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3:37
위엣 것과 땅엣 것
1980. 8. 13. 수전집회
본문 : 골로새서 3장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만물의 주인은 우리의 몸이요, 우리의 몸의 주인은 마음이요, 마음의 주인은 영이요. 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이 범죄함으로 영의 주인인 하나님과 그 사이가 끊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이 하나님과 끊겨지므로 단번에 죽게 되었고 몸은 서서히 많은 시간을 거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성공은 영은 하나님과 결합이 되고 결합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영이 되고, 마음의 주인은 산 영이 되어 가지고 마음은 영으로 인해서 움직이고 영에게 속한 마음이 되고, 몸은 성령과 죽생된 영에게 다스림을 받고 순종하는 그 마음에게 몸이 순종을 하면 그 사람은 참 사람이요, 모든 만물의 영장이 되는 참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 전에는 이와같이 연결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기 전에 만물은 아담에게 다 복종했고 아담은 하나님에게 복종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행동한 하나 있었으니 곧 그것은 아담의 아내, 아담에게 속한 아내가 이 행동을 했고 아담의 마음과 몸이 이 행동을 해서 죄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아담에게 속한 아담의 아내와 아담의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범죄를 했는데 그것이 생각도 하고 탐하기도 하고 해서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영이 범죄한 거이 되었습니다. 영이 범죄한 것이 된 것은 영이 그때에 선악과 먹는 그 일에 영이 동참을 해서 영이 같이 선악과를 먹어서 범죄된 것은 아니고, 영은 안 먹었지만 영이 책임지고 있는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몸과 마음이 선악과를 먹었는고로 영은 선악과 먹은 죄를 짓지 아니했지만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이 육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영은 주격 위치에서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마치 여기 주상면 면소가 있는데 면 사무소에 어떤 말단 직원이 하나 잘못된 일을 저질렀어도 그것은 면장이 혹 다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말단 직원의 잘못된 그 실수를 면장이 면장 그 입장에서 그 책임을 지고 면장이 그 죄를 지음으로써 다스림을 받는 것이 그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소가 남의 토지에 가서 곡식을 먹었지 주인은 그 곡식을 먹지 안했지만 소가 남의 곡식을 먹은 그 잘못을 주인이 책임지고 주인이 그 모든 비용을 물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악과을 인류 시조가 먹었을 때에 영이 먹어서 범죄한 것은 아니지만 범죄했기 때문에 입장에서 자기에게 속한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자기 육이 범죄했기 때문에 영이 범죄한 것이 되어서 정죄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영이 하나님과 끊겨지는 이 사망을 받았고 따라서 심신으로 된 육도 사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아담 하와로 말미암아 모든 자연법으로 생산된 부정 모혈이 있어 가지고 난 사람들은 아담 하와의 범죄에 다 동참하게 되었고 정죄 받았고 그 죽음을 다 같이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아담이 아담은 한 사람이지만 보통 생육법으로 나는 아담의 자손은 전부 다해서 그 대표로 아담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는 전 자연인의 대표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정죄받고 다 저주받아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는 그 말씀은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심신이 범죄하면 영이 범죄한 주격 책임에 심판을 받기 때문에 자기가 관할하는 자기에게 속한 심신이 범죄하면 영은 범죄 안 했어도 범죄한 것이 되어서 정죄받아 영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의 영이 범죄한 것은 처음 아담과 같은 이런 방편으로 범죄해서 영이 범죄한 영이 됐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인고로 영 자체는 범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이라야 이는 하나님의 원형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이라야 이는 하나님의 원형인 하나님만 나타내지, 마귀도 쓰도 못하고 다른 만물도 쓰도 못하고 사람의 영은 하나님만 쓸 수 있는 것이지 딴거는 하나도 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영은 어떤 피조물로도 이 영은 살아날 수가 없고 이 영은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서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원형인 하나님과 연결이 될 때에 그 모양은 나타나서 영의 활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은 하나님만이 사용하는 이것요 또 영은 하나님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이것이요 또 이 영은 자기 심신에게만 역사할 수가 있지 남의 심신에게 가 가지고 이 영이 역할을 못 합니다. 자기 심신에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면 자기 심신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자기 현실에만 역할할 수가 있지 현실 외에는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자기 현실에 이 영이 이 몸에게 복종을 안 하면 이 몸은 범죄한 몸이 됩니다. 또 그 마음이 몸을 복종시키지 못했으면 마음이 범죄한 것이 됩니다. 또 영이 그 마음을 복종시키지 못했으면 영이 범죄한 것이 됩니다. 영이 선악과를 못 먹게 하지를 못했고 선악과를 그 마음과 몸이 먹었기 때문에 그 영은 정죄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영이 어떻게 살아났는고 하니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게 됐습니다. 이렇게 생명으로 살아나는 데에는 죄가 없어져야 됩니다. 죄가 없어져야 됩니다. 죄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 의가 있어야 합니다. 죄만 없다고 되는 아니라 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 돌덩이 이런 것들도 죄는 없지만 이것이 의는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사람이 가진 의, 의를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죄가 없고 의롭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되면 그거는 살아 움직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이 중생될 때에는 첫째로 죄 문제가 해결이 되어서 죄가 없게 되었고 사죄를 완전히 입었고 단번에 사죄를 입었습니다. 사죄를 입어서 예수님의 이 내 죄 대신 형벌받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이 죄가 완전히 사죄가 됐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는고로 이 죄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님의 대신해서 칭의를 받았습니다.
이 중생된 영이, 아니 중생된 이 사람의 영이 사죄를 받아서 죄가 없게 되었고, 칭의를 받아서 의가 있게 되었고, 그러고 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 가지고 새생명을 가지게 됐습니다. 죄가 있으면 의는 안 됩니다. 의가 있어도 생명이 없으면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영은 사죄받은 영이요 칭의 받은 영이요 새생명 받아 중생받은 영입니다. 아마 여기 온 사람은 거의다 중생된 이 영을 가지고 있는 중생된 영을 자기 심령에 모시고 있는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 믿는 사람이 중생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죄를 범하면 어찌 됩니까? 중생한 뒤에 죄를 범하면 아무리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죄를 범하지만 영은 주격이기 때문에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죄를 범한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심신의 주격이 주인이 되는 이 영이 그 죄의 책임을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소가 남의 밭에 콩을 먹었는데 그 콩 먹은 그 잘못된 책임을 소가 져야 됩니까, 주인이 져야 됩니까? 소는 질래야 그까짓거 질 자격도 없습니다. 소 지면 잡아먹기나 할까 뭐 별 지도 못 해. 소가 범죄했는데 그 주인이 콩도 물어주고, 벼도 물어주고, 이제는 가서 뭐 뽕을 먹었으면 뽕도 물어주고 이렇게 다 대신 값을 해줘야 됩니다. 그러면 그는 주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육과 마음과 몸과 마음이 범죄한 그 죄는 영이 범죄 안했지만 영이 책임을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그러면 지면 그 책임을 진다고 하면 영이 범죄한 영이 됩니까, 안 됩니까? 영이 범죄한 영이 됩니까, 안 됩니까? 영이 범죄한 영이 됩니다. 처음에는 영이 범죄하지 안했는데 그 심신 아담 하와의 심신이 범죄를 해서 선악과 따 먹는 것을 그 주격 영이 범죄 책임을 지고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중생하고 난 다음에 중생된 사람의 심신이 죄를 짓습니까 안 짓습니까? 네 중생된 사람의 심신도 죄를 단번에 안 질수 없고 조금씩 조금씸 벗어서 차차 차차 죄를 적게 짓는 사람, 마지막에는 죄를 안 짓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서 이렇게 노력을 해 나가지.
그러면 중생한 후에 중생된 그 영의 소유가 되는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이 범죄한 것은 중생된 영이 책임을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책임을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중생한 후에 중생한 사람의 심신이 범죄했으면 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중생된 영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까, 안 져야 합니까? 져야 합니까, 안 져야 합니까? 져야 합니까 안 져야 합니까? 아이 뭘 져야 한다는 말인지 안 져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자 한번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또 한번 물어 봅시다.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그 심신이 범죄하면 그 죽격인 영이 책임을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된다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한 사람도 없네요. 네 다 져야 됩니다. 다 져야 됩니다.
중생 아니 그 사람의 영이 그 사람의 심신이 범죄한 것을 그 심신의 책임자가 영이요. 주인이 영이기 때문에 심신이 범죄한 것을 그 주인이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됩니다. 이러니까 심신이 범죄했지만 그 영이 범죄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에서 우리 시조가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계약한 이 계약을 어겨서 그 범죄함으로 죽었는데 그때에 범죄는 영이 범죄했습니까, 심신이 범죄했습니까? 심신이 범죄했습니다. 그러면 심신이 범죄한 그 범죄를 영이 책임을 졌습니까, 안 졌습니까? 안 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질 수 없습니다. 안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영이 그 책임을 지고서 어찌 됐습니까? 영이 죽었습니다. 영이 죽었고 그 심신은 단번에 죽었습니까, 서서히 몇십 년 몇백 년 걸려 가지고 죽었습니까? 몇십 년, 몇백 년, 몇 일 이래 결려 가지고 죽습니다.
자 그러면 심신이 범죄하는 것은 그 영이 주격 입장에 책임을 져서 심신 범죄한 영의 범죄가 되는 이것이 맞습니다. 이게 맞습니다. 이게 안 틀립니다. 이게 맞습니다.
맞는데 그러면 중생된 사람의 심신 범죄는 왜 중생된 영이 그 주격 입장에서 심신의 범죄를 영이 책임을 안져야 됩니까? 왜 안 져야 됩니까? 왜 안 져야 됩니까? 중생되기 전에는 자기 심신이 범죄하는 것을 영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 져 가지고 죽었습니다. 중생한 후에는 중생된 영이 자기 심신이 범죄하는 것을 책임을 안 집니다.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책임질 권리가 없고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책임을 안 집니다.
왜 책임을 안 지는고 하니,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책임 안 지는 것은 영이 중생되기 전에 영이 중생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그 영의 그 영의 소유인 그 사람의 심신이 살아서 범죄하는 것, 죽을 때까지 범죄하는 것, 그 심신의 범죄할 것을 뭐 지금 범죄하면 지금, 만일 천 년 후에, 이천 년 후에 범죄하면 이천 년 후에 범죄, 뭐 언제든지 현재, 미래, 영원의 무슨 범죄든지 그 범죄를 죄짓기 전에 이 범죄를 어떤 범죄 어떤 범죄 할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 사람이 나 기도 전에 그 사람이 어떤 범죄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시고 그 죄를 중생되지 아니한 이 영에게 다 이 죄를 정죄를 합니다. 그러면 단번에 이 육이 앞으로 지은 것, 과거에 지은 것, 모든 그 심신이 지을 이 범죄를 이것을 그 사람의 영혼에게 똘똘 뭉쳐서 그 죄를 짊어지었습니다.
이러니까 그 영이 자기 심신이 범죄한 죄는 그 영이 전부 단번에 그 죄를 전부 이 다 걸머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걸머진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영에게 죄를 전부 책임을 지우고 부담을 시켜서 이 영이 정죄를 받습니다. 이 영이 정죄받습니다. 중생할 영이 중생되기 전에 자기의 심신이 범죄할 모든 범죄를 똘똘 뭉쳐서 자기가 전부 주격 입장에서 그 죄를 다 정죄 받습니다. 그 정죄를 받아 가지고 제까짓 정죄 받지 뭐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정죄를 그 받은 뭉티 죄, 전부 그 죄를 영이 주격 입장에서 그 죄를 짊어지고 주격 입장에서 정죄를 받았을 때에 그때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그 정죄를 다 대신 형벌 받아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입히십니다. 그러니까 이 영이 단번에 정죄 받았고 받은 정죄를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사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사죄는 한꺼번에 받았습니까 여러번에 받았습니까? 단번에 받았습니다. 단번에.
또 이제 사죄를 받았으면 새생명, 새생명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죄 받았으니까 새생명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는 분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다 틀렸소. 안 돼. 죄 없다고 죄 없다고 하나님하고 결합 안 돼요. 죄 없으면 하나님하고 결합 됩니까? 죄 없다고 하나님하고 결합 안 됩니다. 죄 없어도 하나님하고 결합이 안 돼요. 결합이 되어야 영생하는 새생명 가지게 되는데 죄 없다고 하나님과 결합이 안 됩니다.
이제 죄가 없으면 무엇을 가질 수 있습니까? 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죄 있는 자는 의를 가지지 못합니다. 죄가 없으면 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래서 죄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해서 사죄를 받아 단번 사죄로 죄없는 자 됐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공로를 가지고 칭의를 그 영에게 입힙니다.
그러면 영이 이 칭의를 단번에 입었습니다. 단번에. 영은 죽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만 사죄 칭의 되지, 그거는 어쩔 수 없소.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 해요. 이제 이 영이 정죄 받고 단번 정죄 받고, 단번 사죄 받고, 단번 칭의를 받아 가지고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이제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의 이 부활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친이 되는 하나님과 결합이 되는 이 새생명을 받았습니다. 이 새생명도 단번에 받았습니다.
자 이제 중생된 영이 자기 소유의 심신이 범죄한 것을 이 주격 입장에서 이 심신 범죄의 책임을 단번에 졌습니까, 설설 졌습니까? 단번에 졌습니까 여러번 졌습니까? 단번에 졌습니다. 단번에 져서 정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중생할 영이 중생하기 전에 정죄를 여러번 받았습니까 단번에 받았습니까? 단번에 받았습니다. 이 모든 심신이 범죄하는 죄를 여러번만에 짊어졌습니까, 단번에 짊어졌습니까? 단번에 짊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짊어지워 주셨습니까, 제가 짊어졌습니까? 하나님이 짊어지워졌습니다.
그러면 이 단번에 짊어진 이 죄를 예수님의 공로로 사함은 몇번에 받았습니까, 단번에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공로로 칭의를 받았는데 칭의는 몇번에 받았습니까? 단번에 받았습니다. 이러면 이 중생하기 하기 전에 중생되지 안한 이 영은, 영은 정죄 받고, 사죄 받고, 칭의 받고 몇 가지 받았습니까? 세 가지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결합만 되면 살아나는 것인데 이제 네번째로 하나님과 결합이 됐습니다. 성령님과 결합이 되고 진리와 결합이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 가지고 진리 법칙대로 여생을 사는 이런 영으로 하나님과 진리와 결합이 됐습니다. 그 결합은 서서히 됩니까 단번에 됐습니까? 단번에 됐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은 몇 가지를 단번에 받았습니까? 몇 가지를 단번에 받았습니까? 몇 가지를 단번에 받았습니까? 몇 가지를 단번에 받았습니까? 요거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세계에 기독교가 많이 있지만 요것이 각각 다 틀려 가지고 그 교파가 신앙으로 나가다가 머뭇 거리고 중간에 못 갑니다. 천국에 가까이 가다가 가지 못하고 중생된 영은 구원얻지만 건설구원은 안 돼.
건설구원은 거의 가다가 딱딱 맺혀서 찌끄러기는 건설구원이지만 외나 진짜 건설구원은 안 돼요. 고만 가다가 중단돼 버리고 말아요.
이러니까 논리를 해 가다가도 고만 중단되고 맙니다. 이 중생된 영은 몇 가지를 단번에 입었습니까? 세 가지? 두 가지? 네 가지? 다섯 가지? 아닙니까? 자 손가락 한번 가르쳐 봐요.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 네 가지, 네 가지. 자 그러면 순서를 한번 말해 봅시다.
제일 처음에 (정죄,?) 두번째 사죄, 세번째 칭의, 네번째 새생명 중생 이래 됐습니다. 자 그러면 중생된 후에 이 영이 자기의 심신이 범죄한 것을 책임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와 안 져야 됩니까? 안 안 져야 됩니까? 안질 수가 있습니까? 와 안 져야 됩니까? 네 이미 졌기 때문에 두 번 질게 없소. 이미 졌기 때문에 한 번 정죄 받지 두 번 받지를 않해요. 이미 다 졌어요.
그러면 이 중생된 영이 자기 심신이 죄를 짓는 그 죄는 영이 이미 정죄로 부담한 정죄받은 범죄입니까, 정죄받지 아한 범죄입니까? 정죄받은 범죄입니까 정죄 안 받은 범죄입니까, 받은 범죄입니까? 새로 그 범죄받을 필요가 있습니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이 중생된 후에 자기의 심신이 범죄하는 그것이 이 중생된 여에게 정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만일 정죄가 된다고 하면 중생된 영은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죽습니다. 정죄를 받지 안하니까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중생된 영은 죽지 아니하는 영생으로 중생 했으니까 영생으로 중생했으니 중생된 영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니까 죄가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닌까? 죄가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정죄를 받아야 됩니까, 안 받아야 됩니까? 받으면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죽습니다.
그런데 중생된 영은 안 죽고 영생하니까 정죄를 받기 때문에 안 죽습니까, 안 받기 때문에 안 죽습니까? 안 받기 때문에 안 죽습니다. 자기 심신이 범죄한 그 정죄는 안 받았습니까, 한번 받았습니까, 언제 받았습니까? 중생 후에 받았습니까, 사죄 후에 받았습니까, 칭의 후에 받았습니까, 중생 전, 칭의 전, 사죄 전 그때 정죄받았습니까? 네, 그때 정죄받았습니다. 그때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죄가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는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자 이해 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네 그러면 또 하나 물어 봅시다.
중생한 사람의 몸은 죄를 짓습니까 안 짓습니까? 짓습니다. 중생한 사람의 마음은 죄를 짓습니까, 안 짓습니까? 또 중생된 영은 죄를 짓습니까, 안 짓습니까? 중생한 영을 받은 중생한 사람이 범죄하는 것은 육이 범죄합니까, 영이 범죄합니까? 육이 범죄합니다.
그것은 영이 중생되기 전에 부담한 범죄입니까, 부담하지 안한 범죄입니까, 부담한 범죄입니다, 부담한 범죄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 다 주석 내놓은 것이 그것이 틀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에 다윗이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완전합니다. 깨끗합니다.
흠이 있는가 찾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했고 흠과 점이 없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흠도 점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 행했고 온전한 자라고 그렇게 말한 그것이 거짓말입니까, 참말입니까, 거짓말입니까, 참말입니까? 그러면 다윗이 인간 쳐놓고는 자기가 의인이란 말입니까, 참말로 죄를 하나도 안 짓는 자기라는 말입니까, 인간 쳐놓고 자기는 죄를 안 짓는다는 그걸 말합니까, 절대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자기, 자기라는 말입니까? 자, 죄를 절대 짓지 않는 자기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간 쳐놓고는 죄를 안 짓는다 그말입니까? 자 인간 쳐놓고는 죄를 안 짓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손 한번 들어 보시오. 예, 놓읍시다.
모든 전 세계에 모든 시편에 고 주석의 해석이 그겁니다. 다윗은 인간 쳐놓고는 의인이다. 고렇게 해석서을 붙여놨습니다. 틀렸습니다. 아닙니다. 다윗은 자기는 그렇게 범죄했지만 자기 속에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 중생된 영, 참 자기 참 자기는 영원히 범죄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마귀를 호령 치고 살 수 있는 이 속사람 자기, 참 자기, 완전한 자기,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 회복된 자기, 영생으로 하나님과 진리와 요렇게 결합된 자기, 중생된 자기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중생된 자기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중생된 자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흠과 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흠과 점이 없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다윗보다 그 위에 시편 저자들이 많이 말했는데 이렇게 자기의 완전을 말하는 것은 자기 자랑입니까, 하나님 자랑입니까, 자기 자랑입니까, 하나님 자랑입니까? 하나님 자랑입니다. 하나님 자랑.
대속으로 양의 피, 짐승의 피로 모형한 하나님의 어린양,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하나님과 결합되는 새생명 받은 이 모형적으로 짐승의 피로 약속을 약속을 세워놓으신 이 약속을 세워놓으신, 이 약속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그 모형인 짐승의 피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 제를 드려 가지고 미래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소망함으로 인하여 진리로 중생된 자기 영을 발견하고서 이렇게 죄를 죄를 범죄해서 뼈아프고 피골이 상접하게 마른 이 다윗이 자기 속에 하나님의 구속으로 중생된 참사람 새사람 자기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사망을 호령칩니다.
죄를 호령칩니다. 마귀를 호령칩니다.
하나님 앞에 '이제야 내가 완전하고 깨끗하고 떳떳하고 완전잡니다.
완전자입니다. 흠이 없는 자입니다. 이렇게 분풀이를 했습니다. 소원 성취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는 완전합니다. 보십시오. 흠이 있습니까 점이 있습니까 당신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뭐 있습니까 완전 무결한 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말이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말입니다. 무궁세계에 가서는 다 이 찬양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 여러분들이 자 예수님께서 장터 비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장터 비유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했지요. 장터는 시장은 어떤 곳인고 하니 한 가지 물건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 물건이 있습니까? 한 사람이 그 물건 다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 사람이 가져와야 합니까? 그렇츰 여러 가지가 됐습니다.
합하니까 여러 가지가 됐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진리는 혼자 다 깨닫습니까, 여럿이 깨달은 것을 한데 합하면 다 완전 깨달음이 됩니까? 합해야 됩니까, 혼자 다 깨닫습니까? 합해야 됩니까, 혼자 다 깨닫습니까? 합해야 됩니다.
그러면 제가 깨달은 것만 전부라고 제가 깨달은 것만 옳다고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남의 깨달은 것은 다 틀렸다고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전부 다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도 깨닫고 서로 갈라서 깨닫습니까? 네, 갈라서 깨닫습니다.
여러분들, 자 보는 것은 우리 몸의 보는 것은 무엇이 하지요? 입이 보는 걸 할 줄 압니까, 귀가 보는 것 할 줄 압니까, 보는 것은 눈만 하지요. 또 냄새 맡는 것은 이 막 심신 팔둑이 냄새 맡습니까, 눈이 냄새 맡습니까, 고 귀가 밝아 냄새 맡습니까, 냄새는 뭐이 맡습니까? 코, 코가 맡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한 몸둥이에 냄새 맡는 것, 소리 듣는 것, 보는 것, 또음식 먹는 것, 소화시키는 것, 피 돌리는 것, 또 이래 막 이런 것 걸머쥐고 후치는 것 이런 것 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러면 사람이 눈을 눈 이걸 뭣 때문에 귀하게 여깁니까? 네 눈을 왜 귀중히 여깁니까? 눈 그것만 눈 그게 없으면 이 손도 어둡지, 발도 어둡지 모든 것 다 어두워 이러니까 할 수 없이 눈 이걸 모시고 다녀야 되겠다 그말이오. 눈 이걸 모시고 다녀야 겠어.
손 이거는 뭐 손 이거는 들을 줄도 모르지, 볼 줄도 모르지, 말할 줄도 모르지, 냄새 맡을 줄도 모르지 이러니까 무거운 손 이거 끊어 내버리면 좋겠는데 와 이것 달아 가지고 다닙니까? 눈이 있다가 끊어 내버릴라 해도 눈에 꼬쟁이가 툭 오는데 아 오는 걸 제가 암만 봐서 '아 꼬쟁이 온다' 꼬쟁이 해봐야 소용 없어.
그때는 그저 손이 널름 와서 착 막아서 꽉 후져주 버립니다. 이러니까 자 눈이 손한테 교만 부릴 수 있소 없소? 또 손이 눈 제까짓거야 아무것도 못하는 것 뭐 이런데 손이 이래 가지고 있는데 저 위에 나무가 툭 떨어지는데 팔둑이 부러질 작정이요. 이래도 이 팔 이거는 모르고 잇습니다. 모르고 있는데 눈이 보고서 '아 위에 떨어진다. 얼른 손 치워라.' 이러니까 그게 치운단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이 손이 눈을 무시 못하지요. 눈은 손을 무시 못하고, 손은 눈을 무시 못하고 자 이와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의 백성은 요 면을 바로 깨달았고, 저 하나님의 백성은 조 면을 바로 깨달았고 이러니까 우리가 저만 혼자 살 수 있소 없소? 그러면 제 혼자 깨달음만 가지고 됩니까 안 됩니까? 아 칼빈 선생 혼자 깨달은 것만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칼빈 선생 혼자 깨달은 것만 됩니가 안 됩니까? 됩니까? 안 됩니다.
성령님이 깨달은 거는 하나만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까? 예 됩니다.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분은 이 면을 잘 깨달았고 저 면을 잘 깨달았는데 아직까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이 영에 대한 깨달음은 너무도 힘을 쓰지 안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중생된 영, 인간의 영이라는 이 영면을 깨닫는 데에 앞으로 주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깨달은 것은 몸에 대해서 깨달았고, 마음에 대해서 깨달았고, 또 도덕에 대해서 깨달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깨달았고, 성령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이런데 대해서 깨달았지만 영에 대해서는 영, 영 말만 했지 영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게 대해서는 연구를 안했기 때문에 모른다 그말이오. 이 영에 대한 걸 깨닫지 안한 것은 영에 대한 연구가 없어 그렇습니까, 깨달을 자격이 없어 그렇습니까? 연구가 없어 그렇습니다. 연구가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연구하도록 안 해줘 그렇습니까, 스스로 안해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연구하도록 안 해줘 그래. 하나님이 연구하도록 안 해줘 그래요. 안 해줘 그래요.
칼빈이 암만 깨달으려 해도 지금 우리가 깨달은 것은 못 깨달았소. 칼빈이 우리 깨달은 거는 못 깨달은 많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아 사도들은 성경 기자지만 성경 기자니까 그들은 다 깨달은 것 아닙니까. 아니요. 사도들도 오늘 깨달음을 모르는 깨닫지 못한 것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 시대마다 깨닫게 해주십니다.
이러니 때문에 이십세기 오늘에는 이렇게 원자탄 수소탄 뭐 이런 것이 나왔는데 옛날 깨달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에는 영의 문제가 제일 중대한 문제로 봉착돼 있는데 이 영에 대해서 연구를 해 가지고 우리 한국 교회를 가르칠 이런 신학자들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에 필요한 신학자는 이 사람의 영에 대한 바로 지식 하는 그런 바로 깨달은 이런 영에 대한 학자들이 신학자들이 많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학자는 사람의 영에 대한 신학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자 이제 이 육은 양자 됐습니까, 양자가 안 됐습니까? 양자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하나도 안 됐습니까, 하나도 안 됐습니까? 조금 됐지요. 이 심신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화를 입어 가고 있습니다. 성화를 입어 가고 있습니다. 영은 양자 됐다 했습니까, 안 됐다 했습니까? 육은 양자가 됐다 했습니까 아직까지 양자가 안 됐다 했습니까? 육이 양자 되는 것은 육이 거룩한 마음으로 거룩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인데, 이 몸을 의에 들이면 뭐이 됩니까? 의의 병기 죄에 들리면 뭐 됩니까?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이 심신은 누구의 지식 됩니까? 그런게 하루 열 번 하나님의 자식 됐다가 마귀 자식 됐다가 하나님 자꾸 이러는 것이 우리의 심신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사람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가짜 하나님 참 참된 하나님 여게 대해서 우리가 공부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는 뭐 했습니까? 사람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몇이라고요? 믿는 사람은 자기가 몇이라고요? 둘, 둘.
그런데 자기 아닌 자기 원수가 자기인 척 자기를 죽여 버리고 참 자기의 주격 영은 죽여 버리고 이것이 대신 그 영인 척 하고 주인인 척 하고나오는 그 아내 뺏드는 것 모양으로 이렇게 나오는 것 그것을 말해서 뭐라고 하지요? 육체의 사람, 예사람, 또 겉사람. 네 이것 다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러면 자기 중심으로 뭐이든지 하자. 피조물 중심으로 하자. 인본주로 하자.
인간 중심을 가르쳐 인본주의라 그럽니다. 이렇게 하나님보다 사람 생각하고, 천국보다 세상을 더 위주로 생각하고 하는 이 사람,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그거 자기 원수입니까 원수 아닙니까? 이 두 자기가 자기 속에 있는데 고기 요것으로 조것으로 바뀌질 때에 그 바뀌는 시간이 하루 걸립니까, 이틀 걸립니까, 한 시간 걸립니까, 네 찰나. 찰나 보다도 더 빠릅니다. 찰나 보다 더 빨라. 어떻게 그게 재빠르게 그런지 그게 재빠르게 바뀌지는 것은 그 마귀가 영을 쫓아 냅니까, 이 심신이 영을 쫒아 냅니까? 심신이 영을 쫒아 냅니다.
그러면 이 마귀는 하나님이 쫓아 내야 됩니까, 하나님에게 순종해 가지고 자기 심신이 쫓아내야 됩니까? 하나님이 쫓아내야 됩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입어 가지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심신이 쫓아내야 됩니까, 심신이 쫓아내야 됩니까? 하나님이 쫓아내야 됩니까, 자기 속에 있는 악령, 악성, 악습은 제가 쫓아내야 됩니까? 하나님이 쫓아내 줘야 됩니까, 제가 쫓아내야 됩니까? 하나님이 쫓아내 줘야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쫓아내 주도록 가만히 이래 가지고 있어야 되는구만 쫓아내는 것이 회개인데 하나님이 회개해 줄터인데 너는 가만히 있어라 했습니까? 회개하라 했습니다. 회개를 누구더러 하라 했습니까? 자기 보고 하라 했지요. 자기 보고.
우리의 심신은 지금 아주 자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은 마음이 반대하면 우리 영이 나갑니다. 할 수 없이 나가요. 나가는데 어디로 나갑니까? 그 마음과 몸 이것들에게 배척을 당해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배척 당하고 있다 그말이오. 배척 당하고 있어.
그러면 그때 하나님도 같이 쫓겨나갑니다. '내가 문 앞에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로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 열어 달라고 하는 그 문 열어 달라고 하는 그분이 누굽니까? 그분이 누굽니까? 성령님 예수님 혼자입니까 우리의 영도 같이 있습니까? 우리의 영도 같이 있습니다.
영이 성령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중생된 영이 주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모시고 와 가지고 문을 두드리는데 무슨 문을 두드린다 말입니까? 마음 문을 두드립니다. 마음 더러 이제 네가 악령을 물리치고 악령을 물리치고 내가 모시고 온 이 성령님을 모시 드리자. 살살 달겝니다. 그럴 때 이 마음이 악령 물리치려고 하면 물리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물리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물리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되었기에 물리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왕권을 그들이 깨어졌고 왕권을 뺏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물리치면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 문을 열면 마음으로 환영한다 그말입니다.
이제 영감과 진리대로 살고저 원하고 또 참사라므로 새사람으로 이렇게 살려고 자기가 원할 때에 악령은 물러가고 영과 성령님은 그 마음 속에 들어가서 마음을 주장해 가지고 이 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하나님을 물리쳤으면 하나님은 어데 가 계십니까? 하나님은 어데 계시지요. 하나님 물리치면 하나님은 하늘에 가 계십니까 이 공중에 계십니까 어데 계십니까? 자기 중생된 영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노력하는 것은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리려고 노력하는데 이 심신의 기능이 살면 이 기능은 온갖 영화로운 일을 다하고 영생을 가지고 무궁세계에서 활동을 합니다.
그러면 이 심신은 심신의 기능은 누구에게 쓰여집니까? 누구에게 쓰여집니까? 중생된 영에게 쓰여집니다. 중생된 영은 누구에게 쓰여집니까? 하나님에게 쓰여집니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중생된 영은 뭐하는 때입니까? 중생된 영은 무엇을 하는 때이지요? 자기 타고 다닐 비행기, 배, 차 이런 것 모양으로 이제 무궁세계 가 가지고 영이 사용할 수 있는 영계 가 가지고는 영계 가 가지고는 이 마음과 기능을 가지고 영계에서 모든 일을 영원히 하게 됩니다.
아무리 의사가 훌룡한 의사라도 그 의료하는 그런 기계가 없으면 치료할 수 수술할 수 있소 없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것도 못하지요. 아무리 훌룡한 비행사라도 비행기 없으면 그 사람 공중에 날아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모양으로 중생된 영이 무궁세계 가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시키지만 중생된 영이 가지고 있는 그 심신의 기능이 무능하면 심신의 기능이 무능하면 그 영이 영계에 가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할 수 있소 없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중생된 사람이 영계에 있다가 이 우주에 왔습니다. 이 물질계 와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육체의 기능 변화 받은 육체의 기능이 없으면 그 영은 이 물질계에 와 가지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이 하기 싫어서 못합니까 영이 할 힘 없어 못합니까? 영이 사용할 그 몸의 기능이 없어 못합니까? 기능이 없어 못합니다. 영계에서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영이 싫어서 못합니까 할 기능이 없어 못합니까? 영이 사용할 마음의 기능, 신비한 마음의 기능 이것이 없어서 영계에서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까? 네 그것이 없어서 못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자 지금은 지금은 영은 뭐 하려고 분주합니까? 영은 무엇을 하려고 분주힙니까? 영은 이 우주에서 영원히 사용할 기구 영계에서 영원히 사용할 기구, 그 기구를 마련해야 타고 갈 때는 타고 가고, 날아갈 때에는 날아가고, 바다로 갈 때는 바다로 가는 모양으로 이 물질계에서 영이 활동할 수 있는 그 기능을 활동할 수 있고 영계에 활동할 수 있는 그 기능을 갖춰놔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영은 자기가 영계와 물질계에서 사용할 것을 마련하느라 중생된 영은 애를 씁니다.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성령님은 뭐 하고 계시는고, 성령님은 당신이 당신과 꼭 동등 실력을 가지고 당신이 모든 것을 다 맡겨 놓으면 척척 잘할 수 있는 당신의 수족같고 당신의 몸같은 이런 그 인간을 만드려고 이런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려고 하나님은 애를 쓰십니다.
이 사람을 만드려고 하니까 먼저 뭘 만들어야 됩니까? 하나님이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려고 하니까 일차적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됩니까? 일차적으로 뭘 만들어야 됩니까? 와 여게는 죽은 사람처럼 대답이 없어. 무엇을 만들어야 됩니까? 따라 합시다. 영, 영, 영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뭘 만들어야 됩니까? 마음. 또 그 다음에는 뭘 만들어야 됩니까? 몸. 자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 영은 다 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 다 할 수 있는 영이 됩니다.
이 영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자기 마음에게 시키면 마음이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은 또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몸에 시키면 몸이 몸이 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몸은 자기밖에 있는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하니까 만물이 쭉쭉 따라서 순종해서 하게 됩니다.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요.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이 모르는 이 비밀을 깨닫고 이대로 해야 됩니다. 칼빈도 영은 마음이 영, 영이 마음, 영은 이성적인 이성적 영은 영인데 그 영이 뭣인지 영의 정의를 내려놓지 안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근 오백 년 전에 근 오백 년 전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깨닫게 하시는 그분에게만 부담을 다 시켜놓고 그 위에 신학자득은 다 죽은 신학자인지 도무지 시대는 변해서 사천오백 년 전에 이 세상과 지금 세상은 발달이 굉장해서 마귀는 키는 열 길이나 자라 올라갔는데 기독교에 키는 그대로 난장이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기독교가 바짝 지금 밟혀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칼빈이 말하는 그 이상은 말하면 안된다는 그 말은 칼빈을 우상 만들어서 죄짓는 자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아니요. 칼빈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쓴 한 사람입니다. 칼빈의 제자는 어떤 칼빈의 자냐? 칼빈이 깨달아 놓은 세워 놓은 교리가 그것이 성경대로의 틀린 것이 있으면 그걸 얼른 수정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틀린 것을 하나라도 덜 보도록 해서 수정하는 그것이 칼빈을 아끼는 칼빈의 제자요.
칼빈이 연구하다가 죽었다고 이것을 모르겠다 하는 그것은 칼빈을 계대해서 그것을 연구해 가지고 칼빈의 연구를 계대해 가지고 오늘 세대를 이길 수 있고 정복할 수 있고 오늘의 복음이 세상을 이기고 오늘 복음이 다 이길 수 있도록 해야 칼빈의 제자지. 하나니의 백성이지.
다 칼빈을 우상 만든 죄를 다 회개해야 됩니다. 칼빈은 위대한 신학자요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줬소. 그때까지는 우리에게 가르쳐 줬는데 그 후세대는 하나님이 그분에게 맡기지를 아니했습니다. 그 후세대는 그 후세대에 하나님의 종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시대가 점점 발전 되고 변화 되고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해가는데 따라서 이런 것들을 다 능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하고 움직여야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는 신관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는 신관도 옛날 그때 신관으로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 신관에 오늘 이 세대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신관을 성경에서 다시 발견해 내야 됩니다. 연구해 내야 됩니다. 그때의 그 인론을, 그때의 인관을, 그때의 인생관을 그것으로 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때에 상상도 못할 오늘 사람들이 됐습니다. 오늘의 인생관을 성경에서 찾아내야 됩니다.
죄악도 그때의 죄악관 그것으로 끝을 맺지 말고 거기에서 새 움이 돋아서 오늘의 죄악관을 성경에서 찾아내야 칼빈 제자가 됩니다.
제가 지금으로 부터 이십 한 육 칠 년 전에 청도교회에 가 가지고 칼빈의 깨달음 칼빈 선생의 깨달음만 가지고 다라고 생각지 말고 그 시대를 감당했기 때문에 오늘 벌써 이십세기가 됐으니까 오늘에는 오늘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시대 시대에 이렇게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당신의 진리를 발견해 가지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출하라고 하시는 것이니까 주후 백 년경에 그때 깨달음과, 삼백 년경의 깨달음과, 천 년경의 깨달음과, 오늘의 깨달음이 점점 깨달음이 점점 더 밝아지고 넓어지고 세밀해지고 깨끗해지고 정확해져야 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 했더니만 그 집회 마치고 가니까 그만 '아 제가 칼빈보다 낫다 한다. 오늘에 칼빈보다 더 깨달은 사람이 나와야 된다 한단다.' 이래 가지고 이단으로 정죄를 해 가지고 또 그때 한번 정죄해서 야단 만났습니다. 말은 맞지만 뭐 여럿이 달려드니 뭐 어째 그대로 내비두지.
언제 미국 갔다 온 미국 갔다 온 (홍만석) 박사라고 하는 그분이 남교회에서 설교를 할때 나는 가지 안했는데 말하기를 '오늘은 우리가 칼빈의 깨달음으로 만족하지 말고 칼빈보다 더 깨달은 그 후배들이 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이 말을 하니까 박사가 하니까, 박사가 하니까 말을 안해. 이 박사 믿는 인간들이야 하나님 믿는 인간들 아니고. 박사가 말하니 암말도 안해.
지금은 그런 소리를 내가 여기서 큰 소리 해도 되는데 그 전에는 그랬으면 다른 사람이 날 묶어 잡아다 묶으려고 달라들깁니다.
그러므로 오늘에는 이 세대를 감당할 수 있는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한 이제까지 연구하지 못한, 이제까지 손을 대지 못한, 이제까지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 세상이 자꾸 이렇게 되어 나가니까 그 면을 우리가 마음을 들이고 연구를 해 가지고 이 신구약 성경은 이만 하면 충족하기 때문에 이 세대의 사람은 능히 구원하고 남음이 있는데 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인공위성이 나고 난 다음부터는 교회 청년들이 없소.
'과학만 해도 천국 가는데 뭐 예수 믿을 뭐 있는가.' 이래 가지고 늙은이가 혹 믿었지. 젊은 사람들 교회 안 나와요. 이러니까 미국에는 교회를 이제 집을 큰 집 팔라 한다. 아 그 헐한 집 있다. 미국에서 제일 헐한 집 있으니 헐한 집은 무슨 집인지 압니까? 교회. 헐한 집은 예배당입니다. 헐한 집은 예배당이요.
얼마나 헐하든지 사는 돈은 얼마 안 되는데 그 관리하는 관리비가 없어서 못 산대요. 살 돈은 있는데 그러면 집이 얼마나 싼지 알지요.
자 그러면 이제 다시 새로운 문제로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영에 대해서 영에 대한 정확하게 알고 영에 대해서 우리에게 바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이런 학자를 이런 하나님의 종들을 일으켜 달라고 여러분들이 기도를 합시다. 네, 오늘에는 칼빈주의는 어린 학생들도 다 압니다. 그거 다 알아요. 예수님께서 '여인으로 난자 중에는 세례 요한 보다 큰 자가 없지만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 보다 크다' 하는 그 말이 우리가 갈 무궁세계에는 세례 요한이 제일 작은 자라 말입니까? 그말 아니요. 천국은 신약시대를 가르쳐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구주관이 예수관이 속죄관이 메시야 관이 이것이 구약시대의 아브라함 엘리야 다니엘 그런 사람보다 예수님에게 대한 지식은 신약 교회에 제일 작은 그 주일학교 학생이라도 그보다 더 확실히 안다 그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 예언해 놓은 그거 그 예언만치 모르는 주일학생 어디 있습니까? 그 예언의 십 배 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주일 학생은 이렇게 시대에 대한 깨달음이 다르다 그말이오. 그런데 어떻게 칼빈이 깨달은 것을 끝을 막아 놓고 그 다음은 깨달은 것은 마구 박살을 시켜서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이렇게 하는 그런 마지막 소리를 하고 있느냐 그말이오. 다 안 돼. 회개해야 돼. 하나님 앞에 심판 받아.
이러니까 기독교가 세상에서 마구 짓밟혀 가지고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양은 많아지지만 권위적으로는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조롱하고 있습니다.
옛날 초대 교회와 지금과 다릅니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크신 분을 모시고 사는데 뭣 때문에 조그마한 세상에게도 다 굴복하지 안하면 안 되고, 형편 되는 대로 사정 되는대로 환경을 따라서 세상 이치에 맞도록 예수를 믿지 안하면 안 된다는 그런 예수 믿는 사람이 됐습니까? 이것은 오늘의 복음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늘의 복음을 받지 못하면 안 됩니다. 오늘의 복음은 따로 있습니다. 옛날 복음이라는 옛날 복음은 묵은 둥치요 묵은 둥치에서 오늘의 복음 새 움이 나오야 됩니다. 오늘 세대를 감당할 수 있는 깨달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 우리가 공부한 것, 두 가지 하나님.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두 가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귀란 놈이 하나님이라는 가장을 꾸미 가지고 나온 그걸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소. 또 두 가지 사람을 공부했습니다. 두 가지 사람, 이것 다 성경에 있소.
그 다음에는 셋째로는 두 가지 지식을 공부했습니다. 두 가지 지식. 옛날에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이것밖에 말했지만 오늘에는 그래 가지고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두 가지 지식 해 가지고 하나님 지식, 인간 지식 이래야 지금 이 세대에 이 미혹을 막아낼 수 있다 말이오.
사람의 지식은 산 지식입니까 죽은 지식입니까, 죽이는 지식입니까 살리는 지식입니까, 세상 이 지식 가지고 하루 살았으면 그만침 살았습니까 하루 살았으면 그만치 죽었습니까, 십 년 살았으면 십년 만치 생명이 더해졌습니까 이제 그 죽음이 더해졌습니까, 십 년 살면 생명이 짧아졌소 길어졌소, 죽음은 많아졌습니까 적어졌습니까, 일생동안 칠 팔십을 살았으면 이제는 생명이 많습니까 죽음이 많습니까, 일생동안 산다면 죽는 일 했습니까 산 일 했습니까 이러니까 팔십 년 살 생명을 자꾸 죽였지 하루 살면 그만큼 죽이고 이틀 살면 그만큼 자꾸 죽이고 죽여서 다 죽여버리니까 마지막에는 코루루 팩 하고 죽어야 되지 어쩔거라.
이러니까 그 생활을 무슨 지식으로 합니까? 그 생활은 무슨 지식으로 하요? 무슨 지식대로 살아 가지고 그렇게 됐습니까 인간 지식대로 살아 가지고 그렇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어데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어데 있지요.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에 있습니다. 또 성경 안에 내재하시는 영감이 가르쳐주시는 영감에 그 은밀 지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은 죽은 지식입니까 산 지식입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살리는 지식입니까 죽이는 지식입니까 살리는 지식입니다. 살리는 지식이요.
이러니까 자 세상에는 지식이 둘이 있는데 둘이 있는데 하나는 대답하시오.
하나는 아니요. 대답하시오. 하나는 따라 하는 아니고 대답하라니까. 하나는 하나만 대답해 봐요. 하나는 자 이제 둘인데 지식 둘이 있는데 하나는 어떤 지식인지 한번 대답해 봐요. 하나는 죽은 지식. 따라 해요. 크게 따라 해요.
죽은 지식, 죽은 지식, 죽은 지식 하나님 지식 외에 것은 다 죽은 지식 죽은 지식, 또 하나는 산 지식, 산 지식, 산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뿐, 하나님의 지식뿐, 하나님의 지식 뿐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 외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 다 없어질 지식, 하나님의 지식은 세세 무궁토록 있을 지식.
네, 옛날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제 이렇게 구별 안하면 마귀란 놈이 어떻게 날아 들어 가지고 뭐 덮어대는지 마 볶여 대어서 안 됩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은 살리는 지식이고 그밖에 있는 지식은 죽이는 지식이니까 이 지식이 둘이 공통이 되겠습니까 반대 되겠습니까? 공통 되겠소, 반대 되겠소? 이 지식은 무슨 거짓말이라 했소. 순전히 거짓 말인가, 반거짓말인가? 이 지식은 반거짓말.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식과 비슷한 것 있습니까 없습니까? 비슷한 것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실은 다릅니다. 네, 이러니까 자 하나님의 지식과 그밖에 있는 지식이 목적이 이 두 가지 지식의 목적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목적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나는 목적이 무엇이지요? 죽이려는 것.
하나의 목적은 따라 합시다. 하나의 목적은 죽이려는 것 하나의 목적은 살리려는 것, 하나의 목적은 죽이는 것 하나의 목적은 살리는 것. 그러면 이 지식의 지식의 비판은 같겠소 다르겠소? 이 지식의 평가는 같겠소 다르겠소? 이 두 지식의 인도는 같겠소 다르겠소? 네 다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을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옳고 바르고 참된 것만 가르쳐 줍니다. 그밖에 있는 지식은 전부 반거짓말이요. 맞는 것 같습니다. 맞는 것 같고 위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위하는 것 같지만 천상 위하기는 위하는 것 같은데 위하기는 위하는 것 같지만 원수가 뭐 주는 것 같다 했지요. 독약을 넣은 떡 주는 것 같다 했지. 독약을 넣은 떡 주는 것 한 가지라.
맛있다고 먹어 보면 그만 배탈나고 그만 죽습니다. 그래 놓으면 이제 의원이 와 가지고 그걸 치료를 해 줍니다.
의원이 누굽니까? 예수님이 의원이십니다. 그 독약을 넣은 떡이 독약을 넣은 떡이 그게 이름을 그 떡 이름 압니까? 독약 넣은 떡 이름 아요? 그 떡 이름 뭐입니까? 죄, 죄, 죄떡이라. 죄떡. 죄. 죄. 그 떡 이름이 죄입니다. 죄라니 죄가 뭐인데,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어진 것이 죄거든.
자 삐뚤어져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어진 돈이 왔으면 돈 그거는 독약 떡이요.
뭐요. 돈 그거는 독약떡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직장을 취했으면 그거는 뭐입니까? 독약떡, 독떡, 해봐요. 독떡 합시다. 독떡 독떡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영전되는 것을 뭐입니까? 독떡. 하나니의 뜻을 어겨서 피난한 것은 그 뭐입니까? 독떡.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그건 뭡니까? 독떡.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정이 딱 들어붙는 그 정은 뭐입니까? 독떡. 하나님의 말씀을 여겨서 성공 해놓은 그거는 뭡니까? 독떡 먹으면 건강 해집니까, 병듭니까? 그 병은 어느 의사가 와야 치료합니까? 예수님이 치료합니다. 그거는 어찌해야 되죠? 어찌 치료해야 되죠? 게워 내고 씻어 내면 돼. 게워 내고 씻어 내면 돼. 게워 내는 뭡니까? 회개. 씻어 내는 거는 뭡니까? 네, 하나님의 그 영감의 말씀으로 자기가 이제 순종하면 믿음을 지키면 그게 쏵 씻겨집니다. 하나님 시키시는 것만 하면 쏵 씻겨버리요. 믿음 지키면 깨끗하게 씻겨집니다.
그러데 우리가 요 지식에 대해서 두 가지 지식 요것 있는 것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 자 무슨 일을 당하든지 물건을 당하든지 당할 때에 우리가 지식 없이 그것을 대하면 거기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할 생각도 없지요. 그러면 우리가 무슨 물건을 당하든지 일을 당하든지 할 때에 거기에 지식이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모든 사람이 무슨 사물을 대할 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대로 그 일을 처리합니까, 지식을 무시하고 처리합니까? 지식대로 처리하지요. 지식이 하라 하면 하고 지식이 하지말라 하면 안하고 지식이 손해간다 하면 안하고 지식이 유익된다 하면 하고 그렇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자기 사물을 대할 때에 그 지식 없이 거기 대해서 자기 행동을 합니까, 자기 지식으로 비판해 보고 행동합니까? 자기 지식으로 비판해 보고 행동하지요.
그러면 그럴 때에 비판해 보고 행동할 때에 그때에 죽은 지식을 가지고 비판하면 죽는 일 생깁니까, 사는 일 생깁니까? 죽는 일.
그때에 지식 가지고 비판할 때에 산 지식 하나님 지식을 가지고 비판해서 행동하면 사는 것이 나옵니까. 죽는 것이 나옵니까. 사는 것 이만하면 다 됐어요. 네 이러면 다 됐어요.
인제 여기 우리 교역자들은 이제 녹음기가 하나님이라. 녹음기 떡 갔다 놓고 이러고 자기는 꾸벅 꾸벅 잘도 자. 자면서 그러면 못 들었다 그래도 녹음기에 기록되어 있다. 녹음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래 녹음기 생각하고 꾸벅꾸벅 졸고 자고 이러는데 그 녹음기에 성령의 능력도 거기 녹음 됩니까. 안 돼요. 거 속습니다. 거 속아요. 그렇게 하지 말아요.
저 영감 없는 지식, 영감 없는 지식은 그 지식이 영감 없는 지식은 어데 쓰이지요. 영감 없는 지식이 하는 일이 뭐입니까. 영감 없는 지식이 하는 것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 영감 없는 성경 지식이 하는 일이 몇 가지인지 아는 사람, 하나 한 가지 합니까, 두 가지 합니까, 세 가지 합니까, 네 가지 합니까, 열 가지 합니까? 자 손가락으로 한번 가르쳐봐요. 영감 없는 지식은 몇 가지 하는고 한번 가르쳐 봐요. 손가락으로 가르쳐 봐요. 한 가지. 한 가지. 한 가지 뿐인데 보자. 봐. 봐. 손가락 서이 올리는 거는 하나도 안 보인다. 서이 올리오. 셋, 셋, 세 가지. 손가락 세 개 올리오. 세 개, 세 개, 세 가지 해요. 세 가지, 세 개 올리오.
그러면 세 가지인데 가르쳐 줄터이니까 영감 없는 지식은 첫째로 뭐하는고 하니 과거에 대한 것만 합니다. 과거에 대한 것을 후회만 하게 합니다. 또 미래에 대한 것을 결심만 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하는 한 가지는 뭐 하는지. 현재, 현재 할진대 좋으려고 저 다른 사람 정죄해요. 다른 사람, '봐라. 성경에 이런데 저 사람 저렇다.' 다른 사람 비판하고 평가하는데 씁니다. 다른 사람 정죄에 씁니다. 영감 없는 성경 지식은 잘 써먹으면 과거 후회에 써먹고 미래 결심에 써먹고 그 나머지기는 다른 사람 비판에만 써먹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어찌 됩니까? 어떤 사람 되지요? 자기는 혼자 의인입니다. 나는 이런 후회를 했다. 이런 결심을 했다. 다른 사람 저렇다. 그러니까 자기는 의인 됩니까, 안 됩니까? 거짓 의인, 거짓 의인, 거짓 의인, 영감 없는 진리 아닌 사람은 결국은 그 사람은 교만하게 됩니다. 마귀란 놈이 영감 없는 진리에는 그 속에 뭐이 들어있습니까. 마귀 들어 있소. 마귀 들어 있어. 이러기 때문에 그 마귀란 놈이 '야 거짓말 해라. 그 따위 소리하지 마라.
잊어버리라. 성경 보지마라.' 이래 하다가 기어코 성경 보려 하면 찍해야 고거에 써먹게 만듭니다. 그래도 또 써먹으려 하면 미래에 써먹게 만들지. 현재에는 못 먹구러. 단단히 말뚝을 박아 가지고 막 철망으로 쳐서 못 하고러 하는데 고것은 어데다가 고렇게 못 들어가게 합니까? 어데다가 못 써먹구로 하요? 현재에는 못 써먹구로 단단히 방어를 해 놓습니다. 마귀란 놈이 이래 놓으니까 자 후회만 하고 결심만 하고 현재 할려 하니까 턱턱 무너지고 현재에는 실행이 안 되지는 이것 때문에 이 통탄하는 사람들이 한번 통탄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소. 이런 경험 있는 사람. 여러분들 안 그래? 나는 이 나는 이 때까지 통탄이라. 이거 때문에 통탄 아 후회하고 결심만 결심만 해 놓고 현재에만 닥치면 엉뚱한 일이 뚝뚝 되어지니 기가 찬다. 이게 골치는 이거라.
이것 때문에 늘 싸웁니다. 싸워서 이 싸우니까 하나씩 둘씩 되어나가기는 되어나가요. 이 싸움을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야. 그 사람은 허공을 치는 사람입니다. 허공을 치는 사람.
영감 없는 성경 지식은 그것은 영감 도리 입니까 지식입니까, 영감 도리입니까 지식입니까? 지식은 또 뭐라 합니까? 지식은 교만을 낳습니다. 지식은 교만케 하는 것입니다. 영감 도리는 겸손케 하고 영감 도리는 생명과 평강과 영원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영감 도리입니다.
그러면 이제 지식은 공부했습니다. 지식은 공부했소. 그러니까 무슨 사람이든지, 사물이든지, 무슨 좋은 일 나쁜 일이든지 닥칠 때에 그 때에 그 사람은 어떻게 움직이는고 하니, 그 사람은 자기 그 지식대로 움직입니다. 여러분들 불이 앞에 닥치니까 불이 앞에 닥치니까 모두 불에 안 들어 가려고 말이지 옆에 사람 미니까 막 뛰나가고 불에 안 들어 가려 하는 것, 그 사람 왜 불에 안 들어 가려 합니까? 뭐이 들어서 못 들어 가게 합니까? 불에 들어 가면 타 죽는다는 그 지식이 들어 가지고 못 들어가게 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자 어쩐지 목이 말라서 못 견디겠는데 저기 물 소리가 쿨쿨쿨쿨 나니까 그 사람이 그리 쫓아 갑니다. 뭐이 들어서 그리 쫓아 가게 합니까? 지식이 들어서 쫓아 가게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움직임이나 몸의 움직임은 그 지식에 피동을 받게 됩니다. 지식에 피동을 받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의 지식에 어떠함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은 어떠해지고, 그 사람과 행동의 어떠함에 따라서 일은 어떻게 되고, 그 사람의 지식과 마음과 행동에 어떠함에 따라서 그 사람은 그대로 되어갑니다.
그러니까 삐뚤어진 지식은 어떤 행동을 만들어 냅니까? 삐뚤어진 행동, 삐뚤어진 행동은 어떤 사람 만들어 내지요. 삐뚤어진 사람, 옳은 지식은 어떤 행동 만들어 냅니까? 옳은 행동, 옳은 행동은 뭐 만들어 냅니까? 옳은 사람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자 행동이 중합니까 마음이 중합니까? 마음이 중합니까 지식이 중합니까. 네. 지식이 중합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은 두 가지, 지식 중에 어느 지식으로 사는 것이 중생된 영입니까? 산지식, 하나님의 지식으로 사는 것이 중생된 영입니다. 새사람, 참사람은 무엇 지식으로 사는 것이 참 사람 새사람입니까? 산 지식 하나님의 지식, 그러면 우리는 사리판단이나 또 가치평가 무엇이든지 닥칠 때에 그때에 무엇을 닥치든지 닥칠 때에 그때에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 몸이나, 움직여지는 것은 무슨 물건이나, 무슨 사람이나 뭘 닥칠 때에 이제 그것대로 움직입니까, 그것을 따라 움직입니까, 자기 속에 있는 지식을 따라서 그것에게 움직입니까? 그러면 마음은 자기 속에 있는 지식에 따라서 움직입니까,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 따라서 움직입니까? 네 지식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호랑이가 말이오. 호랑이가 엉 그러며 오니까 엉 그러며 오니까 호랑이 새끼는 마구 아랑이며 막 좋아서 뛰고 굴립니다. 와 좋아합니까. 뭣이 들어서 그렇게 좋게 합니까? 호랑이 새끼 지식이 들어서 뛰고 좋게 합니다.
거기 또 갓난 어린애가 있습니다. 갓난 어린애가 있는데 저게 호랑이가 이래 오니까 갓난 어린아가 보고서 좋아서 얼룽덜룽 하게 오니까 좋아서 이래 쌋습니다. 그거 와 좋아합니까? 거기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지요. 무식해 그렇단 말이오. 그 아가 지식이 없으니까. 자기 아는 대로 뭣이 얼룽거리면 좋거든 자기 어머니가 뻘건 얼렁덜렁 옷을 입고 있으니까 그 호랑이가 얼렁덜렁 호랑이가 오니까 자기 엄마인 줄 알고 좋아서 아 웃어싸면서 그래쌌습니다. 거기 어린아이는 좋아서 호랑이 보고 좋아서 옷고 이러는데 거기 어른은 하나가 막 얼마나 놀랬든지 막 상이 새파랗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식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지식이 들어서 그런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몸이나 마음이나 움직이는 것은 지식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이러니까 그 지식이 그 속에 나쁜 지식 삐뚤어진 지식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나 몸이나 움직이는 것이 바로 되겠소 삐뚤어지겠소? 그 속에 지식이 바른 지식이 들어 있으면 움직이는 것이 바로 되겠습니까, 삐뚤어지겠습니까? 바로 되지요.
이러니까 우리는 행동이 중합니까, 마음의 움직임이 중합니까? 자기 속에 이 지식이냐 저 지식이냐? 어느 지식을 두려워 하는 거기 중합니까?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제일 중요합니까? 네 지식을 바로 정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중요하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 가까이 와 가지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뒤에는 애굽 병정들이 추격을 하고 그러니까 그분들이 죽겠다고 놀랜 것은 죽겠다고 놀랜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나에게 순종하면 모든 질병도 없고 모든 고통도 없고 해할 자도 없고 모든 것이 치료되고 모든 것이 평안하고 다 안전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했습니다. 했는데 그때 그들이 놀래서 기절해 죽겠다고 야단지긴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해서 놀랬습니까, 순종 안해서 놀랬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이 지식을 인정을 해서 순종 안했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놀래게 되는 것은 무슨 지식이 들어서 그렇게 놀래게 했습니까? 네 그들에게 있는 인간 지식이 죽이는 지식이 들어 가지고 그렇게 놀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놀랜 그 지식, 놀래 그 두려워 떱니다. 두렵다고 지금 기절해 죽겠다고 하는 그렇게 놀래게 된, 놀래게 한 그것은 사람이 놀래게 했습니까 지식이 놀래게 놀래게 했습니까, 사람이 놀래게 했습니까 지식이 놀래게 했습니까? 그러면 지식이 놀래게 했는데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입니까, 인간 지식입니까? 인간 지식, 그 지식이 죽겠다고 놀래게 했는데 그 지식은 바로 판단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바로 판단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그 사람들은 홍해 바다에서 죽었습니까, 애굽 병정에게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그러면 그들의 판단이 바로 되었소, 안 되었소? 삐뚤어졌다 그거요. 삐뚤어졌어.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물건너 바다로 건너 가라고 하고 배 타고 건너 가라 하고 예수님은 따로 산에 기도하러 가셨는데 그때에 풍랑이 이니까 마구 죽겠다고 고함을 질르고 지금 놀래서 야단입니다. 그럴 때에 그 놀래게 한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으니까 그대로 됩니까, 안 됩니까? 예수님이 하라 한대로 됩니까 안 됩니까. 예수님이 죽은 자도 살리면 살고 말씀대로 다 됩니다. 걸어가라 했으니 갑니다. 그 마지막 갔습니까 못 갔습니까? 이랬는데 그들이 놀래고 떨고 겁을 내고 야단지진 것은 하나님의 지식이 그렇게 했습니가, 인간 지식이 그랬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양떼를 죽이려고 도적질 하려고 왔으니 나보다 먼저 오면 도적이요 강도라 했는데 도적이요 강도라는 이것은 먼저 온 자는 어떤 자입니까? 먼저 온 자는 뭘 가르치지요. 먼저 온 자는 뭘 가르치요. 인간 지식 인간 노름, 인간 지식 인간 노름. 그것은 다 죽은 것이요. 죽이는 일 하는 것입니다. 다 서로 죽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요. 인간 노릇, 인간 지식.
그러니까 그 자를 부인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부인을 해야 됩니다. 네 시간이 너무 많이 가서 이제 오후에는 또 필요한 것을 우리가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단단히 기억해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는 아는 것 같지만 이 자리 떠나버리면 고만 몰라져버리요. 단단히 알고 정신차려야 됩니다.
또 한 가지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은 여기서 가르치는 것을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이해가 되지만 밖에 나가면 미혹시키는 일이 있어서 그 말을 하면 또 미혹을 받아 가지고 또 틀렸다고 해요. 그런 말 듣지 말고, 이러니까 가서 말하지 말고 요대로 실행을 해 봐요. 실행을 해 가지고 사람이 되면 그 다음에는 유혹 안 받습니다. 가 가지고 실행하고 다른 사람 한테 자꾸 입으로 말하지 말아요.
자 이제 따라합시다. 배운 도를 말로 하지 말고 실행으로 사람되고 행위되고 일이 된 것 가지고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자 기도합시다.
주님 성령으로 하신 말씀 성령으로라야 감당할 수 있사오니 성령으로 감당케 하시고 성령으로 알고 간직한 사죄의 도리, 칭의의 도리, 새생명의 도리, 주님의 구속을 받아 이루어 가는 도리 이는 성령님이라야 간직할 수 있고 열매 맺게 할 수 있사오니 성령의 결실이 백배, 육십배, 삼십배가 이루어지도록 모두 다 알곡 되고 쭉쟁이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