속에 죄 하나만지도 빼뜩 걸읍니다. 자기 속에 얼른 뛰 들어와  버립니다.

이러나 진짜 하나님은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하나 행하면 진짜 하나님의  우리에게 가짜 오십니다. 가까이 오시면 마귀 이놈은 그만 피해서 도망을쳐  버립니다.

여러분들 등불이 가까이 오면 어두움이 거기 배겨 냅니까 물러 갑니까? 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의로우신 하나님이 오시면 가짜 속이는 마귀 이놈이 슬슬 물러  갑니다.

이러다가 이제 이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이 행동만 가지고 는  하나님께서 자기 행동 속에는 들어 왔지만 마음 속에는 들어조지를 못합니다.

이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마음 속에 들어오고 자기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성품 속에 들어오게 되고 자기의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 생명 속에 들어옵니다.

이 생명 속에 들어오면 이 생명은 무슨 생명 됩니까? 이 생명은 무슨 생명  되지요? 우리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그때는 우리 생명이 죽는 생명  됩니까, 영생하는 생명 됩니까? 영생하는 생명이 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 오시면 우리 마음에 어두운 것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어두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옳고 바르고 참되고 온전한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그런고로 이 하나님이 이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이 마음을 주장하고  계시고, 생각 속에 들어와서 생각을 주장하고 계시고, 성품 속에 들어와서  성품을 주간하고 계시고, 그 몸의 힘 속에 들어와서 몸에 힘을 주관하시고  계시고, 생활 속에 들어와서 생활을 주관하고 계시고, 인격 속에 들어와서  인격을 주관하고 계시고, 생명 속에 들어와서 생명을 주관하고 계시고 이러면 그  사람은 그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대로 하는 행동이  되겠습니까 마귀가 움직이는 대로의 행동이 되겠습니까? 자기 생각 대로의  행동이 되겠습니까, 마귀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이웃 사람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돈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환경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자기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하나님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자기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하나님대로의 행동이 되겠소? 어떤 행동이 되겠습니까? 하나님대로의 행동이 됩니다. 하나님 대로의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보고 무서워서 무엇에게 하나님이 두려워 하시는 일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두려워 할만한 하나님보다 큰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만 가운데에 내주해 계시는 그 마음에게 두려움을 줄 세상  것들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어디서든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 집어 던진다' 이렇게 온 전국이 이렇게 약속을 해 놓았고 왕이  이렇게 명령을 내려놨고 약속을 내려놨고 이럴 때에 왕이 있다가 '너 기도하면  사자구덩이 들어가니까 제발 기도하지 말라고 하루 종일 그래할 때에 이  다니엘의 마음이 요동이 되었습니까 안 됐습니까? 요동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그 마음이 요동되지 않으니 그 마음이 강해서 그렇습니까, 그 마음에 의지가  굳어 그렇습니까? 그 마음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모든 천하가 떨고 있는데도 그  마음이 요동이 안 됩니다. 와 그렇습니까? 참 하나님이 그 마음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니엘이  그렇게 그럴 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까 기가 찿습니까? 뭐 두렵지도 아니하고  기가 차도록 그러거나 말거나, 있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  있었습니까? 그 사람에게 감사와 기쁨이 있었습니까? 다니엘의 마음에는 어떻습니까?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가 없습니까? 네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여전히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창을 열어놓고 하루 세번씩 꼭 계속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그렇게 두려움이 하나도 없고 기쁨과 감사와 평안 밖에는  충만했는데 그것은 누가 주었습니까? 누가 주어서 그렇습니까? 그 평안과 감사는  누가 주었죠? 참 하나님이 그 담력은 누가 주었죠? 참 하나님이 인간에게 낙망  절망 비관 공포 섬섭 분함 원통함 마음에 시기 질투 이런 것 이거 참 하나님이  줍니까? 거짓 하나님이 줍니까? 거짓 하나님 이놈이 줍니다. 거짓 하나님 마귀  이놈은 좋은 것 하나도 안 줍니다. 좋은 거는 하나도 안 주요 전부 거짓 것만  주지요.

이런데 좋은 것을 줘도 그런 거 줍니다. 이제 배고픈 걸 안다 말이오. 배고픈 걸  아니까 와 가지고 너 배고프지 아나. 배고프지 이거 먹어라. 이러면 떡을 한 개  줍니다. 떡을 한 개 주는데 그러니까 이 어리석은 것이 아이구 이 가짜 하나님인  마귀가 떡을 한 개 준다해서 고맙다고 하면서 그 떡을 받아 먹어 버렸습니다. 아  먹고 나니까 그만 배가 아파서 게워지고 죽을 지경입니다. 그 약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그 떡 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독약이 들었어. 떡 속에 독약이  들었다 말이오.

이래놓으니까 떡이라고 살살 주며 '아이구 배고프지 배고프지' 하면서 이 떡을  줬는데 이 떡을 먹으니까 그만 그 속에 독약이 들어 가지고서 영 아주 위장병이  그만 생겼다 말이오. 그만 병을 만들었소. 이래 가지고 이제는 구불면서 이제는  죽을 지경입니다. 죽을 지경이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로 둘 수가 없고 이러니  '봐라 그놈 따라가서 먹지 말라는 것을 먹어서 그렇지 않느냐' 자꾸 옆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까 참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 '야 너 왜 그렇지.

너 왜 그렇지. 너 뭐했어. 왜 이래.' 이러니까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는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되어 놓으니까 그때사 '왜  그런지 좀 살펴봐.' 권찰이 오더니만 '찾아봐.' 장노님이 오더니만 '찾아봐.' 또  목사님이 오더니만 '찾아봐.' 이래싸니까 이것이 안다 말이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자복하기가 싫고 그 속에 꼬장대리가 들어서 그래도 자존심에 굴하기가  싫어서 뭐 '나 별거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무슨 내가 뭐 죄를 지어 내 뭐  가책되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게 강팍을 부리고 있지만 나중에는 못견디면 이제 말합니다. '아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했습니다.' 요것을 이제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걸 게워 게워. 토해 토해.' 이러니까 못 토하니까 약을 먹여서 주사를  놔 가지고 토하게 합니다. 왝 왝 그러면서 토하고, 또 '이 물을 먹어. 이거  먹어.' 이러면서 소독하는 약을 가지고 마구 씻어 냅니다. 정수를 가지고 이  정수 가지고 자꾸 씻어 낸다 말이오. 이래 썻어 내니까 씻어 낼 때는 모가지  들어가니까 구역질이 나고 않됐지만 자꾸 씻거냅니다. 그러고 나니까 이제 쭉  뻐드러져 가지고 아프다 소리 않고 두러누워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런 입장에 있습니다. 그 아이가 그 사람이 원수가  아버지가 말하기를 '아무것이 원수다. 아무것이 친하지 말아라.' 자꾸 이래  말했는데 그 원수가 떡을 줘서 배고플 때 떡을 줘 가지고 한번 먹어 욕 봤으면  그 다음에 그 다시 그럴 때에 배고플 때에 아버지 어머니께 가면 얼마든지 떡을  줄건데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면 얼마든지 줄낀데,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면 떡도  주고 밥도 주고 소원하는 것 다 줄낀데, 하나님에게 구하면 다 줄낀데 구하라  주실 것이요 구하는 자 마다 얻을 것이라 했는데, 다 주실 것인데 하나님에게는  구하지 아니하고 요게 망령을 부리고 자꾸 곤란해 가지고 배가 고파서 곤란을  당했지.

이렇게 곤란을 당해 가지고 이래 싸니까 마귀란 놈이 옵니다.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네가 요렇게 요렇게 하면 돈도 생기고 요렇게 요래하면 요 문제가 해결이  되고 요렇게 요렇게 하면 그 일이 성공이 되고, 요 마귀란 놈이 방법을 줍니다.

이래 주니까 과거에 마귀 방법대로 해 가지고 한번 왕창 속았으면 다시는 이제는  않해야 될것인데 아 이것이 또 마귀 방법을 주니까 또 속아서 그 일을 합니다.

자 이렇게 배가 고플 때에 과거에 그 사람이 와 가지고 떡 주는 거 먹어서 고생  한번 당했으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떡을 가져오면 배가 고파도 받아 먹어야  되겠소. 안 먹어야 되겠소 먹어야 됩니까? 안 먹어야 됩니까? 먹으면 그 사람이  바보요 슬기로운 사람이요? 자 그 사람이 바보요 슬기로운 사람이요? 그 사람이  바봅니까 슬기로운 사람입니까? 바보 바보 바보지. 이제는 먹으면 또 이제는 배가 아파서 더 고생하지 그러면  하나님이 이번에는 속히 와서 치료해 주십니까? 속히 치료해주지 않고 고생을  좀더 하도록 내 둡니까? 고생을 진딱 하구로 내 둡니다. 냅둬 가지고 이제  죽겠다고 다시는 내가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서 다시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겠다고 이렇게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요.

자 이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오늘 우리들이 그 사람입니다. 바로 이 가짜  하나님이 원수가 떡을 줄때 먹는 거와 같이 이 가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공을  줄 때 가짜 하나님이 참된 성공을 줍니까 안 줍니까? 안 줍니다. 요 약을 속에  넣은 떡과 같은 요런 성공 줍니다.

우리에게 직장이나, 지위나, 권세나, 직장 자기에게 복될 직장을 이 가짜  하나님이 줍니까 안 줍니까? 줄 수도 없고 그놈은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  우리를 해하려고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 하나님은 가짜 직장을 줍니다. 불리한 직장을 줍니다. 그러면 지위나  권세도 가짜 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참 복될 지위와 권세를 줍니까 안 줍니까?  줍니까 안 줍니까? 와 대답이 적습니까? 그러면 어떤 거와 같은 직장과 권세를  줍니까? 어떤 거와 같은 직장과 권세를 줍니까? 따라합시다. 독약 넣은 떡과  같은 직장과, 권세와, 돈과, 성공과, 평안과, 해결이 독약이 든 가짜만 준다.

요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스스로 속이지 말라  각양 좋은 상급과 온전한 은혜는 광명하신 아버지 하나님에게로서만 우리에게  오느니라. 딴데서는 오지 않느니라.

이러니까 아 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대신 아버지 노릇했던 이놈이 이제  하나님이 와 가지고 아버지를 살려 놨는데 아 이놈이 와 가지고 또 옛날 처럼 또  왁 자기 살살 꼽웁니다. 그러면 그 꼬임 받아야 되겠소 안 받아야 되겠소?  얼마나 그 이가 갈릴 일입니까? 이러니까 이 가짜 하나님 또 악성, 악성은 어떤  악성인고 하니, 자기 속에 자기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것, 자기 위주로 살고자  하는 것, 자기 중심이 아니면 무슨 사회 중심이나, 민족 중심이나, 국가  중심이나, 산업 중심이나, 권세 중심이나, 뭐 자기 중심이나, 어떤 잘난 인간  중심이나, 미인이나 미남 중심이나 이렇게 살려고 하는 고것의 이름이 뭐지요?  고 이름이 그 이름이 뭡니까? 그 이름이 뭡니까? 악성, 악성.

요것이 자기 남편 죽인 원수 자기 아버지 죽인 원수, 이것이 가장해 가지고  나타나는 이런 자인데 이자를 이것을 자기가 아주 참 자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가짜 자기요, 참 자기를 옛날 죽였던 원수 그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처럼 나타나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가발을 쓰고 이래 가지고  찾아왔지요.

그거 누구를 탐해서 찾아 왔지요? 예. 그 미인, 그 남편의 아내 미인 찾아와서  뺏으려고 찾아왔단 말이오. 그 남편은 누굽니까? 그 남편은 누구요? 그 비유로써  하는데 그 비유의 남편은 누굽니까? 그 남편은 누구요? 그 남편은 누굽니까? 그  본분데. 본 남편, 본 남편인 그 남편은 누구요? 모르는 모양이라. 그 남편은  누굽닙까? 그 남편은 참 자기가 자긴데 이 우리의 참 자긴데 이 자기 영인데  영의 아내가 잘났거든 이 아내를 욕심내서 찾아왔어. 그 아내는 구주요. 그  아내는 누굽니까? 그 아내는 누굽니까? 대답 한번 해 봐요. 그 아내는 누굽니까?  그 아내는 누굽니까? 예 여기는 답을 많이 잘했어. 자 따라합시다.

그 아내는 심신 그 아내는 심신 그 아내는 심신 그 아내는 육, 육 이거 뺏들려고  그놈이 왔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다시는 그놈을 영접하지 않해야지 그놈은  거짓 자깁니다.

자 심신의 호주는 누굽니까? 심신의 호주는 누구죠? 심신의 호주는 영, 네  심신의 호주는 영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아닌 자기, 가짜 자기 누가 와 가지고  자기인 척 나타났을 때에 그때는 우리는 가짜 자기, 가짜 호주, 이 심신에 가짜  남편, 원수, 남편, 가짜 호주 이것이 가짜 호준지 진짜 호준지 이 호주를  구별하려 하면 뭘로 가지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현실에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 가짜는 가짜는 어떻게 살라 하지요?  가짜는 악령대로 살려고 하고 또 이 가짜는, 가짜는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악성이 뭐지요? 네 이 가짜 자기를 뭘 보고 아느냐 하면, 피조물 중심으로 그렇게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그것이 자기 아닌 원수인 자깁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살 마음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고것은 진짜 자깁니까 가짜 자기입니까?  가짜 자깁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으로 살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빈약하고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 중심으로, 사람 위주로  내가 두려워 높이는 어떤 권세자 위주로 권세자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업  돈 민족, 국가 인류 사회 명예 하나님 외에 어떤 걳이든지 그거 위주로 그거  중심으로 살려는 마음이 내 속에 강하게 일어납니다.

고놈이 누굽닙까? 고놈이 누구요? 가짜 자기, 고놈이 옛사람 자깁니다. 자기  아닌 자깁니다. 원수인 자깁니다. 이런고로 그만 자기를 원수가 와 가지고  주관하게 되면 그 심신은 완전히 망합니다. 실은 현실, 현실에서 망하는 것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속에 참된 자기가 자기 속에 와 가지고 주격이 되면 모든 생애는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누가복음 9장에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온 천하를 뺏앗긴 것보다 더 손해다. 온 천하를 자기가 자기를 잃든지  뺏앗기든지 했으면 온 천하를 얻어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떤 것을 취하기 위해서 자기를 잃든지 뺏앗기든지 하지  말아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뺏앗기든지 하면 자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손해봤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잃어버렸단 말이오. 참 자기를  잃어버리는 걸 말합니다. 참 자기, 참 자기는 잃어버리고 가짜 자기가 자기 속에  들어왔으면 온 천하를 얻어놨다 할찌라도 그까짓거 당장 없애버립니다.

또 자기를 빼앗기든지 하는 것은 뭘 합니까? 자기를 빼앗기는 것은 그 영원한,  영원한 자기의 심신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영원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될 수  있는데 그 심신의 기능을 영원한 자기의 기능으로 삼을 수가 있는 것인데 그  심신의 기능을 살려서 영원한 자기 기능으로 삼을 수 있는데 고 현실에서 영원한  자기 기능 삼을 수 있는 것을 뺏앗겨서 다시는 자기 기능을 삼지 못하고 영원한  사망으로 죽여버리는 요것을 가르쳐서 자기를 빼앗긴다 요렇게 말씀합니다. 그  기능이 내나 자기 아니요? '야 이 무거운 돌을 누가 여기다 들어다 얹었나?' '아무것이 그 사람이 들어다  얹었다.' '그 힘 세다.' 그러면 그 힘이 들어다 얹었소? 힘이 들어다 얹었는데  사람이 들어다 얹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힘이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내나  그 힘이 그 사람과 같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은 중생된 영을 참 자기를 잊어버리는 것을  가르쳐 말하고 또 자기를 빼앗기는 것은 영원한 자기의 기능이 될 수 있는 이  심신의 기능을 마귀가 꼬우는 대로 현실에서 죄를 지으면 그것을 뺏겨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뺏앗겨 버리고 마니 자기를 뺏앗긴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를 잊어버리기를 뭐하다가 잊어버렸느냐? 자기를 뺏앗기는 것이  뭐하다가 뺏겼느냐? 무엇하다가 뭣 때문에 잊어버리고 뭣 때문에 뺏겼습니까? 네  뭣 때문에 잊어버리고 뭣 때문에 뺏겼습니까? 뺏긴 것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거, 그거 때문에 잊어버리고 뺏겼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거 그거 안  뺏길라 하다가 자기 뺏겼고, 그거 안 내주려 하다가 자기 잊어버리고, 그거  욕심내서 그거 취하려고 하다가 자기 잊어버렸고 자기 뺏겼고, 이러니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 이거 안 뺏길라 하다가 자기  뺏겼고, 이거 안내주려 하다가 자기 내 줬고, 또 자기 것이 되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 있는 거 자기밖에 이 세상에 있는 거  그거 차지하려 하다가 고만 자기 잊어버리고, 그거 차지하려다가 자기 뺏앗기고,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야 네가 가지고 있는 거 그것 뿐만 아니라  온 천하 것이 네것이 되어 있다 할찌라도 그것보다 네가 크다. 온 천하 것이  네것 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내 줬으면 내 줬지 너는 내 줘서는 안 될터인데  너를 내 주고 그것을 차지해 온 지상면에 다 있는 거, 한국에 있는 거 다 그거  네가 차지하는 거 보다도 이 현실에서 심신을 네 심신을 네가 차지하는 것이  나은데, 네 심신의 기능을 차지하는 것이 나은데 아 조그마한 사업 하나  차지하기 위해 가지고 네 현실에서 심신의 기능을 버려.

이미 죽을 목숨 고것 안 죽게 해서 고것 보존하기 위해 가지고 네 현실에서  심신의 기능을 뺏앗겨. 온 천하것 보다도 가치 비교가 되지 않으니 네가 온  천하가 네것이라 할지라도 자 이제 너 차지할래, 네 기능 삼을래, 온 천하가  네것 되어 있는 거 이것 가지고 살래? 이거 네 이거 가질려면 참 너와 참 너의  기능을 내어 놓아야 되고 참 너와 참 내 기능을 심신의 기능을 내어주지  않으려면 네것 되어 있는 온 천하 것을 내어 놓아야 되고 이 둘 중에 어느 것  내어 놓을래 하면, 어느 것 내놓을래 하면 여러분들 가치 많은 것 내어 놓습니까  가치 적은 것 내어 놓습니까? 가치적은 것 내어 놓지요.

참 자기, 참 자기 그것과 현실에서 취득할 살릴 자기의 심신의 기능, 이 두  가지를 온 천하보다 중량이 큰 줄로 아는 사람, 큰 줄로 아는 사람은 온 천하를  내 주었으면 내 줬지 이것을 내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귀한 줄 알지만 세상에 그것보다 귀한 것이 그 사람에게는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가 있으면 그 하나 이에 딴 것을 가져올 때는 이걸 참 자기와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내어 주겠습니까? 안 내어 주겠습니까? 안 내 주지요.

자기의 이 심신의 기능보다 더 보배롭게 참 자기보다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이거 안 내 놓으려면 '이거 내 놔라' 할 때에는 자기가 이 심신의 기능과  참 자기보다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가져와 가지고 어느 것 내 놓을래  하면 심신의 기능과 자기보다 가치가 크다고 보배롭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걸 가져와 가지고 이거 내 놓을래 저거 내 놓을래 하면 그 사람은 참 자기를  내어 주겠습니까 안 내어 주겠습니까? 내어 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참  자기기를 내어 주면 그 시간은 그 시간은 자기의 심신은 완전히 뺏겨버립니다.

기능은 뺏겨 버립니다.

그러면 그 심신의 기능과 심신은 그 심신은 의를 행합니까, 죄를 짓습니까? 죄를  짓습니다. 의를 행하지 못하고 죄를 짓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생애는 전부가 다 아 사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참 자기를 내 주지 않으면 이 참 자기는 이거는 누구의 아들이죠?  하나님의 아들. 이것은 그 생명은 무슨 생명 가졌습니까? 영생하는 생명을  가졌습니다. 이 참 자기는 이것은 어떤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이 상속자 입니다.

이 상속을 받는 것은 자기가 한 현실 한 현실에서 그리스도와 연결이 하나 되면  하나 상속 받고, 둘 되면 둘 상속 받고 연결 됨에 따라서 상속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과 이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참 자기, 거짓 자기 이 둘을 바로 구별하는 일이 되어야  신앙 생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참 자기와 거짓 자기를 요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 자기와 거짓 자기를 구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참 자기와 거짓  자기를 구별하는 방편을 이제 공부를 했습니다.

참 자기와 참 자기의 주인공을 누구지요?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참  자기는 구누지요? 중생된 영입니다. 가짜 자기의 주인은 누굽니까? 악령입니다.

가짜 자기의 그 자체, 가짜 자기의 자체 자기는 누굽니까? 악성입니다.

악성입니다. 이 악령과 악성은 이제까지 해 놓은 일이 뭡니까? 악습입니다.

악습을 행합니다. 해 놨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악습은 그것은 악습인지 의인지 그것을 구별하려면 무엇 가지고  하지요? 그것을 구별하려면 성경 법도 가지고 맞춰 보면 압니다.

이것은 잘못 된 일이다. 잘못 된 일이다. 잘못된 성경에 위반된 행위를 똘똘  뭉쳐 놓은 것을 그것을 한 말로 해서 뭐라고 말하지요? 그게 한 말로 말하면  뭡니까? 이제까지 성경 말씀을 위반한 언행심사를 해 놓은 그것을 똘똘 뭉쳐서  한 말로 말하면 그 이름이 뭐이지요? 악습.

따라합시다. 악습. 악습. 네 악습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반된 언행심사에  행동을 해 놓은 고것을 한 말로 말해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악습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가지고 구별하면 악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악성은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구별을 해도 아는데 그보다도 더 구별하기 좋은 있습니다.

이 악성은 악성은 뭘로 가지고 구별하면 됩니까? 고거는 좀 어려운데 뭘로  가지고 구별하면 됩니까? 악습을 가지고 구별하면 됩니다. 악습을 가지고  구별하면 됩니다. 악습을 가지고 구별하면 된다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예수 믿지 아니할 때에 것 그 예수 믿지 안할 때에 것, 하나님 말씀을  위반해서 생활한 그것, 그것이 악습인데 그 악습 가지고 구별하면 됩니다.

악습을 좋아하는지 악습 그대로 하려고 하는지, 악습을 좋아하는지 악습을  싫어하는지, 악습 그대로 하려 하는지 악습을 제거 하려고 하는지 그러면  악습하고 한덩어린지 악습하고 대립인지 그거 보면 압니다. 악습하고 한덩어리된  그 자기는 그것이 옛 자기입니까 새 자기입니까? 그것은 악습입니까 그것은  중생된 영입니까? 악성입니다. 악성.

그러기에 의사가 진찰을 하려고 할 때에 의사가 진찰을 하려고 할 때에 한  면으로만 진찰하는 의사는 그 사람이 올바른 진단을 못 합니다. 여러 면으로  자기 경험도 여러 면의 경험으로의 그 진찰을 해야 되고, 또 기계로 진찰을 해야  되고, 또 약품으로 진찰을 해야 되고 뭐 여러 가지 그 나타난 현실로 진찰을  해야 되고 그 모든 여러 면으로 진찰을 해야 그것이 바로 들어맞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노력하는 것은 악습을 제거하는 이것을  노력하고, 악성을 이것을 완전히 건져내 버리는 노력을 하고, 악령을 이것을  완전히 배반하는 이 노력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인데 먼저 첫째는 이것이  가짜인지 진짠지 이것을 구별하는 이 진찰을 바로 해야 되고, 진단을 바로  맡아보야 된다 말이오. 진찰을 바로 해서 이 진단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이거는 무엇이다. 뭣이다.' 확증을 지워야 된다 말이오. 바로 알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제거하는 이제 수술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이 악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해서 알고, 악성은 말씀과 악습으로  판단해 가지고 알고, 악습은 알아놨으니까 그 다음에는 이제 말씀과 악습과 악성  이 둘을 알아 놨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배반하고, 인간의 생각을 좋아하고,  악습을 좋아하고, 악성을 좋아하면 고것은 뭐입니까? 고거는 뭐이요?  악령입니다. 악령. 악령은 구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악령은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악령은 아주 빛이 있는 천사와 비슷하다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악령의  호주가 몇 호입니까? 악령의 홋수가 몇 호요? 육백육십육 하나님의 호수는  칠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다음으로 이것이 선한 척도 하고의로운 척도 합니다.

이 세상에 예수밖에 있는 모든 도덕, 선, 의, 모든 곧은 것, 옳은 것, 바른 것  이것은 다 누구의 것입니까? 악령의 것입니다. 악령의 것.

그러므로 이 악령은 구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령, 악성, 악습  이것으로 된 것은 이것은 옛사람입니다. 성령과 중생된 영과 믿음으로 된 이것은  참사람 자깁니다. 예. 그러므로 우리 심신의 우리의 몸의 호주는 누구죠? 몸의  호주는 누굽니까? 마음입니다. 마음의 호주는 누구요? 영입니다.

그러면 영육의 호주는 누굽니까? 성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래서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시온산에 섰는 십사만사천 인은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했는데 그 십사만사천 인의 여인은 누구지요? 여인은 누굽니까?  마누라는 누구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요.

그러면 중생된 영의 영인은 누굽니까?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심신이 배우잡니다.

영의 배우자는 심신입니다. 심신의 배우자는 누구입니까? 몸밖에 있는 모든  만물입니다. 이러니까 시온산에 있는 자는 전부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한  자만 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더불어 더러워지지 아니한 심신만  거기 가서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서 더러워지지 아니한 심신만 시온산에 가서  있습니다. 또 거기 영들은 자기와 심신으로 더불어 더러워지지 아니한 영들만 가  있습니다. 그러면 불택자의 영이 거기 가 있습니까 못 있습니까? 불택자의  영들은 자기의 심신에게 끌려서 자기에게 심신에게 끌려서 영은 범죄하지  아니하는 것이지만 심신에게 끌려서 심신 가는 대로 끌려가 가지고 당했던  죽었던 영이기 때문에 시온산에 못 갑니다.

중생된 산 영은 심신이 끌고 가는 데에 끌려 갑니까 안 끌려 갑니까? 안 끌려  갑니까 안 끌려가요? 차에 태워 가지고 그 탄 사람이 안 가려고 해도 고만 저게  말들어 보니까 그 뺄갱이들이 납치할 때도 그래 해요. 그 이번에 어디서 뭐  납치하려 하다가 못하고 말았지. 난 또 지명을 잊어버렸다. 어디 납치하려 하다  말았노? 어데? 뭐 세계 무슨 운동이나? 거기서 그 우리 나라의 여성 그 대표를  간 사람을 하나 납치하려다 말았지.

스웨덴이던가? 그만 그 사람들 납치하면 말이죠 그때 '이 차에 타십시오.' 이 차  좋다고 이 떡 일본 사람으로 가장을 해 가지고 딱 타라하기 때문에 탔으면 그만  싣고가 버립니다. 아 암만 그 안 가려 고함 지르니 소용있는가요. 그만  부릉거리며 싣고 가버리는데 차 안에 탔으면 뭐 차가 가는 대로 가야지 안 가고  어쩌는고.

자 우리 영이 중생된 영이 뭐 타고 다닙니까? 지금 심신 타고 댕깁니다.

이러니까 심신 속에 있기 때문에 심신 이놈이 죄 가운데 가면 그 중생된 영이  그게 끌려 갑니까, 안 끌려 갑니까? 예 끌려 갑니다.

이러니까 로마서 7장에 보면 이 "내게 다른 법이 하나 있으니 내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가지고 이것이 나를 원치 않는 곳으로 끌고 간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영이 끌려 갑니다. 끌려가 가지고 마음하고 고기덩어리 하고 둘이  단합이 되어 가지고 그 밖에 있는 이 악령하고 악성하고 이 악습하고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마구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속에 있는 중생된 영은 '아  좋다 나도 찬동이다.' 찬성을 합니까, 속에서 같이 그 죄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반대를 하고 있습니까?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반대한 영은 시온산에 갑니다.

반대한 영은 시온 산에 갑니다. 불신자 속에는 그 영이 반대를 합니까, 반대를  못하고 있습니까? 환영을 합니까 환영을 못 합니까? 환영을 합니까, 환영을 안  합니까? 환영 합니까? 환영한다 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환영도 못하고 반대도 못하고 죽은 송장이 꼼짝 못하는 것처럼 반대도 못하고  환영도 못하고, 반대인지 환영할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전선 끊어진 전구와 같이  되어 있는 기능적으로 죽은 영, 시체 되어 있는 영으로 되어 있으니까 반대도  하지 못하고 환영도 하지 못하고, 기능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영으로 이렇게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이래 알아 들어요? 다 들어요? 이렇게 아는 사람 손들어요. 이렇게 아는  사람 손들어요.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네. 그러니까 그런 영들은 시온산에 갑니까 안 갑니까? 못 갑니다. 여인으로  더불어 더렵혀지지 아니한 자가 간다는 그 말은 자기 짝지로 더불어 더렵히지지  아니한 자가 간다 그말이오. 자기 배우자로 더불어 더렵혀지지 않는 자가 간다  그말이오.

그러면 영은 무엇으로 더불어 무엇이 범죄할 때 같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무엇으로 더불어 같이 범죄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영이 간다 말입니까? 심신이  범죄하는 그 범죄에 동참하지 아니하고 속에서 반대하고 있는 그 영만 시온산에  갑니다. 그러면 그 영은 무슨 영입니까? 그 영은 무슨 영입니까? 그 영은 무슨  영입니까?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 그러면 인간이 범죄하는 것은 몸이  범죄합니까, 마음이 범죄합니까, 중생된 영이 범죄합니까? 중생된 영이  범죄합니까? 셋이 공통해서 범죄합니까? 마음과 육만 둘이 단합해 가지고 범죄합니까? 그때  중생된 영은 거기서 속에서 반대하고 탄식하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까 원한다고 했습니까? 원치 안하는 것이 납치되어 간다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그 성경이 어데 있습니까?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시온산에는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가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영들은 사람의 영들은 어떤 영들만 가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영들만 가 있지요? 중생된 영들만 가서 있습니다. 중생된 영들만 가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심신의 기능을 어떤 기능만 가서 있습니까? 심신의 기능은 어떤  기능만 가서 있습니까? 심신의 배우자가 뭐입니까? 심신의 배우자가 뭐입니까?  심신의 마누라가 뭐입니까? 심신의 아내가 뭐입니까? 심신의 짝이 뭐입니까?  자기밖에 있는 모든 사물, 자기밖에 있는 모든 사물, 악령 악성 악습은 그 속에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자기 배우자 속에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예?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자기의 배우자, 여인으로 더불어, 심심이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해야  되는데 이 심신에 여인은 여러가지가 합해 가지고 된 것인데, 심신의 여인으로  상징한 것은 심신의 여인 속에는 마귀 들었소, 안 들었소? 마귀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네 들었습니다. 마귀가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네 들었습니다.

악성은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악습은 모든 사물은 그러니까 시온산에 갈 심신의 기능은, 시온산에 갈 심신의 기능은 무엇으로  더불어 죄짓지 아니해야 됩니까? 무엇으로 더불어 죄짓지 아니해야 되요? 첫째, 악령으로 더불어 죄짓지 아니해야 되고 둘째, 악습으로 더불어 죄짓지 아니해야 되고 셋째, 악성으로 죄짓지 아니해야 되고 넷째, 모든 일과 물건으로 더불어 죄짓지 아니해야 되고 요것만 갑니다. 요것만  시온산에 갑니다. 요것만 시온산에 갑니다. 그것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

어린양이 누굽니까?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을 또 이름이 딴 이름이 뭡니까?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인성이 완전히 신성화 되어서 신성의 주격대로  됐을 때에는 그리스도.

그러면 우리에게 온 성령의 이름은 뭐입니까? 성령의 이름이 뭐지요? 딴 이름  성령의 이름, 자 따라합시다.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 보헤사, 그리스도의 영, 성령, 보혜사 하나입니다. 하나 하나를 가르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시온산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자들이냐?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는 자라,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는 자라.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하는 사람의 영은 사람의 영은 자기의 심신 심신으로 더불어 의만 행했지  심신 죄짓는다고 동참하지 않한 그 영만 가니까 중생된 영이 갑니다. 또 그  심신은 어떤 심신이 가는고 하니 심신은 자기 마음 몸밖에 있는 악령이나  악성이나 악습이나 모든 일이나 물건이나 사람이나 그 어떤 것으로 더불어서  죄짓지 아니하는 고 기능만 갑니다.

고 죄짓고 안 짓는 것이 판정나는 고 판정나는 것은 언제 됩니까? 언제 됩니까?  현재. 언제 됩니까? 언제 됩니까? 언제 됩니까? 어데서 됩니까? 현실. 여기서  판정이 되어서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이 자기가 시온산에 가느냐, 유황불  구렁텅이 타게 되느냐, 요라니까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이것이 지금 떨고 있는데  이 철때기 없어서 이게 떨줄을 모릅니다.

만물은 떨줄 아는데 만물보다 더 어리석소. 지금은 만물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만  만물은 탄식할 줄 아는데 이 심신의 기능 이것들은 탄식할 줄 모릅니다.

우리는 영육으로 된 것이 이 사람인데 우리 속에는 이 난제를 두고서 탄식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엇이 탄식합니까? 중생된 영이 탄식합니다. 이 심신  이거는 제가 뒤질런지 살런지 지금 영생이냐 영원히 멸망이냐, 영원한 영생이냐  멸망이냐, 심신의 기능이 영생이냐 멸망이냐 이것이 지금 제게 이 문제가 놓여  있는데 요 문제가 한번 탈깍 거리면 그만 영생하고 탈깍 그러면 영원히 멸망  받는 것인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심신의 기능이라는 이것이 이 난제를  알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까? 좀 알고 있지요, 그러기 때문에 결심도 하고 이러지 이러니까 이것이 아는 것이  다른다 그말이오. 이거는 죽을똥 살똥 모르고 어쩌든지 자기 몸밖에 있으면  몸밖에 있는 악령을 좋아하던 습성이 있지, 악성을 좋아했던 습성이 있지, 자기  중심으로 살자는 그 습성이 있지, 자기 중심으로 살자는 그놈이 원수입니까  자기입니까? 요걸 찾아 가지고 굳게 잡으면 됩니다.

이놈이 들어서 자꾸 조우니까 고만 이 심신의 기능 이것이 천지를 모르고 심신의  기능이 이 마음의 기능 '너 좋은 것 이것 주께, 너 좋은 것 이것 줄께, 이 권세  줄께.' '야 너 지금 내일 주일만 범하면 한자리 올라간다. 영전 된다. 한자리  올라간다. 한자리 더 줄께 너 이것만 하면 내가 이 큰 돈벌이에 동참시켜 줄께,  너 이것만 해주면 너 당장에 지금 네 이 큰 기업에 허가 하나 턱 내준다.' 허  이놈이 자꾸 꼬운다 그말이오.

악령이 꼬우지 또 자기 속에 자기 중심인 그놈이 자깁니까 원수입니까?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가정 중심으로 가정 위주로, 자기 사업 중심으로  사업 위주로, 자기 민족 중심으로 민족 위주로, 자기 국가 지상주의로 자기 국가  중심으로 국가 위주로, 자기 남편 중심으로 남편 위주로, 자기 아내 중심으로  자기 아내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육의 생명 중심으로 생명  위주로, 자기 명예 지위 권세 이 중심으로 이 위주로, 이 위주로, 이 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그자가 자기입니까, 자기 원수입니까?  자깁니까 자기 원수입니까? 자깁니까 자기 원수입니까? 원수인 줄 아는 분  손들어 봅시다. 오늘까지 이 원수를 모르고 혼돈하고 착각하고, 알기는 알았지만  어떨 때는 요러면 정말 달콤한데 어떻게 꼬아났는지 딱 넘어가서 이 원수에게  원수가 자기인 줄 알고 속았던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속았던 사람 손들어  보이소. 예 우리는 다 속았던 사람입니다. 앞으로 속지 않기를 결심하는 사람 손  듭시다. 예 우리는 속지 않게 되겠습니다.

요놈이 살살 와서 꼬우니까 그만 이 심신 이것이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힙니다.

고만 심신 요것이 고 자기밖에 있는 그런 것들로 더불어 짝이 되어 가지고 그  시키시는 대로, 그거 하자는 대로, 그거 중심으로, 그거 위주로 합니다. 그러면  그 심신은 자기 짝지로 더불어, 자기 배우자로 더불어 ,자기 상대자로 더불어  더러워졌습니까, 안 더러워졌습니까? 더러워졌습니까, 안 더러워졌습니까? 고  심신의 고 시간에 심신의 기능은 고것은 영원히 멸망을 받습니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둘째 사망, 영원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어린양의 인도를 따른겁니까, 안 따른 겁니까? 안 따른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여러분들, 죽을 줄도 모르고 살 줄도 모르고, 죽을 줄 살 줄 모르고  날뛰는 그것을 괘심하다 해야 되겠소, 불쌍하다 해야 되겠소? 불쌍하다 해야  되지요. 그것은 '이놈아 네 마음대로 해봐라.' 집어던져야 되겠소, 불쌍히  여겨서 그것을 타이르고 가르치고 자꾸 달래고 붙들어줘야 되겠소? 그러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 이 심신 기능, 이 심신 이거는 달래야 되겠소 왈개야  되겠소? 달래야 되겠소 왈개야 되겠소? 예 달래야 되겠습니다. 이거는 타일러야  되겠소 안 타일러야 되겠소? 네, 달래야 타일러야 되지요. 타일러야 되겠습니다.

자꾸 타일러요. 타이르면 잘 듣습니다.

타이르면 잘들어요. 새벽기도 나오라 하니까, 새벽기도 나오라 하니까 이 습성이  아이구 집에서 늘 새벽잠 자던 그만 습성이 들어 가지고 자꾸 누워 자라 합니다.

자꾸 집에서 '내가 아침에 여섯 시까지도 잤는데 여섯 시에 일어났는데 지금 네  시인데 자꾸 일어나라 하네.' 고때 여섯 시에 잤는데 고걸 누가 합니까? 구습이  그럽니다. 구습, 구습 그 습성이 그럽니다. 악습이 그러요.

그럴 때에는, 그럴 때에는 중생된 영이, 중생된 영이 와 가지고 그 마음을 살살  달개고 또 그 몸을 달래 가지고 '새벽기도 나가야 네가 이 시간에 네 기능이  살아나고 영원히 멸하지 않한다. 이 시간에 지금 살 그 현실인데 네가 지금  죽어되느냐?' 이렇게 살리려고 제일 처음에 애쓰는 이가 누굽니까? 제일 처음에  애쓰는 이가 누구지요? 성령, 이 성령하고 둘이 함께 탄식하면서 애쓰는 이가 누굽니까? 중생된 영, 이  둘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탄식을 합니까 안 합니까? 누가 탄식을 합니까? 둘이  다 탄식합니까 성령만 탄식합니까? 둘이 다 탄식합니다.

이래 가지고 이 탄식하면서 성령님과 중생된 영이 둘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제일  처음에 누구를 깨웁니까? 네, 양심을 깨웁니다. 양심이 제일 그 총중에 나으니까  양심을 살살 달래 가지고 양심을 자꾸 이제 깨워서 양심에게 타이릅니다.

양심이 타이르면, 양심에게 타이르면 양심에게 타이르면 양심이 그러면 그래야  되겠다 그래야 되겠다 그러면 이제 양심이 그 마음에게 타이릅니다. 그 마음에게  가 가지고 어떤 마음에게 갑니까? 새벽기도 안 나올때 누구 어느 마음에게 가지요? 어느 마음에게 갑니까? 잠  자고자 하는 그 마음에게 갑니다. 안일심에 갑니다. 안일심, 그 마음은 여러  가지요. 사람은 소우주라. 우주라. 우주에 이렇게 많은 것이 여러 종류 가득찬  거 모양으로 마음에게도 그렇게 많은 종류가 가득찼다는 것을 그 사람이 조금  눈뜨고 봤다 말이오.

인간은 소우주라 그렇게 말했소. 이 마음에도 여러 가지 마음이 있는데 안일심이  있습니다. 안일심에게 이제 타이릅니다. 타일러서 '야 네가 지금 새벽기도 안  나가고 잠자 봤자 그 뭐 때살 불그러지는 것 아니고, 오늘 새벽에 안 나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내가 못 배우면 생활이 전부 다 패전 생활이 되어 다 패전  생활이 되어지면 네 마음의 기능이 죽나 사나, 오늘 새벽에 가서 말씀을 들으면  요 새벽 시간에 그 이용된 마음의 기능은 그 살아나나 죽나, 살아나지. 그러면  요 지식을 가지고 또 다음에 현실에 만날 때에 요 지식이 그 사람을 그 마음을  주장하면 그 마음이 살아나나 안 살아나나, 마음이 살아나지.' 이래 가지고 이 시간 자면 마음의 기능도 몸의 기능도 죽는다는 그것을 해서  해석을 해 주고, '이 시간에 가면 내가 누군지 아나, 나는 네 주인인 영이다. 야  나는 누군지 아나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다.' 이러면서 '네가 가면 우리 주인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또 네 주인인 참 너, 네 주격인 영 나도 좋아하고, 또  마음 너도 반신불수가 되지 아니하고 마음 너도 기능이 구비해지니까 마음 너도  좋고, 또 순종하면 몸의 기능도 몸이 절름발이가 않되고 그 기능 요소가  살아나니까 좋고 이러니까 하나님좋고, 영 나 좋고, 마음 너 좋고, 몸 너 좋고,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만물 좋고' 고만 여기까지 슬슬 해석해서 타일러 나가기 시작하면 고만 두말할 것 없이  '가고 싶다. 나도 갈란다.' 벌떡 일어나 버립니다. 벌떡 일어나요.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타일러서 이래 가지고 자기 현실에서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리게  되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면 영은 좋을 뭐이지요?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면 영은  좋을 뭐입니까? 네 여러분들 우리 지난번에 여 오다가 그만 화물차가 이번에  화물차가 오다가 하나는 빵구가 났다던가 뭐 고장이 났다던가 해 가지고 일찍 못  와서 그러니까 그 차가 고장나니까 누구의 사고입니까? 그 차 안에 탄 사람 고만  사고지짐 임자가 사고지 그렇지 않해요? 이러니까 이 심신의 기능 이것이 그만 고장이 나버리고 하면 자 영이 타고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뭐 중간에 오다 못 와서 나중에 고쳐 가지고  왔지만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이제 살아나고 영원히 죽고 사는 요것이 단번  결정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생명에 접선되었지만 요 생명을 요 기능이 받아들이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요 결정은 현실에서 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나요.

여러분들 우리가 공중에 가려 하면 뭐 타고 가야 됩니까? 비행기 타고 가야되지.

공중에 가려면 비행기 타고가야 되지. 나도 한번 비행기 한번 타봤소. 자 속으로  자꾸 구원 도리를 생각하면서 구원 도리를 생각하면서 자 공중에 가려 하면  비행기를 타야 되겠고, 바다를 가려 그러면 배를 타야 되겠고, 또 이 비행기도  타지 아니하고 그 서울을 가려 하면 차를 타야 되겠고 그래서 차도 한번 타보고,  배도 한번 타보고, 비행기도 한번 타 봤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차는 있지 배는 없습니다. 배는 못 구했소. 그러면  이 사람은 바다에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가지요. 이 사람은 배도 있고  차도 있지만 비행기가 없습니다. 공중에 날라갈수 잇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을 어떤 대왕이 대왕이 있다가 '자 너는 지금 호호양양한 이 별별 세계를  내가 다 가야 될터인데 별별 세계에 네가 갈 수 있는 그 모든 기계들이 있고 또  별별 그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그 기계들이 있으니까 그 기계를 네가 원하는  대로 마련해라' 하면서 그 마련하는 순서를 줍니다. 한데 섞어 놓으면 않되니까  '자 지금은 비행기 마련할 순서다. 비행기 마련하고 싶은 사람 비행기  마련해라.'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참 마련하는데 어떤 사람은 보닌까  비행기 옆에 거 뭐 다른 좋은 많이 있습니다. 그것 마련하고 그것 구경 하느라고  비행기 마련 못했습니다. 시기 지나가 버렸습니다. 시기 지나갔는데 그 사람은  고만 비행기 마련 못했습니다.

고 다음에 또 자동차 마련하는 시간, 그 다음에는 배 마련하는 시간 이 마련하는  그 시간마다 착착 그것 마련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 마련하는 시간에  재미 있는 놀음이 있으니까 그 노름하다가 그만 마련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 마련하는 그 시간에 돈 뭉티 있으니까 돈 뭉티 그거 욕심내  그것 마련하다가 그거 마련 못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 마련하고, 비행기  마련하고, 어떤 사람은 기차 마련하고, 이렇게 마련 했는데 이 사람은 돈만  마련해 놓고, 권세만 마련해 놓고, 지위만 마련해 놓고, 모든 재미 있는 것만  실컨 마련해 놓고 이래 가지고 있었다 이거요.

이제는 왕이 있다가 '자 이네는 이 자리를 떠나라. 이 자리를 떠나서 이제 너거  세계로 가라. 그 세계로 가라.' 떠나라 합니다. 떠나니까 '내가 마련한 돈 이거  어쩌고요.' '못 가져가. 그거 네것 아니라. 그거는 네가 연습했는데 쓰라고 했지  네거 아니라. 너는 청지기라. 너는 보관자이기 때문에 돈도 너거거 아니라.

지위도 네거 아니라. 권세도 네거 아니라. 행락도 네거 아니라. 네거 아니니까  그거는 다 두고 가야 돼.' 이러니까 솔박 두고 하나님께서 마련하라는 그것만  가지고 갑니다.

이제 갔는데 떡 마련한 것 다 놔두고 가버렸소. 가니까 제일 처음에 거기는  거리가 어떻게 멀던지 여러 억만 리 입니다. 억만리 인데 억만 리를 내가 가야  보고 싶은 사람도 보고, 억만 리를 가야 내가 거기 할 일도 있겠고, 필요 있는  것 한 것도 있겠고, 이렇게 거길 가야 내가 좋은 곳을 가겠고 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만 그 억만 리 길을 가야 되는데 그 길은 어떻게 잘 닦아 놓았는지  좋은데 어떤 사람은 그만 턱 타디만 우루루루 그러니까 막 그 뭐 비행기 같이 싹  달아납니다. 이 사람은 갈려 하니까 차가 있어야지.

자 차 없으면 그 사람은 어째 가야 합니까? 걸어가야 되지요? 그러면 억만 리  되는 길인데 그 걸어가면 제가 몇일 만에 가겠습니까? 평생 가야 못 가. 그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어야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살아 있기야 살아 있지만  가만히 있지. 그 사람이 그거 차를 언제 못 마련해 언제 마련할 그 시기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어. 그때 그 차를 마련 뭣 때문에 못 했지요. 지위,  권세, 행락,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 때문에 마련 못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마련할 시기를 잊어버렸으니까 그 차는 다 어째 버렸소? 그 차는 어째  버렸습니까? 팔아 먹어 버렸지 팔아 먹었소. '야 내 돈 줄께 그 차 내놔라.' '자  이 차 필요 없는 거 차 주고 돈받아 가거라.' 에서가 팥죽 한 그릇 가지고 장자  판거와같이 그렇지 안해요. 거기 다 그런 것 상징한 것입니다.

그러면 돈 때문에 돈 받고 차판 사람, 미인 받고 차판 사람, 미남 받고 차판  사람, 권세 가지고 차판 사람, 지위 받고 차판 사람, 행락 받고 차판 사람, 모든  예술 받고 차판 사람, 가정 받고 차판 사람 뭐 어떻게 많이 이놈이 좋은 걸 갔다  주는지 마 팔아먹었다 말이오. 그 사람은 다시는 마련 못합니다.

이 사람은 믿고 차를 턱 타고 갔는데 가니까 '이제는 자 네가 소원하는 거와  네가 할 일은 저기 있으니까 저기 가서 일을 해라.' 아 거기는 차를 가지고 가려  하니까 공중으로 가는데 차가 됩니까? 차 가지고 안 된다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고만 저기 우루루루루 하니까 비행기가 날라서 당장 그만 거 가버리. 이 사람은  차는 마련해서 이까지 왔지만 비행기가 없으니 못 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그 사람은 앉아 주저앉아 있어야지. 그 비행기를 마련할 그런  기회에 비행기를 마련을 못했습니다. 그만 비행기는 팔아먹어 버렸소. 비행기는  뭐 받고 팔았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받고 팔았소.팔았어. 배도 그래 팔아  먹어 버리고, 이 사람은 차 마련하려 할 때에 차를 마련했단 말이오. 차가 필요  했다 말이오. 차를 뿌루루루 타고 여기는 이 바다를 건너가야 된다. 아 배를  타고 우우웅 가버립니다. 여기는 비행기 타고 부우웅 가버립니다. 이거는 뭐  어디든지 다 마련해 놓으니까 어디든지 뭐 가고 싶은 대로 척척 다 간다  그말이오. 이 사람은 하나만 마련했으니 만날 기차로 가는데나 차로 가는 데나  갈까 딴 걸로 가는 데는 꼼짝을 못합니다.

자 이 비유와 같은 것이니 이 기차는 무엇이며, 비행기는 무엇이며, 배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무엇이지요. 이것이 무엇이지요. 그렇게 거기 여 '보배야'  이것이 무엇이지요. 이 심신의 기능, 그 종류가 이 차, 배, 비행기 종류와 같은  것입니다. 같은 것이요. 그것이 심신의 기능입니다. 심신의 기능, 네 그러면 이 비행기와 같이 무궁세계에서 우리가 타고 다닐 거, 우리에게 쓸  거, 필요 있는 거, 무궁세계에 필요 있는 거 이런 것을 마련하는 것은 언제  마련합니까? 현실에 마련하는데 현실에서 어떻게 마련합니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성령 시키시는 대로, 참 자기가 시키는 대로, 신앙 양심의 인도하는 대로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세상 모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접촉되는 것 그 모든  것들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아니하고, 그것에  종이 되지 아니하고, 그것 중심으로 그것 위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인도대로 움직임으로서 이것을 마련되는 것입니다.

마련 되니까 자 여러분들 이러면 우리가 마련한 것이 하나님과 그 현실, 현실  주시는 그 현실에서 하나도 떨구지 아니하고 하나도 팔아 먹지 아니하고 다  마련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다 마련한 사람 손들어 보이소. 이것 많이  팔아 먹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입시다. 많이 팔아 먹은 사람 우리가 많이 팔아  먹었소.

자 이러면 우리가 오늘 죽으면 오늘 죽으면 하늘나라 가 가지고 병신 아닌 병신  노릇을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못난 자 됩니까, 안 됩니까? 자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자유 못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과거와 같은 그런 과거와  같은 그런 현실을 닥치면 과거 그것은 마련을 못했지만 고장 좀 병신 고물차라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고물차라도 마련할 수 있소.

그때는 엔진도 좋고 뭣도 좋고 뭣도 좋고 전부 이 새거 살 생각 했는데 벌써  그것은 몇 가지를 팔아 먹어나서 이제는 자 나많은 사람 이제까지 마련 못한  나많은 사람은 지금 과거와 같은 그런 현실을 닥쳤을 때에 그때에 이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살게 되면 어려서부터 착착 말씀대로  살아서 준비한 사람이 마련한 차와 늙어서 이제 그때사 가리늦게 참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회개한 것과 같이 가로늦게사 지금 말씀대로 꼭꼭 살아서 요렇게  마련한 차와 그 차가 어려서부터 마련한 차와 늙어서 부터 마련한 차와 그 차가  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하나는 고물차, 하나는 새차. 이러니까 이제 그  가기는 가도 시간 걸리고 뭐 그러지요.

자 그러니까 앞으로 이것을 마련할 현실을 현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현실이 많으면 좋겠지요.

그러면 앞으로 또 이 당하는 현실을 팔아먹기로 그렇게 이 현실을 가져 가지도  못하는 이것 때문에 이거 미혹 받아 가지고 악성이 자기 중심이라는 요 못된  거짓 자기라는 놈, 요놈 때문에 악령이 미혹시키는 요것 때문에 또 앞으로 현실  팔아먹을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정말로 현실을 팔아 먹은 것이 원통한  사람, 참 원통한 사람, 이가 갈리는 사람, 원통한 사람 한번 손들어 봅시다.

현실을 팔아 먹은 것이 원통한 사람, 참 원통한 사람, 참 원통한 사람 한번  손들어 봅시다. 놓읍시다.

참 원통한 사람은 손을 들어라 하니까 요래 듭니다. 요래. 참 원통한 사람  양심이 가르쳐 주거든 '내가 그래도 또 인제 팔아먹을 건데' 팔아 먹으면  죽습니다. 팔아먹으면 죽소. 어리석지를 맙시다.

그러면 우리 사람은 뭐 무엇이 무슨 무슨 요소로 사람이 된 것입니까? 첫째 영,  둘째 육, 영육으로 되었습니다. 육은 몇 가지로 됐습니까? 두 가지 하나는 마음,  하나는 몸 네 그렇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할 때 그때 마음 그 없이 생각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신의 생각하는 그 육신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중생된 것은 성경이 영이 중생됐다 했습니까, 육이 중생됐다  했습니까? 영이 중생됐다고 성경 본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영이 네 다  중생됐죠. 육이 중생됐다고 기록한 거 본 사람 손들어 보입시다. 하나도 없지요.

영이 중생됐습니다.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나 몸은 뭐라 했습니까?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니라 했지요.

영은 의로 인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했지요. 영의 아버지 입니다. 영이 부릅니다. 영은 하나님의  양자가 됐다 했습니까, 안 됐다 했습니까? 영은 양자가 됐다 했습니까, 안 됐다  했습니까? 영은 양자가 되었다고 했습니까, 안 되었다고 했습니까? 그 성구가  어디 있습니까? 로마서 8장 15절에 영은 하나님의 아들 양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고 안하고 양자라고 했을까? 그것의 요소는 피조물  요소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 앞에 기업받을 것은 그 양자 아닌, 양자 아닌 걸  뭐라 합니까? 적자라 합니까? 네, 양자 아닌 적자는 누가 적자이요? 예수님은 그  요소가 신성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적자라 했고 우리는 요소가 창조주의  요소가 아니고 피조물의 요소기 때문에 양자라 했습니다.

적자, 예수님이 받는 상속 유업과 양자된 우리가 받는 상속 유업과 같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을 가르쳐 양자라 말했습니다. 영은 양자가 됐습니다. 이 몸은  양자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안 됐습니다. 그러면 양자 몸이 양자 되는 것을  가르쳐 무엇이라 했지요? 구속, 구속, 몸의 구속.

그러면 이 심신이 심신이 양자 되는 이것을 누가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습니까?  누가 탄식하고 고대하고 있죠? 성령, 또 영, 또 만물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죄짓지 않는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고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고 하나님과 언제든지 동거 동행하는 죽지 아니할  생명으로 영생으로 살아라. 영생으로 살아라는 것은 몸입니까, 마음입니까,  영입니까? 영입니다. 중생은 영으로 중생했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할 이 생명으로 중생했습니까? 영생으로 중생했습니다. 영생으로  중생했습니다. 생명이 범죄하면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죽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은 영생한다는 말은 범죄한다는 말입니까 안 한다는 말입니까  안 한다는 말입니다. 요게 대해서 지금 시간 많이 됐는데 혹 오전에 계속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요 자기를 똑똑히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똑똑히 국별해야  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지금부터 잘 배우야 됩니다. 지난 시간에는 복습이요 연습이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다 아는 것을 그것을 말했지만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을  배우게 되니까 똑똑히 배워야 됩니다. 잘 모르는 것을 배우게 되니까 아는 것은  있지만 모르는 것이 많고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잘  배우지 안하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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