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3:34
위엣 것과 땅엣 것
1980. 8. 13. 수후집회
본문: 골로새서 3장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의 것을 소망으로 가지고 땅의 것을 소망으로 가지지 말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또 위의 것을 표준으로 하고 땅의 것을 표준으로 하지를 말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위의 것은 하늘의 것을 말하고 아래 것은 땅의 것을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땅의 것만이 저들의 소망이요. 기업이지마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땅에 소망도 있고 하늘의 소망도 있고 땅의 것도 있고 하늘의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가 있는데 땅의 것을 소망으로 하지말고 하늘의 것을 소망으로 가져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것만 필요하고 땅의 것은 필요가 없느냐? 땅의 것도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의 것도 필요 있습니다. 하늘의 것은 영원 무궁세계에도 필요하고 지금도 필요합니다.
하늘의 것은 금생과 내세에 다 필요합니다. 땅의것은 금생에만 필요하지 내세에는 하나도 필요가 없습니다. 땅의 것은 금생에 필요한 것은 금생에 필요한 것은 뭣 때문에 필요하느냐 하면 하늘의 것을 이루는데에 이용되는 비용과 같고 또 하늘의 것을 마련하는 데에 자본과 원료와 같기때문에 필요합니다.
하늘의 것은 다 영생의 것이요. 완전의 것이요. 무궁의 것이요. 영원불변의 것이요. 사망아래에 있는 것이요. 또 없어질 것들입니다. 믿는 사람의 몸도 그것도 저주 아래있고 사망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것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는 사라의 이 몸도 그 기능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지 못하면 영원히 사망합니다. 그 몸둥이는 덩어리는 예수님의 재림하실때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영이 중생한 거와 같이 부활을 생명의 부활을 받기는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의 것과 아래것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잘 구별해야 되는데 하나님에게 대해서 참하나님, 가짜하나님, 참사람 거짓된 사람, 또 참지식, 거짓지식, 산지식 죽은지식, 살리는 지식, 죽이는 지식, 성경 말씀 외의 것은 전부가 다 죽이는 지식이지 살리는 지식은 하나도 거기 섞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모두다 살리는 지식입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도 이 우주로 되어있는 이 세상이라는 이 세계 이것뿐인줄로 알지마는 이것 외에 무궁한 세계가 있습니다. 무궁한 세계는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됐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하나님의 지능대로 다 변화를 받아 가지고 되는 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천인 만인 억만인이 가도 하나도 개인 성품은 가지고 못갑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닯은 것만 갑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것만 가지 하나님과 다른 것은 어떤 것이든지 가지못합니다. 행동도 못가고 일도 못가고 마음도 육도 모두 못갑니다. 일들이나 물건도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 맞은거, 요것만 가지 그외 것은 전부다 제거되어 버립니다.
이 세상은 많은 사람들의 그 개성이 있어서 개성을 살려가지고 별별 개성들이 다 있는 그것이 세상이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원에 꽃이 붉은 것만 있으면 안되고 붉은것, 누른것, 흰것, 알롱달롱 그래야 그 화원이 정원이 아주 아름다운 거와같이 하늘나라도 별별 사람들의 개성 그것이 가야 하늘나라에 영광이 있고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된다고 그렇게 말하지마는 그거는 모르는 소립니다.
하늘나라는 전부 이 하나님 한분의 속성과 같은 그 신성과 같은 인격성 지능도 속성도 모든 소원도 비판도 평가도 경영도 전부가 하나님과 꼭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 같으면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것을 가져서 같으냐? 가져서 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하나님으로 피동되고 하나님으로 인하고 하나님에게 속해져서 하나님의 것으로 다 자기 것을 삼아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 가지고 모든 것이 되어있지마는 이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어졌지마는 이것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있는 것이라. 우연히 있는 것이라 자연히 있는 것이라 이렇게들 생각하고 어떤 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다고 하나님 섬기고 어떤 자는 제가 있었다고 그 자존자로 주관자로만 어떻게 살고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러니까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인데 지음받은 이것이 앞으로 있기를 움직이기를 살기를 원하기를 모든 작용하기를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으로 말밍마아 생겨진 이것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또 보존되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이렇게 되어야 할터인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존재로 움직이기도 앞으로도 전부 이 생겨진 존재케 된 것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존재한것이 움직이고 사는 전부도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움직인 그런 것도 있고 생기지기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지마는 이것이 움직이는 것은 전부 제 욕심대로 어떤 피조물 욕심대로 그렇게 움직이는 것들이 세상에 쌓여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지금 무슨일을 하고 계시는고 하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보존되고 움직이고 자라가고 처음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진것이 앞으로 영원 무궁토록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고것을 하나님이 만드시길 목적으로 하나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아니하고 전적 하나님으로 반대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제가 스스로 있는 것 같이 제 단독이 또 어떤거는 피조물 둘이 합해서 또 어떤 거는 피조물 열이 합해서 이래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지음받은 것들이 하나님 배반한 그 행위를 하는데 요런 행위도 조런 행위도 별별 행위를 다 합니다.
둘이 합해서 하기도 하고 백이 합해서 하기도 하고 여러 수억이 합해가지고 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런 종류가 열, 백, 천만 만 아니고 그 종류가 억억억 만도 넘게 하나님을 요 모양으로 배반하고 조 모양으로 배반하고 고 모양으로 배반하고 별별모양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 종류가 하나도 빠짐이 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종류를 이 세상에서 다 생기지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을 고 당신이 만든 것이요. 당신이 주권적으로 이래서 하나님을 비유컨데 배반하되 세모제비로 배반한것, 네모재비로 배반한것 또 납작하게 배반한것,지단하게 배반한것, 짤막하게 배반한것 이것모양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종류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세상에서 다 생기지도록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이래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는 어떤 곳인고 하니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요렇게 배반했으니까 요런 보응을 받고 조렇게 배반했으니까 조런 보응을 받고 고렇게 배반했으니까 요렇게 망하고 조래 배반했으니까 요래 어두워지고 고렇게 배반하니까 요것이 어리석어지고 치우쳐지고 교만해지고 뭐 별별것으로 이렇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여러 모양으로 배반한 그대로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되고 하나에 둘 보태면 서이 되는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배반한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요렇게 요거는 배반했으니까 요거는 요렇게 망했고 조거는 조렇게 배반했으니까 조렇게 뻐드러졌고 조거는 조렇게 배반했으니까 요렇게 어리석어졌고 조거는 조렇게 배반했으니까 조거는 어두워졌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 배반하는 종류를 빠짐없이 만드는 것이 세상이요. (어디서 아이 우노? 거 아이좀 달래요.) 이건 잘들어야 돼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종류라고는 하나도 빠짐이 없이 전부다 만드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종류를 다 만드요. 요거는 요렇게 배반했다.
그래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는 요렇게 배반한 것은 요렇게 되고 요렇게 배반한 것은 요렇게 되고 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인간과 피조물과 천사가 불행스러워진 것, 저주되어진 것, 참 천해진 것, 고통스러워진 것, 못쓰게 된 것 아주 보기 흉하게 된것, 더러워 진 것 막 그런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득 쌓여있습니다.
이러니까 피조물로서 하나님에게 배반한 종류가 몇 종류나 되며 어떤 어떤 그 모양으로 배반을 했습니까 하는 것을 그것을 알려면 이 역사 육 천 년 동안에 인간이라는 인간과 만물이라는 만물 창조 이후 예수님 재림때까지 이 우주에 또 영계에 찾아보면 전부 그 종류가 다 있습니다.
또 유황불 구렁텅이에는 하나님을 고렇게 배반하면 어떤 결과가 나왔지, 그것을 그 결과를 찾아 볼려면 유황불 구렁텅이 가며는 다 찾아봅니다. 유황불 구렁텅이는 그것입니다. 또 세상은 그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하나님을 배반하던 것이 요렇게 돌이키면 요리되고 조렇게 돌이키면 조리된다는 그것을 하나님 배반 많이한것, 적게한것, 또 아주 적게한것 혼자 배반한것, 둘로 배반한것, 또 말로 배반한것, 생각으로 배반한 것, 뜻으로 배반한것, 성질로 배반한것, 손으로 배반한것, 몸뚱이로 배반한것, 생활로 배반한것. 또 이 가장도 배반이 있습니다. 요 가정은 하나님에게 요렇게 배반하고 조 가정은 하나님께 조렇게 배반하고 하나님 배반한 요런 가정 조런 가정 요렇게 배반한 가정 조렇게 배반한 가정, 요렇게 배반한 민족 저렇게 배반한 민족 요렇게 배반한 국가 조렇게 배반한 국가 많이 배반 적게 배반 배반하다가 말은것, 또 배반을 끝까지 한것 뭐 별별 종류를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만들어가지고 보라. 하나님 배반은 이런 이런 종류에 배반이 있다.
그러면 그 배반한 것이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찌 되었노. 그걸 봐라. 그걸 구경하려거든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봐라. 거기 가보면 어덯게 된것을 압니다.
또 세상에서 유황불 구렁텅이 가기 전에도 모두 그깁니다. 봐라. 하나님 생각하나. 생각이 하나님 따라가지 아니하고 제 생각대로 하니까 그 결과로 이것이 일년을 실패했다. 십년을 실패했다. 오년을 실패했다. 요 얼마동안을 실패했다. 요러니까 요 사람이 요 모양으로 사기꾼이 됐다. 요 모양으로 거짓꾼이 됐다. 요 모양으로 깡패가 됐다. 요 모양으로 자손이 요렇게 망했다.
조렇게 삐뚤어졌다. 요 세상에서 자손에게 요런 보응을 받았다. 친구에게 요런 보응을 받았다. 사회에서 요렇게 버림을 당했다. 요런 병이 들었다. 요렇게 정신이 이상하게 됐다. 별별 이 하나님 배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을 이 세상에서 보여주고 또 무궁세계에서 또 보여주는 이래서 하나님 배반한것을 볼라고 종류를 볼라고하며는 세상을 살펴보면 되어지고 또 배반함으로 무엇이 잘못되느냐 하는 것을 알려면 이 세상과 유황불 구렁텅이를 가서보면 알게됩니다.
하나님 이것 하십니다. 또 하나는 뭐하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을 섬기되 조금 섬기다가 마는것 많이 섬기다가 마는 것, 조금 좋아하는 것, 많이 좋아하는 것, 행동으로만 좋아하고 마음으로는 싫어하는 것, 행동과 마음으로는 좋아하면서 성질로는 싫어하는 것, 다른 걸 가지고는 전부 다 하나님을 공경하지마는 욕심, 돈 욕심, 그놈은 언제든지 하나님 섬기지 아니하고 요리되는 것, 뭐 하나님 섬기는데 대해서 많이 섬긴것, 적게 섬긴것, 섬기다가 만것, 또 안 섬기다가 섬긴것, 말로만 섬긴것, 마음으로만, 말로만, 말과 마음으로 섬긴것, 몸으로 섬긴것, 하나님 조금 섬기던 가정, 많이 섬기던 가정, 조금 섬기던 사회 많이 섬기던 사회, 하나님과 조금 가까운 나라. 조금 먼 나라.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나라. 교회도 하나님을 믿는 교회라고 하지마는 하나님과 관계가 요 빼딱한 것, 바로 들어붙는 것 조금붙은 것, 많이 붙은것, 뚱뚱하게 붙은것, 여물게 붙은것, 요것을 전부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는 하늘나라는 보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요 하나님과 요렇게 말이 한 마디가 같했다 말 한 마디는 하나님과 같은말 했지마는 나머지기 말은 전부가 다 하나님과 같이 하는말 하지 안했다. 마귀와 같은말 했다. 이랬으면 그것을 하늘나라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산 수많은 종류가 하늘나라에 다 가있고 그 종류대로 하늘나라에서 축복과 그 보응을 보상을 받아가지고 요거는 요렇게 상을 받아가지고 있습니다.
고거는, 아 요거는 요렇게 요렇게 하나님 섬겼더니 요런 상을 받았구나.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하면 어떻게 행복이 오고 어떻게 멀리하면 어떻게 불행스러워지는가? 요것을 환하게 다 만들어 놓은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요. 또 먼저 말한 그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요. 이제 이것을 다해놓으니까 이제는 하나님 요래 배반하면 어찌 되노? 저리 배반하면 어찌되노. 그 환하게 다 알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대한 행동과 또 피조물이 어떤 어떤 종류의 것이 있다는 것을 다 알아서 하나님 아는 지식이 충만하고 또 이 인간과 만물들이 하나님과 피조물에 대해서 그 관계점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서 이러니까 하나님 아는 지식이 넘치도록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러면 어찌되나. 저러면 어찌되나.
만물들이 다 알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뭣 때문에 하시느냐?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순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움직여지는 그것이 되어지기를 목표로 세워가지고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영원전 자존하시고 예정도 없었고 창조도 없었고 모든 존재가 하나도 없을때에 하나님 홀로 계실때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한 것이 있는데 그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소망이요. 하나님의 기업인데 그 목적하신 것이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순전히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존재하도록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움직이는 자가 되게 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움직이는 고것이 영생이요. 고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에 딱 들어맞은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요. 그것이 피조물 가운데 제일 존귀한 것이 되는 것인데 요렇게 할려하니까 이 사람들이 만물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움직여야 되나. 달리 움직이면 안되나.
이러니까 그것이 들어서 의무이 되어가지고 요일이 충실히 안된다 그말이오.
이래서 봐라.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 하나 하나까 그 보응이 얼마나 되는고 봐라. 이러면서 하나 선악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악과를 먹으니까 하나님이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예, 그말이 맞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그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당신이 말씀해 드린 당신의 성질이요. 당신의 뜻이요. 곧 당신의 말이지만 그것이 당신과 같다 그말이오. 당신을 하나 거슬려서 거역하니까 그 값이 어북 컵니까 적습니까? 천한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데 뭐이지요. 제일 싫어하는 것이 죽임인데, 그 죽음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어겨 그렇습니까? 하나 어겨 그렇습니까? 하나 어긴 값입니다. 하나 어긴 값이요.
그러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일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살았으면 그 사람에게 대한 그 보응은 얼마나 가겠습니까? 한 마디 어긴 것으로 보응은 제일 싫어하는 것으로 받는데, 일생동안 어겼으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 죽음, 죽음만한 고통받겠소. 일생동안 한 마디 어겨서 죽음 고통 받았으니까 이제 열 마디 어겼으면 죽음 고통의 몇 배 받아야 됩니까? 죽음 고통의 십배 받아야 됩니다. 만 마디를 어겼으면 죽음 고통의 몇 배를 받아야 됩니까? 만배를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요. 세세토록 고난의 위로 올라간다. 세세토록 고난의 위로 올라간다. 거기는 그만 지옥가고 없었으면 좋겠는데, 거기는 구더기도 안 죽습니다. 안죽소. 안죽소.
고통뿐입니다. 고통뿐이요.
인간이 한번 타락해 가지고 그 값을 받는 이것으로서 사람에게 알려져서 이것 가지고 아는 사람은 알고 그만 돌이키고 모르는 사람은 유황불 구렁텅이 가지고 알게 합니다. 이래서 이제 이쪽에는 왼쪽에는 뭐있느냐 하며는 왼편에는 하나님 어긴 종류대로의 어긴것과 어긴 종류대로의 그 결과를 받은 비참과 이것들이 가득찬 것이 왼쪽이고 또 오른 쪽은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으로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은 조금 하다만 것, 많이하다가 만 것, 계속한 것, 꼭 하나님으로만 움직여한 것, 이런 것이 여기에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움직인 그런 존재가 몇이나 됩니까? 그런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박원철) 목사님, 몇입니까? 없습니까? 많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이재순) 목사님 몇이나 됩니까? 많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이종득) 목사님 몇이나 됩니까? 많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목사들 폭로 다 되고 폭락되네.' '이제 시세 폭락되네.' 녹임기만 놔두고 턱턱, (신용인) 목사님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있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다 이거 가짜 목사네.' '전부 가짜 목사네, 가만 보니께,' (정재완) 목사님,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만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얼마 안 됩니까? (박은석) 목사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몇이나 됩니까? 하나라니? 하나. 하나 뭐인데, 자기 영감, 그것도 타락했다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뭐 거기 뭐, 아따, 여기 대답했다.여기 평신도들,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몇이나 있습니까? 하나. 하나. 하나 있어. 거기 뭔데, 허허 할렐루야. 저기 이제 소망있다 말이오.
예수님 예수님 하나뿐이라. 뭐 몰라서 엉뚱한 소리해. 예수님 한 분 뿐이라. 저 중간반 그래, 내가 중간반을 사랑해. 또 주일학교 사랑하고 아 그저 어떤 우리 권찰님이 유력한 권찰님인데, 요만한 여섯 살 먹는 여아가 학교도 안다니는데, 이러면서 이걸 가다가 자빠진다. 떨어지면 안되는데 이 선생님 손 꼭붙잡고 가거라. 이러니까 '손을 갖다 잡아라.' '잡아라.' '와 말을 안듣고, 잡아라.' 안잡고 있으니까 '남자손 잡지말라 하던데' 그만 그 권찰님이 항복을 해 버렸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한 그 말을 듣고서 이렇게 당장 실천에 옮겨 이러는데 나는 이게 뭐인가? 이거 참 쭉쟁인줄 알고 탄식을 했다 이거요.
이러니까 주일학교 학생들이 소망이 있고 하나님께 나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거 뭐 나보고도 안되고 이십세 삼십세 보고도 안되고 주일학교 학생들 이거 보십시오. 이거 다 주님을 진정 믿고 바로 사랑하고 섬기고 이러는데 이거 지금 와노면 모조리 한 가지인데 이거 어찌 되겠습니까? 좀 길러 놓거던 와야 안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를 동안에 당분간 좀 참아주십시오. 우리 주일학교 지음 온 전국에서 부흥이 안 됩니까? 네, 작년 금년에 우리 전국의 각 교파에서 주일학교 학생이 불어난 것이 얼마나 불었는지 모릅니다. 아 그리스도 참 그 기독교 신문 뭐하는지 참 모르겠어. 이 사회 신문들은 그걸 보고 지금 이래 막 신문에 내는데 이 기독교 신문이라 하는게 돈만 받고 팔아 먹고 그 신문기자들 틀렸어. 우리 한국에 지금 주일학교가 어떠게 일어나느냐? 부흥이 일어나느냐 할때에 우리가 아무데 주일학생이 얼마된다 무슨 교파는 지금 부흥이 얼마됐고 무슨 교파는 얼마되고 이것을 보고해 가지고 이 학생 주일학교 부흥운동 아무도 이것이 얼어난 이것을 말해주지 않고 뭐 세계 전국 복음화 운동, 큰 소리만 뻥뻥치고 아무것도 내용은 없으면서 틀렸어. 틀려. 하나님이 그렇니 모조리 나부터 나 많은 것은 하나님이 쏵 밀려고 해요. 소용이 없어. 목사님들은 모르는데 저 있습니다. 있습니다. 이거 뭣이요. 그 이름이 뭣이요. 예수님. 저 중간반 학생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움직인 것이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높여. 뭣 때문에 높였소?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라."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만물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아래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이것이요.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 섬기는 종류대로의 것이 있고 요만치 섬기니 조만치 행복됐고 고만치 섬기니 고만치 행복됐고 그대로 유황불 구렁텅이는 하나님 배반 한 것이 요렇게 배반했기 때문에 요런 값 조렇게 배반했기 때문에 조렇게, 이렇게 된 것이 지옥이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요만큼 하나님으로 인하여 산것이 요만치 산것은 요만치 가치있고 요만치 실력있고 요만치 영광스럽고 이래서 어짜든지 예수님께서 오셔가지고 당신이 첫 열매로 하시면서 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라."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거 만들라고 애를 씁니다.
그럼 우리 할 일이 뭐요. 하나님으로 지음받은 이것이 하나님 아니면 망합니다.
유황불 구렁텅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이 세상에서 하나님 배반하고 하나님 싫어하고 저거것 가지고 산다했는데, 하나님 나는 하나님 안 믿는다. 내 밥 내 먹고 산다. 하나님이 다 뭐꼬? 아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사는데 공연히 말이지. 내가 먹고 살지, 내가 장사해 가지고 내가 출근해서 이래 가지고 먹고산다. 하나님 어디있노.
하나님이라 하는 것 듣기 싫어하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냐 많이 해봐라 하고서 이제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근방에 가지도 안합니다. 하나님 안가요.
하나님 없으면 자 모든 생명도 공기도 모든 영도 육도 거기 유지되는 것이 하나님으로 나오는 것인데, 하나님이 거기 손 딱 떼어버렸지. 너거 가지고 살았으니까 너거것 가지고 살아라. 내거는 다 찾아올란다.
찾아오니까 물 한 방울 거기는 하나도 없소. 다 가져와 버리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없소. 하나님이 안 계셔. 만물보다 거짓된 요것들만 소복히 모아가지고 있으니까 거 좋겠소. 나쁘겠소. 그거 좀 상상 좀 해봐야 돼요.
상상좀.
여러분들이 이래 살아가다가 다급하고 영 아주 불행스러움을 만나거든 좀 깨달으시오. 이것이 지옥에 아주 제일 고급 모퉁이가 요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그 지옥에 진짜는 안나오요. 지옥에 그림자가 비추어 오는 것이 세상 고통입니다. 인간들이 행복이라고 좋아하는 그것이 천국의 그림자에 비추어 보니까 그거 맛을 보고 좋아하고 천국은 진짜 실상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니까 "내 피와 살을 먹는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도록 요거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우리의 목적과 성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아니하고 제대로 움직였다가 멸망받은 제 마음대로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한번 움직여 보니까 그 영향이 얼마나 무섭고 큰지, 이것을 한번 맛 보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일려고 애를 써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인 고것이 성도의 실력이요. 고것이 성도의 가치요. 고것이 성도의 지위입니다.
하늘나라는, 이 사람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예수님의 구속을 받았지마는 영은 구속받고 구속받아 중생 부활 했으니까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같애. 이 사람은 예수님으로 지음받았고 예수님의 구속까지 받았지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은 꼭 하나밖에 안했소.
그럼 그 사람은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 갔을때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 하나님에게 피동돼. 하나님에게 접선돼.
하나님에게 접선이 되어가지고 하나님 것이 졸졸 나와야 되는데, 한번만 순종해서 한번만 접선하고 한번만 피동됐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밖에 없소.
하늘나라에 그거 하나밖에 없어. 딴것은 없어. 그러니까 고 한군데나 고게나 제가 쓸모있지, 딴데는 하나도 쓸모가 없소. 이거는 뭐 발도 다리도 없지, 팔도 없지 그저 눈하고 입하고만 있는 앉은 뱅이라.
이러니까 이거는 보는데나 말하는데나 쓸모있지, 딴데는 쓸모없소. 그러니까 이제 벙어리요 귀머거리요 봉사요 다리 아랫도리, 실한 것 둘이 합하면 한 사람 되기 때문에 위에 짊어지고 한 사람은 요리가자 조리가자 말만하면 이거는 짊어지고 가면 되지, 하늘나라는 그것도 없소.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면 어떻게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어떻게 된다. 요것을 알리기 위해서 세상에서 역사하시고 고렇게 하는 목적이 뭐이냐? 하나님으로 인하여 피조 창조된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요것이 많이 되든지 작게 되든지 요것을 만들어가지고 요것만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등용해 쓰시기 위해서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요것이 예수교요.
자, 그러면 두 가지 하나님, 또 두 가지 사람, 또 두 가지 지식, 또 두 가지 세계, 두 가지 세계 그러면 세상, 또 하늘나라 이렇게 두 가지 세계 또 지옥 천국 두 가지 세계, 또 그 다음에는 뭐이지요. 행동. 행동도 두 가지입니다.
행동도 두 가지요.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는 행동이 있고 마귀로 인하여 하는 행동도 있고 행동도 두 가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 인아지 아니하고 마귀로도 인하지 아니하고 자기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절대 없습니다. 잘난 인간은 나는 하나님 안 믿습니다. 하나님 안 믿으면 마귀 믿지 뭐. 난 마귀도 안 믿어. 하나님도 안 믿고 내 단독으로 살아.
어리석게. 네가 몰라 그래. 네가 몰라. 네 속에 지금 마귀가 왕이 되어 가지고 사로잡고 있어. 공중에 권세잡은 신은 누구속에서 일한다고 했습니까? 불신자 안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행동은 두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행동이 있고 마귀로 인한 행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행동은 영생이요. 마귀로 인한 행동은 사망입니다. 행동이 둘 있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행동이 둘인데 하나님으로 인한 행동, 영생의 행동인지 멸망의 사망의 행동인지 그것을 살펴봐야 되는데 살펴볼라면 뭐 가지고 살펴봐야 됩니까?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살펴보면 압니다. 지식을 살펴보면 압니다. 지식이 몇가지입니까? 지식이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살필때에는 악령으로 인하여 행동하는 그행동은 하나님의 지식으로 그것을 살패보면 하나님의 지식으로 비판하고 평가해보면 하나님의 지식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의 지식으로 그것을 심사해보면 그 하나님의 지식이 그 행동을 뭐라합니까? 영생이라 합니까 사망이라 합니까? 뭐이라 하지요. 사망이라 합니다.
그런데 마귀로 인한 행동을 그것을 하나님 지식말고 죽은 지식가지고 살펴보면 마귀로 인한 그 행동을 영생이라 합니까 사망이라 합니까? 영생이라 합니다.
영생이라 해요.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과 행동을 심시할때에 그 답안이 각각 다릅니까? 답안이 같습니까? 그러니까 마귀로 인하여 하는 행동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는 행동을 그 행동이 사망인지 생명인지 그것을 심사할려면 제가 그것을 심사해볼라면 내가 살고 있는 행동이 사망할 행동인지 영생할 행동인지 그것을 복있는 행동인지 망할 행동인지 그것을 사람들이 살펴볼라고 하면 사람들이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그러면 살필때에 이 죽은 지식으로 살피면 그 행동 사망 행동은 복있는 행동 사는 행동이라 할 것이고 산지식으로 살피면 산행동은 산행동이라 할기고 죽은 행동은 죽은 행동이라 할터이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산지식과 죽은 지식으로 살피면 그 답안이 같이 나옵니까 틀립니까? 틀립니다.
틀리면 자기 행동을 자기가 이 복된 행동인지 망할 행동인지 그 행동을 조사하려면 행동을 조사하는데 열심히 부지런히 정신차려서 명철가지고 그 행동을 세밀히 조심해서 이렇게 참 정신차려서 조사를 하면 그 옳은 정평 정가의 답안이 나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까? 하하, 네, 없단 말이 맞았으면 맞기는 맞았습니다.
그러면 그 조사하기전에 무슨 지식가지고 조사를 해야 되겠습니까? 무슨 지식가지고 조사해야 되겠소. 하나님의 지식 (요 뭐이 소리가 쨍쨍 나는것 보니까 또 중간반 학생들이라.) 여 서부교회 중간반 학생들 아니라도 다른 교회 중간반 학생들 많이 왔는데 어쨌든지 나가 어린 사람들이라. 말소리 들어보니까.
그러니까 그 행동이 정말로 죽는 행동인지 사는 행동인지 그 행동을 바로 심사하려고 하면 바로 알려고 하면 무슨 지식가지고 심사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심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가기고, 저 사람이 무슨일이든지 턱 닥쳤을때에 사람이 말이오. 무슨 일을 닥치든지 사람을 닥치든지 또 물질을 닥치든지 뭘 닥치든지 내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어떻게 내가 행동해야 될까? 그 행동을 바로하면 생명과 성공이요. 그 행동을 잘못하면 이제 사망과 실패되는 것인데, 그 올바른 행동을 자기가 바로 찾아가지고 행동해야 되겠는데 그런 것을 닥칠때에 닥쳤을때에 '아 잘들어요.' 닥쳤을때에 이 사람이 야, 행동을 잘못하면 망한다. 행동을 바로하면 성공한다.
이러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될런지 어떻게 행동해야 될런지 내가 조심있게 이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될런지 이거 한번 살펴봐야 되겠다. 그래 안해도 어떻게 해야 바른 행동일까? 어떻게 해야 망하지 않은 행동일까?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행동될까? 어떻게 해야 후회없는 행동이 될까? 어떻게 해야 바로 옳게 해서 복될 행동일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자꾸 조심해서 생각합니다. 자 그 사람, 그 행동을 바로 알아 맞힙니다. 못 맞힙니까? 바로 알아 맞힙니다. 못 맞힙니까? 바로 알아 못맞힙니다.
그러면 누가 오지요. 마귀란 놈이 얼른 뛰어옵니다. 뛰어와 가지고 이렇게 해야 옳은 행동이지. 그러니까 그 마귀말을 들어보니까 솔솔 들어보니까 그렇게 하면 성공이 되겠고 좋고 옳고 바르겠다고 그렇게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납득이 됩니다.
이러니까 요렇게 해야 되겠구나 해서 그합니다. 그러면 고렇게 하는 것이옳다 바르다 요렇게 자기속에 이해가 되어지는 요거는 그때 이해되어 질때에 그렇게 마귀가 시키는 것이 옳다 바르다 이해되어 질때에 그때에는 그 사람이 벌써 어는 지식으로 제 지식을 삼았습니까? 마귀의 지식, 죽은 지식을 제 지식으로 삼았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어떻게 행동할까? 그것을 자 훌륭한 사람에게 물으면 됩니까 안 됩니까? 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은 누구의 군대라요. 중생되지 아니한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부모에게 물으며는 그때 물을때에 가르쳐 주는 것은 어느 신이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마귀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헛일이요.
사람에게 물을려면 어떤 사람에게 물어야 되겠습니까? 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물어야 되는데 성령에 충만한 사람도 가다가 변해질 수가 있습니다.
가다가 변해질 수가 있소.
이러니까 자기의 행동을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복되고 참 영생이 되는 행복된 그 행동과 망하는 행동을 망하는 행동, 성공하는 행동 그 두 가지 행동중에 이것이 어느 것이 망하는 행동이고 어느 것이 성공하는 행동이라 하는 그 행동을 올바로 딱 들어 맞힐라고 하면 무슨 자대로 가지고 심사해야됩니까? 뭘 가지고 심시해야 됩니까? 뭘 가지고 심사해야 됩니까? 무슨 저울가지고 심사해야 됩니가? 무슨 기계로 심사해야 됩니까? 네, 또 말해봐. 뭘로, 뭘로, 네, 그랬으면 성경말씀 해 가지고는 맛이 좀 없어. 하나님 지식, 산지식 가지고 요래야 맛있지. 그렇지 안해요. 하나님 지식, 산지식 가지고 이 지식으로 그걸 달아봅니다. 지식으로 심사를 해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지식을 달음줄이라.
하나님의 지식을 저울이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이러니까 자 모든 것을 바로 알려면 자기가 조심하고 정신차리고 주의 하는 그것이 첫째 할일입니까? 첫째 할일이 뭐요. 모든 것을 사람도 바로 알고 일도 바로알고 사건도 바로 알고 이 돈을 취해야 될것인지 버려야 될것인지 이래 행동해야 될것인지 저래 행동해야 될것인지? 모든 자기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바로 할 것인지 그걸 바로 알려하면 제일 처음에 가질 것이 뭐입니까? 제일 처음에 가질 것이 뭐입니까? 제일 처음에 가질것이 뭐입니까? 제일 처음에 가질 것이 뭐입니까? 제일 처음에 가질 것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 이것부터 가지고 이제 그 모든 것을 심사해야 되지 하나님의 지식은 다 내비둬버리고 제 속으로 제가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면 실패합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죽은 지식이 섞여있어. 이러기 때문에 어느 놈이 나올란지 모른다 말이오. 이러니까 똑똑히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심사해야 된다.
요것부터 단정을 지어놓고 하나님의 지식 보자.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인데 성경에 성경은 요렇게 하라하니 저렇게하라하니 요렇게 하는 행동은 성경에 성경이 사망 아 요렇게 하는 행동은 온천하 사람이 틀렸다 하는데 성경은 맞다. 이럴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틀렸다하고 하나님의 지식이 맞다하면 맞은 것입니까 틀린 것입니까? 예. 맞은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들은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들은 왜 그렇소.
네, 죽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삐뚤어지게 꺼꾸로 해석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고린도전서 3장에 세상 지혜가 세상 지혜가 옳다고 하거든 그른줄 알고 산다고 하거든 죽는줄 알고 세상 지식에 반대로만 생각해라. 그렇게 한 말씀이 고린도전서 3장에 있습니다. 자 이러니까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따라가야 되겠소. 안 따라가야 되겠소. 자 많은 사람 따라갈만 합니까 안 합니까? 많은 사람이 말하니까 그 많은 사람의 말에 고만 꼼작을 못하고 많은 사람의 말에 기압을 당해야 됩니까? 안 당해야 됩니까? 안 당하면 죽어 망해야지.
이러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논평하는 것은 내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안다. 내가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도록 하는 그것도 허무한줄 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조사를 해서 그분이 심사를 해 가지고 낱낱이 판단을 할 모양이니까 그걸 생각하니 졸리기만 하고 떨리기만하고 어짜든지 여기 틀리면 어짤꼬 해서 조심만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했소. 어디다가 그렇게 말해놨습니까? 예. 고린도전서 4장에 그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할때에 많은 사람이 말할때 그말이 옳은가 그런가 그것을 심사할려면 어떻게 해야 심사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막 이리 떠듭니다. 떠들 그리니까 아이구, 여러 사람이 떠드니까 저 말이 맞겠지. 그 사람 외식자입니까 신자입니까? 외식자, 많은 사람이 막 떠들고 이래 쌀때에 저는 가만히 앉아가지고 성경을 자꾸 바라보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해놓은 것이 이거 하나님의 지식에 뭐라했는고 보자.
보니까 하나님의 지식에서 그거 다 사망하는 것들이다. 이래 버렸으면 그만 사망인줄 알고 억만 명이 말하는 그까짓거 눈에 넣지도 아니하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말이오. 그까짓거 뭐 하거나 말거나 그까짓거 많은 사람이 말을 하는데 성경에 딱 들여보니까 성경에 딱 맞은 말을 한단 말이오. 맞은 말을 하면 여러 사람이 말하는 그걸 반대해야 됩니까 환영해야 됩니까? 환영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때에 그 사람이 딱 앉아서 말을 하요. 무슨 말을 철철 철철 말을 잘합니다. 또 그 사람이 말을 더듬어 합니다. 말을 하면 그 사람 말을 들을때에 여러분들이 그말이 무슨말인가? 그말이 무슨말인지 그것을 먼저 살펴야 됩니까? 그 사람이 무슨 지식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가? 그걸 먼저 살펴야 됩니까? 무슨 지식을 가지고 하는지 그것을 먼저 살펴야 됩니다. 딱 보면 아 그 사람이 산지식 가지고 말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죽은 지식가지고 말하거든 말하니까 자 그말을 들을것이있소. 없소. 그말이 들을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들으면 어찌되요. 미혹받아요. 들을것도 없지요.
이러니까 들어서 벌써 이 사람이 순전히 세상 지식가지고 말하는 구나. 죽은 지식 가지고 말하는구나. 그러면 그저 말하는 데에 반대하면 서로 거 불목해질터니까 아무말도 안하고 그 말하면 아, 여보시오 하면 아 예, 예, 듣습니다. 벌써 평가를 딱 해 놓았기 때문에 암만 말해 봤자 그거는 그러니까 그저 이 귀로 들으면 이 귀로 흘려버리고 그뭐 들을게 없다 말이오.
그러다가 이러다가 그 사람이 어찌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에 딱 들어맞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말도 무시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다. 아 하나님의 지식에 딱 들어 맞아. 이러면 자다가 퍼뜩해 가지고 예, 무슨 말 했어요. 이번에 무슨말 했지요. 이렇게 합니다. 네, 그렇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예, 제가 그말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복종하겠습니다.
인정하겠습니다. 그대로 하겠습니다.
왕이 하는 말이 권세 있습니까? 미치광이 하는 말이 권세있습니까? 웅변가 하는 말이 권세있습니까? 못난 사람 말하는 것이 권세있습니까?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말하는 것이 권세있습니까? 외모는 보지마. 외모는 이 사람이 말하든지 저 사람이 말하든지 왕이 말하니까 아이구 큰 말이지, 그럴 필요없어. 어린 아이 조그만히 코를 질질 흘리는게 그 말을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말을 멸시해야 됩니까 두려워 복종해야 됩니까? 두려워 복종해야 돼.
일본에 기무라 목사라 하는 유명한 목사가 있었는데, 그 목사는 세살 먹는 어린 아이가 자기 아들이, (예수 믿다가 주일학교 반사까지 하다가 낙심하고 만 사람인데,) 세살 먹는 어린 아이가 이제 그 아이가 세상을 뜰때에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가지고 지금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의 종노릇하다가 배반하고 이랬으니까 앞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런 진노가 있다. 이러니까 아빠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 운동해야지 안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다. 아, 요게 요말을 딱하는데, 그만 그말 듣고나서 그 아이가 그말하고 세상을 딱 떴다. 네 아버지 집에 가버렸다 말이오.
그만 이 기무라 라는 사람이 그때 그말을 들으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하는 말이거든, 얼마나 가슴을 치고 후회를 하고 떨었든지, 그때 그 시간 부터 나서 가지고 목사 공부해 가지고 기무라 목사라고 일본에서 아주 유력한 참 진짜 부흥을 일으킨 목사입니다. 뭐, 하천풍운씨니 저런이는 진짜 부흥 못일으켰어요.
내촌감사 저런이는 진짜 부흥 못일으켰어요. 그런 이는 진짜 부흥일으켰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는 행동을 심사할때에 말을 심사할때에 사람을 심사할때에 일을 심사할때에 자기에게 부딪힌 손해를 심사할때에 자기에게 오는 횡재 재물이 몽땅 오는 것을 심사할때에 미남이 올때에 미남을 심사할때에 미인을 심사할때에 가정을 심사할때에 모든 것 심사할때에 제일 심사를 바로 하려면 뭘 가져야 됩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심사하면 바로됩니다.
네, 이것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이래도 닥치면 쾅 소리 나면 그만 소리에 피동되어 가지고 그 소리에 피동된 사람 돼 가지고 막 비가 와서 소나기가 막 오고 이러니까 그 비에 피동 되어 가지고 전부 이성 다 잃어버리지 인격 다 잃어버리지 신앙 다 잃어버리지 그때는 아무것도 없어.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아 이 장생골은 오면 모두 사람들이 그만 당장에 환장을 해 버려서 이걸 제것도 없고 남의 것도 없고 뭐이든지 제게 필요하면 딱 불을 쓰고 남의 것이라도 훔쳐서가서 천막도 치고 터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무리를 해재끼고 이런다고서 여 오면 어쩐지 여 오면 좋을라고 그러는지 나쁠라고 그러는지 당장에 그만 정신이 완전히 변해져서 변질된 사람이 되고 환장을 하는데 와 그렇습니까? 그걸 나한테 와서 물어요. 그 와 그렇습니까? 와 그래요. 요거 여러분들이 압시다.
죽은 지식 이 비판하는 것은 죽은 지식대로 비판하면 사는 것은 죽는다. 죽는 것은 산다. 망하는 것은 흥한다. 흥하는 것은 망한다. 좋은 것은 나쁘다. 나쁜 것은 좋다. 죽은 지식은 그 목적이 사망시키는 목적이기 때문에 전부 그렇게 판단해 줍니다.
이러니까 죽은 지식이 틀렸다하면 옳소, 틀렸소. 죽은 지식이 틀렸다하면 옳습니까 틀렸습니까? 죽은 지식이 하지말라 하면 할랍니까 안 할랍니까? 죽은 지식이 하라하면 할랍니까 하지 않으렵니까? 예, 그래야 됩니다. 그거는 거짓말장이, 그거는 죽이는는 지식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은 산지식인데 이 지식이 말하는 것은 다 옳고 바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지식의 말만 들어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지금 하나를 가르칠려고 목적하고 있는데 그게 아직까지 안나옵니다. 죽은 지식대로 해도 성공이 옵니다. 죽은 지식대로 해도 실패가 옵니다.
여러분들 성공은 몇 가지지요. 성공은 몇 가지입니까? 두 가지. 성공은 몇 가지입니까? 실패는 몇 가지 입니까? 두 가지. 그러니까 두 가지이니까 죽은 지식대로 해도 성공이 오는데 성공이 오는데 성공이 두 가지이니까 어는 성공인지 문제라 그말이오. 성공이 온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어느 성공인지 모른다 말이오. 성공이 온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어느 성공인지 그게 문제입니다.
왜? 하늘의 성공도 있고 땅의 성공도 있으니까 어느 성공인지 그게 문제라 그말이오. 멸망의 원인이 되는 성공인지 성공의 원인이 되는 성공인지, 또 그것이 의문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산 지식대로 해서 실패된 그것이 멸망의 원인인 그것이 깨지는 것인지 성공의 원인이 깨지는 것인지 하늘의 실패인지, 땅의 실패인지? 실패.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그게 문제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걸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혼돈되어 가지고 자꾸 오해를 하고 곡해하고 실패합니다. 여기 다 그래요. 뭐, 여러분들 우리가 다 그래요. 번연히 보면 좋아서 우쭐거리 그만 우쭐거리는데, 우리안에 있는 도야지가 이거 잡으러 와 가지고 잡는 사람이 값을 흥정하느라고 돌아다니면 안되니까 가만히 섰어야 고걸 발견하기 때문에 사료를 주니까 지금 흥정해 가지고 잡아다가 목 따다가 지금 삶아먹을건데, 모르고 그걸 주니까 좋다고 꿀꿀 먹는 것 모양으로 이제 이 죽은 지식이 망칠라고 주는 그것인지 모르고 눈앞에 돈이 있으면 끌어 닥치면 좋고 지위가 올라가야 좋고 몸은 건강해야 좋고 건강함으로 망하는 것도 있고 지위가 올라감으로써 가족 자살하는 것도 있고 별거 다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그런 것 많이 보지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행동할때에 제일 먼저 가질것이 뭐지요. 제일 먼저 가질 것이 뭐입니까? 사람을 접촉할때에 제일 먼저 가져야 될게 뭐입니까? 돈을 접촉할때 먼저 가져야 될게 뭐입니까? 욕이 올때에 제일 먼저 가져야 될게 뭐입니까? 칭찬이 올때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매장할때는, 참 보배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의 지식을 제일 먼저 접촉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떡 가져와 가지고 내가 뭐 병원에 가니까 어느 병원이든지 의사가 떡 오니까 제일 먼저 뭐 체온계인가? 뭐인가? 겨드랑 밑에 꼭 끼어 주디만 그 다음에는 고무줄 가지고 여 대고 자꾸 이라데요.
이것 모양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닥치면 제일 처음에 무엇을 가지고 심사해요.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그만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그 사람이 나를 켜 올립니다. 막 치켜올려가지고 치켜올리니 공연히 붕 떠가지고 좋아할게 아니라. 그때 뭘 가지고 심사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심사해야 됩니다. 이런 사람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활의 등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것을 단정지웁시다. 요것을 굳게 작정을 하고 확정을 짓고 요 다음에 어디서든지 단행할 수 있어야 돼요. 단행을 해야 생명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 소용없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사람 만나 볼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나를 대하는 사람을 내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대개 목사님들이 허무해요. 목사님들 대하면 대할때에 하나님의 지식 빼놓고 인간 지식가지고 대하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나를 대하고 내 말을 들을때에 그런 사람을 별로이 만나보지 못했어요.
우리 현실에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지식 내놓고 했던 그런 어리석음은 이제 회개합시다. 이제는 암만 바빠도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아무리 두려워도 하나님의 지식가지고 아무리 죽음 앞에서라도 사자 앞에서라도 권력가 앞에서라도 먼저 하나님의 지식부터 가지고.